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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밝은 달, 달나라의 계수나무

醉月 2009. 4. 24. 09:15

휘영청 밝은 달, 달나라의 계수나무

달 속의 옥토끼와 계수나무

 

달 구경. (19세기 후기 조선회화 ‘경직도 병풍’ 부분도)

 

 

우리 조상들은 한가위가 되면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쳐다보며 한 해 동안 고생으로 얻어진 수확의 넉넉함을 즐겨왔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이어지는 윤극영의 동요처럼,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가슴에 담아 천년만년 오순도순 평화롭게 사는 이상향을 그려온 것이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조금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달나라 이야기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의 낭만이자 꿈이었다. 비록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내려서면서 꿈은 깨져 버렸지만 마음속의 달에는 계수나무도 옥토끼도 그대로 살아 숨 쉰다.

 
그러나 우리와 계수나무와의 첫 만남은 달나라가 아니라 《삼국유사》 가락국기 안에서 이루어졌다. 김수로왕이 허왕후를 모시러 바다 가운데로 신하를 보낼 때 좋은 계수나무로 만든 노로 저어 가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아리송한 나무 ‘계수나무’

 

아득한 옛날부터 민속신앙의 한 가운데 있던 달은 나라마다 여러 가지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냈다. 특히 달 표면의 거무스레한 얼룩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계수나무와 토끼 이야기가 만들어졌는데, 먼저 중국의 이야기를 잠깐 살펴보자.


옛날 중국의 오강(吳剛)이라는 사람은 신선이 되는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잘못하여 월궁(月宮)의 계수나무를 자른 죄로 옥황상제로부터 벌을 받게 되었다. 결국 그는 달나라로 귀양을 가서 도끼로 계수나무를 찍어 넘기는 힘든 일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오강이 계수나무를 찍을 때마다 상처 난 곳에서 금세 새 살이 돋아났다. 오강의 처절한 도끼질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달나라의 계수나무는 넘어지지 않고 영원히 건재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도끼로 계수나무를 찍어 넘기는 오강(吳剛).

 

 

또 회남자에 실린 중국의 고대신화에는 달 이야기가 다르게 실려 있다. 항아(姮娥)라는 여인은 남편 예(羿)가 신선 서왕모(西王母)로부터 어렵게 구한 불사약을 놓고 잠깐 외출한 사이, 혼자서 두 사람 분을 먹어치우고 그대로 달나라로 도망쳐버린다. 그녀는 달나라에서 두꺼비가 되었다고도 하고 토끼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나중에 달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설화들이 뒤섞여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내용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달나라로 도망가는 항아(姮娥).

 

달을 대상으로 한 옛사람들의 시나 노래에 계수나무가 수없이 등장한다. 실제로 지구상의 어떤 나무를 형상화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상상 속의 나무일뿐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유양잡조>에는 ‘달 가운데의 계수나무 같은 것은 땅의 그림자이고, 빈 곳은 물의 그림자이다’라 하여 달의 실체를 벌써 알고 있었던 듯도 하다.


그렇다면 계수나무의 실체에 접근해보자.

당나라 시인 왕유는 "산속에 계수나무 꽃이 있으니, 꽃이 싸락눈 같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빨리 돌아오시구료"라고 하였다. 또 조선 중기의 문신 윤휘는 중국 수도에 가서 9월에 계수나무 꽃이 한창 핀 것을 보았는데, 꽃의 작기가 싸락눈 같다고 하였다. 또 성종14년(1483) 중국 사신이 임금에게 지어 올린 시에 ‘늦가을 좋은 경치에/……계수나무 향기가 자리에 가득하네.’라고 하였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계수나무가 실제로 무슨 나무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싸락눈 같이 작은 꽃, 피는 시기는 가을, 향기가 강한 꽃 등이 특징이다. 기록과 일치하는 나무는 따뜻한 지방에서 흔히 정원수로 심는 ‘목서’라는 나무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름드리로 자라지 않으므로 달 속의 계수나무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계림(桂林)의 계수나무 목서

중국 사람들은 목서 종류를 은계, 금계, 단계(丹桂) 등으로 부른다.

 

 

중국의 이름난 관광지 계림(桂林)의 계수나무는 바로 이 목서다. 중국 사람들은 목서 종류를 은계, 금계, 단계(丹桂) 등으로 부른다.

 

그 외 우리 주변에 흔히 자라는 나무 중 달나라의 계수나무와 혼동되는 이름의 나무가 몇 있다. 월계수부터 알아보자.


희랍 신화에 나오는 해의 신 아폴론은 짝사랑하던 다프네를 끈질기게 쫓아가자 그녀는 한 그루의 나무로 변해버린다. 그 후 아폴론은 이 나무로 머리장식을 만들어 항상 몸에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본 따 승리자에게 나뭇가지로 얽어 짠 월계관을 씌워 주어 월계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 그대로 뜻을 밝히면 ‘달나라의 계수나무’가 되니 누구라도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지중해 연안이 고향인 ‘월계수’는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서 일부러 키우거나 잎에서 향료를 얻기 위해 심는 나무에 불과하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해의 신 아폴론(Apollon).

 

희랍 신화에 나오는 해의 신 아폴론은 짝사랑하던 다프네를 끈질기게 쫓아가자 그녀는 한 그루의 나무로 변해버린다. 그 후 아폴론은 이 나무로 머리장식을 만들어 항상 몸에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본 따 승리자에게 나뭇가지로 얽어 짠 월계관을 씌워 주어 월계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수정과의 톡 쏘는 매운 맛을 내는 데 향신료로 쓰이는 계피나무와, 한약재로 주로 이용되며 약간 단맛과 향기가 나는 육계나무도 달나라의 계수나무와 헷갈린다. 이들은 원래 중국남부에서 자라며 늘푸른잎을 달고 있는 평범한 나무일뿐인데 이름에 들어 있는 글자 탓에 흔히 계수나무로 불린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수목도감에도 ‘계수나무’란 이름을 가진 나무를 심고 가꾼다. 예부터 우리 강토에 자라던 나무가 아니다. 중국과 일본을 원산지로 하는 수입 나무다. 특히 우리 주변에 보이는 계수나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것들이다.

 

 

‘광릉 수목원’에 있는 계수나무.

(사진출처 / Daum blog ‘추억여행’님)

 

 

그들은 한자로 ‘계(桂)’라고 쓰고 ‘가쯔라’라고 읽는다. 처음 수입한 분이 글자만 보고 계수나무라고 하여 그대로 공식 이름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 꿈과 추억을 남겨준 달 속의 계수나무와 같은 이름을 쓰게 되었으나, 달나라 계수나무도 옥토끼도 이 나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옛 사람들이 그려놓은 옥토끼와 계수나무

 

달 속의 계수나무와 옥토끼는 한국인의 정서에 추억으로 남아있다.

 

해는 바로 볼 수 없지만, 달은 쳐다볼 수 있다. 볼 수 없는 것은 경외의 대상이 될 뿐이지만, 올려다 볼 수 있는 것은 소망을 빌어도 되는 상대로 여겨진다. 해는 빛을 내쏘아 자신을 볼 수 없게 하지만, 달은 스스로를 비추어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아마도 이런 차이가 해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많지 않게 하고, 달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풍부해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평양시 삼석구역 로산리에는 내리1호분이라는 고구려 후기의 벽화고분이 있다. 산기슭 구릉지대의 낮은 경사면에 조성된 무덤의 널방 벽에는 四神의 흔적이 일부 남았고, 천장고임에는 인동문과 동심원문, 연꽃, 둥근 원들이 남아 있다. 아스라이 구름에 가려진 채 모습을 드러낸 산봉우리들을 배경으로 서쪽 천장고임 한가운데 그려진 둥근 원안에 나무 두 그루, 나무 밑동 곁의 어떤 물체의 바닥 부분, 짐승의 발이 있다.

 

동쪽 천장고임 한가운데에도 커다란 원이 그려졌지만 위쪽의 선 일부와 그 안쪽의 검고 둥근 부분 외에는 남아 있지 않다. 역시 배경은 아래쪽이 구름에 가려진 산봉우리들이다. 둥근 원의 위치와 서쪽 천장고임 원 안의 그림 내용으로 보아 동쪽의 것은 해, 서쪽의 것은 달이 틀림없다.

 

 

고구려 고분벽화, 내리1호분(평양시 삼석구역 로산리)의

서쪽 천장고임에 그려진 달의 모습.

 

 

서쪽 천장고임 원 안의 나무는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그려졌지만, 달 속에 있다는 계수나무이고, 나무 밑동 곁의 물체는 불사약을 찧는 약절구이다. 그렇다면 약절구 오른쪽의 발은 옥토끼의 뒷발일 것이다. 달 속 계수나무 밑에서 옥토끼가 불사약을 찧는 장면이 벽화로 그려졌지만 많은 부분이 지워진 채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옥토끼가 약절구에 불사약을 찧는 모습은 개마총 벽화에도 보인다. 그러나 개마총 널방 천장고임 달 속의 약절구 곁에는 계수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옥토끼 뒤에서 약 찧는 모습을 지켜보는 두꺼비가 엎드려 있을 뿐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달 그림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집안과 평양 일대에서 달 그림이 확인되는 벽화고분만 30기에 가깝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분벽화에서 달은 원 안에 두꺼비가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약 찧는 옥토끼가 등장하는 사례는 제한되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 묘실 천장 받침돌에 그려져있는 ‘달의 신’

 

 

집안지역의 경우, 장천1호분에서만 약 찧는 옥토끼가 보이며, 평양권에서는 6세기 이후의 벽화고분에서 몇 차례 모습을 보인다. 5세기말부터 6세기 초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덕화리1호분, 덕화리2호분의 달 속에 등장하는 옥토끼는 약절구를 앞에 두고 있지 않다.

 

더욱이 내리1호분의 달 속에서처럼 약 찧는 옥토끼 곁에 계수나무가 표현되는 또 다른 경우로는 진파리1호분, 진파리4호분 벽화의 달을 들 수 있을 뿐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달에서 약 찧는 옥토끼와 계수나무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례는 아직까지 셋에 불과한 셈이다.

 

한대(漢代)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음양설에 따르면 옥토끼는 양(陽), 두꺼비는 음(陰)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달 안에 옥토끼와 두꺼비를 함께 그리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이 때문인지 한(漢)의 화상석이나 帛畵, 한~당대 중국의 고분벽화에서 원 안에 옥토끼와 두꺼비가 함께 묘사된 달 그림을 찾아보기는 쉽다.

 

 

서왕모(西王母)의 권속인 두꺼비와 옥토끼,

약절구에 불사약을 만드는 모습을 새긴 화상석.

 

 

두꺼비와 옥토끼는 한대 중국사회를 풍미한 서왕모(西王母)의 권속이기도 했으므로 서왕모 곁에서 약절구를 사이에 두고 함께 불사약을 찧는 두 짐승의 모습이 화상석, 혹은 고분벽화 안에서 오히려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전 중국의 장의미술 작품 속에서 약 찧는 옥토끼가 계수나무와 함께 표현된 달 그림은 찾기가 쉽지 않다. 계수나무는 후한시대까지 사천지역 화상전의 달 속에서만 간간이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달의 상징요소로서는 낯선 존재였다.

 

 

서왕모(西王母) 곁에서 약절구를 찧고있는 옥토끼,

중국 산동 가산 송산촌 출토된 한대(漢代)의 화상석이다.

 

 

계수나무가 달 속에 그려지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된다. 참고가 되는 것은 계수나무의 껍질과 어린 가지는 예부터 혈액순환과 해열에 효능이 있는 한약재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어떤 문헌에서는 계수나무 열매를 불사약의 주요한 재료 가운데 하나로 언급하기도 한다. 아마 달 속의 옥토끼가 찧는 약절구 속 仙藥의 재료들에 계수나무 열매도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민화 ‘옥토도구도’

 

 

문득, 고구려 고분벽화  달 속의 옥토끼와 계수나무에 대해서도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내리1호분  벽화의 계수나무에도 天香을 뿜는 열매들이 달렸을까. 뒷발 아래 부분만 남은 벽화 속 옥토끼가 열심히 찧고 있는 밑동만 보이는 약절구 안에도 계수나무의 열매가 넣어졌을까. 한 가지 더, 옥토끼가 찧던 불사약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