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모사드’는 왜 세계 최강인가

醉月 2010. 3. 9. 08:12

‘모사드’는 왜 세계 최강인가

안보와 생존을 동의어로 보는 이스라엘 정보 기관…요원들, 세계 각처 유대인들의 협조 받아

   
▲ 2월18일 론 프로서 영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운데)가 하마스의 지도자 암살 사건과 관련해 영국 외무부에 소환되었다가 귀가하고 있다.

ⓒEPA 연합

 

    ▲ 모사드의 다간 국장

ⓒAP연합

2천년간의 타국 생활(디아스포라)을 끝내고, 2차 대전의 대학살(홀로코스트)을 겪은 후 1948년 건국의 꿈을 이룬 유대인들에게 안보와 생존은 동의어이다. 적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고조된 안보 의식과 건국 이래 전시 상황이 아닌 적이 없다는 긴박감이 오늘의 ‘모사드(Mossad)’를 만들어냈다. 1938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속속 불러들이기 시작할 무렵 태동한 모사드는, 건국 1년 후인 1949년 이스라엘 초대 총리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 정보 기관들을 중앙에서 관장할 목적으로 창설한 정보 기관이다. 그 후 1951년 총리실 직속으로 구조조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모사드의 모토는 구약 성경 잠언 24장 6절의 구절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For by wise guidance you can wage your war, and in abundance of counselors there is victory)’였다. 여기서 한국어로 ‘모략(wise guidance)’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기만’ 또는 ‘속임수’를 뜻하고, ‘모사(counsellors)’는 ‘조언을 주는 자’라는 의미이다.

 

최근 이 모토가 위의 모략과 모사라는 같은 키워드를 담고 있는 잠언 11장 14절 ‘모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Where there is no wise guidance, a nation falls, but in an abundance of counselors there is safety)’로 바뀌었다. 한국어로 ‘평안(safety)’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안전’ 또는 ‘안보’를 뜻한다. 잠언의 구절을 정보 기관인 모사드의 모토로 삼는 것은 유대인들이 선민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구약 성경이었기 때문이다. 모사드의 모토의 핵심이 승리에서 안전으로 바뀐 점은, 전쟁의 승리는 일회적이지만 안전 또는 안보는 지속적인 요소라는 점을 감안했다고 여겨진다.

모사드는 창설 이래 현 마이어 다간 국장을 포함해서 10명의 수장이 있었다. 이 중에 2대 국장을 지낸 이세르 하렐(1952~63) 재임시에, 2차 대전 때 유대인 학살의 원흉 가운데 한 명인 독일 아돌프 아이히만 장군의 행방을 15년간 추적한 끝에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찾아내서 납치해 이스라엘로 데려와 법정에 세우고, 결국 1962년 처형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유대인을 해한 자는 끝까지 찾아내어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5대 국장인 이자크 호피(1974~82) 재임 때인 1976년에는, 이스라엘 승객을 태운 프랑스 여객기를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서 무사히 구출해낸 작전으로 모사드의 국제적 명성이 높아졌다.

 

모사드는 8개 부서로 구성되어 있고, 주요 부서와 임무는 다음과 같다. 정보수집국은 해외 공작을 책임지며 모사드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모사드 요원들은 해외 공관의 외교관 신분과 신분 위장을 통해서 해외에서 활동한다. 정치 활동 및 연락국은 이스라엘 우방 정보국들 및 이스라엘이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국가들과의 정치 활동 및 연락을 담당한다. 멧사다(Metsada)로 알려진 특수작전국은 극도로 민감한 암살, 비정규전, 심리전 등을 수행한다. LAP국(Lohamah Psichologit Department)은 심리전과 정치 선전 그리고 기만 작전을 담당한다. 연구국은 일일 상황 보고서, 주간 보고서와 월간보고서를 포함한 정보를 산출하며 지역별로 15개 분과로 구성되어 있다. 15개 분과는 미국, 캐나다, 서유럽, 남미, 옛 소련 지역, 중국, 아프리카, 마그레브(모로코·알제리·튀니지), 리비아, 이라크, 요르단,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그리고 이란으로 나뉘어 있다. 기술국은 모사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적 지원과 첨단 장비를 제공하는 부서이다.

 

세계 각국 주요 자리에 정보원 심어두고 ‘막강’ 첩보 작전 수행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 시절, 같은 KGB 출신이고 푸틴의 측근으로서 보안위원회 수장을 맡았던 세르게이 이바노프에게 세계 최고의 정보 요원을 가진 나라가 어디냐고 물었을 때 러시아와 함께 영국과 이스라엘을 꼽은 적이 있다. 영국의 MI6는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과 전통을 갖고 있어 요원들을 제대로 준비시킨다고 평가했고, 이스라엘 정보 요원들은 세계 각처의 애국적인 유대인들의 협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강하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 정보 요원들에 대해서는 돈이 너무 많아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를 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창설 이래 모사드가 이룬 대표적인 성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모사드의 능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계기는 1956년 옛 소련 정치국에 심어놓은 정보원을 통해 스탈린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흐루시초프의 연설문을 모사드가 입수해 미국에 전달함으로써 소련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6일 전쟁’ 직전 이집트 공군에 대한 이스라엘 공군의 기습 폭격을 위한 사전 정보를 모사드가 제공했다. 그리고 1976년 엔테베 작전에서 작전 개시 전 현장 파악과 함께 우간다를 빠져나온 모사드 요원들과 승객들을 태운 여객기가 인근 케냐에 착륙해 재급유를 받도록 사전 허락을 받게 한 것도 모사드의 공로였다.

 

1978년에서 1981년 사이 이라크의 핵 개발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공습으로 이라크 핵시설을 파괴한 ‘스핑크스 작전(Operation Sphinx)’을 모사드가 해냈다. 독일 일간지 디 자이트에 따르면 9·11 사건 전에 모사드 요원이 비행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랍인들의 동태를 미리 파악하고 정보를 제공했으나 미국 CIA(중앙정보국)가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이 아랍인 둘이 바로 뉴욕무역센터에 여객기를 몰고 충돌한 모하메드 아타와 마르완 알 세히였다.

모사드는 수많은 암살과 함께 납치도 감행해왔다. 1960년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로 납치한 사건과 1986년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한 모르데차이 바누누를 영국에서 이스라엘로 납치해서 반역죄를 물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모사드의 강점은 주요 자리에 정보원을 심어두고 있다는 점이다. 엘리 코헨은 시리아 대통령의 가까운 친구로서 국방장관 물망에 오르던 인물이었으나, 모사드의 끄나풀인 것이 발각되어 처형당한 적이 있다. 또, 이스라엘은 이란의 아스카리 장군을 포섭했고, 그는 2003년 이후 모사드에 정보를 제공해왔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기 직전 모사드는 이스라엘로 그를 무사히 피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영국 BBC는 지난 2월24일 하마스를 창설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의 아들인 모사브 유세프가 모사드의 정보원으로서 10년간 하마스의 극비 사항을 이스라엘에 넘겨왔다고 보도했다.

 

모사드가 암살과 납치 이외에 뛰어난 정보 수집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적성국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우방인 미국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전 미국 FBI(연방수사국) 요원에 따르면 냉전 시절 모사드의 미국 내 활동은 소련 다음으로 활발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FBI의 대이스라엘 첩보 부서의 규모가 소련 데스크 다음으로 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FBI에 따르면 백악관과 NSC(국가안전보장회의)의 4개 전화가 도청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모사드는 미국 국무부, 백악관, 국방부, 법무부 등의 고위직 인사들의 통화를 도청해 온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모사드 손에 들어간 정보 중에는 FBI 내에서 가장 민감한 전화번호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FBI의 감청 번호와 이스라엘의 스파이 활동을 추적하는 팀의 번호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추적당하는 자가 추적하는 자를 추적한 것이다(The hunted were tracking the hunters)’.

이처럼 모사드는 전세계 미국 첩보 조직망을 꿰뚫고 있다. 그럼에도 워싱턴의 분위기는 우방인 이스라엘의 미국 내 간첩 활동이 가져올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한 예로, 2004년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미국 의회 로비 단체로 알려진, 미국과 이스라엘의 친선 도모 기관인 미국·이스라엘 홍보위원회(AIPAC)의 연구실장 스티븐 로젠이 미국에 대한 모사드 첩보 활동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미국뿐만 아니라 모사드는 네덜란드 전자 첩보 네트워크를 침입했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독일 통신회사 도이체텔리콤 전체를 이스라엘이 컨트롤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우방국들 내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 모사드 웹사이트(www.mossad.gov.il)에 명시된 세 가지 주요 임무는 정보 수집, 첩보 분석 그리고 국외 특별 비밀 작전(special covert operations beyond its borders) 수행이다. 이번 두바이 암살 사건이 모사드의 소행이라면, 주요 임무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다.

두바이에서 암살된 알마부는 1989년 휴가 중인 이스라엘 병사 두 명을 납치·살해한 사건으로 모사드의 추적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는 지난 가자 전쟁에서 이란제 미사일과 자금을 대는 통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마부는 하마스(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 단체) 내 과격 분파인 이자딤 카쌈의 공동 창설자로서 두바이 항공권을 인터넷으로 예매한 것이 암살에 노출된 배경이다. 더불어 투숙 중에 호텔 전화로 가자에 있는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한 것도 암살 위험을 더 높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은 알마부를 모사드가 11명 또는 그 이상의 인원을 동원해서 암살했다는 두바이 경찰의 발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두바이 경찰은 모사드가 이번 암살에 관여했다는 분명한 증거를 곧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11명으로 짐작되는 암살조가 사용한 신용카드 거래 내역과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밝히면 암살조의 배후를 밝혀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이스라엘은 모사드가 이번 사건의 배후라는 것을 두바이 경찰이 증명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에 차 있는 듯하다.

이스라엘 외무차관인 대니 아얄론은 이번 암살이 이스라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유럽연합(EU)과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는데, 이번 암살에서처럼 EU 회원국 여권을 위조하면서 관계 악화를 도모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루살렘포스트 2월22일자에 따르면 이스라엘 외무장관 아비그도르 리버만은 아일랜드 외무장관 마이클 마틴을 만나 모사드가 저지른 일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또, 아랍 국가들은 많은 암살 사건과 관련해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는데, 그것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리버만 장관은 이번 암살 사건도 아랍 세계에서 저질렀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중동 정치는 내분이 심해 서로 반목하는 국가들과 단체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이스라엘의 네탄야후 총리가 텔아비브에 위치한 모사드 본부 건물(미드라샤)을 방문해 다간 국장으로부터 알마부에 대한 암살 작전을 브리핑받고 재가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일이다. 총리실 직속인 모사드는 주요 사안들을 총리의 승인과 지시에 따라 행해왔다. 잘 알려진 사건으로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 테러 사건을 주도한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에 대한 보복 암살도 당시 총리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모사드를 이끄는 다간은 2002년 강경파 샤론 총리에 의해 제10대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취임 이후 모사드의 비밀 암살 작전이 급증했다. 동시에 모사드는 인력 충원을 위해 인터넷에 새로운 요원을 선발한다고 광고를 해 인력을 세 배나 늘렸다. 다간 국장이 모사드의 국장이 된 후 전통적인 정보 수집에 쓰이던 예산 중 3억5천만 달러가 암살과 같은 현장 특수 임무에 전용되었다고 전한다.

 

 란 핵 개발 지연시킨 일련의 사건 ‘배후’로 지목되기도     
▲ 모사드 요원들이 하마스 지도자를 암살했다는 의혹을 받고있는 가운데 두바이 경찰이 증거 자료로 삼은 사진.

ⓒAFP 통신

다간 국장이 8년간 모사드를 지휘하면서 헤즈볼라와 하마스 지도부에 대한 표적 암살이 자행되어왔다. 2008년 다마스커스의 차 폭파로 이마드 무그리예를 제거했다. 무그니예는 1983년 베이루트 주둔 미 해병대에 대한 테러 공격의 배후 인물로 20년 넘게 이스라엘과 미국이 수배해 온 인물이었다. 2009년 12월 하마스 대원과 이란 관료들을 태운 버스가 다마스커스 외곽에서 폭발했고, 2주 뒤에는 베이루트에서 의문의 폭발로 하마스 대원 두 명이 숨졌다.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테헤란에서 이란 핵물리학자가 폭탄 공격으로 사망했다. 한 주 뒤에는 알마부가 두바이 호텔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일련의 표적 암살이다.

 

다간 국장이 지휘하는 모사드에는 두 가지 우선적 임무가 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지연시키는 것과 대테러 작전이다. 다간이 국장을 맡은 이후 모사드는, 파키스탄의 압델 칸이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돕고 있다는 정보를 미국에 건넨 바 있다. 그 이후 이란 핵 개발과 관련해 설명되지 않는 일련의 일들이 벌어졌다. 핵과학자가 실종되고, 연구실에 불이 나고, 이란 핵기술자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고, 수입한 장비들은 작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2007년 모사드는 시리아가 북한에서 들여와 건설 중인 핵발전 시설에도 폭격을 감행했다.

모사드는 지난해 9월 이란의 성지인 코암 근방에 이란의 감춰진 우라늄 농축 시설을 발견해 이란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던 국제 사회에 주의를 환기시키려 했다. 다간 국장은 2014년에는 이란이 핵무기를 제작할 능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이 이 시점이 되기 전에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 이스라엘 노동당 당수인 암람 미츠나는 다간을 가리켜, 일단 임무가 주어지면 그를 막을 사람이 없다고 자신의 경험을 빌어 털어놓았다.

다간 국장은 전임자들보다 더욱 적극적인 해외 공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로 공급되는 무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수단이나 사이프러스까지 이스라엘 특수부대를 투입시키고 있다. 이란에 대한 다간 국장의 조치들을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두바이 작전에서 나타났듯이 테러리즘에 대한 전술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부류가 있다. 즉, 이와 같은 암살 작전은 이스라엘이 외교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를 키우고, 오히려 테러리스트의 대량 보복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고 보고 있다.

다간 국장의 임기가 올해 말에 끝난다. 하지만 다간 국장의 그간 업적은 전례 없는 4회 연임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특히 이란에 관한 한 다간 국장은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가 연임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마스 고위 인사 암살에 모사드 요원 추정 26명 개입 확인…
진실 규명·책임자 처벌은 용두사미 될 가능성 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초대형 블록버스터 첩보물이 한 달 넘게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화려한 출연진에 국경을 넘나드는 스릴이 있다. 음모와 배신, 암살과 추적, 그리고 힘있는 각국 정치인들의 카메오 출연까지. 흥행작이 될 만한 모든 조건을 두루 갖췄다. 영화보다 훨씬 영화 같은 현실이다.

지난 1월20일 오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특급호텔 알부스탄 로타나 230호실에서 중년의 한 사내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별다른 외상은 없었다. 심장마비에 의한 자연사일까? 하지만 주검의 신원을 확인한 두바이 경찰 당국은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숨진 이는 팔레스타인 저항단체 하마스의 고위 인사인 마무드 마부(50)였다.

»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경찰 당국은 지난 1월20일 숨진 채 발견된 하마스 고위 인사 마무드 마부 암살 사건에 가담한 용의자들의 신원과 출입국 경로를 자세히 담은 수사 결과를 2월24일 추가로 발표했다. 이로써 마부 암살 사건의 용의자는 26명으로 늘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30여 년째 반이스라엘 투쟁해온 ‘거물’

마부는 1960년 2월14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의 자발리아 난민캠프에서 태어났다. 1970년대 중반 중학교를 중퇴하고 일찌감치 반이스라엘 운동에 뛰어든 그는 1978년 ‘이슬람형제단’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장투쟁에 가담했다. 1987년 고향인 자발리아에서 팔레스타인 민중봉기(제1차 인티파다)가 시작된 직후 마부는 하마스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인티파다가 한창이던 1989년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살해하는 데 간여한 직후 망명길에 올랐다. 이집트와 리비아를 거쳐 시리아에 정착한 그는

최근까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무대로 활동해왔다.

이스라엘 당국은 그동안 마부가 “이란 쪽에서 무기를 구해 가자지구로 밀반입시킨 책임자”라고 지목해왔다. 이번에 두바이에 간 것도 “이란을 통해 무기를 밀매하기 위해서”라는 게다. 하마스 쪽도 이를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불법 무기 거래 시장은 ‘음산하고도 위험한 세계’로 통한다. 계약이 틀어지면 때로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오랜 세월 그 세계에 몸담았던 마부의 목숨을 노릴 만한 세력이 적지 않을 것이란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비난의 화살은 오직 한곳으로 모이고 있다. 바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다.

정황은 충분하다.


우선 모사드는 지끔껏 여러 차례 마부의 목숨을 노렸다. 몇 차례 독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1999년엔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그를 납치해 이스라엘로 압송하다가 막판에 놓치기도 했다. 가자지구에서 날아드는 로켓을 이유로 지상군을 동원해 전면 침공까지 나섰던 이스라엘이다. 그리로 향하는 무기를 대주고 있는 마부는 첫손에 꼽을 만한 눈엣가시였을 게다. ‘범행 동기’는 충분하다는 얘기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두바이 경찰 당국이 일찌감치 “모사드의 소행임이 99% 확실하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두바이 경찰이 지금까지 밝혀낸 사건의 전모를 재구성해보자.

지난 1월18일 다마스쿠스 공항에 ‘마무드 압둘 라오프 모함마드’란 이름의 남성이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신분을 위장한 마부였다. 그는 에미리트항공 912편에 탑승해 두바이로 향했다. 영국 〈BBC방송〉은 2월18일 인터넷판에서 “어딜 가든 경호원과 동행하는 마부가 혼자서 비행기에 오른 까닭은 같은 항공편의 또 다른 좌석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경호원들은 이튿날 두바이에서 마부와 합류하기로 돼 있었단다.

앞서 두바이 경찰 당국은 2월15일 수사 결과 중간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어 마부가 투숙한 호텔의 폐쇄회로텔레비전 화면과 용의자 11명의 신원을 공개했다. REUTERS/ JUMANA ELHEIOUEH
 

미행과 감시, 치밀한 작전 끝 살해

마부가 두바이로 향하고 있을 무렵인 이날 밤 12시께, 독일 여권을 지닌 미하엘 보덴하이머란 남성과 영국 여권을 지닌 폴 존 킬리란 남성이 두바이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30여 분 뒤엔 아일랜드 여권을 손에 쥔 개일 폴러드란 여성이 역시 아일랜드 여권 소지자인 케빈 데이브런이란 남성과 함께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이들은 각각 따로 택시를 타고 두바이 시내의 서로 다른 호텔에 투숙했다. 이후에도 아일랜드·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레일리아 여권을 지난 ‘관광객’과 ‘사업가’ 20여 명이 파리·뮌헨·카타르 등지를 거쳐 속속 두바이로 입국했다.

마부는 1월19일 오후에야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두바이 경찰 당국이 공개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보면, 이날 오후 3시17분께 입국 수속을 마친 뒤 짐을 찾는 마부의 곁에는 티셔츠 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미행조였다. 공항을 빠져나온 마부는 곧장 인근 알부스탄 로타나 호텔로 이동했다. 체크인 시각은 오후 3시25분께. 그가 투숙 수속을 하고 있는 주변에선 테니스 라켓을 든 남성 2명이 배회하고 있었다. 수속을 마친 마부가 객실 안내요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하자 그중 1명도 올라탔다. 마부의 방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게다.

 

그로부터 약 30분 뒤, 알부스탄 로타나 호텔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이 호텔 237호실을 예약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마부가 투숙한 230호실 맞은편 방이었다. 시시각각 조여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한 마부는 짐을 부린 뒤 곧 외출에 나섰다. 그가 방을 비운 새 4명의 남성이 미리 준비한 열쇠로 문을 따고 마부의 방으로 잠입했다. 마부가 객실로 돌아온 것은 이날 저녁 8시30분께. 두바이 경찰 당국은 “암살자들이 마부를 급습해 베개 등으로 질식시켜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입국한 지 5시간30분 남짓 만의 일이다.

공개된 호텔의 CCTV 화면을 보면, 이날 저녁 8시52분께 암살에 가담한 용의자로 지목된 남녀 한 쌍이 유유히 호텔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마부 암살 작전은 마무리됐다. 암살범들은 살해 현장을 빠져나가면서 방문에 ‘방해하지 마시오’란 표식을 걸어두는 치밀함까지 보였단다. 아랍에미리트 영자지 <걸프뉴스>는 2월24일 인터넷판에서 경찰 당국자의 말을 따 “19시간 남짓 두바이에서 ‘작전’을 펼치는 동안 암살범들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져온 선불제 휴대전화 7대를 이용해 서로 연락을 취했으며, 역시 남의 명의로 발급받은 신용카드 17개를 사용했다”며 “CCTV 화면에 모습이 찍힐 때마다, 용모와 복장을 지속적으로 바꾸는 등 신분 위장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전했다.

 

» 암살된 하마스 고위 인사 마무드 마부의 부친이 지난 1월29일 팔레스타인땅 가자지구 북부의 고향 집에서 아들의 증명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MOHAMMED SALEM
 

주로 이스라엘 거주 이중 국적자들 여권 도용

‘작전’이 치밀했던 만큼 동원된 인력도 대규모다. 애초 11명으로 알려졌던 용의자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18명으로 늘더니, 두바이 경찰 당국이 3차 수사 결과를 발표한 2월24일엔 신원이 확인된 용의자만 26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두바이에 들고 나기 위해 사용한 것은 각각 영국(12명)·아일랜드(6명)·프랑스(4명)·오스트레일리아(3명)·독일(1명) 여권이었다. <걸프뉴스>는 두바이 경찰 당국자의 말을 따 “이 가운데 23개는 남의 명의를 도용해 공식적으로 발급받은 ‘진품’이고, 위조된 여권은 3개에 불과하다”며 “명의를 도용 당한 이들 상당수는 현재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이중 국적자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충격적이다. 공포를 느낀다.” 이스라엘 북부 나쇼림 키부츠에서 살고 있는 영국계 이스라엘인 폴 존 킬리는 마부 암살 사건 용의자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직후 현지 일간 <마리브>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년 새 여권을 잃어버리거나 외국 여행을 한 일도 없다”며 “암살사건 수사 발표에 내 이름이 나온 것을 본 뒤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두바이 당국이 ‘용의자’로 지목한 마크 데니얼 스클라는 현지 텔레비전 <채널10>과 한 인터뷰에서 “이러다가 700만 이스라엘 국민 모두의 이름이 도용되는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모사드가 명의를 도둑질해 여권을 만들거나, 위조한 여권을 사용한 전례는 부지기수다. 1973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작전 도중 붙잡힌 실비아 파라엘 요원은 캐나다인 사진기자 퍼트리샤 록스버그 명의로 된 여권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함께 붙잡힌 다른 요원들도 각각 영국과 프랑스 여권을 사용했다. 또 1997년 요르단 암만에서 하마스 최고지도자 칼레드 마샬을 독살하려다 체포된 모사드 요원 2명도 캐나다 여권을 사용했다.

두바이 경찰의 수사가 급물살을 타던 지난 2월21일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1월 초 메이어 다간 모사드 국장에게서 마부 암살 계획을 전해듣고, 이를 최종 승인해줬다”고 전했다. 1997년 칼레드 마샬 독살 미수 사건 당시에도 이스라엘 총리는 베냐민 네타냐후였다. 신문은 모사드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의 말을 따 “마부 암살 사건의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모사드 지휘부는 요원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일단 중동 일대에서 비슷한 첩보 작전을 잠정 중단하기로 한 상태”라며 “다간 국장의 자리도 위태로워 보인다”고 전했다. 마부 암살의 배후에 모사드가 있음을 기정사실화한 게다.

‘첩보 스릴러’에 배신이 빠질 수 없다. 두바이 경찰 당국은 이미 마부 암살 직후 요르단으로 도주했던 팔레스타인인 용의자 2명의 신병을 넘겨받아 범행 가담 여부를 추궁하고 있다. 시리아 당국도 다마스쿠스에서 마부의 측근을 붙잡아 사건 연루 여부를 캐고 있다. 내부 정보가 흘러들지 않고는 오랜 도피 생활로 신분 위장에 치밀한 마부를 암살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이들이 조만간 입을 연다면, 암살의 전모가 드러날 수도 있을 터다.

» ‘피는 피를 부른다.’ 지난 2월17일 마부의 고향 마을에서 열린 추모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하마스를 상징하는 초록 휘장을 두른 채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REUTERS/ SUHAIB SALEM
 

국제법 무시한 ‘초법적 처형’

암살의 배후에 모사드가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짐짓 여유를 부리고 있다. 용의자들이 사용한 여권의 발행국가 정부는 자국 주재 대사를 소환하는 등 상황 파악에 나서고 있지만, 이스라엘 쪽에선 “증거가 없지 않느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외교장관은 2월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아일랜드·영국 외교장관과 잇따라 만나 “언론 보도 내용을 빼고 이스라엘이 이번 사건에 관련돼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애초 사건 발생 직후만 해도 리에베르만 장관은 ‘전략적 모호성’을 들먹이며 “정보 활동과 관련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게 관행”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모사드 배후설’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던 게다. 하지만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파문이 커지자, 슬며시 적극적인 부정 쪽으로 말이 바뀌고 있다. 이를 두고 <알자지라>는 2월23일 인터넷판에서 “지금 리에베르만 장관은 (모사드의 활약상을) 떠벌리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마부는 절명했다. 암살 용의자는 전원 무사히 도주했다.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긴 했지만, 마부 암살 작전을 실패작으로 보긴 어렵다. “모사드보다 낫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치밀하게 사건을 파헤치고 있는 두바이 경찰 당국이 더 구체적인 수사 결과를 내놓기 전까지, ‘모사드 배후설’은 그야말로 ‘설’에 불과하다. 그래서다. 과거 모사드가 벌인 여러 사건과 마찬가지로, 지금으로선 마부 암살 사건 역시 ‘영구 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권 파동’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과거의 경험 탓이다. 해당국 정부는 한동안 ‘주권 침해’라며 목소리를 높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스라엘의 든든한 우방국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하긴, 어디 이스라엘뿐인가. 국제법 절차를 무시하고 전쟁을 벌이거나, 멋대로 테러 혐의자를 고문·구금·처단하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로선 쏟아지는 비난이 억울할 법도 하다. 미국이 이번 사건에 대해 아예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만약 외국의 정보기관이 마부 암살에 책임이 있다면 당연히 국제법을 무시한 ‘초법적 처형’에 해당한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월20일치에서 필립 앨스턴 유엔 초법적 처형 관련 특별보고관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앨스턴 보고관은 “설령 범죄에 연루된 혐의가 있는 인물이라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체포해 기소해야 하며, 자의적으로 냉혹하게 살해한 것은 어떤 법적 정당성도 있을 수 없다”며 “이런 식의 정치적 살인은 국제법의 근간을 뒤흔들고, 갈등의 불길을 확산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핵무장·유엔 무시 ‘깡패국가’ 버릇은 언제쯤

영국 <가디언>은 2월19일 인터넷판에 올린 기고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마침내 국제사회가 ‘깡패국가’에 단호히 맞서야 할 때가 왔다. 몰래 핵무장을 하고, 유엔의 각종 제재 조처를 무시하고, 일삼아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반인도적 인종분리 정책을 유지하고, 국제법을 어겨가며 정치적 반대자를 표적 암살하는 행태를 더 이상 두고 봐선 안 된다. …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은 언제쯤이나 이스라엘을 침공할 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