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술잔의 크기를 가지고 말한다면 단연 금메달

醉月 2008. 8. 28. 08:27

  옛날  한  재상이 남도에  안찰사로  갔는데  성격이  몹시  까다롭고 엄해서 관기들의 작은 실수도 용납지 않았다.

말하자면  모든 일에 원리원칙을 주장하여 예외라는 것이  없는 모범생이었던 모양이다. 

마침 안동에 내노란  기녀가 있어 이 까탈스런 사또를 한 번 골탕먹이기로  작정하고 접근하였다.

우선 원앙금침에 무르녹는  사랑으로 영감태기를  헬렐레 하게  만들어 놓으니  남자는 갈증으로 술생각이 간절했다. 

"썩 맛 좋은  술이 한통 있긴  한데 마침 술잔이  없습니다.
밤이  깊어 그릇을  다 치워  놓았으니 정히  난감하오이다. 술잔을  꺼내오려면 아랫 것들을 다 깨워야 하니 번거롭고...

"이쯤에서 뜸을  들인 뒤에, "그릇이라면 새로  사온 세숫대야가  탁자위에 있을  뿐이지... "하고  눈치를 모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또가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말을  받는다. "질그릇에  탁주라는 말도 있는데,

이런  시골에서 놋대야 라면  질그릇 탁주보다 사치하며  오히려 풍미를 돋구지  않겠느냐!"

이리하여  세숫대야에 술을  따라  두어 모금  마시고 나서, "좋도다. 금잔,옥배보다  이 잔이 더 좋구나!" 

이렇게 하고 보니  은근히 켕기는 구석이 없지도 않았던지,  "얘야, 행여 이런 사연  남한테 누설치는 말아라."하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뭇 기생들이  개미떼같이  달라붙어  숨을 죽인  채  이 광경을 역력히 보고 있다는 것을 그가 어찌 알았으랴.
  술잔 크기와 주량이 비례한다고 까지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상관관계는 크다.


  서거정의 '필원잡기'를 보면, 당시에 국빈을  대접하는 대객관은 각별한 주량을 필수요건으로 했던가 싶다. 
유구국(현 오키나와) 사신이 조선을 다녀가서 한 말 중에, 그들이 조선에 와서 경탄한  것  세가지를  지적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대객관의  주량이었다.
"깊숙하고 커다란 술잔으로 셀 수 없이 주고 받아 가히 한섬 물을 마시겠더라."
요즈음  기업체에서 외국  바이어를 상대하는,  이른바  '술상무'라는 것이  이 전통의 계승일 터이다.


  동서고금에 가장 희한한 술잔 이야기 하나 해보자.
문안공 이사철이 젊어서 여러벗들과 삼각산에서 소풍할  때, 술은 많으나 잔이 적어서 난처했다. 

궁 하면 통 한다고,  마침 한 친구가  말가죽 신을 신고 있는 것을  보자 이서철의  머리에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그는  신 한짝을  벗겨 거기에 술을 담아  호기있게 쭉 들이켰다.

이를 시범삼아 나머지  친구들도 웃고 떠들며 가죽신 술잔으로 다투어 술을 마셨더란다. 원 세상에!


  당나라의 시선  이백의 '월하독작'이란  시에 

'삼배통대도  일두합자연 단득주중취  물위성자전'

즉,  석잔의  술을  마시면  노장의  이른바 무위자연의 대도를 깨우칠  수 있고,

한 말의  술을 마시면 자연의  섭리, 그 핵심과 합치가 된다.

다만 나는 취둥의  그 흥취를 즐길 뿐  술 못마시는 속물들에게 그  참맛을 알려주고픈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술 못하는 사람들은  도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다.


  또  이태백과 더불어  '음중입선'이라  불리우던 하지장은 

'안화낙정수저안' 즉, 취한 눈이 몽롱해서 깊은 우물에 빠진다고 해도 물속에서 그대로 계속 자겠다며 술을 만끽했다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술 한잔의  의미를 이백의  '독작'이란 시를  통해서 음미해 볼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동양적 예찬과 애정은 생활구조와 의식이 다른 서양에서도 다름 없는 것 같다.

영국의  희극작가 R.B.세리든의  <주덕송> 이라는 시의  일절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술병은 우리 식탁 위의  태양

  그의 양광은 감홍색 술

  그의  도움없이 부추김 없이는

  우리만으로 빛나지 못하리

  환락과 환희 끝도 없구나

  그가 삐잉 한바퀴 돌면

 우리는 그의 차광으로

  따라 빛나리.


  그러나 사람을 기쁠  때와 마찬가지로 비탄 속에서도 술을 찾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창의  나이에  우연히  김용호의   시  <주막에서>  를  읽고, 

인생의 구곡장단의 길을 때로 술로 풀어가는 인간의 삶을 쓸쓸히 들여다 본적이 있다.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벗긴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는 그런 사발에

  누가 또 닿으랴

  이런 무렵에


  지금도 가끔시의 이 후반부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의 외로움에 취기를 흠뻑 느끼곤 한다.
  이와 같이  시에서 느낀 술의 분위기는  공통적으로 한가로움과 유유자적함이 있는 듯 하다.

반면에 술에서 내가 대면한  술 냄새에는 현실에 밀착된 절실하고 긴박한 생활감이 있었다.


  여고시절에 밤새워 읽던 명작들  중에 유난히 칼바도스,보드카라하는 술이름이 선병하게 기억되는 소설이

'개선문'과 '사랑할 때와 죽을때'이다.
둘다  레마르크의 작품이었는데  읽은 시기도  비슷하고  또 그  내용과 배경이 전황으로  일치함으로써 잊혀지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칼바도스나  보드카는 전시의  울적함과  절망적이 분위기에서  짧은  꿈  혹을  환상처럼  빛을 뿜던 술이었다.

숨막히는  나날 속에서 잠깐씩  주인공들을 사랑과 평화  곳으로 높이 날려보내던 풍선,구원의 약제로서의 술읠 효능을 기렸다.
  '개선문'은  나찌  독일의 반발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유럽 각국에서  파리로  도망쳐온 

피난민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을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라빅은  베를린 한  종합병원  외과  과정으로  강제수용소를 탈출하여 프랑스에  밀입국하고,  

생계수단으로  무능한  의사들의   수술을  대신하거나 매춘부들의 성병을 검진한다.
내일이  없는 불안과  절망의 나날속에  떠돌이  가수 조앙  마두라는 여인을 만남으로써 그는 비로소 폐기된 삶을 회복하게 된다.
  비를 품은 하늘로 어렴풋이 드러나는 개선문, 그  근처 파리의 거리 한 모퉁이 카페에서  칼바도스라는  술로  첫만남을  맺었고, 

그술은  사랑과  이별의  매 순간마다 함께 하던 술이다. 

 

  유럽여행 중에  우연하게도 개선문을  눈 앞에  두고

조병화,  성춘복, 황금찬 성생님  등의 일행이  명성의  '칼바도스'에  취해 있을때도  나는  맛보다 그저 분위기만 따라가고  있었다.

강한  사과 냄새의  향기나 맡을  뿐이었다. 오히려 현실보다는 책에서 에도 했던 장면들을 추억하며 즐겼던 것 같다.
  이를테면  라빅과 조앙이  칼바도스를  마시는 보습을  보고  "어떠한  표정의 바람에도 이내  변하는 얼굴이다.

그러므로  무슨 꿈이든 부어  넣을 수가 있다.
양탄자와 그림이 장식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빈 집과도 같다.

무엇이든 그것을 이루려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라고 생각하는 장면같은 것들이다.
  어떻든 그 위기 속에서 이런 생각의 여유를  낳은 것은 술의 힘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저녁 바로 그 술을 앞에 두고도 우수의 멋진 표정을 연출해내지 못했던 스스로를 지금껏 아쉬워함을 고백해 둔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서도 칼바도스나 모드카 같은 종류의 술을 마시면서

전시  속에서 잃어버린  삶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들의 애틋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휴가중에  그레버가 엘리자베드와  마신 '요하니스  베르게르 카렌베르그'라는 마치  샘과 같다는  술은

나의  미래 어느 시간 솔에  예비해 두고  있다.  

두 주일간의 생명을, 고리수가 빛을 포착해서 발산  하듯이 붙잡지 않으면 안된다던 그레버의 절규를,

끝내 죽고 마는 그의 최후를 되짚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새  전투장인  생활현장에서  희망이  주는  헛된  약속과 어긋나는 좌절을  앓는다.

필사적으로  신앙이나 학문에,  또는 예술이나 노동에 매달려 나름대로의  길을 가고는 있지만, 

그나마 삶에 쏟아붓는  우리의 뜨거운 피가 식을 때  우리는 심신을 북돋을 무언가를 필요로한다.

만약  주당들이 아껴 마지 않는  그 한잔의  빛과 향기에 동참해본다면  쉬어가는 저녁을,

그로  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법한 이 습관 붙이기도 그리 탓할 일은 아닌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