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우리나라의 주례

醉月 2008. 9. 6. 08:32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술의  문화가 대단히 고상하여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어 왔다. 

단군이래 신라시대의  음주기록을 보면  술의 역사가  이와 같이  장구한 까닭에 술에  대한 인식이나 

술을 먹는 자세가 잘 가다듬어졌던 것을  볼 수 있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기분을  돋구어 힘을 내게 하지만 지나치면 이성을 마비시켜 자제력을  잃게 한다. 

따라서 주요한 제례  때나 술을 마셨고  이성과 체력이 강건한  자에게만 마실 자격을 부여했다. 

옛 사람들은 하늘,  땅, 조상의 신령에게 제사할 때  술을 바쳤지만 도깨비나 마귀에게는 술을 준  일이 없으며,
20세가  되어 관례를  치른 성인에게  술을 권하였지만  미성년자에게는 허용치 않았다.

그러므로 남으로부터 술을  대접받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숙한 인격자임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


  술을 마시되 인심과 풍속을 상치않게 하기 위한 조상의 슬기가 내포되어 있다.

특히 서양은 음주가  손수 따라 마시는 독작 문화권이지만 권커니, 자커니 하는 대작과 수작 문화권인  동양에서는

술을 마시는 예의가 대인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예절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조상의 음주  예절은 대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향음주례라  하는 의례적 음주문화이며,

다른 하나는 여럿이 어울려 마시는 군음문화이다.


  향음주례는 어른들을  공양하고 음식에  예의와 절차를  밟아 마시는  것이다.
향음주례를 통해  본다면 우리의  술문화는 손님을 정중히  청하여 예의를 지켜 깍듯이 절을 하며 함께 풍류를 즐기는 것이다.
  이와 배치되는  군음은 조금 자유스런 자리로  한량이나 기층민중들이 자연과 더불어 한자리에 모여 먹고 마시는 교제의 마당이다.
  향음주례가 윗사람 혹은  귀한 손을 대접하는 격식관례라면,  군음은 교우끼리 우정을 즐기는 비격식  관례로서 귀족, 평민의 계급 문화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격식, 비격식의 차이로 구분되는 아름다운 우리의 음주문화이다.
  향음주례는 세종대왕이  주나라 예법을 바탕으로 절도를  가다듬어 각 향교나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교과목으로  가르치게  했던 6례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인격이 술자리에서 드러나므로 실수가 없도록 받은 교육이다.


  향음주례의 일관된 정신은
  첫째, 의복을 단정하게 입고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 것
  둘째, 음식을 정결하게 요리하고 그릇을 깨끗이 할 것
  셋째, 행동이 분명하고 활발하게 걷고 의젓하게  서고 분명하게 말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절도가 있을 것
  넷째, 존경하거나  사양하거나 감사할  때마다 즉시  행동으로 표현하여  절을 하거나 말을 할 것 등이다.


  향음주례는 13단계로  나뉘어 손님을 청함부터 손님이  돌아갈 때까지 예의를 다해 대접하고 한 잔 권할 때마다 수십 번 절을 한다.
  13단계로 나뉜 향음주례의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주인이 손님을 미리 청하여 허락을 받는다.
  2. 당일 아침 예를 거행함을 예고하고서 손님을 모셔온다.
  3. 대문 밖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4. 주인이 손님에게 주찬을 대접한다.
  5. 손님이 주인에게 술을 권한다.
  6.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7. 주인이 여러 손님에게 술을 대접하며 음악을 연주한다.
  8. 사회를 세운다.
  9. 서로 차례차례 술을 권한다.
  10. 두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술을 권한다.
  11. 음식을 모두 거둔다.
  12. 연회를 한다.
  13. 손님은 아무 말없이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와서 사례한다.
  이상이  향음주례의  간추린 절차이다.  그  가운데  한 부분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의관을  갖춘 주인이  청하고  싶은  손님의 집을  찾아가  재배하면서

 "장차 술마시는 예를  거행코자 하오니  청컨대 선생께서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하고 제의한다. 

손님도 재배하면서  "나도  덕도 학식도  부족하니  청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거듭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허락한다.
  이를테면  향음주례에서는 겸양과 미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절이 주례진행의  처음이자  끝이다. 

이같은  향음주례는  처음엔  중국에서  전해온 것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구한말까지  전국의 360개 향교에서 1년에 한 차례씩
치뤄졌고 일반 선비의  가정에서도 동료 선비를 청해  술을 대접할 때에는 항상 이에 따라 행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엄격한 가운데서도 악공으로 하여금  음악을 연주케하여 흥을 돋우고 술을 마시기 전에는 

'시경' 소아편에 나오는 녹명장을 읊어 풍류의 멋을 잃지 않았다.
  또한 주인은 반드시  술잔 하나로 술을 돌려가며  손님에게 권하고 잔이 바뀔 때마다  잔을 물에  씻는다.

이는  술자리의 총화를  이루고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주인이  술을 마시지 않고 손님에게만 술을 권하는  것은 큰 실례로 여긴다. 

왜냐하면 대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손님에게만 술을  권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형식의  예법이  있는  반면에  일정한  형식과  절차가  없이 거리낌없이 즐기는  군음은

 예절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호탕한  자리이다.
제례나 동제가  끝난 후  격의없이 어울려 마시는  한마당의 분방한 놀이마당이 바로 군음이다. 

포석정이나 부여의 낙화암같은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군음은 군신의  계급을  초월하여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긴밀하고 고아한 역사였던 것이다.


  향음주례의  전통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고,  우리가 이을만한  음주  예절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술과 음식은 너무 질펀하게 하지 말며 안주는 접시에  덜어다 먹고 술잔을 돌리되 반드시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서 술을 채웠다가 권한다.
  2. 술좌석에서  잔이 한 바퀴  도는 것을  한 순배라고 하는데,  술은 대개 석 잔은 훈훈하고 다섯  잔은 기분좋고 일곱 잔은  흡족하고

     아홉 잔은 지나치므로 일곱 잔 이상은 절대 권하여 돌리지 않는다.
  3. 예절이란  주고 받는  것이므로 술을  대접받았을 때  답례는 반드시  뒷날 시간적 여유를  두고 한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주고  받고 2차 3차를  가는 것은 경박한 풍조라 할 수 있다.
  4. 술자리는  반드시 공개할  뿐 아니라  그 아들이다  제자들을 동행하여  술 심부름을 들게 하고 술먹는 법도를 익히게 하였다.
  5. 음식은  귀천이 없이  골고루 나누어  먹고 기생으로  하여금 음악과  춤과 시조로 흥취를 돋구되 반드시 자리를 따로 하여

      난잡함이 없게 한다.
  6. 술자리에서  대접을 받는  손님은 즐겁고  흡족하게 마시어 주인의  자리를 빛내는  것이  도리이고, 주인은  흥에  취해 

     약간의 실언이나  실수를  하여도 너그럽게 거두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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