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仙敎적인 세가지 꿈 이야기

醉月 2008. 9. 8. 08:54

꿈이란 무엇이더뇨?
  우선 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면 신이 보내 주는 영몽(靈夢), 투시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는 현몽(顯夢), 상징적인 꿈이 실현
되는 정몽(正夢), 전혀 실현될 수 없는 꿈인 잡몽(雜夢), 환상과 같은 환각몽(幻覺夢), 공상을 하다가 황홀경에 빠져서 꾸게 된다는 백일몽
(白日夢), 심신이 허약함으로써 생긴다는 허몽(虛夢), 아이를 임신할 때 꾼다는 태몽(胎夢), 최면상태에 빠져서 꾼다는 최면몽(催眠夢) 따위
가 있다.
 
  인간은 하루의 1/3을 잠자게 되어 있고, 잠이 들면 꿈을 꾸게 되어 있다.

적어도 인생의 1/3은 잠속에서 또는 꿈속에서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꿈을 꾸며 꿈이란 과연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꿈에서 인간은 벗어나지 못하며 개꿈이니 돼지꿈이니 용꿈이니 하며 꿈에 대하여 등급까지 매겨서 희노애락하고 있다.
 
꿈을 단순히 수면 중의 사고현상이라고만 요약할 수는 없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꿈의 본질을 평생토록 연구하여 <꿈의 해석>이라는 명저
를 저술하였다. 그는 거기서 인간의 의식 작용을 이드(id)와 리비도(libido)의 상호관계로 보았고 꿈을 잠재의식의 발현으로 풀이하였다.
  그는 꿈이란 미래와는 상관없이 단지 낮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나 욕망을 일깨워 주고 또 그 욕망을 충족시켜 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꿈이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고 현실에서 일어날 일을 판단하고 예지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프로이트는 이 점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에 꿈의 상징에는 어떤 일정한 법칙적인 형성원리가 있는 것 같으나 지금으로
서는 알 수 없다고 솔직히 자수하였다. 프로이트의 연구는 꿈의 전모를 밝혔다곤 할 수 없지만 양놈으로서 그 정도나마 꿈의 세계에 접근
하였다는 것은 가상하다고 할 것이다.
 
  영웅 호걸 위인 열사 기인 이사들은 많은 꿈을 꾸게 되어 있다. 야소경에 이르기를  말세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
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꿈은 신의 음성에 대한 대언(代言) 내지는 대변(代辯)이라는것을 알 수가 있다. 클라크 박사는 게다국 청소년들에게 행한 연설의
말미에서,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이 한대국에 전하여질 때는  야망의 세월을 보라 는 말로 잘못 전해져서 아그들이 틀애비만 열심히 보는 바람에 꾸숑(돈꾸어 주숑의 준말)의 인기만 잔뜩 올라갔다고 한다.

무교회주의자인 함석헌 옹도  꿈이 없는 민족은 멸망한다 라고 하여 꿈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선교적(仙敎的)인 꿈이야기 세 가지만 하려고 한다.


  첫째 노생지몽(盧生之夢) ― 그 유명한 한단지몽(邯鄲之夢)의 이야기.

  과거에 또 떨어져서 신세가 비맞은 참새꼴이 된 노생은 돌아가는 길에 한단시에 사는 도사 여동빈(呂洞賓)을 찾아갔다.

도통의 높은 경지에 이른 여동빈은 머잖아 신선이 될 계제에 있었다.

청년 노생(盧生)은 자신의 신세가 곤궁함을 한탄하며 여옹에게 호소하였다.
   낙방하여 고향에 갈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여옹은 빙그레 웃으며 견대 속에 두었던 꽃베갤 꺼내더니 중얼중얼 주문을 외운 다음 노생에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화를 누리
게 해 주겠노라 고 하였다.
  노생은 꽃베개를 베고 누웠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노생은 어린 나이에 군문에 투신하였다. 거기서 일해 동복 용호 택운이 등과 교유하며 우리가 생일날은 각각 달라도 제삿날은 한날로 통
일하자고 결의하고 이찌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당시 군문에서 비밀결사나 사조직을 할 경우에는 당장 쫓겨나게 되어 있었다.

노생은 동복이의 누이동생 온순이에게 장가들고 일해는 당시 군수장군이던 이동규 장군의 딸 뾰순이에게 장가를 들었다.

뾰순이는 주걱턱을 하고 있었으며 빨간 바지를 즐겨 입었다.
 
  세월이 어느 덧 흘러 이들이 군문에서 백부장 또는 이백부장 등으로 임관하고 있을 때 돌연 희정장군의 반역이 일어났다. 수도인 한양을
일시 점령하였다고는 하나 수많은 선배 장군들이 동조하지 않았고 참가 세력이 미미하여 성사가 불투명하였다.
  특히 군부 최대의 세력이라는 원강도 병마절도사인 한림아 장군의 반발은 희정장군을 초조하게 하였다. 한림아 장군으로 말할짝시면 희
정장군의 선배가 되며 당시 야전군의 최고참이었다. 그러나 교활한 희정장군은 포섭한 한림아 장군의 부하들을 활용하여 간단히 그를 체포
하였다.
 
  그러나 백성의 지지에 의한 반역이 아니었기에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었고 특히 군작전권을 갖고 있던 아무러케국 군대는 노발대발하
며 야전군을 투입하여 진압하겠다는 소리를 희정장군 면전에서 공공연히 해대었다. 희정장군은 노심초사하였다.
   저 코큰놈들을 꺾으려면 전 백성적인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이 일을 과연 누가 해 줄 것인가?
 
  그때 노생의 둘도 없는 친구 일해는 울서 큰서당 무술교관으로 있었는데 단독으로 희정장군을 면담하여 담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장군님! 양코배기에 기죽지 마십쇼. 제가 전 화랑들을 동원하여 반역 지지 시위를 한양성 한복판에서 한판 굿거리 장단으로 멋지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화랑사관서당 강공훈 당장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해의 선동에 의하여 화랑들의 대대적인 반역 지지시위가 한양성 저자
거리에서 있은 후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며 시계붕알처럼 갈팡질팡하던 각 지역 군벌 세력들은 희정 장군을 일약 지지하게 되었고, 반란은
탄탄대로 천년반석처럼 성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일로 하여 일해와 노생 그리고 이찌회가 그후 제 3왕정 시절 군문에서 받은 혜택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해가 희정장
군에게 한 말 가운데 양코배기에게 기죽지 말라는 말은 그후 유명해져서  야코죽지 말라  는 속언으로 변형되어 지금까지도 애용되고 있다
한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하듯이 일해라는 친구를 잘 둔 덕분에 노생은 군문에서 쉽게 승진할 수 있었다. 어언 세월이 흘러 천부장을 역임하
고 단사구 병마절도사라는 화려한 직위에까지 올랐다. 당시 단사구는 화공국과 대치하고 있는 최일선의 부대였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친
구 일해가 기미년에 있은 군 정기인사에서 안보대장군의 직첩을 희정대왕으로부터 받았다.
 
  폭정에 대한 가마뫼와 말뫼의 대대적인 항거로 정국이 점차 어수선해지는 가운데 상달 스무 엿새날 밤, 갑자기 희정대왕이  작은 나들이
라 이름하는 동정궁 만찬에서 술을 들다가 가운보정부 규재대감에게 살해를 당하였다. 술에 만취된 보정대감이 버러지를 잡는다고 총을 뽑
아 쏜 것이 그만 희정대왕의 가슴통에 맞는 바람에 역사가 훌러덩 뒤집히게 된 것이다.
 
  당황한 보정대감은 내친 김에 평소 사이가 좋잖았던 내금위장을 쏘아 죽여 버렸다. 그리고 나선 다시 신음 중인 희정대왕의 머리통에 총
을 쏘며,    나는 미녀를 사랑하는 야수의 마음으로 새롬의 심장부에 총을 쏘았다.    라고 외쳤다. 그때 보정군사들은 상관의 지시에 따라 쉼터에 있던 내금위군을 일제히 사살하였다.
 
  이후 한대국에선  벌레 보고 총 빼든다 라는 속담이 생기게 되었고, 보정대감이 군 선배인 도승지 영감에게   

썽님! 난 못한다면 안하는 놈입니다.   

라고 했다는 말은 부랑가도(附郞可圖)로까지 그려져 과거 응시생들에게 젤 잘 팔리는 부적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졸지에 독재권력에 진공이 생기게 되고 안보대장군이던 일해가 선왕 시해 종합수사본부장에 임명되면서 순식간에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게 되었다.  기회는 챤스라고 이틈을 타 일해와 노생은 숨죽이던 이찌회를 소집하고 안보사의 기찰망을 이용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착착 하였다. 드디어 최일선의 단사구 병력을 동원하여 군부 최대의 세력이요 걸림돌인 도원수 겸 팔도도통사인 화승 도총관을 섣달 열이튿날 일명 초상집 잔치라는 작전으로 전격 기습하여 제거해 버렸다. 
     
  이때 한양방어사로 있던 정태완 장군과 별기대장군이던 장병주 장군은 일해의 교묘한 양동작전과 속임수에 빠져 힘 한번 못쓰고 체포되
었다. 최대의 고비였던 팔도도통사 화승 도총관의 납치에는 완력 제일의 우삼수 낭장과 허경윤 낭장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그것은 후에 일
해가 공신록을 책정할 때 우삼수를 일등공신에 책록한 게 그 증거이다.
 
  군권을 박탈당한 하규대왕은 꽁지빠진 참새처럼 허수아비가 되어 속절없이 책상만 지키게 되었고, 안보사의 젊은 낭장들은 하규대왕을
졸로 보고 빨리 하야 안하면 니도 콩밥이라고 조롱하였다. 일해는 하규대왕을 윽박질러  나라지키기 우선 모임 이라는 초법적인 기구를 만
들어 섭정대신이 되었다. 관가를 정숙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미운털 박힌 관리들의 모가지를 자르는 등 전횡을 일삼다가 그것도 부족했던지
선위를 강압하여 마침내 대망의 보위에 올랐다.
 
  노생은 일등공신에 녹명되어 숭록대부 정일품 교하부원군의 직첩을 받고 이조판서에 보임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해의 옹립과정에서 빛고
을 백성들의 무장항쟁을 광견부대를 동원하여 참혹하게 진압하고 이찌회 회원들은 서로들 최고 무공훈장을 돌려 달았으며, 일해는 가증스
럽게도 뾰순왕비와 더불어 한대국 최고 훈장인  나라꽃 대훈장 을 스스로 달았다.
 
  노생은 인신으로서의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에 만족잖고 일해에게 굴종하며 충성을 다한 결과 감복한 일해로부터 마침
내 양위를 받아내게 되었다.   일해는 후계자를 선정하는데 몹시도 고심하였다. 후계자 자리를 노리며 개같은 충성을 보이는 대신들 중에는 노생 말고도 영의정 영신대감 내금위장 쇠똥이 등이 있었다. 일해는 세 가지 사항에 촛점을 맞췄다. 누가 나의 치적을 승계 발전시킬까.

나보다 과연 나은 자질을 가진 자가 누굴까. 내가 왕위를 물려주어도 누가 나를 끝까지 잘 받들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40년 우정의 친구 노생이 제일 적격이라고 생각하였다. 드디어 일해는 오랜 망설임과 심사숙고 끝에

노생에게 양위하기로 결심하고 그를 청와궁으로 불렀다.
 
  일해의 양위 선언을 얻어낸 청와궁의 만찬에서 노생은 얼마나 기뻤던지 사내답잖게 밥을 먹다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전에 일해에게 잔소리를 듣고 욱리하 강변에 나가 몰래 울다가 들켜서 핀잔을 들은 적도 있었지만 이 날 만큼은 맘놓고 울 수가 있었다.

참고 기다리며 끝끝내 보위를 물려받은 노생의 인내심에 대하여는 게다국 최고의 능구렁이 덕천(德川)도 졌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일해가 양위하는 조건은 일해를 상왕으로 깍듯이 모시며 전비를 모두 쉬쉬 덮어주기로 하는 거였다.
 
  그러나 세상살이 어찌 인간의 맘대로만 되리요. 달도 차면 이지러지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 일해와 노생의 폭정과 압
제에 항거하는 백성들의 화산과 같은 항의는 사과탄 지랄탄 방정탄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일해가 재위할 당시 형 동생 사촌 팔촌 마누라 처남 장인 등등이 해먹은 비리는 단군 이래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것
이었다. 노생은 도저히 일해의 죄과를 덮어줄 수가 없었다. 그대로 덮어 주었다가는 민란이 일어나 오히려 노생의 보위가 위태로울 지경이
었다. 눈물을 머금고 일해에게 자결을 하던가 아니면 외국으로 망명하던가 그도 아니면 어디 조용한 절간에라도 가서 중이 되라고 권했다.
 
  일해는 분통이 터져 씩씩거리며 이럴 줄 알았으면 보위를 쇠똥이에게 줄 걸 잘못했다고 후회했지만 그건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였다.

건너간 권력은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쇠똥이는 누군고 하면 일해네집 충실한 하인이었다. 그러다 일해가 임금이 되는 통에
내금위장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것이다. 후에 일해대왕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감옥살이를 무려 세번이나 하여서  의리의 사나이 쇠똥이 
또는  일편단심 쇠똥이 라고 외국에까지 알려지는 인물인데 고로 노생하고는 후계자 자리로 철천지 웬수가 되어 있었다.
  일해는 노생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나는 죄가 없다. 나는 가을 물처럼 담백하다. 고로 담백사로 들어가겠다. 

선언하고 원강도 흉악한 산골짜기 담백사에 들어가서 2년 가까운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귀양살이가 얼마나 호되었던지 일해는 신세타령가를 한 곡 지었는데 어찌나 청승맞던지 죄는 미워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 그대로
일해를 동정하는 맘이 일어날 정도였다. 가사는 담과 같다.
 
   귀양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세어 보니
   푸른집 떠난 이십여개월에
   머리만 더욱 빠져
   땡중같은 내 신세가
   너무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쇠똥이는 감옥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쇠주에 노가릴 찍어 먹던
   그때는 옛날


  본의는 아니지만 친구까지 배신하고 왕위를 보전하던 노생은 그 영화가 영구하고 땡칠할 줄 알았지만 재위 5년만에 공삼거사의 문민군에
게 쫓겨 보위를 내주고 하야하게 되니, 왕위에 있을 땐 강아지 같이 따르던 무리들은 다 어디로 내빼고 호랑이 같은 사감원에선 비리를 조사
한다고 질의서를 보내고 야단이구나.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사는 친구 일해는 배신했다고 안면몰수 아는체도 안하고. 친구 잃고 권세 잃고. 아아, 이 모든 부귀와 영화가 뜬구
름이로구나 탄식하며 기지개를 켜며 잠을 깨니, 여옹이 아까 잠들기 직전 짓던 저녁밥을 푸다 빙긋이 웃으며  잘잤어?

노가리 구어놨응게 반찬혀서 밥무라.  하는 것이었다.

 

두번째 꿈
  하루는 도교(道敎)의 두번째 교조라고 일컫는 장주(莊周)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나비가 되었다. 너풀너풀 춤을 추는 나비였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자신이 장주라는 것도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너무나도 신이 나서 노랠지어 부르며 다리를 꼬고 흔들며 춤을 추고 오도방정을 떨었다.
 
   홀랑나비 한 마리가 꼬바테 안잔는데
   도대쳐 한 놈씨도 즐겨찬는 이 하나 음네
   하루 이틀 기다려도 도대쳐 사람 음네
   이것참 속상혀 속상혀 못 살긋네
   홀랑나비야 나르봐 하늘 노피 나르봐
   홀랑나비야 나르봐 구름 위로 슈머봐…
 
  이렇게 신나서 노래를 부르며 호랑나비춤을 추다가 잠에서 깨어 보니 자신은 엄연한 장주였다. 대체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장주와 나비에는 분명하게 구별이 있을 것이다. 도가(道家)에서는 이것
을 일러 변화라고 한다. 실재의 세계에서는 꿈도 현실이며, 현실 또한 꿈인 것이다.
  장자도 나비이며, 나비 또한 장자일 수 있다. 일체 존재가 상식적인 분별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세계,

즉 이른 바 조화하는 세계만이 실재의 진상(眞相)인 것이다.
 
  후에 장주로부터 꿈이야기를 전해들은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이자 영원한 환타지스트인 김은중은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장주에
게 건넸다고 한다.
 
  어제는 보석같이 화사한
  호랑나비러니
  오늘은 한 마리 배추흰나비 되었구나
  사양(斜陽)의 긴 노을 뒤따라
  나비야, 청산(靑山) 가느냐
  오늘 저녁은 바람 불고
  슬픈 사내의 가슴일망정
  꽃도 한 송이 피었으니
  잠시, 아주 잠시만
  쉬어 가려무나   ------ 김은중의 [보석고르기.4]


  … 역사 속에 감춰진 민족의 정기를 앙양하고
  … 선도 속에 감춰진 인생의 본의를 고양한다
 
 
  오호 애재라, 오호 통재라…
  색목인(色目人)과 황발인(黃髮人)들이 우리 한대국의 백성에게 옮긴 못된 풍조 중에 가장 황당한 것은 과학정신과 합리주의다.

어찌 인간의 짧은 식견이 저 높은 하늘의 법칙과 저 넓은 땅의 이치를 다 살필 수 있으며 그 좁은 지식이 허다한 인간세상의 원리를 한가지로 깨우쳐 알 수 있으리오. 그 두 편견은 일견 인간의 고매한 정신에서 우러난 것같이 보이지만 실인즉 눈에 보이는 현상만의 질서이며 물질에 대한 예속과 굴종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오늘의 사람들은 그 편견에 얽매여 지난 날의 빛나는 역사를 거지발싸개로 알고 오묘한 선도를 미친년 속곳으로 여기
는도다.
 
  저 옛 이인(異人)과 술사(術士) 기인(奇人)과 이사(異士)들의 부류가 미친놈이니 허풍쟁이니 하고 배척되고 사라진 것도 그 한 예다.  

아아 지난날 그들이 전하던 참다운 이치, 놀라운 행적, 오묘한 진리, 풍요로운 해학들이여! 그들은 초자연적인 직관에 의지하여 까마득한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고, 아득한 과거로 돌아가서 감추어지고 숨기어진 역사의 비의(秘義)를 캐내고, 무한한 포용력으로 저 먼 하늘의 뜻까지도 그들의 예지 위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세상이 평화로우면 심산(深山)과 궁곡(窮谷)에서 선도(仙道)와 불도(佛道)를 닦다가도 난세를 당하면 주저없이 저자거리로 내려와 방술과
부적으로 혹은 영단(靈丹)과 주문으로 창생의 고난을 덜어주었다. 그들이 부르면 구름과 바람과 안개와 비도 마다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이 꾸짖으면 못된 병마와 악귀는 천리만리 달아났다. 그들은 재물도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구치 아니하였으며,

다만 창맹의 안락을 기쁨으로 삼았다.
 
  그들 앞에서는 제왕도 제후도 대관도 학박사도 겸손히 무릎 꿇고 가르침을 구했으며, 그들이 한번 입을 열어 국가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면 설령 천년 후의 일일지라도 털끝 하나 어김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일부는 혹세무민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장작더미 위에서 불사름을 당하고
일부는 사회혼란이라는 명목하에 박해의 칼날에 피를 뿌려야 했다. 또한 대부분의 어리석은 민중들은 쥐꼬리만한 지식과 학문의 굴레 속에
서 과학과 합리라는 방패를 내세우며 그들을 경멸하고 조롱하며 배척하는 가운데 그들은 질식하고 소멸되어 갔다.
  제왕과 제후는 천명에 의하기보다는 투표라는 우중(愚衆)의 선택을 통하여, 대관과 대부는 초빙에 의하기보다는 편협한 고시(考試)를 통
하여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몇 권의 얄팍한 양서(洋書)를 읽는 것과 교묘한 교제로 인재인 양 가장하여 출세를 하고 득세를 하게 되었다.
 
  영광스럽던 우리의 고대사를 비롯한 모든 역사는 골동품처럼 봉분 속으로 묻히고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는 허울좋은 부르짖음 속에 민중
의 눈길은 바깥으로만 쏠리게 되었다. 내것 우리 것은 버려진 채 선진이니 개방이니 하는 미명하에 남의 것 흉내내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또한 민속과 무속은 각종 화려하고 요란한 외래 종교와 철학 사상에 떠밀리어 미신이니 광신이니 하는 손가락질 속에 쓸쓸히 고루에 버려
진 고서화처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잊혀져 가고 있다. 웅혼한 기상과 원대한 꿈을 온전히 잃어버린 세대는 점차로 인간성을 상실하여 기계
적이 되어 획일화 도식화되어 버렸다. 피는 흘러도 뜨거움이 없고 눈물은 흘러도 궁휼함이 사라져 버리었다.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이 시대의 마지막 기인이자 말라 비틀어진 천재인 이외수는 [벽오금학도]에서 다음과 같이 뇌까렸다.
   모든 신화가 퇴락해 가고 있었다. 무분별하게 밀려닥친 서양 바람에 안질이 걸려 사람들은 주체성을 상실한 채 모든 미풍양속을 쓰레기통
속에다 내던져 버리고 있었다.
  공맹은 서양 불길에 화장되었고 노장은 서양 물결에 수장되어져 있었다. 황야의 무법자가 임꺽정의 산채에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뉴톤이
고등학생의 머리를 쪼개고 법칙의 사과를 강제로 쑤셔 넣고 있었다
 
  한대국 한배검 배달족의 정신적 황폐화를 심히 근심하시던 상계(上界)의 옥황상제께옵선 태일전(太一殿)의 자미대제(紫微大帝)를 부르시
어 이 문제를 상의하시었다.
  두 분 천제(天帝)의 오랜 상의 결과 옥황상제의 시어관(侍禦官)으로 측근에서 시봉하던 보칠산 김신선을 하강케 하여 숨겨진 한대국의 역
사를 드러내고 잊혀진 한배검의 선도를 나타냄이 가하다는 결론이 나매, 울며불며 마다하는 김신선을 한대국 청충도 땅 광김(光金) 문중에
출생케 하고 그 후 기경도 물골의 보칠산으로 들어가 신선 수련을 시킨 후 속세에 와서 역사와 선도를 전하게 하였으나…
 
  아아! 상계를 버리고, 그 화려한 지위와 영화를 버리고 인간 세속에 와서 아무리 떠들고 외쳐도 목욕탕 이야기니 이불속 이야기니 야한 여
자 이야기니 형수 따먹는 이야기니 하는 것들에 비하여 조회수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상제께서는  보
칠산아! 너는 한대국과 온 게다국과 아무러케국의 땅 끝까지 이르러 선도의 증인이 되라.  고 분부하셨는데, 피리를 불어도 애곡하지 않으
며 장구를 두드려도 춤추지 아니하니, 진실로 상제님 보시기에 황공이 무식이로소이다.
 
각설하고 세번째 꿈이야기.
  때는 게다국의 식민시절 말기인 갑신년.   경기도 김포 고촌면 풍곡리 땅에 신심이 깊은 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이름하여 서학진.
  달성(達城)서씨 서진의 직손인 바, 달성 서씨가 어떤 가문이라더냐?
  조선 4대 문벌(文閥) 아니냐. 4대 문벌이라 함은 3대 대제학을 배출한 명문 중의 명문을 말하는데 이에는 광산 김씨의 사계집, 달성 서씨
의 약봉집, 연안 이씨의 월사집, 전주 이씨의 백강집이 있더라.
  어릴 때부터 선도를 깊이 믿고 옥황상제를 받들며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그런 착한 아이였다. 평생에 소원이 꿈속에서라도 옥황상제
님을 한번 뵙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그 정성에 감천하였는지 한날은 꿈에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서찰을 한통 주는 것이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이것은 앞으로 이 세상이 되어질 일을 예언한 참요(讖謠)이니 잘 간수하였다가 임자가 나타나면 주
어라 하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누가 임자인지 언제 임자가 나타나는 건지 일체 대답없이.
 
  너무나도 그 꿈이 선명한 가운데 깨어나 보니 정말로 머리맡에 서찰이 한 통 놓여 있었다. 다름 아닌 꿈 속에 건네받은 그 서찰이.

소스라치게 놀라 식구들을 불러 물어 보니 방금 전에 우편군사(오늘날의 집배원)가 주고 가더라는 것이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뜯어보니 거기엔 다음과 같은 한시가 적혀 있었다.
 
   朝雨蒙蒙萬樹春 (조우몽몽만수춘)
   華歌一曲掃精神 (화가일곡소정신)
   米價如金不救貪 (미가여금불구탐)
   露花先墮蟲聲動 (노화선타충성동)
   永生不死人間願 (영생불사인간원)
   獨男獨女合房歡 (독남독녀합방환)
   佛像再起通市場 (불상재기통시장)
   日光中天黃昏早 (일광중천황혼조)
 
  학진 소년은 한시를 해독할 능력이 없어서 이웃의 서당 훈장님께 가지고 가서 풀이를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훈장님은 고개를 갸우뚱자우뚱 하며 이상한 시라고 하면서 대충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하였는데…
   아침에 보슬보슬 내리는 비에 만물이 봄을 맞았고
   빛나는 노래 한 곡조에 정신이 맑아온다
   쌀값이 금값이라도 탐내어 구하지 말며
   이슬꽃은 벌레 먹기도 전에 먼저 지는구나
   영생불사는 인간의 소원이로되
   외로운 남자와 외로운 여자가 만나니 기쁘도다
   불상은 시장 한가운데 다시 세워지는구나
   햇빛은 중천에 있으나 황혼이 쉬이 오리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풀이를 하는 서당 훈장이나 서씨 소년이나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러저러 다음해 을유년을 맞게 되었
는데, 설날밤 꿈속에 그 도인이 다시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뭇개가 도둑을 보고도 짖지 못하니
   나라를 빼앗겼으나     (庚戌國恥)
   뭇닭이 새벽을 알리려 일제히 우니
   도둑이 쫓기는도다     (乙酉解放)
   금년에 서찰의 임자가 나타나리라
   금빛나는 아홉 구름을 타고 오리라.
 
  그 해 팔월 참요의 마지막 구절처럼 게다국의 기세가 중천(中天=중국천하), 뙤나라에 아직 머물고 있던 시기에 게다국은 구름폭탄 두 방
에 꺼꾸러지고 한대국은 해방을 맞이하였다.
  얼마 후 상해에서 무장 독립항쟁을 하던 임정백 범백후 금구대감이 임정 요인들을 거느리고 김포 비행장으로 귀국한다는 소문이 들려왔
다. 서소년은 금구 대감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금(金) 구(九)라면 금빛나는 아홉 구름이란 뜻이 아니냐.
 
  그런 일이 있고부터 서소년은 매일같이 비행장으로 나가서 죽치고 기다렸다. 한대국 독립운동사의 불세출의 영웅 금구 대감을 만나서 그
서찰을 전하려고.   그렇게 기다리던 어느 날 드디어 금구 대감 일행이 김포에 도착하였다. 너무 기뻤던 서소년은 인파를 헤치고 막 달려가서 퇴색한 서찰을 허위허위 금구대감에게 전하였다. 그 서찰을 펼치고 한시를 읽은 금구 대감의 안색이 심각하게 굳어지더니 곧 이어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놀라운 천기로다…하고.
 
  금구 대감이 풀이하신 뜻은 이러하였다고 한다.
  조우(朝雨)는 조선이라는 뜻으로 조선은 하나로 통일될 기운이 무르익었으며, 화가(華歌)란 뙤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뙤나라는 옛영화를
되찾을 날이 다시 있을 것이란 뜻이며, 미가(米價)란 아무러케국을 말하는 것으로 훗날 쌀값 즉 쌀 시장 개방으로 우리를 못 살게 굴 날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고, 노화(露花)란 아라써국을 뜻하는 것으로 국제 공산주의의 종주국 역할을 하지만 사방에서 일어나는 반동세력에 의
해 붕괴되리라는 뜻이고, 영생(永生)은 영국이 영원할 것 같지만 국제세계에서의 위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뜻이고, 독남(獨男)은 독일이란
뜻으로 분할되지만 나중에 합방(合房)하는 남녀들처럼 국가가 다시 합방(合邦)되리라는 뜻이며, 불상(佛像)은 불나써국을 뜻하는 것으로 불
나써국은 구라파 시장의 통합을 통하여 권세를 잡을 것이라는 뜻이며, 일광(日光)이란 게다국을 뜻하는 것으로 그들의 위세는 중천에 있지만
그만큼 황혼이 올 시간이 이르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즉 이 참요는 세계 8대 강대국인 한대국(Korea) 뙤나라(China) 아무러케국(America) 아라써국(Russia) 잉기리수국(England) 덕국
(German) 불나써국(France) 게다국(Japan) 등의 장래와 운명을 예언해 놓은 시였던 것이었다.
  
  이 예언을 해석해 낸 임정백 범백후 금구 대감은 예삿 사람이 아님을 알겠도다. 그 후 이 참요가 세상에 은밀히 퍼지는 가운데 이를 본딴
동요가 생겨나서 인구에 회자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놈들 믿지말고
  소련놈에 속지말고
  조선사람 조심해라
  중국놈은 중심잡고
  일본놈은 일어선다
 
  털큰중의 선교적인 꿈 이야기 세가지를 들은 신진사와 신도령은 감격에 겨운 듯 암말도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성후는 무언가 커다
란 충격을 받은 듯 연신 눈을 꿈뻑꿈뻑하고 있다. 길다란 침묵을 깨고 털큰중이 말문을 열었다.
 
   유고치로야!    예.
   지금까지의 꿈 이야기를 듣고 네가 느낀 서양정신을 네 나름대로 말해 보아라.
   예. 서양정신은 비교와 분석으로부터 시작하여 주 객을 분리하고 나와 너를 분리하며 신과 인간을 분리하고 자연과 사람을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 상호대립하게 되고 경쟁하게 되고 투쟁하게 되고 정복하려 들게 되니까, 마침내 주와 객, 너와 나, 신과 인간, 자연과 사
람이 함께 파멸되어 버린다고 생각됩니다.
 
  신진사는 놀랐다.
   그동안 성후를 앉혀 놓고 털큰중이 들려 주는 역사와 선도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후가 저런 안목을 갖고 있다니    그동안 정말 많이
컸구나. 원래 하나를 갈치면 둘을 아는 녀석이기는 하지만, 역시 털큰중을 사부로 모셔 들이기를 백번 잘 하였구나.
 
   유고치로야!    예.
   그러면, 우리 동양정신은 어떠하다고 생각하느냐?
   예. 서양정신이 이루지 못하는 그 양자의 통일과 화합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각기 다른 존재임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서
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유고치로야! 너의 깨달음의 세계가 일취월장하는구나. 방금 네가 말한 그런 세계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라 하느니라. 서로의 개
성을 인정하면서 자기를 지키고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조화하는 것이니라.
  공자는 이를 두고  소인은 동화하기는 하되 조화하지 못하고, 군자는 조화하기는 하되 동화되지는 않는다(小人 同而不和 君子 和而不同) 라
고 하였느니라.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지상낙원도 이룰 수 있느니라.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대사님! 내일은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 주시겠습니까?
   그럼, 내일은 세달사의 꿈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꿈의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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