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서울 600년을 품에 안다

醉月 2009. 8. 25. 08:56

서울 600년을 품에 안다 인왕산~북악~낙산~남산 따라 18.2㎞
'서울의 디자인 자산 51선'… 트레킹 코스 개발

서울을 품고 있는 것은 600년 세월의 더께가 쌓여 있는 조선의 성곽이다. 도심을 굽어볼 수 있는 곳에 오르면 어디서든 돌담과 마주친다. 서울이 품 밖으로 삐져나오듯 팽창해버렸고 이끼와 잡풀이 무성한 돌담은 쇠락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서울의 성곽은 여전히 그곳에 버티고 서 있다.
 
서울의 성곽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조선 태조가 처음 쌓았다. 태조는 △전쟁에 대비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도적을 방지한다는 3가지 목적으로 성곽을 쌓았다. 한양 천도 2년 후인 1396년 20만명을 동원해 백악(북악), 낙산, 남산, 인왕산 등 내사산(內四山)과 관악, 덕양, 북한, 용마산 등 외사산(外四山) 능선을 따라 두 겹으로 성곽을 축조했다. 내사산 성곽의 경우 둘레가 18.2㎞에 이른다. 높이는 일정치 않았는데 가장 높이 쌓은 곳은 땅으로부터 약 12m였다.

▲ 성북구 와룡공원에서 본 서울성곽 야경 .
▲ 낙산 성곽 바깥쪽에서 바라본 풍경. 청소년들이 ‘성곽 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문이 무색하게 사진 찍기에 열중하고 있다.
▲ 남산공원 성곽 옆으로 잘 정비된 계단에서는 운동을 하는 사람, 내려가다 잠시 쉬는 연인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성곽에는 팔방으로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을 냈다. 사대문은 동쪽의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북쪽의 숙청문(肅淸門), 그리고 사소문은 북동쪽의 홍화문(弘化門), 남동쪽의 광희문(光熙門), 북서쪽의 창의문(彰義門), 남서쪽의 소덕문(昭德門)이다. 성곽은 본래 능선 위에 쌓아 올린 석성과 평지 위의 토성으로 이뤄졌었지만 세종 4년(1422) 토성도 석성으로 개축했고 활과 총을 쏠 수 있는 시설도 만들었다.

하지만 서울의 성곽은 임진왜란으로 크게 부서졌다. 일제강점기 때도 전차 레일을 깔고 도로를 뚫으며 무분별하게 훼손됐다. 서울의 성곽이 본격적으로 복원된 것은 1975년 서울성곽복원위원회가 구성되면서부터. 당시 조사 결과 18.2㎞에 이르던 성곽 중 6.7㎞는 완전히 없어졌고 11.4㎞는 파손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후 복원 보수 작업이 꾸준히 이뤄져 현재 10.4㎞ 구간이 복원됐고 민가가 들어선 구간 등 3㎞ 가까이가 추가로 복원될 예정이다. 하지만 5㎞ 정도의 구간은 흔적이 완전히 사라져 복원이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 낙산공원 성곽 너머로 보이는 충신동 주택가.
▲ 남산공원 성곽의 이끼 낀 돌담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평일에도 많은 사람이 산책 및 관광을 위해 올라온다.
서울시는 옛 모습을 되찾고 있는 성곽을 최근 ‘서울의 디자인 자산 51선’에 포함시켰고 2011년까지 성곽을 잇는 트레킹 코스도 만들 계획이다. 내사산 성곽은 문화·역사 탐방로로, 외사산 성곽은 자연생태 탐방로로 정비할 계획인데 내사산 성곽 탐방로는 숭례문~돈의문~인왕산~창의문~북악산~숙정문~낙산~흥인지문~광희문~남산을 거쳐 다시 숭례문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등산로 12㎞와 평지 녹지구간 8㎞로 이뤄진 코스로 한 바퀴 도는 데 13시간이 걸린다.

지금도 도심에서 조금만 발품을 팔면 서울의 성곽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인왕산 등산로에서는 초입부터 성곽을 볼 수 있으나 현재 정비 공사 중이라 우회해서 올라가야 한다. 북악산 등산로는 성곽이 가장 길게 남아있는 구간인데 올라가는 길이 나무 데크로 잘 정돈되어 있다.

▲ 인왕산 기차바위에서 본 서울 성곽. 날씨가 좋으면 남산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 북악산 성곽. 북악산은 군사시설 및 보안시설이 많기 때문에 지정된 장소에서만 촬영이 가능하다.
▲ 와룡공원 성곽은 안으로는 산책로와 운동 시설이 있고, 성곽 밖으로는 달동네 분위기의 마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