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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하고 빠르다 "총보다 매서운 매"

醉月 2009. 2. 7. 15:31

예리하고 빠르다 총보다 매서운 매! ‘매사냥’ 명맥 잇는 대전시 무형문화재 박용순씨


장끼 낚아챈 참매 고려응방의 3년생 수진이(길들여진 참매)가 대전 동구 이사동 야산에서 장끼(수꿩)를 낚아채고 있다. 꼬리부분의 흰색 시치미는 매 주인이 누군지 알려주는 인식표다.

보라매 훈련 고려응방의 박용순(대전시 무형문화재 8호)응사가 고려응방 마당에서 보라매에게 사냥훈련을 시키고 있다. 보라매는 털갈이 전의 참매 1년생을 말한다.

포획물은 주인에게 박용순 응사가 야산에서 수진이가 사냥한 장끼(수꿩)를 망태기에 담고 있다.

먹이 향해 돌진 고려응방의 송골매가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매사냥훈련을 받고 있다. 주로 바닷가에서 번식하는 송골매는 개활지에서의 매사냥에 이용된다.


임무 마친 참매 수진이가 대전 동구 이사동 야산에서 사냥한 장끼(수꿩)를 강력한 발톱으로 제압하고 있다.

 

 

‘고려응방(高麗鷹坊)’을 나와 양지바른 앞산을 넘어 북쪽경사면의 높은 곳으로 갔다. 응사의 왼쪽 팔뚝엔 수진이가 버티고 있다. 산은 높지 않았으나 바람은 제법 사납게 불었다. 오랜만에 야외로 사냥에 나선 수진이는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은 기세지만, 응사는 절끈으로 수진이를 제압하고 있다. 사람과 매가 하나가 된 순간이다.

‘훼이익~’ 날카로운 금속성의 참매(수진이) 소리에 놀란 꿩이 수풀 속에서 차고 올랐다. 수진이가 박차고 곧장 나가 순식간에 위로 솟구치더니 장끼를 가볍게 잡아채어 낚아챘다. 그 순간은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에 진행됐다.

매사냥. 매를 잡는 사냥이 아니다. 인간이 사냥술이 뛰어난 맹금류를 이용하여 날짐승이나 들짐승을 잡는 것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고차원적인 사냥과 오락의 결합체다.

매사냥은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 기록은 없고, 기원전 8세기 고대 아시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칭기즈칸 이후 유라시아대륙에서 널리 흥행했던 매사냥은 오늘날, 미국, 유럽, 중동의 부호들이 가장 즐기는 고급 레포츠로 발전했다.

우리나라는 고조선시대 만주의 숙신족으로부터 전수받았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황해도 안악군 ‘안악 1호’ 고구려 고분벽화와 중국에 있는 ‘삼실총’, ‘각저총’, ‘장천1호’ 등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매사냥 장면이 등장한다. 일본의 역사서 서기(書紀)에는 백제의 귀족 주군(酒君)이 일본 왕실에 매사냥을 전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대국가의 왕과 귀족의 레저였던 매사냥은 고려시대에 절정을 이루며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고려의 충렬왕 때부터는 매사육과 매사냥을 전담하는 관청인 응방(鷹坊)이 생겨나 조선조 숙종 때까지 이어졌다. 중종이후 왕실이 쇠락하면서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매사냥은 일반백성들도 즐길 수 있는 오락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매사냥은 이 땅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산업화 도시화로 매사냥에 이용되는 참매, 송골매, 새매들이 사라지고 있는 탓도 잇지만, 생계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전통문화를 이어갈 뚜렷한 계승자가 없었다. 매사냥이 오랜 역사를 지닌 한국에서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 전통문화의 마지막 불씨를 묵묵히 지펴온 한 고집쟁이가 있다.

응사(鷹師) 박용순(朴勇淳·50).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35년이 넘게 매사냥을 배웠던 그는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우리민족의 전통문화인 매사냥의 부활에 나섰다. 대전 동구 이사동에 ‘고려응방’이란 한국전통매사냥보존회를 세우고 낮에는 송골매, 참매, 새매를 훈련시키며, 밤에는 응골방(鷹□方)등 옛 문헌속의 매사냥을 연구하고 있다.

매사냥보존회에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회원도 200여명이 넘었다. 대전시는 그의 노력을 인정해 2000년 2월 대전시무형문화재 8호로 지정, 시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돕고 있다. 고려응방의 재정문제는 뚜렷한 소득이 없어 늘 숙제로 남아있지만, 박 응사는 포기하지 않고 소박한 꿈을 실천하고 있다. 2000년이 넘게 이어온 이 땅의 매사냥전통이 단절되지 않도록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후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