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문민통제, 무엇이 문제인가
‘합참의장 군령권 독점’은 헌법정신 위배 실질적‘대통령 통수’ 확립해야
미국의 경우를 보자. 1980년대 골드워터-니콜스 법에 의해 확립된 미국의 군 지휘계통은 대통령과 문민 국방장관 아래에 직접 미 태평양사령관과 같은 통합전투사령부(Unified Combatant Command) 사령관들을 두고 있다. 합참의장은 군 작전지휘계선에서 제외하고, 다만 작전지휘 통신축선에서 대통령과 문민 국방장관의 지시 이행을 보좌하고 조언하는 구조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이 직접 군통제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문민통제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합참의장은 의장과 합참부의장, 각 군 참모총장 및 해병대사령관으로 구성되는 합참회의 모임과 회의를 운용하지만, 절대로 군령권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더욱이 1949년 합참이 발족한 이래 미국의 합참의장은 이제까지 육군에서 8명, 해군과 공군에서 각각 4명, 해병대에서 1명이 돌아가며 임명돼왔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노태우 정부 말기, 국방부는 해·공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군참모총장을 강제로 면직시키면서까지 소위 818계획, 즉 군구조개선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육군이 주축이던 국방부는 육해공 3군의 병립제 군제를 통합군제 유형으로 변경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30년 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졌던 논쟁이 육군 출신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결론 내려진 셈이다. 각 군 본부가 갖고 있던 군령(軍令)과 군정(軍政)을 분리해, 군령은 작전지휘권이 통합된 합동참모본부가 담당하도록 하고 각 군 본부는 작전지휘계선에서 제외된 채 군정 분야만을 담당하도록 그 기능을 축소하는 국군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 1990년 7월14일의 일이었다.
한 사람의 군인이 전군에 대한 군령권을 한손에 쥔 현재의 합참의장 중심체제를 과연 문민통제라 부를 수 있을까.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아니라 합참의장이 사실상의 통합군사령관 역할을 하는 구조는 ‘군인통제’나 다름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러한 기형적인 체제가 문민정부 직전에 완성된 것을 눈여겨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권을 내놓게 된 군부가 군령권이라도 움켜쥐기 위해 시도한 일종의 ‘총성 없는 쿠데타’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군의 문민통제 실현에 가장 앞장서야 할 국회가 당시 이러한 문제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추인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합참의장을 견제하는가
통합군 체제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은 명확하다. 이를 통해 각 군 작전의 합동운용성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보다 효율적인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재의 사실상 통합군 체제가 대통령의 군 통수권이라는 확고부동한 원칙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앞서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통수권은 대통령이 첫 번째(first in command)이고 문민 국방장관이 두 번째(second in command)이며, 절대로 1인의 군인에게 전군에 대한 군령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 헌법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에서는 국방부 장관과 차관, 차관보급에는 원칙적으로 민간인 출신만이 임명될 수 있다. 군 출신의 경우 정규장교에서 전역한 지 10년이 지나야 비로소 ‘문민’이 된 것으로 판단한다. 이는 군 내부의 불필요한 인맥형성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쿠데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작용한 제도적 결과물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군사정권 종식이 임박한 시점에서 육군이 중심이 된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합참의장 1인에게 전군의 군령권을 집중시키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탄생한 현재의 합참통제형 지휘구조는 각 군 본부와 각 군 참모총장의 전문성, 작전경험 등을 배제한 것이었다. 실제의 전쟁 상황에서 합참의장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이 매우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쟁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은 대통령과 문민 국방장관이어야 한다. 합동참모회의에서 토의된 결론과 함께 전문성 있는 소수의견도 함께 보고받아 선택하는 주체가 바로 대통령과 국방장관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합참의장은 대통령과 국방장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보좌하기 위한 주요 군사조언자(principal military adviser)로 규정하고 있다. 특정 군에서 배출한 합참의장이 다른 군에 관해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음을 감안해 각 군 총장을 제2의 군사조언자로 정해놓았다. 미국 대통령은 군의 최고사령관으로서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을 필요에 따라 쉽게 접촉하고, 군부의 다양한 의견을 조정·통제·선택한다. 다시 말해 대통령 자신이 문민통제의 핵심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합참의장은 군의 최고지휘관이다. 유사시 전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는 것도 합참의장이다. 이는 최악의 경우 합참의장의 전행과 월권을 견제하고 감시할 안전장치가 사실상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국방장관은 상징적이고 행정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합참의장이 군사작전 분야의 최고책임자가 되는 기묘한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문민 국방장관의 가치
흔히 군 출신 인사들은 민간인 국방장관이 군사전략과 작전운용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미흡하므로 군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군복을 벗고 바로 임명된 국방장관도 한국의 현실에서는 문민으로 불린다. 군사전략과 작전운용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국방장관이 있는데 굳이 문민통제 원칙을 위반하고 1인의 현역 4성 장군인 합참의장에게 전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부여해야 하는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걸음 더 나가보자. 순수 민간 출신 국방장관이라고 해서 군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현실성이 없다.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의 보좌를 받는 역대 미국 국방장관의 상당수가 순수 민간 출신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오히려 민간 출신이 국방을 보다 융통성 있게 관리할 수도 있다.
흔히 미국에는 국방장관 자격이 있는 민간인이 충분하지만 한국에서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도 군의 문민통제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정치 혹은 안보 분야 인사들이 있다. 대통령과 문민 국방장관이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의 건의를 받아 전쟁을 억제·준비·수행하는 과정에서, 군 출신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고차원적인 정치·경제·안보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세부적인 군사작전은 대통령과 문민 국방장관의 통제하에 각 군 참모총장이 실시하는 것이 작전 경험상 더 유리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한국군의 지휘구조는 다음과 같은 3대 원칙에 따라 재편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첫째는 합참의장을 군 작전지휘계선에서 제외하고 대통령, 국방장관, 국가안보회의에 대한 주 군사조언자가 되도록 규정함으로써 문민통제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방부와 합참의 기능과 조직을 대폭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합참의장 1인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작전 전문성을 갖고 있는 각 군 본부와 참모총장은 대통령과 장관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계룡대에 있는 것이 한국군의 현실이다. 이래서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에 대한 각 군의 보좌와 보조 기능이 가능할 리 없다. 지휘구조 혁신과 함께 각 군 참모총장의 지휘소를 계룡대뿐 아니라 국방부 또는 합동참모본부에도 둘 수 있어야 한다.
문민통제의 원칙이 확고해져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문민 국방장관을 통해 군을 지휘하게 되면, 합참의장과 각 군 총장은 도리어 대통령을 쉽게 접촉해 보좌할 수 있게 된다. 문민 국방장관을 추월하는 것이 아니라 보좌의 효율을 높인다는 측면이 강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에서 발생한 군사상황에 대해 각 군의 전문성 있는 인력이 그때그때 곧바로 대통령과 장관에게 조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전사령부, 존속해야 하나
다음의 원칙은 대통령과 문민 국방장관의 군 작전지휘계선에서 직접 각 군 참모총장 혹은 각 군 사령관을 두고, 이들에게 각 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관할 작전구역이 전세계적인데다 군의 규모도 워낙 크기 때문에 지역별로 통합전투사령부를 설치했지만, 한국의 경우는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합참의장의 참모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면 문제가 없다. 이를 통해 합참통제형 통합군 체제에서 합참협의형 3군병렬제로 군 지휘구조를 바꾸는 한편 합참과 국방부기구를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필자는 각 군 본부를 각 군 사령부로 개편하고 참모총장을 각 군 사령관으로 개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각 군 작전사령부를 반드시 존속시켜야 하는지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각 군 참모총장에게 작전지휘권을 부여한다면 기존의 각 군 작전사령부, 군수사령부, 교육사령부 및 기타 관련부대의 과감한 개선 문제도 아울러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육군의 방만한 전후방 지휘구조를 대폭적으로 축소 조정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군사령부를 없애고 전후방지역을 각각 3성 장군이 지휘하는 서부, 중부, 동부 및 남부의 4개 군단으로 개편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중에서 남부지역 군단 즉, 후방군단은 육군이 아니라 전략예비인 해병대를 미 해병대와 같이 해병공지과업부대(MAGTF·Marine Air Ground Task Force)로 탈바꿈함으로써 기동성과 융통성을 갖추도록 하는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육군은 후방방어를 해병대에 맡기고 전방작전에 전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육군의 비대한 조직과 과도한 지휘 폭을 단순화할 수 있으며, 지상군을 육군과 해병대로 양분함으로써 작전적 융통성을 제고하면서 상호 협조, 견제 및 경쟁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국 육군이 좁은 국토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고 있는 4성 장군의 숫자도 손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단장 역시 소장급이 아닌 젊고 참신한 준장급으로 교체해야 한다. 교육훈련의 획기적인 발달에 따라 준장도 사단을 지휘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셋째 원칙은 합동작전에 관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합동작전은 합동참모본부에서 주선하겠지만, 주 작전부대의 교리에 따르도록 혁신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지합동작전과 공해합동작전은 공군교리에 따라 합동참모본부 및 육·해군과 협의하여 공군에서 주관해 실시하며, 합동상륙작전은 해군교리에 따라 합동참모본부 및 육·공군과 협의하여 해군에서 주관해 실시하는 식이다. 합동작전이라는 미명하에 합동참모본부에 합동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원칙적으로 합참의장은 군 지휘계선에서 제외되어야 하며 합동참모본부는 참모 기능(assistant staff)을 수행하는 조직이 되어야 당연하다.
대통령이 주도하지 않으면
한국군의 지휘구조를 개혁하는 작업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주도해야 한다. 국방부와 합참의 관료주의적 특성상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한국이 군사정권을 마감하고 문민정부 시대에 들어선 지 20년이 가까워오지만, 이후의 대통령들은 지금까지도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은 문민통제 확립과 군사혁신을 완성하지 못했다. 문민통제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채 통수권을 위험스럽게도 1인의 군인에게 위임해온 것이 그간의 현실이다.
●1935년 전북 익산 출생
●해군사관학교, 미 해군대학 졸업, 미 해군대학원 병과과정 수료
●해군본부 체계분석처장, 국방정보본부 북한부장, 해군 6전단장, 해군교육사령관, 해양전략연구소 자문위원
●저서 : ‘한반도의 해상전략론’, ‘한국의 군사전략사고론’, ‘안보·군사전략론’ 외
미국의 경우 대통령은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군에 명백한 국방지침을 하달하고, 국방부는 이에 따라 군사전략을 포함한 국방백서를 펴내 기술, 교리, 조직의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해가며 끊임없이 군사혁신을 수행해왔다. 냉전의 형성과 해체, 테러리즘의 발호, 과학기술의 발달 등 시대와 안보환경이 급변하는 것에 발맞추어 미국이 전세계를 놀라게 하는 과감한 군사혁신 작업을 내놓는 것은, 이렇듯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이들이 직접 통수권을 행사하는 전통 덕분에 가능했다고 필자는 믿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시대와 경제상황, 기술변화에 부응하는 군사혁신을 성공시키려면, 이를 통해 더욱 강하고 효율적인 군대를 만들고자 한다면, 군의 문민통제에 대한 확고부동한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 첫째다. 국가안보전략의 중요성과 군의 지휘구조 혁신에 대한 확실한 인식만이 이를 위한 강력한 실천계획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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