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김봉건과 함께하는 차문화 산책

醉月 2009. 3. 14. 20:27

선차(仙茶), 도교의 외단(外丹)과 차

장생불사 추구했던 도교 정신과 맞닿은 차, 불사약으로 각광받던 금석류 약재
부작용 알려지며 초목류 약이로 대체, 차문화 급속히 발전한 시기와 비슷

 
  사진제공=이경순(사진가) 영광갤러리 관장

차문화는 도가(道家)나 도교(道敎), 혹은 선도(仙道)와도 관련이 깊다. 일반적으로 차문화는 불교와 주로 연관지어 운위되고 있고 선도와 관련에 대해서는 미미하게 알려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차는 불교와의 관련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비중으로 선도와 관련돼 있다. 실은 차의 발현 자체가 도교적 소산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차의 물질적 효용은 장생불사와 양생(養生)을 추구하는 도교 외단(外丹)의 발전과정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보면 진시황이 동남동녀를 바다 건너 보내 불로초를 구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또 여기에는 제나라의 위왕(威王)과 선왕(宣王), 연나라의 소왕(昭王) 등도 불로초를 구하러 바다건너 삼신산(三神山)으로 사람을 보냈다고 한다. 한무제는 방사(方士)들을 신봉하여 단사(丹沙)로 황금을 만들어 그 황금 기물로 음식을 먹으면 연년익수(延年益壽)한다는 것을 믿었다는 기사가 있는 것을 보면 불사의 약을 구한 것은 진시황 한 사람만이 아니라 선진시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전제군주들의 한결같은 염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교의 연단술(煉丹術)은 동한(東漢)을 거쳐 위진남북조에 이르러 전성기를 이루었다. 문제는 이 시기의 불사약이 주로 금석류(金石類)의 약재로 연단한 것이었다는 데 있다. 위진 시기 연단의 대표격인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 보면 그 재료들을 열거한 기사가 있다. 여기에는 단사(丹沙), 황금(黃金), 수은(水銀), 여러 가지 버섯(諸芝), 다섯 가지 옥석(五玉), 운모(雲母), 명주(明珠), 웅황(雄黃), 석중황자(石中黃子), 석계(石桂), 석영(石英), 석뇌(石腦), 석유황(石硫黃), 석이(石飴), 증청(曾靑), 송진, 복령, 지황, 맥문동, 목거승(木巨勝), 중루(重樓), 황련(黃蓮), 석위(石葦), 저실(楮實), 상시(象柴) 등 25종을 거론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매우 유해한 중금속류가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약재로 만든 단약을 복용하면 강렬한 생리 반응을 일으켰고 심지어 생명의 위험까지 초래했는데도 당시에는 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일반인들은 구하기가 힘들었다는 사실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청대 조익(趙翼)의 '22사찰기(二十二史札記)'에 보면 실제 당(唐)의 황제 가운데 태종 헌종 목종 경종 무종 선종 등 여섯 왕의 죽음은 금석류 단약의 복용과 유관하다고 추단하고 있다.

금석류 단약을 대체하여 나타난 것이 바로 초목류 약이(藥餌)인데, 동한의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보면 "약은 병을 치료하는 풀(藥, 治病草)"이라 하여 각종 식물에서 추출한 약이로 병증을 다스리는 전통은 실은 금석류 단약의 역사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가공 기술도 발달했고 복용의 경험도 훨씬 풍부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이미 그 이름이 보이고 있는 도교 경전의 하나인 '산해경(山海經)'에는 많은 수의 약물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여기에는 식물류 53종, 동물류 65종, 광물류 3종이 들어있다.

그런데도 한당(漢唐) 시기의 도교의 다른 한편에서 고가의 금석류 약이를 제조 복용하여 장생불사를 추구하려다 오히려 건강을 해치거나 요절한 것은 있는 자들의 유별난 행태가 빚은 희한한 역사적 현상이었던 셈이다. 차문화의 역사를 보면 대체로 도교에서 금석류 단약이 초목류 약이로 대체되는 시기인 진대(晉代)에 차가 급속히 떠오르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정황에 말미암은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금석류 단약의 대표격인 동한의 갈홍은 '포박자'에서 "나의 목숨은 나의 손에 달려 있지 하늘에 매어 있는 것이 아니다(我命在我不在天)"고 하여 금석류 외단에 거는 기대가 무척 컸음을 내비치고 있다. 북제(北齊)의 안지추(顔之推)를 비롯한 초목류 약이를 권고하는 이들은 일상의 기거(起居)를 주의하라고 권고하며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性命在天)"고 하여 이 둘 사이에는 단순히 외단의 재료상의 차이만이 아니라 천명관의 변화마저 동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도교의 외단의 추구는 그 자체로서 바로 동양의 약학(藥學)이었고, 또 이 시기에 초목류 약이가 보편화하고 기호화(嗜好化)하는 과정에서 차(茶)가 매우 특별한 작용을 하며 선차(仙茶)의 성격을 짙게 띠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차는 물의 정신이요, 물은 차의 몸이니…", 물질로서의 차는 외단의 중심역할
다도 수련은 선도 내단의 연성에서 영향,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사진 제공 = 이경순(사진가) 영광갤러리 관장
동양에서는 옛적부터 사람의 몸을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하여 소우주(小宇宙)로 여겨왔다. 도교의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 존재는 정(精) 기(氣) 신(神)이라는 세 가지 형태의 생체에너지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신(神)은 우리 몸의 주인인 영혼이다. 원신(元神)은 태아가 모체 내에서 신체의 모든 기관을 완전히 갖추는 순간에 그 태아의 몸에 주인으로 들어온다고 보고 있다. 그러고 나서 원신의 에너지가 점점 물질화되어 인간의 몸을 키워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원신에서 일부가 원기(元氣)로 변화되고, 이 원기에서 원정(元精)이 나오며, 이 원정이 비로소 물질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도교의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에 있어서 정신과 물질은 이원적인 존재가 아니다. 정신이 육체와 다른 것도 아니고, 육체가 정신과 따로 존재하는 어떤 것도 아니다. 정신과 육체는 서로 대립하는 이물(二物)이 아니라 둘은 부단히 이것에서 저것으로 서로 변화하는 '흐름'일 따름이다.

그런데 물질의 상태인 육체는 늘 성주괴공(成住壞空)하여 항구불변이 없으므로 정말 불사의 상태에 들려면 우리 자신 불멸의 존재인 원신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선도(仙道)이다. 선도는 곧 불사의 상태에 이르기 위한 공부이다. 이 공부 과정에서 이미 형성된 정(精)을 기(氣)로 바꾸어가는 것을 연정화기(煉精化氣)라 하고, 이 기를 다시 신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연기화신(煉氣化神)이라 한다.

우주에 천체가 흐르는 길이 있는 것처럼 우리 몸속에도 정·기·신이 흐르는 길이 있다고 한다. 임맥(任脈)의 전삼문(前三門), 독맥(督脈)의 후삼관(後三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임·독 양맥을 잘 소통하면 다시 충맥(衝脈)이란 것이 열려 대자연의 기운과 우리 몸속의 기가 소통되어 소주천(小周天), 대주천(大周天) 등의 교호로까지 이루어진다. 이러한 도교의 인간관은 자체가 바로 동양의 의학이요, 또한 종교의 한 형태로까지 되었다.

차는 선도와 매우 통한다. 물질로서의 차는 외단(外丹)의 중심역할을 하고, 다도의 수련은 선도 내단(內丹)의 연성(煉成)에서 영향을 받았다. 팽음(烹飮)의 각 분야에서 오행이 조화를 이루고, 행다(行茶)의 흐름에 호흡과 같이 문무(文武)의 묘용(妙用)을 살리려는 것은 그 자체 선도(仙道)의 한 모습으로 보아도 좋을 정도이다. 오늘날 서양과학의 영향을 받은 현대인들은 이와 같은 동양의 의학을 대개는 비과학적이라고 폄하하고, 도교의 신선 사상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제대로 선도를 수련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선도의 지혜들이 얼마나 멋지고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아울러 다도를 제대로 체험해본 사람이라면 차문화가 얼마나 선도의 깊은 부분과 닿아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옛 차인들의 글에서도 이런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명대의 장원은 '다록(茶錄)'에서 "차는 물의 정신이요, 물은 차의 몸(茶者水之身, 水者茶之體)"이라 하고, 또 "다관이 뜨거우면 차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고, 차호가 맑으면 물의 성품이 신령스럽게 된다(盖罐熱則茶神不健, 壺淸則水性當靈)"고 한 것은 모두 도교의 인간관에 빗대어 차탕을 의인화한 것이다.

당대의 육우는 '다경'에서 풍로의 다리에 새기는 명(銘)에 "물이 위에 있고 바람이 아래에 있고 불이 그 사이에 있다"(坎上巽下離于中)고 한 것은 선도의 호흡법에 대해 거론한 것이고, "몸에 오행이 고르면 만병을 물리칠 수 있다.(體均五行去百疾)"고 한 것은 선도 수행의 전체적인 효험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장원의 '다록'에는 또 "너무 문화(文火)로 물을 끓이면 물의 본래 성품인 부드러움을 놓지 않는다. 무화(武火)가 지나치면 불의 성품인 격렬함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고 하여 찻물을 끓이는 불에 대해 문·무화의 중정(中正)을 강조한 대목은 도교 내단의 호흡법에서 차인한 것이다.

선도에서는 호흡을 내단(內丹)을 연성(煉成)하는 불로 보는데, 유심(有心)으로 호흡하여 단약(丹藥)을 이루는 것을 무화라 하고, 무심(無心)으로 호흡하여 조식에 마음을 두는 것을 문화라 한다. 선도의 문·무의 풍화(風火)는 도자문화에도 차용되어 환원불과 산화불 등으로 쓰이고 있다. 환원과 산화의 불로 소성한 도자기의 몸이 각각 어떻게 다른가를 아는 차인이라면 문화와 무화로 끓인 찻물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차와 기(氣)
차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껴보라, 차의 색·향·맛 모두 氣에서 비롯
고유한 특성 찾아내는 색다른 재미,

 
  사진 제공 = 이경순(사진가) 영광갤러리 관장
내가 보기에는 다도는 기도(氣道)이다. 고전을 보아도 확연하다.

당 소이의 '탕품(湯品)' 같은 데에는 열여섯 탕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기(氣)를 논하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제2영탕, 제3백수탕, 제8수벽탕 등은 더욱 그러하다. '제8수벽탕'을 보면 "돌은 하늘과 땅의 빼어난 기운이 응결되어 형체가 부여된 것이다. 이것을 쪼아 다듬어 그릇을 만들면 오히려 더욱 수승한 기운이 있게 되니, 여기에 끓인 물은 언제나 좋다"고 한다. 돌이 가진 기가 차탕을 도운다는 말이다.

북송 채양(蔡襄)의 '다록(茶錄)'에는 "차 달이는 물은 눈(嫩)을 쓰지 노(老)를 쓰지 않는다(湯用嫩而不用老)"고 했는데 눈(嫩)이나 노(老)는 모두 차의 기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조선 말 초의의순(草衣意恂)이 '다신전(茶神傳)'이라 제목을 고쳐 펴낸 명(明) 장원(張源)의 '다록'에는 '탕은 모름지기 다섯 번 끓어야 하고, 차는 세 가지 기이함을 사뢰어야 한다(湯水五沸, 茶奏三奇)'고 하였는데, 이것도 기를 논한 것이다. 장원이 여기서 말한 차의 삼기(三奇)란 곧 색깔(色)과 향기(香)와 맛(味)을 일컬은 것인데,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하여 사기(四奇)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곧 기(氣)이다.

장원은 차의 색을 논하면서 '새로 길어온 샘물과 활활 타오르는 불은 차를 끓이는 현묘한 장인(新泉活火, 煮茗玄工)이며, 옥빛 차와 찻잔에 이는 얼음빛 파도는 잔을 다루는 절륜의 재주꾼이다(玉茗泳濤, 當杯絶技)'고 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차탕에 어리는 기의 역할을 은유한 말이다.

또 차의 향을 논한 대목에서는 "차에는 진향(眞香)·난향(蘭香)·청향(淸香)·순향(純香)이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순향은 곧 '안과 겉이 한결같은 것(表裏如一)'이고, 진향은 '우전의 신묘한 기운을 갖춘 것(雨前神具)'이라고 하였다. 또 청향은 '설익은 것도 아니고 너무 익은 것도 아닌 것(不生不熟)'이고, 난향은 '불기운이 고루 간 것(火候均停)'이라고 하였다. 이것들도 나는 모두 기를 논한 것이라고 본다.

처음 이 대목을 보았을 때는 많은 의문이 일어났었다. 도대체 향기에 안과 밖이 뭐란 말인가, 또 우전은 24절기의 하나인데 도대체 이 절기의 앞과 향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차에 불기운이 고루 가면 왜 난향이 난단 말인가 등. 그런데 선도 수련을 하면서 여기에 기의 개념을 대입하자 모든 것이 환하게 밝아졌다. 장원은 이것을 모두 기로 풀었던 것이다. 초의스님이 이 책을 '다신전(茶神傳)'이라고 이름을 고쳐 펴낸 것도 선도 정·기·신의 신(神)을 염두에 두어서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제목을 왜 이렇게 고쳤겠는가.

육우(陸羽)는 '다경(茶經)'에서 '차밭은 돌밭이 상, 자갈밭은 중, 황토는 하'라 했는데, 이 말도 역시 기로 풀어야 답이 나온다. 송 조길(趙佶)의 '대관다론(大觀茶論)'에 '언덕은 남향(陽)이어야 하고 밭은 그늘(陰)이 져야 한다(崖必陽, 圃必陰)'고 한 것도 대자연의 기가 중화(中和)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차를 마셔보면 역시 밭이 좋은 곳에서 난 차가 기운이 좋다. 결국은 색·향·미라는 것도 이 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요즘 나는 기(氣)로 차 마시는 것을 즐긴다. 무척 재미있다. 그러나 단순한 재미가 아니다. 물질세계의 진실과 마주하는 것 같아 철학적 의미가 깊다. 실은 색깔이나 향기나 맛 같은 것은 대상이 우리의 감각기관과 만나면서 그 통로 위에 나타나는 현상일 따름이다. 사물 자체의 본질은 아니다. 그러나 기는 오관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개념(槪念)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로지 몸으로만 느낄 수 있다. 몸의 어딘지는 몰라도 저 밑바닥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라야만 몸이 신(神)과 통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차를 마셔 보면 어떤 차는 색으로 오기도 하고, 어떤 차는 진동으로 오기도 하고, 또 어떤 차는 전율로 다가오기도 한다. 눈을 감으면 보랏빛이 온천지에 전개될 때도 있고,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를 때도 있다. 차의 기운이 혈맥(穴脈)을 따라 천천히 돌아 휘달리기도 하고, 부드러운 구름 같은 것으로 온몸을 감싸기도 한다.

차야 늘 마시는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요즘 오히려 색다른 한 판 흥취에 푹 빠져있다.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할까봐 이런 말하기 저어되기도 하지만, 모름지기 어느 곳에 미치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미쳤다고 하지 않겠는가.

 


시한부 6개월을 선고받은 아내가 3년째 곁을 지키고 있어
암 발병 후 의사는 "피를 맑게 하라" 권유
차와 약수·건강식단으로 점차 나아져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해 너무 모른다. 우리가 고작 하는 짓은 대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갈라놓는 일 정도이다. 그러고 나서는 몸은 속된 데 갖다 놓고 마음은 고상한 쪽에 갖다 놓는다. 쾌락이라는 것도 육체적 쾌락이니 정신적 쾌락이니 하고 현학(衒學)을 떨어댄다. 그러나 실제로는 몸은 쾌락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소임만을 다할 따름이다. 우리가 보통 육체적 쾌락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도 따져보면 육체는 일만 하고 쾌락은 정신이 누린다. 예컨대 음식을 먹을 때에도 혀가 맛을 보는 것 같지만, 실은 혀는 음식과의 접촉을 하는 일꾼에 불과하고 맛 자체는 정신이 느끼는 것이다. 즉각적인 맛을 내는 단것이나 트랜스지방, 포화지방산 같은 것은 실은 몸에 나쁜 것이라 몸은 그런 것을 싫어하는데도 마음이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자꾸 몸 더러 시켜놓고 나중에 몸이 나빠지면 몸 탓을 한다.

현대 힐링푸드론자들도 "먹는 것이 그 사람이다(What you eat is what you are)"는 말을 즐겨한다. 먹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은 피를 보면 안다. 사진은 혈관의 내부 모습을 보여주는 모니터의 화면으로, 실제 모니터를 보면 혈액이 조금씩 흘러가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정상인의 혈액과 폐암 말기로 6개월 선고를 받은 당시 내 아내의 혈액 상태이다.

 
  정상인의 혈액(위)과 암환자의 혈액.
사진 속의 큰 동그라미 같은 것은 혈구(血球)이다. 작은 쌀알 같이 생긴 것은 영양물질이다. 솔잎 끝이 부러진 것 같은 것은 악액질이다. 정상인의 혈액을 보면 혈구들이 모두 떨어져 열심히 각자의 역할을 건강하게 해낸다. 그러나 암환자 혈액의 혈구들은 힘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여러 개가 군데군데 뭉쳐있다. 이런 혈구들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 혈관에 눌어붙으면 오히려 동맥경화의 원인물질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영양물질은 정상인의 혈액에는 많고 암환자의 혈액에는 적다. 이 암 환자의 경우에는 영양물질의 양이 정상인에 비해 5분의 1 정도로 적었다. 그리고 악액질은 스무 배 이상 많았고 거대한 악액질의 덩어리들도 있었다.

의사는 두 사진을 비교해 보여주며 지금 이 환자는 얼마나 빨리 피를 맑게 하느냐에 목숨이 달려 있다고 했다. 피가 이런 상태라는 것은 몸속의 모든 세포들의 상태가 곧 이러하다는 것이므로 단순히 어떤 약을 한두 종류 먹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가 이렇게 더러운 상태라면 거기에 어떤 약을 쓴들 효험이 있겠는가. 보약 같은 것은 오히려 더 피를 탁하게 할 뿐이다.

이 사진을 본 후 우리는 병에 임하는 관념 자체를 바꾸었다. 여태까지의 모든 치료방법을 놓았다. 그리고 몸속 세포들의 더러움을 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우리는 일단 깨끗한 현미와 잡곡들, 그리고 맑은 야채들로만 식단을 꾸렸다. 직접 길어온 약수와 차를 마셨다. 그러자 환자의 피가 천천히 맑아지기 시작했다. 근력도 나아지고 체중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토요일 새벽마다 산위에 올라 선도 수련을 했다. 집에서도 매일 수련을 했다. 처음에는 산에 오르는 일이 힘들어 부축해 주어도 몇 번씩 쉬었다가 올라가곤 했다. 지금 아내는 부축해 주지 않아도 한 번도 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산을 오른다. 6개월 선고 받은 사람이 3년째 살아 있다. 아직 건강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는 환자의 몰골은 아니다. 그동안의 수련에서 축기(築基)가 점점 이루어져 기체(氣體)도 더욱 강건해지고 있다.

선차(仙茶)가 우리의 건강에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몸소 겪었다. 이제는 바위에서도 기를 느낄 수 있으므로 차에서 기를 느낀다는 것이 허무맹랑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옛적에 노동(盧仝)은 차를 마시면서 다섯째 잔쯤에서 뼈와 살이 맑아지고, 여섯째 잔에서는 신선의 영과 통하고, 일곱째 잔은 채 다 마시기도 전에 두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일어나 봉래산에 든다고 하였다. 나는 비록 옥천(玉川)의 시재(詩才)에는 미치지 못할지 모르겠으나, 이승의 세계에서 내자의 병을 이기고 명을 이었으니 차복(茶福)만은 이 보다 밑돈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 동안 나와 아내를 위하여 차 보시를 해 주신 여러 다우들과, 선도 수련을 이끌어주신 육임신문(六壬神門) 방주님과 도반들께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의 정을 표한다

 

선도(仙道)와 다도(茶道)
다도를 빼닮은 선도의 수련과정, 좋은 스승과 겸양의 미덕 중시
끊임없는 수행 강조 서로 흡사

 
  사진 제공 이경순(사진가) 영광갤러리 관장
무릇 어떤 종교나 정신문화에서도 일정한 수행이나 수련의 과정이 있다. 그러나 선도나 다도와 같이 수행의 과정을 중시하는 데는 흔치 않다. 선도에서는 외단(外丹)·내약(內藥)을 이루는 데에 세 가지 관건이 있다. 이러한 선도의 수련과정은 다도의 그것과도 매우 흡사하다.

선도의 수련과정에서 첫 번째 필수 요건은 공법(工法)이다. 선도 수행시 공법이 밝지 못하면 약(藥)을 캘 수 없다. 올바른 공법은 곧 사법(師法)에 근거한다. '시경(詩經)' '빈풍(豳風)'에는 "도끼자루를 찍음이여, 도끼자루를 찍음이여. 그 법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로다(伐柯伐柯 其則不遠)"라는 시가 있다. 새로운 도끼자루를 만들기 위해 나뭇가지를 고를 때 지금 쥐고서 찍고 있는 도끼의 자루가 얼마만한 크기인가를 곁눈질해서 보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삶에서 부모나 스승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은유한 것이다.

문화는 이렇게 항상 사람에서 사람에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동양문화의 오래된 특징을 이루는 인치(人治)의 전통이기도 하다, 만약 선도(仙道)나 다도에서 올바르게 전해지는 사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후학들은 어떻게 될까? 아마 문화 자체가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스승도 없고 전통의 공법도 모르면서 약삭빠른 간교나 잔재주, 급조된 몸놀림이나 손바람에 의지하여 선도를 운위하고 다도를 농하는 자가 있다면 그 보다 더 무서운 사문(斯文)의 난적(亂賊)은 없을 것이다.

둘째는 행공(行功)이다. 선도나 다도는 둘 다 몸으로 수행하여 도달하는 것이지 관념의 작위로 얻는 것이 아니다. 선도는 몸을 통하여 몸을 넘어 있는 몸을 얻으려는 종교이다. 다도는 불이나 물, 차와 기물 등과 같은 명물도수(名物度數)를 통하여 그 너머에 있는 다경(茶境)에 이르려는 도이다. 그러므로 선도와 다도에서는 반드시 행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선도에서 몸과 정신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닦아 정신이 되는 것이므로 이 행공의 과정이 곧 선도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다도에서도 물과 불을 떠나 따로이 차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차가 바로 행다요, 행다가 바로 도인 셈이다. 선도나 다도에서 행공을 더더욱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우라센케(裏千家) 이에모토(家元) 센겐시츠(千玄室)도 "다도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체험 이외의 방법은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에 의하면 다도는 행다의 구체적인 절차를 하나하나 수행해감으로써 마음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하며, 이 행다의 과정에 있어서 진지하게 목숨을 걸고 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 "형(型)에 피가 흐르게 한다"고 표현하였는데, 좀 처연한 표현이긴 하지만 다도의 수행이 여기에 이르면 곧 선도의 행공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수행의 과정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곧 주화입마(走火入魔)이다. 선가(仙家)의 속담에 "도가 한 자 높아지면, 마는 한 길 높아진다(道高一尺, 魔高一丈)"는 말이 있다. 명대(明代)의 오진양(伍眞陽)에 의하면 "마는 때로는 천마(天馬)가 와서 도행(道行)을 시험하여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신의 식신(識神)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 하여 실은 이 마라는 것도 주로 우리 마음이 일으킨 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도의 수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다 도가 한 자쯤 높아질 때쯤이면 기물이나 다의(茶儀)에 치우치는 마음, 또는 교만의 마음이 열 길 스무 길 치솟았던 것은 오직 나만의 경험이었을까?

셋째는 화후(火候)이다. 화후는 불로 단(丹)을 익히는 시간과 과정을 말한다. 명대(明代) 오류파(伍流派)의 비전(秘傳) 가운데 하나인 '천선정리(天仙正理)'에 보면 화후의 과정을 백일축기(百日築基)니 시월회태(十月懷胎)니 삼년포유(三年哺乳)니 구년면벽(九年面壁) 등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 숫자만큼의 시간은 물론이요 하루에도 자·축·인·묘 등 12시의 변화에 맞춘 소주천(小周天)의 공력과 일년 월령(月令)의 순환에 맞춘 대주천(大周天)의 적절한 화후가 뒤따라야 한다고 한다.

무릇 밥 같은 것을 지을 때에도 삼가 수십 분의 시간과 과정마다의 화후가 소요되는데, 항차 양신(陽神)의 노성(老成)을 일삼음에 있어서이랴. 한 발 한 발 닦아 세월의 깊이만큼 익어가는 선인과 차인들에게 축복 있으라!

 

유·불·선 합종(合宗)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仙茶의 향
도교적 성향의 지명 많은 부산 선차문화 부흥의 중심 됐으면

 
  사진 제공=이경순(사진가) 영광갤러리 관장
선도(仙道)는 불교나 유교와도 잘 통하는 사상이다. 삼교는 역사 동안에 우호적이든 비우호적이든 서로 교섭이 있었다. 그러나 불교와 유교의 관계에서는 배타적인 성향이 농후했으나 선도는 모두와 대체로 잘 어울렸다. 이것은 불승(佛僧)들이나 유자(儒者)들의 글을 보면 뚜렷하다.

한재(寒齋) 이목(李穆·1471-1498)은 일찍이 '다부(茶賦)'라는 글을 지어 문자가 귀한 우리 차문화계에 큰 덩어리를 하나 내려놓고 간 차인이었다. 그는 성균관 유생 시절, 당시 성종 임금이 병에 걸렸을 때 대비가 무녀를 시켜 기도를 올리려 하자 태학의 유생들과 함께 몰려가 기물을 때려 부수고 무녀들을 곤장을 때려서 쫓아낸 강직한 유림이었다. 그러나 '다부'에서 '표주박 하나 손에 들고 두 다리를 드러내고, 백석(白石)을 삶아 금단(金丹)을 익혀 신선이 되고자 했던 옛사람들과 같이 차를 달여 마셔보네'라고 읊은 것을 보면 그 역시 찻자리에서만은 유(儒)·도(道)의 구별을 하지 않았던 듯하다.

조선 중기의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은 도교의 도인술(導引術)을 담은 '활인심방(活人心方)'을 자신의 평생 건강법으로 삼아 실천했는데, 그가 조선조 유학의 태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도교서를 평생 신봉했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현상인 셈이다. 더구나 '활인심방'의 찬자(撰者)인 주권(朱權·1378-1448)은 명 태조 주원장의 열일곱 번째 아들로서 명초의 저명한 다서 '다보(茶譜)'의 저자이기도 하다.

조선 중기의 걸출한 차승(茶僧) 사명유정(1544-1610)은 '원길의 운을 따라(次元佶韻)' 시에서 '황정경(黃庭經)을 손에 들고 신결(神訣)을 묻고져/멀리 바다 건너 신선의 문 두드렸더니/사미승 불러 차 석 잔 내오니/동원(東院)의 종풍(宗風) 예와 같구나'라고 읊었다. 이 시는 사명당이 임란 직후 일본에 수신사(修信使)로 가 있던 어느 날 경치를 구경하러 야외로 나가자 일본의 승 원길(元佶)이 싯귀로 농을 걸어오매 차운하여 읊은 시인데, 그는 여기서 도장(道藏)의 하나인 '황정경'과 신선의 세계를 직접 거론하고 있다. 이 시를 보면 그의 시경(詩境)에는 조선도 일본도 초월하고, 선불(仙佛)의 구별도 없이 차만 있을 따름이다.

추사(秋史)의 제자이기도 한 조선 후기의 역관(譯官) 이상적(李尙迪·1804~1865)은 '찻물 푸기(茶)'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작은 주발로 찻물을 긷는데/

어찌 그리 많은 거품 이는지/

둥근 빛 구슬처럼 흩어지는데/

하나의 구슬마다 하나의 부처님이네/

덧없는 인생은 손가락 튕기는 찰나인데/

천억의 몸이 어찌 아니 황홀하랴/

천수천안 열리듯 하고/

마치 머리털 나누어지듯 하는구나/

깨달음의 곳에서 문자 사라지고/

참선의 때에 부처가 선다/

경전(經傳)에서는 육우(陸羽)의 가르침을 전하고/

시가(詩歌)에서는 옥천(玉川)이 찻사발을 노래한다'.


이 시에서 이상적은 차 끓일 물을 길으면서, 흩어지는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바로 부처라고 부르고 있는데, 웬만한 선승의 시보다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를 더욱 구상화하고 있다. 그가 유자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역시 이례적인 시취(詩趣)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차와 함께 선도 사상이 깃들어 있다.

우리 부산에는 선도, 혹은 도교의 성향을 띤 지명이 많다. 부산의 주산인 금정산은 금정(金井),

혹은 금정(金鼎)으로서 단(丹)이 모이는 우물, 혹은 단이 익는 솥과 같은 곳이다.

백양산(伯陽山)은 도교 선인 가운데 한 사람인 위백양(魏伯陽)의 이름을 딴 것이요,

해운대 장산(萇山) 7부 능선의 너덜겅은 삼랑진 만어사(萬魚寺)의 '어산불영(魚山不影)'에 버금가는 기(氣)의 호수이다.

천마산(天馬山)은 신선이 타고 하늘을 오르는 형상이요, 마주보는 절영도(絶影島)는 속세의 그림자마저 끊어진 선경이다.

절영도의 주봉은 봉래산(蓬萊山)이다. 그 산자락에 봉래동(蓬萊洞), 청학동(靑鶴洞)이 있고, 아예 신선동(新仙洞)도 있다.

천마산을 타고 내려오면 감천동(甘泉洞)이 있는데 감천은 원래 선도(仙道)와 다도(茶道)가 함께 어우러진 성지이다.

구덕(九德), 수정(水晶), 금곡(金谷) 등의 지명도 모두 선도사상과 관련이 있다.

동(洞)이라는 행정단위도 실은 선도 수련의 동혈(洞穴)을 이른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이런 행정단위가 없다.

부산(釜山)이란 이름 자체도 단전(丹田), 혹은 기해(氣海)란 말과 통한다. 부산은 이처럼 선차(仙茶)의 기운이 서려 있는 곳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우리의 선차 문화가 다시 부흥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