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해군력 비교
동으로 출간한 바 있다. <편집자>
국가 간 해군력을 비교하는 작업은 일견 별로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전투함 연감의 최신 개정판을 펼쳐들고 국가별 차트의 함선 수를 한눈에 비교하면 되는 것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 숫자 세기 방식은 곧바로 현실의 한계에 부딪힌다. 예를 들어보자. 통계상으로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은 그 규모가 미 해군의 2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중국과의 해상충돌을 피해야 할 텐데, 이는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결론이 아닌가.
해군력 측정을 위한 계산법이 불분명하다 보니 전문가들이 내놓는 결과도 충격적일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곤 한다. 2010년 8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국제전략연구소(IISS) 보고서, ‘중국이 미국보다 현재 더 많은 전함 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있는 IISS의 그래프는 중국 해군이 주요 전투단위 숫자에서 미국 해군을 앞질렀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2010년 5월 해군협회 연설을 통해 “현재 미 해군이 운용하고 있는 항공모함은 11척에 달한다”면서 “미 전투함대의 총 배수량은 미국 다음의 13개 국가 해군 함대 총 배수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은 모두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IISS가 내놓은 수치나 게이츠 장관의 접근법은 모두 전체 그림의 일부분일 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누구도 수학적인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고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지 조차 분명치 않다. 문제는 이렇듯 부분적인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 빈약한 전략으로 이어지곤 한다는 점이다.
크기가 아니라 집중력이다
숫자와 통계는 나름 의미를 지니지만, 문서상으로 나타나는 해군 규모는 많은 부분 실상이 은폐되어 있다. 군사력 총계를 일렬로 비교하는 것은, 적대 국가들이 동일한 작전수행을 위해서 똑같은 수의 전투기와 군함, 무기를 만들고, 각자의 모든 병력을 전투에 투입하며, 이러한 가상 전투가 각자의 본 기지로부터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바다 한가운데서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나 유용하다. 이러한 가정은 추상적인 공상일 뿐이다. 전투가 본토의 지원 권역을 벗어나 벌어지는 경우란 거의 없으며, 함대가 전투를 벌이는 전장상황 또한 지리적인 여건에 크게 좌우된다. 즉 실제 전투에서 대칭적인 해군전력이 만나는 경우란 없다는 것이다.
해군력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작전·전략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투력을 적시에 한꺼번에 투입할 수 있느냐다. 여기에는 지리적 요건은 물론 기지나 병참에 대한 근접성과 그 질적인 수준, 공군력과 지상 화력지원의 가능성, 전장의 물리적·문화적 지형을 숙지하고 있느냐 여부 등이 포함된다. 가장 측정하기 어려운 요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귀중한 전함과 전투기, 병력을 기꺼이 전장에 투입하겠다는 국가의 결의와 의지가 있다.
이러한 특성을 물리학에 빗대 설명할 수도 있겠다. 국민과 정부의 정치적 결단이 함대의 ‘잠재적 에너지’를 지도상의 특정 위치에 ‘동력 에너지’로 전환해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해 정책결정자들은 이러한 잠재력을 100% 발휘하도록 만들기 어렵다. 가장 강력한 해군력은, 주어진 상황에서 상대가 전투에 투입할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패배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동력 에너지를 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해군력이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 해군력 측정을 위한 기존 척도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기로 하자. 우선 각국이 보유한 해군 플랫폼의 숫자로 비교하는 경우다. 군사전문 웹사이트 ‘글로벌시큐리티’에 따르면 중국 해군이 보유한 군함은 전 기종을 통틀어 1045척에 달한다. 반면 해군함정등록부(NVR)에 따르면 미 해군이 보유한 전함의 수는 287척으로 그중 257척이 운항 중이고 곧바로 전투 배치가 가능하다. 여기에 미 해상수송사령부 소속의 민간인 운항 비전투함 163척(이 중 51척은 제한된 운항능력만을 갖고 있다)을 합하면 미 정부가 운용할 수 있는 배는 총 450척이 된다. 이는 해안경비선이나 해경 소속 선박을 제외한 숫자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중국 해군의 규모나 힘이 미 해군의 2배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중국 해군의 통계치에는 감시정이나 해양조사선, 예인선은 물론 실제 대함전(fleet encounter)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구식 나룻배들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 해군이 보유한 일부 함선도 마찬가지다. 경제난에 따른 예산 감축으로 미 해군이 속 빈 강정 신세로 전락했던 1970년대에 건조된 함정들, 즉 올리버해저드페리급(級) 유도미사일 프리깃 같은 플랫폼도 숫자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당시 제한된 예산 속에서 함정 숫자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비싸지 않은 군함을 대량으로 구매하자는 결론이 나왔고, 이러한 정책이 전투력 저하로 이어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단순통계를 믿을 수 없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미 해군의 훈련 및 배치방식에 따르면 전체 함대의 3분의 1은 해외에 배치되고, 또 다른 3분의 1은 훈련이나 정비 라인에 투입되며, 나머지 3분의 1은 장기수리에 들어가 아예 전투수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따라서 개념상으로 사령관이 운용할 수 있는 해군 자산은 전체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는다.
게이츠 장관이 근거로 든 총톤수 비교는 어떨까. 이 역시 함대의 전투력를 종합적으로 측정하는 데에 믿을 만한 기준이 못 된다. 덩치가 큰 전투함일수록 더 많은 무기를 실을 수 있고, 더욱 범위가 넓은 레이더와 전투시스템을 탑재할 수 있으며, 연료 적재량이 커져 항해거리도 멀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살펴보면 이러한 접근방식이 가진 한계가 단번에 눈에 들어온다. 한때 최고의 수상 전투함으로 불린 아이오와급 전투함(지금은 생산되지 않음)은 배수량이 5만8000t에 달하는 반면 현재의 DDG-51 알레이버크급 유도미사일 구축함은 9494t에 불과하다. 그러나 두 전투함이 가상전투를 벌일 경우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은 아이오와급 전투함의 사정거리 밖에서 장거리 대함 유도미사일을 발사해 이 전투함의 엄청난 화력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 장담컨대 승리는 언제나 알레이버크급에 돌아갈 것이다.
더욱이 정치지도자들이나 해군 지휘관들은 전함의 덩치가 클수록 이를 실전에 투입하기를 꺼리는 묘한 특성을 갖고 있다. 러일전쟁의 경우를 보자.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끄는 일본의 연합함대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가 태평양 소함대를 출정시켰다면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게 훨씬 많았겠지만, 당시 러시아 함대는 그냥 항구에 머물렀다. 해당 함대에 걸려 있는 자본과 국가적 명예가 크면 클수록 실제로 전투에 투입될 가능성은 줄어든다. 단호한 정치적·군사적 리더십이 부재할 경우 대형 함대는 쓸모없는 자산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양국 해군의 병력 숫자로 접근한다면 답이 나올까. 미 해군 소속 장병은 총 32만9000명이며 해병대 소속 장병은 20만2000명으로 중국 해군 병력의 2배에 달한다. 대규모 함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해병대는 강력한 자체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언뜻 이러한 비교가 타당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병력규모 또한 작전상황에 따라 크게 영향 받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대함전 중에 지상작전이 전개되지 않는 한 해병대원들은 별다른 기여를 할 수 없다. 오히려 수송수단이 취약한 경우에는 표적으로 전락하고 만다. 항공모함 비행단의 해병대 소속 조종사들만이 적군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총톤수나 병력이 해군력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동일한 작전 수행을 위해 두 개 함대가 조직되고 총체적으로 한 함대가 다른 함대를 대체한다고 가정한다면 총톤수가 더 많은 함대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덩치가 큰 배가 더 많은 화력을 장착할 수 있고, 연료 적재량도 많고, 방어시스템도 한층 개선된다. 더 넓은 지역에서 더 오랜 기간 작전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이츠 장관이 해군협회 연설을 통해 설명하려 했던 점은 바로 이 부분인 듯하다. 그러나 이는 세계 각국의 모든 해군 함대가 미 해군과 동일한 목적과 작전과제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는 경우에나 맞는 말이다. 기껏해야 신빙성이 결여된 가정이고 더욱이 중국 상황에는 전혀 맞지 않다.
알프레드 마한의 가르침
해양전략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지만 전략이 실제 펼쳐지는 환경은 고정돼 있다. 지리적 여건에 구애받는 것이다. 실제 전투가 벌어질 장소가 어디인지의 문제가 해군력을 측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 세계를 작전지역으로 삼고 있는 미 해군 함대들은 특정 작전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한곳에 모든 해군 자산을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반면 중국 해군과 같은 지역함대(regional fleet)는 모든 병력을 자국 연해에 투입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덩치가 작은 함대라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해군전략가 알프레드 마한은 1890년대에 이미 이 점을 지적했고, 아메리카 대륙 진출을 꾀하는 유럽의 초대형 함단에 맞서 카리브해와 걸프만을 장악할 수 있는 해군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국익이 걸려 있는 주요 항로를 보호하기 위해 해군이 ‘카리브해나 걸프만에서 맞닥뜨리게 될 최대의 함대와 싸워 승리할 가능성이 상당히 큰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역설이었다. 주목할 것은 그가 영국 왕실함대나 독일 대양함대의 전체 규모를 능가하는 해군력을 보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이 필요했던 것은 영해 내에서 우위를 점하는 지역해군이었다. 즉 파나마 운하로 이어지는 주요 해로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만 승리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마한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자국의 해군력 확충 범위를 황해와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 근해에 국한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국익이 걸려 있는 해역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큰 적대적 군사행위를 물리칠 만한 수준의 병력을 보유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나 일본과 불필요한 군비경쟁을 벌일 까닭이 없다. 중국 해군이 스스로의 전투범위를 연안에 배치된 항공기나 지대함 미사일의 사정거리 이내로 규정하는 한, 이들 무기는 모두 중국 해군력의 주요요소가 된다. 그야말로 적시적소에 투입할 수 있는 실제 군사력인 셈이다.
‘땅 위의 해군력’이 무서운 이유
미군 핵 잠수함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우수한 전쟁수행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해군이 축적해온 잠수함대는 규모 면에서도 미국보다 월등할뿐더러 향후 미중 간 해상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중국 근해 작전을 위해 최적화돼 있다. 수심이 낮고 해저가 울퉁불퉁한 중국 연해에서 미 해군의 공격함들이 중국의 디젤 잠수함들과 맞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또한 중국 근해에서는 허베이급 미사일을 장착한 스텔스 함정의 공격력이 배가된다. 중국의 지대함 탄도미사일 공격을 우려해 사정거리 안으로 진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미국이 보유한 막강한 전력의 항공모함이나 미사일 장착 구축함이 아무 쓸모가 없다. 전장에 투입되지 못하는 함대는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이제 결론을 내릴 차례다. 해군력을 비교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양국의 함대가 긴급사태시 해당 수역에 투입할 수 있는 전투력을 모두 측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장비와 병력의 규모뿐 아니라, 지리적 환경이나 각국 정부와 국민의 정치적 결단력, 주변국과 잠재적 동맹국의 공조 여부까지 포함돼야 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양적인 비교에 집착하는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실체적 물리력이 각자의 목적달성을 위해 충돌하는 실제의 전쟁은 대개 이러한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웹사이트는 http://globalasia.or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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