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이어령의 다시 읽는 한국시_14

醉月 2009. 7. 25. 08:05

金光均 「外人村」

   하이얀 暮色 속에 피어 있는
   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花園地의 벤취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묘지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한 하늘에 걸려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의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조선중앙일보」(1935년 8월 6일)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  시인 김광균의 이름이나  외인촌 이라는 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어쩌면 이 시구절만은 외우고
있을지 모른다. 귀로 듣는 종소리를 눈으로 보는 분수로 나타낸 이 비유는 지금 읽어도 참신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청각에서 시각으로 시를 혁명하려던 30년대의 모더니스트들이 종소리에 파란 색칠을 해놓은 이 대담한 비유를 가만히 놔두었을
리 없다. 모더니즘의 선교자였던 김기림은 말할것도 없고,

시의 繪畵性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시론의 로고로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시구는 시각 이미지나 共感覺의 샘플로 인용되었을 뿐 시 전체의 구조를 통해 본격적으로 검증된 적은 거의 없었다. 공룡의 뼈나 발자귀는 그 생체의 구조와 관련되었을 때만이 의미를 갖는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는  외인촌 의 그 시 전체와 유기적인 연관을 지닐 때 비로소 제 생명의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선  분수 라는 말부터 보자.
  분수가 내포하고 있는 일차적인 意味素는  물 (水)이다. 그런데 외인촌에는 이와 관련된 바다, 시냇물, 물방울과 같은 물의 물질적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마차가 사라지는 것까지도  그림 속으로…잠겨 간다 라고 표현한다.

잠긴다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물체가 물속에 침몰하는 것을 뜻한다.


  붉게 타는 노을 역시 불이 아니라 물과 관련되어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이다. 사라지는것을  잠긴다 고 하고,

타오르는 것을  젖는다 고 한 것은 종소리를 분수(물)로 비유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외인촌의 풍경 전체와 그 공기는 수족관 처럼 투명하고 차갑고 조용하게 보인다.
  그러나 김광균의 물의 물질성은 무거움을 상실한 가벼운 물, 상승하는 물, 그리고 수직의 공간성을 지닌 물이다.

그것이  분수 의  분(噴) 으로 그 두번째의 의미소를 이루고 있는  솟구치다 (噴)이다. 

외인촌 에는  …전신주 위엔   …벤치 위엔   …어두운 수풀 위엔   …언덕 위엔   …지붕 위엔  등  위 라는 장소를 나타내
는 전치사만 해도 무려 다섯개나 등장한다.

그리고 직접 수직성을 나타내는 물질로는  산마루  전신주  갈대밭  외인묘지 (비석들), 그리고 고탑(古塔)과 성교당(聖敎堂)을 들 수 있다. 마을 전체가  산협촌(山峽村)으로 수직적 공간이다.

 

그러므로  날카로운 고탑처럼 언덕 위에 솟아있는… 의 구절은 분수의 수직적 상방적 이미지에 선행하는 것으로, 

날카로운   솟아있는 의 수식어 등이 모두 그 높이와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분수 의 세번째 속성은  도시적   서구적  근대문명의 의미소이다. 폭포나 냇물이  자연의 물 이라고 한다면,

분수는  인공(人工)의 물   도시의 물 이다. 그래서 외인촌의  마차 는 달구지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처럼  파란 역등 을 달고 있으며, 

산마룻길 에는 소나무가 아니라  전신주 가, 그리고 꽃은 노변의 야생화가 아니라  화원지 와 벤치 위의 흩어진  꽃다발 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외인촌의 그 성교당 종소리는 자연히 산사(山寺)의 범종 소리와 그 이미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낙산사나 통도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누가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분수의 물질적, 공간적, 문명적 이미지들이야말로

우리의 전통적인 시골마을과 색다른 외인촌의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중심축인 것이다.
  그러나 솟구치는 분수의 이미지는  흩어지는 이라는 용언에 의해서 다시 역동적 이미지의 복합성을 띠게된다.

울리는 종소리는 솟구쳐 오르는 분수요, 여운 속에서 사라지는 종소리는 흩어지는 분수의 물방울들이다.
 솟구치다 (噴)와  흩어지다 (散)의 모순을 지닌 분수의 역동적 이미지는 외인촌 전체의 구조에 간여한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에 앞서 우리는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 가벼운 웃음과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라는 구절을 읽을 수가 있다. 소녀들의  웃음소리 가 시각화하여 꽃다발과 같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소녀들이 한낮에 남기고 간 그 웃음소리는 종소리의 사라진 여운보다도 더 들을 수 없는부재(不在)의 음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흩어지다 의 속성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흩어진 꽃다발의 꽃잎은 흩어지는 분수의 물방울과 같고, 시들어가는 꽃다발은 사라져가는 종소리의 여운과 같다.

그리고  벤치 위에는 은  성교당의 지붕 위엔 과 대구를 이룬다. 그렇다면 벤치는 바로 옆으로 누운성교당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수직의 높이를 잃고 수평화할수록  흩어짐 의 역동적 이미지는 강화된다.


  분수의 마지막 의미소는  푸른 종소리 의 그 푸른 빛깔이다. 외인촌의 시적 공간은  하이얀 모색으로… 로시작하여  파…란 역등 ,

그리고  새빨간 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푸른 종소리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그푸른 종소리의  푸른 빛 은 분수(물)의 팔레트에서 선택된 물감의 하나일 뿐 외인촌은 먹으로 그려진 동양산수화 같은 모노크롬과 강력한 대조를 이루는 다채색의 회화공간인 것이다. (그 자신이 외인촌의 풍경을  그림 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가 연출해 내는  외인촌 의 그 시적 공간은 한국인들이 전통 공간 속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서구문명 즉 모더니티라는 2차원의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의 그  외인촌 은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회색 범종소리 의 우리들  내부의 마을 (內人村)에 의해차이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인촌은 파리나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 바로 한국의 시골속으로 들어와 있는 서양인들의 마을이므로  外-內 , 

성교당/산사 의 그 공간적 대립항 역시 서로 오버랩 되어질 수밖에 없다.

제목은 외인촌 인데 본문 속에서는 그것이  산협촌 이라고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리키면 은 바로 뒤 나오는 성교당의 그 종소리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대단히 중요한 시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공백한 하늘에 걸려있는 촌락의 시계 에 대해서는 전연 언급이 없었다. 촌락의 시계와 야윈 손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리키는 열시가 밤 열신지 열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조각 달(야윈 손)의 위치인지조차 검증되지 않은 채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만을 공염불처럼 외웠다. 우리 촌락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과 외인촌의 종소리가알리는 그 시간의 시차(時差)….

그 시차 적응의 긴장 속에 김광균의 진정한 시적 공간이 숨어있는 것이다.
   분수처럼… 의 그 구절이 모더니즘 이론의 표본이 된 것처럼 이제  외인촌  한 편의 시는

왜 우리가 지금 다시 한국시를 읽어야 하는 지를 밝혀주는 좋은 본보기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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