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룡은 침묵하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나 부드러운 봄바람이 달래도 꿈쩍 않고 겨울산 그대로 무뚝뚝하게 있었다. 수북한 낙엽, 앙상한 가지, 메마른 계곡……. 4월의 산은 야윌 대로 야위어 명산이라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휑했다. 다만 등산객의 가벼운 옷차림과 들뜬 표정에서 봄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고찰은 고찰이라 써 붙여 놓지 않아도 산 좀 다닌 사람이면 금세 알 수 있다. 쭈글쭈글한 할매 이마 닮은 대들보와 전설 하나 쯤은 얽혀 있을 것만 같은 늙은 나무, 닳을 대로 닳은 흙길과 디딤돌……. 이런 게 널려 있어 이상한 안도감 속으로 사람을 어느새 빨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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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룡의 등골 자연성릉 위를 걷는다.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낭떠러지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갑사가 그렇다. 오래되었지만 정갈하고 깊이가 있다. 보이지 않는 기류 속에도 향 내음과 불심이 배어 있다. 보물을 네 개나 가지고 있어 그저 스쳐 지나는 들머리로 삼기에는 아쉽다. 먼저 다가온 것은 동종(銅鐘). 안내판에 뭐라 길게 써 놓았지만 동종만큼 무거울 것 같은 딱딱한 문구가 쉽게 눈에 들지 않는다. 종은 더 눈에 들지 않는다.
종을 지키기 위한 건지 가두기 위한 건지 알 수 없도록 꽉 틀어막은 종각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나무창살 사이로 빼꼼히 눈동자를 들이밀고서야 안에 종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왜 보물인지 스스로 알려 준다.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 적당한 크기,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려한 무늬와 조각, 그 곡선이 만들어내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맛, 이러한 것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었다. 굳이 울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두 번째 보물은 부도(浮屠). 모퉁이를 도니 저만치 보인다. 등산객이 다니는 길목에서 벗어나 있어 분위기가 한층 차분하다. 다가설수록 부도는 특별해진다. 뭐라고 할까, 황금비율을 갖춘 건 아니지만 하단부 조각이 화려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각들이 말을 걸어온다. 먼저 아랫단의 사자. 혀를 낼름 내민 것이 사자라고 하기에는 귀엽다. 절간에서 키우는 사자라서 그런 걸 테다.
그 중 한 마리 곁에는 동자상이 있다. 사자랑 노는 간 큰 동자다. 어지간히 자세히 보지 않고서야 눈치 채기 어렵다. 그 윗단은 구름인데, 이것도 들여다보면 비밀이 숨겨져 있다. 구름 속에서 살짝 튀어나온 여의주를 든 용의 발톱, 구름 속에 용이 있다는 대담한 생략의 조각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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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갑사 일주문을 지난다. 산행의 시작. 어딘지 어색하고 설렌다. (오른쪽) 갑사에서 연천봉 고개로 이어진 길. 코스에서 가장 힘든 오름길이다. 오름길 끝에 있는 연천봉의 장쾌한 조망은 땀값이다.
그 아래는 발걸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묘한 대나무숲 길이 있다. 내려서니 문득 마주치는 공터. 잠깐 문화재 보러 왔다 이토록 싱싱하고 차분한 공간을 만나니 횡재한 듯 즐겁다. 공터 아래에 세 번째 보물인 철당간(鐵幢竿)과 지주(支柱)가 있다. 철로 된 굴뚝이라. 전혀 숲과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조화를 이룬다. 숲의 대장인 양 우뚝 솟은 것이 숲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철당간은 굴뚝처럼 생겼으나 실은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달던 깃대다. 보물이 있는 신비한 숲을 마음속 보물로 남기고 오름길로 향했다. 갑사계곡을 줄지어 오르는 이들은 대전의 블랙야크 고객들과 임직원들이다. 30명쯤 되지만 오름이 가팔라지자 자기 속도에 따라 사람 사이가 점점 벌어졌다.
갑사계곡은 본래 갑사구곡이 있을 정도로 빼어나지만 지금은 가물어 등산객의 발걸음을 잡아 세우지 못한다. 앙상한 나무가 빼곡한 비탈엔 낙엽이 지천. 그래서 4월이라 해도 눈에 드는 건 온통 겨울이다. 그나마 산죽과 소나무가 간간이 초록색을 채워 넣으며 산다운 느낌을 준다. 지루한 오름길이지만 사이사이 진달래랑 현호색이 봄이 거의 다 왔다고 일러준다.-
- ▲ (위) 삼불봉으로 이어진 자연성릉 위의 전망대. 세 부처에게 가는 길이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다. (아래) 관음봉에서 성릉으로 이어진 철계단. 계룡산은 계단이 많아 거리에 비해 체력 소모가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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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바위 계단길이 야금야금 밀려오나 싶더니 경사가 세진다. 산 풍경을 다 삼켜 버리는 거친 오름길을 꾸역꾸역 삼키며 올라서니 연천봉고개다. 좁은 터지만 숨 돌리는 사람들로 한가득. 진한 땀내음과 함께 묘한 동지의식이 감돈다.
연천봉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주봉인 천황봉이다. 힘 있고 거칠게 솟구친 골산의 산세가 일품이다. 다만 중계탑과 시설물이 정상부에 덕지덕지 붙어 있어 손으로 다 떼 주고 싶은 산꾼의 마음이다. 욕심을 보태면 얼른 개방되어 본래 이름인 ‘상봉’처럼 수수하게 등산인들의 벗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필봉을 우회해 닿은 관음봉. 아이스크림이라도 가져와 팔 걸 그랬나. 등산객이 바글바글하다. 정자는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표지석이 있는 암릉을 비집고 올라 일행들과 얼른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쉬워라. 하늘을 메운 희뿌연 먼지 탓에 맑아도 맑은 게 아니다. 소문난 조망명당인 관음봉도 회색 필터를 덧씌운 듯 맛이 덜하다. 그러나 성릉의 위용은 숨길 수 없다. 능선을 뚫고 뿜어져 나오는 화강암의 거친 기운, 제멋대로 솟은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전체적인 방향과 흐름을 지키고 있다. 꼭 용이 등골을 곤두세운 채 휘감아 돌며 승천하려는 것처럼. 그래서 닭 벼슬을 쓴 용의 형상이란 일설은 계룡이 가진 수준 높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단순히 생김새만 놓고 조합하여 닭머리 용이라니,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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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관음봉에서 성릉으로 이어진 철계단. 계룡산은 계단이 많아 거리에 비해 체력 소모가 큰 편이다. (오른쪽) 관음봉 철계단에서 본 자연성릉과 삼불봉. 산이 가장 볼품 없는 계절에도 계룡은 왜 스스로 명산인지 말하고 있다.
자연성릉에 들어서자 구름이 밀려오고 바람이 거세진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경치 좋은 성릉 절벽 앞에 섰다. 어이쿠, 다리에 힘을 딱 줬는데도 바람이 불어 흔들리니 고도감이 확 덮친다. 겁먹지 않은 척 자연스러운 동작임을 강조하며 그 자리에 걸터앉았다. 밀려오는 안도감과 함께 이제야 풍경이 제대로 든다. 천황봉, 쌀개릉, 관음봉, 동학사 계곡, 삼불봉이 훤하다. 그러나 뼈만 남은 나무들이 온 산을 가득 메운 풍경은 뭔가 휑하고 초라하다.
다시 등산 인파의 행렬에 합류, 줄지어 갔다. 대전과 접해 있어서인지 학생들이 많다. 등산복이나 등산화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청춘이 있기에 아쉽지 않은 듯 보였다. 다만 “이참에 태백산맥 타고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가볼까”하며 스치는 농담이 산꾼의 비위에 살짝 거슬렸다. “교과서에는 태백산맥인지 몰라도 한국 사람에겐 백두대간이야”라고 하려다 산에 와서까지 잔소리 하려는 속 좁음을 발견하고 뒤로 슬쩍 물러났다.
암릉길 곳곳에는 철계단이 사다리 같은 각도로 있는 게 많아 난간을 꼭 잡고 올랐다. 끝났나 싶으면 앞에 또 있고, 또 있다. 세 부처가 있는 삼불봉(三佛峰) 가는 길 아니던가. 그 길이 결코 쉬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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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성릉에서 삼불봉으로 이어진 암릉길. 뒤로 펼쳐진 천왕봉과 쌀개릉의 굴곡이 역동적이다.
삼불봉에서 계룡을 바라본다. 썰렁하게만 보이던 산이, 부처의 봉우리여서인지 다르게 보인다. 어떤 꾸밈이나 가식 모두 버리고 오직 산 본연의 산으로 서 있다. 마치 수도자처럼 가만히 눈 감고 앉아 안에서 밖으로 무언가 밀어내고 있다. 그 인고의 밀어냄이 깨달음이 되어 밖으로 터져 나올 때 그제야 계룡의 봄은 찾아올 것이다. “툭 툭, 투두둑”하며 꽃 피는 소리가 축포처럼 온 산을 다 메울 것만 같다.
하산길에 만나는 남매탑은 계룡이 지닌 수도자다운 면면을 한번 더 보여준다. ‘백제 멸망 후 왕족 한 사람이 이곳에서 수도 중이었다.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몸부림치기에 살펴보니 목에 뼈가 걸려 있어 빼주었다. 며칠 뒤 호랑이는 젊은 여자를 내려놓고 갔다. 여자는 결혼식을 올리고 신방에서 자다가 잠깐 밖으로 나왔다가 호랑이에게 업혀왔다고 했다. 산에 봄이 와 얼음이 녹자 그는 여자를 고향에 돌려보냈으나 여자의 부모는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데리고 살기를 권했다. 두 사람은 남매의 의를 맺고 구도에 몰두, 깨달음을 성취했다. 사람들은 이를 기리기 위해 석탑 2기를 쌓았다.’
동학사 계곡을 따라 난 길, 벚나무가 끝없이 늘어서서 계룡의 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며칠 후면 깨달음을 얻은 용이 연분홍 날개를 달고 승천할 테고 이를 기리기 위해 몰린 인파는 한바탕 축제를 벌일 테다. 계룡의 봄 아래 있는 자여 마음껏 기뻐하라.-
- 갑사~연천봉~관음봉~삼불봉~동학사 길, 왜 명품 등산로인가?
밀도 높은 암릉미 가진 자연성릉 비롯, 계룡의 옹골찬 명소 모두 포함
“최고 하이라이트는 자연성릉입니다. 동ㆍ서를 시원하게 다 조망할 수 있거든요. 봉우리 중에서는 삼불봉이 최고라 봅니다. 높이는 천황봉이 주봉이지만 토속적인 부분과 조망을 감안해도 삼불봉이 가장 낫다고 봐요.”
계룡산국립공원에서만 27년을 근무한 조성열씨. 계룡산이 좋아 지난해 퇴임하고 나서도 다시 지킴이로 근무하고 있다. 사무소 내에서도 첫 번째로 손꼽히는 계룡산 전문가인 그는 연천봉과 관음봉, 삼불봉을 하루에 다 보았다면 그보다 행복한 산행은 없을 거라 말한다.
대전연맹 산악조난구조대 이기열 대장. 대전이 고향인 그에게 계룡은 어릴적부터 다닌 푸근한 산이다. 1991년부터 3년 동안은 아예 계룡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볼트가 빠져 선배가 추락하는 걸 본 이후로 말이다. 선배들에게서 볼트를 모아 개인적으로 교체 작업에 매달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계룡산은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끈끈한 산이다.
“20년 넘게 계룡산을 다녔지만 역시 최고는 자연성릉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불어 갑사에서 본 삼불봉도 좋고 연천봉에서 본 낙조도 기가 막히죠.”
갑사에서 연천봉, 관음봉, 삼불봉을 찍고 동학사 가는 길은 욕심 많은 길이다. 계룡의 소문난 명소를 당일산행으로 가겠다는 마음에 10km가 조금 넘는 코스를 빼곡히 다 집어넣은 것이다. 계단이 많은 계룡산임을 감안하면 초보자에게는 무리이며 간편한 코스로 동학사 원점회귀 산행, 즉 동학사~삼불봉~관음봉~동학사 코스가 일반적이다
산행 길잡이
삼불봉 이전에 다리 풀리지 않도록 주의
계룡산은 대전ㆍ충남을 대표하는 명산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산악공원 중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1968년)된 것만 봐도 한국인에게 계룡산은 전통적으로 단순히 멋진 자연경관을 가진 산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 때는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으로, 조선시대에는 삼악(三嶽) 중 중악(中嶽)으로 꼽힐 정도였으니 지금의 계룡은 과거에 비해 그 유명세가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계룡산(845m)은 높거나 깊지 않으나 밀도 높은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여인으로 치면 아담한 키에 빠질 데 없는 미모를 갖춘, 기가 센 미녀다. 그 중에서도 암릉, 암릉 중에서도 자연성릉이 백미다. 관음봉이나 삼불봉에서 보면 자연성릉으로 이어진 암릉 줄기가 용의 등골을 빼쏘았다. 바위산이라 해도 국립공원이라 등산로는 정비가 잘 돼 있어 위험하지 않다. 다만 가파른 계단이 길게 이어지는 곳이 많아 초보자들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산은 아니다.
주봉은 천황봉이지만 출입이 금지된 데다 중계탑이 있어 산행상의 주봉은 관음봉(816m)이다. 그래서 산행은 암릉미가 빼어난 자연성릉과 관음봉을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계룡산의 추천 명산 명품 산행로는 갑사~연천봉~관음봉~삼불봉~오뉘탑~동학사 코스다. 10.2km, 6시간 걸리는 코스로 당일 산행 중에서도 꽉 찬 당일 산행이다. 들머리는 갑사나 동학사 어디서 시작해도 상관없으나 동학사 쪽이 교통이 편리해 산행 후 귀가를 고려한 이들의 날머리로 주로 이용된다.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은 갑사계곡 상류에서 연천봉 고개에 이르는 가파른 오름길이며 이후부터는 잔잔한 오르내림이라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연천봉은 능선 서쪽 끝에 있어 연천봉고개에서 연천봉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와야 하는 코스다. 이게 귀찮아 바로 관음봉으로 향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갑사나 신원사에서 힘들게 능선에 올라와 연천봉 조망을 보지 않는 것은 물건 사려고 돈 내고 물건은 두고 오는 격이다. 고개에서 연천봉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관음봉에는 정자가 있어 쉼터로 좋으며 자연성릉과 삼불봉 조망이 압권이다. 삼불봉 이후부터는 계속 내리막 하산길이며 계단이 많은 편이므로 삼불봉에 닿기 이전에 다리가 풀리지 않도록 체력 안배를 해야 한다. 동학사에서 계곡을 따라 난 아스팔트길을 30분 정도 걸으면 버스정류장이 있는 주차장에 닿는다.
>> 교통
수도권에서 자가용으로 접근할 경우 경부고속국도 천안JC에서 논산~천안 간 고속국도로 갈아 타고 정안IC에서 23번 국도로 나와 논산 방향으로 향하다 계룡에서 갑사방면 691번 지방도로를 타고 갑사 방향 표지판을 따르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공주에서 40~50분에 한 대씩(06:30~21:30) 버스가 있으며 30분 정도 걸린다. 대전 유성 충남대에서 출발하는 2번 시내버스는 1일 7회(08:00, 09:35, 10:35, 11:35, 14:30, 16:35, 18:10) 운행하며 1시간 정도 걸린다. 동학사에서는 대전행 107번 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행(07:00~11:00)한다.
>> 숙식
동학사 입구에 식당과 숙소가 즐비하다. 먹거리는 백숙, 파전, 오리고기, 산채비빔밥 등 다양하며 현지인의 귀띔에 따르면 더덕요리가 특히 권할 만하다고 한다. 청주식당(042-825-2879) 더덕백반이 맛깔스러운 편이다. 더덕백반은 1만 원, 더덕구이는 2만 원이다.
갑사 인근은 동학사만큼 업소가 많진 않으나 먹고 자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숙식업소가 있다. 식당은 수정식당(041-857-5167)이 소문난 맛집으로 유명하며 민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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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비구니 사찰인 동학사. 2. 보물 478호인 갑사 동종. 3. 남매탑. 담긴 사연 때문에 색욕을 이겨낸 도행 의 기념탑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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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소
갑사
백제 수미신왕 원년(420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절간은 정유재란 때 불탔던 것을 선조 37년(1604년) 이후 하나씩 중창해 오늘에 이르렀으며 조선 중ㆍ후반기 건축물들이다. 고찰답게 경내에는 보물이 네 점 있다. 선조 2년(1569년)에 새긴 월인석보(月印釋譜) 판목(보물 582호). 석보는 석가모니의 일대기라는 뜻이며 조선 세종 28년(1446년) 태헌왕후 심씨가 죽자 세종이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에게 명하여 불교서적을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다. 조선 전기 훈민정음 연구와 불교학 및 서지학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다.
철당간(보물 256호)은 갑사 동남쪽 기슭에 있으며 통일 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하다.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이며 원래 28개였으나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 현재 높이는 15m다. 갑사부도(보물 257호)는 고려 때 것으로 아담하지만 화려한 조각이 돋보인다. 갑사 대웅전 왼쪽 해탈문 옆에는 동종(보물 478호)이 있다. 선조 17년(158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시대 종의 주조양식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동학사
유명하기로 따지면 계룡산의 절집 중 첫 번째이며 산행의 기점에 있어 접근이 편하지만 승가대학을 중심으로 한 비구니 수행사찰이라 등산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으며 구경할 것도 없다. 신라 성덕왕 23년(724년)에 암자로 지은 것이 지금에 이르렀으며 6ㆍ25때 소실된 것을 1975년 개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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