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설씨녀와 가실랑의 사랑

醉月 2008. 8. 31. 11:53

  …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지(智)이고
  … 선도를 깊이 아는 것이 명(明)이다


수주미를 지녔던 대표적인 여인으로 악도낭자의 이야기


  신라 진평왕 때 여율리(汝栗里)에 설선달이라는 늙은이가 방년 스물 둘의 무남독녀 외동딸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가문은 일찍이 장군을 지냈던 설계두의 집안인데 이제는 몰락하여 가정 형편이 몹시도 구차하였다.
  그에게는 설악도(薛顎濤)라는 박분같이 흰 얼굴에 수양버들처럼 하늘하늘하고 칠흑같이 검은 머리를 가진 미모의 딸이 있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구차한 형편 중에도 뭇 사내들의 청혼을 거절하고 늙으신 아버지를 극진히 공양하여 효녀라고

동네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운데서도 언제나 얼굴빛은 부드럽고 행실이 단정하여 동네 사람들이 품행이 방정맞다고 칭찬하였다.

더욱이 흉년을 당한 가운데서도 이집저집 다니며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밥을 빌어 늙고 병든 아버지를 삼시 세때 거르잖고 봉양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흉년에 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다는 건 무리일 듯 싶어 먹잖고 사는 비법을 갈쳐 주었다.

왜냐하면 나가 신선이니까… 벽곡불식의 비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한끼도 안 먹고 사는 방법. 이것만 터득하면

우라질나운도고

구린나운도고

불루나운도고 쌀 시장 개방이고 간에 뭘 하여도 까딱없다 이거 아닌가. 그럼 그 비법이 뭐냐? 간단하다면 간단하다고 할 수있다.

우선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 그리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엔 일찍 잔다.
 
  먹잖고 사는 것, 즉 굶고 사는 것이 왜 좋은 것인고 하면,
  첫째 하루 세낄 전부 먹을 땐 그날 발생한 독 가운데 75分가 소변으로 빠져나가고 25分가 몸속에 남는다.
  둘째 아침을 굶고 점심 저녁만 먹으면 소변으로 100分의 독이 썅 빠져나간다.
  셋째 점심 한끼만 먹을 경운 이전에 체내에 축적돼 있던 독을 포함해 무려 127分의 독이 소변으로 빠져나간다.
  결론은 하루에 점심 한끼만 먹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고 세끼를 다 먹을 경운 매일 몸 속에 25分씩 독소가 축적돼 병이 생기게 된다.

반대로 단식이 길어지면 질수록 흰피톨의 수와 식균력이 증가하므로 저항력이 증대되어 병에도 안 걸린다는 것이다.
  요것이 바로 벽곡불식하는 이들의 건강비결인 것이다.
 
  진평왕대는 신라의 국력이 미미하였던 관계로 게다국과 백제의 침략이 빈번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설씨녀의 아버지에게 그만 정곡 지역으로 수자리가 돌아오고 말았던 것이다.

설씨녀는 하늘이 무너지듯 앞이 깜깜하였다.
늙고 병든 아버지가 수자리에 나간다는 자체도 불가능하였지만, 설령 나간다 해도 3년의 복무를 마치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몹시 근심을 하여 악도낭자가 초췌하여졌을 때,

이웃 마을 사량부에 사는 가실 청년이 악도낭자의 댁을 방문한 것이다.
가실청년은 의협심이 강하여 불의를 보면 도저히 참지 못하였고 또 남의 어렵고 딱한 사정을 보면 자기가 굶더라도 돕잖고는

견디지 못하는, 쉽게 말하자면 열혈 의협남아요 속되게 말하자면 멍청순정남이었더라.
 
  가실청년이 평소에 설씨녀를 맘속에 연모하고 있다가 딱한 사정을 듣고 찾아와선, 놀라운 까무라칠만한 경천동지할 제의를 한 것이다.
   싫지 않으시다면… 아버님 대신 제가 수자리를 서겠습니다. 
  때는 게다국과 백제국의 침략이 심하던 때라 수자리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비상시국이었던 관계로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었던 것이다.
즉 유고 내전보다 유고(有故)가 심할 때였던 것이다. 이런 제의를 어찌 설씨녀가 마다할 이유가 있으랴.

불감청이어든 고소원 아니겠는가. 설씨녀는 가실청년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그래서 가실청년에게 말하였다.
   가실님! 눈물이 핑 도네요, 증말로
  가슴이 찡하네요, 증말로
  제가 무언가 해드려야 하는데, 가진 게 없군요…
 
   악도 낭자! 난 댓가를 바라고 한 건 아닙니다. 날 그런 인간으로 보지 마십시요, 물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습니까?
   아아, 가실님! 전, 이런 기분 처음이랍니다.
  소녀를 누추하다 여기지 않으신다면 소녀, 가실님이 수자리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날, 가실님의 지어미가 되겠사옵니다.
   오오! 악도 낭자. 그 말이 사실입니까? 진실입니까?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왼쪽 뺨을 세게 때려 주십시요.
  악도낭자는 있는 힘을 다하여, 엄마 젖먹던 힘을 다하여 가실청년의 왼뺨을 철썩 갈겼다.

불이 번쩍 나고 별이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보이고 현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실청년은 얼른 오른뺨도 돌려 대었다.
   마저 때려 주십시오. 우리 집 가훈이 왼뺨을 맞거든 오른뺨도 마저 맞아라 입니다.
  오른뺨마저 번쩍 불이 나도록 맞은 가실청년이지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와 이리 좋노! 와 이리 좋노! 와~~~ 이리~~~ 좋노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신물(信物)을 교환하게 되었는데, 가실은 자신의 전재산이랄 수 있는 백마(白馬)를 맡기고,

악도낭자는 자신이 항상 품 속에 품고 다니던 애지중지하던 거울을 두쪽으로 깨서 반쪽씩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가실은 악도낭자에게 그날 부부지약(夫婦之約)으로서 동침을 요구하였으나 악도낭자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저는 이제 당신의 아내와 다름없습니다. 저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혼사는 인륜지대사라 하였는데, 우리가 변견(便犬)들처럼 마구 살을 섞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수자리를  마치고 돌아오신 후 날을 잡아 혼례를 올리십시다.
   악도낭자의 말이 장히 옳소이다. 내가 잠시의 욕망으로 악도낭자의 믿음을 더럽힐 뻔하였소이다.

미안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소이다. 용서하여 주시오.

그럼 낭자가 나의 지어미라는 의미에서 내가 그대 얼굴에 점을 하나 찍겠소이다.
  하더니 가실은 악도낭자의 바로 턱밑에 있는 점에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꼭꼭 찍어 누르면서 담과 같이 말하였으니…
   악도낭자! 세수하고 화장할 때마다, 거울에 비치는 이 점을 보고 날 생각해 주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려 주시오.

오! 나를 점찍어 주신 낭군님! 어디 계시옵니까? 속히 돌아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악도낭자는 세수하고 화장할 때마다 가실을 생각하며 사모의 정을 다져갔는데,

이런 연유로 남자가 여자를 자기 여자로 인정하는 의식을  점찍는다 라고 하는 말이 이때부터 생겨나게 되었다는 고향의 전설이 있더란다.

또 여자를 늑대같은 세상에 홀로 놔두고 군대를 가거나 외국을 가는 남정네들이 부득이하여 하초에 가죽도장을 못 찍고 가는 경우에

이렇게 얼굴에 점도장이라도 찍어 두고 가면 상당히 심리적 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피차간에.
 
  드디어 가실은 저 멀리 북쪽 변방 정곡지방으로 떠났다. 동네에서는 기특한 청년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악도낭자는 일구월심 가실이 주고 간 말을 기르며 수자리를 마치고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가실이 주고 간 말을 그의 분신으로 생각하고 쏟는 악도낭자의 정성은 보는이를 감동하게 하였다.

얼마나 애지중지하였는지 설령 사람은 굶어도 말(語) 못하는 말(馬)은 굶길 수 없다고 반드시 먹였다.

이렇게 말을 극진히 사랑하였으므로 동네에서는 마침내 악도를 애마부인(愛馬婦人)이라고 부르게 되었더라.
  그런 것이 후세로 내려오면서 애마부인의 뜻이 와전되어서

색깔 있는 여자,

야한 여자,

죽여주는 여자,

빛깔 짙은 여자,

끝내주는 여자, 몸
살나는 여자,

녹여주는 여자… 로 변질되어 버렸으니, 아아 원래는 그런 뜻이 결코 아니었음을 ?
 
  그러나 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실은 돌아오지 못하였다.

변방의 정세가 급박하여 수자리 복무기간이 곱배기로 연장되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설씨네는 초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제 악도는 22살에서 25살이 되고 어언 꺾어진 쉰이 된 것이다. 집에서는 악도보고 시집을 가라고 성화였다.

심지어는 데릴사위라도 좋으며 혼수는 일체 필요없고 오히려 모든 비용을 다 대겠으며 아버지까지 부양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 들어왔다. 악도의 아버지는 성화를 부리며 짜증을 내며 악도를 독촉하였다. 버티며 다시 2년이 흘렀다.
   악도야! 가실이 수자리를 떠난지 3년하고도 2년이 넘었어. 여직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둘 중 하나여.

변방에서 전쟁에 죽었거나 거기서 딴 여자 얻어서 살림채린 거여. 일찌감치 포기하고 시집갈 준비나 혀.
   아버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가실님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의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변방으로 나간 것입니다.

아직 전사통지서도 오잖았는데 죽은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40여년만에 돌아와서 대왕마마야 백성들이야 왼통 나라를 감격시킨 조씨도 있습니다.

그분의 생사가 확실해지면 아버님의 말씀을 좇겠나이다. 조금만 더 진득하게 기다려 주십시오.
   얘야! 여자 나이 27살이 적은 거냐? 여자는 25살이 환갑인겨. 27살이면 진갑까지 다 지난기여.

그러다 30살이 넘으면 고희를 치룬 거라니까.
  뭐! 날마다 청춘인지 아는가봐. 박혜숙이 한주아를 봐요. 얼굴 좀 반반하고 잘 나간다고 좋은 혼처 마다하다가 늙다리 처녀된 거 보라구.
메뚜기도 한철이고 똥파리도 한때라고 좋은 혼처가 날이면 날마다 들어 오는 게 아니에요, 기회다 싶으면 날래 가는 게 장땡이다.
   그래도 저는 기다려야만 됩니다. 그날 밤 가실님이 저의 몸을 원했을 때, 저는 저를 믿고 기다리라는 말로 달랬습니다.

그분은 저의 언약을 믿고 그냥 떠나 가셨습니다. 저는 그 점에서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느낍니다.

그는 저의 몸을 사랑한 게 아니라 진실로 저의 영혼을 사랑한 거라고 봅니다.
   아쭈! 느그들이 무슨 프라스틱 러브라고,  사랑과 영혼  주연할 참이냐?
   프라스틱 러브든, 비니루 러브든 전 기다리겠습니다.
   좋다! 그럼 딱 1년만 더 기다리는 거다. 우리도 기다릴 만큼 기다린 거여.

원래 약속은 3년만 기다리기로 한 거 아니냐? 1년 뒤에는 긴말 잔말말고 시집을 가는 거다. 알았지?
 
  그리하여 가실을 1년 더 기다리기로 하고 악도낭자는 혼사를 가까스로 연기시켜 놓곤

매일 밤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다 놓고 무사히 돌아오길 치성드렸다.

그것도 아버지가 알까봐 야반삼경에 도둑고양이 담넘듯 몰래 치성을 드린 것이다.
  자 그러면 설씨녀는 무엇이라고 치성을 드렸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후대에 길이 명문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설씨녀의 사랑 고축문이라는 것인데…

 

  … 역사를 아는 민족은 승리할 것이요
  … 선도를 아는 인종은 장수할 것이다
 
  설씨녀는 매일 밤 삼경이 되면 샘물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빌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하눌에는 상제님 땅에는 지신 산에는 산신 물에는 삼호신
  동네에는 도당신 집에는 성주신 일월성신에는 칠성님
  성인으론 노자님 장자님 공자님 맹자님 부처님 야소님
  한배검으론 단군님 수운님 해월님 의암님 증산님 광개토님 세종님 
  신라국 여율리의 방년 스물 일곱살 설씨녀는 비나이다…
  천지신명전에 비나이나 비나이다…
 
  천지혼합으로 제일입니다
  어떠한 것이 천지혼합이뇨
  하날과 땅이 붓튼 것이 혼합이요
  혼합한 후에 개벽이 제일입니다
  어떠한 것이 개벽이뇨
  하날과 따히 각각 갈나서 개벽입니다
  천지개벽이 어떳게 되였는고
  하날로부터 이슬 나리고
  따으로부터 물이슬이 소사나와서
  음양이 상통한즉
  천개는 자하고
  지개는 축하고
  인개는 인하니
  하날머리는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자방으로 열리고
  따머리는 을축년 을축월 을축일 을축시에
  축방으로 열리고
  사람머리는 병방으로
  병인년 병인월 병인일 병인시에 열리고
  즘생머리는 묘방으로
  정묘년 정묘월 정묘일 정묘시에 열이시고
  동방으로는 이염을 드르고
  서방으로는 촐리를 치고
  남북방으로 나래를 들으고
  천지개벽되었습니다
 
  산쥼에는 천하명산
  동해산 청태산 개골산 마구산
  쳬산 백산 져산 흑산 황산
  한대국 기경도 물골에는
  보칠산 교광산 달팔산이 삼신산이고
  보칠산엔 김신선
  교광산엔 윤신선
  달팔산엔 조신선
  각기 신령하옵고
  김신선 팔십목송(八十木頌, Eighty Trees Song) 고명하고
  윤신선 사십떡송(四十餠頌, Forty Cakes Song) 유명하고
  조신선 육십동송(六十洞頌, Sixty Villages Song) 저명하다
 
  동해왕광덕왕 서해왕광신룡왕
  남해광해룡왕 북해광환왕
  금세상을 굽어본즉 밤도 캄캄 낮도 캄캄
  인간이 동서남북을 모르고 가립을 못가린즉
  천하지대본은 농사이고
  국가백년대계는 교육인데
  인륜지대사 제일 소중한 게 무엇이뇨
  음양이 생겨날 제 부부윤기 생겨났으니
  이성지합하여 아들 낳고 딸 낳고 손자 낳고 손녀 낳아
  인종을 세세년년토록 전하옴이 우선 아니겠나
  머리 검은 짐승이 뭇짐승 중에
  구별되어 으뜸인 바는
  한 남편 한 아내 맹세하면
  검은 머리 흰머리 되고
  흰머리는 파뿌리가 되고
  파뿌리는 마늘뿌리가 되고
  마늘뿌리는 생강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함이니
  혼약을 약속하고
  배신하고 위반하는 년놈은
  년이고 놈이고 가릴 것 없이
  지옥 시왕전에서도 팔열지옥
  팔열지옥 중에서도 대초열지옥 끌려가서
  화냥년들은 冒구녘을 화젓가락 불에 달궈 지지고
  화랭이놈들은 졸대강일 작두날에 댕강댕강 아니겠나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이내낭군 평생낭군 사랑낭군 가실낭군
  하눌님은 굽어보시고
  지신님은 치켜보시고
  도당님은 둘러보시고
  칠성님은 내려보시고
  신선님은 살펴보시고
  용왕님은 널비보시어…
  마음 온전 몸뚱이 온전하여
  하루속히 하루빨리 어여어여 속속히 돌아오게 하시어
  합방하고 합궁하게 하시어서
  천정배필 천생연분 백년가약 이루게 하옵소서.
 
  아 이렇게 밤마다 빌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더라.
  그러나 악도낭자의 축원도 헛되이 1년이 꼴까닥 넘었는데도 가실랑은 돌아올 생각을 안하는 것이었으니…
  아아, 드디어 악도의 아버지는 건넌마을 최부자의 아들 최도령네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혼삿날까지 잡아버린 것이었다.
  드디어 혼삿날이 되었다. 밤새도록 울어 눈이 퉁퉁 부어 방탱이가 된 채로 악도낭자는 혼례식장에 나가게 되었는데,

차마 떨어지지 아니하는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마굿간으로 시선을 옮기니

그곳엔 가실랑이 맡기고 간 백마가 저도 슬픈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더라.

악도낭자는 설움이 북받쳐 그만 말대가리를 꼬옥 끌어 안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말아, 말아. 내 말아…
  내가 부득이 시집은 간다만 첫아이를 낳거들랑 꼬옥 가실님이 주고간 널 닮아서 말상을 한 아이를 낳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은 세상의 괴로운 문제를 해결해 주신 가실님을 기념하는 뜻에서 세상 세자와 문제 문자를 따서 세문이라 지을 것이다. 물론 성은 가실님의 성을 따서 이씨로 하고, 그리고 내 찢어지는 이 아픔을 후세에 길이 전하는 가객(歌客)으로 키우련다.

그럼 남들은 그러겠지. 말대가리가 노래도 잘 한다고…
 
  아아! 백마야 내 말을 새겨 들어라.
  내가 굉장히 어려운 말한거여.
  백마는 울고, 예식은 다가오고(White horse cry, Marriage come), 
  가실님은 일거후 소식 돈절하고(One go, Never news).
  무소식이 희소식(No news is good news.)이라고 하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가 없구나.
  죽었으면 죽었다고 속 시원히 말이나 하여 주지. 흑흑, 흐흑흑…
 
  마침내 악도낭자는 예식장으로 들어갔다.

천하미인 악도낭자가 시집간다는 소문에 온동네 사람은 물론 이웃동네에서까지 원정을 다 왔는데,

한대국 최고의 인기광대 종수와 라희의 예식에 모인 숫자는 개임(改任)이 안 되더라구.

그전에 신성남과 엄앵녀의 혼사 때도 엄청 모였더랬지. 얼마나 많이 모여서 사람들이 밀쳐댔으면 신부가 분수에 풍덩 빠져서 히히히…
 
  그 다음은 생략하자.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맘대로 상상해. 하여튼 배달족들은 구경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자고로 공짜 구경 중에서 첫째는 불구경이고 둘째는 물구경 셋째는 쌈구경이지. 불구경 중에서 으뜸은 종이공장 불난거드라고.

물구경은 칠팔월 장마에 한강에 초가집 떠내려 가는 게 최고고. 쌈구경은 처첩지전이 최고드라고.

본마누라하고 첩하고 머리 끄댕이 끄드는 거야. 그거 서부활극, 웨스턴 마카로니보다 쫄깃쫄깃하고 야리한 맛나데.

한수 더 뜨느라고 게다가 옷까지 찢어져 봐. 아이고오! 난 못 봐… 눈 감곤.
 
  그런데, 혼인 예식이라는 게 순서가 있는 법이여. 삼례라 하여, 전안례(奠雁禮), 교배례(交拜禮), 합근례(合  禮)라고 하는 건데.
  신랑이 신부측에 장가들기 위해서는 신부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가신(家神)인 성주신(成週神)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 거여.

만약 성주신의 허락도 없이 장가를 들면, 첫날밤에 급살을 맞든가 또는 얼마 못가서 횡사(橫死)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니까.

그러니까 신부집 성주신의 비위를 잘 맞춰야겠지.
 
  이 어려운 일을 누가 할 것인가? 고로 신랑측은 하늘에서 행복과 결혼을 주관하는 자미성(紫微星)에게 부탁하는 거여.

그러면 그 별이 기러기를 타고 하강을 해서 신랑보다 먼저 신부집에 들어가서 가신에게 허락을 받는 거지.

그런데 자미성이 누구여? 북극진군(北極眞君)아닌가? 일개 가신이 어찌할 것이여?

대부분 꼼짝 못하고  오 대단한 신랑이십니다. 합격. 우리집 신부를 드리고 말고요.  이렇게 허락하게 되지.
  이것이 전안례라고 일명 기러기바침 의식이라 하는 거여. 혼례식에 나무 기러기를 깎아가지고 가는 것은 이것을 상징하는 의식이지.

이것이 바로 운명적 만남이라는 거여.
 
  다음으로 내외가 되었으니 평생 존경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겠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교배례이다.

신부가 처음 신랑에게 큰절을 두번하면 신랑이 답례로 한번한다. 그러면 신부가 다시 두번 절하고 신랑이 한번 절하고.

왜 여잔 두번 하는데 남잔 한번 하느냐고 기분 나쁘다느니 불공평하다느니 하는 것들은 음양오행을 몰라서 그런 거다.
  신부는 여자이므로 음이니까 짝수로 2번 하는 것이고, 신랑은 양이니까 홀수로 1번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맞절을 함으로써 서로 종속적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 역사는 나의 뒷모습을 비추고
  … 선도는 나의 앞모습을 밝힌다

  
  육체적 결합과 자손의 번창을 뜻하는 의미로 한 술잔에 신랑 신부가 같이 입술을 대고 술을 마시는 거여. 이걸 합근례라고 하지.

신부가 주는 사기술잔을 신랑이 받아  고시레 하고 술을 땅에 조금 쏟고서 조금마신 후에 신부에게 주면 신부는 그 술을 마시고 내려놓는다.
  다음 신랑이 신부에게 술잔을 주면 신부가  고시레  후에 살짝 입에 대고 신랑에게 건네 주면 신랑이 마신다.

다음엔 표주박 술을 고시레 없이 교환한다. 물론 한잔 술을 둘이 마시는 것이다. 술은 기운이 되는 것이고, 술잔은 몸이 되는 것이다.

이를 합근례 또는 근배례라고 하는데 육체적인 만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혼인이라는 것은 우선 운명적 만남 두번째 인격적 만남, 세번째 육체적 만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가 온전히 이루어져야 올바른 결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집에서는 합근례에 대비하여 뜰안에다

어릴 때 표주박을 심어 가꾸었던 것이여.
  그런데 악도낭자가 맘에 없어 하는 혼인예식이니 성주신께서 허락하실 리가 있겠어.

자미성과 성주신이 잠시 기다려 보자고. 지금 홍인은 성사될 수 없는 혼인이지만, 오늘 혼인이 있긴 있겠으니까 하면서  

   성주신! 그래    결혼에 대한 금기(taboo)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예! 북극진군이시여! 궁합과 택일은 당연한 것이오니 이를 제외하고, 우선 음력 6월에는 결혼하지 않는 법이오며…
   혼례날 그릇을 깨면 불길하오며…
   혼례날은 비질을 하지 않는 법이며…
   혼례날 신랑이 나가는데 상주가 보면 부정을 타오며…
   혼례날 신랑이 들어오는데 길을 가로지르면 아니 되오며…
   상제는 혼례에 오지 않는 법이오며…
   혼례날 신랑신부가 눈물을 흘리면 재앙을 몰고 오는 것이며…
   신부상에는 복중인 여인은 참여하지 않는 것이옵니다.
 
  이렇게 두 신이 주고받고 있을 때, 드디어 혼인식은 시작되었다. 주례자의 지시에 따라 교배례가 행하여지려고 하는 순간,

난데없이 식장 안으로 몰골도 비참한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 하나가 뛰어들며 외치는 것이었다.
 
   안됩니다. 이 혼사는 무효입니다. 중지시켜 주세요.   아닌 밤 중에 홍두깨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며, 청천벽력이었다.
구경꾼들은 때아닌 춘삼이가 여기 왠일인가 하여 어리벙벙하였다.

최도령댁 하인들이 우루루 몰려오더니 거지의 멱살을 움켜잡고 냅다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여기가 어느 자리라고 거렁뱅이가 행패냐?  뱃때지가 고프면 구석자리에서 한 그릇 얻어먹고 꺼질 일이지…

이놈… 혼사에 훼살 놓으면 네거리에 끌어다 포살을 하여도 암말 못하는 국법을 모르느냐?
이 육실할 놈 같으니라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거지가 아닙니다. 나는 이미 악도낭자와 혼약한 몸입니다.

우리가 파약을 한 적이 없으므로 악도낭자는 나와 혼인해야 합니다.
   네 이놈! 뱃때지가 고파서 헛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렷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물증이라도 있느냐?
 
  혼례식장 주변에 때 아닌 혼란이 일어난 걸 보고 신랑신부는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악도낭자 자세히 바라보니 거지 중의 상거지 누구더냐?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그 아니냐? 설씨녀 주체할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달려가,

거지 몰골을 하고 돌아온 가실랑을 끌어 안았다.
 
  어느 틈엔지 마굿간에 있던 백마도 달려와서 가실랑의 땟국물 낀 옷에 대가리를 비비고 흥흥거리며 야단이다.

참 이래서 짐승이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거여. 짐승은 암만 세월이 흘러도 저를 길러준 주인을 알아 보거든.
   낭군님! 어찌 이리 흉한 몰골이 되시었습니까?

진정 가실랑이 틀림없으시다면 우리가 헤어질 때 피차에 나누었던 신물을 보여 주시옵소서…
  이에 그 사나이는 누덕누덕한 품속에 땟물 흐르는 손을 집어 넣어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것이었다.

최도령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과연 그 거지의 품에서 무엇이 나올 것인가. 눈알의 모든 촛점이 집중되는 가운데…

드디어 사나이가 가슴속에서 꺼낸 것은, 말 3마리가 그려진 마패였다. 동시에 사람들의 입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외침이 터져나왔다.
 
   아니 암행어사가 출도를 하다니.
  그러자 사나이는 침착하게 말했다.
   여러분! 나는 암행어사가 아닙니다.

이 삼마패(三馬牌)는 내가 수자리를 나가서 여섯해 동안 용감무쌍하게 선봉에 서서 싸운 공을 인정받아

조정에서 받은 태극마두훈장(太極馬頭勳章)입니다. 나는 기한을 마치고  고향에 고대 돌아올 수 있었으나

백제국과 더욱이 고구려국의 침략까지 심하여 그냥 군문을 떠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니면  지구의 평화를 누가 지키겠는가… 하는 심정에서 차일피일하다가 이리 늦어진 것입니다.

나는 사흘밤 사흘낮을 물 한모금 마시잖고 잠 한숨 자지않고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 여기 악도낭자가 주신 정표(情表)가 있소이다. 
하면서 4타9니에서 고이고이 간직하였던 거울 반쪽을 꺼내는 것이었다.
 
  왠일인지(?) 누리끼리하여 구리거울인가 하였으나 구리가 아닌 은거울, 은경(銀鏡)이었는데

가실랑이 무릎팍에 대고 잠시 문지르니까 대번에 삐까번쩍하고 빛이 나는데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오랜 세월 암모니아수에 쩔어서 그리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실낭자도 품에서 은경을 꺼내었다.

두 개의 거울을 맞추었더니, 신기하게도 딱 들어맞았다. 마치 바늘귀에 실 들어가듯, 자물쇠에 열쇠 박히듯… 신통하고 방통하여라.

가실과 악도낭자는 부합한 은경을 동시에 감싸안고 중얼거렸다.
   오! 우리 사랑 은경(銀鏡)이여!(Oh! My lovely silver mirror!)
   여러분은 우리 변함없는 사랑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 예식에 하객으로 참여하였던 사량부의 군장 박달공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언하였다.
   나는 우리 고을에 가실랑 같은 훌륭한 인물이 있다는데 찬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불쌍한 이웃을 위해 수자리를 대신 나갔으니 의리가 깊다 할 것이요,

곱배기로 복무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 않고 항상 선봉에서 싸웠으니 용맹하다 할 것이요,

한 여자를 위하여 이렇게 불원천리 먼 길을 목숨걸고 단 사흘길로 달려왔으니 그 사랑이 대단하다 할 것입니다.
 
  더욱이 전공이 높아 신라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마두훈장까지 수상한 바,

본인은 이번에 공석이 된 아척직(신라 외직 17등급)에 가실랑을 임명하겠소.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을 받아도 좋소이다.

이건 통치권의 차원에서 하는 일이니 아무도 씹덜 못할 줄 아오이다.
  그리고 악도낭자는, 아버지를 극진히 섬겼으므로 그 효행과 한 낭군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따랐으므로

그 절개를 조정에 품신하여 효자비와 열녀비를 겹치기로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의 환성이 천지를 진동하였다.
   와! 역시 우리의 군장, 박달공이 최고다.    박달공이가 최고라  하는 이 말.

이 말이 훗날 떡방아를 찧는 홍두깨는 박달나무로 만든 공이가 최고품이란 인정을 받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즉 목제품 중에서 박달나무를 최고로 치는 한대국의 습속은 이때부터 생긴 것이다.

또한 박달공이 아척직 공석에 가실랑을 임명한 게 한대국 낙하산 인사의 시초가 되는 기록도 아울러 세운 것이다.
 
  사세가 이렇게 되어가자 최도령이 썩 나서며…
   나도 한마디 합시다. 나도 쌍방울 달린 사내로서 이렇게 좋은 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왕 시작한 혼례식이니 이 혼례식의 신랑자리를 가실랑에게 기꺼이 양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혼인식을 신랑 가실랑, 신부 악도낭자로 해서 새로 올리십시다.
  그러자 박달공이 다시 일어서며 제의하였다.
   그럼 이리합시다. 내게 과년한 딸이 하나 있소이다. 금년 26인데 지혜롭고 어질라는 의미에서 지현이라 이름 지었소이다.

최도령과 내딸을 짝지워 주도록 합시다. 아주 여기서 합동결혼식을 올리기로 합시다.
  지현랑. 박달공의 장녀. 어릴 때부터 지혜롭고 마음이 어질어서 주변의 칭찬을 한몸에 받던 처녀.

박달공과 최부자댁이 혼척을 맺는다면 그건 중앙관리와 지방 토호가 최초로 결합하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와! 와! 경사났네 경사났어.
     신라국 율리말에 경사났네.
     가실랑과 악도낭자 연분 맺고.
     최부자댁과 박달공네 사돈 맺네.
 
  그리하여 이후로 신라에서는 남녀간에 사랑의 신표로 반드시 은거울(銀鏡)을 주고 받았으며,

그러다가 어느 쪽이던 맘이 변하면 거울을 버리었는데, 이를 파경(破鏡)이라 하였으니,

오늘날의 부부간에 헤어지는 것을 뜻하는 말의 어원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유고치로야! 이 혼사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무엇이냐?
   예! 그건 설씨녀가 가실랑에게 준 거울이었습니다.
   그렇다. 거울이 매체가 되어 두 사람은 맺어질 수 있었느니라.

그러기에 일찍이 고려국의 대문장가인 이규보(李奎報)는 <경설 鏡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느니라.
 
      거울이란 얼굴을 보는 것이다.

얼굴에 불길한 것이 묻지나 않았는가 또는 얼굴빛이 평화스럽지 못하지나 않은가 하는 걸 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는 거울을 대할 적마다 그 거울의 맑은 본성을 취해 얼굴에 비치는 거울처럼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하여 세상을 비추었던 것이다   
 이는 거울을 나눔은 곧 자신의 깨끗한 마음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라고 본 것이니라.
   사부님, 그러면 후대에 가서 암행어사의 증표로 마패가 쓰이게 된 것은 가실랑이

대중 앞에서 꺼내 든 태극마두훈장이 그 효시(嚆矢)가 된 것이옵니까?
   하하하, 그러하니라. 이제 유고치로도 제법 역사에 대한 안목이 들리는 듯 싶구나.  

'풍류, 술, 멋'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랑과 도미의 사랑  (0) 2008.09.01
동의보감에서  (0) 2008.09.01
하늘에서 귀향온 주선 이백  (0) 2008.08.31
갈매기의 꿈  (0) 2008.08.29
동양의 술멋  (0) 2008.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