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북·중 ‘정보전쟁’

醉月 2009. 11. 20. 08:55
북·중 ‘정보전쟁’

北, 탈북자 돕는 중국인 무차별 납치… 中 간첩은 북 핵시료 채취하다 적발
갈등 끝에 비공개로 정보협정 체결

 

지난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북·중(北·中) 양국은 북핵 해결을 포함, 새로운 협력 시대를 열게 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은 약간 다르다. 원자바오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복귀를 권유하자, 김정일은 미·북(美·北) 간 공식 회담을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핵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진전된 그 어떤 논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양국은 이번 만남을 ‘유익한 회담’으로 평가했다. 그 구체적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내부의 고위 소식통이 말한 바로는 중국과 북한은 이번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을 계기로 두 국가 간 훼손됐던 정보협력 라인을 복원하고 서로 협력하기 위한 비공개 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3월 미국인 여기자 2명이 북한군에 잡혀갔던 두만강가. 북한이 탈북자에게 도움을 주는 등 반북 활동을 한 중국인들을 북한으로 납치해 가면서 북·중 양국 간 갈등이 빚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정의 구체적 내용은 밝혀진 바 없지만 양국은 단순한 탈북자 관련 협력에서 벗어나 북한의 대외연락부나 35호실, 작전부 등 전통적인 공작기관 간의 공조체계를 복원해 외부의 적(韓·美·日)으로부터 양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협력하는 것을 문서화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탈북자 색출이나 중국 내 반(反)정부활동가들에 대한 첩보를 중국 측으로부터 받고, 중국도 자국에서 발생하는 행방불명자 문제와 마약·위조화폐 등 불법행위에 대한 북한의 협력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겉으론 동맹, 실제로는 적, 김정일, 中에 극단적 반감
양국의 정보협력 라인 복원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양국 관계가 얼마나 악화됐었는가를 방증한다. 실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북한에 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의 입에서 미국과 일본, 한국을 비판하는 것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마치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김정일은 중국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이 중국식 개혁 개방을 30년째 거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중국의 영향력이 김정일에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김일성 시대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했고 중요 정책은 상당 부분 중국과의 협의를 거쳤지만 김정일은 경제 원조 외에는 중국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한다.

김정일 정권이 중국에 대해 극단적인 반감을 갖게 된 것은 1992년 한·중(韓·中) 수교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한·중 수교 사실을 통보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중국 대표단 측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자신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2년만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중국은 단호하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의 보호를 받을 때에도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나서 송환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묵살했다. 북한의 특수부대가 황장엽을 암살하기 위해 중국에 침투했다는 소식에 중국이 장갑차와 중무장한 군대를 동원해 황씨를 보호하자 김정일의 반중(反中) 감정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북한 최고지도자의 인식은 아랫간부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중국을 믿지 않는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양국 간의 관계악화와 함께 중국을 오가며 막대한 부(富)를 축적한 북한 내 화교들도 대부분 중국 간첩으로 몰려 탄압받기 시작했다. 보위부의 집중 감시를 견디다 못해 2000년 이후 거주지를 북한에서 중국으로 옮기는 화교들도 급증했다. 2004년경에는 중국의 보안기관이 북한보위부에 매수된 자국 공안원들을 무더기로 체포하자 북한도 중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화교들을 비롯한 많은 중국인들을 간첩으로 몰아 체포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2007년 9월 북한은 이례적으로 국가보위부 명의로 “외국 정보기관의 조종을 받아 반(反)공화국 활동을 하던 첩자(북한 주민)들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는데 당시 ‘외국 정보기관’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에도 함북 화대군 앞바다에 중국 어선을 타고 침투한 외부 첩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GPS 시스템을 화대군 근처에 설치하고 북한의 핵실험 관련 시료를 채취하려고 시도하다가 국가보위부에 적발됐다. 북한은 이 사실을 외부에 발표하지 않았지만 이 첩보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적발된 첩자들은 재판도 없이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탈북자는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한 보위부 요원으로부터 “당시 첩자들이 남한이 아닌 중국에서 보낸 자들로 판명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함북도 보위부장을 비롯해 이 사건을 해결한 보위부 요원들은 김정일로부터 ‘영웅’  칭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 돕는 중국인, 北 보위부 표적, 북한 내 화교들도 스파이로 몰려
북한의 중국 간첩 색출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5월경 평양에 거주하는 한 화교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재판도 없이 수감됐다고 한다. 북한 국가보위부는 지난 9월에도 나진 선봉지역에 진출한 중국기업의 종업원 2명을 체포했다. 포르노 비디오테이프를 몰래 반입해 북한 내에 유통하고 북한 여성을 희롱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이들 가운데 한 명은 죄를 엄중하게 물어 지금도 구속 중이다. 중국 당국이 강력 반발하자 북한은 중국회사에 벌금 7만유로를 물려 사실상 회사를 문닫게 만드는 조치도 취했다.

북한과 중국 간에 가장 심각한 갈등 요소는 반북 활동을 한 중국인들에 대한 북한의 무차별적인 납치 행위다. 2005년 3월 탈북자 강모씨와 협력한 화교 출신 중국인 1명도 북·중 국경지역 인근에서 행방불명됐다. 북한의 소행으로 생각하는 가족들은 중국 당국에 진상 파악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납치 사실을 잡아떼고 있다. 두만강 인근에 거주하는 한 재중동포는 “지금 일본이나 한국에서 납북자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사실 가장 심각한 것은 중국 내에서 북한 정보기관에 의해 사라지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압록강 두만강 일대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적어도 수백 명에 달한다”고도 했다. 없어지는 사람들은 많은데 북한 당국의 소행으로 짐작만 할 뿐 가족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탈북자 돕는 일을 하는 중국인들은 북한 보위부의 표적이 돼 언제 어디서 북한에 납치당할지 몰라 불안 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