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딴지일보 필독
(1) 짓밟힌 소녀
intro
쉴 틈을 주지 않는 가카 때문에, 국내유일의 민족정론지인 본지가 그분의 스토커 노릇을 해온 지도 어언 3년이 되었다. 본 기자도 주로 정치와 사회분야에 대한 논평을 내느라 본격 연재물을 오랫동안 쉰 참이다. <축구문화사>는 책을 내면서 멈춘 상태고, 야심차게 시작한 <어른을 위한 교양 공룡>시리즈도 최근작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의 상태라 독자열분덜의 면상을 뵐 면목이 없다.
아 씨바...
본 시리즈는 그간의 태만을 바로잡아 심기일전하기 위해, 또한 다음의 프로젝트를을 시작하기 전에 가벼운 연습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 기획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도 제대로 써내지 못한다면 올해의 계획들을 어찌 실현하겠는가 싶다. 이 이야기는 역사상 최대의 사이즈를 자랑하는 위인이자 악당인 테무진, 혹은 칭기즈칸에 관한 것이다.
이 심기일전용 연재물의 주제가 왜 테무진이냐. 물론 일차적으로는 걍 내가 쓰고 싶어서다. 하지만 독자열분덜을 위해서도, 굳이 테무진인 이유가 마련되어있긴 하다. 역사속 위인들 중에 테무진처럼 힘들고 비참한 시절을 오랫동안 보낸 인물은 드물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은 진정 테무진 같은 이를 위해 있는 말이다. 쥐가 있으면 쥐구멍이 생기게 마련인데, 쥐가 국가지도자가 되면 온 나라가 쥐구멍이 된다. 대선이 2년 남았다. 테무진의 쥐구멍 시절을 상기하며 불가능이란 없음을 독자열분덜과 느끼고 싶다.
테무진은 일생 대부분의 기간 동안 <나는야 세계를 정복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가 되어야지! 원래 난 그릇을 크게 타고났으니까~>하는 만화적인 야심을 품지 않았다. 테무진 뿐만 아니라, 이런 사고방식은 대체로 만화에만 존재한다. 혹은 만화처럼 유치한 인간에게나...
테무진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떨쳐내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정복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설계자'였다. 암컷 수백마리를 차지한 수컷 바다코끼리마냥 테스토스테론이 마냥 넘쳐서, 부하들은 충성을 맹세하고 적들은 벌벌 떤 그런 단순무식한 양반은 아니었단 얘기다.
테무진은 몽골사회와 몽골군이 이길 수밖에 없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몽골군은 테무진 개인의 '지도력'이 아니라, 그가 만들고 관리한 시스템에 의해 성공한 것이다. 이거야말로 가카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다. 서류 좀 보고 행정 좀 해라. 모르면 가만히 있고.
경제는 가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지, 가카가 가끔 시장에 출현해 군것질한다고 돌아가지 않는다. 외교는 '두 사람이 척 보는 순간 서로의 마음을 알아서' 해결되지 않는다. 국민은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한다고 해서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대중은 특정한 인간을 지지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그를 통해서 대변되는 '시스템' 즉 체제를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물론 자신에게 적대적인 시스템인데도 속아서 지지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에게 유리한 시스템이지만 정의롭지 못하다고 믿기에 반대할 수도 있다.). 테무진이 만든 시스템은 몽골인들을 속일 필요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누구에게나 공정한, 충성을 바칠 가치가 충분한 시스템이었다. 덧붙여 테무진은 평생 동안 부하에게 한 번도 배신당하지 않았다.
테무진은 의외로 부드러운 남자였다. 눈물도 많았고(별 것 아닌 일에도 잘 울었다.)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에도 모르면 모른다고 했다. 그는 중국이나 페르시아의 학자들 앞에서 자신은 글도 못 읽는 무식쟁이라고 솔직히 말하고 조언을 구했다. 실수했을 때는 아랫사람에게도 즉시 미안하다고 했다. 이런 특징들이 누구와 닮았고 누구와 다른지, 가카는 함 생각해보기 바란다.
'칸(Khan)'은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지도자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테무진은 세계를 정복하면서 일생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삶의 대부분을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보냈다. 본 시리즈 <테무진to the칸>은, 테무진이 어떠한 과정에 의해 칸이 되었는지까지를 다룬다.
물론 테무진 칸이 칭기즈칸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칸to the카간>을 쓸 수도 있고('카간'은 '대칸', '칸 중의 칸' 즉 왕이 아닌 황제급 지도자를 뜻하는 동-북-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언어다.), 칭기즈칸이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세계정복자로 설정하고 문명 대 문명의 대결을 벌이게 되는 <칸to the월드>까지 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디까지 쓸 지는 내맘이다.
1
아아...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까지는 아니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마도) 1153년 어느 가을날. 한 소녀를 태운 우차(牛車)가 몽골 초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몽골사람들은 야크와 소를 구분하지 않고 한 단어를 썼다. 따라서 소녀가 탄 수레를 끈 동물이 야크였는지 소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사실 두 동물은 생물학적으로 보면 가까운 친척사이로, 소나 야크뿐 아니라 말, 양, 낙타 등도 키워온 몽골인들에게는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황소나 젖소나 똑같이 소인 것처럼...(사진의 동물이 바로 야크)
소녀가 탄 수레를 호위하는 이는 말에 오른 한 소년. 둘 다 10대 중반쯤 되었는지라, 요즘 우리한테나 소년소녀지, 당시 기준으로는 어엿한 청년과 처녀다. 소녀의 이름은 발음법에 따라 후엘룬, 헐룬, 커어룬, 호엘룬 등 다양하게 부를 수 있다. 여기서는 걍 헐룬이라 부르기로 하자. 소년의 이름은 ‘칠레두’였다.
당시 몽골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다. 저명한 사학자 잭 웨더포드에 따르면, “쇠로 된 등자 하나만 있어도” 마을에서 제일 잘나가는 남자였다. 등자란 말에 오른 사람의 발을 받쳐주는 받침대를 뜻하는 말이다. 훗날 칭기즈칸이 되는 테무진은 자신의 의형제인 ‘자무카’에게 아주아주 귀한 선물을 준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귀한 선물이란 게 겨우, 양의 복사뼈에 쬐그만 놋쇠 조각을 박아 넣은 거였다.
놋쇠조각... 당시 고려에서는 시장통마다 놋쇠그릇이 굴러다녔음을 생각해보면, 이게 선물할 만한 물건으로 통용된 초원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알 수 있다. 아마도 중국 북부쯤에서 매매되거나 약탈된 놋쇠물건 하나가 테무진이 사는 북으로, 북으로 흘러왔을 것이다. 그러면서 원래의 형체를 잃고 해체되고 조각났을 것이다. 그 찌그러진 쇳조각 하나를 박아 넣어서 귀해진 복사뼈였을 것이다. 참고로, 몽골의 아이들은 짐승의 복사뼈를 주사위나 공깃돌로 쓴다.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헐룬과 칠레두가 지나던 곳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곳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그 두 사람이 뭔가 대단한 사람이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소년소녀다. 이 두 사람이 초원 어딘가를 지나갔다...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중요도로 따지면 백 년 전 영국 어디쯤에서 잭과 제인이 산책을 나갔다거나, 독자여러분이 어제 친구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나가 킹가 혹은 폭탄을 만났다거나 하는 일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일이라는 거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역사적 사건은 우연에 의해 폭발한다.
2
두 사람은 결혼식을 하러 소년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둘은 신랑신부였던 것이다. 몽골의 결혼제도(관습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적당하겠지만)는 기본적으로 데릴사위제다.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혼종문화를 갖고 있었던 고구려에도 데릴사위제도가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북방유목민식이었다. 자 그럼 먼저 데릴사위제가 뭔지를 알아보자. 중고등학교 때처럼 “남자가 처가에 들어가는 제도”라고 퉁치고 끝나면 간단하겠지만, 이 암기위주 공식에는 “왜?”가 없다.
전통적으로 결혼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서약이었던 적은 없다. 요건 서양 근대 이후에나 생긴 환상이고, 원래는 그보다는 훨씬 실용적이다. 정략결혼이니 하는 건 나중에 얘기하고, 여기서는 노동력에 대한 것만 집중해보자.
초원의 삶에선 여자가 놀 수 없다. 물론 논다고 해봐야 갖은 가사에 시달리며, 고작해야 본격적으로 근육을 쓰는 험한 육체노동을 피하는 정도지만... 어쨌든 놀 수 없다.
목축을 하고 있는 몽골의 여자아이들
중국과 비교해보면 특히 그렇다. 중국인들(주의해야 할 것은, 주로 중국 ‘남부’문화라는 것.)의 생활을 지켜본 한국 여자들은, <중국여자들은 남자를 어떻게 이다지도 훌륭하게 훈련시켰는지>를 매우 궁금해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에게 차와 아침을 대접한 후, 돈벌어오러 출근하고 열심히 일한 다음 퇴근해서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투정하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아내가 먹을 저녁요리를 준비하는 중국 남자... 여자들끼리 모여 마작이라도 할라치면 집주인 되는 남편은 정성을 다해 웨이터 노릇을 자처한다.
중국 남부 한족문화의 전통적인 부부관계는, 이 문화권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말해준다(물론 중산층 이상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다.). 이런 문화는 남존여비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다. 중국인들은 집안에서 뭔가를 키우는 걸 좋아한다. 인공적인 공간에서 감상하기 위한 물고기가 처음 생긴 나라가 중국이다(금붕어와 잉어를 말한다.). 화분을 처음 발명한 곳도 중국이다. 새장이 처음 만들어진 곳도 물론 중국이다. 분재는 말할 것도 없다.
중국 남자들은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집안에서 난초를 가꾸고 새를 애지중지 키우듯이 ‘아내를 가꾼다.’ 잘 먹이고 잘 입혀서 <감상>하는 것이다. 투정부리는 모습조차도 감상의 대상이다. 전족은 남성의 성적 만족을 위해 여성의 신체를 조작하는 악습이지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이 여자들은 어떤 일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거다.
전족은 <자연을 인공에 가두는> 중국적 취향의 궁극이다.
11세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초원엔 그딴 거 없다. 이 기사의 주인공 헐룬은 자기 아들이 유라시아 대륙의 반을 정복했을 때도 가축의 젖을 짰다. 물론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했을 리는 없다. 일상의 흐름과 생활습관이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초원엔 농경문명의 풍요가 없다. 풍요롭다 하더라도 삶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노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남자들이 수렵과 전쟁을 하는 동안 여자들은 소, 야크, 양, 말, 염소, 낙타와 아이들과 노인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 사람 한 명당 적게는 십 수 마리에서 많게는 백여 마리의 가축이 딸려 있다.
몽골제국이 확장될 때, 남자들이 전쟁할 동안 제국을 관리한 것은 여자였다. 몽골군의 인프라는 가축에서 나온다. 남자들의 전쟁을 여자들이 받쳐준 거다. 늙은 남자와 포로 등 다른 인력도 있었겠지만, 거의 전적으로 여자들이 초원을 ‘돌아가게’ 했다고 보면 된다(덧붙이자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노동의 양과 권리는 비례한다. 몽골도 남존여비 사회였지만, 초원의 여자들은 다른 문화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가 컸다.’ 이와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이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
능숙하게 말을 다루고 있는 여자아이. 네 살이다.
이렇듯 결혼을 한다는 건, 한 여성의 노동력을 공짜로 제공받는 걸 뜻한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수많은 문화권에서 ‘신부값(신부대라고 하기도 한다)’이라는 게 존재한다. 아프리카의 줄루족이나 중동의 유목민들은 가축으로 신부를 데려오는 값을 치렀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물품이나 현금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신부가 지참금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남녀차별이 심한 인도에서 노동의 권리와 의무는 남자에게만 속해 있는 경우가 절대적이다. 따라서 한 집안이 신부를 받아들이게 되면 총 노동력은 그대로지만, 노동력이 책임지는 ‘입’은 하나 는다. 이 평생의 비용을 ‘선결제’하는 것이 바로 지참금이다. 결혼할 때 갖고 온 지참금이 적다고 학대당하는 인도여자들을 다룬 기사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여간 이것도 악습은 악습이다.
여하튼, 동아시아 북방의 유목민들은 신랑 집안이 신부 집안에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딱히 뭐 대단한 걸 주질 않는다. 모피옷이나 칼, 활 따위의 선물을 주긴 하지만, 가축처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선물은 없다. 초원의 생활이 원체 가난하기도 하고, 다른 ‘합리적인’ 대안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이 대안이 바로 데릴사위제다. 신부가 시집가서 평생 제공할 노동력을 조금이라도 보상받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것은, 신랑이 미리 처갓집에서 몸으로 때워서 ‘선결제’하는 것이다. 어릴 때 처갓집에 가서 결혼적령기가 될 때까지 쎄빠지게 일하는 거다(우리나라도 전통적으로 가난한 남자들은 처갓집에서 몇 년간 머슴으로 일하는 풍습이 있었다. 학창시절 때 김유정의 <봄봄> 다들 읽어보셨을 거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데릴사위제는, 초원 유목민들에게 딱 들어맞는 관습이었다.
참고로 전통 유목생활에서 몽골 사람들은 남자아이를 지나칠 정도로 사랑하며 키운다. 가정교육이 이렇게 허술하면 나중에 커서 초원의 양아치가 될 법도 하지만, 어차피 처갓집에서 막노동과 웬갖 잡일에 시달리며 몇 년 간이나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걸 생각해보면 집안에서까지 굳이 엄하게 키울 필요가 없는 거다.
3
고향을 떠나 남의 집에 일하러 온 코찔찔이 소년은 겁에 잔뜩 질려있게 마련이다. 성격이 대담하다 하더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혼자 떨어진데다, 처갓집 어른들 입장에선 몇 년 후에 귀한 딸래미를 뺏끼기 전가지 '뽕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데릴사위로 온 꼬맹이에게 유일한 '내 편'은 신부밖에 없다. 다 큰 처자가 꼬마신랑과 결혼하는 우리나라의 '조혼제'는 고려시대에 몽골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신부가 볼에 바르는 연지곤지도 몽골에서 왔다.). 초원에서 신부는 신랑보다 두, 세살 많은 것이 관례다.
척박하고 일이 많은 초원에서는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기 힘들다. 부부는 운명공동체다. 이 관계는 다른 문화권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긴밀하다. 가축을 어떻게 관리할지, 올 가을엔 어디로 이동해서 천막을 칠 지 부부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한다. 그런데 남자는 여자보다 성장이 늦는다. 초등학생 때 같은 학년의 남자아이들에 비해서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조숙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신랑신부의 나이차이가 말이 두세살이지, 실제로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대여섯 차이가 나게 된다. 남편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기 전까지, 여자가 어른노릇을 하며 가정을 이끄는 셈이다. 우쨌든, 이렇게 나이 차가 나다 보니 신부는 자기 집에 혼자 온 꼬마신랑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꾸중도 하고 콧물도 닦아주며 보살피게 된다.
또한 인구밀도가 적은 데다가 사람보다 가축이 훨씬 많은 초원에서는 게르(천막이자 집을 가리키는 몽골어. 중국식으로는 '파오'라고 한다.)와 게르가 뚝 뚝 떨어져있다. 어린아이의 입장에서는 동년배 친구를 만나기도 힘들거니와, 만난다 하더라도 철마다 목축지를 옮기면서 떨어지기 일쑤다. 우리처럼 학교가면 초글링이 득실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한 게르에서 수 년간 함께 사는 두 꼬맹이는 자연스럽게 소꿉친구가 된다.
뿐만 아니다. 몽골에선 신부가 신랑에게 '성교육'을 시켜주는 게 관습이다. 신부는 적당한 때가 됐다고 느끼면 꼬마신랑에게 가벼운 스킨십부터 시작해 키스 등등을 거쳐 '남자가 잠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직접 가르친다. 자신과 평생 함께 살 사람이므로 정성을 기울이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몽골 남자에게 아내란 소꿉친구이자, 베스트프랜드이자, 누나이자, 어머니이자, 첫 경험의 그녀이자, 동료이자, 가장 중요한 조언자이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런 부부관계는 초원 바깥의 남자들은 상상할 수도 없이 중요하고 긴밀하다.
헐룬과 칠레두도 그런 사이였다. 이미 칠레두는 처갓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신부 헐룬과 함께 자신의 부족인 '메르키트'부족의 영토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돌아가서 결혼식을 올리면, 이제 그도 어엿한 가장이다.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고향땅이다.
몽골의 결혼 청첩장
4
참, 그러고보니 지금 지나치고 있는 이 땅엔 '몽골족'이라는 부족이 살고 있다. 훗날 몽골족은 주변 초원의 유목민들을 흡수해 죄다 '몽골인'으로 만들어버리지만, 그건 나중 얘기다. 당시 몽골족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부족으로, 초원의 북쪽 끄트머리에 간신히 붙어 있었다. 바로 위에는 시베리아 숲이 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이곳, 오논 강가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땅이 워낙 척박해 몽골족 사람들은 가축을 많이 키울 수 없었다. 모자라는 고기는 숲에서 사냥을 해 충당했다. 사냥이란 것도 뭐 대단한 건 아니다. 배고픈 몽골인들은 쥐까지도 잡아먹었다. 그 외 풀밭과 숲에서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닥닥 긁어모았다. 이렇게 배고프게 살다보니 약탈과 강도짓을 하게 된다.
초원에서 약탈은 항상 일어나는 일이지만, 몽골족은 좀 심했다. 사람을 붙잡아 인신매매를 하기도 했고, 여자를 훔치기도 했다. 특히 여자는 중요했다. 이런 헐벗은 부족에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는 별로 없었으니, 여자를 약탈해 아이를 낳게 해야 부족의 머릿수를 유지할 수 있었을 터... 물론 세력이 약해서, 다른 부족이 군대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공격하면 냅다 도망가기 바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었지만, 남들이 봤을 땐 양아치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고려인들)이 북망 유목민들을 오랑캐라고 부를 때, 이 '오랑캐'들은 자신들을 '초원 사람들'과 '숲 사람들'로 나눴다. 예를 들어 한때 금나라를 세웠다가 망한 후 나중엔 청나라를 세우는 여진족(만주족)은 '숲 사람들'에 속했다. 초원과 숲은 생활의 방식이 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부족민들의 눈에, 숲에 붙어있으면서도 초원을 기웃거리는 몽골족은 어정쩡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에 비해 헐룬의 부족인 '올쿠누트'족은 동쪽의 풍요로운 초원에 자리잡고 있었다(올쿠누트 족이 숲 사람들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무척 잘사는 부족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사는 게 괜찮아서인지 미녀가 많기로 소문난 부족이다. 헐룬도 미녀였다고 알려져 있다.
신랑 칠레두의 부족인 '메르키트'족도 몽골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튼실했다. 몽골족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세력이 크고 싸움을 잘해서 시베리아 숲속에 사는 부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5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메르키트족의 땅을 향하는 신랑신부 - 음흉한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한 악당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예수게이'였다.
몽골족은 수십개의 크고작은 씨족으로 이뤄져 있었다. 예수게이는 그 중 '보르지긴' 씨족 출신이었다. 이 씨족 중 '키야드 혈족'의 수장이었다. 혈족이라고 하면 꽤 근사해 보이지만 그래봐야 대가족 정도다. 그러니 가장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주 : 유목문명은 정주문명과 많은 면에서 다르다. 땅과 땅의 경계란 게 없는 초원에서 <내 편>과 <남의 편>은 철처하게 혈통으로 구분된다. 우리 어머니는 밀양 박씨지만, 경상도 사람을 놀리는 유머를 들으면 유쾌하게 웃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다르다. 항상 먼 거리를 이동하며 가축을 치는 사람들에게 '특정 지역의 정체성'이 형성되긴 힘들다. 이들의 정체성은 '함께 이동하는 혈통 집단'에 귀속되어 있다.
또 씨족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혈통 단위다. 예를 들어 나는 '남양 홍씨'의 후손이다. 남양 홍씨는 풍산 홍씨, 당산 홍씨와 먼 친척사이다. 또 남양 홍씨는 '토홍계'와 '당홍계'로 나뉘어 있다. 전국의 홍씨 전체를 몽골족이라고 하면, 예수게이는 홍씨들만 사는 시골 집성촌의 이장님이나 청년회장 정도 되었을 것이다.
예수게이는 쌈 잘하기로 소문난 사내였다. 그래서인지 추종자들도 많았다. 확실히, 다른 부족과 달리 분열되어 지들끼리 치고받고 있던 몽골족 내에서는 주목받는 젊은이였다. 그렇지만 그정도 되는 사내야 초원 전체로 보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예수게이는 사냥을 나온 참이었다. 언덕에 올라 어디 가젤이나 사슴떼가 눈에 띌까 하고 초원을 내려다보는데 결혼적령기를 딱 맞춘 십대 소녀가 있지 않은가?
몽골 사냥꾼. 사냥에 쓰이는 매는 매 둥지를 털어서 새끼 때부터 훈련시킨다.
예수게이는 너무 가난해서 사윗감으로는 낙제였다. 혈족을 먹여살리기 바빠 데릴사위짓을 할 여유도 없었다. 결혼적령기도 훨씬 지나 있었다. 그런데 고작 남자애 하나 딸린 올쿠누트 족의 처녀라니... 이게 웬 떡인가 말이다.
사실 예수게이한테는 소치겔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소치겔은 정식 부인이 아니었다. 아마 어딘가에서 약탈하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득템'한 여자였을 것이다. 둘 사이엔 아들도 하나 있었다. 하지만 아무 상관없었다. 아내, 아니 여자 하나 더 생기면 좋지 뭐.
신부는 소(혹은 야크)가 끄는 수레를 타고 있다. 예비 말은 없었다. 뻥 뚫린 초원에서는 모든 게 속도로 결정된다. 말을 타고 쫓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약탈할 수 있다. 신랑이 자기 말에 신부를 태워봐야 두 사람을 태운 말은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하지만 예수게이는 신랑과 1:1 격투를 할 생각이 없었다. 뭣하러 쓸데없이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신랑신부가 메르키트 족의 땅에 가려면 이틀 이상이 걸린다. 그는 두 사람이 모르게 우회해서 야영지로 돌아와 잠을 잤다. 다음날, 칠레두와 헐룬의 눈앞에 예수게이와 그의 두 형제가 나타났다. 당연히 무장한 상태였다.
여자를 내놔라! 음하하하하
사태를 감지한 칠레두는 신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3:1로 어떻게 싸워 이긴단 말인가? 적당히 집적거리다가 누가 뒤에서 활로 쏴죽이면 사냥 끝이다. 이때 헐룬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나는 잡힌다. 그렇다면 칠레두가 죽고 잡히는 것보다는, 그가 살고 나만 붙들리는 게 덜 비참하지 않겠는가?
헐룬은 칠레두에게 얼른 혼자서 도망가라고 설득한다. 헐룬이 이별인사를 하는 대목은 정말이지 절절하다.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그녀를 헐룬이라고 불러줘요."
그러면서 자기가 입고 있던, 짐승의 가죽 혹은 털로 만든 몽골식 조끼를 벗어서 사랑의 정표로 건네준다. 칠레두는 복수를 맹세하며 메르키트의 땅으로 도주한다. 역사(<몽골비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칠레두는 멀어져가는 헐룬의 모습을 자꾸만 뒤돌아보았다고 한다.
예수게이 일당은 소녀 혼자 남은 수레를 간단히 접수했다. 칠레두는 걍 내버려뒀다. 어차피 남자녀석 따위 관심도 없다. 몽골족의 거주지로 끌려가던 소녀 헐룬은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크고 긴 비명을 질렀다. 이 비명소리의 크기가 역사서에 기록되었을 정도다.
이렇게 헐룬은 나이많고 가난하고 게다가 범죄자인 예수게이와 결혼하게 된다. 말이 결혼이지, 예식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예수게이가 겁탈하고 나서 이제부터 이 여자가 자기 아내라고 선언하는 수준이었을 게 뻔하다. 이런 짓을 해놓고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면 안되는 거다. 예수게이야, 잃을 게 별로 없는 사내였으니 일단 저질러놓고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훗날, 결국 '잃을 게 있는' 그의 아들 테무진이 아버지 대신 보복을 당하게 된다.
한편 우리의 불쌍한 헐룬은 자기 운명을 한탄할 틈도 없었다. 몽골족 남자의 아내로 먹고 살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쥐, 늑대가 남긴 짐승의 시체, 이름모를 새의 알 등 그녀는 사람이 이런 것도 먹을 수 있나 싶은 음식(?)들의 맛을 봐야 했다. 옷도 누더기였을 거고... 소치겔을 밀어내고 '본부인'자리를 차지한 게 그나마 다행일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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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게이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꾸준히 자신을 따르는 전사들을 모으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어느 정도의 군사력은 가지게 됐다. 아마 수십 명에서 수백명 정도의 규모였을 것이다.
그런데 혈족집단은 자식을 낳고 친척들과 합치면서 덩치를 불리게 마련이다. 예수게이는 어떻게 순식간에 세력을 불렸을까? 초원에는 게르 하나에 의지해 떠돌아다니는 작은 가족과 '낭인'들이 많았다. 습격과 약탈은 초원의 일상이었다. 이런 폭력 때문에 부족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예수게이는 필시 갈데 없는 사람들, 특히 사냥과 약탈에 할께할 수 있는 남자들을 긁어모았을 것이다.
그럼 이 사람들을 어떻게 부양할까? 가난한 몽골족에게 약탈은 사냥처럼 생계의 일부분이었고, 사실 또다른 사냥이기도 했다. 예수게이는 약탈과 분배를 통해 부하들을 먹여살렸고, 부하들이 늘 수록 더 큰 규모의 약탈에 성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예수게이의 집단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 결합된 운명공동체이자 이익집단이었다. 사람 없고 물자도 없는 몽골족 남자가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비혈통집단.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이 방식이 장차 초원의 정복자가 되는 자신과 헐룬의 아들에게 그대로 계승되기 때문이다.
아, 그러니까 헐룬이 임신했다는 얘기다. 불쌍한 헐룬...
(2)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intro
1편 <짓밟힌 소녀>편에서는 사랑하는 서방님과 함께 시집가는 길에 웬 날강도들한테 당해 몸도 인생도 빼앗겨버린 헐룬의 이야기를 했다. 미녀가 많기로 소문난 올쿠누트 족 소녀 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외모와 스펙을 자랑한 이팔청춘(몽골에서는 여성의 결혼적령기를 대략 15~19세로 보았다. 남자는 14~17세 정도.) 헐룬. 그러나 가난하고 거칠기로 유명한 몽골족의 불한당 '예수게이'에게 납치되어 임신하기에 이르는데...
전편에, 예수게이가 세력을 규합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참고로 이 시리즈는 1편부터 순차적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1편 안 봤으면 빨리 텨가서 보고 오시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초원, 그 중에서도 딱히 별볼일 없던 몽골족. 예수게이는 몽골 부족에 속한 '보르지긴' 씨족의 '키야드' 혈족의 대빵이었다.
일단 몽골족이 뭐가 문제였는지 찬찬이 함 보자.
1
당시 몽골초원(몽골족이 초원을 통일하고 나서 '몽골초원'이 된 거다. 주의하자. 당시 몽골족은 이 초원 끄트머리에 있는 듣보잡 부족이었다.)은, 크게 보면 세 개의 강력한 부족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쪽의 '타타르'족, 서쪽의 '나이만'족, 그리고 초원 가운데를 차지한 '커레이트'족이 그들이었다. 오호라, 이는 곧 공명이 주창한 3개의 솥발과 같으니...
...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물론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천하삼분'과 '가난한 풀밭동네에서 먹고사니즘 삼분'은 격이 좀 다르다. 게다가 몽골초원은 외부의 입김을 받고 있었다. 바로 '동쪽 숲 사람들'인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문제였다.
이동-유목문명의 대척점에 있는 정주-농경문명을 다스리는 중국의 황제(천자)들은 전통적으로 북방 유목민들과 골치아픈 사이를 유지했다. 유목민 남자들은 모두가 전사였고, 대체로 기병이었다. 그리고 가난했기 때문에 약탈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싸움도 잘하는 법이다. 약탈이 민족적인 규모로 업그레이드되면 정복이 된다. 그러니 하나의 강력한 지도자(칸) 아래 여러 부족이 규합되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면, 한 고조(유방)는 흉노족과의 대결에서 대패했다. 그 탓에 한나라는 건국 초기 70여년을 '흉노족을 섬기는 나라'로 보내야 했다. 한나라는 무제 때에 이르러서야 흉노족을 격파하기에 이른다.
※무제와 흉노족의 대결은 세계사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흉노족은 지금의 몽골 초원을 차지했다가 한 무제에게 패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면서 게르만족을 압박한다. 흉노족에 밀려 서쪽으로 이동한 게르만족은 유럽 토착 민족인 켈트족(현재 프랑스인의 조상. '골 족', '갈리아인'이라고도 한다.)을 압박한다. 동으로는 게르만족에, 남으로는 로마에 압박당한 켈트족의 영토는 결국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속주가 되고 만다.(재밌는 것은 게르만족도 흉노와 마찬가지로 기마민족이었다는 점이다. 원래부터 기마민족이었는지, 아니면 흉노와 오랜시간 싸우면서 그들을 모방해 기마민족이 되었는지 분명치 않다.)
한편 게르만족은 유럽 각지를 정복하는 정복민족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쪽을 향한 행군'을 멈추지 않은 흉노족은 결국 로마를 멸망시킨다. 로마를 접수한 '훈족의 아틸라'는 서양 역사에 등장한 최악의 정복자다. 여기소 '훈'은 바로 흉노족을 뜻한다. 흉노는 '훈누'를 한자로 음역한 것인데, 훈은 '인간'을 뜻하는 고대 유목민의 언어다. '누'는 태양을 뜻한다. 그런즉슨 '훈누(즉 흉노)'는 '태양의 사람들'이라는, 무척 간지나는 단어다. 그러나 훈누에게 시달린 중국인들은 훈누를 한자 '匈奴'로 음역한다. 오랑캐 '흉' 자에 종놈 '노' 자다. 쉽게 말하면 <상것 of the 상것>이란 뜻. 역시 '문자를 소유'하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 조정의 입장에서는 기마민족들에게 약탈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최소한 약탈행동을 억제할 만큼)의 물자를 대주는 게 가장 속편한 방법이다. 전쟁비용을 생각해보면, 싼 값에 평화를 사는 방법이다. 군사력에 눌려서 하국(下國) 처지가 되었을 땐 조공을 바친다. 왕조의 힘이 궤도에 올라 북방을 압도하게 되었을 땐 별볼일 없는 조공을 '받아준' 뒤, 막대한 하사품을 내려주는 식이다.
물론 공짜는 없다. 황제들은 '제국-조공국'의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되면 보통 초원과 숲에서 영향력 있는 칸들을 봉신, 즉 '내 꼬붕'으로 임명한다. 비록 형식적이지만, 이렇게 관계를 확실히 못박으면 그때부터 칸들을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조종하는가? 바로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이다. 군사력도 덜 들이고, 돈도 덜 들이면서 북방을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기저기 찔끔찔끔 지원해주면서, 지덜끼리 싸우면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 거다. 북방세력은 보통 관리가 안 될 때 엄청난 덩치로 규합되곤 했다. 예를 들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조선과 명나라는 왜군을 물리치는 데 군사력을 집중해야 했다. 그 틈에 여진족이 세력을 규합해 결국 청나라가 탄생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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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문명의 무서운 점은, 한(漢)족이 혈통개념이 아니라 문화개념이라는 데 있다. 이민족도 관습과 언어, 사고방식을 받아들여 중화에 동화되면 한족이 된다. 한족은(지들끼리 싸운 거 말고) 물리적인 싸움에서 수없이 이긴 만큼이나 수없이 졌지만, '중화'는 끝없이 확장되었고 한족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왕조가 무너져도 문화로 삼켜버리는 거다.
따라서 이 때의 금나라는 중국, 혹은 '북중국'이라 봐도 무방하다.
당시 중국문명의 ‘적출’은 송나라였지만, 금나라와 대륙을 남북으로 양분하고 있었다. 송나라는 인구도 많고 부유했지만(중국 남부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금나라의 군사력에 눌린 채였다. 또한 북중국(과 만주, 발해 일대)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금나라였다. 따라서 '북방관리'도 금나라가 했다. 한편 고려와 송은 금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하고 있었다(금나라가 육로길을 다 차지해버렸기 때문에 해상으로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금나라는 기마-유목민족이 세운 나라지만, 다른 이민족 왕조가 그렇듯이 예의 '중화의 흡수력'에 빨려들었다. 금나라 조정은 정주문명을 대변했으며, 중국의 논리로 '오랑캐'들을 관리했다.
여기서 잠깐, 오랑캐란 말이 왜 나왔는지 짚어보자. 중세 몽골어에 '우리얀카이'라는 말이 있다. '숲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얀카이는 특정 부족의 이름이 아니라 '숲에 사는 기마-유목부족'을 통칭하는 말이다. 한반도가 머리에 이고 있는 만주의 평지는 맨 땅이 많고 거칠다. 따라서 주로 숲이 삶의 터전이 될 수밖에 없다. 하여 한반도를 직접적으로 위협한 '오랑캐'는 여진족이든, 돌궐(투르크, 즉 터키)족이든, 말갈족이든 거란(키타이)족이든 일단 지리적으로 우리얀카이인 것이다. 원래의 중세 몽골어 발음으로는 '오리앙카이'가 더 정확하다고 한다. 오리앙카이를 빨리 발음해보라. 우리말 <오랑캐>는 오리앙카이 한반도식 발음이다.
여튼... 금나라는 물자를 던져주며 초원을 콘트롤했다. 물론 딱 먹고 살 만큼만 준다. 원래 가난한 사람이나 집단일수록 조금의 돈으로도 부릴 수 있지 않은가. 괜히 '퍼줬다가', 세력을 규합해 쳐들어오면 어쩐단 말인가.
금나라가 주로 지원한 부족은 동쪽 초원을 차지하고 있던 타타르족이었다. 타타르족은 금나라 조정의 사주를 받아 주변 부족을 약탈하고 압박했다. 그 탓에 군소부족들은 단일부족, 혹은 부족연맹체로 덩치를 불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금나라는 타타르만 지원한 것이 아니었다. 타타르가 초원을 다 먹어버리면, 그때부턴 골치아픈 적이 된다. 그래서 초원 중간의 커레이트족도 '관리'했다. 그 결에 몽골족은 금나라, 금나라의 사주를 받은 타타르, 커레이트족 등 이런저런 세력으로부터 '관리'를 받는 처지가 된다. 가끔씩 밟아주고, 분열을 조장하고... 분열되기 쉬웠던 이유는 가난했기 때문이다. 몽골족의 웬만한 씨족들은 가축 몇마리만 던져줘도 기꺼이 용병노릇을 할 만한 처지였다.
이 상황에서 예수게이의 생존전략은 전투와 약탈, 배신 등으로 연고지를 잃어버리거나 제 부족을 떠난 사내들을 규합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전편에서 예수게이가 '비혈통집단'의 수장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 적 있다.). 예수게이의 조직은 사냥꾼이자 강도떼이자 용병집단이었다.
예수게이는 최소 수백 명의 부하는 모았던 것 같다. 그런데 무력을 행사할 수 있어도 여전히 가난하니,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게이가 한 가장 잘한 일이 있다. 바로 '토그릴'이란 남자와 '안다'관계를 맺은 것이다.
3
토그릴은 커레이트족의 전사였다. 커레이트족은 하나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여러 부족이 모인 '부족 연합체'였다. 그러다보니 이 중에는 인종적으로 '몽골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돌궐족(투르크족, 즉 현재 터키인의 조상), 위구르족(신장 위구르 자치구 원주민의 조상)도 있었다. 아마 원시적인 수준의 <부족 연합국가>체제였을 것이다. 허술한 체제였지만 왕족도 있었다. 토그릴은 왕족이었다.
토그릴은 숙부와 권력투쟁을 하다가 졌다. 패잔병들을 이끌고 초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초원의 깡패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예수게이를 찾기에 이른다. 예수게이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었을 것이다. 먹고 살만한 부족들이 뭐가 아쉬워서 강력한 커레이트 족을 적으로 돌리는 도박을 하겠는가? 어차피 '싸움에 진 개'인 그들을 도워줘서 말이다.
그러나 예수게이는 먹고 살기 위해 싸움거리와 약탈거리를 간절히 찾아헤메는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 아니 초원의 들개. 그에겐 바로 이런 도박이 필요했다. 만약 토그릴이 왕좌를 차지하면 든든한 지원을 받게 된다. 실패하면? 토그릴의 무리를 흡수해버리면 된다. 뭐 어차피 별로 잃을 게 없는 조직이었다.
그리하여 예수게이는 토그릴과 '안다'를 맺었다. 안다란 의형제를 뜻하는 몽골어인데, 보통 'blood brother'
문화권마다 인간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설정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전통적으로 머리(두개골)인 곳도 있고, 심장을 쳐주는 데도 있다. 당시 몽골초원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피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피 자체가 영혼이나 다름없었다. 즉 상대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영혼을 교환한다는 뜻이고, 이로써 두 사람은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다.
안다를 맺은 두 사람은 토그릴의 패잔병과 예수게이의 조직원들을 합쳐 군대를 편성해 커레이트족을 습격했다. 그 결과 토그릴은 정적들을 물리치고 거짓말처럼 커리이트족의 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예수게이는 초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는 무려 커레이트족의 수장의 '안다'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는 동안, 헐룬은 만삭이 되었다. 한편 금나라는 타타르와 커레이트가 지덜끼리 싸우게 만들기 위해 토그릴 칸을 지 신하로 책봉했다. 토그릴 칸은 역사에서 '옹 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금나라 조정이 만들어준 이름이다. '옹'이란 발음은 초원 사투리인데, 한자로 왕(王)이다. 씨바, 칸이 이미 왕이란 뜻인데 거기다 王자를 붙이다니... 울 총수님이 좋아하는 '족발'같은 작명법이다. 걍 너 왕 해, 하는 식. 한마디로 대충 지어줬단 얘기다. 금나라 조정이 초원 유목민들을 얼마나 무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여간 이이제이의 논리에 걸려, 그리고 그 이전에 각자의 생존을 위해 타타르와 커레이트는 서로 가축과 사람, 물자를 약탈하고 습격하며 또 가끔은 국지전도 벌이면서 원수가 되었다. 예수게이로서는 호재였다. 안다의 적은 곧 나의 적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즉 싸움의 기회를 얻었다는 얘기다.
타타르족은 금나라 입장에서는 거지새끼들이었겠지만, 금나라가 던져준 약간의 물자 때문에 몽골족의 기준으로는 뎁따 부자였다. 즉 전투를 벌이면 빼앗아 올 것도 많았다. 그래서 예수게이는 자동적으로 타타르족과 원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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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예수게이는 타타르족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한 타타르 장수를 죽였는데, 이 전사의 이름이 '테무진 우게'였다. 테무진은 바다나 호수처럼 '넓게 퍼진 상태'를 뜻하는 중세 몽골어다. 여튼 이 타타르 장수의 운명은 자기 이름대로 평탄하지 못했다.
예수게이가 보르지긴 씨족의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헐룬은 마침 그의 아들을 출산한 상태였다. 아이는 한 손에 핏덩어리를 쥐고 태어났다고 한다. 예수게이는 즉석에서 아들의 이름을 결정했다. 자기가 죽인 타타르 장수의 이름을 따서 '테무진'이라고 지었다.
아마 적을 죽인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비록 죽었지만, 용감하게 싸운 적수에게 경의를 바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원통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려고 했을지도. 그렇다면 이 작명센스는 살생 직후에 태어난 아이를 원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었으리라. 아이를 원혼에 바치는 '척'하는 거니까.
10년 전, 21세기를 앞두고 세계의 유력 언론사들은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중요한) 인물>을 선정했다. 언론사마다 선정한 인물들과 순위가 제각각이었지만, 1위는 예외없이 테무진이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테무진은 역사상 생물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수컷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테무진의 후손이 6000만명이라고 한다(오타 아니다). 세계인구의 1/100이 단 한 사람의 후예인 것이다(정작 테무진 본인의 성생활은 소박하고 건전했다. 대신 할아버지 잘 만난 손자들이 마음껏 지르고 다녔다.).
이런 인간이 태어난 것이다. 가난에 찌든 지구 한귀퉁이의 시골 of the 시골에서... 이 촌구석이 어떤 곳인가 함 보자. 몽골에는 '부르칸 칼둔'이라는 산이 있다. 몽골역사에서나 테무진의 일생에서나 참 중요한 산이므로 알아두자. 술자리 및 소개팅녀 앞에서 아는척하는데 무척 유용하다.
중세 몽골어에서 ‘부르칸’은 ‘무당의 혼’을 뜻한다. ‘칼둔’은 돌산, 절벽을 뜻한다. 기암괴석의 느낌도 조금 있다. 즉 부르칸 칼둔은 이름 그대로 ‘신성한 영기가 서린 산’이란 뜻이다. 참고로 몽골사람들은 산, 특히 암벽을 드러내며 솟은 산에 영험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고려가 항복하면서 정식 국교를 맺고 나서는 <금강산 숭배사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성지순례를 하러 몰려오는 몽골인들이 무척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겠지만 - 고려의 항복은 꽤 굴욕적이긴 했지만 무척 좋은 조건의 항복이었다. 고려는 국호와 왕조, 체제 등 민족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다. 몽골과 국가총력전을 벌이다 패한 나라로써는 유일한 사례였다.).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은 몽골인들에게는 특히나 압도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원래 원시적인 토속 종교를 보면 동서고금을 통해 산이든, 작대기든(우리나라의 '솟대'같은 경우), 나무든 '위로 솟은 것'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현상으로, 하늘의 기운이나 의지를 인간이 사는 지상에 연결하는 '매개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부르칸 칼둔
몽골초원엔 부르칸 칼둔에서 시작하는 세 개의 강이 있다. 첫째, 오논 강.
둘재, 케를렌 강.
그리고 툴라 강.
테무진은 오논 강변에서 태어났다. 그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오논 강 줄기와 케를렌 강 사이에서 보내게 된다.
앞으로 누누히 설명하겠지만 훗날 세계를 정복하는 몽골사람들은 의외로 피를 싫어했다(앞서 안다를 맺는 의식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피를 먹는 짓까지도 하니까 안다가 되는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를 흘리는 것'과 '피를 보는 것', '피를 묻히는 것'을 혐오했다. 피란 곧 영혼이므로, 흘리는 게 좋을 리 없다. 잘못하면 상처가 감염되듯이 다른 영(靈)들에 오염될 수도 있다. 자기가 죽인 자의 피가 묻으면 귀신이 씌이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몽골 전사들은 기본적으로 활의 전사들이다. 되도록이면 활로 전투를 끝내고자 하는 전술적인 이유가 절대적이지만, 이런 심리와도 무관치 않다. 활 다음의 기본적인 무기는 몽골식 환도(구부러진 칼)였다. 하지만 비교적 피를 덜 보면서 상대를 죽이거나 낙마시키는 철퇴도 많이 사용했다(물론 철퇴가 기마병들에게 무척 좋은 무기라는 점은 간과하지 말자. 기병에게 '낙마'는 죽음과 크게 다른 말이 아니다.).
그러니 핏덩이를 쥐고 태어난 게 별로 좋아 보일 리 없다. 역사에는 날 헐룬이 테무진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녀는 이때 이 핏덩이를 언급한다. 피를 쥐고 태어나더니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뜻이다. 영웅의 탄생에 이렇게 불길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 묘사됐다는 건, 이게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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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시 몽골족이 어떻게 분열되어 있었는지 보자. 한 번도 통일되지 않았는데 분열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오류다. 분열이라는 개념은, 최초의 통일 이후에나 가능하다. 즉 몽골족은 이전에 통합되었던 적이 있다. 예수게이의 할아버지도 칸이었다. 이름하여 '카불 칸'.
몽골부족연맹체를 이끌던 카불 칸은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와 연관이 있다. 위인전 읽어보신 분들은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다 아실 거다. 거란의 10만 병사를 물로 쓸어버린... 강감찬의 귀주대첩도 있다. 거란은 두 차례의 대규모 고려 원정에서 탈탈 털린 후(물론 고려도 극심한 고생을 했다.) 세력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몰락은 100년여에 걸쳐 일어났지만, 그래도 길게 보면 '꺾이는' 시점이란 게 있는 법이다.
요나라의 불상
결국 요나라는 당시 초원의 강자로 부상하던 금나라에 멸망당하고, 요나라의 왕자인 옐뤼다시(야율대석, 耶律大石 : 야율은 거란 왕족의 성씨다.)는 남은 거란 전사들을 긁어모아 몽골 초원으로 튄다. 이때 금나라 군대도 옐뤼다시를 쫓아 초원으로 들어온다. 금나라 군대에겐 추적이었지만, 몽골족 입장에서는 침략이었다. 여기서 초원을 내주면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카불 칸은 급히 전사들을 불러모아 금나라의 추적군을 물리쳤다. 이때 생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금나라 황제의 궁전에서 회담이 열렸다. 회담은 잘 되지 않았다. 여진족의 황제(카간)가 카불 칸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카불 칸은 그에 대한 답례로 여진족 황제의 수염을 잡아당겼다!
... 물론 그러고 나서 있는 힘을 다해 초원으로 튀었다. 금나라의 추적군은 결국 카불 칸을 놓치고 말았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카불 칸은 곧바로 대규모 약탈대를 조직해 남하한 후 금나라 국경을 약탈했다. 테무진도 자기 증조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자랐을 것이다. 이런 역사가 있었으니 금나라 조정이 타타르족을 조종해 몽골족을 괴롭힐 법도 하다.
한편 초원 서쪽 바깥까지 도망치는 데 성공한 옐뤼다시는 서요(西療)를 세워 성공한 남자의 인생을 살았다. 훗날 한자로는 '덕종(德宗)'으로 불리게 된다.
요나라는 망했지만 다시 서요를 세운 거란족들은 자기네 나라를 '카라 키타이'라고 불렀다. 키타이는 거란이란 뜻이고, 카라는 까맣다는 뜻이다. 왜 까말까? 중앙-동-북아시아의 유목민들은 혈통을 가릴 때 '검은 뼈', '흰 뼈'라는 말을 썼다. 결정적 사료는 없지만 정황상 유목민의 후손일 게 거의 분명한 신라의 귀족층 역시 성골, 진골 하면서 뼈라는 단어로 인간의 등급을 가렸다.
순혈일수록 흰 뼈라고 한다. 즉 A라는 칸이 있었는데 100년 후 후손집단이 B집단과 C집단으로 나뉜다. A칸의 피를 많이 물려받은 B씨족은 흰 뼈다. 바깥 피가 들어와 다소 거리가 있는 C는 검은 뼈다. 같은 조상을 둔 사이지만, 이렇게 파가 갈린다. 물론 '흰 뼈'가 귀족이다. 즉 카라 키타이라는 국명은 키타이는 키타이이되 진짜 키타이, 즉 요 제국을 잃어버리고 쫓겨온 키타이라는 뜻으로, 나름 실향민의 아픔이 베어있는 이름이다.
예수게이와 테무진은 흰 뼈가 아니었다. 보르지긴 씨족의 카불 칸은 자식이 일곱이나 있었지만, 자신의 씨족이 아닌 타이치우드 씨족의 전사인 '암바가이'에게 칸 자리를 물려준다. 원시적인 부족연합체는 본래 따로 왕조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 잘 만나서 칸이 되는 게 아니라, 능력을 통해 칸으로 선택받는 식이다. 요나라도 원래는 3년마다 한 번씩 의회를 열어 카간(대칸, 즉 황제)을 선출했다.
그러다보니 조상 중에 칸이 하나 있다고 귀족은 아닌 거다. 오히려 몽골 족이 태동한 역사를 보면 보르지긴 씨족은 '검은 뼈'에 가깝다. 또한 뼈의 색깔이 희고 검은지는 현재 실권을 쥔 자와 얼마나 가까운지로 결정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다보니 테무진은 칸이 될 때까지 귀족이 아닌 평민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테무진이 태어났을 때, 그의 먼 친척인 자다란 씨족에는 이제 갓 걸음마를 뗀(뭐, 못 뗐을 수도 있다.) 남자아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자무카'. 앞으로 자주 등장할 이름이니까 꼭 기억해두자.
여하튼 수십 개의 씨족이 각자 자기 살 길을 찾고 있던 몽골족. 이중 중요한 씨족은 역시 다음과 같다.
- 초원의 싸움꾼 예수게이 때문에 급부상하고 있던 보르지긴 씨족
- 훗날 자무카에 의해 급부상하게 되는 자다란 씨족
- 독자적으로 씨족이 아닌 부족의 사이즈까지 성장한 타이치우드 씨족
씨족은 칸을 옹립할 만한 단위가 아닌데도, 덩치가 있던 타이치우드족엔 칸이 있었다. 이자가 바로 '뚱뚱이 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타르쿠타이'다.
6
보르지긴, 타이치우드, 자다란 씨족의 역사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아 씨바 분량상 그냥 패스하려고 했는데, 너무 재밌는 얘기라 안 할수가 엄따...
초원의 북쪽 끝과 시베리아 숲이 만나는 곳에 '보돈차르'란 사내가 살았더랬다. 모든 부족이 그렇겠지만, 몽골족도 '하나의 가족'에서 출발했다. 보돈차르와 그의 아내가 모든 몽골족의 조상이다.
보돈차르는 막내였다. 형제들 중에서 머리도 가장 나쁘고, 몸도 약했다. 그래서 별명이 <바보>였다. 부모가 죽자 보돈차르를 포함한 다섯 형제들은 당연히 가축과 식량 등의 유산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보돈차르는 바보답게 아무것도 나눠갖지 못했다. 뭣하러 저런 등신같은 놈까지 신경을 써주는가? 내 몫 줄어들게 말야...
그래서 보돈차르는 비루먹은 말 한 마리만 갖고 쫓겨나듯 가족을 떠나 혼자 살게 된다. 보돈차르는 비참하게도 풀을 엮어 만든 움막을 짓고 산다. 초원에서는 아무리 가난해도 게르에서 산다(아래 사진).
하긴 저 흰 천, 저거 양털로 만드는 거다. 형들이 양 한 마리 나눠주지 않았으니 뭘로 게르를 만들 수 있겠는가. 생계가 막막해 늑대가 먹다 남긴 것을 주워먹고 살았다. 이렇게 가난하게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와서 게르를 치고 야영하는 게 아닌가(유목민들은 주기적으로 야영지를 바꾼다.). 아마 씨족이나, 아니면 자그마한 부족 정도 단위의 (아마도 시베리아의) '숲 사람들' 이었다.
이 사람들은 보돈차르가 불쌍했는지, 매일같이 찾아오는 보돈차르에게 몽골 사람들의 기본 음료 중 하나인 아이라크(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술)도 주고 먹을 것도 주었다. 한편 셋째형 보고 카타기는 아무래도 막내를 버린 게 못내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래서 결국 오논 강 줄기를 따라 동생을 찾으러 나선다. 그러다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 묻게 된다. 저기 혹시...약골에, 볼품없는 말 한마리를 타고 댕기는 멍청한 사내놈 하나 못 봤소...?
"어, 매일 우리한테 와서 술 얻어먹고 가는 사람인데요."
그리하여 두 형제는 오랜만에 상봉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몽골 역사 특유의 소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보돈차르의 배은망덕과 비열함이 솔직담백하게 기록되어 있으니까...
"형, 내가 보니까 말야, 저 사람들 졸라 만만한 인간들이야. 우리가 약탈하자!"
그러자 카타기가 대답했다. Why not?
유산 분배 때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던 네 형들은 약탈을 위해선 보돈차르와 기꺼이 한 편이 됐다. 다섯 형제는 이 부족(혹은 씨족)을 습격해 철저히 약탈했다(아마 자기들 다섯 명 이외에 따로 부하들 혹은 동료들이 있었을 것이다.). 식량은 물론 게르, 살림살이, 심지어 사람까지 탈탈 털었다.
그 와중에 보돈차르는 임신한 여자를 득템해 강제결혼한다. 당연히 첫 아이는 잃어버린(혹은 죽임당한) 전 남편의 자식이다. 이 첫째아이의 이름이 '자다라다이'. 그가 바로 자다란 씨족의 조상이다. '자다라다이'에서 자다란이라는 씨족명이 나왔다. 불쌍한 여자는 그 뒤로 당연히 보돈차르의 아이들을 낳게 된다. 보르지긴족과 타이치우드족의 조상은 보돈차르의 친자식이다. 참, 보돈차르는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씨다른 첫째아이에게도 아버지의 의무를 다했다.
그렇다면 자무카의 자다란 씨족이 흰 뼈인가, 아님 테무진의 보르지긴 씨족이 흰 뼈인가? 기준에 따라 다르다 : 몽골족의 조상을 보돈차르로 볼 것인가, 보돈차르의 아내로 볼 것인가. 혹은 그냥 이들 '부부'를 조상으로 칠 것인가. 전자라면 보르지긴과 타이치우드의 혈통이 더 고급이다. 후자일 경우 '씨'와 상관없이 첫째인 자다라다이가 적통이다.
결국 어느 씨족이 진정한 흰 뼈인지는, 훗날 테무진과 자무카의 목숨을 건 대결을 통해 가려지게 된다.
7
테무진은 사랑받고 자랐을까? 잘 모르겠다. 내 생각이지만, 별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예수게이 가족 야영지를 옮기면서 테무진만 쏙 빼놓고 이동한 적이 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하필 그 많은 형제들 중에 테무진만 잃어버린 걸 보면 적어도 애지중지한 것 같지는 않다.
이때 마침 초원의 미아 테무진을 발견한 이들이 타이치우드족이다. 어차피 몽골족은 서로 가깝게 붙어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뚱뚱이 칸은 한동안 테무진을 보살폈다. 그런데 초원은 인구가 적고 사방이 뻥 뚫린 평지인데다가 언제나 말을 타고 이동한다. 그래서 놀랍도록 소식이 빠르다. 그런데 '한동안' 찾아가지 않았다니. 칸이 보살핀다는데 안심이야 됐겠지만, 확실히 특별한 귀여움을 받진 않은 모양이다. 재밌는 건, 뚱보 타르쿠타이가 나중에 테무진의 철천지 원수가 된다는 사실이다.
테무진에게는 형제가 여럿 있었다. 함 살펴보자. 먼저, 계모인 소치겔이 낳은 두 아들.
- 테무진의 배다른 형 벡테르(남)
- 벡테르의 친동생 벨구타이(남)
그리고 헐룬의 자식들.
- 첫째 테무진(남)
- 둘째 카사르(남) : 덩치가 좋았으며 테무진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활솜씨가 좋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 셋째 카쥰(남) : 테무진이 가장 사랑한 동생이다.
- 넷째 테무게(남)
- 막내 테물린(여) : 유일한 여동생
마지막으로 형제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소유한 꼬마노예였다가 훗날 테무진이 유산으로 상속받은 '젤메'. 어려서부터 함께 성장했는지, 아니면 '소유주'만 예수게이-테무진인 채로 있다가 나중에 섬기기 시작했는지 확실치 않다. 어쨌든 중요한 이름이니 기억해두자.
이렇게 해서 테무진은 7명 혹은 8명의 아이와 함께 강변에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행복에 쩔어 살진 않았을 거다.
걍 이정도 포스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면 될 듯.
당시 아버지가 잘 나가고 있었으니, 가난한 곳이었을지언정 먹고 사는 데는 그닥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테무진은 비교적 평탄하게 성장해 9살이 되었다. 결혼할 상대를 정할 나이가 된 것이다.
(3) 아버지를 위한 나라는 없다
1
테무진의 나이 아홉 살.
1편에서 미리 설명했지만, 몽골의 남자아이들은 이 나이쯤 되면 아내와 처가가 정해지게 마련이다. 이때부터 정식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 처가에서 데릴사위를 하게 된다.
예수게이도 테무진을 데릴사위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정해진 처가가 없었다. 딱히, 소정의 계약이나 정략결혼을 결정할 만한 상대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처가를 '찾으러' 여행을 가게 된다. 예수게이는 테무진과 함께 말을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예수게이는 좀 뻔뻔한 남자였나 보다. 그는 미녀가 많기로 소문난 올쿠누트족으로 떠났다. 그런데 시집오는 그에게 납치당해 강제결혼을 하면서 인생이 두루마리 휴지처럼 꼬였던, 테무진의 어머니 헐룬도 올쿠누트 족이었다. 헐룬과 함께 살아보니 음 역시 여자는 올쿠누트야~ 하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며느리도 올쿠누트 족 여자를 맞고 싶었겠지...
하지만 올쿠누트 족엔 헐룬의 가족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예수게이는 여행용품과 비상식량 외에는 별다른 것도 없이 혼사길을 떠났다. 예수게이는 부하도 많고 군사력도 있었지만 가난했다. 약탈한 물건들은 식량으로 바꾸기 바빴을 것이다. 보통 어린 아들을 사돈 집에 사위로 맡겨두고 올 때는 예물을 전달하는 게 관례였다. 부유하고 미녀 많은 올쿠누트 족 땅에 가서,
"아 저는 일전에 올쿠누트 여자를 납치해 아내로 삼았던 예수게이인데요... 뭐 딱히 준비한 선물은 없지만 누가 며느리 좀 주시겠습니까?"
하려고 한 거다. 어쩌면 자신의 이름값이 그쯤은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깡패였지만 커레이트족의 옹 칸의 안다였고, 금나라의 지원을 받는 강성한 부족인 타타르와 심심하면 싸우면서도 멀쩡히 살아있는 사내였으니까.
하지만 올쿠누트 족 땅에 가기도 전에 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몽골을 포함한 유목문명권에서는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불문율에 가까운 관습이다. 도움을 청한 나그네에게 쉴 곳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쉬었다 가라는 주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것. 이 두가지는 몽골초원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예의였다.
인구가 적고 땅이 넓은 초원은 거주지(게르 야영지)와 거주지가 멀리 떨어져 있다. 식량은 귀하고 물자는 적다. 어쩌나 마주친 게르 하나가 나그네를 쫓아내면, 그 사람은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이걸 쌩까고 지나간다고 생각해보면...
초원에서는 걸어다닐 수 없다. 모든 거리가 말타기를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걸어서 헤매다가는 사람과 식량을 못 만나 굶어죽거나, 초원을 휘젓고 다니는 늑대무리의 식사감이 되기 십상이다. 지금 타고 있는, 딸랑 한마리 있는 말이 다쳤다고 생각해보라. 동서남북 사방엔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인다... 이건 곧 '죽음'에 가까운 상황이다(그래서 초원의 여행자들은 보통 타고 있는 말 외에 한마리 이상의 '예비마'를 끌고 다닌다.).
약탈과 폭력이 횡행하던 초원이었지만, '나그네 원칙'은 그나마 '사람사는 세상'의 최소조건이었다. 이 룰을 어기는 것은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비슷한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는' 관습도 있다. 불시에 사고를 당해 죽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말로 달려서 며칠 거리에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친한 사람이든 아니든, 누군가 곁에 있다면 그 사람이 유언을 전달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족들은 가족이 죽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심지어 칼을 들고 싸우는 적들끼리도 갑자기 인간적인 호의를 베푸는 일도 있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테무진에 관한 전설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 타타르족이 예수게이 무리의 야영지를 습격해서 전투가 벌어졌다. 몽골과 타타르의 전사들이 난투를 벌이는 동안, 만삭이었던 헐룬의 양수가 터지고 아이가 나오려고 한다. 마침 그 모습을 목격한 타타르 전사가 잠시 싸움을 멈추고 아이-바로 테무진-를 받아주었다. 나중에 테무진은 장성해 타타르족을 쓸어버리는데, 죽은 적들 중에 어머니 헐룬이 말했던, <너를 받아준 은인>의 인상착의와 일치하는 시신이 있었다. 그걸 보고 테무진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자체는 뻥이지만, 초원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여하튼 예수게이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의 이름은 데이 세첸. '세첸'은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실명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붙여준 별칭이었을 것이다. 세첸은 칸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칸은 최소 부족 이상의 규모를 이끄는 사람으로, 아무래도 군사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반면 세첸은 훨씬 일상적이면서, 마을 이장이나 장로같은 느낌이다.
데이 세첸은 '옹기라트' 씨족을 이끌고 있었다. 예수게이와 테무진이 방문한 곳은 옹기라트족의 캠프였던 것이다. 옹기라트족은 올쿠누트 부족에서 파생되어 나온 씨족으로, 두 집단은 가까운 친척 사이였다. 피는 못 속인다고, 옹기라트족에도 미녀가 많기로 유명했다. 하여간 예수게이는 데이 세첸을 만나게 되는데...
2
예수게이와 만난 데이 세첸은 부자(父子)가 여행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
"누구를 만나러 오셨습니까?"
"아 얘는 제 아들인데요... 아이 외가인 올쿠누트족에서 며느리를 얻으려고 가는 길입니다."
그러자 데이 세첸은 무슨 경쟁심이라도 생겼는지, '올쿠누트에 뒤지지 않는' 옹기라트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대목에서 옹기라트족의 독특한 생존전략이 드러난다.
"우리는 이 나라(울루스) 저 나라 싸우고 다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백성들끼리 싸워봐야 뭐... 우린 외모가 뛰어난 딸들을 길러 다른 부족의 칸들에게 시집보내지요..."
한마디로 우리 여자들은 죄다 칸과 결혼할 급은 된다, 이 말씀. 초원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다음의 대사는 꽤나 재밌다.
"... 목영지는 우리 아들들이 돌보지요. 딸들은 예쁜 얼굴을 보여주는 게 일이구요. 허허~"
양치느라 피곤하지? 자 여기 얼굴~ ♥
칸의 아내 정도 되는 귀부인을 몽골어로 '카톤'이라고 한다. 올쿠누트족과 옹기라트족은 '카톤 공장'쯤 됐던 모양이다. 아마 이 말은 예수게이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었을까? 혹여나 이동네에서 며느리감 넘보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나 데이 세첸은 초원의 룰에 따라 예수게이와 테무진을 친절히 접대한다. 데이 세첸의 게르 안에는 그의 열살 난 딸이 있었다. 예수게이가 소녀를 보니 과연 올쿠누트족답게 예쁘기 그지없는게 아닌가. 저돌적인 예수게이는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바로 청혼을 한다. 아니 대체 뭘 믿고...
시베리아 출신 화가 K. Novosadov가 그린 보르테
소녀의 이름은 '보르테'. 테무진보다 한 살이 많았다. 두세 살 많았으면 딱 좋았겠지만, 어쨌든 연상이니 관습대로인 셈이다. 테무진과 보르테는 하룻밤만에 벌써 서로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얘기가 쉽게 풀린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딨겠는가? 하여간, 소년소녀의 아버지들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데이 세첸이 보르테를 아까워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건 뭐, 웬 손님한테 하룻밤만에 딸을 뺏기게 됐으니.
"여러번 (딸을 달라는) 부탁을 듣고 딸을 줘야 며느리(혹은 사돈) 귀한 줄 알지요. 몇 번 달라고 해서 바로 딸을 내주면 막 대하는 거 아니요?"
하지만 결국,
"딸로 태어난 사람의 운명은 태어난 집 문전에서 늙지 않는 것( : 어차피 아들이 아니고 딸인 이상 언젠가는 남의 집에 영영 보내야 하는 팔자.)."
이라는 말을 하며, 결혼을 승낙한다.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결혼을 결정한 예수게이는 테무진을 데릴사위로 맡겨두고(데릴사위제에 관해선 시리즈 1편을 보시라.)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첫째, 결혼예물로 예비마를 주었다. 줄 게 그거밖에 없었으니까. 둘째, 테무진은 개를 무서워하니까 개를 멀리 떨어뜨려달라고 특별히 부탁한다.
늑대는 말할 것도 없고, 개는 초원에서 흔한 동물이다(참고로 우리나라의 풍산개와 진돗개, 일본의 아끼다견은 몽골견의 후손이다.). 키우는 개도 많고 들개도 흔하다.
몽골 늑대
전형적인 몽골견. 진돗개, 아끼다견과 공통점이 보인다.
얘는 몽골 쉽독과 몽골견의 잡종인듯
제 또래 찾기가 힘든 초원에서 개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친구다. 아버지가 사돈에게 신신당부할 정도로 개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테무진은, 다량의 남성호르몬을 보유하고 태어난 내추럴 본 히어로는 아니었다. 뭐, 확실히 '그런 쪽의' 히어로는 아니었다. 테무진은 힘이 세지도 않았고 덩치가 크지도 않았고 자라면서 특별한 재능을 보인 분야도 없다.
헐룬이 <테무진은 재능이 많다>고 에둘러 말하는 대목이 나오지만, 어떤 재능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반면 두 살 어린 동생 카사르의 재능은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카사르는 어려서부터 힘이 좋고 활을 잘 쏘았다. 활솜씨는 초원의 남자에게 필수적인 능력이었다. 배다른 형제 벨구테이는 씨름꾼이었다(훗날 초원의 천하장사인 '부리'라는 남자에게 씨름도전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옹기라트족의 데릴사위가 된 테무진은 짧으면 며칠, 길면 1~2주 동안 보르테와 소꿉장난같은 예부부부생활을 하게 된다. 옹기라트족의 게르는 고향집보다 살림살이도 많고, 좋은 먹을거리도 있는데다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도 더 화려했을 테니, 테무진은 촌티를 팍팍 내며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테무진은 처갓집에서 적응할 시간도 없었다.
3
예수게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혼자 털레털레 돌아오려니 심심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을 것이다. 배도 좀 고팠을 것이고... 그런데 저기 보니 웬 사람들이 뻑적지근하게 잔치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당연히 예수게이는 잔치판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어이구 저도 숟가락 좀 얹읍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다름아닌 예수게이의 공식 원수 타타르인들이 아닌가! 어쨌든 나그네를 잔치에 껴주는 것 또한 초원의 룰. 사실 예수게이가 그들이 타타르인들이란 걸 알고 들이댔는지, 아니면 잔치판 도중에 깨달았는지 우리는 알 도리가 없다. 사실 예수게이도 당황했을 것이다. 타타르족의 땅은 옹기라트족보다 더 동쪽에 있다. 북서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잔치판을 만났으니, 타타르족의 잔치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집단사냥이나 약탈을 나와 한 탕 크게 한 타타르 전사들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예수게이는 적의 무리 한가운데서 태연히 술과 고기를 얻어먹었다. 이는 역시 초원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 초원에는 문자도 없고(나중에 생기지만), 사람들도 당연히 문맹이다. 그러니 사람이 입으로 하는 '말'이 전부다. 역사는 구전으로 전달되며, 약속과 맹세가 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구두계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 존중받기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문화에서는 소문이 언론과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한다. 초원에서는 '평판'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중요하다. 단지 "그놈 참 나쁜놈이네.", "어, 그양반한테 그런 면이 있었군?"하는 정도가 아니다. 평판에 의해 중대한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고 부족의 운명이 달라진다.
그러니 타타르족 입장에서도 비록 적일지언정, 잔치의 손님을 죽여서 지덜 얼굴을 똥으로 화장할 순 없었다. 그래도 원수는 원수. 예수게이는 자신의 정체를 노출하는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다. 하지만 어디 한두번 본 사이던가? 타타르족 전사 일부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쉬잇! 저 새끼, 예수게이다!"
"아 씨바 저 개노무시키..."
예수게이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러나 역시 손님에게 칼을 휘두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타타르족 전사들은 예수게이가 마시는 술(혹은 식사)에 몰래 독을 탔다.
몽골의 전통주 '아이라크'를 만드는 모습
(사진 - 론리플래닛)
예수게이는 예수게이대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떠야 했다. 그는 이미 예비마를 사돈에게 선물로 준 상태. 예비마는 스페어타이어의 개념도 있지만, 더 스펙타클한 용도도 있다. 사람을 태운 말은 그렇지 않은 말보다 당연히 더 느리고, 더 빨리 지친다. 타타르 전사들이 일인당 한두 마리의 예비마를 몰고 쫓아오면 반드시 잡힌다. 괜히 티를 내선 안 된다. 그래서, 자신이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잔치중에 알았는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알았는지 확실치 않지만, 예수게이는 독이 든 음식을 죽기에 충분할 만큼 먹고 나서야 일어설 수 있었다.
4
예수게이는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몸상태가 갈수록 나빠진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죽기 직전의 상태였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부하가 누구인지부터 물었다. 마침 '차라카'라는 노인의 아들 '뭉릭'이 근처에 있었다. 예수게이의 유언은 급박하고 절절하다.
"뭉릭아! 내 애들은 아직 어린데... 테무진을 사돈댁에 데릴사위로 맡겨놓고 오다가 타타르 놈들한테 당하고 말았다. 어린 조카놈들과 과부 형수를 네가 잘 보살펴다오..."
여기서 잘 보살펴달라는 말은 곧 헐룬과 결혼하고 아이들을 양자로 들여달라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척박하고 거친 초원에서 남편을 잃은 여자는 살아갈 방도가 없다. 여성과 아이들의 입장에서 재혼은 일종의 '복지'다. 그러니 예수게이에로서는 자신의 정실부인이 부하의 첩이 되어도 오히려 다행인 거다.
또한 아이를 낳고 기름으로써 '인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여자는 초원에서 너무나 귀한 존재다.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남편을 잃었다고 걍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이다.
뭉릭은 예수게이의 친동생이 아니라 절친한 부하였지만, 초원에서는 동생이 형과 사별한 형수와 결혼하기도 하고 심지어 아버지가 죽으면 계모와 결혼하기도 한다. 결혼당사자들끼리 피만 안 섞이면 된다. 이런 문화는 몽골지역 뿐 아니라 유목문명에서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어 티벳에서는 두 형제가 한 여자와 결혼해 세 사람이 한 집에서 사는 경우도 있다. 형편이 가난하면 아내를 데려올 때 처갓집에 바쳐야 할 물품과 노동력을 형제가 '공동구매'로 치른다고 보면 된다.
반면 사고방식이 지역중심이 아닌 혈통중심의 유목민들은 <핏줄의 관계>에는 무척 민감하다. 일본은 사촌과의 결혼이 가능하며, 우리도 고려시대까지 근친혼이 용인되는 관습이 있었지만 이런 일은 초원에서는 금기다. 부부사이만 놓고 봤을 땐 '족외혼', 즉 다른 부족-최소한 다른 씨족-과 결혼해야 한다.
예수게이는 죽기 전에 테무진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뭉릭에게 어서 테무진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뭉릭은 데이 세첸의 게르에 전속력으로 달려가 위급한 상황을 알렸다. 사돈이 죽어간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데이 세첸은 테무진에게 어서 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혼사가 성사된 마당에 데릴사위가 증발하면 여러모로 상황이 묘해진다. 자칫하다간 딸내미 인생이 꼬일 수도 있고... 그래서 데이 세첸은 이런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아버지 보고 나면 빨리 와!"
그러나 테무진은 이날 이후 오랫동안 보르테와 재회하지 못하게 된다. 데이 세첸과 보르테, 새됐다...
예수게이는 테무진을 별로 사랑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실인 헐룬의 장남이다. 테무진보다 나이가 많은 벡테르의 결혼은 챙겨주지 않은 걸 보면, 테무진을 후계자로 생각한 건 분명해 보인다. 예수게이는 테무진에게 마지막 유언을 전하기 위해 온힘을 다해 버티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도착하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5
전편에 설명한 것처럼, 보르지긴족과 타이치우드족의 조상은 '바보' 보돈차르의 자식이다. 두 씨족은 가까운 친척 사이였다. 그래서 함께 이동하거나 같은 곳에서 야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타이치우드의 대장인 '뚱뚱이 칸' 타르쿠타이는, 말하자면 전통적인 기득권층에 속했다. 그에 비해 예수게이는 그가 결성한 사냥꾼+전사 조직의 두목쯤 됐다.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했다. 각자 자기야말로 분열된 몽골족을 다시 통일할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둘다 어느 정도 힘이 있는데다가, 초원의 가난뱅이인 주제였지만 굳이 따지고 보면 '왕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왕족이라 부르기도 참 뭐한 사이즈이지만...
몽골족 최초의 칸인 카불 칸은 예수게이의 직계 조상이었다. 반면 타르구타이는 그 다음 칸인 암바가이 칸의 후손이다. 암바가이 칸은 생전에 타타르족과 연합을 맺고 싶었다. 그래서 딸을 타타르에 시집보내러 몸소 딸을 데리고 타타르족에게 간다. 그런데 금나라의 사주를 받은 타타르족은 손님인 암바가이를 붙들어 금나라에 팔아버렸다!
카불 칸 때문에 자존심에 먹칠을 한 기억이 있는 금나라 조정은 암바가이 칸을 처형한다. 그런데 그 처형의 방식이 무척 비열하고 잔인했다. 말타는 유목민답게 죽어야 한다며, 나무로 만든 당나귀에 태워놓고 못을 박아 죽였다(지덜도 유목민 출신이면서, 이제 중국인 다 됐다 이거지...).
이후 몽골족은 암바가이 칸의 복수를 위해 타타르와 무려 13번이나 대대적인 전투를 벌였다(늘상 벌어지는 약탈이 아니다.). 그러나 <몽골비사>에 따르면 "원한을 풀지도, 복수를 하지도 못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대체로 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는 동안 몽골족은 산산조각났고, 초원의 북방 끝으로 밀려나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몽골족은 한 조상(보돈차르 부부와 그 후손)을 모시는 사이다. 자연히 함께 제사를 지내게 된다. 최소한 타이치우드족과 보르지긴족은 그랬다.
예수게이가 죽은 후 찾아온 첫 번째 봄이었다. 타이치우드족은 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사란 엄숙한 행사라기보다는, 일종의 잔치다. 음식을 나누어먹으며 유대감을 느끼고, 친족임을 확인하는.
그러나 타이치우드족과 예수게이의 부하들은 테무진 가족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헐룬과 그녀의 자식 다섯 - 테무진, 카사르, 카쥰, 테무게, 테물린. 소치겔과 그녀의 두 아들인 벡테르와 벨구테이... 꽁으로 먹여 살려야 할 입이 9개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겨우 이정도 '복지'도 힘들어했던 몽골족의 가난함을 알 수 있다.
헐룬은 아직 젋고(20대였다.) 예뻤지만, 그 많은 애들까지 먹여살릴 여유가 있는 남자는 없었다. 뭉릭은 보스의 유언을 지켜줄 수 없었고, 예수게이의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죽은 남자의 처자식을 '인수인계'하려면 당연히 소치겔 모자(母子)들도 책임져야 했다.결국 헐룬은 재혼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편 타이치우드를 이끌던 뚱보 타르구타이에게, 예수게이의 유족은 정치적으로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카불 칸의 직계자손이 장성하면, 자신이 몽골족 전체의 칸이 되는데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처럼 보르지긴씨족과, 씨족에 모여든 전사들을 보호해주면 나중에 테무진과 그의 형제들에게 충성할 수 있다. 그때가 되서 테무진이 자기한테 대들면...?
타르구타이는 씨족의 장로 격인 두 노파, '우르베이'와 '소카타이'와 공모하여 테무진 가족을 버리기로 결정한다. 죽여버리면 속편하겠지만, 아무 이유 없이 친족에게 그런 짓을 했다간 바닥에 떨어진 평판을 다시는 끌어올리지 못할 것이다. 참, 두 노파는 금나라에 끌려가 비참하게 죽은 암바가이 칸의 미망인들이었다. 칸은 죽었지만 두 미망인은 자신들이 소속된 타이치우드족뿐 아니라 몽골족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6
타이치우드족은 제사가 열리는 시간을 테무진의 가족에게만 알리지 않았다. 그러고서는 이른 아침에 제사를 뚝딱 해치워버렸다.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건, 친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삿밥을 나눠주지 않는 의미는 분명했다. 앞으로도 나눠줄 게 없으니 알아서 살아가라는 뜻. 여자 둘에 애는 일곱이나 있는 가족에게는 죽으라는 얘기였다.
잠에서 깨 소식을 들은 헐룬은 분통을 터뜨리며 애들을 데리고 제사지내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우르베이와 소카타이를 보고 소리쳤다.
"남편이 죽고, 애들이 어리다고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우리가 왔는데도 당신들끼리만 먹고 있군요. 깨워주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군요?"
두 할멈도 지지 않았다.
"이게 어디서 건방지게... 네가 뭐라고 우리가 '어이쿠 와서 제삿밥 좀 드시지요~' 하고 모셔와서 대접한단 말이냐? 어쩌다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얻어먹는 법이다(나그네를 대접하는 초원의 룰을 말함. 즉 헐룬 가족은 더 이상 친족이 아니라 나그네라는 뜻.)."
네년이 미친게냐?
그리고는 드라마에 나오는 노인네들이 흔히 쓰는 땡깡을 부린다.
"아이고오오~ 울 남편 암바가이 칸이 죽었다고 내가 젊은것한테 이런 취급을 다 당하는구나아아~"
두 노인네는 헐룬이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양,
"새로운 목영지를 찾아 이동하자! 헐룬네는 남겨둔다. 아무도 저것들을 데려가지 마라."
하고 선언한다. 헐룬이 느낀 분노와 암담함은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온 가족이 굶어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전직 칸의 두 미망인의 명령대로, 예수게이의 부하들도 타이치우드족을 따라나섰다. 어차피 (사냥과 약탈 등으로) 먹고살기 위해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예수게이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지자 더 이상 미망인과 고아들 옆을 지켜줄 이유가 없었다. 타르쿠타이 입장에서는 전력이 늘었으니 호재였다.
다음날 아침, 의지할 데 없는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 앞을 웬 노인이 막아섰다. 그는 예수게이의 부하 뭉릭의 아버지인 '차라카'였다. 차라카는 이래선 안 된다고, 예수게이와의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사람들을 말렸다. 원래 입바른 소리 하는 사람, 자기의 죄책감을 자극시키는 사람이 가장 미운 법이다. 웬 남자 하나가 말에 오른 채로 차라카의 등을 창으로 찔러버렸다.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테무진이 중상을 입고 게르에 누워있는 차라카를 찾아갔다. 차라카 曰...
"네 아버지가 모은 나라(몽골어 '울루스' 여기서는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사람들을 몽땅 데려가길래 말리다가 그만...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 말에 테무진은 견디지 못하고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얼마나 분하고 슬펐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차라카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이 절망의 순간, 헐룬이 죽은 남편 예수게이의 영기(靈旗)를 꺼내들고 떠나는 사람들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두둥~
전사가 들고있는 것이 영기. 말총으로 만든다.
영기는 영어로는 보통 'war banner'
예수게이의 영기는 예수게이의 영혼이나 마찬가지였다. 예수게이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의 '영혼'을 마주하자 죄책감과 두려움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러나 '먹고사니즘'보다 무서운게 어디 있으랴? 사람들은 기어이 떠났다. 헐룬이 몇 사람을 데려오는데 성공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한밤중에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헐룬네의 가축까지 싹 훔쳐서...
영기 에피소드를 보면, 헐룬이 굉장히 영리하고 대담한 인물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비록 당장은 실패했지만, 헐룬이 남편의 부하들에게 남긴 '양심의 가책'은 훗날 테무진에게 엄청난 자산이 된다.
하지만 그건 나중 얘기고, 지금은 괜한 짓 했다가 여자 둘에 애덜 일곱이 초원의 방랑자가 되는 것도 모자라 가축까지 없어졌다. 가축은 초원 사람들에게 삶의 기본 전제다. 이 버림받은 가족은 이제 거칠고 척박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초원 북방에서 굶어죽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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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룬은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먹을 수 있는 건 가리지 않고 긁어모았다. 사냥에 나설 남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잡을 수 있는 거라곤 들쥐나 생선 따위가 전부였다. 그것도 언제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태무진 가족은 들풀과 야생 열매를 먹었다. 헐룬은 "오논 강을 위아래로 뛰어다니며 앵두와 머루를 따서 허기를 달랬다." 역사는 테무진 가족의 화려한 웰빙식단을 기록하고 있다. 부추, 신나리, 달래...
숨어있는 먹을것을 찾아보아요~ (오논 강의 사진)
가축의 젖까지 육식으로 치면, 몽골족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100% 가까이 육식을 했다. 식물성 음식을 먹어온 울나라에서도 풀을 뜯어먹는 건 기근과 궁핍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초원 사람들의 입장에서, 풀은 사람이 아니라 가축이 먹는 거다. 사람은 고기를 먹는 동물이다.
가난하디 가난한 초원의 북방이었지만, 헐룬과 그녀의 자식들은 그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때의 테무진 가족은 역사에 기록된 가장 배고픈 가족이다. 글타... 역사상 최고의 정복자는 성장기때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결식아동이었던 거시다. 갑자기 서울유치원 다니는 5세 훈이 생각난다.
헐룬은 10년 전만 해도 부유하고 평화로운 올쿠누트족에서 사랑받고 자란 예쁜 소녀였고, 곁에는 사랑하는 연인도 있었다. 몽골족보다 훨씬 잘나가는 메르키트족으로 시집가서 행복하게 사는 일만 남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행해지다니.
하지만 근성의 헐룬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예수게이의 유족들이 살아남으리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헐룬의 노력 덕에 테무진 가족은 잡초처럼 살아남았다.
어느덧 테무진은 사춘기가 되었다.
(4) 살인의 추억
intro
이제는 초원의 환경과 문화, 이야기의 배경상황들을 반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임계점을 지났다. 지난 기사 안 봤으면 얼릉 텨가서 보고 오시기 바란다. 이 시리즈는 1편부터 순서대로 보지 않음 안 된다.
1
(전편에 이어)헐룬은 아이들을 기어이 키워냈다. 사람은 극도로 절망적인 상황을 맞으면 자포자기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거꾸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헐룬은 후자였다. 다른 초원 아이들이 모전(양털 펠트) 벽으로 두른 따뜻한 게르에서 양, 소, 야크, 염소, 낙타, 말, 사냥한 사슴으로 만든 바베큐와 고깃국, 가축의 젖과 신선한 동물의 피를 먹을때 테무진과 형제들은 웬갖 잡풀과 오논강의 물을 먹으며 성장했다.
가난과 굶주림에 찌든 열한 살의 어느날, 테무진은 우연히 오논 강변에서 '자무카'라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자무카는 유서깊은 '자다란'씨족의 아이였다. 마침 자다란 씨족이 오논 강변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유목민들은 일년에 2~4번 야영지를 옮긴다. 성산 부르칸 칼둔과 거기서 시작되는 세 개의 강-오논 강, 케를렌 강, 툴라 강-은 몽골족의 발원지다. 몽골족의 한 지파인 자다란 씨족도 그곳에서 자주 야영하게 마련이다.
자무카는 테무진보다 몇 살, 아마도 2~3살 많았다. 하지만 또래를 만나기 어려운 초원에서 그 정도는 동년배로 통한다. 두 소년은 금세 친해졌고, 그해 겨울에 얼어붙은 오논 강 위를 지치며 놀았다. 몽골 사람들은 옛날부터 짐승의 뼈로 만든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 위를 이동했다. 베스트프랜드가 된 둘은 양과 노루의 복사뼈를 주고받으며 우애를 다졌다(이 선물에 대해선 1편에 설명을 해 놓았다.).
몽골 아이들의 대표적 장난감인 복사뼈
가난한 유목민 아이들이라고 해서, 깨벗고 뛰어다니며 개구리나 잡아먹고 논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몽골의 전통 놀이는 매우 다양하고 정교하다. 몽골 아이들은 짐승의 복사뼈를 일종의 주사위로 쓰면서 놀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큐빅 주사위처럼 <6면 중 1면>이 아니라 <4면 중 1면>이 나오게 되어 있다. 대체로 말, 낙타, 양, 염소가 각각의 면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말은 멋지고 빠른 동물이지만 낙타처럼 훌륭한 짐꾼은 아니다. 반면 양의 털은 몽골인의 생활에 중요한 자원이다. 이처럼 각 동물의 쓰임과 가치가 다르다. 주사위의 네 동물중 어떤 동물이 나오느냐에 따라 특정 상황에서 게임의 향방이 바뀐다. 복사뼈를 많이 가진 2인 이상이 모이면, 형태와 룰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게임은 얼마든지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복사뼈로 하는 몽골식 주사위놀이를 '샤가이'라고 한다.
테무진과 자무카는 피로 맺은 의형제, 즉 '안다'가 되었다. 얼핏 보면 애들이 장난감 주고받으면서 어른 흉내 낸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소년은 진지했다.
자다란 씨족이 야영지를 옮기면서 두 친구는 헤어지지만, 테무진이 12살이 되는 다음해 봄에 또다시 만나게 된다. 테무진과 자무카는 두 번째 안다 의식을 맺었다. 형편에 따라 헤어지고 만나는 사이라 우정이 더욱 고팠을 수도 있었으리라. 이번에는 좀 더 어른답게 화살을 주고받았다.
자다란 씨족은 '흰 뼈'로 통했다. 테무진보다 훨씬 부자였던 자무카는 아주 멋진 화살을 주었다. 소리나는 화살, 즉 '효시(嚆矢)'였다.
몽골 사람들은 활의 민족답게 상황에 따라 수십 가지의 화살을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가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화살인 '효시'다. 보다시피 구멍이 뚫려 있는데, 호루라기나 피리와 같은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다. 화살을 쏘면 바람이 숨의 역할을 하면서 그 화살만의 독특한 소리를 낸다. 효시는 군사작전시 암호로 쓰였으며, 사냥이나 약탈을 나선 전사들끼리 자신들만 아는 소리로 은밀히 교신할 때도 사용했다. 아마 두 친구는 자무카가 선물한 효시로 서로의 위치를 알려주며 유대감을 다졌을 것이다.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 효시는 아주 비싼 화살이다. 화살대로 쓰이는 나무와 촉에 들어가는 금속, 호각부위를 따로 제작해야 한다. 효시는 일회용품이 아니므로 내구성도 중요하다. 좋은 재료와 정교한 기술, 노가다가 필요한 물건이다.
반면 가난한 테무진은 겨우 나무를 깎아 만든 화살을 주었다. 화살촉도 나무로 되어있었다. 기껏해야 새 깃털을 달아주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이런 화살은 연습용이나 새잡이용으로 쓸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차피 물건을 거래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자무카는 테무진의 초라한 선물을 기꺼이 받았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서로의 피를 마시며 의식을 거행했다. 몽골인들에게 피는 곧 영혼. 두 사람은 서로의 영혼을 삼켜 일심동체가 된 것이다.
또한 무엇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두 어린 안다는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먹었다. 어쩌면 피를 말하는 것일수도 있다. 영혼은 소화되지 않는 거니까. 혹은 돌이나 쇳조각, 짐승의 뼈 등 정말 물리적으로 소화되지 않는 물건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우정의 상징을 몸 속에 영원히 간직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자무카는 어린 시절의 테무진에게, 친가족 외에 호의의 신뢰를 보여준 유일한 친구다. 또한 테무진 평생을 통틀어, 안다를 맺은 유일한 인물이다.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견디뎐 테무진에게 자무카의 존재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무엇이 두 소년들로 하여금 두번씩이나 안다를 맺게 했을까? 둘은 서로의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그건 나뿐만 아니라, 현재를 사는 누구도 모른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아이들은 서로 비슷할수록 가까워진다. 반면 어른들은 성격과 기질이 비슷한 사람들일수록 경쟁하고 증오한다.
테무진과 자무카는 비슷한 인간이었다. 둘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한 번 힘을 합쳤다가, 이후 철천지 원수가 되어 약 20년 동안 투쟁한다. 마침내 승자와 패자가 갈려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어졌을 때 극적으로 화해하게 된다.
2
헐룬과 소치겔의 아이들이 점점 자라자 슬슬 수렵과 채집에 나설수 있게 되었다. 헐룬(과 소치겔)의 부담이 준 것이다. 그래봐야 애덜이 할 수 있는 '수렵'은 낚시가 전부였다. 사냥단을 조직해 사슴과 야생마를 놓고 늑대무리와 레드오션 경쟁하기엔 나이도 어렸고 머릿수도 적었다. 활이라도 쏠 줄 아는 애들은 헐룬의 자식들인 테무진과 카사르, 소치겔의 두 아들 벡테르와 벨구테이 네 명 뿐이었으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테무진과 카사르는 자기들끼리 친했고 벡테르와 벨구테이는 같은 편이었다. 머리에 피가 마르기 시작하니까 같은 엄마 자식끼리 라인이 갈린 게지... 이 2vs2 그룹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춘기가 되어서부터는 줄곧 다퉜나보다. 첫째라서 힘도 세고 덩치도 제일 좋은 벡테르가 싸움에서 가장 유리했다.
하루는 테무진과 카사르가 '크돌리' 화살로 작은 새 한 마리를 잡았다. 크돌리란 우리말로 '고두리살'을 뜻하는데, 고두리살을 말 그대로 뜻풀이하면 끝이 뭉툭해서 살 속에 박히지 않는 화살을 말한다. 원래는 작은 새를 잡을 때 쓰는 화살이다. 일반적인 화살로 작은 새를 잡으면 뼈와 살이 뭉텅 헤지고 패여서 먹을 것도 별로 없을 터. 그러니 고두리살로 퍽 하고 '쳐서' 잡는 것이다(나중에는 모든 새잡이용 화살을 통칭하는 말이 되었다.).
동생 물건 뺏는 형, 지구에 3억 명은 될 거다. 백테르도 평범한 형답게 테무진의 새를 빼앗아갔다. 테무진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 다음날, 테무진, 카사르, 벡테르, 벨구테이 넷이서 오논강변에 나란히 앉아 낚시를 하다가 물고기 하나가 테무진과 카사르의 낚싯대에 걸려들었다. 벡테르 형제는 그 생선도 빼앗아갔다.
<몽골비사>에는 분명히 테무진과 형제들이 낚시를 해서 "자신들의 어머니를 봉양했다."고 나와 있다. 극한의 생존을 위해 수년째 협동하던 가족이다. 벡테르와 벨구테이가, 빼앗은 생선을 지들끼리만 먹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친모 소치겔과 헐룬한테 갖고가서 <우리가 낚았어요~> 했겠지.
뿔이 난 테무진과 카사르는 지구에 사는 3억명의 동생들처럼 헐룬에게 달려가서 일러바쳤다. 그러나 헐룬은 벡테르를 두둔하며 외려 테무진과 카사르를 혼냈다.
"그만들 해라. 형제끼리 왜 싸우느냐? 우리한테는 그림자말고는 친구가 없고, 꼬리말고는 채찍이 없다(이 문장은 고립무원의 상태를 표현하는 중세 몽골의 관용어구다.). 우리끼리 싸워서야 우리를 버리고 떠난 타이치우드 친적들과의 한을 풀 수 있겠느냐?"
뭐...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헐룬은 몽골족 신화의 주인공 이야기를 하며 테무진과 카사르를 훈계한다. 바로 모든 몽골족의 상징적 어머니로 통하는 '알란'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플롯은 독자열분들도 많이 들어봤을 거다.
: 알란은 키가 3미터가 넘는 신성한 여자였는데, 얼굴은 얼마나 이쁜지, 또 몸매는 얼마나 글뤠뭐뤄쓰한지... 여튼 알란은 여차저차해서 남편을 만나 두 아이를 낳는데 그만 남편이 죽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그 후에 "남편도 없이" 애를 셋이나 더 낳는다. 으음... 대체 누구의 아이일까?
알란의 남편은 생전에, 사슴을 사냥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굶어죽기 일보직전의 가난뱅이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하도 배고파서 자기 아들을 팔테니 고기 좀 달라고 하기에, 사슴 뒷다리와 아이를 맞바꾼 적이 있다. 이 아이를 집안에서 하인으로 부려먹었지만 그래도 아들 대접을 해 줬다. 즉 양자인 것이다.
알란의 두 '적통' 자식들이 바보가 아닌 한, 세 동생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양자로 들어온 자기들의 의붓형제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아 어머니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하고 따지자 알란은 화살을 가져와서 형제 다섯에게 하나씩 꺾어보라고 한다. 화살은 당연이 똥강똥강 꺾였다. 그 다음에는 화살 다섯 대를 돌아가면서 한 번에 꺾어보라고 한다. 독자열분덜, 자라면서 동화책 봤으면 알 거다. 꺾일 리가 있나? 이어 알란 아줌마가 미리 준비해 놓은 결론이 나온다.
"봐라! 너희 다섯 형제는 이 화살처럼 똘똘 뭉쳐야 꺾이지 않고 살 수 있는게다. 반목할 생각 하지 말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라. 아버지가 누군지 따지면서 싸우지들 말고... 어차피 늬덜, 다 내 배에서 나오지 않았니?"
(주의할 것은 이 이야기가 몽골을 원류로 하는 구전이라기보다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흔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헐룬 曰,
"싸우지들 말고 화목하게 지내렴."
3
현실은 이야기만큼 아름답지 않은 법이다. 테무진은 헐룬의 훈계를 듣지 않았다. 대신 반항의 뜻으로 게르의 모전 벽을 손으로 제끼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벡테르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살인... 그것도 존속살인이다. 혈통이 중요시되는 유목민 사회에서 친형제를 죽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전편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초원에선 '평판'이 보통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테무진은 형-비로 배다른 형이지만-을 죽이려고 마음먹은 거다. 약을 잘못 먹은 걸까? 아니면 굶다보니 정신줄이 소풍을 나간 걸까?
소설이나 영화 등 테무진의 일생을 다룬 스토리들을 보면 벡테르를 최대한 나쁘게 묘사하곤 한다. 테무진의 살인행위를 변호하려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벡테르가 한 일이라고는 생선과 작은 새를 빼앗은 게 전부였다. 별로 좋은 형은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결코 죽어도 될 만한 사유가 되진 못한다.
답은 벡테르의 악행이 아니라 헐룬의 태도에 있다. 벡테르는 죽은 남편의 자식이지만, 헐룬과는 생물학적으로 피가 섞이지 않았다. 몽골 유목민들에게는 충분히 결혼할 수 있는 사이다. 알란 고아는 남편이 죽고 나서 양자와 육체관계를 가지고 아이를 낳았다. 헐룬이 알란 고아의 이야기를 하며 테무진과 카사르를 훈계한 이유는 분명하다. 벡테르와 재혼하겠다는 거다.
테무진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사이가 안 좋은 배다른 형이 가문의 가장이자 자신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싫을 수밖에 없다. 헐룬도 뭐 좋아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을 거다. 그녀는 예수게이의 본부인이었다. 벡테르를 남편으로 맞으면, 남편의 첩에 불과했던 소치겔은 지신의 시어머니가 된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헐룬의 계획은 무척 합리적이다.
헐룬의 가족에게 '먹고사니즘'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없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낚시도 하고 새도 잡는 등, 비로소 제 몫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극한의 생존을 하고 있던 가족이다. 이럴 때는 가족에 속해 있는 '노동력'을 1人분이라도 묶어놓는 놓는 게 상책이다. 벡테르는 나이도 가장 많았고, 따라서 다른 형제들보다 집밖에서 먹을거리를 주워올 능력도 개중에 제일 나았다.
헐룬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벡테르가 가족 구성원에서 떨어져나가는 게 될 수밖에 없다. 생전의 남편 예수게이처럼 세력을 모으는 '보스'의 조직원이 되거나, 남의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거나, 혹은 남편처럼 어디서 불쌍한 여자를 납치해 결혼하거나. 그렇게 독립을 하면 헐룬 가족은 막대한 '인적 자산'을 잃게 된다.
그러나 테무진에겐... 감정적으로도 싫었겠지만, 정치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어머니 헐룬은 아버지의 정실 부인이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테무진은 예수게이의 후계자였다. 가난한 평민이었을지언정 원칙적으로는 카불 칸의 직계손이었고, 운이 좋아서 살아남아 장성한다면 예수게이의 부하들에게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라며 충성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벡테르의 양아들이 되면 이러한 자신의 '배경'을 단번에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때 그 시절의 테무진이 그런 정치적인 생각을 했을까.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애다.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정도 되는 나이였다. 이렇게 어릴 때 형을 죽이기로 결심한 거다. 즉흥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애들은 찰리의 초콜릿공장에서 평생 살고싶기도 하지만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취향을 드러낼 때도 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테무진의 살인은 '계획살인'이었다. 그는 결코 멱살잡이를 하다가 '우연히' 죽어있는 상대를 발견하거나, 약한 아이를 숨이 끊어질때까지 실컷 때려놓고 나중에 경찰서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설마 죽을 줄은 몰랐어여...장난이었는데..."하고 울먹이는 중학교 일진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니 그녀석의 목표는 정확하면서도 '효율적인' 살인이었다.
게르에서 나온 테무진은 곧바로 카사르와 공모한다. 공모의 내용은 싸움이나 대결이 아니라 '사냥'이었다. 늑대(꼭 몽골늑대만이 아니라 코요테나 리카온도 마찬가지다.)가 먹잇감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야생의 추적과 탈주가 결코 일직선의 속도싸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먼저 초식동물 무리를 동요시킨다. 그 과정에서 점찍은 초식동물을 무리에서 떼어낸다. 이윽고 '추격대'가 약속된 루트를 따라 먹잇감을 추격한다. 그러는 동안 '매복대'는 추격루트를 우회해 사냥감을 기다린다. 추격대가 적당한 지점으로 사냥감을 모는 데 성공하면, 매복대가 사냥감에 1차 타격을 가한다. 그러는 동안 뒤쫓아온 추격대가 먹잇감에 달라붙는다.
늑대는 몽골초원의 대표적인 토템이다. 몽골 남자들은 실제로 늑대의 생존전략과 지혜, 끈기(개과동물의 근육은 지구력이 엄청나다.)를 존경했다. 몽골 전사들은 가젤이나 사슴을 사냥할 때 늑대들의 행동패턴을 다양하게 모방했다. (자기네들은 '잿빛 이리의 후손'이라는 몽골족의 신화, 그리고 훗날 늑대의 사냥법을 연상케 하는 테무진의 군사전술 때문에 테무진을 다룬 현대의 많은 이야기들은 늑대와 테무진을 어떻게든 연결시키려고 한다.)
테무진과 카사르도 그랬다. '벡테르 살인'은 테무진의 영악함과 장점이 모두 드러난 사건이다. 어차피 힘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두 형제는 활을 사용하기로 했다. 마침 벡테르는 가족들의 말을 지키며 작은 언덕에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실패할 확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둘은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활시위를 당긴 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소리없이 접근한 것이다.
벡테르가 위험을 감지했을 때, 이미 두 배다른 형제는 자신을 앞뒤로 포위한 채 정조준하고 있었다. 벡테르도 바보는 아니어서, 이 상황이 형제들간에 으례 벌어지는 쌈박질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의연했다. 그는 큰형답게, 잠깐 훈계를 한다.
"이게 무슨 짓이냐? 함께 힘을 합쳐 타이치우드 형제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리고 살려달라고 비는 대신 친동생 벨구테이의 안전을 부탁한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는 걸, 동생들의 눈빛만 봐도 알았을 것이다.
"내 대(예수게이-소치겔의 가계)가 끊어지지 않게, 벨구테이는 죽이지 말아다오."
테무진과 카사르는 대답 대신 양쪽에서 화살을 쏘았다. 벡테르는 즉사했다.
방금 형을 죽였어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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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에 들어온 테무진과 카사르의 얼굴을 보고, 헐룬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차렸다. 살인을 저지른 자의 얼굴은 그 전과 다른 법이다. 게다가 애들이다. 아무리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이라 할지라도 얼이 빠져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가, 자기 아들들의 표정을 읽지 못하겠는가.
헐룬은 분노와 절망에 휩싸여 저주를 퍼붓는다.
"제 형제를 죽인 놈들! 테무진 네 이놈, 내 뜨거운 자궁을 박차고 나올 때 네놈은 손에 검은 핏덩어리를 쥐고 태어났지..."
어쩐지 불길하더라니, 결국 존속살인자가 될 놈이었다는 뜻의 저주다.
"... 사나운 개처럼, 표범처럼, 제 새끼를 무는 낙타처럼, 새끼를 잡아먹는 미친 원앙처럼, 길들일 수 없는 맹수처럼... 너희는 형제를 죽였다. 이제 어떻게 살자고 네놈들이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
헐룬은 벡테르와 재혼하려는 계획이 틀어져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그딴 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들들이 살인죄를 저질렀는데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테무진의 살인은 정치적이었지만, 그건 한 집안 내의 정치에 불과했다. 반면 아직 20대임에도 산전수전 다 겪은 헐룬은 '초원 단위'의 정치를 생각할 줄 알았다. 타이치우드족과 아버지의 옛 부하들에게 버림받은 테무진 가족은 이제껏 선량한 피해자였다. 도움을 준 사람들도 없었지만, 해코지를 한 이들도 없었다. 폭력을 행사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테무진과 그의 가족은 범죄자였다. 얼마든지, 무기를 든 성인 남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었다. 헐룬의 말대로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느냐...', 이제 이 가족은 정말 큰일났다.
헐룬의 예감은 적중했다. 소문은 금방 퍼졌다. 테무진과 카사르가 벡테르의 시체를 그냥 밖에서 썩게 내버려둔 것도 소문이 빨리 퍼지는 데 한 몫을 했다. 부르칸 칼둔 기슭과 오논, 케를렌, 툴라 강, 그리고 시베리아 삼림이 만나는 지역에는 자잘한 군소부족, 씨족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을 통해 소식이 퍼져나갔을 것이다.
타이치우드족의 뚱뚱이 칸 타르쿠타이는 속보를 접하자 마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수년 전 제삿날... 암바가이 칸의 늙은 미망인들의 억지 연극으로 간신히 판을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예수게이의 사람들을 빼앗아 헐룬 가족을 굶어죽게 내버려둔 것은 치사한 행동이었다. 이 사건은 분명히 타르구타이와 타이치우드족의 평판을 크게 떨어뜨렸을 것이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예수게이의 후계자가 죄를 저질렀다. 이런 범죄는 보통 혈통집단, 그러니까 부족이나 씨족 내에서 처리하는 게 상식이었다. 타이치우드는 테무진의 가까운 친척들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뚱뚱이 칸과 타이치우드족은 정치적, 도덕적 권위를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타르쿠타이는 테무진 가족의 끈질긴 생명력에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저것들이 왜 안 죽는 거야... 저러다 다들 멀쩡히 장성하면 내 골치를 엄청 썩이겠지? 테무진의 존속살인은 그들을 지근지근 밟아줄 좋은 핑계였다.
"앗쭈, 이 어린 것들이 다 자랐다 이거지? 제 형도 죽이고 말야..."
타르쿠타이는 즉시 부하들을 소집해 오논 강변의 헐룬네 게르를 습격했다. 사태를 파악한 테무진 가족은 얼른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자가 셋이었다. 헐룬, 소치겔 말고도 언제부터인가 함께 살게 된 '코아그친'이라는 노파가 있었다. 자식도 가족도 없이 늙은 코아그친은 집안일을 돌보는 하인이었을 것이다. 카쥰, 테무게, 테물린은 아직 너무 어렸다. 뻥 뚫린 초원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봐야, 뻥 뚫린 초원에서 예비마를 끌고 따라오는 전사들을 따돌리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가족은 몸을 숨길 수 있는 산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타이치우드 전사들에게 곧장 뒤를 밟히고 말았다. 적은 숫자로 다수와 싸울 땐 좁은 길목을 지키는 게 최선이다. 식구들은 한두 사람만 통과할 수 있는 숲속의 좁은 길목을 만나자 즉시 전투준비를 했다. 힘이 좋은 벨구테이는 근처의 나무를 꺾어 바리케이트를 만들었다. 한두 사람씩하고만 싸울 수 있는 '판'을 만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들이 아직 어리다. 힘으로 싸울 수는 없다. 하지만 활 대 활이라면 대적이 가능하다. 카사르는 활솜씨도 훌륭한 데다가, 타고난 '등빨'이 좋아 활시위를 많이 당길 수 있어 사정거리도 길었다. 아마 헐룬의 머리에서 나온 임기응변일 것이다. 이 아줌마,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벨구테이와 카사르는 어린 카쥰과 테무게, 테물린 그리고 두 어머니와 코아그친 할머니를 뒤로 숨겨놓았다. 두 동생들에 비해 싸움에 재능이 없어 딱히 도움될 게 없는데다가, 적들의 목표물었던 테무진도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벨구테이는 사랑하는 친형을 잃은 직후였다. 그럼에도 테무진과 다른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우리 눈에는 이상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헐룬네 가족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운명공동체였다. 어차피 형은 죽었다. 슬픈 건 슬픈 거고, 가장 나이 많은 형제인 테무진마저 빼앗길 순 없는 게 벨구테이의 입장이었다. 지금은 테무진이 집안의 가장이자 예수게이의 후계자였다. 가족의 미래가 그에게 달려있었다.
무엇보다 타이치우드라는 공동의 적이 눈앞에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화해의 절차를 대신했던 걸까? 어쨌든 테무진은 동생은 죽이지 말아달라는 벡테르의 유언을 충실히 지켰다. 마치 벡테르 살인사건이 없었던 일이라는 듯, 이후 테무진과 벨구테이는 형제이자 동료로서 변함없는 신뢰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5
테무진 가족의 작전은 성공했다. 카사르는 타이치우드 전사들과 팽팽하게 싸울 수 있었다. 타이치우드 전사들의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터졌을 것이다. 남자애 하나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니...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발이 묶여있을 순 없었다. 이윽고 타이치우드 전사 하나가 소리쳤다.
"카사르! 네 형을 넘겨라. 어차피 우린 다른 사람들한테는 관심없다. 테무진만 넘기면 모든 상황은 끝난다!"
역시 형이 목표였다. 어차피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카사르는 테무진에게 어서 말을 타고 도망가라고 했다. 테무진은 말 한 마리에 의지해 더 높은 고지의 숲으로 튀었다. 그 모습을 본 타이치우드 전사들은 상대하기 영 만만찮은 헐룬네 식구들을 포기하고 테무진을 추격했다.
테무진은 빽빽한 수풀지대에 짱박혔다. 넓은 숲을 일일이 수색하기란 불가능했다. 타이치우드족은 어쩔 수 없이 숲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며 테무진이 겨나오기를 기다렸다. 배고파지면 나오겠지. 숲속에 먹을 게 뭐가 있다고... 지가 별 수 있겠어?
숨어있는 테무진을 찾아보자.
테무진이 어떻게 자랐던가? 그는 이미 배고픔 참기의 달인이었다. 테무진은 풀을 뜯어먹으며 무려 9일을 버텼다. 그러나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란 게 있는 법이다. 테무진은 타이치우드 전사들이 이제는 물러갔기를 바라며 숲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타이치우드 전사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타르구타이는 테무진에게 나무널빤지로 만든 칼을 씌워 타이치우드족의 야영지로 끌고갔다.
위 사진에는 칼이 목에만 씌여 있다. 그러나 사료에 따르면 테무진은 목 뿐 아니라 양 팔도 구속되어 있었다. 타르구타이는 끝까지 칼을 벗겨주지 않았다. 따라서 테무진은 혼자서는 밥을 먹는 건 물론이고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타르쿠타이는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테무진을 먹이고 재우라고 했다.
밥술은 얻어먹었겠지만, 사실상 조리돌림의 무한반복이나 다름없었다. 타이치우드족 사람들은 테무진을 경멸했으며, 아마도 상당히 괴롭혔을 것이다. 테무진에겐 분초가 고통이었다. 교재를 가득 넣은 가방을 멘 채 24시간 365일을 지낸다고 생각해보라. 상상할 수 없이 괴로울 것이다. 하물며 칼을 쓰고 사는 나날은 어땠겠는가. 계속해서 이렇게 지내다가는 칼의 무게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할 것이고, 뼈가 휘어 필시 반병신이 될 터였다. 어린 나이의 테무진이 정신적으로 붕괴할 가능성도 컸다.
타르구타이의 입장에서는, 괜시리 테무진을 죽일 필요가 없었다. 형제를 죽인 녀석을 벌한답시고 똑같이 형제(테무진의 키야트 혈족과 타이치우드족은 서로를 형제라고 불렀다.)를 죽이는 건 모순이다. 예수게이의 후계자인 테무진을 살려서 계속 벌주는 한, 타이치우드족은 보르지긴-키야트족을 '관리하는' 귀족혈통이 된다. 옛날 예수게이 가족을 떠났던 사람들을 '테무진 괴롭히기'에 동참시킴으로써 죄의식을 무마하고(테무진이 더 나쁜놈이니까.)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에도 좋다. 테무진이 얼마나 괴롭든, 정상적으로 성장을 하든 말든 그건 타르구타이의 알 바가 아니었고.
테무진은 특별히 눈에 띄는 재능도, 다른 사내아이들을 압도하는 마초적인 성향도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끈기였다. 그리고 낙천성, 즉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도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믿는 성격이었다(테무진을 증오하는 중세~현대 서양 학자들은 이를 "악마적인 집요함"이라고 표현하지만, 그들의 입장을 아무리 고려해줘도 이건 너무 불공정한 표현이다.). 테무진은 청소년기에 맞은 인생의 암흑기를 이를 악물고 견뎠다. 천만다행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소르칸 시라'라는 사람이었다.
6
소르칸 시라는 '솔두스'씨족의 수령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꽤 귀족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몽골족의 조상은 '바보' 보돈차르와 그의 아내다. 이들의 정액과 자궁에서 유래한 '순혈' 몽골족을 '니르운'이라고 한다. 니르운은 '빛', '순수함'을 뜻한다. 온 몽골족이 모두 니르운으로 구성된 건 아니다. '멀다', '어둡다'는 뜻에서 '드릴루킨'이라고 부르는 평민 이하의 백성들도 있다.
원래 니르운과 드릴루킨의 개념은 테무진과 그의 후손들이 유라시아대륙 최고의 권력자가 되면서 확고해진 개념이다. '황금가족(알탄 오르도)'을 두 부류로 나눈 것이다. 이때쯤 되면 니르운이나 드릴루킨이나 전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런 혈통이다. 특히 테무진의 외가인 올쿠누트족, 처가인 옹기라트족은 원칙상 니르운이 될 수 없는 드릴루킨이지만 웬만한 니르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존경받았다(참고로 먼 훗날 중앙아시아를 제패하게 되는 정복왕 '티무르'는 몽골족 니르운인 '바를라스' 씨족 출신이다.).
하지만 테무진이 카간(대칸)이 되기 전부터도 몽골족 사이에서 니르운과 드릴루킨은 확실히 구분되었다. 그래봐야 쬐그만 부족의 인간들이 누가 더 양반입네 따지는 거였지만 말이다.
당시의 드릴루킨은 말하자면 이런 거다 : 보돈차르의 후손이지만 그의 정실부인인 '납치당한 숲 부족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가 낳은 자식의 후손인 '제레트' 씨족. 알란 고아의 남편에게 사슴 뒷다리를 받고 아들을 팔아넘긴 남자의 후손인 우리얀카트(말 그대로 '오리앙카이', 즉 '숲 속' 핏줄이라는 뜻.)족. 보돈차르와 그의 형제들이 습격, 약탈하여 노예 혹은 하인으로 삼은 부족민들의 후손인 '자르치우트 아당칸'족. 몽골족 조상의 집에서 잡일을 했던 하인의 후손인 '말리크 바야트'족 등등.
솔두스족도 드릴루킨이었다. 타이치우드의 니르운 남자들이 전사, 사냥꾼이었던 반면 솔두스족은 목동 노릇을 했다. 가축도 치고, 양털도 깎고, 잡일도 하고... 소규모 부족이나 독립 씨족 등 작은 집단에서는 누구 할 것 없이 전사이자 사냥꾼이자 목동이자 잡일꾼이겠지만, 타이치우드족 정도의 규모에서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이런 집단의 하층민들은 상황이 급할 땐 <후속부대>가 되어 전투중 엘리트 전사들의 뒤를 받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계급차이는 확실했다.
학자들마다 '소르칸 시라'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한 씨족의 수령이었으므로 귀족에 해당한다는 이도 있고, '노예가족의 가장'이라는 결론도 있다(후자는 잭 웨더포드의 경우). 드릴루킨이므로 귀족은 확실히 아니었다. 하지만 드릴루킨도 등급만 낮을 뿐, 엄연히 몽골족의 일원이다. 노예는 결코 아니다(가정도 있고 자기 소유의 게르도 있고 재산도 있다.). 우리는 소르칸 시라를 '빈민촌 이장님'이나 조선시대 백정마을의 촌장 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여튼... 소르칸 시라 가족이 집집마다 돌림빵을 당하던 테무진을 맡을 차례였다. 소르칸 시라는 테무진이 무척 불쌍했나 보다. 게다가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딨겠는가? 마침 소르칸 시라에게는 세 자식이 있었으니, '칠라온', '침바이' 형제와 딸 '카다안'이었다. 세 자식은 테무진과 또래였다. 아이들은 테무진을 도와주자고 성화를 부렸다. 어린애들다운 반응이다.
소르칸 시라는 아이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의 가족은 테무진의 칼을 벗겨주고 목에 생긴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카다안은 24시간 칼을 쓰고 고초를 당하느라 기진맥진해진 테무진을 돌봐주었다. 좋은 음식을 준 건 물론이다. 덕분에 테무진은 실로 오랜만에 배부르고 편하게 잘 수 있었다. 군생활 할 때를 생각해보면, 십수 시간 행군을 마치고 군장을 벗을 때 헬륨풍선처럼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시나마 칼의 무게와 괴롭힘, 굶주림에서 해방된 테무진은 얼마나 좋았을까.
소르칸 시라 가족은 테무진이 자신들의 게르에 올 때마다 정성껏 돌봐주었다. 예수게이의 부하였던 사람들, 테무진의 친족들은 이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일가족이 테무진의 유일한 '내 편'이었다. 포로생활이 계속될수록 테무진과 칠라온-침바이-카다안 삼남매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테무진은 훗날 이 가족이 베풀어준 은혜를 결코 잊지 않는다.
하지만... 맘씨좋은 사람들이 한 가족쯤 있다고 해서 포로생활이 견딜만 한 건 아니었다. 소르칸 시라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러다가는 몸도 정신도 파괴되어버릴 게 분명했다. 죽느니만 못했다.
다시 말해, 목숨을 건 도박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테무진은 탈출을 결심한다.
(5)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intro
사랑하는 독자열분덜, 이제 긴 말 하지 않는다. 저번 편들 안 봤으면 빨리 텨가서 보고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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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탈출을 결심했다고 해서,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하고 어머니 헐룬의 게르가 있는 쪽으로 뛰어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테무진은 나이답지 않게 적당한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타이치우드 족이 테무진의 고향과 가까운 오논 강 기슭에 야영하고 있을 때였다. 타이치우드 족은 강변에서 잔치를 벌였다. 몽골족 뿐 아니라 초원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잔치를 한다. 제삿날에도 하고, 사냥이나 약탈에 성공했을 때처럼 좋은 일이 있을 때도 한다. 행복한 미래를 기원하며 굿을 할 때도 예외는 아니다.
테무진은 잔치판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아마 잔치를 꾸며주는 장식품 정도였을 것이다. 아니면 잔치는 부족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하는 거니까, 게르들이 텅텅 비워서 그날 밤 테무진을 맡을 사람들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밤이 깊어지자 타이치우드 사람들은 하나 둘 자신의 게르로 들어가거나, 술에 취해 널브러졌다.
몽골사람들은 한 번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들이붓는 습관이 있다. 이 습관은 훗날 몽골제국의 궁정에 출사하게 된 중국인, 아랍인 학자들을 경악시켰다. 몽골인들은 불과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유라시아대륙의 황금핏줄이 되었다. 그래서 가난한 초원의 소박(?)하고 거친 습관이 세계 권력의 중심부에 그대로 이식된다. 술잔이 날아댕기고 한 쪽에선 신나게 오바이트하고 있고... 결국 국무회의, 궁중의식 등 모든 모임은 '전원 기절'로 끝나게 되어 있다(특히 여자가 술판에 껴 남자들과 함께 고성방가를 지르는 모습에 중국과 아랍 대신들은 아연실색했다.). 타이치우드 사람들도 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마셨을 것이다.
마침 테무진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은 약골에 약간 덜 떨어진 소년이었다. 아마 잔치에 끼워주기 뭐했을 테니 테무진이나 잘 감시하고 있으라고 맡겼을 터였다. 기회였다. 테무진이 칼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그깟 녀석쯤 상대도 되지 않았을 테지만... 조건은 테무진에게 극도로 불리했다.
아마 약골 소년은 테무진의 칼에 연결된 사슬이나 끈을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때를 기다리던 테무진은 소년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순간적으로 칼(에 연결된 구속도구)을 낚아챘다. 그 한 동작을 위해 온 몸을 비틀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칼로 소년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약골 소년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테무진은 몸을 숨길 만한 곳을 찾아 달음박질쳤다. 하지만 말을 타지 않고 도보로, 그것도 칼을 뒤집어쓰고 얼마나 달아날 수 있겠는가. 이윽고 정신을 차린 소년이 소리쳤다. 테무진이 도망쳤다아아...
몽골 초원, 측 스텝(steppe)지역은 물이 귀하다. 키가 큰 초목이나 수풀은 언제나 강을 끼고 자라난다. 테무진은 술에 절어 어질어질한 병사들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오논 강변에 자란 수풀 속으로 숨었다. 그러나 하필 그날따라 달이 너무 밝았다. 테무진은 최대한 몸을 숨기기 위해 물속에 몸을 담갔다. 나무 칼의 부력을 이용해 머리만 내놓고, 일단 수색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몽골초원은 일교차가 엄청나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한밤중의 물 속은 매우 차갑다. 강기슭을 수색하는 말발굽소리, 병사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을 테니 추위 외에 공포와 긴장도 보통이 아니었을 거다. 그러다가 결국 횃불을 든 남자에게 적발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다름아닌 소르칸 시라였다!
소르칸 시라는 이왕 호의를 베푼 거, 테무진을 끝까지 도와주기로 한다.
"안심하고 가만히 있어라. 내가 알아서 하마."
소르칸 시라는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이봐들! 여기까지 찾아서 없으면 없는거야. 분명히 우리가 못 보고 지나쳤을 거야.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 각자 못 찾아본 곳을 다시 수색하자!"
그리하여 또다시 수색 삽질이 시작되었다. 소르칸 시라는 테무진이 숨어있는 곳을 눈치껏 먼저 찜하고는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더 참아라..."
타이치우드 전사들이 또다시 수색을 첨부터 시작하자고 할때, 소르칸 시라가 제안했다.
"이보슈, 타이치우드 나으리들. 그녀석은 분명이 근처에 있습니다. 말도 없고 칼까지 뒤집어쓴 놈이 도망을 가봐야 얼마나 가보겠습니까? 어두워서 눈에 안 띄는 게지요... 내일 날이 밝고 나서 말을 타고 둘러보면 반드시 잡힐 겁니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다들 술독에 빠져 자다 일어난 상태라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병사들은 각자의 게르로 기어들어갔다. 소르칸 시라가 테무진에게 다가가 말했다.
"눈치껏 빠져나와 가족들을 찾아가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나도 타이치우드 '니르운'들 눈치보고 사는 처지인데, 널 도와준 걸 걸렸다간 우리 가족도 큰일난다. 이제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라. 혹시 잡히게 되더라도 내가 도와준 얘기는 절대 하지 말아다오."
이윽고 테무진은 차가운 물 속에 혼자 남게 되었다.
2
계속 물 속에 있다간 체온이 상실돼 인사불성이 될 터였다. 그렇다고 칼을 뒤집어쓴 채로 걸어서 탈출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초원의 속도는 모든 게 말로 통용된다. 말발자욱만 식별할 수 있으면, 말을 달려 사나흘 거리도 얼마든지 추적한다. 걸어서 도망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도망가지 말고 숨어있어야 한다. 어디에? 테무진은 나이답지 않게 대담하게도 적들의 게르가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타이치우드 야영지로 걸어들어갔다. 자다가 오줌 누러 나온 사람 눈에라도 띄면 모든 게 끝장이지만, 어차피 모 아니면 도였다.
소르칸 시라는 테무진에게 할 만큼 했지만, 이 상황에서 도와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테무진은 소르칸 시라 가족의 게르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난데없는 등장에 일가족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르칸 시라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이젠 정말로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가족들을 찾아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여기로 쳐들어오면 우린 대체 어쩌라는 거냐?"
아마 소르칸 시라는 어쩔 수 없이 테무진을 타르구타이에게 넘기려고 했던 모양이다. 가장으로선 당연한 결정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가장과 생각이 다른 법이다. 테무진과 친한 친구사이가 된 칠라온, 침바이, 카다안 삼남매는 아버지에게 성을 냈다.
"아빠는 테무진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어어....!"
소르칸 시라의 반응은?
"아, 알았다... 아빠가 어떻게 해보마..."
소르칸 시라는 먼저 테무진의 칼을 벗기고 불에 태워 증거를 인멸했다. 게르의 정 중앙에는 소똥을 연료로 쓰는 화로가 있다. 요즘엔 아래 사진처럼 굴뚝 난로를 많이 쓰는 모양이지만, 실내에 상시 불을 피운다는 점은 동일하다.
삼남매는 테무진을 집안에 숨겨두고 보살폈다. 게르는 생각보다 넓다. 또 몽골인은 원래 시베리아 삼림에서 생겨난 인종이다. 그래서 초원의 다른 인종집단, 즉 타타르족, 돌궐족(투르크, 즉 터키인), 위구르족, 탕구트족(티베트인), 나이만족(Turko-Mongolian, 즉 투르크-몽골에 위구르가 섞여있었다.) 등등보다 나무로 된 가구가 많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핏줄이 초원에 다양하게 흘러들어오고 또 복잡하게 섞이지만, 삶의 논리와 언어 등 문화적인 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훗날 테무진은 종족 개념이 아니라 '문화개념'으로 몽골족을 확장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숨을 데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는 동안, 타이치우드 전사들은 야영지 일대를 3일 간이나 샅샅이 수색했다. 아마 말로 하루 거리까지는 살펴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테무진이 없다면 답은 하나다.
"우리 중에 녀석을 숨겨주는 놈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는 각 게르마다 가재도구가지 탈탈 털면서 조사했다. 소르칸 시라 가족은 급한대로 테무진을 양털 수레에 싣고 그 위에 양털을 한가득 올려놓았다. 이윽고 병사들이 들이닥쳐 게를를 뒤지더니, 게르 뒷편의 양털수레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여기 있는 거 아냐?"
병사가 양털뭉텅이를 잡아당겼다. 그 결에 테무진의 한쪽 발이 버젓이 튀어나왔다. 몽골의 전통 수레는 작다. 계급이 낮은 솔두스 씨족이 쓰는 수레는 더 초라했을 것이다. 병사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발이 나왔으면, 그쪽을 '힐긋' 보기만 해도 들키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움직여서 양털을 들썩이게 할 수도 없고...
이럴 때일수록 뻔뻔해져야 한다. 이거 웬만한 사람들은 잘 안되는 거지만, 가장은 때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저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소르칸 시라가 태연을 가장하며 연기했다.
"허허 나 참... 이렇게 더운데 양털더미 안에서 버틸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쪄 죽지 않을까요? 뭐 들춰보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던가요..."
"음... 생각해보니 그러네."
"하긴. 나같아도 저 안에 들어가 있으면 죽었겠다."
하지만 테무진은 살았다. 양털 잠바 백 벌을 입고 뙤약볕 아래 수시간을 있었으니, 아마 탈진상태였을 것이다. 병사들이 떠나자 소르칸 시라는 테무진을 꺼내놓고 원망 섞인 말을 한다.
"아이구 이놈아...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뼈도 못 추릴 뻔했다."
그래도 그는 확실한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말 한 마리를 내주고, 초원에서 가장 귀한 식재료인 새끼양을 잡아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여행중 비상식량을 담을 가죽부대와 수통도 챙겨주었다. 거기다 호신용으로 활과 화살 두 대까지... 이렇게까지 해준 것도 이해는 간다. 테무진이 잘못되면 일가족도 끝장난다. 탈출에 성공하도록 돕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완벽한 기회를 잡은 테무진은 그대로 말을 달려 오논 강 상류로, 상류로 올라갔다.
3
이 시점에서, 학자들이 몽골역사 최대의 논쟁을 벌이는 부분을 이야기해야겠다. 대체 테무진이 포로생활을 한 기간이 얼만큼이냐는 거다. 어쩌면 테무진은 10년 가까이 노예생활을 했을 수도 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아마 타이치우드 족은 테무진의 정신과 의지가 완전히 부서졌다고 판단하고 '방생'했겠지. 혹은 장장 10년 만에 가까스로 탈출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테무진이 칼을 쓰고 살지는 않았을 거다. 그 채로는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으니까. 대신 '포로'가 아닌 '노예'생활을 했으리라.
이런 가설이 제기되는 이유는 테무진이 너무 '늦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테무진의 출생연도엔 많은 설이 있다. 필자는 정설에 가까운 대체적인 견해에 따라 1162년 설을 기준으로 이 시리즈를 쓰고 있다. 그런데 예수게이가 헐룬을 납치한 때는 1153년이다(이 연도가 정설에 가장 가깝다.). 헐룬은 테무진을 낳은 후, 2~3년 격차로 동생들을 낳는다. 그러니까 헐룬의 자궁과 난자, 예수게이의 정액은 의학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럼 납치에서 출산까지, 10개월의 임신기간을 고려한다 해도 발생하는 약 8년간의 공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수게이가 헐룬을 붙잡아놓고 게르 안에서 밤새 베개싸움이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육두불패의 거사분들께 물어보고 싶다. 과연 그러고 놀고 싶은지...
깔깔~ 날 납치하다니 이 짐승!
테무진의 노예생활이 길었다는 가설은 곧, 테무진이 1160년대생이 아니라 1150년대생이라는 가설과 짝을 이룬다. 테무진이 실제보다 5~10년 늦게 태어난 걸로 설정해, 노예로 산 5~10년의 시간을 고의적으로 날려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정말 일부 학자들이 제기한 의혹처럼, 역사의 기록자들이 테무진의 명예를 위해서 포로(혹은 노예)생활을 짧게 각색한 걸까? 무명의 <몽골비사> 저자, 인류 최초의 '세계사'를 쓴 당대 세계최고의 문필가 라시드 앗 딘 등의 사람들은 몽골제국이 지배하는 세계를 살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십보 백보다. 해당 기간이 1년이건 10년이건, 포로(노예)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몽골 역사에는 테무진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이나 여자들(어머니와 부인)에게 쩔쩔매는 장면, 심지어 가끔 보이는 비겁함까지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위대한 마초'를 위한 기록치고는 너무나 솔직하다. 어차피 흑역사를 쓸거면, 굳이 뭐하러 그 기간을 줄이냐는 거다.
따라서 이상의 가설은, 어디까지나 한번 생각해봄직한 의혹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오컴의 면도날을 대입해보자 : 왜 사가들은 A라고 기록했을까? 두둥~ 그야 사실이 A였으니까. - 끝 -
헐룬은 가난한 몽골족 동네에 잡혀오고 나서 영양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을 것이다. 심적으로도 공포와 절망의 시기였다. 신체의 임신능력이 일시적으로 정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예수게이는 헐룬 납치 후 정력적으로 세력을 불리고 있었고, 타타르족과 싸우고 약탈과 사냥을 나서고 용병 노릇을 하느라 집에 머무는 기간이 매우 적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여러 기록들이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집안형편이 안정되기 전의 7~8년 동안 헐룬이 임신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건 없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이야기를 계속해보도록 하자.
4
테무진은 오논 강 상류의 개울가, 작은 언덕에서 마침내 꿈에 그리던 가족과 재회했다.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한가로이 감격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타이치우드족이 언제 또 쳐들어올지 몰랐다. 테무진 가족은 안전한 곳을 찾아 북으로 올라간 끝에 부르칸 칼둔 기슭에 게르를 쳤다.
다행히도 타이치우드 족은 테무진 가족의 걱정만큼 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유목민들은 야영지를 자주 옮겨야 한다. 테무진 따위를 다시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만하면 본때를 보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테무진이 돌아오고 카사르와 벨구테이도 자랐다. 하지만 테무진 가족은 여전히 가난했다. '육고기'는 충분히 먹을 수 있었지만, 그래봐야 들쥐와 '타르바가'의 고기였다. 여전히 가난했단 얘기다. 타르바가란 토끼보다 큰 거대설치류로, 늑대와 여우를 피해 땅굴을 파고 숨어 사는 동물이다.
이 분이 타르바가(Tarvaga)
여기서 잠깐. 맛은 그렇다치고, 같은 양의 고기를 먹으면 영양엔 문제가 없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시의 몽골족은 100% 가까운 육식을 했다. 모든 영양을 동물에 의존했다. 여기서 가축과 사냥감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양을 예로 들면, 몽골 초원엔 수천 종의 풀이 자생하는데 양은 그중 500종 이상의 풀을 먹는다. 그러다보니 몸 안에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 가득차게 된다. 그래서 몽골엔 양고기만 먹어도 병에 안 걸린다는 말이 있다. 맛과 상관없이 양고기는 최고급 식품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양털은 게르의 벽의 재료이며, 각종 방한장비를 마련해준다.
염소와 소, 야크도 역시 방목을 하고 목영지를 수시로 옮기기 때문에, 다양한 풀을 먹는다. 한정된 먹이를 먹도록 진화된 야생동물의 고기와는 달리, 단순히 칼로리로 따라잡을 수 없는 영양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가축은 젖을 생산한다. 젖은 칼슘이 풍부하며 유산균을 함유한 요구르트, 탄수화물 대신 알콜 당을 즉각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술로도 만들 수 있다. 덧붙여 소와 야크의 똥을 연료로 쓰는데, 소와 야크만 충분히 갖고 있었도 난방 걱정 없이 겨울을 날 수 있다.
또한 가축의 몸에는 지방이 많다. 몽골 음식은 지금도 엄청나게 느끼하다. 겨울날씨가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고, 한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초원에서 살아가려면 몸에 지방을 열심히 저장해놔야 한다. 가축은 자잘한 사냥감들과는 달리 필요할 때 대량의 피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물뿐만 아니라 소금도 부족한 초원에서 피는 훌륭한 식염수 역할을 한다. 그러니 테무진 가족과 다른 초원사람들의 삶의 질은 엄청난 차이가 났다.
테무진 일가는 약간의 재산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9마리의 말이 생긴 것이다. 숲 속에는 쓸만한 털가죽을 가진 동물이 많았다. 여우와 담비의 모피 등은 꽤 괜찮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말 9마리를 마련할 때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우리는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다.
초원에서는 보통 일인당 십수마리에서 수십마리의 가축이 딸려 있었다. 말만 해도 한 사람이 한 두 마리의 예비마는 챙길 수 있었다. 테무진 가족은 '코아그친' 할머니까지 총 9명이었다. 이젠 걸어다니지 않아도 되었지만, 역시 가난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벨구테이는 타르바가를 잔뜩 사냥해 말 위에 주렁주렁 걸어놓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웬 놈들이 몰려오더니... 전 재산의 대부분인 말 8마리를 홀랑 주워다 갖고 가버리는 게 아닌가? 식구들은 눈으로 뻔히 보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게르에 바짝 붙여 메어놓는 것도 아니고, 멀찌감치 풀어놓아 풀을 뜯게 하는데 그걸 순식간에 몰아서 훔쳐가면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저지하고 싶어도 뛰어서 쫓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 8마리. 테무진 가족에겐 잃을 수 없는 자산이었다.
5
마침 남은 한 마리의 말고삐를 쥐고 있던 벨구테이가 화가 나 소리쳤다.
"이 쉽새들이... 내가 가서 찾아온다!"
원체 겁이 없는데다가 힘에 자신이 있던 카사르가 나섰다.
"됐어. 내가 갔다올게. 내가 너보다 낫다."
카사르는 평생 '산 사람하고는 싸워서 지지 않는다.'고 소리치고 다닐 정도였다. 몽골족은 무속신앙을 갖고 있었다. 귀신의 존재를 믿었기에 이런 표현을 썼다. 사실 카사르라는 이름도 '맹수'란 뜻이다. 원래 이름은 '주치'지만, 자라면서 카사르라는 별명이 붙었다. 별명이 본명을 대체하게 된 경우다(테무진의 첫째아들 '주치'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카사르와 벨구테이는 서로 자기가 간다고 난리였다. 테무진이 동생들의 말싸움을 간단히 정리했다.
"그만들 해라 이거뜰아. 내가 간다."
테무진은 마지막 남은 한마리 말을 타고 말발자욱을 따라 추적을 시작했다. 강도떼는 아마 예닐곱명, 최소 서너명이었을 터. 게다가 어른들이었을테니, 테무진에게는 목숨을 건 추적이었다. 그러나 8마리 말은 너무 중요했다. 그렇게 3일 밤낮을 달리다가 4일째 되는 날 아침, 강도들이 지나간 골목에서 웬 소년이 말젖을 짜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소년의 모습을 보아하니 때깔도 괜찮고 옷도 고급이다. 있는 집 자식인 모양이다.
"이봐 친구, 혹시 '시라가모리' 여덞 마리가 지나가는 걸 못 봤나?"
시라가모리의 '시라가'란 거세했다는 뜻이다. 몽골에서는 전통적으로 거세한 수말을 승용 및 군용으로 썼다. 수컷의 근육에 암컷의 온순함, 끈기를 지녔기 때문에 훈련하기도 좋고, 지구력도 강했다. 게다가 발정이 나서 발광할 일도 없었다. '모리'란 말을 뜻하는 초원의 언어다.
"아... 오늘 새벽 해뜨기 전에 지나가던데? 왜?"
테무진이 사연을 설명해주었다. 두 또래는 금세 친해졌다. 소년은 의기양양하게 자기소개를 한다.
"내 이름은 '보르추'야... 혹시 이 일대에서 부자로 유명한 '나코'라고 들어봤나? 내가 그 양반 아들이야. 그것도 외아들이지. 후훗."
"아, 그러냐 이자식아..."
보르추는 재수없게 자랑만 하진 않았다. 그는 강도들이 지나간 길을 친절히 가르쳐 주었고, 테무진에게 자신의 말을 빌려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테무진의 말은 이미 지쳐서, 예비마와 함께 이동하는 강도들에게 점점 뒤쳐질 게 뻔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는 아예 테무진을 따라나서기로 한다.
"우리 이렇게 된 바에 앞으로도 친한 친구로 지내자! 같이 가서 네 말들을 찾아오자."
보르추... 앞으로 많이 등장할 인물이다. 보면 알겠지만, 즉흥적이고 단순한 성격을 갖고 있다. 강도 추적은 테무진에겐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건 투쟁이었다. 반면 보르추는 고생을 안하고 자라서 그런지 모험에 뛰어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부잣집 외아들답게, 화끈하고 낙천적이었다.
두 사람은 곧장 의기투합해서 말발자욱을 따라 3일간 강도들을 추적했다. 그러나 드디어 저녁쯤에, 불을 피우고 둥그러니 앉아있는 강도들을 발견한다. 거세마들은 캠프파이어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어치피 싸우는 건 승산이 없었다. 도둑당한 말들을 다시 훔쳐 튀는 게 상책이었다
적극적으로 위험에 뛰어드려는 보르추와, 자기 때문에 애꿎은 또래를 다치게 하기 싫었던 테무진의 대거리는 무척 재미있다.
"보르추, 넌 여기 가만 있어라. 내가 말들을 끌고 올 테니까."
"아니 도와주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가만 있으라는 게 말이 되냐?"
결국 두 친구는 함께 달려가 잽싸게 말들을 낚아 전속력으로 튄다. 아마 말에서 내린 채 무장을 풀고 앉아있던, 거기다 아마 술도 적당히 취했을 강도들은 곧바로 대응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훔친 말인데... 강도떼는 서둘러 말에 올라 두 소년을 추격했다. 장대 올가미를 든 강도가 가장 가까이 따라오고 있었다. 아마 올가미로 말 한 마리라도 더 회수하려고 했을 것이다.
보르추가 소리쳤다.
"테무진! 활과 화살을 나한테 줘. 내가 저놈을 쏴버리게."
"됐다. 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행여나 네가 다치게 하면 내가 뭐가 되냐. 내가 쏠 테니까 넌 빨리 도망치고 있어라!"
테무진은 보르추에게 활을 건네지 않고 그대로 뒤를 돌아 화살을 날렸다.
테무진의 공격 덕에 강도떼와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이후 두 소년과 강도들은 몇 시간동안 쫓고 쫓긴다. 결국 어두운 밤이 되자 강도들은 추격을 포기하고 사라졌다.
테무진과 보르추는 다시 3일을 이동한 끝에 처음 만났던 곳에 다다랐다. 테무진은 보르추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고 싶었다.
"네가 아니었으면 절대 말을 되찾을 수 없었을 거야. 감사의 뜻으로 내 말을 줄게. 자, 몇 마리가 적당할까?"
말 몇 마리는 당시 테무진에게 기꺼이 목숨을 걸 만한 보물이었다. 반면 말, 낙타, 양, 소, 야크, 염소가 셀 수도 없이 많은 부잣집 아들에겐 별볼일 없는 물건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겪은 스릴 넘치는 모험의 가치를 훼손시키기나 했을 터.
"야, 내가 몇 번을 말하냐. 그 유명한 부자아저씨 나코가 내 아빠라고. 나 외아들이라니까. 그 재산이 다 내껀데 너한테 말 몇마리를 닥닥 긁어 받아야겠냐? 날 뭘로 보고... 우리 집에 가서 아빠한테 인사도 하고 먹을거나 좀 싸가."
자식이 가출하면 부모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먼저 걱정한다. 비행청소년짓 따위 얼마든지 해도 몸성히 있기만 해다오... 그러다가 자식의 안전이 확인되면, 비로소 화가 폭발하는 법. 우리의 부자양반 나코도 그랬다. 그는 말도 없이 실종된 아들과 재회한 감격이 끝나자마자 보르추를 실컷 혼냈다.
부잣집 외아들이 흔히 그렇듯, 보르추는 아빠의 훈계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대신 테무진에게 마유주, 젖(물론 가죽부대와 수통까지 세트로)에다가 즉석에서 두 살바기 새끼 양까지 잡아 마련한 최고급 고기를 바리바리 싸 주었다. 테무진은 보르추와 헤어지고 다시 3일 밤낮을 달려 집에 도착한다. 이때 테무진의 나이 16세(한국 나이로 1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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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게이가 죽은 지 7년이 지났다. 서기 1178년이었다. 테무진 가족은 조금씩이나마 먹고사는 형편이 나아지고 있었다. 테무진은 더 이상 포로나 노예도 아니었고 음식의 질이 좋진 않았지만 어쨌든 결식아동도 아니었다. 여전히 고아였지만, 가장의 역할을 어설프게나마 해내고 있었다.
테무진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결혼하고 싶었다. 그는 7년전 결혼을 약속한 보르테의 소식이 궁금했다. 보르테의 옹기라트족은 미녀 많고 부유한 부족. 과연 스펙 제로의 남편에, 시어머니는 둘에, 시동생은 다섯이나 있는 가난뱅이 시댁에 기꺼이 시집올 여자가 있을까?
게다가 보르테와 함께 있었던 건 불과 며칠이었다. 거칠고 불안정한 초원에서 한번 혼약을 맺었다고 언감생심 여필종부, 백년해로를 바라는 건 거의 범죄였다. 또 보르테는 당시 17세, 한국나이로 18세였다. 결혼적령기의 피크를 지나는 시점이었다. 새신랑이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테무진은 데릴사위기간을 통으로 날려버렸다. 처갓집에 들어가 수년간 노동을 해서 신부 데려오는 값을 몸빵으로 결재하는 건데, 이제와 공짜로 달라는 건 도둑놈 심보다.
초원에선 남자나 여자나, 결혼적령기 이후엔 성인으로 쳤다. 성인여성은 신랑을 자기 뜻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재혼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운 나쁘게 납치당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보르테는 만에 하나, 테무진을 기억하며 혼사를 거절했을 지도 모른다.
테무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인 데이 세첸을 찾아가보기로 결심한다. 마침 옹기라트족은 케를렌 강 하류의, 강물의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초원지대에 야영하고 있었다. 테무진은 벨구테이와 함께 신부를 찾아 케를렌 강을 따라 내려갔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몽골초원이 그렇게 넓다는데, 어째 등장하는 지명이 그 강이 그 강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 법도 하다. 몽골 초원엔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강줄기가 엄청나게 길다. 케를렌 강의 길이는 무려 1200Km가 넘는다. 그리고 오논 강과 케를렌 강과 툴라 강은 발원지 부르칸 칼둔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하류로 내려갈수록 전혀 다른 지역이 된다.)
데이 세첸은 먹튀 사위 테무진을 의외로 반갑게 맞았다.
"어이구! 자네 타이치우드 형제들한테 붙잡혀 고생한다는 얘길 듣고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르네. 이젠 자넬 봤으니 안심이네그랴..."
데이 세첸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노처녀가 되어가는 딸내미를 치우지 못하고 있었으니... 놀랍게도 보르테는 테무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왔어?
(6) 달콤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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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자신을 기다려준 보르테와 재회한 테무진이 얼마나 감격했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장인 데이 세첸은 딸을 시집보내게 된 게 다행인 모양이었지만, 보르테의 어머니 '초탄' 여사는 갑자기 딸을 빼앗기게 된 게 못내 아쉬웠나 보다. 그녀는 딸이 시집가는 길을 내내 따라왔다. 사돈댁이 엽기적으로 가난했으니 걱정했을 만도 하다.
테무진이 벨구테이와 동행한 이유는 어머니의 경우를 떠올려서였을지도 모른다. 헐룬은 신랑 한 사람의 에스코트를 받다가 홀랑 납치되어버렸다. 성격도 드세고 싸움도 제법 하는 벨구테이는 든든한 보디가드였을 것이다.
한편 보르테는 화려한 신부복장을 하고 있었다. 부유한 옹기라트족의 신부예복이니 꽤나 값이 나갔을 것이다.
신부를 꾸며라.JPG
또, 신부는 수레를 타고 시댁으로 떠나는 법이다. 다 재산이다. 노동력과 기술,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수레는 초원에서 큰 재산이다. 뭐, 초원보다 100배는 풍요로운 중국에선 걍 수레지만... 테무진이 처가에 뭘 주었는가는 역사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한마디로, 안 줬다는 얘기다. 이정도면 아버지가 자행한 약탈혼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보르테와 정식으로 혼인하고 깨알같은 신혼을 보내고 있자니, 테무진은 이 행복이 정말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는 테무진이 이룩(또는 자행)한 어마어마한 업적 때문에, 그가 정복유전자를 타고난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생을 많이 하고 산 사람들은 보통 '원대한 꿈' 따위 꾸지 않는다. 그들에게 인생 최대의 목표는 그저 행복하고 안락한 삶이다.
테무진은 아버지를 잃고 나서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고 있었다. 자유의 몸이고, 가난하지만 먹을 것도 있고, 사랑하는 부인도 있었다. 그러나 이 행복을 지키려면 최소한의 방어력이 있어야 했다.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성인 남자 하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도둑맞은 말을 찾으면서 만났던 보르추 생각을 하게 된다. 보르추... 어쩐지 만사 제치고 달려와 인생을 함께해 줄 것 같은 녀석이었다.
테무진은 부자양반 나코의 으리으리한 집... 아차, 게르는 으리으리할 수가 없다. 구조상 거기가 거기다(다만 크기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개미떼처럼 펼쳐진 그의 가축떼는 정말 압도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여튼, 나코의 집에 벨구테이를 보낸다. 메시지는 간단했으리라.
"어이, 부잣집 아들. 가출해서 나랑 같이 가난하게 함 살아볼래?"
보르추도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도 하지 않고 벨구테이를 따라왔다. 사실 테무진은 그에게 훌륭한 모습을 꽤 보였다.
: 첫째, 그는 보르추의 도움에 확실히 감사할 줄 알았다. 절박한 처지의 인간, 그것도 어린 인간에게는 발견하기 힘든 장점이다.
둘째, 자신을 대신해 위험을 감수하게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미 베풀어준 것(추적길에 동행하고 말을 빌려준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고, 자기 때문에 보르추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목숨을 건 상황이었다. 이건 인정받아 마땅한 소양이다.
셋째, 말 8마리를 되찾고 나서 말로만 고맙다고 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은혜를 '갚으려고'했다. 테무진은 말 한 마리도 절박한 처지였다. 그런데도 굳이 몇 마리나 떼주려고 한 것이다. 보르추가 뎁따 부자인걸 뻔히 아는데도. 철저하게 공정한 원칙주의자인 거다. 나이에 비해 매우 조숙한 행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초원에선 웬만한 어른도 보여주기 힘든 태도였다.
보르추는 테무진에게 굉장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철이 없었던 건 확실하다. 부잣집 후계자 자리를 내치고 테무진과 함께한다고 냉큼 벨구테이를 따라왔으니. 아버지 나코씨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아이구 내 멀쩡한 아들이 하필 친구를 잘못 만나서...
몽골초원에 '서식'하던 집단의 조직논리는 기본적으로 혈통-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테무진이 가장인 집안의 캠프에 이사왔다는 건, 기꺼이 테무진의 부하가 되겠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테무진의 카리스마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테무진의 카리스마는 '내추럴 본 아우라'가 결코 아니었다.
테무진은 말하자면 '굼띤' 인간이다.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인지를 몸소 증명해서 신뢰를 얻는 '몸빵 카리스마', '노가다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이 무척이나 저렴한(그리고 답답할 정도로 성실한) 리더쉽이 결국 인류사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2
그러던 어느날. 손님이 찾아왔다.
"어떻게 오셨나요?"
"초탄 마님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아니 웬 선물을...?"
"아, 결혼 예물이요."
초원에서는 따로 혼수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결혼 예물이래봐야 한 사람이 지참하고 다닐 수 있는 물품이 전부다. 참 소박하다. 신랑의 아버지는 먼저 아들을 사돈집에 떨궈놓고 올 때 선물을 하나 준다. 거꾸로 데릴사위기간이 끝나고 신부와 신랑이 시댁으로 떠날 때는 신부가 선물을 지참해 온다. 보통 옷 한 벌을 준비해 오는 게 관습이었다.
사돈댁의 스펙이 영 맘에 안들어서였을까? 아니면 갑작스레 딸을 시집보내느라 준비를 못한 걸까? 초탄 아줌마는 헐룬에게 선물을 들려 보내지 않았었다.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선물의 정체는 검은 담비의 모피로 만든 외투였다. 초원 바깥에서 '수입'하지 않고 만들 수 있는 것중엔 그야말로 최고급품이었다.
보르테를 묘사한 그림.
보르테가 직접 담비 외투를 들고 시집온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테무진 가족은 "들쥐와 개의 가죽"을 기워 만든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모두들 검은 담비 모피의 럭셔리한 포스에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이걸 어따 써먹을까..."
그냥 게르 안에 걸어두나? 아니면 내다 팔아서 말이나 좀 더 구할까? 잠깐 그 전에 한번만 입어보고...
테무진은 벨구테이, 카사르와 의논한 끝에, 모피를 들고 커레이트족의 '옹 칸'을 찾아가기로 결정한다(옹 칸과 커레이트족에 대해선 본 시리즈 2편을 냉큼 보시라.). 원래 처가에서 보내는 예물-주로 옷-은, 신랑 아버지의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게이는 죽고 없다. 그렇다면 '아버지에 해당하는' 사람이 대신 받을 수 있다.
옹 칸, 그러니까 본명으로 말하자면 토그릴은 예수게이의 안다였다. 안다는 피로 맺은 의형제. 친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다. 아버지의 안다는 의붓아버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토그릴은 흔쾌히 담비옷을 받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토그릴에게 선물을 증정한 건 다 생각이 있어서다.
토그릴은 예수게이의 도움을 받아 커레이트의 칸이 되었다. 그는 예수게이와 짝을 이뤄 타타르족에 대항했지만, 자신을 왕좌에 앉혀준 사건은 너무 사이즈가 컸다. 받은 만큼 줄 기회가 없었더 것이다. 이런 건 초원에서 빚으로 남는다. 예수게이의 '채권'은 테무진이 승계했다고 볼 수 있다.
테무진은 토그릴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와 아버지의 옛일을 들먹였다. 이 상태에서,
"나 너같은 아들 둔 적 없는데?"
하는 건 초원에선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짓이었다.
담비옷은 고급이었지만, 토그릴이 옷 한 벌에 혹해 양자를 얻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아니었다. 커레이트 몇 개 부족 연맹체. 원시적이긴 하지만, 초미니 '국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게다가 초원 바깥과 소통하고 있었다. 무역도 했고, 문물도 받아들였다.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기독교였다. 토그릴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무속신앙을 유지하며 '텡그리(하늘)를' 모시는 몽골족이 무척이나 촌스러워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테무진은 손님이었다. 먼 곳에서 찾아왔는데 친절히 접대하는 건 초원의 불문율이다. 테무진 일행이 실컷 먹고 마시다가 답례조로 선물을 내밀면 안 받기도 참 어색하다. 여러모로 선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예물을 받는다는 것 곧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한다는 뜻. 이렇게 해서 테무진은 든든한 보호자를 얻게 된다.
3
당시 몽골초원과 동-중앙아시아에는 기독교가 많이 펴져있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수백 년 동안 '선교 경쟁'을 하고 있었다. 동쪽으로 와 목숨을 걸고 전도할 독실한 사제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몽골초원 중앙까지 기독교가 전파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네스토리우스는 서기 428년에서 431년까지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로 재직하던 인물이다. 성직자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경험한 셈이다. 네스토리우스는 시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스승도 시리아에서 만났다. 스승의 이름은 '테오도르'. 그는 일명 '안디옥 신학파'의 교리를 계승한 인물이었다.
당시 서구 기독교사회는 안디옥 신학파가 내세운 새로운 교리와 기존의 교리가 대립하고 있었고, 이로 인한 기독교계의 파벌싸움이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네스토리우스는 물론 스승의 교파에 속했다. 그렇다면 안디옥 신학파의 교리란 대체 무엇일까.
기독교는 그리스도 삼위일체설을 주장한다. 삼위일체란 성부(하나님)-성자(예수 그리스도)-성령이 하나의 존재라는 뜻이다. 예수는 인간의 육체를 가졌지만, 신의 아들이면서 신의 일부, 신 그자체이기도 하다(이슬람교는 예수를 모세, 무함마드와 같은 '선지자'로 해석한다.).
안디옥 신학파 : 성부 성자 성령, 즉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은 일심동체다. 그것까진 좋은데... 예수님은 인간일까 신일까?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인 상태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인성과 신성은 하나가 될 수 없지 않을까? 그 둘은 분리될 수밖에 없다고.
예수는 기본적으로 인간일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성령이 깃들기 위해 준비된 '인간의 신체'라는 거지. 물론 몸 안에 인간의 영혼도 갖고 있었겠지만, 그건 성령하고 섞일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예수'와 '신으로서의 예수'를 구분해야 해.
그리고 우리 성모 마리아님... 물론 참 훌륭하신 여인이셨는데... 그분이 잉태한 건 분명히 성령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였다고. 어떻게 여자 사람이 성령을 잉태하고 낳을 수 있어? 그러니까 '신을 낳은' 성모(聖母)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위대한 분을 낳은 '그리스도 모(母)'라고 불려야 마땅해.
네스토리우스는 자신과 스승이 속한 교파의 교리를 적극 지지했다. 총주교라는 그의 위치상 더 이상 쉬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기존의 삼위일체설과 안디옥 교파의 '신인이성설(神人二性設)' 중 하나는 이단이 되어야 했다. 결국 '에페수스 공의회'에서 결론이 내려진다.
"신인이성설은 이단이다."
결국 네스토리우스는 시리아로 추방되고 만다(그래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시리아에서 열심히 저술활동을 했다.). 그만 시리아에 간 것이 아니다. 안디옥 교파에 속한 사람들, 신인이성설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도 시리아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리아에서 '네스토리우스 교파'가 생겨났다. 네스토리우스는 신인이성설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가장 높은 자리에서 추방자가 됨으로써 교파의 상징이 된 것이다.
네스토리우스 교인들은 법적으로 이단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기독교 세계에서는 발을 붙일 수 없었다. 그래서 안전한 페르시아 땅으로 건너가 동방 전도를 시작하게 된다. 7세기엔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경교'로 불린 기독교는 8세기의 당나라 문헌에도 등장한다. 당 현종의 칙령이다. 현종황제의 칙령 내용은 이렇다.
"음 우리가 경교(기독교) 사당(교회)을 교회를 '파사사(波斯寺)'라고 부르는데 말야... 페르시아에서 온 종교의 사찰이란 뜻이잖아? 그런데 이 종교가 생긴 곳은 원래 대진국(大眞國 : 로마)이란 말이지. 그러니까 이제부터 파사사라는 일반명사를 "대진사"로 바꿔 부르도록 하자."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 '기독교가 중국땅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라고 풀면 될 것이다. 781년 1월 7일에 제작되었다. 한자와 시리아 알파벳이 병기되어 있다. 경교(景敎)는 '(이치를) 밝게 비추는 종교'라는 뜻이다. 참 잘 지은 이름이다.
당나라에 유입된 기독교, 즉 '경교'가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지만 100% 장담할 순 없다. 결정적인 사료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정설로 굳어지고 있는 만큼, 우리는 경교를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라고 이해해도 문제될 건 없다.
비석에는 삼위일체의 개념이 등장한다. 삼위묘신(三位妙身)이라고 표현되고 있지만, 글자만 조금 다를 뿐 삼위일체를 뜻한다.
4
달마, 아니 기독교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위와 같다. 초원의 유목민 기독교도들은 자신들을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토마'사도의 후손이라고 믿었다. 성경에 따르면 토마는 전도를 하러 동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인도엔 2000년 전부터 기독교도들이 있었다. 이들도 자기 신앙의 선조가 토마라고 믿는다.
서기 1세기경 인도에 세워진 교회. 토마 사도가 생전에 지은 교회라는 믿음이 있다. 보다시피 그리스-로마식 건축이다.
인도 뭄바이에 있는 '성 토마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가운데가 토마 사도이다. 좌우 양쪽에 대천사 가브리엘과 미카엘이 있다.
기독교는 머나먼 서쪽이 고향인 종교다. 사도 토마의 전설은 인도, 중앙-동아시아 기독교도들의 신앙심을 고취시켰다. 토마님 덕분에 자신들도 신앙의 적법한 계승자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유럽인들은 그들대로 동쪽의 소식에 흥분했다. 아니 그 먼 동쪽에도 우리의 형제들이 있단 말이지...? 유럽인들은 기독교vs이슬람의 종교전쟁을 겪으면서 한가지 환상을 품게 됐다.
"무슬림 것들이 서식하는 곳보다 더 동쪽에 '사제왕' 요한이라는 분이 있다던데? 그분은 기독교 사제이면서 왕인데... 아주 강력한 왕이 되어서 자기 백성들을 죄다 기독교도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구. 이분이 가만 있을리가 없잖아?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말야. 이분도 군대를 이끌고 아랍을 침공하지 않겠어? 이렇게 동서 양쪽에서 기독교 군대가 아랍을 치면, 그걸로 게임 오버야! 그런거야! 데우스 엑스 마키나!!"
물론 사제왕 요한은 없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이분이 요한이다'라고 생각한 인물들은 몇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옹 칸(토그릴)이었다. 15세기 프랑스에서 그려진 아래 그림 속 주인공, 유럽인이 아니라 옹 칸이다. 묘사가 엄청 잘못되긴 했지만...
옹_칸_만세_자_이제_무슬림들을_죽여줘.JPG
그렇다. 옹 칸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것이다. 왜 옹 칸과 그의 가족을 비롯한 많은 초원사람들은 기독교를 믿었을까? 지리적으로 이슬람교를 믿기가 훨씬 쉬웠을 텐데 말이다.
구약은 유목민인 유대인들의 경전이자 역사서다. 신약이 발생한 배경도 유목생활과, 100%는 아니지만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길잃은 어린양' '주는 나의 목자(shepherd, 즉 목동),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등의 표현은 초원 사람들의 감성에 팍팍 와닿았을 것이다.
어, 그런데 이건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슬람교는 서역의 사막 유목민 문화를 손쉽게 장악했다. 그러나... 음주습관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다. 초원의 유목민들에게 술을 먹지 말라고 하는 건 식신불패 방장 충용무쌍님에게 평생 야채만 먹고 살라는 것과 비슷한 주문이다. 뭣하러 알콜을 금하는 이슬람 믿는가? 비슷하면서 술 실컷 마실 수 있는 기독교가 있는데.
그리고 초원의 유목민들은 절대다수가 문맹이었다. 3.0 이상의 시력, 활솜씨, 예민한 감각, 육감, 스테미너, 기억력(문자가 없었으므로 말을 기억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말타는 솜씨, 자연과 사물에 대한 관찰력 등 뛰어난 점이 많았지만, 정주-농경문명의 엘리트들이 보기엔 걍 무식쟁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로 이어지는 '유일신교 패밀리'의 형이상학적인 교리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 세 종교 중 유독 기독교는 예수라는 '사람'을 통하니까 더 쉬운 면이 있다. 유목민의 전통적인 신앙은 정교한 교리나 체계적인 교단을 갖춘 종교가 아니라 샤먼을 중심으로 한 토템신앙의 형태였다. 기독교 신자들은 찬성하지 않겠지만(물론 찬성 안해도 된다.) 민속학의 입장에서 관찰하면, 예수가 '광야에서 보낸 40일'은 무당들의 일반적인 '신내림' 과정과 일치한다. 예수가 사람의 몸에서 돼지떼의 몸으로 귀신을 '이사'시키는 것도 전형적인 무속신앙(샤머니즘)의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초원 사람들에게 예수는 '하나님'이라는 최강의 신을 모시는 강력한 무당으로 해석됐다.
마지막으로 - 이슬람교는 기독교보다 더 엄밀한 면이 많다. 무슬림의 입장에선 십자가와 예수상, 성모 마리아상 등을 마련해놓는 것은 죄다 '우상숭배'이다. 어차피 물질에 불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원 유목민들 입장에서는 : 아니 뻥 뚫린 초원에서 암것도 안주고 뭘 믿으라는겨...?
십자가와 성모상은 토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뻥 뚫린 개활지에 사는 유목민들은, 특정한 물건을 귀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동사남북의 네 방향 자체도 매우 신성시한다. 십자가는 딱 사방위(四方位)를 가리키는 것처럼 생겼다.
십자가가 새겨진 몽골의 옛 비석
사람과 가축, 집이 수시로 이동하는 초원엔 고정된 교회가 있을 수 없었다. 초원의 네스토리우스파 사제들은 게르마다 돌아다니면서 예배를 드렸다. 네스토리우스파 사제들의 인종은 참으로 다양했다. 그리스인, 시리아인, 페르시아인, 아랍인, 인도인, 돌궐족 등등. 그 중에는 위구르족도 있었을 것이다. 위구르족은 지금은 중국의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전 종족의 80%이상이 모여 살며 이슬람교를 믿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위구르 문자는 네스토리우스파 사제가 전도를 하면서 생겨났다. 네스토리우스파가 최초로 발생한 지역인 시리아의 알파벳을 변형해 만든 문자다. 몽골초원에도 위구르 문자로 기록된 성경책이 있었다. 아마 위구르어 성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초원 말과 위구르 말은 서로 비슷한 사투리라(게다가 당시엔 지금보다 훨씬 더 유사했다.), 글만 깨치면 읽고 이해하는 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글을 모르면 사제가 읽어주면 된다. 또한 성경책 자체가, 그 안에 적인 내용과 상관없이 일종의 토템 역할을 했다.
자, 이쯤 하고 다시 테무진 이야기로 돌아가자.
5
담비모피 한 벌로 '안전보험'을 들고 온 테무진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 웬 노인이 테무진과 동갑이거나, 많아봐야 한 살 많은 자신의 아들과 함께 온 것이다. 이 소년의 이름은 '젤메'. 중요한 이름이니 꼭 기억해두자.
젤메는 '자르치우트 아당칸'씨족의 소년이었다. 테무진의 인생을 다룬 많은 픽션, 논픽션들이 '자르치우트'를 젤메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오인하고 있다. 자르치우트는 씨족 이름이다. 자르치우트족은 몽골족의 드릴루킨으로써, 오래전 몽골족에게 정복당하고 약탈당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한 번 당한 이후로 계속 몽골족의 손아귀에 있었다. 젤메 집안의 계급은 정말 낮아서, 이 집안 사람들은 목동노릇도 하지 못했다. 젤메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였다. 초원에선 전사도 목동도 아닌 이런 사람들이 무척 무시받으면서 살았다(덧붙이자면 당시 초원의 대장장이는 다른 문화권에 비해 기술이 형편없었다.).
테무진이 타이치우드족에 붙잡혀 있을 때 도와주었던 소르칸 시라 같은 사람은 비록 드릴루킨이지만, 자신의 게르와 가축 등의 재산을 갖고 버젓이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젤메는 사유재산에 해당하는 집안 노비였다. 원래 젤메는 테무진이 태어났을 무렵, 아버지가 예수게이에게 바친 갓난아기였다. 아마 노예 소유권자나 노예 씨족에게나, 일종의 '할당량'이 있었던 모양이다.
젤메가 어디서 성장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때부터는 확실히 테무진 가족의 일원이 된다. 사실 테무진 가족은 몽골족에게 버림받은 외로운 가족이었다. 이런 가족에게까지 신의를 지킬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젤메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러 왔다. 테무진은 이 사실에 매우 고마워했을 것이다. 게다가 무려 사지 멀쩡한, 다 큰 남자다. 보르추에 이어 든든한 인적자산이 한 명 더 생긴 것이다.
테무진은 젤메를 노예로 대하지 않았다. 테무진 자신도 타이치우드족에 붙잡혀서 포로이자 노예인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번득이는 재치와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내는 천재성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남들보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장점 하나를 굳게 붙잡고 있었다. 바로 <직접 경험한 것을 잊지 않는 습관>이다.
타이치우드족은 형제지간이지만 테무진을 괴롭혔다. 반면 아무 상관도 없는 소르칸 시라 가족은 그를 구원해주었다. 테무진에겐 계급이나 출신이 별 의미가 없었다. 보르추는 부잣집 아들이고 젤메는 노예출신이지만, 둘 다 평등한 동료사이가 된다. 테무진은 평소엔 두 사람을 친구로 대했다. 젤메는 보르추와 마찬가지로, 훗날 세계 최고의 권력자 중 하나가 된다.
어째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도 생기고 든든한 동료들도 생기고, 동생들도 자라고 있고... 테무진은 이대로 가난하지만 행복한 목동이 되어 평생 살기만 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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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긴 고생끝에 가까스로 찾은 행복은 곧 처참히 부서지고 만다.
(7) 아내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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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도 빚이지만, 원한도 빚이다. 초원에서 복수는 습격과 약탈의 좋은 핑계다. 예수게이는 메르키트족에 시집가던 헐룬을 납치해 테무진을 낳았다. 그런 메르키트족의 귀에 테무진이 신혼생활을 한다는 뉴스가 들어갔다.
"예수게이의 아들놈이 색시랑 재밌게 살고 있다며?"
"허허... 나 참 어이가 없네, 씨바."
그래선 안 되었다. 불한당(예수게이 일당)에게 납치된 채 멀어져가는 연인을 처절하게 바라보던 칠레두의 모습은 1편(클릭)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 부족의 일원에게 그런 슬픔을, 부족 전체한테는 치욕을 안겨준 놈... 그놈이 저지른 범죄행위의 결과물인 자식놈한테, 왕년의 헐룬만큼이나 예쁜 색시가 있다 이거지.
메르키트족은 주저할 것 없이 복수를 결심한다. 테무진이 옹 칸의 후원을 받든 말든 상관없었다. 메르키트족도 커레이트족 못지 않게 강성했다. 남의 눈치 안 봐도 될 만큼의 실력은 있었다.
메르키트족은 세 개의 대형 씨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이 세 씨족명과 인명에 한해 유원수 역주본의 <몽골비사>의 발음과 표기법을 따르도록 함.).
1)오도이드 메르키트
'톡토아 베키'라는 인물이 씨족장을 하고 있었다. '베키'란 이름이 아니라 칭호다. 말 그대로는 흰 옷, 즉 풀어 설명하면 '흰 옷을 입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을 뜻한다. 조상 잘 만난 전통의 기득권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앞으로도 이 '베키'란 칭호가 붙은 인물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2)오와스 메르키트
'다이르 오손'이라는 인물이 씨족장이었다.
3)카아드 메르키트
'카아타이 다르말라'가 씨족장이었다.
이들 세 씨족장들은 다른 원시적인 부족(혹은 씨족) 연맹체처럼 서로 권력을 나누어 함께 부족을 이끌고 있었다. 돌아가면서 칸을 맡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래도 그중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을 꼽자면, 톡토아 베키였다.
세 씨족장은 복수를 결의했다. 메르키트족 병사들이 테무진 가족이 야영을 하고 있던 케를렌 강 최상류를 향해 출동했다.
2
새벽녘이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 테무진 집안에서 일하고 있던 '코아그친' 노파도 마침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미세하게 땅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몽골사람들은 감각이 엄청나게 발달해있다. 인구밀도(뿐만 아니라 '동물밀도'도)가 적고 사방이 뻥 뚫린 초원의 사람들은 시력 뿐 아니라 후각과 청각, 촉각도 먼 곳의 상황을 느끼는 데 특화되어 있다.
코아그친이 감각을 집중해보니, 말발굽 소리였다. 말을 탄 무리가 게르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직 날도 밝기 전이었다. 습격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헐룬을 깨웠다.
"마님! 빨리 일어나요!"
"아... 무슨 일이죠?"
"땅이 흔들리고 말발굽 소리가 들려요. 타이치우드 놈들인 것 같아요!"
테무진 가족은 타이치우드족에 한 번 크게 당한 적이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했을 법도 하다. 헐룬은 재빨리 일어나 식구들을 깨웠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게르와 살림살이 따위 챙길 여유도 없었다. 어서 말을 타고 튀어야 한다. 그런데 씨바, 어찌나 가난한지 말이 부족했다!
당시 테무진을 중심으로 그의 가족의 구성원을 세 보자 : 1)어머니 헐룬 2)테무진 본인 3)남동생 카사르 4)남동생 카쥰 5)남동생 테무게 6)막내여동생 테물린 7)계모 소치겔 8)배다른 동생 벨구테이 9)아내 보르테 10)동료 보르추 11)젤메 12)코아그친
이렇게 딱 12명이 있었다. 그런데 옛날처럼 말은 9마리가 전부였다. 잃어버린 말 8마리를 찾자고 보르추와 모험을 했던 테무진(한 마리는 그가 타고 있었다.). 그새 말 한 마리도 추가로 못 번 거다. 보르추가 집을 떠나올 때 타고 온 말까지 합치면, 오히려 한 마리가 준 셈이다.
헐룬과 테무진은 누구를 버려야 할 지 재빨리 판단해야 했다. 결국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이런 위급상황에서는 '전투력'을 보존하는 게 초원의 상식이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빼앗긴 것을 다시 찾으려면 일단 최대한 많은 전력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되도록 남자가 말을 차지해야 했다. 여자들을 지키려고 했다간 모두 죽고, 그러면 키야트 혈족은 멸망한다.
물론 헐룬은 예외다. 그녀는 실질적인 가장이었고(최소한 테무진과 공동가장 노릇을 한 게 분명하다.), 테무진의 입장에서도 가장 소중한 여자였다. 보르테를 아무리 사랑한들, 그 고생을 하며 자신을 키워낸 어머니에 비할 수는 없었다. 헐룬은 자기가 탄 말에 체중이 덜 나가는 막내딸 테물린도 옵션으로 앉혔다.
보르테, 코아그친, 소치겔은 훗날을 기약하며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가족이 아닌 보르추와 원칙상 집안의 노예인 젤메는 말을 탔다. 남은 말 한 마리는 예비마로 끌고갔다.
말을 탄 일행은 가장 가까운 산인 부르칸 칼둔으로 도망갔다. 평지에서 추격전을 벌이면, 예비마가 부족한 쪽이 불리하니까. 한편, 남은 사람들 중에는 소치겔이 가장 먼저 붙잡혔다. 보르테와 단 둘이 남은 코아그친은 머리를 써서, 보르테를 검은 수레에 태워 숨겼다. 보르테가 시집올 때 타고 온 수레다. 신부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은 동서고금에 흔한 관습. 수레는 내부가 밀폐되어 있었다.
코아그친은 테무진이 타이치우드 족 야영지에서 탈출한 수법을 그대로 모방하려고 했다. 그녀는 소가 수레를 끌게 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소를 몰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연기를 했다. 이윽고 메르키트 병사들이 다가와 코아그친을 둘러쌌다.
"테무진은 어디 있는가? 그놈의 집이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어이구 나는 양털을 깎아갖고 오는 길인디... 테무진이 집에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고... 나는 다른 게르에서 나오는 길이라갖고 뭐 아는게 없으... 에고 허리야..."
연기가 먹혔다. 병사들이 떠난 것이다. 그래도 아직 위험했다. 코아그친은 빨리 도망가려고 소를 마구 채찍질했다. 그런데, 소가 빨리 움직이자 수레의 바퀴축이 뚝 하고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사실 초원 사람들이 제조한 물건은 무척이나 조잡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필 이럴 때 망가지다니...
코아그친과 보르테는 급한 대로 작전을 짰다.
"수레에서 내려서, 둘이 손잡고 가능한 한 빨리 숲으로 뛰어들어가 숨자!"
하지만 메르키트 병사들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었다.
"저기 아까 그 노인네 말야. 왜 새벽에 잠 안자고 양털을 옮기고 있지?"
"그리고 아까 그 수레, 결혼할 때 신부가 타는 수레 아닌가? 그걸로 양털을 옮기기도 하나?"
"..."
"..."
"야! 그 할멈 다시 잡아!"
하필 보르테가 수레에서 내리기도 전에 다시 병사들이 몰려왔다.
"이 수레 안에 뭘 실었다구?"
"양털을 실었대니껜..."
고참 병사 하나가 쫄다구에게 명령했다.
"야, 너 내려서 저 수레 함 열어봐."
수레 문을 여니 양털은 웬걸. 보르테가 앉아있었다. 결국 코아그친과 보르테도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테무진을 잡을 차례였다.
3
메르키트 병사들은 말발굽에 풀이 밟힌 자국을 따라 테무진 일행을 추격했다. 테무진은 꼬리를 밟힌 모양이지만,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며" 잘도 병사들을 피해다녔다. 부르칼 칼둔의 빽빽한 수풀 덕분이었다. 일행은 적을 피해 더 깊은 안쪽으로 숨어들어갔다.
메르키트 전사들은 힘들게 추격전을 벌이느니, 그냥 산을 포위해서 편안하게 테무진을 잡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기어 나와야 하니까, 그때 잡으면 된다. 메르키트 전사들은 부르칸 칼둔을 무려 3중으로 에워쌌다. 산 하나를 3중으로... 얼마나 많은 인원이 출동했는지 알 수 있다. 단단히 벼른 거다.
그러나 참는 거야말로 테무진의 장기였다. 테무진 일행은 산 속에서 악착같이 버텼다. 결국엔 메르키트 병사들이 먼저 지치고 말았다.
"저기 근데 우리는 여자를 뺏긴 걸 복수하려고 온 거잖아. 이미 복수는 다 했는데..."
"그래... 이만하면 됐지. 솔직히 테무진이란 놈, 죽이지 않아도 별 문제 없는 놈이잖아?"
"그치? 이만 접고 집에 가자."
메르키트족 전사들이 떠났다. 하지만 테무진은 섣불리 산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자기를 유인하려는 술책인지, 또다른 매복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테무진은 벨구테이와 젤메, <사서 고생>의 권위자인 부잣집 아들 보르추를 보내 메르키트 전사들을 추적하게 했다. 세 사람은 며칠 동안 소리없이 적들을 쫓아가며 관찰했다.
동료들이 돌아와 적들이 완전히 떠나갔다고 하자, 테무진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약탈자들의 먹잇감으로 남겨둔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이 가슴을 때렸다. 그는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코아그친 할머니는 잠귀가 밝아서 우리 모두를 살렸는데, 나는 혼자 살겠다고 그분을 내버려두고 도망쳤다..."
그러면서 테무진은 자신을 벌레에 비유한다.
"... 이 벼룩같은 목숨을 건지자고 혼자 도망쳤다 ... 신성한 부르칸 칼둔에게 이 귀뚜라미같은 목숨을 보호받았다."
테무진은 자신의 비겁함을 솔직히 인정했다. 더 훌륭한 건 코아그친에 대한 태도다. 코아그친은 하인인데다 오갈 데 없는 노파였지만, 테무진의 태도엔 계급적인 면이 전혀 없다. 코아그친은 그를 살렸고, 그는 코아그친을 버렸다. 그게 전부다. 테무진 자신의 기준에 따르면, 그는 부끄럽고 죄 지은 인간이었다.
테무진은 부르칸 칼둔에 두려움을 느낀다. 몽골인들은 원래 산을 신성시하는데다가, 부르칸 칼둔은 산 중에서도 비범한 산에 속했다. 타이치우드 족을 피해 테르구네 산에 숨었을 때는 결국 붙잡혔다. 하지만 부르칸 칼둔에 숨었을 때는 괜찮았다. 자신을 보호해 준 산이다. 이토록 고맙고 신성한 산은 분명 코아그친을 버린 자신의 비겁함을 똑똑히 목격했을 것이다.
테무진은 부르칸 칼둔과 코아그친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또한 용서를 빌기 위해 몽골의 전통 무속신앙에서 예(禮)를 올리는 행동을 한다. 그는 허리띠를 풀고 모자를 벗었다. 허리띠는 씨름선수의 샅바처럼, 남자의 힘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또 몽골인들은 모자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다.). 허리띠와 모자를 벗어 자신을 낮춘 테무진은 태양이 있는 방향으로 아홉 번 절을 하고, 하늘을 향해 가축의 젖을 뿌렸다.
이후 테무진은 부르칸 칼둔을 자신의 토템이자 수호신으로 섬긴다.
4
메르키트족의 야영지로 끌려간 보르테의 운명은 뻔했다. 헐룬이 약탈혼(여성을 약탈해 아내로 삼는 결혼)을 당했으니, 이번엔 보르테가 약탈혼을 당할 차례였다. 원칙대로라면 헐룬을 빼앗겼던 칠레두가 보르테를 차지하는 게 합당할 것이다.
하지만 보르테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낳은 아들의 아내>다. 그게 어색해서였을까. 보르테는 칠레두의 동생인 '칠게르'에게 넘겨졌다(어쩌면 칠레두가 어떤 일로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 칠게르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아마 아내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르테는 첩의 신세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칠게르의 이름 뒤에는 '장사'라는 별칭이 붙는다. 힘센 씨름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몽골의 씨름선수
이 상황에서 보르테는 테무진과 재회할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칠게르에게 겁탈당했다. 테무진도 애는 아니었다. 보르테가 어떻게 될 지 모를리가 없었다.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가?
그렇게 메르키트족의 야영지에 살게 된 보르테...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5
다시 한 번 삶이 처참히 부서진 테무진은 괴로움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과연 어떤 종류의 괴로움이었을까.
많은 작가들은, 테무진이 정복한 땅의 넓이만큼이나 그를 마초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문제도 마초적으로 접근한다. 아내를 빼앗긴 남자의 굴욕. 이 수치를 되갚기 위해 역시 남자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와신상담을 하는 영웅의 모습 등등.
하지만 남아있는 사료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결론은 확실해진다. 테무진은 그저 아내인 보르테를 사랑했기 때문에 괴로워했다. 단지 아내가 '필요'했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초원사회는 엉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남자 몇 명이서 힘을 합치면 여자 하나쯤 약탈하는 짓은 쉽게 할 수 있었다.
테무진과 보르테는 각각 아홉 살과 열 살 때 평생 함께하기를 약속한 사람이었다. 결혼적령기가 지날 때까지 자신을 기다려주었으며, 가난하고 초라한 남자에게 기꺼이 시집을 와주었다. 기나긴 고통 끝에 마침내 사람답게 사는 행복을 준 사람이었다. 테무진은 오직 보르테를 원했다.
관련서적과 자료를 읽다보면, 테무진의 일생에 관한 수많은 논란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놀랄 정도로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메르키트족의 습격이 테무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점이다. 그는 보르테를 되찾는 과정에서 군사지도자가 되고, 결국 가공할 정복자가 된다. 메르키트족은 세계사에 나비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초원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자 초원과 중국, 고려,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에 사상 초유의 피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메르키트족뿐만 아니라 테무진 자신도 보르테 납치사건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보르테를 되찾기로 결심했을 때엔 말이다.
메르키트족_니네가_한_짓을_봐.GIF
(몽골제국 확장도)
outro
테무진의 일생은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제대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즉 테무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자료들은 아직은, 결코 <인류의 유산>이나 공짜 소스가 아니다.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한 현재 살아있는 학자들의 치열한 연구와 작업을 통해 구축된 것이다.
따라서 참고문헌을 기재하고 필요한 항목마다 각주(혹은 미주)를 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 당연한 양심이다. 그런데 재미와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 그리고 고백하자면 나 자신의 편리를 위해서 이 작업을 방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원래는 이러면 안 되는 거다. 그러잖아도 참고문헌을 소개해달라는 독자분의 메일도 받았다. 당연한 요구다.
각주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타르쿠타이가 이런 대사를 치는 내용을 썼었다.
"아쭈, 이 새끼들이 다 자랐군?* 제 형도 죽이고 말야..."
여기에 이런 각주를 붙여야 마땅하다.
* <몽골비사>에는 이런 대사들이 시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원래의 문장은 이렇다. : "병아리들이 털을 갈았다 / 두 살바기 양들이 질금거린다"(유원수 역, 사계절 출판사, 2008, 3쇄)
이 문장은 '다 자랐다'라는 뜻의 중세 몽골어 관용어구다.
1. 털을 갈았다는 것은 성체의 깃털과 색을 지니기 시작했다는 뜻. 2. 양은 생후 2년부터 발정을 시작하며, 생후 2~3년이 처음 새끼를 갖는 연령이다. 따라서 질금거린다는 표현은 발정에 의한 성기의 분비물을 뜻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
원칙대로라면 이렇게 해서 어떤 해석을 거쳐서, 무슨 근거로 대사 속의 일상어문이 가능해지는지를 하나하나 밝혀주어야 한다. 물론 "아 씨바.."나 "흐미", "헐.." 이런 거에 해당하는 사료의 문장은 당연히 없다. 이런 표현들은 당시 실존인물들의 기분과 입장 등을 고려하여 넣은 양념들이다. 하지만 유의미한 내용이 포함된 모든 문장들은 모두 사료에 근거하고 있고, 내용을 뺐으면 뺐지 추가한 적은 없다. 자의적으로 추가하면 오류가 되기 때문이다. 자의적으로 추가하는 표현들은 모두 특정한 내용이 없어야 한다. : 이를테면 "씨바", "아놔..." 같은 것들.
각주까지는 당장 불가능하지만, 시리즈가 더 이상 계속되기 전에 참고문헌 정도는 정리해주는 게 예의라고 본다.
1차 : (문헌을 포함한) 사료
- <몽골비사> 유원수 역주, 사계절, 2008
- (몽골비사의 또다른 역주본, 영문)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 (몽골비사의 또다른 역주본, 영문)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A Mongolian Epic Chronicle of the Thirteenth Century, Igor de Rachewiltz
- 라시드 앗 딘, <집사 중 '칭기스칸기'>, 김호동 역주, 사계절, 2003
- 라시드 앗 딘, <집사 중 '칸의 후예들'>, 김호동 역주, 사계절, 2003
- 라시드 앗 딘, <집사 중 '부족지'>, 김호동 역주, 사계절, 2003
- William of Rubruck, Mission of Friar William of Rubruck: His Journey to the Court of the Great Khan Monke 1253-1255, Peter Jackson 역, David Morgan 주해, Hackett Pub Co Inc, 2009
-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김호동 역해, 사계절, 2000
익명의 저자가 쓴 몽골비사는, 어쩌면 칭기스칸의 아들이자 2대 대칸인 우구데이가 썼을 수도 있다. 물론 '어쩌면'이다. 이 역사서는 매우 함축적이고 시적인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행간을 파악하고 확장시키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몽골비사는 누구의 역주본으로 읽을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국내에서 김호동 교수님과 함께 몽골 및 중앙아시아 역사/문화에 가장 정통한 유원수 교수님의 작업이 없었다면 미천한 쇤네가 감히 테무진의 일생을 떠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르게네 오논은 몽골인이다. 이분은 본문의 몇 배에 해당하는 각주를 집필했는데, 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또한 Igor de Rachewiltz는 <몽골비사>학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학자다. 세 대학자의 각주를 비교분석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 줄 모르겠다.
라시드 앗 딘은 인류 최초의 <세계사>를 쓴 인물. 저 위에 소개된 세 책은 각기 다른 주제를 갖고 있지만, 같은 인물과 시대상, 배경이 계속 중언부언되고 있다. 다른 내용도 자주 등장하는데, 한 인물이 쓴 것이므로 서로 모순된다기보다는 상호보완관계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라시드 앗 딘은 당시 세계 최고의 지식인답게 연도, 상황설명 등 자료와 근거가 매우 자세하고 엄밀하다. 다만... 중동에 살던 이슬람교도였던 그는 테무진에 대해 몇 가지 왜곡을 저질렀다. <여자들에게 얼마나 권위적인 남자였는지>, <얼마나 엄하게(가혹하게) 패배자를 다스리는 위대한 군주였는지>를 쓸데없이 꾸며서 설명하고 있다. 테무진은 그런 마초가 아니었다. 심지어 라시드 앗 딘은 테무진이 자무카에게 당한 두 번의 패배도 왜곡하고 있다. 하나는 아예 안 썼고, 하나는 테무진이 이긴 걸로 고쳐 썼다. 아마 정복자의 후손들 눈치를 봤거나, 아니면 정복자에 대한 예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몽골비사에서 알 수 있듯, 정작 몽골인들은 테무진의 인간적인 모습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라시드 앗 딘은 확실히 좀 오바한 것 같다.
루브룩은 13세기에 몽골을 방문한 기독교 사제인데, 당시 몽골 사회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편견 없는 내용을 기록한 지식인이다. 그의 엄밀한 통찰과 객관적 시각은 "통일몽골"을 이해하는 데 있어 든든한 지원군이다. 갓 블레스 윌리엄!
마르코 폴로는 오랫동안 뻥쟁이로 오해되어 온 인물이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다시 인정받기 시작됐지만, 뻥쟁이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 있다. 물론 <동방견문록>엔 뻥도 있으나, 이 뻥은 그가 꾸며낸 뻥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뻥이다. 그는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애쓴 사람이다. 동방견문록 자체가 그의 작업물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동방견문록이라는 책 자체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2차 : 문헌 I
- 헨리 율/앙리 꼬르디에, <중국으로 가는 길(Cathey and the Way Thither)>, 정수일 역주, 사계절, 2002
- 라츠네프스키, <칭기스칸>, 김호동 역, 지식산업사, 1992
- 르네 그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김호동/유원수/정재훈 역, 사계절, 2010
- 잭 웨더포드,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정영목 역, 사계절, 2004
- Weatherford, Jack(위의 '잭 웨더포드'와 동일인),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 Queens: How the Daughters of Genghis Khan Rescued His Empire
- 김호동,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돌베개, 2010
- Timoty May, The Art of Mongol Warfare : Chinggis Khan and the Mongol Military System
- Stephen Tumbull/Wayne Reynolds, Mongol Warrior 1200-1350
- 장폴 루, <칭기스 칸과 몽골제국 : 정복과 관용의 두 얼굴>, 김소라 역, 시공사, 2008
<중국으로 가는 길>은 중국학의 전범이자, 최초의 문명교류학이라고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업물이다. 헨리 율이 쓰고, 헨리 율 사후에 앙리 꼬르디에가 각주를 달았다. 여기에 한국어판 역자인 정수일 교수가 방대한 미주를 달아 완성했다. 한국 독자들은 1세기 이상을 관통하는, 장장 세 명의 대학자가 참여한 위대한 결과물을 볼 수 있다.
라츠네프스키는 현재의 <칭기스칸>학의 주도자 중 하나이다. 반면 르네 그루쎄는 말하자면 구조주의적인 작업을 하는 학자로서, 몽골을 포함한 기마민족들의 역사를 하나의 패턴과 맥락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루쎄의 작업물은 다소 오류가 있지만, 통찰력과 시야는 가장 인정받는다.
한편 잭 웨더포드는 테무진 해석에 있어 가장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는 학자이며, 가장 급진적이다.
김호동 교수님은 보다 조감하여, 몽골제국의 의의와 영향력을 세계를 기준으로, 거시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티모시 메이의 작품과 그 밑의 책은 몽골군의 전술에 관한 책이다. 참고로 티모시 메이의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었는데, 모르고 비싼 돈 주고 영문본을 샀다. 값도 비싸고 읽기도 어렵고... 번역서들, 제발 원제 좀 그대로 가져다 쓰자. 한국어본 제목인 <칭기스칸의 세계화 전략>은 뭔가... 딱 2류 자기계발서처럼 보인다. 참고로 본인이 판단하건데 이 책엔 오류가 많은 편이다.
3차 : 문헌 II
-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사계절, 2001
-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 고대 ~ 1600>, 신성곤 역, 까치, 2006
- 정수일, <씰크로드학>, 창작과비평사, 2005
- 사세이키, <유럽중심사관에 도전한다>, 손승철 외 역, 지성의 샘, 1997
- 앤 팔루던, <중국 황제>, 이동진/윤미경 역, 갑인공방, 2004
- 조르주 뒤비, <지도로 보는 세계사>, 채인택 역, 생각의 나무, 2010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 박규태 역주, 한겨레출판사, 2003
- 대구 MBC, <몽골>, 이른아침, 2008
- 체렌소드놈, <몽골의 민간신화>, 이평래 역, 대원사, 2001
- 김호동,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까치, 2002
- 버나드 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 송영조 역, 책세상, 2009
- 자크 아탈리, <호모 노마드 : 유목하는 인간>, 이효숙 역, 웅진지식하우스, 2005
정수일 교수님은 진리다. 깐수 만쉐이!
대만계 일본인인 사세이키의 저 책은 학부 교양과목 교재로 인기가 높다. 사세이키는 유럽중심사관에도 반대하지만, '정주문명중심사관'에도 반대한다. 유목제국들이 발생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좋은 책이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도 진리다. 프레이저 만세! 민속학 만세!
몽골 학자인 체렌소드놈, 이분은 곧 한국 방문해서 세미나를 가질 예정인데 함 찾아가볼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유원수, 김호동, 정수일 세 학자분들께 큰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4차 : 위키피디아(http://www.wikipedia.org)
집단지성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위키피디아가 없었다면 본 기자는 결코 <테무진to the칸> 시리즈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페이지 항목을 모두 기재하는 게 원칙에 맞겠으나, 그게 백 개가 넘는다는 게 문제. 그래서 생략한다. 언제 딴지가 그렇게 정도를 따졌다구...
참고로 위에 소개한 저자들 중에 잭 웨더포드가 위키피디아 영어판의 테무진과 몽골 관련 항목을 가장 열성적으로 채우는 것 같다. 물론 순전히 본인의 예상에 불과하다.
5차 : 미참고 문헌 - 1차 사료에 국한함
참고해야 함이 마땅하나, 부끄럽게도 본 기자의 태만과 실력부족으로 아직 접하고 있지 못한 1차 사료 문헌들은 다음과 같다. 참고한 지식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미참고 문헌도 밝히는 것이 옳다고 본다.
<원사(元史)>
중국의 24대 정사(正史)에 포함된 공식 역사서이다. 조선왕조가 개창되고 고려사가 정리된 것처럼, 새로운 왕조는 언제나 이전의 역사를 갈무리하려 한다. 이 책은 명나라 개국 초기에 조정에서 추진하고 주자학자이자 관리인 '송연(宋濂)'이 감수하여 편찬한 책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원나라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하다. 그래서 오류가 많지만,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기록의 전문가들이다. 참고할 만한 데이터가 많다고 한다. 아직 유럽어로도 완전히 번역되지 않았고, 한국어본도 없다. 현재 본 기자가 참고하려면 한자를 직접 읽는 수밖에 없다. 씨바... 가능하면 테무진을 다룬 부분인 <1권 - 태조본기>라도 입수하여 옥편 놓고 씨름해볼 생각이다. 아우 토나와.
<성무친정록(聖武親征錄)>
성무친정록과 테무진의 관계는 용비어천가와 이성계의 그것과 비슷하다. 즉 기본적으로 테무진에 대한 거대한 아부의 기록이다. 애널써킹은 언제나 도가 지나치는 법이다. 이 책은 테무진이 겪은 실패와 군사적 패배를 왜곡하거나 생략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료에 없는 내용을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보완용으로 필수적인 사료라 할 수 있다. 아직 한국어본이 없지만 다행히도 영문본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노브고로드 1차 연대기: 1016~1471>
노브고로드는 중세 유럽 국가로, 러시아 민족(슬라브족)의 중심국가였다. 이 책은 노브고로드의 사서(史書)이다. 1016년부터 1471년까지의 역사를 담은 <노브고로드 1차 연대기>는 테무진과 몽골군에 대한 분노와 적의, 공포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테무진은 지옥에서 3분전에 올라온 악마다. 러시아인들이 당한 걸 생각해보면 이해할만한 반응이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과장을 걷으면, 마땅히 참고할 만한 진실들이 솔찬이 발견되는 사료다.
죠반니 까르피니(1182~1252), <몽골에 대한 기록>
까르피니는 기독교 사제로서, 공식적으로 몽골을 방문한 최초의 유럽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탈리아인이다. 그는 교황 이노센트 4세의 특명을 받고 몽골을 방문했다. 당시 교황은 몽골이 기독교국가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몽골제국 전체가 교황과 로마카톨릭 교단을 받들어 모실 것과, 동서 양측에서 협공하여 이슬람 세계를 파괴하는 정교전쟁에 가담케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참으로 순진무구한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당연히 뻰찌먹었다. 까르피니는 그러나 여행중에 몽골사회의 몽골인들의 삶 등에 대해 기록했고, 유럽에 돌아온 후 자신의 글을 정리했다.
알라딘 아타-말릭 주베이니(1226~1283), <세계 정복자의 역사>
이 양반, 이름이 무려 알라딘이다. '세계 정복자'란 물론 테무진과 그의 후손들, 장군들을 말한다. 몽골에 정복당한 호라즘 제국의 관리였으나, 워낙 능력이 뛰어나 호라즘 멸망 후 몽골제국에 중용되었다. 몽골제국에서 현대의 국회에 해당하는 국가대회의, 즉 '쿠릴타이' 소집명단에 포함된 인물이다. 주베이니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문화권이었던 아랍에서 지적으로 정점을 친 인물이다. 주베이니는 몽골의 세계정복이 가지는 의의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세계가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는 전제 하에, 불멸의 역사서를 쓰기로 작정한다. 이 일생의 작업을 위해 몽골제국의 수도인 카라코룸을 두 번이나 방문한 노력파다.
자자, 그래서 테무진은 다음편에서 아내를 찾으러 간다는 얘기다.
(8) 복수는 나의 것
1
(전편에 이어)아내를 잃었다. 그런데 되찾을 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테무진은 커레이트족의 칸 토그릴을 찾아갔다.
"메르키트 놈들이 제 아내를 빼앗아갔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녀석아, 네가 나한테 담비가죽옷을 주며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니? 아들이 나쁜 짓을 당했는데 어떻게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냐. 도와주마!"
옹 칸은 천사였던 걸까? 음...
의붓 자식이 험한 일을 당했다. 아버지로서 가만히 있는 것도 자존심과 평판에 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여기서 테무진은 '정치'란 걸 제대로 배우게 된다.
옹 칸은 테무진에게 말한다.
"자네, 자무카라는 친구와 '안다'를 맺지 않았나? 그 친구 요즘 보통 잘나가는 게 아냐. 자무카한테도 도와달라고 부탁해 보게. 내가 테무진을 도와주기로 했는데, 내가 2만명을 준비할테니 자무카가 2만명 정도의 병사를 모아줬으면 한다고, 이 말을 내가 했다고 꼭 전달하면서 말이야."
시키는대로 해야지 별 수 있는가? 테무진은 카사르와 벨구테이를 자무카에게 보내 자신의 사정과 토그릴의 말을 전하게 했다.
"흑흑 우리 성님이... 형수님이..."
그 옛날 얼어붙은 오논 강 위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테무진... 두 번이나 안다를 맺은 테무진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전해들은 자무카는 뚜껑이 열렸다.
"더러운 메르키드 새끼들이 감히 내 안다의 아내를 빼앗았다고? 내 안다의 잠자리를 썰렁하게 만들고(참 솔직한 표현이다...), 밤마다 외로움에 잠 못들게 했다 이거지? 그렇다면 출정한다!"
자무카는 과연 우정만으로 전쟁을 결심했을까? 글쎄...
우리는 딴지스인 만큼, 졸라 시니컬하게 접근해보도록 하자.
물론 안다와의 우애 때문에 자무카는 정말로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우정만으로 2만의 군대가 덜컥 모이지는 않는다. 커레이트족이야 워낙 크고 강성하니까 부족 내에서 2만명의 전사를 소집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자무카가 속한 자다란 씨족은 몽골족이었다. 몽골족은 분열되어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몽골족 출신의 전사들을 다 합쳐도 2만이 될까 말까였다.
그러나, 모을 수 있다. 절대권력이 없던 당시의 초원에는 이 세력 저 세력이 이합집산하고 있었다. 뜻이 맞으면 A집단과 B집단이 얼마든지 힘을 모아 C를 공격할 수 있었다. 물론 공동의 목표를 완수하면 당연히 손 흔들고 헤어진다. 그러다 다음엔 적으로 만날 수도 있고. 따라서 자무카가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만 있다면 일시적으로 전사들을 모을 수 있다. 그 청사진이란 바로 이익이다.
메르키트족은 초원에서 아주 잘 나가는 부자집단이었다. 메르키트족을 약탈하는데 성공한다면, 한몫 제대로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메르키트족이 공짜로 부자가 된 건 아니었다. 메르키트족은 사납고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인간들이었다. 커레이트족이 단독으로 붙어보기엔 버거운 상대였다. 자무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명분없는 전쟁은 주변 부족(씨족) 전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성사되기도 어려운 데다가, 전쟁 당사자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딱 좋다. 하지만, 테무진은 옹 칸의 안다의 아들. 그리고 자무카는 테무진의 안다였다. 옹 칸과 자무카에겐 명분이 있었다. 함께 연합해 2:1의 유리한 상황에서 메르키트를 칠 절호의 기회였다!
(또한 토그릴은 메르키트족에 원한이 있었다. 그가 7살 때, 오도이드 메르키트족이 그를 납치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절구질'을 하는 아동노동착취를 당했다. 아버지가 군대를 몰고 와 결국 구출되었으나, 좋은 기억일 리 없다. 이번에 복수에 성공한다면 두둑한 보너스를 받게 되는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자무카와 토그릴은 테무진과의 '신의를 지키면서' 이윤이 보장된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토그릴이 보낸 신호를 자무카가 곧바로 이해한 건, 뭐 당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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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버뜨.
다시 생각해보면, '이윤이 보장된 사업'이라고 해서 전사들이 구름떼처럼 모이지는 않는다. 전쟁은 위험한 일이다. 부상과 죽음의 위협이 있는 건 물론이고, 린치와 약탈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향후 그 때문에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다. 세력을 모집하는 사람은 평편이 좋거나 아님 실력이 뛰어난, 믿을 만한 인물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함부로 모험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
테무진과의 나이를 비교해 봤을 때, 이때 자무카의 나이는 많아야 스무살 정도였다. 최대치로 잡는다고 해봐야 스물 한 살...
학자들은 테무진이 몽골을 통일하고 <몽골 vs 세계>전쟁을 시작했을 때 몽골의 총 인구를 100만 명 가량, 정예 전사를 10만 명 가량으로 추산한다. 당시 초원의 세력권은 크게 동쪽의 타타르, 중앙의 커레이트, 서쪽의 나이만으로 삼분되어 있었다. 그보다 덩치는 조금 작지만 사나워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메르키트라는 무시할 수 없는 독립세력이 있었고. 나머지는 군소부족이었다. 몽골족은 그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몽골 씨족에 속한 약관 스무살의 파릇파릇한 청년이,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초원세계 전체의 전력 1/5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초원이 통일될 때까지, 수십년 계속된 전쟁에서 죽은 전사의 수를 감안하더라도 1/6 정도... 최소한 1/7이다.
자무카는 이미 최소 수백, 많게는 1~2천명이 넘는 전사로 이루어진 추종집단을 거느리고 있었을 것이다. 자무카가 속한 자다란 씨족은 유서깊고 존경받는 혈족집단이었다. 하지만 결코 주목할 만한 세력과 규모를 갖지는 못했다. 따라서 자무카도 생전의 예수게이처럼 능력만으로 사냥꾼이자 용병단이자 약탈대를 조직한 대장이었다고 보면 된다.
본 시리즈를 계속 읽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자무카는 전투의 천재였다. 그리고 진짜 마초였다. 재수없을 정도로 높은 자존심, 그리고 그 자존심에 걸맞는 실력을 모두 갖고 있었다. 초원에서 남자는 보통 14~16세에 결혼했다. 결혼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결혼적령기를 확실히 넘겨야 비로서 성인의 대접을 받는다. 따라서 자무카가 이름을 알리고 세력을 모을 수 있던 기간은 아무리 길어봐야 5년 이하다. 아마도 2~3년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초원에 난데없이 등장한 혜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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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그릴은 권력과 부, 정치력으로는 자무카를 압도했다. 하지만 지휘관의 능력은 자무카가 경험 많은 토그릴보다 우위에 있었던 게 확실하다. 토그릴도 이 사실을 잘 알았는지, 전쟁 총사령관 역할을 자무카에게 맡긴다. 군대가 집결하는 장소와 시간을 자무카가 정하게 한 것이다.
자무카는 사령관으로 선임되자마자 친구를 위한 복수를 부르짖는다.
"오도이드 메르키트, 오와스 메르키트, 카아드 메르키트를 쳐부수어 테무진의 원수를 갚고 복수를 하자! 보르테 부인을 구하자!"
... 아, 물론 전쟁이 가져다주는 이익도 빠뜨리지 않는다.
"겁쟁이 톡토아 새끼의 처자가 끝장이 나도록 약탈하자! 그의 온 나라가 끝장이 나도록 약탈하자!"
역사엔 자무카가 부른 웅장하면서도 폭력적인 전쟁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 이 가사에서 우리는 자무카가 '가오'를 무척 중요시하는 마초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먼저 영기에 술을 뿌려 제사를 지냈다. 이미 자신의 영기를 갖고 있었다는 얘기. 그리고 흔치 않은 새까만 말을 타고, 새까만 황소가죽 북을 두드려 전쟁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초원사람들은 무채색을 중요시했다. 가장 귀족적이고 순수한 색은 흰색이다. 순혈 귀족을 '흰 뼈'라고 부른다. 반면 검은색은 순수혈통이 아니라는 뜻도 있지만, 가장 화려한 색이기도 하다. 예컨데 결혼하는 신부가 타는 수레는 검은 색이었다. 하늘과 맞닿은 해발 1600미터의 초원, 봄과 여름에는 푸르고 가을에는 노랗고 겨울에는 하얀 맑은 초원에서 검은 색은 눈에 가장 잘 띄는 색이었다.
자무카는 검은색과 모종의 관련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검은색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쇼맨쉽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자다란 씨족임을 과시하려는 거였을까? 몽골족은 '바보' 보돈차르의 후손인데, 그의 아내가 낳은 첫째아들은 생물학적으로 보돈차르의 자식이 아니었으니까. 즉 '검은 뼈' 자다란의 후손임을 나타내려는 거였을까? 아니면 자기 아버지를 상징하는 거였을 수도 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무카 아버지의 이름은 '카라 카다안', 즉 검은 카다안이었다.
자무카의 갑옷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즉 직사각형의 수많은 쇠판을 끈으로 연결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나중에는 이 갑옷 형태가 몽골제국군의 기본 무장이 된다.). 당시의 몽골족은 가난해서, 가죽을 두껍게 댄 갑옷이 전부였을텐데... 심지어 소모품인 화살까지도 복숭아나무 껍질로 정성껏 장식된 것을 쓰고 있었다. 한마디로 끝내주게 성공한 남자였다. 이런 안다의 모습을 본 테무진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자무카는 테무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1만을 모을 테니 너는 너대로 1만을 모아봐. 커레이트가 2만, 우리 몽골이 2만 - 합쳐서 4만을 만드는 거다."
전쟁을 촉발시킨 원인 제공자로서 성의와 책임을 보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테무진 주제에 무슨 재주로 전사 만 명을 모은단 말인가? 게르 하나에서 장정 한 명씩 튀어나온다고 해도, 초원에 별처럼 퍼진 만 개의 게르가 테무진의 뭘 보고 모험을 감수한단 말인가.
여기에 10000을 곱하면 된다.
자무카에겐, 안다의 역량을 시험해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는 테무진을 위한 배려였을 수도 있다. 커레이트족과 자무카가 한 편이 된다. 이는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보험이다. 아무리 테무진이라도 커레이트와 자무카의 신용도를 걸면 사람을 모을 수 있었을 터- 이 절호의 후광효과를 놓지지 말고 세력을 모으는 경험을 함 해보라는 뜻도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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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은 1만의 장정을 모으는 데 성공했을까? 어이구, 전혀...
자무카가 2만을 다 모았다. 토그릴 1만, 토그릴의 동생인 자카 감보가 1만. 이렇게 커레이트 2만을 합쳐 4만명 - 이게 '아내 찾기 안다 연합'의 총전력이었다. 그래도 테무진이 군사를 모집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선, 아마 수십명에서 기백명 정도 가까스로 모은 것 같다.
자무카가 정한 집결 장소는 오논 강의 발원지였다. 테무진과 토그릴, 자카 감보는 며칠 집결지에 며칠 늦게 도착했다. 테무진은 시간을 지킬 수 있었지만, 토그릴과 자카 감보가 케를렌 강줄기를 따라 올라온다기에,
"아, 그러면 마침 우리가 그분들이 지나는 길 근처에 있으니까... 기다렸다가 합류하지 뭐."
하느라고 같이 늦었다.
상호계약을 할 때, 목표를 완수하고 찢어질 때는 동등할 수 있겠지만... 집단행동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한 명의 지시를 받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전쟁에 돌입했을 땐 모두가 총사령관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말인즉슨 자무카가 왕이었다.
스무 살의 자무카는 초원 최고의 권력자 중 하나인 토그릴과 그의 동생, 그리고 안다인 테무진에게 호통을 친다.
"눈보라가 쳐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집결시각을 엄수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몽골이다! 지금 장난하나?"
즉 테무진은 위대한 몽골족 전사로서 격이 떨어지는 행동을 했다는 뜻. 그렇다면 이는 자동적으로 몽골족이 아닌 토그릴과 자카 감보는 격이 떨어질 만도 하다는 뜻도 된다. 자무카, 이렇게 세 사람을 보기 좋게 보내버린다. 그래도 세 사람, 할 말 없다. 토그릴은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시인한다.
"우리가 잘못한 거 맞네... 지금 사령관은 자무카 아우일세. 아우가 마음대로 처분하게."
자무카 형, 카리스마가 아주 그냥 지대로다. 대체 이 끝모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야 실력에서 나온다. 그는 토그릴을 '용서'한 후, 곧바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전을 내놓는다.
"현재 메르키트 세 부족은 각각 떨어져서 야영하고 있다. 톡토아가 이끄는 오도이드 메르키트는 '보오라' 초원에 있다. 다이르 오손이 이끄는 오와스 메르키트는 '오르콘', '셀렝게'강의 '탈콘' 섬에 있다. '카아타이 다르말라'의 카아드 메르키트는 '카라지' 초원에 있다."
이 때를 놓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무카의 목표는 신속한 '각개격파'였다. 전력이 합쳐지기 전에 하나씩 깨트리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인구밀도가 적은 초원에서 무려 4만 명의 전사가 모였다. 메르키트족이 바보도 아니고, 이 소식을 모를 리가 없었다. 4만명이 자신들을 향해 진격한다. 이 역시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서, 확실히 승리하려면 적의 허를 찔러야 했다. 적이 예상한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서 준비할 틈 자체를 주지 않아야 한다. 아래 지도를 보자. 현대 몽골의 강 지도다.
우측 상단에 오논(Onon) 강이 보인다. 그 바로 밑의 물줄기가 헤를렌(Herlen)강. 현대 몽골 표준어인 '할하' 몽골어로 '헤를렌'이라고 부르는 이 강이 중세 몽골어인 '카막' 몽골어로는 케를렌 강이다. 오논 강과 케를렌 강 모두 발원지는 테무진의 토템 부르칸 칼둔이다. 오논 강에서 왼쪽으로 가면 할하 몽골어로 '오르혼(Orhon)' 강이 보인다. 카막 몽골어로는 오르콘 강이다. 오르콘 강 바로 위에 셀렝게(Selenge) 강 물줄기가 있다.
오르콘과 셀렝게의 강줄기가 만나고 흩어지는 곳. 여기가 메르키트족의 주 야영지였다. 보오라 초원과 카라지 초원이 어디인지, 현재의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메르키트족이 매우 부유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이렇게 강줄기가 복잡하게 얽히는 곳은 물이 풍부할 뿐 아니라, 충분한 수량과 퇴적물 덕분에 물 많고 영양 많은 풀들이 자라게 된다. 이런 풀은 가축을 살찌게 한다.
게다가 '탈콘 섬' 이라는 지명도 등장한다. 초원엔 바다가 없다. 따라서 '탈콘' 섬이란, 두 물줄기 사이에 있는 삼각지다. 퇴적물로 이루어진 삼각지의 토양이 얼마나 영양만점이었겠는가. 토양이 풀을, 풀이 가축을, 가축의 고기가 사람의 영양상태를 만든다. 메르키트족, 정말 잘 먹고 잘 살았다.
셀렝게 강
자무카는 진격의 장애물인 강을 거꾸로 이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몽골의 강은 강폭이 좁다. 별로 깊지도 않아서 말로(요즘에는 지프로도) 건널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수역(水域)은 지상과 비슷하게 이동할 수 있다. 물론 깊은 수역도 있다.
곳곳에 강줄기가 뻗어있는 지형에서, 상식적인 공격루트는 뻔하다. 이곳을 주 목영지로 하고 있는 메르키트족이 그 정도 예상하지 못할 리가 없다. 따라서 허를 찌르려면 오히려 건너기 곤란한 지점을 골라야 한다. 자무카가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곧장 킬코 강을 도하한다."
킬코 강은 어디일까? 지명이 하도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바람에 현재의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역사에는 자무카-테무진-토그릴-자카 감보의 연합군이 지나간 강의 지점이나 깊이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물이 무척 깊었던 것은 확실하다. 걸어서는 물론이고 말을 타고서도 건널 수 없고, 낚시를 하기 위해선 배를 타야 하는 곳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자무카는 군대를 몰아 서쪽으로 진격했다. 한밤중에 킬코 강을 만난 도합 4만의 대부대... 그들은 구불구불한 강줄기를 따라 곡선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사람과 말이 함께 뗏목을 타고 그대로 강을 도하했다! 예상치 못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는 속도전, 즉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전격전'이었다. 뗏목을 이용하면 말이 물을 튀길 필요가 없어 이동하는 소리를 은폐하기도 쉬워진다.
뗏목을 어떻게 구했을까? 그야 물론 숲에서 나무를 잘라 만들었을 것이다. 몽골 초원에서 숲은 주로 강줄기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킬코 강을 건너면 바로 보오라 초원이다. 톡토아 베키의 오도이드 메르키트가 버티고 있다. 거기서 한밤중에 횃불 켜놓고 4만명의 사람과 10만 마리가 넘는 말이 탈 뗏목을 우지끈 뚝딱 만들고 있으면, '우리 뗏목만 만들면 바로 쳐들어가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리 만들어 간 뗏목이다. 자무카가 정한 집결지는 오논 강의 발원지였다. 브루칸 칼둔 산을 끼고 있고, 북쪽은 시베리아 숲의 남단이다. 뗏목을 만들기에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테무진은 자무카에게 정치와 전술 외에, 한가지 중요한 술수를 더 배운다. 바로 '선전전'이다. 역사는 테무진을 심리전술 - 선전전의 대가로 기록한다. 자무카의 심리술은 테무진이 경험한 최초의 선전전이다.
자무카가 외침에 따르면, 톡토아 베키는 "말 안장을 두드려도 (전투을 알리는)북 소리로 알고 놀라 달아나는" 인간이며, 카아타이 다르말라는 "초원의 풀이 바람에 치는 소리만 들려도" 놀라 자빠지는 겁쟁이이고, 다이르 오손은 화살통이 흔들리는 소리만 들어도 도망가는 작자였다. 전혀 사실이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아군 전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 아마 소정의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5
킬코 강에서 배를 타고 밤낚시를 하던 메르키트족의 어부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다. 아니 저게 다 뭐여... 가만히 보니 뗏목을 탄 대부내가 오도이드 메르키트의 야영지를 향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어부는 급히 톡토아 베키의 게르를 찾아간다. 담비를 잡으러 숲에 나갔던 사냥꾼도 급보를 전하러 달려왔다.
"수만 명이 쳐들어옵니다..."
그러나 톡토아 베키는 자무카의 전격전술에 적절한 대응을 할 틈이 없었다. 신속히 강을 건넌 연합부대가 이미 전열을 가다듬고 야영지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게르는 물론이고 게르 안의 것들을 챙길 여유도 없었다. 부족의 수령인 그의 게르마저도 약탈당했다. 톡토아 베키는 소수의 무리만 이끌고 훗날을 기약하며 도망가야 했다. 킬코 강 도하작전은 성공했다.
특별히 위로 솟아오른 게 없는 초원에서, 강은 중요한 랜드마크다. 메르키트 족 3개 씨족도 강줄기를 따라 흩어져 있었다. 오도이드 메르키트의 톡토아 베키는 오와스 메르키트와 합류하기 위해 셀렝게 강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패주가 거듭될수록 약탈당할 물건과 사람도 계속 남겨지게 마련. 연합부대는 약탈을 거듭하며 톡토아 베키를 계속 추격했다.
자무카의 부대는 톡토아 베키가 다이르 오손에게 합류하자마자, 다이르 오손이 부대를 준비하기도 전에 오와스 메르키트족을 2차 타격,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어 또다시 약탈했다. 톡토아 베키가 외려 길앞잡이 역할을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자무카는 적이 상황을 알고 준비할 틈을 주지 않고, 강줄기를 따라 그들을 쉼없이 격파해나갔다.
굽이굽이 약탈길...(셀렝게 강)
다이르 오손과 톡토아 베키는 소수의 전사만 챙겨서 1. 급박한 상황에서 구원받기 위해 2. 동족에게 위기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3. 재빨리 전사들을 추려서 반격을 가하기 위해 카아드 메르키트족의 야영지로 도망갔다. 자무카는 그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남은 메르키트 사람들은 무자비한 약탈과 린치의 아수라장에 남겨졌다. 남자들은 무장을 하고 말에 오르기도 전에 살육당했다. 그 다음은 여자들을 붙들어 억류할 차례다. 한밤중의 피난민들은 어디로 도망가야 할 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다가 죽기도 하고, 붙잡히기도 했다. 비명과 신음이 밤하늘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연합부대 대부분이 약탈이 혈안이 되어 있을 동안, 테무진은 보르테를 찾기 위해 피난민 행렬을 헤집고 다녔다. 그는 미친듯이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보르테! 보르테!"
보르테와 코아그친은 이 난리통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만 남은 씨족인 '카아드 메르키트'의 야영지를 향해 도망가는 행렬에 섞여 있었다. 코아그친 노파와 함께였다. 그녀는 수레를 타고 있었다.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밀실 형태의 수레였을 것이다. 그녀는 메르키트족의 값나가는 <재산>으로 분류되었을 테고, 따라서 되도록 적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상책이었을 터이니...
마침 달빛이 무척이나 밝은 밤이었다. 하지만 테무진은 수레 안에 있는 보르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때 기적처럼, 테무진의 생애를 기록한 역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보르테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테무진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보르테는 코아그친과 함께 수레에서 뛰어내려 테무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밤인데도 테무진이 쓰는 말고삐와 밧줄을 알아보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당시 초원에서 이런 물건은 모두 수제로, 집집마다 각자 만들기 때문에 자신에게 익숙한 물건을 식별할 수 있다. 그리고 초원의 유목민들은 감각이 예민하다.
그때도 테무진은 아내가 자신의 곁에 다가온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보르테가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추었다. 테무진은 이상함을 느끼고 내려다보았다. 거기엔 그토록 찾아헤맨 아내가 있었다. 테무진은 말에서 뛰어내렸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를 것도 없이
"서로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6
감격의 순간... 마침내 사랑하는 아내와 재회한 테무진은 어서 아내와 함께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이 위험 속에 보르테를 계속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약탈의 이익이나 군사적 명성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복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덕에 보르테를 차지했던 '장사' 칠게르는 생명을 부지한 채 무사히 달아났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찾자 마자 토그릴과 자무카에게, 다음과 같은 순진무구한 전갈을 보낸다.
"전쟁의 목적은 제 아내를 찾는 거였잖아요. 드디어 아내를 찾았습니다. 그러니 이만 약탈을 그만두고 돌아갑시다."
어서 즐거운 나의 집으로...
자무카와 토그릴은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이녀석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몰라도 너무 모르네... 4만 명의 대부대는 이익을 위해 모였지, 한 불쌍한 부부의 재결합을 위해 모인 게 아니다. 게다가 톡토아 베키와 다이르 오손을 추격해 카아드 메르키트를 신속히 쳐야 한다. 어정대다가 반격할 기회를 주면 바로 그 시점부터 희생자가 발생하고, 전쟁의 이익은 큰 폭으로 줄어든다.
자무카는 자신의 안다 테무진의 요청을 가볍게 씹고, 진격을 계속해 카아드 메르키트마저 철저히 짓밟아 버린다. 그 와중에 톡토아와 다이르 오손은 도망가는 데 성공하지만, 정작 카아드의 수장 카아타이 다르말라는 포로로 붙잡혔다.
실상이야 어떻든, 전쟁의 명분은 테무진에게 있었다. 자무카와 토그릴은 카아타이 다르말라를 테무진에게 넘겼다. 테무진은 그의 목에 칼을 씌워 자신의 토템인 부르칸 칼둔으로 호송시켰다. 그는 그곳에서 부르칸 칼둔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어 죽는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찾았고, 가족의 은인 코아그친도 구했다. 하지만 벨구테이는 아직도 자신의 생모 소치겔을 찾지 못했다. 소치겔은 카아드 메르키트족에 붙들려 있었던 모양이다. 나이든 그녀는 별다른 커리어도 없는 가난하고 늙은 전사에게 넘겨졌다.
벨구테이는 무장해제된 포로들을 족쳤다.
"내 엄마 어딨냐, 이 개새끼들아."
포로가 뭘 어쩌겠는가?
"어머님은 저 집에 살고 계신데여..."
소치겔은 벨구테이가 자신을 찾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통곡한다.
"우리 아들들(자신의 아들과 헐룬의 아들들 모두를 말한다.)이 저렇게 장성해서, 군대를 지휘하는 번듯한 사내들이 되었는데... 나는 여기서 보잘 것 없는 남자의 노리갯감이 되어 있었으니... 부끄러워서 어떻게 아들들 얼굴을 보겠누?"
소치겔 아줌마의 자괴감, 이해가 간다... 벨구테이가 게르문을 열고 들어갈 때, 소치겔은 아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다른 쪽 문을 열고 튀어나간다. "양가죽 누더기" 차림이었다. 그녀가 어떤 취급을 받고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숲으로 도망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글쎄...
이미 연합부대는 카라지 초원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말을 탄 병사들이 게르에서 방금 두 발로 뛰어나간 아줌마를 놓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게다가 '다시는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하고, 실제로도 이후에 소치겔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은 이때 소치겔이 자살했다고 추측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몽골초원에서 자살은 엄청난 금기다. 절개를 지키기 위한 자살. 후퇴보다는 죽음을 선택하는 충절. 초원에서는 이런 거 안 쳐준다. 끝까지 사는 게 좋은거다. 싸우다 안 되면 후퇴하고 다음에 반격하는 게 상식인 거다. 죽음은 무조건 나쁜 거고, 자살은 더 나쁜 짓이다. 필시 테무진 가족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소치겔의 자살을 실종으로 윤색해놓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본 벨구테이는 분노와 광기에 휩싸였다. 테무진은 벨구테이를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릴 수 없었다. 그는 벨구테이의 친형 벡테르를 죽인 전력이 있다. 메르키트족에게 습격받을 때, 자신의 생모 헐룬은 말을 탔지만 벨구테이의 생모 소치겔은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이렇게 되었다... 테무진이 벨구테이에게, 무슨 할 말이 있었겠는가.
벨구테이는 메르키트족 포로들에게 고두리살(지난 편들에서 설명했듯이, 끝이 뭉툭한 새 사냥용 화살)을 쏘아대며 소리친다.
"내 어머니를 찾아내라(살려내라)."
고두리살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그 대신 엄청나게 아팠을 거다. 벨구테이의 행동은 활쏘기가 생활화된 초원에서 '구타'에 해당되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벨구테이의 분노는 이정도 구타로 해결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테무진 가족의 야영지를 습격해 보르테와 소치겔, 코아그친을 납치해간 메르키트 전사들은 대략 300명이었다. 벨구테이는 포로들에게 린치를 가해 '불게' 만들면서 그 300명의 약탈대에 속했던 전사들을 모을 수 있을 때까지 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죽였다. 뿐만 아니었다. 벨구테이는 그걸로도 모자라서 "그들의 친척의 친척에 이르기까지" 도륙했다. 그런 벨구테이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칼춤을 추는 악마처럼 보였으리라.
이게 끝이 아니었다. 벨구테이는 자신이 죽인 자들이 남긴 여자들 중 "품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은" 모두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버렸다(최소 수십 명은 되었을 것이다.). 소치겔 납치사건과 관련된 나머지 생존자들은 모두 벨구테이의 가내 노예로 전락했다(나중에 노예제 폐지론자인 테무진에 의해 모두 해방된다. 하지만 당분간은 지옥같은 생활을 했을 것이다.).
연합부대는 오르콘과 셀렝게, 두 강 사이에 있는 탈콘 삼각지에서 전투의 최종 정리를 마쳤다. 생존자를 확인하고, 논공행상을 하고, 약탈품을 분배하는 등의 일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기어이 탈주에 성공한 톡토아 베키와 다이르 오손은 피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이렇게 테무진의 생애 첫 전투가 끝났다.
(9)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
(전편에 이어) 아내를 되찾은 테무진. 가족의 은인 코아그친은 보르테와 함께 구해냈지만, 벨구테이의 생모 소치겔은 잃었다. 어쨌든, 모두 끝났다. 테무진의 태도는 어머니의 죽음을 학살로 갚은 벨구테이와는 달랐다. 물론 보르테가 죽었다면 그도 어떤 행동을 했을지 알 수 없지만...
테무진은 이후 평생에 걸쳐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일관된 노선이 있었다. 테무진에겐 신기할 정도로 '불필요한 폭력'이나 '복수만을 위한 복수'를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남보다 훨씬 고통을 겪고 살아온 사람은 (자기보다 덜 불행했던)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불행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목적없는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테무진은 후자였다.
지난 글들 중에서 테무진은 별다른 재능이나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자기가 경험한 것을 절대 잃지 않는 습관을 가졌다고 이야기했었다. 그가 가진 장점은 단순하고 소박했다. 본 시리즈를 읽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테무진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타인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알았다.
테무진은 자무카와 토그릴에게 훗날 두고두고 후회할 말을 한다.
"칸 아버지(토그릴)와 자무카 형제, 그리고 하늘과 땅이 도와주신 덕분에 저는 원수를 갚았습니다. 메르키트 사람들의 게르를 텅 비워놓았고, 그들의 가슴도 텅 비워놓았습니다. 많은 적들을 죽였습니다. 살아남아 도망간 메르키트 사람들 모두가 친척과 가족이 죽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 합시다."
테무진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연합부대는 살육을 멈췄다.
메르키트 3개 씨족을 격파하고 약탈한 경로를 거슬러 올라갈 때, 테무진은 부모 잃은 메르키트족 꼬마 남자아이 하나를 발견했다. 5살이었고, 아이의 이름은 '쿠추'였다. 아마 부모는 죽거나 도망갔을 것이다. 아이는 담비모피로 만든 모자, 사슴 종아리 가죽으로 만든 신발(부드러워서 착용감이 그만이라고 한다.) 등 최고급 옷을 걸치고 있었다. 있는 집 자식이란 얘기다. 아마 정신없이 울고 있었으리라.
테무진은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단지 불쌍했던 걸까? 아니면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을까? 아버지 없지 자란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머니인 헐룬에게 아이를 데려가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헐룬은 아들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아마 헐룬도 칼과 활을 무장한 채 아들들과 함께 출정했을 것이다(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후편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벨구테이는 자신이 죽인 자들의 가족을 노예로 삼았지만, 테무진은 반대로 고아 소년을 형제로 만들었다. 벨구테이를 흉보기도 참 뭐한 것이, 그는 당시 초원에서 상식적인 행동을 했을 뿐이다. 이건 테무진이 특이한 거다. 여하튼 앞으로도 테무진은 이런 행동을 많이 하는 탓에, 헐룬에게는 '양자'가 꽤 생긴다. 이런 '입양'은 앞으로 테무진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상징을 지니는 행위로 발전한다.
2
테무진은 전투 중에는 보르테와 재재회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 생각한 나머지 어서 군대를 물리(고 집에 다들 돌아가)자는 주장까지 했다. 하지만 상황이 정리된 후에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약탈전에 성공한 4만명의 연합부대는 탈콘 삼각지에서 해산했다. 토그릴과 자카 감보는 2만명의 커레이트 전사들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시적으로 모집된 이런저런 부족 및 씨족집단들도 각자 자기들 몫을 챙겨 갈 길을 떠났다. 이번 전쟁 건과 상관 없이 자무카를 따르는 추종집단, 그리고 테무진이 남았다.
테무진은 일생일대의 기로에 섰다. 그는 이미 보호막 없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전사 무리의 먹잇감이 되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두 번(타이치우드족 친척들에게 한 번, 메르키트족에게 한 번)이나 겪었다.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보르지긴-키야트 혈족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게 과연 현명한 일인가? 메르키트족에게 당한 것은 아버지가 저질러 놓은 일 때문이었다. 예수게이는 타타르족과도 철천지 원수였다. 동쪽초원의 절대강자 타타르족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테무진 가족은 그대로 절멸한다. 정주문명의 사람들이 아니다. 언제나 옮겨다니는 삶을 사는 유목민들이다. "만나면 죽는다." - 당시 초원이 아무리 혼란기였다고 하지만, 이건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테무진은 복수에서 복수로, 재복수에서 재복수로 이어지는 끔찍한 순환고리 안에 들어와버렸다. 메르키트족이 어떤 꼴을 당했는가. 살아남은 톡토아 베키와 다이르 오손이 이를 갈고 있었다. 초원에 그렇게나 많은 피를 뿌려놓고 발 뻗고 잘 생각을 할 순 없는 거다.
테무진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테무진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는 자무카의 무리에 합류하기로 했다. 목동이 아닌 전사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침 테무진에게는 메르키트 침공을 위해 모집된 소규모의 전사들이 있었다. 이 미니 군대를 해산시키지 않고 자무카 무리에 합류하면, 자신의 직속 부하가 될 터였다. 좋은 기회였고, 이 기회를 놓치면 너무 위험했다.
한편 테무진보다 속이 훨씬 편했던 토그릴과 자카 감보는, 일부러 부르칸 칼둔의 북쪽 숲을 훍고 지나가면서 신나게 사냥까지 실컷 하고는 부족의 야영지가 있는 툴라 강변의 숲으로 돌아갔다.
3
본 시리즈를 쓰기 위해 자무카에 대해 조사할 때마다 테스토스테론의 생리적 효과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상황에 따라 맺고 끊음이 확실한 수컷이었다. 자무카는 전쟁의 총사령관이 되었을 때 테무진은 물론이고 초원의 어르신들인 토그릴과 자카 감보에게도 권위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전쟁을 완수하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옛날 함께 우정을 맹세했던 평등한 안다로 되돌아갔다.
자무카는 테무진의 작은 그룹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테무진이 자신의 부하가 아닌 대등한 동료가 되기를 원했다. 그와 테무진은 무리를 이끌고 '코르코낙' 숲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세 번째로 안다 의식을 맺는다. 두 사람은 나무가 우거진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비밀스런 의식을 거행했다. 어떤 의식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두 안다가 맞교환한 선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테무진은 등줄기와 꼬리가 검은 말을 자무카에게 주었다. 자무카의 '검은 색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거꾸로 자무카는 테무진에게 백마를 선물로 주었다.
두 안다는 허리띠도 맞바꾸었다. 두사람의 것 모두 황금 허리띠라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테무진에게 이런 귀한 물건이 있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메르키트족에게서 약탈한 물건이다.
아무리 잘 사는 메르키트라고 해도 초원 부족이다. 중국이나 고려, 이슬람권의 눈으론 다 똑같이 거지들이었다. 따라서 순금은 아니었을 것이다. 도금이거나 금동, 혹은 일부 부분만 황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아니면 순도 높은 구리를 제련해 만든 허리띠였거나. 어찌 됐든 테무진이 그때껏 자기 힘으로 얻은 물건 중에는 가장 귀한 것이었다.
'도구의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도구를 일컬어 '손의 확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민속학적으로 허리띠는 남근의 확장이다(테무진은 부르칸 칼둔에 기도할 때 자신의 토템에 존경심을 보이기 위해 허리띠, 즉 남자의 힘의 상징을 벗었었다.). 허리띠를 교환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갖고 있는 수컷의 기운, 즉 힘과 폭력충동, 용맹함과 지도력, 인내력 등을 흡수하겠다는 것. 이는 상대방의 퀄리티를 결코 의심하지 않겠다는 의식이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 서로 의지하며 서로의 생명을 보호하자."
두 사람은 서로의 우정을 다시 한 번 맹세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며 살자."
안다임을 재확인한 테무진과 자무카는 어두운 숲에서 나와 잔치를 열었다. 자무카-테무진 무리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하는 잔치였을 건 뭐 분명하고. 이 잔치는 자무카가, <이제는 테무진을 나와 똑같이 따르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자리였다. 테무진에게 엄청난 기회를 준 것이다.
부하와 식솔, 가축들을 데리고 이동할 때 두 사람은 무리의 선두에 나란히 섰다. 테무진은 2인자가 아니었다. 사실상 2인자였지만, 공식적으로는 공동 1인자였다. 거기에 더해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게르를 쳐 놓고 두 사람이 함께 생활했다. 함께 자는 것은 물론이요,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음 이건 뭔가... 야오이물인가...
이거슨 브로크백 마운틴인가...
그럴리 없겠지만, 두 사람의 성적 취향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게르는 기본적으로 단칸방이다. 어차피 식구들끼리 한이불 덮고 잔다. 두 사람만의 독립된 게르에서 한이불을 덮는다는 운명을 건 투쟁의 동반자가 되었다는 상징정인 행동이다.
초원에는 '쿠릴타이'라는 것이 있다. 쿠릴타이는 나중에 '대회의(大會義)'라는 뜻으로 발전하지만, 원래는 크고작은 회의 모두를 뜻하는 말이다. 보통 쿠릴타이는 씨족장이 되었든 군사지도자가 되었든 아니면 그냥 평범한 혈족의 가장이 되었든, 보스의 게르에서 열린다. 그런데 쿠릴타이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술이다.
술 한잔 하는데 싸울 일이 뭐가 있겠는가? 쿠릴타이 자체가 일종의 '파티'이다. 따라서 쿠릴타이는 명목상으로는 회의지만, 참석자 모두가 의제에 찬성하는 게 자연스러운 관습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쿠릴타이는 일종의 '투표'의 성격을 띠게 된다. 참석자들이 과반수, 혹은 정족수를 채우느냐가 쿠릴타이의 관건이다.
다시 말해 영향력이 있는 사람, 즉 귀족이나 최소한 혈족의 장(長) 등 - 이 봉건적인 세계에서 '선거인단'에 들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나 쿠릴타이에 참석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교감하는 배타적 게르... 이는 곧 '상시적 쿠릴타이'와 다름 아니다.
역사의 흐름은 소위 말하는 '절대정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걸까, 아니면 개인들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우연에 따라 결정되는 걸까? 다시 말하면 한 문화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되어서 넘어가는 걸까, 아니면 '마침 그 사람'이 있었기에 전혀 다른 성격의 문화권으로 달라지는 걸까...
자무카는 부족과 씨족들이 만들어내는 전통적인 논리, 예를 들면 '정상적인' 쿠릴타이와 같은 관습적인 논법을 탈피하려고 했다. 그건 테무진도 마찬가지였다. 역사가들마다 자무카와 테무진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이는 자무카가 전통귀족들의 이익을 대변했다고 하고, 테무진이 평민층을 대표하는 혁명가였다고 한다. 어떤 이는 자무카야말로 혁명가였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두 사람 모두 전통을 배신했다고 믿는다. 자무카와 테무진 모두 혁명적이었으되, 다만 혁명의 성격은 달랐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천천히 하도록 하자. 어쨌든 자무카와 테무진은 원시적인 초원에서 거의 최초로 '과두정치'를 실험했다. 스무살 가량의 두 젊은이가 이끄는 사냥-용병-전투 집단. '쌍두(雙頭)정치' 정도로 표현하면 될 듯하다.
자무카의 집단엔 나이 많은 몽골 귀족들이 많았다(물론 자무카가 자신의 능력으로 규합한 전사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을 모두 제치고 자신의 안다와 무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거다. 초원의 관습은 스무 살의 젊은이가 혼자 독단적으로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자무카라도 말이다. 그래서 자무카는, 자신의 논리대로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테무진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4
한편 테무진은 테무진대로 해결해야 할 가정사(事)가 있었다. 바로 보르테의 임신. 보르테가 메르키트족에 잡혀있던 시간이 얼만큼이었는지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생물로 태어나는 이상 태아는 자궁 속에서, 정상적이라면 10개월 간 자라다 태어난다.
그런데 보르테의 임신-출산 주기가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테무진의 자식이라고 못밖기에는 너무 빠르게 만삭이 되었다. 메르키트족에 납치되기 전에 임신했다면 보다 빨리 임신을 하는 게 자연스럽고... 테무진이 구출한 후에 임신했다면 배가 불러오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렇게 테무진의 첫째아들이 태어났다.
옛 역사서들은 주치가 테무진의 자식인지, 칠게르의 자식인지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식으로, 마치 미스테리인것마냥 뭉뚱그려놓았다. 그러나 몽골역사에서 이후 주치의 핏줄을 놓고 벌어지는 엄청난 논쟁들을 보면, 아무래도 당시 사람들은 주치가 메르키트족의 핏줄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게다가 테무진은 첫째아들의 이름을 '주치'라고 지었다. 주치는 '손님'이란 뜻이다.
훗날 테무진의 둘째아들 차가타이는 주치가 메르키트족의 자식임을 확신하는 듯한 언행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치가 보르테를 겁탈한 칠게르의 아들이라고 확신해도 될 듯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테무진은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다른 행동과 사고를 한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존중했을 뿐만 아니라, 주치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키웠다. 또한 훗날 그는 아무런 고민 없이 자신이 세운 제국을 주치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약탈혼과 재혼, 중혼이 일반화된 초원이라고 해도 핏줄은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나중에 이 문제 때문에 형제들끼리 반목이 생기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주치의 핏줄을 가장 개의치 않은 것은 바로 테무진 본인이다.
테무진은 공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보르테와 소치겔과 코아그친을 잃었을 때, 가족도 아닌 하인인 코아그친에게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죄책감을 느낄 줄 알았다. 마찬가지다. 보르테가 납치당하고 겁탈당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것은 보르테의 잘못이 아니었다. 보르테의 고통은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다. 오히려 자기가 아내한테 미안하면 미안했지...
테무진의 일생을 각색한 현대의 이야기들을 보면, 테무진의 '포용력', '큰 그릇'을 설명하기 위해 보르테의 임신을 들먹이는 경우가 많다. 적장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 고민하는 테무진. 그러다가 마침내 보르테를 "용서"하고 주치를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관대하고도 관대한 한 남자.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테무진은 화가 나기는커녕 보르테와 주치에 대해서 그 어떤 악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테무진은 자신의 자식들 모두가 '보르테의 뜨거운 자궁에서 나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아내, 혹은 여자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갓난아기 주치가 보르테의 젖을 빨며 옹알댈 동안, 테무진과 자무카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다.
5
테무진의 신분은 가난한 초보 가장에서 무력집단의 공동수장으로 급상승했다. 가족들의 삶도 나아졌다. 이전에는 삶의 많은 부분을 숲과 물가에 의존해야 했다. 가축 없이 식량과 물자, 내다 팔 물건을 사냥하고 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초원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자무카 무리의 가축에 더해, 메르키트족에게서 약탈한 가축이 제공하는 고기와 유제품을 먹고, 의복과 물자를 모자라지 않게 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테무진은 이 모든 걸 자무카에게서 공짜로 얻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무리의 안녕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곧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테무진 자신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었을 것이다.
자무카와 테무진의 생존법은 생전의 예수게이의 방법 그대로였다. 예수게이의 집단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결합된 운명공동체이자 이익집단이었다. 전통적인 초원의 혈통집단은 당연한 듯이 결속되어 있었다. 자무카와 테무진, 두 배경없는 젊은이는 몽골 귀족들은 물론 부족 외의 사람들까지 규합해 사냥, 전쟁, 약탈, 용병사업 등을 벌이면서 초원의 전통을 해체하고 있었다.
이런 성격의 집단은 혈연관계가 아닌 보스의 능력에 의해서 유지된다. 그런데 보스가 두 명이다. 자무카의 능력은 이미 검증된 상태. 여기에 테무진의 묘한 인간적 매력이 더해이지면서 자무카 - 테무진 연합단은 곧 <자무카 파>와 <테무진 파>로 분열하게 된다.
자무카는 쌍두정치의 파트너로 테무진을 필요로 했다. 그의 입장에서 테무진은 자신의 의지와 결정을 관철하는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을 해주어야 했다. 반면 테무진은 자무카의 말만 듣지는 않았다. 테무진은 일반적인 위인전, 영웅서사시의 기준으로 보면 무척이나 소심한 남자였다. 하지만 소심함과 겸손함이 만나면 특별한 장점으로 발전한다.
테무진은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낫다고 믿지 않았다. 역사는 그의 '어록'을 몇 개 기록해 놓았다. 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비로소 따를 가치가 있는 말로 믿어도 된다."
역사 속 위인들 중에 아마 테무진만큼 남의 말을 잘 듣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만 생각해 낼 수 있는 위대한 발상을 툭 꺼내놓는 천재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재능의 천재가 아니라 '태도의 천재'였다. 그는 어머니, 아내, (관습대로라면) 자신의 노예, 동생들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한마디로 고집이 없단 얘기. 테무진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장 흔하게 한 행동은 바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자무카는 테무진을 독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테무진은 어머니 헐룬, 납치당해서 남의 자식이나 임신해온 아내 보르테, 노예계급에 속한 젤메, 어디서 굴러들어온 건지 모를 어느 부잣집 외아들 보르추, 자신의 동생들, 그리고 필시 다른 잡다한 부하들의 의견을 구하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조직 내에서 테무진의 지지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테무진이 자무카의 '영혼의 쌍둥이'였다면 상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마당엔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자무카는 테무진에게 준 공동 1인자 지위를 박탈해야겠다고(아니면, 테무진을 압박해 그와 이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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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이 자무카 무리에 합류한 지 1년 하고도 반년이 지난 어느날. 그날도 두 사람은 선두에 나란히 서서 무리의 행렬을 이끌고 있었다. 자무카가 뜬금없이 테무진에게 말을 던진다.
"테무진 형제, 말떼를 산에 바짝 붙여 야영하자. 말치는 사람들은 거기서 오두막을 쳐야겠지? 양떼는 시냇가에 풀어놓자. 양치기들은 골짜기에서 야영하면 되겠군."
무리를 둘로 나누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말과 양은 같은 가축이라도 계급이 다르다. 말은 전사의 친구이며, 정밀한 훈련을 거쳐 정성껏 키워야 한다. 초원의 절대적인 이동수단이며, 사람과 2인 1조를 이루는 동물이다. 반면 양은 식량이자 물자다.
말치기는 양치기보다 지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양치기는 평민 이하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테무진이 타이치우드 족에 붙잡혀 있던 시절, 그를 도와준 소르칸 시라는 전사가 아닌 양치기였다. 소르칸 시라가 속한 '솔두스' 족의 계급이 낮았음을 보여준다.
말치기+말떼, 양치기+양떼의 야영지를 나누자는 것은 곧 우리 두 사람이 두 그룹을 나눠서 이끌자는 뜻. 당연히 말치기와 말은 자무카 본인이 맡겠다는 거다. 이건 테무진을 공동 보스의 자리에서 2진 그룹의 리더, 즉 공식적인 2인자로 끌어내리겠다는 뜻. 또한 말과 전사에서 비롯되는 군사력, 즉 권력을 독점하겠다는 이야기다.
테무진 때문에 세를 불리긴 했지만, 원래 자무카의 조직이다. 자무카의 제안(?)을 들은 테무진은 당황했다.
'아 씨바 이거 어떡하지... 어머니랑 얘기해봐야겠다.'
테무진은 일부러 뒤쳐저서는, 뒤따라 오고 있던 수레에 다가갔다. 헐룬과 보르테가 타고 있던 수레였다.
"저기 어머니, 자무카가 이러저러한 말을 하던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생각은 어떻죠...?"
헐룬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보르테가 시어머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본래 남자가 무시당하거나 입지가 위험해지면, 본인보다 아내가 더 잘 감지하는 법이다. 그리고 남편 무시하는 인간들에게 아내가 더 분노한다. 보르테는 자기 남편이 노력만큼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이미 화가 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런데도 이 남자가 화를 내기는커녕 엄마 나 어떡할까요, 하는 모습을 보자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역사서는 테무진의 위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보르테의 언행을 꽤나 순화시켰지만, 실제로는 이 정도였을 것이다.
“자무카씨가 하는 말은 당신더러 자기 부하노릇 하덩가, 그렇지 않으면 썩 나가라는 뜻이야. 당신이 뭐가 부족해? 그딴 인간하고 같이 살 필요 없어. 독립해!”
남자는 여자보다 무딘 구석이 있어서, ‘보다 못한’ 아내에 의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깨닫는 경우가 있다. 테무진은 아내가 역정을 내자마자 독립을 결정했다. 결행 일시는 바로 그날 밤이었다.
밤. 테무진은 일군의 무리를 이끌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빠르게 야영지를 이탈했다. 행여나 자무카가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추격한다면 테무진 가족과 그의 수하들은 절멸했을 것이다. 테무진과 형제들의 가족, 젤메와 보르추, 다른 소수의 부하들과 그들의 가족... 거기에 더해 그들에게 딸려 있던 양, 말, 염소, 소, 야크, 낙타가 모두 이동하는 것이다. 자무카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자무카는 테무진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비록 갈라설지라도, 우정은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테무진이 자신에게 별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자무카의 성격이라면, 테무진을 선택한 사람들은 어차피 자신의 충실한 부하가 될 수 없으니 그냥 가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리라.
야영지 전체에 테무진이 이탈했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게르마다 각자 자신의 운명을 누구에게 걸 지 밤을 세워가며 고민하고, 의논했을 게 분명하다.
자무카측이나 테무진측 모두 팽팽한 긴장상태였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뜨악한 긴장상황이 추가된다. 테무진 일행은 야간이동중에 어떤 집단의 야영지를 만나게 된다... 바로 원수 타이치우드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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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놀란 쪽은 타이치우드였다.
"웬 사람들이 이 야밤에 우리 야영지에 바짝 붙어오는거지...?"
"저거... 우리가 어릴 때 붙들어다가 졸라 괴롭힌 테무진인데요."
"흐미..."
타이치우드족은 혼비백산했다. 테무진 무리는 비상시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완전무장 상태였을 것이다. 게다가 타이치우드족의 행동을 보면, 테무진의 군사력이 타이치우드족을 압도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타이치우드족은 거대씨족이었고, 어엿한 부족에 준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부족의 지도자 타르쿠타이는 몽골족의 칸이 되길 원했었고... 그런데 자무카의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소수'의 머릿수에 압도되었다는 것. 이건 자무카가 불과 스무살 즈음까지 모은 세력이 그만큼 강성했음을 뜻한다.
"아니 저새끼 자무카랑 같이 놀지 않았어? 왜 따로 떨어져서 우리한테 오는 거야! 복수하려고 출정한 건가?"
"그게, 자무카랑 사이가 벌어져서 독립하는 거랍니다."
"씨바, 저것들이 우리를 공격하며 어떡해. 그럼 우린 빨리 자무카한테로 튄다!"
사실 테무진은 타이치우드족과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원한은 원한이고, 지금은 그저 빨리 지나쳐가야만 했을 뿐. 하지만 타르구타이가 테무진의 상황을 어찌 알겠는가? 타이치우드족은 황급히 짐을 싸들고 자무카의 야영지로 도망, 씨족 전체가 자무카의 부하가 된다. 지은 죄가 있으니 공포도 더했을 터. 급하게 이동하느라 목영지에 애도 하나 잃어버리고 갔다.
졸지에 고아가 된 아이의 이름은 '쿠쿠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위험한 밤이었지만, 테무진은 쿠쿠추를 내버려두지 않고 어머니 헐룬에게 데려가 가족으로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테무진은 하룻밤만에 독립에 성공한다. 그러나 성공이래봐야, 당시 기준으로는 정체성이 모호한 신생집단일 뿐. 그때 테무진의 나이 19세. 그는 새로 결성된 조직을 이끌고 초원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날이 밝자 기적이 일어났다.
(10) 테무진 라이징
1
(전편에 이어)날이 밝았다. 그러자 저 멀리서 일군의 사람들이 말을 달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혹시 자무카가 일탈을 응징하기 위해 보낸 돌격대일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테무진에게 귀순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게르마다, 밤새 잠 못 이루는 격론이 벌어졌을 터. 테무진을 지지하기로 한 사람들이 짐을 싸들고, 가축을 몰고 테무진 무리가 이동하면서 남긴 말발자욱(더 정확히 표현하면 풀이 누운 자국)을 따라온 것이다.
가장 먼저 온 사람들은 잘라이르 씨족의 '토고라온' 삼형제였다(이름에 모두 토고라온이라는 별칭이 들어간다.). 잘라이르 씨족은 드릴루킨이었다. 잘라이르는 원래 독립 부족으로써, 옛날에는 몽골족과 피튀기는 혈전을 벌인 사이다. 이들은 몽골족의 귀족을 단 한 명만 남겨둘 정도로 몽골족을 처절하게 약탈한 적도 있다.
이후 세력을 불리는 데 간신히 성공한 몽골족은 잘라이르 부족을 드디어 물리친 후, 다시는 반항하지 못하도록 각 씨족에 흩트려놓았다. 그렇게 패배한 노예로써 몽골족에 흡수, 드릴루킨이 된 지 백년 가량이 흘렀다. 이들의 지위는 드릴루킨 중에서도 가장 낮았다. 전사이자 사냥꾼로서 활을 쏘는 삶을 누린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토고라온 삼형제는 테무진이 노예 출신의 젤메를 2인자로 대우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역시 드릴루킨인 바야우트 족도 토고라온 삼형제를 따라 테무진에게 왔다.
몽골족 내의 드릴루킨만 테무진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몽골족은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 자무카의 무리에 소속되어 있던 '타르쿠트'족을 이끌던 오형제가 부하들과 자기네 소유의 가축을 이끌고 테무진에게 왔다. 자무카를 따르던 다른 외부 부족들 일부(혹은 상당수)가 테무진의 진영으로 속속 넘어왔다.
자무카 입장에서도, 이탈자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들을 반란자로 간주하고 야영지 내에서 '내전'을 벌인다... 그때 만약 테무진이 쳐들어와 반란을 지원한다면? 자무카가 공들여 성취한 권력과 부, 지위는 순식간에 붕괴할 수 있었다.
타이치우드가 데리고 있던 하층민 '솔두스 씨족'도 테무진을 지지했다. 이들은 지난밤 테무진의 복수를 피하려는 타이치우드를 따라 자무카의 진영으로 이동했었다. 테무진을 도와주었던 '소르칸 시라'도 솔두스족이었다. 솔두스족 일부가 타르구타이의 감시를 피해 탈출, 테무진에게 왔다. 테무진은 자신에게 온 솔두스족 사람들 중에 소르칸 시라 가족이 왔나 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소르칸 시라 가족을,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밤에는 꿈속에서, 낮에는 가슴에 그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테무진은 그립고 고마운 소르칸 시라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하층민뿐만 아니라 몽골족의 니르운 씨족도 일부 떨어져나왔다. 분열된 몽골족, 그 가난한 부족에서 조상의 혈통때문에 명목상으로만 니르운이란 것... 어차피 평민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자무카 편에 있던, 테무진 편에 있던 상황이 같다. 니르운들 일부가 테무진을 선택했다는 점이야말로 테무진이 약탈과 사냥에서 많은 이들의 신뢰를 얻었음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점진적이지 않다. 자고 나니 성공해있더라는 말이 있다. 테무진이 딱 그 경우다. 9살 때부터 10년간, 그는 갖은 고생을 다하며 연명하고, 적들로부터 목숨을 부지했다. 그런데 하룻밤만에 수많은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보스가 되어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
이제 갓 거칠고 비열한 초원에서 생존해나가야 할 신생집단이 생겼다. 집단을 불리기 위해 테무진의 친구들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보르추는 사촌동생인 우굴렌을 테무진 조직에 불러들였다. 원래 보르추는 초원의 재벌 '나코' 아저씨의 외아들. 나코가 소유한 가축은 과장 좀 섞어서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다고 한다. 이 재산의 유일한 상속자인 보르추는 우굴렌 뿐만 아니라 필시 신생집단을 먹여살릴 가축떼도 상당히 몰고 왔을 것이다.
젤메는 젤메대로, 고향인 북쪽 숲 속으로 들어가서 노예신분인 자신의 두 동생을 꼬셨다.
"야, 테무진 형님은 출신계급같은 거 안 본다. 나 지금 2인자야."
대장장이 노릇을 하며 쇠를 두드리던 두 아우는 풀무를 집어던지고 테무진에 합류했다. 한 아우의 이름은 '차오르칸'. 나머지 하나가 '수부테이'였다. 이 이름 꼭 기억해두자. 밑줄 쫙.
수부테이는 전쟁의 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테무진이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군주라면, 수부테이는 지구역사상 가장 성공한 장군이다. 그가 남긴 기록은 인간의 상상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그는 32개(오타 아니다)의 나라를 정복하거나 멸망시켰으며, 역사에 정확히 기록된 것만 61번(역시 오타 아니다.)의 회전에서 승리했다.
회전(會戰, pitched battle)이란 수컷 고딩 두 마리가 옥상에 올라가 제대로 각잡고 싸우듯이, 두 군대가 적당한 장소에 결집해 '모 아니면 도'식의 총력대결을 펼치는 전투를 말한다. 보통 회전은 그 특성상 국운을 건 모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뛰어난 장수도 일생동안 5번 이상의 회전을 경험하기 힘들다. 그런데 61번이라니...
중국 화가가 표현한 수부테이
수부테이는 평생동안 그가 만난 금나라, 송나라, 서하, 유목부족 및 국가들, 십 수 개의 이슬람 국가들, 러시아,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 그루지야, 아르메니아의 군대를 격파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테무진은 그토록 넓은 땅을 정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테무진과 수부테이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흐름이라는 게 있다. 테무진은 상승세였다. 척박한 초원에 사는 유목민들은 상시 생존과 번영의 문제에 예민한 촉수를 드리우고 있었다. 자무카-테무진 조직에 속해있지 않았던 주변의 독립 부족/씨족들도 테무진에게 모여들었다.
일단 근처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몽골의 니르운 씨족, 드릴루킨 씨족들이 테무진에 합류한 상황. 거기에 헐룬의 친정인 올쿠누트족의 일부 씨족이 부족에서 떨어져나와 테무진에게 귀순했다. 이들은 아마 헐룬을 보고 모였을 게 분명하다. 바아린 씨족도 왔는데, 바아린에는 '코르치'라는 재미있는 양반이 있었다. 코르치는 테무진에게 충성맹세를 하면서 손발이 오글거리는 아부를 작렬시킨다.
"우리는 원래 자무카의 자다란 씨족과 더 가까운 친척관계인 거, 테무진 나으리도 아시잖아요? 그러니 사실 제가 자무카님에게 갔으면 갔지, 테무진님에게 온 게 좀 이상하긴 하죠... 그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신령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글쎄 갑자기 눈앞에 환상이 펼쳐지더니... 웬 암소가 와서 자무카를 들이받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소뿔 하나가 부러졌어요. 소는 화가 났는지 계속 자무카를 갈구더군요. 내 뿔 내놔 쉽새야...
그런데 수소 하나가 테무진 나으리께 오더니, 우렁차게 소리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늘과 땅은 힘을 합쳐 테무진에게 큰 나라를 줄 지어다! 테무진이 나라의 주인이 될 지어다~ 허허... 어떤가요?"
"그야, 그 소가 예언한대로만 된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자 자, 만약에, 만약에 잘 나가는 대왕님이 되신다면 어떻게 절 행복하게 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이런 멋진 예언을 했는데 말이죠."
"뭐... 그럼 1만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으로 만들어 주겠소."
"저기 나으리, 저는 대박이 나는 예언을 했다니까요, 예언을. 1만명을 지휘하는 장군이 되어서 뭐가 그렇게 즐겁겠습니까? 일이나 실컷 하지... 좀 약소하지 않나요? 인생이 즐거우려면 뭔가 확실히 화끈한게 있어야죠."
"아니... 대체 원하는 게 뭔데?"
"남자의 인생에 낙이라는 게 뭐있겠습니까? 여자지요! 물론 아름다운 여자 말입니다. 만약 대왕님이 되시면요, 제가 30명의 미녀와 결혼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는 테무진님이 지도자 생활을 갓 시작하는 이때에 나으리에게 인생을 베팅한 겁니다. 그러니까 일이 잘 되서 터지면, 당첨금도 세야지요. 아, 물론 병사 1만을 지휘하는 장군, 그 자리도 따로 주시는 거 잊지 마시구요.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미쑴미다!"
"지는유, 인생의 목표가 확실해유..."
- 영화 <방자전> 中
테무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 순결할 지경의 솔직함에 기가 막히기도 했을 테지만, 테무진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그 자신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르치는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었지만 이후 테무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했다.
심지어 자무카의 자다란 씨족 일부도 테무진에게 넘어왔다. 테무진의 가장 가까운 친족집단인 타이치우드가 자무카에 귀순한 것과 함께 생각해보면, 초원의 지각변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당시엔 지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지하 깊은 곳의 멘틀운동이었다.
반대급부라는 게 있다. 테무진의 급작스럽게 세력을 불렸지만, 테무진을 지지하지 않는 몽골씨족과 다른 군소 씨족들은 이미 타이치우드라는 거대씨족을 삼켜버린 자무카에게 달려갔다. <테무진+자무카>의 세력은 둘로 쪼개저버렸지만, 두 사람 각자의 추종자들은 더 많아졌다.
3
몽골에는 '쿠리엔'이란 말이 있다. 쿠리엔은 '고리'를 뜻하는 말인데, 보통 초원의 전통적인 '진영', '대형'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였다.
초원에서 어떤 부족이 야영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지도자-칸(부족의 보호자이자 왕), 세첸(현자. 이장님, 어르신), 베키(기득권을 가진 지배층 귀족), 바하두르(용사. 즉 사냥과 약탈의 실력자)-의 게르가 무리의 한 가운데에 있다. 그 주변에는 당연히 지도자의 가족과 친척들의 게르가 있다. 그 주변은 더 먼 친척들, 즉 귀족들 - 귀족들의 가족, 그 가족들의 구성원... 여기에 속한 남자들이 엘리트 전사집단을 이룬다.
이 주변을 다시 평민층이 감싸고 있고, 이 계급에서부터 목동이 직업인 사람들이 배출된다. 하인들은 귀족들의 게르에서 잡일을 한다. 테무진의 2인자(보르추가 2인자였을 수도 있지만)인 젤메의 집안 정도 되는 노예층은 아예 숲 속에 짱박혀서 가족을 노예로 상납하거나, 대장장이나 잡일꾼 정도의 일을 한다.
쿠리엔 주변에는 가축이 풀을 뜯는다. 경비견은 쿠리엔 내부나 경계선에 있다. 몽골 쉽독(목양견. '바하르'라고 한다.)은 초원 벌판에서 양떼를 몰고, 늑대로부터 가축을 지킨다. 염소는 양과 같이 이동한다. 기타 소와 야크, 낙타가 있다. 가축 중 귀족에 속하는 말은 가장 안쪽, 즉 쿠리엔 내부나 근처에 있다. 말치기는 평민 이상이다. 이중 시라가말, 즉 승용마나 군용마로 가장 탁월한 거세한 수말 떼를 관리하는 것은 소수의 귀족만 가능한 일이다. 군사력을 소유하는 것은 곧 권력이다. 몽골에서 사람과 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시라가말도 어연핫 '군사'인 것이다.
이렇게 지도자를 중심으로 혈통관계가 점점 옅어지고, 동시에 계급이 점점 낮아지며 퍼져나가는 구조인 것이다.
두 개의 쿠리엔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각자 확고한 중심을 가진 두 쿠리엔이 하나로 합쳐져 적당히 섞인다는 게 얼마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전세계에서 '씨족연합부족'이나 '부족연합국가'가 발생해온 과정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연합'이란 넓은 의미에서 바로 쿠리엔들의 연합일 수밖에 없다.
자무카가 해치운 메르키트족도 곧 세 개의 대형 쿠리엔으로 이루어진 3개 씨족 연합부족이었다. 유목민인 유대인들도 12개의 지파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을 먹었던 청나라의 정예군인 '8기군(八旗軍 : 각자 스스로를 상징하는 깃발을 보유한 8개의 군대)'도 원래는 만주족(여진족) 8개 지파의 전사집단을 뜻한다. 이 지파의 원시적 형태를 우리는 '쿠리엔의 중심과 그 주변'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하다.
쿠리엔의 중심을 '오르도'라고 부른다. 오르도는 지도자가 사는 중심 게르와 그 가족이 사는 지휘통제실이며, 권력의 중심이다. 물론 규모가 큰 쿠리엔이라면 지도자의 가까운 친족들도 오르도에 포함된다.
칸의 후손이자 잘 나가는 아버지의 아들, 고아이자 노예이자 포로생활을 모두 경험한 테무진에게 신분과 계급은 무의미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이란 게, 그저 운때가 좋으면 귀족 소리를 듣고 운수가 사나우면 노예취급을 받을 뿐 아닌가. 테무진은 오직 능력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대우했다. 보르추는 테무진과 혈통상 아무런 상관이 없고, 젤메는 노예인데도 테무진 오르도의 당당한 일원이었다.
테무진을 중심으로 구성된 쿠리엔은, 모든 구성원에게 오르도로 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 이는 단지 성공의 기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시적 형태의 거친 민주주의, 소통과도 연관이 있다. 테무진은 신분과 혈통을 따지지 않는 자유로운 회의를 중시했으며, 말단 병사의 의견까지도 전투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테무진은 지배자 몇 사람의 결정만으로 다수의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을 싫어했다. 이건 아이큐가 아니라 태도다. 즉 책임감이다. 어떤 책임감이냐 하면, 바로 의리다. 의리하면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여기서 의리란 일종의 '계약관계 준수'를 뜻한다. 서로 지켜야 할 것, 지키기로 한 것을 지키는 것 말이다.
보통 <친구사이의 의리>라고 하면 성문화되거나 구두(口頭)로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적/무의식적 계약을 뜻한다. 하지만 테무진의 조직은 함께 어떻게든 먹고 살아 보자고 모인 집단이다. 내게 충성을 바쳤으면, 나는 그들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게 의리인 거다.
테무진은 불행을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막상 고생을 하게 되면 그때마다 뭔가를 배웠다. 테무진은 아직 10대의 나이였음에도 <자신의 욕망>과 <집단 구성원의 입장>을 분리해서 생각할 줄 알았다. 이건 매우 조숙한 태도다.
테무진은 성인남자 1인분의 노동력이 너무나 간절했던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귀한 인력을 목동으로만 쓰는 건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의리의 문제도 있다. 자신에게 운명을 건 사람들이다. 하층민의 삶을 선사하는 건 배신행위였다. 그래서 테무진 무리 내의 모든 성인남자는 기본적으로 전사가 된다. 이들은 전투에 참여할 수 있기에, 약탈에 성공하게 되면 자기 몫을 챙긴다. 무기를 상시 휴대하기 때문에 남에게 함부로 무시받을 소지도 적어진다.
테무진은 친족관계에 있는 기득권 귀족들에게는 여러번 배신당했다. 하지만 계약, 즉 의리로 맺어진 '타인'에게는 단 한 번도 배신당한 적이 없고, 그 자신도 배신한 적이 없다. 이는 역사에 기록된 영웅담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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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에 독립한 테무진은 이후 8년 동안 무리를 이끌며 세를 불리기 시작한다. 이 8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 세가지 있다.
첫째, 테무진 조직과 자무가 조직의 사이는 점점 나빠져서, 나중에는 철천지 원수가 된다. 두 무리는 서로의 가축을 계속해서 약탈했고, 그 와중에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전면전을 벌이지는 않았다. 무리의 생존이 더 급했으리라. 무리의 운명을 건 본격적인 전쟁을 하기에는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몽골족은 약했다. 어부지리라는 게 있다. 동쪽의 타타르-중앙의 커레이트-서쪽의 나이만이 테무진과 자무카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두 사람이 싸우다가는, 승자도 패자도 초원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많았다.
둘째, 테무진의 세력은 계속 성장한다.
셋째,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테무진의 세력이 성장하는 만큼 반대편에 있는 자무카의 세력도 강해진다. 테무진 조직은 <반 자무카 연대>, 자무카의 조직은 <반 테무진 연대>의 성격을 띄게 된다.
그런 와중에 몽골족에서 가장 혈통이 잘나간다는 귀족들, 즉 '뼈가 가장 흰' 사람들은 자무카와 테무진 중 과연 누구를 지지해야 할 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일군의 몽골 귀족, 아니 왕족들이 '변심'을 했다. 그 옛날 금나라 황제의 수염을 잡아당겼던 카불 칸의 증손자들인 '사차 베키'와 '타이초', '코차르 베키', 그리고 이들의 삼촌뻘인 '알탄'이 고심 끝에 자무카를 떠나 테무진에게 왔다.
지난 기사들을 충실히 읽은 성실한 독자들은, '베키'가 기득권 귀족 뒤에 붙는 별호라는 걸 알고 있을 터. 또 '알탄'은 황금이란 뜻이다. 이름만으로도 으리으리한 혈통을 알 수 있는 인간들인 셈.
아, 그리고 예수게이의 동생인 다리타이 삼촌도 왔다. 다리타이... 그는 타이치우드족이 테무진 가족을 버리고 떠날 때, 매정하게도 형님의 가족들 대신타이치우드 편에 섰었다. 이후 자무카를 따라다니다가, 조카 테무진이 잘 나가게 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찾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재회한 시동생의 얼굴을 보는 헐룬의 기분은 묘했을 것이다. 다리타이, 그는 형 예수게이를 도와 자신을 납치한 인물 중 하나였다. 신랑 칠레두와 강제로 이별하고 울고불고 있을때, 다리타이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딨지? 어이쿠, 안 보이네...? 당신이 아무리 외쳐도 이제는 듣지 못 해. 찾아도 찾을 수 없어. 다 끝났다고. 운명을 받아들이시지? 슬픈 건 알겠는데, 이제 적당히 좀 하슈."
이런 전형적인 악당의 멘트를 날리며 헐룬을 끌고왔던 것이다. 그런 주제에 형 예수게이가 죽자 남은 형수님과 조카들을 홀랑 버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잘 봐달라며 찾아온 것이다. 인간 참...
다리타이와 귀족들은 왜 자신의 수하들을 데리고 테무진을 찾아왔을까? 테무진이 자신들과 매우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 자무카 캠프에서 그들은 '오르도'에 속할 수 없었다. 자무카를 중심으로 권력구조가 재편되었으니까. 이제 자다란 씨족은 몽골에서 가장 잘 나가는 씨족이었다. 전통 귀족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리타이와 귀족들은 테무진 캠프의 오르도에 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온 것이었다. 테무진 조직의 성격과는 정 반대의 생각을 한 셈이다. 그러나 테무진은 테무진대로, 일단은 귀족들의 지지를 필요로 했다. 정치란 관습을 완전히 배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 자체는 혁신적이었지만, 조직 외부에서까지 인정을 받으려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지받아야 했다. 즉 귀족들의 지지선언이 필요했다.
테무진에게 귀순한 귀족들은 그들대로, 예전의 지위와 영향력을 되찾으려면 테무진이 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칸의 '주변'이 될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사차 베키와 코차르 베키, 알탄은 테무진을 칸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한다.
세 왕족은 테무진에게 충성선언을 한다.
"전쟁과 사냥, 약탈의 지도자가 되시오! 우리는 그대를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앞장서며, 약탈한 사람과 물건을 그대 눈앞에 갖다 바치리라."
(참고로 모든 걸 바친다는 뜻이 아니다. 칸이나 세첸 등의 지도자에게 이익의 약 10%를 바치는 게 오래된 관례였다.)
테무진은 정치적 판단이 완숙해지고 있었다. 그는 먼저 세 사람에게 돌아가면서 거꾸로 칸이 되시라고 제안한다.
"내가 칸은 무슨... 코차르 베키, 그대가 칸이 되시오."
"싫다구...? 그럼 사차 베키, 그대는?"
"아니 왜 다들 싫다고 하지? 그럼 알탄, 그대가 칸이 되시오! 아앗... 당신도 싫다고?"
테무진도, 세 귀족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세 귀족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없었다. 테무진 캠프는 테무진 개인의 능력에 의해 구축된 세력이다. 초원의 전통적인 관습으로는 귀족들의 지지가 있어야만 칸으로 선출될 수 있지만, 테무진 캠프 내에서 이들 귀족 셋은 '굴러온 돌'에 불과했다. 굴러온 돌에게 가장 유리한 생존법은 박힌 돌 중 가장 큰 돌인 테무진의 주변을 차지하는 것이다.
테무진은 테무진대로, 몽골의 왕족들에게 칸 자리를 권했다가 사양받는 모양새를 잊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적법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칸임을 분명히 했다.
이윽고 무진은 "그럼 어쩔 수 없지"하며 칸의 지위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차, 코차르, 알탄은 잘못 생각했다. 그들은 귀족 대접을 받았을 뿐, 권력의 심장부에 가까이 할 수 없었다. 테무진은 자신의 친척들이자 출신부족의 왕족들을 그저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로서 존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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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은 죽기 얼마 전에 유언 비슷하게, 이런 말을 했다고 알려진다.
"다시 태어나면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 평범한 게르에서 평범한 재산을 갖고 평범하게 살다가 죽고 싶다."
테무진은 평생 '평범한 행복'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는 사치를 하지 않았다. 일반 병사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특별할 때가 아니면 누더기 가죽옷을 입고 생활했다. 훗날 대성공하고 나서 굴러들어온 막대한 재산은 국가운영이나 복지정책에 썼다.
테무진의 상황을 복기해보자. 먼저 아버지가 죽고난 후, 그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타이치우드족에 붙잡혀 고초를 겪은 후에는 자신과 가족을 지킬 최소한의 방어력을 지니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빼앗긴 아내를 되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사행동을 하게 되었다. 한번 군사행동에 나서고 나자, 이제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자무카와 공동운명체가 되어 함께 무력집단을 이끈다.
... 자무카와 결별한 테무진. 두 사람 모두 몽골족이었고, 이제는 몽골 외의 외부집단까지도 부하이자 피보호자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두 세력은 확장되는 중이었다. 명백한 경쟁상태였다. 그는 가족과 부하들에게 가장으로서, 지도자로서 책임을 져야 했다. 이제는 성공한 군사지도자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테무진이 '권력에 대한 의지'를 타고났거나, 스스로 권력을 선택한 면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흘러가는대로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측면이 강하다고 보는 게 옳다.
그래서인지 테무진은 권력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인간이었으되, 권력을 잡는 것만이 목표인 인간은 아니었다. 이 시리즈를 계속 읽다보면 알겠지만, 그에게 권력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었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테무진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필요로 했다.
1189년, 테무진의 나이 27세. 그의 무리는 '검은 심장'이라는 뜻의 '카라 지루겐' 산 밑, '쿠쿠 초스(푸른 호수)' 물가에 모였다. 십여년 전, 테무진과 그의 가족이 작은 동물들을 사냥해서 연명했던 곳이다. 그곳에서 테무진은 칸으로 추대되었다. 초원에 새롭게 등장한 뉴페이스 칸.
- 그 칸의 명칭은 '칭기스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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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대체 '칭기스'는 무슨 뜻일까? 당시의 몽골인들은 거의 100% 문맹이었고, 특정 어휘에 엄밀한 '사전적 정의' 따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현대를 사는 우리는, 칭기스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딴지스인 만큼, 웬만큼은 디벼보자.
몽골어에서 늑대를 '치노'라고 한다. '칭-' 혹은 '친-'으로 시작하는 단어의 어두(語頭)는 늑대를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지난 글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몽골인들에게 늑대는 중요한 토템이다. 늑대는 지혜롭고 끈기있으며 용맹하다. 또한 초원에서는 가장 강력한 동물이다(뭐, 시베리아 숲으로 올라가면 호랑이가 있긴 하다...).
몽골 늑대
따라서 칭기스칸은 어쩌면 '늑대 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늑대는 남성의 모든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살짝 의역해서 '강력한 싸나이 칸'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늑대라는 뜻의 '치노'라는 발음 때문인지, '칭' 혹은 '친'은 강력하고 견고한 성질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책에는 칭기스칸이 '사해(四海)의 지배자', 즉 '동서남북의 모든 바다가 있는 곳까지를 지배할 군주', 즉 '궁극의 정복자'란 뜻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당시의 몽골인들도 칭기스칸이라는 용어를 그렇게 이해하고, 또 어필했다.
- 칭기스칸은 말이여, 이 세상의 킹왕짱 두목이라는 뜻이여~
그런데 말이다. 몽골인들은 <칭기스 + 칸>이라는 어휘가 왜 그런 뜻이 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 왜 '칭기스칸'이 킹왕짱이라는 뜻인데?
- 그건 나도 모르겠고... 말하기도 귀찮고... 아 척하면 알아 들어야지~ '칭기스칸'하면 감이 딱 안오남?
역시 미스테리다.
이에 대해, 몽골사의 권위자 우르게네 오논 박사는 '칭기스'가 일종의 사투리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칭기스가 '텡그리'의 사투리, 내지는 변형어(語)라는 것이다 :
<텡그리 ⇒ 팅기리 ⇒ 팅기스 ⇒ 칭기스>
텡그리는 하늘을 뜻한다. 그냥 하늘이 아니라, '영원한 푸른 하늘'이다. 텡그리라는 단어가 가진 뉘앙스를 더 파고들어가보면, 이 말은 '어떠한 것이 넓게, 끝없이 평평하게 퍼진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텡그리라는 말은 하늘에만 대고 쓰지는 않는다. 드넓은 아름다운 호수, 바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초원도 텡그리의 뉘앙스에 포함된다.
몽골의 호수
당연한 말이지만, 몽골인들에게 '땅'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초원이다. 초원은 끝없이 평평하다. 즉 우르게네 오논의 견해를 받아들이면 칭기스칸은 이 세상의 동서남북 끝까지를 관장하는 절대적 칸이라는 뜻이다. 물론 텡그리(칭기스)가 어디까지나 하늘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칭기스칸은 <하늘 밑 모든 것의 지배자> 정도가 되겠다.
결론은 없다. 칭기스칸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사실 - 이 호칭은, 개념상으로는 굉장한 사이즈를 자랑하는 극존칭이라는 거.
대체 테무진에게 왜 이렇게 거창한 호칭이 필요했을까? 가난한 초원 한구석에서 세력을 모으느라 분주했던 27살의 젊은이에게 말이다. 테무진도 20대의 혈기왕성한 마초라, 소위 '가오'잡는게 싫지만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테무진은 성공하고싶은 조급한 마음에 칸이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칭기스칸이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매우 정확한 호칭이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보통 칸이라고 하면, 관습적으로는 이름 뒤에 단순히 '칸'자를 붙이면 된다. 즉 '테무진 칸'하면 그만인 것이다. 테무진 무리보다 훨씬 강성한 커레이트족의 수장 토그릴도 그냥 '토그릴 칸'이었다('옹 칸'이라는 유명한 이름은 훗날 금나라 조정이 토그릴에게 하사해준 것이다.).
분명, 칭기스칸은 오바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칭기스칸>은 '확장 지향적'인 이름이다. 이미 테무진은 몽골족뿐만 아니라 외부 부족/씨족 사람들도 이끌고 있었다. 집단의 물리적인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개념적인' 사이즈는 일개 부족의 크기를 넘어선다.
황제와 왕의 차이는 무엇일까? 동서고금 수많은 국가들이 황제국이거나 왕국이었다. 역사를 통계학으로 털어버리면, 당연히 황제국의 평균 국력이 왕국의 평균 국력을 훨씬 상회한다. 황제국 왕국보다 강하다 -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이는 '일반적인 현상'일 뿐, '원칙'은 아니다. 그 원칙이란 것 중, 중요한 한 가지를 끄집어내보자.
껄끄럽지만, 거칠게 일반화를 시켜보겠다. 그저 왕국보다 강한 나라가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포함하는 나라가 황제국으로 불리는 패턴이 있다. 베트남이 오랫동안 황제국이었던 것은 조선보다 국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주변 이민족들(시암족, 크메르족 등등)을 행정/지배체제에 편입시켰기 때문이다(베트남을 무시하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 나라의 최고권력자가 자신과 모국어가 다른 백성들도 지배하고 있다면, 그는 왕이 아니라 황제-엠퍼러, 카이저, 짜르 등등-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한 나라의 최초의 황제는 정복자인 경우가 많다. 어쨌든 역사에는 황제국보다 강한 왕국, 왕국보다 별볼일 없는 황제국이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고려는 한때나마 황제국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국이었던 조선이, 백성들의 평균적인 삶의 질은 훨씬 높았다. 고려가 황제국이 된 건 국력의 크기를 자로 재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고려라는 국명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고, 여기엔 태조 왕건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
고려와 고구려는 어차피 동의어다. 고려는 고구려의 옛 땅과 그 땅의 주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여기엔 고구려 유민의 후손인 발해 유민 뿐 아니라 거란, 말갈, 돌궐 등 다양한 민족이 섞여있었다. 고려가 황제국을 자임했던 것은 고구려 땅을 수복하겠다는 의지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는 당시 혼란스럽던 동북아 정세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인 동시에, 장기적 외교전을 각오한 '선빵'이었다.)
테무진은 출신부족만의 칸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칸 이상의 호칭이 필요했다. 역사는 칭기스칸이라는 호칭을 테무진 본인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주변에서 만들어 그에게 헌정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다만 "칭기스칸으로 추대했다."라고만 나와 있다.
... 어쨌든 테무진은 이 거창한 호칭에 동의했다. 이는 다양한 혈통의 사람들의 하나의 체제 안에 포섭하려는 테무진의 야심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초원을 통일하려고, 혹은 적어도 그와 비슷한 과업을 이루려고 했다는 거다. 훗날 자신이 완성한 사회시스템의 성격을 당시의 테무진도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제 테무진은 야심가가 되었다.
7
그러나 아직, 테무진은 칭기스칸이 아니었다. 얼씨구 이게 뭔 소리냐...
역사는 당시의 테무진을 칭기스칸으로 불러주지 않는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 아직 칭기스칸은 테무진이 이끄는 무리 안에서 통용되는 애칭일 뿐이었다. 예컨데 내가 어느 야산에서 똘마니 수백 명을 거느리고 나는 황제임을 선포한다고 해서 주변왕국의 조정이 조공을 보내지는 않는다는 거다. 칭기스칸 정도 되는 이름은 무리 바깥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어느정도 인증을 받아야 비로소 공식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테무진은 성공했다. 그러나 칭기스칸이라는 이름은, 테무진이 훨씬 더 성공하기 전까지는 사(私)적인 별칭에 불과했다. 무리 내에서야 칭기스칸으로 불렸겠지만, 바깥에서는 본명에 '칸'자를 덧붙이는 오래된 관습대로 그냥 '테무진 칸'으로 불렸을 게 거의 확실하다.
이제 테무진은 칸으로서 초원에서 인정을 받아야 했다. 그는 가장 먼저 커레이트족의 토그릴 칸에게 사신을 보내 이 빅뉴스를 알렸다. 참으로 영리한 행동이었다. 이는 토그릴에게 당신을 해칠 의도가 없으며, 따라서 안심하라는 뜻이다. 또한 칸의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토그릴이 '다른 칸을 인증하는 칸' 즉 초원의 최고 권위자라고 테무진이 대신 선언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적으로 거절할 수 없는 베팅을 한 셈. 커레이트족과 토그릴의 권위는 올라가고, 테무진은 명실상부한 칸이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뭐 당연한 말이겠지만, 토그릴은 테무진과 테무진의 무리를 한껏 축복해준다.
"거 참 잘했다~ 흐뭇하도다! 어찌 칸 없이 살겠는가? 테무진은 내 안다의 아들이고 내 양아들이야. 어찌 훌륭하지 않겠는가? 이제 그대들은 테무진을 칸으로 모셨으니 그에게 충성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껄껄~"
몽골족의 귀족 선거인단에 의해 칸이 된 테무진. 그는 칸이 되고나서 조직을 개편한다. 새로 탄생한 오르도에 귀족들의 자리는 없었다. 모든 무리를 통솔하는 참모는 젤메와 보르추 듀오였다. 두 사람은 가장 오래 테무진과 함께했으며 머리회전이 빠르고 전투능력도 뛰어났다. 특히 상속받은 노예인 젤메에 대한 테무진의 태도는 참으로 진실하다.
"내가 꼬리 말고는 채찍이 없고, 그림자 말고는 친구가 없을 때 ... 그림자가 되어준 친구."
뭐, 아름다운 장면들의 연속이다. 헌데 말이다. 테무진은 토그릴 뿐 아니라 자무카한테도 사신을 보내 자신이 초원의 '정치적 레이스'에서 자무카를 추월했음을 알렸다.
"형제여. 내가 칭기스칸으로 추대되었네."
자무카의 기분은...
... 몹시 좋지 않았다. 그리고 테무진은 결코 자무카를 추월하지 못했다. 테무진은 마침내 성공했지만, 이제 '과속 성공'의 처절한 대가를 받을 차례였다.
(11) 13익(翼) 전투
1
(전편에 이어)자무카의 진짜 속마음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테무진과 경쟁하던 시기, 그에 대한 자무카의 모든 발언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시 초원의 정치형태는 현대의 우리 사회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현대의 정치는 헌법을 전제로 복잡한 규범과 실정법을 고려하며 행해진다. 하지만 초원에서 눈뜨고 사방을 둘러보면 풀밖에 없다. 저기 한 무리의 남자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데... 오메 저거 도적들 아녀?
초원의 법이란 초원사람들의 말과 행동으로 유지되는, 그야말로 '관습법'이다. 말하자면 '룰(Rule)'이지 '법'은 아니라는 거다. 훗날의 테무진이 성문법에 해당하는 '얏사(야삭, 혹은 자삭)'를 반포(頒布)하지만 그건 나중 얘기다.이런 사회에서는 정치라는 것도 원시적이고 단순하다. 그렇다고 정치가 쉽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뛰어난 순발력과 대담함, 재치가 있어야 한다.
초원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메시지는 당연히 말로 전해진다. 따라서 사자-메신저-는 서신을 들고가는 사람이 아니라 보스가 한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즉 테무진의 사자는 자무카한테 가서 뭘 쓱 내민 게 아니라,
"테무진 형님이 보내셨슴다. 테무진 형님이 전하는 말씀을 이제부터 그대로 읊어 보겠습니다... 흠흠"
하고는,
"형제여, 내가 이번에 우리 몽골의 왕족들인 알탄, 코차르, 타이초와 여러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칸이 되었네. 내가 받은 칭호는 '칭기스칸'일세..."
했다는 거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글에 갇히지 않는 이런 문화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급속도로 퍼지게 된다. 메시지를 받는 사람이 있는 게르의 풍경만 상상해봐도, 일단 게르 안과 게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전해듣게 된다. 그리고 초원은 소문이 빠르다.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가 정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런 현상은 이미 지난 편들에 충분히 설명을 해 놓았다.
자무카는 곧바로 답신을 보냈다. 그러나 테무진에게 보낸 전언이 아니었다.그는 테무진을 지지하는 척도 하지 않았지만, 딱히 반대를 표명하지도 않았다. 대신 자무카는 알탄과 코차르에게 사자를 보냈다. 이는 의미심장하다. 테무진을 자신과 맞상대할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알탄, 코차르, 사차 네 이놈들. 사랑하는 형제 테무진과 나를 이간질한게 바로 너희들이었구나. 그래, 사랑하는 안다가 날 떠나서 이상하다 싶었다. 네놈들이 테무진을 꼬드긴 게로구나. 이제 네놈들 뜻대로 (만만한) 테무진을 칸으로 추대했으니, 부귀영화를 퍽이나 누리겠구나?"
즉 테무진은 실력에 의해 칸이 된 게 아니라, 알탄과 코차르에게 '넘어간' 게 된다. 테무진 조직의 가치를 폄하하는 덴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자무카는 거기에 더해 테무진을 응원하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의연함과 우정을 과시했다.
"왜 테무진 형제가 나와 함께 있을 때 그를 칸으로 추대하지 않았느냐? 왜 내가 나의 형제를 지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느냐?(순전히 수사다. 자무카가 테무진을 보스로 모시지 않았을 거라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 뭐, 이왕 이렇게 된 걸 어쩌겠느냐. 어쨌든 알탄과 코차르, 네놈들은 테무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내 형제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도록, 딴 맘 먹지 말고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충성해라!"
이렇게 자무카는 '정치전'에서 테무진에게 반격을 한 방 먹인다. 한편 몽골족의 마지막 칸인 암바가이 칸의 후손들이자 테무진의 원수인 타이치우드족은 자무카 무리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 즉 사실상 테무진은 쿠릴타이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두 조직은 치열한 혈투를 예고하고 있었다.
한편 커레이트의 수장 토그릴 칸의 입장은? 토그릴은 의제(의동생)인 자무카, 그리고 안다의 아들인 테무진 두 젊은이의 싸움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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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국주의'라는 말이 있다. 제국주의를 모방한 2류 제국주의라고 보면 된다. 제국주의는 주변의 세력들에게 일정한 압력을 행사한다. 중국을 예로 들어보자. 중화권을 관할하는 강력한 왕조가 들어서고 나면 주변국들에게 조공을 요구한다. 답례로 하사품을 주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쌤쌤이지만(사실 하사품이 조공보다 더 값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보다는 돈이 평화를 사는 데 더 싼 법이니까.), 조공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임을 확인하는 외교행위였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조정에 '입조'하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UN에 가입하는 것과 비슷했다.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받으려면 어찌됐던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형식적으로나마 '황제가 임명한 제후'가 되어야 국제적인 인증을 받은 왕이라 할 수 있었다. 고구려의 경우 당나라와 치열한 전쟁을 하는 와중에도 당나라에 조공을 전달했다. 당나라도 하사품으로 답례했다.
베트남은 황제국과 왕국 사이를 정신없이 오갔다. 중국에 정벌당하면 잠시 왕국이 되었다가, 빈틈이 보이면 황제국을 선포하는 식이다. 베트남은 중국이 하던 양식을 그대로 모방해 주변 세력들 -시암(현재의 태국), 크메르(현재의 캄보디아), 라오스, 현재 중국 운남성의 소수민족들-에게 제국주의적 압력을 행사했고, 이들로부터 황제국으로 인정받았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큰 세계가 있다면, 베트남은 자국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변방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런 걸 소제국주의라 한다.
조선통신사 행렬도. 조선은 일본에 대해 중국이 (명목상)제후국에 기대하는 것과 비슷한 예법을 요구했다. 조선의 입장에서 통신사 파견은 일본이 조선의 하국(下國)임을 재확인하는 정치적인 행위였다. 통신사 파견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소제국주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갑'이었던 통신사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않으면 가만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통신사가 지나간 곳마다 지역경제가 초토화되었다. 명나라 사신이 경복궁 살림을 거덜낸 일과 비슷하다.
소제국주의가 있다면 소(小)이이제이도 있는 게 당연하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오랑캐, 다시 말하면 주로 북방 유목민들을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변방을 관리했다.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원래 '관리 대상'이었지만, 북중국의 주인이 된 후에는 관리의 주체가 됐다. 금나라는 타타르족을 지원해서 다른 부족들을 괴롭히는 정책을 썼다. 그러나 타타르의 세력이 커져 슬슬 금나라에 개기기 시작하자 토그릴에게도 우호적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이 시기 금나라의 판도. 'Jurchen(Jin)'이라고 표기된 곳이 금(金, Jin)나라다. '주르첸'은 여진족의 '여진'을 부르는 중앙아시아-중동식 발음이다. 고향인 만주를 완전히 장악한 채 송나라를 압박하고 있었다.
※주의! : 적당한 지도를 찾지 못해 위키피디아 '칭기스칸' 항목에 첨부된 위 이미지를 썼는데, 정확하지 못한 지도다. 몽골 지역을 보면 하단에 '잘라이르'씨족이 있다. 지난 기사에 설명했든 잘라이르 씨족은 여러 몽골씨족에 흩어져 머슴살이를 하던 노예씨족이었다. 독자세력권이란 있을 수 없다. 그 오른쪽의 타이치우드도 생뚱맞다. 타이치우드는 몽골에 속한 씨족, 그것도 몽골을 양분한 테무진과 자무카 두 사람 중 자무카에게 귀순한 상태였다. 당연히 타이치우드가 활동한 지도상의 위치도 오류다.
토그릴은 급속도로 성장하는 몽골족의 두 젊은이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어느 한쪽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이 싸우면 싸울수록 좋고, 세력이 팽팽할 수록 좋다. 하지만 초원의 군소부족들은 토그릴만큼 느긋한 처지가 아니었다.
당시 초원의 정세는, 서쪽의 나이만족, 동쪽의 타타르족, 중앙의 커레이트족으로 삼분되어 있었다. 북쪽의 메르키트족은 테무진과 자무카에게 된통 당한 후 서쪽으로 도망가 세력을 회복하고 있었고. 이렇게 보면 무척이나 단순하다. 테무진과 자무카로 분열된 몽골족의 거점은 커레이트와 메르키트(의 원래 목영지) 사이였다.
하지만 이 주요 부족들 사이에는 수많은 군소 부족들이 점점이 퍼져 있었다. 이들은 몽골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결집하고 있었다. 누구는 테무진을 중심으로, 누구는 자무카를 중심으로... 두 젊은이는 블랙홀이었다. 혈통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초원의 전통을 깨고 초원의 사람과 가축들을 흡수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심심찮게 폭력이 발생했다. 두 집단은 서로의 가축과 부녀자와 가축을 상습적으로 약탈했고, 그 와중에서 당연히 사망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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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자무카의 친동생 '다이차르'는 뭐 훔쳐갈 게 없나 하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처럼 테무진 진영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이런 '벌건 대낮' 도둑질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상하지만, 초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정주문명에서는 '우리편'의 경계가 확실하다. 정주문명은 인구밀도가 높으며, 성벽이나 울타리 등으로 거주지에 선을 긋는다. 논밭은 이랑과 수로 등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누구의 땅인지 분명히 구분된다.
반면 초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엄청나게 떨어져있다. 지난 편에 '쿠리엔'에 대해 설명해 놓았지만, 이 쿠리엔이란 것은 굉장히 넓다. 쿠리엔의 중심인 '오르도'만 봐도, 게르와 게르가 뚝뚝 떨어져 있다. 예를 들어 테무진이 어머니 헐룬에게 아들 조치를 맡겨놓는다고 하자. 그냥 걸어가서 맡기고 오는 게 아니다. 말로 몇 시간을 달려 맡겨놓고 돌아와 일을 보는 식이다.
이러다보니 경찰 출동 시간을 재놓고 은행을 터는 헐리웃 영화의 강도단처럼, 상대 군사들이 소식을 듣고 무기를 챙겨 달려올 시간 내에서만 약탈을 해치우면 그만이다.
그날 테무진 진영에서 탐스런 말떼를 발견한 다이차르. 다이차르는 말떼를 강탈해 자무카 진영으로 내뺐다. 그 꼴을 눈뜨고 본 '주치 다르말라'... 그는 바로 도둑맞은 말떼의 주인이었다. 참, '주치 다르말라'를 테무진의 친동생인 '주치 카사르(통칭 카사르)', 테무진의 아들 '주치'와 헷갈리지 말자. 주치는 당시 초원에서 흔한 이름이었다. 철수나 마이클 정도의 느낌이다.
눈이 뒤집어진 주치 다르말라는 서둘러 주변의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말떼를 되찾아야지. 어서 무기를 챙겨들고 쫓아가자!"
"이봐, 주치 다르말라... 말도둑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이차르라며. 자무카 동생이잖아. 혹시 싸움이라도 나서 놈이 잘못되는 날엔, 이거 정말 일이 커지는 거 아녀? 물론 우리가 잘못되는 건 더 싫고..."
"가축 뺏다가 싸우는 짓, 저쪽이랑 우리편이랑 한 두 번 해봤냐?"
"아무리 그래도 자무카 친동생은 쫌..."
"야! 그럼 내 말들 어떡해. 저 생떼같은 말들 어떡하냐고!"
"저 근데... 그게... 네 말이지 우리 말은 아니잖여..."
"아 이색희들 정말...! 그래 안전제일이라 이거지? 그럼 나혼자 간다!"
테무진이 말 8마리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한 이야기 읽어들 보셨을 거다. 초원에서 말은 그만큼 중요하다. 주치 다르말라는 혼자서 다이차르를 추격해갔다. 그렇게 한나절을 추격하자 밤이 왔다.
다이차르는 자신이 추격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주치 다르말라는 밤의 어둠을 이용해 꾀를 냈다. 그는 말 등허리에 찰싹 달라붙어 다이차르의 등뒤로 서서히 접근했다. 마침내 사정거리에 다다르자 주치 다르말라는 다이차르의 "등허리가 부러져라" 화살을 퍼부었다. 기습공격을 받은 다이차르는 그대로 사망했다.
자무카는 동생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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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테무진이 공식적으로 사과의사를 밝히고, 주치 다르말라에게 책임을 물거나 그의 신병을 자무카에게 인도했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테무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자기 가축을 지키는 것도 죄인가? 어차피 자무카와의 대결은 피할 수 없었다.
자무카 입장에서도, 동생의 죽음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국지전'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져버렸다. 어차피 테무진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
... 이 단순무식한 명제가 테무진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일단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보자.
자무카는 즉시 전쟁준비에 돌입했다. 자무카가 속한 자다란 씨족을 중심으로 하는 13개의 쿠리엔이 모여들었다. 총 전사 수는 무려 3만명. 인구밀도가 낮은 초원에서는 엄청난 대부대다. 물론 100% 기병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무카가 직접적으로 다스리는 전사의 수가 3만이었던 것은 아니다. 초원의 군소부족들은 꼭 테무진과 자무카 어느 한 쪽의 백성은 아니어도, 둘 중에 하나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었다. 여당이냐, 야당이냐. 마치 대선 투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즉 자무카 직속 전사에 자무카를 지지하는 부족/씨족들의 전사를 합해 3만의 군대가 결집한 것이다. 말하자면 '친 자무카 - 반 테무진 연합군'이었다.
그 와중에 조그만 집단이었던 '이키레스'족은 테무진 편을 들기로 작정했다. 자무카는 신속히 군대를 결집해 테무진 진영이 야영하고 있는 초원 북동쪽의 호숫가로 이동중이었다. 조금만 더 멍하니 앉아있다간 정말로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자무카 군대가 이동하는 길목에 있던 이키레스족은 전사 두 명을 파견해 테무진에게 상황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테무진도 신속히 군대를 결집했다. 전사의 수는 역시 3만명. 자무카를 지지하지 않는 군소세력은 거의 100% 테무진을 지지했다고 보면 된다. '친 테무진 - 반 자무카 연합군'이었다. 이렇게 빨리 군사를 결집한 걸 보면 역시 테무진도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나이만-타타르-커레이트는 전쟁에서 빠져 있었기 때문에, 도합 6만이라는 숫자는 3개 대부족을 뺀 초원 총전력의 대부분이라 봐도 무방하다. 아마 전쟁을 가장 관심있게 본 이는 토그릴이었을 것이다. '끼는' 게 아니라 '보는' 게 상책이다. 핑계도 좋다. 자무카는 의동생이고 테무진은 의아들이었으니.
테무진은 자무카가 13쿠리엔으로 군대를 구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13개의 쿠리엔을 구성한다. 13 대 13의 전투. 이 전투를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13익 전투'라 하고, 서구에서는 전투가 벌어진 지명을 사용하는 전통에 따라 '달란 발주트 전투'라고 부른다(달란 발주트라고 불린 곳의 위치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그런데 13익의 익(翼)은 '날개 익'자다. 다시 말해 중국식 표현이다. 원래 '익'이란, 중앙의 본대를 좌우에서 받쳐주는 부대, 즉 일종의 기동타격대-주로 기마부대. 물론 보병일 때도 있다.-에 붙는 명칭이다. 그래서 보통 본대 양쪽에 배치되고, 이름도 좌익(左翼)과 우익(右翼)이라고 한다.
이는 보병이 주력군이 되는 정주문명의 전투개념이다. 과거의 전투에서는 '누가 먼저 상대를 포위하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본대끼리 부딪히고 있는 동안 좌익과 우익이 상대를 감싸는 것이다. 페르시아군을 궤멸시킨 알렉산더 대왕의 '망치와 모루' 전법도 포위전법이다. 모루 위에 놓고 망치로 두들긴다는 건데, 여기서 모루는 본대고 망치는 기마병이다. 기동력을 앞세워 적의 후위로 이동해 앞뒤로 감싸는 것이다.
사실 13익 전투라는 말의 어감이 자연스러워서 본편의 제목으로 썼다. 하지만 이 중국식 이름은 사실과 맞지 않다. '13쿠리엔 전투'라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전편 '테무진 라이징'에서 쿠리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글타. 당시 초원 유목민들은 야영만 쿠리엔으로-고리 모양으로- 한게 아니라, 전투 대형도 쿠리엔으로 짰다.
어차피 상황과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적과 아군이 시도때도 없이 바뀌는 초원이다. A쿠리엔과 B쿠리엔이 손을 잡고 전투를 벌인다. 그러면 부대도 A쿠리엔과 B쿠리엔으로 나뉘는 식이다. A쿠리엔 한가운데엔 A부족의 수장이 있다. 주변을 엘리트 전사들이 둘러싸고 있다. 바깥으로 갈수록 평민이다. 뒤에는 목동계급의 남자들이 가축을 몰고 쫓아오며 여차하면 전투에 낄 준비를 한다. 저~기 보니... 음, B부족 쿠리엔은 잘 따라오고 있군. 저자식들 또 저번처럼 불리해지면 홀랑 도망가버리는 거 아녀?
즉 한편이지만 실제로는 각자 싸운다고 보면 된다. 군대 전체로 보면 효율성이 엄청나게 떨어지는 구조다. 2000년 전 게르만족들이 이렇게 싸우다가 카이사르에게 번번히 나가떨어졌다. 통일된 '편제'는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역사엔 부족연합군이 통일왕국의 군대에 깨진 사례가 그득하다.
그럼 유목 부족들도 전쟁을 할때 일시적으로나마 로마군의 십진법 체계처럼 통일된 편제를 갖추면 되지 않는가? 설마 유목민들은 야만인이라서, 그게 전쟁에 효율적이라는 걸 몰랐을까? 그럴리가. 모르지 않았다. 여진족의 금나라도, 거란족의 요나라도 십진법으로 군대를 편성했다. 동아시아의 북방 유목민들에겐 십진법 체계로 군대를 편성하는 전통이 있었다. 물론, 그게 가능할 때만...
십진법 편제는 머릿속으론 쉬워도, 현실적으론 어려운 과제였다. 통일된 편제는 통일된 시스템 속에서 모든 전사들이 균일한 훈련을 받아야 운용 가능하다. 쉽게 말해 우리 학교 일진들과 산너머 학교 일진들이 힘을 합쳐 다른 동네로 원정을 가는 것과, 얘네들을 훈련소에 집어넣어 대한민국 보병으로 만드는 건 다른 차원의 얘기다.
또, 어차피 일시적으로 한 편이 된 사이다. 중요한 건 '연합군'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쿠리엔'의 안위다. 피튀기는 전쟁터... 우리 부족의 칸이 위험에 빠졌는데, 다른 부족의 장교가 적을 향해 돌진하라고 외치면 누가 그 말을 듣겠는가? 결국 십진법 체계는 강력한 정치력을 지닌 칸의 휘하에서만 정상적으로 구현 가능했다.
13쿠리엔과 13쿠리엔이 부딪히다 보니, 승패는 하늘에 달렸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회전, 즉 서로의 총전력이 붙어 단번에 운명을 가르는 싸움이다. 각 쿠리엔 간의 통신상태가 좋지 않다보니 쿠리엔별로 각자 싸우게 된다. 전장(戰場)이 넓다 보니(100% 기병들이니 더 넓다.). 웬만큼 감각이 좋지 않은 지휘관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승패를 알 수 없다. 미리 설정된 디폴트 상태로 붙는 셈이다.
전투가 시작되고 적게는 몇시간, 길게는 며칠이 흐른 후(유목민들은 계속 말을 달리면서, 그것도 말을 바꿔 타면서 전투를 하기 때문에 전투시간이 며칠이 되는 경우도 흔했다. 물론 이 경우 전장은 시시각각, 길게는 수백 킬로미터까지 바뀐다. 전장이 바뀔때면 병사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잠을 잤다.) 승패가 정해질 것이었다. 하늘은 누구의 편이었을까?
유능한 사람의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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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 진영의 13쿠리엔의 구성을 살펴보자. 먼저 가장 중요한 중앙의 본대인 제 1쿠리엔. 40대 초중반이 된 여장부 헐룬이 1쿠리엔의 지휘관이었다. 그녀의 쿠리엔은 친정인 올쿠누트족의 전사들과 자신의 자식들, 자식들에게 딸린 전사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헐룬이 중앙 본대를 지휘했다는 것은 그녀가 전투의 총사령관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다면 아들인 테무진과 함께 공동으로 연합군을 지휘했을 것이다.
제 2쿠리엔은 대장 테무진과 그의 동지들로 구성되었다. 젤메, 보르추, 수부테이 등 그의 '절친'들은 모두 2쿠리엔에 모였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테무진의 '느린 성장'을 볼 수 있다. 테무진은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인물이었지만, 다시 말하면 역시 느린 사람이었다. 젤메와 보르추를 조직의 공동 2인자로 앉힌 일은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각각 다른 쿠리엔을 지휘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테무진은 유능한 참모들을 그냥 자신이 지휘하는 쿠리엔에 몰아넣어버렸다. 그는 자신이 개혁한 오르도의 구성을 전투에까지 적용할 생각은 아직 하지 못했다.
그외 각 쿠리엔을 주로 테무진을 칸으로 추대했던 몽골의 왕족/귀족 전사들이 지휘했다. 제 7익, 혹은 9익은 테무진의 막내삼촌인 다리타이가 맡았다. 8익은 니르운인 테무진의 사촌들이 이끌었다. 전통적인 구성법이다.
몽골 초원의 '달란 발주트'라는 곳에서 부딪힌 26개의 쿠리엔. 테무진은 동일한 전력이 한번에 부딪히면 두 안다의 경쟁이 어떻게든 결론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쿠리엔 단위로 싸우는 원시적인 전투야말로 시스템의 우월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의해 승패가 갈린다. 자무카는 전투의 천재였다. 게다가 카리스마도 넘쳤다. 비록 과격할지라도, 동료와 부하들을 적진을 향해 몰아세울 줄 아는 남자가 유리한 전투였다.
말로 선포된 칸은 허울에 불과하다. 당시 초원에서 '칸'정도 되는 호칭은 실력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쟁자가 더 좋은 실력을 보여주면 그걸로 끝이다. 자무카는 애초에 테무진을 가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실력으로, 즉 군사적 재능으로 눌러 누가 몽골의 칸이 될 자격이 있는지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면 초원 북동쪽에서 불고 있던 테무진 열풍운 거품이 된다. 거품이 장렬히 터지고 남은 자리는 자신의 것이다. 칸은 그때 가서 되도 충분하다. 아니, 충분한 게 아니라 완벽하다.
테무진은 자신이 왜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지도자인지, '시간과 노력'으로 증명하는 경향이 있었다. 테무진에겐 사람을 눈앞에서 휘어잡는 압도감이나 즉각적 카리스마가 없었다. 대신 자신의 가치를 꾸준한 성실함으로 증명했다.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은 막상 전투에선 별 쓸모가 없다. 전투의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한다.
어차피 싸울 운명이기 때문에 끌어모을 수 있는 전력 전부를 하나의 대전투에 쏟아넣는다... 그래선 안 되었다. 테무진은 자무카에게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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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우리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전투결과 칭기스칸은 '제레네'라는 이름의 협곡 안까지 후퇴해 들어갔다. 드넓은 개활지에서 싸우다 협곡이 있는 지형까지 퇴각하려면 꽤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어쩌면 며칠간 퇴각했을 수도 있다.
결국 헐룬과 테무진 모자는 현장지휘력에서 자무카에게 완전히 짓밟혔다. 심지어 몽골의 니르운 씨족인 '치노스'족은 부족 전체가 포로로 잡혔다. 기마병끼리의 초원 전투도 정주문명의 보병전과 전체적인 얼개는 다를 바 없다. 먼저 포위하는 쪽이 이긴다.
헐룬은 인생의 단맛 쓴맛을 모두 본 여걸이었지만, 테무진은 누구보다 성실한 군주였지만... 인생이란 게 그렇다. 진심으로 노력했지만 재능에 질 때가 있다. 13쿠리엔 전투의 패배는 테무진의 인생에서 아버지의 죽음, 포로생활, 아내 보르테 피랍에 이은 4번째의 시련이었다. 자무카는 테무진이 8년 간 성실하게 쌓아올린 커리어를 단 하루에 박살내버렸다. 능력제로 사람을 등용하고 평등한 분배로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얻은들,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는 칸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고대-중세의 회전(會戰)은 도박성이 강했다. 이기면 좋다. 하지만 지면? 테무진은 불확실성에 자신과 집단의 운명을 걸어선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웠다. 물론 전투에 졌을 당시엔 교훈 따위를 곱씹을 여유가 없었다. 제레네 협곡에 기어들어간 테무진. 초원의 협곡은 지리적으로 정상적인 '쿠리엔'이 들어가기 어렵다. 즉 테무진 무리는 퇴각 중에 대부분의 쿠리엔은 물론 백성과 가축들까지 자무카 무리에게 철저히 약탈당했다는 얘기다.
당시의 초원에선 인력과 가축의 숫자가 곧 국력이었다. 부족집단을 뜻하는 '울루스'라는 중세 몽골어는 중국과 중동에서 '나라'로 번역되지만, 원래는 '백성들'이라는 뜻이다. 국토와 국경선 개념이 없기 때문에 머릿수가 곧 국가의 크기다.
패배한 13쿠리엔 중 헐룬의 1쿠리엔과 테무진의 2쿠리엔 외에는, 제 8쿠리엔만 남았다. 나머지 쿠리엔은 퇴각중에 뿔뿔이 흩어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당분간 테무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테무진의 막내삼촌 다리타이는 테무진 가족을 버렸다가 다시 찾아와 받아달라고 할 땐 언제고, 이번에도 조카와 형수를 내팽개치고 도망갔다.
조카와 형수의 마음을 두 번이나 텅 비게 만든...
나란색기 못난 색기...
하지만 나도 살아야 될거 아녀...
그나마 협곡 안으로 후퇴한 것은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 협곡은 지리적 특성상 군마(軍馬)의 머릿수로 우위를 차지하기 어렵다. 일부러 코너에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배수진을 친 테무진 무리는 사력을 다해 저항할 것이었다. 자무카 연합군 입장에선 이미 전투도 이긴데다가, 물자도 빼앗을 만큼 빼앗았는데 누가 그 안에 들어가고 싶겠는가? 또 만약 테무진이 협곡의 높은 곳을 미리 선점해 매복을 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들어가면 죽는 '죽음의 골짜기'였다. 승패가 뒤바뀔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자무카는 철수 명령을 내린다.
"협곡 안으로까지 몰아넣었으니 이만하면 됐다. 다시 초원으로 기어나오려면 애 좀 써야겠지... 돌아가자!"
자무카는 곱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초원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자무카는 양 삶는 솥 70개에 불을 피웠다. 거기에 치노스족의 왕자 70명을 집어넣어 삶아 죽였다!
조그만 씨족에 웬 왕자가 70명씩이나 있는가 싶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역사서에 '왕자'라 표현된 것은 치노스족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순혈귀족이라는 뜻이다. 무려 70명 - 씨족의 전사 남성 전부를 죽인 것이다.
또한 삶아 죽이는 것은 죽음의 과정 자체도 끔직하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살만이 아니라 피도 삶겨 익어버린다. 초원사람들은 피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으니, 이는 제사를 지내주고 부족을 수호해줄 영혼까지 죽이는 이중의 살인이었다. 치노스족을 이승과 저승 모두에서 지워버린 셈이다.
몽골어로 늑대를 치노라고 한다. 몽골족은 자신들의 조상이 늑대라고 믿었다. 치노스족은 말 그대로 '늑대 씨족'이라는 뜻. 몽골족 중에서 가장 유서깊은 귀족혈통이었다. 비록 정치력과 영향력은 약했지만, 부족의 뿌리를 상징하는 귀한 집단이었다.
따라서 자무카의 70인 처형은 단순히 그의 잔인한 성격을 반영한다기보다는 정치적인 행위였다. 자무카는 유서깊은 혈통을 우대하는 전통을 없애고, 부족의 구성원리를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했다. 자신과 자다란 씨족에 반항한다면 '흰 뼈'건 '검은 뼈'건 응징한다. 이런 행위는 어떤 문화권이나 부족들을 통합한 통일군주들에게 매우 흔하게 나타난다. 이런 과단성이 부족연합제체를 벗어난 전제왕권체제를 만들곤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치노스족 처형이 하늘이 노할 사건도 아니었다. 물론 자무카가 선량한 사람이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이런 정도의 잔인함은 흔한 시대였던 것이다. 결국 치가 떨리는 악행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영리한 행동이었다고 할 만하다. 테무진만 없었다면 말이다.
자무카 혼자만 떠오르는 별이었다면, 70인 처형은 그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두 감정은 넓은 교집합 부분을 갖고 있다.)만 불러일으키고 끝났을 터였다. 그러나 비교대상이 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테무진은 동료든 패배한 적이든, 사람을 그런 식으로 다뤄본 적이 없다. 치노스족 처형은 자무카와 대비되는 테무진의 선량하고 공정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테무진은 초원에서 동정표를 얻기 시작했다. 곧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승리한 자무카 진영이 동요한 것이다. '쿠일다르'가 다스리는 '망구트'족과 '주르체데이'가 이끄는 우루유트족이 자무카 진영을 빠져나와 테무진에게 귀순했다. 예수게이의 옛 부하 '뭉릭'도 자무카를 떠나 테무진에게 왔다.
뭉릭... 그 옛날 예수게이가 죽을 때, 아내 헐룬과 자식들을 거두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인물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예수게이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타이치우드족을 따라나섰다. 그 후 타이치우드족이 자무카에게 귀순하자, 자연히 자무카의 부하가 된 것이었다. 그는 이제서야 드디어 테무진에게 왔다. 비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승자를 버리고 패자를 선택한 걸 보면 이때만큼은 진정성이 있는 행동이었다.
뭉릭의 가족도 가장을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 뭉릭에겐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중 넷째는 전사도 목동도 아니었다. 넷째의 직업은 무당이었다. 몽골인들은 개명을 잘 하지 않는다.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받은 이름을 끝까지 쓴다. 하지만 무당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뭉릭의 넷째아들의 이름은 '텝 텡그리'였다.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씀을 듣는 샤먼이라는 뜻. 모시는 신령의 사이즈가 무진장 크다. 매우 강력한 무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기(神氣)가 아주 셌나 보다.
몽골의 샤먼
불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등 외래종교를 유행처럼 받아들이던 초원의 다른 부족들과 달리, 몽골족은 아직도 고집스럽게 무속을 믿고 있었다. 이 무속의 형태를 요즘 학자들은 텡그리즘, 즉 무속은 무속이되 '영원한 푸른 하늘'의 의지를 최고로 치는 형태다. 텡그리의 메신저가 자신에게 왔다는 것. 이는 테무진에게 매우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테무진은 전쟁에선 졌지만, 정치에선 이긴 것이다.
(이 사건은 테무진에게 깊은 교훈을 남겼다. 앞으로 테무진은 전투에서는 많이 지지만, 정치에서는 결코 지지 않는다. 그는 비록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초원의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7
감동적인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망한 건 망한 거다. 초원 대중들 눈에 실력으로 증명하지 못했으니, 테무진의 최대 장점인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어필할 수밖에. 사는 게 그렇다. 망하는 건 하루아침에 망해도, 다시 일어서는 건 보통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다.
달란 발주트 전투가 벌어진 연도엔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다. 1185년에서 90년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아마 87년에서 89년 사이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짧게 잡으면 5년, 길게 잡으면 10년까지 '역사적 공백기'가 발생한다. 물론 궤멸 직전에서 다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을 만들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혹이 사라지진 않는다. 의혹을 대략 정리해보자.
의혹 첫번째 설. 테무진이 중국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1. 승자 자무카가 테무진을 중국으로 유배보냈다.
2. 테무진이 초원에서 추방당해 중국으로 가서 생활했다.
3. 테무진이 현재의 중국 지역에서 노예생활을 했다. 즉 자무카가 그를 팔아치웠다.
아니 왜 간단하게 죽여버리지 않고? 그야 두 사람이 안다였기 때문이다. 안다를 죽인다는 건 평판에 치명적이다. 초원에서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난 기사에 충분히 설명을 해 놓았다.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 놔둘 수도 없고. 그래서 자무카 입장에서는, 테무진을 아예 외국으로 보내서 초원에서 '치워버리는' 게 상책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 3가지 설의 가능성은 사실 매우 적다. 먼저 유배설. 어딘가에 유배를 보낸다는 건, 그곳에서도 일정수준의 행정력, 그게 아니라면 '입김'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자무카는 초원의 일부만 장악했을 뿐이다.
같은 이유로 2번 설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세력이 폭삭 쪼그라든 테무진에게 <눈에 띄면 가만 안 놔둔다>는 식으로 초원에서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커레이트의 토그릴 칸의 입장을 보면 이제 13쿠리엔 전투의 승자가 되어 영향력이 막강해진 자무카를, 테무진을 지원해 견제하는 것이 소이이제이 전략에 들어맞는다. 그게 아니라도 초원을 넓다. 숨을 곳은 많고 적은 눈에 잘 띈다. 기를 못 펴고 눈칫밥 먹고 사는거지, 초원에 발을 붙일 수 없는 건 아니다.
이제 3번. 그렇다면, 외국 상인에게 테무진을 노예로 팔아버리는 게 자무카에게는 가장 속편한 해결책일 수 있다. 헌데 그러려면 테무진이 포로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런 적이 없다.
테무진이 중국에서 10여년 간 노예생활을 했다는 중국의 옛 기록이 있다. 그러나 한족 지식인들은 유목민 지도자, 특히 가장 강력한 유목국가였던 몽골의 군주들을 깎아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온 전력이 있다. 노예생활을, 그것도 중국에서 했다고 기록하는 것은 테무진의 커리어를 깎아내리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었으리라.
어쨌든 이 가설을 진실이라고 전제한다면, 노예생활의 배경은 남중국인 송나라보다는 북중국인 금나라와 티벳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국가인 탕구트가 유력하다. 탕구트도 현재의 중국 영토에 있었으며, 한족문화의 영향이 큰 국가였으므로 당연히 중국에 해당된다고 봐야 한다. 국가의 설립과정을 보면 유목국가였지만, 나라가 돌아가는 방식은 정주문명국가에 가까웠다.
테무진은 초원을 통일하고 세계전쟁에 나서기 전까지 정주문명과 도시에 대한 이해도가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서 세계전쟁 초반에 굉장히 애를 먹었다. 특히 성벽을 공격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아무리 낮은 계층이었을지라도, 정주문명의 삶을 수년 이상 겪어본 사람의 경험치가 아니었다.
여하튼 이 의혹은, 몽골-러시아-일본 합작영화인 <몽골>에서는 테무진이 탕구트에서 오랜 시간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영화에서는 보르테가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구해온다. 물론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무엇보다, 위 가설들이 사실의 가능성을 가지려면 주객이 전도되어야 한다. 역사에 분명히 기록된 사건들이 픽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상의 가설들은 최근 반세기 동안 <몽골비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폐기된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다. 즉 테무진이 초원에 멀쩡히 살아있지 않으면 주르체데이와 쿠일다르가 그에게 귀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음의 사건도 일어날 수가 없다.
outro
망구트족과 우루유트족은 머릿수가 적어서 정치적인 영향력은 없었지만, 용맹하기로 이름난 집단이었다. 그래서 전투의 선봉에 서곤 했다. 테무진은 이들의 위력을 13쿠리엔 전투에서 톡톡이 맛보았을 것이다. 특히 망쿠트의 수장 쿠일다르는 겁없는(그리고 생각도 다소 없는) 열혈남아였다.
자신들에게 패배한 적에게 귀순하다니... 감동을 듬뿍 받은 테무진은
"이정도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주었다"
며 잔치를 열었다. 망하고 나서 잔치라니 좀 이상하긴 하지만, 흥겹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잔치를 하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가 터졌다. 테무진의 혁신과 전통 귀족들의 기득권이 충돌한 내부갈등이었다.
(12) 레저렉팅 테무진
1
(전편에 이어)손님맞이 잔치이니만큼 당연히 잔치의 주인공은 손님인 쿠일다르와 주르체데이, 그리고 뭉릭이다. 그러나 잔치중 터진 사고에 손님들은 낄 틈이 없었다.
몽골부족의 일파인 주르킨 씨족이 문제였다. 이들은 테무진을 칸으로 추대한 타이추, 사차 베키가 속한 씨족이었다. 테무진 무리의 혁신에 대해선 지난 두 편에 충분히 설명을 해 놓았다. 주르킨 씨족 입장에선, 기껏 쿠릴타이를 열어 칸으로 추대해놨더니 어디서 굴러들어온 줄도 모르겠는 잡것들(보르추가 대표적이다.), 천한 노예들(대표적으로 젤메)로 오르도를 구성해놓았으니 복창이 터질 만도 하다. 그래서 자신들의 쿠리엔을 따로 만들어 살았다.
그렇다고 할 말도 없다.
비합리적인 문화일지라도 오랫동한 행해진 전통이면 일종의 원칙이 된다. 그러니 노예출신 젤메와 다른 부족 출신 보르추를 2, 3인자로 앉힌 걸 보고 "얼씨구, 대장이랑 사이가 가까운 순서대로 권력이 커지네?"하며 원칙을 걸고 넘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테무진의 친동생 카사르, 카쥰, 테무게와 배다른 동생 벨구테이가 더 많은 실권을 쥐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테무진의 '능력제 인사' 원칙은 동생들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이 시기 벨구테이는 조직의 시라가말(거세마)을 관리했다. 거세마는 곧 군용마(軍用馬). 아무나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젤메와 보르추보다는 낮은 직급이었다. 하지만 친동생인 카사르보다는 중요한 직책이었다.
테무진은 친동생 중 온화한 성격의 셋째 카쥰을 가장 사랑했다. 테무진은 아들 중에서는 셋째 우구데이를 가장 사랑하게 되는데, 우구데이도 선량하고 부드러운 타입이었다. 확실히 테무진은 이런 성향의 사람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카쥰의 장점은 성격이 전부였다. 테무진은 카쥰에게 그 어떤 직책과 임무도 맡긴 적이 없다. 개인적인 친밀함과 공적인 책임을 철저히 구분한 것이다.
이런 철저함은 현대국가의 관료제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물며 대통령의 형님이 공공연히 '상왕전하' 소리를 듣는 대한민국에서는... 테무진의 뛰어남은 새로운 원칙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그 원칙을 끝까지 지킨다는 데 있다. 그래서 몽골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평생동안 문맹이었던 테무진을 '세련된 야만인'으로 부른다.
한편 테무진은 테무진대로, 사사건건 전통과 혈통을 내새우며 기득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귀족들을 조직의 암세포로 느꼈을 것이다. 테무진 일가가 속한 키야트-보르지긴 씨족과, 칸을 배출한 왕가(王家)인 주르킨 씨족 사이엔 서로에 대한 경멸과 불신이 팽배해 있었다.
테무진이 잘 나갈 때야, 귀족들도 팔자려니 하고 참아야 했을게다. 하지만 이 녀석, 지맘대로 막나가다가 그래 어떻게 되었나. 폼만 실컷 잡다가 자무카하고 붙어서 탈탈 털리지 않았나 말이다. 그렇다고 자무카한테 달려가서 몽골부족을 통치할 명분을 헌납하고 대접받고 살자니, 자무카는 순혈귀족 치노스족을 가마솥에 삶아 세상에서 지워버린 인간이 아닌가. 테무진한테 귀순하면서 미운털도 한 번 박혔고...
확실히 자무카는 무서운 인간이었다. 카리스마와 돌발적인 폭력성으로 무장한 이런 '전통적인' 영웅은 그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서 복종심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반면 테무진은 12세기의 초원이라는 폭력적인 세계의 군주답지 않게 합리적이고 공정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예측 가능한' 행동을 했다. 놀랍도록 세련된 소양이지만, 귀족들 눈에는 이게 만만한 걸로 보였다. 전투의 패배로 헐룬과 테무진의 위상이 떨어지자마자 주르킨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양반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2
잔칫날. 벨구테이는 잔치를 주관하고 있었다. 잔치도 챙기랴, 거세마도 관리하랴 이래저래 바쁜 날이었다. 초원 사람들에게 잔치는 놀이이기도 하지만 의식이기도 하다. 요즘의 우리들도 식사보다는 술자리의 절차가 더 복잡하다. 윗사람의 건배사라든지, 잔돌리기라든지, 몸을 돌려 잔을 가리듯이 하여 술을 마신다든지... 사실 정도와 경향에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술자리는 놀이와 제의 사이에 있다.
잔치에서 누가 먼저 술을 받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먼저 술을 받을수록 중요한 사람이다. 이날 잔치에서 술 따르는 직책을 맡은 '시키우르'라는 남자는 헐룬의 술잔을 가장 먼저 채웠다. 뭐, 당연하다. 헐룬은 무리를 이끄는 칸의 어머니이자, 전투시 중앙 본대의 사령관이었다. 이 모습을 본 주르킨족 어르신들은 심사가 뒤틀렸다. '칸'이나 '베키', '세첸'이 아니라 고작 '바하두르(용사)'였던 예수게이의 미망인이 자신들을 앞지르고 먼저 술잔을 받다니...
헐룬을 표현한 그림
하지만 할 말은 없다. 그러던 차에 시키우르가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다.
테무진을 칸으로 추대한 주르킨 귀족 중 하나인 사차 베키. 그의 아버지 '소르카토 주르키'에게는 세 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 사차 베키의 친어머니인 '코리진', 둘째부인인 '코오르친', 그리고 마지막 부인인 에베게이.
시키우르는 부인들의 순서를 헷갈리고 말았다. 그는 웃사람인 코르진과 코오르친이 아니라 에베게이의 술잔을 먼저 채웠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화를 풀 핑계를 잡은 소르카토 주르키의 첫째와 둘째 부인은,
"어찌하여 서열이 높은 우리를 먼저 따르지 않고 아우 먼저 따르느냐?"
라고 소리치며 시키우르를 디립다 팼다.
남의 집 부인 서열을 어떻게 한 눈에 알아본단 말인가? 또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다면 그저 한 마디 하면 되는 일이다. 술을 뭐 공간이동하듯이 광속으로 따르는 것도 아니고, 실수를 하기 전에 "아, 옆에 앉아계신 형님들 먼저 따라드려야지."하면 되는 것이다. 꼬투리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초원 여자들은 드세다. 남자들도 여자의 권리를 무척 인정하는 편이다. 납치되어 약탈혼을 당하던 전쟁의 전리품이 되어 강제결혼을 당하던, 일단 부부가 되면 집안에서 상당한 권리를 행사한다. 그러니 칸의 부인이나 며느리가 나이가 들면, 웬만한 전사들은 그 앞에서 꼼짝도 못한다.
그리고 나이든 여자가 때려도 맞으면 아프다. 불쌍한 시키우르가 뭘 어쩌겠는가? 시키우르는 울었다.
"엉엉~ 예수게이님께서 돌아가셨다고 제가 이렇게 맞아도 되는 겁니까?"
테무진의 반응은?
"안 되지 씨바, 내가 있는데!"
그리하여 키야트-보르지긴과 주르킨, 두 집안 사이의 분위기가 급 썰렁해졌다.
"할머님들,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아니 테무진 칸, 저늠섀키가 잘못해서 잘못한 놈을 손봐준 건데 뭐가 어째서 그러오?"
"말로 해도 될 걸 꼭 그리 해야겠소? 지체높으신 분들이라 존중해 드렸는데, 내 부하에게 손찌검을 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오."
"어이구 얘들아 이리 좀 와바라아... 우리가 이런 꼴을 다 당한다아아..."
"이거뜨리! 우리 주르킨 사람들이 지금껏 꾹 참고 자무카 대신 테무진의 보르지긴을 따라줬는데 이젠 만만해보이나보지? 테무진이 누구 덕분에 칸이야? 우리가 추대해준 거잖아!"
"이런 미친 것들을 봤나. 조상 잘만났다고 아주 눈에 뵈는 게 없구만?"
그런 와중에 사건이 추가로 터졌다.
시라가말떼를 지키던 벨구테이. 그런데 저어-기 보니, 웬 주르킨 녀석 하나가 와서 말의 고삐끈을 쓱 풀어가는 게 아닌가? 초원에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수제 DIY 고삐끈이다. 값으로 치면 얼마 나가지 않았을 지 몰라도, 이런 물건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는 지 모른다. 게다가 군용마를 다루는 물건이니 공도 더 많이 들었을 터.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에 속한 사람들 중 뇌세포 활동이 둔한 이들은 내것과 남의 것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에 들기 때문에 갖는다." 피해자 입장에서야 날강도짓이지만, 귀족에게는 나름의 습관이 있다. 초원의 귀족도 다른 문화권의 귀족들처럼 잡다한 일을 하지 않았다. 이 잡다한 일에 고삐끈 만드는 것도 포함되었을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초원에서는 장인을 천하게 쳤다. 노예출신인 젤메와 수부테이 형제의 집안은 대장장이 집안이었다. 무기의 재료인 철 생산력이 군사력과 직결되는 초원에서, 철을 다루는 사람의 처지가 그정도였다. 그러니 주르킨 귀족들은 고삐끈 정도는 당연히 누군가가 만들어서 바치는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도둑질이 아니라 '징발'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징발이나 도둑질이나 그거나 그거지만.
하지만 그 주르킨 사내의 행동은, 평등을 지향하는 테무진 조직의 패러다임과 맞지 않았다. 벨구테이는 당연히 곱게 넘어가지 않았다.
"거기 잠깐 스톱. 지금 뭐하는 거?"
"응? 아... 고삐끈이 예쁘고 튼튼해 보이길래."
"얼씨구, 예쁘고 튼튼하면 니꺼냐? 당장 내려놓지 못해?"
"거 씨바, 고작 끈 한 줄 가지고 별 지랄이네."
"뭐 새꺄? 그렇게 별거 아닌 거면 니가 뚝딱 만들어 쓰지? 내가 진짜 지랄하는 거 함 보여주까?"
테무진의 친동생 카사르도 힘세고 성격 거칠기로 유명했는데, 벨구테이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한 주르킨 사내가 벨구테이 앞을 막아섰으니... 그의 이름은 '부리'였다.
3
부리는 초원 최고의 씨름꾼으로, 평생동안 무패를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부리는 당연히 도둑질한 자기네 씨족 남자 편을 들었다. 말싸움을 하다가 짜증이 난 벨구테이는 웃옷을 풀어 어깨를 드러내보였다.
"좋은 갑빠 놔두고 뭐하러 말싸움을 하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씨름이나 스모, 레슬링 등 유술계 격기(잡고 비틀고 던지고 누르고 꺾고 넘어뜨리는 싸움법)를 할 때는 신체를 노출시키는 전통이 있다. 또 벨구테이는 말싸움이 길어지면 씨름 대결을 신청해 논쟁을 끝내는 습관이 있었다. 승자의 뜻대로 하자는 거다. 벨구테이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몽골의 씨름꾼들
한마디로 한 판 붙자고 웃짱을 깐 벨구테이, 초원의 챔피언에게 도전을 한 것이다. 이 자심감을 보면 벨구테이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미친 새끼가, 어디서 이딴 게 감히."
부리는 벨구테이의 도전에 응하기는커녕, 칼을 뽑아 벨구테이의 어깨를 찍어버렸다! 본래 씨름이든 뭐든, 경기란 동등한 사내끼리 하는 것. 부리는 벨구테이가 자신에게 도전할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벨구테이가 실력상 자기에게 도전할 깜냥이 안 된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질을 하는 건 너무 심각한 행동이었다.
부리는 보르지긴 혈족의 전사가 감히 주르킨족 전사에게 대등하게 살을 맞대고 하는 스포츠를 도전할 자격이 안 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자기 나름대로는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칼까지 뽑아들 이유가 없다. 어쨌든 칼에 맞았으니 피가 나는 건 당연한 일. 벨구테이가 부리의 칼에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목격한 테무진이 한걸음에 뛰어왔다.
"벨구테이! 괜찮냐! 씨바 이 피좀 봐!"
"아 형님 전 괜찮습니다. 그냥 살짝 긁힌 것 뿐이에요. 보세요."
"긁히긴... 피가 철철 나는구만! 내 동생 건드린 새끼가 누구야!"
동생의 부상에 뚜껑이 열린 테무진은 노발대발했다.
"오늘 주르킨새끼들이랑 결판을 내야겠다. 다덜 모여봐! 야! 참지마!"
"형! 별일 아니라니까! 오늘처럼 좋은 날 이렇게 별거 아닌 일로 잔치를 망쳐서야 되겠어?"
이 대목에서 벨구테이는 테무진보다 냉정한 판단력을 보인다. 테무진 무리는 13쿠리엔 전투의 패배로 살이 떨어져나가고 뼈대만 남은 상태였다. 여기서 분열되었다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상황이었다. 기분 나빠도 일단 참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우기, 잔치의 주빈은 승자 자무카를 버리고 와준 귀한 동료들이다. 잔치가 이렇게 개판이 되는 동안 손님인 쿠일다르와 주르체데이가 얼마나 민망하고 불편했겠는가? 아마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테무진은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초원에는 무기를 휴대한 채로 잔칫상에 앉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주사'가 폭력사태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룰이었다. 술기운도 올랐겠다, 열이 받았으니 싸움은 해야겠고, 그런데 무기는 없고... 그래서 역사에 보기드분 코미디가 연출된다. 키야트-보르지긴 일가와 주르킨 일가는 잽싸게 꺾은 나뭇가지와 국을 젓는 국자를 들고 패싸움을 벌였다(잔치는 보통 강가에서 하고 강가엔 나무가 자란다.).
이런 걸 보면 관습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만취한 채로 흐느적거리며 나무토막을 휘둘렀으니, 이래서는 사망자는 커녕 중상자도 나오기 힘들다. 기껏해야 찰과상과 타박상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싸우던 당사자들은 비장했을 테니, 생각할수록 가관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전투'에서 키야트-보르지긴 씨족은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코리진과 코오르친 부인을 사로잡은 것이다. 술자리가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 보여주는 진상의 모범사례다(정말 전쟁을 할 심산이었으면 무기를 챙겨들었을 것이다. 잔치에 지참하지 않을 뿐이지, 무기를 몇 킬로미터 밖에 짱박아 두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차 베키님! 저 천한 것들이 베키님의 어머님과 작은어머님을 사로잡았습니다!"
"뭬야? 두 분이 포로가 되었다고?"
(다시 말하지만 나뭇가지를 불끈 쥐고 한 대화다.)
"그렇습니다. 큰일입니다. 술 취한 놈들이 두 분께 못된 짓이라도 하면..."
"씨바, 그러면 안 되지."
그리하여 두 그룹의 사내들은 종전협상(?)에 들어갔다. 다행히 술들이 좀 깼는지 협상은 테무진 측이 두 귀부인을 돌려주고 화해하는 것으로 끝났다.
"자자, 별일 아니랍니다. 뭐 남자들끼리 싸우다가 피좀 볼 수 있지 뭐... 시키우르도 뭐 사람인데, 실수할 수도 있고 실수하면 몇 대 맞을 수도 있는거 아니겠수? 이왕 벌린 판인데 잔치나 계속합시다!"
이렇게 해서 와해 직전의 무리는 가까스로 살아났다. 특히 가장 화가 났지만(나중에 분노를 풀 기회가 생긴다.) 의연하게 행동한 벨구테이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테무진과 그의 형제, 심복들은 이 분노를 참는데 대단한 인내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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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역사를 디비다 보면 '옹깅 칭상'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뭔 이름이 이리도 동글동글한가 싶은데, 이거 원래는 한자다. 한자를 모르던 자신들 입에 맞게 발음한 것을 서역 지식인들이 자기네 알파벳으로 표기해 남은 명칭이다.
옹깅 칭상의 '칭상'은 재상, 즉 국무총리급 관리를 뜻하는 승상(丞相)이다. 글타. 졸라 높은 관직인 것이다. 울나라에서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으로 불렀듯이 금나라에서도 걍 승상이라고 한게 아니라, 나름의 명칭을 붙였다. 왕경 승상(王京丞相)이 옹깅칭상의 공식 관직명이다.
테무진 시절에 초원 사람들이 옹깅칭상이라고 부른 인물의 본명은 요즘의 중국식으로 부르면 완웬 샹, 우리 식으로는 완안 양(完顔 襄)이다. 완안은 금나라 황실의 성이다(뜻풀이를 해보면 자뻑스럽게도 '완벽한 얼굴'이라는 뜻이다.). 금나라 태조의 이름이 '완안 아골타(完顔 阿骨打)'다. 초원 사람들은 아골타의 이름을 따서 금나라 황제들을 죄다 '아구다'라고 부르기도 했다.
범가죽 위에 편하게 앉아계신 완안 아골타
금나라 황제를 '알탄 칸'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황금 칸이란 뜻이다. 여진족(만주족)은 예로부터 황금을 숭배하고 금색을 길하게 쳤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여기서 문득 신라와 김씨(金氏) 얘기를 하고 싶지만 얘기가 너무 길어지므로 걍 넘어가자.). 나라 이름도 번쩍번쩍, 금(金)나라 아닌가.
당시 금나라는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해도 될 만한 나라였다. 그 나라 황실의 일족이자 3인자인 왕경승상(한자문화권의 전통적인 관료편제는 재상을 3명 둔다. 조선도 좌-우-영의정이 있었던 것처럼. 왕경승상은 좌승상이었다. 중앙이 첫째고, 좌가 둘째, 우가 셋째인 것이 원칙이다. 즉 좌의정은 황제와 중앙 재상의 뒤를 이어 국가의 3인자다.). 전 세계 남자사람을 통틀어도 20위권 안에는 거뜬히 드는 권력자다. 당시의 스웨덴 같은 나라는 자기 일년치 연봉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을 인간이다. 물론 스웨덴의 존재를 알았다면 말이다.
황제를 대행해 북방 초원의 안보를 관리하던 왕경승상은 최근에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이래저래 설명하면 독자열분덜이나 본 기자나 피곤하다. 이 대목은 대화로 넘기자. 참고로 이 때의 금나라 황제는 장종(章宗), 본명은 완안 경(完顔 璟)이었다.
"영명하시고 위대하시며 후덕하시고 기타등등하신 황제폐하, 북방에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국경 쪽인가? 만리장성은 문제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보다 좀 더 북쪽에요. 풀밭 있는데."
"아, 거기 거지들이 말타고 댕기는 동네? 거긴 원래 니가 관리하던 데 아냐?"
"네 그게... 관리가 좀 안 되네요."
"쯧쯧... 그런 승냥이떼들은 신경좀 써서 제때제때 밟아줄 것이지."
"뭐 일단 죄송함다... 상황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원래 우리 금 제국이 동쪽에 타타르 놈들을 지원했잖아요. 옛날에 패악질을 부리던 몽골놈들도 관리하랴, 다른 부족들도 밟아주랴... 네 글자로 표현하면 이이제이라고... 아시죠?"
"몽골 그넘들이 짐의 선조님들을 좀 괴롭혔지. 그런데 몽골 것들은 이제 타타르 애들 등쌀에 기를 못 펴고 있지 않아? 왜 그 한중간에 있는 커레이트란 놈들도 타타르 애들땜에 함부로 못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랬읍죠. 그랬는데... 그 타타르 놈들이 오냐오냐해주니까 간뎅이가 부었습니다. 글쎄 배를 좀 채워주니까 개가 주인을 뭅니다. 이놈들이 얼마 전부터 우리 국경을 침범해 약탈을 하고 있는게 아닙니까?"
"이런 잡것들을 봤나, 하여간 북쪽에서 말이나 타고 댕기는 것들은 사람취급을 해 주면 안 돼."
"저기 근데요 폐하, 우리 황실도 원래는 북쪽에서 말타고..."
"씨꺼.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역시 이이제이죠 뭐. 오랜 시간 취득한 정보에 의하면 커레이트의 수장인 '토그릴'이란 친구가..."
"짐이 그런 오랑캐놈 이름까지 알아야 하나?"
"네네, 하여간 그 친구가 타타르하고 사적인 원한이 있는데다가 그 동네에선 세력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해서 이번엔 그 친구를 지원해서 타타르 놈들을 좀 잡아볼까 하구요. 웬만하면 지들끼리 싸우게 하면 좋은데, 우리가 타타르 놈들을 너무 살찌웠어요. 우리 군사가 출동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뭐 폐하도 아시다시피, 노천에서 말타고 댕기는 것들은 조금만 관리를 안 해주면 금세 강력한 칸이 나타나고 세력을 불려서 중국을 침략하지 않습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선조님들도 그렇게 해서 중국에 왕조를..."
"씨꺼. 그래서 계획이 뭐야?"
"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번에는 제가 직접 군사를 몰고 출동해야겠습니다. 일단 전장이 초원인 만큼 기병 위주로 군대를 편성해야 할 것 같고요. 필요한 전쟁 물자랑... 구체적인 것은 여기 제 비서들, 흠흠 아니 제가 밤새워 작성한 보고서를 보시고 결재를 해주시면 되고요..."
"음, 오케. 이봐 내시! 옥새 가져와!"
4.5
장종과 왕경승상의 상황판단은 정확했다. 중국과 한반도에 있던 정주문명 왕조의 입장에선 '오랑캐' 관리가 안보의 최우선 과제였다. 물자를 지원받던 기마민족들이 어느 순간 벌떼처럼 일어나 강력한 세력이 되는 건 동아시아 역사의 흔한 패턴이다.
청나라의 태조 누르하치도 여진족(만주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오랫동안 비굴함을 연기해야 했다. 그는 조선 변방의 지방관과 장수들에게 내츄럴 본 병신으로 통했다.
"나으리, 우리 가난한 오랑캐놈들 좀 살려주십시오. 쌀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보리라도 좀 남으면... 아 저번에 국경에서 강도사건이 발생했다구요? 그거 우리가 한 거 아닌뎁쇼? 아니 우리가 뭘 믿고 무슨 깡으로 감히 조선 사람들을 해친답니까? 전 힘도 없지만 용기도 없는 놈이에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저 근데 먹을 건 언제 주시는... 먼저 영명하시고 위대하신 조선의 주상전하가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하라굽쇼? 어이쿠 삼백배라도 하겠슴돠~"
"햐, 이놈 갖고 노는 재미가 쏠쏠하네. 그리고 여진족 놈들 말야 아무리 오랑캐라도 그렇지, 대체 얼마나 상태가 안 좋으면 이런 놈이 칸 자리를 해먹는거야?"
누르하치의 초상
명나라 관리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물자를 비축하고 백성의 머릿수를 유지한 누르하치. 그러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변경에서 여진족을 억제하던 조선과 명나라의 군사력에 공백이 발생하자 그 틈을 타 부족을 규합하고 북방을 휩쓸었다. 그 결과 명나라는 멸망했고, 조선은 인조의 삼배구고두라는 희대의 치욕을 당했다(이때의 여진족 군주는 누르하치의 아들인 청나라 태종이다.).
어쨌든 테무진 시절의 여진족은 북중국의 주인이었다. 당연히 중화문명의 논리로 초원을 관리했다. 이렇게 외래민족 왕조의 조정이 중국문명의 대변자가 되는 것 또한 동아시아 역사의 흔한 패턴이다.
5
왕경승상이 이끌고 온 수만 명의 대부대는 초원 전체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때 테무진은 30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에 있었다. 34살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20대에 자무카에게 패배한 후, 테무진은 아직 완전히 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왕경 승상은 테무진의 존재를 몰랐다. 사실 대제국의 수뇌부인 그의 입장에서는 한줌거리 부하들을 이끌고 다니는 초원의 칸을 알아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곧 알게 된다.
"어이쿠~ 아구다께서 보내신 귀한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까지 행차하시다니... 자 여기 아이라크(마유주)라도 한 잔 하시면서 말씀을..."
"윽... 뭐냐, 이 비리고 끈적한 정체불명의 액체는? 흠흠, 뭐 자네도 아다시피 이건 자네와 커레이트족에 하늘이 준 기회네. 이번 기회에 타타르 놈들을 꾹 밟아주고 어깨에 제대로 힘 주고 살아보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저 근데, 소개할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응? 누군데?"
"테무진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가 운이 안 좋아서 재능만큼 잘 나가질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아주 또릿또릿한 사냅니다. 저하고는 관계가 아주 좋지요. 이 녀석을 전투에 끼워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머릿수 느는 데 나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도움이 됐으면 됐지 짐이 되진 않을 겁니다."
금나라의 이이제이와 함게 토그릴의 소(小) 이이제이도 작동하기 시작한다. 13쿠리엔 전투 패배의 늪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테무진. 그를 도와주어야 자무카를 견제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세력은 비등할수록 좋다.
"아 뭐... 테무진이라고? 데려다 쓰던 말던 자네 맘대로 해. 어쨌든 우리는 군대를 둘로 나눠서 타타르를 공격할 거니까. 내가 지휘하는 금나라 군대가 본대다. 너희는 속도가 빠른 기병들이니까 기동타격을 맡는다. 총사령관은 당연히 나고... 테무진이라는 친구는 니가 쌈싸먹든 뭘 하든 맘대로 해."
테무진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호랑이 새끼를 키운다는 말이 있다. 이 전쟁으로 테무진은 물질적인 기회뿐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보는 '소프트웨어'까지 장착하게 된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일이 흘러가는 모양새를 살펴보자.
테무진 혼자라면 결코 타타르와 대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금군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단 숫자가 많다. 그리고 무장이 훌륭하다. 쇠가 귀한 초원과는 차원이 다른 무장을 하고 있었을 터. 사실 상식적으로 보면 무장은 복잡하고 무거울수록 좋다. 하지만 기동력에 문제가 생긴다.
지리적 특성상 금나라 군대도 100% 기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왕경 승상은 초원의 사정에 밝은데다가 기마민족의 후손이었다. 그가 모시던 황제인 장종은 선조들의 전통을 멀리하고 자기가 한족인양 살고 있었지만, 이는 장종이 특이한 경우다. 기마민족 왕조는 중국을 정복하고 나서도 정기적인 사냥이나 기병훈련 등을 통해 전통적인 북방의 전술을 잊지 않으려 했다.
물론 한족으로 이루어진 보병이 있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징집된 농민들이 틀림없는 보병은 그야말로 화살받이다. 적과 맞부딛혀 기병이 기동타격할 조건을 세팅해주는 몸빵 부대다. 어쨌든 여러가지 이유로, 금나라 군대는 초원에서는 움직임에 제한이 있는 '무거운' 부대였다.
이 약점을 토그릴과 테무진이 해결하면 된다. 금군이 한 쪽에서 타타르 군대를 압박할 동안 토그릴과 테무진의 기병이 측면과 배후를 쳐서 포위섬멸하는 것이다(몽골초원 전사들의 무장과 전쟁방식은 나중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6
테무진에게는 전쟁의 명분이 있었다. 타타르족은 금나라의 위세를 등에 업고 몽골족을 숱하게 괴롭혀왔다. 덕분에 금나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몽골을 관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타타르족은 아버지 예수게이를 독살한 원수가 아닌가. 타타르는 몽골족이 분열되기 전, 온 부족의 칸이었던 암바가이 칸을 비겁한 방법으로 사로잡아 금나라에 넘긴 적도 있지 않은가. 그 때문에 암바가이 칸은 목마에 못박혀 죽지 않았나 말이다.
그래서 테무진은 '전쟁선언문'을 고심해 만들 필요가 없었다.
"옛날부터 타타르 놈들은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을 시해한 자들이다. 원수의 백성들이다. 마침 금나라 군대가 타타르 놈들을 몰아붙이고 있으니 이제 이 기회에 우리가 협공하자!"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금나라도 원수이긴 마찬가지다. 테무진은 금나라와의 원한은 쏙 빼놓고 전쟁을 선포했다. 테무진은 자신의 울루스를 소집했다. 자무카-테무진 연합군이 메르키트를 물리쳤을 때처럼,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각 집단의 군사들이 집합하는 것이 초원의 전통이었다. 그런데...
주르킨 씨족의 전사들이 집합하지 않았다.
"이보게 테무진, 이 친구들 왜 안 오는 건가?"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왕경승상의 군대와 타타르는 본격적인 회전은 하지 않고 있었다. '무겁고 느린' 금군은 '올자 강'줄기를 따라 타타르를 압박하면서 계속해서 상류로 몰아가는 중이었다. 올자 강은 오논 강과 케를렌 강 사이에 있는 강이다. 이 강의 상류는 테무진과 커레이트의 '홈그라운드'였다. 정교한 전술적 이동이었다.
타타르는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하긴 <몽골비사>를 보면 금군과 타타르군이 한창 싸우고 있는데 테무진과 토그릴이 난데없이 금군 편을 들어 즉석에서 연합군이 결성되었다는 식으로 되어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이렇게 기록된 이유는 테무진 수뇌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소문이 빠른 초원에서 타타르를 잡기 위해 왕경승상과 테무진, 토그릴은 은밀히 소통하면서 전략을 수립했던 것이다.
그런데 금군과 타타르가 계속 이동중인 이때 주르킨 전사들이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있으니...
이것들이 왜 안 오지?
"더 이상 지체할 틈이 없네. 어서 옹깅칭상의 금나라 군대와 합류해야 하네. 그 양반한테 밉보이면 이번 일은 끝이야. 게다가 올자 강 최상류엔 산이 있질 않나. 타타르 놈들이 산 속에 들어가버리면 골치가 아파져."
"칸 아버지(테무진은 아버지의 안다인 토그릴을 이렇게 불렀다.),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안되겠습니까? 머릿수 하나가 아쉬운 판인데, 주르킨 놈들이 싸가지는 없어도 싸움터에서는 용맹하기로 소문난 인간들 아닙니까"
이 말은 사실이었다. 주르킨 남자들은 A급 전사로 통했다. 테무진과 토그릴은 주르킨 부대를 무려 6일이나 기다렸다. 그래도 주르킨은 오지 않았다.
"테무진,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네. 어서 옹깅칭상과 합류해야 하네!"
테무진은 전쟁에서 한 번 졌으므로, 그의 지휘를 받는 일을 거부한다는 거였다. 테무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또 한번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이 천지구분 못하는 귀족새끼들... 어쩔 수 없지요. 이대로 금군과 합류합시다."
"잠깐, 그 전에 군대 편성 좀 바꾸고."
"네? 편성을 바꿔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테무진은 토그릴에게 (전 기사인 '13익 전투'편에 설명했던)십진법으로 군대를 편성하는 법을 배웠다. 그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금(金)-커레이트-테무진 연합군 vs 타타르> 전투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국군인 금나라 군대는 현대군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편제를 갖고 있었다. 금군의 전략에 맞춰서 함께 전투를 하려면, 일시적이나마 십진법으로 군대를 재편해야 했으리라. 왕경승상의 전략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려면 '쿠리엔'으로는 안 된다.
십진법 체계는 테무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머리로만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다르다. 물론 당장은 전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왕경승상과 합류한 토그릴-테무진 연합군은 타타르족의 야영지로 신속하게 이동한다. 타타르는 독립적인 국가 단위에 근접한 막강한 부족이었다. 한때 초원에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던 타타르족은 종족으로 따져도 거대한 집단이었다. 예를 들어 커레이트는 인종적으로 따지면 몽골계(몽골'부족'과 헷갈리지 말자. 인종 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위구르계, 투르크(돌궐)계 등이 섞인 혼성부족이었다. 나이만은 위구르 혈통이 좀 더 많았다고 보면 된다. 타타르는? 그냥 타타르족이었다. 독립종족인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타타르는 '부족연합국가' 수준이었다. 테무진과는 까마득한 격차다. 하지만 금나라는 제국이다. 타타르는 제국군의 세련된 전술에 당해내지 못했다. 타타르도 금군의 이동과 목표를 몰랐을 리 없고, 따라서 최선을 다해 전쟁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왕경승상의 군대가 한 쪽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테무진-토그릴 연합군이 다른 쪽을 치자 타타르는 꼼짝없이 포위되고 말았다. 알렉산더 대왕 식으로 말하면 '망치와 모루'였다. 금군이 모루, 테무진-토그릴 군이 망치인 셈. 퇴로가 막히고 섬멸이 시작되자, 쿠리엔들이 뒤섞여 사방팔방으로 말을 달리며 싸우는 전술에 익숙한 타타르 전사들은 수숫대처럼 거꾸러졌다.
정주문명의 군대는 적당한 장소에서 회전(會戰)을 벌여도, 병사들의 고향땅은 거기 그대로 있다. 그러나 땅의 경계가 없는 초원의 유목민들은 살림살이와 가축 등 '울루스' 전체가 군대를 뒤따라다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신들의 야영지에서 '방어전'을 하던 타타르는 자연히 군대와 울루스가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군대가 포위섬멸되다보니 울루스도 역시 포위당하게 되고, 따라서 타타르족은 심각한 약탈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력을 다해 포위를 빠져나간 타타르 수뇌부와 전사들은 기어이 올자 강 상류의 산에 요새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테무진-토그릴 연합기동타격부대는 타타르가 숨돌릴 시간을 주지 않고 요새를 넘었다.
왕경승상의 군대야, 초원의 세력균형을 위한 타타르 토벌이 목적이었지만 토그릴과 테무진의 입장은 달랐다. 유목민 전사들에게 약탈은 중요한 사업이었다. 특히 테무진에겐 더욱 그랬다. 테무진의 작고 가난한 조직은 약탈품을 빨리 만나기 위해, 그리고 금나라와 커레이트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받기 위해 앞장서서 적진으로 침투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타타르의 칸 '메구진 세울투'가 사살되었다. 승전에 방점을 찍는 일이었다. 누가 죽였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테무진과 그의 전사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테무진이 다른 사람도 아닌 메구진 세울투의 개인 소장품을 약탈한 걸 보면 말이다.
그러나 요새는 괜히 만드는 게 아니다. 적이 요새를 넘을 동안, 오히려 아군은 요새를 비우고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새에 약탈품을 남겨놓는 건 상식이다. 적이 약탈을 시작하면 추격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타타르 전사들, 머리 잘 썼다. 타타르족은 비참한 패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왕족과 전사들은 설욕을 다짐하며 안전한 곳으로 달아났다. 힘들게 울루스를 재건한 타타르족은 훗날 다시 한 번 테무진과 맞붙게 된다.
7
테무진을 위시한 가난한 몽골 전사들은 타타르의 물자에 깜짝 놀랐다. 대표적인 것이 메구진 세울투의 은제 요람과 진주를 꿰어 만든 담요였다. 세상에 요람을 모두 순은으로 만들다니! "쇠로 된 등자 하나만 있어도" 부자 행세를 하던 몽골 전사들의 기분이 어땠겠는가? 게다가 죽거나 사로잡한 타타르 사람들은 화려한 장신구를 달고 있었다. 그 중 상당수가 금붙이였다.
초원 사람들은 부족마다 혈통의 차이가 있을 뿐, 문화적으로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타타르족의 문화는 다른 초원 사람들과는, 비록 약간이지만 다른 면이 있었다. 타타르족은 코걸이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 코걸이를 금으로 많이 만들었던 것이다.
테무진은 이번에도 부모 잃은 고아를 발견했다. 이 타타르 소년은 황금 장신구와 최고급 의복을 걸치고 있었다. 테무진은 야영지에 복귀했을 때 소년을 어머니 헐룬에게 맡겼다. 헐룬도 아이의 행색을 보고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이 애... 정말 있는 집 자식이로구나."
헐룬은 아이에게 '시기 코토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양자로 삼아 키웠다. 중요한 이름이다. 꼭 기억하자.
언제나 한 집단이 굴러가는 방식은 경제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몰락한 왕조의 마지막 군주>들의 값싼 품성과 부족한 능력에 대해 많이 보고 듣는다. 그러나 사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 국가의 몰락은 경제 시스템의 붕괴와 맥을 같이한다.
초원 칸들의 존재이유는 백성들에게 물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있다. 기실 전쟁도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테무진은 자신을 따라준 사람들에게 비로소 제대로 된 보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테무진은 평등한 분배를 지향했다. 당시의 초원에서는 그야말로 대혁신이었다. 원래는 계급이 높을수록 먼저 약탈품을 차지할 권리를 누렸다. 테무진은 위험을 무릎쓰고 희생을 각오하는 '핏값'을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했는데, 이는 집단 구성원 즉 '사람의 가치'를 기본적으로 똑같이 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평등한 분배를 위해서는 먼저 약탈의 룰부터 달라져야 한다. 본래 약탈이란, 내 손에 집힌 물건(이나 가축, 혹은 여자)을 내가 갖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테무진은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내가 약탈품을 집어도 그건 내 게 아니다. 그건 아직 내가 속한 집단의 것, 즉 공공의 재산이다. 전사들이 취득한 것들을 모두 모아서 일정한 값어치로 환산한 후, 구성원 각자에게 재분배하는 것이 테무진의 방식이었다. 물론 지위(출신계급이 아니라 직책)가 높거나 더 많은 위험을 무릎쓰거나, 눈에 띄는 전공을 올린 사람은 더 많은 몫을 받는다. 하지만 물자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게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당췌 분배할 게 있어야 평민층과 하층민들이 혁신의 가치를 알 거 아닌가. 이제는 분배할 게 생겼다. 테무진은 자신의 무리에 물자를 끌어옴으로써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분배정책으로 대다수 부하 및 백성들을 감동시켰다.
어느 사회건 귀족은 소수다. 테무진의 정책은 초원의 '대중'들을 자극했다. 그는 점점 귀족층을 거치지 않고 대중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아나간다. 정치적으로도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테무진, 드디어 재기에 성공했다.
8
압도적인 승리로 전투가 끝나자 왕경승상이 크게 만족한 것은 당연한 일. 적의 칸까지 죽였으니 그야말로 완벽했다. 왕경승상은 당분간 커레이트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토그릴의 지위를 특사 자격으로 황제를 대신해 공식적으로 인증해주었다.
"자네는 앞으로 우리 금 제국의 제후(諸侯)일세. 황제폐하의 신하다, 이 말이야. 황제 밑에 왕이 있으니 자네도 왕이 되어야겠군. 임금 왕(王) 자를 내려주겠네. 자넨 이제부터 '왕 칸'이야."
"헉... 이렇게 감사할 데가! 그런데 승상님, '칸'이 이미 왕이란 뜻인데 호칭이 '왕 왕'이 되는 건 좀..."
"더블로 왕 하면 좋은 거지 뭐. 왜, 싫어?"
"싫을리가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자자, 그럼 황제폐하가 있는 곳을 향해 감사와 충성을 담아 절부터 하라구."
초원 사람들이 왕을 '옹'이라고 발음하면서, 토그릴은 '옹 칸'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그건 그렇고, 그 테무진이란 친구 아주 쓸만하더군."
"그러잖아도 그 친구가 승상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가난한 북방 유목민들에게, 한자로 표현된 언어는 문명과 표준의 상징이었다. 테무진은 정말로 한자식 명칭을 얻고 싶었다. '직함'에 대한 인간의 순진한 욕망도 있었겠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더 컸다. 중국에서 수여받은 한자식 명칭은 그 사람이 어느정도 국제적인 인증을 받았다는 증명서다. 그래서 테무진은 왕경 승상을 조른다.
"어, 수고했네. 그래 젊은 친구가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저, 웬만하면 저도 한자 직함 하나 내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엥?"
왕경승상은 듣도보도 못한 젊은이에게 메이드 인 차이나 도장을 찍어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봐, 우리는 천부장(천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장교)부터 한자이름 내리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게다가 한자이름은 본인이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 황제폐하의 허가가 나야 하는 거라구."
"그래도 뭐 아무거나 직함 하나라두... 아까 토그릴 님한테는 잘만 주시더만요..."
"에휴... 그래 너도 수고 많이 한 거 잘 알아. 보니까 열심히 싸우드만. 내가 너 이쁘게 봤어. 에이 선심쓴다, 승상 직권으로 직함 하나 줄께. 너 '자우트 코리' 해라."
'자우트'는 숫자 백(百) '코리'는 대장이라는 뜻. 즉 자우트 코리는 백부장이었다. 그런데 이거, 한자가 아니라 초원 말이다. 금나라 조정은 '천부장'도 안 되는 미천한 지위를 한자식으로 불러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승상님, 제가 이끄는 전사의 머릿수가 백이 훨씬 넘는데 어떻게 제가 자우트 코리를 합니까. 이래뵈도 이 동네에서는 칸이라구요! 뭐 제후로 인정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그냥 선심 쓰시는 김에 천부장으로 훅! 올려주시면 안됩니까?"
왕경 승상은 귀찮았던지, 대화를 끝내기 위한 제안을 한다.
"알았어 알았어, 일단 자우트 코리 하고 있어. 내가 북경에 가서 황제폐하게 함 말씀드려볼게. 그려그려, 잘 말씀드린다니깐. 황제폐하 허가가 나면 알려줄 테니까, 그때부터 천부장 하면 되잖아? 응? 어때?"
"네네. 그럼 꼭 좀 부탁합니다."
그러나 테무진이 메이드 인 차이나 천부장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왕경승상이 왜 그런 하찮은 일에 신경을 쓰겠는가? 국경을 넘기도 전에 잊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편 우리의 테무진은 자우트 코리 직함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다. 천부장만은 못해도 없는 것보다는 낫잖은가? 그는 심지어 자신의 적들에게 이렇게 일갈한 적도 있다.
"네 이놈들! 나 자우트 코리야!"
이름뿐이긴 하지만 어쨌든 '칭기스칸'이라는 거한 호칭을 받아본 사람이 저런 말을 정말로 한 거다.
하지만 테무진이 헤벌레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9
초원의 북방 구석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써온 테무진은 왕경승상의 금나라 군대와 함께한 작전에서 중요한 것들을 학습했다. 시야라는 게 있다. 테무진은 좀처럼 넓은 시야로 정세를 관찰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이제 이전까지는 선명히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테무진은, 한 번 경험한 것을 잊지 않는 인간이었다.
첫째, 중국의 부(富). 중국과 느슨하게 관계했을 뿐인 타타르가 얼마나 부유한지 알게 되었다. 물론 중국의 입장에서는 타타르도 거지였으니, 대체 중국은 얼마나 풍요롭다는 말인가. 유목민들에게 중국과의 관계는 물자공급에 매우 중요했다.
둘째, 테무진은 중국이 초원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잠시나마 중국 조정의 시야에서 초원 정세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이제이의 실체를 확연히 알게 된 것이다.
셋째, 자연히 옹 칸도 얼마든지 소(小)이이제이 전략을 펼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테무진과 옹 칸이 결별하려면 아직 오랜 시간이 남았다.
네 번째로 테무진은 금나라 군대가 개활지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테무진만 본 게 아니다. 그의 부하들-젤메, 보르추, 수부테이 등등-도 함께였다. 이들은 훗날 금나라 군대와 맞서 싸우게 된다. 이들은 초원 바깥의 군대는 움직이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위에서 말한 십진법 체계도 뻬놓을 수 없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군대도 동아시아 기마민족의 전통에 따라 십진법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테무진은 발상의 천재가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고도로 발전시키는 인물이었다. 쿠리엔과 오르도는 그 형태적 특성상 군사행동을 할 때도 불편하지만, 집단의 내부구조를 혁신할 때에도 장애물이 된다. 테무진은 군사용 시스템을 거꾸로 사회에 적용, 전통적인 쿠리엔을 해체할 계획을 품게 된다.
마지막으로 전술. 테무진은 포위섬멸작전이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고 연합군이었어도 그렇지, 그 강력한 타타르를 그렇게 쉽게 털어버리다니...
물론 초원의 전쟁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먼저 포위하는 편이 이기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초원 부족간에 벌어지는 전투의 포위는 느슨했다. 왜일까? 유목민은 바보가 아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포위는 느슨했고, 따라서 아무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도 적의 상당수가 생존자가 되어 반격을 하거나, 후일을 도모했다. 이런 식으로 복수에 재복수가 이어지고 원한은 누적되었다.
이유는 약탈에 있다. 역사가들은 그때까지 몽골초원의 전사들이 "이기면 약탈에 정신이 팔려서"라고 간단히 표현하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치는 않은 문제다. 다른 문화권의 기준에서는, 초원 사람들은 정말이지 절박할 정도로 가난했다. 약탈은 승전의 보너스가 아니라 전쟁의 목적이었다.
전쟁에 참가한 전사들이 이미 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때부턴 통합된 행동을 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지휘관이자 장교라고 할 만한 귀족들이 '먼저 약탈할 권리'에 의해 전투를 멈춘다. 또 쿠리엔과 쿠리엔이 모인 연합부대일 경우 약탈이 가능한 시점에서부터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된다. 즉 약탈경쟁이 벌어진다. 자연히 적의 수뇌부와 백성 태반은 도망갈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 총사령관이었던 왕경승상과 금군의 목적은 약탈이 아니라 '토벌' 즉 살상이었다. 이 태도가 전쟁의 양상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테무진은 여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타타르 토벌전의 경험은 테무진의 인생과 몽골제국의 역사에 중요한 자산이 된다.
그런데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outro
야영지로 돌아가는 길에 후방에 남겨놓은 50여명의 작은 부대와 합류한 테무진.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찮다. 심상찮다기보다는, 뭐가 좀 없어 보인다.
"뭐냐 이 썰렁함은... 가축들은 다 어딨냐? 아니 그보다, 대체 너희들 왜 다 발가벗고 있는 거야? 난 이런 독특한 환영인사는 사양하고 싶은데..."
"그게... 주르킨 놈들이 쳐들어와서 가축을 다 쓸어갔습니다. 우리가 반항하니까... 그놈들이 우리 사람들을 열 명이나 죽였어요. 그래놓고 옷까지 다 벗겨간 겁니다. 으흐흐흑."
테무진은 이번에는 나뭇가지와 국자를 휘두를 생각이 없었다. 전투를 마친 그의 부하들은 칼과 활로 무장하고 있었다.
(13) 내 이름은 칸
1
테무진은 승전 후 복귀행군중인 자신의 군사들에게 '릴레이'전쟁을 선언했다.
"또 한 번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저 주르킨 놈들이 한 짓을 생각해보라. 술 따르던 시키우르를 폭행하고, 도둑질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벨구테이의 몸에 칼부림을 했다. 더 큰 문제는 전쟁 소집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엿새나 기다렸지만 놈들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끼리 위험한 싸움에 뛰어들어야 했다. 집결을 거부한 것은 배신행위다. 그것도 모자라 주르킨 놈들은 아예 우리를 약탈하고 말았다... '적에게 기대어 적이 되었다.' 가축을 빼앗고 인명을 살상했을 뿐만 아니라 다 큰 어른들을 백주 대낮에 발가벗겨 모욕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가?"
이 말을 듣고도 전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테무진 부대는 복귀중에 말머리를 돌려 주르킨족의 쿠리엔이 있는 야영지를 향했다. 초원에서 전쟁은 곧 속도전이다. 응징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준비할 틈을 줄 이유가 없다.
당시 주르킨족은 케를렌 강의 삼각지에 야영하고 있었다. 귀족가문답게 풍요로운 목초지를 차지하고 있었던 게다. 삼각지에 테무진의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사차 베키와 타이초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전쟁의 목표는 어차피 약탈이다. 우리 수뇌부는 재빨리 도망가서 반격 기회를 노리자! 여차하면 자무카한테 의탁할 수도 있고...'
그러나 테무진의 목표는 복수와 약탈이 아니라 '정리'였다. 그는 재빨리 추격대를 보내 사차 베키와 타이초를 사로잡았다.
예상치 못한 싸움에 맞닥뜨린 주르킨족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지고 말았다. 아마 주르킨족은 굴욕을 직심스레 참아내는 테무진을 만만히 보고 있었을 터. 자신들이 추대한 평민출신 칸에게 정벌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리라.
그렇다면 테무진은 왜 아직까지 주르킨을 봐주고 있었던 걸까? 아마도 주르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고민했었던 것 같다. 주르킨과 싸우면 분열한다. 분열은 자무카와 벌이던 '주변세력 흡수통합' 경쟁에 역행한다. 주르킨을 복속시켜도 문제다. 노예집단이 생겨버리면 탈계급정책을 추진하던 테무진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테무진은 쿠리엔을 해체해 십진법 체계로 군사를 재조직하는 모습을 본 후 드디어 주르킨을 쳐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테무진의 행동을 따라가보자. 그는 사차 베키와 타이추를 바로 죽이지 않았다. 그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사차 베키, 그리고 타이추. 당신들이 나를 칸으로 추대했을 때 뭐라고 했던가? '그대를 위해 앞장서 싸우며, 약탈한 것들, 사냥한 것들을 제일 먼저 나에게 바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사람들이 싸움에 앞장서기는커녕 집합에 응하지 않다니... 당신들은 스스로 한 약속을 어겼다. 이제 나는 당신들을 처형하려 한다. 항변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
사차와 타이추는 할 말이 없음을 깨끗이 인정했다. 이럴땐 차라리 그 편이 덜 구질구질하다. 두 사람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들은 용맹한 귀족답게 모욕스런 삶 대신 죽음을 요구했다. 사차와 타이초는
"네 말이 맞다. 어서 베라!"
며 목을 내밀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던 테무진은 그들을 즉결처형했다. 테무진은 귀족들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을 거라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사차와 타이초를 처형한 방식은 '참수'였다. 참수하면 목이 몸에서 떨어져나간다. 시신이 훼손되는데다가,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온다. 영혼이 피에 있다고 믿는 몽골인들에겐 '피를 흘리지 않는 죽음'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야 영혼이 온전하게 보전되고, 후손들이 챙겨주는 제삿밥을 먹을 수 있고 남은 가족들을 돌봐주는 수호령이 될 수 있으니까.
귀족들은 사형선고를 받아도 '피를 흘리지 않게' 처형당하곤 했다. 담요에 둘둘 만 몸 위로 말떼가 지나가게 해서 압사시키거나(남자들이 밟아서 죽이기도 했다.), 척추를 부러뜨린 후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식이었다. 훨씬 고통스러운 방법이었지만, 오히려 귀족에 대한 예우였다.
테무진은 두 사람뿐 아니라 소수의 주르킨 지배층을 쓸어버렸다. 시키우르를 때린 귀부인들의 운명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 끝이 별로 좋지 못했을 것이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한 주르킨 사람들은 더 큰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보호자인 귀족이 없어졌으니 이제 평민층 이하로 떨어질(필시 테무진 무리의 노예 씨족이 될) 그들을 누가 지켜줄 것인가?
테무진이 지켜준다.
2
"테무진 칸... 우릴 어떻게 할 거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당신들은 이제부터 나한테 충성하면 되는 거요.
"그게 끝이오?"
"그렇소."
"정말루?"
"아, 그렇다니까!"
"헉 갑자기 눙무리... 테무진 만세!"
테무진은 주르킨 사람들을 부하로 포섭했다. '주르킨 씨족'으로 구분한 게 아니라 각 전사와 가정을 부하들에게 할당하듯이 나누어 놓았다. 십진법 체계로 군사를 나누듯, 주르킨의 쿠리엔을 해체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어엿한 백성으로 대우했다. 주르킨이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주르킨이었던 사람들은 테무진이 주도하는 '키야트-보르지긴 울루스'의 당당한 구성원이 되었다.
테무진은 이번에도 주르킨 야영지에서 고아를 발견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헐룬에게 양육을 맡겨 아이와 의붓형제가 되었다. 이는 테무진의 인간성도 보여주지만, 이제는 정치적인 의지를 표명하는 행위가 되었다. 테무진이 자신에게 패배한 집단의 고아를 대하는 방식 그대로, 그의 백성들은 주르킨 출신자들을 존중하라는 뜻이었다. 주르킨 출신자들에게 기죽지 말고 살라는 메시지도 있었다. 아 참, 이 아이의 이름은 '보로쿨'이었다. ('보로올', '보로골'이라고도 한다.) 중요한 이름이다. 밑줄 쫙.
이러다보니 주르킨 쿠리엔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드릴루킨'들은 테무진의 평등정책에 잔뜩 흥분했다. 예전 기사에 설명했던 '잘라이르' 씨족이 그들이었다. 잘라이르 씨족의 가장들은 앞다퉈 테무진에게 자기 아들들을 소개했다.
"테무진 칸, 저는 잘라이르의 '구운 오아'라는 사람입니다. 칸께서는 계급과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출세시켜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제 아들놈들 좀 봐 주십시요. 이 놈이 '무칼리', 다른 아이가 '보카'입니다. 이 녀석들을 칸의 사유재산으로 바칠테니 혹여나 도망가려고 하면 발목의 힘줄을 잘라 버리십시오! 간을 파버리십시오!(이런 끔찍한 말을 정말로 했다.)"
"난 사유노비 같은 거 안 키우는데... 일단 내 호위병으로 쓰면서 눈여겨보기로 하겠소."
'무칼리'라는 이름에 역시 밑줄 쫙.
서구 학자들은 테무진의 잔인성과 관용성 - 이 이중성에 혼란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정복의 과정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 정복하고 나면 산타클로스처럼 관대해진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테무진의 일생을 <초원통일기>과 <세계정벌기>로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 아직 세계정벌이 시작되려면 멀었으므로, 초원통일에 국한해 생각해보자.
테무진은 초원사람들을 혈통이 아닌 계층으로 구분했다. 여기에 그의 천재성이 있다. 그는 초원 통일전쟁의 성격을 혈통대결(정주문명으로 따지면 '지역대결'에 해당될 것이다.)이 아니라 계층대결로 바꾸어놓았다.
테무진은 자신의 뜻에 반하는 귀족층을 '신속하고 기계적으로' 죽였다. 그에게 대항한 조직이 어떤 조직이든, 귀족층에만 책임을 물었다. 매우 공정한 태도다. 귀족 지배층이 집단의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귀족들에게 이용당했을 뿐인 백성들은 면죄부를 받아 마땅하다. 아니 면죄부라는 말도 이상하다. 백성들은 애초에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정복을 당함으로써' 테무진의 백성이 된 이들은 책임을 묻지 않는 정복자의 관대함에 감동할 뿐만 아니라, 곧 공정한 분배정책과 기회의 평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초원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층은 테무진을 지지하는 게 유리해진다. 테무진은 초원의 일반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므로, 테무진을 위해 싸우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이 된다.
자무카는 혁명가였다. 그는 혈통집단과 쿠리엔들로 얼기설기 엮여 었던 초원의 질서를,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했다. 그러나 테무진이 더 급진적이었다. 그는 대중과 직접 소통하려고 했다. 자무카는 구조의 중심을 바꾸려고 했다면, 테무진은 구조 자체를 바꾸려고 했다. 그러나...
싸움의 승자가 주인공이 되는 시대였다. 자무카는 '이기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자무카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 전에, 테무진에겐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있었다.
3
바로 주르킨 출신 씨름 챔피언 부리가 문제였다. 부리는 도둑의 편을 들어 정정당당히 시합을 요청한 벨구테이에게 칼부림을 했었다.
"벨구테이, 난 그놈을 용서할 수 없다. 놈은 범죄자야. 범죄는 처벌받아야지."
"나도 생각같아서는 걍 놔두고 싶지 않지만... 그러면 형의 원칙이 깨져버리는데. 주르킨 사람들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우리 일원이라며?"
그랬다. 그 전에 발생했던 일에 책임을 물면 통합의 원칙이 깨져버린다. 이제 그들은 테무진과 새로 사회계약을 맺었다. 그 전의 과거는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리를 꼴보기 싫다고 죽여버리면 복속된 주르킨 사람들의 지위가 격하된다. 그렇다고 분쟁의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한 장본인을 그대로 놔두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래서 테무진과 벨구테이 형제는 묘안을 짠다.
"벨구테이, 그놈과 못한 씨름대결을 마무리지어라. 그녀석 처지가 처지인만큼, 제대로 실력발휘를 할 수 없을 거다."
두 형제는 부리를 시합 중에 죽여버리기로 했다. 그러면 처벌 아닌 처벌, 공식적으로는 '시합 중 사고사(死)'가 된다. 테무진은 적당한 날을 골라 부리를 불렀다.
"이봐 부리, 벨구테이가 자네랑 끝내지 못한 시합이 있다는데, 한 판 붙어주지?"
"앗... 네에..."
부리가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지은 죄가 있는 부리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었다. <몽골비사>는 부리가 "한쪽 팔과 한쪽 다리만 써도" 벨구테이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고 기록한다. 벨구테이도 힘과 성격이 보통이 아닌 사내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역시 초원의 챔피언답다. 하지만 부리는 시합 내내 자신을 쳐다보는 테무진의 눈빛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이러다 내가 그냥 이겨버리면... X되겠지?'
결국 부리는 승부를 포기하고 벨구테이에게 "쓰러져 주었다."
벨구테이는 쓰러진 부리의 몸에 올라탄 채 테무진을 쳐다보았다. 테무진은 말없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계획대로 해치우라는 뜻이었다. 벨구테이는 두 손으로 부리의 어깨를 부여잡고, 무릎으로 부리의 척추를 부러뜨려버렸다.
고통스런 죽음을 맞게 된 부리는 억울함을 느꼈다. 죽는 것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된 마당에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테무진이 보고 있어서 실력발휘를 할 수 없었다. 이기면 어떻게 될까 걱정하다가 시합에 졌다. 하지만 제대로 붙었으면 난 벨구테이 따위에게 질 사람이 아니다."
이것이 부리가 남긴 최후의 말이다. 챔피언의 자존심이란... 어찌 보면 '피를 흘리지 않는 죽음'이 챔피언에 대한 테무진 형제의 마지막 예우였는지도 모르겠다.
4
13세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한창 3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던 테무진과 자무카에게는 서양식의 '세기' 개념이 없었다. 다만 초원사람들도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12간지'를 사용했다. 즉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열두 동물로 해를 구분했다. 그 해는 닭의 해, 1201년이었다.
초원의 실력자들은 옹 칸과 테무진 연합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편 저편이 어지러이 이합집산하는 초원에서 두 세력이 강력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불편한 일인데, 그중 신진세력(테무진)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반 테무진' 세력이나 개인들은 테무진에게 본능적인 두려움과 혐오감을 느낀 경향이 있다. 테무진의 생명력과 끈기 때문이었다. 테무진은 숱한 불행을 견뎌내고 결국 칸으로 성장했다. 자무카에게 털려서 완전히 무너진 줄 알았는데 기어이 재기에 성공했다. 민중들은 호의적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세력가들에게는 눈엣가시가 될 만하다.
테무진과 옹 칸이 금나라의 지원을 받은 것도 문제였다. 이전까지 금 조정을 등에 업은 타타르는 초원에서 공공의 적이었다. 이제는 옹 칸-테무진 연합이 위험세력이었다. 더우기 중국 조정과 관계한다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국제적인 인증'을 받는단 얘기다. 옹 칸은 그 이름 그대로 금나라 황제에게 제후의 지휘를 받았고, 자우트 코리라는 직함을 받은 테무진은 그보다 한참 못하지만 어쨌든 중국 조정의 가시권에 들어왔다. 잘나가면 적이 생기는 법이다.
초원의 귀족들은 테무진 세력의 성장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테무진이 주르킨 귀족들을 절멸시키고 주르킨 백성을 흡수해버린 사건은 귀족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기득권이 어떻게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지 목격했으니 말이다.
이러다보니 옹 칸과 테무진에 대항하는 일은 초원세계 전체의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테무진과 자무카의 경쟁엔, 옹 칸과 커레이트족을 제외하면 두 인물의 출신부족인 몽골족과 초원 중앙 부근의 군소부족들이 관여해왔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동쪽의 주인 타타르와, 서쪽의 절대강자 나이만족도 옹 칸과 테무진을 저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판이 커진 것이다. 특히 타타르는 테무진과 옹 칸에게 크게 당했으니, 복수를 해야했다.
초원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양자 대결구도가 생겨났다.
테무진 파 몽골 쿠리엔 자무카 파 몽골 쿠리엔
친 테무진 부족/씨족들 VS 친 자무카 부족/씨족들
옹 칸의 커레이트족 나이만족 + 타타르족
여러 세력이 함께하는 일이 강력한 보스 없이 진행될 리 없었다. '연합 지도자'를 선출해 옹 칸-테무진 연합에 대항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를 대표할 적임자는 역시 자무카밖에는 없었다.
5
때는 여름이었다. 자무카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켄'강에 딸린 '알코이'라는 샘에 모여들었다. 원래 몽골과 타타르는 앙숙. 그러나 자무카 휘하의 '니르운'인 '두르벤' 족이 나서서 타타르와 화해했다. 타타르는 원래 부족 연맹체. 타타르 부족들 중 '알치 타타르'족이 대표가 되어 참석했다.
나이만에서는 '부이룩 칸'이 왔다. 잠시 나이만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타타르가 '국가'에 근접한 세력이었다면, 나이만은 정상적인 국가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을 갖고 있었다. 정주문명식의 궁정도 갖고 있었다. 즉 '조정'이 있었다. 나이만 조정은 행정처리를 하는데 문자를 사용했다. 비록 외국인 위구르의 문자였지만, 초원의 다른 부족들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나이만은 몽골과는 달리 수준 높은 문명과 맞닿아 있었다. 티벳인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나라인 탕구트, 한때 몽골초원을 지배했던 위구르, 중국식 행정체제를 갖춘 거란인의 카라 키타이(서요 제국) 등등... 실크로드 무역로의 요지는 아니어도, 요지의 언저리 정도는 차지하고 있던 만큼 가난한 몽골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부유했다. 한편,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나이만인들의 주된 종교였다.
나이만의 최고 군주는 '타양 칸'이었다. 타양은 한자 대왕(大王)을 자기들 식대로 발음한 것이다. 이런 칭호는 중국, 즉 금나라 조정에서 내려주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말 그대로 '대왕'이니, 옹 칸의 '왕'보다 한 단계 높다. 금나라 조정은 아무래도 옹 칸보다는 나이만의 지배자들을 더 상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으로 여긴 모양이다(그럴 만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이만의 입장에서는 최근에 제후의 지위를 획득한 '후발주자' 옹 칸을 경쟁자로 느꼈을 법도 하다.
나이만은 중세 유럽의 봉건국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공식적인 군주는 하나지만, 실제로는 여러 명의 영주가 분할 지배하는 것이다. 국가는 국가이되 원시적 국가라고 보면 된다. 중세 유럽을 보면 왕가와 영주 가문이 가까운 혈연관계인 경우가 많다. 나이만도 그랬다. 나이만을 분할통치하던 세 명의 인물은 모두 한가족이었다.
: 1) 궁정의 주인이자 제 1 군주인 타양 칸. 2) 타양 칸의 동생인 부이룩 칸. 3) 타양 칸의 아들인 '쿠출룩 칸'. 그리고 타양 칸의 어머니인 황후 '구르베수'가 두 아들과 손자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 네 권력자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어쨌든 부이룩 칸이 나이만을 대표해 자무카에게 왔다.
테무진을 피해 자무카에게 귀순했던 타이치우트족이 빠질 수 없었다. 그외 이런저런 군소부족, 씨족들도 모여들었다. 그 중에 하필이면 옹기라트족도 있었다. 옹기라트족은 보르테의 친정, 즉 테무진의 처가였다. 더우기 보르테의 아버지는 옹기라트의 수장이었다. 사실 옹기라트족도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고민을 해서 내린 결정이었겠는가. 그렇다고는 해도, 테무진이 입은 정신적 데미지는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보르테를 납치했다가 멸망 직전까지 간 메르키트족은 예전의 세력을 거의 회복했다. 3개 부족 연맹체였던 메르키트족. '카아드 메르키트'는 수장인 카아타이 다르말라가 테무진에게 잡혀 죽으면서 와해되었지만, 톡토아 베키의 오도이드 메르키트, 다이르 오손의 오와스 메르키트는 살아남아 있었다. 하여간 이 부족 사람들도 그간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으리라.
메르키트족은 비옥한 목영지인 탈콘 삼각지와 주변 강변을 되찾고자 했다. 그러려면 테무진과 자무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칸들의 전쟁'에 끼어야 했다. 메르키트족 입장에선 자무카나 테무진이나, 옹 칸이나 모두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하지만 고향을 수복하려면 어느 한 쪽에 줄을 서야 했다.
그들은 자무카를 택했다. 테무진과는 원한이 너무나 누적돼 화해하기가 도무지 불가능했다. 자무카의 신묘한 전술에 비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자무카의 능력을 신뢰할 만했다. 톡토아 베키의 아들 '코토 베키'가 메르키트를 대표해 참가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참가자는 당연히 자무카였다. 초원 각 세력의 대표자들은 자무카를 따라 강줄기를 끼고 이동했다. 실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집단이동은 유목민들에게 중요한 행사였다. 누가 더 앞서서 움직이는지로 서열을 정하기도 하고, 사냥과 야영 등으로 유대감을 다지기도 한다. 친 자무카 연합은 켄 강과 에르구네 강이 만나는 비옥한 습원에 도착하자 말에서 내렸다.
연합세력은 흰 종마와 암말을 하늘-텡그리-에 제물로 바쳤다. 기독교인이 많았고 불교신자도 있었지만, 무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몽골인인 자무카의 취향이 중요하기도 했으리라. 말은 초원에서 가장 귀하게 치는 동물이다. '싱콜라 모리'라고 부르는 백마는 그중에서도 특히 상서로운 동물이다. 최고 등급의 의식을 치렀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자무카는 칸으로 추대되었다.
자무카도 원래 칸 중의 하나였다. 이제는 칸들이 추대한 칸, 즉 왕 이상의 군주이므로 황제급의 칭호가 필요했다. 새로운 칸의 이름은 '구르 칸'. 구르는 구르는 '이 세상 모든 것', 즉 '우주'라는 뜻이다. 또한 '칭기스'와 마찬가지로, 무언가가 끝없이 넓게 퍼진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굉장한 사이즈의 호칭이다.
구르 칸... 이 명칭은 키타이, 즉 거란의 군주들이 쓰던 호칭이다. 대요제국과 카라 키타이, 즉 서요제국의 황제들은 공식적으로는 태조니 태종이니 하는 중국식 명칭을 사용했다. 하지만 왕경승상에게 타타르 정벌을 맡긴 장종이 '알탄 칸'인 것처럼, 자기네 식(혹은 유목민 식)으로는 '구르 칸'이었다.
제국을 경영해본 정복민족 거란족은 '잘 나가는 유목민'의 이상적인 모델 중 하나였다. 한마디로 유서깊은 호칭이란 얘기. 옛날, 옹 칸을 쫓아내고 커레이트족의 칸 자리를 먹었던 옹 칸의 동생도 자칭 '구르 칸'이었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도와준 덕분에, 옹 칸이 동생을 쫓아내고 칸이 될 수 있었지만 말이다.
30대 후반, 어쩌면 40살이 갓 되었을 자무카는 위상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이 시점에서 초원통일에 가장 근접한 인물은 자무카였다.
6
테무진이 옹 칸의 소(小)이이제이를 알게 되었는데 자무카라고 모를 리 없다. 테무진은 옹 칸을 최대한 신뢰하려고 노력했던 반면 자무카는 옹 칸을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하려고 했다. 테무진과 함께 말이다. 자무카는 구르 칸으로 추대된 자리에서 테무진과 옹 칸에 전쟁을 선포했다. 연합군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초원세계 전체가 연루된 대전투의 막이 올랐다.
친 테무진 파 무리 하나가 전쟁 소식을 빠르게 알려왔다. 테무진은 가장 먼저 옹 칸에게 급보를 알렸다. 이 시점에서 공동의 적을 맞은 두 사람은 누구보다 끈끈한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옹 칸은 곧바로 커레이트 군대를 소집해 테무진에게 달려왔다.
두 사람은 잠깐 의논을 했겠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답은 전쟁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전쟁을 결의했다. 그러나 전쟁을 대하는 테무진의 태도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한 번의 회전에 운명을 걸었다가 13쿠리엔 전투에서 짓밟힌 테무진. 이번에는 승리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했다. 초원의 전쟁이란 모 아니면 도의 제로섬 게임이지만, 이왕 제로섬에 운명을 맡길 거라면 도 보다는 모가 나올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게 상책이었다.
테무진이 십진법 체계를 이 전투에서부터 적용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테무진의 전매특허가 되는 1) 전초부대를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는 전략과 2) 매복전술 - 이 두 가지는 쿠이텐 전투에서부터 확립되었다. "적보다 먼저 상대를 발견, 관찰한다." 이는 현대전에서는 기본 모토다. 하지만 한 번의 회전으로 피아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고대전투에서는 흔한 개념이 아니었다. 여기서 테무진의 신중한 성격이 드러난다.
테무진은 적이 오는 방향으로 전위를 보냈다. 전위는 전투의 선봉을 말한다. 해병대와 같은 돌격부대라고 보면 된다. 테무진은 전위부대에 '정보수집'의 요소를 더했다. 그래서 전위는 전위 of the 전위, 즉 전초대원을 운용하게 된다.
테무진이 전위부대 지휘를 맡긴 인물들은 1)알탄과 코차르, 2)배신의 명수인 막내숙부 다리타이, 3)옹 칸의 아들 셍굼 4)옹 칸의 동생 자카 감보 등이었다. 알탄과 코차르는 처형당한 사차, 타이초와 함께 테무진을 칸으로 추대한 자들이다. 한편 셍굼은 본명이 아니다. 이는 중국어 '장군'을 초원 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토그릴이 옹 칸이 되면서, 후계자인 아들도 소정의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보면 된다.
테무진-옹 칸 연합군의 전위부대에 속한 전초대원들은 세 개의 산에 몸을 숨기고 자무카 연합군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전초대원들은 적군을 발견하자마자 전위부대에 알렸다. 여기까진 좋은데, 테무진-옹 칸 연합군의 전위부대는 황당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생각해보니 그렇잖아? 뭐하러 숨어서 적을 관찰한단 말이야? 당당히 만나서 눈으로 직접 보면 되지, 안그래?"
이런 사고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회전의 성격 때문이다. 회전이란 적당한 장소에서 양측의 무력이 동시에 충돌하는 싸움이다. 그래서 싸우는 시간과 장소를 양측이 합의하여 정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눈치를 보며 움직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니 말이다. 물론 테무진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그는 적을 최대한 관찰해 정보를 수집하고 가능한 한 유리한 판을 만들려고 했다. 반면 적은 우리 편의 사정을 모를수록 좋다.
테무진의 원래 계획과는 상관없이, 테무진-옹 칸 연합군의 전위는 적군의 전위를 멀뚱히 서서 기다렸다. <적의 동태를 파악하라>는 명령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 거다. 동시에 우리의 동태도 파악된다는 게 문제인데...
이윽고 밤이 되자 저 멀리 자무카 연합군의 전위가 보였다. 양측은 어둠 속에서 소리치며 의사소통을 했다.
"이봐~! 거기 자네들이 자무카 연합군 부대의 전위가 맞는건가?"
"그렇네만... 거기 그쪽은 테무진과 옹 칸이 보낸 전위인가?"
"맞아! 거기 어두워서 그런데, 그쪽은 어떤 사람들이 전위를 맡고 있는거야?"
"응? 그걸 꼭 지금 알아야 하는 거야? 어차피 곧 붙으면 알게 될 거잖아?"
"아, 위에서 그걸 알아오라고 하길래 말야."
"뭐, 알았어... 거 왜 메르키트의 톡토아 베키 있잖아? 일전에 테무진씨한테 크게 당한 양반. 그 양반 아들인 코토 베키하고, 오이라트 족 군대하고, 나이만에서 온 부이룩 칸, 그리고 우리 구르 칸(자무카) 밑의 몽골 전사들. 이 사람들이 전위야. 뭐 더 궁금한 건 없어?"
"아, 충분히 알아들었어. 저기 우리가 일단 이렇게 만나긴 했는데... 지금은 어두워서 싸우기가 좀 그렇잖아? 오늘은 걍 자고 내일 날 밝고 나서 싸우자고. 어때?"
"그려~"
이렇게 양측 전위는 다음날을 기약(?)하고 사이좋게 헤어지는 엽기극을 선보인다. 전위부대는 본대로 복귀해 함께 잠을 잤다. 테무진의 심경은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테무진은 애초 계획했던 대로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전초부대의 전략적 의미를 아군도 몰랐지만, 적군의 전위도 몰랐던 것이다. 테무진은 적 전위부대의 병력과 구성을 바탕으로 자무카군의 전위를 전멸시킬 매복작전을 구상한다.
다음날, 양측의 군대는 '쿠이텐(아래 사진에 사각형으로 표시된 지점이 쿠이텐. 매복에 용이한 산악지형이다.)'이라는 곳에서 드디어 조우하게 된다.
싸우러 만난 인간들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전투가 시작되었다.
7
테무진의 매복작전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충의 얼개는 잡을 수 있다. 양측의 전위와 전위가 먼저 맞부딛히는 건 상식이다. 그 뒤로 본대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테무진 측의 전위는 적의 기세에 밀린 척했다. 그들은 코르치(궁수)들이 활시위를 잰 채 대기하고 있는 지점으로 적의 전위를 유인했다. 물론 코르치 부대는 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곧이어 목표지점에 화력을 집중하는 '일제사격', '집중사격'이 시작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집중포화'에 해당한다. 이 현대적인 전술은 목표물을 눈에 담고 활시위를 놓는 '조준사격'과는 다르다. 조준사격은 궁수 각자가 '지금 쏘면 맞추겠다' 싶은 순간에 화살을 따로 발사한다. 일제사격은 한순간에 무작위로 화살을 들이붓는 것이다. 화살은 좀 낭비되겠지만, 적에게 일거에 타격을 주는 획기적인 전술이었다.
사실 집중사격 전술은 원래부터 초원에 존재했다. 다만 완벽하게 시전된 것은 테무진 때부터다. 사방이 뚫린 초원에서는 적을 조준하느라 시간을 보내다간 외려 적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사정거리에 들었다 싶을 때 일단 퍼붓는 편이 나은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몽골초원에서 명사수의 제1 기준은 정확도가 아니라 사정거리다. 화살을 멀리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하고, 조준력은 그 다음이다. 테무진의 동생 카사르가 명사수로 불린 까닭도 어깨가 유난히 넓은 체형과 힘 때문이었다. 활시위가 많이 당겨질수록 화살이 멀리 나가니까. 어쨌든 테무진은 집중사격을, 한 사람의 명령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전투매뉴얼로 다듬었다.
매복작전은 성공했다. 테무진은 자무카의 전위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음이 주었음이 분명하다. 영화 <몽골>이 어떻게 이 작전을 묘사하는지 함 구경해보자.
음... 영화관객의 입장에서는, 매우 잘 찍은 장면이다. 무장과 복식의 고증은 훌륭한 편이지만(오류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실제 초원 전투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일단 병사와 병사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다. 화살의 타겟만 될 뿐이다. 초원 전사들은 넓게 산개해서 싸웠다.
싸우는 방식도 중세 유럽식이다. 초원 전사들은 저렇게 전속력으로 돌진해 양측이 부딪히지 않았다. 초원 전사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장시간 화살을 쏘아댔다. 본격적인 백병전은 결정적인 순간에나 시작된다. 물론 돌격대인 전위인 만큼, '물리적으로 부딪히는' 백병전을 피할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과 충돌하기 전까지는 달리는 말 위에서 계속해서 화살을 쏘는 게 정석이다. 활은 가장 기본적인 무기인데도 영화에서 전위 결사대는 활과 화살을 지참하지 않고 있다. 다만 몽골 환도(구부러진 칼)의 '말을 달리는 채로 베고 지나가는' 쓰임새는 잘 표현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초원 전사들은 조잡한 칼을 썼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이 당시의 환도다. 영화에서 보이는 고급 환도는 세계정복이 시작되고 나서야 (약탈한 물자와 인력 때문에)사용 가능해진다.
코르치(궁사)들이 말을 안 타고 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초원의 군대는 100% 기마병이었고, 그것도 한 사람이 두세 마리 이상의 말을 끌고 다녔다. 매복이라고 해서 얌전히 틀어박혀 있는 게 아니다. 기동성이 없으면, 적이 매복에 걸려봐야 사정거리 바깥으로 피하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전투시간이 너무 짧다. 초원 전투는 땅을 '넓게 쓴다.' 전후좌우로 말머리를 돌려가며 싸운다. 이 상태에서 활을 쏘기 때문에 사상자가 천천히 발생한다. 즉 단번에 승패가 판가름나지 않는다. 사실 고대-중세의 전투시간은 영화에서 흔히 보는 것과 달리 매우 길었다(특히 영화상영시간보다는 훨씬 더). 대부분의 영화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핸디캡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생각해보면 병사들 사이의 거리 문제도 한정된 시야에 영상을 담아야 하는 영화의 핸디캡이다.
작전은 성공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그게 다였다. 테무진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상태에서 운명을 결정짓고자 했다. 그래서 자무카의 전위병력을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나서 싸우려고 한 거다. 다시 말해 자무카의 본대는 그대로 남아있었고, 본격적인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자무카는 전위부대를 잃고 나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 같다. 진영을 이동하거나 뒤로 뺀 게 아니라, 계획대로 전투를 개시한 걸 보면 말이다.
8
테무진과 옹 칸의 상대는 자무카였다. 그리고 자무카가 벌인 전쟁이었다. 군사적 재능과 병력 면에서 자신이 있었다는 얘기다. 또 자무카는 테무진과 옹 칸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그치만 말이다.
운이라는 게 있다. 어디 인생과 역사가 그렇게 쉽게 예측가능하던가. 테무진에겐 뜻하지 않은 행운이, 자무카에겐 불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측 다 이동하면서 조우했기 때문에 전투는 평지에서 시작되었다. 자무카는 본격적인 회전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높은 지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전장에서 '높이'는 매우 중요하다. 내려다보면서 싸우는 편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지휘관 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적의 위치와 이동상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올려다보는 쪽은 적의 후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기가 힘들어진다. 중력의 법칙도 작용한다. 높은 곳에서 쏘면 화살의 사정거리가 길어진다. 전진방향이 오르막이냐 내리막이냐는 병사와 말의 체력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자무카는 주변의 산악지형을 이용해 승부의 무게추를 자기 편에 달아놓았다. 전투의 아수라장 속에서 신속히 해낸 일이다. 역시 자무카였다. 다만 한가지 문제점은 그가 부대를 이동시킨 뒷편이 낭떠러지였다는 점. 전투에 패했을 경우에 퇴로가 없다. 거꾸로 말하면 자무카는 이 시점에서 질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안했다는 뜻이다.
한바탕의 충돌이 끝나자 양측은 군대를 물려 전열을 재정비했다. 그냥 줄맞추기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전투엔 남자-장수와 병사-만 등장한다. 그러나 초원에서는 전사의 가족과 가축들, 기타 부족민들이 군대와 함께 이동하면서 후방이나 전장 주변을 지켰다. 그러다보니 전사 외에도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군대를 쫓아다니게 된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직업은 바로 무당이었다.
무당 뒤에 보이는 돌무덤을 '어워', 혹은 '오보'라고 한다. 몽골초원에서 아직도 신성하게 여기는 토템이다.
어워는 끝없이 평지인 초원에서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당은 적에게 비바람과 벼락을 내려달라고 하늘에 기도하기도 하고, 적에게 저주를 걸기도 했다. 하늘에 기도할 때 꺼내놓는 신성한 돌멩이가 있는데, 이를 자다(jada)라고 부른다. 물론 무생물인 하늘은 과학적 원리에 의해 변화할 뿐 무당의 기도소리 따위 듣지 못한다. 하지만 초원사람들은 이게 정말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군종 무당'은 아군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필요했다. 무당의 요란한 북소리와 방울소리는 전투의 훌륭한 BGM이었다.
전열 정비를 끝낸 자무카 연합군과 테무진-옹 칸 연합군. 양측이 재격돌하는 찰나, 기가 막힌 우연으로 하늘에서 정말 천둥이 치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벌건 대낮에 이게 가능한가 싶겠지만 평균해발 1600미터의 초원은 한반도와는 다르게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그리고 바람이, 한 번 불면, 엄청나게 세다. 갑자리 요동치는 하늘... 하늘은 어느 편 무당의 편이었을까?
테무진의 편이었다. 매서운 비바람이 자무카 부대를 향해 몰아쳤다. 비바람은 자무카가 고지대를 차지하면서 얻은 어드밴티지를 단박에 뒤집어버렸다. 강풍을 마주보면 눈을 뜨기가 힘들다. 화살을 제대로 조준할 수가 없어진다. 조준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사정거리와 정확도에서 극도로 불리해진다.
화살 뒤에는 잘 날아가라고 깃털이 붙어 있다. 이 깃털이 바람의 방향과 수학적으로 정확한 수평이 되지 않는 한, 화살은 날아가다가 엉뚱한 곳으로 튕기게 되어 있다. 게다가 몽골초원의 전통적인 화살은 살 뒷편에 부창하는 깃털이 비대칭으로 되어 있다.
몽골사람들이 물건을 못 만들어서가 아니다. 정교한 비대칭을 통해 화실이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가게 만든 건데, 관성에 회전까지 실리면서 관통력과 살상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간 화살이다. 현대의 총을 보면 총구 내부에 꽈배기 모양의 '강선'이란 게 있다. 강선을 타고 총구를 빠져나온 총알을 빠르게 회전시키기 위해서다. 총알이 들어간 곳은 좁아도, 나온 곳은 텅 비어있다는 말 많이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회전력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좋은 화살이지만, 맞바람에는 맥을 못 추는 물건이다.
이 외에 전사들이 타고 다니는 말이 맞바람을 싫어하는 문제도 있다. 반면 바람을 등진 테무진-옹 칸 연합군은 화살의 사정거리와 위력이 늘어났다. 자무카 연합군은 적과 충돌하기도 전에 힘 한번 못 써보고 화살세례를 받았다. 자무카의 군대의 전열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무엇보다 병사들의 심리적 충격이 컸다. 하늘이 테무진 편을 들고 있는 게 확실하다! 자무카 연합군의 병사들은 앞다퉈 도망가면서 소리쳤다.
"우리는 하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뿔싸, 그런데 뒤는 낭떠러지가 아닌가... 앞은 '하늘의 사랑을 받은' 적, 뒤는 낭떠러지. 자무카 연합군의 병사들은 낭떠러지에 밀려 떨어지며 죽어갔다. 테무진은 텡그리-영원한 푸른 하늘-가 언제나 자신의 편임을 확신하며 인생을 살았다. 쿠이텐 전투는 그의 그런 믿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패배가 확실해지자 자무카 연합군에 속한 각 쿠리엔의 수뇌부는 죽어가는 병사들을 남긴 채 사지에서 속속 탈출했다. 자무카는 남은 병력을 수습한 후, 전장을 바꿔 반격을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패배가 확실해지면 쿠리엔별로 각자 살 길을 찾아 도망가는 초원 전투의 패턴이 이번에도 예외없이 반복되었다.
자무카는 총사령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도주하는 무리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자무카가 보기에 그들의 행동은 충성맹세를 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분노한 자무카는 "자신을 칸으로 추대한 사람들"을 추격해 약탈했다. 쿠이텐 전투는 이렇게 끝났다. 테무진과 옹 칸의 승리였다.
outro
만약 그날 하늘이 테무진을 돕지 않았다면... 자무카의 재능에 박수를 쳐줄 용의가 있었다면,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계사는 어떤 모양으로 바뀌었을까. 알 수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고 전쟁은 결과가 말한다. 어찌 됐든 테무진은 13쿠리엔 전투의 패배를 설욕했다. 그러나 자무카와의 힘겨운 싸움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패배한 적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본 테무진과 옹 칸. 두 사람은 연합군을 나눠 적을 추격하기로 했다. 옹 칸의 커레이트족은 자무카의 뒤를 쫓았다. 테무진은 그 옛날 자신을 납치해 학대했던 타이치우드족을 추격했다. 쿠이텐 전투 제 2차전의 시작이었다.
(14) 에너미 앳 더 게이트
intro
한 주 연재를 쉬었다. 쉬고 싶어 쉰 게 아니다. 다 쓰고 게재만 하면 되는 기사가 통째로 날아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씨바... 역시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거였다. 우리모두 백업을 생활화하자.
지금까지 꽤 달렸다. 그치? 이쯤해서 간단히 테무진의 일생을 정리해보자.
몽골 부족-보르지긴 씨족-키야트 혈족의 예수게이, 메르키트족으로 시집가는 옹기라트족의 신부 ‘헐룬’을 납치해 결혼하다.
예수게이와 헐룬 사이에서 테무진이 태어나다.
예수게이의 세력이 점점 성장하다. 평탄한 유년기를 보내다.
9살 되던 해, 신부를 찾으러 예수게이와 함께 외가인 올쿠누트족을 향해 떠나다. 여행길에 올쿠누트족의 친척씨족인 ‘옹기라트’족을 방문하다. 옹기라트족의 수장 ‘데이 세첸’의 게르에 머물며 당시 10살이던 보르테를 처음 만나다. 예수게이와 데이 세첸에 의해 보르테와 혼약을 맺다. 데릴사위가 되어 옹기라트족에 남다.
예수게이가 돌아가는 길에 타타르족 전사들의 잔치에 참석, 독살당하다. 테무진은 급하게 몽골족의 야영지로 돌아오지만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는 못하다.
타이치우드족이 고아가 된 테무진 가족을 버리고 떠나다. 비참한 생활이 시작되다.
몽골부족 자다란 씨족의 소년 ‘자무카’와 만나 안다 관계를 맺다.
이듬해, 두 번째로 안다 의식을 치르다.
동생 카사르와 함께 배다른 형 벡테르를 살해하다. 헐룬에게 개갈굼당하다.
타이치우드족에게 납치되어 목에 칼을 쓴 채 포로생활을 하다. 드릴루킨인 솔두스 씨족의 수장 ‘소르칸 시라’ 가족에게 보살핌을 받다.
소르칸 시라 가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 가족과 재회하다.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하다.
말 8마리를 도둑맞다. 말을 되찾기 위해 도둑들을 추격하던 중 ‘보르추’라는 소년을 만나 친구가 되다. 보르추의 도움으로 말을 되찾다.
옹기라트족의 데이 세첸을 찾아가 그때껏 테무진을 기다려준 보르테에게 다시 한 번 청혼하다. 보르테와 결혼하다.
보르추가 테무진 가족의 캠프에 합류하다.
보르테의 어미니 ‘초탄’이 보낸 혼수 담비모피옷을 커레이트족의 칸 토그릴에게 선물하다. 예수게이의 안다였던 토그릴이 테무진의 보호자가 되어줄 것을 약속하다.
젤메가 테무진 가족의 캠프에 합류하다.
생활이 나아지고 보르테와 행복한 신혼을 보내다.
메르키트족이 선대(先代)의 복수를 하기 위해 테무진 가족을 공격하다. 아내 보르테와 계모 소치겔, 늙은 하녀 ‘코아그친’이 납치당하다. 테무진을 포함한 다른 멤버들은 성산(聖山) 부르칸 칼둔에 몸을 숨겨 위험을 피하다. 부르칸 칼둔을 자신의 토템으로 섬기기 시작하다.
커레이트족을 찾아가 토그릴에게 보르테를 찾아줄 것을 부탁하다. 토그릴의 주선으로 자무카와 재회, 자무카가 전쟁에 합류하다. 빼앗긴 신부를 찾기 위한 자무카-커레이트-테무진 연합군이 결성되다. 약관 스무 살의 무카가 전쟁 총사령관직을 맡다.
자무카의 ‘킬코 강 도하작전’이 성공하다. 연합군이 메르키트족 3개 씨족을 연속 격파하다. 보르테와 재회하고 코아그친을 구하다. 하지만 계모 소치겔은 구하지 못하다. 벨구테이가 학살로 어머니 소치겔의 복수를 하다. ‘카아드 메르키트’의 카아타이 다르말라가 포로가 되어 부르칸 칼둔에 바치는 제물이 되다. 하지만 ‘톡토아 베키’가 이끄는 ‘오도이드 메르키트’, ‘다이르 오손’이 이끄는 ‘오와스 메르키트’는 일부 세력을 유지한 채 도주에 성공하다.
테무진의 작은 무리가 자무카 캠프에 합류하다. 자무카와 세 번째 안다 의식을 치르다. 자무카와 테무진이 무리를 함께 이끌다. 보르테가 메르키트족 전사(헐룬의 원래 약혼자의 동생인 칠게르)의 아이가 거의 분명한 첫째 ‘주치’를 낳다.
테무진과 자무카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1년 6개월 여간 지속된 ‘쌍두체제’가 붕괴하다. 보르테의 조언으로 결별을 결심하고, 바로 그날 밤 자무카의 캠프를 떠나다. 다음날 아침, 무리의 ‘친 테무진 파’ 구성원들이 테무진에게 합류하면서 최초로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다. 한편 테무진 무리의 이동에 놀란 타이치우드족이 자무카에게 도망치듯 귀순하다.
8년 여간 세력이 꾸준히 성장하다. 상시적인 약탈과 폭력 등으로 자무카 무리와 원한이 누적되다.
몽골 왕족들에 의해 ‘칭기스칸’으로 추대되다(1차 즉위라고 한다.). 그러나 암바가이 칸의 후손 타이치우드 인사들이 쿠릴타이에 참석하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정족수가 미달된 선거가 되다.
자무카의 친동생 ‘다이차르’가 테무진 무리의 말떼를 훔치다 말떼 주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다. 이를 계기로 전쟁이 발발하다. 친 자무카 파 13개 쿠리엔이 결집하다. 이에 대항해 테무진도 수하들과 지지자들로 13개의 쿠리엔을 구성하다. ‘13 쿠리엔 전투’에서 테무진이 자무카에게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며 좆망행 열차를 타다.
금나라의 왕경승상(좌승상)이 황제의 명을 받고 커레이트족과 함께 타타르 정벌에 나서다. 금나라-커레이트 연합군에 가담해 기회를 얻다. 주르킨 씨족이 약속을 어기고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집합하지 않다. 타타르 정벌에 성공하면서 물질적 기반과 평판을 얻는 데 성공, 재기하다. 왕경승상이 토그릴에게 ‘왕(王)’이라는 호칭을 내리면서 토그릴이 ‘옹 칸’이 되다. 테무진은 ‘자우트 코리(백호장)’라는 직함을 얻다. 그러나 복귀행군중에 ‘주르킨’ 씨족이 후방 부대를 약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다.
주르킨 씨족을 정벌하다. 지배계급을 처형하고, 남은 백성들을 평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다.
자무카가 타타르, 나이만, 메르키트족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지세력에 의해 ‘구르 칸’으로 추대되다. 칸으로 추대된 자리에서 옹 칸과 테무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다. 초원의 모든 세력이 가담하거나 연루된 ‘쿠이텐 전투’에서 테무진과 옹 칸이 승리하다. 적이 궤산되자 옹 칸은 자무카를, 테무진은 메르키트족을 추격하다.
휴... 여기까지만 해도, 겁나 파란만장하다.
1
(전편에 이어)쫓기는 타이치우드 전사들... ‘뚱뚱이 칸’ 타르구타이는 여전히 타이치우드의 칸이었지만, 군사작전을 지휘할 수는 없었다. 초원의 유목민들은 100% 가까이 육식을 했다. 생활습관이나 체질이 ‘찌는 타입’인 사람들은, 엄청나게 찐다. 타르구타이는 고도비만에 시달리고 있었다. 체구가 작은 몽골 말은 그의 체중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기마민족이 말을 못 타니, 군사를 지휘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야전에서는 ‘아오초’라는 용사(바하두르)가 타르구타이 대신 타이치우드 전사들을 이끌었다. 아오초는 맹렬하게 추격해오는 테무진 군을 따돌리며 씨족민들의 야영지까지 도망쳐왔다.
“어, 아오초 자네가 웬일이야... 행색이 그게 뭐야? 우리 군사들은...? 설마, 진 거냐?”
“참패했습니다. 비바람이 불어서 우리족 병사들을 쓸어버렸어요. 테무진이 옛 일을 복수한답시고 하필이면 우리를 쫓아왔습니다. 타르구타이 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백성들을 피난시키고 방어준비를 해야 합니다. 방패부터 챙기라고 하세요!”
“어우 야, 씨바 X됐구나...”
후방 부대와 백성, 가축들이 전투부대를 지근거리에서 따라다니는 게 초원의 전통이다. 타이치우드족은 쿠이텐 전투가 벌어진 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거리가 워낙 가까웠기 때문에 테무진은 나중에 이곳도 쿠이텐이라고 부른다.).
타이치우드족이 황급히 전투준비를 하고 있을 때, 테무진의 군대가 나타났다. 타이치우드족의 세력은 테무진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게다가 쿠이텐 전투의 패배로 이미 승부의 추는 테무진 쪽에 완전히 넘어간 상태였다. 타이치우드 군사들은 방패와 목책 등의 방어기구 뒤에 몸을 숨기고 화살을 쏘아대는 전략을 택했다. 노골적인 수비전술이었다.
타이치우드족에 잡혀와 목에 칼을 쓰고 포로생활을 하던 소년 시절의 테무진... 테무진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조리돌림을 당했었다. 타이치우드족 전부가 가해자이거나, 가해자의 일가친척이었다. 이 과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었다. 테무진이 자신들을 봐줄 가능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패배의 공포에 짓눌린 타이치우드족은 극렬하게 저항했다. 전투는 장기전의 양상을 띠게 된다. 그런데 이 ‘쿠이텐 전투 2차전’의 전투 방식이 무척 묘하다. 테무진과 타이치우드, 양 측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오직 활만을 쏘아가며 며칠씩 싸웠다. 사실 초원에서는 이런 전투방식이 흔했다. 백병전을 기피하고 활쏘기를 중요시하는 초원 전사들은 서로의 사정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장기간 싸우곤 했다.
하지만... 테무진의 병력은 타이치우드를 압도하고 있었다. 왜 테무진은 병력을 적진에 일제투입해 단번에 전투를 끝내지 않았을까? 이 상황에서 돌진을 명령했다간, 화살이 쏟아지는 긴 거리를 달리는 동안 불가피하게 희생이 발생한다. 테무진은 부하들을 불필요하게 잃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단순한 논리의 싸움일수록 머릿수와 물량을 압도하는 측이 반드시 이기게 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문제지만, 그까짓 며칠쯤 고생 더 해도 된다는 게 테무진의 입장이었다.
장기전이 되다 보니, 양측의 백성들이 살림살이와 가축들을 챙겨와 자기네 군인들과 함께 잤다. 글타... 양측은 자면서 싸웠다. 심리적 스트레스는 차치하고서라도, 전투라는 폭력활동은 엄청난 체력을 요구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이 넘어가면 자지 않을 수 없다. 양측은 사정거리를 유지한 채 저녁이 되면 게르와 천막 등으로 군영을 치고, 밤에는 잤다. 물론 밤에는 초병을 세워 서로를 감시했다.
엽기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합리적이다. 적이 밤사이 도망가거나 기습을 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니 상대를 자기 시야에 두어야 한다. 필연적으로 아군도 적의 시야에 들게 되면서 거리를 평화적으로(?) 유지하는 현상이 생긴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마치 그날의 일과처럼 전투가 다시 시작된다. 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진 지리적 조건이 만들어낸 싸움법이다.
테무진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테무진 군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타이치우드군을 견딜 수 없는 수준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타이치우드족의 전사 ‘지르고아다이’는 테무진이 자신의 사정거리 안에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
중세유럽의 전투에서는 귀족인 기사계급이 앞 열에 서서 돌진한다. 귀족일수록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한다. 그러다보니 중무장한 양측의 지배층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여당 국회의원들의 아들 태반이 군대에 가지 않는 어느 이상한 나라에서는 이게 무척 멋져 보일 수도 있는데, ‘정상적인’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걍 무식한 거다.
몽골초원에서는 지휘관이 뒤편에 위치한다. 그리도 되도록이면 높은 곳에 선다. 그래야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알 수 있고, 부하들에게 적절한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까. 물론 안전도 중요하다. 지휘관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면 아군 전체가 위험해진다. 당연히 테무진도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전투를 지휘했다. 물론 병사들은 사정거리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적도 아군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니까 말이다. 하지만...
전편에 이야기한 것처럼, 몽골에서는 전통적으로 정확도가 아닌 사정거리가 명사수를 가르는 기준이다. 다시 말해 명사수의 사정거리는 통상적인 기준보다 길다. 여기에 정확도까지 겸비하면 특등사수가 된다. 지르고아다이는 특등사수였다.
몽골인들의 활쏘기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인간의 시력은 보통 2.0에서 마이너스가 시작되지만, 더 먼 거리를 몰 수 있게 진화된 몽골인들의 시력은 3.0에서 시작한다. 몽골사람들은 꼭 전투를 하지 않더라도, 어릴 때부터 활쏘기에 숙달된다. 활쏘기는 아이들의 기본 놀이다. 몽골인은 유목민족이지만, 수렵이 받쳐주지 않으면 유목도 할 수 없다. 초원의 유목민들은 가축을 도살하지 않는 계절을 엄격하게 지켰다. 가축의 안정적인 임신과 출산을 보장함으로써, 머릿수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당연히 사냥은 생존의 문제다. 몽골초원에선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활쏘기에 능했다. 덧붙여 당시의 초원사람들은 활과 화살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성능 좋은 물건을 썼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특출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보통 솜씨가 아니다.
며칠간 이어진 싸움이 막바지에 이른 날 오후. 태무진이 마침내 지르고아다이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지르고아다이의 시위를 떠난 화살이 테무진의 목을 꿰뚫었다. 테무진은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다. 치명상을 입은데다가 낙마의 쇼크가 겹치면서 테무진은 실신하고 말았다.
쓰러진 칸... 테무진 조직의 수뇌부는 패닉상태에 빠지긴커녕 현명하게도 전투를 계속 진행했다.
“일단 테무진 형님을 게르 안으로 옮기자. 우리 편 군사들도 이 사실을 모르게 해야 해.”
아마 제2, 제3 참모였던 젤메와 보르추가 테무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고 있었을 것이다. 테무진 조직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는 이 두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이날 테무진 조직의 수뇌부가 보인 침착함과 냉정함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응? 지금 뒤에서 무슨... 설마 칸께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무슨 소리냐? 공격하는데나 집중해! 그렇게 넋 놓고 있다간 뒤통수에 화살 꽂힌다.”
“아니 그게 아니라 분위기가 좀...”
“설마 칸이 다치셨으면 내가 너한테 공격명령을 내리고 있겠냐? 활이나 쏴!”
실신한 칸을 게르 안에 뉘인 수뇌부는 태연을 가장하며 저녁까지 전투를 치렀다. 결국 그날도 다른 날처럼 해가 저물자 전투가 끝나고 각자 저녁식사와 잠자리를 준비했다. 그러다보니 타이치우드족은 테무진이 쓰러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들은 전투에서 이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채 일종의 ‘전략회의’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문제의 화살을 쏜 장본인인 지르고아다이는 과연 테무진이 쓰러진 줄 몰랐을까? 아마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군대 갔다와본 독자분덜은 알 거다. 인체의 상반신 실물크기의 250미터 과녁이 얼마나 작게 보이는지. 이정도 거리가 되면 타겟은 사실상 점이나 마찬가지다. 과녁 가운데에 가늠쇠를 조준하는 게 아니라, 숫제 가늠쇠 위에 타겟을 고이 올려놓고 쏘는 수준이다.
몽골 활의 통상적인 유효사거리(살상효과가 유지되는 사정거리)는 300미터에 육박했다. 명사수의 경우 사정거리가 무려 400미터를 넘어섰다. 이 거리에서는 타겟을 정확히 조준할 순 있어도, 타겟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까지는 모를 수 있다.
‘분명히 맞은 건 같긴 한데... 저넘들 하는 걸 보면 너무 자연스럽단 말이지...’
지르고아다이는 테무진 군 수뇌부의 ‘연기력’ 때문에 자신이 테무진에게 타격을 입혔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장담할 수 없으니 윗선에 보고할 수도 없는 노릇. 만약 지르고아다이가 확신에 차서 타르구타이와 아오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면, 그래서 지도자가 실신한 채 누워있는 적을 밤사이에 기습했다면 테무진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3
밤이 왔다. 테무진 무리는 혈통조직이 아니다. 보스의 개인적 역량으로 뭉친 조직이다. 초원은커녕 몽골부족도 통일되지 않은 상태였다. 테무진이 죽으면 조직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게다가 전쟁중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테무진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의식을 잃은 테무진은 이미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젤메가 나서서 독박을 쓰기로 했다. 하긴 이럴 때는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느니, 한 사람이 십자가를 매는 게 낫다.
“솔직히 다른 사람은 걱정된다. 내가 알아서 해 볼 테니, 모두들 날 믿고 기다려 달라.”
이게 먹혔던 걸 보면 젤메에 대한 조직의 신뢰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여하튼 젤메는 혼자서 테무진을 뉘인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당시 초원의 의료수준이 형편없었다는 거다. 딱 잘라 말해서, 민간요법 수준이었다. 물론 민간요법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중국과 고려를 예로 들어보면, 아무리 민간요법이라 할지라도 한의학의 정교한 체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초원에는 이 ‘체계’라는 게 없기 때문에, 우리의 의학상식을 거스르는 처치법이 많았다.
초원에서는 적의 무기에 의해 출혈이 생겼을 경우, 환부를 입으로 빨아 자연적으로 흘릴 피보다 더 많은 양의 피를 뽑아냈다. <우선 지혈을 한다>는 우리의 상식과 반대다. 젤메가 실신한 테무진에게 제공한 ‘의료서비스’도 입으로 피를 빨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료수준이 너무 조악할 경우, 오히려 이 방식이 소정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 않을까?
초원에서는 자신의 피를 보거나 피를 바닥에 흘리는 것을 불길하게 쳤다. 젤메는 테무진이 일어나서 자신의 피를 본다면 불쾌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입으로 빤 테무진의 피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물론 게르 밖으로 나가 뱉고 돌아올 수도 있지만, 충성스러운 젤메는 그러는 사이에 테무진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새 보스의 피를 삼켰다. 입으로는 그의 목을 문 채... 자세가 딱 뱀파이어를 연상케 한다.
이 대목을 다룬 역사학자들은 무척 난감해하면서도, 이 치료법이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폐에 침투해 생명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응혈(굳은 피)을 제거한다거나, 인공적으로 피를 빨리 돌게 해 뇌에 산소를 공급할 수 있다거나, 감염균과 감염된 피를 인공흡혈로 제거할 수도 있다는 식이다. 물론 누구나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 문제 때문에 유명 대학종합병원 출신인 현직 의대 교수분께 직접 자문을 구했다. 물론 딴지 수뇌부는 때와 장소와 상황에 상관없이 여러분의 갑(甲)이므로 자문료 따위는 없다. 사실 흡혈요법의 효과를 묻는 그 자리의 술값도 이분이 계산했다. 본문과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타의 모범이 되었기에 굳이 이야기하는 바이다.
여튼, 이 의대 교수님은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위험하기만 할 뿐, 어떤 의학적 효과도 없다고. 감염균이 체내에 퍼지는 속도는 ‘흡혈’로 피가 체외로 빨려나오는 속도보다 빠르다. 또한 응혈은 필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피를 빨리 돌게 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응급상황에서는 혈압이 오르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 흡혈 때문에 피의 유량이 적어지면 혈압이 떨어지는데, 더욱이 뇌에 산소를 공급하는 경동맥은 테무진의 환부인 목에 있다.
젤메는 주군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밤새 테무진의 피를 빨았다. 즉 현대의학의 상식으로는 밤새 뻘짓을 한 거다. 물론 젤메에게 죄는 없지만...
인간의 목이란 워낙 중요한 기관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라, 화살이 박혀도 살아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교수님은 언젠가 공사현장에서 목에 공업용 못이 박힌 인부를 수술치료한 적이 있다고 했다. 보고만 받고는 환자를 살리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환자 본인이 멀쩡히 걸어 들어와 사고경위를 차분히 설명했다고 한다. 못이 신기할 정도로 주요기관을 피해 박힌 것이다.
살다보면 가끔씩 이런 일이 일어나는 법이다. 지르고아다이가 쏜 화살이 0.5cm만, 아니 어쩌면 0.01cm만 옆으로 비껴갔어도 -화살이 지르고아다이의 시위를 떠나는 시점에서는 그야말로 나노 단위의 차이다- 테무진은 죽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테무진의 이름을 알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젤메의 위장에도 한계가 있었다. 너무 배가 불러서 더 이상 피를 삼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젤메는 어쩔 수 없이 테무진의 피를 바닥에 뱉었다. 젤메의 가공할 충성에도 불구하고 테무진은 죽지 않았다. 새벽녘, 드디어 테무진이 입을 열렸다. 그는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아이라크(마유주)... 아이라크를 마시고 싶다.”
이건 이해가 간다. 테무진의 신체는 엄청난 출혈을 견뎌야 했다. 그러니 액체를 가장 먼저 찾는 건 자연스럽다. 왜 꼭 아이라크여야 했을까? 아이라크는 초원유목민들의 기본 음료다. 칼슘 등 영양성분이 풍부한 젖을 재료로 쓰는데다, 발효과정에서 영양이 더 풍부해진다. 또 술이기 때문에 몸에 빨리 흡수되는 느낌을 준다.
테무진의 입에서 아이라크라는 단어가 나왔다. 의학지식이 거의 전무한 젤메는 다른 음료-물이나 가축의 피-가 아니라 꼭 아이라크가 있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씨바, 그 흔한 아이라크가 없었다. 워낙 급하게 이동하느라 아이라크 같은 것까지는 미처 챙겨오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젤메는 목숨을 걸기로 한다.
4
우리 편에 아이라크가 없다. 그렇다면 아이라크를 재빨리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타이치우드 진영이었다. 젤메는 적진으로 넘어가 아이라크를 훔쳐올 계획을 세웠다. 정신나간 짓이었다. 버뜨. 젤메는 의학지식은 없었지만, 머리는 정말 좋았다. 성격도 대담했다.
젤메는 옷을 벗고 알몸인 채로 400여미터를 걸어가 타이치우드 진영의 목책을 넘었다. 초원 문화에서는 알몸을 보이는 일이 상당한 금기였다. 물론 몸을 가리는 건 동서고금에 흔한 문화다. 하지만 신체노출이 자연스러운 문화도 많다. 현대의 한국인들도, 한여름 해변가에서 비키니차림을 한다고 무슨 큰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초원은 그렇지 않았다. 주르킨족이 테무진의 후방 부대를 약탈할 때 피해자들의 옷을 벗겨간 것도 일부러 그들을 모욕하기 위해서였다. 주르킨은 옷까지 벗겨갈 정도로 먹고살기 힘든 집단은 아니었다.
젤메는 테무진을 위해 목숨을 물론이고 자존심도 내놨다. 스스로 옷을 벗고 걸어 다닌다닌다... 술에 만취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 초병이 젤메를 발견하더라도, 술 취한 동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료의 체면도 지켜줘야 하고 스스로 민망하기도 할테니, 고개를 돌리게 마련이다. 언뜻 스치는 순간에 얼굴을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밤의 어둠이 가려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히면?
젤메는 플랜 B도 마련해놓았다. 초병에 적발되어 붙들리면 이런 핑계를 댈 생각이었다.
“그동안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테무진에게 충성했건만, 사소한 실수로 심기를 건드렸다고 이렇게 옷을 벗겨 모욕을 주지 뭡니까... 자칫하면 지금 딸랑 입고 있는 (팬티에 해당하는)속옷도 벗기겠더라고요. 분하기도 하고, 이 속옷만큼은 사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어쩌겠습니까. 도망 나왔지요. 역시 테무진은 인간도 아니었어요! 이제부턴 타이치우드족에 충성할랍니다!”
일단 이렇게 귀순해 놓고는, 때를 봐 적당히 실종된 다음 테무진 진영으로 넘어오려고 한 거다.
플랜 B까지 갈 것도 없었다. 어떤 초병도 젤메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그는 아이라크가 있을 만한 곳을 열심히 뒤졌다. 하지만 씨바, 타이치우드 진영에도 아이라크가 없었다. 급하게 이동하느라 살림살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건 타이치우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타이치우드 진영엔 테무진 쪽에 없는 게 있었다. 젤메는 운 좋게 응유(凝乳) 한 덩이를 훔칠 수 있었다.
‘응유’라고 하면 뭔가 신비한 식품일 것 같지만, 사실은 걍 요거트다. 젖이 발효하면 요거트가 된다. 요거트가 더 발효하면 술이 되는데, 이게 아이라크다. 물론 마유주(馬乳酒)라고 하는 만큼, 말젖으로 만든다. 말젖은 다른 가축의 젖에 비해 굳지 않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계속 저어주어야 하지만, 치즈가 되지 않고 술이 된다.
사진 - 론니플래닛
젤메가 ‘입수’한 응유는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아이라크를 만들다가 전쟁통에 방치되어 굳은 것일 수도 있고, 다른 가축의 젖일 수도 있다. 가능성은 적지만, 물에 섞어 먹으려고 준비한 전투용 비상식량일 수도 있다(분유의 말뜻은 이유식이 아니라 ‘가루젖’이다.). 꿩대신 닭이라고... 그래도 젤메, 아이라크와 가장 비슷한 걸 구했다.
젤메는 응유 한 덩어리를 들고 타이치우드 진영을 빠져나왔다. 들어가다 잡히면 핑계가 있지만, 돌아오는 길에 잡히면 뭐라 설명을 하기가 애매하다. 따라서 적 초병의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이때가 젤메에겐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젤메는 무사히 돌아왔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테무진이 누워 있는 게르에 달려가 응유를 물에 개어 테무진의 입 안에 흘려 넣었다.
몇 시간동안 출혈을 견디고 처음 음료를 마신 테무진은 드디어 눈을 떴다. 그가 의식을 찾고 처음 본 건 젤메와 바닥을 적신 자신의 피였다. 테무진이 죽다 살아나서 처음 한 말은?
“다른 데 뱉을 수 없었나?”
너무하다 싶은데, 생각해보면 뭐 이해는 간다. 테무진은 젤메가 어떤 밤을 보냈는지 전혀 몰랐던 데다가, 피에 대한 미신도 있었으니.
“아픈 형님을 두고 차마 왔다 갔다 할 수가 없어서... 너무 걱정돼서요... 피를 보지 마시라고 계속 삼켰는데,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을 정도로 마셔서 어쩔 수 없이 옆에 좀 뱉었습니다.”
“아, 음... 그래? 그럼 응유는 어디서 구한 거냐? 우린 그런 건 안 챙겨온 걸로 아는데?”
“아, 그거요. 타이치우드 놈들 진영에 건너가서 훔쳐온 겁니다.”
“뭐... 뭐 색햐? 거기가 어디라고! 만약 네가 잡혀서 고문이라도 당했다 치자. 그래도 내가 몸져누웠다고 발설하지 않았겠느냐?”
맥락을 잘 살펴보면, 테무진은 젤메의 충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다만 테무진은 고문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상식선에서 인간을 판단했다. 물론 우리 역사엔 모진 고문을 이겨내고 절개를 지킨 독립운동가들이 많지만, 이러한 극기를 자신이 선택하는 것과 타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테무진은 극기에 해당하는 충성을 바란 적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테무진은 ‘고문에 굴복할 지도 모르는’ 젤메의 충성심을 의심한 게 아니라, ‘고문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을 감수한’ 젤메의 무모함을 탓한 것이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찌뿌둥했던 테무진과 달리, 보스가 살아난 걸 본 젤메는 기쁨에 겨워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전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신나게 설명했다. 엇... 테무진, 할 말이 없어졌다. 보통 지위가 높은 사람은, 특히 남자는, 아랫사람이 자기가 틀렸음을 증명하거나 자신의 예측을 벗어난 훌륭함을 보일 때 불쾌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민망한 순간에 테무진의 장점이 나온다. 그는 젤메를 잘못 판단했음을 즉시 인정하고 영원한 신의를 맹세했다.
“젤메, 넌 좀 짱이다. 내 목숨을 네가 살렸다. 오늘 일을 잊으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너의 충성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마.”
테무진과 젤메 사이의 온도가 훈훈하게 올라가던 그때, 타이치우드 수뇌부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5
“도망가면 따라붙고, 도망가면 따라붙고... 저 새끼들은 전생에 거머리였나...”
“놈들의 추격을 벗어날 수 없는 건 우리와 놈들의 조건이 같기 때문이에요. 우리나 저쪽이나 군사에 더해 백성들이 붙어있습니다. 그러니 일정한 거리가 쭉~ 유지되는 거죠.”
“당연한 말을 해서 뭐해?”
“만약 백성들을 버려두고 군사만 움직이면...”
“그런 말도 안... 으음 말이 되는데?”
타이치우드 수뇌부는 백성들을 버리고 튀기로 했다. 그러면 속도가 빨라지는데다가, 테무진 군은 백성들을 약탈하느라 추격속도가 더 늦어지겠지... 참으로 비겁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과연 비겁한 결정이었을까? ‘보호자’와 ‘착취자’는 크게 다른 말이 아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백성들은 소수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존재했다. 기실 이 보호라는 것도 지배층의 기득권이 보장되고 난 후에 발동되는 혜택이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하층민을 보호하는 상층계급은 없다. 가족주의를 외치며 직원들에게 군대식 충성을 요구하던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IMF때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 ‘가족’을 자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자본주의는 생각보다 봉건적이다.
테무진은 달랐다. 이건 타이치우드 지배층이 특별히 비겁한 게 아니라 테무진이 별난 경우다. 그의 위대함 대부분이 여기에 있다. 테무진은 자신과 울루스(백성,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백성들의 나라)의 관계를 지배와 복종이 아닌 상호계약으로 봤다. 백성에겐 테무진에 대한 의무가 생기면, 동시에 테무진 입장에선 그들에 대한 책임이 발생한다. 뭐랄까, 뜬금없을 정도로 근대적이다.
테무진이 배신자를 그토록 혐오한 이유는 그가 사회의 구성원리를 ‘약속’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자기 자신도 백성들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착취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그냥 착취다. 테무진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에 굉장히 예민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사치를 멀리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가 된 후에도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나는 평생 누더기를 입고, 병사들과 같이 한데서 잤다. 언제나 백성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이런 소양이 가능한 이유는 경험 때문이다. 테무진은 출신과 배경에 의해 권력을 얻지 않았다. 그는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여러 계급을 거쳤고, 개인적 역량으로 부하들을 ‘모집’했다. 그래서 자신이 왜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칸인지 계속해서 증명해야 했다. 테무진의 무리는 혈통집단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가진 이익집단이었다. 그렇다면 테무진의 부하들은 무엇을 위해, 어떤 이익을 위해 모여들었을까?
설마 테무진이 정복자의 운명을 타고난 영웅이고, 영웅의 위대한 여정에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충성을 맹세하고 목숨을 아끼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불안하고 가난한 초원에서, 좀 더 잘 먹고 잘 살아보자고 모인 거다. 테무진은 이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배신을 혐오하면서도, 부하들에게 ‘먹고사니즘’을 넘어서는 충성을 요구한 적은 없다.
대표적인 예가 전쟁을 할 때의 태도다. 테무진은 패색이 짙어지면 자신을 위해 죽거나 다치지 말고 각자 살 길을 찾아 도망가라고 명령했다(물론 끝까지 남는 사람들을 쫓아내진 않았다.). 또한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듯이 싸우면 질 수도 있고 후퇴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안 되겠다 싶으면 명령이 없어도 알아서 도망가야 한다. 테무진의 병사들은 목숨만 살아 돌아올 수 있으면 승리, 약탈품, 군 보급품등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었다. 이건 권고사항이 아니라 군율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테무진의 이런 태도가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궁극의 충성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테무진의 부하들이 한 말 중에 이런 표현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물을 가리키면 물에 뛰어들고, 불을 가리키면 불에 뛰어든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날이 밝았다. 타이치우드 수뇌부와 군사들은 말 그대로 ‘튀었다.’ 버림받은 타이치우드 백성들은 그냥 그 자리에 눌러앉아서 운명을 기다렸다. 자포자기 상태였다. 도망가봐야 잡히고, 싸워봐야 가망이 없다. 타이치우드 진영에 들어온 테무진의 군대... 절망의 순간, 테무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놀라 도망한 백성들일 뿐이다. 모두 살려준다. 자기 군사들에게 가든, 야영지로 돌아가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놓아주도록 한다.”
주르킨 정벌 때와 마찬가지로, 백성을 제외한 적의 지배층에만 책임을 물겠다는 뜻이었다. 뜻밖의 ‘사면’을 받은 타이치우드 백성들이 짐을 꾸려 자기네 병사들이 도망한 곳을 향해 피난행렬을 이룰 때였다. 저 멀리, 웬 붉은 옷을 입은 여인 하나가 고개에 올라서서 울부짖고 있는 게 아닌가?
“테무진, 테무진! 테무진이다! 테무진을 찾았다!”
‘뭐지, 저 여자는? 머리에 꽃 꽂았나...’
테무진은 병사 하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 저 여자 말이야. 가서 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지 물어보고 와.”
6
“이봐요, 아줌마. 우리 칸께서 통크게 살려주셨으면 다른 사람들을 따라 갈길 가면 되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 테무진이 뭐요, 테무진이. 칭기스칸이라고 불러야지...”
“테무진이 내 친한 친구라서 그래요.”
“얼씨구, 친구 같은 소리 하네... 이 아줌마가 정신이 아주 나갔구만?”
“정말이에요. 나는 ‘솔두스’ 씨족 ‘소르칸 시라’의 딸 ‘카다안’이에요. 테무진이 어릴 적 타이치우드 족에 붙잡혔을 때 친구가 됐어요. 우리 가족의 도움으로 테무진이 탈출할 수 있었단 말이에요.”
글타... 붉은 옷의 여인은 그 옛날 포로생활을 하던 테무진을 도와준 소르칸 시라의 딸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이쿠, 제가 카톤(귀부인)님을 몰라 뵙고 실수를 했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하십...”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 남편이 당신네 군사들한테 붙들렸어요. 당신네들이 남편을 죽여 버리면 난 어떡해요. 어서 테무진에게 가서 내 남편을 살려달라고 전해줘요!”
(카다안의 남편은 타이치우드족의 전사였던 모양이다. 퇴각 중에 테무진 군의 추격대에 꼬리가 잡혔거나, 진영에 남아 저항하다가 붙들린 것 같다.)
테무진은 병사의 보고를 듣자마자 카다안이 서 있는 곳으로 냅다 말을 달렸다. 그는 카다안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에서 뛰어내렸다. 두 사람은 감격에 겨워 서로를 끌어안았다. 테무진에게 카다안은 은인이기 이전에 그리운 친구였던 거다.
“일단 네 남편부터 찾자.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봐.”
하지만 이윽고 들어온 보고는...
“저 그게... 우리 병사가 이미 친구분의 남편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헐...”
아 씨바 이거 어떡하지... 테무진은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몰랐을 것이다. 그날 밤, 테무진은 카다안과 만난 바로 그 자리를 중심으로 진영을 세우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카다안이 자신과 나란히 앉게 했다. 자신과 동급의 인간임을 공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원래 카다안은 천민 씨족의 여자였다. 역사는 이후 그녀의 이름을 다시는 거론하지 않지만, 테무진과 재회한 후 카다안의 사회적 지위와 삶의 질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하여간 테무진에게는 카다안에게 갚을 게 많았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삼천포로 새 보자.
6.5
근거없는 상상이지만, 테무진과 카다안 사이엔 묘하게 로맨틱한 분위기가 있다. 초원에서 칸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부인밖에 없다. 나란히 앉았다라... 어쩐지 남녀관계를 암시하는 느낌이 든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장소는 아무래도 테무진의 게르 앞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란히 앉았다가 “안녕, 잘자~”하고 각자의 잠자리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테무진의 게르에 함께 들어갔을까? 함께 들어갔다면 밤새 주사위놀이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손만 잡고 자지도 않았을 거고...
재회하자마자 서로를 끌어안은 것도 너무 격의가 없다. 이전 기사에서 충분히 설명했지만, 몽골초원에서는 어릴 때 약혼이 성사되면 신랑이 신부에게 성교육을 받는다. 꼬마 연인에게 에로틱한 지도를 받으면서 데릴사위노릇을 한다. 즉 어릴 때는 성(性)의 주도권이 여성에게 있다.
카다안은 테무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호감을 느꼈다. 성적 호감은 전혀 없었을까...? 둘 다 사춘기였다. 테무진이 소르칸 시라의 게르에 올 때마다 카다안이 그를 뉘이고 “보살폈다.” 이 보살폈다는 표현이 많은 상황을 함축한다고 느끼는 건 내 사상이 불순해서인 셈 치자.
테무진에게는 몇 명의 아내가 있었다(아직까지는 보르테가 유일한 아내였다.). 그 중 카다안의 이름은 없다. 카다안은 아마 다른 남자와 재혼했을 것이다. 그러나 테무진과 성관계가 전혀 없었다고 장담할 순 없다. 어쩌면 테무진과 당분간 애인사이로 지냈을 수도 있고, 공공연한 정부(情婦)였을 수도 있다.
자자, 책임 못 질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7
다음 날. 테무진 군은 마지막 전투를 준비했다. 타이치우드 수뇌부는 멀리 가지 못했다. 테무진 군은 백성을 약탈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게 놓아준 백성들이 다시 수뇌부와 군에 합류하면서 이동속도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말았다. 테무진이 백성들을 돌려보낸 데엔 이런 계산도 있었던 것이다.
쿠이텐 1차전의 패배, 연속된 후퇴... 지칠 대로 지친 채 결국 포위당한 타이치우드족은 드디어 저항을 포기했다. 테무진은 타이치우드 귀족층을 “친척의 친척까지 재로 날려버렸다.” 대신 백성들은 무리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다. 아오초 용사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뚱뚱이 칸 타르구타이는 기어이 탈출에 성공했다. 수레를 타고 도망간 걸 생각해 보면, 이동속도도 느렸을 텐데 나름 용하다.
테무진은 드디어 소르칸 시라 가족 전부와 만날 수 있었다. 노인이 된 소르칸 시라와 장성한 칠라온, 침바이 형제 말이다. 은인들이 무사히 살아있는 걸 본 기쁨이 지나가자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노인장, 내가 얼마나 그대들을 보고 싶었는줄 아시오. 솔두스 씨족이 타이치우드 씨족에 눌려 사는 천민씨족이라곤 하지만 나한테 넘어올 기회가 영 없었던 건 아니지 않소? 내가 자무카와 갈라지던 날, 타이치우드 놈들이 놀라서 자무카한테 도망갔지 않소. 그때 눈치껏 빠져나와 내 진영으로 넘어온 솔두스족 친구들이 여럿 된단 말이오. 우리가 이렇게 늦게 만나지 않아도 되지 않았소? 나는 그대들을 ‘밤에는 꿈속에, 낮에는 가슴에 그리며’ 매일같이 생각했는데...”
“나라고 왜 테무진 칸과 함께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나는 솔두스 씨족의 수장이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수장인 내가 칸에게 귀순해버리면 남은 사람들, 남은 가축들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아마 타이치우드 귀족들이 우리 일족의 씨를 말렸을 겁니다. 왜 조급하게 서두릅니까? 그대가 타이치우드를 물리치고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지 않은가? 테무진은 소르칸 시라가 현명했음을 선선히 인정했다.
“아, 그렇구려. 노인장 말이 맞소. 내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소.”
이때부터 소르칸 시라는 원로 대우를 받으며 살게 된다. 침바이, 칠라온 형제는 테무진의 중요한 장수가 되는데, 이 중 칠라온이 특히 주목할 만한 인재다.
분위기 참 좋다... 좋은 건 좋은 거고, 이제는 테무진을 죽일 뻔한 새끼를 잡아 족칠 차례였다.
8
테무진은 포로들을 앉혀놓은 자리에서 물었다.
“우리가 싸울 때 내 백마의 목을 화살로 맞춘 자가 누군지 아는 사람?”
테무진은 범인을 손쉽게 적발하기 위해 두 가지 꼼수를 썼다. 일단 백마가 다쳤다고 뻥을 쳐서 죗값을 낮춰놓았다. 어차피 전투 중이었다. 말을 다치게 하는 것까지야 충분히 정상참작이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로 마치 상이라도 줄 것처럼, 아는 사람 있으면 일러바치라고 했다.
활을 쏜 당사자인 지르고아다이는 테무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분명히 테무진의 목을 조준했는데, 말이 맞을 리가 없지 않나.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테무진이 치명상을 입었던 게 확실해졌다.
지르고아다이는 성격이 급하고 과단성 있는 사내였다. 시쳇말로 ‘화끈했다.’ 그는 이렇게 긴장한 채 숨어서 목숨을 부지하는 상황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지르고아다이는 벌떡 일어서서 테무진 앞으로 걸어나갔다.
“제가 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맞춘 건 말이 아니라 당신의 목인데요?”
“어... 그... 그러냐?”
테무진은 지르고아다이의 당당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요놈 봐라?’
“뭐, 저도 사람인데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래 뵈도 꽤 쓸모가 있는 놈입니다. 눈 딱 감고 살려주시면 크게 쓸 수 있는 인재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이건 비굴한 게 아니라 솔직한 거다.
“영 괘씸해서 안 되겠다 싶으면 처형하십시오. 그까이꺼 ‘제 피로 조그만 땅을 적시는’ 일밖에 더 되겠습니까. 이 마당에 중간이 어딨습니까? 깔끔하게 가죠.”
테무진은 지르고아다이의 태도가 마음에 쏙 들었다. 활솜씨도 탐났을 것이다. 테무진은 지르고아다이를 부하로 삼고 싶은 마음에 그를 살려줘야 하는 이유를 직접 설명하기까지 했다.
“전투중에 적의 우두머리를 쏘아 맞추는 게 뭐가 잘못된 건가? 이 친구를 봐라. 솔직한데다 당당하고, 죽음도 겁내지 않는다. 동무할 만한 사람이다. 너, 이름이 지르고아다이라고 했던가?”
“네.”
“짜식, 살려준다. 앞으로 날 위해 싸워라.”
“충성이 뭔지 보여드리죠.”
“그래. 그럼 네 이름 좀 바꾸자.”
“네...? 이름을 바꿔요?”
몽골초원에서는 태어날 때 부모에게 받은 이름을 평생 바꾸지 않는다. 칭기스칸이니 구르 칸이니 하는 건 이름이 아니라 호칭일 뿐이다. 테무진도 가족과 가까운 사람에게는 본명으로 불렸다. 본명을 바꾼다는 건 굉장히 생뚱맞은 거다. 테무진이 상상력을 발휘할 줄 아는 인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네 이름은 앞으로 ‘제베’다.”
아무리 맘에 든다고 해도, 칸을 죽일 뻔한 건 심각한 죄다. 테무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름을 바꿈으로써 ‘지르고아다이’로 산 한 남자의 과거를, delete키를 누르듯 그야말로 삭제해버린 거다. 대신 테무진에게 충성하는 제베라는 이름의 새로운 인간을 생성시켰다. 새 캐릭터의 이름이 제베인 이유는, 테무진이 이 남자와 ‘제베’를 통해 처음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보통 제베를 ‘화살’로 번역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하진 않다. 제베란 구체적으로 말해 무기에 달린 쇠, 그 쇠의 날카로운 ‘날’이나 ‘끝’부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창에는 제베가 있다. 창에는 날이 있고, 날에는 뾰족한 끝이 있으니까. 화살엔 대체로 제베가 있지만, 끝이 뭉툭한 고두리살에는 없다. 철퇴는 쇳덩어리를 단 무기지만 형태상 제베가 있을 수 없다.
(예문)
보르테 : 여보, 당신 창의 제베가 구부러졌어요.
테무진 : 그러게. 이따 망치로 두들겨 펴서 다시 살려내야겠어.
개인적으로 제베를 ‘날끝’정도로 번역하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참고로 ‘날끝’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원래 있는 단어다. 독일현대철학의 권위자 이기상 교수가 하이데거의 철학개념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우리말로 만든 번역어다.
전설의 장수 제베는 이렇게 탄생했다.
8.5
제베의 전설과 함께 수부테이의 전설도 탄생하게 된다. 원래 수부테이는 테무진의 ‘케식’ 멤버였다. 케식은 칸의 호위군사를 뜻한다. 어느 정도 규모의 무리를 이끄는 칸들은 케식의 호위를 받았다. 테무진은 수부테이를 제베에게 맡겼다. 물론 제베의 천재적인 군사능력이 검증된 후였다. 활솜씨가 다가 아니었던 거다.
이하의 대사는 순전히 상상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대사처럼 파란색으로 표기하지 않고 회색으로 처리하도록 한다.
“이봐, 수부테이라고 알지? 젤메의 친동생 말이야. 글쎄 이 녀석이 말이야, 너무 처먹어. 나이 좀 들면 타르구타이처럼 말도 못 탈거 같다니까? 이놈이 원래 숲속에서 대장장이 하던 친구라 그런지 말 타고 사냥하는 취미가 없어. 그러니 몸매관리가 될 리가 있나...”
실제로 수부테이는 인생의 반 이상을 고도비만으로 보내게 된다.
“아니, 말이 힘들어할 정도로 살이 쪘으면 케식에서 자르면 될 거 아닙니까?”
“그게, 이 친구가 뭔가 특별한 게 있어. 군사작전을 좀 짤 줄 아는 거 같아. 그런데 재능이 어디까지인 줄 모르겠단 말야. 무식할 땐 또 엄청 무식하고... 어쨌든 그냥 썩히긴 아무래도 좀 아까워. 그래서 자네 부관으로 붙여보려고.”
“설마 지금 저한테 폭탄을 돌리시려는...”
“자네 이름이 왜 제베더라?”
“성심껏 가르치겠습니다.”
숲 속 대장장이로 성장해 테무진의 케식이 된 수부테이. 그는 제베의 부관으로 커리어를 쌓으면서 전쟁이 뭔지를 ‘제대로’ 배운다. 제베-수부테이 콤비의 이야기 <투 가이즈> 편을 기대하시라. 거기까지 가려면 몇 편 남았지만.
outro
타이치우드 백성들을 흡수한 테무진의 울루스는 오논 강 상류로 올라가 겨울을 났다. 한편, 목숨을 부지한 타르구타이는 테무진의 눈을 피해 숲 속에 숨어 지내고 있었는데...
(15) 패자의 역습
1
(전편에 이어)오랫동안 타이치우드족의 칸이었던 뚱뚱이 칸 타르구타이는 별로 인기가 없었던 것 같다. 백성들에게 복수의 감정이 들게 만드는 건 일차적으로 인품의 문제지만,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타르구타이는 평민과 하층민들에게 뭔가 크게 잘못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를 찾아 보복하려는 백성이 있었던 걸 보면 말이다.
테무진의 눈을 피해 숲 속에 은신해 있던 타르구타이 가족. 그러나 이곳엔 다른 타이치우드 사람들도 있었으니... 바로 타르구타이를 사냥하기 위해 숲 속에 따라 들어온 한 가족. ‘시르구에투’ 노인과 그의 아들 ‘알락’, ‘나아야’였다.
테무진은 타이치우드 백성들을 사면하고 무리에 받아들였다. 시르구에투 가족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위험과 고생을 무릅쓰고 타르구타이를 추적했다는 건, 웬만큼 원한이 쌓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타르구타이의 품성이 그리 좋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여간 타르구타이... 마침 혼자 숲속을 돌아댕기다가 시르구에투 3부자(父子)에게 딱 걸리고 만다.
“오오! 너희들도 날 버리지 않고 따라온 것인가?”
“X까네... 이눔자식아, 그래 보호자 어쩌구 하더니 백성들을 내비두고 도망가 버리냐?”
“이것들이 미쳤나... 어따 대고 반말이야?”
“이놈이 아직도 지가 잘 나가는 줄 아나. 우린 테무진 칸에게 귀순할거다! 빈손으로 가면 썰렁할 테니 네놈을 선물로 잡아갈 생각이다!”
말에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비만이었으니 거동도 불편할 터. 늙고 뚱뚱한 타르구타이는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홀랑 붙들려버렸다. 하지만 그를 호송하는 건 무척 불편한 일이었다.
“아 이새끼, 하도 뚱뚱해서 말이 버티질 못하잖아!”
“아버지, 어쩔 수 없이 수레를 써야겠는데요.”
“아오, 가뜩이나 먼 길인데 수레 하나를 이놈 태우는 데 써야하는 거야?”
“어쩔 수 없죠...”
시르구에투 가족은 타르구타이를 묶어(나무로 만든 칼을 씌웠을 수도 있다.) 수레에 태웠다. 그리고 테무진 무리의 야영지로 향하려는 그 때, 없어진 아버지를 찾던 타르구타이의 아들들이 다가왔다.
“아버지! 네 이놈을 아버지를 놓아주지 못할까!”
“앗...”
달랑 아들 둘만 다닌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전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놈들을 베고 아버지를 구해라!”
“잠까아아안....”
위기에 빠진 시르구에투 가족. 시르구에투는 재빨리 헐리웃 영화에서 흔히 보는 장면을 연출한다. 시르구에투가 수레에 올라 타르구타이를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타 목에 칼을 댄 것이다.
“가까이 오면 베어버린다!”
알락과 나아야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두 아들은 참으로 실용적이게도, 아버지를 놔두고 쌩 달아났다.
“저흰 도망가 있을 테니까 어떻게 함 버텨보세요! 혹 잘못되면 저희라도 남아서 대는 이어야죠.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그... 그래 알았다 이 자식놈들아...”
어쨌든 이렇게 당하게 되니 타르구타이가 아들들을 말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야! 오지마! 애비 죽는다!”
하지만 타르구타이의 아들들은 아들들대로...
“이 새끼! 아버지를 죽이면 너희는 모두 몰살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타르구타이를 죽일 수 없는 상황이네?’
도박에는 블러핑이란 말이 있다. 쎄게 나가는 거. 어쨌든 타르구타이의 목숨은 시르구에투의 손아귀에 있었다. 시르구에투는 머리를 굴려 과감한 블러핑을 시전했다.
“네놈들이 말장난을 하는구나. 이놈들아, 이놈을 죽이면 당연히 나도 네놈들한테 죽겠지. 하지만 아비를 살려줬다고 네놈들이 우릴 살려주겠느냐?”
초라한 가족이 기병전사들을 따돌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 타르구타이를 살리든 죽이든 어차피 우린 죽잖아? 그럼 저승 길동무라도 하나 만드는 게 덜 억울하지.”
시르구에투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그가 타르구타이의 목을 따려는 찰나, 블러핑에 넘어간 타르구타이가 소리쳤다.
“얘들아!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 그냥 날 두고 가라! 너희들이 오면 내가 죽어버릴 참인데, 나 시체 돼서 구조되고 싶지 않거든? 그냥 가! 떨어져! 어차피 테무진은 날 안 죽인다!”
“아니 아버지, 대체 왜 테무진이 아버지를 해코지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믿는다는 말이 있다. 위기에 빠진 타르구타이의 뇌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옛날에 말이다... 테무진이 꼬맹이였을 때, 예수게이가 야영지를 바꾸면서 테무진을 쏙 빼놓고 간 적이 있잖니? 해서 그녀석이 미아가 됐는데, 우리 타이치우드족이 이동하다가 발견해서 내가 어떻게 했냐. 먹이고 입히고, 응? 얼마나 잘 보살폈냐. 내가 아니었으면 테무진이 지 엄마아빠를 다시 만날 수나 있었겠냐? 테무진이 이렇게 큰 것도 다 내덕이라고!”
“저기 그건 정말 옛날이구요... 그 다음에 예수게이가 죽고 나서 테무진 가족을 버렸잖아요! 그것도 모자라 테무진을 붙잡아다가 목에 칼 씌워놓고 괴롭힌 건 생각 안나요?”
“그야 지 형을 죽였으니까 집안의 큰어른으로서 훈육 좀 한 거지!”
“아니 글쎄, 그걸 테무진이 훈육이라고 생각 하겠냐고요...”
“이것들아! 애비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아보겠다는데 그렇게 초를 쳐야겠냐! 테무진이 반드시, 꼭, 백프로 날 죽인다고 장담할 수 있어?
얘들아, 가까이 오면 이 노인네가 날 죽인다잖아. 내 시체를 가져다가 뭐에 쓰겠냐? 사람 운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 내 목숨은 운명에 맡기고 너희는 어서 갈 길을 가라.”
결국 타이치우드 왕자들은 분을 삼키며 아버지를 놔두고 떠났다. 타르쿠타이의 아들들과 부하들이 사라지자 멀찌감치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알락과 나아야가 다시 나타났다.
“어이쿠 아버지~ 잘하셨어요!”
내가 시르구에투였으면 아들놈들 뺨따구라도 한 대씩 날렸을 거 같다. 하지만 시르구에투는 그러지 않았다. 몽골인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극도로 실용적이었다. 죽을 사람은 죽어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불필요하게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는 건 바보짓이다. 실리를 위해서면 몰라도, 영광과 명예 따위를 위해서 목숨을 감수하는 건 무식한 정도를 넘어서 그냥 4차원의 이야기다. 이게 몽골인들의 사고방식이었다. 이런 태도는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
우쨌든... 시르구에투 3부자는 타르구타이를 끌고 테무진이 있는 곳을 향해갔다. 타르구타이까지 합해서, 네 명 모두 나름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시르구에투 가족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타르구타이는 혹시나 테무진이 자신을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그런데 나아야는 희망에만 들떠 있기엔 좀 영리한 사람이었다.
시르구에투 가족이 ‘코토콜’ 습원에 다다랐을 때였다. 초원에서 습원이란, 강물에 젖은 축축한 초지를 말한다. 테무진을 만나려면 오논강 줄기를 따라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대충 표현하면 중간쯤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행길 내내 머리가 복잡하던 나아야가 문제제기를 했다.
“저 아버지, 테무진은 배신자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인물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
이제 테무진은 초원의 중심인물 중 하나였다. 웬만한 사람들은 그의 성격이나 습관 등을 경험하거나, 들어서 알고 있었다.
“테무진이 타르구타이를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봐요. 어쨌든 우리 칸이었잖아요. 테무진은 타르구타이를 죽일 테지만, 과연 우리는 가만둘까요? 우린 ‘제 칸을 배신한’ 인간들인 거라구요.”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지? 우린 타르구타이를 이미 붙잡고 있는데.”
“타르구타이를 놔줍시다.”
“엥?”
“놔 주고, 테무진에게 귀순해서 솔직히 말하는 겁니다. 칸께서는 자신의 칸을 배신한 인간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르구타이를 놔주고 보시다시피 우리만 오게 되었다, 이렇게 걍 다 솔직히 말하는 겁니다.”
“으... 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인간을 살려 보내고 온 놈들이 되는 거잖아?”
“테무진은 신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잖아요. 타르구타이가 아무리 미워도, 우리를 미워하지는 않을 지도 몰라요.”
시르구에투 가족은 궁리 끝에 판돈을 모두 올인하는 베팅을 했다. 타르구타이, 즉 판돈 전체를 걍 살려 보내준 것이다. 이때 타르구타이의 기분은 그야말로 날아갈 것 같았으리라. 뭐, 실제로는 날기는커녕 말도 못 타서 자식과 부하들이 있는 곳까지 터벅터벅 걸어가야 했을 테지만.
그렇게 테무진을 방문한 귀순용사들이 면접을 보는 자리.
“그대들은 어떻게 나에게 왔는가?”
시르구에투는 있었던 일들을 솔직히 얘기했다. 도박은 성공했다.
“내가 아무리 그 인간을 죽이고 싶어도, 너희한테는 칸이다. 타르구타이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너희는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테무진은 나아야를 크게 칭찬하고 상까지 주었다. 정확히 어떤 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상당히 좋은 직책을 준 것 같다. 테무진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하급장교나 신임하는 부하의 부관, 케식(호위군사)의 멤버 등 눈에 띄는 자리에 꽂아 넣은 후 면밀히 관찰해 능력치를 판단하곤 했다. 이후 나아야는 테무진의 중요한 장수로 성장하게 된다.
뉴페이스뿐 아니라 익숙한 손님도 찾아왔다. 테무진의 막내숙부 다리타이였다. 그는 형 예수게이가 죽고 난 후 테무진 가족을 버렸다가, 테무진이 성공하니까 다시 찾아왔다가, 테무진이 13익 전투에서 패배하자 (아마도 자무카에게 귀순하려고) 잽싸게 떠났던 초원 최고의 철새.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리타이는 은근슬쩍 다시 테무진 무리에 합류해 있었다. 테무진이 쿠이텐 전투에서 대승한 이후가 분명하다.
테무진은 다리타이를 참 많이도 봐줬다. 다리타이는 아버지 예수게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테무진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다. 이런 경험은 가슴 한구석을 텅 비게 만든다. 테무진은 다리타이를 통해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되도록 막내숙부를 잘 모시려고 애쓴 모양이다. 그런 테무진의 마음과는 달리, 철새종결자 다리타이의 여정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3
여기까지가 테무진이 쿠이텐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서 ‘전후정리’를 한 이야기다. 타이치우드를 박살내고, 자신을 죽일 뻔한 명사수 지르고아다이를 ‘제베’라 이름 붙여 부하로 삼고 등등. 그런데 애초에, 쿠이텐 전투에서 승리한 후 테무진은 타이치우드를, 옹 칸은 자무카를 추격했다. 옹 칸과 자무카는 어떻게 되었을까?
옹 칸은 자무카를 확실히 밟아서 싹을 자르기 위해 추격한 게 아니었다. 역사가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마도 자무카를 부하로 포섭하기 위해 쫓아간 게 분명해 보인다. 왜였을까? 자무카는 옹 칸과 테무진에게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나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헌데 다 이겨놓고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민다? 역시 이상해 보인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옹 칸은 첨부터 테무진과의 신의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뼛속까지 정치꾼인 그는 소(小)이이제이를 위해 테무진과 함께했을 뿐이다. 젊은 시절, 자신을 살려주고 칸의 자리에까지 앉혀준 예수게이의 은혜는 테무진을 후원하는 명분에 불과했다. 자무카가 혼자만 너무 잘 나가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면 안 되었다. 따지고 보면 옹 칸은 자무카와도 의형제를 맺은 사이다.
옹 칸을 위해서는 두 몽골 젊은이가 서로 비등한 세력을 유지하며 치받고 싸워야 한다. 그런데 쿠이텐 전투의 승리로 테무진의 위상이 급등했다. 그러니 이번엔 기세가 한풀 꺾인 자무카를 지원할 차례였다. 물론 옹 칸의 정치놀음에서나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그와 연합을 이룬 테무진 입장에서는 심각한 배신행위였다. 함께 맞아 싸운 공동의 적과, 누구 맘대로 혼자 손을 잡는단 말인가?
두 번째 이유는 자무카의 능력이었다. 옹 칸은 정치에선 영악했지만 군사적 재능은 평범했다. 그 자신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무카가 쿠이텐 전투에서 진 이유는 단지 운이 없어서였다. 한번 졌다고 재능과 카리스마가 어디 가지 않는다. 옛날, 테무진을 도와 보르테를 되찾으러 메르키트를 쳤을 때 옹 칸은 당연한 듯이 최고사령관 자리를 자무카에게 넘기고 그의 명령을 따랐다.
커레이트의 세력과 자무카의 전투능력이 만난다면, 옹 칸은 초원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게 될 터였다. 게다가 커레이트족은 차돌처럼 단단하게 뭉친 테무진의 무리와 달리, 결속력이 매우 느슨했다. 커레이트족은 애초에 부족연맹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영주가 여러 영주를 대표해 왕이 되는 중세유럽의 봉건주의처럼, 옹 칸도 부족의 대표자일 뿐 모든 부족민들의 ‘직속상관’이 아니었다.
옹 칸은 칸이 되기 전에 권력투쟁에서 동생에게 밀려 예수게이에게 도망쳐온 적도 있고, 칸이 되면서 엄청난 숫자의 경쟁자들을 처형했다. 커레이트 내부에서는 옹 칸에 대한 지지만큼이나, 적개심도 들끓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의 자리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다른 인물도 아니고 무려 자무카의 지지를 얻는다면 누구도 그에게 함부로 대항하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자무카는 부하가 되기를 거부한 것 같다. 자존심이 워낙 세고 능력도 그에 못지않은 자무카는 누군가의 밑자리에 있는 걸 견딜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아직도 충분한 수의 부족/씨족들이 자무카를 지지하고 있었다. 뭐하러 노인네 밑으로 기어들어간단 말인가.
자무카는 전쟁의 패배자답게 자비를 구걸하지 않고 묵묵히 서쪽으로 갔다. 거기서 초원 변방의 부족들을 만나 오히려 지지세력을 더 확보했다. 그러나 자무카와 옹 칸 사이에 정치적 교감이 있었던 건 확실하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의 우호세력이 된다. 문제는 자무카와 테무진이 적이자 라이벌이었다는 거. 옹 칸의 양다리는 영리한 행동이었을지는 몰라도, 존경받을 만한 짓은 아니었다.
테무진은 옹 칸에게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다. 자무카에 대한 꿍꿍이는 테무진이 옹 칸에게 당한 첫 번째 배신이었다. 하지만 테무진은 마지막 순간까지 옹 칸을 믿었다. 아니 믿으려 했다. 이런 우직함은 테무진에게 많은 손해를 끼쳤지만, 결국은 테무진의 든든한 자산이 된다. 이 이야기는 천천히 하자.
4
여기서부터는 연대가 모호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 일어난 일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히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이다. 나는 쿠이텐 전투 이후의 일이라고 상정하고 쓰겠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옹 칸은 지위는 밖에서는 화려했지만 안에서는 흔들거렸다. 그는 칸이 될 때와 마찬가지로, 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많은 피를 봐야 했다. 옹 칸은 특히 친족들과 알력이 심했다. 자카 감보와는 오랫동안 동맹을 유지하는 상태였지만 또다른 동생 ‘에르게 카라’와는 그렇지 못했다.
아마 에르게 카라는 옹 칸의 자리를 노린 것 같다. 그는 친형 옹 칸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후 서쪽으로 간신히 도망가 나이만에 망명했었다. 그 뒤로 쭉 나이만 궁정의 후원을 받고 있던 상태. 그런 그에게 드디어 형에게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다. 나이만 군대가 에르게 카라의 복권을 명분으로 커레이트를 침공한 것이다.
쿠이텐 전투는 초원 전체를 자무카 파와 테무진-옹칸 파로 갈라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전투에서 나이만의 제1권력자 타양 칸의 동생 부이룩 칸이 자무카 편에 섰다가 패배했다. 나이만은 초원 동쪽에 발을 담갔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테무진, 옹 칸과 원한이 생겼다. 냉장고에 저장해둔 정치적 식품-에르게 카라-을 꺼낼 때였다.
옹 칸은 자신만만했다.
“에르게 카라, 이새끼가 다시 형한테 개긴다고? 나이를 먹으니까 옛날에 두들겨맞은 생각이 안 나나 보지?”
옹 칸은 군대를 이끌고 나이만군을 맞으러 출정했다. 하지만 나이만의 실력은 만만치 않았다. 버젓한 ‘국가’라 불러도 별 손색이 없는 나이만의 군대는 옹 칸과 자카 감보의 군대를 여지없이 박살냈다. 옹 칸은 에르게 카라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커레이트족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나이만이 관리하는 괴뢰국으로 전락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시 역사를 보면, 초원에서 위기에 빠진 사내들은 서쪽으로 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주를 포함한 동아시아 북동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금나라, 그리고 송나라의 국경을 생각해보면 동쪽은 딱히 갈 데가 없다. 유목민 국가(및 집단)들이 점점이 퍼져 있는 서쪽을 향해 튀는 게 최선이다. 현지의 군주에게 잘 보이면 정식으로 망명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초원 서쪽에 있는 게 바로 나이만이다. 비참하게 패배한 옹 칸은 소수의 인원만 이끌고 카라 키타이, 즉 서요제국으로 도망갔다. 서요제국의 황제 ‘구르 칸’은 옹 칸의 망명을 허락했다. 또 다른 ‘구르 칸’인 자무카와 헷갈리지 말자. 구르 칸은 황제급의 칸에게 쓰는 흔한 명칭 중 하나였다.
녹색으로 표시된 카라 키타이의 영토. 저 동네까지 간 거다.
옹 칸은 구르 칸과 별로 잘 지내지 못했다. 습관은 관성이다. 권력자들은 처지가 바뀐 뒤에도 자신의 처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망명자가 현지의 최고권력자와 사이가 틀어지는 건, 품성이 아니라 절제력과 신중함의 문제다. 굴러온 돌멩이가 박힌 바위의 눈 밖에 나면 결론은 뻔하다.
옹 칸은 야반도주하듯 위구르 왕국의 땅으로 넘어갔다. 망명자가 아니라 방랑자 신세였다. 생존필수품 확보와 치안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적 안전한 도시에 머물렀다(이 도시의 이름은 ‘베쉬발릭’이다.). 그 다음에는 탕구트의 도시로 갔다(유목국가들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편들에 충분히 설명을 해 놓았다.).
명색이 칸인데, 아무리 급하게 쫓겨 달아나도 수중에 재물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도시는 기본적으로 소비공간이다. 이방인인 옹 칸은 1년이 안 되어 ‘총알’을 모두 써버리고 말았다. 빈털터리가 된 옹 칸은 결국 도시 바깥으로 나왔다. 유목민의 땅에서 유목민이 할 게 유목밖에 달리 있겠는가. 하지만 뭐 가진 게 있어야 가축을 구하지...
그래도 옹 칸은 기지를 발휘해 야생 염소 5마리를 겨우 붙잡았다. 옹 칸의 패잔병 무리는 염소를 끌고 다니며 젖을 짜 간신히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사실 염소젖도 부족해서, 한두마리 있었던 낙타의 혈관을 찔러 피를 내 마셨다.
유목민들은 정말 먹을 게 없는 위급상황에서 가축의 피를 마시곤 했다. 살아있는 짐승한테 너무한다 싶을 수 있다. 사실 요령만 있으면 가축은 별로 고통을 느끼지도 않고, 피는 필요한 양만 재빨리 마시고 금방 지혈한다. 혈관의 정확한 위치를 잡으면 신기할 정도로 금방 피가 멎는다. 초식동물들 중에는 피를 어느 정도 잃어도 별 탈이 없는 종들이 있는데, 유목민들이 모를 리 없다. 요즘도 아프리카의 유목/목축 부족민들은 이런 식으로 가축의 피를 마시곤 한다.
소피를 받는 마사이족 전사들. 보다시피 소는 멀쩡하다. 기분은 별로 안 좋아 보이지만... 첨언을 하자면, 마사이족은 궁해서가 아니라 종교, 문화적인 이유로 소의 피를 마신다.
그렇다고는 해도, 옹 칸 본인이 낙타의 피까지 마실 정도면 이게 대체, 인생 말년에 웬 고생이란 말인가. 어찌된 일인지 배가 고플 땐 항상 자세도 안 나오는 법이다. 옹 칸이 타고 있던 말은 한쪽 눈이 먼 병든 말이었다.
“아 씨바, 도저히 안 되겠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누구 도와줄 사람 있으면 살려달라고 해야겠다.”
“옹 칸 님, 자무카한테 손을 벌려보는 건 어떨까요. 저번에 칸께서 전쟁에서 이기고도 손을 내민 친구 아닙니까.”
“그거야 나도 나름의 목적이 있으니까 그런거지. 자무카가 바보냐, 그걸 모르게? 그리고 자무카가 어디 실패자를 인간으로 봐줄 남자냐? 그 얼음장 같은 인간이 잘도 날 보살펴주겠다.”
“그럼 남은 사람은 테무진 칸 밖에는...”
“아오 씨바...”
이건 너무 비참했다. 테무진의 뒤통수를 치고 자무카를 포섭하려고 했던 옹 칸이다. 또한 나이만과 싸울 때 연합을 무시하고 혼자 군사를 모아 출정했다. 이건 전쟁에서 이겼을 때 승리의 단물을 독점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는가? 테무진은 옹 칸이 보낸 사자를 통해 그의 간절한 메시지를 들었다.
“살려줍메!”
5
한편 자카 감보는 형과 떨어져서 혼자 헤매고 있었다. 두 형제가 이산가족이 된 걸 보면 전투에서 얼마나 큰 타격을 입었는지 알 수 있다. 자카 감보는 금나라 변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금나라는 자카 감보를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망명 신분을 공식적으로 승인해주지도 않았다. 금나라 입장에서 옹 칸과 자카 감보 형제는, 옹 칸이 초원 중앙의 권력을 손에 쥐고 있을 때나 가치 있는 카드였다. 그래도 자카 감보는 망명승인을 받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별 희망은 없었지만...
옹 칸과 자카 감보의 소재를 파악한 테무진은 옹 칸 형제를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테무진은 옹 칸에게 화가 나지 않았을까? 옹 칸의 부탁을 씹어도 그만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옹 칸을 도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개인적인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세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커레이트는 금방이라도 쪼개질 수 있는 불안정한 집단이었다. 이걸 외부인인 테무진이 직접 해결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옹 칸이 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커레이트족 병력 전부가 테무진의 편이었다. 타타르가 테무진에게 이를 갈고 있었고, 자무카는 건재했고, 불구대천의 원수 메르키트족도 반격을 노리고 있었다. 나이만과도 적이 되었다. 이때부터 테무진은 위상이 높아진 것 만큼이나 '패자의 역습'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옹 칸이 권력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너무나 합리적이다. 이왕 도와줄 거, 화끈한 게 좋다. 테무진의 부하 두 명이 옹 칸을 멀리까지 마중 나갔다. 귀한 손님에게 하는 예법이다. 거지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테무진은 옹 칸의 몰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정치적인 계산이고 뭐고, 아버지의 의형제였다. 르네 그루쎄는 옹 칸을 ‘2류 군주’였다고 평가한다. 역사엔 1류들이 하도 차고 넘쳐서 잘 와 닿지 않지만, 2류 군주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어쨌든 폭력이 지배하는 거친 초원에서 살아남은 백전노장이다. 저 정도로 비참한 꼴을 당해 마땅한 인간은 아니었다.
테무진은 아예 옹 칸과 그의 부하들만을 위한 특별세를 걷었다. 농경문명에서 곡식을 세금으로 내듯, 유목문명의 세금은 가축이었다. 몽골초원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식량인 양을 중요시했다.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생식능력이 없어 식량으로만 쓸 수 있되, 고기가 가장 먹기 좋을 때인 두 살짜리 거세한 숫양>이 가장 이상적인 세금이었다. 다시 말해 특별세는 곧 옹 칸의 식량이었다. 테무진은 옹 칸을 극진히 보살폈다. 먹이고, 재우고, 치료해주고... 양고기의 질 좋은 단백질과 풍부한 지방은 보름만에 옹 칸을 통통하게 만들었다.
한편 자카 감보도 늪에서 건져내야 했다. 하필이면 메르키트족이 자카 감보를 노리고 있었다. 떵떵거리며 잘 살던 메르키트족을 박살낸 자들이 누구던가. 테무진, 자무카, 옹 칸, 자카 감보가 아니던가. 자무카와는 손을 잡았고, 테무진한텐 아직 도전할 처지가 못 되고, 금나라 국경에서 외롭게 헤매고 있는 자카 감보를 찾아 죽인다면 조금이나마 복수를 완수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국경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던 메르키트족 전사들은 자카 감보대신 테무진의 군대를 만나고 말았다. 매복수색대가 정규군을 당해낼 리 없다. 전투가 시작되고 나서 패배가 확실해지자 메르키트 전사들은 초원의 변방으로 도망쳤다. 테무진의 군대는 자카 감보를 모시고 돌아왔다.
옹 칸에게 커레이트의 칸 자리를 돌려주는 ‘왕좌수복작전’은 간단하게 끝났다. 옹 칸은 커레이트 전체와 싸울 필요는 없었다. 지지파와 반대파가 어지럽게 얽혀 있는 조직 특성상, 대부분의 백성은 윗대가리들의 권력투쟁을 방관하게 마련이다. 영국의 장미전쟁이 소수 귀족간의 투쟁이었던 것과 비슷하다.
권력을 되찾은 옹 칸은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
6
옹 칸은 먼저 친동생인 에르게 카라를 처형했다. 젊은 시절 칸에 등극했을 때도 수십 명을 저승으로 보낸 그는 이번에도 에르게 카라를 지지했던 부족 내 인사들의 목숨을 저인망으로 쓸어버렸다. 권력자가 자기 권력을 재확인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면, 일시적으로는 공포를 자아낸다. 하지만 지도자의 본질적인 권위는 도덕성에서 나온다.
옹 칸의 위상은 크게 떨어졌다. 그는 권력을 되찾자마자 쿠데타의 위기를 맞게 된다. <몽골비사>에 나오는 커레이트 귀족들의 대화는 옹 칸에 대한 분노와 경멸이 어느 수준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칸은 성품이 형편없다. ... 형제(에르게 카라)를 죽였다. 카라 키타이에서 망명생활이나 한 주제에 돌아와서 백성을 괴롭히는 꼴을 보라. 우리가 과연 가만있어야 하는가? ... 나이만이 무서워서 위구르, 탕구트 땅을 숨어 돌아다니다가 겨우 염소 다섯 마리에 의지해, 낙타의 피를 먹으며 돌아왔다. 그걸 테무진이 주워다 먹이고 보살폈었지! 그랬던 주제에 이제 다시 자기가 우리의 칸이라고 저러고 다닌다.”
아마 비밀 쿠릴타이에서 나온 발언일 것이다. 귀족들은 그 자리에서 쿠데타를 결의했다. 줄곧 옹 칸을 지지해온 동생인 자카 감보까지도 반란에 가담했다. 아마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경험이 가장 많은 자카 감보가 칸에 등극하기로 했었을 것이다.
옹 칸은 운이 좋았다. 분노를 토로하던 그 자리에서 ‘욱하고’ 반란을 모의하다보니 무척이나 허술했다. 왜 사람이란 게, 누굴 욕하는 자리에 있으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다른 사람들을 거드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나중에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나한테 무척 잘해준 양반인데... 하는 식이다. ‘알톤 아쇽’이라는 귀족이 그랬다. 반란에 엉겁결에 가담했지만, 옹 칸을 배신하는 게 아무래도 영 내키지 않았다.
알톤 아쇽은 고민 끝에 옹 칸에게 반란 계획을 알렸다. 당연히 옹 칸은 즉시 케식(호위대)을 보내 반란 가담자들을 체포했다. 자카 감보도 형처럼 운이 좋았다. 그는 용케 몸을 빠져나와 서쪽으로 말을 달렸다. 근데 어디로 도망가지...?
자카 감보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이만으로 도망쳤다. 옹 칸과 함께했을 때는 나이만이 적이었지만, 칸 형과 결별한 후에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아니 형의 적은 나의 친구가 되는 상황이 됐으니 자카 감보의 인생도 막장을 타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옹 칸의 케식은 체포한 자들을 목에 칼을 씌워 게르에 가둬놓았다. 옹 칸은 게르에 들어가 죄수들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옹 칸의 말은 적에 대한 공격심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삐진 노인네의 역정에 가깝다.
“그래, 나 외국에서 거지꼴로 돌아다녔다. 그런데 내가 그 개고생을 할 때 너넨 뭐했냐? 뻔히 알면서, 응? 코빼기도 안 비추고 내 흉이나 보고 있었다 그거지?”
전에 옹 칸 얼굴로 이 냥반 사진 쓴 적이 있다.
뉘신지도 모르는데 여튼 초상권 침해 죄송타...
옹 칸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반란자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으로 끝냈다. 굉장히 모욕적인 일이지만, 목숨을 잃거나 다친 것도 아니고 신분이나 생활에 타격을 입은 것도 아니다. 옹 칸이 마음이 좋아서 봐 준 게 아니다. 더 이상 피를 봤다간 이젠 내가 골로 가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다. 옹 칸은 권위가 떨어진 수준을 넘어, 자기 자신도 스스로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는 단계에까지 갔다.
반란자들은 살려달라고 빌지도 않았고 살려줬다고 감사하지도 않았다. 옹 칸이 칼을 풀어주자 모두 일어서서 바닥에 침을 퉤 뱄었다. 얼굴에 침을 맞은 데에 대한 감정적 복수였다. 다시 말해 “아 노인네 정말 좆같네” 한 거다.
자신의 권력이 사상누각이 되면 자신감은 줄고, 불안감은 늘어나는 법. 이때부터 옹 칸은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테무진에게 점점 점수를 깎이게 된다.
7
한편 테무진은 승승장구 중이었다. 테무진의 울루스는 그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꽉 묶여 있었다. 외적으로도 급성장했다. 13익 전투에서 자무카에게 패해 벼랑끝으로 내몰린 건 이제 먼 옛일이 되어버렸다. 테무진은 타타르와 싸워 이겼고, 주르킨족을 정벌하고, 쿠이텐 전투에서 승리하고, 타이치우드족을 흡수했다. 고향인 초원 북쪽으로 돌아오려고 준비중인 메르키트족에도 한 방 먹였다.
테무진은 대기만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성장하지만, 반드시 성장한다. 그는 지금까지 치른 큰 전쟁에서 모두 연합세력의 도움을 받았다. 보르테를 되찾을 때는 자무카와 옹 칸의 군대에 얹혀 출정했고, 금나라와 옹 칸의 연합군에 합류해 타타르를 쳤다. 쿠이텐 전투도 옹 칸과 연합군을 구성해 싸웠다.
테무진은 불혹의 나이에 드디어 독자적으로 전쟁을 계획했다. 첫 상대는 당연히 원수 중의 원수 타타르였다. 전쟁은 상대를 파멸시키기 위해 서로가 모든 힘을 다하는 위험한 투쟁이다. 따라서 모든 전쟁이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타타르와의 싸움은 특히 중요했다.
잔혹한 얘기지만, 이제껏 초원에서 전쟁은 사업이었다(이제 이 얘기를 다시 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마오쩌둥은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이고,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다.”라는 무척 간지나는 말을 했다. 테무진은 전쟁사업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약탈도 물론 중요했지만, 그는 정치적인 전쟁을 할 생각이었다. 한때 제국을 세우기도 했던 전통의 세력, 독립민족으로 존재하는 타타르라는 집단을 지상에서 증발시키려고 했다.
타타르와 몽골족은 원수 중의 원수였다. 몽골의 칸을 금나라에 팔아넘기고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까지 독살한 타타르. 테무진도 타타르의 칸인 메구진 세울투를 죽이고 타타르의 허리가 휘도록 약탈을 했으니 공평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한은 비교거래로 해소되는 게 아니라 누적되는 법이다.
타타르는 금나라와 옹 칸, 테무진 연합군에 짓밟힌 후에 서서히 세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꺾는다면 완전히 싹을 자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놓친다면 테무진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한 무시무시한 군사집단이 될 것이었다. 또한 커레이트 부족 내 옹 칸의 입지가 좁아지고 자무카가 주춤한 이때, 타타르와의 전쟁에서 이긴다면 테무진은 초원 동쪽과 중앙을 아우르는 초원의 제1 실력자가 된다. 유치하고 전형적인 말이지만, “때가 왔다.”
물론 질 수도 있는 게 전쟁이다. 더욱이 타타르는 여러 개의 부족이 결집한 부족연합체, 혹은 원시적인 부족연합국가였다. 양적으로만 따지면 테무진보다 몇 배나 많은 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테무진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일단 한 번 싸워본 상대였다. 정보와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 테무진은 타타르 군대의 특성을 되뇌고 또 되뇌었을 것이다.
두 번째 자신감은 테무진 본인이 아니라 그의 부하들에 기인한다. 테무진의 굵직한 부하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남의 재능을 평가하고 활용하는 데 어떠한 편견도 없었던 테무진에 의해, 출신과 계급에 상관없이 오직 능력순으로 선발된 사람들이다. 테무진의 끈기도 한 몫을 했다.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테무진의 성격 덕분에 그의 부하들은 빨리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 없이 실력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테무진은 세계사에 전설로 기록될 8명의 인물을 선발했다. 이름하여 ‘네 마리의 개’. 그리고 ‘네 마리의 준마(駿馬 뛰어난 말)’. 이 네 마리 개를 영어에서는 주로 'dogs of war'로 번역하는데, 싸움개 즉 투견 정도의 느낌이다.
사람을, 그것도 신임하는 부하들을 개로 부르다니 너무하다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몽골에서 개는 육두문자에 자주 등장하는 신분이 아니다. '네 마리 개'는 오히려 애정이 가득한 말인데, 개는 다시 말해 인간을 따르는 늑대이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늑대는 존경받는 토템이다. 헌데 늑대는 주인이 없다. 늑대에게 소속과 보스가 생기면 개가 되는데, 몽골의 개는 충성스럽고 용맹하며 끈질기다. 야생견은 먹이를 놓고 늑대와 투쟁할 만큼 사납고 머리도 좋다. 테무진의 네 마리 개는 네 명의 대장군으로서, 당연히 임무는 전쟁이다.
1. 젤메
숲 속 대장장이 노예계급 출신. 갓난아기 때 예수게이의 사유재산이 되었다가, 훗날 테무진이 상속받았다. 상황판단이 빠르고 임기응변에 능했다. 또한 테무진의 전략과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로 전쟁터에서 테무진의 아바타 역할을 했다. 테무진 울루스의 2인자였다.
특별한 임무를 받지 않았을 때에는 테무진의 케식(호위대)을 지휘했다. 현대 한국으로 치면 수도방위사령관과 청와대 경호실장을 겸했다고 보면 된다.
2. 제베
테무진의 목을 쏘아 그를 거의 죽일뻔한 인물(저번 편 참고). 급하고 다소 다혈질인 성격답게 전격전, 속도전의 대가이며 빠르고 정확한 행군과 이동으로는 지구상에서 따라올 장수가 없었다.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전투시 그가 보여준 집요함은 '개'라는 별명에 딱 걸맞았다.
3. 수부테이
젤메의 친동생. 제베의 부관이었다가, 금새 제베와 같은 등급의 대장군으로 독립한다. 제베와는 찰떡궁합으로, 둘은 전설적인 전쟁콤비가 된다. 주로 제베는 수부테이가 세팅한 곳으로 적군을 몰아오는 역할을, 수부테이는 제베의 바통을 이어받아 적을 섬멸하는 역할을 맡았다.
4. 쿠빌라이
가장 덜 알려진 인물. 테무진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과 헷갈리면 안 된다. 동명이인일 뿐이다. 쿠빌라이는 테무진과 관련한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없다. 비범함이 없는 대신에 가장 안정적이고 무난한 장군이었다. 테무진이 설정한 디폴트 상태를 가장 잘 유지했다. 이런 종류의 인재는 건물의 뼈대처럼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다음은 참모라 할 수 있는 네 마리의 준마다. 말이 참모지, 사실상 참모를 겸한 장군이라고 보면 된다.
1. 보르추
어린 시절 말 8마리를 찾으러 도둑들을 추적하다가 테무진과 친구가 된 인물. 테무진 울루스의 3인자였다. 젤메와 마찬가지로 테무진을 가장 잘 이해했다. 그 역시 테무진의 아바타였다고 보면 된다. 아마 사적으로는 테무진과 격의 없는 친구사이였을 것이다. 테무진은 보르추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길 때, 자신이 끔찍이 아끼는 애마(愛馬)를 내어줄 정도로 그와 우애가 깊었다(한편, 보르추는 이 말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며 채찍으로 졸라 팼다.).
2. 무칼리
노예씨족인 잘라이르씨족 출신. 니르운인 주르킨족의 노예로 살다가 테무진이 주르킨을 정벌하자 그의 부하가 되었다. 전투에 뛰어난 재능도 없는 데다가 굼뜬 성격이었지만, 정밀하게 사고하는 능력이 있었다. 신중하고 끈기가 있어서 장기적인 전략을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데에는 따를 사람이 없었다.
3. 칠라운
테무진이 타이치우드족에 붙잡혀 있을 때 그를 도와준 소르칸 시라의 아들. 보르추와 마찬가지로, 사적으로는 테무진과 친구 사이였다. 형제 침바이도 테무진의 중요한 부하였다. 용맹한 칠라운은 한 번 문 목표물은 절대 놓지 않는 타입이었다.
4. 보로쿨
테무진이 주르킨족을 정벌할 때 적진에서 발견한 고아로, 테무진과는 의붓형제 사이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 불과 10대의 나이에 테무진 오르도의 중심인물 중 하나가 된다. 테무진의 셋째아들 우구데이와 절친한 친구사이였다. 성장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이있지만 요절하고 만다. 물론 독자열분덜은 보로쿨이 죽는 장면까지 가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
다음 편에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네마리 개>와 <네마리 말>은 초원에 상당히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다시말해 훗날 세계를 정복하게 될 몽골제국의 시스템이, 테무진이 불혹의 나이이던 이때부터 조금씩 모양새를 잡아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1202년 가을. 테무진은 전면전을 치르기 위해 타타르가 있는 동쪽을 향해 출정한다.
intro
독자들 중에 본 <테무진to the칸> 시리즈가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분덜이 있다. 혹은 사실에 근거해 이야기를 엮어나간 팩션으로 받아들이는 분덜도 있는 모양인데, 본 시리즈는 엄밀하게 쓰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논픽션이다.
모든 문장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사료와 문헌을 참고한 것이고 여러 연구자들과 본 기자의 연구에 의한 것이다. 무엇보다 훌륭하고 근면한 학자분들의 노력에 기댄 것이다. 단 큰따옴표 안에 푼 대사엔 비교적 상상력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 기록된 실존인물들의 대화와 사건 및 정황에 근거하였으며, 핵심적인 내용과 얼개는 100% 사료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필자의 부족함 만큼이나 오류도 있겠으나, 나름의 근거 없이 쓰인 문장은 없다. 역사책으로 간주하고 읽어도 된다. 원하신다면 대사를 제외한 어떤 문장도 인용하거나 참고하시기 바란다. 근거가 필요하면 그 근거, 본 기자가 대 준다.
1
(전편에 이어) 1202년 가을. 동쪽의 타타르를 향해 출정한다. 저번 시간에 네 마리 개-젤메, 제베, 수부테이, 쿠빌라이-과 네 마리 말-보르추, 무칼리, 칠라온, 보로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번 편에선 테무진의 아들들 얘기도 좀 해야겠다. 딸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
테무진과 보르테는 네 명의 아들을 뒀다. 먼저 첫째 ‘주치’. 당시나 지금이나 논란거리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메르키트족의 혈통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납치된 보르테가, 시어머니 헐룬의 원래 신랑이었던 ‘칠레두’의 동생 ‘칠게르’에게 겁탈당하고 수태한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주치는 평생 자신이 메르키트의 씨앗일 가능성이 높다는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다. 메르키트는 그냥 다른 부족이 아니다. 주치는 테무진 울루스의 골칫거리인 메르키트 잔여세력은 말 그대로 ‘청소 대상’의 도적떼로 알고 자랐다. 테무진이 그 나이였을 때는 메르키트가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인간들이었지만.
아마도 나는 아버지와 삼촌들(테무진의 부하들)이 가장 혐오스러워하는 집단의 핏줄일 거라는 거. 어머니가 겁탈당해 낳은 자식이라는 거... 이 사실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 인간이 있을까.
다행히 주치는 성격이 무난한 편이었다. 콤플렉스에 억눌려 살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런데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주치의 품성이 어느 정도는 좋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군사적 능력은 매우 평범했다. 타타르 원정 당시 20대 초반이었다.
몽골에 있는 주치의 동상
주치와 5살 차이가 나는 둘째 ‘차가타이’는 주치와 앙숙이었다. 세상 대부분의 둘째가 그러하듯, 차가타이도 형에 대한 경쟁심을 타고났다. 이런 본능적인 경쟁의식과 적개심은 보통 성장하면서 해소되지만, 아버지가 막대한 상속을 내려줄 수 있는 권력자면 상황이 달라진다. 장남인 형의 출생이 의심스럽다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진다.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첫째와 형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둘째의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 차가타이는 별로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문제가 생기면 웬만하면 참는 편인 주치와 달리, 없는 문제를 만드는 타입이었다. 다만 형과 공통점이 하나 있었으니, 눈에 띄는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셋째 ‘우구데이’는 테무진이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한 아들이었다. 우구데이는 셋째삼촌(카사르 삼촌의 바로 아랫 동생) ‘카쥰’과 성품이 비슷했다. 차가타이와 연년생인 그는 선량하고 다정하고 느긋한 성품을 타고났다. 생각이 많고 사려 깊은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즐겼고, 그래서 술자리를 무척 좋아했다. 놀기 좋아하는 인간이면서도 깊은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장점이 많은 만큼 단점도 확실했다. 우구데이는 엄청나게 낙천적인 만큼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게을렀다.
우구데이의 초상
우구데이 같은 타입의 사람은 민첩함이나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는 능력이 모자라는 경향이 있다. 그는 전투 중에 낙오되어 실종된 적도 있다. 이런 일이야 운이 나빴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하여간 군사적 능력은 평범 이하였다. 딱히 정치적 능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우구데이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누구에게나 공정하다는 굉장한 장점이 있었다.
20대였던 주치, 십대 후반과 중반이었던 차가타이, 우구데이와 달리 톨루이는 타타르 원정 당시 꼬꼬마 어린애였다. 형들과 달리 군사적 재능이 탁월했던 톨루이는 훗날 송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다. 다방면에서 종합적으로 뛰어난 능력남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 아해의 운명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
톨루이는 요렇게 간지나게 묘사되곤 한다.
한 명 더 옵션으로 소개해야겠다. 깃털같이 가벼운 존재감을 자랑한 테무진의 셋째동생 카쥰은 대단한 아들을 하나 두었으니, 바로 ‘알치다이’였다. 알치다이는 군사적 재능은 물론 정치적 판단력에서 성품까지 다방면의 수재였다. 조카 알치다이의 재능을 높이 산 테무진은 어릴 때부터 그에게 중책을 맡긴다.
테무진은 아들들의 재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다시 말해 아직 어렸던 톨루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의 능력을 별로 믿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테무진의 아들들은 모두 행운아다. 테무진은 아들들에게 재능보다 더 확실한 선물 - 평생을 함께했던 뛰어난 장수들을 물려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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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세부시행규칙’이란 말이 있다. 전투세부규칙, 줄여서 전세규란 현대의 군대에서 전투상황 발발 시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리한 매뉴얼이다. <적과 교전할 때 소속부대와 연락이 끊어지면 일단 이렇게 한다>, <고지점령에서 패했을 때는 이렇게 하라> 등, 특정 상황에 대한 행동법이 명기되어 있다.
전세규는 군이라는 커다란 집단이 일사분란하고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약속의 체계이다. 사실 병사 개인에게도 전세규가 있다. 훈련병 생활이 끝나고 자대배치를 받으면 보직에 따라 ‘임무카드’란 걸 발급받는다. 말이 임무카드지, 개인 전세규라고 보면 된다.
테무진은 ‘경험한 것을 잊지 않는’ 장점을 가진 인물이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한 점을 확실히 인지하고 살았다. 테무진은 자무카의 군사적 재능에 내내 밀렸다. 전투현장의 카리스마와 장악력에서는 어차피 상대가 안 된다. 그렇다면 비교적 평범한 개인이 전쟁을 지휘하더라도 뛰어난 개인의 지도를 받는 적을 이기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시스템이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단순하다. 약속된 행동을 하자는 거였다.
테무진은 타타르와의 전투에 앞서 두 가지 룰을 정했다. 사실 세부적인 다양한 약속체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사에 남아있는 것은 단 두 가지 명령뿐이다.
첫째,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최초 공격 개시선까지 돌아와 명령을 기다릴 것. 당연한 말이지만 전투 중에는 숱하게 죽거나 다친다. 그때까지 전사들은 자신의 칸이나 연합군의 총사령관 등 지배자들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테무진은 ‘임전무퇴’ 정신이 없는 사람이었다. 왜 날 위해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가?
부하들의 희생을 극도로 싫어한 테무진은 후퇴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워낙 용감해서, 혹은 전리품이나 전공, 명예를 위해 앞장 서 돌진하는 사내들도 있기 마련이다. 남들은 말머리를 돌리지만 혼자서 전직을 향해 돌진해 흙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그런 남자들 말이다. 테무진은 이런 행동이 멋지기는커녕 범죄에 해당한다고 확실히 못을 박았다. 쓸데없이 전우들의 영웅심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군율을 어긴 자는 참수한다.”
괜히 목숨 걸면 살아 돌아와도 얄짤없단다. 누가 명령을 어기겠는가? 테무진의 부하들은 이 군율에 무척 감동받았음에 틀림없다. 인간은 역설적인 동물이다.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지도자를 위해선, 오히려 기꺼이 목숨을 버리고 싶어진다.
사실 전략적으로도 훌륭한 군율이었다. 병사들이 공격개시선으로 되돌아오면 자동적으로 전열이 정비된다. 당시의 전투란, 머리를 굴려 최대한 유리해 보이는 모양새로 군대를 ‘세팅’해 싸움을 시작한 후, 생각대로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식이었다. 전투의 아수라장 속에선 사령관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 <벤허>에 보면 해군제독이 해적토벌전에서 진 줄 알고 자살하려고 하는데, 알고 보니 대승을 거뒀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승패의 상당부분은 현장지휘관 및 병사들의 실력과 운에 달려 있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각 전사들이 시시각각 약속된 행동을 하며 정해진 장소로 모여 명령을 기다린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몽골초원의 전통에 따라 지대가 높은 곳에서 전황을 바라보는 사령관은, 때맞춰 최적의 명령을 내리며 전투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명령은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오직 전투에만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일시적으로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으면, 적의 후방부대 및 백성들이 약탈품을 남기고 황망히 이동하게 마련이다. 전쟁의 목표 자체가 이익인 만큼 각자 약탈품을 줍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테무진은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공정한 분배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는 아예 판을 새로 깔려고 했다. 완벽한 체계에 따라 싸우려고 한 것이다. 그의 명령은,
1. 전투에 완전히 이기고 난 후
2. 약탈품을 일괄적으로 수거해서
3. 모두에게 공정히 분배한다
는 거였다.
타타르 정벌을 기점으로, 비교적 느슨한 정책이 엄정한 ‘룰’ 즉 군율로 바뀌었다. 아예 일괄수거, 일괄분배 하겠다는 거였다. 요즘 식으로 치면 사회주의에 해당될 정도로 급진적이다. 이에 대해선 제 12편 <레저렉팅 테무진>에서 자세히 썰을 풀어 놓았으니, 내키시면 클릭해서 다시 읽어보시라.
전술적으로도 중요한 군율이었다. 공정하게 분배하겠다는 테무진의 약속을 믿는 한, 각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오직 적을 섬멸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역사에 기록된 두 가지 군율은 매우 단순하지만, 원래 특별히 좋은 건 좋은 만큼이나 단순한 법이다. 또한 단순한 규칙은 생각해내기 쉬운 반면 지켜지기 힘들고, 지켜지기 힘들어도 실제로 구현됐을 땐 큰 힘을 발휘한다.
테무진의 對(대)타타르전은 세 가지 면에서 획기적이다. 첫째, 세력이 약한 테무진이 강한 측을 상대로 먼저 전쟁을 선포했다. 둘째, 적을 맞아 싸운 게 아니라 적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갔다. 전쟁을 주도한 것이다. 셋째, 완전한 포위 섬멸을 기획했다.
타타르족의 운명은 좋지 않았다.
3
역사는 테무진의 타타르 정벌전을, 전투가 벌어진 지명을 따 ‘달란 네무르게스 전투’라 부른다. 아쉽게도 전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야기 한 토막을 전해줄 뿐이다.
- 보르추는 테무진이 비를 맞게 하지 않으려고, 밤새 테무진 옆에 서 양털 담요로 그를 가렸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이야깃거리가 여럿 있다. 일단 폭우 속에서 전투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이전에는 양측이 적당한 때와 장소를 골라서 전투를 치르곤 했다. 하필 폭우가 내리는데 총공격을 개시하진 않았을 것이다. 전투 중에 폭우가 내린 게 분명하다. 이럴 때는 양측이 군사를 잠시 물리는 게 보통이다.
더욱이 테무진은 ‘밤새’ 서 있었다. 최고지휘관이 지대가 높은 곳에서 전투상황을 내려다보는 초원의 습관을 생각해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어느 한 쪽이 말살될 때까지 쉼없이 싸웠다는 얘기다. 싸움이 어느 정도로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약탈이 목적인 통상적인 전투와는 전혀 양상이 달랐다.
보르추는 젤메와 함께 테무진의 최고 브레인이었다. 테무진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았다. 보르추와 젤메 둘 중 하나는 테무진 옆에 붙어서 참모을 맡게 마련이다. 이날은 보르추가 그 역할을 한 모양이다.
보르추는 사적으로는 테무진과 친구였다. 밤새 담요를 펼쳐들고 있다니 친구 치고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충성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얼굴에 비를 맞으면 시야가 흐려진다. 아무리 보르추의 의견이 중요해도, 테무진 본인이 전투상황을 면밀히 파악해야 했다.
테무진과 직접 만난 역사가의 기록에 따르면, 갖은 고생을 이겨내 온 그의 몸은 외적으로는 탄탄하고 강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은 좀 상해있었다. 테무진은 그다지 ‘건강’하지는 못했다. 부잣집 아들로 잘먹고 큰 보르추와는 달리 어릴 때 워낙 굶은 데다 성장기에 타이치우드족에 붙잡혀 장기간 학대를 당한 적도 있다. 제베에게 당한 부상도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당시 테무진의 컨디션이 평소와 달리 안 좋았을 수도 있다.
보르추는 테무진이 비를 맞고 잘못될까 걱정했다고 한다. 테무진은 훗날, 이때 보르추가 밤새 ‘단 한 번’ 발을 움직였다고 기억한다. 뭐 보르테의 다리에도 피가 통해야 했을 테니... 테무진이라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느껴진다. 감동받은 테무진은 이 일을 두고두고 기억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보르추가 이렇게까지 테무진을 챙긴 이유는 전투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전투도 아니고, 쉬지 않고 악랄하게 싸우는 ‘말살전’이다. 만에 하나 최고지휘관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더욱이 보르추는 테무진이 제베의 화살을 맞아 지휘력을 상실했던 아찔한 순간을 경험해 봤다.
전투는 테무진 울루스의 승리로 끝났다. 공평한 분배와 약속된 군율의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너무도 엄청난 승리라서, 테무진 본인도 어떤 식으로 승리의 결과를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4
테무진은 일단 당장 처리할 수 있는 것부터 손댔다. 군율을 어긴 자들이 있었다. 몽골 왕족 알탄과 코차르, 그리고 테무진의 막내숙부 다리타이였다. 모두가 함께 싸우고 함께 나누자고 했는데, 먼저 약탈품을 차지하려고 전투에서 이탈한 것이다. 무슨 깡으로 그랬을까. 단지 탐욕에 눈이 먼 어리석은 자들이어서는 아니었다.
초원에는 성문법이 없었지만, 법의 역할을 하던 오랜 관습의 체계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1/10세’다. 전투에 참여한 전사들이 싸움에서 얻은 이윤의 1/10을 최고지휘관인 칸에게 바치는 룰이다. 그래서 칸들은 중국 국경을 한 번 털기라도 하면 상당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중국 조정의 입장에서는 시골 변방 동네지만, 그래도 도시 하나를 탈탈 털고 초원으로 튀었다고 해 보자. 도시의 부는 초원의 그것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풍부했다. 이 경우 칸은 도시 전체의 1/10에 해당하는 부를 단박에 거머쥘 수 있다.
또 하나는 찬물도 위아래가 있고 똥물에도 파도가 이는 논리다. 계급 순대로 먼저 약탈할 권리가 있었다. 다리타이와 왕족들은 혈통상 테무진 오르도의 중심에 있었다. 테무진은 능력순대로 오르도를 구성했지만, 사람한테는 습관이란 게 있다. 기득권층은 상황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말이다.
이 귀하신 분들은 그러잖아도 테무진의 평등정책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참이었을 터. 또한 이 정도는 테무진이 봐줄 거라고 믿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테무진은 폭발했다.
“이것들이 미쳤구나...”
분배하기 전까진, 약탈품은 울루스의 ‘공공재’다. 테무진은 감히 공익을 훼손한 귀족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네 마리 개 중 하나인 쿠빌라이를 보내 새치기한 약탈품을 모두 몰수하게 했다. 이 일은 매우 상징적이다.
쿠빌라이는 테무진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었다. 즉 다른 부족에선 귀족생활을 했을지 몰라도, 몽골 귀족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흰 뼈’는커녕 ‘검은 뼈’도 아니었다. 그냥 외부인이다. 핏줄로만 따지면 평민 이하다. 테무진은 그런 쿠빌라이를 통해 자신의 친족들을 처벌한 것이다.
테무진은 다리타이에게는 더 큰 벌을 내렸다.
“앞으로 다리타이 숙부는 쿠릴타이에 참석할 수 없다.”
사회적 지위를 박탈해버린 거다. 여기서 잠시 쿠릴타이 얘기를 해 보자. 당시 테무진 울루스의 쿠릴타이-지도자 회의-엔 어떤 사람들이 참석했을까. 어떤 사람들이 게르 안에 들어가 있었을까?
일단 테무진 본인과 네 마리 말, 네 마리 준마 여덟 명은 반드시 포함된다. 테무진이 평생 조언을 구해온 어머니 헐룬과 아내 보르테도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다. 괴력을 자랑하는 동생 ‘야수’ 카사르와 판단력이 정확한 만큼이나 냉혹하다는 평을 들은 벨구테이, 주로 후방 보급부대를 담당했던 막내동생 테무게도 당연히 낀다. 그 외 중요한 장수들이 추가되고... 그리고 철새종결자 다리타이도 쿠릴타이 멤버였다. 테무진은 한푼어치도 믿음직스럽지 않은 막내숙부를 꽤 챙겼던 거다.
확실하진 않지만, 다리타이의 경우를 보면 테무진의 아들들도 쿠릴타이 멤버였을 거라고 봐야 한다. 나이가 있는 주치와 차가타이 정도는 생산적인 의견을 내진 못해도, 게르 안에 앉아는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타타르를 정리할 차례였다. 그런데 이게 대체...
5
테무진은 치열한 전투 끝에 타타르족 전체를 포위 섬멸했고, 생존자 거의 전부를 포로로 잡았다. 하나의 국가 혹은 독립민족의 단위가 통째로 테무진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다.
테무진은 야전에서 긴급 쿠릴타이를 열었다. 주제는 간단했다.
- 저 많은 포로들을 다 어떡하지?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테무진 울루스의 백성으로 편입시키면 안 되는 걸까? 그러면 전력도 늘어나고, 울루스도 커질 텐데... 그런데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타타르와 몽골은 서로 감정이 너무 안 좋았다. 게다가 타타르는 복식이나 언어, 생김새 즉 인종까지도 다른 초원 부족들과는 조금 달랐다. 다시 말하지만 전통의 독립민족이다. 역사가 십수년밖에 안 되고 규모도 작은 테무진 울루스가 내부에서 용해시킨다는 건 불가능했다.
타타르 민족 전체를 노예로 삼는 것도 현실가능성이 없었다. 타타르의 인구는 테무진 울루스의 그것보다 몇 배는 많았다. 통제가 안 된다.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한번에 끝장이 나라 수 있다. 그렇다면 통제가 가능한 만큼, 일부만 억류하고 나머지는 일단 방면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그러면 타타르 포로들은 비싼 몸값을 내고 자유를 살 수도 있다. 이 경우 포로가 되지 않은 동포들이 몸값을 모으려 고생을 좀 해야 했을 거고.
... 하지만 잡은 포로를 놔 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우리는 쿠릴타이에 들어가 보지 않아서, 게르 안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회의의 기본 전제가 어땠는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 승리를 완전히 굳혀야 한다. 타타르와 다시 싸울 일이 생겨선 안 된다. 즉 타타르라는 집단은 이번에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또한 약탈품만이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테무진 울루스 자체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키울 수 있는 기회다. 역시 지금까지처럼 새로운 백성을 받아들여서 인구를 늘려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하냐는 거다.
결국 쿠릴타이는 결정을 내린다. 누가 처음 낸 의견인지는 모른다. 다만테무진이 이 섬뜩한 결론을 승인했다는 건 확실하다. 테무진 오르도는 타타르의 모든 성인 남성을 학살하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 결정도 기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노예로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 우리는 이 노예라는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 생존자들을 노예계급으로 묶어두겠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테무진은 몇 년 후 초원을 통일하고 나서 노예제를 ‘법’으로 폐지한다. 이 말은 그 전까지는 노예제를 인정했다는 게 아니다. 성문법으로 확실히 못을 박지 않았을 뿐 탈계급, 평등주의는 기의 기본 정책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노예란 ‘전리품에 해당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전리품이 된 여자는 약탈자에게 '배당'되어 그의 아내가 된다. 아내는 노예가 될 수 없다. 결혼하는 과정은 폭력적이고 불공평할지라도 일단 부부가 되면 다른 문화권에 비해 남녀가 놀랄 정도로 평등해지는 게 몽골초원의 특징이었다.
즉 성인남성을 모두 학살해 여자와 아이만 남긴 후, 여자들을 모두 테무진 울루스의 남자들에게 시집보내겠다는 거다. 자연히 여자들에게 딸린 아이들은 새신랑들이 부양해야 한다. 역사는 성인 남성을 제외한 전인구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노인(노파)들의 생존까지 책임진 것이다. 물론 시부모 모시듯 하진 않았겠지만.
이제부터 타타르 출신 여성들이 낳는 아이들은 몽골인이 될 것이다. 이버지를 잃은 타타르 아이들도 몽골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현재 가장노릇을 하는 세대가 당분간 경제적 부담을 져야겠지만, 울루스 전체의 미래엔 엄청난 가능성이 생긴다.
타타르족 대학살은 두 가지 면에서 무척 중요하다.
첫째, 백성을 바라보는 테무진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근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책임감’을 가진 군주였다. 한 번 백성이 되면 끝까지 책임진다. 백성 모두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나라 안에서는 노예도 없고 계급적 차별도 없다.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검소한 생활을 한다.
그런데 거꾸로 말하면 백성이 아닌 이들에게는 공적인 의무가 전혀 없다. 테무진은 아직 자신의 울루스에 편입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인간적인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테무진은 철저히 사회적인 인간, 계약의 인간이었다. 테무진은 백성과 백성이 아닌 사람을 물과 기름처럼 구분했다.
둘째, 타타르 대학살은 테무진과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할 때 적들을 학살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선례가 된다. 서양 학자들은 테무진의 이중성, 즉 아무렇지도 않게 대학살을 자행하는 잔혹함과 피를 다 뿌리고 난 후에 보여주는 대단한 관용에 당혹해하곤 한다. 놀랍게도 이 둘은 충돌하지 않는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가 서로의 당연한 이면이다.
테무진의 사고방식은 냉혹할 정도로 합리적이다 - 우리 백성이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직 적이라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존중해야 할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은 차라리 공장식 노동에 가깝다. 기계적이고 신속하며 무차별적으로 죽여서 목표량을 채우는 식이다. 테무진의 군대는 가학적 쾌감을 위해 포로를 고문하거나, 이왕이면 더 잔혹하게 죽이려고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그저 빠르고 간단하게 죽일 뿐이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효율이었다.
반면 살아남은 적의 백성은 자연스럽게 테무진의 백성이 된다. 이들은 뜬금없이, 당시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평등과 복지를 경험한다. 가족과 동포들이 대량학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생존자들이 테무진과 몽골제국에 신기할 정도로 충성을 바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피정복민으로 구성된 군대가 반란이나 불복종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봉건사회에서 백성은 기득권 지배층의 관리 대상이다. ‘시민’이 아니란 얘기다. 이런 사람들이 갑자기 현대적 의미의 ‘사람대접’을 받는 거다. 새로운 시스템에 충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타타르 남자들 중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6
“수레의 굴대(두 바퀴의 중심을 있는 바튀축) 빗장보다 키가 큰 남자는 모두 죽인다.”
중세 몽골초원에서 수레의 굴대 빗장의 길이는 남자가 성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 중 하나였다. 물론 세상에는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빨리 성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위에서 설명했듯 학살은 신속할수록 좋다. 타타르족 남자가 한 두 명도 아니고, 언제 일일이 나이조사를 하고 있겠는가?
몽골의 수레
그래서 수레의 굴대 빗장을 기준으로... 그래, 우리 테무진 오르도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해 봤다. 이해 간다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시원시원하고 깔끔한 학살은 역시나 끔찍하다. 쿠릴타이 멤버들도 도덕적인 부담감을 느꼈던 게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몽골비사>에 이런 핑계가 적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옛날부터 타타르 사람들은 할아버지들, 아버지들을 시해한 자들... 할아버지들, 아버지들의 원수를 갚고 복수를 하자.”
한편 테무진 군대에 포위된 채 적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던 타타르 전사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그렇잖은가? 전투가 끝나면 통상적으로 벌어지던 일들이 있는데 말이다. 정신없이 약탈하느라 이긴 놈들끼리 싸우고 있어야 하는데(그러느라 상식적으로는 우리 편 일부는 도망갈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 백성을 한데 억류해 놓고 게르에서 뭔가 비밀스런 얘기를 한다. 그 누가 긴장하지 않겠는가?
쿠릴타이가 끝나고 테무진 울루스의 수뇌부가 게르에서 나오자, 한 타타르 남자가 쿠릴타이 멤버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타타르 남자의 이름은 ‘예케 체렌’. 예케는 ‘크다’는 뜻이다. 즉 ‘큰 체렌’이라는 뜻인데, 당연히 체렌이 본명이다. 예케라는 칭호가 붙은 걸 보면 단순한 귀족이 아니라 군주였음을 알 수 있다.
예케 체렌이 붙잡은 쿠릴타이 멤버는 다름 아닌 벨구테이. 예케 체렌은 벨구테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이보시오... 당신들, 대체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 거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으니 모조리 포로가 된 우리 입장에서는 불안해 견딜 수가 없소.”
벨구테이가 별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너희 모두를 수레 굴대에 대어보고, 그보다 키가 큰 놈들은 모두 죽여 버리기로 했다.”
벨구테이도 예수게이의 아들이다. 타타르를 증오하는 마음은 테무진과 다를 수 없다. 그는 원수집단의 성인남자 모두의 사형선고를 심드렁하게 내뱉었으리라. 너희는 비참하게 죽어 사라질 운명이라는 이야기를... 조롱과 냉소를 섞어서 말이다. 하지만 벨구테이, 큰 실수 했다.
2MB쥐가 궁지에 몰리면 국민고양이를 문다. 어차피 다 죽을 운명이라면 뭐하러 곱게 목을 내놓고 처형을 기다리는가? 이렇게 되면 쥐는 죽든 말든 싸우게 된다. 예케 체렌은 “자신의 타타르”에 명령을 내렸다.
“방어 진지를 구축해라! 목숨 걸고 싸우자.”
그냥 타타르가 아니다. ‘자신의 타타르’다. 이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건 예케 체렌이 타타르 전체의 칸은 아니었다는 사실. 타타르는 부족연합체. 그는 타타르족을 구성하던 몇 개 부족 중 한 부족의 칸이었던 거다.
포로들인 처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현대식 포로수용소을 상상하면 안 된다. 유목민들은 공간-그것도 개활지-을 넓게 쓴다. 적은 인원이 머릿수가 훨씬 많은 상대를 포위하고 있었다. 포위망 내부에서는,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진지를 구축하는 일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가시거리도 거리지만, 사람보다 수십 배나 많은 가축들 때문에라도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포로들의 저항 소식을 들은 테무진은 당연히 진압을 명령했다.
“공격해!”
하지만 독이 오를 대로 오른 타타르 전사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테무진의 병사들은 방어진지를 넘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나갔다. 적은 수의 전사들이 많은 포로들을 가까스로 억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병사를 잃는 계속 잃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용기를 얻은 다른 타타르 씨족들이 저항에 가담할 수도 있었다.
테무진 군대는 작전을 바꿔 봉쇄작전에 들어갔다. 방어진지의 안과 밖을 차단해, 진지 내부를 말려 죽이려는 심산이었다. 사람인 이상 식량과 물자가 없으면 싸우는 건 고사하고 버티는 것도 불가능하다. 헌데 사람(그것도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 견딜 수 없게 되려면 며칠로는 부족하다. 어쩌면 테무진은 한 달이 넘도록 예케 체렌과 대치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봉쇄가 계속되자 예케 체렌과 그의 부하들은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일단 항복하고 말았다.
이젠 서둘러야 했다. 테무진 군대는 곧바로 살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타타르 전사들은-아마도 예케 체렌이 다스리던 씨족 전사들이 분명하다- 마지막 저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마다 옷소매 속에 칼을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다음의 문장이 그들의 비장함을 알려준다.
“죽더라도 몽골 놈들을 베개 삼아 죽자.”
타타르 전사들은 마침내 테무진의 병사들이 몽골식 환도를 치켜들고 자신들을 베려고 할 때, 소매에서 냅다 칼을 꺼내 적들을 찔러 죽였다. 짐승의 숨통을 끊고, 가죽을 벗기고 뼈와 살을 분리하는 사냥용 칼이거나 비슷한 용도의 도축용 칼, 혹은 고기음식을 잘라먹을 때 쓰는 식사용 칼이었으리라.
몽골의 사냥용 칼
... 이런 칼들은 동물의 몸을 다루는 데 특화되어 있다. 또 유목민들은 동물의 신체를 잘 이해한다. 그리고 사람도 동물이다.
죽기를 기다리는 줄 알았던 자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갑자기 공격하자 오히려 전투용 칼을 쥔 테무진의 병사들이 속수무책이었다. 예상치 못한 저항에 테무진의 병사들이 숱하게 쓰러졌다.
이렇게 되면 역으로 테무진 측도 지독해진다. 분초라도 빨리 놈들을 다 죽여 없애야 한다. 테무진의 전사들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어이 타타르족의 성인 남자 전원을 학살했다. 생존의 희망도 없이 오직 복수심만으로 저항하는 희생자들과, 상대를 말살하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칼질을 해대는 가해자들. 숨이 끊어지는 남자들과 그 모습을 보는 그들의 아내들이 내는 비명소리... 수백 명도 아니고, 수십만 명이 한데 얽혀 연출하는 광경이다. 문자 그대로 지옥이었다.
7
테무진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벨구테이, 정말 큰 잘못 했다. 이놈자식이 기밀을 누설하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었는가? 그래서 생긴 과부, 고아들한텐 뭐라고 할 건가?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다. 테무진이 구축한 사회의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그는 벨구테이를 처벌해야 했다. 자신의 동생이라고 봐주는 건 원칙에 어긋난다. 테무진은 원칙에 거의 목숨을 건 인물이었다.
그런데 테무진은 벨구테이에게 빚이 있었다. 테무진은 어린 시절 벨구테이의 친형 벡테르를 죽였다. 또 보르테와 결혼하고 나서 메르키트족이 습격했을 때, 테무진의 친모인 헐룬은 가족과 함께 달아났지만 벨구테이의 어머니 소치겔은 버려졌다. 물론 말이 부족하기도 했었고, 테무진의 아내 보르테도 소치겔과 함께 납치되었었다. 헐룬은 집안을 이끄는 가장이기도 했었고.
그러나 어쨌든 헐룬은 안전했고 보르테는 구조되었다. 반면 소치겔의 운명은 좋지 않았다. 벨구테이는 친형과 생모를 모두 잃었다. 그런데도 테무진에게 충성했다. 게다가 유능하고 용감했다. 그런 벨구테이를 테무진이 냉정하게 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봐 줄 수도 없다. 이미 전리품에 먼저 손을 댄 알탄과 코차르, 다리타이를 처벌한 테무진이다. 이거 대체 어떡해야 하는 건가.
결국 테무진은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 사료에 기록된 그의 육성을 그대로 적는다(<몽골비사> 유원수 역본).
“우리가 지친간에(쿠릴타이에서) 의논한 것을 벨구테이가 누설하는 바람에 우리 병력이 몹시 희생되었다. 이 뒤로는 벨구테이를 회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의논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모두를 다스리게 하라! 다툼질, 도둑질, 사기질한 자들을 처단케 하라! 의논이 끝나고 다른 참석자들이 의식의 술을 마신 뒤에, 벨구테이와 다리타이는 거기 들어오도록 하라!”
역시나 테무진은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자기 기분대로 결정해버리는 인간이 아니라는 거다. 자신의 울루스에나, 벨구테이 개인에게나 모두 공정해야 한다. 일단 죄를 진 대가로 쿠릴타이 멤버라는 상징적인 권위를 박탈해 버렸다. 쿠릴타이 멤버들이 “의식의 술”, 즉 회의가 끝나고 자축하며 마시는 술을 다 마시고 난 후에야 게르에 들어갈 수 있다.
어찌 보면 벨구테이가 불쌍하게도 왕따가 된 것 같다. 쿠릴타이의 내용을 한 번 발설했으니 앞으로도 입이 무겁다고 장담하지 못할 터, 밖에서 찌그러져 있으라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쿠릴타이 기간에는 수뇌부 전체가 ‘회의실’인 게르에 처박혀 있다. 쿠릴타이는 몇 시간 하고 끝내는 회의가 아니다. 며칠은 기본이고 길게는 보름씩도 한다. 당연히 바깥상황을 통제할 일시적 제 1권력자가 있어야 한다. 이걸 벨구테이에게 맡겼다. “밖에서 모두를 다스리게” 한 거다. 범죄자들을 독자적인 판단으로 처벌할 사법권까지 있다. 웬만한 쿠릴타이 멤버보다 더 큰 실질적 권한을 준 셈이다.
테무진은 벨구테이의 공식적 권위에 상처를 입혀 백성들을 납득시켰다. 다른 한 편, 벨구테이의 실질적 권한을 보장함으로써 그가 입은 상처를 보상해주었다.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는지 뻔히 보인다. 한마디로 그는 고민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사실 우리 삶도 좀 고민스럽긴 하다. 그런데 고민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자신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인간만이 고민을 한다. 고민을 한다는 건 자기 자신의 재능과 능력보다 더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말에 ‘생각 없는’이라는 표현이 있다. 뇌세포의 개체수가 아니라, 뇌세포의 활동량이 지성을 결정한단 얘기다. 생각은 하는 편이 좋다. 괴로운 생각일지라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테무진은 벨구테이를 쿠릴타이에서 ‘자른’ 후에도 그의 판단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면 쿠릴타이에 들어가기 전에 테무진이 벨구테이의 의견을 들으면 된다. 벨구테이의 생각이 테무진을 통해 쿠릴타이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쿠릴타이가 끝나면 벨구테이가 그 내용을 모두 전해 듣는 건 물론이다. 동의하지 않으면 쿠릴타이의 결론에 반론을 제시하면 된다. 어차피 테무진이 다 알아듣는다. 실제로 벨구테이가 게르 바깥에서 내놓는 전략적 판단은 몽골제국 확장에 큰 영향을 끼친다.
8
아, 빼놓지 말고 설명해야 할 게 있다. 훗날 테무진이 세계정복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중앙아시아와 서양에서 몽골은 몽골이라는 정식 국명보다 타타르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된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혈통으로 인식하는 유목민들의 습관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유럽에 가서 <넌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나 여러분이나 한국이라는 사실을 꼭 이야기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중세 유목민이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 이름은 '길동'인데, 한반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남양 '홍'씨 출신이오."
서쪽으로 뻗어나간 몽골 병사들은 자신의 출신 종족을 기준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내 조상은 위구르인이오, 내 핏줄의 뿌리는 투르크(터키)족이오 등등... 당연히 달란 네무르게스 전투 이후 테무진 울루스에 합류한 타타르인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자신을 타타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타타르 핏줄의 비율이 워낙 높았다. 저마다 자신을 타타르라고 소개하니, 서쪽 사람들은 자신들을 침략한 정체불명의 세력 자체를 타타르라고 이해하게 된다. 타타르 혈통의 몽골국민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서양에서는 이 습관이 굳어져 아직도 몽골을 타타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발생한 오해 때문에 몽골사와 중앙아시아사를 접하는 사람들은 한 번 이상은 반드시 헷갈리게 된다.
테무진의 명령에 따라 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착실히 부양하고 먹여살린 몽골인들도 대단하지만, 타타르 출신자들이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테무진과 몽골제국에 충성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타타르족은 머릿수가 많은 만큼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심지어 아버지가 달란 네무르게스에서 학살당해 고아가 된 세대부터 충성스런 장군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테무진 울루스 사회가 고아들을 성심성의껏 키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 번 백성이 되면 끝까지 책임지는 거다.
그럼 타타르족은 몽골에 완전히 용해되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타타르로 오해된 몽골이 아니라 진짜 타타르인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과정은 이렇다. 훗날 몽골제국이 확장되면서, 테무진의 손자 대에 이르러 몽골인 일부가 서쪽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중에 아직도 타타르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던 몽골국민들이 있었다. 물론 <나는 타타르인이다>라는 관념만 남아있었을 수도 있다.
하여간 이들은 타타르 동포들이 몽골사회에 완전히 용해되기 전에 용광로를 빠져나온 셈이다. 전 세계에 천만 명이나 있다. 타타르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대신, 아이러니하게도 서양 백인(코카서스 인종)의 피를 수혈받게 된다. 아시아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그룹도 있지만 대체로 혼혈민족이다. 아래는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퍼져 있는 타타르족의 사진들이다. 내맘대로 여인들 사진만 넣었다. 어쩔래.
크림 반도의 타타르 아가씨인데, 비교적 백화(白化)혼혈이 덜 된듯.
위 사진의 주인공은 러시아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리듬체조선수 알리나 카바에바. 아버지가 우즈베키스탄 타타르족이다.
러시아의 유명 가수인 알소(Alsou) 역시 타타르족
인기모델 이리나 셰이크. 타타르 혈통이다.
이제 우리는 '타타르를 흡수한 몽골'을 타타르로 오해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현재 존재하는 진짜 타타르족을 몽골인과 혼동하지도 말도록 하자.
outro
타타르 전사들을 도륙하고 남은 여자들을 분배할 때였다. 아마 병사들이 테무진 앞에 끌고 왔을 것이다. 고급스런 의복과 장신구를 걸친, 너무나 아름다운 묘령의 여인을... 테무진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정도 미인이 감히 자신의 전리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리라.
타타르 여인의 이름은 ‘예수겐’. 그녀는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케 체렌의 딸이었다.
(17) 배신의 계절
1
예수겐에게 남편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정황을 보아하건데 없었을 것 같지만, 있었다면 대학살 때 죽었을 것이다. 예수겐의 아버지 예케 체렌도 반란을 주도하다가 죽은 게 분명해 보인다. 뭐 어차피 수레 굴대보다 크면 죄다 죽어야 했으니...
테무진은 여자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여성을 전리품으로 차지하는 일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쉴드치는 게 아니라 정말이다. 벨구테이만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최소 십수 명의 여성을 손에 넣은 적이 있다. 테무진에겐 여성을 약탈해 자신의 게르에 집어넣을 기회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에게 아내는 보르테 한 명 뿐이었다.
테무진이 보르테를 정말로 사랑해서 나름의 지조를 지켰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보르테도 보통 여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의 눈치를 봤을 수도 있고. 어쨌든 그 시대의 권력자가 한 명의 아내만을 바라보고 사는 건 무척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테무진도 수컷이다. 예수겐은 인간적으로 너무 예뻤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차지할 권한이 있었다. 테무진은 이번엔 욕구를 참지 않았다. 그는, 기록에 따르면, 예수겐을 “취했다”. 데리고 잤다는 얘기다. 당시의 관습상 결혼과 겁탈의 중간 쯤 되는 행위였다.
한편 예수겐의 입장이 좋을 리는 없었다. 동포들이 학살당하고 자신의 나라가 사라졌다. 아버지도 죽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증오해야 마땅한 원수의 손에 떨어진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공포와 혐오감에 정신을 못 차릴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수겐은 침착하고 영리한 여자였다.
예수겐은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최대한 불행을 줄이는 방법이 뭔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예수겐에게는 언니가 하나 있었다. 마지막 남은 가족인 언니라도 살려야 한다. 함께 살 수 있으면 더 다행이다. 예수겐은 테무진과 부부가 되자마자 ‘공사’에 들어갔다.
“칸께서는 ‘저 같은 것조차 사람으로 여겨’ 돌봐주시는 너그러운 분이십니다...”
예수겐은 먼저 자신을 최대한 낮추면서 테무진의 심기를 살핀 후 본론에 들어갔다.
“... 그런데 갑자기 언니 생각이 나네요. 언니는 이름이 ‘예수이’인데, 저보다 훨씬 뛰어난 여자예요. 외모로 보나 생각하는 걸로 보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 난리통에 어디에 있는지 참 걱정되네요. 에휴...”
예수겐의 외모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테무진에게는 제대로 된 떡밥이었다.
“아니, 너보다 예쁘다고?”
“그럼요.”
“정말?”
“그렇다니까요.”
“정말로 너보다 예쁜 여자가 있다면 당장 찾아야겠다!”
에수겐은 영리하게도 마치 테무진의 욕망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처럼 반응했다.
“정말 언니를 찾으시려고요? 저는 언니를 다시 볼 수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어요. 언니에게 ‘제 자리’를 양보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두 번째 부인의 자리를 언니에게 내놓고, 자신은 셋째부인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역시 현명하다. 본부인도 아닌 마당에 둘째 셋째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더군다나 바로 윗사람이 자신의 친언니라면.
테무진의 군사들은 (아마도 예수겐이 예측한) 예상 도주로를 따라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다. 인상착의와 행색은 예수겐이 알려주었을 것이다. 예수이는 마침 신랑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참에 딱 걸리고 말았다. 예케 체렌의 사위는 학살의 아수라장 속에서 운 좋게 아내를 데리고 탈출했던 것이다. 신랑은 숲속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지만, 예수이는 붙들리고 말았다.
테무진 앞에 끌려온 예수이... 정말로 예수겐보다 더 아름다운 절세미녀가 아닌가. 설마 했던 테무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으리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던 예수이도 테무진 옆에 앉아 있는 동생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예수겐은 언니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자리에 앉혔다. 이제 언니는 테무진의 둘째부인이라는 뜻이었다. 사료에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당연히 상황설명을 해주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자매가 함께 살게 된 것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예전 기사에 누차 설명했지만, 초원에선 남녀가 서로 피가 섞이지 않은 한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다. 자매가 한 남자와 결혼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참, 예수이의 남편이 좀 안됐긴 하지만 예수겐 입장에선 형부보다 친언니의 신변이 훨씬 중요했다.
그러나 예수이의 남편은 아내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2
테무진의 군대가 한창 전리품을 거두고 있을 때였다. 테무진은 예수겐과 예수이를 양 옆에 앉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신이 죽인 적의 아름다운 두 딸을 동시에 소유한 정복자의 쾌감은 실로 짜릿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닌가? 테무진은 예수이에게 한숨을 쉰 이유를 묻지 않았다. 짚이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이가 자기 신랑의 모습을 봤구나!’
글타. 예수이의 남편은 은근슬쩍 전투와 학살이 벌어진 곳으로 숨어들어와 있었다. 어차피 타타르 남자는 다 죽었다. 내가 여기서 태연히 돌아다니면, 누가 날 타타르 전사로 여기겠는가? 그는 사랑하는 아내 예수이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곳까지 갔다. 테무진 오르도의 중심까지 들어간 것이다.
‘누가 예수이의 신랑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방법이 있었다. 테무진은 ‘네 마리의 개’와 ‘네 마리의 준마’를 불러 명령했다.
“자네들, 지금 날 위해 해줘야 할 일이 있네. 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아이막’ 별로 집합해 서 있으라고 하게. 신속하게 집합시켜야 하네.”
‘아이막’이란 ‘부락’을 뜻한다. 이 부락을 ‘마을’로 생각하면 안 된다. 마을은 다분히 공간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에겐 고정된 공간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공동체가 없을 순 없다. 함께 가축을 치고 물자를 공유하는 기본적인 단위가 있게 마련이다. 이걸 아이막이라고 한다. 물론 농경문명으로 치면 마을에 해당될 것이다. 사전적으로는 아이막을 '부족'을 가리키는 몽골-투르크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중대... 아니 아이막 별로 해쳐모여!”
병사들이다 보니 이런 명령에 익숙할 수밖에. 게다가 여덟 명의 대장군이 움직이니 금세 정리가 되었다. 다들 아이막 별로 모여 섰는데, 그 중에 혼자 외롭게 서 있는 남자가 있었으니... 당연히 예수이의 신랑이었다.
예수이의 신랑이 테무진 앞에 끌려왔다. 과연 칸의 사위이자 미녀의 남편답게, 눈에 띄게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게다가 당당했다. 그는 살려달라고 빌기는커녕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담담히 죽음을 기다렸다.
예수이, 예수겐 자매의 미모에 푹 빠져 있던 테무진은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질투심에 휩싸인 것이다. 테무진은 예수이가 아직도 전남편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테무진은 전남편과 달리 평범한 얼굴에 키는 보통이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테무진은 자존감이 없는 인물도 아니었고, 힘들게 살아왔지만 콤플렉스도 전혀 없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이해하고, 아랫사람에게도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겸손할 수가 없다. 우아하고 절제된 품성의 남자다. 그렇지만 갓 차지한 미녀 앞에서는 테무진도 생물학적 본능에 사로잡힌 수컷의 모습을 보이고 만다. 글타... 강인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강인함을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잘난 엄친아 녀석이 용감한 모습까지 보이자, 오히려 절대적으로 유리한 처지였던 테무진이 오바해서 성을 냈다.
“나한테 ‘역심’을 품은 게 분명하다. 한시라도 빨리 죽여 없애야 한다. 뭣들 하느냐!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번역하면 예수이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가라! 빨리 죽여 버려라!”
이렇게 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예수이는 눈앞에서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는 비극까지 겪고 만다. 이 일이 미안했던지, 이후 테무진은 평생 둘째부인 예수이를 존중하며 정성껏 대했다. 예수이 자체가 매우 뛰어난 사람이기도 했다. 예수이는 몽골제국의 최고 브레인 중 하나였고, 테무진은 그녀의 의견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전쟁에 나설 때 동행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3
적을 죽이고 그의 두 딸을 동시에 차지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갓 약탈한 여자의 남편까지 (그것도 당사자의 눈앞에서) 죽인 테무진. 달란 네무르게스에서 보인 테무진의 모습은 나쁜 남자의 전형이다.
예수이, 예수겐 자매와 결혼(물론 강제결혼)한 일은 테무진의 일생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다. 보르테는 논외로 두고, 테무진이 수컷의 본능에 따라 여자에게 집착한 적은 이때가 유일하다. 테무진은 평생 열 명이 안 되는 부인을 두게 되는데, 데릴사위가 되어 결혼한 본부인 보르테와 폭력적으로 손에 넣은 예수이 자매를 제외하면 모두 정치적인 정략결혼이었다.
테무진이 보르테를 어지간히 사랑하긴 했던 모양이다. 테무진이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보르테와 부부생활-걍 간단히 말하면 섹스-를 한 역사적 증거가 있다(이 썰은 나중에 자세히 풀 것이다.). 말이 중년이지, 당시 기준으로는 둘 다 노인이다. 테무진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는데... 역시 사랑하지 않으면 있기 힘든 일이다. 뭐, 테무진이 시쳇말로 ‘의무방어전’을 치렀을 수도 있겠지만, 의무방어전이라는 것도 배우자의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어쨌든 테무진의 여성관이 매우 평화적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예를 들어 테무진의 부하 중 하나인 코르치는 최소 60명 이상의 여성과 약탈혼을 했다. 확실히 테무진은 마초적인 ‘콜렉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예수이 자매에게 한 짓은 분명 마초의 그것이었다(정말 예쁘긴 예뻤나 보다.).
그래서 몽골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에게 <자매 쓰리섬 결혼사건>은 상당히 중요한 이슈다. 아무리 봐도 테무진이 평생 유지해온 품성과 태도와는 정 반대다. 잭 웨더포드는 아예 이렇게 설명한다 : 테무진은 타타르 생존자들이 평등한 구성원이 되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모범사례로 예수이 자매와 결혼했다는 거다. 유원수 교수님과 함께 국내에서 몽골사-중앙아시아 유목민사 최고의 권위자인 김호동 교수도 비슷한 입장이다.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 예수이 자매와 약탈혼을 한 동기는 남성의 욕구가 맞다. 다만 테무진의 성격상 두 사람과의 결혼생활을 통해, 타타르 여인을 아내로서 존중하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사회통합을 강조했을 것이다.
반면 테무진을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으로 가득 찬 전투적 남성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대중적 콘텐츠 생산자들에게는 신나는 이야깃거리다. 이 부류의 지식인들이 반드시 빠트리지 않고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라시드 앗 딘이 저술한 <집사>중 <칭기스칸기>에 등장하는 일화다.
하루는 테무진이 네 마리 준마 중 하나이자 친한 친구인 보르추에게 물었다.
“어이 보르추, 남자에게 있어 최고의 즐거움은 뭐라고 생각하나?”
“역시 남자의 스포츠는 매사냥 아니겠습니까? 잿빛 매를 자랑스럽게 어깨에 싣고 다녀야죠. 겨울에 내 매로 사냥감을 잡게 하는게 진짜 맛이죠...”
몽골초원에서는 겨울에 가축을 도살하지 않았다. 따라서 겨울엔 사냥으로 육류를 충당해야 했다.
“... 그리고 비싼 자가용 살찌고 좋은 말을 몰아야 폼이 나죠. 에 또... 봄에 머리가 푸른 새(아마도 철새인 듯하다.)를 사냥하는 것도 빠질 수 없죠. 그리고 이왕이면 옷도 좋은 걸 입고 다니고요.”
테무진은 마침 옆에 있던 보로쿨(역시 네 마리 준마 중 하나)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보로쿨도 역시 매사냥을 최고로 쳤으나, 보르추와는 취향이 조금 달랐다.
“머리가 푸른 새라니, 거 참 시시하게... 역시 내 매가 공중에서 붉은 꿩을 낚아채는 모습을 볼 때가 최고 아니겠습니까?”
테무진은 마지막으로 네 마리 개 중 하나인 쿠빌라이에게 물었다. 쿠빌라이의 대답은 성실한 범재답다.
“아 뭐 역시... 저도 매사냥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테무진은 드디어 준비한 대답을 내놓는다.
“짜식들, 너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매사냥이 뭐냐, 매사냥이. 하여간 사이즈들이 그렇게 작아서 원...
남자의 쾌락은 적을 분쇄하고 승리를 거두는 거지. 적을 송두리째 들어내서 그가 가진 모든 걸 빼앗는 거야. 그의 부인들이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 자식들이 엉엉 우는 모습을 보는 게 남자의 즐거움이야. 적의 살찐 말을 내가 타는 건 기본이고... 그의 부인들을 내 게르로 끌고와 그들의 가슴과 배를 잠옷과 담요로 삼는 것, 그들의 장밋빛 뺨을 바라보며 입맞춤을 하는 것, 대추처럼 빨갛고 감미로운 입술을 빠는 게 진정 남자의 즐거움이다.”
잭 웨더포드는 이 일화가 라시드 앗 딘 꾸며낸 소설이라고 못을 박는다. 물론 웨더포드의 의견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라시드 앗 딘은 테무진을 멋진 사나이로 꾸미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 전력이 많다.
예를 들어 테무진은 13쿠리엔 전투에서 자무카에게 지는데, 라시드 앗 딘은 테무진이 이긴 걸로 바꿔놓았다. 헐룬과 보르테 등 여성의 조언을 구하는 대목, 눈물을 흘렸던 장면 등은 아예 쓰지도 않았다. 위대한 군주에 대한 예우 차원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라시드 앗 딘은 몽골인이 지배하는 조정의 대신이었다. 내심 지배자들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몽골 왕족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혼자 오바한 부분이 많다.
라시드 앗 딘이 저지른 오바의 핵심적인 문제는 그가 멋진 사나이를 자신의 문화, 즉 아랍식으로 해석했다는 거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전해주는 듯한 비현실적은 능력으로 적을 쓸어없애는 남자, 패배한 적에게 자비를 모르는 남자, 승리의 대가로 여자를 유린하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남자...
라시드 앗 딘은 자무카가 치노스족 70명을 가마솥에 삶아죽인 일을 테무진이 했다고 바꿔놓았다. 테무진이 이런 굴욕을 당해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했다면 그냥 자기 책에 해당 부분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 짓을 테무진이 했다고 뒤바꿔놓은 건, 그게 멋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라시드 앗 딘은 테무진의 부인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고 했다(다른 책에서는 500명이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그래놓고는 "너무 많아서 일일히 기록할 수 없으니 중요한 부인들만 소개하는 바이다."라며 몇 명만 소개하고 설명을 달아놓았다. 이쯤되면 독자들도 눈치 챘겠지만, 실제로는 이 몇명이 테무진의 부인 전부다(물론 라시드 앗 딘은 굳이 나서서 대신 금칠을 해줄 필요가 없는 부분에 대해선 구체적인 연대까지 제시하며 최대한 정확히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면 라시드 앗 딘은 과연 뻥을 친 걸까? 뻥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나는 테무진이 <남자의 쾌락> 발언을 실제로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이 자매의 경우처럼 사람이란 언제나 일관정을 유지할 수 없는 법이다. 테무진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과 약탈 등 폭력을 행사하며 산 남자다. 폭력과 지배의 잔인한 쾌감에 젖는 순간이 전혀 없었을까? 나는 자주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중요한 점은 테무진이 언제나 착한 군주였다는 게 아니라, 평소 유지하던 정책과 성격으로 돌아올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테무진은 성자가 아니라 전사다. 전사는 폭력을 참지 않는다. 하지만 테무진은 고민할 줄 아는 성격과 절제력을 가진 전사였다. 그는 일생을 통해 평화와 통합을 추구하고자 노력했다.
평화와 통합이라... 어째 너무 낭만적으로 보인다. 설마 만화에 나오는 영웅처럼 테무진도 그런 생각을 했을라구. 이제 이 이야기를 해 보자.
4
달란 네무르게스 전투에 즈음하여 테무진은 최초로,
'모전 벽의 사람들'
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다. 게르의 천막을 모전, 즉 펠트로 만든다. 다시 말해 '게르에 사는 유목민' 전부를 뜻한다. 삶의 방식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문화공동체'로 정확히 번역된다.
그 전까지 유목민들은 혈통공동체로 집단을 구성했다. 분명히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똑같이 초원에서 사는 사람들인데, 폭력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 편과 쟤네 편의 구분이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테무진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민족을 만들려고 했다. 부족과 씨족, 혈족이 아니라 국가적 단위인 '민족' 말이다. 당시 초원에는 인종적으로 보면 몽골족(부족 이름이 아니라 인종적 개념인 '몽골리안'을 뜻한다.), 몽골리안의 지파라고 볼 수 있는 타타르족, 독립종족이라고 봐야 마땅한 투르크족, 중앙아시아 계열인 위구르족 등 다양한 인종 풀이 뒤섞여 있었다.
이 종족들이 이리저리 뒤섞이면서 부족과 씨족을 이룬다. 가장 작은 단위인 혈족은 대략 사촌~육촌까지를 포함하는 울트라 대가족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초원은 통일이 될래야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실상 초원은 분열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분열이란, 원래 일체감을 느끼는 하나의 무리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적대하거나 결속이 약해져 쪼개져 나간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통일된 상태였던 적이 없는데, 어떻게 분열할 수 있는가. 당시의 초원이 '분열'되었다고 하는 건, 지금 우리가 씁쓸하게 고개를 흔들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200개가 넘는 나라로 분열되어 있어...>하는 거나 같다. 예를 들어, 남북한이 합친다면 이는 당연히 통일이다. 우리는 원래 한 나라였고, 지금은 '분단'되어있으니까.
물론 테무진이 속한 보르지긴 씨족의 조상 중에 초원을 거의 통일할 뻔한 카불 칸이 있었긴 하다. 그런데 이런 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다. 공동체적 통합이 아니란 얘기다. 몽골족이 약한 부족과 씨족들을 부하나 노예로 삼는 거다. 이건 통합이 아니라 '지배'다.
사실 대한민국도 단일민족 국가는 아니다. 신생아의 엉덩이이 몽고반점이 찍히는 등 시베리아계 몽골리안의 비율이 높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다양한 인종이 흘러들어왔다. 북방 유목인종과 아랍인, 지나인(중국 인종),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태평양 인종인 폴리네시아인까지...
내 아버지를 보면 홑꺼풀 눈두덩은 전형적인 몽골리안이지만, 전형적인 코카서스 인종의 코(밑에서 봤을 때 콧구멍이 삼각형 형태를 이루는 코)를 갖고 계신다. 유전적으로만 보면 동서양 혼혈이다. 그치만 유교적인 문화권에서 성장한 남양 홍씨 토홍계 대호군파의 자손으로, 토종 한국인이다(반면 나는 외꺼풀, 두툼은 눈두덩, 동그란 코와 콧구멍, 넓은 어깨, 긴 팔, 긴 허리, 두꺼운 허벅지 등 순수 몽골리안의 몸이다. 아버지의 형질이 밀려난 걸 보면 확실히 한국인의 유전자 풀에 몽골리안의 비율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하나의 민족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동일한 문화체계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치를 먹고, 밥이 없으면 허전하고, 우랄 알타이어 계열의 한국어를 쓰고, 하필이면 어순이 정반대라 영어를 배우기 위해선 머리를 싸매야 하고, 한(恨)의 정서를 공유하는 민족이다.
우리가 국가라는 운명공동체를 영위하는 이유는 우리가 문화적으로 같은 민족(people)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대한민국을, (현재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기본 바탕은 단일민족국가라고 불러도 된다.
<단일혈통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대부분의 경우 환상에 불과하다. 아시아의 수많은 북방 유목민족들 - 여진(만주)족, 투르크(돌궐, 터키)족, 위구르족, 몽골족, 유연족, 타타르족, 거란족 등은 저마다 자신들의 조상이 흉노(훈)족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서로 자신들이야말로 흉노족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흉노족이야말로 순수한 기마민족의 이데아로 추앙받았으니 그런 주장을 할 만도 했다.
그런데 각자 다른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 출현한 이들 종족 중에, 흉노족의 직계 후손은 없다. 물론 흉노족의 피가 여기저기 튀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흉노족의 직계 후손집단이 아시아에 있었다면 왜 테무진 시대에 흉노라는 이름이 이 지역에서 사라져 있었단 말인가.
혈통보다 강력한 것이 바로 문화다. 기마민족들이 저마다 흉노족을 위대한 조상으로 떠받든 이유는 <흉노족이 정립한 삶의 방식>을 전수받아 생존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조립/해체가 가능한 천막 위주의 주거문화, 말 위에서 활을 쏘는 싸움법, 활과 화살의 구조, 네르제(사냥감 여러 마리를 원형으로 포위하여 한번에 모두 포획하는 사냥법) 등등.
사실 부족이나 씨족 등의 개념엔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예를 들어 옹 칸이 이끌던 커레이트족은 시베리아계 몽골리안, 위구르족, 투르크족 등이 뒤섞인 부족이었다. 종족보다 훨씬 작은 개념인 부족에 다양한 종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물론 부계중심사회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공급된 모계혈통이 지워진 이유도 있으리라. 또 이런저런 씨족과 부족들이 서로 연합하고 정복하고 흡수되면서 새로운 부족으로 진화한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왜 '부족의 혈통'을 가지고 죽자고 싸워야 하는가?
테무진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이익공동체, 즉 사회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 사회는 계속 다른 울루스의 백성을 흡수하면서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 진화의 끝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평화와 통합일 수밖에 없다.
혈통으로 나눠진 지배집단이 존재한다면 언젠가 그 사회는 다시 분열할 수밖에 없다.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다시 혈통 단위로 이리저리 쪼개진다.
'지배종족의 강력한 힘'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가 아니라, 그런 물리적인 지배력이 없어도 하나인 사회. 원래 우리는 하나라서, 우리 안에선 서로 적이 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사회. 그런 사회를 위해서 테무진은 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을 발명했다. 그게 '모전 벽의 사람들'이다. 어느 종족의 얼굴을 가지고 있든, 어느 부족 출신이든, 우리는 모두 게르에 살면서 동일한 문화를 누리는 다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초원 구석에서 성장한 문맹의 사내 테무진에겐 <문화>니, <공동체>니 하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없었다. 자신이 아는 어휘를 애써 끌어와 '모전 벽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표현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하다. 테무진은 근대민족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에, 근대적 의미의 '민족(people)'을 최초로 이해하고 구상한 인물이다. 그것도 아무런 배움 없이 혼자서. 너무나 뛰어난 발상이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나 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19~20세기에 '민족'이라는 개념을 잘못 해석한 양반들이 꽤 된다. 이들이 '우리 민족의 순수한 피'에 집착해 극렬한 국수주의에 매달리다가 실패한 이유는 실제로는 문화공통체인 '민족'을 '단일혈통'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의적인 오해도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테무진이 태어났을 때, 몽골은 조그만 부족의 이름이었다. 그가 죽을 때 몽골은 '모전 벽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이 되어 있었다. 이런 사람이 출신 혈통에 따른 차별을 허용할 리가 없다.
테무진 울루스에 평등주의와 통합정책이 가능했던 건, 수많은 책과 영상물 등이 함부로 설명하듯이 그가 싸움을 잘하는 반면 '인심은 아주 넉넉한' 사나이 중에 사나이어서가 아니다. 초원에 불어닥친 혁명은 테무진이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내고, 그걸 대중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천재적인 정치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이 사십이면 자신의 믿음을 흔들리지 않고 지킬 수 있는 불혹이라 했다. 테무진은 불혹을 제대로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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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냥 불혹이 아니라 수컷의 불혹이다. 테무진이 이국적인 미녀자매의 자태에 맛이 훅 가있던 때, 테무진의 막내아들 톨루이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타타르 대학살이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톨루이는 할머니 헐룬의 게르에 놀러가 있었다. 원래 할머니는 어린 손주를 이뻐하는 법이다.
마침 헐룬의 게르에는 '네 마리 말' 중 하나인 보로쿨의 아내 '알타니'가 마실나와 있었다. 보로쿨이 십대였던 걸 생각해보면, 아내가 남편보다 두세살 연상인 초원의 관습상 알타니는 십대 후반이거나 스무살 정도였을 것이다.
모든 성인 남자를 죽인다고 해도, 수학적으로 100%를 지상에서 없앨 순 없다. 당연히 몇몇은 도망간다. 대학살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탈출한 타타르 전사 하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카르길 시라.' 카르길 시라는 비수를 품고 헐룬의 게르 안에 들어갔다. 몽골족에 대한 타오르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채...
자신의 부족이 지상에서 증발한 모습을 본 카르길 시라는 지상에서 가장 고독한 외톨이였으리라. 그는 일단 헐룬에게 거지인 척 연기를 했다.
"저는 적선을 구하는 자입니다."
헐룬은 초원의 대모답게 겁을 먹기는커녕 동정심이 들었는지, 먹을거리를 좀 내어주기로 했다.
"적선을 구하는 자라면 거기 앉거라! 주린 배를 채우게 해 주마."
카르길 시라가 복수의 기회를 노리며 자리에 앉으려는 그때, 밖에서 놀고 있던 다섯살배기 톨루이가 헐룬의 게르로 뛰어들어왔다.
"할머니~"
카르길 시라가 바보가 아닌 한,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있는가? 그는 이미 삶에는 아무 미련이 없었다. 테무진에게 고통을 주는 것만이 중요했던 카르길 시라는 톨루이를 번쩍 들어 겨드랑이에 끼우고 게르를 뛰쳐나갔다. 한 쪽 손으로는 품안의 칼을 더듬더듬 뽑으며...
"아, 아이를 죽인다!"
헐룬은 여장부였지만, 사랑하는 손자가 죽게 될 위기에 처하자 얼어붙은 채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알타니는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어린 신부 알타니는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뛰쳐나갔다.
이럴 때 영화속에서는 여자는 남자영웅의 구조를 기다리는 가냘픈 존재거나, 화려한 발차기를 자랑하며 남자를 제압하는 여전사가 된다. 당연히 현실의 여성은 그 중간쯤 어디에 있다. 알타니는 리얼액션을 선보였다. 그녀는 카르길 시라를 따라잡아, 톨루이가 칼에 찔리기 직전에 납치범의 머리끄댕이를 온 힘을 다해 졸라 잡아당겼다!
한 손엔 칼, 한 손엔 톨루이를 든 채 고개가 홱 젖혀진 카르길 시라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알타니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카르길 시라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 결에 톨루이를 노리던 칼이 땅에 떨어졌다.
“왕자님 살려! 여기 이 미친놈이 톨루이를 죽이려고 한다아아!”
알타니의 외침은 헐룬의 게르 근처에 있던 젤메의 귀에 들어갔다. 젤메는 '제테이'라는 남자와 소를 도살하고 있었다. 젤메도 제 집이 있었을 텐데... 울루스 전체의 2인자였던 젤메가, 다른 곳도 아니고 보스인 테무진 가족이 머물던 오르도 안에서 직접 소를 잡는다? 평상시라면 뭔가 어색하다.
소는 초원에서 제사에 자주 쓰던 가축이다. 젤메는 울루스 전체가 참여하는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니면 이미 잔치중이었거나. 타타르 정벌을 기념하는 잔치였음이 분명하다.
젤메와 제테이는 한 사람은 도끼를, 한 사람은 칼을 들고 손에 온통 소의 피를 묻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칼과 도끼를 든 채 알타니가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카르길 시라 이 남자, 운도 지지리 없다. 젤메와 제테이는 알타니에게 머리끄댕이가 잡혀 허우적대는 카르길 시라를 그자리에서 칼과 도끼로 쳐죽였다.
소피가 묻은 도끼로...
세 어른은 존경하는 보스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다급히 움직였지만, 막상 상황이 종료되자 톨루이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알타니와 젤메, 제테이는 애를 내팽개치고 누가 왕자의 목숨을 살리는 데 공을 세웠는지 논쟁에 들어갔다. 젤메와 제테이가 선빵을 날렸다.
“알타니, 우리가 마침 근처에서 소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어찌 됐겠소. 톨루이는 물론이고 당신도 위험해졌겠지. 머리끄댕이를 잡고 있었던 건 참 잘한 거지만, 결과적으로 상황은 남자인 우리가 정리한 거 아니오. 솔직히 여자인 그대가 이 미친놈을 붙잡고 있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었겠소? 테무진 형님의 아들을 살린 공은 우리 둘이 나눠가져야 할 것 같은데? 응?”
이정도 마초이즘에 가만있을 알타니가 아니었다. 힘이야 젤메와 제테이만 못했겠지만, 알타니는 여자다. 말싸움은 훨신 더 잘한다. 게다가 알타니는 성격도 드셌다.
“득달같이 달려나가 이놈이 톨루이를 해치지 못하게 막은 건 납니다. 내가 외치지 않았으면 당신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나 있었겠어요? 카르길 시라를 붙든 것도 나고, 아이를 해치지 못하게 칼을 떨어뜨린 것도 나에요. 아저씨들은 나중에 와서 상황정리나 한 거지. 안 그래요? <카르길 시라를 죽인 것>과 <톨루이를 살린 것>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하죠?"
보통 아이들은 어른들의 일에 무관심하지만, 이해력이 빠른 애들도 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톨루이가 알아챘다면, 이 어린애 참 황당했을 것이다. 자기는 죽다 살아났는데 어른 셋이서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있으니...
... 재밌는 건 이 논쟁에 아버지인 테무진도 끼었다는 거다. 하긴 심판 노릇을 하려면 그럴 수밖에. 그런데 테무진도 남자인지라, 알타니의 언변을 당해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테무진은 알타니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서 정리하자. 우리 톨루이를 살린 건 알타니다!”
테무진 가족은 알타니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몽골 제국 전체, 더 나아가 세계사 역시 알타니의 머리끄댕이 초식에 상상할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 훗날 톨루이의 아들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분할통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6
타타르 정벌이 수습되는 동안, 테무진에겐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옹 칸에게 또다시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테무진은 타타르를 정벌하는 계획과 일정을 동맹자인 옹 칸에 충실히 전달했다. 이 말은 타타르를 정벌하면서 얻은 전리품도 나누었다는 얘기다. 물론 테무진 혼자 싸웠기 때문에 1:1로 나누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타타르는 부유했다. 옹 칸은 상당한 재물을 얻었음에 틀림없다. 이 재물은 흔들리는 그의 자리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테무진이 타타르와 싸우고 있던 그때, 옹 칸은 이때다 싶게 초원 서쪽에서 재기를 벼르고 있던 메르키트를 치러 갔다. 테무진에겐 알리지도 않고 말이다.
옹 칸은 '이기는 전쟁'을 기획해야 했다. 나이만에게 당한 패배, 거지꼴 방랑 사건 등으로 위신과 지지율이 땅에 떨어졌다. 가치있는 군주임을 증명해야 했다. 약탈품이 부족으로 흘러들어오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었다. 옹 칸은 개중에 만만한 메르키트를 골랐다.
메르키트는 테무진과 옹 칸에게 공동의 적이었다. 메르키트를 상대하려면 당연히 같이 행동해야 했다. 헌데 그러려면 테무진이 옹 칸을 콘트롤하게 된다. 옹 칸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던 반면 테무진은 초원 중앙은 물론 타타르 정벌로 동쪽까지 장악했다. 옹 칸은 더이상 테무진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혼자 승리하고, 혼자 승리의 결실을 독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옹 칸은 약탈한 물자와 사람을 테무진과 나누지 않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옹 칸은 메르키트 반란군 수장이었던 톡토아 베키의 큰아들을 죽이고, 또다른 아들 코토카 베키와 칠라온 베키를 포로로 잡았다. 톡토아 베키의 부인과 딸들도 사로잡았다. 이 정도로 대승을 거뒀으니 막대한 물자를 새로 얻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테무진과 아무것도 나누지 않다니.
이 일은 옹 칸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렸다. 테무진은 테무진대로 잔뜩 열이 받았을 터. 하지만 테무진은 일단 참았다. 아직은 옹 칸이 필요했다. 동맹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지였다. '먼저 약속을 깨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걸로는 부족했다. 테무진은 끝까지 상대를 믿는 사람, 결코 사람들의 기대를배신할 것 같지 않은 우직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테무진은 자무카와 대비되는 자신의 선량한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메르키트족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몸을 추스른 옹 칸은 이제 복수를 갈망했다. 나이만에 한 방 먹여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칸으로 설 수 없었다. 테무진은 화를 꾹 참고 나이만 원정에 동참해주기로 결정했다. 다시 한 번 테무진-옹 칸 연합군이 결성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테무진이 나이만 원정을 결심한 건,옹 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더 주고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서가 다가 아니었다. 전쟁은 위험한 도박이다. 그런 이유로 전쟁을 벌이는 건 백성들에게 무책임한 짓이다.
나이만은 이미 테무진의 적이었다. 제1군주 타양 칸의 동생 부이룩 칸이 쿠이텐 전투에서 자무카의 편을 들었었다. 원한이 생긴 만큼 장차 충돌이 불가피하다. 실력과 자신감이 는 테무진은 때를 기다리지 않고 때를 만드는 편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알타이 산맥 기슭을 통치하고 있던 부이룩 칸으로 한정했다. 나이만은 통째로 상대하기엔 너무 사이즈가 큰 상대였다.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테무진은 타타르 생존자들을 흡수한 직후였다. 인구가 몇 배로 늘어난 반면 전사의 수는 그대로였다. 이대로라면 성인남성들의 허리가 휠 판이다. 전쟁이 가져다줄 물자가 급하게 필요했다.
타타르 원정을 마친 게 1202년 가을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해 겨울에 군대를 조직해 나이만으로 출정했다. 첫 번째 나이만 원정의 연대는 <몽골비사>와 <라시드 앗 딘>의 연대가 다르다. 여기서는 <몽골비사>를 기준으로 기술한다. <몽골비사>에서 기록된 순서를 따른다면, 테무진은 불어난 인구를 굶기지 않고 부양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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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이룩은 칸은 형 타양 칸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애초에 나이만을 분할통치하게 된 것도 둘 사이에 다툼이 있어서였다. 두 사람의 아버지는 '이난차 빌케' 칸. 이 양반의 후궁 중에 눈에띄게 아름답고 젊은 여인이 있었나보다. 이난차 빌케 칸이 죽자마자 두 형제는 예쁜 계모를 차지하기 위해 빛의 속도로 갈라졌다. 둘 다 벼르고 있었단 얘기다. 어릴 때부터 연정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피가 직접적으로 섞이지 않았으니, 아버지의 여자라 할 지라도 아들이 물려받는 건 초원에서 자연스러운 일. 그런데 후궁이 누구의 차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두 형제는 다시는 화해하지 못했다. 타양 칸은 초원의 평원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고, 부이룩 칸은 알타이 산맥 기슭을 다스리고 있었다. 국어시간에 '한국어는 우랄 알타이 어족' 할 때의 그 알타이다.
알타이 산의 전경
산기슭은 평원에 비해 인구가 모이기 힘든 지형이다. 초원만큼 풀과 가축이 풍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형이 다른 만큼 가축의 비율도 달라진다.부이룩 칸이 다스리는 지역은 아무래도 염소와 소, 야크의 비율이 높았을 것이다. 반면 타양 칸은 훨씬 많은 수의 양을 확보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타양 칸과 부이룩 칸은 느슨한 동맹관계와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타양 칸의 부와 권력이 더 컸긴 하지만, 그는 이난차 빌케 칸의 적장자였다. 나이만 전체가 응당 그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동생과 나라를 나눠가지고 있었다는 건, 그의 역량이 평균 이하였음을 보여준다(실제로 타양 칸은 문제가 많은 군주였는데, 이 얘기는 천천히 하자.).
겨울의 출정... 테무진과 옹 칸은 나이만 땅에 들어가 부이룩 칸의 군대가 있는 곳까지 가면서도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다. 타양 칸이 동생의 운명에 심드렁했다는 얘기다. 아마 타양 칸과 그의 어머니 구르베수, 황태자 '쿠출룩'은 부이룩 칸이 어찌되나 함 보자는 심산이었으리라.
테무진과 옹 칸은 알타이 산기슭의 '소콕 오손'에서 부이룩 칸의 군대와 조우했다. 소콕 오손은 '차가운 물'이라는 뜻이다.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현재로써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래 알타이 산기슭을 찍은 사진을 보면 왜 '차가운 물'이라는 지명이 붙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때는 겨울이었다.
부이룩 칸의 군대는 연합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옹 칸이 신의가 있건 없건, 그와 테무진은 한 두 번 손을 잡은 사이가 아니다. 부이룩 칸은 군사적 기량이 절정을 향해가던 테무진과 회전(會戰)으로 맞서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에게도 나름의 작전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홈그라운드 어드벤티지를 이용하는 게 상책이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침략군이 고생하는 계절이다. 여기에 거친 알타이 산의 지형을 활용해 게릴라전을 펼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적을 이기진 못해도, 지쳐서 돌아가게 할 수는 있다. 부이룩 칸은 군대를 알타이 산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테무진은 이미 속도전의 대가였다. 그는 드넓은 초원에서 상대와 아슬아슬 거리를 유지해가며 싸워왔다. 또 테무진의 부하들은 거친 초원에서 굶주려가며 악마처럼 싸워온 인간들이다. 물자가 풍부하고 문화수준이 높은 나이만 병사들보다 인내심이 강하고 집요했다.
사람뿐 아니라 말도 달랐다. 몽골 말, 즉 초원 중앙-동쪽의 말과 서쪽인 나이만의 말은 종자가 달랐다. 나이만 군대는 아랍쪽 피가 섞인 중앙아시아 종자의 말을 도입해 사용했다. 이 종류의 말은 근육이 잘 잡혀있고 덩치가 좋다. 그래서 단거리를 순간적으로 뛰는 데 유리하며, 무거운 무장을 한 사람도 버텨낼 근력이 있다.
반면 몽골 말은 체구가 작고 근육도 도드라지지 않아서 겉으론 볼품없지만, 인내력과 지구력에서는 지구상 어떤 말도 따라갈 수 없다. 몽골 말은 산소농도가 낮은 평균해발 1600m의 몽골초원에 적응하며 진화한 동물이다. 사람으로 치면 마라톤 선수에 해당한다. 경이로운 폐활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산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더 유리해진다.
테무진과 옹 칸의 군대는 주저하지 않고 부이룩 칸을 쫓아 알타이 산으로 들어갔다. 연합군이 가까운 거리를 집요하게 유지하며 추격하자 부이룩 칸의 알타이 산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부이룩 칸은 어쩔 수 없이 알타이 산을 넘어 다시 평지로 돌아왔다. 그의 군대는 산밑의 '우룽구' 강줄기를 따라 퇴각하기 시작했다. 부이룩 칸은 홈그라운드에서 이렇게까지 쫓길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에 보이는 우룽구 강의 현재 이름은 '울룽구르' 강이다. 오늘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흐르는 강이다.
연합군과 수비군 모두 '척후'를 운영하고 있었다. 척후란 본대에서 떨어져나와 적의 위치와 동태를 파악하며 본대와 통신하는 소규모 부대를 말한다. 쫓고 쫓기다 보니 연합군의 척후는 아군의 앞에서, 부이룬 칸 군의 척후는 아군의 뒤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 두 본대가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양측의 척후부대가 만나는 일이 벌어졌다.
부이룩 칸 군의 척후부대를 지휘하던 나이만 장군 '예티 토블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물러서지 않고 싸우면? 그러면 결판이 나기도 전에 테무진과 옹 칸의 본대에게 따라잡힐 수 있다. 그러면 척후부대원 모두가 절멸이다. 그렇다고 본대가 있는 곳으로 후퇴하자니 적의 길앞잡이 노릇만 하는 꼴이다.
예티 토블록은 본대도 살리고 척후부대도 살리기 위해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했다. 강줄기 길을 포기하고 말머리를 돌려 산으로 퇴각한 것이다. 척후부대 역할을 포기한 거지만, 뒤따라오는 적의 척후부대도 기능을 상실하긴 마찬가지다.
역시나 연합군의 척후부대는 예티 토블록을 추격해 들어왔다. 예티 토블록에게는 추격을 뿌리치고 난 후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예티 토블록은 더럽게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도망가는 와중에 말안장을 말에 고정하는 끈이 끊어진 것이다!
말에서 떨어진 예티 토블록은 그자리에서 붙들렸다. 연합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적은 자기네 척후의 통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 그런데 그 척후병들은 지금 산 속에서 포로가 되거나 도망간 상태다. 또한 포로들을 통해 적 본대의 위치를 더 자세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테무진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이동해 울룽구르 강의 하류, 강물이 모여 형성된 호수에서 마침내 부이룩 칸을 따라잡았다.
연합군은 도망에 지친 적군을 궤멸시켰다. 부이룩 칸도 전사했다. 부이룩 칸이 지배하던 나이만의 반, 실제로는 1/3~1/4 정도가 테무진과 옹 칸의 수중에 떨어졌다.
나이만은 초원에서 가장 부유한 세력이었다. '궁정'과 '조정'을 갖고 있었다. 행정체계가 있었단 얘기다. 위구르인 학자를 초빙해 재상을 맡길 정도였으니 여타 부족과는 수준이 달랐다. 인구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거기다 실크로드 무역로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교역을 통해 쌓은 부는 중국과 아라비아에서 보기엔 보잘것 없었을지 몰라도 테무진의 부하들에겐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것이었다.
테무진 울루스와 커레이트족의 기준에서는 엄청난 이윤이 발생한 셈이다. 연합군은 가축은 물론 옮길 수 있는 건 모조리 약탈했을 것이다. 이제 신나게 집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나이만 조정은 연합군이 몸성히 돌아가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부이룩 칸이 그토록 허무하게 당할 줄도 몰랐겠거니와, 이제 테무진-옹 칸 연합군은 부이룩 칸의 적이 아니라 나이만 전체의 적이었다. 나이만에서 쓸어간 건 나이만 땅에 내려놓고 가야 했다. 이건 국가적인 문제였다.
부이룩 칸이 전사하자, 나이만의 진짜 에이스 '쿡세우 사브락' 장군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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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노장 쿡세우 사브락은 <게섰거라 도둥놈들아아~>하며 연합군의 뒤를 쫓는 평범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추격하다 놓치거나, 기껐해야 적이 흘린 약간의 약탈품만 줍고 돌아왔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테무진-옹 칸 연합군은 싸움에서 지더라도 걍 고향으로 도망가면 그만이다.
쿡세우 사브락은 대담하게도 대군을 이끌고 '전격 행군'을 시도했다. 연합군은 전투가 끝난 마당에 급하게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다 약탈품까지 딸려 있으니 속도가 느린 건 당연지사. 쿡세우 사브락은 나이만 국경을 넘어 알아채지 못하게 우회해서 적을 앞질러갔다. 그는 적의 홈그라운드인 몽골초원 중부에 다다랐다.
쿡세우 사브락은 '바이다락' 강(현재의 바이드락 강)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서 전열을 갖추고 적을 기다렸다. 연합군이 나이만의 재산을 가지고 내빼지 못하도록 강줄기를 바리케이트 삼은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쿡세우 사브락을 넘어야 한다.
<적당한 장소를 먼저 골라 기다리다가 적을 맞아 충분히 생각하고 대비할 기회를 주지 않고 싸운다.> 회전(會戰)에서 승리하는 기본이다. 쿡세우 사브락, 역시 초원 서쪽의 에이스다운 기동이었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테무진과 옹 칸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적의 대군과 맞닥뜨리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옹 칸이 많이 놀란 것 같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우지 않고 별 수 있는가? 테무진과 옹 칸은 그자리에서 나이만 원정전 2차전을 결의했다. 그러나 중부 연합군과 나이만군이 만났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후였다. 적당한 때와 장소를 고르는 회전의 특성상, 이럴 때는 날이 밝을 때까지 휴전하는 게 일반적이다. 연합군과 쿡세우 사브락도, 날이 밝고 싸우기로 하고 일단 잠자리를 폈다.
밤. 옹 칸은 번뇌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이미 막대한 약탈품과 가축을 챙겼다. 이걸로도 성공이다. 이미 판돈을 솔찬히 긁어모았다. 강적인 쿡세우 사브락과의 싸움에 베팅할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 싸우지 않고 판돈을 챙겨 커레이트로 돌아간다면 흔들리는 왕좌를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을텐데...
하지만 어떻게 도망간단 말인가? 물론 테무진을 배신하면 된다. 테무진을 바리케이트삼아 쿡세우 사브락에게 던져주고, 나는 싹 빠져나가는 거다. 하지만 테무진을 또다시 배신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양심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테무진이 다시는 날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쿡세우 사브락은 역시 무섭다.
옹 칸은 테무진에게 용서받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이기적인 습관은 양심을 이긴다. 옹 칸은 이미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판단력을 잃어가고 이었다. 그는 생애 가장 비겁한 결정을 내린다. 테무진을 버리고 혼자 튀기로 결심한 것이다.
동틀녘이 되자 테무진과 그의 부하들이 기상했다. 결전의 날이다. 그런데 옹 칸 진지가 너무 조용하다. 분명히 진지 가득 불이 피워져 있는데... 설마 아직도 다들 자고 있는 건가? 아니었다. 옹 칸과 그의 군대는 야영지에 테무진의 눈을 속이기 위해 야영지에 불을 피워놓은 채, 밤사이 소리없이 몰래 도망간 것이다!
테무진은 충격과 분노에 몸을 떨었다.
"이것들이 우리를 '툴레시' 삼고 있다!"
'툴레시'의 뜻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제사용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신성하지만, 의식이 끝나고 난 후에는 먹어치우거나 내다버리는 1회용 음식 말이다. 땔감이라는 뜻도 있다. 그냥 땔감이 아니라 음식을 하면서 나오는 동물의 지방을 말한다. 불에 던져 불쏘시게로 쓰는 허드렛기름이라 보면 된다.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 바리케이트. 이게 테무진이 말한 '툴레시'의 뜻이었다. 테무진의 굴욕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이만은 인구가 많다. 쿡세우 사브락이 이끄는 군대도 어마어마한 수였을 것이다. 옹 칸이 떨어져나가 전력이 반토막이 난 지금, 이대로 쿡세우 사브락과 결판을 낼 수는 없었다. 잘못하면 역관광을 당하는 수가 있다.
또한, 양측이 싸우는 것이야말로 옹 칸이 가장 바라는 바였다. 그의 안전을 위해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건 말이 안 된다. 테무진은 굴욕을 삼키고 군대를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전투중이 아니었기 때문에 퇴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도망가는 기분을 없애진 못했을 것이다.
쿡세우 사브락도 이에 뒤질세라 군대를 이동시켰다. 한편, 메르키트의 군대가 커레이트족에 억류되어 고통을 겪고 있는 여왕과 왕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옹 칸의 군대를 몰래 추격하고 있었다. 구원군의 지휘자는 톡토아 베키였다(여왕과 왕자는 그의 처자식이다.). 그리고...
글타. 이제 이 인물이 다시 등장할 때가 됐다. 쿠이텐 전투에서 패배한 후 세력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추종집단을 규합한 자무카. 그는 이 상황을 모두 관찰하고 있었다. 자무카는 홀연히 나타나 도망중인 옹 칸의 군대를 깜짝 방문했다.
위험에 빠진 테무진, 부활을 꿈꾸는 천재 자무카, 배신자 옹 칸, 조국의 백성과 재산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적지에 뛰어든 쿡세우 사브락, 그리고 상처입은 늙은 전사 톡토아 베키...
배신과 복수로 점철된 1202년(혹은 1203년 초) 몽골초원의 겨울. 과연 이들에게 봄은 올 것인가? 1203년은 이들에게 어떤 해가 될 것인가?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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