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아랑과 도미의 사랑

醉月 2008. 9. 1. 08:52

  … 역사를 바로 세워 나라를 향도하고
  … 선도를 널리 알려 민족을 인도한다
 사람의 머리는 남녀불문하고 새카맣게 검어야 하고 윤기가 자르르하게 흘러야 귀격(貴格)이다.

머리카락은 그 사람의 타고난 건강을 뜻하기 때문에 검고 윤기가 흐르는 사람은 건강하고 강인한 체질을 타고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두발흑자(頭髮黑者)는 귀격이란 말이 있는 것이다. 까만 머리칼에 곱슬을 겸하면 정력이 아주 세다고 할 수 있다.

인체의 영양상태가 가장 민감하게 나타나는 곳이 머리칼이다.

그래서 건강이 나쁘거나 몸의 상태가 나쁠 때는 머리칼이 부시시해지는 법이다.

죽음에 임박해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은 기름기가 하나도 없이 버석버석해서 헝클어진 모양만 보고서도 죽음이 임박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썹은 영혼의 우상으로서 감정을 나타낸다. 그래서 눈썹도 까딱하지 않는다란 말은 감정의 변화가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눈썹은 보기 좋게 나야 하고 그 빛이 아름다워야 한다.

아울러 눈썹은 거칠잖고 가지런하고 가급적 길게 뻗어 눈꼬리를 마주할 만큼은 나야귀격이라 할 수 있고 총명하다고 할 수가 있다.

눈썹이 거꾸로 난 사람은 역모(逆毛)라 하여 형매운(兄妹運)은 없으나 장수가 될 운수이다. 눈썹이 보기 좋게 난 사람은

운명이 순탄하게 전개되지만 눈썹이 너무 조금 돋아나고 길이가 짧은 사람은 성격이 거칠고 운명 또한 순탄하지 못한 법이다.
 
  남자는 왼눈썹이 형이나 누님 즉 손위 형제를 나타내고 오른눈썹이 아우나 누이 즉 손아래 형제를 나타낸다. 여자는 그 반대이다.

털의 숱이 적거나 한 경우에는 그 해당 부위의 형매의 인연이 엷은 것을 뜻한다. 눈썹이 곱고 눈에 비하여 길면 형매운이 좋은 것이다.

눈의 길이에 비해서 조금이라도 눈썹이 길면 형매의 수효도 많은 것이다.

길긴 하지만 눈썹이 중도에서 절단되었으면 형제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형제가 상할 상이다.

초생달처럼 전체적인 모양이 아름답거나, 가느다란 털이 품위있고 맵시좋게 밀생한 눈썹의 소유자는

형제들도 성공하고 자신도 성공할 운세로다.
 
  희정대왕의 경우 눈썹의 길이가 한치도 되지 않았으니, 결단력은 단호하다 할 수 있겠으나 운세가 거친 것이 많고 순탄하지 못하리라.

더구나 그의 성명 희정의 熙에는 뱀띠(巳) 신하(臣)에게 네발(….)의 저격을 받아 죽으리라는 운세가 암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니

무릇 희정대왕은 뱀띠사주의 신하를 조심하여야 하리로다.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천기를 누설하는 것이어서 함부로 발설하기 심히 두렵도다.

이를 어기는 것은 하늘에는 천기를 누설하는 죄를 범함이요, 세상에는 혹세무민한다는 지탄을 받기 십상이로다.

고로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고 했으며, 속담에 주둥이 닥치는 게 상책이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나 예언자가 조심할 것은 자고로 자신의 신통력을 민족의 장래를 개척하고 국운을 여는데 쓸 일이지

사사로이 개인의 영달이나 부귀나 재물을 취하는데 쓰지 말일이로다.   명심하고 다시 명심할 일이로다. 
  두 눈썹 사이가 넓으면 마음이 넓다고 하겠으나 지나치게 넓으면 뻔뻔스러워서 남의 이목에 구애되지 않고 큰 일을 마구 저지를 상이다.
만약 여자가 이러한 상을 갖고 있으면 이를 여전부탈지상이라 하여 남자의 권위까지 여자가 다 차지할 팔자로다.

심하면 과부가 될 상이로다.
  반대로 미간이 너무 좁아 눈썹이 맞닿을 정도인 사람은 속이 좁고 편견이 있는 사람이다.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부족하여 다른 사람들과 융화를 못하고 고생을 자초하는 격이라 할 수 있다.
  미간 사이에 검은 사마귀가 있으면 남자는 관사점이라 하여 관록을 먹게 되고, 여자는 아부점이라 하여 결혼 후에 과부가 되던가

그렇잖을 경우 가정에만 만족하지 못고 사회활동을 남편 못지 않게 하여 오히려 남자가 가정을 돌보아야 하는 경우가 많도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대국 화영골의 여사당(女寺堂) 현태실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미인의 눈썹에는 어떤 것이 있나 하는 것을 알고 넘어가기로 하자. 미인의 눈썹을 아미(蛾眉)라고 하는데…
  아미에는 원앙미(鴛鴦眉) 소산미(小山眉) 오악미(五嶽眉) 삼봉미(三峰眉) 수주미(垂珠眉) 분초미(分梢眉) 월릉미(月陵眉) 함연미(涵煙眉)
불운미(拂雲眉) 도훈미(到暈眉)를 아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하여 십려미(十麗眉)라고 통칭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잠시 십려미인의 이야기를 섭렵하고 다음 이야기를 듣기로 하자.

미녀 이야기란 단순히 여자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미녀에 얽힌 야한 사건과 이상한 운명…

이를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여성을 모독하는 것이리라.
  
   역사상으로 볼 때 원앙미를 소유했던 미녀로는 백제국 5대 임금인 개루왕(蓋婁王) 시절 도미의 아내였던 아랑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랑은 백제 제일의 미녀였으므로 개루왕의 교묘한 유혹을 받았으나 목숨을 걸고 이에 저항하였습니다.
  사서에 보면  개루왕은 시조인 온조의 증손자로서 성질이 공손하고 조행이 있었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잖은 강아지가 먼저 부뚜막에 오른다고 사관의 기록과는 전혀 달리 그에게는 음일방종(淫逸放縱)하고

잔학무도한 성깔이 내면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소위 권위주의라고 할까요?
   한대국 제 3왕정 말기의 희정대왕하고 같은 식이군요. 그때도  큰나들이니  작은나들이니 하여 동정궁에다

모대루 가인 사당패들을 뽑아다 놓고 밤마다 연회를 베풀었다고 하더이다.
   그랬지요. 그 일을 도맡은 것이 내금위였습니다. 결국 그런 짓거리가 왕조의 멸망을 가져오고 말았지요.

권력적으로 부패한 정권은 도덕적으로도 타락할 수밖에 없다 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 할 것입니다.
   결국 희정대왕은 내금위장이었던 거철(車徹)대감하고 인생을 철거하게 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지요.
 
  개루왕은 절대왕권을 악용하여 도미-아랑부부를 궁궐에 불러들여 야욕을 채우려 하였다.

먼저 도미에겐 아내를 포기하고 양도하는 댓가로 높은 지위와 출세를 제시한다.

그러나 도미는 부귀영화 때문에 조강지처를 배신할 수는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개루왕은 어리석게도 혼자서 의리를 지키려 하느냐 계집은 제가 유리할듯 싶으면 서방이라도 배신하는게 계집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이에 도미는 자기 처는 절대 그렇잖다고 반박한다.
 
  왕은 그럴까? 얼굴 잘난 것들 치고 맘씨 예쁜 것들이 없는 법이고 자고로 얼굴 반반한 것들이 꼭 얼굴 값을 하는 법이라 했다.

도미는 세상에 자기가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자기 아내 아랑이라고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개루왕은 조소를 흘리며 내가 여태껏 내노라 하는 계집들을 골방에 데려다 놓고 각종 패물과 고급 옷감을 주며 유혹했을 때
제 스스로 옷을 벗잖은 계집이 없었노라 하면서 내기를 해도 자신 있느냐고 다그쳤다.

도미는 자존심 반 자신감 반으로 개루왕과 죽음의 내기를 걸었다.

아랑의 정조를 꺾으면 도미의 눈을 뽑고, 못 꺾으면 상금을 주어 무죄방면하겠노라고.
  교활한 개루왕은 이들 부부를 쉽사리 꺾을 수 없다 보고 일종의 속임수를 쓰기로 하고 각개격파로 들어갔다.

도미는 궁궐에 붙잡아 두고 아랑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선 아랑을 찾아가서는 정조를 바치면 남편 도미를 살려주고 아니면 죽이겠노라고 협박하였다.
 
  이에 아랑은 심사숙고하다가 왕의 야욕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을 알고 왕과 동침하겠노라고 약조를 하여 방심하게 만든다.

왕은 약조의 증거로 아랑에게 도미가 끼워 준 반지를 증거로 달라고 한다.

그 반지를 도미에게 가져가서 아랑이 몸을 허락한 증거라고 제시하고는 도미의 양눈을 화젓가락으로 뽑아 버린다.
  아아, 도미는 억울하게 눈을 잃었는데, 이것이 다 마누라가 반반한 탓이었으니

속모르는 남들은 말하기 좋아 마누라 잘 둔 탓이라고 빈정거렸더라.

아랑의 계교로 도미는 눈은 잃었지만, 목숨을 부지한 채 욱리하 강변에 버려지게 되는데…
 
  그날 밤 기분이 좋아서 술까지 얼근하게 한잔 걸치고 침실에 들어 온 개루왕에게 아랑은 더욱 교태를 부리며 술을 권하여

인사불성을 만들고, 자기 대신 몸종 은월이를 시침케 한 다음 자신은 집을 빠져나가 남편을 버렸다는 욱리하 강변으로 달려간 것이다.
  그리고, 멀리서 흘러오는 남편 도미의 배를 발견하고 -이를 하늘이 베푼 기적이라고 함- 같이 배를 타고 고구려로 망명하였다.

고요히 흘러가는 밤의 강물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구슬프게 노래하였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어쪽 나라로오…
 
  이로부터 죽음을 초월한 부부간의 처절한 사랑을 원앙새 사랑이라고 부르는 연유는 아랑의 눈썹 모양이

원앙미였던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눈은 멀고 강변에 홀로 버려진 도미가 개루왕의 품 안에서 갖은 호사를 누리고 있을 사랑하는 아내, 잊을 수 없는 아내,

믿어야만 하는 아내, 아랑을 그리워하며 피눈물을 흘리며 부른 노래가  아랑의 노래 였는데

이것이 후세에 구전하여  아리랑 이 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그 가사는 한대국 사람이라면 모르면 수파이(囚派伊)라 할 정도로 한대국을 대표하는 한서린 민요이다.

이  아랑의 노래 에 나타난 이별의 정한이 고려시대로 오면  가시리 로 접맥되고, 구한말로 오면 드디어  아리랑 으로 정착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대국에 아리랑이 오랜 세월과 여러 지방을 거치면서 수백종이 생겨난 바,

그 중에서도 강원도 정선지방의 아리랑이 특히 유명한데 그 중 한 곡조를 소개하면

신승근(辛承根)의 <정선 아라리> 연작이 가장 빼어나더라.
  
     정선 아라리 1
   靑乭을 지고 일어 서다가
   그만 흘리고만 초록피의.
   시앙철 지붕을 밟고 가는
   자욱한 머리칼의. 바람의.
   아우라지 백사장에 머리채를 쏟으며,
   아아, 달빛에 가슴 씰리는
   패랭이 꽃 하나야.
  

     정선 아라리 2
    뼈가 있다면
   그 뼈로 말하라
   죽은 뒤 들것에는 흔들리는 달빛. 물풀처럼 우리도 흔들린다.
   자갈밭에 물 묻은 그림자를 디리 밀며, 아름답다.
   무덤 안에 스며드는 당신의 흐린 얼굴, 아름답다.
   별들이 몇 개 하늘벽을 뜯으며, 아름답다.
   바람이 지우는 들판의 집, 아름답다.
   푸른 마타리 꽃 하나가 허리를 접고, 어디메 어디메 불려가는 곳, 
   오, 아름답다.
   뼈가 있으면
   그 뼈로 말하라
   아우라지 강가에서 피는 여자야.
    
     정선 아라리 3
    궁그는 바람만이 남는다.
   바람의 뼈가 있다면
   그 뼈의 잔등을 할키는
   삽소리만 남는다.
   몇 량의 적탄차 바퀴 밑에
   눕는 회오리
   달빛  한 오리
   부서지는 벌판 끝에.
   깜박이는 사내 하나
   虛空을 퍼내는 삽소리 둘.
  
     정선 아라리 4
   아우라지 강뚝에 와서
   굽이치는 물이 되어 휘돌아보라
   가슴부터 하얀 자갈밭에 와서
   맨발의 바람되어 머물러 보라
   슬픔이 풀어져 안기는 산덜미로
   그리움만 자욱하게 걸리는 숲으로
   기우뚱 기우뚱 떠메가는 바람소리
   하늘소리, 땅소리, 물소리를 들어서
   검은 산 그리메에 처박아 보라.
    
     정선 아라리 5
   가슴이 허옇게 타는 강물을 보았습니다.
   흰 빛을 깨치며 뒤집히는 겨울비를 처음 보았습니다.
   문득 새 한 마리 마파람을 가르며 물갈나무 큰 가지에 걸리는 걸  보았습니다.
   뒤집히는 들판 위에 검은 산 하나가 의연히 의연히 서 있는 걸 보았습니다.
    
     정선 아라리 6
     바람 늪에 누어서 달무리를 따라 가는 새털구름 한 장을 바라봅니다.
   洞口밖을 지나서 강뚝에 다다르면 洞口 안 바람 숲이 강뚝에 와 머물다가 빠지는 달무리를 잡고 강물 위에 잠깁니다.
   새털구름 한 장 위에 지느러미가 잠깁니다. 하늘 바닥, 물 바닥, 구름인지 바람인지. 돌틈에서 깨어지는 바람은 새빨갛고.


  이 시에서 보면  아우라지 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아우라지는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한강 상류에 있는 나루터 이름이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이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양쪽 마을에 살던 처녀와 총각이 서로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사랑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런데 이 이별의 애절한 정한(情恨)이 고려에서는  가시리 로, 게다국의 식민시대에서는 소월의  진달래꽃 으로 표출되고,

한대국에 와서는 김은중의  이별 환상곡 으로 종착되는 것이다.
   

   김은중의  이별환상곡 6
   그대가 사라진 길쪽으로
   미처 내리지 못했던 어둠
   몇 조각 흩어져 내리고 있다
   떨리고 질린 채 말 못하고
   앉았던 그리움들이 하나 둘씩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그때 허공 속을 달려 온 암담함
   한쪽에서 또 다른 쪽으로 스쳐가며
   그대 멀어지는 허벅지에 걸리는 불빛
   가라리가 네히지 못하는 노래여


   소산미를 소유했던 대표적인 여인은 한대국 만승대왕의 제1왕정 시절 여간자(女間者)로 유명했던 김소산(金小山)입니다.

그는 기생으로 위장하고 고급요정을 경영하면서 정계를 비롯한 각계의 거물들과교유하며 고급정보를 빼내어서

화공국의 성일대제에게 송신하였던 것입니다.
   하, 그럼 한대국판 마타하리(魔墮瑕狸-마스럽게 타락한 하자 많은여우) 사건이랄 수 있겠군요?
   아니요, 한대국판 마타하리는 따로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누구입니까?
   김수임입니다. 이 여자의 이야기는 2부에서 자세히 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김소산, 그녀가 뭇 사내들을 휘어잡았던 것은 그녀의 빼어난 미모도 미모려니와

아름다운 소산미의 눈썹이 단단히 큰 몫을 했던 것입니다.

'풍류, 술, 멋'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후백 대감의 인재 키우기  (0) 2008.09.02
술이 사람을 삼킨다  (0) 2008.09.02
동의보감에서  (0) 2008.09.01
설씨녀와 가실랑의 사랑  (0) 2008.08.31
하늘에서 귀향온 주선 이백  (0) 200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