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근 군수가 말하는 대한민국 대표 청정골 경남 산청
“KTX 타고 산청와서 케이블카 타고 지리산 오르게 만들겠다”
● 공동브랜드 ‘산 엔 청’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 수상
● 1인당 예산 1000만원 넘는 ‘잘 먹고 잘 사는’ 지자체로 변신 중
● 동의보감의 본고장, 한방약초축제에 몰려든 관광객 120만명
황매산(黃梅山·1108m)에 올랐다. 지리산 천왕봉을 등지고 반대편으로 한참을 찾아갔다. 해발 800m까지 차로 달렸고 차에서 내린 뒤론 구불구불 철쭉꽃밭을 따라 정상까지 천천히 걸었다.
5월의 황매산에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철쭉과 바람. 황매산 정상에서 어슴프레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바람은 ‘산청’을 굽이쳐 와 철쭉을 때렸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뺨을 스쳐 다시 철쭉 속으로 헤집고 들어갔다. 바람이 일 때마다 철쭉 숲에선 휙휙~ 하는 소리가 났다. 바람을 먹고 사는 철쭉의 향기가 황매산을 가득 메웠다.
흐드러진 철쭉 물결 속에 오롯이 둥지를 튼 영화주제공원에는 영화 ‘단적비연수’, 드라마 ‘태왕사신기’‘주몽’ 등이 만들어진 세트장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세트장 내 나무 풍차들이 삐걱삐걱 여유로운 소리를 내 운치를 더했다.
지리산과 황매산은 경남 산청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이다. 두 산 사이에 여울진 산마루들이 만들어낸 굽이굽이 속에 산청의 1개 읍과 10개 면이 들어앉아 있다. 3만5000명의 산청군민은 그렇게 지리산을 등지고 황매산을 보며 살아간다. 이재근(56) 산청군수는 이런 황매산을 ‘친환경의 메카’라 불렀다.
‘산청’의 브랜드는 ‘산 엔 청’이다. ‘산에는 푸르름이 있다’는 뜻. 산청에서 생산되는 모든 친환경 제품엔 ‘산 엔 청’ 마크가 찍혀 나온다. ‘산 엔 청’에는 ‘지리산 청정골’이란 부제도 붙어 있다. 산청의 공동브랜드 ‘산 엔 청’은 2008년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을 받았다.
산청에는 예로부터 지리산을 비롯한 청정한 자연환경 속에 효험이 뛰어난 수많은 종의 약초들이 자생해왔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의로 꼽히는 신의(神醫) 류의태 선생과 동의보감을 저술한 의성 허준 선생, 조선후기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쳤던 초삼, 초객 형제 등 수많은 명의가 이곳에서 나고 자라 의술을 폈다. ‘한방과 약초의 본고장’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시대 최고 고승으로 불린 성철 스님, 우리나라 국악을 집대성한 기산 박헌봉 선생도 이 땅에서 태어났다. 고려 때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 조선 의병장들의 스승인 남명 조식 선생도 모두 산청 사람이다. 이를 두고 누구는 지리산의 기운이 만든 인물들이라 했고, 누구는 황매산의 기운이라고 했다.
하늘이 내린 청정골
산청은 매년 5월이 되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지난 몇 년간 그랬고 올해엔 더 그랬다. 산청이 자랑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종 축제가 줄을 이으며 오가는 사람들의 넋을 뺀다. 금서면 경호강변과 전통한방휴양관광지에서 열리는 산청 한방약초축제, 전국 최고의 철쭉군락지인 황매산에서 열리는 황매산 풍년제·철쭉 큰잔치, 산청군 생초면 평촌 들녘에서 펼쳐지는 산청 생초함박꽃축제 등이 모두 5월, 이 산청 땅에서 열린다.
그중 제일로 꼽히는 축제는 역시 올해로 9회째를 맞은 한방약초축제다. 지난해엔 전국에서 120만명이나 이 축제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축제기간이 3일이나 길어 찾는 이가 더 많았다. 한방약초축제가 한창이던 5월9일 오후, 군수실에서 만난 이재근 군수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한방약초축제 자랑부터 늘어놓았다.
“이미 대한민국 최고 최대 한방약초 축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국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의 수도 수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한방관련 전문가, 기업들이 주목하는 행사로 발전했다는 데 진정한 의의가 있습니다. 지리산 청정골에서 자생하는 명약들, 전통 있는 한방 의술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행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방약초축제 기간 중 열리는 기산 국악제전도 볼만한 구경거리다. 올해로 3년째를 맞는 이 행사는 국악을 민족예술로 부흥시키고 체계화하는 데 기여한 기산 박헌봉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시작됐다. 국악문화의 발전을 위해 발족한 기산 선생 국악문화현창사업회와 산청군이 주최하고 기산 선생이 직접 설립해 초대교장을 지낸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총동문회(위원장 최종실)가 행사를 주관한다.
산청군 단성면이 고향인 기산 선생은 1945년 국립국악원 창설을 주도했고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술고)를 설립, 초대 교장을 지냈다. 국악의 경전으로 불리는 ‘창악대강’을 완성 출판하여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는 등 평생을 국악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박범훈 중앙대 총장, 사물놀이로 유명한 김덕수 선생, 타악연구소 최종실 교수, 마당놀이로 유명한 중앙대 김성녀 교수, 국악인 오정해 김무길 등이 모두 기산 선생의 제자들이다.
특히 올해 행사를 앞두고 이들 제자들이 ‘산청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스승의 고향에 헌정해 화제가 됐다. 박 총장이 작곡을 맡고 동국대 홍윤식 명예교수가 작사를, 김성녀 교수가 노래를 불렀다. 이 군수는 “기산 선생이 우리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을 몇 년 전 우연히 알게 됐다. 그분이 국악에 쏟은 열정과 업적이 그동안 묻혀 있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산청군에서 기산 선생을 기리는 행사를 시작한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의 국악인들이 모두 감사해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산청 아리랑’
5월이 끝난다고 산청에 볼거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축제의 고장답게 이런저런 행사, 축제가 여름을 넘어 가을까지 이어진다. 먼저 우리나라 대표 선비로 불리는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기 위해 개최되는 남명선비문화축제가 8월 한 달 산청군 전역을 달군다. 문화관광부가 대한민국 대표 지역민속축제로 선정한 이 축제 기간에는 조선시대 실천 유학의 대가인 조식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기념식 외에도 선비문화 관련 서사극 공연, 의병 출정식, 학술대회, 선비문화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려 찾는 이들의 흥을 더한다. 성철 스님을 기리는 불교문화축제는 10월에 준비된다.
“우리 지역이 낳은 인물들의 업적과 사상을 기리고 후세에 그 뜻을 널리 알리는 의미있는 행사들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행사가 우리 고장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산청을 전국 어디 못지않은 관광특구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산청의 볼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장 우리나라 국새가 만들어진 국새전각전이 바로 이곳 산청에 있다. 국새는 국사(國事)에 사용되는 관인(官印)으로 나라의 중요 문서에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일종의 도장이다. 국새전각전이 위치한 금서면 특리는 천왕봉에서 시작된 능선이 동북단 방향으로 내려오다 이곳에서 끝나는, 우리나라의 등뼈 같은 곳으로 사시사철 강한 기운이 휘감아 도는 신비한 지역이다. 국새전각전에는 140t에 이르는 거북바위, 바위를 자른 절단면에 봉황이 나타난 돌거울 등이 전시되어 있어 관광객의 눈길을 붙잡는다. 매년 대입 수능시험 때가 되면 전국에서 몰려온 수험생과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산청지역 문화관광해설사인 민향식씨는 “실제로 이곳에서 기를 받아 승진하거나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 누구라도 이곳에 서면 달라진 기(氣)를 느낄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라고 말했다.
군 예산, 4년 만에 두 배
이렇듯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은 곳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산청’은 그렇고 그런 시골 촌구석에 불과했다. ‘지리산 산자락에 있는 산 좋고 공기 좋은 마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땅은 넓고 할 일은 없었다. 이 군수의 얘기다.
“전국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존재의 위기가 닥친 상황이랄까요? 10만명이 넘던 인구가 3만5000명으로 줄었어요. 공장도 없고 변변한 산업도 하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대로라면 그냥 앉아서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서는 도저히 입에 풀칠할 수도 없었습니다.”
‘잠바군수’로 불리는 이 군수가 2006년 부임한 이후 산청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의상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그랬다. 2005년만 해도 산청군의 예산 규모는 경남지역 10개 군 중 딱 10위였다. 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순위를 다시 매겨봐도 9등을 넘지 못했다. 그만큼 일이 없고 돈이 없었다. 그런 곳에 군수로 부임한 이 군수는 취임식에서 다소 무리한 공언(公言)을 하고 나섰다.
“제 4년 임기 안에 군 예산을 지금의 2배로 만들겠습니다.”
다들 웃었다. 1800억원가량에 불과한 산청군 1년 예산을 4년 만에 두 배로 만들겠다는 소리에 군청 공무원들은 비웃고 쑥덕거렸다. 그런데 이후 이 군수의 말은 거짓말처럼 착착 실행됐다. 취임 6개월 만에 예산 규모는 쑥쑥 늘어 순식간에 10개 군 중 6등으로 올라섰다. 1년이 더 지났을 때는 2등이 됐다. 2008년의 경우 추경예산을 포함하면 산청군의 1년 예산은 3400억원에 달했다. 마침내 2009년에는 약속했던 2배 예산, 3600억원을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군민 1인당 예산은 어느덧 1000만원이 넘어가고 있다.
이쯤 되자 군민들 사이에선 “4명 사는 가구당 예산이 4000만원이면 이제는 일 안하고 살아도 되겠네” 하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처음에 산청에 왔는데 뭘 해보자는 생각들이 없었어요. 개발해서 팔아먹을 것들이 없다는 패배적인 얘기뿐이었죠. 뭐 사실 틀린 말도 아닙니다. 산청에는 현대조선도 없고, 63빌딩도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달라지죠. 산청엔 서울에 없는 지리산이 있고 허준이 있잖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잘 먹고 잘살 자신이 있었습니다.”
골목대장 아닌 진짜 힘쓰는 군수
이 군수가 취임 당시부터 생각한 ‘산청군 100년 먹을거리 테마’는 바로 ‘친환경’‘청정’‘약초’‘관광’ 이었다. 산청에 없는 것을 찾아다니지 않고 산청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개발, 이것이 이 군수가 생각한 ‘리모델링 산청’의 참모습이었다.
산청군에서 ‘친환경’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다. 친환경이란 개념이 없을 때부터 산청군은 ‘어쩔 수 없이’ 친환경을 해야 했다. 수입사료, 항생제 같은 것은 산청군에선 구하기도 어려웠다. 사들일 돈도 없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생산한 쌀이며 그 쌀을 만들어낸 볏짚을 먹고 자란 한우는 어쩔 수 없이 ‘청정’했다. 지리산 산자락 곳곳에 널려 있는 약초 위에서 흑돼지들은 구르며 놀았고 살을 찌웠다. 산청에서 기른 ‘메뚜기쌀’은 현재 대통령 밥상에 진상되고 있다.
이 군수는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지역에서 벌어지는 경조사에 얼굴을 내밀지 않고 일에만 매진했다. 군민들에게 욕을 무진장 먹어가면서도 군청 앞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다. 주례 한 번 서지 않는 이상한 군수였다.
“이유요? 다른 거 없습니다. 난 군수 하러 온 사람입니다. 돈 벌어서 잘사는 고향 만들려고 왔어요. 경조사나 챙기고 놀러 다니는 건 내 일이 아닙니다. 난 정치하던 사람입니다. 술 먹고 노는 거 얼마든지 잘할 수 있습니다.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건 군수가 할 일이 아니죠.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처음엔 서운해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취임식에서 이미 선언했거든요. 대신 먹고사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고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한방약초축제 기간 중에는 이렇게 점퍼 대신 한복을 입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산청이 고향이지만 이 군수가 다시 산청을 찾은 건 43년 만이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수십년간 일하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고향으로 내려왔다. 민자당 농수산 부국장을 시작으로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을 거치면서 연수국장, 조직국장을 두루 거친 그는 살아있는 정치역사로 불린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국회의원, 당직자들 대부분이 선후배일 뿐 아니라 당직을 거친 상당수 정치인에게 그는 ‘선생님’이다. 이 군수 본인도 웃으며 “다른 누구보다 아쉬운 소리 할 데가 많은 게 내가 가진 힘이 아닌가 싶다”고 말할 정도다.
“전 사실 산청군을 잘 몰랐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산청군인지도 몰랐어요. 그런 제게 군민들은 군수 자리를 맡겼습니다. 이유는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힘 있고 능력 있는 당신이 한번 산청군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봐라’ 그런 거죠. 술 잘 사는 골목대장이 아닌, 밖에서 힘쓸 수 있는 제게 표를 준 겁니다. 그분들을 절대 실망시키면 안 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한방의료 클러스터’
앞서 설명처럼 산청군 예산이 몇 년새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모두 이 군수의 ‘로비’ 덕분이었다. “내 팔자에 군수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는 이 군수는 중앙 정치무대 경력을 무기로 돈을 찾아다녔다. 이런저런 기획안, 아이디어를 들고 정치인이든 공무원이든 닥치는 대로 만나 토론하고 싸웠고 예산을 받아냈다. 지식경제부를 두드려 200억원짜리 한방약초연구소 설립을 이뤄냈고 문화관광부에서는 관광사업 예산 43억원을 받아냈다. 100억원 규모의 전통한옥 체험마을 사업도 성사시켜 올해 첫 삽을 떴고 수백억원에 달하는 도로정비, 확장 예산을 여기저기서 받아왔다.
처음엔 동네축제로 시작한‘산청한방약초축제’가 전국적인 행사로 자리 잡은 것도 모두 이 군수의 이러한 노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시작됐을 때만 해도 전국의 약초가 전시되고 지리산에서 생산되는 약초들이 유통되는 ‘조금 큰 시장’ 정도였던 이 행사는 9회째를 맞은 지금에 와선 전국의 한약관련 시장 정보가 한데 모이는 정보의 장이자 한방약초 기술의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람회로 발전했다. 1억여 원의 예산으로 시작됐던 행사 규모는 어느새 7억원대로 커졌다.
특히 한방약초체험관, 음식체험관 등에 쏟아진 관심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산청에서만 볼 수 있는 청정한 한방약초를 활용한 다양한 먹을거리를 경험한 관광객은 모두 탄성을 쏟아내고 있다. 산청군 금서면에 위치한 29만여㎡ 규모의, 250억원이 넘게 들어간 전통한방휴양관광지도 새로운 휴양지를 찾는 외지인들에게 색다른 체험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는 전국의 유명 한의원 65개가 참여해 설립한 (주)본디올탕제원이 들어서 있어 관심을 모은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환자들이 직접 치료를 받을 수도 있고, 처방전을 보내면 산청의 우수한 한약재와 물을 이용해 전통방식으로 약이 달여져 택배로 전국으로 보내진다. 이 공동탕제원 설립에는 50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갔다.
산청군이 한방약초 사업과 관련해 지금까지 마련한 예산은 1000억원에 달한다. 이 예산으로 한방약초 관련 토털 서비스가 가능한 ‘한방의료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게 산청군의 계획이다. 산청군 전역에 걸쳐 약초산업지원센터, 한방약초연구소, 한방치유형 펜션단지, 약초 주말체험농장, 한방 휴·요양 지구 등을 만든다는 계획인데 2013년 모든 사업이 완료된다.
지리산 케이블카
요즘 이 군수가 관심과 의욕을 보이는 사업은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과 대전에서 출발해 산청을 거쳐 거제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건설하는 일이다. 지자체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사업들은 아니지만 이 군수는 “자신 있다”고 말한다. 철도의 경우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에도 포함됐을 만큼 상당부분 진척됐다는 것도 이 군수가 자신 있어 하는 이유다. 지난해부터 공을 바짝 들이고 있는 450억원 규모의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도 마찬가지다.
“등산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대단한 관광명소가 될 겁니다. 등산로가 너무 많이 생겨 환경을 해치는 것도 방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조만간 될 겁니다. 두고 보세요. 조만간 ‘KTX 타고 산청에 와서 케이블카 타고 지리산 구경한다’는 말이 나올 겁니다.”
산청의 변신은 현재진행형이다. 산이 좋아 ‘山淸’, 물이 좋아 ‘水淸’, 사람이 좋아 ‘人淸’이라는 이곳의 5년, 10년 후 모습은 아직은 알 수 없다. 산청이 바라보는 산청의 미래, 군청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군수의 인사말은 어쩌면 이에 대한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신의 안식처와 건강한 웰빙 생활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자연과 함께하는 희망과 미래의 땅, 동의보감의 본고장 산청으로 오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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