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한국의 주선10걸

醉月 2008. 9. 5. 08:21


  고금을 통틀어  각계 인사들이 추천한  주선은 모두  140명,두주불사의 주량과 풍류가 특출한 당대의 호걸들을 망라한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  최고의 주선으로 황진이가 선정됐다. 

낙주종생의 기라성 같은 대장부들을 젖히고 가장 많은 17명의 인사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서화담,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 3절이라  불리는 그녀는  여성으로서 일종의 당연직처럼  추천을  받은  셈이다(장덕순).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란  시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뛰어난  시서음률과 술로  당대의  문인,
석유들에게  높이  샀다는   점에서  인정하였다(김정옥, 김종길, 이어령, 주종  등),
말하자면  주선 중의  주선이자  '한국적 낭만파의  거장'(최순호)으로  떠올려진 셈이다.


  2위는 술과 시와 자기 이상에 취해 살다간 수주  변영로(변영노)가 차지했다.(김용성,  신우식, 이규동  등). 

두주불사의 기행을  담은 <주정(주정) 40연>을 보면 그는 이미 대여섯 살 때  술독에 기어올라가  술을 품쳐  마신 천부적인  모주꾼이다.

또  이 수필집에서  그는 성대  뒷산에서 오상순  이관구 염상섭 등과  함께 술에  취해 벌거벗고 

소를 탄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런  그를  가리켜 

'타이틀매치다운  타이틀매치를 위해  살다간 주성'으로 묘사하기도(유영종)한다.


  시인 조지훈을 두고 '신출귀몰의   주선'   또는   '행동형  주걸'이라고 한다(김용권,김진).

통금은 안중에도  없고 야밤에 주붕의  집을 습격, 대작하다가 새벽에   귀가하기가 예사였다고 그를 아는사람들은   생생히  기억한다
(백인호,이광동). 그는 밤새 눈 한 번 붙이지  않고 통음을 해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천리 방방곡곡을 떠돌며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노래한 시인 김삿갓은 풍류가 넘치는  주선이다.  (김경, 허완구,  한만년  등) 장원급제까지 했으나 자신이  홍경래의 난  때 항복한  선천 방어사의 손자임을  뒤늦게 알고 일생을  방랑하며 술과  시로보냈다. 

동가식  서가숙하며 시를  지어주고  술을 얻어마셨다는 '작시걸주' 등 많은 시를 남겼다.


  김시습도 한 시대를 풍미한 주선이다(이규태). 그는 당대의 비리를 닥치는대로 조롱하며  중이 되어  산천을 누볐다. 

당시의 영의정  정창손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쁜 놈,  영상이고 뭐고  집어치워라"하고 일갈했을  만큼  세상과 담을
쌓으며 한평생을 방랑으로 보냈다.


  백호 임제는 우리나라의 주선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황진이 묘  앞을 지나다가  지었다는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의 시조는  그의 호방한  기질을  잘  설명해  준다.  일생을  술로  벗삼으며  봉건적인  권위에 저항하는 가운데 시문으로써 인간미가 돋보이는 '백호집'을 후세에 남겼다.


  소설가 김동리도 10걸에 속했다. 네 살 때부터  술을 입에 댄 타고난 애주가로 알려진 그는  술이라면 청탁 불문의  주량 제일주의,

그러면서도  끝까지 주석을 이끄는 대주가로 명성을 얻었다(조경희 등).


  신출귀몰의  의적으로  관가를 닥치는대로  부수고  재물을  털면서도 유유히 한양에 나다나  술을 마셔댄  임꺽정을 두고 

'심장에 털난  주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백정   출신의  서민이던  그는  조선조   명종  10년(1555년)에  도둑의 우두머리가  되어,

12년간  황해도  일원에서  간담을 서늘하게  하면  의적으로 종횡무진 누볐다.


  대원군은 왕권을 손아귀에 쥐기 전 막강한  세도가들을 의식, 철저히 파락호로 위장해 술로  야망을 불태운 술의 영웅이다(최일남  등).

세도가들의 잔칫집이나 시회에 나타나서 술을  얻어 먹고 대감의 품계를  가지고 여염집 상가를 버젓이 드나들었다.

때론  시정의 잡배들과  어울려 대작을  하는가 하면, 투전판에까지 끼어들기도 했다. 

술값이 떨어지면 난초  그림을 팔아 충당하면서  그는 술독에 파묻혀 민심의 동향을 살피고 세도가들의 정보를  입수했다.

후일 야망을 달성한 뒤에는 파락호  시절의 주붕인  심복들을 중용해  술과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주선이다.


  이 밖에도  원효대사, 연산군과 술의 신사로  일컬어지던 마해송, 술맛을 가장 잘  아는  언론인이라  자칭하던  심연섭, 

동대문과  종로를  오가며  50사발의 막걸리를 마신 일화를 남긴  박종화는 각기 5명씩의 추천을 받아 나란히 10위에 오른 주선이다.
  주선의 추천  기준은 풍류와  품위, 주량이 뛰어나고  낙주종생(역사적 인물의 경우)의 일생을 마친 인믈들로 국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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