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화희와 치희의 질투

醉月 2008. 9. 6. 08:50

  … 역사를 바로 알면 국운이 개척되고
  … 선도를 깊이 알면 팔자가 개화한다
   
오늘은 오악미와 삼봉미를 동시에 이야기하겠습니다.
  두 눈썹은 산악을 닮은 형국인데 오악미는 주로 등성이를 삼봉미는 봉우리를 닮은 형상입니다.

그런데 만일 오악미의 눈썹을 가진 여인과 삼봉미의 눈썹을 가진 여인이 한 집에서 거처할 경우에는 대단한 불화가 있습니다. 
   대사님!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하하하, 양산이 마주치면 산울림이 요란한 법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고구려 2대 왕이었던 유리왕의 두 왕비 화희(禾姬)와 치희(稚姬)였다.

화희는 오악미, 치희는 삼봉미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유리왕은 재위 3년째 되던 10월에 사랑하던 왕비 송씨를 잃었다.
왕비로 삼은지 겨우 1년 3개월만의 급서였다. 사인은 중노동과 수면부족으로 인한 과로와 파열상으로 조사되었으나 관계기관대책회
의에서는 단지 급살이라고만 공식 발표하였다.
그러나 궁인들에 의하여 진상이 전해지자, 백성들은 갸우뚱거리면서 왕비가 무슨 중노동을 하였을까, 중노동은 절간에서 중들이나 하는 건
데, 밤에 뭐하느라 수면부족일까 대궐 경비 서는 것도 아닐텐데… 파열상이라면 어디가 파열됐다는 것일까?

하고 구구억측에 갖은 유언비어가 다 떠돌았다.
 
  상감의 신물(神物)이 너무 크다는 둥, 또는 상감의 정력이 너무 절륜해서 견딜 여자가 없다는 둥.

심란해진 왕은 새 왕비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송구해진 신하들은 유언비어의 주범들을 잡으려고 쑤군거리는 백성들을 체포하여 심문하면 그들은 한결같이

유비통신과 카더라방송을 통하여 알았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었다.
 
  신하들의 간청에 의하여 왕은 새로 왕비를 간택했는데, 전 왕비가 급서한 연유로 현역에 예비군까지 갖추는 게 좋겠다 하여 한꺼번에 두
여잘 얻었으니 그것이 바로 골천 사람 화희와 한나라 사람 치희였다.
  그런데 유리왕은 둘은 알고 셋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만사는 불여튼튼이라고 현역 예비군 정도로 되나?

민방위까지 얻어 뒀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두 여자는 얼마나 앙숙이었는지 유리왕은 두 여자를 달래느라고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유리왕은 두 여자가 마주치지 않도록 양곡땅에다 동서에 별궁을 지어 따로 살도록 배려했다.

 
  사나이의 즐거움이란 무릇 일말(一馬) 이매(二鷹) 삼첩(三妾)이라하여,

첫째는 말타기 둘째는 매사냥 셋째는 첩질하기… 라는데 사냥을 몹시 좋아했던 유리왕은 어느날 기산으로 말타고 매사냥을 가게 되었
던 것이다. 왕은 선왕 동명성제를 닮아 활솜씨라면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판이었다. 삼백자 밖에서도 파리 뒷다리에 붙은 밥알을 맞
히는 정도이며 날아가는 기러기의 왼쪽 눈의 동자를 꿰뚫기까지 할 정도였다.
 
  사냥을 떠나면서 유리왕은 자신이 없는 동안 두 여자가 또 분명히 치고 박고 싸울 것이 틀림없기에 염려가 되어 신신당부하였다.
   나가 곧 돌아올끼여, 다른 때보다 일정을 절반밖에 안 잡았으니께. 그동안 죤일 하느라고 싸우지덜 말고 사이좋게 지내드라고.

그러면 나가 사냥에서 잡은 것들을 몽땅 상품으로 주갔어.
 
  두 여자는 엿새동안 잘 참았으나 드디어 이레째 되는 날, 평화는 깨지고 한판 붙어버렸다.

궁안에서 심심하고 좀이 쑤셨던 두 여자가 공교롭게도 후원으로 산보를 나갔다가 마주친 것이다.

서로 노려보다가 왜 째려 보냐고 시비가 되어서 보라고 달린 눈 보지도 못하느냐고 하다가 찢어진 입이라고 야불거리느냐고 하다가…

아, 씨앗싸움은 석씨(釋氏)도 돌아앉는다더니, 결국은 험악한 소리.   년자에, 쌍시옷에 C-8이 등장하더니, 애매한 개가 등장하고 급기야
열이 받은 화희가 국제적인 모욕을 치희에게 안겨 주고 말았다. 화희는 고구려 다섯 부족 중 명문인 절노부 출신이고 치희는 뙤나라의 한
족 출신이었던 것이다.
   야이, 雜年아! 오랑캐년이 지나라에서 뙤놈하고 붙어먹을 일이지, 왜 남 나라까지 와서 치마를 펄럭거리고 지랄이냐?

冒구멍이 오죽 션찮으면 제 나라에도 못 있고 남나라까지 왔을라고? 그런 년이 밝히긴 더럽게 밝혀… 하면서
   DDOI-girl, Go home!!! (번역: 뙤년은 지나라로 가라…)   하였다.이런 모욕적인 언사에 치희는 아연실색하여 눈물을 흘리며,
   아니… 이렇게 심한 욕을…   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는 것이다. 치희는 울면서 보따리를 꾸렸다.
그러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는데, 사냥에서 돌아온 유리왕은 궁궐이 어수선하고 치희가 보이지 않자,

궁녀에게 물어보니 소갈머리 없는 것들이 대판쳤다고.
   A… 이러니까 기집년들은 턱밑에 수염이 안나는 거여… 그리고 밑터진 옷을 입는 거지… 으이구 속상혀라…
 
  급히 말을 몰아 국경으로 쫓아가 보니 이미 화희는 국경을 넘은 거라. 민간인이 국경을 넘는 거는 별문제나 국왕이 국경을 넘는 거는 국
경분쟁이 되는 거라. 왜냐? 국왕은 그대로 헌법기관인기라, 국경을 넘지 못하고 저멀리 가는 치희를 불렀것다.
 
   돌리와 치희 !!
   물리와 치희 !!!
 
  그러나 뿔따구가 난 치희. 들은 척도 안하고 그대로 안뇽! 하고 가뿌린기라. 아아! 떠나간 가마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다시 오는 가마는 어쩌구 저쩌구 말도 많지만 유리왕은 미치고 환장하겠는기라.    떠나간 가마는 아름답다 
  한탄하면서 돌아오다 마음도 몸도 다 피곤하여서 나무 그늘 아래서 쉬는데, 아! 글씨 누구 염장 지를 일 있어?

나무에 황조, 꼬부라진 말로 옐로우 버드 (yellow bird). 울말로 꾀꼴새 한쌍, 암수 두마리가 지랄옘병을 하는 거여.

아! 왕년에 누구 연애 안 해 본 놈 있느냐 말이여. 부리 부딪치기, 겹치기, 이층쌓기…. 누구 실연한 거 고놈들도 아는가 봐.
비록 미물이지만서도. 아아, 거기서 유리왕은 학실히 깨달은 거여. 홀로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그래서 홀로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담과
같이 노래하였단다.
 
    쌍쌍이 날으는 꾀꼴새는      (翩翩黃鳥 편편황조)
    암놈 수놈 서로 정다운데     (雌雄相依 자웅상의)
    의지할 곳 없는 나는           (念我之獨 염아지독)
    그 누구와 이 길을 돌아갈꼬 (誰其與歸 수기여귀)
 
  이것이 그 유명한 황조가라는 거여, 꼬부라진 말로 yellow bird song이란 거다. 한대국 역사상 실명(實名)의 최고(最古)의 현전가요라는 거
아니것어? 또한 한대국 역사상 최초의 실연가(失戀歌)이기도 하면서.
 
   신진사! 이 황조가 사건은 깊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이야기이므로 잠깐 몇가지 뒷얘기를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로군요.
  여러가지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갑죠?
   예. 동명성제 주몽의 아들이며 고구려 2대왕인 유리왕은 선비족을 쳐서 항복받고,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겼으며, 부여의 침략을 격퇴하고,
한나라로부터 고구려현을 빼앗은 용기있고 현명한 왕이었습니다.
  여러 부족을 통합해 나가는 과정에서 농경생활을 하는 부족(화희족속)과 수렵생활을 하는 부족(치희족속) 간에 불화가 생기자, 여러 부족
들이 서로간에 마음을 합쳐 단합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어 부른 노래가 황조가라는 뒷얘기가 있고요   
   유고치로야, 울나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사부님이 말씀하실 때 잘 새겨 들어라.
   예 아버님! 머리 속의 하두왜어(賀頭矮語)를 총동원하여 듣고 있사옵니다.


   또 하나 색다른 이야기로는… 
    유리왕은 동명성제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녀(禮氏女)하고 사이에 낳은 자식이다.

유리는 부여시절부터 고조선 때에 숨겨진 보물지도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 보물은 온 뙤나라 천하를 경영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그 보물지도의 행방이나 보물의 은닉 장소를 모르는데, 요동태수의 딸인 치희가 그 보물이 있는 곳을 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치희는 어릴 때부터 영력이 강하여 산신령과 교감하고 삼호신들과 교통하는 등 접신의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유리는 보물을 구할 양으로 요동태수에게 청혼하여 치희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처음에 치희는 유리왕이 자신을 사랑하여 왕비로 맞아들인 줄 알고 좋아했으나 시집와 보니 그에겐 이미 다른 왕비, 화희가 있었으며

또 그는 보물에 대한 정보만을 얻으려고 혈안이었다.
 
  사서(史書)에 기록된 유리왕의 사냥벽은 실은 사냥이 아니라 치희가 엉터리로 제공한 정보를 가지고 보물이 묻힌 심산계곡을 뒤지고 다녔
던 것이다. 유리왕은 잠자리에서 절정의 순간마다 사랑한다는 속삭임 대신 보물이 묻힌 곳은? 하고 물어 왔고 그럴 때마다 치희는 유리왕에
대한 혐오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결국 배신감과 화희와의 알력을 견디다 못한 치희는 화희가 모욕적인 언사를 던지던 날 결심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고향에 돌
아갔지만 아무도 그녀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고 고독과 회한을 견디다 못하여 결국 강물에 투신자살하고 말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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