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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하는 만큼 삶은 만족스러워진다

醉月 2009. 4. 10. 09:43

망각하는 만큼 삶은 만족스러워진다  

기억력이 감퇴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 金珽運 명지大 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교수, 現 일본 와세다大 특별연구원
<영화 <쿼바디스>에서 열연하는 데보라 카(왼쪽).>

사내들은 자라면서 어느 때가 되면 여자가 아름답고, 때로는 너무나 가슴 설레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사내들은 철없이 헤매기 시작한다. 그 헤맴은 죽을 때까지 간다. 그 헤맴의 실체는 도무지 스스로는 어쩌지 못하는 에로티시즘이다. 대부분의 사내들에게 그 대상은 연상이다. 여자 담임선생님일 수도 있고, 이웃집 누나일 수도 있다. 내게는 미국 여배우 ‘데보라 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학교에서 단체관람 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데보라 카가 콜로세움 한가운데로 끌려 나온다. 그때 그녀가 입었던 하늘거리는 치마를 보며, 난 난생 처음 아름다움에 흥분했다. 그녀의 노예가 사자와 싸우는 처절한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웠지만 난 그 뒤에 묶여 있던 데보라 카만 정신없이 바라봤다. 몸매의 실루엣이 그대로 다 드러나는 그녀의 하늘색 치마는 바람에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장면을 나는 지금도 너무나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나는 하늘거리는 주름치마를 보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다 데보라 카 때문이다. 요즘 같은 봄날, 어쩌다 주름치마에 망사스타킹까지 신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게 되는 날에는 아주 그냥 주저앉을 지경이 된다.
 
  좀 더 자세히 스스로를 분석해 보면, 주름치마에 내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은 단순히 데보라 카 때문만은 아니다. 내 혼미함에는 보다 깊은 심층심리학적 원인이 있다. 그날, 그 영화를 보던 날, 난 에로티시즘을 처음 경험함과 아울러 죽음에 대한 엄청난 공포도 생전 처음 느껴야 했다.
 
  당시 영화를 보기 전에 모든 관람객은 상당히 긴 시간 정부홍보 프로그램을 봐야만 했다. ‘대한뉴스’라는 것도 했다. 이어지는 국민계몽 프로그램도 봐야 했다. ‘새마을운동’ 캠페인부터 ‘쥐를 잡자’와 같은 캠페인 같은 것들이다. 그날, 영화 <쿼바디스>를 기다리며 내가 봐야 했던 홍보영화는 ‘연탄가스’의 위험에 관한 캠페인이었다.
 
 
  연탄가스 방지 캠페인
 
  당시 살던 집에서 연탄가스 때문에 몇 번이나 동치미 국물을 마셔야 했던 나는 연탄가스의 위험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홍보영화는 내가 막연히 생각하던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연탄가스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과 슬퍼하며 오열하는 가족의 고통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아주 공포스러웠다. ‘우리 식구 중 누군가가 연탄가스로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렸다. 그 이후로 내겐 연탄가스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가스는 엄청나게 무서운 것이라는 공포감이 무의식 한가운데 아주 깊이 자리잡게 된다.
 
  지금도 난 가스가 암보다 무섭다. 당시 정부 캠페인 담당자는 정말 성공적으로 자신의 업무를 완벽하게 완수했다. 한 개인에게 지워지지 않는 공포심을 심어줄 정도로 가스의 위험성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 공포는 지금까지도 날 괴롭히고 있다. 가스 밸브 잠그기에 대한 강박증이다. 어쩌다 집에 혼자 있다가 외출할 때면, 나는 정말 몇 번이고 가스레인지의 스위치를 확인한다. 밖으로 나와 운전석에 앉아서도 내가 가스불을 제대로 확인했는가를 또 다시 의심한다. 방금 다 확인하고 나왔는데도 뭔가 계속 찝찝하다. 이렇게 찝찝한 상태로는 도무지 떠날 수 없다. 집에 다시 들어간다. 아예 베란다의 가스밸브를 원천 봉쇄해 버린다.
 
  이러는 내가 너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악순환은 내 생활이 바쁘고 힘들 때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이 모든 스트레스가 바로 그때, 그 연탄가스 홍보영화 때문이다. 그때 그 생생한 기억이 이토록 오랫동안 내 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고 여전히 날 괴롭힌다.
 
  데보라 카의 ‘주름치마’가 내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연탄가스 중독에 대한 내 유년기의 공포가 내 정신을 혼미케 하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심어진 죽음에 대한 공포와 영화 말미의 에로티시즘의 흥분을 동시에 감당하기엔 당시 나는 너무 어렸다.
 
  이런 종류의 유년기의 충격은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다. 주름치마에 대한 내 과도한 집착과 가스밸브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구태여 프로이트식 용어를 쓰자면 ‘에로스적 충동’과 ‘타나토스적 충동’이 ‘주름치마에 대한 정신 혼미해짐’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그럼 최근 생긴 망사스타킹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또 뭔가? 혹시 ‘구공탄 구멍’과의 상징적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자’의 고통
 
  비정상적으로 정확하고 오래가는 기억은 어떤 형태든 강박적 충동과 연관되어 있다. 물론 의식적인 억압으로 인한 망각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같은 종류의 증상이다. 기억과 망각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미 오래 전, 러시아의 심리학자 루리야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고통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세레세프스키라는 신문사 기자는 모든 것을 기억했다고 한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난 일에 대해서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루리야와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에 관해서도 정확히 기억해냈다. 그러나 무한대의 기억력을 가진 그는 전혀 행복할 수 없었다. 과거의 수치스럽고,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 너무나 정확히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이 기억이 반복될 때마다, 그때의 그 고통을 반복해서 똑같이 느껴야 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도 나타났다. 모든 것을 세밀하게 기억하다 보니, 추상적 사고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세밀한 것을 망각하는 대신, 맥락과 상징, 은유나 추상적 의미 등을 사용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의미들을 만들어 가는 반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세레세프스키는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기억할 뿐, 추상화하여 추론하는 능력은 전혀 발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기억이 아주 자주, 그리고 아주 많이 헷갈린다. 노래방 기계가 나온 이후로 기억하는 노래가사가 거의 없다. 휴대전화가 나온 이후로, 기억하는 전화번호가 거의 없다. 단축번호만 기억할 뿐, 집 전화번호와 아내의 전화번호조차 헷갈린다. 어쩌다 휴대전화 충전지가 다 닳으면 사태는 난감해진다.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도 꽤 오래된 일이다. 학교 학생들이 입학하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섭섭해하지 말라는 이야기부터 한다.
 
  기업체나 관공서 등에서 강연하고 나면 여러 사람이 다가와 명함을 건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면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애매하게 웃고 있으면, 상대방은 상당히 어색해한다. 나름대로 성질 있는 사람은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 한다. 매번 이렇게 난감한 상황이 계속되니, 아예 웃으며 내가 먼저 아는 체한다. “우리, 그때, 거기 어디였더라…”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면 상대방은 무엇인가 내게 기억할 만한 단서를 던져준다. 그럼 비로소 기억해 내고는 이미 알았던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지혜는 기억력 쇠퇴의 반대급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기억력 쇠퇴현상을 老化(노화)현상이라며 슬퍼하거나 우울해 한다. 그러나 망각은 늙어가는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끊임없이 잊어버린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망각은 언어습득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아이들이 자신이 듣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처럼 추상화·맥락화의 능력은 절대 습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이가 들며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도 아이들의 망각현상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봐야 한다. 기억력이 쇠퇴할수록 또 다른 종류의 추상화 능력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를 최근의 인지심리학자들은 ‘지혜’라고 부른다. 물론 뇌세포가 병들어 가는 치매 현상은 예외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 쇠퇴의 반대급부로 얻어지는 지혜는 선택의 범위를 줄이는 능력이다. 젊을 때는 모든 것이 풍부하여, 선택의 범위가 넓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선택의 범위가 넓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불필요한 것은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선택의 폭이 넓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증명한다. 총각 처녀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주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도록 했다. 한쪽에는 4명의 리스트를 주고, 다른 쪽에는 20명의 리스트를 주고 선택하도록 했다. 모두들 20명의 리스트가 있는 쪽에서 데이트 상대를 고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실제로 데이트 상대를 선택한 후 파트너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해 보니, 4명의 리스트에서 파트너를 고른 사람들의 만족도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
 
  식당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메뉴판에 선택해야 할 음식의 리스트가 많으면 우리는 대부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우리가 유명한 ‘맛집’이라고 찾아 나서는 곳의 대부분은 제공하는 음식이 한두 가지뿐이다. 반면 맛없는 식당의 대부분은 이것 저것 다 만들어 낸다. 뷔페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만족해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식당에서 행복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해 나가는 망각과 더불어 얻어지는 지혜는 통찰과 직관의 능력이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딱 보면 아는 능력이다. 논리적인 설명이나 합리적 근거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만족스런 결정이었음이 판명된다. 실제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는 것이 자신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티모시 윌슨이라는 심리학 교수는 자신의 심리학 실험에 참가한 被驗者(피험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다섯 종류의 포스터 중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한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드는 것을 그냥 골라가도록 했다. 그러나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각 포스터에 대해 마음에 드는 이유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도록 했다. 4주가 지난 후 사람들에게 자신이 고른 포스터에 만족하는가를 물어봤다. 흥미롭게도 포스터를 선택하면서 자신이 선택하는 이유를 설명한 사람들이 자신의 포스터에 만족하지 못했고,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는 경향도 높았다.
 
 
  합리성과 논리적 판단의 맹점
 
  우리가 집에 오면 TV 채널을 지속적으로 돌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 채널이 많아야 고작 3개일 때, TV프로그램에 대한 우리의 만족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채널이 한군데 고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저녁 내내 수십 개의 채널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투덜대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한 경우를 잘 살펴보면, 대부분 사안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때다. 현실의 내 삶이 만족스럽고, 내 결정에 불만이 없을 경우에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이 그리 필요하지 않다.
 
  토끼를 잡는 노련한 사냥꾼은 어떻게 토끼를 잡았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다 보니 잡히더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토끼를 놓친 사냥꾼은 설명이 많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어 언덕을 빨리 올라가 도무지 쫓아갈 수 없었다, 귀가 커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미리 알고 도망치더라 등등.
 
  모든 것을 기억할 수도 없고, 기억할 필요도 없는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몇 가지 꼭 필요한 기준들로 사물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모든 요인을 동시에 고려할 필요도 없고 기억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젊고 의욕적인 경영자는 직원을 선발할 때 후보자의 학력, 자격증, 경력, 성격 등을 동시에 고려하여 선발한다. 각 항목의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특정 항목에는 가산점을 주며 계산한다. 그리고 총점이 가장 높은 후보를 선택한다.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경영자는 좀 다른 방식으로 판단한다. 자신이 중요시하는 원칙부터 단계적으로 따져나간다. 성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성격상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는 후보자들은 모두 제외시킨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이 경력이라면, 경력이 없는 후보자들은 제외시키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 세세한 것에 대한 기억력이 감퇴할수록 추상화의 능력과 통찰은 늘어나게 되어 있다. 직관과 지혜는 논리적 판단과 합리적 설명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워 준다.
 
  독일 최고의 두뇌집단이 모여 일하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게르트 기거렌처 소장은 아예 한발 더 나아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합리성과 논리적 판단에 근거한 판단이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높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직관과 느낌에 근거한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수록 우리의 삶은 더 살 만한 것이 된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기억력이 감퇴하고 논리적 판단능력이 사라지는 노화현상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망각하는 만큼 삶은 만족스러워진다는 이야기를 요즘 심리학자들이 아주 새로운 이야기처럼 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