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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종로는 항상 높은 어른들의 교자나 가마가 지나다니는 큰길이었다. 그 당시 아랫사람이 큰길을 가다가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면 길가에 엎드려 예의를 표했는데, 그것이 자주 되풀이되면 번거로우므로 아예 큰길 양쪽 뒤편에 말 한 마리 정도 다닐 수 있는 좁다란 길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 길을 따라 목로술집, 모주집, 장국밥집이 이어졌으며, 나름대로 격조가 있었고, 피맛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 피맛골 안내문
사람 둘 겨우 지나칠 수 있는 비좁은 골목이지만 음식내음, 술내음, 사람내음으로 왁자지껄했던 서민들의 천국 피맛골.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 종로에 있는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피맛골이 서울시가 내놓은 '도심재정비'란 낱말 앞에 역사 저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피맛골은 가난한 서민들에게 국보 1호로 자리 잡고 있는 이름 높은 먹자골목.
피맛골(避馬)은 조선시대 평민들이 궁궐을 드나드는 높은 관리들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한때 종로구 청진동 종로 1가에서 6가까지 이어져 있었던 피맛골은 그동안 '재개발'이란 아름 아래 이리저리 헐렸다. 하지만 지금도 종로 1가 교보문고 뒤에서 종로 2가 쪽까지 남아 있어 서민들은 슬픔과 아픔을 술밥으로 달래왔다.
빈대떡과 해장국, 낙지볶음, 생선구이 등을 값싸게 팔고 있는 종로 명소 중 하나인 피맛골은 1980년대 들머리부터 '도심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그 뒤 2003년 서울특별시 건축위원회에서 재개발(청진 제6재개발사업지구)을 허가해 건축공사가 시작되면서 그 모습이 서서히 세월 저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서울시 "오래된 건물 안전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
2004년 1월에는 피맛골 공사 현장에서 조선시대 건축물에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장대석(長臺石) 10여 점과 기와 등 유물 등이 나왔다. 그 때문에 문화재청이 그해 4월부터 공사를 중단시키고, 신축공사터 2600여 평을 조사해 주춧돌과 적심(積心, 주춧돌 주위에 채우는 보강용 돌무더기), 다짐층 등 건물터 흔적과 도자기 조각 등을 발굴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그 뒤 교보문고 뒤에서 종로2가에 이르는 피맛골만 남겨두고 옛 피맛골(종로 2가~3가) 자리에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을 세웠다. 이와 함께 지난해에는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해장국 전문점 '청진옥' 일대를 헐기 시작했으며, 지난 8일에는 지난달 26일까지 공모한 재개발 계획 심사결과를 발표, 마지막 남은 피맛골 허물기에 나섰다.
서울시 도심재정비팀 관계자는 "전통의 거리를 지키자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경제적 효율성뿐만 아니라 건물들이 너무 낡아 위험하다는 점까지 고려해 재개발을 추진하게 됐다"며 "오랜 전통이 숨 쉬고 있는 피맛골이 사라지는 아쉬움도 있지만 오래된 건물의 안전문제가 더 커 어쩔 수 없이 철거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또 "각계각층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여 최대한 피맛골의 전통을 지키고, 피맛골 상인들이 새롭게 입주하는 빌딩 임대료에 관한 부분도 가능한 보호할 예정"이라며 "피맛골을 보존하겠다는 뜻으로 종로 르메이에르 1층 골목에 '피맛골' 간판을 내걸었다, 시공사가 선정되면 곧바로 본격적인 피맛골 허물기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의 이 같은 계획에 따라 청진옥 주변은 이미 지난해 이전을 마쳤고, 열차집 주변 가게들은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피맛골을 사랑하는 서민들과 지금까지 남아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들은 몹시 서글퍼하고 있다. 서민들은 그동안 피맛골에 옛사랑처럼 심어놓은 모든 추억이 깡그리 사라지는 것이 아쉽고, 상인들은 비싼 임대료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아름다운 추억, 이젠 마음속에 담을 수밖에 없다
"서울 한복판에서 지갑이 얇은 우리 같은 서민들이 마음 툭 터놓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수 있는 값싼 곳이 있어 참 좋았었는데…. 서울 한복판에는 부자들만 살고, 우리 같은 서민들은 도시 변두리에 허리띠 졸라매고 앉아 부자들 사는 모습 구경이나 하라는 건가. 나 원 참! 이렇게 가다가는 옛 서울 모습이 남아나는 게 하나도 없겠어."
지난 6일 오후 4시쯤, 열차집에 홀로 앉아 빈대떡에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시던 김아무개(71)씨가 한숨처럼 내뱉은 말이다. 서울 청계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김씨는 대학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일주일에 3~4번은 이 골목을 드나들 정도로 오랜 피맛골 단골이다.
김씨는 "피맛골은 돈은 별로 없고 술밥은 먹어야 할 때 자주 찾았던 곳"이라며 "이곳에서 자주 만나던 친구들 중 이미 이 세상을 저버린 친구들도 꽤 된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들이 그리울 때마다 이곳에 찾아와 옛 추억에 잠기곤 했다, 이제 그런 추억도 마음에 담아둘 수밖에 없게 됐다"며, 눈물을 살짝 비추었다.
60여 년 동안 이곳에서 빈대떡에 막걸리를 팔고 있는 윤해수(71·여)씨는 "이사를 가긴 가야겠는데, 비싼 임대료 때문에 이 가격 그대로 음식을 팔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며 "둥지 같은 이곳이 헐린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깨끗한 건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손님들이 예전처럼 그렇게 찾아줄지도 잘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사정은 지금까지 장사를 하고 있는 두어 집 남은 생선구이집도 마찬가지. 30년째 생선구이 전문점 우정집을 꾸려온 석송자(66·여)씨는 "이 골목에 있었던 가게들이 하나 둘 이사를 가서 그런지 찾는 손님들도 예전과 같지 않다"며 "번듯한 곳으로 가게를 옮기면 생선 맛이 달라질 것만 같다"고 피맛골이 사라지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가게 이전 알리는 현수막만 바람에 펄럭이고
빈대떡집, 낙지집, 생선구이집, 국밥집, 선술집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던 서민들 먹자골목 피맛골. 지난 6일 찾았던 교보문고 후문 뒤쪽에서 종로 2가로 이어지는 피맛골 골목에는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고, 곳곳에 가게 이전을 알리는 현수막들만 바람에 을씨년스럽게 펄럭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피맛골에 안타깝게 손을 흔들 듯 그렇게.
지금 피맛골에는 빈대떡 한 접시에 막걸리를 마시던 손님들이 빼곡했던 열차집과 생선구이 하나로 피맛골을 찾는 서민들 입맛을 한번에 사로잡은 대림식당 등 몇 집만 문을 열어놓고 있다. 한때 이곳에는 45년 역사를 자랑하던 고갈비 전문점 함흥집과 불고기 오징어 볶음으로 이름 높았던 청진식당, 한정식 백반이 맛있는 남도식당, 양곱창구이로 입소문 난 대성양곱창, 물만두가 끝내주는 신승관 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빈대떡집과 생선구이집 등 몇 곳을 빼고는 대부분 가까이 있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시가 '피맛골 조성사업 아이디어'를 6일 오후 최종 선정함으로써 마지막 남은 피맛골은 시공사만 결정되면 곧바로 헐리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올 상반기 안에 피맛골 정비를 끝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날 피맛골 생선구이집에서 만난 노아무개(47·부산 연산동)씨는 "볼일이 있어 서울에 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피맛골이었다"며 "이제 서울 한복판에 둔 옛 고향집 같은 피맛골이 사라지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피맛골마저 사라지고 나면 이제 서울은 정말 눈 뜨고 코 베이는 낯선 세상이 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40년 전통의 낚지볶음 원조 이강순(71) 실비집에서 만난 박아무개(41)씨는 "첫사랑 여자와 함께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먹던 매콤한 낚지볶음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음식점도 장맛처럼 낡고 오래된 집이 맛도 좋고 정이 더 많이 간다"며 "오랜 전통과 추억이 서린 집들을 보존하지 않고 부수고 보는 서울시 심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임대료, 관리비 턱없이 비싸 가격 올려야 할지 고민 중
70년 전통의 해장국 전문점 '청진옥'은 지난해 7월 종로 르메이에르 타운으로 옮겼다. 이 집에서 만난 이아무개(52)씨는 "깨끗해서 좋다고 말하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옛 맛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며 "장소가 낯설어서 그런지 해장국 맛도 예전 맛이 나지 않는 것 같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1954년부터 피맛골에서 국수 전문점 '미진'을 꾸리다 새 피맛골로 자리를 옮긴 이영수(71· 여)씨는 "손님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단골손님들이 가끔 찾아와 옛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며 아쉬워한다, 게다가 임대료와 관리비가 턱없이 비싸 가격을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걱정했다.
20여 년 전부터 피맛골을 자주 찾았다는 시인 김이하(50)씨는 "새 피맛골은 이름만 피맛골이지 옛 서민 분위기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외국에서는 오랜 전통이 서린 곳을 어떻게든 보존하려고 아우성인데, 이 나라는 무슨 병이 들었는지 낡고 오래된 것은 무조건 부수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라고 서울시 재개발 정책을 꼬집었다.
새 피맛골에서 족발과 빈대떡을 파는 '장원집' 김민자(51·여)씨는 "지난 1월 갈 곳이 없어 이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며 "임대료와 관리비가 턱없이 비싸다"고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서린낙지' 주인 박범준(38)씨도 "아버지에 이어 2대째 50년 동안 장사하던 곳이 피맛골이었는데, 사실상 쫓겨난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피맛골을 살리겠다는 뜻으로 종로 르메이에르 타운 1층 골목에 '피맛골'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새로 내건 반듯한 피맛골 간판을 바라보며 비웃는다.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은 반듯한 새 건물과 피맛골이란 간판이 서로 헛돌고 있기 때문이다.
새 피맛골 들머리에서 만난 서아무개(73) 할아버지는 "피맛골은 우리 같은 노인들이 스스럼없이 들어가 술밥을 자유스럽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노인들 사랑방 같았던 곳"이라며 "이름만 피맛골이라 붙인다고 해서 옛 풍경과 추억, 전통이 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혀를 끌끌 찼다.
600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서민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했던 피맛골. 이제 마지막 남은 피맛골도 꿈속에서나 그릴 수 있는 옛 풍경이 되기 시작했다. 이 자리를 빌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묻고 싶다. 오 시장이 말하는 "역사적 전통과 맥을 이어주는 디자인도시 건설"은 옛것을 무조건 부수어 새 피맛골 간판처럼 만드는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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