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웰빙하다 웰다잉하기

醉月 2009. 7. 7. 00:04

죽음의 순간 삶은 완성된다, ‘해피엔딩’을 위해 기억해야 할 것
이정옥 시인·‘반만 버려도 행복하다’ 저자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물음은 영원한 화두다. 이를 시작으로 철학과 종교가 태어났지만 명쾌한 답은 어느 종교학자, 철학자도 찾지 못한 것 같다. 이 삶의 끝인 죽음은 어떤 곳일까? 키케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죽음이 영혼을 아주 없앤다면 죽음은 확실히 무시돼야 한다. 만일 죽음이 영혼을 영생할 수 있는 곳으로 이끌어간다면 오히려 죽음은 열망돼야 한다. 제3의 경우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 삶 아니면 죽음이다.

죽음의 귀띔을 듣지 못하는 사람

며느리에게도 그녀만의 삶이 있어야 한다며 고질인 천식을 약봉지에 담아 실비노인요양시설로 온 라자로 할아버지. 사업도, 골프도 접고 왔지만 지난 삶을 뽐내지 않았다. 현재를 탄식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의 노년은 평화롭고 격조 높았다. 간혹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할아버지의 인사말에선 위트가 넘쳤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비결 있으면 공개해도 되는데….” 저녁식사 후 로비에서 한담을 즐기던 할아버지가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에 보이지 않았다. 웬일이지? 방문을 열자 꿈을 꾸듯 평화로운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심장마비!

10년을 지내온 당신 방에 여든다섯 해 입었던 육신을 벗어놓고 할아버지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연락받고 온 아들과 며느리가 가슴을 쳤다. 며느리의 회한이다. “제 휴대전화로 한 번도 전화하신 적이 없어요. 외출 중인 저를 배려해서지요. 그런 아버님께서 이틀 전에 전화를 하셨어요. 그냥 안부전화라며 ‘넌 몸이 약하니 늘 건강 주의하고 무리하지 말라’ 하셨어요. 그때 이상하게 여기고 달려왔어야 했는데….”

   

살면서 때를 놓치고 가슴 치는 일이 어디 한두 번 있는가? 그칠 줄 모르고 흐르는 며느리의 눈물을 닦아주며 생각했다.
‘영혼이 맑으면 죽음의 귀띔을 들을 수 있구나.’

실비노인요양시설에서의 10년. 그동안 스물세 분을 떠나보냈다.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 죽음의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죽음은 모든 이에게 공평했다. 백만장자도 비껴가지 못했고, 장군도 이기지 못했다.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것이라면 죽음의 귀띔 또한 공평할 것이다. 그런데 귀띔을 듣지 못하는 이도 있다.

글라라 할머니는 학력과 재력을 뽐내고 다녔다. 그런 할머니의 둘째 아들이 사업에 실패했다. 며느리가 파출부로 나섰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아들이 찾아와 통사정했지만 끝내 주머니를 풀지 않았다. 그랬던 할머니가 위루술을 받고 6개월을 버티다 떠났다. 침대 시트 아래 숨겨둔 통장을 들고 며느리가 통곡했다. 우리 모두 민망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글라라 할머니는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죽음의 귀띔을 듣지 못했다. 그때 키케로의 탄식이 내 귓전을 때렸다.

“현명한 자는 평정한 마음을 지닌 채 죽지만, 우둔한 자는 그렇지 못한다.”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처럼 거룩하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는 사마천의 좌우명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자기 삶이 자기 죽음인 것을.

누구나 자신의 죽음이 품위 있기를 바란다. 의학박사 M. 스캇 펙이 품위 있는 죽음의 조건으로 들려준 말은 이러하다. 자살이나 살해가 아닌 자연사일 것, 육체적인 통증이 없을 것,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이들과 화해한 뒤 작별인사를 나눌 것 등.

촛불이 잦아들듯 삭고 삭아서 떠나는 자연사가 있는가 하면 타살, 사고사, 병사, 자살, 돌연사가 있다. 새삼스럽게 요즘 들어 다릴 앙카의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보통의 죽음은 터널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인 데 반해 자살은 거기서 도망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도 말했다. “신의 명령 없이 삶이라는 정류장으로부터 떠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락사를 반대하고 자살을 말리고 사고사를 경계한다. 가장 품위 있는 죽음은 자연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릴 앙카가 말한 보통의 죽음이 바로 자연사다.

하지만 터널을 끝까지 걸어온 사람에게 신이 떠날 것을 허락했는데도, 죽음이 여러 차례 호명했는데도 들은 척 않고 죽음을 손안에 틀어쥐고 놓지 않는 낯선 이름이 등장했다. 냉정하고 단호한 이름! 자연사에 족쇄를 채우는 그를 우리는 연명장치라 부른다.

60대 후반의 아가다 할머니가 췌장암 수술 후 세상살이를 정리하고 요양시설에 들어왔다. 정기검진을 열심히 받던 할머니가 어느 날 진료카드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어조와 태연한 눈빛으로 원장수녀에게 말했다.
“쉬고 싶어요. 제 영혼이 그걸 원해요.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일, 더 이상은 싫어요. 그냥 아프지만 않게 해주세요.”

아이가 없어 20대 초반에 소박당한 할머니는 평생 외롭고 고달팠다. 젊은 시절 여러 번 자살 생각도 했다는 할머니는 인생이라는 터널의 마지막 지점까지 오느라 혼신의 힘을 쏟았다.

   

우리는 자기 앞의 삶을 당당히 받아들인 할머니의 인내에 박수를 보냈고 연명장치를 거부한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위루술 시술 후 식물인간 상태로 700일의 문턱을 넘어선 93세 마리아 할머니. 할머니의 삶을 행운이라고도 불운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나는 참으로 슬프다. 삶이 존엄하다면 죽음도 존엄해야 하지 않겠는가?

죽음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

밀알이 죽지 않으면 밀밭은 없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죽음! 죽음은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의 위대한 소명이다. 그런데 인간은 천만년, 아니 영원히 살기를 원하다. 냉동인간, 복제인간을 운운하며 육신의 영생을 꿈꾼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이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육신의 죽음으로 자유로워진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오스 기니스가 그의 저서 ‘소명’에서 한 말이다.

“죽음은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종결을 의미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는 인생의 절정이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여행을 한 다음 드디어 집으로 간다. 수십 년 동안 목소리만 들어오다가 이제는 얼굴을 보고 실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부르신 분은 신이고, 우리의 마지막 소명은 그 부르심에 따라 떠나왔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왜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일까? 두려움, 특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란다. 무슨 실패? 허송세월에 대한 자책, 시기 질투에 대한 부끄러움, 탕진에 대한 후회…. 그건 실패도 부끄러움도 아니다. 죄는 더더욱 아니다. 삶이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신은 단죄하는 분이 아니라 용서하고 사랑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순간 삶은 완성된다. 명예로웠든 비참했든, 충만했든 부족했든, 그릇이 컸든 작았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순간 죽음은 이 세상 삶을 완성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래서 죽음은 신비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에리히 프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모든 형태의 소유에 대한 갈망, 특히 자아의 속박을 버리면 버릴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약해진다.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정옥 시인은 1939년에 태어나 잡지 기자로 20년간 활동하다 은퇴 후 2권의 시집과 1권의 수필집을 냈다. 1999년부터 이 시인은 65~99세 노인 69명이 살고 있는 실비노인요양시설에서 10년을 지냈다. 그 세월 동안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품위 있게 세상을 마무리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신간 ‘반만 버려도 행복하다’는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위 글은 삶의 진정한 해피엔딩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 시인의 소박하지만 진실한 성찰을 담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이름 대신 세례명으로 표기했다.

   

엄숙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하늘로의 소풍’ 준비, 아름다운 생애 마감 죽음준비교육 인기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54년 동안 6남매 키우면서 온갖 고생 다 했어요. 이젠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려 했는데, 안사람이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딱 두 달여 투병하더니 지난해 여름 저세상으로 갔어요.

텅 빈 아파트에 혼자 남게 되니 외롭고 쓸쓸하고, 그렇게 가버린 사람이 야속하고 또 생전에 고생시켜서 미안하고 그랬습니다. 정말 안사람을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6월15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에 있는 성동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하늘소풍준비교실’ 1기 수료식(아래 사진)이 있었다. 발표자로 나선 심문원(81) 씨는 자서전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지만, 아내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려왔다. 사별한 지 1년여. 웃음을 잃었고 사람 만나는 걸 꺼려왔지만, 그는 죽음준비교육을 받은 뒤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자서전을 쓰기 위해 예전 사진을 찾아보며 안사람이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누구나 가는 세상에 조금 일찍 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안사람은 죽을 때까지 암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을 겪지 않았어요. 의사들도 특이하다고 했죠. 지금 생각하면 이 역시 축복입니다. 같이 묻힐 묘지도 정했으니, 저는 이 세상에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산 뒤 저세상에서 기쁘게 만나려고 합니다.”

“자서전 쓰면서 아내의 소중함 깨달아”

서울 동작구 시립동작노인종합복지관에서 있었던 ‘하늘소풍 준비하기’ 개강식.

이날 심씨 등 30여 명이 7주간, 13시간의 교육을 마치고 수료장을 받았다. 각자의 손에는 자서전과 유언장, 사전의료지시서 그리고 자신의 가장 환한 얼굴을 담은 ‘장수사진’이 들려 있었다.

전문 사진작가가 무료로 찍어줬다는 ‘장수사진’은 외부에서 ‘영정사진’이라고 부르는 것. 하지만 이들은 “사진을 찍어놓으면 오래 산다고 한다”며 ‘장수사진’이란 이름을 붙였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존엄사 인정 판결 등으로 ‘죽음’과 ‘품위 있게 잘 죽는 것’(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전부터 다양한 이름의 죽음준비교육이 있어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죽음’ 강의는 노인복지 현장에서만 드물게 시도됐고, 반응 또한 그다지 좋지 않았다.

   

6월11일 오전 웰다잉교육 전문지도강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복지기관은 물론 대학, 종교단체 등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강의한다.

죽음준비교육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06년 서울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서울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에서 ‘아름다운 생애 마감을 위한 시니어 죽음준비학교’를 개강한 이후. 15회, 30시간 이상 진행된 이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입소문을 탔다.

시민단체 등에서 비슷한 내용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 올 들어서는 프로그램의 횟수와 양이 크게 늘었고, 예산 지원 및 후원 단체도 지방자치단체, 사기업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성동노인종합복지관의 하늘소풍준비교실은 성동구청이 예산을 지원했다.

6월10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의 시립동작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하늘소풍준비하기’ 개강식이 열렸다. 이 프로그램은 9월30일까지 총 17회, 35시간 이상 진행된다.

담당자인 김인옥 과장은 “처음엔 20명 정원도 채우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신청자가 많아 정원을 25명으로 늘렸는데도 상당수 대기자를 돌려보내야 했다”며 “참가하는 분들도 ‘하늘쇼핑교육’이라고 농담을 할 만큼 긍정적으로 임한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도 한화손해보험이 전액 후원하기에 참가자가 지불할 비용은 없다.

‘생존 시 유언서’와 ‘사전의료지시서’
다양한 형태의 사전의료지시서.
최근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 이후 죽음준비교육의 ‘핫이슈’로 떠오른 것이 ‘생존 시 유언서’와 ‘사전의료지시서’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문’이라고도 불리는 ‘생존 시 유언서’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 자신에 대한 치료 여부를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항생제 이용, 인공 급식, 심폐소생술 등 연명치료를 거부한다거나 고통 완화 조치를 최대한으로 해달라거나, 식물인간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이 내려지면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명하게 하지 말라는 등의 내용을 자유롭게 담을 수 있다.
‘사전의료지시서’는 생존 시 유언서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치료방법을 기술한다. 본인의 서명뿐 아니라 가족 증인 및 공증인의 서명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이 어느 한 방향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0.1%의 가능성이 있다면 끝까지 치료해달라”고 적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연명치료를 하느냐, 마느냐 여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총 11기, 220명의 수료생을 배출한 서울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아름다운 생애 마감을 위한 시니어 죽음준비학교’는 9월, 12기 과정을 개강한다. 한때 대기자가 14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어 벌써부터 수강생이 몰린다.

최근에는 노인복지기관 외에 대학, 자원봉사, 가족복지 단체에서도 웰다잉에 대한 강의를 많이 진행한다.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이별학교’는 좀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한다. 이 프로그램의 특색은 유산 나눔사업의 일종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다른 강좌들보다 ‘나눔’의 가치를 알리는 데 주력한다는 점.

보통 10회, 20시간 안팎으로 진행되는 죽음준비교육은 크게 4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축은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까닭 살펴보기’.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교육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나누며,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과 이를 실천하는 방안 등을 찾아본다.

두 번째인 ‘용서와 화해, 감사하기’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과 화해하는 것. 자서전 쓰기가 대표적이다. 또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은 일을 떠올리며 그 방법을 찾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도 기억해 그 마음을 전달한다. 자신의 인생이 가치 있으며 잘 살았다고 깨닫게 하는 것도 교육목표 중 하나.

세 번째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는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한 준비 과정을 뜻한다. ‘생존 시 유언서(Living Will)’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Directive)’의 필요성과 내용을 이해하고 작성해본다. 또 장기기증이나 호스피스 이용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네 번째 축인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정리하기’에서는 죽음 이후 남겨질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생각해본다. 유언장을 써보고, 그 내용을 수강생끼리 나눠 봄으로써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또 법률 전문가에게 유언장이 법적인 효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도 배운다. 여기에 죽음 관련 연극이나 영화를 보고 소감 나누기와 장수사진 찍기, 장묘시설 견학하기 등이 포함된다.

이것만은 꼭! 죽음 준비 5가지
몸의 준비
● 몸의 변화를 받아들인다.
●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생각해본다. 생존 시 유언서와 사전의료지시서를 준비한다.
● 호스피스 활용과 장기기증을 생각해본다.
마음의 준비
● 죽음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에 이르는 심리 과정을 거부,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로 나눴다.
● 죽음은 치료의 실패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인지하라.
●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고, 모두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소망의 단계임을 마음속에 새긴다.
법적 준비
● 유언과 상속을 꼼꼼하게 챙긴다. 안 그러면 후일 유족 간 분란의 씨가 될 수 있다.
장례와 장묘 준비
● 내가 원하는 장례 방식을 생각해본다.
● 변화하는 장묘에 대해 알아본다.
사별의 아픔 나누기
● 나의 죽음 준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죽음에 대한 준비도 함께 한다.

유경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유경의 죽음준비학교’ 저자

   

교육 수료 후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

웰다잉 연극단 단원들이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사무실에 모여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첫 무대는 8월21일에 있을 예정.

교육을 받으면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고 한다. 시립동작노인종합복지관이 ‘하늘소풍 준비하기’를 진행한 뒤 참가자 15명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 태도를 비교한 결과, 교육 전(53.7점)보다 후(47.5점)에 5점 이상 낮아졌다. 우울증 정도도 평균 5점 감소했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부정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한 결과로 보인다.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를 양성하는 곳도 있다. 각당복지재단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는 ‘죽음준비교육 지도자 과정’과 ‘웰다잉교육 전문지도강사 과정’을 운영한다. 웰다잉교육 전문지도강사 과정은 50세 이상으로 자격조건을 달았다. 주로 현업에서 은퇴한 ‘인텔리 실버’들이 참여한다는데, 2007년부터 올해까지 200여 명의 강사를 배출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은 “웰다잉 전문지도강사의 경우 강사 본인과 이들에게서 강의를 듣는 수강생 모두 만족해한다”고 설명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강사들은 자신이 일을 함으로써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보람을 느끼고, 주로 노년층인 수강생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강사가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하기에 공감의 폭이 커진다는 것.

이 단체는 ‘웰다잉 연극단’도 만들었다. 참가자 전원이 아마추어지만 공연에 대한 열의만큼은 매우 뜨겁다고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공연 연습을 한다.

죽음 준비, 지나친 이벤트화 우려도

하지만 죽음준비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난다. ‘죽음 준비’를 ‘이벤트화’한다는 지적이 그 하나다. 유경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는 “영정사진을 찍고 유언장을 작성한 뒤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 누워보는 ‘입관체험’을 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이것이 죽음 준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죽음은 특별한 ‘체험’이 아닌 일상”이라고 강조했다.

   

또 일시적인 유행에 따라 죽음준비교육에 섣불리 접근할 경우 오히려 죽음을 어둡고 무서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한다.

죽음준비교육이 활성화했다고는 하지만 노년층 대상의 프로그램이 주를 이룰 뿐, 청소년이나 중장년층을 위한 교육은 미비하다. 강사들은 “죽음준비교육을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나이에 상관없이 평소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그렇다면 평소에 죽음준비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더 많은 사람이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또 사람들 스스로 생존 시 유언서와 사전의료지시서, 유언장 등을 써놓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핵심은 ‘죽음을 기억하며, 지금 여기서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기’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자세
죽음준비교육은 본인의 죽음뿐 아니라 가족, 친지, 친구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포함된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아동 전문 호스피스 황애란(사진 왼쪽) 씨는 2주 전 소아암으로 죽은 다섯 살 난 아이의 예를 들면서 “아이와 남겨진 가족이 ‘이별의식’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 엄마가 이별 준비를 참 잘했습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하자 항암치료를 서서히 중단했고, 죽음에 임박했을 땐 심폐소생술도 안 하겠다고 했죠. 어린아이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면 강한 압박 때문에 뼈가 부러지고 배가 부어올라요. 가뜩이나 약한 몸이 얼마나 괴롭겠어요. 대신 죽는 순간까지 아이를 안아주며 ‘사랑한다’ ‘엄마는 늘 널 기억하며 살게’ ‘이 세상에 조금만 더 있다 널 만나러 갈게’라고 이야기했죠. 이렇게 이별의식을 한 경우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부모들은 아픔을 잘 이겨냅니다.” 그는 “부모뿐 아니라 죽은 아이의 어린 형제, 자매도 ‘이별의식’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했다. 즉 함께 영안실을 지키고, 죽은 아이에게 주고 싶은 편지나 선물 등을 가지고 와 입관할 때 넣게 하며, 장례식까지 동행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슬픔을 삶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해야 살아 있는 아이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길 수 있다고 한다.
‘이별의식’은 어린 자녀는 물론 배우자, 부모, 친구 등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잃었을 때도 이뤄져야 한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성인 전문 호스피스인 김미정(사진 오른쪽) 씨는 “그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 여한이 없을 정도로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사별 후 좀더 수월하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음은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자료집에서 발췌한 사별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조언이다.
“눈물을 흘리세요” 눈물은 치유. 충분히 우는 것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누세요” 당신의 슬픔에 대해 적절한 대상을 택해 이야기를 나눈다.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상대방에게 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라.
“질문하세요” 이런 일이 왜 내게 일어났는지 의심이 생긴다면 계속 질문한다. 끊임없이 질문하다 보면 어느 날엔가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된다.
“돌아가신 분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고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만큼 이야기한다. 시간이 흐르면 당신의 고통이 줄어들고 소중한 기억으로 대치될 것이다. 고인은 언제나 당신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
“슬픔을 표현하세요” 슬픔의 기간에 죄책감을 표현하면 오히려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 합당치 않다고 생각되는 분노의 감정이라도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라.
“성장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조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슬픔의 감정을 다 치러낸 뒤 그것에서 자유로워지자.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하십시오”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당신은 새로운 정체감을 찾고 독립할 수 있게 된다.
“수용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말라. 그 사람의 죽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신비로운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찬란한 유산’, 유언장 잘 쓰는 법, 마지막까지 내가 주인공인 인생 되려면 지금 당장 써라!
김수영 자유기고가 kimsu01@hanafos.com
 
 

내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은 가족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도 유언장은 필요하다. 민법은 유언장의 법적 효력과 유언장 쓰는 법을 규정하고 있다. 유언장의 형식이 어떠하든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내용으로는 존엄사 여부, 장례 방식, 재산 내역과 분배, 당부의 말 등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최근 유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비행기 사고 같은 대형 사고나 존엄사 논란 등 이슈가 생길 때마다 법무법인에는 유언 공증에 대한 문의가 쏟아져 들어오고, 실제 공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인터넷 유언장 사이트에서 유언장 서식을 다운로드 받는 사람도 많고 유언장 서비스업체도 줄을 잇는다.

아직 우리나라는 유언장을 쓰는 것과 사후 유언의 집행이 보편화돼 있지 않다. 미국처럼 공증한 유언장 내용대로 장례가 진행되는지 주의 감독관이 나와서 감독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유언장을 쓰는 사람이 늘고 있을까. 유언장을 쓰는 것은 마지막까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병으로 의식을 잃게 되는 경우 죽음은 가족이나 의료진의 손에 넘겨진다. 장례 절차 역시 상조 서비스에 맡겨진다. 이때 유언장은 남은 가족에게 삶의 마무리를 당부하는 ‘지침’이 될 수 있다.

이름, 날인 등 빠뜨리지 말아야

‘내가 병원에 가는 거 얼마나 무서워하고 싫어했는지 알 것이다. 기도를 뚫거나 위를 뚫어서 연명치료를 하는 건 나를 두 번 죽이는 것으로 효가 아니다’(kimnj123@han***) ‘나는 칙칙한 색깔의 수의를 입는 게 싫다. 네가 칠순 때 해준 한복을 입혀다오’(lkslove@ko**) ‘유골함에 갇히면 갑갑할 것 같다.

나는 나무 아래서 긴 꿈을 꾸고 싶다’(futharkkr@ yah**) ‘내 제사상을 차리지 말고 그 돈으로 어려운 노인을 도와라(momo77@nav**)…. 이렇듯 단 한 줄의 말일지라도 가족에게는 큰 지침이 된다. 그렇다면 유언장은 언제쯤 작성하는 게 좋을까.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김옥라 이사장은 “바로 지금 유언장을 작성하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죽은 뒤에 일어나는 일들을 미리 안다면 다 유언을 남길 거예요. 공평하게 해놓지 않으면 재산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고, 빚이 있다면 빚쟁이로 죽지 말아야겠죠. 누군가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갖고 있었는데 사후에 딸이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고 하더군요. 놀라운 건 중병을 앓는 사람도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정리를 미루는 거죠. 미루지 말고 오늘 정신이 말짱할 때 유서를 써놓아야 합니다.”

유언장을 쓸 때 특별한 서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목록으로 남겨도 되고, 편지글 형식으로 써도 된다. 인터넷 유언장 사이트에서 서식을 다운로드 받아서 써도 된다. 서류가 아닌 말로 남기거나 인터넷에다 남겨도 된다. 수시로 다시 써서 보강할 수도 있다. 공증을 남겨야 하는 경우에는 모든 사안이 빠짐없이 들어갔는지 변호사나 법무사가 도와줄 수도 있다.

   

“안녕, 여보! 사랑하는 ○○ , □□ 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내 인생 동안 가족을 정말로 사랑했다는 말을 남기고 싶었소. 세상에 가장 남기고 싶은 것은 이 말이오. 내가 혹시 없더라도 늘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요. ○○ , □□ 는 엄마를 아빠 몫까지 사랑하고. 아빠는 사랑하는 가족과 오래오래 살 것이고, 살아 있는 동안 더욱 사랑할 것을 약속한다.”(pym1257@cho**)

최근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김모 씨는 남편이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서 쓰기 행사에 참가해 써놓은 유서를 e메일로 받았다. 쓰는 사람은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쓰는 일도 있지만, 유족에게 고인의 한마디는 커다란 위안이 될 수 있다.

나의 유언장
성명 :     인 :     주민등록번호 :
생년월일 :     주소 :     작성일 :     년 월 일   작성 장소 :


1. 나의 시신을 이렇게 처리해주기를 원합니다.
① 나는 화장(수목장)을 원합니다. ( ) 화장 후에는 유골을 ○○○○에 뿌려(안치해)주십시오.
② 나의 시신이 매장되기를 원합니다. ( ) 매장은 ○○○○묘지에 안장해주십시오. (관이나 비석 등에 대한 요구가 있으면 밝힌다.)
③ 나의 시신이 과학적 목적에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 ) 나의 시신을 ○○○○에 기증해주십시오.
④ 가족이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 )

2. 나의 장례식은 이렇게 해주기를 원합니다.
① 나의 장례식은 ○○○○에서 거행했으면 합니다.
② 나의 장례식은 ○○○○께 집례를 부탁드립니다.
③ 호상(護喪)인 ○○○○에게 다음의 내용을 부탁합니다.
③-1 나의 장례식에 참석을 원하고 싶은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③-2 나의 장례식에서 다음과 같은 의례를 해줬으면 합니다.(노래를 불러주거나 기도, 염불, 축수, 남기는 말 낭독 등)
③-3 나의 장례식에서 다음 사항은 거절하고 싶습니다.(화환, 부의금 등)
④ 나의 장례식은 가족이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 )

3. 나의 유언
① 인생을 정리하며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
② 사랑하는 가족에게 남기는 말
③ 친구나 친지에게 남기거나 당부하는 말
④ 기도 등 종교적인 말
(1~4를 다 해도 되고, 한두 개만 해도 된다.)

4. 나의 유산은 이렇게 처리되기를 원합니다.(분배와 기증에 대한 세부 항목)

   

분란 소지 있으면 공증받는 게 안전

혈육 상속에서 벗어나려는 재산가 할머니를 둘러싼 갈등과 사랑을 그려 인기를 모으는 SBS ‘찬란한 유산’.

유언은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은 가족이 이를 완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평소에 유언장의 내용을 밝히고, 가족과 논의를 해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혼과 재혼, 혼외자 등으로 가족관계가 복잡해진 경우나 재산을 기증할 때는 요건을 갖춰 공증을 받아놓는 것이 분쟁을 피하는 지름길이다. 분쟁이 예상될 때는 미리 상속이나 증여 등으로 재산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은 가족이 유언의 내용을 따랐기에 감동을 준다. 손자에게는 학자금으로 1만 달러를, 딸에게는 아내의 봉양과 묘소 주변의 땅을 남기면서 이 땅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아들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독립해서 살라는 말을 남겼다. 만일 유족이 용기 있는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유언이 그 내용대로 100% 실행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대부분의 재산분배가 상속법에 의해 이뤄진다. 그래서 유류분 청구소송 등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유언은 ‘생전의 최종적 의사표현’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유언장과 몇 가지 구비서류만 있으면 당장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할 수 있습니다. 유류분에 대해 분쟁이 생긴다 해도 그것은 차후의 문제입니다.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우선은 유지대로 실행할 수 있는 거죠.”

이 때문에 미리 유언장을 공증받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상속인과 피상속인, 재산의 목록만 정해지면 유언장 공증은 특별히 전문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반 공증서류와 마찬가지로 공증을 할 수 있는 기관에서 하면 된다.

만일 유언장을 두 장 작성했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10년 전과 후에 각각 하나씩 했다면? 한 번 유언장을 작성한 뒤에 다시 유언장을 쓴다면 앞의 것을 철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또 다른 분쟁이 생길 수도 있다.

금융정보, 장례방법 및 절차 지침 남겨야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좋은 점을 보라…. 기억하라! 한 손은 너 자신을,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1993년 오드리 헵번이 숨을 거두기 전 아들에게 남긴 편지는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당부와 감사, 자녀에게 하는 축복의 말, 마지막 순간 고백하는 진실이 담기는 유언은 가족에게 찬란한 재산이 된다.

   

유언장을 쓸 때는 이렇게 가족에게 남기는 말도 중요하지만, 사후정리에 필요한 정보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다. △어떤 식으로 임종을 맞을 것인지 △장례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 제사 등 추모행사 △금융정보와 재산내역 △유산 배분 등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침을 남겨야 한다.

임종과 관련해서는 존엄사 여부를 밝힌다. 거동이 불편한 경우에 간병과 요양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의사표시를 하는 게 좋다. 거동이 불편할 때 의탁할 사람, 치매 등의 불치병에 걸렸을 때 요양시설에 입소하기를 원하는지, 요양원인지 요양병원인지, 그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유언장에 쓰고 미리 가족에게 알리면 가족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장례식은 그 규모와 함께, 일반적인 장례를 할 것인지 종교적인 장례를 할 것인지 등 방식과 절차, 매장이냐 화장이냐 수목장이냐 여부 등을 선택한다. 상조에 가입했다면 업체명과 연락처, 보장 범위, 증서 등을 기록하고 연락처를 명기한다. 제사를 원하는지 추모 모임을 원하는지 밝히고, 제사를 원하면 승계자를 지정한다. 예를 들어 장자가 한다, 아들들이 돌아가면서 한다 등을 지정해주면 더욱 좋다. 추모 모임을 원할 경우 추모일에 가족예배를 볼 것인지, 절에서 제를 드릴 것인지 등 지침을 남긴다. 부고를 보낼 범위를 정하고, 가족과 친지의 연락처와 주소를 적은 주소록을 준비해놓는 것도 좋다. 온라인상의 지인이 많다면 가입한 사이트, 본인 블로그 등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기록한다.

금융 정보는 되도록 상세히 기록하는 게 좋다. 평소 재산목록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은행예금, 보험, 증권, 부동산 권리증서, 주식과 채권의 통장이나 증서를 챙긴다. 이 밖에도 국민연금, 세금영수증, 자동차등록증 등의 각종 증명서류와 현금이나 귀금속을 보관한 장소, 신분증과 인감도장을 보관한 장소를 기록한다. 은행대출이나 빚에 대한 정보도 남겨야 한다.

시신이나 장기 기증에 서약했다면 동의서와 관련기관 연락처 등을 적어두고, 가족에게 평소 알려준다. 보호자는 사망 후 즉시 사랑의장기기증본부(1588-1589)로 연락을 줘야 한다. 뇌사가 아닌 자연사인 경우 사후 장기기증이 가능한 것은 각막이나 조직 정도인데, 각막은 6시간 이내, 조직은 15시간 안에 적출돼야 하기 때문이다.

유언장을 작성할 때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유언장은 자살하기 전에 쓰는 ‘유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언장은 유언을 받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유언장 쓰기·이별편지 쓰기 사이트
유언장을 쓸 때 주변 사람들에게 이별편지도 함께 써놓는 것이 좋다. 현재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이별편지 쓰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남은 사람들에게 이별편지를 써놓으면 가입자의 사망이 확인되는 순간 부모, 형제, 친구 등 생전에 지정한 수신인에게 전달된다.
마이윌 http://www.mywill.co.kr
유언장 작성 및 공증, 유언 예약 e메일 서비스를 실시한다.
굿바이메일닷컴 www.goodbyemail.com
이별편지 서비스. 유언이나 이별의 편지를 써놓으면 사후에 배달해준다.
유언장닷컴 www.yoounjang.com
유언장 서식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www.kakdang.or.kr
유언장 등에 필요한 각종 정보 조회가 가능하다.

   

피보다 진한 것이 돈이라는데…, 가족의 행복을 위한 ‘지혜로운’ 상속 & 세테크 비법
홍석범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sbhong@kimchang.com
 
 

가부장적 가족제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부모가 세상을 떠도 장남을 중심으로 가산(家産)을 보존하며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용인됐다. 하지만 대가족이 해체되고 유교적 전통이 거의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내 자식들은 재산분배 때문에 싸우는 일 없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자칫 가족 간 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때 상속은 부유한 사람들만의 관심사로 여겨졌지만 이젠 중산층에서도 노후 대비에 이은 재테크와 세테크 관점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런 대비 없이 법 규정에만 맡기거나 법률지식 없이 만든 유언으로 고인의 뜻이 왜곡되고, 가족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사례를 종종 본다.

따라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대비하자는 철학적인 화두와 함께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실천적인 법률적 문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상속재산의 분배에 관해 미리 그 내용을 정해놓는 대표적인 수단이 유언이다. 하지만 유언은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만 효력이 인정되고, 그중 하나라도 어긋날 때는 유언자의 뜻과 무관하게 무효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언, 엄격한 요건 있어야 인정

법이 유언의 방식을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법이 정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를 설립하는 등 사회복지에 힘쓰며 평생 독신으로 살던 고 김○○ 선생이 2003년 11월 ‘전 재산을 ○○대에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남긴 채 사망하자, 유족이 ‘자필증서에 본인 날인이 빠져 유언이 무효이므로 유산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의 유언장은 고 김○○ 선생이 자필 작성하고 서명까지 한 것이지만 대법원은 법에서 요구한 날인이 빠졌으므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120억원대의 재산이 유족에게 되돌아갔다. 이처럼 막상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혹자는 ‘굳이 유언을 하지 않아도 법에 따라 상속인에게 분배될 것이니 법에 맡기겠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피상속인이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면 법에 따라 (배우자와 아들, 딸이 있을 경우 1.5 : 1 : 1로 상속된다) 상속재산이 분배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문제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적지 않은 부동산을 가지고 지방에서 살던 아버지가 사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이가 좋던 가족은 굳이 상속지분등기를 할 필요가 있느냐며 대부분의 부동산을 어머니 앞으로 하고, 아들에게 사업을 하라면서 일부를 넘겨줬다.

   

딸들은 아들에게 준 부동산이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재산 얘기를 꺼내기도 뭣해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아들이 잇따라 사업에 실패하고 어머니에게 ‘이 땅을 더 달라’ ‘저 땅은 담보로 잡혀달라’고 하며 재산을 탕진하자 두 딸과 아들, 그리고 어머니 사이에 앙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식 간에 소송이 벌어지고 어머니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는 상황까지 갔다. 결국 어머니는 증인석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죽음과 세금 외에 확실한 것은 없다

더욱이 법률이 정한 일률적인 상속분 자체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는 자녀 중 한 사람이 전담해 부모를 수발하며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리고 사업이나 유학 등으로 자녀 중 한 사람이 부모 생전에 재산을 받아 사용하는 사례도 많다.

이럴 경우 가족 내에서는 상속될 재산을 미리 분배받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때문에 민법은 특별기여분(민법 제1008조의 2는 상속을 받을 상속인 중 상당 기간 고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고인 재산의 유지 및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상속인에 대해서는 그 기여분을 상속분과 별도로 산정하도록 했다)이나 유류분(민법 제1112조는 고인이 유언에 의하여 상속분을 임의로 정하더라도 일정 범위 내에서는 상속인의 상속분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정했다) 제도 등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제도가 가족마다 다른 상황을 완벽히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유언이라는 방식을 통한 사전적·합리적 분배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유언으로 남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은 재산 자체가 아니라 이를 통해 깨지지 않는 가족 간 화목이다.

한편 유언을 남겨 혹시 모를 불화를 대비한다 해도 어떤 내용을 어떻게 쓸지 고려해야 하는데, 재산분배의 비율이나 형식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밖에 중요하게 여길 것이 세금 문제다. ‘죽음과 세금 외에 확실한 것은 없다(Nothing is certain but death and taxes)’는 미국 속담처럼 죽음만큼이나 확실한 것이 세금이기 때문이다.

   

[상속세 사례 1]

기준시가 12억원의 부동산을 오래전부터 보유한 A씨는 은퇴 후 자녀들에게서 상당한 금전적 도움을 받았으며, 건물을 담보로 은행에서 약 2억원의 대출도 받았다. 그리고 전세보증금 7억원인 위 부동산에 대한 임대를 월세로 전환해 생활비로 사용하다 사망했다.

이 경우 만약 임대를 전세로 그대로 뒀다면, 부동산 기준시가 12억원에서 채무인 전세보증금 7억원을 공제한 금액인 5억원만이 상속재산으로 평가됐을 것이고, 다른 상속재산이 없다면 상속세의 기본공제가 5억원이므로 상속세 부담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A씨의 경우 공제할 채무는 대출금 2억원 외에는 없을 뿐 아니라, 자녀들이 금전적 도움을 준 것은 세법상 객관적인 금융 자료와 채권으로서의 증빙이 부족해 A씨의 채무로 인정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상속재산가액이 10억원에 이르러 자녀들은 거액의 상속세를 부담하게 됐다.

[상속세 사례 2]

B씨는 병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자 거래관계를 정리하고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부동산을 10억원에 처분했다. 그런 뒤 그 대부분을 거래처 채무변제 및 치료비 등으로 지출하고 극히 일부만을 자녀들에게 나눠줬다.

그런데 B씨가 사망한 뒤 세무서에서 상속세 조사를 나와 부동산 처분대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소명할 것을 요구했다. 자녀들은 내용을 잘 모를 뿐 아니라 증빙도 찾기 어려워 소명을 하지 못했다. 이 경우는 상속세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5조 제1항 제1호 참조)은 상속개시일(사망일) 전 2년 이내에 5억원 이상의 재산을 처분한 경우로, 상속인들이 처분재산의 용도를 입증하지 못할 때는 그 재산의 처분대금을 상속재산으로 보기 때문에 자녀들은 처분대금 10억원 전부에 대해 거액의 상속세를 추징당하게 됐다.

상속세는 세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사전에 자녀나 배우자에게 재산을 증여하거나 배분하면 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상속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금융상품도 있다. 그렇지만 세법상 재산의 평가, 채무의 입증 문제, 조세회피 방지를 위한 간주 규정 등이 많아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등 전문가와 미리 상의하거나 대비하지 않으면 억울하게 조세를 부담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물보다 진한 것이 피고, 피보다 진한 것이 돈이다’라는 말이 있다. 법 없이 살 수 있고 돈 없이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상속재산을 둘러싼 유족 간 분쟁을 그들만의 책임이라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에 더해,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이라는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아선 안 될 것이다. 가족의 화목과 우애를 유지하고, 피할 수도 있을 세금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신경 써야 할 마지막 일이 아닐까.

 

은퇴와 ‘해피엔딩’을 위한 老테크 지금 시작하자
4인의 재테크 전문가 조언 … 40대 부부는 월 91만원 이상 저축해야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행복한 노후를 보내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조기 은퇴 등 변수가 많아지면서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2008년 삼성생명 라이프케어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5%가 ‘노후 준비’라고 답했다. 은퇴 이후와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위한 비용은 언제부터, 얼마나,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우리투자증권 마포지점 김종석 팀장(‘딸기아빠의 펀펀 재테크’ 저자), 머니메이트그룹 최태선 대표이사, 국민은행 금융상담센터 공성율 재테크팀장, 삼성생명 FP센터 김동욱 팀장 등 재테크 전문가 4인이 그 노하우를 공개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첫 번째 ‘철칙’은 “지금 당장 노후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은 어떻게 은퇴 후 삶을 준비하고 있나

김종석

| 40대 맞벌이 부부 A씨와 B씨를 상담한 적이 있다. 이들은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고 2004년, 2006년에 각각 약 79m2(24평형)과 약 105m2(32평형) 아파트를 구입했다. 나중에 구입한 아파트는 담보대출을 받아 부족한 자금을 충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담보대출로 서울 강남의 약 105m2짜리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자산의 83%를 부동산에 ‘올인’한 셈이 됐다. 겉으로 보기엔 집이 3채나 되는 부자지만 매달 200만원 넘는 대출이자에 원금까지 갚아나가다 보니 가계부는 늘 마이너스. 이렇게 부동산에 대한 의존 비율이 높은 것이 한국 가계의 특징이다.

   

풍요로운 노후를 맞으려면 지금 당장 은퇴 후 삶을 위한 재테크에 나서야 한다. 사진은 머니메이트그룹의 은퇴 설계 분석 리포트.

최태선 | 자녀에게 과도하게 투자하다 정작 자신의 노후 준비를 게을리하는 사례가 많다. 유동성이 큰 금융자산을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금융자산 중 주식의 비중이 높은 펀드에 40대는 70%, 50대는 60%, 은퇴 후에는 40~50%를 투자해야 한다.

공성율 |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에서 주식이나 수익증권 등의 비중은 2007년 기준 30%대에 불과하다. 대부분 예금 등의 저금리 안전자산으로 금융 포트폴리오를 꾸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물가, 세금 등을 감안하면 이러한 방법으로는 은퇴자금을 충분히 모으기가 쉽지 않다.

김동욱 | 은퇴자금 마련과 관련된 재무 목표는 당장 필요한 교육비, 생활비, 주택 마련비 등에 우선순위를 내줘 구체적인 준비가 부족한 상태다. 역시 담보대출 등을 활용해 부동산에 집중 투자하는 성향이 높은데, 이는 은퇴 시점에 환금성 문제 등에서 리스크를 지닌다. 고객 C씨는 주택 5억원, 현금(예금+원금보장 ELS+후순위채권) 3억원, 개인연금 2억5000만원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국민연금과 개인연금만으로도 월 250만원씩을 챙길 수 있고 현금성 자산의 이자(6%) 역시 연간 1800만원에 달해 연 4000만원대의 생활비를 쓸 수 있다. 자산의 분산으로 실속 있는 포트폴리오를 꾸민 모범사례다.

이상적인 은퇴생활을 하려면 얼마나 드나

김종석

| 2006년 LG경제연구원은 각 금융기관이 발표하는 노후 필요자금이 다소 과장됐다고 분석했다. 2인 가족 기준 생활비를 추정한 결과(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고 운용수익률은 6%로 가정) 50대는 3억원, 40대는 4억원, 30대는 5억원이면 평균 수준의 노후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30대에 필요한 노후자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월 56만원을, 40대에는 91만원, 50대에는 198만원을 저축하면 된다는 의미다.

최태선 | 은퇴 후에도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대체로 은퇴 전 소득의 70%가 필요하다. 소득대체율 70%를 충족시키려면 국민연금을 통해 받는 20%를 제외한 나머지를 퇴직금과 개인연금으로 준비해야 한다. 부담되는 노후생활 자금을 줄이기 위해서는 은퇴 시기를 최대한 늦추거나 퇴직 후에도 소득이 생길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성율 | 각자 생활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월 300만원가량은 지출해야 여행 등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은퇴생활이 가능하다. 40세 성인이 60세에 은퇴한다고 가정하고, 은퇴 후 25년간 월 300만원대의 생활비를 쓰려면 은퇴 시점에 약 12억8000만원이 필요하다(은퇴 전후 물가상승률 3%, 투자수익률 5%로 가정).

김동욱 | 통계청의 2008년 2/4분기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60세 이상 가구는 월평균 204만9178원을 지출했다. 이에 따라 노후 월평균 지출비를 210만원으로 산정하고, 60세에 은퇴한다고 가정했을 때 61세 시점에 필요한 돈은 현재 가치로 6억5000만원이다(물가상승률 3%, 투자수익률 5%로 가정). 물론 상류층과 중산층 등 소득수준에 따라 생각하는 여유로운 노후의 모습이 다를 것이다. 주 2회 가사도우미를 이용하고 부부동반 골프와 해외여행을 즐기며 2500cc급 차량을 운행하는 상류층은 현재가치로 연간 4748만원(기본생활비+여유생활비), 해외 여행 대신 국내 여행을 택하는 중산층은 연간 2668만원이 필요하다.

   

나이대별, 소득수준별로 어떤 포트폴리오

김종석

| 연금상품은 무리한 액수로 가입했다가 중도에 해지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사례가 많은 만큼 적어도 10년은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또 원금 보장 위주로 안정 지향적으로만 구성하기보다 수익형 상품을 적절히 혼합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의 ‘작은 실천’도 중요하다. 30세를 기준으로 60세까지 하루 한 갑 피우는 2500원짜리 담배를 끊고(월 7만5000원) 연 10% 수익의 펀드에 저축한다고 했을 때 60세에 1억7194만원(연 5% 수익을 가정하면 6528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최태선 | 20, 30대에게는 고위험 고수익형 상품을 권한다. 자산의 주식 비중을 80% 이상으로 가져가도 장기간 투자의 원칙만 지킨다면 결국 연평균 10% 이상의 고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40대는 연소득의 15% 이상을 노후자금 상품에 예치하고, 주식과 채권의 비중을 위험성향에 따라 7:3 또는 6:4로 유지한 뒤 1년에 한 번씩 점검해야 한다. 은퇴 연령이 얼마 남지 않은 50대는 좀더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50~60%의 주식 비중을 유지하면서 채권이나 현금성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적절하다.

공성율 | 부동산은 별개로 하고 일반 금융자산만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면 ‘100-나이’ 원칙을 활용한다. 10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수치만큼을 주식이나 채권, 펀드상품 같은 투자자산의 비중으로 두고 나이만큼의 비중은 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운용하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30대 사회 초년생이라면 금융자산의 70%가량은 투자자산으로, 나머지 30%는 현금자산과 보험자산으로 배분하면 균형 있는 포트폴리오를 유지할 수 있다.

김동욱 | ‘생계형 주머니’(양도가능예금증서(CD),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수시입출금식예금(MMDA), 단기예금 등)와 ‘투자형 주머니’(펀드, 간접투자 상품 등), ‘은퇴용 주머니’(연금)를 30대는 각각 10-60-30%, 40대는 10-40-50%로 유지할 것을 권한다.

 

장례서비스 어떻게 활용할까
핵가족 눈높이 맞춰 고급·전문화 … 사이버 추모관 설립 등 갈수록 ‘진화’
오진영 자유기고가 ohnong@hanmail.net
 
 

결혼과 장례는 인생의 중대사 가운데 하나다.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큰 행사를 치를 때 전통사회에서는 지역공동체의 도움을 빌렸지만, 도시화와 핵가족화 속의 현대인에겐 비용과 절차가 부담스럽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해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성장한 것이 상조 서비스 회사다.

국내에 상조 서비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일본의 상조회를 모델 삼아 일본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부산에서 82년에 시작,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현재는 400여 개 상조 서비스업체가 활동하고 있고 시장규모는 연간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00여 개의 중소규모 업체가 산재했으나 지금은 전국적인 서비스망을 가진 대형 회사만 20여 개에 이를 정도다. 이 같은 성장에 대응해 최근 국회에서 상조업 관리와 소비자 보호를 골자로 하는 상조 관련 법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상조업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대부분의 회사가 영세했다. 소비자들도 주로 자택 장례를 하며 장의사에게 맡겨 예식을 준비했기에 상조 서비스가 생소했다. 그러다 90년대 이후 상조업계에 대규모 투자자본이 들어오고, 빠르게 시장이 성장하면서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장례 서비스가 고급화하기 시작했다.

물품·인력·예식 컨설팅 3가지

80년대까지만 해도 장지 이동은 운구버스 한 대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대의 버스에 고인과 조문객, 상주가 탑승해 장례식장에서 장지까지 이동하는 것이 흔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리무진에 고인을 따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 의전 차량이 앞에 서고 고인과 상주, VIP 탑승객을 태운 고급 차량이 뒤를 따른다.

보람상조의 김용섭 관리이사는 “과거의 운구버스는 고인을 모신 관이 차량 아랫부분에 실리고 그 위에 좌석이 있어 상주가 고인을 깔고 앉아 이동하는 것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며 “이러한 현상을 피하기 위해 리무진 차량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상조회사들이 내놓은 장례 서비스 상품은 대동소이하다. 회원이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하면 장례가 필요할 때 언제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들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물품, 인력, 예식 컨설팅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시간을 두고 준비하는 혼례와 달리 갑작스럽게 맞는 장례는 짧은 시간에 많은 물품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행사 주최자의 부담이 크다. 장례식에는 수의, 관 등 고인용품과 상주용품, 제단 장식, 입관용품 등 30개 이상의 물품이 필요하다. 상조 서비스 가입자는 장례를 치르게 되면 필요 시점에 맞춰 이 모든 물품을 가입 회사로부터 지원받는다.

물품 준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력 지원이다. 예전 대가족 시대의 장례는 집안 어른의 주도 아래 여러 식구가 힘을 합쳐 준비했지만, 핵가족화한 요즘은 상주도 장례 절차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뿐 아니라 친척도 일손이 아닌 손님일 경우가 많다.

장례 절차는 종교,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특히 소렴, 대렴 등 염습은 전문 지식과 경험 없이 진행하기 어렵다. 이러한 장례 절차를 안내하고 진행하는 직업을 ‘FD(Funeral Director)’ 또는 ‘장례지도사’라 부른다.

   

일본 교토의 한 상조서비스 업체 리무진. 국내 상조회사들은 1980년대 초 일본 상조회를 벤치마킹해 초기 사업모델을 구성했다.

현재 상조업체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장지, 매장법 등을 상담해주고 그에 맞춰 예식 일정을 컨설팅한다. 또한 사후 유가족과 지인들이 기념할 수 있게 장례 앨범도 제공한다. 최근에는 현장감 있는 동영상을 제작해주기도 한다.

관혼상제 토털 서비스 업체도 증가

상품 가격은 서비스 내용과 업체에 따라 다양하다. 60만원짜리부터 100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도 있다. 일반적으로 많이 가입하는 상품은 계좌당 200만~400만원으로 매달 1만~ 5만원을 5~10년간 납부해 총액을 채운다. 납입 도중 장례 서비스를 받으면 총액 가운데 미납한 금액을 일시불로 내면 된다.

인터넷망과 컴퓨터 보급이 일반화한 최근에는 온라인을 이용한 사이버 추모관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사이버 추모관을 통해 먼 곳에 있거나 바쁜 일이 있어 참석지 못한 사람들이 장례 현장을 보며 조문할 수 있으며, 이후에도 고인의 추모 영상을 보거나 게시판을 통해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상조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장례는 물론이고 관혼상제 관련 토털 서비스를 진행하는 곳이 늘고 있다. 업체에 따라 하나의 상품에 가입했다가 필요시 다른 행사로 전환해 혜택을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장례 상품에 가입해 부금을 납부하던 중 집안에 결혼식이나 돌잔치가 생기면 서비스를 변환해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상조회사 서비스
부산상조 www.aidclub.com
1982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상조회사. 국내 상조회사 중 가장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자산운용 건전성이 높은 편이다. 부산지역 장의 행사의 30%, 결혼식을 포함한 전체 행사의 15%를 점유하고 있다. 계열사에서 제작한 장례용품을 비교적 낮은 가격에 제공하며 조문객 수, 가풍과 종교 등 회원 개인의 상황에 따른 맞춤 서비스가 가능하다. 지난해 9월부터 직영 장례식장인 울산영락원을 열어 이용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부모사랑상조 www.bumo-sarang.com
철저한 장례지도사 관리와 교육으로 ‘고객불만 제로’를 지향한다. 상조업계 신생 주자지만 업계 최고의 자본금 규모를 자랑하는 안정적인 업체로, 만기 때 전 상품 납입금액을 100% 환급한다. 350만원, 450만원, 750만원 3가지 상품에 가입할 수 있으며 SMS 문자 서비스, 추모음악, 추모영상 상영 등의 서비스를 추가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장례가 끝난 뒤에도 관리를 해주는 게 특징. 장례식, 결혼식 등 ‘상조’와 관련된 각종 ‘세러머니’를 지원한다.

현대종합상조 www.preed.co.kr
2002년 울산에서 장의사업을 시작한 현대종합상조는 2008년 11월 기준 35만명의 회원에 계약수신고 9000억원을 달성한 업계 대표 기업 중 하나다. 지난해 10월 선진국형 장례 시스템을 표방한 상조 서비스 브랜드 ‘프리드(Preed)’를 론칭해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갔다. 체계적인 행사도우미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훈련된 전문 도우미들이 행사를 돕고 있으며 추모 CD와 사이버 추모관 제작, 30년간 기일 안내 서비스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보람상조 www.boram.com
국내 상조 서비스 전체 가입자 300만명 중 30% 이상인 65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업체 측은 “업계 최대 규모의 상조업체로, 처음으로 장례식 비디오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전국 어느 곳이든 연중무휴로 2시간 이내 출동 가능한 체제를 갖췄고, 조선 왕실의 전통장례를 재현한 궁중렴 서비스와 리무진 운구 서비스도 제공한다. 호스피스 활동과 장의 준비 등 사전 서비스부터 사이버 추모관 등 사후까지 이어지는 원스톱 서비스가 특징이다.

효원라이프 www.hyowonlife.com
상조회사에 대한 불만 중 가장 많은 것이 해약 시 환급을 둘러싼 분쟁. 효원라이프의 ‘효원프리미엄’ 상품(360만원)은 만기 납입 시 납입금액의 100% 환급을 약속한다. 가장 저렴한 300만원대 상조 상품을 이용해도 직계 상주들의 상복을 인원제한 없이 제공하며 리무진 운구차와 버스도 거리제한이나 추가부담 없이 서비스한다. 장례기간 중과 장례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과정을 돕는 전문 집례사가 회원들에게 일대일 밀착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불만 제로’에 도전합니다”, ‘부모사랑상조’ 민철희 사장 인터뷰
김수영 자유기고가 kimsu01@hanafos.com
 
 

상조회사 최고경영자(CEO)로는 이색 경력을 지닌 부모사랑상조의 민철희 사장(45·사진). 그는 삼성반도체 등에서 품질혁신 업무를 맡아온 전문 경영컨설턴트 출신이다.

‘고인 공경’이라는 상조의 기본 정신을 지켜 감동을 담은 서비스로 ‘고객불만 제로’에 도전, 상조문화를 바꿔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비즈니스 철학이다.

장례를 돕는 모든 서비스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더 많이 알려진 ‘상조(相助)’. 애초에는 관혼상제 때 일가와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돕는 전통에서 비롯됐다. 이젠 영안실에서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업계 측은 지방에서는 30%, 서울에서는 20% 정도가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비밀스럽던 죽음의 예식이 서비스 상품으로 탈바꿈한 것은 어떻게 보면 부작용 때문이다.

“상조라고 하면 으레 바가지를 쓸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저희 직원 한 사람이 얼마 전 아버님 묘소를 이장했어요. 16년이 지났는데 수의에서 흰 실이 보이는 겁니다. 천연 마(麻)인 줄 알고 비싼 제품을 골랐는데 불량품이었던 거죠.

이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증거’가 인멸되죠. 상조 서비스의 장점은 모든 게 공개돼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업체를 이용하든 서로 비교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해졌죠.”

점점 화려하고 규격화하는 장례식

장례식장의 횡포는 한때 9시 뉴스의 단골메뉴였지만 요즘은 크게 줄었다. 대부분 상조회사 덕이다. 더불어 관혼상제 중 가장 까다로운 장례는 점점 화려해지고 규격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업체에서는 반가(班家)에서 하는 전통 형식보다 한 단계 높은 궁중예식까지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지역적 전통을 배려하고, 기독교 가톨릭교 등 종교적 세러머니를 절충하기도 한다. 리무진, 상여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식적·편의적 방법은 다 적용한다. 부작용도 없지는 않다. 업체 간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장례식장의 횡포가 상조업체로 조금씩 옮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기본’입니다. 서비스의 질이죠. 부모 사랑, 즉 고인에 대한 공경이 기본입니다. 마음을 담는 행동과 돈 벌자고 하는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제도적으로 마음을 담게끔 뒷받침하는 것이 저의 임무입니다.”

많은 상조회사의 CEO가 장례사 출신인 반면, 그는 잘나가던 경영컨설턴트 출신이다. 신한 및 BC카드 등 금융권, KT KTF 등 통신회사, 포스코 삼성전자 삼성반도체 같은 대기업에서 경영혁신 업무를 지원했다.

   

“6시그마라고 들어보셨나요? 현재 우리 회사에서 실행하고 있는 혁신 모델입니다. 불량률을 100만개 가운데 3~4개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뜻입니다. 불량률 0에 도전하는 거죠. 서비스에서 ‘불만 0’에 도전한다는 말로 대치하면 됩니다.”

그에 따르면 “답은 조직관리”다. 상조 서비스의 핵심 인력은 장례지도사. 염습을 직접 하는 것은 물론, 음식 조달과 예식 진행 등 장례식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그의 조율을 거치게 된다.

“노잣돈을 주지 않으면 안 움직인다거나, 가외 물품 구입을 강요하거나 성의 없이 고인을 모시는 것 등이 소비자들의 주요 불만사항입니다. 이런 걸 없애려면 장례지도사의 위치를 격상시키고 안정적 수입을 보장해야 하죠. 저는 장례지도사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장례지도사의 급여체계를 인센티브제로 운영하는 업체도 많은데, 우리는 100% 연봉제입니다. 누가 봐도 업계 최고 수준임을 자신합니다.”

장례지도사를 뽑는 과정도 엄격하다. 경력 3~5년차 이상에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으로 장례지도사 과정을 교육받은 사람 중에서 뽑는다. 나이가 너무 많으면 완고한 습관이 있을 수 있고, 너무 젊으면 경험이 부족해 서툴 뿐 아니라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한 아닌 제한을 두는 것. 3개월간 합숙하며 교육시킨 뒤 실무에 투입하며, 그 후에도 현장에 있지 않을 때는 전원 출근해 장례와 서비스 교육을 받도록 한다.

“어디에서든 가장 중요한 사람은 현장관리인입니다. 장례지도사는 고인이 좋아하는 물건을 관에 넣어달라, 음악을 틀어달라, 찬송을 해달라 등 고인의 유언이나 가족의 요구를 다 수용해 장례를 매끄럽게 진행합니다. 내 부모의 장례식이라면 어떻게 그걸 안 들어주겠습니까?”

“남은 사람들 삶 개선까지 관심 넓힐 것”

따라서 계약서엔 명시하지 않는 서비스도 제공하는 셈이다. 회사 차원의 배려는 일종의 하드웨어다. 꽃다발의 크기를 맞추고, 장의차 등 필요한 용품이나 서비스를 알선하며, 수목장 같은 특별한 장례를 원하는 가족에게 업체를 소개하는 정도다.

다소 까다로운 ‘개인적’ 요구를 수용하는 사람은 장례지도사다. 회사 차원에서도 편지 낭독, 화장, 유언 낭독, 음악이나 공연 등 고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이벤트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렇게 하면 상조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0’이 될까? 그러나 ‘불만’이 없어져도 ‘불안’은 존재한다.

“상조업이란 비즈니스 모델은 회계라는 잣대로 살펴보면 고객의 회비가 예수금으로 계정됩니다. 그건 결국 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운 비즈니스 모델이죠. 부모사랑은 자본금이 100억원이고, 앞으로 규모가 더 커질 겁니다. 물론 다양한 운용 노하우를 갖추고 있죠.”

소비자에겐 탄탄한 업체를 구분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상조 서비스는 지금 당장 받는 게 아니라, 10년 뒤에 받을지 20년 뒤에 받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조 서비스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사람마다 살아온 방법이 다른 만큼 인생의 마침표인 장례방법이나 절차도 다른 게 정상이다. 가장 완강한 의식인 장례에서조차 고객의 니즈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일본처럼 상조회사가 장례식장을 소유할 수도 있겠죠. 그러면 비용이 절감됩니다. 다른 편익도 뒤따르고요. 또한 특별함을 추구하는 분이 더 늘어나겠죠. 이런 주변 환경은 변하더라도 상조의 기본은 서로 돕고 마음을 살펴주는 예(禮)입니다. 따라서 장례 서비스만 제공하는 회사로 머무는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고 남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까지 관심의 폭을 넓힐 계획입니다.

소비자 상담을 하는 라이프코치들 또한 소비자와 계약한 장례를 치렀다고 해서 그들의 일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기일이 되면 찾아뵙거나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코치는 추모의 마음을 함께 갖고,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향후 상조 서비스의 확장 영역엔 끝이 없어 보인다. 예와 상조라는 정신이 어떤 행동에 담겨 어떤 문화 서비스를 만들어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상조회사 고르는 법
빠르게 성장하는 상조회사 시장은 성장 속도에 비례해 부작용도 많이 생기고 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상조업계 관련 상담건수는 1374건으로, 2007년보다 64% 급증했다. 다음 사항을 꼼꼼히 확인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한다.
1. 표준약관 사용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모든 상조업체가 표준약관을 사용하도록 권장한다. 약관에는 해약 시 환불 규정 등 소비자보호 장치에 대해 상세히 기록돼 있어 이를 숙지하고 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2. 고객보호 장치 상조 상품은 장기간 납입해야 하고, 언제 서비스를 받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경우에 따라 10년, 20년 후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으므로 중도에 업체가 문을 닫거나 합병 등 경영에 변화가 있으면 고객보호 장치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현재 상조업체 중 규모가 큰 회사들이 모여 상조보증주식회사를 설립, 매달 고객 납입금의 일정 비율을 예치하고 있다.
3. 상조와 보험의 차이 상조업체의 ‘상조 상품’과 ‘상조 보험’에는 차이가 있다. 상조업체 상품은 행사 발생 시 납입 잔금을 일시불로 지불하는 경우가 많고, 상조 보험은 잔금을 만기 시까지 계속 납입한다.
4. 상조회사의 환급률 상조 상품의 환급률은 납입 개월 수에 따라 차이가 나며 만기 시 80% 수준이다. 만기 시 환급액만 기억하고 있다 중도 해약 시 환급액이 적다고 호소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가입 전 납입기간에 따른 환급률을 따져보고 해지 시에도 환급률에 따른 손익을 계산해보는 것이 좋다.

김수영·오진영 자유기고가

   

나무 밑에서 더 행복하게 쉬다!
변화하는 장묘문화 … 화장이 매장 앞지르고 최근엔 자연장 큰 인기
박복순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사)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
 
 

장례란 도덕규범이나 관습, 종교 등에 따라 주검을 처리하는 절차이자 의례를 칭한다. 조선왕조 이래 500년 넘게 유지된 우리의 유교식 전통 상장례는 절차마다 까다롭고 복잡하긴 하지만,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마지막 정성이자 예절로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일제강점기와 1970년대 가정의례준칙 등 정부의 시책으로 절차가 간소해지면서 본래의 의미가 왜곡, 희석됐다.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 핵가족화 등 사회 변화도 장묘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과거에는 집이 아닌 곳에서 죽음을 맞으면 ‘객사’라 하여 무척 꺼렸던 것이 우리네 정서였다. 이제는 집에서 사망하더라도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운구해 냉장실에 안치하고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화됐다.

우리나라의 장례식장은 병원 장례식장과 전문 장례식장으로 나뉘는데 전국에 800여 개가 있다. 병원 장례식장은 1990년대 중반 정부가 병원의 영안실을 장례식장으로 양성화하면서 생겨났는데, 의료기관인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병원 장례식장이 성행하게 된 데는 시설의 고급화와 장례 서비스의 차별화가 한몫했다.

대학엔 장례지도학과 개설

최근 장례식장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색다른 서비스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샤워실, 침실 등을 갖춰 상중에도 평상시처럼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최근 서울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부의금을 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까지 갖췄다. 3~4년 전부터는 시신 메이크업도 수익을 창출하는 장례 서비스의 한 분야가 됐다. 이는 대학에서 장례 전반의 교육을 받은 전문 장례지도사가 배출되면서 새롭게 도입된 분야다.

과거 우리나라는 가정에서 초상이 나면 동네 장의사나 집안 어른의 지도를 받아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병원 장례식장이 각광받으면서 대도시의 경우 동네 장의사가 거의 사라졌다. 1999년 우리나라 최초로 서울보건대학에 장례지도과가 개설된 이래 현재 전국 5~6개 대학에 장례 관련 학과가 있다. 2007년 서울보건대학이 4년제인 을지대학교로 바뀌면서 유일한 4년제 장례지도학과로 발전하게 됐다. 대학원 과정 장례 관련 학과도 개설됐다. 이젠 ‘장의사’보다는 ‘장례지도사’라는 명칭을 더 익숙하게 사용한다.

한국인은 대체로 죽음의 준비를 미리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묘지나 수의 등을 준비하는 일은 많다. 묘터를 잡아 가묘를 만들어놓기도 하고, 윤달에 수의를 준비하면 장수한다는 속설을 믿고 이를 준비하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상조회사도 확산되는 추세. 다양한 상조회사는 장례용품과 인력 등 장례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초상이 나면 친지나 이웃이 상부상조하는 좋은 관습은 지금도 남아 있다.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을 흔히 장법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장법은 매장과 화장이고 그 밖에 풍장, 조장, 수장 등이 있다. 묘지, 납골당 등 납골시설이나 자연이 죽은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된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는 매장과 함께 화장이 성행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화장을 금지했지만, 일제강점기 들어서 제도화됐다. 하지만 600여 년간 매장은 우리의 전통 장법으로 뿌리를 내렸고, 늘어나는 묘지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 또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개인 묘지를 허용함으로써 묘지가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전국에 흩어졌다.

집단묘지는 우리나라 전체 묘지의 30%에 불과하다. 대부분 나라는 묘지의 크기를 1평 안팎, 매장기간은 20~30년으로 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묘지 1기에 여러 명을 수직으로 합장하는 등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개인묘지의 경우 2001년 이전 80㎡(약 24평)을 허용했고, 이후 현행 장사법에서는 30㎡(약 9평)을 허용하고 있다. 한 번 조성한 묘지는 영속적으로 존치됐다. 그러다 보니 묘지는 증가하는데,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관리되지 않고 버려지는 무연분묘가 늘어났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성묘 횟수는 1년에 2회도 안 된다.

묘지 문제의 심각성은 1980년대 이후 조금씩 제기됐으나 사회적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91년 전국 화장률은 17.8%에 그쳤다. 특히 화장에 대해 국민은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풍수 사상에 따라 매장만을 고집했다.

그런데 1998년 여름 폭우로 인한 서울·경기 지역의 묘지 유실 사태와 대기업 총수의 화장 실천은 우리 사회에서 매장과 화장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시민단체들도 본격적으로 화장 장려운동을 펼치면서 화장률이 급상승했다. 화장 유골을 안치하는 납골시설도 발전했다. 2001년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묘지 면적의 축소, 시한부 매장제도의 실시 등을 담고 있다. 매장할 경우 1개월 안에 신고해야 하고, 매장 후 15년이 지나면 3회에 걸쳐 15년씩 연장해 최장 60년까지만 지속할 수 있다. 그 후에는 화장, 납골해야 한다. 이는 2001년 법 개정 이후 매장한 경우에 한한다.

그 결과 2005년을 기점으로 화장이 매장을 앞질렀다. 2007년 전국 화장률은 58.9%, 서울은 70% 이상, 부산은 80%에 육박한다. 화장이 크게 늘면서 화장시설 부족으로 서울에서는 예약이 어려워 경기도의 화장시설을 이용하거나 장례를 4일장, 5일장으로 연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화장시설은 대표적인 비선호시설이라 지방자치단체가 확충하거나 신설하려 해도 추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화장 후에는 유골의 처리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과거에는 주로 분골해 산, 바다, 강 등에 산골(散骨)했다. 하지만 납골묘, 납골당, 납골탑 등 다양한 시설이 생겨나면서 납골에 안치하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설 납골당은 대개 해당 지역 주민이 사용할 수 있다. 비용은 1위당 30만~40만원이고, 이용기한은 지자체별로 조금씩 다르다.

납골묘 장점 많지만 자연훼손 우려

서울시는 2003년 이후 공설 납골당을 일반 시민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이에 우수한 사설 납골당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들어섰고, 공원묘지들은 석물로 된 대형 납골묘를 대량으로 조성해 분양하고 있다. 사설 납골당의 비용은 1위당 300만~400만원이고, 상당수 무기한 이용이 가능하다.

한편 납골묘는 기능 자체로 장점이 많지만, 석물 위주로 큰 규모의 납골묘들이 조성되다 보니 관리가 잘 안 되거나 방치될 경우 자연 훼손이 매장보다 심각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숲의 나무 주변에 화장한 골분을 묻는 수목장 등이 부각됐다. 수목장은 당시 장사법에 따라 불법이지만, 민간인 사이에 종종 이용됐다. 2007년 장사법 개정으로 수목장 등 자연장 제도가 합법화됐고, 2008년 5월 이후 시행됐다. 자연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 화초, 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하는데,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설치한 곳에서만 가능하다.

자연장 중 가장 대표적인 수목장은 스위스, 독일에서 ‘프리드발트(Fried Wald)’라는 브랜드명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 환경친화적 장법으로 인기를 누리는 수목장은 지정된 숲의 나무 주변에 골분을 묻어야 한다. 지난 5월 산림청에서는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국유림에 국내 첫 국유 수목장림 ‘하늘숲추모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전화(031-775-6637~8)나 ‘숲에On 홈페이지(www.foreston.go.kr)를 통해 상담, 접수할 수 있다.

우리나라 장묘문화는 최근 10년간 놀라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와 함께 장묘문화의 질적 제고를 도모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사전의료지시서를 씁시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 “자율적 요구가 연명치료 중단의 핵심이자 존엄사 첫걸음”

병원에서 약 3년간 항암치료를 받던 백혈병(혈액암) 환자 김영수(가명·10) 군의 부모는 아이의 기대수명이 1개월 정도 남았다는 판정을 받은 뒤 주치의에게 퇴원 의사를 밝혔다. 입원을 고집하지 않고 귀가하려는 이유를 묻자 이들은 이렇게 답했다.

“지난 몇 년간 병동에서 수많은 아이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힘든 항암치료를 받느라 지칠 대로 지친, 주삿바늘에 찔려 성한 곳 없는 팔뚝을 하고 떠난 그들의 괴로운 표정이 내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김군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늘 갖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강아지를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몇 개월 후, 가족과의 정든 추억을 남기고 강아지를 품에 안은 채 웃으며 눈을 감았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사진)는 이 사연을 소개하며 “갈비뼈가 부러질 만큼 엄청난 충격을 가하는 심폐소생술과 기계에 의한 인공호흡 끝에 삭막한 병실에서 마지막을 맞는 모습을 떠올리면 어떤 것이 더 존엄한 죽음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존엄사·안락사 등 용어 정립 필요”

허 교수는 올해 상반기 한국 사회를 휩쓴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죽음’이라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죽음과,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대법원의 최근 확정판결이 죽음을 화두로 한 사회적 이슈를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존엄사, 안락사, 자연사 등 용어에 대한 혼란 때문에 존엄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욱 많습니다. 1997년 미국 오리곤주의 존엄사법에 ‘의사조력 자살’이 포함됐는데 이를 계기로 특히 종교계를 중심으로 존엄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됐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자살을 돕는 행위는 안락사입니다. 반면에 말기 환자가 연명 치료를 거부해 의사가 이를 수용하는 것은 존엄사로 그 의미가 엄연히 다릅니다.”

허 교수는 또한 1980년과 2003년 바티칸은 교리서를 통해 ‘의미 없는 의료집착적(over-zealous)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적법(legitimate)하다’고 밝혔고, 개신교에서도 미국 교단 중 하나인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1992년 ‘인위적인 영양, 수분 공급이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판단이 있으면 생명연명 장치를 제거할 윤리적 책임(morally responsible)이 있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완화의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은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

연명치료 중단 요건의 핵심은 환자 본인의 자율적 요구다. 그러나 환자가 식물인간 등의 혼수상태라면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남은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허 교수는 “현재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하는 환자 수는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나 환자 가족 모두 불치병 환자에게 병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알리지 않는 문화가 확산돼 있어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알고 대처하는 사례가 26%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각종 국민인식조사는 환자의 96%, 가족의 78%가 ‘불치병 환자에게 병의 상태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필수’라고 답해 생각과 실제의 괴리가 큰 형편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명목으로 끝까지 고통을 강요하는 사례도 한국이 미국 등보다 훨씬 많습니다. 말기 암 환자 가운데 임종 직전 1개월 동안 항암제를 사용하는 비율이 한국은 30.9%, 미국은 10%로 한국이 3배 이상 높고, 고통을 경감시키는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의 사용 비율은 미국이 한국의 25배에 이릅니다.”

허 교수는 존엄사가 의학적 결정의 주체를 의사에서 환자로 전환시키는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1997년 뇌수술 환자를 가족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켰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의료진에 살인방조죄가 적용된 보라매병원 사례와 평소 환자의 뜻이었다며 연명치료 장치 제거를 요청한 가족의 요구가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진 2009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사례의 차이가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존엄한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가톨릭 신자인 허 교수는 “최근 한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그 의미를 곱씹게 됐다”며 ‘육체적인 고통 없이, 주위 사람들에 대한 오해와 미움을 다 씻은 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을 맞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자연적인 죽음을 기계에 의존해 의미 없이 연장하는 것이 더 비종교적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인간다운 존엄한 죽음을 위해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방향의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우리 사회에 확대되기를 바랍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웰다잉, ‘이벤트’가 아니라 교육 과목으로 진전시켜야

미국에서는 웰다잉 연구와 교육이 4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로버트 풀턴 교수는 미네소타대학에 죽음준비 교육 과목을 1963년 개설했고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에 대한 연구서 ‘죽음과 임종(On Death and Dying)’을 69년 출간했는데, 이런 움직임이 미국 내 웰다잉 논의를 진전시킨 계기가 됐다. 미국은 대학은 물론 초·중·고교에서도 죽음준비 교육을 보건 교육의 일부로 가르친다.

   

또 문학이나 사회과목 수업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죽음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교육하기도 한다. 뉴저지주의 고등학교 교사인 로버트 스티븐슨은 1972년부터 죽음준비 교육을 시작했다.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 센터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한다. 삶의 질만큼 죽음의 질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데다, 죽음을 제대로 알아야 삶을 바르게 영위할 수 있다는 생각도 힘을 얻어 청소년 자원봉사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다기(Dougy)센터는 뇌종양으로 열세 살 때 죽은 소년의 이름을 따서 1982년 설립된 ‘어린이를 위한 슬픔 치유와 카운슬링 센터’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왕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다기센터는 이들을 위한 상담, 치유 과정을 진행한다.

이곳을 모태로 한 어린이 대상 슬픔치유 교육과 카운슬링 센터가 미국 전역에 개설됐다. 또한 ‘국립 죽음준비교육센터(the National Center for Death Education)’ ‘죽음준비교육과 카운슬링 협회(the Association for Death Education and Counselling)’ ‘미국 슬픔치유 카운슬링 아카데미(the American Academy of Grief Counseling)’를 통해 죽음준비 교육과 슬픔치유 전문가 양성이 이뤄진다.

몇 해 전 불치병 선고를 받았으나 다행히 치료 가능한 췌장암으로 밝혀져 다시 회사로 돌아온 애플 컴퓨터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무언가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열일곱 살 때 ‘하루하루가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길에 서 있게 될 것’이라는 글을 읽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죽음은 삶을 변화시킨다. 여러분의 삶에도 죽음이 찾아온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기 바란다.”

미국인들은 죽음을 터부시하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시신을 앞에 둔 채 그와 관련된 생전 일화 등을 나누며 유머러스한 추모 코멘트를 하기도 한다. 장례식장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풍경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2007년 1월18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는 칼럼니스트 아트 부크월드의 부고 동영상이 올랐다. 동영상에 등장한 인물은 다름 아닌 그 자신.
“안녕하세요. 아트 부크월드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
날카로운 풍자가 가득한 칼럼으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가 자신의 부고 동영상을 미리 제작해 인터넷에 올리게 했던 것이다.

죽음 주위에서 머뭇거리는 국내 웰다잉문화

일본에서는 알폰스 데켄 교수가 1975년 도쿄 조치(上智)대학에 ‘죽음의 철학’ 강좌를 개설하고, 82년 ‘생과 사를 생각하는 세미나’를 개최한 후 83년 ‘생과 사를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했다. 현재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53개 지역모임을 통해 5000여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또 웰다잉 교육을 보급할 목적으로 교수, 교사 등이 주축이 된 ‘죽음준비교육 연구회’는 199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활동에 힘입어 죽음준비 교육이 2004년부터 학교 교육에 포함됐고, 관련 교재 개발을 위해 2006년 예산에 400만 달러가 책정되기도 했다.

한편 일본존엄사협회는 30년 넘게 일본 전역에서 공개강연회와 토론회를 열고 자기가 원하는 임종 방식을 준비하는 ‘생전유서(리빙윌) 준비하기’ 운동을 벌여왔다.

   

뉴욕 맨하탄에서 열린 현대 미술의 거장 백남준의 장례식엔 웃음이 넘쳤다. 조문객들이 넥타이를 자르는 퍼포먼스로 ‘파격’의 작가를 기렸다.

이에 동참한 사람이 벌써 12만명을 넘어섰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오쿠다 히로시 전 경제단체연합회 회장도 이 협회 회원이다. 일본변호사협회는 매년 4월15일을 ‘유언의 날’로 정하고 유언장 작성 공개운동을 벌인다. 전국 각지에서 무료 법률상담이나 강연회를 진행하며 유언장 작성을 도와주고 상속에 관한 법률지식을 알려준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일단 죽음에 대한 터부와 거부감이 뿌리 깊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최근 교회, 사찰 등을 중심으로 한 종교단체와 노인복지시설, 대학 등에서 죽음준비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명동성당에서는 ‘죽음체험 하루 피정’을 매년 11월 진행하고 서울노인복지센터, 각당복지재단과 서울 광진구, 노원구, 동작구 노인종합복지관 등에서는 노인 대상의 웰다잉 교육을 실시한다. 대학에서는 한림대 생사학연구소가 1997년부터 죽음준비 교육을 하고 있으며 일반인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웰다잉-자살예방 전문과정’(28주 코스)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벌이는 웰다잉 교육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입관 체험이 죽음준비 교육의 전부라도 되는 듯 여기서 머뭇거리기만 할 뿐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

또 입관 체험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등 일종의 ‘퍼포먼스’로 전락한 느낌이다. 죽음이 끝인지 아닌지, 과연 인간은 육체만의 존재인지, 죽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핵심 내용을 가르치지 못한다. 생사학 전문가의 부재가 결국 웰다잉 교육의 부실로 이어지는 것. 죽음준비 교육도 노인계층을 중심으로 극히 일부만 실시될 뿐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자살 문제와 웰다잉 교육을 연결하지 못하고 있는 점 역시 문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살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고 자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지만, 죽음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자살이 마치 삶의 고통을 덜어주는 간편한 수단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자살 예방교육 등을 포함한 웰다잉 사회운동을 적극 전개해나갔으면 한다. 또 호스피스 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필수적이다. 연명치료 중단의 대상과 절차를 분명히 제시하는 한편 사전의료지시서 표준양식을 보급하고 유서 쓰기 생활화를 꾀하는 등 죽음문화 성숙을 위한 개인적, 사회적 노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생사학연구소장 jtoh@hallym.ac.kr

 

행복한 요양원, 알고 계세요?, 실버케어 완비되면 가족과 노인 모두 만족
김수영 자유기고가 kimsu01@hanafos.com
 
 
인간의 마지막 시간에는 치료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편안하게 목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휠체어에 타거나 부축받으며 산책도 하면서 친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요양원이 집보다 나을 것이다. 가족은 가족대로 환자 걱정 없이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행복했다’라고 말하려면, 이 시설과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좋을까.
 
 

‘완화 치료’료 유명한 보바스병원.

거동이 불편하면 노인장기요양보호법부터 찾아볼 것

먼저 2008년 7월부터 시행 중인 노인장기요양보호법을 챙겨보자.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혜택 중 하나가 바로 이 법이다. 중풍이나 치매, 노인성 질환으로 장기 입원이나 요양이 필요한 노인에게 사회적 케어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사회복지 관련법으로, 매달 납입하는 의료보험료의 4.75%가 이 법을 실행하는 재원으로 사용된다.

이 법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65세 이상 노인으로 파킨슨,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 다른 사람의 수발을 받아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이다.

생활 불편 정도에 따라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분류한다. 누워 있으면 1등급,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으면 2등급, 지팡이에 의존하면 3등급 정도의 판정을 받는다.

등급판정은 인터넷(www.longtermcare.or.kr)이나 전화, 방문 등으로 노인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하면 직원이 집으로 방문해 노인의 상태를 물어 소견서를 작성한다.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호법 적용대상이 되는 서비스는 요양원을 이용한 요양서비스와 집에서 받을 수 있는 방문요양, 방문간호, 주간보호, 단기보호, 방문보호, 방문목욕, 복지용구 서비스로 나눈다.

“노인이라고 아픈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방치를 하는 셈입니다.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 시설이나 병원에서 돌보는 것이 노인을 위해서는 가장 좋습니다. 1차, 2차, 3차 시범사업을 해보니 재가서비스의 만족도가 높았고, 이용하는 수도 깜짝 놀랄 정도로 늘었다는 겁니다.”

노인장기요양보호법 마련을 위해 각종 요양 및 재가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실시한 수원시청 노인복지과 박재현 주사는 전문 인력이 집에 가서 돌보면 노인뿐 아니라 가족의 삶의 질도 훨씬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뇌졸중으로 몸의 반이 마비된 72세 시어머니를 모시는 김영순(50세) 씨는 요양원을 알아보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요양원 비용 차가 정말 크더군요. 월 100만원이 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시립은 50만원 선, 양평이나 가평의 사설 요양원은 30만~40만원이었어요. 요양병원의 경우 남양주에 있는 한 병원에서는 5인실에 월 110만~120만원, 송추에서는 100만원 등 병원비도 다르게 나왔어요.”

정부에서 똑같은 액수의 보조금을 받는데도 자가 부담이 이렇게 차이 나는 이유는 요양보호사의 수와 요양원에서 쓰는 방이 1인실, 2인실, 6인실이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요양원의 질이 들쑥날쑥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인장기요양보호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운영돼온 작은 요양원들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7월 노인장기요양보호법 실시 이전에는 노인전문요양원과 요양원의 시설 구분이 있었다. 전문요양원은 요양보호사가 2.5명당 한 명, 일반 요양원은 5명당 한 명이다. 두 요양원의 시설 및 운영 차이를 인정해 수가를 하루에 1만원 정도 차이 나게 조정한 것.

전문요양원의 수가가 하루에 4만8150원이라면 일반 요양원은 3만8150원이다. 따라서 전문요양원의 경우 한 달 비용은 자부담 28만8900원에다 수가에 포함되지 않은 식사비 등을 더해 50만원 남짓이다. 작은 요양원은 월별 수가총액이 114만4500원으로 자부담은 수가 21만원에다 식사비를 보태 43만원 정도다.

수가에 포함되지 않는 비용은 식사비, 이·미용, 앰뷸런스 사용료, 병원치료비, 안마비 등.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상급 병실료, 의료용구 판매 등으로 수익을 맞추다 보니 요양원이지만 요양병원에 버금가는 비용이 청구되는 곳도 있다.

요양원, 요양병원 어디를 선택할까?

요양원이 경비 부담 면에서는 싸 보이지만, 치료가 필요한 노인은 요양병원이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비용 면에서도 경제적이다. 말기암, 통증 치료가 필요한 경우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에는 의료처치가 가능한 요양병원이 낫다. 요양병원도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특히 간병사 비용이 하루에 6만5000~6만원을 차지한다.

5인실 기준으로 하면 100만원 선인데 여기다 간병비가 얼마나 추가되느냐에 따라 총금액이 150만원이 될 수도, 200만원이 될 수도 있는 것. 대부분의 노인병원이나 요양병원은 각종 치료나 물리치료를 받더라도 보호자에게는 따로 금액을 청구하지 않는다. 병원들은 대부분 입원 당시 월별 기준으로 책정한 가격을 유지한다. 문제는 의료수가 때문에 장기입원이 되지 않는 것. 보호자는 환자를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옮기거나 다른 병원에 잠깐 입원했다 재입원하는 편법 아닌 편법을 써야 한다.

요양원 및 요양병원 사례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
http://wonsilver.or.kr, 031-257-0130 노인장기요양보호법 실행을 위해 3년간 시범운영

산 아래 자리한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은 멀리서 보면 요양병원 같다. 145명 정원에 지하 1층, 지상 3층, 건평 4760m²로 노인 1명당 33m²꼴로 공간이 널찍하다. 이곳에서는 요양복지사나 직원들이 노인과 마찬가지로 모든 공간을 맨발로 다닌다. 바닥은 스팀청소기로 깔끔하게 닦아 먼지 하나 없다.

   

요양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실시한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

각종 재활치료와 물리치료실, 발마사지나 음악치료, 그림치료, 비누 만들기 등 작업치료실과 심신안정실 등을 운영해 거동이 가능한 노인들은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많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의 김영기(51) 시설장은 원불교 법사다. 사회복지법인 창필재단이 이곳의 운영을 맡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호법 실행을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실태조사를 하느라 3년간 시범운영을 한 곳으로, 요양원 서비스의 모델을 제공한 곳이기도 하다.

2.5명당 한 명꼴인 요양보호사는 식사시간뿐 아니라 거동을 하는 노인들을 거의 일대일 수발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현재 기관지 절제를 하거나, 위관을 통해 음식물을 투입하는 중환자도 60명 정도 있다. 이런 환자들은 병원에서처럼 24시간 집중 케어를 받는다.

[보바스병원]
http://www.bobath.co.kr, 031-786-3000 노인요양병원 평가 1위

보바스병원 ‘수 치료실’.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이 보바스병원이다. 로비는 호텔 라운지 같다. 병원 곳곳에는 토끼가 뛰어다니고, 환자들은 휠체어를 타고 나와 토끼와 논다. 옥상 정원뿐 아니라 야외 테라스가 있어 산책도 하고, 방울토마토나 풋고추 등을 따먹기도 한다.

보바스병원은 뇌졸중 및 외상성 뇌손상, 뇌성마비 등과 같은 뇌신경계 이상을 가진 환자들의 재활치료 시설로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파킨슨병과 치매처럼 치료법이 없다고 여기는 질환도 이곳에서는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수치료, 동물치료, 아로마테리파 등도 각종 재활치료에 이용된다.

훈련된 강아지를 이용한 동물치료는 치매나 말기암 환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다른 병원에서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한 분들이 여기에서는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다 가십니다. 이곳에서 하는 건 전인치료죠. 몸과 마음, 통증과 고통까지 모두 치료하는 게 목표입니다.”(윤자영, 보바스병원 홍보팀)

노인병동 2층은 완화 병동이다. 환자들은 로비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텔레비전을 보던 환자는 기운이 없어서 말을 못했지만 표정은 더없이 편안했다.

   

[일산호수요양병원]
www.onnuri24.com, 031-903-8725 도심의 노인전문병원

일산호수요양병원은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도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인근에서 200병상이 넘는 유일한 대형 노인병원이다. 호수공원 바로 앞에 자리한 덕에 전망도 쾌적하다. 대형 병원의 장점은 혈액투석실 등 전문 치료시설을 갖춰 굳이 치료를 위해 종합병원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병실 공간과 맞먹는 널찍한 테라스에는 늘 80명의 환자들이 휠체어나 침대에 누운 채 나와서 햇볕을 쬔다. 테라스 덕분에 환자들의 얼굴색이 입원하고 나서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일광욕을 많이 하면 확실히 감기가 덜 걸린다.

병원 안에서 피부과, 신경과 등 일반 병원의 치료가 가능하고 퇴행성 관절염, 파킨슨병 등에 대한 광범위한 물리치료도 행하고 있다. 음악치료 등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한 배려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색소폰이나 아코디언 등을 연주하는 음악회가 수시로 열려 무료함을 덜어준다. 성당 등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의 봉사와 연계 프로그램이 있고, 병원이 도심에 있다 보니 보호자가 방문하기 쉬운 장점도 있다.

전문가가 말하는 좋은 요양원과 요양병원 선택 기준
1. 냄새가 나는가?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남아 있다면 관리가 안 된다는 증거다. 옷이나 침구를 매일 교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 점심식사와 저녁식사를 비교하라
식사시간에 각자 다른 걸 먹고 있다면 음식에 대한 케어를 하는 곳이다. 설사 등 소화기가 약한 사람을 위한 음식, 보양식, 밥 등 노인의 상태에 따라 다른 음식을 주는 것이 정상이다.
3. 요양간병사와 간병인들의 표정을 살펴라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들이 받는 스트레스 또한 크다. 따라서 운동시설이나 쉼터 등 이들을 위한 복지가 잘돼 있는지를 살피는 것도 좋다. 노인들의 상태는 정성으로 대하는 곳이냐, 그렇지 않은 곳이냐에 따라 크게 차이 난다.
4. 실외 공간을 잘 꾸민 곳보다 실내가 넓은 곳이 낫다
1등급이면 거동을 못하고, 2등급이면 휠체어나 지팡이에 의존해 거동이 불편하다. 실외로 나가는 것은 무리다. 실내공간이 넓고, 환기가 잘되고, 방에서 나무나 산 등 녹음이 보이는 곳이 좋다.
5. 1인실이 많고 의료용구 판매가 많으면 상업성이 크다
1, 2인실이 대부분이라면 비싼 요금을 각오해야 한다. 다른 노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혼자 있는 것보다 5인실을 추천한다. 예닐곱 명이 누워 있는 경우도 있는데, 보호자가 보기에는 ‘끔찍한’ 광경이지만 실제로는 노인들에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의식이 없는 것 같지만 노인들끼리 서로 의지가 된다.
6. 편법 운영되는 곳은 피한다
정부보조금이 있기 때문에 시설이 열악한 작은 요양원의 경우 자부담 비용을 거의 안 받는 곳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노인을 방치할 가능성이 높다.
7.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준하는 서비스를 받으려면 시립이 좋다
시립의 경우에는 시에서 건물을 세우고, 운영은 복지법인에 맡기고 있다. 복지법인은 불교 원불교 가톨릭 기독교 등 종교단체에서 세운 경우가 많지만, 운영에 있어서는 종교적인 색채가 전혀 없다. 자체적으로 의료진을 구축하는 경우가 많다. 단, 대기자가 많아서 입소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시립은 거주지 제한 규정도 있다.

   

“빛에서 느낀 따뜻함과 편안함 많은 사람과 나눠야죠”
‘근사체험’ 후 웰다잉 전문강사로 거듭난 김소암 목사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캄캄한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환한 빛이 가득한 세계로 나왔어요. 지금까지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걸 그곳에서 봤죠. 온갖 악하고 더러운 죄가 영상으로 그려지니, 그저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이었어요. 그런데 건장한 청년 4명이 검은 망토를 입고 나타나 저를 꽁꽁 묶어 어디론가 끌고 가려는 겁니다. 마치 마귀 같았어요.”

성결대 명예교수이자 웰다잉 전문지도강사인 김소암(73) 목사는 2006년 6월 동맥류 진단을 받은 뒤 폐와 대동맥 일부를 잘라내고 인공혈관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7시간에 걸친 대수술 이후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김 목사는 ‘근사체험(近死體驗·Near-Death Experience)’을 했다고 믿는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인생사

“마귀들은 계속 나타났어요. 아는 이, 모르는 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았죠. 괴로워하던 중 다시 빛이 충만한 아름다운 동산에 도착했죠. 그곳에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 빛을 본 뒤 저는 병실로 돌아왔고, 온몸에서 피와 불순물이 흘러나오는 제 육체를 바라봤죠. 그러다 어느 순간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소리 지르고 몸부림치는데 의식이 돌아왔어요. 꼬박 나흘 동안 정신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기억이 근사체험이라고 확신한 김 목사는 이후 관련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이의 근사체험이 자신의 경험과 비슷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대다수가 △영혼이 빠져나와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다가(체외이탈) △갑자기 검은 터널과 같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나고 △그곳에서 자신의 일생이 파노라마 영상처럼 펼쳐지는 경험을 하며 △빛으로 나타나는 초월적 영을 만난다는 것. 실제로 레이먼드 무디 2세, 칼 베커, 케니스 링 등 죽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저서를 통해 근사체험의 단계를 설명했는데, 내용은 김 목사의 것과 거의 같다.

근사체험은 김 목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자신의 인생사를 보면서 무척 부끄러웠던 만큼, 죽어서 그 인생사를 다시 보게 될 때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울 수 있도록 선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김 목사는 수술받은 해 각당복지재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가 운영하는 ‘죽음준비교육지도자 양성 과정’과 ‘웰다잉교육 전문지도강사 양성 과정’을 알게 됐다.

“물론 제 경험이 죽음 후의 모습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죠. 하지만 저는 믿어요. 빛을 만나 따뜻하고 편안했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거든요. 다만 형태가 달라지는 것일 뿐,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죽음은 삶의 마지막 완성 단계죠. 이때 필요한 건 미움과 원망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 화해입니다. 이 느낌과 생각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웰다잉 전문강사를 하게 됐어요.”

   

“사랑과 용서, 화해하며 삶 마감했으면”

현재 김 목사는 노인대학, 요양원, 복지관 등에서 삶과 죽음을 강의한다. 또 본인이 몸담은 대학에서도 젊은 대학생들을 가르친다. 70여 년의 인생에서 우러나온 내용에 근사체험 등 독특한 경험까지 들을 수 있어서인지, 김 목사의 강의는 늘 수강생들에게서 호응을 얻는다.

그의 강의가 감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전의료지시서·유언장의 필요성과 작성법, 자살 예방책, 존엄사 문제 등에 대해서도 냉철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저는 유언장을 이미 써놓았습니다. 사전의료지시서도 작성했죠. 더 회생할 가능성이 없을 때 병원으로 가지 않고 조용히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또 죽음에 임박하면 일생 동안 강의하고 설교한 영상물을 틀어서 제가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장례식 프로그램도 다 짜놨어요. 사회 보고 같이 기도하며 노래 불러줄 친구들도 생각해놨고요. 그렇게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서 사랑과 용서, 화해를 하며 이 삶을 마감하면 좋겠어요.”

‘죽음’이 바꾼 삶
죽음에 대한 공포 사라져 자아존중감 높아


근사체험을 논할 때 그 내용과 진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체험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다. 한국죽음학회 최준식 학회장에 따르면 “근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달라진 모습이 흡사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숙 인격’과 같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삶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는 것. 할머니의 깊게 주름진 얼굴,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들꽃 등 아주 일상적인 것에서도 깨달음을 얻는다. 특기할 만한 것은 사물들에게서 일정한 힘이나 에너지를 느낀다는 것. 또 자신이 매우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게 되면서(자아존중감) 삶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한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도 이어진다. 물질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드는데, 이는 물질에 대한 욕심이 공허하고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경쟁하는 일도 줄어든다. 반면 ‘영(靈)’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다. 체험자들은 자신이 체험 후 더 종교적인 인간이 됐다기보다는 영적인 인간이 됐다고 말한다. 또 모든 종교가 지닌 보편적인 가르침(사랑, 자비, 용서, 화해 등)에 몰두한다.
지식에 대한 탐구심도 깊어진다. 체험자들은 근사체험으로 ‘빛의 존재’를 만났고,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한다. 이후 체험자들은 우주와 인간에 학문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다고 말한다. 자신이 죽음 뒤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했을 뿐 아니라, 사후세계가 매우 아름답고 평화로웠기 때문에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간혹 생리적인 변화와 초능력이 생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생리적 변화는 ‘지각과민증’인데, 이는 빛이나 소리, 습기 같은 환경적 자극에 매우 예민해지는 것을 뜻한다. 전기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 송전선 등 전기가 흐르는 곳에 가면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처럼 기분이 이상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기도 한다. 이는 그들의 몸에 있는 ‘전자기장’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 텔레파시나 천리안, 독심술, 예지력 같은 초능력이 생기고, 체외이탈은 물론 다른 사람 몸에서 나오는 아우라(aura)를 보기도 한다. 죽음학자인 애드워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가 만난 성인 체험자들의 경우 78%는 체험 이후 7년 안에 이혼했다고 한다. 근사체험을 하면서 무조건적인 사랑에 눈떴다는 이들이 왜 배우자와의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것일까. 아마도 체험 후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지는 데 비해, 배우자는 그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죽음, 또 하나의 세계’(최준식 지음)에서 발췌, 인용

  

죽음, 그것은 쉼이자 축제!
한국 전통 상례문화 전시 ‘쉼박물관’에서 배우는 장례의 의미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1 망자를 장지까지 운반하는 상여는 살아서 갖지 못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라는 의미에서 꽃, 용, 인물, 도깨비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약 100년 전 경상도 지방 것으로 추정되는 이 상여는 원래 박기옥 고문의 부부 침실이던 공간에 전시돼 있다.
2 요여. 육체가 아니라 영혼과 관련된 신주, 명기 등을 싣고 상여 앞에 가는 작은 가마. 시신을 매장한 후 혼은 요여를 타고 집으로 와 빈소에 머문다(작은사진).

“나, 영정사진 하나 찍어줄 수 있을까요?”

사진기자에게 뜻밖의 부탁을 한 사람은 한국 최초의 ‘전통 상례문화 박물관’인 ‘쉼박물관’의 박기옥(74) 고문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삶’임을 보여주는 ‘쉼박물관’의 설립자다운 부탁이었다.

2007년 10월 서울 종로구 홍지동에 문을 연 ‘쉼박물관’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 상례문화 관련 오브제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화여대 사학과 1회 출신인 박 고문은 젊은 시절부터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옛 물건을 수집해왔다.

그리고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살림집을 고쳐 전통 상례문화에 관련된 물품을 전시하는 ‘쉼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죽음은 꽃상여 타고 기쁘게 쉬러 가는 것이라는 옛사람들의 철학을 그 이름에 담았다.

   

3 장례를 알리는 부고장.
4 ‘쉼박물관’ 박기옥 설립자 겸 고문. 상여의 색감과 목각 장식의 조형미에 반해 상례물품을 수집하게 됐다고 한다. 현재 관장은 셋째딸 남은정 씨다.
5 상여를 장식하는 목각 인형. 물구나무를 선 자세가 유머러스하다.

“한국에서 장례라고 하면 통곡을 하는 비극적인 의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상여 장식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재주 부리듯 물구나무를 서고 있지요? 영혼이 저승으로 가는 동안 즐겁기를 바라는 뜻과 상여꾼들도 힘을 내라는 의미가 담겼죠. 영화 ‘축제’처럼 우리에게 장례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의 축제였어요.”

유머러스한 상여, 아름다운 장식과 문양

상여 장식이 이렇게 유머러스한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또 상여에 쓰인 문양과 색이 이렇게 다채로운지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처음 알았다.

예전 부부 침실에 상여를 들여놓고, 욕실에 ‘도깨비방망이’ 등 우화와 관련된 조각들을 설치하고, 주방에는 명기를 전시한 박물관을 보면 죽음을 이야기하고 보는 것이 지금 살아 있다는 가장 강렬한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박 고문은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보며 느낀 심정을 ‘국민장 유감’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한 나라 대통령의 장례인데, 어느 나라 식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사람이 많아도 썰렁한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적 국민장 형식에 대해 논의가 필요해요.”

박 고문에게 우리의 딜레마를 털어놓았다. 한편으로 ‘웰다잉’을 이야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죽음이란 말조차 입에 올리기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남편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것이 삶의 연장이란 확신을 갖게 됐어요. ‘웰다잉’이란 죽은 뒤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요즘 ‘쉼박물관’에서 ‘웰다잉’ 모임이 자주 열려요. ‘웰다잉’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걸 배우게 됩니다.”

   (끝)

기억하라! 모두 시한부 인생임을
문학과 영화에 투영된 죽음 … 찬란한 삶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표정훈 출판평론가 medius@naver.com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바꿔 ‘예술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하면 어떨까? 아닌 게 아니라 적지 않은 문학작품과 영화의 주제, 소재, 모티프가 ‘죽음’이다. 통속 드라마의 줄거리를 극적으로 이끄는 단골 장치도 주인공이 ‘느닷없이’ 불치병에 걸리는 것 아닌가. 이런 경우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하나의 장치로서의 죽음이라 하겠지만, 좀더 진지하고 깊이 있게 죽음에 접근하는 문학과 영화도 드물지 않다.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세종서적 펴냄)을 빼놓을 수 없다. 근위축증, 즉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는 스승 모리 슈워츠 교수와 화요일마다 10여 차례 만나 나눈 얘기를 엮은 책이다. 1997년에 출간돼 ‘뉴욕타임스’ 비소설 베스트셀러에 200주 넘게 머무르며 41개 언어로 번역됐다. 제자와 스승이 묻고 답한다.

“늙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으셨어요?”
“미치, 난 나이 드는 것을 껴안는다네.”
“껴안아요?”

“나이 드는 것은 단순히 쇠락만은 아니네. 그것은 성장이야.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지. 그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고.”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죽음에 관한 명언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랑이 거기 그 안에 그대로 있고, 모든 기억이 여전히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네. 자네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죽음은 세상을 떠난 사람 본인보다 그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문제다. 고아 소녀 서머는 늘 사랑으로 자신을 대해주던 메이 아줌마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남편 오브 아저씨와 함께 상실감에 빠진다. 괴짜 친구 클리터스의 제안으로 이들은 메이 아줌마의 영혼과 만나고자 심령교회를 찾아 떠나지만 교회는 문을 닫았고 아줌마의 영혼과도 만나지 못했다. 비로소 아줌마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서머는 슬프게 운다.

떠난 사람보다 떠나보낸 사람들의 문제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사계절출판사 펴냄)는 청소년용으로 출간됐지만 성인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다. 서머가 말한다.

“지금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면, 나와 클리터스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은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메이 아줌마는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사랑의 기억으로 서머와 오브 아저씨의 가슴속에 살아남았다. 그는 세상을 떠났으되 결코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문학동네 펴냄)에서 권태롭고 무의미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 베로니카는 제목 그대로 죽기로 결심하고 수면제를 다량 복용했지만, 깨어나 보니 하늘나라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있는 게 아닌가.

더구나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심장이 심각하게 손상돼 남은 생이 일주일 남짓밖에 안 된다. 시한부 인생이 되고 나서 삶에 대한 애착이 싹트는 베로니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무슨 실수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단 한 가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실수만 빼고.”

베로니카는 며칠 남지 않은 생이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만 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지만 정작 그걸 실현하는 사람은 단지 몇 사람에 불과해. 문제는 그럴 때, 꿈을 실현하지 못한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느끼는 데 있어.”

“모범적인 삶의 교본들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모험을 발견하라고, 살라고 충고할 거야!”

베로니카의 일주일 남짓한 삶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 남은 시간이 하루인지 수십 년인지 알지 못하므로.

영화로 넘어가보자. 세계적인 패션전문지 ‘엘르’의 수석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는 43세 때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20일 후 의식을 찾은 장은 왼쪽 눈꺼풀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눈 깜박이는 횟수로 철자를 나타내 책을 써 내려간다. 15개월 동안 20만 번 눈을 깜박이며 책을 써낸 그는 책이 나오고 열흘 뒤 세상을 떠났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의 영화 ‘잠수종과 나비’(동문선에서 펴낸 보비의 책 번역서 제목은 ‘잠수복과 나비’)는 죽음이 예정된 육체, 즉 잠수종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지만 영혼만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비처럼 날아다닌 사람의 이야기다. 삶의 존엄이 곧 죽음의 존엄이기도 하다면,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존엄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적, 법적 논란의 주제가 되고 있는 존엄사 관련 영화에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씨 인사이드’가 있다.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 전신마비가 된 라몬 삼페드로는 가족의 뒷바라지 속에 침대에서 입으로 펜을 잡고 글을 써왔지만 간절한 소망은 단 하나, 존엄사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선택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 법정투쟁도 불사한다.

그의 간절한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친구들이 나선다. 전망 좋은 바닷가 호텔방을 마련하고 청산가리를 준비해 빨대를 꽂아주는 친구들. 법원 앞에서 라몬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의 문구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삶은 권리다. 의무가 아니다.’

   

삶의 존엄이 곧 죽음의 존엄

롭 라이너 감독의 ‘버킷 리스트’에서 자동차 정비사 카터와 재벌사업가 에드워드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같은 병실을 쓰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다이빙, 눈물 날 때까지 웃어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등. 두 사람은 병실을 박차고 나온다. 이후 영화는 일종의 버디 무비, 즉 두 사람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갖가지 일을 벌이는 이야기로 전개되고 가족과의 화해, 삶에 대한 깨달음과 감동으로 이어진다.

‘할리우드적 가벼움과 통속적 감동’으로 평가할 수도 있는 영화지만, 영화 속에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실상 시한부 인생이 아니던가.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세상에서 가장 분명한 사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버킷 리스트’에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 이상에서 살펴본 책과 영화들은, 잘 죽는다는 것은 결국 잘 산다는 것과 불가분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지. 진정한 의미의 웰빙과 웰다잉은 동전의 양면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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