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남자들은 불안하다

醉月 2009. 6. 2. 09:03

남자들은 불안하다

 

金珽運
⊙ 1962년 서울 출생.
⊙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 심리학 박사.
⊙ 베를린자유대 전임강사, 명지대 여가문화센터 소장 역임.
⊙ 저서 : <일본열광> <휴테크 성공학>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

 명지大 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교수, 現 일본 와세다大 특별연구원

내 젊은 날은 온통 여자들이었다. 내 모든 슬픔은 여인으로부터 왔고, 내 즐거움과 상상력은 여인으로 매개되었다. 내 나이 또래의 고만고만한 여학생들에게 나는 세계문학전집의 여주인공들의 이미지를 덧입혀 사랑을 고백하고, 쫓아다녔다. 그렇게 자가발전된 환상에서 시작한 내 사랑은 항상 몇 달 안에 덧나곤 했다.
 
  피아노를 전공하던 그녀는 내게 유난히 작은 자기 손을 보여줬다. 그때, 그녀는 내 앞에 장미꽃 백 송이를 들고 나타났다. 대학교 1학년 때, 대사가 단 두 마디에 불과한 ‘정신병자 3번’으로 출연한 사이코드라마에서 내게 꽃다발을 안겨준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그녀는 “버스비까지 모두 털어 꽃을 샀다”며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생전 처음 받은, 지금도 가슴 뛰는 찬란한 유혹이었다.
 
  난 버스 맨 뒷좌석에서 난생처음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피아노 건반의 한 옥타브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손 때문에 절망했다. 나도 내 손가락 마디를 잡아당기며 절망했다. 그녀는 손이 차가웠던 라보엠의 미미였다. 
    
  ‘8번째 난쟁이’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또 다른 그녀’는 내게 칼바도스를 마시던 ‘개선문’의 여인이었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매번 그녀에게 칼바도스 대신 소주를 권했다. 매번 혼자만 취했다. 그녀는 취한 나를 혼자 놔두고 갔다. 요즘도 샴푸 선전을 보면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그때 그녀도 공연히 세게 머리를 돌리곤 했다. 그런데 왜 머리가 긴, 생머리의 여인들은 머리를 항상 그런 식으로 돌려야만 할까?
 
  이마가 유난히 예뻤던 의상학과의 그녀를 나는 ‘제인 에어’라고 불렀다. 나는 밤늦게 그녀에게 전화해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차이에 관해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연애모임이나 다름없는 독서클럽에 가입해 낭만소설이나 읽으며 엉뚱한 녀석들과 키득대는 그녀에 대한 나름의 복수였다. 이런 내 산만한 환상을 감당할 수 있었던 여학생은 없었다. 약간의 관심을 보이다가는 이내 짜증스러워하며 돌아서곤 했다. 한결같이.
 
  아, ‘백설공주’도 있었다. 당시 내가 다녔던 고려대에는 여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있어도 대부분 이름만 ‘여학생’이었다. 이미 男性化(남성화)된 여자들만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쩌다 가끔 멀쩡한 여자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남자처럼 돼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리 백설공주는 달랐다. 세상에 ‘高大(고대)에 어찌 그렇게 예쁜 여자가 있나’ 싶었다. 강의실 앞쪽의 그녀는 난쟁이들에게 둘러싸여 항상 밝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8번째 난쟁이’였다.
 
  난 강의실 뒤편에 앉아 그녀가 복사해 준 노트로 시험공부를 하며 너무 행복해 했다. ‘만약 그녀가 독이 든 사과를 먹게 되면 제일 먼저 달려가 키스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난 겨우 8번째 난쟁이였을 뿐이었다. 결코 내 순서는 안 왔다. 그리고 백설공주는 난쟁이가 키스해서 낫는, 그런 ‘몹쓸’ 병에는 결코 걸리지 않았다.
 
  어느 여름, 나는 나를 버린 여인들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름방학 내내 가장 어려운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가장 어려운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진땀으로 살갗이 장판바닥에 달라붙고, 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만 나오는 그 여름날들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보내면 그녀들이 나를 버린 것을 후회하리라고 나는 믿었다. 
  
  ‘희랍인 조르바’와의 만남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희랍인 조르바>. 앤서니 퀸(왼쪽)이 조르바 역을 맡아 열연했다.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 전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정말 환장하는 줄 알았다. 도대체 그런 음악을 누가 연주하고, 또 듣나 싶었다. 그래도 참고 들었다. 그러면 그녀들이 날 사랑할 것 같았다.
 
  가장 어렵다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사러 갔다. 옆을 보니 조금 더 어려워 보이는 책이 있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였다. 요즘은 <그리스인 조르바>로 번역되어 나온다. 저자의 이름 자체가 발음하기도 어려웠다. 그 책을 읽으며, 더욱 괴로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바로 그 여름, 나는 그 책을 통해 난생처음 여인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책은 나처럼 소심한 주인공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조르바와 함께 보낸 ‘벗어 던짐’을 서술한 책이다. 함께한 사업이 망하던 순간에 추던 조르바의 춤이 저자에게 즐거운 충격이었듯, 내게도 조르바의 자유로움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실험하던 조르바의 삶은 내게 ‘여인과 상관없는 중요한 것들도 세상에는 있다’는 것을 깨우쳐줬다. 나는 책 읽는 내내, 조르바의 말투를 흉내 내 중얼거리곤 했다.
 
  ‘여자 같은 건, 쥐나 물어가라지’.
 
  도자기를 만드는 물레를 돌리는 데 방해가 된다고 손가락을 잘라버린 조르바. ‘함께 자고 싶어하는 여인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라며 협박하던 조르바 (나는 그 옆에 ‘함께 자고 싶어하는 남자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는 여자도 지옥에 떨어질 거야’라고 적었다). ‘자유롭고 싶으면 터질 만큼 처넣으라’던 조르바.
 
  이런 조르바식 황당한 자유론은 당시 내겐 여인으로부터의 구원이었다. 그래서 나도 카잔차키스의 墓碑銘(묘비명)처럼 조르바식 자유론을 몇 날이고 일기장에 반복해서 썼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이렇게 내 철없던 청춘은 갔다.
 
  이제 어떤 여인도 40대 후반의 나를 슬프게 하지 않는다. 가끔 다가오는 세월에 대한 내 절망에는 아무 관심 없는 아내의 굵은 팔뚝은 내 안식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여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바라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꾸 두려워진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높아진다고 느낄수록 자꾸 두려워진다. 그래서 그때 바로 그 책, <희랍인 조르바>를 다시 찾아 읽는다. 
  
  아버지에게서 어머니에게로
 
  남자들은 불안하다. 正義(정의)와 민주주의와 같은 명분 뒤에 숨어 이 땅의 사내들이 뿜어내는 이 과도한 분노와 적개심의 實體(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불안이다. 더 이상 아무도 이 땅의 남자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불고 있는 ‘엄마 열풍’이 바로 그 증거다. 돌아보면 온통 엄마이야기뿐이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식을 위해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는 <마더>와 같은 영화도 개봉된다. 엄마와 관련된 연극을 보려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는다는 신문기사도 자주 눈에 띈다. 엄마의 희생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사람들은 밤새도록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다.
 
  나름 전문가들이 나와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을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삶이 어렵고 팍팍하기에 사람들이 ‘母性回歸(모성회귀)’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가?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당시는 外換(외환)위기로 인해 온 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웠다.
 
  그때 사람들은 아버지를 찾았다.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아버지의 희생을 그린 <가시고기>와 같은 소설에 사람들은 한없이 울었다. 경제가 어려우니, 사람들은 아버지의 희생을 기억해냈고, 아빠의 처진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러나 10년 만에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시간은 불과 10년이지만, 한 세기가 바뀐 것이다. 21세기에는 20세기에 존재했던 그런 아빠는 더 이상 없다. 그래서 21세기, 경제의 위기에 사람들은 ‘엄마’를 찾는 것이다. 
  
  불안한 자의 중얼거림
 
  20세기의 아빠들은 월급봉투를 ‘던져주며’ 자신의 존재를 느꼈다. 그때 남자들은 아내들에게 꼭 ‘월급봉투를 던져준다’고 했다. 마치 원시인이 피투성이가 된 노루나 사슴을 어깨에 메고 와, 기다리던 여인들과 자식들 앞에 던져 놓으며 느끼던 그런 뿌듯함 때문이다. 남자들의 육체적 ‘힘’이 가치를 만들어내던 시기였기에 가능했다. 그런 사회를 사회학에서는 ‘산업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21세기는 더 이상 산업사회가 아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도 그리 중요하지 않아진다. ‘힘’을 쓰는 아버지의 역할모델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前(전) 시대적 유물일 따름이다.
 
  그런 아빠는 자녀교육에 하등 보탬이 되지 않는다. 현명한 아내들은 이제 자식들을 데리고 먼 나라로 떠난다. 버려진 아빠들을 사람들은 ‘기러기 아빠’라고 부른다.
 
  기러기 아빠들은 중얼거린다. 한결같이 혼자 중얼거린다. 내 친구 재림이도 중얼거린다. 재림이는 최고의 대학을 나와, 국내 굴지 은행의 지점장이다. 내 친구 중에 성격도 제일 젠틀하고, 인물도 좋다.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중요한 직책을 도맡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친구들과 만나면 그렇게 말이 많다. 쉬지 않고 중얼거린다. 술 먹으면 그저 미국의 애들, 아내 이야기뿐이다. 가끔 보고 싶다고 훌쩍거리기까지 한다.
 
  어쩌다 미국의 아내와 전화통화하는 모습을 봤다. 재림이만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혼자 있어도 중얼거린다고 한다. 라면을 끓이면서도 “이제 수프를 넣고, 계란을 풀고…” 어쩌고 한다고 한다. 가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바짝 든다고 한다.
 
  중얼거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다. 누구나 가끔 혼자 중얼거린다. 삶이 힘들고 어려우면 그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 더하기 3은?” 하면 사람들은 바로 “5”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29 곱하기 8은?” 하고 물으면 사람들은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팔구 칠십이, 칠 올라간다, 잡아라, 이팔은 십육…” 하면서.
 
  도대체 누구에게 칠을 잡으라고 하는 것인가? 나에게.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문제가 간단하면 사람들은 중얼거리지 않는다. 문제가 어려울 때만 중얼거린다.
 
  수학문제뿐만이 아니다. 내 삶이 어려우면 중얼거린다. 기러기 아빠들이 쉬지 않고 혼자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힘들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울역의 노숙자들도 한결같이 혼자 중얼거린다는 것이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과정이 생략된 삶’
 
  이 불안함은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까닭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든 결과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자주 망각한다. 그리고 오직 결과만 가지고 서로 비교한다. 화장실에서 옆 사람의 ‘그것’을 흘끔거리며 열등감에 젖는 것처럼, 他人(타인)의 사회적 지위, 연봉 따위와 자신을 비교하며 한없이 움츠러든다. 오늘을 살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결과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用不用說(용불용설)’이 옳다. 자꾸 써야 커지고 단단해지는데, 그 과정을 생략하고 오줌 눌 때, 그 크기만 비교하니 어찌 삶이 만족스럽겠는가.
 
  남자들의 결과지향적 태도는 가족과 놀러갈 때도 확연히 드러난다. 남자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빨리 도착해서 빨리 밥해 먹고 돌아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자들에게 여행이란 목적지에서 밥해 먹는 시간뿐이다. 준비과정은 여행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여행은 준비할 때부터 시작된다. 여행지를 선택하고, 장을 보고, 여행지에서 입을 옷을 사는 것도 당연히 여행에 포함된다. 가는 길, 돌아오는 길도 여행에 포함된다. 그래서 아내들은 차 안에서 아이들과 먹을 과자, 과일, 커피를 챙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꼭 들러 아이스크림과 호두과자를 사야 한다. 갓 구운 따끈한 호두과자를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찍어먹는 그 맛 또한 아이들의 여행에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항상 불안하다. 타인의 완성된 결과와 내 미숙한 결과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사내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살면서 한 번도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또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그리 분명하게 나타나지도 않는 세상이다.
 
  이런 결과지향적 삶에는 어떠한 즐거움도 없다. 결과를 이루는 순간, 또 다른 결과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정지향적 삶’과 ‘결과지향적 삶’
 
  ‘과정지향적 삶’을 하버드대학 심리학과의 엘렌 랑거 교수는 ‘mindfulness’라고 정의한다. 한국어로는 ‘마음챙김’이라고 번역하지만, ‘정신차림’으로 번역해야 옳다.
 
  반대로 ‘결과지향적 삶’은 ‘mindlessness’라고 정의한다. ‘넋이 나감’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넋 놓고, 정신 못 차린다는 이야기다. 결과만 중요시하고, 과정을 생략한 삶을 산다. 넋을 놓고,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까닭 없이 불안한 것이다. 내가 남은 세월 이뤄낼 수 있는 결과라는 것도 불 보듯 빤하다. 그래서 이유 없이 막 화가 나는 것이다. 희랍인 조르바가 가르쳐주는 자유의 내용은 바로 이 ‘결과지향적 삶’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물론 삶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그 여정도 그 목표만큼 내 삶의 중요한 부분임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다.
 
  제발 넋 놓고 살지 말지어다. 그것이 바로 희랍인 조르바가 이야기하는 자유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