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변영로의 술

醉月 2008. 9. 3. 08:16

백주에 소를 타고 

  역시 혜화동 우거에서 지낼  때였다. 

어느날 바카스의 후예들인지 유영의직손들인지는 몰라도 주도의 명인들인  공초, 성재,  횡보 3주선이  내방하였다.
설사 주인이  불주객이란대도 이런 경우를 당하여서는 별 도리가 없었을 것은 거의 상식문제인데,  

주인이랍시는 나 역시 술마시기로는 결코  그들에게 낙후되지 않는 처지로 그야말로 불가무일배주 였다.
  허나 딱한 노릇은 네 사람의 주머니를 다 털어도 불과 수삼 원,  그때 수삼원이면 보통 주객인 경우에는 3,4인이 

해갈은 함즉하였으나 우리들 무리 4인에 한하여서는  그런 금액쯤은  유불여무였다. 

나는 아무리 하여도 별로 시원한 책략이 없어 궁하면 통한다는 원리와는 다르다 해도 하나의  악지혜를 안출하였다.

동네의 아무개 집  사동 하나를 불러다가 몇자 적어 화동 납작집에 있는 동아일보사로 보냈다.
  당시 동아일보사의  편집국장은 고  고하였는데 편지 사연은  물을 것도 없이 술값 때문이었다. 

좋은 기고를  하여 줄터이니  50만원만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이를 보내  놓고도 거절을 당하든지 하면  어쩌나 마음이 여간 조이지 않았다. 

10분, 20분,  30분, 한  시간, 참으로  지리한 시간의  경과였다.  마침내 보냈던 아이가  손에 답장을  들고 오는데

무리  4인의 시선은  약속이나 한 것 같이  한군데로 집중되었다. 

직각도 직각이지만  봉투 모양만  보아도 빈  것은 아니었다. 급하게 뜯어보니 바라던대로,

아니  소청대로의 50원, 우화중의 업오리 금알 낳 듯 하였다.
  이제부터 이 50원을  어떻게 유효적절하게 쓰느냐는 공론이었다. 

그때만 해도 50원이면 거금이라 아무리 우리 넷이 술을 잘 먹는대도 선술집에 가서는 도저히 비진시킬  수 없었던 

반면에, 낮부터  요정에를 가서  서둘다가는 안심이  안될 정도였다.

끝끝내  지혜(선악간에)의 공급자는  나로서 나는 야유를  제의하였다.
일기도  좋고  하니 술  말이나  사고  고기  근이나  사가지고 지척인  사발정 약수터(성균관 뒤)로 가자 하니 일동이 좋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은  명륜동에 있는  통신중학관(고 미상희군이  경영하던) 으로  가서  그곳  하인  어서방을  불러내어  이리저리하라.  만사를  유루없이 분부하였다.  우리는 참으로  하늘에나  오를 듯  유쾌하였다. 

우아하게 경사진잔디밭 위에 둘러앉았는데 어서방은 술심부름, 안주 장만에 혼자서 바빴다.

술은 소주였는데  우선 한  말을  올려다 놓고  안주는  별 것  없이  남비에 고기를 끓였다.
  참으로 그날에 한하여서는 쾌음, 호음하였다. 객담, 고담, 농담, 치담,  문학담을 순서없이 지껄이며 권커니 잣커니 마셨다.


  이야기도  길고 술도  길었다. 이러한  복스런 시간이  길이 계속되기를  빌며 마셨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고금  무류의 대기록을 우리 4인으로 하여 만들게 할 천의랄까,  하여간 국면이  일변되는 사태가  의외에 발생하였다.

그때까지는 쪽빛같이  푸르고  맑던 하늘에  난데없는  검은  구름 한  장이  떠돌더니, 

그 구름장이 삽시간에  커지고 퍼져  온하늘을 덮으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유연작운, 체연하우 바로 그대로였다.
  처음에 우리는  비를 피하여  볼 생각도 하였지만  인가 하나 없는  한데이고,

비는 호세있게  내리어 속수무책으로 살이  보일 지경으로 흠뻑  맞았다.

우리는 비록   쪼루루  비두루마기를   하였을망정  그때의   한중취우의   그  장경은 필설난기였다.

우리 4인은 불기이동으로 만세를 고참하였다.
  그 끝에 공초 선지식이 공초식 발언을  하였다. 참으로 기상천외의 발언이었던 바, 

다름 아니라  우리의 옷을  모조리 찢어  버리자는 것이었다. 

옷이란 워낙 대자연과 인간   두 사이의 인간지물인 이상,  몸에 걸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듯도 한  말이었다.  공초는 주저주저하는 나머지 3인에게 시범을 보여주듯이 먼저 옷을 찢어 버렸다.

남은 사람들도 천질이 그다지  비겁치는 아니하여  이에 호응하였다.  대취한 4과한들이  광가난무하였다.

서양에  Bacch -analian orgy란  말이 있으나  아무리 광조한 주연이라  해도 이에  비하여서는 불급이 원의일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언덕  아래 소나무 그루에 소 몇필이 매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번에는  누구의 발언이거나  제의였던지 이제  와서 기억이  미상하나 우리는 소를 잡아타자는데  일치하였다.

옛날에  영척이나 소를  탔다고 하지만  그까짓 영척이란 놈이  다 무었이냐.

그  따위 것도 소를  탔는데 우린들 못탈  바 어디 있느냐는 것이 곧 논리이자 동시에 성세였다.
  하여간 우리는 몸에 일사불착한  상태로 그 소들을 잡아타고 유유히 비탈길을 내리고 똘몰(소나기로 해서  갑자기 생긴)을 건너고

공자 모신  성균관을 지나서 큰거리까지  진출하였다가  큰 봉변  끝에  장도(시중까지  오려던일)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명정사십년' 서설에서


  나는 거의 이주오일생 하였다고  새삼스레 울고 불고 몸부림칠 까닭은 호말도 없고 사이지차한  바에

나의  여생이 얼마가 될지  변절을 구자돈손의 계명으로 아는  이상,

끝끝내  한결같이 마시고  마시고  꽃 꺾어 산 놓고 또 마시다가 마지막 날 도래할  때의 의부나 용사처럼 흔연취사 할 뿐이라는  것이다.   

  나의 음주변이라  하였지만 음주에 변이  새삼스레 있을 리  없다. 기호물이니 그저 마시는 것이다. 

음주에 대하여 이유를 붙이는  것, 날이 푸르고 맑으니 한 잔, 날씨 궂으니  한 잔,

기분이 좋으니 또 한  잔 등 등의 구차스러운 변명이나 이유를  붙이는   것은  자고유지나, 

엄밀히  말한다면   그네들은  정통주도나 순수주배는  아닐지  모른다.

하여간  나는  이유를  따지지 않고  술말  대하면 자연히 찌푸렸던 이마가 피어지는 것이다. 나는 주주야야 술만 있으면 마시는데,
책임상 내가 맡은 사무를 전폐하고, 마시키는커녕  보기만 하여도 마시기 전부터 열락하여지도록  나의  신경계통은  마비가  되었는지 

이완된  모양이다.  다소 천박은  하지만  그  기경한 사구가  취할  점도  있어  영국의  희극작가  R.B. 세리든의 '주덕송'일절을 파적삼아

이에 번역이나 하여볼까 한다.


  술병은 우리 식탁  위의 태양

  그의 양광은 감홍색술

  우리는  그의 위성들

  그의 도움  없이는 부추김  없이는

  우리만으로는 빛나지  못하리

  이박과 환희는  끝도 없어라

  그가 삐잉 일순회하면

  우리는 그의 차광으로 따라 빛나리

 

  여하간 객스런 소린지는 모르나  나는 우리의 태양인 술의 차광을 과거 30여년전 풍우일여하게  받았는데

때로는  술의 양이  지나치면 도리어  '마비의 태양'인 술에게 대광을 하게끔  되었다.

아는 이는 아다시피 나는 술을 좋아하는 것을 지나 술에 탐닉하였고 그간 금주 연한 몇 해를 해놓고는 무일불취하였으나
이롭지 않고 떳떳치  않은 술을 되도록 소비하였다. 어는 친구는  나더러 농세를 한다지만  천만부당의  선고이다.  

나는  이백의 시골은 타지  못하였으니 기경비상천이라든가 더 줄여 말하면 일시채석강 월희를 하는  '풍'의 생활은 모조부득이요,

따라서  19세기 데카당들의  어느 강렬한  자극(주로 마약류의)이 없이는 잠시도  붙이지 못하는  '식'생활도 나로서는 취할  바 아니니 

위의  두 범주에  편입될  도리가 없음은  자변의  일이다. 

그렇다고 그  양종  변화에서 탈락된  것을 나는  참으로  기쁘게  생각할 정도의  모럴리스트다. 

모럴리즘은 남이야 나의 말을  믿든 말든 나의 생활신조이다.

이 신조가  없었더라면 그나마 나의 생활이 불의와  악수는커녕 타협하여 본 적이 없음을 오십이 지난 오늘날 자허삼아 말하여  두는 동시에  어느 권세나 금력앞에  저두평신하여 본 적조차 없다는 뜻이다.  잘났으나 못났으나 사람이란 독왕자지 할 길이  따로  있는 것이다.

갑작스레  딴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지만  인생 전체에 일률로  부과된 운동일지는 모르나 진부한 논리  그대로

인생이 모순과 상극속에서 부침시종 한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쉽사리 운명에  굴복되어서는 아니된다. 

부단한 반발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불연이면  침체요 위축이요 페퇴가 뒤따를 것이다.
  영원한  과오, 영원한  수정!  영원한 태만,  영원한 초조!  영원한  기척, 영원의 갈구! 영원한 방산, 영원의 정리!/영원의 부채, 영원의 청산!
  등등이 인생  전체 불가회피의 진로이다.  아니 진로가 아니라  일종의 장벽도 철회될 것이다. 

필자 또한  이 반발  모순되는 두  원리 사이에서 방황  저주는 할망정 값싼 후퇴는 아니할 것임을 자서하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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