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우리밀할매손칼국시 김월자씨

醉月 2009. 6. 17. 08:58
"농약 덩어리 칼국수, 손님께 드릴 순 없죠"  우리밀할매손칼국시 김월자씨

대구광역시 수성구에서 경상북도 청도군으로 넘어가는 팔조령 아래의 마을 우록동.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의 좌선봉장으로 출병하였지만 곧 조선에 귀화하여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에서 많은 공을 세웠던 김충선을 기리는 녹동서원이 있는 마을이다. 12일 찾은 '우리밀할매손칼국시' 식당은 이 마을 입구에 있다. 

 

대구에서 팔조령 쪽으로 달려가면 파동 너머 달성군 가창면 소재지, 대한중석고등학교와 중석아파트를 지나 이윽고 우록동에 닿는다. 우록동 인근에 가까워지면 이정표가 서 있고, 직진하면 팔조령을 거쳐 청도로, 오른쪽으로 난 좁은 옛 도로로 들어서면 '우록 먹거리촌'으로 가게 된다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난 좁은 옛 도로로 100미터쯤 들어가면 구관모 식초연구소가 있다. 다시 100미터 가량 더 들어가면 '우리밀할매손칼국시' 식당이 나타난다. "국수는 수입 밀가루로 만든 것이고, 국시는 우리밀로 만든 것"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이 식당의 간판에 강조하여 쓰인 '우리밀'이라는 표시를 저절로 믿게 된다. 으리으리한 향토방 형태나 기와집이었으면 오히려 상업성이 두드러져 신뢰에 금이 갔겠지만, 우리밀할매손칼국시 식당은 외형상으로는 그저 그런 시골 식당의 모습일 뿐이어서 도리어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

 

직접 밀농사 지어 우리밀 칼국수 팔아요

 

  
식당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은 '우리밀할매손칼국시'로 되어 있지만, 건물간판에는 '가창 칼국수'라 적혀 있다. 전화번호는 간판에 나오는 것과는 달라 053-767-9630으로 걸어야 위치 확인 등을 할 수 있다.
ⓒ 정만진

'우리밀'을 쓴다는 식당은,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와 아무 관계없이,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우리밀식당들은 우리나라 밀가루를 구입하여 면을 만들거나, 아니면 우리밀로 제조된 완제품 국수를 끓여서 손님에게 내놓는다. 그러나 이곳 가창의 우리밀할매손칼국시는 밀을 직접 재배하고, 그 밀로 가루를 빻고, 그리고 면도 직접 만들고, 그리하여 마침내 국수를 끓인다는 점에서 여느 우리밀식당들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자랑한다.

 

"가창면에서 밀을 재배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밀을 재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밀을 제분하던 정미소도 문을 닫았고, 저는 멀리 성주군 가천면까지 가서 밀을 가루냅니다. 밀은 통밀째로 공기가 잘 통하고 서늘한 곳에 두면 2년도 보관할 수 있지만 가루 상태로는 불과 2주만 지나도 벌레가 버글버글하게 생겨서 못 먹게 됩니다. 그래서 영하 2도, 3도가 유지되는 저온에 보관해야 합니다. 그래서 집에 저온 창고도 지었습니다."

 

식당 주인 김월자(44)씨는 눈을 반짝이며 우리밀에 대해 말한다.

 

  
▲ 보리와 밀을 든 채 우리밀할매손칼국시 식당 앞에 선 주인 김월자씨 (보리와 밀을 구분할 수 있는지, 사진을 보며 맞춰보세요.) 식당 안에 들어가면 벽에는 보리와 밀이 걸려 있다.
ⓒ 정만진

필자는 우리밀과 수입밀의 차이를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는 체험을 한 적이 있다. 1984년 수매 중단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어버린 우리밀을 살리기 위해 16만여 국민들이 36억원의 출자금을 모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를 발족시켰던 1991년에서 3년 가량 뒤(지금부터 약 15년 전), 그 운동에 열성인 한 선배의 말을 듣고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아파트 말고 일반 주택이면 쥐약 놓을 필요 없어. 수입밀가루를 사서 습기 찬 곳, 쥐가 다니는 통로에 여기저기 놔두면 며칠 내로 그것을 먹은 쥐들이 다 죽어."

 

선배의 말대로 수입밀가루를 사서 물에 갠 다음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여기저기 뿌려놓았는데, 정말 사흘이 지나자 쥐들의 시체가 서산서해(鼠山鼠海)를 이루었던 것이다.

 

"수입밀가루는 봉지를 뜯어서 식탁 위에 얹어 놓으면 몇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지만 우리밀은 이틀이나 사흘만 지나면 굼벵이가 엄청나게 생겨서 못 먹게 돼. 그만큼 수입밀가루에는 농약과 중금속이 많이 들어 있다는 얘기지. 전두환 이후 우리밀 생산이 끊겼는데, 수입밀 많이 먹었으니 우리나라 젊은 국민들 몸속엔 농약과 중금속이 켜켜이 쌓였을 게야. 사람은 생쥐완 달라서 체구가 크니 수입밀가루를 계속 먹는다고 해서 당장 죽지는 않지만 태아가 금방 생겼을 땐 그 아기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지. 장애를 지닌 신생아가 많아진 데에는 수입밀가루가 단단히 한몫 하였다고!"

 

선배의 말대로, 우리밀가루를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개봉한 채 그대로 식탁 위에 얹어놓았더니 과연 그렇게 처참하게 변질되었다.   

 

다시 김월자씨의 말을 듣는다.

 

"밀은 벼를 추수한 직후에 파종을 해서 이듬해 6월 중순에 수확을 합니다. 본래 밀은 보리와 같아서 겨울을 나는 작물인데다 밭에서 기르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도 병충해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농약을 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에 수출을 하게 되면 문제가 다릅니다. 값도 별로 높지 않은 밀을 비행기로 실어나를 수는 없으니 배에다 선적하게 되고, 그러면 적도를 지나게 되는데, 갑판 위에 재어놓은 밀은 그 과정에서 다 썩어버립니다. 배에 실을 때 농약 등을 퍼부어 썩지 않도록 예방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머니와 저는 그런 수입밀로 국수를 끓여 손님에게 내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91년부터 어머니와 저는 직접 밀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순수 우리밀로 국수, 누룩, 동동주, 부침개 등을 직접 만들어 식당에 내고 있습니다."

 

농약 가득한 수입밀가루 대신 안전한 우리밀을

 

  
볕을 쬐고 있는 밀알들
ⓒ 정만진

2007년 4월 18일 MBC는 '미국산 수입밀, 농약 다량 검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었다.

 

"시중 밀가루 제품에 주 원료가 되는 미국산 수입 밀에서 인체에 유해한 농약 성분이 허용 기준치보다 무려 130배가 넘게 검출되었습니다. 미국산 수입산 밀에서 검출된 치오파메이트메칠에 양은 6.627ppm 으로 허용 기준치 0.05ppm에 무려 132배에 이르는 것입니다. 치오파메이트메칠은 주로 곡물을 수확한 후에 저장 보관 운반도중 변질 방지하기 위해서 많이 쓰는 농약입니다. 치오파네이트미칠은 발암성 농약으로 체내에 축적될 경우 급성 피부염과 신장 장애등의 증세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미국과 호주에서 주로 수입되는 밀은 지난해 부산항을 통해서만도 52만톤이나 들어왔으며 국내에서 생산되는 밀가루는 거의 대부분 수입 밀을 원료로 하고 있어 국민 건강에 적신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김씨의 밀밭은 식당에서 약 150미터 떨어진 인근에 있었다. 대략 세 마지기(600평)의 면적에서 40㎏들이 50포대 정도 소출이 나는 면적이다. 김씨는 밀밭 면적이 좁아 청도군 유등 초등학교 인근의 농부에게 밀을 계약 재배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 밭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 여기는 밀이 밭에 있어야지"하고 말했는데, 그것은 필자가 밀밭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한 때문이었다. 이미 김씨네 밀밭은 수확이 끝나 식당 마당에서 볕을 쬐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물기를 말린 다음 제분소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밀을 말리고 있는 배분도씨(김월자씨의 어머니)
ⓒ 정만진

밀밭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된 것은 조금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 대신 밀을 마당에 펼쳐서 말리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요행을 얻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 했던가. 밀을 말리는 일은 김씨의 어머니 배분도씨(74)가 하고 있었다. 딸에게 밀 재배법으로부터 음식 요리법까지 가르쳐준 가업의 창시자인 배씨는 고령에도 아랑곳없이 땀흘려 밀을 말리고 있었다.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내가 귀가 어두워서 작은 소리로 하는 말은 잘 못 알아들어" 하면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였다.

 

식당에서 15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밀밭은 검게 변해 있었다.

 

"추수를 하고 나서 이렇게 태우지 않으면 곧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시비(밀짚)가 둥둥 뜨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렇게 둥둥 물위에 뜬 밀짚들이 어린 모를 억눌러 못 자라게 합니다. 그리고 태우면 거름도 되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검게 변한 밀밭을 기자가 의아스런 눈치로 바라보자 김씨가 말했다.

 

"밀은 꼭꼭 씹으면 껌이 된다"

 

  
수확 뒤의 밀밭 풍경
ⓒ 정만진

식당 안에서 구수한 우리밀 국수를 먹고 있는데,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건네왔다.

 

"밀은 꼭꼭 씹으면 껌이 된다오."

 

처음 듣는 말이다.

 

"정말입니까?"

"정말이지 않고. 한번 씹어봐."

 

하지만 국수를 먹다가 말고 마당으로 가서 말려지고 있는 통밀을 주워 씹기는 곤란하다. 그 대신 김씨가 밀기울로 직접 빚어 만든 농주(동동주) 한 잔을 기울인다. 밀기울에 효모를 섞어 그늘에 두 달 정도 숙성시켜 만든 천연 누룩으로 주조한 전통 동동주다. 시중에서 흔히 사먹은 막걸리나 소주 탄 동동주와는 차원이 다른 향과 혀끝 맛을 보여준다.

 

어느덧 '식량 안보'라는 말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예전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우리밀 제품을 먹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밀을 살리자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획득한 것이다. 그렇지만 농민도 아니면서 직접 우리밀을 재배할 수는 없겠고, 도시 소비자라면 우리밀 제품을 많이 구매하면 될 일이다. 우리밀 제품을 먹으면 나 개인에게도 좋고, 나라와 민족에도 좋은 일이니 망설이거나 마다할 까닭이 없다. 우리밀 살리기 운동, 이제는 모두가 동참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