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중국 ‘우주전쟁’ 대비 가속도

醉月 2010. 2. 15. 10:05

중국 ‘우주전쟁’ 대비 가속도

자체 위성위치확인 시스템 구축·요격미사일 시험 성공…
지난 1월 17일 중국 쓰촨(四川)성 시창(西昌) 위성발사센터. 중국의 자체적인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인 ‘베이더우(北斗·영어명 COMPASS)’에 사용될 인공위성이 창정(長征)-3C 로켓에 실려 지구 궤도로 날아갔다. 중국이 베이더우 시스템 구축을 위해 인공위성을 발사하기는 2007년과 2009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다. 중국은 2012년까지 10여개의 위성을 쏘아 올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베이더우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중국은 또 2020년까지 정지위성 5개와 궤도위성 30개를 배치해 전세계를 통제하는 시스템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미국(GPS), 러시아(GLONASS)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독자적인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갖추는 셈이다.

중국이 베이더우 시스템 구축에 전력을 기울여온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정부는 베이더우 시스템의 용도에 대해 교통, 통신, 기상관측 등 민간용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발표는 나름대로 사실이지만 다른 속셈도 있다. 바로 군사적 목적 때문이다. 현대전에서 독자적인 위치 항법 시스템을 보유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은 원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때 목표물과 발사 장소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해 최적의 경로를 찾아준다. 반대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미사일방어(MD)시스템에도 필요하다.


위성위치확인 ‘베이더우 시스템’ 의도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 최초의 총통 직접선거가 실시된 1996년 3월 8일 대만해협에 둥펑(東風·DF)-15 미사일 3기를 시험 발사해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에 미국은 항공모함 인디펜던스와 니미츠를 대만해협 인근에 배치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해군은 내심 여유를 보였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 인근 지룽(基隆)과 남부 가오슝(高雄) 해역에 시험 발사한 미사일 3기 중 2기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으로선 엄청난 치욕이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독자적인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통해 위치전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사일이 원거리의 목표를 맞힐 수 없었다. 격노한 중국 정부와 공산당 지도부는 인민해방군에 비용이 얼마가 들든지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 중국이 지난해 국경절에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 DF-31A.
베이더우 시스템은 중국이 현재 대비하고 있는 스타워즈(Star Wars·우주전쟁)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은 2007년 1월 11일 요격 미사일을 발사해 지상 859㎞에 떠 있던 낡은 기상위성을 격추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 1월 11일에도 중국은 미사일로 대기권 밖을 나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중국이 시험한 것은 MD(Missile Defense·미사일 방어) 체제의 일환인 ‘지상발사형 중간비행단계 방어(GMD)체제’로 추정된다. 지대공 미사일로 우주 공간에서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이다. 두 실험 모두 베이더우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이 2007년 사용한 것은 KT-2호 요격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은 사거리 2500㎞인 DF-21을 개량한 것으로 미국 정보기관들은 SC-19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1월 11일 시험 발사한 요격미사일은 어떤 종류일까. 중국 정부는 이 미사일의 종류나 제원에 대해 전혀 밝히지 않고 있으나 중국 언론들은 지난해 10월 1일 건국 60주년 국경절 열병식에서 공개된 요격미사일 훙치(紅旗·HQ)-9로 추정했다. HQ-9는 중국이 러시아의 S-300을 개량해 자체 개발한 것으로 최대사거리 300㎞, 요격 고도는 0.5~1.5㎞이다.


요격미사일 시험 발사 진짜 이유

이런 추정에 크게 두 가지 의문점이 있다. 첫째, 중국의 지난 1월 요격 미사일 시험 발사가 3년 전과 똑같은 시점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2007년 요격실험은 우주 상공의 위성을 쏘아 떨어뜨리는 위성요격무기(ASAT)기술이었다. ASAT는 초속 수~수십㎞로 돌고 있는 위성을 맞히는 것이기 때문에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당시 실험 성공으로 중국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ASAT를 가진 세 번째 국가가 됐다. 중국 정부는 이와 관련 2008년 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거행된 ‘2008 국가 과학기술 장려대회’에서 당시 ASAT 기술을 개발한 다롄(大連)이공대학 연구팀과 베이징(北京)항공항천대학 연구팀에 국가 최고 권위의 과학기술상을 수여했다. 다롄이공대 연구팀은 ‘레이돔’을 개발했다. 레이돔은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레이더를 풍압이나 각종 장애로부터 보호하는 돔 형태의 장비이다. 특히 대기권 밖으로 쏘는 미사일은 엄청난 마찰열 등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레이돔의 성능이 사실상 위성 요격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레이돔이 없으면 어떤 위성도 명중시킬 수 없다. 베이징항공항천대 연구팀은 위성요격을 위한 감지장치(소형 초정밀 천체 감지기)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중국 정부가 3년 전과 같은 날에 요격미사일 실험을 실시했다는 것은 우주전쟁에 대비해서 우주무기의 성능을 시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언론들은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에 항의하기 위해 요격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명분이고 실제로는 3년 전의 ASAT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또 다른 ASAT 실험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이언 이스턴 미국 워싱턴의 2049 프로젝트 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이 발사한 요격미사일에 ‘파괴 비행체(kill vehicle)’를 탑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디펜스뉴스 닷컴 1월 20일자)


“중국 미사일 기술 엄청나게 발전했다”

둘째, 이번에 발사한 요격미사일은  HQ-9가 아니라 훨씬 성능이 뛰어난 HQ-19일 가능성이 있다. 이스턴 연구원은 중국이 러시아의 S-400의 기술을 훔쳐서 HQ-19를 제작했거나 또는 러시아와 공동으로 개발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HQ-9는 미국의 패트리어트-3(PAC-3) 미사일보다 성능이 떨어지는데 중국은 이번 요격 미사일이 PAC-3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군지휘학원의 왕밍즈(王明志) 대교(대령급)는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에서 “중국의 요격미사일은 미국의 PAC-3호 미사일보다 요격 고도가 훨씬 높고 성능도 뛰어나다”고 밝혔다. S-400은 최대사거리 400㎞, 최대 요격 고도 30㎞로 S-300을 개량한 러시아의 최신예 요격 미사일이다. 중국은 그동안 러시아에 S-400미사일을 수출할 것을 제의했었지만 러시아는 이를 거절해왔다. 이번 미사일의 요격 고도도 20㎞로 HQ-9의 최대 요격 고도보다 높다.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번 실험은 우주 공간에 파편을 남기지 않았고 우주 항공의 안전을 위협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모린 셔먼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중국이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지구 대기층 외부에서 충돌하는 것을 탐지했다면서 이번 실험을 대만 무기판매와 지나치게 연관시켜 봐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턴 연구원은 이번 실험은 매우 의미심장하다면서 중국의 미사일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이스턴 연구원은 미사일을 격추하는 것은 인공위성보다 어렵다면서 중국은 이번에 발전된 ASAT 기술을 시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사일 요격에 성공한 중국군 어떤 군대인가
⊙ 군사력 대외 과시 시작한 중국, 주변국 대응책 마련해야
⊙ 중국 국방비 지출액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전 세계 무기거래 중 11% 차지
⊙ 국방력 바탕으로 핵문제와 유엔문제 등 적극 참여, 한국도 우호관계 강화해야
 朴勝俊 朝鮮日報 중국전문 대기자  (sjpark@chosun.com)
<중국이 2010년 1월 11일 미사일 요격 실험에 성공했다. 이는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팔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이 1월 11일 미사일 요격 실험에 성공했다는 발표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경제 거인으로 커 간다는 뉴스를 주로 생산하던 중국이 갑자기 군사 기술면에서 깜짝 놀랄 발전을 이뤄 냈다는 발표를 하자, 국제사회는 말 그대로 국면(局面)이 갑자기 바뀐 듯한 충격을 받았다. ‘별들의 전쟁(Star Wars)’이라든가, ‘핵탄두 감축’이라든가, START(전략무기 감축회담)라든가 하는 말들은 한참 지난 과거에 미국과 ‘소련’이라고 부르던 러시아가 벌이던 게임이었다. 그 게임에서 진 소련의 정치체제가 무너지고, 현재의 국제질서가 형성된 후 국제사회는 테러나 종교 전쟁을 제외하고는 전 지구적으로 경제 전쟁만이 매일같이 전개되는 것으로 지구촌 사람들 모두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경제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던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가 됐다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 2009년의 일인데, 2010년 새해 벽두에 중국이 미사일 요격 실험에 성공했다는 발표를 하자 “그럼 이제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과거에 소련이 벌이던 별들의 전쟁이나, 핵탄두 감축, START 협상이니 하는 것들을 벌이는 새로운 냉전의 세상으로 바뀌는 거냐” 하는 생각을 국제사회가 잠시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10월 1일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아 각종 미사일과 탱크를 동원하고, 각종 전투기와 폭격기 등을 베이징(北京)의 하늘 위에 띄워 군사 퍼레이드를 하던 광경이 떠오른다. 아니 그럼 중국이 경제의 볼륨을 키우는 작업과 함께 군사력 증강도 끊임없이 추진해 왔다는 말인가. 그동안 경제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한 것처럼, 중국이 군사력에서도 국제사회가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실력을 쌓았단 말인가. 우리는 우리대로 북한 핵과 북한의 군사력만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엄청난 덩치와 힘을 가지고 거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중국 군사력 앞에서 발가벗겨진 상태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아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의 숫자는 얼마인가? 미사일은 어떤 미사일을 갖고 있고, 전투기나 폭격기는 어떤 것이고, 해군은 또 어떤 해군인가? 해병대는 있는가, 황해 바다 건너 우리 서해안에 와서 상륙작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중국군의 작전능력과 전략목표는 또 뭔가? 중국이 돌연 발표한 미사일 요격 실험 성공 소식은 우리 정부와 군에도 갑자기 많은 것을 챙겨 보게 만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안 챙겨 보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챙겨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은 맞춰 놓아야 하고 대응전략은 갖고 있어야 하는 게 냉정한 국제관계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미사일 개발史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중국군의 현재 상태는 국제사회나 우리가 그리 큰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군이 공격적인 전략목표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을 위협할 만한 군사기술을 발전시킨 것도 아니며,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 일도 없었다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다만 지속적으로 군사비를 투입하고 있고, 군사력 현대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으므로, 동북아에서 지역분쟁을 일으킬 경우(일으킬 가능성은 작지만) 국제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한 제어하기 힘든 정도의 실력은 쌓은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중국군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한 개혁개방에 나선 이후 ‘평화와 발전’을 전략목표로 하는 방어군에 머물러 있는 전략체계를 수정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 일본과 같은 이웃나라들의 경우, 장기적으로 중국군의 군사력 증강에 대비하는 부국강병(富國强兵)책을 버려서는 안되는 상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선 1월 11일 발표한 ‘미사일 요격 실험 성공’이라는 관영 신화(新華)통신의 뉴스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담고 있었다. 첫째, 실험은 중국 영토 내에서 실시됐다. 둘째, 한 차례 이뤄졌다. 셋째, 요격 미사일은 지상발사형이었다. 넷째, 요격은 대기권 밖에서 이뤄졌다. 신화통신의 발표에 뒤따라 나온 중국 외교부의 성명은 “실험은 방어적인 것이었으며,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중국은 이전에 대기권 밖에서 특정 인공위성을 지상발사 미사일로 요격하는 실험에 성공한 일이 있으므로, 이번 실험은 그 수준에서 더 진보한 형태의 실험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Global Times)는 곧이어 다음과 같은 상보(詳報)를 전했다.
 
  <요격에 사용한 중국 미사일은 중국판 패트리엇 미사일이 아니다. 방공(防空) 미사일 홍기(紅旗)-9도 아니다. 외국이 보지 못한 새로운 미사일이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사용되는 급의 미사일이다. 중국이 요격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싼샤(三峽) 댐을 완공한 뒤부터이며, 예를 들어 대만군으로부터 싼샤댐이 공격을 받을 경우 양쯔(揚子)강 하류에 너무 엄청난 재앙이 빚어지게 되므로 요격 미사일 시스템에 대한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중국의 이번 미사일 요격 실험 성공은 중국의 장거리 레이더 추적 시스템이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울러 발표한 셈이다. 외부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중국의 고민은 1960년대부터 해 오던 것이다. 미국과 소련을 양극으로 하는 냉전시대에 늘 끌려다니던 중국은 1963년 12월 마오쩌둥(毛澤東)이 전략무기 문제에 관한 보고를 듣는 회의를 소집했고, 1964년 2월에는 마오쩌둥이 중국 ‘미사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국방부 제5원 부원장 첸쉐썬(錢學森·2009년 사망)에게 “5년 해서 안되면 10년, 10년 해서 안되면 15년 걸려서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때부터 이른바 ‘640공정(工程)’이라는 코드 네임으로 미국과 소련의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시스템 개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1964년 8월 14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당시 제7기계공업부 제2원이라는 부서에 미사일 요격 시스템과, 위성 요격 무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도록 지시했다. 1969년 중·소 국경지대 우수리강 전바오다오(珍寶島)에서 양국 군 충돌이 발생했을 때 소련 측이 “외과수술식의 핵공격을 하겠다”는 위협을 가했으며, 제7기계공업부 제2원은 소련의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반격(反擊)’이라는 이름의 요격 미사일을 만들었으며, ‘선봉(先鋒)’이라는 계열의 방공포도 대안으로 내놓았다. 중국이 만든 방공포들은 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폭격기와 전투기들을 대상으로 위력을 발휘했다. ‘반격1호’ 요격 미사일은 베이징 방어를 위해 실전 배치됐으며, 이후에는 ‘반격2호’라는 요격 미사일도 만들어 냈다. 요격 미사일 시스템과 함께 요격을 성공시키기 위한 장거리 레이더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해 왔으며, 요격 미사일 시스템 연구 프로젝트인 ‘640공정’은 1980년 3월에 종결됐다.
 

중국은 2009년 10월 1일 건국 6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하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전차 등 각종 신무기들을 대거 공개했다.

 
  美 동아시아 미사일 배치에 대한 견제
 
  2010년 새해 벽두 중국이 미사일 요격 실험 성공 사실을 발표한 이유는 미국이 대만과 한국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배치한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1월 6일 미 국방부는 록히드 마틴사가 대만에 대한 패트리엇Ⅲ 미사일 공급을 포함한 9억6800만 달러어치의 계약을 체결했다는 발표를 했다. 이에 앞서 2008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008년 말에 “모두 330기의 패트리엇 미사일을 대만에 판매할 계획”이라는 발표를 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2009년 5월 15일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모두 30기의 패트리엇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특별한 동영상도 없이 짤막하게 신화통신을 통해 발표된 중국의 미사일 요격 실험 성공은 미국이 대만과 한국에 대해 패트리엇 미사일을 판매하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데 대한 견제책으로 보면 크게 정답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미사일 요격 실험 성공을 계기로 중국군의 현황에 대해 살펴보자. 중국군의 현황과 관련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국방비 지출이다. 스웨덴에 있는 SIPRI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가 최근에 내놓은 ‘SIPRI Yearbook 2009’에 따르면, 중국은 어느새 세계 2위의 국방비 지출 국가로 랭크돼 있다. 1위는 미국으로 2008년 1년 동안 모두 6070억 달러의 국방비를 지출해서 수위를 차지했고, 중국은 전체 액수 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849억 달러를 지출해서 2위에 올랐다. 3위는 프랑스였고, 10위 안의 국가들로는 영국, 러시아, 독일, 일본, 이탈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인도의 순으로 올라 있었다.
 
  SIPRI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에 가장 많은 무기를 공급한 국가는 러시아인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전 세계 무기 판매 순위 2위의 국가다. 공급국과는 관계 없이 해당기간에 전 세계 무기 시장에서 무기를 가장 많이 사들인 국가는 중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2004~2008년 기간 동안 전 세계 무기 거래시장에서 거래되는 무기의 11%를 사들여 1위에 올랐고, 중국이 사들인 무기의 92%는 러시아제 무기였다. 과거나 지금이나 중국의 무기체계는 러시아 계열에 머물러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SIPRI 보고서 가운데 놀라운 수치는, 전 세계 무기 공급국 1위 국가인 미국이 판매하는 무기 가운데 가장 많은 미국 무기를 구입하는 국가는 한국으로, 미국이 판매하는 무기의 15%를 2004~2008년에 구입해서 미국 무기 구입 1위국에 올랐다. 2위는 이스라엘, 3위는 아랍에미리트였다. 한국은 전 세계 무기 거래액의 6% 가량을 수입해서 인도와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4위에 올랐는데, 한국이 사들인 무기의 73%는 미국제 무기였다. 한국은 무기 수입국으로도 글로벌 강국이지만, 무기 판매 면에서도 2007년 한 해 동안 29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판매해서 미국, 유럽, 러시아, 이스라엘, 일본, 인도에 이어 7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톱10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핵무기 적지만 병력자원 단연 1위
 
국방력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인 중국군의 최대 강점은 세계 최대 규모의 병력자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핵무기 보유 현황인데, 중국은 2009년 1월 현재 모두 186기의 전략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SIPRI는 집계했다. 이만한 수의 핵탄두는 미국의 2202기, 러시아의 2787기에는 훨씬 못 미치며, 프랑스의 300기보다 적기는 하지만 핵탄두의 파괴력을 고려해 볼 때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을 보유한 국가라는 점이 분명하다. 중국의 군사력과 관련,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SIPRI가 속한 EU(유럽연합)의 무기 수출 제한 감시 대상국의 첫 번째 국가가 중국이라는 점이다. 물론 비국가 조직으로는 알 카에다와 탈레반 등이 있지만, 중국은 코트디부아르, 콩고, 이란, 이라크, 레바논, 라이베리아, 미얀마, 북한 등을 2위 이하로 거느리고 단연 1위의 EU 무기 수출 금지 대상국으로 올라 있다. 미국과 EU는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장벽 없는 거래를 하고 있지만 무기 거래에서만은 냉전시대와 조금도 다름 없는 차별대우를 중국에 대해 하고 있는 중이다. 1990년 제1차 걸프전 때 미국제 무기와 소련제 무기가 한판 싸움을 벌여 소련제 무기가 10 대 0으로 패배한 점을 되새겨 보면, 미국과 EU의 무기 수출 금지 대상국 1위에 올라 현재도 러시아제 무기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유사시 미국과 유럽제 무기체계로 되어 있는 국가와 교전을 벌일 경우 어떤 결과를 빚을까를 예상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3억이 넘는 인구로, 병력자원 확보에 관한 한 단연 세계 1위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은 병역(兵役)에 동원할 수 있는 가용인구인, 16세에서 49세에 이르는 인구가 2009년 현재 남성이 3억1000만, 여성이 2억9000만명 이상이며, 해마다 18세에서 22세 사이의 병역 동원 대상에 해당하는 인구만 남자 1000만명, 여자 950만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미 CIA는 파악하고 있다. 중국은 이 가운데 자원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해서 300만 정도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인민해방군 육해공군뿐만 아니라, 무장 경찰과 동원 가능 예비역까지를 군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론’을 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무기는 칼 자루요, 정신이 칼날”이라는 말을 했다. 얼마만한 수의 병력이 어떤 무기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군대가 어떤 정신상태에 있으며 어떤 전략목표를 갖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이 점에서 중국군은 크게 보아 방어군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대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중국군은 과거 제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 시대 때처럼 “영국을 넘어서고, 미국과 한판의 전쟁을 언제든 벌일 준비를 한다”고 큰소리치던 시절의 공격성은 버린 지 오래다. 1978년 제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이 경제 발전을 위한 개혁과 개방을 시작하면서 마오의 군사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여 ‘평화와 발전’을 세계전략으로 내세우면서 100만명의 병력 감축을 단행함으로써 공격성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제4세대 지도자인 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지난 2007년 10월 제17차 전당대회 때 5년의 연임 임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국방과 군대 현대화 건설의 신 국면’이라는 연설을 통해 중국군의 목표가 “국가의 주권과 안전, 영토의 완전함을 보호하고 세계 평화에 공헌할 수 있는 역량을 유지한다”는 것임을 제시했다. 2009년 1월에 발표된 ‘2008 중국 국방백서’도 중국군의 전략적 목표가 “평화와 발전, 협력의 기치를 높이 들고, 평화와 발전의 길을 걷기를 견지하며, 국가 간 윈윈의 개방전략을 받들며, 지속적인 평화와 공동번영하는 조화로운 세계를 건설한다”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우리로서는 잊어서는 안되는 점들이 있다. 마오시대에 25만명 상당의 군대를 파병해서 6·25에 개입한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1978년 12월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개혁과 개방을 결정하고서도 1979년 2월 “베트남이 베트남 내의 화교들을 대량 추방한 데 대해 교훈을 주겠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을 침공한 사실, 무엇보다도 북한과 1961년에 맺은 중·북한 우호협력조약이 “이 조약의 당사자 중의 일방이 외국의 침공을 받으면 다른 일방은 무조건 즉각 개입한다”는 조항을 갖고 있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국방력 토대로 국제문제에 적극 개입
 
  더구나 덩샤오핑의 시대에서 제3세대 장쩌민(江澤民)의 시대를 거쳐 현재의 제4세대 후진타오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중국의 국가목표와 중국군의 목표에 관해 조금씩 말뜻의 차이가 나는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점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과거 덩샤오핑과 장쩌민의 시대를 통해 잘 유지되던 ‘평화와 발전’이라는 구호를 한때 ‘평화적인 굴기(?起·Peaceful Rise)라는 말로 바꾸었다가 다시 평화와 발전(Peaceful Development)이라는 말로 환원시킨 일이 있다. 후진타오는 지난 2004년 12월 24일 중국군을 상대로 ‘새로운 역사적 사명(新歷史的使命)’이라는 비공개 연설을 해서 미국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후진타오가 중국군에 부여한 ‘새로운 역사적 사명’이 무엇인지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덩샤오핑과 장쩌민 시대의 ‘평화와 발전’과는 달라진 개념이 함유돼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덩샤오핑에서 장쩌민, 후진타오로 지도자를 교체하면서 덩샤오핑이 말한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속에 칼날의 빛을 감춘다)’의 시대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할 일은 한다)’의 시대로 전환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 회담을 주도하는가 하면,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고, 지구촌 곳곳의 유엔 평화유지(PKO)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런 중국의 행보를 강화된 중국군의 역량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5월 베이징에서 한·중 관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임을 선언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이전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며,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콘텐츠에 대해서는 현재 양국 전문가 위원회 간의 협의가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의 논의 진행 과정에 따르면, 이전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때까지는 한·중 양국관계에 관한 협력논의만 하는 것이었으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북한을 포함한 중국입장에서 보아 ‘제3국’ 관계에 대해서도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논의할 수 있는 관계로 격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로서는 중국군의 역량 변화 추이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중국과 이웃한 국가로서의 선린관계를 맺기 위한 적극 외교를 활발히 전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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