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송곳니는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이 전투기를 외면했다. 미군은 노스롭의 예상과 달리 도리어 더 크고 복잡한 전투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 결과 N-102 팽은 실제 항공기가 제작되어보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팽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노스롭은 경전투기 개발을 포기하기는커녕, 더 다양한 연구를 거듭했다. ▲ 노스롭이 개발중이던 N-102 팽. J79 엔진 1개를 탑재한 가볍고 값싼 경전투기였으나 결국 미 공군은 이 전투기를 외면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 록히드는 CL-246이라는 경요격기를 개발했는데, 이것은 미 공군에 채택되어서 F-104 스타파이터가 되었다.
1950년 중반 무렵에 미 해군은 주로 2차대전때 생산해 퇴역시키지 않고 계속 쓰고 있던 소형 항공모함(혹은 호위 항공모함)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노스롭은 N-156TX를 해군용으로 개조한 N-156NN을 개발하면서, 소형 항공모함에 어울리는 전투기는 바로 이 해군용 텔리-호라고 미 해군에 홍보했다. 그러나 노스롭의 희망과 달리 미 해군은 이 소형 항공모함들을 전부 퇴역시켜버렸다. 노스롭은 당황스러웠지만, 해외 시장을 노리고 회사 자체 경비를 들여가며 N-156에 대한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송곳니가 싫으시다면 발톱이라도... 1950년대 중반 무렵, 노스롭의 N-156은 해군에 제안하던 시절의 원래의 형상과 크게 달라져갔다. 날개 밑에 달기로 했던 엔진은 동체 속으로 들어갔으며, 원래의 직선날개는 사다리꼴 (혹은 잘린 삼각날개)로 바뀌었다. 또한 N-156은 원래의 형상에 비해 훨씬 빠른, 마하 1.5로 비행할 수 있는 초음속 전투기로 변모해갔다.
마침 이때 미 공군은 T-33 훈련기를 대체할 새로운 제트 훈련기를 찾고 있었다. T-33은 2차대전 말엽에 개발된 P-80 전투기를 개조한 훈련기로, 당시 보편화된 초음속 고성능 전투기를 몰 조종사의 훈련용으론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 공군은 새로운 훈련기는 초음속 전투기와 비슷한 초음속 비행성능 및 고성능, 고기동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 미 공군의 T-33 훈련기. 미군 최초의 제트 전투기, P-80 슈팅스타(Shooting Star : 유성)를 기반으로 개발된 훈련기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대표적인 제트훈련기였다. 그러나 초음속 제트전투기 시대가 오면서 이 구식 훈련기로 조종사들을 훈련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진속의 T-33은 미 공군의 곡예비행팀, 썬더버드의 도장이 칠해져있다(실제로 초창기에 썬더버드는 곡예비행 훈련 및 나래이터, 귀빈 동승용으로 T-33을 사용했다).
▲ T-38 탤런 훈련기. 마하 1.5로 비행 가능한 세계 최초의 초음속 훈련기다. 이 훈련기는 1950년대에 개발되었지만 아직도 미군은 여러 번 개량해서 현역으로 사용중이다. 이 훈련기는 대부분 흰색으로 칠해지는데다가, 워낙 전체적으로 뾰족하게 생겨서 조종사들이 ‘하얀 로켓‘이란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이 강대국이라고는 해도, 다른 나라에 무기를 원조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은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원조용 무기는 값이 싸야 했다. 그러나 너무 값이 싼 나머지 질이 떨어지는 무기는 원조를 안해주니만 못했다. 우방국이 적 진영에게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군사원조인데, 적의 무기보다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무기를 쥐어준들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케네디 정부시절, 냉전체제는 극에 달했다. 특히 국방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케네디는 우방국에 대한 아낌없는 군사지원을 약속했고, 곧 미 국방부는 군사용 원조에 적합한 전투기를 찾기 시작했다. 먼저 떠오른 것은 이미 NATO의 여러나라 및 일본에서 사용중이던 F-104G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었다(가격을 낮춰야 했기 때문에). 또 미 해군의 F-8 크루세이더 전투기도 이 원조용 전투기 후보 대상에 끼었다. 하지만, 결국 국방부가 선택한 것은 노스롭의 N-156F였다.
▲ F-104G 스타파이터. 이 전투기는 본래 값싼 경량 요격기로 개발되었던 것을 지상공격도 가능한 전폭기로 개조한 물건이기 때문에 몇 가지 기능을 빼서 더 가격을 낮춘다면 군사원조용 전투기로서 그럴싸해 보였다. 하지만 매우 사고가 잘나는 전투기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거의 공짜로 준다고 해도 가져갈 나라가 얼마나 많았을지는 의문이다. ▲ F-8 크루세이더. 한 동안 미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다. 사고율이나 성능면에서는 F-104G보다 여러모로 낫지만 미국으로선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다른 나라에 주기에는 좀 비싼 전투기였다.
미군 내에서 이 N-156F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정작 공군이 아닌 육군이었다. 1962년 초반에 미 육군은 근접항공지원, 즉 필요할 때 아군측 지상군을 지원하여 적진에 공격을 가해줄 수 있는 공격임무를 맡는 고정익기를 찾고 있었다. 처음에 미 공군이 눈독을 들인 근접지원용 공격기는 미 해군이 쓰고 있던 A-4 스카이 호크와, 이탈리아 피아트의 G.91 공격기였다. 그러나 미 육군은 곧 노스롭의 N-156F를 접하고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N-156F는 비교적 날렵하면서도 적당한 무장탑재능력을 갖춰 육군을 지원하기 좋은데다가, 구조가 단순하고 정비하기 쉬워서 거친 전방의 임시활주로나 비상활주로에서 운용하기에도 적합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미 공군이 있는 마당에 육군이 별도의 공격기를 따로 구매해서 운용한다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고, 결국 육군의 N-156F 도입 계획은 무산되었다(대신 미 육군은 공격헬리콥터가 이 임무를 맡게 되었다).
▲ 피아트의 G.91 공격기. NATO 연합군의 경공격기로서 개발된 항공기지만 NATO연합군 중 이 공격기를 쓴 대량으로 쓴 나라는 개발국인 이탈리아와 독일 정도였다(사진은 독일군 소속의 기체). F-86과 매우 유사하게 생겼으나 F-86의 파생형은 아니며, 이탈리아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공격기다. ▲ A-4 스카이호크 공격기.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경공격기로 개발된 항공기다. 공격기치고는 꽤나 민첩한 기동성을 가진 덕에 공중전 훈련시 가상적기 역할을 맡는 경우도 많다(영화 탑건에서 등장하는 교관이 타던 가상적기가 바로 이 A-4며, 이전에 소개한 한쪽 날개로만 돌아온 F-15 이야기에서도 F-15와 충돌했던 가상적기도 A-4다.).
▲ 거친 비상활주로에서 이착륙하는 능력을 시험중인 YF-5A 프리덤 파이터. 정작 미 공군은 별로 탐탁찮게 여겼으나, 일단은 미군 소속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미 공군(U.S. AIR FORCE)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 박물관에 전시중인 YF-5A 프리덤 파이터. YF-5A는 비행시험을 하는 시제기이므로 비행상태 등을 잘 확인할 수 있도록 사진처럼 밝은 주황색이 칠해졌다.
▲ ADM-20 퀘일. 폭격기에서 투하하는 무인 항공기다. 이것의 동체 내부에는 적의 레이더 전파를 잘 반사하도록, 레이더 반사판이 장착되었다. 현재는 일반 전투기에서도 투하할 수 있는, 좀 더 작고 가벼운 미끼들도 개발되었으나 이런 것들은 퀘일처럼 엔진이 달린 것이 아니라 대부분 글라이더처럼 활공한다(물론 소형 엔진이 달린 미끼들도 있다).
때 마침 노스롭은 경전투기인 N-156을 개발중이었다. 이들에게 이 작고 가벼우면서도 제법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던 J85엔진은 경전투기용으로 이상적인 엔진이었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J85를 전투기용으로도 적합한, 좀 더 고품질의 소재를 사용한 ‘제대로 된 엔진’으로 만들 것을 약속했으며, 또한 제너럴 일렉트릭은 자신들의 엔진에 추가적인 추력을 얻는 애프터버너도 장착하였다. 이것이 바로 N-156에 쓰기로 한 J85-GE-5다. N-156F는 처음 비행할 당시에 임시로 J85-GE-1을 장착했으나, 곧 J85-GE-5로 바꿔 달았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2 : 호위 항공모함 항공모함 하면 으레 매우 큰 배에 각종 전투기가 수십 대 들어차 있는 배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각 나라가 치열하게 싸우던 2차 대전 때는, 이런 대형 항공모함 뿐만 아니라 일반적힌 항공모함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되는 크기에, 1/3 정도의 밖에 안되는 배수량을 가진 아주 작은 소형 항공모함들도 여럿 등장했다. 이런 항공모함은 대부분 자체 무장도 거의 없고,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장갑도 별로 두르지 않았다. 여기에 탑재할 수 있는 항공기의 숫자도 대부분 20여대 수준으로, 70~90대에 이르는 정규 항공모함보다 훨씬 적었다. 이 소형 항공모함이 바로 호위 항공모함이다.
▲ 미국의 대표적인 호위 항모, 보그(Bogue). 사람들의 크기를 보면, 일반 항공모함의 절반만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소형항공모함이라고는 해도 전체 길이 151미터, 배수량 1만 6천톤으로 제법 큰 배다.
더불어 대형 정규 항공모함을 파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긴급하게 전투기의 지원이 필요한 섬 지역 같은 곳에도 이 호위 항공모함은 제 역할을 다했다(특히 태평양은 섬에서 섬으로 옮겨가며 전투를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정규 항공모함만으로는 작전에 필요한 함재기가 모자랄 경우, 이 호위항모들이 함대의 뒤에 붙어서 거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다만 대부분의 호위 항공모함들은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주력 전함이나 정규 항공모함들과 같이 함대를 이루지는 못하고 뒤처져서 따로 다녔다). 그리고 이 호위항모는 애당초 항공기를 탑재하고 돌아다니는 배이므로, 항공기를 일정 지역으로 옮기는 항공기 수송선 역할에도 적합했다. 이러한 호위 항공모함은 2차 대전 중 주로 미국과 일본이 생산했으며, 특히 미국은 전쟁기간 중 전체 생산한 항공모함 151척 중 122척이 이 호위 항공모함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호위항공모함 중 상당수는 영국에 원조되기도 했다.
2차 대전 이후, 제트전투기들이 대거 등장하자 호위 항공모함은 갈 길을 잃기 시작했다. 프로펠러 전투기 보다 더 크고 더 긴 활주로가 필요한 제트전투기들은 호위 항공모함에서 운용하기에 여러모로 어려웠던 것이다(물론 이런 호위항공모함에서 운용할 경 제트전투기 시장을 노리고 개발된 노스롭의 텔리-호 같은 전투기도 있었지만). 또 적 잠수함을 찾아내고 공격하는 임무는 호위 항공모함보다도 더 작은 구축함이나 프리깃함에서 발진한 헬리콥터가 맡으면 되므로 굳이 잠수함에 대비해서 호위 항공모함에서 전폭기를 발진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결국 2차 대전 이후에 이런 호위항공모함들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한편 이 호위 항공모함은 작은 항공모함이란 의미로 지프(Jeep : 흔히 말하는 짚차, 군에서 쓰는 차량 중 가장 작았다.) 항공모함이라 부르기도 했다.
美 ‘군사원조용 전투기’ F-5의 개발과 발전사
|
미 국방부는 주변국에 대한 군사원조용 전투기로서 적합한지 시험하기 위해 2대의 N-156F를 먼저 만들어 보고 각종 성능테스트를 진행해 보았다. 그러나 이 F-5A들은 가급적 훈련기인 T-38과 공통되는 부품을 많이 사용하도록 설계되다보니(이렇게 할 경우 노스롭은 두 기종의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 날개나 착륙장치의 강도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분석 결과, 이 경전투기의 주 날개와 랜딩기어를 좀 더 튼튼하게 설계한다면 날개와 동체에 무장 및 연료탱크를 6천2백파운드(약 2.8톤) 정도까지 실을 수 있을 거란 예상이 나왔다.
▲ F-5A 프리덤 파이터. 날개와 동체 밑, 그리고 주날개 끝에 달려 있는 것은 모두 연료탱크다. 즉 사진에서 보이는 기체는 비무장 상태다.
미 국방부는 이미 한 해 전에 노스롭에 86대(F-5A 71대와 F-5B(F-5A의 2인승 버전 15대)를 만들 것을 주문했고, 다음해에는 그 수량을 좀 더 늘렸다. 각 전투기의 가격은 당시 돈으로 60만 달러였는데, 이것은 초음속 전투기 가격치고는 무척 싼 가격이었다. 미 정부가 이 전투기들의 제작비용을 노스롭에 지불했으나,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이 전투기들은 미국이 쓰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원조해주기 위해 만든 것들이었다. 초기에 생산된 이 F-5들은 대략 1달에 12대 꼴로 생산되었다.
이 F-5들이 미 공군에 전달된 것은 1964년도의 일이었다. 만약 이 전투기들을 해외에 원조해준다면, 그 원조 받은 나라의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을 훈련시킬 교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미 공군이 초기에 생산된 F-5A를 몇 대 받아서 일단 교관양성용으로 운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F-5A들은 전투비행대가 아닌 4441 전투 요원 훈련비행단(Combat Crew Training Squadron)에 배속되었으며, 이 후 이곳은 F-5를 새로 구매하는 나라의 조종사와 정비사들을 훈련시키는 훈련소 역할을 했다.
한편 초기의 F-5A는 전투기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공대공 전투능력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물론 당시 기준으로 나름 뛰어난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공중의 적을 포착하기 위한 레이더는 물론 적기를 공격하기 위한 기관포조차 탑재되지 않았다. 이는 워낙에 값싸게 만들려고 비싼 장비는 최대한 줄이려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 초창기 F-5A의 사진. 기수 부분에 기관포가 없다. 대신 지상공격 능력을 자랑하듯, 폭탄을 무려 18발이나 탑재하고 있다. 다만 이 폭탄들은 가벼운 축에 드는 250파운드(113kg)급 폭탄인 Mk.81로, 위력이 약해서 현재는 거의 쓰이고 있지 않다. 사실 이 가벼운 폭탄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수량이면 F-5A가 정상적으로 작전하긴 어려운 정도의 무게이며 공기저항도 매우 크다. 즉 위 사진은 홍보를 위한 연출이며 실전적인 상황은 아니다.
결국 재검토 끝에 1964년 중반, 기관포만은 탑재하기로 결론을 내렸으며 기수에 정찰용 카메라나 추가연료탱크를 탑재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 검토결과에 따라 F-5의 기수에는 콜트-브라우닝에서 만든 2자루의 M39 20mm 기관포가 장착되었으며(각 기관포마다 285발의 탄약 탑재), 이와 함께 눈앞에 있는 목표물과의 거리만은 잴 수 있도록 에머슨사의 거리측정용 소형 레이더가 탑재되었다.
▲ 그리스 공군의 F-5A. 기수 부분에 난 두 개의 작은 구멍이 바로 M39 20mm 기관포자리다. 이처럼 실제로 양산된 F-5A들은 기수에 기관포를 탑재했다. 사진의 기체는 엔진이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공기흡입구 너머로 뒤쪽에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미 퇴역한 뒤 야외전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인승 버전인 F-5B에는 이 기관포가 끝내 탑재되지 않았다. 당시 관계자들은, F-5B는 일선에서 적과 싸우는 전투기라기보다는 새로운 전투조종사의 무장 훈련용 훈련기내지 F-5A 조종사의 훈련용 항공기로 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F-5B는 F-5A와 마찬가지로 각종 무장을 탑재할 수는 있으나, 기관포만은 탑재되지 않았다.
▲ 초창기의 F-5B. 좌석이 두 개라는 점에서 T-38과 흡사하지만 무장탑재 능력 등은 F-5A에 가깝다. 사진속의 기체는 날개 밑에 M117 750파운드 폭탄을 4발 탑재하고, 날개 끝과 동체 아래에는 보조연료탱크를 탑재하고 있다. 참고로 M117 폭탄은 베트남전 이후 폭약량은 적지만 대신 더 공기저항을 적게 만드는 Mk.82(500파운드)에게 주력 폭탄 자리를 내주었다.
하여간에 이 값싸고 단순한 전투기인 F-5A/B가 탑재할 수 있던 유일한 유도무기는 날개 끝에 장착할 수 있는 AIM-9 사이드와인더 단거리 열추적 미사일 2발 정도였다. 이 외에 F-5A/B는 날개와 동체 밑에 지상공격을 위한 비유도 로켓이나 폭탄류, 혹은 외부 연료탱크를 탑재할 수 있었다.
▲ 좌우 날개 끝에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단 F-5A. F-5A가 탑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대공 미사일이다. 하지만 초창기의 모습이라 정작 기수에 기관포는 없다.
정부가 초기에 돈을 대주지 않은 채로, 자신들의 돈으로만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은 노스롭으로서는 큰 모험이었다(보통은 정부에서 전투기의 개발비를 주고, 그 돈을 가지고 전투기 개발사가 설계를 진행한다). 하지만 노스롭은 자신들의 돈과 설비를 투자해서 N-156을 개발했고, 그 결과 T-38이라는 훈련기와 함께 F-5A/B라는 베스트셀러 전투기를 만들게 되었다. 특히 이 F-5A/B는, 처음에는 군사원조용으로 99대 정도가 만들어졌을 뿐이었으나 1972년 생산라인이 문을 닫을 때는, 이미 636대를 생산한 뒤였다. 아무리 값싼 전투기라고는 해도 이정도 수량은 상당한 양이었으며, 노스롭은 N-156에 대한 투자는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F-5A/B는 남베트남, 이란, 그리스, 플리핀, 태국, 터키, 모로코, 노르웨이, 파키스탄, 에티오피아, 태국, 리비아, 요르단, 예멘, 베네수엘라, 캐나다 및 우리나라 등,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 터키 소속의 F-5A 전투기 2대가 곡예비행을 펼치고 있다. F-5 및 T-38은 값이 싸고 유지비가 적게 들면서도 비교적 기동성이 좋다 보니 여러 나라에서 종종 곡예비행용으로 쓰기도 했다(우리 공군도 한 때 F-5계열 기종을 곡예비행용으로 사용했다). ▲ 이란 소속의 F-5B. 현재는 미국과 이란이 외교적으로 매우 사이가 안좋지만, 팔레비 왕조 시절에만 해도 이란은 미국 군수업체의 주요 고객이었다. ▲ 노르웨이 소속의 F-5B. 이 기체는 노르웨이의 신형 공대함 미사일을 연구하기 위해 일부분이 개조되었다. 날개 끝에 매달린 빨간색으로 칠해진 장비도 아마 미사일 발사 시험을 위해 임시로 만든 장비인 듯하다.
꼬마 호랑이 : F-5C F-5에 별로 흥미가 없던 미 공군이었으나, 막상 베트남전이 터지자 한 대의 전투기도 아쉬운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미 공군은 정부에 베트남전에 쓸 F-5 200대를 요청했다. 이것들은 F-5A/B와 비교해 몇 가지 사양이 개량된 버전으로, 1인승은 F-5C, 2인승은 F-5D라고 명명되었다. 이런 갑작스런 미 공군의 요청은 미 국방부에 의해 기각되었다. 그래도 미 공군은 하다못해 경전투기의 가능성만이라도 실전에서 시험해보겠다고 요청했고, 결국 미 국방부는 이 요청을 받아 들여 소수의 F-5를 미 공군에 주기로 했다.
이 F-5들이 F-5C였는데, 이것들은 미 공군을 위해 새로 생산된 것은 아니며, 원래는 원조용으로 생산된 F-5A 12대를 미 공군이 빌려온 것이다(나중에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6대를 더 빌려왔다). 이 전투기들은 기본적으로는 F-5A와 거의 같았으나 미 공군의 요청에 따라 몇 군데 개조되었다.
먼저 외관상 큰 변화는 공중급유를 위한 프로브가 붙은 점이었다. 이 공중급유용 프로브 덕에 F-5C는 더 먼 거리의 목표물까지 비행하거나, 혹은 더 오랜 시간 공중에서 대기하며 아군 측의 지상군에 대한 공중지원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F-5C는 주로 지상공격임무를 맡게 될 예정이었으므로, 대공포 등에 맞아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도록 동체 하부에 약 40kg 정도의 장갑판이 추가되었으며, 유사시 기체 무게를 줄일 수 있도록 무장을 탑재하는 파일런도 비상 투하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원래 F-5A/B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무장들을 비상 투하하면, 폭탄 같은 것만 떨어져 나가고 파일런은 그대로 기체에 남았다). 이 외에 조준기도 적의 비행경로 등에 따라 어느 지점을 조준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리드(Lead) 계산 조준기로 바뀌었다.
▲ 미 공군의 F-5C. 공중급유를 받으며 비행하고 있다.
초기에 미 공군이 얻은 F-5C 12대는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태평양을 넘어 미국에서 하와이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여기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태평양을 가로질러 베트남으로 향했으며, 도착한지 5시간 만에 첫 실전 임무에 참가했다.
미군은 F-5C의 실전 테스트 임무에 스코시 타이거(스코시는 꼬마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선 아래쪽에 좀 더 자세히 다루어 놓았다) 작전((Operation Skoshi Tiger)이란 이름을 붙였다. 스코시 타이거는 간혹 F-5C 자체를 부르는 이름으로도 쓰인다.
단어 선택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이 F-5C의 실전테스트 임무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F-5C는 지상근접지원, 후방차단, 무장정찰, 전자정보수집기 호위 등 다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심지어 본격적인 공중전 임무인 MIG CAP (미그기에 대한 경계임무)을 맡고 북베트남 상공을 비행하기도 했다. 다만 F-5C에게 덤벼드는 미그기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공중전을 경험하진 못했다.
▲ 베트남에 전개한 F-5C. 맞은 편에 보이는 전투기들은 F-100 수퍼세이버다.
F-5C는 베트남에서 보통 500파운드(약 226kg), 혹은 750파운드(약 340kg) 폭탄과 연료탱크 등을 약 2300파운드(약 1톤)에서 3000파운드(약 1.4톤) 가량 탑재하고 기지에서 이륙하여 180해리(NM)(약 330kmk) 밖의 목표물을 공격하고 돌아오곤 했다. 물론 F-5C가 베트남에 투입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실전 테스트였으므로 이런 일반 폭탄 이외에도 다른 종류의 폭탄이나 지상공격용 로켓을 탑재하고 임무를 수행하곤 했다.
F-5C는 베트남에서 약 4개월간 머무는 동안 높은 작전 준비상태를 보여줬다. F-5C는 비교적 구조가 단순한 경전투기이다 보니 고장이 날 요소가 적었으며 설사 고장이 나도 수리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친 야전환경에서 F-5C의 엔진 1개를 교체한 뒤, 비행시험을 수행하는데 까지 1시간 55분밖에 걸리지 않은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F-5C의 조종사들도 자신들의 전투기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이 전투기는 물론 F-105나 F-4 같은 대형 전투기에 비하면 무장탑재량이 훨씬 적었지만, 상대적으로 조종하기 쉬웠고 조종사가 원하는 대로 잘 움직이다보니 목표물을 더 정확히 조준하기 좋았다. 또한 경쾌한 기동성덕에 대형 전투기들에 비해 적의 대공포가 발견되면 즉각 회피하기가 더 쉬웠으며, 기체자체가 작다 보니 맞을 확률자체도 줄었다.
물론 실전을 통해 F-5의 결점도 드러났다. F-5는 대체로 이륙거리가 짧았으나, 만약 무장을 잔뜩 탑재하려면 상당히 긴 활주로가 필요했다. 무장을 많이 탑재하게 되면 항공기 무게에 비해 엔진 힘이 달려서 이륙에 필요한 속도까지 가속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또 기수 윗부분에 장착된 기관포를 발사할 경우, 그 연기가 전방유리창을 덮어 그을음을 남기는 바람에 조종사의 시야가 가려지기도 했으며, 특히 전방유리창이 젖어 있는 비오는 날이면 이 현상이 심했다.
드물게는 기관포 발사시 생긴 뜨거운 연기가 엔진으로 빨려들어가 엔진이 망가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F-5C가 750파운드급 네이팜탄을 투하하면, 제대로 분리되지 않고 공중에서 다시 튀어올라 날개 밑 부분을 치고 지나가는 현상도 발견되었다. 이런 실전을 통해 발견된 각종 문제점들은 미 공군의 정비사들과 노스롭의 협조하에 하나씩 해결되어 나갔다.
F-5C는 베트남에서 약 3500회 비행했으며 총 비행시간은 4000시간이 넘었다. 이 작전기간 동안 2대의 F-5C가 대공포에 의해 격추당했으나 전체적인 성능 및 작전능력은 미 공군의 기대 이상이었고, 이는 F-5의 새로운 성능 개량형, 즉 F-5E/F를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1 : 스코시 스코시가 일본어로 영어의 Little에 해당한다는 정도만 알 뿐, 필자는 일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주변에서 자문을 구하였다. 스코시(Skoshi)는 일본어의 ‘스코시(小し)’에서 온 말로, 일본어의 영어식 표기로 하자면 Sukoshi가 더 정확하다. 뭐 발음이야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스코시라는 단어를 타이거 앞에 붙이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 스코시라는 단어는 ‘작은’이라기 보단 ‘조금’이란 뜻에 가깝다. 즉 우리말로 ‘작은 호랑이’라고는 해도 ‘조금 호랑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일어에서 스코시는 ‘조금’에 해당하는 부사로, ‘작은’이라는 뜻을 나타낸다면 치이사이(小さい)라는 형용사를 쓰는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왜 미군은 문법을 틀려가며 그것도 남의 나라 말인 스코시란 단어를 쓴 것일까?
이는 스코시라는 말이 미군 내에서 작다, 꼬맹이라는 뜻의 속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즉 이 친구들이 일부러 일어사전을 찾아가며 굳이 잘못된 단어인 스코시란 단어를 붙인 것이 아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스코시란 단어가 미군 내에서 속어로(그것도 의미가 잘못된 채로) 쓰이게 된 계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하여간에 스코시 타이거란, 미군 입장에서는 ‘꼬마 호랑이’ 정도의 의미가 된다. 일본인들 입장에선 ‘조금 호랑이’ 라는 이상한 말이 되지만...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2 : M39 20mm 기관포 2차대전 말엽, 독일의 총기 제작회사 마우저는 MG213이란 기관포를 개발했으나, 너무 늦게 개발한 나머지 이 기관포를 실험만 해보고 생산까진 하지 못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이미 다양한 20mm 기관포가 있었으나, MG213의 구조는 독특했다. 이 기관포는 마치 리볼버 권총처럼 약실이 여러 개 있었으며, 이것은 돌아가면서 탄이 장전되고, 탄을 격발시키며, 탄이 빠져나간 탄피를 빼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를 리볼버식 기관포라고 하는데, 이는 총에서 화약이 터질 때 상당히 많은 힘이 가해지는 약실을 여러 개로 나눠서 연사를 하는 동안 이 부분이 연속적으로 받는 힘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 사진과 같은 리볼버 권총들은 보통 5~7개 정도의 약실에 미리 총알을 꽂아 넣은 다음,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격발되는 것과 동시에 다음 총알이 위로 올라와 준비상태가 된다. 탄창을 사용하는 권총에 비해 장전할 수 있는 총알 수량은 적지만 고장날 확률이 적어서 현재도 경찰이나 조종사 호신용 권총 등으로 많이 쓰이다. 참고로 사진속의 리볼버 권총은 웨블리 Mk.IV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박창이(이병헌)가 들고 다니던 것과 같은 모델이다.
이런 개념만 놓고 보자면 개틀링 기관포와 비슷하지만, 개틀링과 달리 이 리볼버식 기관포는 총알이 지나가는 길, 즉 총열 자체는 하나이고 약실만 여러 개다. 이때문에 개틀링 방식의 기관포 보다는 연사속도가 떨어지지만, 대신 훨씬 부피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최소한 종전의 기관포 보다는 빠르고 안정적으로 포탄을 쏠 수 있었다.
▲ 리볼버식 기관포를 설명한 그림. 먼저 탄약이 약실로 향한다. 그리고 탄약이 반 정도 약실로 들어가고, 약실이 돌아가면서 탄약은 완전히 장전된다. 그리고 약실이 총열과 일치되면 탄약이 격발된다. 그리고 격발되고 나서 빈 탄피는 약실이 돌면서 빠진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러한 리볼버 방식 기관포 작동 방식을 받아들여서 각각 새로운 기관포인 아덴(ADEN)과 DEFA를 개발했다(단 두 기관포 모두 구경은 더 큰 30mm급이다). 미군 역시 T-160이란 이름으로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리볼버식 20mm 기관포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 기관포를 당시 화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던 F-86에 시험적으로 달아서 6.25가 진행중이던 1953년 말엽에 실전에 사용해 보았다(F-86은 원래 12.7mm 기관총(즉 MG50이나 M-2 중기관총이라 부르는 기관총) 6정을 사용했다).
이후 이 기관포는 정식으로 군에 채용되면서 M39란 이름이 붙었으며, F-86H 전폭기, F-100 수퍼세이버, F-101 요격기 및 F-5 전투기에 장착되었다. 그리고 더 뒤로 가면 이전에 설명한 바와 같이 개틀링 방식인 M61 발칸 기관포가 미군 전투기의 표준 무장으로 자리잡게 된다.
▲ 박물관에 전시된 M39 20mm 기관포.
▲ 리볼버 구조가 확대된 사진. 약실 자체는 리볼버 권총의 그것과 꽤나 비슷해 보인다.
한편 영국과 프랑스는 여전히 ADEN 및 DEFA 기관포를 고집하는데, 대체로 유럽 쪽은 연사속도는 개틀링보다 느리지만 탄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더 강한 30mm 기관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러시아 역시 주력 전투기인 SU-27과 MIG-29에 Ghs-30-1 30mm 기관포를 탑재했는데, 이 기관포는 리볼버 방식도 아니고 더 전통적인 가스작동 방식이다(즉 일반적인 기관총과 유사하다). 러시아는 굳이 기관포의 연사속도를 높일 필요가 없으므로, 기관포에 있어서 리볼버 방식마저도 너무 무겁고 거추장스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사제공= 주간 공군웹진 공감 / 필자 이승진 |
'軍史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초에 걸린 대양해군 건설 (0) | 2009.06.16 |
---|---|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0) | 2009.06.13 |
북한군의 "핵EMP"대응방안 (0) | 2009.06.09 |
"홍상어" 개발성공 (0) | 2009.06.08 |
북한군 "최신무기" 대응체계 (0) | 2009.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