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남북한 군사력 비교

醉月 2010. 3. 17. 08:46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남북한 군사력 비교
“남한 단독으로도 10% 우세 주한미군 포함하면 압도적 우세”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

 

●핵심 군사시설 핵 피격 시뮬레이션 포함
●국방연구원 박사급 전문가 10여 명 투입된 1년 프로젝트
●남미에서 도입된 무기 리스트 등 국정원 최신정보 반영
●“연간 투자비는 1980년대, 총누적액은 2000년대 초반 추월”
●“북 우세”라던 군 당국 분석과 정면 배치
●국방부는 보고도 받지 못했다? … “군 견제하려 국정원 활용하는 듯”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1991년 논문에 담긴 뜻
●전 인수위원, “이전 전력비교는 비합리적…예산 타내려 이용한 것”


   

국가정보원이 그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등 군 당국을 중심으로 진행돼오던 남북한 군사력 비교를 독자적으로 수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가을부터 1년간 진행된 이 분석 작업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을 통해 이뤄졌고, 작업이 마무리된 2009년 8월 무렵 그 결과물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기할 것은 이 프로젝트의 결과가 그간 진행됐던 남북한 군사력비교 결과와는 사뭇 달랐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관련 분석이 여전히 북한의 전쟁준비태세나 군사전력이 남측보다 우세하다고 평가했던 것과 달리, 주한미군이나 전시증원 병력을 배제해도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10%가량 우세하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외부 전문가들이나 학계, 심지어는 주한미군 측에서도 남측 전력이 북측을 압도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군 당국은 북측의 전력이 우세하다는 그간의 ‘지론’을 계속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이번 연구결과를 둘러싸고 군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는 불만도 제기되는 형국이다.

2008년 9월 국정원이 1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해 KIDA에 용역을 의뢰한 남북한 군사력비교 프로젝트는 투입과 산출 등 군사력 평가와 관련한 주요기법을 모두 동원한 전쟁수행능력 종합분석이었다. 북한의 경제 상황부터 훈련 상태에 이르기까지 관련 변수를 포괄적으로 분석해 과연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따져보는 작업이다. 남북한이 그동안 군사력 분야에 투자해온 각각의 예산 규모를 통해 전력을 비교하는 게 투입 측면의 분석방법이라면, 양측의 주요 무기체계와 병력의 숫자 및 성능을 고려해 실제 전면전 상황을 가상한 워게임 컴퓨터 모델로 시뮬레이션해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산출 측면의 분석방법이다.

여기에 최근 수년간 급증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과 관련해, 남측의 주요 군사목표물의 피격 시뮬레이션도 함께 진행됐다. 핵이나 화학가스를 탑재한 미사일 등이 핵심 군사시설에 떨어졌을 경우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이는 한국군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검증하는 방식이다. 이 분석 작업에는 미 국방부 산하 방어위협제거청(DTRA)이 관리하는 시뮬레이션 분석틀 HPAC(Hazard Prediction and Assessment Capability)가 활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해당 연구에서는 서울 등 대도시 민간시설에 대한 대량살상무기 공격 시나리오는 검토하지 않았다.

이렇듯 과제가 워낙 종합적인 내용을 다루는 종류다보니 프로젝트는 장기간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군사비와 전력지수, 워게임 전문가들을 포함해 10여 명의 인원이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모두 해당분야에서 꾸준히 연구결과를 축적해온 KIDA의 박사급 전문가들이다.

 

군비투자 분석과 워게임

프로젝트의 특성상 정확한 연구결과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지만, 그 개괄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남북한의 전력투자비의 경우, 연 단위 투자비는 이미 1980년대 후반에 남한이 북한을 능가하기 시작했고 총 누적투자비는 2000년대 초에 뒤집혔다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전한다. 병사들의 급식 등 운영에 필요한 유지비용을 제외하고 무기체계 등을 증강하고 개선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을 따졌을 경우다. 경제상황이 열악한 북한에 비해 남측의 군비투자가 압도적일 것이라는 일반의 상식과는 달리, 분단 이후 현재까지를 포괄하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게 그간 군 당국의 공식적인 설명이었다.

   

2009년 12월31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열린 2010년도 외교안보분야 업무보고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우열이 바뀐 남북한의 누적전력투자비 총액은 해마다 급속도로 격차가 벌어져 2007년 현재 10% 내외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분단 이후 북한이 전력투자에 쏟아 부은 돈에 비해 남측이 투자한 돈이 10% 이상 많다는 것. 북한은 경제사정이 우월했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전력투자비를 지출했지만, 한국이 1970~80년대의 율곡사업을 통해 이를 따라잡았고 노무현 정부 시절의 비약적인 국방예산 증액을 통해 격차를 벌이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워게임 시뮬레이션의 경우, 미국 랜드연구소가 개발한 JICM(합동종합상황모델)을 사용해 진행된 것으로 전한다. 이 모델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주요무기체계나 부대에 그 성능이나 규모에 따라 전력지수를 매기고, 여기에 공격이냐 방어냐 여부, 지형, 훈련이나 대비태세 등의 승수를 곱해 전투력을 산정한 다음, 워게임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전면전 상황에 적용하는 수순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육해공군을 종합해 산정한 남과 북의 전력 차이가 10%였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투입 측면 연구와 산출 측면 분석에서 대동소이한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승수의 요술

다만 이는 북한의 핵과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제외하고 재래식 전력만을 비교한 결과이고, 또한 주한미군 전력이나 유사시 한반도에 증파될 미국 측 병력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핵을 쓰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라면 미군이 없어도 한국군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시증원 병력은 제외하고 현재의 주한미군 전력만을 감안해 적용하는 경우에도 한미연합군의 전투력이 북한군을 압도한다는 게 이번 연구의 결론인 셈이다.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결론이 똑같은 JICM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사용했던 2004년 8월 남북 군사력 평가의 연구결과와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합동참모본부가 주축이 되어 진행됐던 당시의 연구는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에 비해 육군 80%, 해군 90%로 열세이고, 공군만이 103%로 약간 우세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육해공군의 전력비를 2:1:1로 계산하는 통상의 가중평균치를 적용해보면 한국군의 군사력은 북한군의 88%에 불과하다는 결론이었다.

2009년의 연구는 우선 당시와는 달리 육해공군을 분리해 비교하지 않고 통합전력지수를 산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불과 5년 만에 88%와 110%라는 상당한 격차가 나타나게 된 이유를 이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2004년의 연구가 군 당국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데 비해 2009년의 경우 국정원이 발주한 것이라는 사실이 이 같은 차이를 낳았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사실 워게임 시뮬레이션은 각 무기체계나 부대에 어떤 원칙으로 전력지수를 매기느냐, 혹은 이들 지수에 어떤 가중치를 적용하고 승수를 곱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북한군 미그29 전투기와 한국군 F-15K 가운데 어느 무기체계가 더 강한지,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나는지를 계량하는 방식에 따라 시뮬레이션의 결론이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

특히 남측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C4I 능력이나 공격·방어 여부의 승수효과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서는 아예 워게임의 승패가 뒤바뀌기도 한다. 이렇듯 사전에 마련된 원칙만 일별해도 시뮬레이션 결과를 예측하는 일이 가능할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워게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연동 시범.

이번 시뮬레이션에서는 2004년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지형과 전투형태 등의 승수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2004년에 북한 측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훈련이나 사기 분야의 승수도 일부 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시작됐던 2004년의 연구와 관련해, 당시 민정수석실은 KIDA 원장이 국방부와 합참의 반발을 의식해 특히 육군이 대북 열세인 것처럼 숫자를 낮추도록 유도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연구 관계자들이 줄줄이 청와대의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겪기도 했다.

 

차관만 전달받았다?

반면 이번 연구는 앞서도 설명했듯 국정원이 발주한 것이었고, 국방부나 합참은 그 세부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전력비교 연구를 수행하자면 당연히 북한의 군사비나 무기체계에 관한 정보가 필수적이다. 그간에는 거의 모든 정보를 합참 정보본부 등에 의존했지만, 이번에는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수집, 확보하고 있는 데이터가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것이다. 2005년 이후 북한이 남미의 수교국가들로부터 수입해간 무기체계의 리스트와 그 전투력을 평가에 반영한 일이 대표적이다.

한 군 당국자는 2009년 연구의 결과는 국방부나 합참에 공식적으로 보고된 일이 없다고 확인했다. 관심이 있는 이들이 개인적인 경로를 통해 청취한 경우는 있지만, 군 당국에 정식으로 통보되지는 않았다는 것. 다만 장수만 국방부 차관의 경우 KIDA 전문가들과의 정기모임을 통해 연구결과를 전달받은 것으로 안다고 한 관계자는 귀띔했다.

군 당국이 진행해왔던 그간의 전력비교와는 완전히 다른 이번 연구결과를 두고 국방부나 합참 관계자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우선 군사적 의미가 큰 대량살상무기라는 요소가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먼저 나오는 지적이다. 그러나 워게임 시뮬레이션은 통상 재래식 전력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고, 2004년의 연구에서도 대량살상무기는 반영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이번 연구에서 대량살상무기의 핵심군사시설 타격 시나리오를 보충적으로 검토했던 것은 이 같은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앞서도 설명했듯 워게임 시뮬레이션 방식이 본래 승수를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노하우를 자랑하는 미국 역시 워게임을 통한 군사력 비교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국방부는 그간 전력지수 대신 각 무기체계의 총 숫자와 병력 규모를 따지는 단순 개수 비교 방식을 주로 사용해 북한군의 압도적인 우세를 주장해왔다. 이러한 비교방법은 남북한 무기체계의 현격한 질적 격차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꾸준히 비판을 받아왔지만, 2009년 2월 발표한 국방백서에도 그대로 사용된 바 있다.

   

뿌리는 인수위로부터?

이번 연구가 진행된 과정과 관련해 일부 군 관계자들은 “청와대가 국정원을 이용해 국방부 혹은 군을 견제하려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군사문제, 특히 전력평가 부분에서는 독보적인 ‘고유영역’을 인정받아왔던 군의 견해를 반박하기 위해 정보당국이 나서도록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최근 국정원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상황 등에 대한 군의 대응방식을 조용히 탐문했다는 전언 등 군과 정보당국 사이에 흐르는 물밑 긴장이 반영돼 있는 듯하다.

2009년 6월 분석작업을 마무리한 KIDA 연구팀은 8월 무렵 최종보고서를 작성해 국정원에 제출했고, 국정원은 다시 보고서의 핵심을 간추려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한다. 다만 원세훈 국정원장이 이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는지 아니면 청와대 관련부서를 거쳐 보고됐는지에 대해서는 관련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엇갈린다.

애초에 국정원이 군 당국과는 별도로 전력비교 연구를 진행한 것 역시 권력 핵심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안보분과 위원들 사이에서는 그간 합참을 주축으로 진행해온 전력비교 결과가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는 것. 대선 이전부터 후보 주변에서 조언했던 핵심 참모군의 인식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반영됐고, 그에 따라 정부 출범 첫해부터 군 당국을 배제한 전력비교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후보시절 핵심참모이자 인수위원을 지낸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소장학자 시절 발표한 논문은 이러한 인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1991년 한국국제정치학회지에서 발표한 ‘남북한 군사력 평가의 재론’에서 현 장관은 “북한 군사력의 수적 우세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 논문에서 분석한 남북한 군사력 비교 결과, 즉 ‘한국군 단독으로도 향후 5년 이내에 안정적인 전쟁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거나 ‘주한미군까지 포함하는 경우 이미 충분한 억지력을 갖고 있다’는 결론이 국정원의 이번 전력비교 결과와 꼭 닮았다는 사실이다. 역시 후보 시절 참모와 인수위원을 지낸 다른 인사는 “그동안 군이 더 많은 국방예산을 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력비교를 활용한 부분이 있다”고 잘라 말했다.

 

민감한 이슈, 만만찮은 함의

이렇게 놓고 보면 이번 남북 전력비교 연구는 그 정책적 의미를 넘어 청와대와 군의 관계라는 민감한 이슈와 관련해 만만찮은 함의를 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예산을 둘러싼 지난해 논란이나 방산비리에 관한 대통령의 강도 높은 질책은 이번 전력비교 결과가 영향을 준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군 전력이 주한미군을 제외하고도 북한을 능가한다고 본다면, 청와대가 군의 국방예산 증액 요구나 무기도입 필요성 제기에 대해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청와대가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최소한 이를 바라보는 군 당국 주변의 시선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상황이 주는 긴장감이 워낙 압도적이라고 해야 할까. 대통령의 국방개혁 의지와 이에 대한 군 당국의 자세가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연구를 둘러싼 다양한 논점은 두고두고 날카로운 변수로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