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육·해·공군 따로따로?

醉月 2011. 11. 9. 12:30

육·해·공군 따로따로? 구멍 뚫린 軍 신경망 01

軍 신경망 C4I체계 데이터 전송 10% 실패 ‘충격’ 한미연합훈련서 한심한 모습 드러내…8월 감사원 보고서도 호된 비판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극단으로 치달은 어느 겨울 밤, 개성직할시 판문군 일대에 배치된 북한 장사정포 갱도진지가 하나 둘씩 문을 열기 시작한다. 수개월 전부터 갱도진지 개폐로 전쟁 위협을 압박하던 그간의 행동패턴 때문에 군당국은 이를 ‘매우 특별한 징후’로 해석하는 데 실패한다. 쇠처럼 무거운 구름과 안개가 잔뜩 낀 날씨 탓에 전방 초소와 항공정찰자산이 특이 동향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고, 수년 전부터 대대적으로 진행한 북한 측 전방 포병부대 통신망의 광케이블 유선화 작업 때문에 정보당국 역시 감청을 통해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데 실패한다.

 

새벽 3시. 240mm 방사포와 170mm 자주포가 서울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한다. 군은 전방에 배치한 K-9 자주포와 MLRS(다연장로켓포)로 북한 측 갱도진지 격파에 나섰지만, 산봉우리 뒤편에 자리한 진지를 타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합참이 긴급히 하달한 F-15K 전투기 출격 명령. 육군의 AN-TPQ 레이더는 청와대를 향해 포탄을 날리는 방사포 11기의 위치 좌표를 포착해 송신하지만, 이를 전달할 합동지휘통제체계의 오류 탓에 일부를 누락해 F-15K에 전달하지 못한다. 살아남은 방사포가 서울을 유린하는 사이, 곳곳에서 벌어진 시스템 오류 때문에 예상과 달리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말 그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사령부와 전선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에 오류가 발생해 효과적인 대응 공격이 불가능해지는 이러한 상황이 과연 기우에 불과할까. 문자를 10개 보내면 하나는 도착하지 않는 휴대전화가 있다면 과연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을까. 특히 그 휴대전화가 전쟁 수행을 위한 핵심 정보를 보내는 장비라면 납득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러한 우려가 8월 중순 열린 한미 연합 을지프리엄가디언(UFG) 연습 당시 사실로 드러났다. 합참과 각군 간의 C4I체계를 통해 오간 데이터의 전송 성공률이 90% 이하로 확인된 것이다.

 

잠시 몇 가지 개념을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C4I란 지휘(Command), 통제(Control), 통신(Communication), 컴퓨터(Computer), 정보(Intelligence)를 합친 군사용어로, 우리말로는 흔히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라고 옮긴다. 전체 전장에서 레이더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컴퓨터로 통합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이를 다시 육해공군의 각종 공격용 무기체계에 배분함으로써 통합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한국군이 보유한 모든 눈과 귀를 모든 주먹과 다리로 이어주는 신경망인 셈이다. 육해공군 전력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최고 성능을 발휘하게 만드는 이른바 네트워크 중심전(NCW·Network Centric Warfare)은 세계 주요 국가 군대의 핵심 과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전투력 극대화하는 네트워크 시스템

한국군의 전장 C4I체계는 합동참모본부가 기존 시스템을 개량해 구축한 합동지휘통제체계 KJCCS(Korea Joint Command Control System)를 핵심으로 한다. 여기에 육군의 ATCIS, 해군의 KNCCS, 공군의 AFCCS 등 각군 C4I체계를 연동해 전체 전장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구조. 다시 말해 공군의 무인항공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무궁화 위성에서 수집한 정보를 KJCCS를 거쳐 육군의 자주포나 MLRS,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등으로 실시간 연결하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안규백 의원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군은 UFG 기간이던 8월 16~18일, 19~22일, 23~26일 세 차례에 걸쳐 각군 C4I에서 KJCCS로 데이터를 전송해 성공률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초기에 해당하는 16일부터 사흘간, 당연히 100%이리라 기대했던 전송 성공률이 육군 C4I의 경우 88.7%, 해군은 88.8%, 공군은 97%로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이 기간은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부지휘구조개편안을 검증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안 의원 측은 말한다. 과연 제대로 된 지휘구조 검증이 가능했겠느냐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합참 측은 데이터 송수신 실패의 97%가 운용자의 입력 오류며, 나머지는 연동서버 작동 오류로 순식간에 먹통이 됐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C4I 운용자에 대한 각군의 교육·훈련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인 데다, 특히 3% 남짓의 연동서버 작동 오류는 시스템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는 결과라는 게 안 의원 측 설명이다. 전시에 서버나 시스템에서 결함이 발생한다면 작전수행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군 C4I체계의 이러한 한계가 구조적이라는 점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2개월간 C4I체계 구축을 포함한 국방정보화 추진 실태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고, 8월 초 그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전력화된 정보체계의 기반기술이나 데이터를 표준화하지 않아 정보체계를 상호 연동하는 것으로 구축하고도 연동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연동이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것이 감사 결과 보고서의 요지. UFG 연습 과정에서 문제를 확인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2010년 연습 당시에는 35개 연동항목 가운데 단 1개만 실시간 연동에 성공했다는 게 감사원 측 설명이다.

 

2010년 12월 23일 경기 포천시 승진훈련장에서 펼쳐진 공지합동 훈련에서 K-9 자주포가 공격 원점에 대해 대응포격을 가하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KJCCS에 입력된 정보 상당수 오류

KJCCS에 이미 입력한 정보에서도 상당수 오류를 발견했다. 한국군 부대 33개가 KJCCS 지도상으로는 북한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돼 있는가 하면, 지난해 추락한 전투기 3대는 전투대기 중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육군 모 사단의 편제인원은 체계마다 9000명부터 1만2000명까지 따로따로였고, 모 군단이 보유한 K-1 전차는 38대로 표기돼 실제 보유대수와 달랐다는 것. 각군 현황이 합참에 정확히 보고되지 않고 합참 명령도 각군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공격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면 C4I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현재는 한미연합사령부가 중심이 되는 전쟁수행이 전작권 전환 이후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것으로 바뀐다. 이 경우 한국군 KJCCS는 실질적으로 한미 양국군을 연결하는 C4I 시스템의 등뼈 구실을 맡아야 하고, 이를 완벽하게 수행해야 비로소 한국군 합참과 주한미군 지휘부를 실시간으로 연동하는 일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에 활용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이 같은 한계는 도대체 왜 발생한 것일까. 사안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부분은 합참과 각군의 유기적인 협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KJCCS와 각군 C4I 시스템 사이에 연계해야 할 항목 가운데 상당수가 누락돼 육해공군의 정보가 KJCCS에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 예를 들어, 주요 탄종별 현황이나 전투준비태세, 병력동원, 인력동원, 유류현황 등은 해·공군 C4I체계에서만 KJCCS로 송신하고 육군 C4I체계에서는 보내지 않는 등 어떤 정보를 보내고 받을지조차 뚜렷한 기준이 없어 중구난방이라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진행해온 성능개량사업 과정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은 여전해서, 공군과 육군의 경우 의견 차이로 인해 어떤 항목의 정보를 주고받을지조차 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자가 자체적으로 항목을 정해 임의로 성능 개량을 진행하는 바람에 사업을 완료한 후 연동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높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주먹’에만 집중해온 부작용

이와 관련해 앞서의 감사원 보고서는 “사업 전반을 총괄, 조정하는 기구나 종합 추진 계획이 부실한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해 시스템 중복 및 부실 개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구축된 시스템도 제대로 운용하지 않는 문제점도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C4I체계 구축사업 전반에 대해 총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매우 강도 높은 비판이다.

 

‘C4I 승수효과’라는 말이 있다. 같은 숫자의 레이더와 정찰기, 같은 성능의 전투기와 자주포를 보유해도 이를 연결하는 신경망과 두뇌를 얼마나 잘 구축하느냐에 따라 몇 배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쉽게 알 수 있는 사례가 바로 지난해 11월 23일 벌어진 연평도 포격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당시 포탄이 날아온 북한 개머리 진지를 대응사격 이후 촬영한 위성사진을 보면, 연평도 부대의 K-9 자주포 응사는 북한 122mm 방사포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이처럼 최초 대응공격이 실패할 경우 감시·정찰자산을 통해 오차를 확인한 뒤 이를 보정해 조준을 수정해야 하는데, 이 절차를 C4I체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자동화해야 방사포가 자리를 벗어나기 전에 타격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간 한국군은 북한 위협에 대비해 MLRS와 ATACMS(전술지대지미사일), JDAM(합동직격미사일), 현무미사일 등 ‘주먹’에 해당하는 공격자산만을 중점적으로 구입해왔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C4I 부분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관습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숱한 문제제기에도 한국군의 C4I 능력을 여전히 의심스러운 수준으로 남겨둔 장본인인 셈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온 그간의 오류가 한국군에 남긴 고질적인 생채기다.

 

육·해·공군 따로따로? 구멍 뚫린 軍 신경망 02

“전작권 전환하려면 C4I 성능 개선하라!” 美, 한국군 준비 부족 연이은 질타…

 

올 8월까지도 ‘한·미 연동방식’ 공식 합의 없어 2010년 6월 26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의 한 호텔에 마련된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김성환 당시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에 관한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우리 군이 정보획득, 전술지휘통신체계, 자체 정밀타격 능력 등을 준비하는 데 2015년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 연기 사실을 공개한 2010년 6월 27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현지에서 회담 결과를 발표한 김성환 당시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의 이 발언은 군 당국 주변에서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군의 준비태세가 미비해 전작권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뉘앙스가 묻어나는 설명에 발끈한 국방부는 고위관계자가 직접 “전작권 전환 연기는 북한의 2차 핵실험 등 안보환경의 변화 때문이지 우리 군의 능력은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전작권과 관련해 청와대가 은연중에 내비친 인식을 반박한 셈이었다.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청와대와 안보부처 핵심에서 이 문제를 다뤄온 당국자들의 뒷이야기는 훨씬 솔직하다. “전환 프로세스를 착착 진행해 이미 65% 수준에 이르렀다”는 당시 군의 설명은 실상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 이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문제가 바로 C4I체계 구축을 완료해 미군의 체계와 연동하는 과제다. 쉽게 말해 “2012년이 안보적으로 불안한 시기여서 전작권 전환 연기가 불가피했다”는 공식 설명과 달리, 실제로는 C4I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우려가 깊숙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초 일정 준수를 강하게 주장했던 미국 측이 끝내 연기를 수용한 이유 또한 바로 이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위키리크스 “주요 회의 때마다 반복 지적”

앞서 현대전에서 C4I체계가 갖는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특히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앞둔 한국군 상황에서는 그 의미가 배가된다. 현재는 한미연합사령부로 통합된 유사시 전쟁 지휘체계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와 미군 한국사령부(KORCOM)로 분리돼 이른바 ‘병렬형 지휘체계’로 변하기 때문. 이렇듯 이원화한 사령부 사이의 협조 및 연락을 위해 동맹군사협조본부(AMCC)를 함께 구성함으로써 문제의 소지를 없앨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간 군당국의 설명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듯 사령부를 분리할 경우 양국군 사이의 실시간 정보연동이나 명령 전달은 이전에 비해 훨씬 중요해진다. 두 사령부 사이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지가 곧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수단과 통로 구실을 할 신경망인 양국군의 C4I체계를 연동하는 작업이 전작권 전환과 관련한 하드웨어 구축사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평가에 군 관계자 대부분이 동의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한국군이 현재 사용하는 C4I체계인 KJCCS(합동지휘통제체계)를 AKJCCS(연합지휘통제체계·KJCCS 앞에 ‘동맹’을 뜻하는 ‘Alliance’를 붙인 용어)로 발전시킨 뒤, 이를 주한미군 C4I체계인 CENTRIX-K와 연동해 미군 C4I와 이어 붙인다는 것이 현재 계획의 골자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이에 대해 미국 측이 심각한 우려를 전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8월 26일(현지시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대사관발(發) 외교전문을 보면, 전작권 전환을 결정한 후 열린 수차례의 한미 군사당국 회의에서 미국 측 대표들이 이 문제를 매우 강도 높게 지적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군의 C4I체계 구축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바람에 통합 작업 역시 예정대로 진행될 수 없다는 문제제기가 주요 회의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주한 미대사관이 2008년 11월 8일자로 작성한 제19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 관련 전문이다. 그해 9월 서울에서 열린 회의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데이비드 세드니 당시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C4I 부분을 꼬집어 지적하고 나선 것. 전작권 전환 준비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이 회의에서 그는 과제 대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C4I에 대해서만큼은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 측은 2012년에 이르러서야 AKJCCS를 실전에 배치할 계획이지만, 전작권 전환 이전에 이를 충분히 시험해보고 가동하기에는 너무 늦다는 지적이었다.

 

6월 8일 경기도 파주시 무건리 훈련장에서 진행된 한미 기계화부대 연합전술훈련에서 K-1 전차가 기동하고 있다. 이날 훈련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한국군이 지휘권을 행사한 첫 전술훈련으로, 1군단 소속 2기갑여단과 미 2사단 예하 1여단이 참가했다.

 

전작권 전환 연기의 ‘진짜 이유’?

미국 측의 우려는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2009년 3월 2일 서울에서 열린 제21차 SPI 회의 내용을 전한 3월 20일자 전문에 따르면, C4I 문제는 모두연설과 북한정세 토론에 이어 가장 먼저 논의했을 정도로 우선순위가 높은 이슈였다. 참석자였던 주한미군 기획참모부장(J5) 프랭크 팬터 소장은 “한국 정부가 AKJCCS 구축사업에 배정한 예산이 21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우려를 표시(expressed concern)했으며, 특히 “전작권 전환 이후 C4I체계 통합에 대해 양국이 공식적인 합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전문은 기록했다.

 

이 회의에도 참석한 세드니 부차관보의 발언은 한층 강도 높다. “C4I 문제는 전작권 전환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전투 이슈(most critical warfighting issue)”라는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의 말을 인용한 그는 “전작권 전환을 예정대로 진행하려면 이 사안이 ‘노란색’에서 ‘초록색’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드니 부차관보는 다음 SPI 회의 전까지 한국군이 AKJCCS 개발 진척도와 필요한 C4I 성능을 충족시킬 방안에 대해 브리핑해달라는 요구를 덧붙이기도 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전문이 주한 미대사관이 작성한 보고서의 극히 일부임을 감안하면, 확인된 내용은 그간 미국 측이 제기해온 C4I 관련 우려 가운데 빙산의 일각일 공산이 크다.

 

전작권 전환 연기 이후에는 과연 양측의 협의와 사업 진행이 원활하게 이뤄졌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는 징후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감사원이 8월 공개한 ‘국방정보화 추진실태 감사결과 처분요구서’에 따르면, 군은 여전히 한미 간 C4I 연동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상태다. AKJCCS와 CENTRIX-K를 어떤 항목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이어 붙여 실시간으로 연동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 없이 AKJCCS에 대한 개발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 감사원은 추후 합의 결과에 따라 한국 측 C4I체계를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는 부분을 우려사항으로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워싱턴에서 피어오르는 ‘음모론’

 

2008년 4월 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17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데이비드 세드니 당시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여하는 당국자들의 설명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간 실무협의를 포함하면 수십 차례 협의를 진행했지만, 이른바 ‘정보접근권’ 문제에 가로막혀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양국군 C4I체계의 연동 수준에 따라 한국군은 미군이 수집한 정보를 모두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미국 측은 한국군이 수집한 정보를 모두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동맹이라고 해도 타국 군이 이처럼 민감한 군사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해줄 것인지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찾기 어렵다 보니 양측 C4I체계의 연동항목이나 방식에 대해서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형국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한국군의 C4I체계가 많은 문제점을 풀지 못한 데다 한미 사이의 공식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보니, 2015년 12월 전작권 전환까지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군당국 내부에서도 만만치 않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2006년 전작권 전환 일정을 결정한 이래 4년 가까이 흐른 2010년까지도 이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명박 대통령의 안보참모로 분류되는 한 전문가의 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2013년 말이나 2014년 초쯤 C4I 문제가 다시 전작권 전환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워싱턴 인사들 사이에서는 한국 측의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작권 전환을 다시 연기하는 명분으로 삼으려고 C4I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어쨌든 한 번의 연기 결정이 군당국에 ‘다음에도 다시 연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학습효과를 남겼음은 부인하기 어렵고, 이를 감안하면 오히려 그 시점에 C4I 준비 지연 문제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갔어야 옳지 않았나 한다. 천안함 사건과 국방예산 문제 등으로 헝클어진 군심(軍心)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던 청와대의 ‘배려’가 부메랑으로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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