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경주 기림사

醉月 2008. 9. 7. 20:30

글 출처 : 빚진 자 debtor 에서 가져오고, 26년전 삼천배 수련이 생각나서 정리함

물맛 좋은 오탁수… 눈 맑아지는 명안수… 마음 편해지는 화정수… "속세의 煩惱<번뇌> 다 내려놓고 가시게"
"임정사"로 불리다 원효대사가 "기림사"로 개칭  신라 31대 신문왕이 잠시 쉬었다 간  용두연, 대적광전, 건칠보살좌상, 삼신불 등 보물 보유

 

                                                                                       기림사 전경

기원 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 칭한다. 경주 함월산의 기림사(祇林寺)는 이런 연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643년(선덕여왕 12년) 천축국(天竺國)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 임정사(林井寺)라고 하다가 원효(元曉)대사가

확장·중수하고 기림사로 개칭했다.

목탑지(木塔址), 삼층석탑, 오백나한상(지방유형문화재 214호) 등이 있고, 보물로 대적광전(大寂光殿·보물 833호),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보물 415호), 삼신불(三神佛·보물 958호), 복장유물(보물 959호) 등이 있다.

 

▲기림사의 창건신화

 

                                                                                      약사전


먼 옛날 범마라국 임정사에 50년간 수도한 도인 광유성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광유성인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전생이야기를 했다.
“나는 전생에 부처님의 제자였다. 내가 수행을 쌓고 있을 때 늘 우리를 공양하던 파사익왕의 세 시녀가

같은 도반의 한 스님에게 반해 서로 싸우곤 했다. 이에 그 스님은 번민하다 도를 이루지 못하고 입적했다.

내 이제 금생에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그 스님과 세 시녀를 제도하려 하니 나와 속세로부터 인연이

있는 이들을 누가 이곳으로 안내하겠느냐.”

그때 제자 중 승열스님이 일어나 자신이 다녀올 뜻을 밝혔다.

광유성인으로부터 그 스님이 현재 ‘수다라’라는 대국의 왕이고 두 시녀는 왕후와 후궁으로 환생했으며,

나머지 한 명의 시녀는 곧 왕의 아들로 태어나리란 얘기를 들은 승열스님은 이들을 찾아 먼길을 떠나게 된다.

승열스님이 수다라국에 도착했을 때, 왕은 마침 500 궁녀와 함께 강가를 거닐다 숲 속에서 막 잠이든 터였다.
왕이 깰 때까지 좌선을 하던 승열스님은 이를 궁금히 여긴 시녀들과 말을 나누다 불법을 설법하기에 이른다.

마침 잠에서 깨어 이 광경을 목격한 왕은 “너는 누군데 나의 궁녀를 꼬이느냐”며 불개미 집을 헐어 승열스님의

몸 위에 풀어놓았다.하지만, 불개미들은 스님의 몸을 물지 않고 모두 흩어져 버렸으며, 이에 왕은 승열스님의

비범함을 깨닫고 궁중으로 정중히 모셨다.
승열스님은 1년간 궁중에 살면서 왕과 왕비 그리고 후궁들을 교화했으며 수다라 왕국 최초의 절인 범승사를 세웠다.
이후 승열스님은 임정사로 돌아가면서 후궁인 월해부인을 모셔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왕과 왕비를 다시 데리러 온 승열스님은 모든 전생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이들도 임정사에서 불법을 쌓도록 설득했다.
이들은 이렇게 모든 속세의 영화를 버리고 임정사로 떠났지만 만삭의 몸이었던 왕비 원앙부인은 중도에 고열로 쓰러지고 말았다.
원앙부인은 “여기서 저를 종으로 팔아 그 대가를 임정사 부처님께 올려 다음 생에 다시 공부하도록 빌어주십시오”라며

간곡히 빌었고, 왕은 눈물을 흘리며 죽림국의 한 부자에게 부인을 팔았다.
그리고 부인이 나은 자식이 아들인 경우 안락국, 딸이면 아량이라 이름지어 자신을 찾아오도록 했다.
그렇게 7년이 되던 어느 날, 임정사로 한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원앙부인이 낳은 태자 안락국이었으니 바로 전생의 한 시녀이기도 하다.
수다라 왕이 도를 얻어 열반에 들자 광유스님이 안락국에게 전생이야기를 들려주며 “여기서 250만 리 떨어진

해동국에 인연지가 있으니 그곳에서 부처님을 모시거라”고 지시했다.
이에 해동 계림국에 도착한 안락국은 명당을 찾아 조그만 암자를 세워, 이름을 칭하되 ‘임정사’라 했다.
절이 창건된 지 150년 후 신라의 원효대사가 절을 확장하고, 이름을 부처님 생전 최초의 절인 기원 정사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기림사라 개명했다.

▲기림사를 말하다
기림사는 광복 전까지만 해도 경주 일대에서는 가장 큰절로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였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한데다 불국사가 대대적으로 개발됨에 따라 사세가 역전돼 지금은 반대로 불국사의 말사가 됐다.
기림사 주위로는 계곡이 있는데, 이 계곡을 따라 500m쯤 거슬러 오르면 두 암벽의 틈새로 시원한 물줄기가

내려치는 용두연(龍頭淵)이 있다.
이 용두연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신라 31대 신문왕이 동해에서 용으로 화한 선왕으로부터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얻어서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쉬어 갔다는 기록이 있다.
용두연이라는 이름은 신문왕이 이곳에서 쉬다가 동해의 용에게 받은 옥대 고리 하나를 냇물에 담그니 그것이

용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갔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이러한 인연인지 기림사는 특히 다섯 가지의 맛을 내는 물이 유명하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 옆의 장군수는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 장군을 낸다는 물이다.
천왕문 안쪽의 오탁수는 물맛이 너무 좋아 까마귀도 쪼았다고 한다. 천왕문 밖 절 초입의 명안수는 눈이 맑아지며,

후원의 화정수는 마실수록 마음이 편해지고, 북암의 감로수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과 같다고 해서 각각 이름붙여졌다.
현재는 장군의 출현을 두려워한 일본인들이 막아버려 장군수만 물이 끊겨버렸다. 그러나 다른 네 곳은 지금도 각기

다른 맛을 내며 물을 뿜고 있다.

 

                      1982년 여름 3,000배 수련을 하던 대적광전(부산불교청년회 중부지부 도우들과 함께 수계를 받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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