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은 어떤 모습?
북한 특수부대의 침투를 저지한 대한해협 해전
2009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59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공격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신생독립국가로서의 기틀을 튼튼히 하기도 전에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북한 해군은 각종 함정 30척과 80여 척의 보조선 및 육전대, 기타 병력을 합쳐 2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해군은 함정 33척과 6,900명의 병력만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전투력이었지만 대한민국 해군은 북한 해군과의 초기 해전을 승리로 이끌며, 이후 휴전이 이뤄질 때까지 연합군과 함께 해상주도권을 가지고 완벽한 해상 봉쇄작전을 전개합니다.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에 참가해 시가행진하는 해군
오늘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전투태세를 갖추고, 남해안으로의 북한 특수부대 침투를 막아 후방 교란작전을 좌절시킨 대한해협 해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해군 최초의 전투함을 보유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대한민국 해군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을까요? 대한민국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 창설된 해방병단을 기반으로 하여, 1948년 9월 5일 정부수립과 함께 조선해안경비대에서 해군으로 정식 발족됩니다. 하지만 보유한 함정의 대부분은 전투함이 아닌 소해정으로 변변한 함포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이에 해군은 1949년 6월 함정건조기금 거출위원회를 결성하여 1만 5천달러를 모금하였고, 정부의 지원을 더하여 마침내 1949년 10월 미국으로부터 해상순찰선으로 쓰이던 함정 1척을 도입하게 됩니다.
▲ ‘백두산함’의 인도식이 보도된 미국 현지 언론 기사
1949년 10월 17일 뉴욕항에서 미 해양대학교로부터 이 함정을 인수함으로써 대한민국 해군이 최초로 전투함을 보유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1949년 12월 26일 ‘백두산함’(PC-701) 명명식에 참석한 손원일 제독
‘백두산함’(PC-701)으로 명명된 이 함정은 하와이의 진주만기지로 이동하여 3인치 함포를 장착하고 정비를 거친 후 이듬해 4월, 마침내 진해로 입항합니다.
▲ 하와이 진주만에서 3인치 함포를 장착 중인 백두산함
해군은 이후 구잠함 3척(PC-702, 703, 704함)을 추가로 구입하며 면모를 갖추어 갑니다.
한국전쟁 최초의 해전, 옥계 전투
전투함의 도입과 함께 인천․목포․진해․동해 등지에 해역 기지를 설치하고 체계적인 해상경비 체계를 정립하며 전투력을 키워가던 해군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발발과 동시에 북한 해군의 침략에 직면합니다. 6월 25일 새벽, 북한군 549육전대 1800명과 766유격대 1300여명이 강원도 옥계, 정동진, 금진 등지에 상륙합니다. 07시 20분, 긴급 출항한 해군의 AMS-509정은 옥계 근해에서 북한군 PC 1척을 공격하여 퇴각시켰고 15시에는 상륙정 1정을 격침하고 기동선 1척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립니다.
북한 특수부대를 막아라! 대한해협 해전
진해에서 훈련에 매진하며 전투태세를 유지하던 백두산함(PC-701, 함장 중령 최용덕)은 6월 25일, 동해에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해를 출항하여 동해로 향합니다. 오후 7시 30분, 부산 동북방 50km 해상에서 백두산함은 수상한 검은 연기를 발견합니다.
▲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PC-701 백두산함
발광신호를 통해 교신을 시도하나 괴선박이 이를 계속 무시하자 백두산함은 100미터까지 접근하여 관측을 시도합니다. 괴선박에 설치된 기관총과 무장 군인들을 통해 괴선박이 북한의 수송선임을 확인한 백두산함은 3인치 주포로 위협 및 경고사격을 실시하고 북한 수송선도 이에 응전하며 대한해협 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 대한해협 해전도
6월 26일 00시 10분부터 한 시간 가량 계속된 치열한 교전 끝에 마침내 북한의 수송선은 백두산함의 함포에 명중해 침몰하게 됩니다. 남해안으로의 침투를 목적으로 특수부대를 수송하던 북한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당시 북한의 수송선은 약 1천 톤급의 증기선으로 57미리 함포 1문을 갖추고 600여명의 병력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들의 남해안 침투가 성공했다면 전쟁 초기 후방이 교란되며 전세가 매우 불리해졌을 것입니다.
▲ 1950년 5월 20일, 한국전쟁 발발을 한달여 앞두고 촬영된 백두산함 승조원들의 기념사진입니다. 대한해협 해전으로 이 중 2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59주년인 2009년을 맞이한 오늘 이 분들의 희생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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