5장 내란(內亂)
황해남도 신천은 교통의 요지다. 내륙 중심부에 박혀서 동서남북으로 뚫린 대로(大路)가 북으로는 사리원·평양, 남으로는 태탄, 동쪽은 해주, 서쪽은 용연으로 뻗어 있다.
2014년 7월25일 금요일 14시00분, 개전 3시간10분25초 경과.
신천시 남부 산업지구의 보위대 지구대 앞에는 50여 명의 남녀가 모여 있다.
“자, 들으시오.”
하면서 지구대 현관 계단에 올라선 전석규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한 줄로 서서 장부에 서명을 하고 무기를 지급받으시오. 그리고 바로 뒷마당에 다시 모입니다.”
그러자 남녀는 말없이 일렬로 선다. 배급에 익숙한 터라 곧 하나씩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를 가는 게야?”
하고 줄에 섰던 박길수가 물었으므로 전석규는 머리를 저었다.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협동창고 마당에서 대기하라는 거요.”
“영민이가 어젯밤부터 열이 더 나는데.”
했지만 박길수는 뒤에서 미는 바람에 옆으로 지나갔다. 이웃집에 사는 터라 전석규는 박길수 사정을 안다. 열세 살짜리 아들 영민이 열흘 전부터 기동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 데려가보지도 못했지만 영양실조가 근원이다. 먹이기만 잘하면 병이 낫는다. 다른 쪽 문으로 AK-47 소총과 탄창을 받아 쥔 남녀가 빠져나오고 있다. 모두 노농적위대원이다. 17세에서 60세 사이의 남녀 중 현역과 교도대에 편성된 병력을 제외한 예비군 병력인 것이다.
7월25일 14시05분, 개전 3시간15분25초 경과. 오산의 연합사 전시사령부 벙커 안.
합참의장 장세윤이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있다가 버럭 소리쳤다.
“차 소장, 나다! 합참의장이다!”
이제야 105전차사단장 차봉호 소장과 통화 연결이 된 것이다. 장세윤이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대기하라. 알았나! 곧 대통령님께서 김정일과 협상을 하실 테니까 말이다!”
한마디씩 장세윤이 소리치듯 말했을 때 차봉호가 물었다.
“저놈들이 발포하기 전까진 쏘지 말란 말씀입니까?”
“미쳤냐? 그렇게는 못한다. 기다려!”
하고 무전기를 귀에서 뗀 장세윤이 주위에 둘러선 장군들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시선을 마주쳐주지 않는다.
그 시간에 산본장의 지하 상황실에서 대통령 박성훈이 전화기를 귀에 붙이고 있다. 상대는 평양 주석궁 지하 벙커에 자리 잡은 김정일. 박성훈이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면서 말했다.
“위원장님, 820전차군단을 세워야 전면전을 막습니다. 앞으로 20분 남았습니다.”
김정일은 대답하지 않았고 박성훈이 말을 잇는다.
“지금 선제공격을 한 북한 군부 강경파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위원장뿐이십니다.”
“….”
“20분 후면 사상 최대의 전차전이 벌어질 것이고 남북한의 전면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준비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위원장님.”
“알겠습니다.”
마침내 갈라진 목소리로 김정일이 말했다. 그 순간 박성훈 주위에 둘러섰던 사람들이 긴장했고 다시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곧 연락을 드리지요.”
7월25일 14시10분, 개전 3시간20분25초 경과.
개울가의 바위에 등을 붙이고 앉은 이동일에게 조한철 중위가 다가왔다 조한철의 손에는 지도가 쥐어져 있다.
“중대장님, 저 도로를 타면 신천이 나옵니다.”
조한철이 개울 옆쪽 언덕을 눈으로 가리켰다. 자갈투성이의 황무지 100m쯤을 건너면 도로가 나오는 것이다.
“길에는 군용트럭만 다니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전시에 차량통제가 잘되는 것 같습니다.”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은 조한철의 시선이 이동일의 옆에 앉은 윤미옥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이동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 대대본부와도 통신이 단절되었다. 무전기는 있었지만 서로 보내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다. 임시 정전을 합의한 상태여서 아군을 공식적으로 지원할 수 없는데다 그렇다고 투항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다.
46명은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 신세다. 조한철의 시선을 받은 이동일이 윤미옥을 보았다.
“북상할 수 있는 샛길은 없나?”
이동일이 묻자 주위의 시선이 모두 모아졌다. 127부대를 떠나 북상한 지 30분이 지났다. 그때 윤미옥이 입을 열었다.
“목적지는 어디세요?”
“북쪽.”
이동일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조금이라도 더 북쪽으로 들어갈 거다.”
7월25일 14시15분, 개전 3시간25분25초 경과.
“꽈앙!”
갑자기 울리는 폭음에 벙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땅이 흔들리면서 벽에 붙어 있던 상황판 하나가 떨어졌다. 제55호위대의 벙커 안이다.
“뭐야?”
김경식이 소리쳐 물었을 때 다시 폭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세 번.
“꽝! 꽈앙! 꽝!”
포격이다. 벙커가 포격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진동이 더 커지면서 벽에 붙은 전자기기 하나가 요란한 소음을 내면서 쓰러졌고 웅성거리는 소음이 일어났다.
“이기. 뭐야!”
김경식이 눈을 치켜떴다. 그러고는 소리쳤다.
“좋아, 해보자는 말이지? 전 화력으로 서울을 폭격한다!”
그때 대좌 하나가 서둘러 다가왔다. 손에는 무전기를 쥐었다.
“사령관 동지, 전화 받으십시오!”
“누기야!”
“우장선 대장입니다.”
순간 김경식이 주춤한 것을 모두가 보았다. 그러나 김경식은 곧 빼앗듯이 무전기를 받아 쥐더니 귀에 붙였다.
“무신 일이요?”
우장선은 4군단장이다. 전연지대의 서부 지역을 맡은 정규군 사단장으로 제2군단장인 김경식보다 3년 연상이지만 서열은 낮다. 그때 우장선이 말했다.
“지금 그 포는 강동포병군단에서 때린 거라우.”
“무시기?”
했지만 김경식의 얼굴이 대번에 하얗게 굳어졌다. 강동포병군단은 평양특별시 북쪽 강동군에 위치한 포병군단으로 지대지 미사일만 1000여 기를 보유하고 있다. 제55벙커를 분화구로 만드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나 같을 것이다. 우장선이 말을 잇는다.
“지도자 동지의 지시를 전하갔어. 당장 820 새끼들을 정지시키라우.”
“이봐, 우장선.”
“1분 내에 정지시키지 않으면 그 벙커는 구덩이가 돼. 서둘라우.”
그러고는 통신이 끊겼으므로 김경식이 들고 있던 무전기를 바닥에 내던졌다.
“멈췄습니다.”
화면을 본 육본작참부장 박진상이 소리쳤지만 이미 상황실 안의 지휘부는 다 보았다. 앞쪽 벽에 붙어 있는 대형 화면에는 인공위성 UT-27호기에서 촬영한 북한 지역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비치고 있다. 그때 화면이 클로즈업되면서 도로를 가득 덮은 탱크 대열이 보였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다. 옆쪽 샛길로 트럭 한 대가 달리는 것이 탱크대가 정지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820전차군단이다.
“길가로 포진하는군요.”
다시 박진상이 중계하듯 말했다. 전차군단은 도로 옆 야산으로 산개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자욱한 먼지를 내뿜으며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김정일의 말발이 먹힌 것 같군.”
하고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모두 들었다. 묵묵히 화면을 응시하던 연합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가 참모장 모건 해리슨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105전차사단하고 얼마 거리야?”
“25㎞, 30분 거립니다. 장군.”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해리슨이 바로 대답하자 우드워드는 어깨를 치켜 올렸다가 내렸다. 다소 과장된 행동이다.
“이거, 스릴이 있군.”
대형 화면 아래쪽에 시간이 찍혀 있다. 14시18분25초다.
7월25일 14시20분, 개전 3시간30분25초 경과.
황해남도 태탄 북방 2㎞ 지점. 갓길에서 타이어 교체를 마치자 이명철 상위가 버럭 소리쳤다.
“날래 가자우.”
제23교도여단 수송대 소속의 이명철은 트럭 두 대를 끌고 신천 북방의 보급기지로 군량을 실으러 가는 중에 펑크가 난 것이다.
“야, 뭐하나!”
길가에서 꾸물거리는 병사에게 다시 소리친 이명철이 1번 트럭으로 몸을 돌렸을 때였다. 길 옆 도랑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일대의 인민군 병사들을 보고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앞장선 장교는 중위 계급장을 붙인 여군이다. 그 뒤를 소좌가 따르고 있다.
“동무, 잠깐만요.”
하고 중위가 불렀으므로 이명철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오?”
그때 다가선 중위가 숨을 고르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기된 얼굴에는 땀이 배어나 있다.
“어디까지 갑니까?”
대답 대신 중위가 되물었으므로 이명철은 와락 짜증이 났다.
“신천, 그런데 왜 그러는 거요?”
쏘아붙인 이명철은 그 순간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자신과 부하들이 이들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모두 40, 50명은 된다. 이쪽은 모두 여섯 명, 군 생활 18년째인 이명철은 더운 여름 날씨인데도 싸늘한 한기를 느꼈다.
“교전이 그친 지 두 시간 가까이 되었군.”
벽시계를 올려다본 김형기가 잇사이로 말했다. 14시22분(개전 3시간32분25초)이다. 개전 1시간35분쯤인 오후 12시24분에 양국 수뇌부의 합의하에 공격이 중지된 것이다.
의자에 등을 붙인 김형기가 앞에 선 대좌를 보았다. 이곳은 제55호위대의 벙커에서 500m쯤 떨어진 지하 벙커 안이다. 사방이 시멘트벽이고 창문도 없이 철문 하나만 붙어 있는 벙커 안에는 감시역인 대좌와 김형기 둘뿐이다. 그러나 낡아빠진 플라스틱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은 김형기는 의연했다. 오히려 서 있는 대좌가 잡혀온 것처럼 불안한 표정이다. 김형기가 머리를 들고 대좌를 보았다.
“이보라우, 동무, 이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끝났다우.”
대좌는 눈만 껌벅였고 김형기의 말이 이어졌다.
“아니, 김씨 세상이 끝난 게지, 전쟁이 일어난 순간부터 말야, 지금 두 시간째 교전은 중지되었지만 수습할 수는 없어.”
그러고는 김형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그래서 지도자 동지께서는 남조선 놈들한테 엄포만 주면서 전쟁을 일으키진 못했어. 일어난 순간부터 군부가 배신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대좌는 몸을 굳힌 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김형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변화를 일으킨 주인공이 나야. 내가 이번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7월25일 14시25분, 개전 3시간35분25초 경과.
오산 연합사사령부 지하 벙커 안. 상황 화면을 향하고 앉은 연합사령관 우드워드 대장이 말했다.
“다 정지했군.”
둘러앉은 수십 명의 장성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부인하지도 않는다. 그렇다. 맹렬하게 달려가던 820전차군단이 멈춰 섰고 그전에 815기계화군단이 정지함으로써 전(全) 전선이 현 상태에서 고착되었다. 옹진을 점령한 한국 해병 7사단이 적진에 포위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도 건재하다. 그때 연합사 참모장 해리슨이 머리를 들고 누구를 찾는 시늉을 했다. 해리슨이 연합사 부사령관 이성호 대장의 옆쪽에 앉은 해병사령관 정용우와 시선을 맞춘 것은 잠시 후였다.
“장군, 그 46명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해리슨이 묻자 상황실의 모든 시선이 정용우에게로 모아졌다. 그 말을 들은 우드워드가 말했다.
“그렇군, 움직이는 건 그놈들뿐이군.”
“젠장.”
정용우가 한국어로 투덜거렸지만 해리슨은 알아들었다. 이맛살을 찌푸린 해리슨이 다시 묻는다.
“장군, 우리가 그놈들 위치를 TV를 통해서나 알아야 되는 거요?”
그러자 정용우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대답했다.
“현재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장군.”
같은 시간, 소공동 국제신문 건물의 방송실에서 PD가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고 있다. 지친 표정이다. 리시버를 낀 송아현은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앉아 앞쪽 빈 화면을 본다.
“움직여야 돼.”
뒤쪽에서 담당 국장 하기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동일의 46용사를 말하는 것이다. 하기호가 말을 잇는다.
“치고 올라가서 사건을 만드는 거야. 양쪽이 조용해진 이때가 가장 빛이 날 때라고.”
“이번에 생방되면 시청률은 대번에 60% 이상으로 솟을걸?”
편집국장 백한섭이 말을 받는다. 송아현이 듣는 터라 목소리는 조금 낮추고 있다. 그때 버튼을 누르다 지친 PD가 머리를 돌려 하기호를 보았다.
“전원을 꺼놓았는데 좀 있다 할까요?”
“계속 눌러.”
하기호가 가차 없이 말했다.
“손가락 아프면 다른 사람한테 인계해.”
송아현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이동일의 뜨거운 숨결이 귀에 닿는 것 같다.
이번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저녁밥만 먹고 바로 식당 근처의 모텔 방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가만.”
송아현이 허리를 뒤로 젖혔지만 이동일이 감아 안고 있는 터라 하반신은 더 밀착되었다. 이동일의 딱딱한 물체가 허벅지를 눌렀고 그 순간 숨이 가빠졌다.
“천천히.”
하고 송아현이 말했을 때 이동일은 짧게 웃었다.
“좋아, 천천히.”
그러고는 허리를 떼었으므로 송아현이 두 팔을 들어 이동일의 목을 감싸 안았다. 이동일의 머리가 당겨지면서 곧 입술이 겹쳤다. 입이 열리더니 살구 냄새가 맡아졌다. 이 남자 좀 봐. 이동일의 입 안에 혀를 넣으면서 송아현은 가슴으로 웃는다. 저녁으로 낚지볶음을 먹었는데 어느새 가글을 했네. 혀가 부딪치더니 감겼고 곧 뱀처럼 엉켰다가 풀어졌다. 그 순간 송아현은 허벅지 안쪽으로 두꺼운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낀다. “아우, 나 몰라. 난 너무 많은가봐.”
“좋아. 10분만 쉬었다 하자.”
하고 뒤쪽에서 하기호가 말하는 바람에 송아현은 눈을 떴다. 앞쪽 화면은 머릿속처럼 깨끗했다.
7월25일 14시30분, 개전 3시간40분25초 경과.
“3㎞쯤 앞에 검문소가 있어요.”
하고 윤미옥이 말했으므로 이동일이 머리를 돌렸다. 운전을 하고 있던 이용섭 하사도 힐끗 옆에 앉은 윤미옥을 본다. 트럭은 신천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뒤쪽 화물칸에는 4소대와 1소대 혼합 병력 20여 명이, 그리고 뒤를 따르는 트럭에도 1소대와 3소대 혼합병력 20여 명이 탑승하고 있다. 2차선의 좁은 국도여서 옆을 트럭 세 대가 스치고 지났다. 포장은 되었지만 보수가 엉망인 도로 위에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운전석 양쪽 옆 창문을 내렸기 때문에 먼지가 거침없이 휩쓸려 들어왔다. 트럭은 수동인데다 에어컨도 없는 구형이다. 윤미옥이 이동일을 똑바로 보았다.
“돌파하실 건가요?”
“무장은?”
“목제 차단기가 있고 초소에 대여섯 명 정도, 무기는 자동 소총입니다.”
“검문은 어떻게 받나?”
“평시에는 군 트럭을 그냥 통과시키지만 지금은….”
“모른단 말이지?”
“전시니까요.”
“네가 검문을 통과시킬 수 있겠나?”
불쑥 이동일이 묻자 윤미옥이 머리를 돌려 앞쪽을 응시했다. 트럭은 막 산비탈을 꺾어가는 중이어서 속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때 이동일이 윤미옥의 옆얼굴에 대고 말했다.
“이봐, 중위, 우린 이미 같은 배를 탔어. 네 부대를 같이 빠져나왔을 때부터 말이다.”
“….”
“조금 전에 교도여단 수송대원들을 죽여 숨긴 것도 그래. 넌 이미 끌려들었어.”
“….”
“인민군에 복귀한다는 꿈을 버리는 게 나을 거다. 넌 돌아가도 살아남지 못해.”
“동무들과 같이 있어도 마찬가지로.”
하고 윤미옥이 말했을 때 이동일이 소리쳤다.
“정지! 차를 세워라!”
이용섭이 창밖으로 손을 뻗쳐 뒤쪽 트럭에 신호를 보내면서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 차 안으로 휩쓸려 들어왔다. 그때 이동일이 뒤쪽 화물칸으로 뚫린 창에 대고 소리쳤다.
“잠시 휴식이다!”
같은 시각, 오산의 한미연합사 전시사령부 안이 부산해졌다. 그것은 과천 산본장 지하 벙커에 있던 대통령 박성훈이 참모들과 함께 이곳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전시에 지휘부가 한곳에 몽땅 모여 있는 것이 위험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대통령이 옆에서 군작전을 듣고 보고 돕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한 것이다. 상황실 안쪽 테이블에 마주 앉은 박성훈에게 우드워드가 보고한다.
“중국군이 이미 단둥 북방에 대거 집결해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2개 군단 병력이 북한 땅 안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박성훈이 눈만 껌벅였고 우드워드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 총참모장 김형기와 현재 작전을 지휘하는 제2군사령관 김경식이 중국 군부 실세와 자주 접촉해왔지요.”
“그렇다면 이번 전쟁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겁니까?”
영어에 유창한 박성훈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묻자 우드워드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아직 그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대비책은 세워놓았겠지요.”
그것은 한국 측도 마찬가지다. 남북한 전쟁시에 중국이 개입할 형태는 수십 가지였고 그 대비책도 세워놓았다. 그때 박성훈이 우드워드에게 묻는다.
“북한이 핵을 사용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해놓고 우드워드가 덧붙였다.
“지휘관들이 제정신인 상태라면 말씀이죠.”
그러고는 우드워드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 천장을 가리켰다.
“지금도 저 위에 핵 폭격기가 떠 있죠. 만일 북한이 핵 발사구만 연다면 그 순간에 멸망할 테니까요.”
핵 폭격기는 개전이 되자마자 오키나와의 미 공군기지에서 발진했을 것이었다. 그러고는 현재 한반도 상공에 유령처럼 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군 합참벙커나 연합사 벙커에서 내뱉었던 대화 중에 아주 미미하게 몇 번 나타났을 뿐이지만 모두의 머릿속에 다 입력되어 있다. 북한이 핵을 사용할 기미만 보이면 핵공격을 받을 것이었다. 그것은 북한군도 다 안다. 그러자 박성훈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말한다.
“이 기회에 김정일씨가 김경식이를 제압해야 될 텐데.”
우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 김경식이 4군단장 우장선에게 밀려 820전차군단의 진군을 정지시켰지만 아직 상황은 알 수가 없다.
“나야.”
하고 휴대전화 화면에 뜬 송아현이 말했을 때는 14시35분(개전 3시간45분25초)이다. 이동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가에 정지한 트럭의 보닛을 열어 수리하는 것처럼 병사 둘이 엔진을 점검하고 있다. 타이어 주변에 서너 명이 몰려 있었고 나머지 병사들은 길 아래쪽 도랑으로 내려가서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송아현이 서두르듯 묻는다.
“괜찮아?”
“응, 그래.”
이동일이 송아현의 얼굴을 향해 말을 잇는다.
“아현아, 내가 북진 중이라 여기가 어딘지 밝힐 순 없어. 하지만 그쪽에선 내 발신지를 측정해서 알 수 있을 거야.”
“지금 정전 상태여서 오빠 동향이 가장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어.”
“우리 대대는? 남해에 상륙한 우리 사단은 어떻게 되었어?”
“아직 그대로 있어. 남북한 정상 간의 합의로 공격하지 않고 있어.”
“그럼 움직이는 건 우리뿐인가?”
“그런 셈이야.”
그러자 이동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연락이 끊긴 게 차라리 잘되었다. 적진 깊숙이 박힌 나한테 항복하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진격하라고 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말야.”
“오빠, 이 방송은 군당국의 허가를 받았어. 군은 나를 통해 오빠한테 지시할 수도 있어.”
그러자 화면에 비친 이동일이 정색했다.
“그렇군, 그런데 아직 그런 지시가 없는걸 보면 내가 날뛰도록 놔두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것 같다.”
“이건 편집해 방송될지 몰라.”
“그렇다면 앞으로는 내가 한 시간 간격으로 너한테 연락하기로 하지. 지금이 몇 시냐?”
“오후 2시38분.”
“그럼 오후 3시30분에 내가 연락을 하지.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말야.”
그러고는 이동일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그리고 그때는 일방적으로 내 말만 전하는 것으로 하자. 어쩔 수 없이 너를 통해 명령이 전해질지도 모르니깐 말야.”
“과연 순발력이 있군.”
화면이 꺼졌을 때 감동한 방송국장 하기호가 소리치듯 말했다.
“이제 군 명령이 이쪽으로 기어들어올 소지가 조금은 줄어들었어.”
“이것도 편집해야겠지요?”
PD가 서두르듯 묻자 하기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이쪽 말은 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만들고 이동일은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묘사해.”
“그렇지.”
하고 나선 것은 벽에 기대 서 있던 국제신문 편집국장 백한섭이다. 백한섭이 말을 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30년쯤 지났을 때인데 필리핀 숲속에서 발견된 일본군 있었잖아? 일본이 패망할 줄도 모르고 숨어 있었던 놈 말야.”
모두의 시선을 받은 백한섭이 열변을 토했다.
“이동일을 그놈으로 만들면 되겠다. 아주 감동적일 거야.”
그러나 말이 끝났을 때 모두 제각기 머리를 돌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송아현은 옆으로 다가온 PD의 표정을 보고는 심호흡을 했다. PD는 아예 무슨 말인지 못 들은 것 같다.
“갈게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은 이동일이 도랑으로 내려갔을 때 윤미옥이 말했다. 군모를 벗은 이마에 땀이 배어 있었다. 옆으로 다가선 조한철이 잠자코 윤미옥과 이동일을 번갈아 본다. 덥다. 위쪽 트럭이 만들어준 작은 그늘 밑으로 30여 명의 부하가 모여 앉아 있다.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윤미옥이 말을 잇는다.
“검문소는 여러 번 지나다녀서 잘 압니다. 통과하는 건 일 없습니다.”
그러자 조한철이 이동일을 힐끗 보았다.
“신천이 내 고향입니다. 날 살려준다고 약속해준다면 동행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신천을 통과하고 나서 날 놓아주십시오.”
이동일이 머리를 돌려 조한철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릴 끌고 자폭할 작정인지도 모릅니다.”
조한철이 옆에 선 윤미옥의 옆얼굴을 보면서 말을 잇는다.
“우리한테 호의를 베풀 이유도 없고요.”
“살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지.”
이동일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조한철이 머리를 기울였다.
“예, 그런데 별로 겁을 내는 것 같지가 않거든요. 이거 어릴 적부터 세뇌당한 종자인지도 모릅니다.”
“젠장.”
눈을 치켜뜬 이동일이 입맛을 다셨다.
“이러다가 날 새겠다.”
7월25일 14시30분, 개전 3시간40분25초 경과.
신천시 남부 산업지구 협동창고 앞마당에 모인 노농적위대원은 52명, 제각기 AK-47 자동보총과 30발들이 탄창 4개, 수류탄 두 발씩을 받아 든 대원들이 창고 그늘에 둘씩 셋씩 모여 쭈그리고 앉았다. 마당 건너편이 산업도로였는데 길만 닦아놓았지 가동되는 공장은 하나도 없어서 차량 통행이 있을 리 없다. 신천시로 통하는 국도는 왼쪽으로 2㎞쯤 떨어져 있는 터라 이곳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전시방어 계획을 작성한 공산당 고위간부 놈들은 이 산업지구가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을 줄로 예상한 것 같다. 이 빈 지역에 쓸데없이 노농적위대원을 방어병력으로 파견한 것을 보면 그렇다.
“이봐, 전 대위, 남조선군이 남해, 옹진을 싹 쓸어버렸다면서?”
하고 옆에 앉은 박길수가 낮게 물었으므로 전석규는 주위부터 둘러보았다.
“쉬, 형님, 그 말 어디서 들었소?”
“다 알고 있는 이야기여.”
눈을 치켜뜬 박길수가 말을 잇는다.
“서해안 포대는 남조선군 미사일 공격을 받아 전멸했고 해군 함대도 씨가 말랐다는군. 그래서 허겁지겁 휴전 요청을 해서 지금 옹진에 있는 남조선군한테 총 한방 못 쏜다고 했어.”
“누, 누가?”
“내가 삐라 주웠어. 나뿐만이 아냐. 저 사람들 중에서 아마 대여섯 명은 삐라 갖고 있을겨.”
“으음.”
전석규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터졌다. 남조선에서 날린 삐라는 전석규도 주워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미화 1달러 지폐가 삐라에 붙어 있어 달러만 빼내고 삐라는 버렸는데, 두 번째 주웠을 때는 읽어보았다. 이곳 황해남도 주민 중 열에 셋은 삐라를 주웠을 것이고 그 내용을 모르는 주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영민이가 곧 죽을 것 같어.”
쪼그리고 앉은 박길수가 화제를 바꾼다. 두 무릎을 양팔로 감싸 안은 박길수의 몸은 그야말로 작은 옥수수자루만 했다.
“그놈한테 쌀밥 사흘만 배부르게 먹이면 나을 거여.”
헛소리처럼 말했던 박길수가 정정했다.
“아니, 하루 세 끼만, 아니, 두 끼만 멕여도 내가 원이 없겠다.”
전석규가 우두커니 앞쪽 마당을 본 채 입을 다물었다. 올해 55세인 박길수는 위로 아들 둘을 어려서 잃고 남은 자식이 영민이 하나뿐이다. 위의 아들들도 열 살이 되기 전에 모두 영양실조로 죽었는데 자식을 굶겨 죽인 부모의 마음은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휴전을 하다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어?”
다시 박길수가 혼잣소리로 말했지만 말끝이 떨렸다.
“끝장을 봐야 할 것 아닌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이 지옥이 끝장날 것 아닌가 말이여?”
같은 시각, 신촌 서교동의 세양오피스텔 1201호실에는 세 사내가 소파에 둘러앉아 있다. 앞쪽에 TV는 켜놓았지만 음 소거를 했기 때문에 특집방송을 하는 앵커는 물고기처럼 입만 뻐끔대고 있다. 다만 밑의 자막이 자주 바뀌면서 시선을 모으고 있다.
“강화도, 연평군에서 보낸 대북 삐라가 황해북도에까지 도달.”
방금 자막으로 뜬 내용이다. 그때 안쪽 상석에 앉은 60대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수십 번 평양 사람들한테 이야기했어요. 전쟁 일어나면 우리가 손해라고, 그런데 이 꼴이 된 거야.”
그가 말한 우리란 자신과 북한 당국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 공식 정당인 노동민족당 대표 이정식이었고 현역 국회의원이기도 했다. 이정식의 말이 이어졌다.
“만일 이대로 통일이 된다면 우린 북한 주민들한테 맞아 죽습니다. 그러니 해외로 탈출하든지 그것이 힘들면 경찰서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것이 사는 길이요.”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어요.”
그렇게 말한 50대 후반의 사내는 자주실천연대의 회장 박응모, 이번 계엄령 상황에서 이정식과 함께 반역혐의자 명단에 포함되어 수배된 인물이다. 박응모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밀어붙여서 보안법 사이로도 빠져나갔지만 북쪽이 무너지면 우린 한국법 아래서 죽습니다. 경찰서로 도망가는 건 호랑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거나 같아요.”
“맞습니다.”
그중 가장 연하인 40대 후반의 사내가 눈동자를 쉴 새 없이 굴리면서 말했다. 운동권 출신인 그는 이정식의 보좌관 서병만이다. 서병만이 둘을 번갈아 보면서 말을 잇는다.
“배를 타고 중국으로 도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모두 탈출한다고 서두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이럴 수가.”
눈을 치켜뜬 이정식이 탄식했다.
“전쟁이 일어난 지 겨우 네 시간도 안 되었는데 이렇게 된단 말인가?”
“처음부터 우리가 밀리니까 기세가 꺾인 겁니다.”
박응모가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이정식은 아직 억울함이 가시지 않는 듯 말을 잇는다.
“그래도 그렇지. 그 아끼던 핵은 어따 두고 이 꼴이란 말이.”
“그랬다간 이미 북쪽 땅은 없어졌어요.”
서병만이 불쑥 그렇게 대답을 했는데 지금까지 이런 말투를 쓴 적이 없다. 이정식의 시선을 받은 서병만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씻고 말했다.
“오판한 겁니다. 또 겁주면 이번에도 굽실대겠거니 했다가 된통 당한 것이지요. 이젠 다 글렀습니다.”
“이봐, 그만해.”
하고 박응모가 말을 막았을 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울렸다. 30평형 원룸 오피스텔이라 셋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모두 얼굴이 굳어 있다. 다시 노크 소리가 울렸을 때 박응모가 속삭이듯 말했다.
“대답하지 마,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해.”
이 오피스텔은 박응모가 철저하게 위장해 구입해놓은 것으로 오늘 처음 들어온 것이다. 발각될 리가 없다. 그때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놀라 숨도 멈추고 있던 이정식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내들을 보았다. 그 중에는 군복 차림의 사내도 둘이나 있다.
“자, 이정식씨, 박응모씨, 갑시다.”
그중 나이든 사내가 굵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서병만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아, 서형, 수고했습니다.”
이정식은 서병만이 등을 돌리고 있어서 사내의 웃는 얼굴만 보았다.
7월25일 14시50분, 개전 4시간00분25초 경과.
제55호위대 벙커 안. 대좌 하나가 다가와 김경식의 옆에 섰다.
“잠깐 밖에서.”
대좌가 짧게 말하자 김경식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휘둘러본다. 벙커 안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4군단장 우장선이 국방위원장 측으로 돌아서서 강동포병단을 시켜 이곳에 위협폭격을 한 것이다. 이제 북한 군부는 국방위원장파와 그 반대파로 양분되었다. 반대파란 강경파, 즉 이번 전쟁을 끝까지 밀어붙이자는 파다. 상황실에 모인 10여 명의 군단장급 지휘관, 그중에는 김정일이 파견한 무력부 부부장 겸 호위대장 심철 상장도 있었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강경파가 되었다. 빠져나갈 수도 없겠지만 나간다고 해도 김정일의 성격상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승부를 내는 것이 낫다. 상황실 벙커를 나온 김경식이 대좌를 따라 복도 끝 쪽 벙커로 다가간다. 벙커 앞에는 군관 둘이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김경식을 보더니 잠자코 철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혼자 들어선 김경식은 안쪽 소파에서 일어서는 두 사내를 보았다. 둘 다 신사복 차림이었는데 어색했다. 그때 다가선 김경식에게 50대의 나이 든 사내가 말했다. 중국어다. 말이 끝났을 때 30대 사내가 통역했다.
“이번에 4군단장 우장선이 위원장에게 붙었지만 1군단, 8군단, 10·11·9군단은 이미 우리 측과 합류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사내가 군단 번호를 잊어먹지 않으려 수첩에다 적은 것을 꼼꼼히 읽었다. 심호흡을 한 50대가 잠깐 김경식을 보았다. 비대한 체격에 붉은 얼굴에는 개기름이 번져 있다. 사내는 중국 대사관의 무관 황방산, 지금 중국 군부의 연락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황방산이 말을 이었다.
“평양 주변의 평방사, 호위총국, 그리고 3군단만 위원장한테 충성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중립이요.”
그 말을 들은 김경식은 숨을 들이켰다. 그렇다면 이쪽은 세력이 비등한 것이다. 특히 조·중 국경에 배치된 4개 군단, 즉 8·10·11·9군단이 모두 반 김정일 군이 되었고 이곳 전열지대의 4·2·5·1 4개 군단에서 1·2군단이 아군, 4군단만이 김정일군이며 5군단은 중립이다. 머리를 끄덕인 김경식이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불리할 것 같소, 아예 2군단을 북상시켜 주석궁을 깨는 것이 낫지 않겠소?”
그러자 황방산이 머리를 끄덕였지만 말은 다르다.
“그것도 고려했지만 마지막 방법이요. 우리는 위원장이 상황을 판단하고 중국으로 망명해 오는 것을 최상의 방법으로 칩니다.”
“그 다음의 차선책은?”
“위원장의 유고.”
짧게 말한 황방산의 말을 통역은 진땀을 흘리면서 통역한다. 엄청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경식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인민군 간의 전쟁은 맨 나중이군.”
“그렇습니다. 그땐 위원장이 중국 측에 지원을 요청할 것이고 우리가 자연스럽게 개입하게 되는 것이지요.”
위원장뿐 아니라 반란군이 요청을 해도 중국군이 개입할 명분이 있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은 동맹 간으로 국난시에는 자동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 이윽고 김경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좋습니다. 강동포병군단의 포격으로 내가 흥분한 것 같습니다. 조금 기다리지요.”
그 시간에 송아현은 방송실 옆 대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중이다. 그러나 음소거를 해놓아서 그림만 나올 뿐 방안은 조용하다.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한 모금 삼킨 송아현의 얼굴에 문득 웃음이 떠올랐다. 이제는 혼자여서 온 얼굴을 펴고 거침없이 웃는다.
이번에는 차 안이다. 때는 지난 봄, 토요일 외박을 나온 이동일이 차를 가지고 나와서 둘은 원주 근처의 치악산 국립공원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인데다 날씨까지 좋아서 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 반이다.
“여기서 자자.”
숲 속의 공터에 차를 세운 이동일이 말했으므로 송아현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곳은 일차선 일방통행 길이었고 마침 길가의 공터로 들어와 안성맞춤이긴 했다. 그러나 사방이 숲인데다 불빛 한 점 보이지 않아서 으스스했다.
“아우, 싫어. 여관이라도 찾아 가.”
“숲 속에서 섹스하는 것도 괜찮잖아?”
“이 남자는 머릿속에 섹스밖에 안 들었나봐, 이제 말끝마다 섹스야.”
“지가 더 밝히면서.”
“내가 언제?”
바락 목소리를 높였을 때 이동일이 차 문을 열었다. 밤의 찬 공기가 몰려들면서 숲 냄새가 맡아졌다. 짙고 강한데다 맵기까지 한 풀냄새, 흙냄새, 그리고 시린 것 같은 대기.
“아아. 좋다.”
어깨를 부풀리며 한껏 공기를 들이켠 이동일이 차 밖으로 나갔으므로 송아현도 문을 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밤하늘의 별이 흔들리며 떠 있었다.
“아, 추워.”
별로 춥지 않았지만 어깨를 웅크린 송아현이 팔짱을 끼었을 때 이동일이 점퍼를 벗어 상반신을 감싸주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허리를 감아 안고 입술을 붙여왔다. 숲 속의 키스는 신선했다. 신비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대기의 정기(精氣)가 이동일의 혀를 통해 다 빨려지는 것 같았다. 이윽고 이동일이 입을 떼더니 가쁜 숨을 고르고 나서 말했다.
“사랑해, 아현아.”
그 순간 송아현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을 쳤다. 왜 그런지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도 아니다. 이동일한테서도 여러 번 듣고 해주었던 송아현이다. 다음 순간 송아현은 대답 대신 이동일의 바지 혁띠를 풀었다. 이동일이 송아현의 스커트를 치켜 올리더니 곧 팬티를 끌어 내렸다. 송아현이 다리 하나를 들어 팬티 벗기는 것을 도우면서 헐떡이며 말했다.
“사랑해.”
맑은 대기 속에 울리는 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송아현은 다시 감동했다.
7월25일 14시55분, 개전 4시간05분25초 경과.
“통행증.”
하고 손을 내밀었던 군관이 윤미옥을 보더니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니, 동무, 이 차엔 왜 타고 계시오?”
“우리 부대 트럭이 고장이 나서 교도여단 수송대 트럭을 빌려 탔지요.”
“그렇군.”
군관의 시선이 적재함과 뒤쪽 트럭으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40여 명의 인민군 병사가 타고 있는 것이다. 그때 이동일이 통행증을 내밀었다. 교도여단 이명철 상위가 갖고 있던 통행증이다. 통행증을 살핀 군관이 눈으로 적재함과 뒤쪽 트럭을 가리키며 물었다.
“병력 이동입니까?”
“그렇소.”
소좌 계급장의 이동일이 짧게 대답했을 때 운전병 사이에 끼어 앉은 윤미옥이 웃음 띤 얼굴로 재촉했다.
“동무, 도중에 펑크가 나서 늦었어요. 서둘러주세요.”
머리를 끄덕인 군관이 이동일에게 통행증을 건네주더니 뒤쪽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차단봉 올리라우!”
“형님, 가보시오.”
창고 구석으로 박길수를 데려간 전석규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점검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까 형님은 영민이한테 가보시오.”
“괜찮겠나?”
얼굴은 반가운 기색이 가득 차 있으면서도 목소리는 걱정으로 떨렸다. 전시에 방어진지 이탈은 탈영이나 같다. 즉결처분이다. 전석규가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했다.
“명색이 내가 지구대 방어대장 아뇨? 저녁 8시에 배급차 나올 때까지만 형님이 돌아와주시오.”
“아, 그럼, 그때까진 충분히 돌아와, 내가 영민이 어떤가 보고만 올 테니까.”
박길수의 처 유옥선은 양식 구한다고 3년 전에 강을 넘어간 후에 연락이 끊겼다. 강이란 압록강을 말한다. 누구 말을 들으면 압록강을 건너지도 못하고 평양 아래쪽에서 검문에 걸려 총살당했다고도 하고 누구는 중국땅 통화 근처 농가에서 중국놈하고 사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주위를 살핀 박길수가 창고 뒤쪽 야산을 넘어 사라질 때까지 전석규는 그 뒷모습을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석규의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인민군 대위로 제대했지만 인민학교 교사를 7년 하고나서 학교가 폐교되자 군 의료원의 사무원으로 6년을 지나다가 실직을 한 지 4년째 된다. 아직 52세로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겉으로는 60이 넘어 보인다. 자식은 남매를 두었는데 딸은다섯 살 때 독버섯을 잘못 먹어 죽었고 열 살짜리 아들 운석이와 아내 심선희까지 세 식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이윽고 몸을 돌린 전석규가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으이구, 저 형님 말대로 이 지옥이 어떻게 되건 간에 끝장이 나면 좋으련만.”
인민군이 밀고 내려가 쌀이 남아돌아서 돼지한테 먹인다는 남조선의 물자를 몽땅 가로채도 좋은 것이다. 이대로는 살기 싫다.
7월25일 15시 정각, 개전 4시간10분25초 경과.
주석궁의 지하 벙커 안. 거대한 상황판을 등지고 앉은 김정일이 테이블 건너편에 선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평방사 사령관 전백준 차수. 7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건장한 체격이다. 전백준이 입을 열었다.
“위원장 동지, 김경식과 김형기는 서로 경쟁관계였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뭔지 아십니까?”
이런 식으로 물을 수 있는 인간은 북조선 땅에 서너 명뿐일 것이다. 긴장한 주위의 모든 시선이 모여졌다. 김정일이 시선만 보내고 있었으므로 전백준이 말을 잇는다.
“그것은 그놈들이 친중파라는 것입니다. 위원장 동지께서는 조중 동맹을 강조하셨고 특히 군사적 교류를 권장까지 하셨기 때문에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전백준이 말을 그쳤을 때 김정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반란군이 기댈 곳은 중국 군부란 말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위원장 동지.”
“나도 소문을 들었어. 북조선 군부가 반란을 일으켜 중국군을 끌어들이면 나는 제거되거나 망명시켜놓고 북조선을 중국의 조선성으로 만든다는 소문을.”
김정일이 거침없이 말했을 때 상황실 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정일이 머리를 돌려 장방형 테이블의 끝 쪽 자리에 앉아 있는 사내를 보았다. 젊다. 바로 김정일의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 그러나 이번 전쟁이 발발한 후부터는 전혀 앞에 나서지 않았다. 그저 위원장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김정은과 시선을 마주친 김정일의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러더니 말을 잇는다.
“남조선과 미군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계획을 모를 리가 없지, 그리고 또.”
이제는 김정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그것을 안 내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도 반역자들은 생각하고 있어야 될 거요.”
소파에 등을 붙인 김정일이 긴 숨을 뱉는다.
“인간은 욕심을 버리면 머리가 맑아지는 법이지.”
오대현이 박성훈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15시05분(개전 4시간15분25초)이었다. 개성공단 관리청장실 안에서 오대현은 행정부장 서기수, 그리고 북한측 관리부장 진성회와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예, 대통령님.”
긴장한 오대현이 서서 전화를 받는다. 앉아서 받아도 예의에 어긋난 점은 없겠지만 진성회 앞이어서 일부러 그런 점도 있다. 진성회는 김정일의 지시사항을 말할 때 부동자세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때 박성훈이 물었다.
“공단 상황은 어떻습니까?”
“예, 생산은 중지된 상태지만 모두 공장에서 대기 상태로 있습니다. 대통령님.”
한 시간 전에 인터넷을 통해 통일부로 보고한 상황이다. 머리를 든 오대현이 창밖을 보았다. 이곳에서는 제105전차사단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박성훈이 물었다.
“북한 측 근로자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곳에서는 북한 주민들을 바로 옆에서 접촉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 그것이.”
입안의 침을 삼킨 오대현이 말을 이었다.
“평온합니다. 대통령님.”
박성훈은 잠자코 있었으므로 오대현이 말을 잇는다.
“휴게실이나 식당에 모여 있는데 한국 측과의 갈등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 근로자 내부의 갈등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실과 식당에 놓인 TV는 모두 꺼놓았다. 북한 당국의 지시를 받은 진성회가 각 공장의 근로 감독관에게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개전이 된 지 10분도 안되었을 때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4만명의 근로자는 현 상황을 모른다. 물론 한국 측 관계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따로 모여 TV를 본다. 그때 다시 박성훈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오 청장, 현 상황에서 옹진군의 남해 지역과 개성공단이 우리의 최전선이요. 그것을 명심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예, 대통령님.”
막둥이처럼 대답부터 했던 오대현은 제 말이 끝난 순간 온몸이 냉장창고 안으로 던져진 느낌을 받는다. 개성공단 안에는 질풍처럼 들이닥친 105전차사단이 북쪽 경계를 막아놓고 있는 것이다. 옹진군의 남해는 해병 7사단이 날아가 덮쳐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대한민국의 국경 경계선으로 정했다는 말이었다. 최전선이 곧 국경선이 아니겠는가? 심호흡을 한 오대현이 다시 대답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7월25일 15시10분, 개전 4시간20분25초 경과.
“저곳은 통과하기 힘들어요.”
걸음을 멈춘 윤미옥이 앞쪽에 시선을 던진 채로 말했다. 이동일은 윤미옥의 시선이 닿은 곳을 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뻗은 길 끝에 검문소처럼 보이는 건물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는 이미 10여 대의 차량이 멈춰 섰고 차단봉 옆에는 기관총좌가 설치되었다. 검문소 뒤쪽으로 신천시가 보인다. 단층 건물이 대부분이지만 넓다. 멀리 공장의 긴 굴뚝이 대여섯 개 솟아 있었지만 연기는 뿜지 않는다. 그때 윤미옥이 말을 이었다.
“신천에 4군단 보급대, 군 보위부, 북쪽에는 37교도사단 사령부까지 있어서 검문이 강합니다.”
이동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차를 버려야만 한다. 언덕에서 내려왔을 때 길가에 세워진 트럭 두 대는 제각기 보닛을 열고 엔진을 고치는 시늉을 하는 중이었다. 이제는 위장에 익숙해서 행동이 자연스럽다. 이동일이 트럭 옆으로 다가서자 조한철, 황찬우 중위가 다가와 섰다. 둘 다 긴장한 표정이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씻은 이동일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트럭을 버리고 도보로 전진한다.”
그러고는 이동일이 윤미옥에게 물었다.
“신천으로 들어가는 다른 길이 있나?”
“산업지구를 통과해서 저쪽 산을 넘는 길이 있습니다.”
윤미옥이 턱으로 좌측 산줄기를 가리켰다. 산줄기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 5㎞ 정도, 이쪽에서 산업지구는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끄덕인 이동일이 지시했다.
“좋아, 산업지구로, 일렬횡대, 내가 앞장을 서고 황 중위, 조 중위 순서다.”
그러고는 이동일이 윤미옥을 보았다.
“윤 중위, 너는 나하고 같이 간다.”
7월25일 15시15분, 개전 4시간25분25초 경과.
지프 한 대가 속력을 내어 달려오고 있다. 차가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차는 지프 한 대뿐이다. 지프 뒤로 먼지가 자욱하게 일고 있다.
“검열인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오규성이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오규성은 올해로 61세, 노농적위대원 소집 연령이 넘었지만 당에서 해제 통보가 오지 않았다. 그러니 저 혼자 제멋대로 빠졌다간 총살당할 수도 있다. 지프가 창고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는 산업지구 방어대인 노농적위대 병력이 모두 집합해 있었다. 전석규가 부르지 않았어도 이곳저곳에 흩어졌던 대원들이 모여든 것이다. 그러나 지프가 멈추고 먼지 구름이 가라앉은 순간이었다.
“아앗.”
맨 앞에 서있던 전석규의 입에서 억눌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뒤쪽에 정렬해 있던 노농적위대원들도 술렁거렸다. 지프 뒷좌석에 박길수가 묶인 채 태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대장 누기야?”
운전석 옆자리에 탔던 대위가 내리면서 소리쳤다. 정규군 대위다. 이쪽 지역을 맡은 4군단 예하 감찰여단 소속의 대위, 길게 숨을 뱉은 전석규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도열한 적위대원 맨 선두에 서 있었으니 대위의 시선은 소리치기 전부터 이미 전석규에게 향해 있었다.
“접니다.”
하고 전석규가 대답하자 대위는 눈을 치켜떴다. 30대 후반쯤 될 것이다. 20년쯤 전에 전석규도 저렇게 대위 계급장을 붙인 채 기고만장했다. 그러다 포탄 탄피를 팔아 나눠 가진 것이 발각되어 군복을 벗었다. 상관들도 다 나눠 먹었기 때문에 전석규가 예편되는 것으로 끝냈던 것이다.
“저놈이 귀관 소속인가?”
다가선 대위가 턱으로 지프 위에 생포된 짐승처럼 놓여진 박길수를 가리키며 물었다. 전석규는 어금니를 물었다. 피할 도리가 없다.
“예, 그렇습니다.”
“지금은 전시다. 전시에 방어진지 이탈은 즉결처분, 사형이다.”
날카로운 인상의 대위 입에서는 기관총 발사음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따라서 부대원 앞에서 총살한다. 저놈을 창고 벽에 세워!”
그러자 병사 둘이 박길수를 차에서 끌어내렸다. 두 손이 뒤로 묶인 박길수가 비틀거리며 내리더니 머리를 돌려 전석규를 보았다. 그 순간 전석규는 심장이 멈추는 느낌을 받는다. 박길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라 있는 것이다. 그때 박길수가 말했다.
“마을 입구에서 잡혔기 때문에 영민이를 보지 못했어.”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에 맨 끝에서도 박길수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박길수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놈도 곧 애비 따라서 올 테니까 이젠 걱정이 안 되네, 내가 먼저 가서 기다려야지.”
“개소리 닥치게 하고 빨랑 세우라우!”
대위가 버럭 소리쳤으므로 병사들은 박길수를 창고 벽에 세우고 서둘러 물러났다. 그때 대위가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겨눠 총!”
병사 둘이 제각기 메고 있던 AK-47을 손에 쥐더니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였다. 다시 대위가 소리쳤다.
“조준!”
그 순간이다. 그들과 비스듬하게 뒤쪽에 서 있던 전석규가 어깨에 멘 AK-47을 휘두르듯 낚아채더니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노리쇠를 당겨 장전을 하면서 총구를 겨누었다.
“타타탓! 탓탓탓탓탓탓!”
AK-47의 둔탁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발사음이 울린 것은 어깨에서 총을 내린 지 2초도 안되었을 때였다. 먼저 총을 겨누고 있던 두 병사가 춤을 추듯 사지를 흔들면서 쓰러졌고 놀라 입만 딱 벌렸던 대위는 머리통이 부서졌다.
“타탓탓탓탓!”
다시 지프로 총구를 돌린 전석규가 마지막 남은 운전사를 향해 자동보총을 난사했다. 운전석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던 운전사가 피를 뿜으면서 그대로 넘어졌다. 이제 이쪽으로 몸을 돌린 전석규가 놀라 웅성대는 적위대원을 보았다. 충혈된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전쟁이야! 이놈들은 우릴 잡을 여유도 없다고! 이제 우리가 끝장을 내자!”
전석규의 목소리가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는 마당 위에 튀듯이 이어졌다.
“놈들은 밀리고 있다고! 이제 우리 노농적위대가 숨어서 치면 이놈의 세상 끝나게 될 거야!”
“나, 나 좀!”
그때 박길수가 버럭 악을 쓰면서 다가왔으므로 적위대원 두어 명이 달려들어 묶인 팔을 풀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못 산다. 우리가 힘을 합쳐 오월리 양곡 창고부터 털자고! 배부르게 먹고 나서 죽잔 말이야!”
묶인 팔이 풀린 박길수가 눈을 치켜뜨고 소리치더니 죽은 병사들의 무기를 걷는다. 대위가 찬 권총도 푼다. 그때 오규성이 AK-47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그렇다! 이놈의 세상을 뒤집어엎자! 이렇게 살 바에는 싸우다 죽자!”
“저기 있다!”
이미 상황실의 모든 장성이 다 보고 있었는데도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소리쳤다. 벽에 붙은 대형 화면에 나타난 물체, 꾸물거리는 벌레처럼 보이지만 길을 따라 일렬횡대로 걷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그 순간 화면이 확대되면서 각도가 비스듬하게 비쳐졌다. 그러자 그것이 일대의 인민군 병사인 것이 드러났다. 어깨에 멘 총도 보인다.
“저것, 저기 옆에서 네 번째!”
하고 다시 정용우가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여졌다.
“저놈 총! K-5야! 내 부하들이라고!”
그렇다. 앞에서 네 번째 사내는 어깨에 한국군의 자동소총 K-5를 멨다.
“맞아! 저놈들 해병이야! 46용사!”
정용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고 보니 어깨에는 AK-47을 메었지만 앞에 총자세로 된 것은 K-5다. AK-47은 위장용으로 멨다는 증거다. 지금 상황실의 장군들은 한반도 상공에 떠 있는 미군용 위성 US-28의 전송 화면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때 연합사 참모장 해리슨이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어로 물었지만 모두 알아들었다.
“이곳입니다.”
하고 한국군 대령 하나가 한국어로 대답하면서 옆쪽 지도에 붉은색 레이저빔을 쏘았다. 붉은색 레이저가 맞춘 지점은 신천 남동쪽의 산업지구에서 1㎞쯤 떨어진 지점이다. 대령이 붉은 점을 옆쪽으로 이동시키면서 말했다.
“이곳은 산업지구로 조성되었지만 10여 년 전부터 공장 가동이 끊겨 폐허가 되었습니다.”
붉은 점이 산업지구 서쪽을 가리켰다.
“이곳은 근처의 가장 큰 마을로 보위부가 관리하는 양곡 저장소가 있습니다.”
이제 장군들의 시선이 다시 옆쪽의 위성화면으로 옮겨졌다. 그 사이에 비치는 각도가 조금 틀어졌다. 그러나 화면은 더 확대되어서 머리통이 동전만 했다. 아쉽게도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저기 앞쪽 세 번째가 이동일이 같아.”
정용우가 아예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키며 열심히 말했다. 표정도 진지하다.
“내 부관을 모를 리가 있겠어? 저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가 있다고, 저 봐.”
하고 정용우가 목소리를 높였을 때 화면이 흐려지더니 곧 흰 반점으로 덮였다. 그때 연합사 측 흑인 중령이 말했다.
“5분 후에 US-32 위성으로 다시 비춰질 것입니다.”
“타타탓! 탓탓! 탓탓탓탓탓!”
갑자기 들리는 요란한 총성에 이동일은 그 자리에서 납작 엎드렸다. 5m쯤 앞쪽을 걷던 김 병장, 박 상병이 길가로 몸을 던지듯이 엎드리는 것이 보인다.
“타타탓! 탓타타타탓!”
다시 총성이 울렸는데 10여 정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이동일은 풀숲에서 머리를 들고 뒤를 보았다. 이곳은 산업지구를 서쪽으로 돌아 산줄기로 향하는 개울가. 물이 말라서 자갈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군화 밑창도 넘지 못한다. 뒤쪽 오솔길 주위도 멀쩡하다. 서 있는 부하는 없다.
“꽝! 꽝! 꽝! 타타타탓!”
그때 총성에 섞여 폭음까지 울렸다. 그러나 이제 그 총격과 폭격은 이쪽을 향한 것이 아님은 분명해졌다. 바로 왼쪽 등성이 너머에서 울리는 것이다. 이동일의 옆으로 황찬우 중위가 반쯤 허리를 꺾은 채 달려왔다.
“중대장님, 제가 가보겠습니다.”
다가온 황찬우가 헐떡이며 말했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같이 가자.”
배낭을 벗은 이동일이 옆에 엎드려 있는 윤미옥에게 말했다.
“윤 중위, 일어서!”
여전히 총성은 울리고 있었지만 조금 뜸해진 것 같다. 이때가 15시25분. 개전 4시간35분25초가 경과되었다.
“사격중지!”
전석규가 외치자 짧은 단발 사격음이 서너 번 들리더니 곧 총성이 그쳤다.
“다 쥑였어.”
옆쪽에서 몸을 일으키며 오규성이 말했다 오규성은 두 눈을 치켜뜨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 같았다. 앞쪽 사무실에서 일어난 불길이 더 높아졌다.
“자, 쌀 한 자루씩만 집어!”
이쪽저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노농적위대원들에게 전석규가 소리쳤다.
“식구 먹일 만큼만 들어!”
그러자 부서진 담장 위에 선 박길수가 따라 소리쳤다.
“보위대원 무기와 탄약을 모두 집어! 이젠 쌀보다 그놈이 더 필요해!”
박길수도 딴사람 같다. 50명 가까운 노농적위대원이 일제히 창고로 달려 들어갔다. 그들은 오월리의 보위대 양곡 창고를 기습한 것이다.
“비켜! 터진다!”
하고 앞쪽에서 외침이 일어났으므로 모두 납작 엎드렸다.
“꽈광!”
그 순간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창고의 철문 한 짝이 떨어졌다.
“1조는 주위 경계!”
하고 전석규가 소리쳤지만 모두 창고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바람에 주위는 순식간에 비워졌다. 불에 타던 사무실 안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울렸다. 탄약이 폭발한 것 같다.
“모두 여섯 쥑였어.”
옆으로 다가온 박길수가 말했으므로 전석규가 머리를 들었다. 박길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기습을 해서 우린 다친 동무도 없어. 해볼 만하다고.”
7월25일 15시30분, 개전 4시간40분25초 경과.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이동일이 망원경을 눈에서 떼고는 옆에 엎드린 윤미옥에게 건네주었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반란 같다.”
짧은 말이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습니다.”
왼쪽에 엎드린 황찬우가 망원경을 눈에 붙인 채 대답했다. 황찬우의 목소리는 열기에 떠 있었다.
“내란 같습니다.”
그때 윤미옥이 망원경을 보면서 말했다.
“노농적위대원인데요.”
오히려 윤미옥이 차분한 태도였다.
“저곳은 보위부에서 관리하는 양곡창고입니다. 경비하던 보위부대 병사들을 다 죽였군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이동일이 물었다.
“저 사람들하고 합류할 방법이 없겠나?”
그러자 윤미옥이 망원경을 눈에서 떼고는 힐끗 이동일의 옷차림을 보았다. 이동일은 인민군복 차림이다.
“동무들을 인민군으로 알 텐데요.”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어.”
이동일이 똑바로 윤미옥을 보았다. 윤미옥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다.
“저 사람들은 이제 아군이야. 합류시키든지 도움을 주기라도 해야 돼.”
같은 시각, 연합사 상황실 벙커의 대형 화면에 두 무리가 다 드러났다. 언덕 위의 이동일, 그리고 아래쪽 양곡창고 주변의 무리다.
“식량을 탈취하고 있습니다. 저건 쌀자루입니다.”
하고 화면을 본 한국군 대령이 소리쳤고 미군 대령은 영어로 떠들었다. 화면에 어깨에 멘 쌀자루가 확대되어 비쳤다. ‘대한민국’이라고 쓴 글자도 보인다.
“그럼 반란군인가?”
하고 우드워드 대장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물었을 때 마침 화면이 땅바닥에 쓰러진 인민군복 차림의 병사 두 명을 비췄다. 쌀자루를 나르는 병사들도 인민군이다.
“저건 우리 편이야.”
그때 언덕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 것은 합참의장 장세윤이다. 장세윤이 손을 그대로 둔 채 머리를 돌려 해병사령관 정용우를 보았다.
“당신 부관이 저기에 있어.”
“거리는 250m 정도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한국군 대령이 소리쳐 보고했다.
“지금 그쪽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이맛살을 찌푸린 육참총장 조현호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상황실 안으로 대통령 박성훈이 들어섰다. 박성훈은 옆방에서 비상 국무회의를 마치고 온 것이다.
“뭡니까?”
화면을 본 박성훈이 물었으므로 장세윤이 헛기침을 했다. 들뜬 표정이다.
7월25일 15시35분, 개전 4시간45분25초 경과.
“동무들!”
갑자기 사내 목소리가 울렸으므로 전석규는 깜짝 놀랐다. 쌀자루를 나르던 노농적위대원 몇 명은 총을 고쳐 쥐고 납작 엎드렸다. 다시 사내 목소리가 들렸다.
“동무들! 우린 한국군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북상해온 한국군 해병대입니다! 동무들이 양곡 창고를 공격한 것을 보고 다가왔습니다! 우리하고 합류합시다!”
“저쪽 바위 밑이야!”
다가선 박길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박길수가 눈으로 50m쯤 떨어진 언덕 중간쯤 바위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저 위에서 소리 지르는 것 같아.”
그때 다시 사내가 소리쳤다.
“동무들! 우린 인민군으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인민군이었다면 벌써 여러분을 공격했을 것 아닙니까? 우린 언덕에서 여러분을 포위한 상태란 말입니다!”
머리를 든 전석규는 숨을 들이켰다. 언덕 8부 능선 근처에 흩어져 있는 인민군들을 본 것이다. 거리는 100m 정도, 이쪽을 향해 모습을 드러낸 채 손을 흔들고 있는 병사도 있다.
“포, 포위당했어!”
그때 오규성이 다가와 말하더니 손으로 옆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아직도 불에 타고 있는 사무실 건너편의 제방이다. 그 제방 위에도 10여 명의 인민군이 엎드려있는 것이다. 전석규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바로 그곳에 숨어 있다가 이 창고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그때 사내가 다시 소리쳤다.
“여러분도 우리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같이 행동합시다!”
“맞아. 저놈 말대로 우릴 공격했다면 우린 전멸했어.”
박길수가 창고 벽에 붙어 선 채 말했다. 이제 노농적위대 52명은 쌀자루를 팽개친 채 제각기 이곳저곳에 은폐하고 있지만 저쪽에서 다 내려다보일 것이었다.
“저기, 손을 흔드는데!”
하면서 누가 소리쳤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그가 가리킨 쪽을 향했다. 바위 뒤에서 인민군복 차림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손을 흔들면서 다시 소리쳤다.
“여러분! 나는 대한민국 해병대위 이동일입니다. 나는 내 부하들과 함께 이곳까지 전격해온 것입니다!”
“맞아요!”
그때 바위 뒤에서 나타난 인민군 하나가 소리쳤다. 여자 목소리다.
“나는 한국 해병한테 포로로 잡힌 제22사단 172보급대 소속 중위 윤미옥이오! 이사람 말이 사실입니다!”
7월25일 15시40분, 개전 4시간50분25초 경과.
“다가간다!”
이번에는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소리쳤다. 화면이 비스듬히 비추었으므로 언덕을 내려가는 무리의 그림자가 길다. 한국군 해병이다. 해병들은 삼면에서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아래쪽 불타는 건물 근처에 서 있는 무리가 그들을 맞는 형국이다. 정용우가 말을 잇는다.
“해병들이 반란군을 포섭한 거야!”
정용우의 번들거리는 눈길이 연합사령관 우드워드를 지나 대통령 박성훈에게로 옮겨졌다. 장세윤은 정용우의 표정이 꼭 칭찬을 기다리는 초등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심호흡을 박성훈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전쟁은 이제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하겠는데.”
혼잣소리였지만 끝쪽에 서 있던 장교도 다 들었다.
다가선 이동일이 전석규에게 말했다.
“이곳에 오래 있는 건 위험합니다. 이동해야 됩니다.”
“그러려고 했습니다.”
전석규가 주위에 둘러선 인민군 복장의 병사들을 훑어보며 묻는다. 아직도 얼굴은 굳어 있다.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46명.”
“후속부대는?”
“곧 올 겁니다.”
그래놓고 이번에는 이동일이 노농적위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이쪽 병력은?”
“나까지 52명, 하지만.”
어깨를 늘어뜨린 전석규가 말을 잇는다.
“여자 대원은 모두 돌려보낼 작정이요. 집으로 돌아가 제각기 피신해야지.”
“나머지 대원들은?”
“나머지는 가족들 데리고 숨어야지, 이젠 집에서 못 삽니다.”
“우리하고 합류하지 않겠습니까?”
이동일이 말하자 전석규가 옆에 선 박길수를 보았다. 박길수는 오성규를 보았고 서로 시선들이 부딪쳤다. 그러더니 전석규가 머리를 내젓는다.
“우린 나이 들어서 동무들하고 같이 움직이긴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알겠습니다.”
선선히 머리를 끄덕인 이동일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쥐었다. 그리고는 전원 버튼을 누르면서 말을 잇는다.
“이해합니다.”
7월25일 15시45분, 개전 4시간55분25초 경과.
일산 대호식당의 김대호는 숨을 죽이고 TV를 응시했다. 국제방송의 ‘46용사 특집’이다. 화면에 선명하게 오윌리 보위대 창고 주변이 비쳤다. 그때 아나운서가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북한 노농적위대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보위부대를 습격해 막사를 불태우고 보위대원을 전멸시킨 후에 양곡을 탈취했습니다.”
그러고는 화면이 불타는 막사와 쌀자루를 운반하는 남녀 노농적위대원을 비췄다. 그때 60대쯤의 노농적위대원이 화면에 나타났다. 눈을 부릅뜨고 있다.
“이제는 이놈의 세상을 뒤집어야 해. 마침 우리 손에 총이 쥐어졌으니 끝장을 내겠어.”
노농적위대원이 기를 쓰고 말했을 때 김대호는 주르르 눈물을 쏟았다.
“그려, 당신들 손으로 맹글어봐.”
손등으로 눈을 닦은 김대호가 말을 잇는다.
“그러면 우리도 힘껏 도와줄 테니까 말여.”
같은 시각. 육참총장 조현호가 작참부장 박진상에게 지시했다.
“대북 전단을 뿌려! 북한 상공을 저 장면으로 도배하란 말이야!”
6장 폭동(暴動)
2014년 7월25일 금요일 15시50분, 개전 5시간00분25초 경과.
일대의 인민군이 산업지구 쪽에서 신천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전시(戰時) 상황에서 시내는 병사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곧 병사 사이에 섞였다.
“저쪽에 인민학교가 있습니다.”
하고 왼쪽을 가리킨 사내는 적위대 차림의 오규성이다. 이동일의 옆으로 다가선 오규성이 말을 이었다.
“인민학교는 전시에 부대가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실에 들어가 쉬면서 작전을 짭시다.”
이동일이 오규성을 보았다. 전석규는 합류하자는 이동일의 제의를 거부하고 돌아갔지만 노농적위대원 다섯 명이 합류했다. 그중 오규성이 가장 연장자이며 지휘자다.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오규성이 이가 빠진 치열을 드러내며 웃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요.”
“좋습니다. 그럼 오 선생이 먼저.”
이동일이 말하자 오규성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앞장을 섰다. 오규성의 뒤를 인민군복 차림의 해병 둘이 따른다. 대열은 왼쪽으로 꺾어져 이동했다.
“시민들이 눈에 띄지 않는데요.”
옆으로 다가온 조한철 중위가 낮게 말했다. 하긴 그렇다. 60대의 오규성도 군복을 입었으니 시민이 눈에 띌 리가 없다. 그때 윤미옥이 대답했다.
“모두 동원이 되었고 노인이나 아이들만 집 안에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600만 대군이라고 선전했군.”
혼잣소리처럼 말한 조한철이 걸음을 늦추더니 뒤쪽으로 떨어졌다. 3열종대로 인민군 병사들이 행진해오고 있었지만 이쪽은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2개 부대로 60여 명, 인솔자는 대위였는데 힐끗 이쪽을 보더니 외면했다. 지친 표정이었고 병사들의 발도 제대로 맞지 않는다.
그 시간에 김경식은 호위대 벙커에서 한국 방송을 보는 중이었다. KBS는 지금 10여 번 계속해서 같은 장면을 방영하고 있었지만 김경식은 처음이다. 그때 화면에 60대의 노농적위대원이 나타나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이제는 이놈의 세상을 뒤집어야 해. 마침 우리 손에 총이 쥐어졌으니 끝장을 내겠어.”
벙커 안은 조용해서 사내의 목소리가 시멘트벽에 부딪혀 울렸다. 그때 화면이 꺼지더니 옆에 서 있던 대좌가 말했다.
“화면을 편집해서 위치 파악을 못하도록 했지만 황해남도 태안, 벽성군 지역인 것 같습니다.”
모두 듣고는 있었지만 시선이 이리저리 옮겨졌다. 다시 대좌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남조선 해병놈들은 인민군으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황해남도 지역의 검문을 강화해야 될 것입니다.”
“곧 삐라가 넘어올 거요.”
하고 옆쪽에 앉아 있던 무력부장 성종구가 말했으므로 김경식이 머리를 들었다. 성종구는 김경식에게 지휘권을 빼앗긴 후부터 거의 나서지 않았다. 벙커 안의 모든 시선이 모여졌고 성종구가 말을 잇는다.
“내란이 일어났다고 선동하겠지. 전연(前緣)지대의 정규군보다 노농적위대, 교도사단이 동요할 거요.”
“정치군관이 즉결처분을 할 겁니다.”
김경식이 자르듯 말했을 때 성종구가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전시에는 정치군관의 장악력이 떨어지지. 내가 전쟁을 겪어봐서 알아.”
“그때하곤 다르오.”
그러고는 김경식이 옆쪽 장성에게 말했다.
“4군단 지역이 뚫린 건 우장선 책임이야. 우장선이 서둘러 그놈들을 잡아야 돼. 김정일 눈치만 보면 안 된다고.”
몇 시간 전만 해도 군 지휘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16시00분, 개전 5시간10분25초 경과.
“이것 봐.”
국제신문 사회부장 홍동수의 놀란 외침이 터졌다. 홍동수가 내민 스마트폰에 트위터 글이 떠 있다.
“계엄군이 곧 민노총, 전교조, 한총련 등 이적단체 가입자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 작전에 돌입할 예정임.”
그것을 읽은 사회부 기자 김순기가 쓴웃음을 짓더니 제 휴대전화를 꺼내 흔들었다.
“내 휴대전화에도 떴습니다. 이제 놈들이 조직적인 반란 선동을 시작하는 겁니다.”
“휴전 상태가 되니까 조금 여유가 생겼기 때문인가?”
“한숨 돌린 것이지요. 이번에 반전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김순기가 제 휴대전화에 뜬 트위터 기사를 보여주었다.
“계엄군과 경찰은 종북세력을 말살할 작정. 대규모 처형장과 수용소 준비 중. 재산압류, 추방까지 다각적 검토.”
기사를 본 홍동수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이것 봐라? 그럼 이걸 읽은 종북세력이 떨 것 아닌가?”
“그럴까요?”
쓴웃음을 지은 김순기가 만날 잔소리를 늘어놓는 홍동수를 보았다.
“당할 바에는 한번 붙어나보자 하고 악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이놈들은 선동에는 이골이 난 놈들이란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홍동수가 선뜻 동의하고는 길게 숨을 뱉는다.
“간단히 손을 들 놈들이 아냐.”
“이러다가 트위터 선동으로 옛날 짝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옛날 짝이라니?”
“광우병 촛불 난동이요.”
그러자 홍동수가 쓴웃음을 짓는다. 수백만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이 걸린다면서 촛불을 들고 난동을 부렸던 때가 6년 전이다. 그때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트위터에다 영상전달 기능을 대폭 강화한 휴대전화가 보급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전시계엄 상태야. 그때하곤 달라.”
홍동수가 머리를 내저으며 말을 잇는다.
“이제는 군이 거리에 나와 있다고. 종북세력이 공개적으로 쏟아져 나올 수는 없단 말이야.”
그러나 김순기의 표정은 시큰둥했고 홍동수도 더 말을 잇지 못했다.
16시05분, 개전 5시간15분25초 경과.
황해북도 사리원시 남쪽 제47교도사단 29지구대 본부 막사 안.
지구대장 김동복 중좌가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본다. 연병장 안에는 지구대 전 병력이 모여 있었으므로 어수선했다. 29지구대는 3개 보병중대와 1개 대전차포중대로 편성되었지만 병력은 20%가 모자랐고 대전차포도 12문 중 7문이 고장이다. 교도사단 병력은 현역에서 제대했거나 제외된 17~45세까지의 남자와 17~30세까지의 여자로 편성되었는데 제대병 대부분은 하전사(下戰士) 전역자다. 29지구대는 정규군단인 12군단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지금 옆방에서 소리 지르는 사내가 바로 군단에서 파견된 대위다.
“닥치라우! 변명은 더 듣지 않겠어!”
하고 대위의 외침이 들렸으므로 김동복이 창에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묵묵히 서있던 부대장 오인철 대위가 김동복 앞으로 다가섰다.
“저놈은 시비를 걸 작정입니다. 내버려두십시오.”
김동복은 입맛만 다셨고 오인철이 말을 잇는다.
“오래전부터 고장 나 있는 대전차포를 무슨 수로 고쳐놓으라는 겁니까? 저놈은 전연지대 복무도 해보지 않은 놈입니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대위와 상사, 중사 계급장을 붙인 셋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들이 군단에서 파견된 감독관이다. 김동복 앞에 선 대위가 똑바로 시선을 준 채 말했다.
“대전차포중대장을 체포하겠소. 보고서에는 3대가 작동 불능이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7대요. 부속을 빼내 팔아먹은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부속을 교체해서 5대라도 완벽하게 만든 거요. 중대장은 죄가 없소.”
29지구대뿐만이 아니다. 사리원 동남쪽의 제41지구대는 예비 수송대대였는데 트럭의 80%가 사용불능이다. 폐차인 것이다. 그것이 장부상으로만 운용되고 있었는데 상부도 다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41지구대에 파견된 감독관은 현장을 그대로 인정하고 대기 중이라고 했다. 그때 대위가 말했다.
“난 원칙대로 하겠소. 전시에 장비 유출은 총살이오! 난 그런 권한을 갖고 파견된 것이란 말이오!”
같은 시간, 휴대전화를 켠 이동일이 조한철 앞으로 내밀었다.
“봐라.”
조한철이 휴대전화 화면에 뜬 그림을 본다. 바로 30분쯤 전에 산업지구 옆쪽 보위부의 양곡 창고에서 찍은 장면이다. 지금 교사 안쪽에서 쉬는 오규성이 눈을 부릅뜨고 말하고 있다.
“…마침 우리 손에 총이 쥐어졌으니 끝장을 내겠어!”
그때 옆쪽에 앉아 있던 윤미옥도 머리를 기울여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화면이 꺼졌을 때 조한철이 놀란 표정으로 이동일을 보았다.
“이 장면이 전국으로 방영되는군요?”
“그래,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으로.”
“그럼 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북한 사람들도 이걸 보았겠습니다.”
“계속해서 보내고 있으니까.”
그러자 윤미옥이 말했다.
“우리를 확인했으니 쫓고 있겠군요.”
이동일과 조한철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곳은 신천 시내의 제3인민학교 안, 텅 빈 학교는 일자형 단층 건물에 교실이 다섯 개뿐이고 운동장은 660㎡(200평)밖에 되지 않는다. 학교 정문의 문짝 하나만 남아 있는데다 유리창 대부분이 깨지거나 없어진 걸 보면 폐교된 학교 같다. 하지만 51인의 연합군이 피신해 있기에는 적당했다. 시설과 부지가 좁아서 인민군 부대가 사용하기에 부적당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이동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냥 잡히지는 않을 테니까.”
시선을 뗀 윤미옥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왔다. 그러고는 뒤쪽 화장실로 다가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화장실까지 따라올 거야?”
눈을 치켜뜬 윤미옥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선명하게 울렸다. 그러자 하사 계급장을 붙인 인민군 병사가 쓴웃음을 짓는다.
“누가 똥냄새 맡는 걸 좋아하겠어? 하지만 명령인 걸 어떻게?”
하사는 해병 병장 강성구다. 처음부터 이동일의 지시로 윤미옥의 경호역을 맡게 되었지만 말이 경호역이지 실제는 감시역이다. 그것을 윤미옥도 아는 것이다. 윤미옥이 메고 있던 AK-47을 치켜올려 보이면서 묻는다.
“내가 총을 메고 있어도 그래? 아직도 믿지 못하냐고?”
“난 명령대로 움직일 뿐이야.”
강성구의 이맛살도 찌푸려졌다.
“글고 나한테 중위 행세 마. 넌 내 상관이 아니니까.”
그때 복도를 나온 조한철이 강성구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강성구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왜 그래?”
“예, 저 여자가 뒤를 따라온다고 잔소리를 해서요.”
“인마. 그 정도면 됐다.”
입맛을 다신 조한철이 손바닥으로 강성구의 등을 툭 쳤다.
“내가 중대장께 보고할 테니까 넌 들어가 있어.”
“예, 소대장님.”
몸을 돌린 강성구가 교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조한철이 윤미옥 앞으로 다가섰다.
“이해해야 됩니다. 저자식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니까요.”
그러나 윤미옥은 잠자코 몸을 돌렸다.
16시10분, 개전 5시간20분25초 경과.
주석궁의 지하벙커 안에서 회의가 열리고 있다. 개전 후 처음으로 김정일 측근들이 모인 정식 회의다. 김정일 좌측에는 김정은이 앉아 있었는데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개전 직전까지 활발하게 대외 활동을 하면서 지시를 내놓던 김정은이다.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것이다.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놈들은 계획적이었어. 이 시점에서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잠깐 말을 그친 김정일이 천천히 테이블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시선을 받은 모두는 노소를 불문하고 몸을 굳힌다.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전시에 55호위대 벙커를 지휘부로 사용하는 것까지 놈들은 계산에 넣고 공화국을 양분시켰어.”
그러고는 김정일이 쓴웃음을 짓는다. 조금 전에 그들 모두는 한국에서 방영된 노농적위대의 반란을 화면으로 본 것이다. 김정일이 벽에 펼쳐진 빈 화면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런데 놈들과 내가 똑같이 간과한 것이 있지. 바로 인민들의 반란이야.”
김정일이 빈 화면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인민들이 총을 쥐게 되었단 말야. 이제는 저것들이 가장 위험해.”
같은 시간, 47교도사단 29지구대장 김동복의 옆으로 부대장 오인철 대위가 다가와 섰다.
“지구대장님, 이걸 보시겠습니까?”
했지만 오인철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얼굴만 굳히고 있다. 주위는 조용하다. 감독관은 대전차포중대장과 소대장 둘을 체포해 막사 끝 쪽 창고에 감금했다. 그러고는 지금 취조 중이다. 창밖의 연병장 분위기는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다. 부대원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십시오.”
하면서 오인철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휴대전화다. 녹화장치를 해놓아서 버튼을 누르자 곧 노농적위대 복장의 노인이 화면에 나타났다.
“반란입니다.”
오인철이 잇사이로 말했지만 김동복은 숨을 죽이고 화면을 응시했다. 이윽고 노인적위대원이 소리쳤다.
“… 끝장을 내겠어!”
그 시간에 서울 소공동 국제빌딩 안 방송실에 앉아 있던 송아현은 휴대전화의 진동을 듣고 시선을 들었다. 문자메시지가 오고 있다.
“계엄군, 도처에서 한총련, 민노총, 전교조 회원들을 학살하기 시작함. 현재 72명 사살 확인. 동지들이여! 일어나라!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러더니 또 이어졌다.
“국제인권위원회에 동영상을 보냄. 국제위원회 즉각 유엔에 제소. 파견단 파견 결정. 유엔 안보리 소집 예정.”
“이런, 젠장.”
뒤쪽에서 투덜거린 것은 국제신문 편집국장 백한섭이다. 백한섭의 휴대전화에도 문자메시지가 뜬 것이다.
“이거 왜 안 닫고 있는 겨? 우리한테 뭐가 득이라고?”
“승전 뉴스가 빨리 전파된 이점도 있었지만 몇 시간 휴전 상태가 되니까 이놈들이 슬슬 옛날 가락을 내놓는데.”
국제방송의 하기호 국장이 말을 받는다.
“이젠 역효과가 날 것 같다. 계엄군 지휘부가 그쯤은 알 텐데.”
16시15분, 개전 5시간25분25초 경과.
이동일이 둘러선 장교와 하사관을 훑어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의 행동을 전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거다.”
그러고는 이동일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교실 천장을 가리켰다. 하늘을 가리킨 셈이다.
“너희들은 잊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헛된 죽음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
“그거, 사치인데요.”
불쑥 말을 뱉은 황찬우 중위가 시선을 받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죽어간 다른 전우들한테 미안하고 말입니다.”
“닥치고 내말 들어.”
나무랐지만 이동일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번졌다.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철수 지시를 받으면 모두 다시 이곳에 모인다. 이곳이 노출될 경우 제2의 집결 장소는 북쪽 발산의 수령탑. 찾기 쉽다니 대원들에게 주지시키도록.”
머리를 든 이동일의 시선이 윤미옥을, 그리고 오규성을 비롯한 네 명의 노농적위대원의 얼굴을 차례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도 이번 작전에 합류한 것이다.
그 시간에 오산 연합사령부 벙커 안 대형 스크린에는 신천 제3인민학교의 전경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교사 주위에 경비를 서고 있는 인민군복 차림의 병사들도 그림자까지 보인다.
“서너 명이 밖으로 들락거리던데 지금은 회의 중인가.”
그쪽에 시선을 준 육참총장 조현호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정용우가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북상을 해왔다는 것만 해도 훈장감입니다.”
“다섯 명이 합세해서 51명이 되었으니 51용사라고 제목을 바꾸는 게 어떨까?”
하고 조현호가 물었지만 정용우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합참의장 장세윤이 입을 열었다.
“시내로 들어온 것은 적극적으로 부딪치겠다는 의도야. 저놈들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모두의 시선이 다시 화면으로 모여졌다. 그때 안쪽에 앉아 있던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누군가에게 소리쳐 말했다.
“이봐, 이제 다시 휴전이라고! 우리가 이긴 전쟁으로 이 시점에서 끝내야 돼!”
그러나 대답은 없다.
16시20분, 개전 5시간30분25초 경과.
신천시 보위부는 교통량이 많은 사거리 옆에 세워졌다. 거기에다 보위부의 4층 건물은 신천시 중심부에 자리 잡았고, 주위가 탁 트여서 4층 방에서는 사리원으로 뻗은 도로까지 보인다.
“오월리라고?”
눈을 치켜뜬 보위대장 한대진 대좌가 소리치듯 묻는다. 오월리는 산업지구 옆쪽으로 신천 보위부 직할 지역이다.
“예,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정보참모 조기윤 소좌가 어깨를 늘어뜨린 채 말을 잇는다.
“제14보급소는 소장 이하 7명이 전원 사살되었고 보관되었던 양곡이 모조리 강탈당했습니다.”
“모조리?”
한대진의 목에서 쇳소리가 터졌다. 14보급소에는 125t―20㎏ 쌀자루가 6000자루가 넘게 쌓여 있을 것이었다. 한대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대체 몇 놈이나 된단 말이야?”
“습격했던 놈들은 먼저 도망갔고 그 소문을 들은 인근 인민들이 몰려와서….”
“….”
“쌀자루를 들고 도망가던 몇 명은 체포했지만 나머지는….”
“오월리라니.”
혼잣소리처럼 말한 한대진이 앞에 놓인 전화기를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20분쯤 전부터 노농적위대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해주의 황해남도 보위사령부에서 난데없이 반란 지역을 찾으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 바로 10분쯤 전이다.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하고 놀라는 중에 반란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관할 지역이라니 심장이 떨릴 만했다.
“이, 이거,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하나?”
이를 악물었다 푼 한대진이 혼잣소리처럼 말한 순간이었다.
“꽝! 꽝!”
“타타탓! 탓탓탓탓탓탓탓!”
“꽈 꽝! 꽈 꽝!”
폭음과 총성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그것도 사방에서, 건물이 흔들거리더니 유리창을 부수며 총탄이 날아들었다. 놀란 한대진이 테이블 밑으로 머리부터 집어넣었고 정보참모 조기윤은 문밖으로 도망치다가 발이 꼬여 엎어졌다.
“꽈꽝!”
던진 수류탄이 2층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안에서 폭발했다.
“타탓탓탓탓탓!”
옆에서 오규성의 AK-47소총이 요란한 발사음을 울리고 있다.
“타타타타탓!”
이동일이 3층 창에서 어른거리는 물체를 향해 연사를 한 후에 소리쳤다.
“진입하지는 마라!”
안에까지 들어가 사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직도 사방에서 요란한 총성과 폭음이 울렸고 잠깐 사격을 멈춘 사이에도 4층 보위부 건물 안에서 서너 번의 폭발음이 일어났다. 유리창 밖으로 검은 연기와 함께 불덩이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때 옆쪽에서 이 하사가 달려왔다. 이동일이 직접 지휘하는 4소대 선임하사다.
“중대장님! 앞쪽 적은 다 사살했습니다!”
이용섭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헐떡이며 달려온 이용섭이 정원석 뒤에 엎드리면서 소리쳤다.
“성공입니다!”
그때 다시 폭음이 울리더니 4층 건물의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안의 기물과 종이가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졌고 뼈대만 남은 4층 잔해가 앙상했다.
“철수!”
이동일이 버럭 소리치자 이용섭이 복창했다. 아직도 총성이 격렬하게 울리고 있었지만 이용섭의 목소리는 더 컸다.
“괜찮아요?”
달려온 조한철이 물었으므로 윤미옥은 상체를 세우고 어깨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달리다가 무너진 시멘트 더미에 걸려 넘어졌던 것이다. 그때 조한철이 팔을 뻗어 윤미옥의 겨드랑이를 안아 일으켰다.
“놔요!”
놀란 윤미옥이 몸을 비틀었지만 오히려 가슴이 조한철에 닿았고 이미 일으켜진 후였다. 조한철이 팔을 풀고는 헐떡이며 말했다.
“괜찮다면 빨리 뛰어요!”
그러고는 달리기 시작했으므로 윤미옥도 뒤를 따라 뛰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부터 강성구는 따라오지 않았다. 조한철이 이동일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장서 달리던 조한철이 머리만 돌려 뒤를 보았으므로 윤미옥은 외면했다. 뒤쪽의 총성은 점점 잦아들고 있다.
“와앗!”
보위부 건물을 습격한 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동안 상황실 안에서는 계속해서 환호성이 일어났다. 둘이 껴안고 서로 등을 두드리는 장군들도 있고 연합사 참모장 해리슨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건배하는 것처럼 치켜들고 있다.
“잘한다!”
정용우는 눈을 부릅뜨고 잇사이로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위성사진은 선명했다. 신천 보위부의 4층 건물은 이제 화염에 싸여 있었는데 사방으로 흩어진 습격대는 어느새 군중 사이에 묻혔다. 보위대원이 보위대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모두 인민군복 차림인데 누가 구분하겠는가?
“저걸 녹화해서 보내!”
합참의장 장세윤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그 말을 들었는지 옆에 선 연합사령관 우드워드 대장도 영어로 소리쳤다.
“인민군 반란이라고 해!”
정용우가 머리를 들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제 부하들의 공은 지휘부가 인정해주기만 하면 된다. 꼭 46용사의 전공이라고 선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16시30분, 개전 5시간40분25초 경과.
휴대전화가 울렸으므로 송아현은 소스라치게 놀라 머리를 들었다. 이동일이다. 그 순간 방송실 안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일사불란하다. 송아현이 리시버를 켜고는 휴대전화를 앞쪽 받침대 위에 놓았다. 휴대전화에 연결된 장치들은 영상통신을 바로 방송 화면으로 연결하도록 조치된 것이다. 그때 휴대전화가 켜지면서 이동일의 얼굴이 드러났다.
“나야.”
이동일이 조금 굳어진 얼굴로 말한다.
“응. 별일 없지?”
하고 송아현이 조금 서두르듯 묻자 이동일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번졌다.
“있어. 우리가 시내 보위부 건물을 폭파했다.”
“보위부 건물을?”
“그래.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지.”
그 순간 화면이 잠깐 정지된 것 같더니 불에 타오르는 4층 건물이 생생하게 비쳤다. 땅바닥에 쓰러진 인민군 시체, 그리고 불타는 건물에서 아직도 잔해가 쏟아지고 있다.
“이곳이 어딘지는 말 못해.”
이동일이 말하자 송아현은 머리부터 끄덕였다.
“알아. 알아.”
“우리 부대가 적위대원 다섯과 합동으로 공격. 적 40여 명을 사살했고 우리는 경상 넷뿐이야.”
“몸조심해야 돼.”
“다시 연락할게. 아현아.”
“사랑해!”
하고 송아현이 소리쳤지만 통신이 끊겼으므로 전달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대특종이다!”
뒤에서 벌떡 일어선 방송국장 하기호가 소리쳤지만 송아현은 길게 숨을 뱉는다. 하기호가 서둘러 다가오면서 PD에게 말했다.
“사령부를 연결해!”
연합사령부 소속 통신부의 검열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5분이 지난 16시35분(개전 5시간45분25초 경과), 전국의 모든 TV, 인터넷, 휴대전화의 화면에 일제히 뉴스 특보가 떴다. 연합사령부의 자료를 받은 계엄사령부의 전시(戰時)보도다. 화면에 화염에 싸인 신천 보위부 4층 건물이 드러났다. 옆에서 찍은 장면은 이동일이 전송해준 것이지만 위쪽에서 찍은 사진이 더 생생했다. 이것은 미국위성 US-32가 찍은 장면이다. 그때 아나운서의 열띤 목소리가 울렸다.
“황해남도 신천 보위부가 인민군 내부의 반란으로 폭파되어 보위대원 전원이 전멸했습니다.”
땅바닥에 즐비하게 깔린 보위대원 시체가 화면에 비쳤고 건물에 사격을 가하는 인민군의 모습도 보인다. 그 순간 공격자가 클로즈업 되면서 나이 든 사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노농적위대원이다.
“습격자에 노농적위대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민군과 노농적위대가 다 같이 봉기한 것입니다.”
흥분한 아나운서가 목소리를 높였을 때 마침 나이 든 노농적위대원이 주먹을 불끈 쥐고 함성을 지르는 중이었다. 그것을 본 일산 대호식당의 김대호가 두 손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만세!”
식당 안에는 박미옥과 설렁탕을 시킨 손님 둘이 있었지만 김대호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사 일어났구먼! 이제사 일어났어!”
상기된 얼굴로 소리친 김대호가 주먹으로 빈 식탁을 쳤다.
“나한티도 총을 쥐어주면 저그로 달려갈틴디 말여!”
김대호는 저 장면이 이동일이 보내온 장면과 위성사진을 배합해 더 강렬하게 극적으로 연출되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같은 시각, 제47교도사단 29지구대장 김동복이 부대장 오인철과 함께 휴대전화 특집 화면을 본다. 방금 김대호가 본 장면이 북한 사리원에도 전송된 것이다. 방송이 끝났을 때 김동복이 오인철을 보았다. 얼굴이 돌처럼 굳어 있다.
“중대장들을 불러.”
힐끗 시선을 준 오인철이 잠자코 방을 나가더니 1분도 안 되어서 중대장 셋과 함께 돌아왔다. 모두 굳은 표정이다. 중대장 셋이 앞에 나란히 서자 김동복이 말했다.
“동무들도 들었겠지만 북조선 이곳저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 기회에 이 거지 같은 세상을 엎어버리자는 게야.”
눈을 치켜뜬 김동복이 중대장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40대 중·후반의 대위 전역자로 사회생활에 시달릴 대로 시달렸다가 소집되었다. 단 한 명도 가족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누려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때 1중대장이 잇사이로 말했다.
“빌어먹을, 우리가 먼저 일어납시다.”
그러자 3중대장이 눈을 치켜떴다.
“노농적위대도 일어났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다니요? 싸우다 죽읍시다.”
“우리가 일어나면 다 따라올 거요!”
하고 외친 것은 2중대장이다.
16시40분, 개전 5시간50분25초 경과.
“삐라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가선 대좌가 보고했지만 김경식은 못 들은 척했다. 그러자 김경식 옆에 서 있던 심철 상장이 대신 물었다.
“어디 지역이야?”
“황해북도 토산·신계 지역으로 떨어지는 중이고 청단·해주·신원 지역에는 이미 다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제 삐라는 급하지 않아.”
심철이 뱉듯이 말했을 때 안쪽 원탁에 앉아 있던 성종구가 입맛을 다셨다.
“지금 삐라는 기름 역할을 할 거야.”
“그기 무신 말입니까?”
심철이 거친 목소리로 묻자 성종구가 늘어진 눈시울을 치켜 올렸다. 그러고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한다.
“폭동.”
낮은 목소리여서 심철과 주변의 몇 명밖에는 못 들었다. 그때 다시 대좌 하나가 서둘러 이쪽으로 다가왔다.
“대장 동지, 사리원에서.”
그러고는 대좌가 말을 멈췄으므로 이번에는 김경식이 다그치듯 묻는다.
“뭐야?”
“교도사단 지구대가 반란을 일으켜 사리원 시당과 보위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제55호위대 상황실 벙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뭐라고? 교도사단 지구대?”
그래도 나이든 성종구가 먼저 나섰다. 성종구의 시선을 받은 대좌가 말을 이었다.
“예, 현재 12군단의 62사단 일부 병력도 그들과 합류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12군단?”
12군단은 전연지대 북쪽 예비군단이지만 정규군이다. 교도사단과 정규군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야단났다.”
성종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혼잣소리를 했지만 모두 숨을 죽이고 있어서 다 들렸다.
그 시간에 이동일은 제3인민학교를 나와 신천 북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보위부 건물과는 1㎞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머리를 돌리면 아직도 불길을 뿜고 있는 4층 건물이 보였다. 주위는 오가는 병사들로 분주했다. 그러나 보위부를 향해 달려가는 부대는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 병사는 많았지만 지휘계통이 일원화된 것 같지가 않다. 그야말로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다. 후미에서 뒤쪽을 감시하던 조한철이 뛰어 다가왔을 때는 길을 꺾어 보위부 건물이 보이지 않을 때였다.
“중대장님, 미행자는 없습니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조한철이 옆을 걸으며 말을 잇는다.
“놈들은 우릴 반란군으로 알았겠군요.”
그때 앞쪽을 걷던 윤미옥이 머리를 돌려 이동일을 보았다.
“검문소가 있어요.”
시선을 돌린 이동일이 거리 끝 쪽에 설치된 검문소를 보았다. 거리는 200m, 양쪽 차선에 각각 차단봉이 설치되었고 오가는 차량과 통행인을 검문하고 있다.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윤미옥이 말했다.
“평시에는 차단봉이 열려 있었는데 전시라 그런가 봐요.”
16시45분, 개전 5시간55분25초 경과.
“으음, 돌파하려는 거야.”
잠시 멈춰 섰던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정용우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위성에서 찍은 신천시 북방의 도로가 바로 위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때 대열이 두 갈래로 나눠졌다. 하나는 오른쪽 인도로 붙어 내려갔고 또 다른 한 열은 도로를 가로질러 왼쪽 반대차선의 인도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다. 상황실 안의 모든 시선이 화면에 빨려든 것처럼 고정되었다. 두 개로 갈라진 대열은 위쪽 검문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지.”
정적을 깨뜨린 것은 육참총장 조현호다. 눈을 치켜뜬 조현호가 화면을 응시한 채 말을 잇는다.
“양쪽 검문소를 동시에 치려는 거다.”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생각이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상하 차선의 차량과 병사들, 검문소에는 양쪽 차단기 주위에 10여 명씩 배치되어 있었지만 깔린 인민군만 수백 명이다. 저들이 다 적이 되었을 경우에는 이쪽이 전멸이다.
“무모한 작전이야.”
그때 합참의장 장세윤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한국말을 이해했는지 옆에 앉은 우드워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거칠게 머리를 내저으며 말한다.
“저 방법밖에 없습니다. 돌아갈 길도 없지 않습니까? 정공법을 쓰는 겁니다.”
그때 벽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것 보십시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아졌다. 소리친 중령이 귀에서 이어폰을 떼더니 눈을 부릅떴다.
“반란. 아니,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중령이 앞에 놓인 자판기를 한손으로 두들기더니 다시 상황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방금 704부대에서 보내온 감청 내용입니다.”
704부대란 곧 국군감청부대다. 중령이 버튼을 누르자 곧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리원 시가지 남쪽이 반란군에게 장악당했습니다. 현재 12군단 휘하의 3개 교도사단 지구대, 61사단 제82연대가 반란군에 가담했습니다. 반란군 주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제47교도사단 휘하 29지구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버튼을 눌러 녹음장치를 끈 중령이 이제는 똑바로 합참의장 장세윤을 보았다.
“사리원 보위부 제3지구대에서 평양 보위사령부로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그 말을 통역으로 들은 우드워드가 바로 지시했다. 두 눈이 치켜떠 있다.
“확인해!”
바로 그 시간에 이동일은 20m쯤 앞으로 다가온 검문소를 노려보았다. 이동일은 상행선 검문소 앞으로 다가가는 중이다. 반대편에는 조한철 중위가 이끄는 20여 명이 같은 간격을 두고 다가간다. 양쪽 인도에는 오가는 병사, 민간인이 많다. 검문소에서는 차량은 일단 세워서 검문하지만 도보로 지나는 병사와 민간인은 대충 훑어만 보다가 의심 가는 사람만 검문한다. 지금도 병사 둘이 검문을 당하고 있다. 이동일은 심호흡을 했다. 부상자까지 낀 51명이 양쪽 검문소를 다 빠져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조한철 일행은 상행선으로 거슬러가는 상황이었으므로 시선을 끌고 있다. 이미 이쪽 검문소 병사 두어 명이 그쪽을 바라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이제 길을 건너 이쪽으로 와야 될 것이다. 검문소와의 거리가 5m로 가까워졌을 때 이동일은 어깨에 멘 AK-47을 내려 손에 쥐었다. 뒤를 따르는 부하들이 모두 이동일을 주시하고 있을 터였다.
불꽃이 일어났다. 양쪽 길에서 수십 가닥의 불꽃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위성사진이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달려가는 동작, 넘어지는 장면까지 생생하다. 실제로 살육하는 장면이다. 영화보다는 왠지 실감이 덜 나고 어색한 것 같지만 가슴이 막히고 머리끝이 쭈뼛거리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해병사령관 정용우는 심호흡을 했다.
“저 봐! 다 도망가네!”
하고 육참총장 조현호가 소리쳤으므로 정용우는 머리를 들었다. 도로 양쪽의 인민군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고 있다. 물론 검문소 병사들은 아군들의 총격을 받고 일부는 저항 사격을 했지만 저항은 적다. 도망치는 무리는 양쪽 도로를 통과하는 병사들과 민간인이다. 그때 작참부장 박진상이 소리쳤다.
“저것이 북한 군부의 진면목이요!”
그러나 모두 숨을 죽인 채 화면을 본다. 이동일 부대는 이제 양쪽 검문소를 거의 장악했다. 총구에서 발사되는 섬광이 서너 개로 줄어들었다.
“검문소를 격파했어!”
마침내 정용우가 소리쳤을 때 조현호가 따라 외쳤다.
“저 봐, 모두 흩어졌어!”
그때 아래쪽에서는 이동일이 숨을 헐떡이는 조한철에게 묻는다.
“그쪽은?”
“예! 한 명 부상입니다.”
그러나 이동일이 이끄는 부하 중 서동식 병장이 배에 관통상을 입었다. 중상이다. 보위부 직할 검문소에 주둔했던 20여 명의 병사는 전멸했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다. 머리를 든 이동일이 옆에 세워진 차량들을 보았다. 총격전이 일어나자 운전병과 탑승자가 모두 달아나 상행선 차량 서너 대가 빈 차로 놓여 있다. 이동일이 지시했다.
“차를 타고 빠져나간다!”
그때 조한철이 앞장서 뛰었으므로 3소대가 뒤를 따랐다. 맨 앞의 트럭으로 달려간 조한철이 소리쳤다.
“정 병장! 네가 운전해!”
“예!”
하고 대답한 것은 인민군 중사 계급장을 붙인 병사다. 정 병장과 함께 운전석에 오르던 조한철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윤미옥이 따라 올라왔기 때문이다. 힐끗 시선을 준 조한철이 가운데에 앉았고 윤미옥이 창가에 자리 잡았다.
“먼저 출발해!”
조한철이 지시하자 정 병장이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털털거리던 엔진이 곧 힘찬 소음을 내더니 차체가 떨렸다.
“다 탔나?”
윤미옥의 몸을 뒤로 젖히고 밖으로 상체를 내민 조한철이 소리쳐 묻자 트럭 적재함에 탄 선임하사가 기운차게 대답했다.
“다 탔습니다!”
16시55분, 개전 6시간05분25초 경과.
오산 연합사령부 지하 벙커에 옮겨와 있는 대통령 박성훈이 연합사 부사령관 이성호의 보고를 받는다.
“북한민주회복운동본부에서 쏘아 올린 삐라가 현재까지 3000개. 한 시간 내로 5000개가 추가될 것입니다.”
이성호는 삐라를 쏘아 올린다는 표현을 썼는데 맞다. 이번 삐라는 고무 재질이 강한 풍선을 사용한데다 부피가 커서 풍선 한 개에 150㎏을 싣고 고공 10㎞까지 올라간다. 따라서 제트기류를 타고 함경북도까지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계엄사령부는 비공식으로 ‘북민본’을 지원, 풍선과 삐라 제작을 도운 것이다. 이성호가 말을 잇는다.
“현재 삐라는 평안남도, 강원도와 함경남도까지 떨어진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앞으로 한 시간이면 북한 전역이 삐라로 덮일 것입니다.”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북한 당국이 입안에 박힌 가시로 생각했던 것이 바로 ‘북민본’이 쏘아올린 삐라다. 탈북자 모임, 북한인권투쟁위원회, 실향민 단체, 자유민주주의연합 등 각 단체가 통합해 만든 ‘북한민주회복운동본부’는 지금까지 소총탄을 쏘아 올렸어도 북한 정권에 타격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미사일을 쏘아 올린 셈이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합참의장 장세윤이 거들었다.
“현재까지 북한의 신천, 사리원, 그리고 황해북도 곡산 근처의 13개 부대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폭동은 급격히 증가할 것입니다.”
“신천에서 첫 폭동이 일어났지요?”
하고 박성훈이 묻자 장세윤과 이성호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답은 장세윤이 했다.
“신천 시내 폭동은 해병대위 이동일의 46용사가 보위부를 습격한 것입니다. 그것을 인민군의 습격으로 위장했습니다.”
“그렇군.”
박성훈이 머리를 끄덕였다.
“46용사가 했군. 그런데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방금 신천 밖으로 빠져나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이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군요.”
“예, 삐라와 46용사의 작전이 배합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박성훈과 장세윤의 대화를 듣던 이성호가 거들었다.
“북한 내부 폭동이 보도되기 시작하자 국내의 선동 메시지가 차츰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놈들은 마치 그늘을 쫓아다니는 쥐새끼들 같습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통신을 차단하지 않았던 게 잘한 일인 것 같군. 그렇지 않습니까?”
하고 박성훈이 묻자 두 대장은 눈만 끔벅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군은 계엄과 동시에 인터넷과 휴대전화 사용을 차단하도록 건의했던 것이다. 전시작전계획서에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즉각 차단토록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급하지 않다면서 승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쓴웃음을 지은 박성훈이 제 말에 제가 대답했다.
“물론 지금까지는 말이오. 앞으로 역효과가 날 땐 즉각 차단하십시다.”
그 시간에 55호위대 벙커 안쪽 밀실에서는 고성이 터지고 있다.
“아니, 지금이 적시(適時)라고 했지 않습니까! 도대체 뭘 기다리시는 거요!”
하고 김경식이 소리치자 통역을 들은 황방산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쪽 요구사항은 분명히 전했으니까 기다려보시오.”
“폭동이 번져 공화국 전체가 난장판이 될 때까지 말이오?”
통역의 말이 끝나자마자 버럭 소리친 김경식이 갑자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 봐요, 나는 물론이고 김정일씨한테도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요. 김정일씨도 적위대, 군의 반란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야.”
한마디씩 잘라 말한 김경식이 통역을 향해 소리쳤다.
“이렇게 되면 중국이 계획했던 조선성은 물거품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폭동이 더 번지기 전에 중국군을 투입시키라고!”
그러자 통역의 말을 들은 황방산이 먼저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묻는다.
“그런데 만일 반란군이 중국군을 공격한다면?”
황방산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 있다.
“장군, 그런 경우를 상상해보았소?”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김경식은 눈만 치켜떴다. 상상해보지도 못한 것이다.
김정일이 손을 내밀자 소장 계급장을 붙인 장군이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주석궁의 지하 벙커 안이다. 주위의 시선을 받으며 김정일이 휴대전화를 귀에 붙였다. 그러고는 정색하고 말했다.
“예, 시진핑 동지. 김정일입니다.”
그러자 시진핑의 중국어에 이어서 통역의 말이 귀를 울렸다.
“김경식 대장이 중국군 투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동지.”
김정일은 어금니만 물었고 시진핑의 말이 이어졌다.
“위원장 동지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경식이 반역자이며 중국군 투입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주석 동지께서는 알고 계시지요?”
김정일이 한마디씩 차분하게 묻자 지하 상황실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청난 내용을 모두 들은 것이다. 그때 시진핑이 말했고 억양까지 비슷한 통역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정통성이 위원장 동지께 있으니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경식은 중조 국경의 4개 군단 전체와 전연지대의 2개 군단, 820전차군단까지 장악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동지.”
“곧 수습이 될 겁니다. 주석 동지.”
“하지만 내부 폭동이 심해지면 양측 지휘부는 무력해질 것이고 결국은.”
시진핑의 목소리에 짜증기가 섞인 것처럼 느껴졌고 통역의 억양도 그랬다. 잠깐 입을 다물었던 시진핑이 말을 잇는다.
“이제 양측의 당면 문제는 내부 폭동 수습입니다. 정규군까지 폭동에 가세하고 있는데다 남쪽에서 삐라를 대규모로 쏘아 올리는 바람에 북한땅 전역이 위험해지고 있단 말입니다.
“알았습니다. 주석 동지,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폭동이 수습되면 중국군 투입을 위원장님과 협의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주석 동지.”
“천만에요. 우린 동맹국 아닙니까? 위급할 때는 서로 도와야지요.”
시진핑의 부드러운 대답을 들으며 김정일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었다. 그러고는 앞쪽 벽을 노려보며 말한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중국군은 국경을 넘어왔겠군.”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으므로 김정일의 목소리만 방을 울린다.
“지금은 내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시늉을 하지만 말야.”
머리를 돌린 김정일이 김정은을 보았다. 김정은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중이다.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잘 들어라.”
“예, 위원장 동지.”
“영원한 동맹, 우방은 없다.”
“예, 위원장 동지.”
그 순간 김정일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지더니 한마디씩 잇사이로 말을 뱉는다.
“모든 인간은 제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국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법이야.”
그야말로 질풍처럼 달렸다. 신천에서 재령까지 달리는 동안 검문소 두 곳을 지났는데 두 곳 모두 비어 있었다. 그것도 금방 철수한 것처럼 차단기를 내려놓은 채 검문소의 병사들이 사라진 것이다.
재령이 3㎞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났을 때 앞을 달리던 트럭이 멈춰 섰으므로 이동일이 탄 트럭도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들은 트럭 두 대에 분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차에서 내린 조한철이 먼지를 뚫고 달려왔다.
“앞쪽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조한철이 소리치듯 말했으므로 이동일도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그들이 다시 앞쪽으로 달려가 길 모퉁이에 섰을 때였다. 이동일은 앞쪽 산기슭에서 솟아오르는 화염을 보았다. 그리고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일어난다. 이어서 요란한 발사음이 이어졌다.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저 산기슭 안쪽에 12군단 직할 보급대가 있어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오규성이 소리쳐 말했다. 그가 손을 들어 왼쪽을 가리켰다.
“저쪽 불길이 올라오고 있는 곳이 막사요. 습격을 받은 겁니다.”
오규성의 주름진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다. 그도 한 시간 전에 노농적위대 병사들과 보위대의 양곡창고를 습격했던 것이다. 이동일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도보로 전진이다. 서둘 것 없다.”
그때였다. 갑자기 병사 하나가 소리쳤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아졌다.
“저것!”
병사가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 순간 이동일은 숨을 삼켰다. 하늘이 온통 꽃가루로 덮여 있는 것 같다. 온갖 색깔의 꽃가루가 반짝이며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삐라다.
17시05분, 개전 6시간15분25초 경과.
“중대장님!”
철원 근처의 DMZ부대인 제57사단 16연대 제1대대 2중대장 안덕수 대위는 무전기를 울리는 고함소리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상대는 3소대장 주상호 중위, 학군 출신으로 제대가 두 달 남은 말년이라고 만날 건둥거리다가 이번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 되겠다.
“뭐야? 또?”
조금 전에도 주상호는 앞쪽 적 동향이 수상하다고 소리쳐 보고했는데 아무것도 아니었다. 망원경으로 보았더니 서너 놈이 뛰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때 주상호가 악을 썼다.
“왼쪽을 보십시오!”
전시라 중대장도 벙커에 나와 있었으므로 안덕수는 망원경을 눈에 붙이고는 왼쪽을 보았다. 그러고는 대번에 몸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57사단 지역에서 인민군 2군단 소속 1개 대대가 투항해 왔습니다.”
무전기를 아직 손에 쥔 채 육참총장 조현호가 소리쳤다. 그 순간 연합사령부 벙커 안은 짧은 환성이 일어났다. 다시 조현호의 외침이 벙커 안에 울렸다.
“2군단 7사단 소속의 경보병 대대인데 지금 일렬로 서서 DMZ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연합사령부에 보고도 못하고 1개 대대 병력의 투항병을 받아들인 것이다. 전시여서 현지 연대장의 즉결사항이다.
“그렇다면 이 지역이 뚫린 건가?”
상황판의 투항지역을 보면서 합참의장 장세윤이 묻자 작참부장 박진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다 비웠으니까 넘어올 수 있는 겁니다. 등에 총을 쏘도록 남겨두고 오겠습니까?”
“이제 시작이오.”
갑자기 연합사 참모장 해리슨이 영어로 말했지만 모두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해리슨이 열띤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썩은 종기에 바늘 끝으로 구멍 하나만 뚫으면 다 터지는 겁니다. 이제 고름이 폭발하듯 터질 겁니다.”
영어에 유창한 장세윤이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지만 표현이 의학적이군.”
그 시간에 송아현은 기다리던 이동일의 영상통신을 받는 중이다.
“여긴 재령 근처인데 12군단 보급대가 반란군의 습격을 받았어.”
이동일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곧 화면에 불타는 막사와 부서진 창고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조금 멀리서 찍고 있는지 창고 안으로 떼 지어 들락거리는 남녀의 모습이 흔들렸다. 지금 수백 명의 병사와 함께 민간인 남녀노소가 창고에서 쌀자루를 메고 나오는 중이다. 쌀자루를 서너 개씩 한번에 머리에다 이고 나오다가 넘어지는 여자도 있고 미친 듯이 등에 지고 달려가는 남자도 있다.
“타탕! 탕! 탕!”
그쳤던 총소리가 휴대전화에서 울렸으므로 송아현이 긴장했다. 그때 이동일이 화면을 그쪽으로 비치면서 말했다.
“보급대 병사가 살아 있었던 모양이야.”
화면에 창고 벽에 기대앉은 병사를 향해 앞에서 사격하는 인민군이 보였다. 반란군이다.
“삐라가 사방에서 떨어져 있어. 이젠 이쪽도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동일이 말했을 때 그때서야 송아현이 입을 열었다.
“오빠, 위성으로 보여줬는데 지금 북한 여러 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어. 사리원은 반란군이 점령한 상태고 조금 전에는 남포에서 해군이 반란을 일으켰어.”
“아, 그래?”
이동일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러고는 창고를 비추던 화면이 바뀌더니 이동일의 얼굴이 나타났다. 인민군복 차림이어서 낯선 얼굴이 떠있다.
“이제 좀 쉬어야겠다. 계속 강행군을 했더니 말야.”
“오빠, 몸조심해.”
송아현이 서두르듯 말했을 때 이동일이 얼굴을 펴고 웃더니 짧게 소리쳤다.
“대한민국 만세!”
그러고는 화면이 꺼졌으므로 송아현이 몸을 돌려 뒤쪽을 보았다.
“대한민국 만세!”
정색한 하기호가 따라 외치더니 쓰고 있던 이어폰을 벗으며 말했다.
“이 장면도 위성으로 찍은 것으로 편집해! 이동일씨 위치가 알려지면 안돼.”
17시15분, 개전 6시간25분25초 경과.
“괜찮아요?”
다가온 조한철이 묻자 윤미옥은 벗어놓았던 인민군모를 다시 썼다. 이곳은 재령 남서쪽으로 12사단 보급대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야산의 8부 능선이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터라 이동일은 이곳에서 휴식을 지시했다. 그래서 저녁 준비를 하는 대원 몇 명만 제외하고 모두 잠이 들었다. 잠처럼 효력이 강한 휴식이 없다. 옆쪽 바위에 기대앉은 조한철이 들고 온 레이션을 윤미옥 앞에 놓고 말했다.
“이건 밥이니까 물만 부으면 돼요. 붓고 1분만 지나면 먹습니다. 그리고 이건 쇠고기, 이건 김치….”
“됐어요.”
하고 윤미옥이 말을 자르자 조한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주위는 조용하다. 아래쪽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취사당번들이다.
“중위, 경계심을 버려요. 난 당신과 친해지려고 이러는 거요.”
조한철이 말하자 윤미옥이 퍼뜩 시선을 주었다.
“왜 친해지려는 거죠?”
“꼭 이유를 알아야겠소?”
정색한 조한철이 윤미옥을 똑바로 보았다. 조한철의 시선을 받은 채 윤미옥이 대답했다.
“그래요, 알아야겠어요.”
“남자 대 여자로 당신과 친해지고 싶은 거요. 윤미옥씨.”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내 몸을 갖고 싶은 거죠?”
그 순간 조한철은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말했다.
“그렇군, 친해지면 그렇게도 되겠지.”
발을 뗀 조한철이 등을 보인 채 말을 잇는다.
“하지만 상대방한테서 직접 말을 듣고 보니까 그럴 마음이 달아났어. 난 아무래도 너무 순진한가봐.”
그 시간에 12군단장 이기준 대장은 황해북도 신계의 군단사령부에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부동자세로 선 이기준의 귀에 김정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군단 직할 사단을 투입해서 반란군을 진압하도록. 동무의 임무는 반란진압이야.”
“예, 지도자 동지.”
이기준이 힘차게 대답했지만 벽을 향한 눈동자는 흐리다. 상황실 벙커의 주위에 둘러선 참모장 이하 참모들의 표정도 어둡다. 12군단 휘하의 2개 교도사단, 그리고 군단 지역 내의 9개 노농적위대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반란은 폭동으로 이어져서 6개 도시의 보위부가 전멸했고 양곡보관소 9개가 강탈당했다. 사상자는 계산하지도 않았다. 그때 김정일의 목소리가 다시 울린다.
“2군단 소속 1개 대대가 남쪽으로 투항했다. 김경식이 제55호위대 벙커에서 반란군을 지휘하는 동안에 제 몸통까지 떨어져 나가고 있어. 정규 군단이 흔들리면 공화국이 위험하다. 동무도 군단 단속을 잘하도록.”
“예, 지도자 동지.”
그때 통신이 끊겼으므로 이기준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는다.
“군단장 동지. 12개 지역으로 군단 병력을 파견해야 될 것 같습니다.”
김정일과의 대화는 상황실의 스피커를 통해 모두 들은 터라 참모장 우영술 중장이 말했다.
“반란을 일으킨 부대가 세력을 끌어 모으고 있어서 급합니다.”
그때 이기준이 우영술을 보았다.
“대기시켜.”
이기준의 눈빛이 강해졌다.
“내부에서도 동요가 있을지 모르니까 내부 단속이 먼저다. 대기 상태에서 철저히 교육하도록.”
그러자 군단정치국장 최경운 중장이 바로 나섰다.
“군단장 동무, 지도자 동지의 지시를 어기실 것이오? 대기시키라니? 지도자 동지께선 반란군을 진압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내부 단속도 잘하라고 하셨소.”
뱉듯이 말한 이기준이 몸을 돌렸다.
17시25분, 개전 6시간35분25초 경과.
대통령 박성훈이 연합사령부 벙커에서 국방장관 임기태, 연합사 부사령관 이성호, 합참의장 장세윤, 그리고 비서실장 한창호까지 넷을 모아놓고 상황보고를 받는 중이다. 이곳은 안쪽 벙커여서 상황실과 떨어져 있지만 넓고 조용하다. 벙커 밖 복도에는 각 군의 참모장과 기무사, 국정원 간부까지 모여 호출에 대비하고 있다. 합참의장 겸 계엄사령관 장세윤이 먼저 말했다.
“북한의 내란이 격화되고 전방 정규군까지 대거 투항해오자 남한 내부에서 종북세력의 선동이 급속히 줄어들었습니다.”
굳었던 장세윤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지고 있다.
“지금은 쥐새끼들이 몇 마리 남지 않았습니다.”
“투항병 관리는 잘됩니까?”
박성훈이 묻자 대답은 국방장관 임기태가 했다.
“예, 강원도와 경기도 5개 지역에 분산 수용할 예정입니다.”
서류를 내려다본 임기태가 말을 잇는다.
“17시15분 현재까지 4개 지역에서 투항해온 인민군 숫자는 4752명이 되었습니다.”
마치 도미노가 넘어지는 것 같다. 17시05분에 전방 철원 근처에서 인민군 1개 대대 병력이 대대장까지 투항해오더니 곧 그 옆쪽 부대 3개가 잇달아 넘어온 것이다. 무리를 지어 넘어오는 바람에 아군은 남침해오는 줄 알고 하마터면 발포할 뻔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전방 각 부대에서 인원 파악 중이어서 아직 투항자를 숙소로 이동시키지도 못했다. 그때 연합사 부사령관 이성호가 보고했다.
“17시 현재까지 북한의 29개 지역에서 노농적위대, 교도사단 병사들의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지역은 황해남도와 황해북도, 강원도로 확산되는 중이고 평안남도에도 3곳에서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대량으로 쏘아 올리는 삐라와 휴대전화 영상통신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박성훈이 심호흡을 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다시 이성호가 말을 잇는다.
“감청단 보고에 의하면 김정일이 중국군 투입을 요청했지만 시진핑이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는 폭동 상태에서 반란군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진핑은 내란 수습이 먼저라고 했습니다.”
“…….”
“그리고 이번에는 김정일이 제12군단장 이기준 대장에게 반란군을 진압하라고 지시했는데 12군단은 아직 움직이지 않습니다. 병력이 연병장에 대기했다가 오히려 모두 막사로 들어가는 것을 위성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심호흡을 한 박성훈이 모두를 둘러보았다.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어서 우리는 그저 끌려가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러자 모두 눈만 끔벅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지난 후에 박성훈이 생각난 듯 물었다.
“참, 그 46용사는?”
그러자 장세윤이 대답했다.
“지금 재령 남쪽에서 휴식 중입니다.”
17시35분, 개전 6시간45분25초 경과.
8부 능선 맨 왼쪽 바위틈에 기대 앉아 있던 조한철이 몸을 뒤척여 두 다리를 길게 뻗고 누웠다. 8시간 만에 처음으로 갖는 휴식이다. 저녁까지 배부르게 먹은 후여서 나른한 식곤증이 몰려왔다. 그때 옆쪽에서 인기척이 들렸으므로 조한철이 눈을 떴다. 윤미옥이 다가오고 있다. 저물어가는 햇살을 등으로 받은 윤미옥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킨 조한철이 앞에 선 윤미옥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요?”
“저쪽으로 가요.”
윤미옥이 위쪽의 바위를 가리켰다. 가파르게 깎인 바위가 10m쯤 위에 박혀 있었는데 그쪽은 사각(死角)지역이다. 조한철의 시선을 받은 윤미옥이 그쪽으로 발을 떼며 재촉했다.
“어서요.”
몸을 일으킨 조한철이 윤미옥의 뒤를 따라 가파른 암산을 오른다. 30m쯤 오른쪽에 경계병이 둘 있었고 소대본부는 30m쯤 아래쪽에, 그리고 소대의 초소는 3개로 나뉘어 그 우측에 펼쳐져 있다. 윤미옥은 미리 자리를 봐둔 것 같다. 바위 옆쪽에 빈틈이 있었는데 삼각형으로 한 사람이 들어가 눕기에 넉넉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경계병이 조한철이 있었던 자리로 옮겨와야 보인다. 윤미옥이 먼저 바위틈 앞에 서더니 조한철을 보았다.
“나, 가져요.”
그러고는 군복 바지 혁대를 풀기 시작했으므로 조한철이 심호흡을 했다. 윤미옥이 앞에 선 순간부터 이렇게 될 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봐요, 윤 중위.”
그 순간 윤미옥이 바지와 팬티까지 한꺼번에 밑으로 내렸으므로 바로 눈앞에 검은 숲이 드러났다. 윤미옥이 바지에서 다리 한쪽만 군화째로 빼 내더니 이제는 군복 상의를 벗어 바위틈 안에다 깔았다. 허리를 굽힌 윤미옥의 흰 엉덩이와 하체를 바라보던 조한철이 저도 모르게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어느덧 두 눈도 번들거리고 있다. 그때 바위틈 안으로 들어간 윤미옥이 누우면서 말했다.
“어서요.”
조한철은 더 이상 입을 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어떻게 바지를 벗고 윤미옥의 몸 위에 엎드렸는지 모른다. 그때 윤미옥이 조한철의 남성을 손으로 쥐면서 말했다.
“천천히 해줘요.”
그러고는 남성을 샘 끝에 붙였다. 그 순간 조한철은 윤미옥의 말을 무시하고 맹렬하게 진입했다.
“아.”
짧고 굵은 신음이 윤미옥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조한철은 윤미옥의 샘이 이미 젖어 있는 것을 깨닫고는 더 서둘렀다.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윤미옥의 탄성은 더 커졌다. 두 손으로 조한철의 엉덩이를 움켜쥔 윤미옥이 헐떡이며 말했다.
“이번은 그냥 쏴요. 중위.”
그 말을 들은 순간 조한철은 발사했다.
“아앗.”
허리를 치켜 올린 윤미옥이 조한철의 남성을 빈틈없이 받으면서 절규했다. 그러고는 사지를 밀착시킨 채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샘 표면의 핏줄이 거칠게 뛰는 박동까지 전해지고 있다. 짧은 것 같기도 했고 긴 시간이 지난 것도 같았지만 만족한 섹스였다. 윤미옥도 만족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윽고 조한철이 몸을 떼었을 때 윤미옥이 헐떡이며 말했다.
“이제 받을 수 있어요.”
바위틈 밖으로 먼저 나온 조한철이 바지를 입으면서 물었다.
“뭘 말요?”
“당신 호의를.”
바지를 입으면서 윤미옥이 말을 잇는다.
“내가 줄 것이 있어서 기뻐요.”
그러더니 문득 조한철을 보며 물었다.
“좋았어요?”
17시45분, 개전 6시간55분25초 경과.
황해북도 신계의 12군단 군단 사령부, 군단 정치국장 최경운 중장이 정치참모인 대좌 두 명을 좌우에 거느리고 군단장실로 들어섰다. 노크도 안 하고 들어선 터라 책상에 앉아 있던 군단장 이기준과 참모장 우영술이 머리를 들고 그들을 보았다.
“군단장 동무, 지도자 동지의 명령이요.”
앞에 버티고 선 최경운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지금 즉시 전 부대를 출동시켜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이오!”
그때 참모장 우영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문 쪽으로 다가갔으므로 그쪽을 보던 최경운이 다시 이기준에게 말했다.
“군단장 동무, 경고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요!”
그때였다. 요란한 총성이 울리면서 최경운이 앞으로 엎어졌다. 놀란 두 대좌가 몸을 돌렸을 때 다시 두발의 총성이 울렸다.
“탕! 탕!”
바로 2m도 되지 않는 거리였으니 빗나갈 리가 없다. 머리를 관통당한 두 대좌가 쓰러졌을 때 우영술이 권총을 내리면서 말했다.
“군단장 동지, 이제 우리가 키를 쥐게 된 겁니다. 김정일과 김경식 사이에서 말입니다.”
제55호위대 벙커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 김정일이 주석궁 벙커 다음의 전시 최고사령부 벙커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지하 100m 깊이에 300명이 1년간 은신할 수 있도록 규모가 컸고 자체 방어 시설도 막강했다. 또한 주변에 김형기와 김경식을 추종하는 3개 기계화사단, 5개 교도사단, 포병단과 특수부대까지 배치해놓아서 제55벙커를 제압하려면 대규모 전쟁이 불가피했다. 그래서 개전 초기부터 김정일은 이곳을 회유, 또는 내부 전복을 기획했을 뿐 무력 점령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55를 매몰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가 김정일에게 말했다. 주석궁 지하 벙커 안은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김정일에게 모아졌다. 벽시계가 17시47분을 가리키고 있다. 전백준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래야 중국과의 협상도 용이해질 것입니다.”
그러자 김정일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선을 마주친 장군들은 모두 눈만 끔벅이거나 머리를 숙였지만 한 명만이 그대로 있다. 중장 계급장을 붙인 50대 후반쯤의 사내다.
“고철상 중장, 가겠는가?”
김정일이 낮게 묻자 중장은 부동자세로 섰다. 그러고는 잇사이로 대답한다.
“예, 가겠습니다.”
“가서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나?”
“예, 압니다. 지도자 동지.”
“그대는 공화국 인민들이 영웅으로 숭배할 것이네.”
“지도자 동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더니 중장은 한쪽 손을 번쩍 치켜들고 외쳤다.
“지도자 동지 만세! 공화국 만세!”
17시55분, 개전 7시간05분25초 경과.
상황실 벙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 층을 더 내려가면 지도자 개인 공간이 있다. 상황실에서 나온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가 가족용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둘 다 상황실에서 점심을 건성으로 때운 터라 닭백숙에 갈비 전골을 맛있게 먹는다. 백숙 국물을 삼킨 김정일이 머리를 들고 김정은을 보았다.
“이 난리통에 가장 여유 있는 자가 있고 가장 불안한 자가 있다. 그게 누구겠느냐?”
그러자 씹던 고기를 삼킨 김정은이 눈을 끔벅이다가 대답했다.
“여유 있는 자는 남조선군 아닙니까?”
김정일이 잠자코 백숙 국물을 떠먹었으므로 김정은이 말을 잇는다.
“그리고 불안한 자는 김경식 일당 아닙니까? 반란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러고는 김정은이 시선을 주었으므로 김정일이 희미하게 웃었다.
“여유 있는 자는 중국 정부다.”
젓가락으로 산삼 뿌리를 집어 입에 넣으면서 김정일은 말을 이었다.
“가장 불안한 자는 남조선의 우리 동지들이 되겠지. 지금도 잡혀가겠지만 잘못되면 가장 낮은 처벌이 추방쯤 될 테니까.”
김정일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쓴웃음을 지었다.
“내 주변의 이른바 기득권층도 불안하겠지만 남조선 동지들보다는 적응력이 뛰어나. 나만 없어지면 금방 변신할 테니까.”
“…….”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 거다.”
의자에 등을 붙인 김정일이 이제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조금 전에 55호위대로 보낸 고철상 중장의 충성심을 믿느냐?”
“예, 지도자 동지.”
“공화국과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거다.”
심호흡을 한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고철상의 처자식, 그리고 어머니까지 지금 이 벙커에 와 있으니까 말이다.”
정색한 김정일이 똑바로 김정은을 보았다.
“이것이 현실이고 내가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이 상황에 그대로 끌려만 갈 것 같으냐?”
김정은도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보고는 숨을 삼켰다. 오늘 처음 웃는 얼굴을 본 것 같다.
18시10분, 개전 7시간20분25초 경과.
산으로 둘러싸인 위치여서 7월이었지만 주위에는 그늘이 덮였다. 시계를 본 이동일이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자 곧 화면이 켜졌다. 그러자 송아현의 얼굴이 드러난다.
“아현아, 내 위치는 파악하고 있겠지?”
이동일이 불쑥 물었지만 송아현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아. 그리고 전갈이 있어.”
그러더니 화면이 바뀌면서 해병사령관 정용우의 얼굴이 드러났다. 저도 모르게 긴장한 이동일을 향해 정용우가 말한다.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곳에 잠복하고 있도록. 이제 네 역할은 그만하면 됐다.”
“예, 사령관님.”
이동일이 대답했지만 이미 정용우는 말을 다시 시작한 후다. 녹화된 필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너와 46용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오늘밤은 그곳에서 쉬도록.”
그러고는 화면이 꺼지더니 다시 송아현의 얼굴이 드러났다.
“들었지?”
해놓고 송아현이 눈웃음을 쳤다.
“잘 쉬어, 오빠.”
이동일은 길게 숨을 뱉는다. 오늘밤 제대로 쉴 한국인이 있을 것인가?
7장 인민해방군
그 즈음 12군단장 이기준도 김정일에게 반기를 들며 세를 규합한다.
김경식이 중국에 도움을 청하자 인민해방군은 북조선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북한 땅에 진주한다. 이동일 부대는 한국군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 이기준의 12군단을 찾아가는데….<편집자>
2014년 7월25일 금요일 19시00분, 개전 8시간10분25초 경과.
중부전선인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기슭에 위치한 한국군 제27사단 2연대 1대대 3중대 중대본부 벙커 안이다. 2연대는 DMZ 경비를 맡은 최전선 부대여서 개전 이후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봐, 어디 가는 거냐?”
본부 선임병 이연구 하사가 물었으므로 김대균 일병이 벙커 통로 앞에서 몸을 돌렸다.
“예, 담배 한 대….”
“빨랑 돌아와, 인마.”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터라 이연구가 내쏘듯 말했고 김대균은 밖으로 나왔다. 골짜기에 어둠이 덮여 있다. 이쪽 벙커는 7부 능선쯤이어서 앞쪽 DMZ 건너편의 북한령 산줄기가 가로막듯 펼쳐져 있다. 교통호를 따라 벙커에서 20m쯤 멀어진 김대균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켰다. 주위는 조용하다. 그러나 능선 위로 이어진 벙커는 모두 비상상태다. 저쪽에서 한 발이라도 사격을 해온다면 바로 전쟁이다. 발사지점이 초토화될 때까지 직사포와 미사일 공격을 할 것이다. 전원이 켜졌으므로 김대균은 곧장 단축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나서 바로 통화 연결이 되었다.
“대균이냐?”
아버지 김용배다. 김용배의 목소리를 들은 김대균이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묻는다.
“아빠, 진짜 전쟁 나는 거야?”
“너, 어디냐?”
김용배의 목소리도 다급해졌다. 서로 묻는 바람에 이야기가 엇갈렸지만 김용배가 더 빠르다.
“거긴 괜찮냐?”
“응, 아직.”
김대균은 목이 메어서 한 박자 늦었다.
“아빠, 어떻게 되는 거야?”
“전면전은 안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아빠, 나, 빼줄 수 없어?”
“그, 그것이.”
“시발, 겁나 죽겠단 말야.”
“너, 지금도 벙커에 있어?”
“그렇다니까? 행정병도 다 벙커에 몰아넣었단 말야.”
쏟아지듯 김대균의 말이 이어졌다.
“이러다 죽으면 나만 손해 아냐? 아빠 친구들 높은 사람 많잖아? 나 좀 빼줘… 응?”
“대균아, 쫌만 기다려, 아빠가….”
그때 옆쪽에서 인기척이 났으므로 김대균은 서둘러 휴대전화의 전원을 껐다.
그 시간에 제55호위대 벙커 안에서 김경식 대장이 대좌 계급장을 붙인 부하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고철상 중장을 통과시켰습니다.”
김경식이 머리만 끄덕였을 때 안쪽 자리에 앉아있던 무력부장 성종구가 물었다.
“지도자 동지의 지시를 받고 온 거라고?”
“그렇습니다.”
대좌가 김경식의 눈치를 살피고 나서 말을 잇는다.
“혼자 왔습니다.”
상황실 안은 잠깐 정적에 덮였다. 지도자가 특사를 보낸 것이다. 고철상은 호위총국 소속으로 주석궁 경호 책임자여서 군부 실세다. 그때 심철 상장이 김경식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4군단을 시켜 옆구리를 눌러놓고 또 어떤 수단을 부릴 것 같습니까?”
낮게 말했지만 주변 장군들은 다 들었다. 김경식이 입술만 비틀고 웃었다. 심철은 맨 처음에 도발한 총참모장 김형기를 체포했지만 곧 김정일의 대리인 자격으로 파견된 호위총국 사령관 강창남 대장이 김경식에게 억류되자 재빠르게 다시 변신했다. 김경식의 측근이 된 것이다. 그때 벙커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서 장군 한 명을 앞세우고 소좌 두 명이 들어섰다. 앞장선 장군이 바로 고철상 중장이다. 방 안의 시선이 차갑게 쏟아지는데도 어깨를 편 고철상은 당당하게 걷는다. 바로 안쪽의 김경식을 찾아내고는 거침없이 다가와 두 발짝쯤 앞에서 멈춰 섰다. 김경식의 비스듬한 옆쪽에 무력부장 성종구와 심철 상장 등 고위층이 있는데도 눈길 한번 옮기지 않는다. 부동자세로 선 고철상은 경례는 물론 인사도 하지 않았다. 대신 턱을 번쩍 치켜들면서 말했다.
“사령관 동지께만 전하라는 지도자 동지의 명령입니다.”
“그런가?”
고철상의 시선을 똑바로 받으면서 김경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하지만 이 상황실 안의 모든 동무는 나와 생사를 같이할 전우들이야. 지도자 동지의 명령도 함께 듣겠다.”
그 순간 고철상의 안색이 희게 변했다. 그러나 김경식의 시선을 2초쯤 더 받고나서 입을 열었다.
“이 시점에서 지도자 동지의 명령에 따른다면 과오를 묻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김경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이 나한테만 전하라는 명령인가?”
“그렇습니다.”
“내 동지들의 운명은?”
그때 고철상이 반걸음쯤 앞으로 다가서더니 웅얼거렸다.
“뭐라고 했나?”
김경식이 묻자 고철상은 다시 반걸음쯤 다가가 우물거렸다. 이맛살을 찌푸린 김경식이 머리를 조금 비튼 순간이다.
“탕!”
요란한 총성이 벙커 안을 울리면서 고철상이 번쩍 상체를 세우는 것 같았다.
“탕!”
다시 총성이 울린 순간이다. 갑자기 옆에서 덮쳐온 군관이 김경식을 깔아뭉개듯이 넘어뜨렸다.
“꽈앙!”
그 순간 벙커가 무너질 것 같은 폭음이 울리더니 김경식은 강한 냄새를 맡는다. 화약 냄새다. 고철상은 인간 폭탄이었던 것이다.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가 김정일 앞으로 다가가 섰다. 얼굴이 굳어 있다.
“지도자 동지. 12군단의 3개 사단과 3개 교도사단, 2개 기갑연대, 2개 포병여단이 이기준에게 붙었습니다.”
상황실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덮여 있다. 김정일은 전백준에게 시선을 준 채 앉아 있었는데 숨도 안 쉬는 것 같다. 전백준이 말을 이었다.
“나머지 1개 사단과 2개 교도사단하고 통신은 되었지만 이쪽 명령을 들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기준이 배신한 것을 안 것은 10분쯤 되었다. 군단사령부에서 겨우 살아남은 정치참모 하나가 실상을 보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쪽은 서둘러 예하 부대를 포섭했지만 역부족이다. 12군단 산하의 정예부대 대부분은 이기준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정치참모들을 처형하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한동안 방 안에 정적이 흐른 후에 김정일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놈을 김경식이 견제 세력으로 놔두면 되겠다.”
낮게 말한 김정일이 머리를 돌려 옆에 선 김정은을 보았다.
“김경식이하고 사이에 또 전연 지대가 생긴 것 같군.”
김정은이 눈만 껌벅이고 있는 것은 웃어줘야 할지 말지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던 2군단 오른쪽의 제5군단이 조금 전에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전연지대의 4개 군단은 김정일과 김경식이 각각 2개 군단씩 장악하게 되었다. 서부지역부터 배치된 4, 2, 5, 1 군단은 김정일의 4, 5군단. 김경식의 2, 1군단이 된 것이다. 거기에다 4군단과 2군단 사이의 북방에 배치된 12군단이 독자 세력으로 등장했으니 북한은 3개 군벌로 나뉘었다. 지금 수십 군데에서 터지는 노농적위대, 교도사단의 반란은 별도다. 그때 소장 계급장을 붙인 호위대 소속 측근 경호 장군이 서둘러 김정일에게 다가왔다. 손에는 한국제 휴대전화가 쥐어져 있다. 다가선 장군이 김정일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지도자 동지. 김경식 대장입니다.”
그 순간 상황실 안이 이번에는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역적, 배신자, 반란군의 괴수 김경식이 감히 지도자 동지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김정일이 잠자코 휴대전화를 받아 쥐었다. 얼굴에는 엷게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휴대전화를 귀에 붙인 김정일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그래, 동무. 무슨 일인가?”
김정일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그때 김경식이 말했다.
“동무, 고철상이를 보내 날 폭사시키려고 하셨던데, 유감이오. 내가 살아서.”
“그런가?”
쓴웃음을 지은 김정일이 묻는다.
“그래, 몸은 무사한가?”
“동무보다 낫소.”
“김경식이, 너는 이 싸움에서 절대로 승자가 될 수 없다.”
김정일이 웃음 띤 얼굴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너도 알 것이다. 내가 너보다 둘 수가 많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나보다 더 많이 잃게 될 것이오.”
수화기에서 울리는 김경식의 목소리도 단호했다. 김경식의 말이 이어졌다.
“김형기는 미사일을 동무한테 발사한 거라고. 이건 남조선과의 전쟁이 아냐.”
그러고는 통화가 끊겼으므로 김정일이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었다.
“남조선에서 다 들었겠군.”
쓴웃음을 지은 김정일이 휴대전화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김경식이 일부러 들으라고 했겠지만 말야.”
그러나 통화 내용을 모르는 터라 아무도 말을 받지 않는다.
“김용배씨 맞죠?”
하면서 다가선 사내는 30대 중반의 젊은 사내다. 후줄근한 양복 차림에 머리가 짧아서 운동선수 같기도 했다.
“네, 그런데.”
조금 짜증이 난 김용배가 눈을 치켜떴다. 오후 7시 반. 전시여서 등화관제 상태였으므로 문광부 청사는 창문을 검은 천으로 막아놓았고 사무실에는 대기 상태의 직원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그때 사내 뒤로 또래처럼 보이는 두 사내가 서둘러 다가왔으므로 김용배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사내들은 군인인 것 같다. 무슨 일인가? 김용배의 시선을 받은 사내가 말했다.
“저, 계엄사령부 소속입니다. 같이 가십시다.”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이제 김용배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문광부 국장이면 같은 공무원이다. 군인 계급으로 따지면 장군은 못되어도 대령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건방진 놈 같으니. 그때 눈을 치켜뜬 사내가 다가섰다. 이미 주위는 조용해졌고 사무실에 남은 직원들의 시선도 모두 이쪽으로 모여 있다. 사내가 잇사이로 말했다.
“당신은 전시 계엄법을 위반했어. 전선에 있는 아들과 통신을 했어. 자, 일어나.”
“아, 잠, 잠깐.”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굳어진 김용배가 손을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균이는 어떻게 됩니까? 내 아들요.”
“그건 군법으로 처리되겠지.”
뒤쪽에 선 사내가 뱉듯이 말을 잇는다.
“아마 현장에서 총살당했을지도 모르겠군. 자, 갑시다.”
“아이구.”
김용배의 입에서 저절로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19시45분, 개전 8시간55분25초 경과.
재령 남서쪽 야산의 8부 능선. 이미 주위는 짙은 어둠에 묻혀 있다. 이동일이 둘러앉은 10여 명의 분대장급 이상의 간부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중에는 노농적위대 출신인 오규성과 네 명의 일행이 포함되어 있다. 이동일이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이동일은 작전참모 최재창과 통화를 한 것이다.
“적이 우리 위치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한다. 은파와 안악 쪽에서 각각 1개 부대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거야.”
급박한 내용이었지만 이동일의 말투는 느린데다 소리도 낮아서 옆쪽에 쪼그리고 앉은 황찬우 중위는 지금 야간 훈련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트럭 7, 8대씩이라니까 아마 1개 중대 병력쯤 될 거야. 20분쯤 걸릴 것 같다더군.”
“어느 쪽으로 갑니까?”
불쑥 조한철이 묻자 이동일이 머리를 들고 아래쪽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불빛이 없는 것이다.
“사리원 쪽으로.”
그러더니 머리를 들고 누구를 찾는 시늉을 하다가 끝쪽의 오규성을 향해 시선이 멈춰졌다.
“오 선생이 선두에 서주실랍니까?”
이동일이 묻자 오규성이 바로 대답했다.
“그러지요, 대장 동지.”
그러더니 덧붙였다.
“우리 노농적위대가 앞장서겠습니다.”
“놈들의 탐지 수단도 보통이 아냐.”
이동일이 회의를 하는 그 시간에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작전참모 최재창에게 말했다. 둘은 지금 오산 한미연합사 벙커 안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다. 서둘러 스테이크를 자르면서 정용우가 말을 잇는다.
“통신을 차단시켰으니까 당분간 위성으로 이동일을 살피는 수밖에 없구나.”
“어쨌든 12군단이 중립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김정일과 김경식 사이에 완충지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최재창이 말을 잇는다.
“전쟁이 탕, 터지니까 북한 군부가 사분오열되는군요. 덕분에 우리하고의 전면전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김정일도 예상하고 있었을 거야.”
씹던 것을 삼킨 정용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전면전이 일어나면 망한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어. 수십 년 전부터 말야.”
“그럼 전쟁할 거냐고 협박을 해대던 친북 반역자들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다 알면서 국민을 갖고 논 거죠.”
“지금 가장 불안한 놈들이 그놈들이다.”
포크를 내려놓은 정용우가 정색하고 최재창을 보았다.
“합참의장이 기무사령관, 국정원장하고 지금 12군단장 이기준을 포섭하려고 저녁밥도 못 먹고 끙끙대고 있어. 그것만 잘되면 북한은 망한다.”
물잔을 쥔 정용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감청단은 김정일과 김경식의 통화를 도청, 녹음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군 12군단장 이기준 대장이 김정일의 지시를 어기고 중립으로 돌아선 것까지 알아낸 것이다. 물잔을 내려놓은 정용우가 일어섰으므로 스테이크를 썰던 최재창도 칼과 포크를 놓고 따라 일어서야 했다. 정용우가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이젠 웰빙 족속들이 문제가 되는군.”
계엄상황이 지속되자 긴장상태가 슬슬 느슨해지면서 특히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엄통신법 위반으로 현장에서 체포된 부모, 사병이 현재까지 400여 명이나 되는 것이다. 발을 떼면서 정용우가 잇사이로 말했다.
“그런 족속들은 국민 자격이 없어. 법으로 보호해줄 필요가 없는 무리야.”
이화원 근처에 위치한 시진핑의 안가(安家)에서는 곤명호가 내려다보인다. 한국과는 한 시간 시차가 나는 터라 이곳 시간은 오후 7시10분.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8시10분이며 개전 9시간20분25초 후다.
“주석 동지, 이젠 급하게 되었습니다.”
베란다의 원탁에 둘러앉은 세 인물 중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백발의 사내가 말했다. 국방위 부주석이며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인 진양이다. 70대 초반인 진양이 말을 잇는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전연지대 한 곳이 뚫릴 것이고 북한군의 대량 투항이 시작됩니다. 그럼 남조선군이 자연스럽게 북진할 계기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럴까요?”
머리를 기울인 시진핑이 진양에게 물었다.
“김정일씨나 김경식이 그 경우에는 같이 힘을 합쳐 남조선군을 대적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진양이 머리를 저었다.
“중립으로 돌아선 12군단이 남조선군과 제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정일과 김경식은 남조선보다 상대방을 더 증오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그러자 시진핑이 심호흡을 했다. 김정일이 김경식에게 자폭 결사대를 보내 폭사시키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든 시진핑이 옆쪽에 앉은 50대쯤의 사내를 보았다. 단정한 용모의 사내가 시선을 받더니 긴장했다.
“대사의 생각은 어떻소?”
평양주재 중국대사 펑훙위다. 상반신을 편 펑훙위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중조국경에 배치된 조선군 8, 9, 10, 11 4개 군단은 김경식에게 충성을 맹세한 군단입니다. 김경식은 중국군에 길을 터주기 전에 중국이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평양방위사령부와 호위총사령부, 후방에서도 남포직할시에 주둔한 3군단과 함흥에 주둔한 7군단은 김정일이 장악하고 있다. 김경식을 인정한다면 김정일은 아예 중국군과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그때 진양이 나섰다.
“두 놈 다 그렇게 여유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중국군이 그냥 밀고 내려가도 북한군은 가로막지 못해요. 우린 지금 바로 북조선으로 남하해야 됩니다.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란 말이오.”
진양이 상기된 얼굴로 시진핑과 펑훙위를 노려보았다.
“평양 북방에 해방군 3개 집단군을 배치하고 김정일과 김경식을 중재하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고, 북조선은….”
말을 멈춘 진양이 시진핑을 보았다. 그 뒷말은 이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북조선은 조선성(朝鮮省)이 된다. 한나라 시대부터 영토였던 조선 땅이 이제야 정식으로 중국령에 편입되는 것이다. 그러자 시진핑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평양 대사 펑훙위를 보았다. 펑훙위는 특별기편으로 평양을 떠나 베이징에 도착했다.
“지금 김경식의 벙커에 우리 연락원이 있소?”
“예, 그렇습니다.”
긴장한 펑훙위가 시진핑을 보았다. 대사관 무관 황방산을 말한다. 시진핑이 말을 이었다.
“즉시 그에게 연락을 하시오. 그리고….”
시진핑이 머리를 돌려 진양을 보았다.
“김정일씨한테도 연락을 하세요. 우리가 내려간다고.”
“늦었지요.”
만족한 표정이 된 진양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한다.
“한미연합사가 가동되었을 때 우리 인민해방군도 북조선 땅으로 진주했어야 맞습니다.”
국도에서 100m쯤 간격을 두고 나아가는 중이어서 도랑을 만나기도 했고 작은 언덕을 넘을 때도 있었다. 자연히 행군 속도는 느려져서 30분 동안 2㎞ 정도밖에 나아가지 못했다.
“아, 저기.”
이동일이 다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을 때였다. 앞에서 걷던 김선우 병장이 낮게 소리쳤으므로 이동일은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국도 위쪽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자동차 전조등이다. 이동일이 걸음을 멈췄으므로 곧 일렬횡대로 나아가던 앞뒤쪽 대열이 모두 멈춰섰다. 불빛이 가까워지면서 그것이 여러 개로 나뉘었다.
“차량 대열입니다.”
옆으로 다가온 황찬우가 낮게 말했다. 밤이 되면서 북한 땅은 이동일을 포함한 해병대원들에게 전혀 낯선 대지가 되었다. 도로는 물론이고 산야가 칠흑 같은 어둠에 덮여 마치 외진 공동묘지 같은 분위기가 된 것이다. 전시라고 하지만 도로에는 차량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고 통행인도 없다. 가끔 마을을 지났지만 어둠 속에 지붕 윤곽만 보이는 것이 묘지 같았던 것이다.
“우릴 잡으려는 추적대 아닐까요?”
황찬우가 물었을 때 차량 대열이 가까워졌다. 엔진음과 함께 윤곽도 드러났다. 모두 8대. 국도와는 70m쯤 떨어져 있는데다 짙은 어둠 속이어서 발각될 우려는 작다. 이동일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마지막 통화를 했던 곳으로 가는 것 같다.”
휴대전화 통신이 감청에 걸렸을 것이다. 이동일이 발을 떼면서 지시했다.
“전진.”
그 순간 이동일의 눈앞에 송아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젠 통신이 중단되었으니 아현은 집에 돌아갔을까? 알 수가 없다.
이동일로부터 50m쯤 떨어진 후위를 맡은 조한철 중위는 발을 떼다가 문득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2m쯤 뒤에서 따르던 윤미옥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둠 속이어서 눈의 흰자위와 검은 눈동자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피곤하지 않아요?”
걸음을 늦춰서 한 발짝 간격으로 좁혀진 윤미옥에게 조한철이 물었다.
“아뇨.”
짧게 대답한 윤미옥이 시선을 돌렸으므로 조한철은 머리를 세우고는 발을 떼었다. 해병과 노농적위대 혼합군 51명은 묵묵히 국도 아래쪽 개울가를 따라 전진하고 있다. 그때 조한철 앞쪽 누군가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놈의 데는 개짓는 소리도 안 들려.”
그러고 보니 개 짖는 소리는 물론이고 새소리도 들은 적이 없다.
“다 잡아먹었나보다.”
누군가 그 말을 받았을 때 다시 대열이 주춤거리며 멈춰섰다.
“전달, 앞으로 장교들 집합.”
낮게 전달이 전해져 왔으므로 조한철이 윤미옥을 보았다.
“갑시다.”
트럭 대열이 지난 지 10분쯤은 되었을 것이다. 조한철과 윤미옥이 다가갔을 때는 이동일, 황찬우와 노농적위대 지휘자가 된 오규성까지 셋이 모여 있었다. 개울이라지만 물이 말라서 드문드문 물만 고인 자갈밭이다. 바위 옆에 다섯이 둘러앉았을 때 이동일이 말했다.
“재령을 좌로 끼고 직진해서 동진(東進)한다.”
이동일이 손을 들어 왼쪽을 가리켰지만 짙은 어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오규성이 이동일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이 재령이요. 직진해서 1㎞만 가면 재령 교외의 검문소가 나옵니다.”
이미 이동일과 말을 맞춘 듯 오규성의 말이 이어졌다.
“이쪽으로 가면 자갈밭과 습지가 이어집니다. 이 속도로 세 시간쯤만 걸으면 은파를 지나 봉산 아래쪽 미박천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그곳에 뭐가 있습니까?”
머리를 든 조한철이 이동일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동일이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했다.
“황해북도 봉산에 12군단 사령부가 있어.”
그 순간 놀란 모두가 숨을 삼켰지만 오규성만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한다. 오규성은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동일이 목소리를 낮췄다.
“휴대전화 전원을 켰더니 그렇게만 메시지가 찍혀 있었다.”
21시05분, 개전 10시간15분25초 경과. 오산 한미연합사 전시사령부 벙커 안.
“2개 집단군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벽에 붙은 화면에는 길을 가득 메운 차량 대열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밤이지만 위성의 적외선 촬영으로 전송된 화면은 선명하다. 차량 대열이 철저하게 등화관제를 했어도 모든 물체가 드러났다. 단지 푸른색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의주와 만포, 그리고 혜산을 통해서 진입해올 것이고 연길 위쪽의 제16집단군은 두만강을 넘어 남하할 것입니다.”
지휘봉을 겨드랑이에 낀 채 설명하는 장군은 연합사 참모장인 해리슨 중장이다. 해리슨이 화면에 등을 대고 서서 말을 잇는다.
“이 속도라면 지금 남하하는 제16군, 39군은 내일 오후 3시까지 북한령 진입을 완료할 것이고 제40집단군의 이동도 내일 오후 7시면 끝납니다.”
영어였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군 지휘관은 없다. 말을 그쳤을 때 넓은 상황실 안에선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제 전황(戰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인민해방군 집단군은 편제상 5개 사단으로 구성되었고 각각 1개의 기갑사단과 전차사단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3개 보병사단은 1개 포병연대와 1개 기갑연대, 2개 보병연대로 구성되어서 전력이 막강하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차량으로 이동해오는 것이다. 3개 집단군이면 15개 사단이다. 북한군 정예는 전연지대라 불리는 휴전선에 배치된 4, 2, 5, 1군이며 조중 국경지대의 8, 10, 11, 9군의 장비는 노후되었고 기동력도 형편없다. 만일 가로막는다면 단숨에 무너질 것이었다. 그때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우드워드를 바라보았다.
“나, 대통령께 보고하러 가겠소.”
장세윤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을 때 우드워드도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대답했다.
“나도 대통령이 있어!”
“무엇이?”
놀란 김정일이 눈을 크게 떴지만 목소리는 낮다. 상황실 안의 모든 시선이 모아졌고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김정일의 시선을 받은 대좌가 말을 잇는다.
“공정대가 8군단지역 삭주군 청수 근처의 압록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중국대사를 연결해!”
김정일이 소리치자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펑훙위는 베이징으로 떠났습니다.”
“그럼 시진핑을 바꿔!”
“예, 지도자 동지.”
하고 윤국순이 돌아섰을 때 김정일이 다시 대좌에게 묻는다.
“그럼 몇 개 지역에서 넘어오고 있는 거냐?”
“의주에는 선발대로 1개 대대급 병력이 넘어왔고 그 위쪽으로 두 군데. 거기에다 청수까지 모두 네 곳입니다.”
그때 김정일 앞으로 서둘러 군관 하나가 다가와 보고했다.
“10군단 지역의 초산 근처에서 중국군 기갑부대가 압록강을 건너오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눈치를 살핀 군관이 말을 잇는다.
“아군 지휘관에게 조중 군사동맹 조약에 따라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의주에서 다리를 건너 넘어온 선발 기갑부대 지휘관도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아군은 두말 못하고 비켜섰다. 그때 윤국순이 다시 옆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더 굳어져 있다.
“지도자 동지. 지금 회의 중이시랍니다.”
김정일이 어금니를 물었고 윤국순의 말이 이어졌다.
“회의 끝나는 대로 연결시켜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김정일이 통화 요청을 했을 때는 언제든지 시진핑이 받아주었다. 한 번도 무슨 핑계를 댄 적이 없는 것이다.
거의 같은 시간에 제55호위대 벙커에서도 중국군의 도강(渡江)이 보고되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어, 이제야 오는군.”
부하의 보고를 받은 김경식 대장이 얼굴을 펴고 웃었고 옆에 선 심철 상장도 따라 웃는다.
“좋아. 그럼 황방산을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이제 같이 있는 것이 낫겠다.”
김경식이 부관에게 지시하고는 몸을 돌려 상황실 안의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더 이상 김씨 부자의 종노릇은 안 하게 될 거요. 그리고 남조선에 흡수통일도 되지 않을 것이고.”
어깨를 편 김경식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중국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공산주의 정권이 탄생하는 것이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김씨 3대 세습은 이것으로 끝난 겁니다.”
그때 상황실 안으로 들어선 부관이 김경식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사령관 동지. 황방산은 한 시간쯤 전에 대사관에 일이 있다면서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
퍼뜩 눈을 치켜떴던 김경식이 곧 머리를 끄덕였다. 황방산에게 종용했던 중국 인민해방군 진입이 시작되고 있는 터라 얼굴의 웃음기는 지워지지 않았다.
“알았어. 국경지대 지휘관에게 연락해서 중국군 도강을 협조해주도록 지시하라.”
김경식이 지시하자 상황실은 활기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김경식에게 무력부장 성종구가 묻는다.
“중국 측과 어느 선까지 합의를 했소?”
그러자 심철은 물론이고 지휘관급 장성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모두 김경식의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김경식의 지휘권을 단단하게 굳힌 원인이기도 했다. 시선을 받은 김경식이 쓴웃음을 지었다.
“개방이요.”
한마디로 말했던 김경식이 그 반응을 보겠다는 듯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입을 다문 채 얼굴만 굳히고 있었으므로 김경식이 말을 잇는다.
“중국식 개방. 우리도 중국처럼 잘살 수가 있는 겁니다. 다만 김씨만 없어지면 말입니다.”
그러자 한동안 김경식을 바라보던 성종구가 두 손을 들더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주위 장군들이 따랐고 곧 벙커 안은 박수 소리로 뒤덮였다.
21시20분, 개전 10시간30분25초 경과.
모니터 정면에 앉은 대통령 박성훈이 심호흡을 했다. 앞쪽 벽에 걸린 오바마의 사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므로 얼굴에 저절로 쓴웃음이 번졌다. 지금 오바마와 통화를 하려는 것이다. 그때 모니터 화면이 켜지면서 오바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피로한 얼굴이다. 워싱턴 시간은 오전 7시 반쯤 되었다. 둘은 통역을 제쳐두고 직접 통화를 한다. 박성훈이 목례를 하고나서 바로 본론을 꺼냈다.
“대통령 각하. 보고는 받으셨겠지만 중국군이 북한 영토에 진입했습니다. 동맹관계를 내세우겠지만 이것은 한반도에 대한 침략 행위나 같습니다.”
한마디씩 박성훈이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그리고 북한 지도자인 김정일씨의 요청도 없는 상태에서 진입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박성훈이 말을 이으려다 말았다. 오바마도 연합사령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오바마가 물었다.
“김정일씨하고 그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습니까?”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자 오바마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중국군은 김경식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경식을 도우려는 건 아닙니다.”
그것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박성훈은 시선만 주었다. 중국의 목표는 북한 땅을 조선성(朝鮮省)으로 귀속하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은 결국 조선성으로 마무리된다.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현재로서는 중국군 진입을 저지할 우리 측 명분이 약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동맹처럼 저들도 동맹관계를 내세우고 있으니까요.”
설령 국가 지도자인 김정일이 반대를 한다고 해도 그렇다. 북조선이 점령되면 중국 동북방이 위협을 받게 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더구나 국가 간 군사동맹까지 체결된 상황이다. 그때 박성훈이 잇사이로 말했다. 눈까지 치켜뜨고 있다.
“중국놈들은 64년 전인 6·25전쟁 때도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했지요. 그때 상황과 비슷합니다.”
오바마는 눈만 껌벅였고 박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도 우리가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을 때 중국군이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밀려 내려와 이 상태가 된 겁니다.”
그러나 흥분한 박성훈과는 달리 오바마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것을 본 박성훈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중국이 훼방을 놓는다는 것만 빼놓고 나머지는 다 다르다.
“초소 경비병은 7, 8명 정도가 됩니다.”
다가온 오규성이 가쁜 숨을 고르면서 말을 잇는다.
“초소를 피하려면 강을 건너 돌아가든지 국도 쪽으로 가야 됩니다.”
둘 다 어렵다. 수심을 알 수 없는 강은 제법 넓었고 강을 건너다가 발각되면 몰사당할 것이다. 그리고 국도로 올라가면 금방 노출된다. 밤인데다 국도가 비었다고 전시에 감시병도 두지 않겠는가? 더욱이 통신 감청으로 이쪽 위치까지 찾아내어 추적대를 보낸 상황인 것이다. 추적대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이동일이 시선을 돌려 오른쪽의 강과 왼쪽의 국도를 바라보았다. 주위에 쪼그리고 앉은 부하들의 표정은 덤덤하다. 이곳은 황해북도 은파 동남쪽의 작은 야산 기슭이다. 이윽고 이동일이 말했다.
“초소를 부수고 가는 수밖에 없다.”
“제가 맡지요.”
1소대장 황찬우가 말했으므로 이동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정면을 맡고 1소대는 국도 쪽으로 돌아서 우측과 뒤쪽을 맡아라. 그리고 3소대는.”
머리를 돌린 이동일이 조한철을 보았다.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노농적위대 5명을 제외한 46명의 해병 중 부상자가 넷이다. 모두 경상이었지만 행군에 지쳐가고 있어서 이동일은 부상자를 예비대인 3소대에 편입시켰다. 그때 오규성이 말했다.
“대장, 우리는 뭘 합니까?”
그러자 이동일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적위대는 쉬시지요.”
노농적위대 대장 격인 오규성은 61세의 노인이었고 나머지 넷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중년인 것이다. 그러자 오규성이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내가 힘은 달리지만 총질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계엄사령부 소속 3국장은 민간인 사찰 담당이다. 그래서 휘하에 국정원, 경찰, 검찰, 기무사 등 모든 정보기관을 동원해 보안법 위반자로부터 통신, 광고, 언론을 통한 반국가 세력의 소탕을 맡고 있다. 그 3국장인 오달순 육군 소장이 오산의 연합사 지휘벙커에 들어온 것은 대통령 박성훈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보고를 마친 오달순이 벙커 통로로 나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육본작참부장 박진상이 다가왔다.
“나 좀 보자.”
“너 볼일 없는데.”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오달순이 걸음을 멈췄다. 둘은 육사 동기로 30년간 경쟁자 관계다. 그러나 박진상이 중장 진급한 지 2년 되었지만 오달순은 석 달 전에야 겨우 소장을 붙였다. 그것도 계급 정년이 있는 감찰관 겸 헌병사령관이다. 그 직책은 소장으로 끝나는 것이다.
“앗따. 높은 자리 있을 때 좀 봐주라.”
하면서 박진상이 오달순의 팔을 끌고는 옆쪽 벙커의 철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은 한미연합사 전시사령부였던 것이다. 사방이 시멘트벽으로 막혀 있었지만 배구장 두 개를 합친 것만큼 규모가 컸고 오가는 인간들은 모두 장군이다. 전군 지휘관 회의 때 모인 별들보다 많은 것 같다. 박진상이 데려간 곳은 구석 장방형 테이블 앞이다. 그곳에는 7, 8명이 앉아 있었는데 합참의장 장세윤, 육참총장 조현호 외에 해병사령관 정용우의 얼굴까지 보였다.
“거기 앉아.”
오달순의 경례를 받은 장세윤이 눈으로 앞쪽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몇 가지 물을 것이 있어서 불렀어.”
“예. 사령관님.”
자리에 앉은 오달순에게 장세윤이 물었다.
“어때? 시중에 중국군의 북한 진입 소문은 퍼져 있겠지?”
“예, 사령관님.”
정색한 오달순이 예상했다는 듯이 바로 말을 잇는다.
“지금은 트위터, 문자 메시지로 다 퍼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좌익들이 퍼뜨렸겠지.”
“중국군 진입으로 놈들의 사기가 충천한 상태입니다.”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발신자를 체포하고 있지만 송출을 금지하지 않는 한 완전 통제는 불가능합니다.”
막으면 더 기술적인 수단으로 뚫고 나오는 것이다. 아예 중계소 전원을 차단해 송출을 금지한다면 가능하다. 장세윤이 입맛을 다셨다. 개전 초부터 반역세력의 선동과 준동은 무선통신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어깨를 늘어뜨린 오달순이 말을 이었다.
“대통령께선 무선통신 금지를 지시하셨습니다.”
마침내 올 것이 온 것이다. 이로써 통신 세계는 갑자기 3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문명의 30년 후퇴나 같다. 그러나 군과 정부기관의 통신은 제외된다.
“잘됐군. 그럼 이젠 종북세력 소탕만 남았구먼.”
육참총장 조현호가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오달순은 대답하지 않았다. 종북세력 소탕도 만만하지 않은 것이다. 군사정권 이후로 15년간 사회 곳곳에 깊숙이 박힌 종북, 친북 세력은 그동안 한번도 대대적인 소탕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남북한의 전쟁상태가 되자 다급해진 것이다. 포용정책으로 한때 더불어 가자는 정책을 폈다가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뒤통수를 맞았으며 핵 공갈은 더욱 심해졌다. 따라서 15년간 약에 면역력이 생긴 기생충처럼 종북세력은 사회 깊숙이 박혀 끊임없이 저항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시발, 전화위복이다.”
조현호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다 들린다. 눈을 치켜뜬 조현호가 말을 이었다.
“중국놈들 때문에 다시 남북이 합쳐지지 못하더라도 남쪽에 박힌 빨갱이 새끼들은 이 기회에 다 쥑인다.”
그들의 반대쪽 구석에서는 해병 작전참모 최재창 대령이 연합사 장교들과 함께 위성이 비춰주는 북한 땅을 살펴 보는 중이었다. 조금 전까지 46용사와는 30여 분간 공백이 있었으므로 최재창은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 북한지역은 3개 위성이 훑고 있는데 46용사만을 추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스치는 위성을 잠깐씩 각도를 조절해 찾아내고 있다.
“아, 저기.”
하고 먼저 찾아낸 것은 역시 위성 영상 점검에 익숙한 미군 장교였다. 소령 계급장을 붙인 흑인 장교가 각도를 맞추더니 화면을 확대했다. 그 순간 최재창은 반짝이는 붉은 섬광을 보았다. 10여 줄기나 된다. 푸른 화면에서 반짝이는 붉은 섬광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전투 중이야!”
소령이 소리쳤으므로 주변의 시선이 모였다. 불꽃이 반짝일 때부터 알고 있었으므로 눈을 치켜뜬 최재창은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이 최대한 확대되면서 사람 형상이 담배 필터 크기만해졌다. 그러나 누군지 분간되지 않는다.
“초소를 공격하는군.”
누군가 소리치듯 말했고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제압했어. 상대방 불꽃은 보이지 않아.”
그렇다. 이동일은 초소를 기습해서 제압했다. 그러나 누가 이동일인지는 분간되지 않았다.
“그냥 통과한다!”
몸을 세운 이동일이 소리쳤다.
“어물거리지 마라! 전진!”
그러고는 앞장서 부서진 시멘트 건물을 지났다. 시멘트 건물과 기관총이 거치된 참호 2군데, 그리고 창고 건물 하나인 경비 초소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적 사살 9명. 이쪽은 부상자도 없다. 다시 일렬횡대로 늘어선 대열은 빠른 속도로 동진한다.
“12군단 소속의 제82경비대 소속 병력입니다.”
옆으로 따라붙은 오규성이 이동일에게 말을 잇는다.
“경비대로 이곳저곳 분산 경계를 맡겨 파견하지만 군량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서 자급자족을 합니다.”
“…….”
“식량이 떨어지면 벌이를 나가거나 농사를 짓기도 하고 약탈을 하는 놈도 있지요. 후방 군단은 다 그렇습니다.”
그때 이동일이 오규성에게 묻는다.
“봉산 시내에 들어가보신 적 있습니까?”
“없는데요.”
머리를 기울였던 오규성이 바짝 붙어 걸으면서 묻는다.
“봉산 시내로 들어가시려고요? 거긴 12군단 사령부가 있어서 위험합니다.”
“…….”
“거긴 작은 도시라 전체가 군부대나 같습니다.”
“저 초소가 공격받았다는 것이 군단 사령부에도 알려지겠지요?”
“물론이지요.”
어둠 속에서 오규성이 눈을 크게 떴기 때문에 흰자위가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머리를 끄덕인 이동일이 더 빠르게 걸으면서 말했다.
“오 선생, 봉산 쪽을 향해 앞장서주세요.”
“힘들어요?”
조한철이 묻자 윤미옥은 머리를 저었다. 횡대 간격이 5m쯤 되었기 때문에 앞뒤쪽 병사들이 둘의 대화를 들을 수는 없다. 그리고 또 들으면 대수인가? 조한철이 윤미옥 옆으로 바짝 붙어 섰다.
“윤 중위는 몇 살이시오?”
“그걸 이제야 물어요?”
낮게 쏘아붙이듯 물었던 윤미옥이 대답했다.
“스물일곱요.”
“나하고 동갑이네.”
해놓고 조한철이 다시 묻는다.
“난 해병으로 사관학교 나왔어요. 윤 중위는?”
“사범대 졸업하고 군관학교 나왔어요.”
“어디 사범대?”
“평양.”
“좋은 대학 나와서 그런 촌구석 부대에 있다니.”
“군인이 아무 곳에나 있으면 어때?”
“부모 형제는 어디 계시오?”
“그건 알아서 뭐 하게요?”
“혹시 압니까? 내가 윤 중위한테 청혼을 할지.”
“오해하지 마요, 조 중위.”
정색하고 윤미옥이 말했을 때 조한철이 성큼 발을 떼어 앞쪽으로 멀어졌다. 윤미옥이 어둠 속으로 묻혀가는 조한철의 등을 노려본 채 발을 뗀다.
22시15분, 개전 11시간25분25초 경과.
김정일이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 앞쪽의 벽을 노려보고 있다. 그의 옆에는 김정은과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 둘이 몸을 굳힌 채 서 있다. 구석 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내는 통역이다. 통역의 얼굴은 누렇게 변해 있다. 그만큼 방 안 분위기가 험악한 것이다. 이윽고 김정일의 귀에 중국어가 들렸다. 시진핑이다. 통화를 시도한 지 네 번째 만에 연결된 것이다. 그동안 중국군은 6개 루트를 통해 6개 사단 병력이 북한 땅으로 진주했다. 가장 깊숙이 들어온 부대는 평안북도 박천까지 닿았다. 그때 한국어 통역의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다.
“김정일 지도자 동지. 우리는 중조군사동맹에 따라 인민해방군을 진입시켰습니다. 이것은 중국이 동맹국 북조선의 안위를 위한 것입니다.”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김정일이 한마디씩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면 시진핑 주석 동지. 북조선의 대표자이며 동맹을 맺은 당사자로서 주석 동지께 요청합니다. 북조선의 반란군을 소탕해주시지요. 지금 북조선의 안위를 가장 위협하는 것이 반란군이라는 것을 주석 동지가 가장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말을 그친 김정일이 송화구를 손바닥으로 덮고는 통역을 보았다.
“한마디도 빠뜨리지 말고 전해.”
김정일의 표정을 본 통역이 숨을 들이켜더니 메모해놓은 글을 한마디씩 또박또박 통역하기 시작했다. 그때 김정일이 송화구를 손바닥으로 덮은 채 김정은을 보았다.
“너, 조선민주주의 공화국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느냐?”
불쑥 김정일이 묻자 김정은은 당황했다. 눈동자를 굴리더니 옆에 선 전백준을 보았다. 얼굴이 상기되었다가 금방 하얗게 굳어졌다. 전백준이 외면했을 때 그것을 본 김정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통역이 끝났으므로 김정일이 전화기를 귀에 붙였다. 그러자 곧 시진핑의 중국어가 들렸다. 이어폰을 낀 통역이 진땀을 흘리면서 시진핑의 말을 메모하고 있다. 시진핑의 말이 끝나고 한국어가 이어졌다.
“곧 중국 진주군 사령관 후성궈 장군이 양측을 조정할 것입니다. 그동안 지도자 동지께서도 자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양측을 조정하다니? 저 반란군을 나하고 같은 비중으로 취급하는 것입니까?”
김정일이 소리쳐 묻고는 다시 전화기의 송화구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지만 머리를 든 김정일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번져 있다.
“이 통화를 도청한 미국, 남조선 놈들이 웃겠다.”
그때 김정은은 김정일의 두 눈이 번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영문을 몰라 눈만 껌벅였을 때 갑자기 옆에 선 전백준이 손등으로 눈을 닦았다. 그러자 김정일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이봐, 영감. 우는 거야?”
“죄송합니다, 지도자 동지.”
마침내 전백준이 흐느껴 울면서 말했고 김정일은 다시 전화기를 귀에 붙인다. 시진핑의 말이 끝나 통역이 말을 시작하고 있다.
“지도자 동지. 지금은 그것을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북조선을 미군과 남조선의 협공에서 구해내고 정권을 안정시킬 작정입니다. 우리 중국 정부와 인민해방군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김정일이 짧게 말했다.
“후의에 감사합니다, 주석 동지.”
그러고는 전화기를 내려놓더니 김정은을 다시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김정은은 눈만 껌벅였으므로 김정일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삐라는 평안도는 물론 함경북도까지 떨어졌어요.”
기무사령관 배광우가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은 장군들을 향해 말을 잇는다.
“지금이 밤이어서 그렇지 내일 아침이면 결과가 드러날 겁니다.”
배광우는 아직도 연합사 벙커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길이다. 다시 배광우의 열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마침 제트 기류가 동북풍이어서 풍선이 잘 나갑니다. 21시 현재까지 풍선 3만5000개, 삐라 1억장, CD 350만장, 라디오 200만개가 날아갔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북한 땅 전체가 삐라로 덮여 있을 겁니다.”
계엄 상황이어서 기무사가 삐라 작전을 맡게 되었지만 배광우의 열의는 대단했다. 기무사가 전투부대가 아닌 터라 대신 삐라에다 열의를 실어 북한 땅에 침투시키려는 것 같다.
“저 새끼들이 두 손을 들 때까지 삐라로 도배를 할 테니깐.”
육참총장 조현호도 있는 자리였지만 배광우가 욕까지 섞어 말했을 때였다. 연합사 소속 준장 한 명이 뛰다시피 다가오더니 말했다.
“시진핑과 김정일의 통화 내용이 입수되었습니다!”
그러자 모두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으로 몰려갔고 배광우도 뒤를 따른다.
“중국군이 왔어.”
노동민족당 국회의원 임민희가 12살짜리 아들 오연수를 끌어안고 말했다.
“이제 미국놈들하고 그 주구들은 꼼짝 못하고 물러갈 거야.”
마침내 임민희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파주 교외의 야산 골짜기에 박힌 농가 안이다. 옆쪽에 폐쇄된 축사가 있는 이곳은 임민희의 먼 친척 소유로 국도에서 300m나 떨어진 외진 곳이다. 그때 마당에서 남편 오종구가 집주인 양수택하고 두런거리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으로 가족 세 명이 피난을 온 셈이다. 계엄이 실시되면서 바로 대규모 검거 선풍이 일어났을 때 임민희는 남편, 아들과 함께 곧장 이곳으로 피신했다. 도망치고 숨는 데는 부부가 운동권 시절부터 이골이 난 터여서 이번에도 놈들의 허점을 찌른 셈이 되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려는 상황에서 누가 휴전선 근처로 북상하겠는가? 다 남쪽으로 가려고나 할 것이다. 세 식구는 텅 빈 자유로 북상길을 달려 재빠르게 이곳에 안착한 것이다.
“엄마, 그럼 북한이 이기는 거야?”
초등학교 5학년짜리 오연수가 묻자 임민희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럴 거야. 위대하신 지도자 동지께서 혈맹인 중국군과 함께 한반도를 통일하시게 될 것 같다.”
“학교는 그대로 있는 거지?”
“그럼.”
“선생님도?”
“그걸 말이라고 하니?”
“그럼 대한민국만 없어지는 거야?”
“그렇단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본래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할 나라였어.”
임민희는 물론이고 오종구도 자식인 오연수한테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다. 다 크면 알려주기로 하고 놔두었던 것이다. 그때 오연수가 머리를 들고 임민희를 보았다.
“엄마. 엄마 빨갱이야?”
“응? 누가 그래?”
놀란 임민희가 묻자 오연수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편의점에서 누가 나한테 그랬어. 저기 빨갱이 자식이 간다고.”
“그, 나쁜 자식.”
눈을 치켜떴던 임민희가 다시 오연수를 끌어안았다.
“이제 그런 말 안 듣는다. 그런 놈은 다 잡아넣을 테니까.”
임민희는 다시 서랍 위에 놓인 라디오 스위치를 켰다. 계엄군이 휴대전화, 인터넷 통신을 차단시켰지만 라디오는 들린다. 지금 임민희는 중국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이다.
잠깐 잠이 들었던 송아현이 꿈속에서 이동일을 보았다.
“이리 와.”
이동일이 웃음 띤 얼굴로 부른다. 이곳이 어딘가? 주위를 둘러본 송아현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안면도의 별장, 여관이지만 가족용 독채 건물로 만들어져 있어서 둘은 별장으로 부른다.
“이건 꿈이야.”
송아현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동일 쪽으로 발이 떼어졌다. 이동일은 침대에 누워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알몸이다. 문득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송아현이 놀라 손으로 골짜기를 가렸다. 자신의 몸도 알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깨어나야 돼.”
송아현이 말했지만 이미 몸은 이동일의 옆으로 다가가 있다.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동일의 손이 허리를 감아 안았을 때 송아현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 별장이 송아현에게 섹스의 쾌락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곳이다. 그것을 이동일도 알고 있었으므로 둘은 별장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다.
“언제 온 거야?”
이동일이 위로 올랐을 때 송아현이 두 손으로 목을 끌어안으면서 물었다. 그 순간 송아현은 눈을 떴다. 집이다. 자신은 지금 침대에 누워 있다. 벽시계의 야광침이 밤 10시45분을 가리키고 있다. 상반신을 일으킨 송아현이 한숨과 함께 신음을 뱉는다. 한 시간쯤 잠을 잔 것 같다. 집 안은 조용했고 응접실에서도 TV 소음이 들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목이 메었으므로 송아현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어디 있는 거야?”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이 갑자기 미안해진 느낌이 들었으므로 송아현은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계엄이 선포되어 오후 8시부터 통행금지가 되는 바람에 도로는 텅 비었다. 상가와 빌딩의 불도 등화관제를 하고 있어서 도시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다. 송아현이 어두운 도시를 향해 말했다.
“꼭 살아 돌아와.”
송아현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으므로 이동일은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주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을 뿐이다. 그때 앞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한 병장이 다가왔다.
“중대장님. 앞쪽에서 셋이 다가옵니다.”
다가선 한 병장이 가쁜 숨을 고르며 말을 잇는다.
“손전등을 휘두르면서 거침없이 다가오는데 인민군 같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이동일이 뒤쪽에 웅크리고 앉은 조한철 중위에게 말했다.
“자, 가자.”
그러자 조한철이 몸을 일으켰고 이동일이 그 뒤쪽의 황찬우에게 다시 말을 잇는다.
“황 중위, 부탁한다.”
“예, 중대장님.”
어둠 속에서 대답이 들렸다. 이곳은 은파 동남방 4㎞ 지점의 미박천. 개울이 산모퉁이를 따라 직각으로 구부러지면서 물살이 빨라졌고 물소리가 크다. 한 병장을 앞세우고 걷던 이동일이 문득 머리를 돌려 조한철을 보았다. 그러고는 불쑥 말한다.
“너, 임마. 윤 중위 잘 돌봐.”
놀란 조한철이 숨을 죽였을 때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상처 주지 말란 말야.”
조한철이 허청거리며 걸었고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사령부에서 암호 통신을 받았어. 이 지점에서 12군단장이 보낸 사람하고 접선하라는 거야.”
조한철이 아, 그랬구나, 하는 표정을 짓고 머리를 끄덕였지만 아직 얼떨떨한 상태다.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따라오기만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다시 이동일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12군단장이 김정일을 배신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릴 그쪽으로 보내는 거야.”
“감시 역할입니까?”
조한철이 묻자 이동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병력으로 감시가 되겠나? 확인 정도겠지.”
앞쪽에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으므로 이동일이 서둘러 덧붙였다.
“무리가 떠도는 것보다 그쪽에 붙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멸공.”
앞쪽에서 암구호를 낮게 외치는 소리가 났다. 감시하고 있던 박 하사다.
“통일.”
한 병장이 대답했고 일행은 바위 뒤에 엎드려있는 박 하사 옆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저기.”
하고 박 하사가 앞쪽을 가리켰지만 이동일은 이미 개울가로 내려오는 불빛을 보았다. 가깝다. 이제 100m 정도. 불빛은 3개. 흔들리고 있는 것이 험한 비탈길을 내려오는 것 같다.
“서! 움직이면 사살한다!”
거리가 20m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이동일이 버럭 소리쳤다. 개울물 소리가 압도되어 외침이 바위벽을 울리면서 여운이 이어졌다. 그 순간 손전등이 멈췄다. 어둠 속이라 흔들리는 것만 멈췄을 뿐으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그쪽에서 소리쳤다.
“남조선 해병이오?”
“그렇소!”
이동일이 대답하자 그쪽에서 다시 소리쳤다.
“난 군단장 부관 최상철 중좌요. 어서 나오시오!”
어둠 속에서 이동일이 옆에 엎드린 조한철을 힐끗 보고는 낮게 말했다.
“넌 여기서 기다려.”
그러고는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지금 그쪽으로 갑니다.”
“누구시오?”
“해병대위 이동일.”
이동일이 다가서며 말했다. 서너 걸음 더 걷자 서 있는 세 사내의 윤곽이 드러났다. 모두 군복차림. 그중 가운데 서 있는 사내가 중좌인 것 같다. 그가 다가선 이동일에게 묻는다.
“일행은 모두 어디에 있소?”
한 걸음 간격으로 다가선 이동일이 중좌를 보았다. 눈의 흰자위가 번들거렸다. 어둠 속이었지만 단단한 체격. 다부진 용모다. 이동일이 대답했다.
“뒤쪽에 있습니다.”
“모두 몇 명이오?”
“저까지 포함해서 51명.”
“트럭 두 대를 가져왔으니 갑시다.”
중좌가 서두르듯 말했으므로 이동일이 물었다.
“어디로 갑니까?”
“사령부 근처로. 모두 인민군복 차림이겠지요?”
“그렇습니다만.”
“그럼 갑시다.”
다시 재촉한 중좌가 반 걸음쯤 다가서더니 이동일을 올려다보았다. 키가 한 뼘쯤 작았기 때문이다. 중좌가 한마디씩 차분하게 말한다.
“이봐요, 대위. 날 믿지 못하면 따라오지 않아도 됩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니오.”
23시15분, 개전 12시간25분25초 경과.
평안북도 박천 동남방 2㎞ 지점에 세워진 중국 진주군 사령부 상황실. 이곳은 북한군 425기계화군단이 사용하던 빈 탄약 보관소여서 시멘트 건물에다 엄폐도 잘되었다. 상황실 안의 지휘부는 활기에 차 있다. 깊은 밤이지만 건물 밖은 불이 환했고 장갑차와 트럭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내일 오전 12시까지 2개 집단군은 이동을 끝낼 것입니다.”
벽에 붙은 작전지도에 지휘봉을 붙이면서 참모장 양훙이 보고했다.
“마지막 제40집단군은 오후 7시까지 진주를 끝냅니다.”
머리를 끄덕인 후성궈가 두꺼운 눈꺼풀을 들고 양훙을 보았다. 선양군구(軍區)사령관이었던 후성궈는 이번 진주군 사령관을 맡으면서 군구 사령부 인력을 모조리 데려왔다. 양훙도 군구 참모장이어서 손발이 맞는다.
“425기계화군단은 이상 없지?”
후성궈가 묻자 양훙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예, 내일 오전에 군단 참모를 보내 작전에 협조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동시에 우리도 고문단 형식으로 참모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쪽에서 보내는 고문단은 감시 역할이다. 평안북도 정주에 사령부를 둔 북한군 제425기계화군단은 후방 부대였지만 4개의 기계화보병여단과 1개의 전차여단으로 편성된 무시 못할 전력이다. 그러나 군단장 박정근 대장은 김경식 일파로 이미 중국군과 손발을 맞추고 있는 상태였다. 머리를 끄덕인 후성궈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거야. 내 아버지가 60년 전 한국전쟁 때 연대장으로 참전하셨거든.”
“그렇습니까?”
양훙이 다시 웃었다.
“우리가 이 작은 나라를 돕는 것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역사를 보았더니 1400년 전 신라라는 나라의 삼국통일 때, 600년 전인 조선시대 일본 침략 때까지 더하면 이번이 네 번째인가 봅니다.”
“본래 이 땅이 우리 땅이었어.”
자르듯 말한 후성궈가 한국 지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 그 기회가 온 거야.”
후성궈가 지도를 보는 그 시간에 연합사 상황실 안에서도 지휘관들이 지도 앞에 모여 서 있다. 이쪽 지도는 전자 상황판으로 제작돼 더 큰데다 갖가지 색상의 불빛으로 치장되었다.
“빠릅니다.”
상황판에서 돌아선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이 우드워드 대장에게 말했다. 해리슨이 큰 키를 구부정하게 굽히고는 말을 잇는다.
“사령부를 설치하고 각 집단군 지휘부도 일사불란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미리 예행연습을 한 것 같습니다.”
북한군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우드워드가 옆에 선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을 보았다.
“말 그대로 인민해방군의 기세로군. 그렇지 않습니까?”
장세윤은 눈만 껌벅였지만 뒤쪽에 서 있던 육참총장 조현호가 나섰다.
“저놈들이 옛날 생각만 했다가는 큰코다칠 겁니다. 내기를 해도 좋아요.”
그러자 우드워드가 짧게 웃었다.
“북한군 425기계화군단하고 사이좋게 위치해 있군요.”
눈으로 상황판을 가리킨 우드워드가 말을 잇는다.
“이제 김경식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어진 것 같다.”
상황판 앞에서 물러난 한국군 지휘부가 상황실 반대쪽 벽 앞에 모여 섰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장세윤과 조현호 주위로 모여든 것이다. 먼저 입을 연 장군은 육본작참부장 박진상 중장이다.
“미국 측은 중국군 개입이 잘된 것 같다는 분위기인데요.”
하고 박진상이 말했을 때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거들었다.
“이것을 기회로 현 상태를 굳히려는 겁니다. 다시 38선으로 나눠진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죠. 어떻게 되건 간에 확전만은 막으려는 겁니다.”
“예전이라지만 바로 어제야.”
하고 장세윤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 듯 웃었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는다. 그때 조현호가 말했다.
“시발, 이미 수천 명 희생이 난 전쟁이다. 글고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다. 싸우자.”
“따르겠습니다.”
바로 박진상이 동조했고 장군 서너 명이 호응했다. 그때 장세윤이 말했다.
“또 독단으로는 안 돼.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야.”
그때 조현호가 머리를 돌려 해병사령관 정용우를 보았다.
“이동일이는 어디에 있어?”
“지금 12군단장 이기준의 품 안에 있습니다.”
머리를 든 정용우의 두 눈이 반짝였다.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고 정용우의 말이 이어졌다.
“그놈이 또 키를 쥔 것 같군요.”
23시35분, 개전 12시간45분25초 경과.
문이 열리면서 계급장 없는 인민군복 차림의 사내 둘이 들어섰으므로 이동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장선 사내는 5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건장한 체격에 눈빛이 매섭다. 이동일의 두 걸음쯤 앞에서 둘이 멈춰 섰을 때 뒤쪽 40대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12군단장 이기준 대장 동무시오.”
그러자 앞에 선 사내가 머리를 조금 끄덕였다.
“동무가 해병대위인가?”
“예, 군단장님.”
이동일이 부동자세로 섰다. 이제 이기준은 아군이다. 그러니 상관 대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병대위 이동일. 신고합니다.”
“너희들, 내 호위대로 편입시킨다.”
이기준이 자르듯 말하고는 눈가에 주름을 만들면서 웃었다.
“부상자가 있다던데 이곳에서 다시 부대를 편성한 다음 명령을 기다리도록.”
“예, 알겠습니다.”
“인민해방군이 진입했다. 벌써 박천에 진주군 사령부가 세워졌고 내일이면 3개 집단군이 모두 북조선 영토 안으로 진입해올 것이다.”
놀란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이기준이 이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예상은 했지만 이제 김정일은 북한 땅의 주도권을 잃게 되었어. 그렇다고 인민해방군 진입을 고대한 김경식이 이로운 것도 없어. 반란군 수괴로 처형될 신세는 면했겠지만 말야.”
그러더니 옆에 선 사내를 보면서 말했다.
“내 부관과 함께 행동하도록.”
“너희들에게 소개해드릴 분이 계시다.”
장교와 하사관까지 모았더니 20명 가까이 되었다. 노농적위대 5명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이곳은 봉산 교외의 빈 보급대 건물 안이다. 이기준이 떠나고 나서 이동일이 바로 간부들을 소집한 것이다. 이동일이 옆에 선 사내를 소개했다.
“12군단장 이기준 대장의 부관이신 강성일 중좌시다. 우리 안내를 맡으실 거다.”
그러자 머리를 끄덕인 강성일이 해병을 둘러보았다.
“남조선 해병 소문은 많이 들었다. 잘해보자고.”
“반갑습니다.”
기죽지 않으려는 듯이 조한철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했고 몇 명은 박수를 쳤다. 그때 이동일이 말했다.
“중국군이 북한 땅으로 진입해왔다. 북한 반란군이 진입을 요청했다지만 전황이 변할 것 같다.”
모두 숨을 죽였고 이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부상자는 이곳에서 치료하고 부대를 재편성한다. 이상.”
밤 12시가 되어가고 있다. 2014년 7월25일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윤미옥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거친 숨소리에 섞여 터지는 신음을 삼키느라 윤미옥은 자꾸 조한철의 어깨를 물었다. 보급대 끝 쪽의 초소 안이다. 이곳을 소대장 임시 숙소로 삼았기 때문에 문을 안에서 잠갔더니 아늑한 침실이 되었다. 바닥에 낡은 모포까지 깔려 있어서 둘이 눕기에는 적당했다. 이윽고 윤미옥이 두 다리를 치켜세우면서 온몸을 둥글게 오그렸다. 조한철 작업복 어깨에 박아 넣은 이가 더 깊게 들어갔고 허리를 치켜 올리는 동작이 격렬해졌다. 그러고는 갑자기 몸을 굳히면서 떨기 시작했다. 절정에 오른 것이다. 그 순간에 윤미옥의 허리를 당겨 안으면서 조한철이 폭발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느낌을 받으면서 조한철이 윤미옥의 귀에 입술을 붙인 채 굵은 신음을 뱉었다. 윤미옥이 목을 더 끌어안는 것으로 화답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가쁜 숨을 뱉은 채 둘은 포개진 채 그대로 있다. 그러나 몸은 펴져서 자연스러운 자세가 되었다.
“대장이 우리 사이를 알고 있는 것 같아.”
조한철이 윤미옥의 귀에 입술을 붙이고 말했다. 윤미옥이 몸을 굳혔을 때 조한철이 말을 잇는다.
“글쎄 갑자기 윤 중위 잘 돌보라고 하는 바람에 오줌을 쌀 뻔했어.”
조한철이 윤미옥의 귓불을 이로 살짝 물었다.
“그리고 또 뭐라고 한 줄 알아?”
그러더니 이제는 귀에 더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상처 주지 말라는 거야, 시발.”
휴대전화를 켠 이동일이 버튼을 누르면서 심호흡을 한다. 몇 시간 만에 다시 휴대전화를 켜는 것이다. 앞에 앉은 강성일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보급대장실로 사용된 방 안에는 둘이 앉아 있다. 주위는 조용하다. 그러나 부하 대부분은 잠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윽고 신호음이 두 번 울리더니 곧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다.”
해병 대령 최재창. 사령관 작전참모로 이동일의 직속상관이다.
“예, 참모님.”
갑자기 목이 멘 이동일이 그렇게만 대답했을 때 최재창이 내쏘듯 말했다.
“이젠 그쪽 품 안에 들어갔으니 통신을 다시 시작한다. 넌 양쪽의 전달자 겸 집행자 역할이다, 알았나?”
“예, 참모님.”
“직책 빼라.”
“예.”
“해방군 진입으로 12군단의 처지가 묘하게 되었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잘 들어.”
해놓고 잠깐 뜸을 들인 최재창이 목소리를 낮췄다.
“12군단은 인민들의 혁명세력과 함께 해방군을 공격하도록 한다. 그렇게 전하도록. 알았나?”
“예.”
“내일 날이 밝으면 북한 인민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도 중국군 진주에 대한 삐라를 다시 뿌릴 테니까.”
숨을 죽인 이동일이 이제는 맞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때 최재창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12군단하고 바로 연락이 되나?”
“옆에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해.”
그러더니 최재창이 덧붙였다.
“이것이 우리 측 결정이라고.”
통신이 끊겼으므로 이동일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긴 숨을 뱉는다. 이제는 중국 인민해방군이다. 이 조그만 땅이 왜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가?
8장 조선성(朝鮮省)
반면 이 기회에 완전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있는 한국군 지휘부는 북한 반란군과 합세한 이동일 부대를 움직여 북한의 내분을 심화시킨다. 한편 북한 425기계화군단 전차대는
북한에 들어온 중국군 제16집단군 소속 4장갑사단을 공격해 전멸시키는데…. <편집자>
2014년 7월26일 토요일 06시30분, 개전 19시간40분25초 경과.
미국 워싱턴 시각은 7월25일 금요일 16시30분이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국무장관 빌 스튜어트, 국방장관 제임스 코넬, 합참의장 마크 핸슨과 백악관 비서실장 패트릭 어윈 다섯이 둘러앉아 있다. 그들은 백악관의 전시 상황실인 지하 워룸(war room)에서 방금 올라온 것이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은 오바마가 웃음 띤 얼굴로 넷을 둘러보며 말한다.
“코리아 미스터 박은 64년 전 남북한 전쟁 때도 중국군이 내려왔다고 불평을 하더군. 만일 그때 중국군이 내려오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한국이 통일했겠지요?”
“그렇습니다.”
국방장관 코넬이 정색하고 오바마를 본다.
“그때 북한은 없어졌습니다.”
“어쨌든.”
어깨를 편 국무장관 스튜어트가 나섰다.
“이제 한숨 돌렸습니다. 난생 처음 중국군이 고맙게 느껴지는군요.”
“그래요?”
커피잔을 든 오바마가 다시 웃는다. 방 안 분위기는 밝다. 워룸에서는 각 군 지휘관에다 보좌관까지 모여 있는 바람에 속에 있는 말을 다 내놓지 못했다. 오바마가 넷을 둘러보며 묻는다.
“한국은 운이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한텐 다행이라니깐요, 각하.”
스튜어트가 손까지 저으며 말을 잇는다.
“더 이상 미국의 재산과 인명의 피해는 없을 겁니다. 북한이 중국의 조선성(朝鮮省)으로 편입되는 것이 미국에는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 말을 한국인들이 들으면 화내겠군.”
쓴웃음을 지은 핸슨 합참의장이 혼잣소리처럼 말하더니 오바마를 힐끗 보았다.
“하긴 이것으로 북한 핵 문제도 함께 풀리게 되었습니다.”
북한이 중국의 조선성으로 편입되면 그렇게 애를 먹였던 북핵 문제도 단숨에 해결되는 것이다. 머리를 끄덕인 오바마가 어깨를 흔들며 심호흡을 했다.
“어젯밤은 잠을 설쳤는데 오늘밤은 좀 편히 잘 것 같군요, 그렇죠?”
그러자 코넬이 먼저 대답했다.
“남북한 내부의 혼란이 있겠지만 전면전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각하.”
워룸에서의 결론도 그렇다. 중국 군부와 비밀 접촉한 결과 중국 군부는 미군과의 전쟁을 극력 회피할 것이라는 정보를 받았다.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내분으로 갈라진 북한 정권을 흡수, 귀속시킬 천재일우의 기회인데 무슨 전쟁인가?
7월26일 07시, 개전 20시간10분25초 경과.
봉산 교외의 보급대 건물 안. 식사를 마친 이동일이 양치질을 하고 있을 때 강성일이 다가왔다.
“대위, 내부 반란이 심각해.”
다가선 강성일이 말을 잇는다.
“삐라 때문이야. 저 위쪽의 함경남북도까지 삐라가 날아가 노농적위대, 교도대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제압하려고 나서는 부대가 없어.”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강성일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김정일, 김경식 양측이 서로 상대방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야. 반란군 진압에 전력을 손상하지 않으려는 의도지.”
“중국군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오후면 3개 집단군이 모두 진입해올 거네.”
입맛을 다신 강성일이 외면한 채 말을 잇는다.
“김경식은 중국식 개방을 하겠다고 끌어들였지만 호랑이를 집안에 끌어들인 셈이지. 중국놈들이 이용만 당하고 물러갈 것 같나? 어림도 없지.”
김경식이 그것까지 계산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동일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으므로 이동일은 주머니에서 꺼내 보았다. 최재창이다. 몸을 돌린 이동일이 휴대전화를 귀에 붙였다. 방금 강성일한테 들은 정보도 전해줘야 할 것이다.
군단본부의 전시(戰時) 벙커가 막사에서 100m 위치에 있었지만 경비병만 세워놓고 비워져 있다. 다만 훈련으로 소집된 군단의 전차대가 아침부터 요란한 소음을 내는 바람에 전시 분위기는 난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425기계화군단장 박정근 대장은 침실에서 나와 옆쪽 상황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참모장 윤성 중장이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윤성의 개인 휴대전화다. 휴대전화를 귀에 붙인 박정근이 옆쪽 의자에 앉는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나, 이기준이요.”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박정근은 대뜸 묻는다.
“무슨 일이오?”
박정근과 이기준은 같은 60대 중반으로 둘 다 40여 년이나 군 생활을 했지만 친교가 없다. 군단장 회의에서 만나 서너 번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그러나 비슷한 점도 있다. 둘 다 권력 외곽으로만 돌았다는 것, 이기준이 전연지대 군단장이 못된 것처럼 박정근도 정예인 820전차군단, 815기계화군단, 806기계화군단장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때 이기준이 물었다.
“나, 중립으로 물러났소. 알고 계시지요?”
“압니다.”
“그런데 그쪽은 왜 그렇습니까?”
“뭘 말입니까?”
“김경식이한테 붙을 이유가 뭡니까?”
“아니, 이보시오.”
했다가 박정근이 호흡을 가눈다. 참모들이 제각기 딴전을 피우고 있었지만 방안은 조용하다. 모두 귀가 곤두서 있을 것이다. 박정근이 뱉듯이 말했다.
“나도 중립이오. 누구도 나한테 명령할 수 없소.”
그러고는 덧붙였다.
“중국군도 말이오.”
“이 통화도 어차피 도청이 되겠지만.”
이기준의 목소리도 굵어졌다.
“다행이오. 중국군이 와줘서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박정근은 대답하지 않았고 이기준은 곧 전화를 끊었다.
자강도 회천시는 날이 밝으면서 무법지대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보위부와 일부 공장교도대를 제외하고 교도대, 노농적위대, 10군단 예하의 파견대까지 반란군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반란군이라기보다 약탈대가 맞다. 교외의 교도사단 창고는 새벽이 되자 불길에 휩싸였고 개미떼처럼 달려든 약탈자들에 의해 깨끗이 청소되었다. 시내는 물론이고 교외의 산비탈까지 흰 눈이 내린 것처럼 삐라가 흩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점령지 표시처럼 느껴졌다.
“수천 군데서 반란이 일어난 거야.”
삐라와 함께 떨어진 라디오를 귀에서 뗀 최기상이 소리쳤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세상 끝났어! 김씨 세상이 끝났다고!”
최기상이 다른 손에 쥔 AK-47을 치켜들고 흔들었다. 회천 서남방 부산리에는 2개의 노농적위대가 편성되어 있었는데 모두 반란군이 되어 뭉쳤다. 예비역 대위 최기상은 이제 2개 중대, 300여 명의 적위대 지휘관이다.
“대장!”
하고 소대장 격인 오대길이 달려왔으므로 최기상이 머리를 들었다. 그들은 지금 농가 마당에 모여 있는 것이다.
“중국군이 박천에 사령부를 두었고 곧 회천으로 40집단군이 온다는 거야!”
마당에 선 오대길이 손에 쥔 라디오를 흔들면서 말을 잇는다.
“선양군구(軍區)의 3개 집단군이 오늘 중으로 진주를 끝낸다고 했어!”
한국에서 방송한 내용이다. 마당에는 30여 명의 적위대원이 모여 있었는데 여자들은 약탈이 끝난 후에 모두 돌려보냈다. 그때 나이든 박장서가 말했다.
“잘됐어. 전부터 중국놈들이 북조선 땅을 조선성(朝鮮省)으로 만든다고 하던데 잘된 일이야. 우리도 조선족 놈들처럼 잘 먹고 잘살아보자고!”
“그게 무슨 말씀이오?”
최기상이 버럭 소리쳤으므로 모두 조용해졌다. 50대 초반인 최기상이 저보다 여섯 살 연상인 박장서를 노려보았다. 박장서는 먼 친척이기도 하다.
“그럼 우리가 중국놈 상전을 모시고 살란 말이오? 일본놈 식민지에서 겨우 벗어났다가 이제는 중국 식민지가 되어?”
최기상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그러자 박장서도 지지 않는다.
“굶어 죽고 맞아 죽는 것보단 낫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냐? 짐승도 이렇게 안 산다! 나는 내 자식 굶겨 죽이고 피눈물을 낸 사람이여!”
“누군 안 그렇습니까?”
하고 최기상이 맞받아 소리쳤을 때였다.
“삐라다!”
누군가 소리쳤으므로 모두 그가 가리키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서 흰 삐라가 눈처럼 내려오고 있다.
“좋다!”
어디선가 그런 외침이 울렸고 서너 명은 삐라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7월26일 08시30분, 개전 21시간40분25초 경과.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조용한 곳은 평양과 그 주변뿐입니다.”
상황실로 들어온 대통령 박성훈에게 합참의장 장세윤이 성의 있게 보고했다. 그 옆쪽에 앉은 한미연합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는 박성훈과 시선을 부딪치지 않는다. 장세윤이 말을 이었다.
“김정일과 김경식, 그리고 12군단 등 정규군단은 거의 동요하지 않지만 주변 소요를 진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병력을 분산, 소모시키지 않으려는 의도 같습니다.”
박성훈의 앞쪽에는 거대한 전광 상황판이 펼쳐져 있다. 북한 땅은 붉은 점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것이 반란군의 준동 지역이다. 박성훈이 상황판을 응시하며 물었다.
“중국군은?”
그러자 상황판 옆에 선 대령이 레이저빔으로 박천을 가리켰다. 박천과 개천, 덕천, 회천에 노란점이 반짝였고 그 주변으로 노란색이 번져 있다.
“선양군구 사령부는 이곳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3개 집단군이 남하하고 있는데 오후 6시까지는 이동을 끝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박성훈의 시선이 힐끗 우드워드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미 오바마하고 통화를 마친 후여서 미국 측 분위기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때 앞쪽에 앉아 있던 육참총장 조현호가 불쑥 말했다.
“이제 변수는 북한 인민, 즉 반란 세력이 쥐고 있습니다. 중국군의 상대는 그들이 된 것입니다. 김경식 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김정일도 중국군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요.”
한미합동회의여서 모두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조현호의 말이 이어졌다.
“반란군이 중국군을 어떻게 대할지가 앞으로 전세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회의를 마친 육본작참부장 박진상 중장과 해병사령관 정용우 중장이 구석쪽 벽 앞에 마주보고 섰다.
“그래, 12군단하고 425군단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건 잘한 거야.”
박진상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국 측이 지금 가장 신경을 쏟고 있는 게 그들이니까 말이야.”
“근데 어떻게 될 것 같소?”
목소리를 낮춘 정용우가 묻자 박진상은 입맛부터 다셨다.
“12군단장 이기준이 425군단 박정근한테 한 통화를 우드워드가 듣고 해리슨한테 그랬다는군. 저자식이 지금 뭐 하려고 개수작을 부리느냐고 말이야. 그건 우리한테 들으라고 한 말이요.”
“안보수석한테 들었는데 오바마는 중국군 진입이 잘된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겼다던데.”
“당연하지.”
안쪽의 미군 지휘부를 힐끗 바라본 박진상이 말을 잇는다.
“미국은 북한이 중국 조선성(朝鮮省)으로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봐요. 그건 한국 측이나 북한 주민들한테도 모두 이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거기에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는 윈윈 전략인 것이다.
“시발.”
정용우가 잇사이로 욕을 뱉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변수가 또 하나 있지.”
7월26일 09시 정각, 개전 22시간10분25초 경과.
“집합 완료했습니다.”
선임 소대장 조한철이 말했으므로 이동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사를 나온 이동일은 마당에 정렬한 해병 부하들을 보았다. 모두 37명, 부상자와 경비병을 뺀 전력이다. 모두 인민군복을 입고 있는데다 이제는 화기까지 완전히 AK-47 등 북한제로 바꿨다. 마당에는 지휘 장갑차와 트럭 석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이미 강성일의 부하 10여 명이 탑승하고 있다. 강성일이 정렬한 병사들을 사열하듯이 훑어보며 지나더니 이동일에게로 다가왔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았소?”
강성일이 묻자 이동일이 손목시계를 보고나서 대답했다.
“15분.”
그러고는 이동일이 옆쪽에 서 있는 최 하사를 보았다. 최 하사가 이제 이곳의 지휘관이다.
“우리가 떠난 후에 막사 밖으로 나오지 말도록, 알았나?”
“예, 중대장님.”
병사들의 눈빛이 아침 햇살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다. 이제 출동이다. 트럭 안에는 12군단 사령부에서 가져온 각종 최신 화기가 가득 차 있다. 이동일이 강성일과 시선을 맞추고는 지시했다.
“출동!”
김경식은 한 시간 가깝게 상황실을 비웠는데 개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긴장이 풀렸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다시 상황실로 들어선 김경식에게 상황실 당직인 대화가 보고했다.
“곽산에 제16집단군 소속 4장갑사단이 진주했습니다.”
“4장갑사단이?”
눈을 크게 떴던 김경식이 곧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렇군. 전차사단이 누르고 있으면 425군단은 꼼짝 못하게 되겠지.”
제55호위대 벙커 상황실에서도 12군단장 이기준과 425군단장 박정근의 통신을 감청한 것이다. 역시 둘의 통신을 감청한 중국군이 재빨리 손을 쓴 것이다. 이제 425기계화군단은 옆에서 칼끝을 들이대고 있는 형편이니 가만히 있는 것이 사는 길이다. 머리를 든 김경식이 상황판을 보았다. 425군단 사령부가 위치한 평안북도 정주에서 곽산까지는 직선거리로 10㎞ 정도였다. 거의 모든 야포의 사정거리 안인 것이다. 시선을 내린 김경식이 황해북도 봉산을 보았다. 12군단 사령부가 위치한 곳이다. 그곳은 회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동쪽의 평산이 붉은색이어서 구분이 잘 되었다. 평산은 바로 김경식의 2군단 사령부가 위치한 곳이다. 김경식이 봉산을 노려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중국군 진입에 가장 불안한 놈이 바로 저놈이야. 이쪽도 저쪽도 아닌 회색분자놈.”
그래서 봉산에 회색 표시를 해놓은 것이다.
“잘된 일이야.”
노동민족당 국회의원 임민희는 지금 벽에 기대앉아 남편 오종구의 말을 듣고 있다. 웃음 띤 얼굴이다. 오종구가 말을 잇는다.
“북한이 조선성으로 되면 또 어때? 미제의 주구가 된 한국으로 통일되는 것보다는 낫지.”
“아휴, 십년감수했어.”
임민희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중국군이 오기 전까지 말이야. 만일 내분으로 북한이 붕괴된다면 우린 북한 놈들한테 맞아 죽었을 거야.”
“지금도 안심할 수는 없어.”
문을 열어놓아서 마당이 보였고 개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개를 쓰다듬는 아들 오연수가 보였다. 오종구가 오연수에게서 시선을 돌려 임민희를 보았다.
“이 기회에 공안당국은 우리들 뿌리까지 뽑으려고 하니까 말이야.”
“중국의 조선성이 된다면 내가 북한 땅으로 들어갈 용의가 있어.”
불쑥 말한 임민희가 오종구를 보았다.
“당신은 어때?”
“그야 김정은 체제보다는 낫겠지.”
입맛을 다신 오종구가 어깨를 치켜세웠다가 내렸다.
“어휴, 김정일 위원장까지는 그냥 넘기겠는데 김정은을 보니깐 말이야. 이건 도대체 뭐냐는 생각이 들고 창피해지더라고.”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거였어.”
쓴웃음을 지은 임민희가 말을 잇는다.
“주체네 뭐네, 개소리였어. 중국 식민지가 되는 것 좀 봐. 어휴, 연수 보기가 부끄러워.”
같은 시간에 일산 대호식당 사장 김대호는 TV를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이런 뭐 허는겨? 북진혀야 될 것 아녀?”
아직 식당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고 부인 박민옥과 일하러 나온 파주댁까지 셋뿐이다. 김대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또 중국놈들 때미 통일이 안 되는 거 아녀? 저런 개 같은.”
“아, 시끄럽소!”
하고 대파를 다듬던 박민옥이 맞받아 소리친다.
“중국 놈들이 북한 땅에 들어왔응께 전쟁이 끝난 것이나 같다고 허잖여? 글먼 잘된 일이지 무신 놈의 북진?”
“저런 무식헌.”
“혼자 북진혀.”
그러자 파주댁이 큭큭 웃었고 김대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저런 것이 있응께 통일이 안 되는 겨.”
“뭐? 저런 것?”
대파를 내던진 박민옥이 벌떡 일어섰다.
“그려, 전쟁이 일어나서 식당이 문 닫어야 되겄단 말이지? 저런 철딱서니를 내가 30년이나 데꼬 살았당께.”
“머셔? 말 다혔냐?”
그때 파주댁이 TV를 보면서 말했다.
“저기 화면 좀 보세요.”
둘의 시선이 TV로 옮겨졌다. 아나운서의 말은 끝났지만 밑의 자막은 아직 남아 있었다.
‘46용사 실종되다.’
7월26일 10시 정각, 개전 23시간10분25초 경과.
석 대의 차량이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드문드문 군용차량만 오갈 뿐 한산한 편이다. 선두를 달리는 장갑차 안에서 강성일이 옆에 앉은 이동일에게 말했다.
“곧 갈림길이요.”
그러나 길 양쪽으로는 황량한 황무지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맑은 날씨였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서너 점 뭉쳐 있었고 장갑차의 옆쪽 창으로 몰려든 바람결에 흙냄새가 맡아졌다. 장갑차는 위쪽에 두 정의 기관포가 설치되었고 사방이 철판으로 보호된 6인승이다. 장갑 사이로 앞쪽을 살핀 강성일이 혼잣말을 했다.
“정규군은 모두 제 부대 단속만 하느라 이동을 하지 않는구먼.”
“탓탓탓탓탓.”
요란한 기관총 소리에 놀란 이금봉 대위가 머리를 든 순간이었다. 천장 한쪽이 무너지면서 시멘트 부스러기가 쏟아져 내렸다.
“꽝! 꽈광!”
포탄 폭발음이 울리면서 옆쪽 유리창이 창틀까지 박살이 났다. 몸을 굽힌 이금봉이 문을 박차고 나왔을 때 이번에는 수십 정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타타타타.”
기습이다. 앞쪽 시멘트 초소에서 뛰쳐나온 병사 둘이 마치 춤을 추듯이 두 손을 흔들면서 쓰러졌다.
“타타타! 타타타!”
이쪽 초소 하나는 살았다. 초소에서 기관총으로 응사하고 있었지만 이금봉에게 적은 보이지 않았다.
“대장님!”
옆쪽에서 외치는 소리에 막사 귀퉁이로 몸을 날렸던 이금봉이 머리를 들었다. 제1초소장 안 중위가 부서진 막사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사방은 총성과 폭음으로 뒤덮여 있었으므로 안 중위는 악을 썼다. 그러고 보니 한쪽 볼이 피투성이다.
“반란군의 기습입니다!”
예상은 했다. 공격해올 놈들은 그놈들뿐이다. 그런데 정규군의 고속도로 경비대를 기습하다니. 이를 악문 이금봉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순간 총탄이 날아와 바로 머리 옆 벽에 맞아 파편이 튀었다. 안 중위가 다시 소리쳤다.
“놈들 병력이 우세합니다!”
그것도 안다. 이미 60여 명의 경비대원 대부분이 죽거나 부상당했다는 것도 알겠다.
“개새끼들. 우리 식량을 탈취하려는 것이다.”
잇사이로 말한 이금봉이 머리를 들고 힘껏 소리쳤다.
“놈들은 오합지졸이야! 뚫고 나가!”
놈들은 삼면에서 공격해오고 있는 것이다. 숲과 도로 양쪽 언덕에 엄폐한 놈들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좋은 표적이다.
“도로 끝으로 물러나!”
하고 이금봉이 소리친 순간이다. 이금봉은 온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미 청각은 마비되어서 소리는 듣지 못했다.
김정일이 전화기를 귀에 붙였을 때 시진핑의 목소리가 울렸다. 20초쯤 이어진 말이 끝나자 곧 통역이 말한다.
“김경식 대장은 중국군의 통제를 받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따라서 위원장께서도 사태의 수습을 위해서는 후성궈 사령관에게 중재 역할을 맡겨주시지요.”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김정일이 웃음 띤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석궁의 상황실 안이다. 이번은 김정일이 시진핑과의 통화를 공개했으므로 스피커에서 울린 통역의 말을 모두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김정일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도,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도, 평양경비사령관 오종구 대장도 제각기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앞쪽에 선 단 한 명 김정은만 김정일의 시선을 받는다.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주석 동지, 잘 알겠습니다. 중재 역할을 후성궈 사령관에게 맡기지요. 북한군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이 끝나자 벽 쪽에 앉아 있던 통역이 한마디씩 중국어로 통역을 한다. 그 사이에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물었다.
“이제 중국이 누구를 거북하게 생각하겠느냐? 나? 아니면 김경식?”
“위원장님이십니다.”
몸을 굳힌 김정은이 대답했을 때 스피커에서 시진핑의 대답이 울려나왔다. 그것을 무시한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말을 잇는다.
“그럼 나를 어떻게 할 것 같으냐?”
그때 시진핑의 말이 끝나고 통역의 목소리가 울렸다.
“위원장 동지, 감사합니다. 그럼 12군단 처리 문제가 남았는데 그것도 중국군이 잘 수습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주석 동지.”
그렇게 대답하고 난 김정일이 아예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김정은을 보았다. 정색한 표정이다. 김정일의 시선을 받은 김정은이 대답을 했다.
“중국이 위원장님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직도 평방사, 호위총국, 그리고 충성을 맹세한 군단이 많지 않습니까? 반역자 김경식보다 우리가 강합니다.”
“내가 중국으로 망명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
김정일이 낮게 말했지만 모두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시선도 보내지 않는다. 의자에 등을 붙인 김정일이 말을 이었다.
“아직 변수가 많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란 말이야.”
상황판 아래쪽에서 전광시계가 깜박이고 있다.
7월26일 오전 10시30분. 개전 23시간40분25초가 지난 시점이다.
“일제 식민지 36년을 거치고 이제는 다시 중국 놈의 식민지 조선성이 된단 말입니까?”
라디오에 넣어진 녹음테이프에서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지금부터는 여러분의 손에 여러분의 미래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60여 년이 넘도록 이밥에 고깃국을 먹여주겠다는 그 하찮은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한 김씨 일당의 압제에 고통 받던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손에는 총이 쥐어졌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선택하셔야 됩니다. 또다시 중국 놈을 주인으로 모시고 개처럼 얻어먹을 것이냐? 아니면 중국보다 몇 배 더 잘사는 대한민국과 동포로 뭉쳐 지금까지 비웃던 중국 놈들에게 이보라는 듯이 살 것이냐? 여러분이 지금 선택하셔야 됩니다!”
이곳은 평안북도 연변군의 하성마을, 청천강 줄기가 마을 왼쪽으로 흐르고 묘향산맥 자락이 뒤쪽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170여 호의 마을 복판에 자리 잡은 협동창고 앞마당은 조용하다. 노농적위대와 근처의 교도대, 거기에다 30여 명의 붉은 청년근위대까지 포함된 400여 명이 모여 있는데도 그렇다. 붉은청년근위대는 고등중학교 4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나이인 14세에서 16세의 학생이다. 그들도 모두 총을 쥐고 있다. 다시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 라디오는 어젯밤 삐라와 함께 떨어졌다.
“여러분! 지금 북한군은 김정일과 제2군단장 김경식 일파로 나뉘어 있습니다. 김경식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중국 놈의 종이 되어도 좋다는 심보로 중국군을 끌어들인 매국노입니다. 이 두 김씨가 권력 다툼을 하는 바람에 여러분은 부모 없는 아이처럼 버려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미 북조선 전국에서 노농적위대, 교도사단이 봉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북조선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대별로 뭉쳐 부대를 정비하십시오. 그리고 중국군을 몰아내십시오. 여러분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중국군을 끌어들인 김경식 일당을 공격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김정일은 고립되어 여러분 앞에 자연히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낭랑한 목소리가 끝났을 때 조기춘이 머리를 들고 말했다.
“중국 놈들이 우리가 이렇게 나설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거야.”
그러자 교도사단 지구대장 이경식이 쓴웃음을 짓고 대답했다.
“그건 김정일이나 김경식이도 마찬가지였을 거요.”
이경식은 1개 중대 병력을 이끌고 노농적위대 300여 명과 합류했다. 둘 다 예비역 대위였지만 조기춘이 10년 가까이 연상이었기 때문에 합동군의 지휘를 맡은 것이다. 그렇다. 붉은청년근위대까지 합류시킨 합동군이다. 한국에서 삐라와 함께 보낸 라디오에서 일러주기도 전에 반란군은 합류하고 부대를 정비하고 있다. 군 생활을 10여 년씩 해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굶어 죽지 않으려고 기를 써온 생존본능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7월26일 오전 11시 정각, 개전 24시간10분25초 경과.
송아현이 다가서자 사회부장 홍동수가 물었다.
“결과는 어때?”
“놀랐어요.”
먼저 그렇게 말한 송아현이 홍동수를 빤히 보았다. 홍동수의 시선을 받은 송아현이 말을 잇는다.
“휴전 반대가 78%, 찬성이 22%예요.”
“그것 웃기는군.”
눈을 가늘게 뜬 홍동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선성.”
송아현이 짧게 말하자 홍동수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송아현이 말한 것은 국제신문이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휴전에 대한 여론이다. 전국의 19세 이상 시민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중국군이 진주하자 휴전에 대한 여론이 180도 바뀌었다. 송아현이 말을 이었다.
“미국에 대한 여론도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어요. 미국이 중국군 북한 진주를 비밀리에 요구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좌익에서인가?”
“동방뉴스 측에서는 우익 보수층에서도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미국이 억울한 부분도 있겠는데.”
“현실적으로 북한이란 괴물이 중국의 한 개 성(省)으로 되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관리하기 쉽거든요.”
“이봐, 한미연합사의 미군들 처지를 생각하고 말해, 그 사람들 잠도 못 자고 같이 싸우는 중이야.”
“이때 밀고 올라가야 합니다.”
뱉듯이 송아현이 덧붙였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요.”
그러자 입을 막 벌렸던 홍동수가 다시 다물었다. 지금 북한 땅에서 실종 상태가 된 송아현의 애인이며 ‘46영웅’의 지휘관 이동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편집국을 나온 송아현이 복도에 서서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다. 오른손에 휴대전화가 잡혔으므로 송아현은 어금니를 물었다. 휴대전화가 바뀌었다. 계엄군 측이 휴대전화를 가져간 것이다. 이동일의 안전을 고려한 것일 테니 별 유감은 없다. 그러나 허전하고 외롭다. 창가로 다가선 송아현이 북쪽 하늘을 보았다. 오늘은 하늘이 맑다.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점이 떠 있을 뿐이다.
불에 탄 고속도로 검문소를 네 대의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통과했다. 그러나 탑승자는 모두 긴장하고 있다. 길가에 10여 구의 인민군 시체가 뒹굴고 있는데다 부서진 막사에서 아직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전투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이곳이 2군단 지역이요.”
주위를 둘러보며 강성일이 말했다.
“경비대가 반란군 습격을 받은 것 같은데.”
멀어져가는 막사를 힐끗 뒤돌아본 강성일이 말을 이었다.
“뒤쪽 창고가 약탈당했어. 정규군 경비대 창고는 양곡이 충분히 있으니까 그것을 노린 것이지.”
그때 운전병이 소리치듯 보고했다.
“좌측 길가에 인민군이 있습니다!”
머리를 든 이동일이 앞쪽의 좌측에서 흩어지는 일단의 인민군을 보았다. 대충 20여 명, 그중 절반은 제각기 짐을 들었는데 흰색 쌀포대다.
“저놈들이군.”
강성일이 잇사이로 말하더니 지시했다.
“통과!”
그러자 선두 장갑차는 더 속력을 내었고 좌측 길옆으로 흩어진 인민군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길에서 30m쯤 떨어진 개울가에 어지럽게 엎어지고 쪼그리며 은폐하던 인민군 무리가 스쳐지나는 차량을 본다. 만일 그들이 공격 자세를 취했다면 한바탕 전투를 치러야만 했을 것이다.
“저놈들이 우리한테 길을 틔워준 셈이구먼.”
차량 네 대는 이제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달리고 있다.
“현재 33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위성사진에서 시선을 뗀 상황장교 존 크로스 중령이 보고했다.
“한 시간 전에는 47곳이었는데 22곳의 상황이 종결되었고 한 시간 사이에 8곳에서 새 전투가 일어난 것입니다.”
크로스가 컴퓨터를 두드리더니 모니터를 읽는다.
“현재까지 반란군 준동 지점은 277곳, 북한 전역에 퍼져 있습니다.”
크로스 뒤쪽에 선 지휘관들은 벽에 붙은 상황판을 응시한 채 아직 입을 열지 않는다. 한미연합사 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 부사령관 이성호 대장,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 대장, 육참총장 조현호 대장 등은 모두 어젯밤에 이곳에서 지냈다. 잠을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모두 멀쩡한 모습이다. 이윽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우드워드다.
“그렇다면 전투가 늘어나는 셈인가?”
“예, 아침 7시 이후로 한 시간당 10%가량 늘어나고 있습니다.”
크로스가 대답하자 구석에 서 있던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이 거들었다.
“교전 상대는 대부분 보위부, 후방 군단의 보급대, 파견대였는데 그중 몇 건은 전연지대 군단 파견대, 경비대를 기습한 경우도 있습니다.”
해리슨이 레이저로 상황판의 황해북도 평산 근처 고속도로를 가리켰다. 그곳에 붉은 점이 켜져 있었는데 교전이 있었다는 표시다. 30분쯤 전만 해도 그 붉은 점이 교전 중이라는 표시로 깜박였다. 지금은 끝난 것이다.
“이곳이 2군단 관할 고속도로 경비중대였는데 반란군의 기습을 받아 전멸했습니다. 이제 반란군은 전연지대 근처까지 습격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우드워드가 상황판을 둘러보다가 불쑥 묻는다.
“그, 46명은?”
그때 뒤쪽에 서있던 해병사령관 정용우 중장이 퍼뜩 머리를 들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우드워드는 그들을 ‘히어로들’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자 크로스가 컴퓨터를 조작해서 상황판 한 지점을 확대시켰다. 봉산 교외에 위치한 이동일의 은신처다. 확대한 막사를 보면서 크로스가 대답했다.
“09시 이후로 모두 막사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사령관님.”
정확히 말하면 09시15분부터다. 08시45분부터 09시15분까지 30분 동안 위성 교대로 공백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우드워드가 머리를 돌려 합참의장 장세윤을 보았다.
“김정일이 아직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까?”
대통령 박성훈의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장세윤이 눈만 껌벅였을 때 옆에 서 있던 연합사 부사령관 이성호가 대신 대답했다.
“대통령께서 한 번 전화통화를 시도하셨다가 불통이 되었을 뿐이죠. ‘아직도’라는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상황판 앞에서 떠난 정용우가 벽쪽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 박진상이 다가오더니 옆에 앉는다.
“이 대위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요?”
낮게 묻자 정용우가 힐끗 주위를 보고나서 말했다.
“평산 근처에 가 있을 거요. 이젠 위성도 표적을 놓친 상태라 나도 연락을 해봐야 돼.”
“위성 판독관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 대위가 잘 빠져나온 것 같긴 한데.”
“이젠 반란군이 되어서 돌아다녀야겠지.”
혼잣소리처럼 말한 정용우가 길게 숨을 뱉는다.
“군소리 한마디 않고 사지로 들어가는 그놈들한테 미안해.”
7월26일 오전 11시30분, 개전 24시간40분25초 경과.
대통령 박성훈이 전화기를 귀에 붙이면서 호흡을 조절한다. 이곳은 산본장 지하에 마련된 전시(戰時)행정부 벙커. 테이블 주위에는 비서실장 한창호, 안보수석 주명성, 국방장관 임기태까지 둘러서 있다. 박성훈은 오늘 새벽에야 오산 한미연합사령부 지휘벙커에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예, 박성훈입니다.”
박성훈이 송화구에 대고 말했다. 상대는 김정일. 이번에는 김정일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예, 대통령 각하. 김정일입니다.”
김정일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갑자기 박성훈은 가슴이 찌르르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왠지 안타깝고 서글프고 외롭다는 분위기가 덮인 것 같다. 그러나 턱을 든 박성훈이 대뜸 말했다.
“위원장님. 중국군 진입은 유감입니다.”
“나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바로 말을 받은 김정일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북조선 상황을 알고 계시지요? 군부는 세 쪽으로 나누어졌고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반란군에게 전력을 소모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
“이 난국을 수습할 수 있는 건 중국군뿐인 것 같습니다.”
“수습하고 물러갈까요?”
다시 불쑥 박성훈이 물었지만 김정일은 이번에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김경식이 중국식 개방을 내걸고 패거리를 끌어 모았다는군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지만 박성훈이 말을 잇는다.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이 조선성(朝鮮省)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건 시중의 소문입니다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아버님인 고(故) 김 주석님께서 항일투쟁을 하며 겨우 이룩하신 그 업적이 다시 허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허, 그럴 리가요.”
헛웃음 소리를 낸 김정일이 서두르듯 말했다.
“나는 대통령각하께 중국군이 어쩔 수 없이 진입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한 겁니다. 이 상황이 정리되면 중국군은 철수할 것입니다. 따라서 휴전 상태도 지켜질 것이니 한국군도 가볍게 움직이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잘 수습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전화 끊습니다.”
그러고는 전화가 끊겼으므로 박성훈이 머리를 들고 앞에 선 세 각료를 보았다. 그들도 모두 스피커를 통해 통화 내용을 다 들은 것이다.
“어때요? 감상이?”
박성훈이 묻자 먼저 안보수석 주명성이 대답했다.
“김정일과 시진핑의 통화 내용을 들으면 철군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시진핑은 김경식의 손을 쥐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정일의 지금 이야기는 허장성세일 뿐입니다.”
미리 정리해놓듯 조목조목 메모 내용을 읽으며 말했을 때 비서실장 한창호가 이었다.
“지금 가장 절박한 상태가 된 세력이 김정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한 내용에 알맹이가 없습니다. 중국군은 곧 철수할 것이니 한국군이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는 부탁을 하려고 전화를 한 것일까요?”
그때 국방장관 임기태가 테이블 앞으로 바짝 붙어 섰다.
“지금 북한의 세력 모두가, 중국군까지 가장 위협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로 삐라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삐라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박성훈의 시선을 받은 임기태가 말을 잇는다.
“그 삐라에는 중국군을 공격하라는 녹음테이프까지 들어 있습니다. 김정일이 삐라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했을까요?”
그러자 박성훈이 쓴웃음을 짓는다.
“내 대답을 들으려는 질문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정색한 채로 임기태가 덧붙였다.
“이 통신은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까지 다 듣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김정일은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겠지만 삐라 이야기는 했어야 합니다. 중국군이 곧 철수한다고 말할 정도라면 말씀입니다.”
“그것이 암시란 말인가?”
“중국군에 대한 불만 같습니다.”
그러자 박성훈이 의자에 등을 붙이며 말한다.
“과연 국방장관은 다르시군. 하지만 기다려 보십시다. 우리야 급할 거 없으니까.”
7월26일 낮 12시 정각, 개전 25시간10분25초 경과.
상황판을 올려다본 박우종 상장이 참모에게 지시했다.
“충원할 필요 없어, 놔둬라.”
“예. 참모장 동지.”
대좌 계급장을 붙인 참모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다시 묻는다.
“구산리의 보급대는 반군을 격퇴했지만 병력의 3분의 2가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곳에는….”
“보급대 창고는 괜찮나?”
박우종이 말을 끊고 묻자 대좌가 시선을 내렸다.
“창고는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그럼 충원할 필요 없잖아?”
목소리를 높인 박우종이 몸을 돌렸다. 평산의 2군단사령부 벙커 안이다. 군단장 김경식이 평양 근교의 제55호위대 벙커로 가 있었기 때문에 군단 벙커는 참모장 박우종이 지휘하고 있다.
“군단장 동지께 보고할 내용을 정리해오라우.”
안쪽 테이블에 앉은 박우종이 소리쳐 말한다. 전연지대의 제2군단은 최정예 군단이다. 4개 군단이 전연지대에 늘어서 있지만 2군단의 전력이 가장 강하다. 그것은 남북한전쟁 발발시 2군단이 서울 진입을 맡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의자에 등을 붙인 박우종이 상황판을 바라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저 반란군 새끼들도 이제 중국군이 내려오면 꼬랑지를 내리게 돼.”
중국군을 부른 것은 군단장 김경식이다. 이제 북조선의 실권은 중국군과 2군단이 쥐게 되었다. 김경식의 오른팔인 박우종은 심호흡을 했다. 이제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김씨 일족은 이곳에서 처형되지 않는다면 중국으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그때였다. 벙커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박우종은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이제는 의자가 흔들리면서 옅은 진동음도 들렸다.
“뭬야?”
하고 박우종이 물었을 때였다.
“쿠쿠쿵!”
둔하고 굵은 폭음이 울리더니 벽에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책상 위를 덮는다. 놀란 박우종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뭐냔 말야!”
박우종이 버럭 고함을 쳤을 때였다.
“콰콰쾅!”
이번에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벙커 옆쪽의 벽이 무너지면서 박우종의 몸을 덮쳤다. 박우종의 몸은 시멘트 더미에 묻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때 다시 폭음과 함께 상황실 안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포탄이 상황실을 직격한 것이다.
“됐다!”
RPG7V를 개량한 RPG77은 북한의 최신형 휴대용 미사일 발사관이다. 강성일이 RPG77을 쥐고 일어섰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그가 방금 마지막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철수!”
강성일이 소리치자 옆에 엎드려있던 이동일이 몸을 솟구쳐 일어섰다. 150m쯤 앞쪽 군단사령부 벙커는 화산 분화구처럼 되어서 검붉은 연기를 내뿜고 있다. 주위에 엎드린 대원들이 따라 일어섰고 신호를 받은 옆쪽 능선의 부하들도 움직이고 있다. 강성일이 데려온 10여 명의 부하는 모두 RPG77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정예군이었다. 명령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명사수였다.
이동일은 강성일을 따라 뛰었다. 2군단사령부 벙커가 함몰된 것이다. 좌우에서 20여 발의 미사일을 맞은 벙커는 지하 20m 깊이에 있었지만 입구부터 파괴되더니 차례로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이 해체되고 나서 가라앉아 대폭발을 일으켰다. 지근거리에서 열린 입구를 뚫고 들어간 것이어서 벙커가 수십m 깊이에 있다고 해도 무용지물이다. 강성일은 벙커 격파 방법을 알고 있었다. 500여 m 숲길을 달려 군단사령부 외곽으로 나왔을 때는 10분쯤 후였다. 가쁜 숨은 몰아쉬면서 강성일이 이동일에게 다가왔다.
“폭발이 컸는데 보았겠지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강성일이 헐떡이며 물었다.
“봤을 겁니다.”
역시 헐떡이며 말한 이동일이 아직 햇살이 따가운 하늘을 힐끗 보았다. 위성을 말하는 것이다. 주위로 병사들이 모여들고 있다. 지친 얼굴들이지만 눈이 번들거린다.
“인원 파악!”
옆쪽에서 선임하사가 악을 쓰듯 소리쳤다. 이곳까지 오는데 두 번 전투를 치렀고 사상자가 4명이다. 그래서 해병대는 33명으로 2군단 사령부를 공격했다. 이곳에서는 총격전이 짧았는데 다 돌아왔는가?
그 시간에 오산의 한미연합사 벙커 상황실에서는 환성과 탄성이 그치면서 제대로 된 대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소리치듯 말한다. 먼저 우드워드 대장이 소리쳐 묻는다.
“미사일을 쏜 것을 보면 정규군 같아! 어느 부대야?”
“지금 철수하고 있습니다.”
위성사진을 보면서 해리슨 참모장이 소리 높여 대답했는데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다.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장군 하나가 소리쳤고 또 누가 거든다.
“몰사당했을 것입니다.”
“김경식이는 저곳에 없겠지?”
우드워드가 세 번째 같은 말을 물었고 이번에는 해리슨이 정확히 대답했다.
“예, 하지만 2군단 수뇌부는 몰살당했습니다. 이제 2군단은 머리 잃은 뱀 꼴이 되었어요.”
“도대체 어느 부대야?”
“근처 직할대인 것 같습니다.”
“미사일을 20발이나 쏘았어. 저것 RPG77 최신형이 분명하지?”
“그렇습니다.”
“저것 봐. 트럭에 타고 빠져나가는군. 모두 네 대야!”
그러고는 우드워드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테이블에 앉는다.
“자, 전략!”
우드워드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2군단사령부가 붕괴된 상황에서의 전략이 필요하다! 다 머리를 굴려봐!”
우드워드가 소리를 지르는 동안 해병사령관 정용우, 육본작참부장 박진상이 벽 쪽에 서 있는 합참의장 장세윤, 육참총장 조현호 앞으로 다가갔다. 두 대장은 우연인지 똑같이 팔짱을 끼고 서서 두 중장을 맞는다.
“잘했어.”
먼저 장세윤이 정용우에게 말했다.
“해병대 과연 대단하다.”
“감사합니다.”
자주 듣는 칭찬이라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정용우가 갑자기 주르르 눈물을 쏟는다. 그러고는 제 눈물에 놀라 황급히 손등으로 얼굴을 닦고는 눈을 치켜떴다.
“37명이 이번 작전에 투입되었다는데 얼마나 손실을 입었는지 모르겠네요.”
“훌륭해.”
이번에는 조현호가 말했다.
“이것으로 전황이, 아니, 역사가 바뀔 거야. 대단해.”
“미군 측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지?”
하고 장세윤이 정색하고 묻는 바람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 대답은 박진상이 했다.
“예, 모르고 있습니다. 이동일이 아직 봉산에 있는 줄로만 압니다.”
“조심해, 그리고.”
힐끗 미군 쪽에 시선을 준 장세윤이 목소리를 더 낮췄다.
“설령 발각되더라도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일로 하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중국군 진주를 보면서 미군과 한국군 지휘부 사이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어도 이질감이 쌓이고 있다. 미군은 중국군 진입으로 전면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안도감을 갖는 반면 한국군은 중국군 때문에 또다시 통일의 기회가 무산될 것 같다는 분노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군에 대한 양측 감정을 간단히 표현하면 호감과 증오다. 한국군에서는 증오심을 품고 있다. 그리고 여론도 마찬가지. 그래서 장세윤까지 이동일의 비밀공작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7월26일 오후 12시30분, 개전 25시간40분25초 경과.
눈을 치켜뜬 김경식이 전화기를 귀에 붙이고 소리쳤다.
“백 중장, 알았나! 동요하지 마라! 이제 모든 명령은 내가 직접 내릴 테니까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된다!”
“예, 군단장 동지.”
대답한 사내는 2군단 산하의 제17사단장 백기승 중장이다. 김경식은 지금 여섯 번째로 지휘관과 직접 통화를 한다. 10분쯤 전에 군단사령부 벙커가 화산 분화구 모양으로 붕괴된 후에 김경식의 흥분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제일 먼저 수습해야 할 것이 군단의 재정비다. 전화기를 귀에서 뗀 김경식이 핏발 선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각 부대 지휘관 단속은 끝났다. 2군단의 주전력은 보병사단 5개와 전차여단 1개인 것이다. 그때 김경식의 시선과 부딪친 대좌 하나가 말했다.
“4군단 소속 제85 미사일전대가 이번 남조선군 공격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놈들일지도 모릅니다.”
상황실 안이 조용해졌고 대좌의 목소리가 시멘트벽을 울린다.
“또 배천의 제2여단 미사일전대가 올라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주의 제4군단사령부에는 군단장 우장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군단 사령부 벙커를 공격한 것은 4군단 병력이 확실하다.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우장선이 특공대를 보낸 것이다.
“좋아.”
마침내 김경식이 잇사이로 말한 순간에 옆쪽에 서 있던 심철 상장이 와락 긴장했다. 안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무력부장 성종구도 늘어진 눈시울을 치켜 올렸다. 김경식이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한다.
“정전이 되기 전에 내 전력을 약화해 주도권을 쥐겠다는 수작인 것 같은데 당하고만 있다면 사기에 영향이 있지.”
그러고는 김경식이 앞에 선 대좌에게 지시했다.
“제437미사일전대를 불러.”
“예, 군단장 동지.”
“해주 4군단사령부 벙커를 집중 포격하라고 해.”
“예, 군단장 동지.”
“모든 화력을 동원하도록! 미사일을 한 발도 남기지 말고 쏘라고 해!”
“예, 군단장 동지.”
그때 성종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이보오, 김경식 대장. 그렇게 되면 전면전이야. 4군단과 2군단이 붙게 되면 5군단과 1군단은 가만히 있을 거 같은가?”
“전력은 우리가 강합니다.”
김경식이 쏘아붙이듯 말을 잇는다.
“1 ,2군단은 정예요! 그깐 놈들은 상대가 안 됩니다!”
그 말은 맞다. 1, 2군단은 4, 5군단보다 격이 높고 무장도 잘 되어서 1군단장이 동부전선사령관, 2군단장인 김경식이 4군단을 지휘하는 서부전선사령관이었다. 그런데 4군단장 우장선이 김정일에게 붙으면서 친위대 행세를 한다. 어깨를 편 김경식이 상황실을 둘러보았다. 이제 김경식의 자세에는 권위까지 풍긴다.
“속전속결이야! 놈들이 우리가 감히 반격해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 등을 찌르는 것이라고! 그리고 절대로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아! 심장이 약한 놈이 먼저 나가떨어지게 된다고!”
전화기를 귀에 붙인 김정일이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이보시오, 사령관. 난 2군단사령부를 공격하지 않았소. 그러니 김경식에게 먼저 해명할 필요도 없단 말이오.”
김정일이 말하는 동안 주위에 둘러선 장군들은 숨까지 죽이고 있다. 지금 김정일은 중국군 진주군사령관 후성궈의 전화를 받고 있다. 그때 후성궈가 말했고 통역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위원장 동지. 김경식 대장이 곧 보복 공격을 해올 것 같습니다. 북한군끼리의 전쟁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군이 와 있으니 이젠 마음 놓고 전쟁을 하는 거지, 남조선군이 쳐들어올 걱정은 없으니까 말이요.”
대뜸 말을 받은 김정일이 의자에 등을 붙이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웃는다. 웃는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통역이 중국어로 말하는 동안 김정일이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를 보았다.
“4군단장한테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하시오. 저 미친놈이 날뛰기 전에 말이오.”
“예, 지도자 동지.”
몸을 돌리는 전백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시궁창에 빠진 것 같은 표정이다. 그때 후성궈의 중국어가 끝나더니 통역이 말했다.
“위원장 동지, 이 분란을 즉각 중지할 방법이 있습니다. 제 충고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말하시오.”
짧게 대답했더니 곧 후성궈의 목소리가 신중해졌다. 그리고 통역도 신중하게 말한다.
“위원장 동지, 위원장 동지께서 잠깐 동안만 중국에 가 계시지요. 응낙하신다면 저희 중국군이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한미 양국에도 통보해서 안전을 확보해드리겠습니다. 김경식이 장난을 친다면 그 즉시로 멸망할 것입니다.”
한국어 통역이 끝났으나 김정일은 눈을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고 넓은 상황실 안에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12시40분을 가리키고 있다.
개전 25시간50분25초가 지났다.
425기계화군단이 전연지대에서 훨씬 후방인 평안북도 정주에 배치된 이유는 한국군 공수부대의 후방 교란 작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둘째는 서해안을 돌아 평양 후방으로 진입해온 상륙부대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시 노르망디상륙작전과 6·25 때 평양 북방으로 낙하된 공수부대에 충격을 받아 설립되었다는 말이 있다. 후방에 위치해 있지만 425군단도 정규 기계화 군단이다. 기계화 보병여단 5개를 주축으로 편성된 기계화군단은 각 여단에 1개씩 전차대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군단장 박정근은 정주의 군단사령부에 5개 여단의 전차대대를 모아 전차전 훈련을 하던 중에 이번 전쟁을 만났다. 그래서 사령부 서쪽 황무지에는 150대에 가까운 전차가 대기 중이었다.
“군단장님. 고문관이 전차를 부대로 돌려보내라는데요.”
참모장 윤성 중장이 말하자 박정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두 번째 재촉을 하는 것이다. 창가로 다가선 박정근이 황무지를 보았다. 황무지 한쪽이 전차로 가득 차 있다. 검은 차체가 위압적이다. 소련제 T-64를 개량한 천마호는 125㎜ 할강포를 탑재한 전투중량 40t, 750마력으로 도로주행속도는 시속 70㎞, 7.62㎜ 기관총과 12.7㎜ 기관총을 장비하고 있다.
“저것 봐.”
박정근이 턱으로 전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실은 할강포탄만 해도 6000발 가깝게 되겠구먼, 그렇지?”
맞다. 천마호에는 할강포탄의 탑재탄수가 39발이다. 지금 모든 전차는 탑재탄을 가득 채워 넣고 아직 한 발도 발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산이 맞다. 그때 부관이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섰으므로 둘은 긴장했다. 부관이 박정근에게 무선전화기를 내밀며 말했다.
“군단장 동지, 12군단장입니다.”
이기준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박정근의 이맛살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것을 본 부관의 손이 내려갔다. 그러나 멈춰선 부관이 말을 잇는다.
“제2군단사령부 벙커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폭발했답니다. 참모장 이하 2군단 지휘관 전원이 폭사했답니다.”
“이리 내라.”
그때서야 박정근이 손을 내밀어 전화기를 받는다. 도청이 되고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전화 바꿨습니다.”
박정근이 말하자 이기준의 목소리가 송화구에서 울린다.
“들으셨겠지만 2군단 평산 지휘부는 미사일 공격을 받아 괴멸했습니다.”
“누가 했습니까?”
대뜸 박정근이 물었고 이기준도 바로 대답했다.
“주석궁 지시를 받고 특공대가 움직인 것 같소.”
“잘돼가고 있구먼.”
박정근이 잇사이로 말하고는 묻는다.
“그런데 왜 전화하신 거요?”
“조금 전에 우리가 감청을 했소.”
잠깐 뜸을 들였던 이기준이 말을 잇는다.
“중국 진주군 사령관 후성궈가 주석궁에 있는 위원장한테 조선을 떠나라고 하더군요. 김경식이 4군단을 공격하려는 것을 겨우 말렸다고 했소. 조금 전에 두 번째로 독촉 전화를 하면서 그럽디다.”
“….”
“지금 북조선 전국에서 노농적위대, 교도사단, 청년근위대까지 들고 일어나 무정부 상태가 되어 있소. 정규군단만 제 구역을 지키고 있을 뿐이오.”
“….”
“위원장을 내보내면 중국군과 김경식이 조선 땅을 통치할 수 있을 것 같소?”
“요점을 말하시오.”
갈라진 목소리로 박정근이 말했을 때 이기준은 짧게 웃는다.
“이렇게 웅크리고만 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군인답게 한번 움직여보지 않겠소? 내가 할 말은 그뿐이오, 그리고.”
이기준이 잊었다는 듯이 덧붙였다.
“동무가 움직이면 나도 즉시 따르겠소.”
7월26일 13시10분, 개전 26시간20분25초 경과.
현재 인원 39명. 강성일 중좌가 지휘하는 북한군 12군단 소속 특수정찰대원 8명. 그리고 이동일 포함 해병이 31명이다. 이동일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은 조한철을 보았다. 조한철은 허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평산의 2군단사령부 벙커를 공격하고 철수하는 도중에 당한 것이다. 응급치료를 받아 허리에 압박붕대는 감고 있었지만 출혈이 심해서 얼굴이 창백했다. 조한철이 나중에야 부상당한 사실을 말했기 때문에 치료가 늦은 탓도 있다.
“조 중위, 조금만 견뎌. 봉산 교외에 군단 의무지대가 있다니까 그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다.”
이동일이 말했지만 말끝에서는 외면했다. 의무대가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봉산 동쪽으로 20㎞쯤 떨어진 국도변이다. 오전 9시에 37명이 출발한 해병은 제2군단사령부에 도착했을 때는 33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31명, 그중 3명이 부상자다.
“중대장님.”
조한철이 창백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런데 부탁이 있습니다, 중대장님.”
“뭐냐?”
“의무대가 없으면 절 그냥 데려가주십시오.”
“어디로 말이냐?”
“막사로 말입니다.”
봉산 교외 보급대 건물을 말하는 것이다. 막사에는 최 하사를 포함한 9명의 해병이 남아 있다.
“알았다.”
막사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므로 선뜻 대답했던 이동일이 문득 머리를 돌려 조한철을 보았다. 압박붕대 밖으로 피가 배어나와 있다. 출혈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때 도로 정찰을 나갔던 강성일이 부하들과 함께 다가왔다. 국도는 도처에 반란군이 바리케이드를 쌓아놓고 도로를 차단해놓았기 때문에 수시로 멈춰서 전방 정찰을 해야 한다.
그 시간에 김정은은 상황판 앞에 서 있다가 문득 옆을 지나는 장군을 불러 세웠다. 소장 계급장을 붙인 50대 장군은 호휘총국 소속이어서 안면이 있다.
“민 소장, 반란군은 진압해야 하지 않소?”
불쑥 물었더니 소장이 눈을 껌벅이며 김정은을 보았다. 주석궁 상황실 안은 여전히 장군들로 들끓었지만 조용하다. 안쪽 테이블에 김정일이 전백준 등 군 고위층과 당 간부까지 모아놓고 앉아 있었지만 회의 중은 아니다. 그때 김정은이 다시 물었다.
“왜 지휘부에서 위원장 동지께 반란군 진압을 건의하지 않는 거요? 나는 그것이 이상하오.”
질책이다. 이런 질책을 받는다면 당연히 온몸을 굳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야 정상이다. 그때였다. 소장이 시선을 들고 똑바로 김정은을 보았다.
“대장 동지께서 위원장 동지께 건의해보시지요.”
소장의 시선을 받은 김정은이 눈만 껌벅였다. 전쟁이 일어난 지 만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김정은은 철저히 소외당했다. 평시에는 지도를 받으려고 군과 당 간부들이 줄을 설 정도였는데 단 한 명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 순간 또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김정은이 망설이는 사이에 소장이 몸을 돌려 가버린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쪽에서 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가버렸다. 머리를 돌린 김정은이 안쪽 테이블을 보았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 김정일도 그렇다. 전쟁이 일어난 후에 모든 일을 독점해버렸다. 자신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김정은을 업신여기지 않겠는가?
7월26일 13시30분, 개전 26시간40분25초 경과.
“이제야 부대로 돌아가는군.”
쓴웃음을 지은 왕이안 중장이 옆에 선 위밍 대교(大校)를 보았다. 캐터필러의 소음이 컸으므로 왕이안은 목소리를 높였다.
“저런 것들이 무슨 전차라고, 저기 매연 나오는 것 좀 봐.”
전차 뒤로 검은 매연이 마치 불이 난 것처럼 뿜어나오고 있다. 불량 디젤유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 웃은 위밍이 옆에 세워둔 99식(式) 전차의 철갑판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보다 30년이 뒤져 있지요.”
99식 전차는 2000년대부터 배급된 최신형으로, 1970년대에 보급된 T-64의 개량형인 북한군 전차 천마호와 30년 차이가 나는 것은 맞다. 왕이안 중장이 지휘하는 제16집단군 소속 4장갑사단은 3개 전차연대로 구성되었는데 각 연대는 3개 전차대대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각 대대가 30대의 99식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9개 대대의 전차 대수만 270대다. 거기에다 99식 전차는 54t의 중량에 125㎜ 할강포가 레이더로 조준 사격되며 주행 속도는 시속 80㎞, 1분에 8발을 발사하는 가공할 전력을 갖추고 있다. 왕이안이 앞쪽 길로 끝없이 이어져가는 북한 425군단의 전차들을 보면서 다시 소리쳐 말했다.
“425군단장이 결국 김경식 편에 붙은 모양이군.”
“어쩔 수 없지요.”
작전참모 위밍도 소리쳐 말을 잇는다.
“어차피 김정일은 이 땅을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경식이 조선성 성장(省長)이 되는 것으로 이 전쟁은 끝나게 될 테니까요.”
그때였다.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렸으므로 둘은 번쩍 머리를 들었다. 이 파공음은 너무도 귀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꽈앙! 꽝!”
옆쪽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울리면서 99식 전차 한 대가 폭발했다. 놀란 왕이안과 위밍이 전차 캐터필러 옆으로 몸을 붙였을 때 다시 폭발음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그들이 몸을 붙인 전차가 폭발한 것이다. 철판 조각들과 함께 허공으로 치솟은 둘은 그 후부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공격입니다!”
그 시간에 오산의 한미연합사 벙커에서 환호성과 함께 외침이 울렸다. 위성 화면에 전차대의 포격전이 선명하게 비치고 있는 것이다. 곽산 근교에 포진했던 중국 제16집단군 소속 4장갑사단이 공격을 받고 있다.
“아이구! 잘한다!”
누군가가 버럭 소리쳤고 미군 장성은 주먹을 치켜들고 환호성을 지른다. 한미 양국군이 함께 소리 지르고 박수를 친다. 평안북도 정주 서쪽에 포진했던 북한 425군단의 전차대는 모두 150대 정도, 그 150대가 각 부대로 철수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중국군 전차대를 3면에서 에워싸고 포격해버린 것이다.
“전멸이다!”
누군가가 다시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기습이라 이것은 마치 도살이나 같다. 더욱이 중국군 전차는 연대별로 한데 모여 정차되어 있는데다 전차병들도 탑승하지 않은 전차가 대부분이다. 지금도 대응사격을 하는 중국군 전차는 한두 대뿐이다.
“저놈들이 기습을 잘한다니까!”
한국군 장군 하나가 버럭 소리쳤지만 이번에는 호응하는 사람이 없다. 북한군 칭찬을 한 것은 맞지만 비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살이군.”
육참총장 조현호가 상황 화면을 보면서 잇사이로 말했다. 아직도 상황실 안은 떠들썩한 환성과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조현호의 얼굴은 굳어 있다.
“중국군은 425군단과 전면전을 벌이지 못합니다.”
옆에 바짝 붙어선 작참부장 박진상이 말했다. 그는 조현호의 말을 들은 것이다. 박진상이 말을 잇는다.
“이것으로 중국 정부는 깜짝 놀라 대책을 강구하겠지요. 김정일도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 옆으로 연합사 참모장 해리슨이 서둘러 다가왔다.
“시진핑이 김정일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가서 들읍시다!”
해리슨이 소리치듯 말한다. 그 순간 조현호와 박진상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이런 친절은 처음이다. 그러나 둘은 동시에 발을 떼면서 위성 화면을 다시 보았다. 북한군의 고물 T-64 개량형 천마호가 절대적인 열세의 전차대수로 중국군 최신형 99식 전차 270여 대를 거의 전멸시키고 있다. 불을 뿜고 있는 전차는 모두 중국 전차다. 대승리다. 벼락같은 기습전으로 지근거리까지 접근해서 철저하게 몰사시켰다. 전차전 역사에 남을 전투가 될 것이다.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해진 박진상이 상황판 시계를 보았다.
7월26일 오후 13시55분(개전 27시간5분25초 경과)이다.
전차전이 일어난 지 20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 시간에 이동일이 차에서 들려 내리는 조한철 중위를 향해 뛰어간다. 이곳은 봉산 교외의 12군단 보급대 막사. 오전 9시에 출발했다가 지금 돌아온 것이다.
“조 중위!”
소리쳐 불렀으나 조한철은 눈을 뜨지 않았다.
“조금 전부터 눈을 뜨지 않습니다.”
같은 트럭에 타고 있던 김 하사가 충혈된 눈으로 이동일을 보았다. 해병들에게 들린 조한철은 막사 안의 마룻바닥에 눕혀졌다. 압박붕대는 피범벅이 되어 있다. 벌써 세 개째 바꿔 감겼어도 그렇다.
“조 중위! 야! 들리나!”
조한철 옆에 앉은 이동일이 다시 소리쳐 불렀을 때였다. 둘러선 해병들을 헤치고 윤미옥이 다가와 조한철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기세가 사나워서 해병들이 주춤거렸고 이동일도 시선을 들었다. 그때 윤미옥이 조한철의 손을 움켜쥐더니 소리쳤다.
“이봐요! 조한철 중위!”
날카로운 외침이 막사 안을 울렸다.
“조 중위! 눈 떠!”
군단 의무지대는 비워 있었던 것이다. 군단본부 의무대로 가려면 봉산 서쪽으로 20㎞를 더 가야만 한다.
“눈 뜨란 말야! 약속을 지켜!”
하고 윤미옥이 다시 소리쳤을 때였다. 이동일은 숨을 삼켰고 둘러선 해병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조한철이 눈을 뜬 것이다. 석고상 같은 조한철의 얼굴에 검은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있다. 그 순간 윤미옥이 울음을 터뜨리며 조한철의 어깨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봐! 떴잖아!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돌아와줘서 고마워!”
윤미옥이 울부짖었다. 조한철이 그런 윤미옥을 똑바로 올려다본다.
“자, 이젠 나하고 같이 가! 군단본부 의무대로 가란 말이야!”
조한철의 입술이 조금 열렸다. 그것을 본 이동일이 틈을 이용해서 소리쳤다.
“야! 말할 필요 없다!”
여러 가지 단어가 머릿속을 떠돌아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말이 나와버렸다. 조한철은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말할 기력도 없는 것 같다. 그때 윤미옥이 다시 말한다.
“사랑해! 이제는 떨어지지마! 내가 옆에 있어줄게!”
숨을 들이쉰 이동일은 조한철의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얼굴은 평온하다. 입을 조금 벌린 채 있는 것이 가볍게 웃는 것 같다. 둘러선 병사들도 어느덧 숨을 죽이고 있다. 막사 안은 조용해졌다. 끝 쪽에선 강성일 중좌의 얼굴도 보인다. 어느새 늙은 노농적위대원 오규성도 와 있다. 이윽고 윤미옥이 몸을 굽혀 조한철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본다. 그러자 초점이 멀어진 조한철의 눈동자가 윤미옥의 시선과 맞춰진 것 같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막사 안에 다시 윤미옥의 말이 울린다.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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