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중국 옛美人과 漢詩

醉月 2009. 2. 23. 21:06

 다섯번째에 있는 우미인의 그림을 PC 바탕화면으로 쓰고있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다음카페에 있는 "중한공업교류"의 글을 살짝(?)

수정하여 올려본다. 그림에 있는 한시를 해석하면 너무 애잔하다

 

一生一代一雙人    한 인생살이 에 한 쌍의 연인이 있어
爭敎兩處銷魂      전쟁이 두 사람의 영혼을 흐리게 하네
相思相望不相親   그대 그리워 보고싶어도 만나볼 수 없는 것
天爲誰春           하늘은 누굴 위해 봄을 오게 하는 것일까?

 

우미인을 위해서 항우도 살펴본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뒤덮을 만하다)로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項羽). 생의 마지막 전쟁터에서 사방을 적에게 포위당한 채 몇 남지 않은 군사를 이끌고 생사를 건 필사의 탈출을 해야 하는 급박한 처지에 이르자 최후의 이별을 준비하는 술자리를 마련한다.


자신의 처지가 마지막에 이르렀음을 직감한 항우는 시운이 다했음을 탄식하며 뒤에 떨어지게 될 사랑하는 부인 우미인(虞美人)의 안전을 걱정하며 나아가길 망설이게 된다. 항우의 초췌해진 모습에 마음 아파하던 우미인은 항우의 분발을 자극하며 자신으로 인해 항우의 탈출에 짐이 될까 하여 항우의 칼로 자진하여 생을 마감하게 된다.

bb17.JPG

                          <우희의 무덤가에 피어 난다는 우미인초> 

 

우미인의 죽음에 오열하던 항우는 사력을 다한 전투로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아갈 수 있었으나 전쟁에서 대패한 장수로서의 책임감에 자신 또한 오강(烏江)에 이르러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이로써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유방(劉邦)은 다시 천하를 통일하고 기원전 202년에 한(漢)나라를 열고 고조(高祖)가 되어 새로운 제국을 열어가게 되었다.


 한(韓) ·위(魏) ·초(楚) ·연(燕) ·조(趙) ·제(齊)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춘추전국시대를 천하평정하며 BC 221년에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형성했던 진시황(秦始皇)이 불로장생의 선약을 구하지 못하고 제국 통일 11년만인 BC210년에 오랜 시간 자신의 사후를 위해 파 놓았던 지하무덤으로 들어가게 되자, 다시 세상은 천하 제패의 권력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209년 7월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반란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혼란이 확대되었으며 BC 206년 마침내 진이 멸망하자 항우와 유방이 패권을 놓고 3년간의 초한(楚漢)전쟁을 벌여가게 된다.


항우의 이름은 적(籍)이고 우(羽)는 자이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항우가 젊은 시절 회계산(會稽山)에 행차하는 시황제의 성대한 행렬을 보고 “저 녀석을 대신해 줄 테다”라고 호언하였다고 적고 있다. 항우는 BC 209년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난으로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숙부인 항량(項梁)을 도와 함께 군사를 일으킨다. 항우의 조부는 진나라 대군을 맞아 훌륭하게 전투를 치르며 초나라를 지키다 끝내 숨진 초나라 명장 향연이다. 항우는 조부인 향연과 향연의 아들로 반진(反秦) 활동을 한 숙부 항량 밑에서 어려서부터 장부의 기개를 익히며 천하패권의 꿈을 키워가게 된다.

 

각 곳에서 진나라 군대를 격파하며 승승장구의 기세를 떨쳐가던 항량과 항우의 초나라 군사는 여러 지역을 차례로 점령해가며 대규모 병력을 소유한 반진(反秦) 세력의 주축이 되어갔다. 그러나 한 때 파죽지세의 세력에 방심하고 안주하다 군대를 수습한 진나라 장수 장한의 기습을 받아 초군은 대패하고 항량은 전사하였다. 전기를 회복한 장한이 여세를 몰아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초회왕은 송의(宋義)를 상장군, 항우를 부장에 임명하여 이를 막도록 하였다. 그러나 상장군 송의가 오랜 시간 진격을 망설이며 머뭇거리자 항우는 송의가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그를 죽이고 상장군에 임명되어 진나라 진영을 격파하였다. 이때부터 진에 대적하던 다른 제후들은 항우의 명령을 따르게 되었으며 항우는 진나라 장수 장한의 투항을 받고 관중(關中)을 점령하여 천하패권의 꿈을 가시화하기 시작하였다. (* 破釜沈舟(파부침주) - 진을 공격하기 전 항우는 진과의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하수를 건너자 모든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깨트린 다음 막사를 불태웠으며 삼일을 버틸 양식만을 지니게 하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

 

그러나 항우는 관중(關中)을 세력발판의 근거지로 삼을 것을 충언하는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초나라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었다. (* 錦衣夜行(금의야행) -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다’는 뜻으로 진(秦)의 도읍이었던 함양(咸陽)에 입성한 항우가 관중을 중시할 것을 간하는 신하들의 충언을 무시하고 "부귀를 이룩하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 이 때 책사 범증(范增)을 비롯한 항우의 참모들은 관중을 노리고 있는 유방 또한 후사를 위해 제거할 것을 충간하였지만 항우는 이것 역시 수용하지 않았고, 이런 항우의 행동은 결국 뒷날 31세(BC 232 ~ BC 202)의 젊은 나이로 자결하게 되는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 홍문(鴻門)의 연회 - 항우의 책사 범증과 참모들은 항우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홍문에서 연회를 베풀어 그 자리에서 유방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항우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항우가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않아 유방은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나게 되었다.)


초(楚)로 돌아온 항우는 초회왕을 명목상의 황제인 의제(義帝)로 삼고 유방을 한왕(漢王 - 한 원년. BC 206)에 봉하였으며, 자신은 팽성(郴縣)에 도읍을 정해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항우는 얼마 후 초ㆍ한 간의 정전협정을 배신하고 기습공격을 가한 유방의 군대에 의해 해하(垓下)의 절벽으로 내몰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태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항우를 언급함에 있어서는 그의 견줄 수 없는 힘과 용맹함 이외에 부인이었던 우미인(虞美人)과의 사랑 그리고 용마(龍馬)인 그의 말 오추마의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우연히 접한 우미인초의 아름다움과 그 꽃이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함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하루에 천리 길을 달린다는 중국의 삼국시대 촉(蜀)나라 장수 관우가 타던 적토마(赤兎馬)는 세상에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의 우열을 가릴 것도 없이 오추마와 적토마는 한 시대 영웅들과 함께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그 용맹을 과시한 영물(靈物) 중의 영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어느 날 용이 하늘에서 한 호수로 내려왔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용은 호수에서 날뛰며 큰 움직임을 일으켰고 그것을 본 마을사람들은 그 광폭한 행동에 호수에 접근도 하지 못했었다. 우연히 항우와 그 일행이 이 호숫가를 지나다 사납게 날뛰고 있는 용마를 보게 되었다. 항우가 그 모습에 감탄하며 등에 올라타자 용마는 미친 듯 날뛰었지만 항우는 끝내 용마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티었다. 항우의 용맹함에 기운을 상실한 용마는 더 이상 뛰지 못하고 항우에게 복종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말이 항우와 이후 생사고락을 같이 한 오추마인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그 마을 농민 중 한 부농이 항우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보고 자신의 집으로 들기를 항우에게 권했다. 그 자리에서 농부는 자신의 딸인 우희(虞姬)를 아내로 맞이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바로 이 여인이 항우가 유방의 군대에 포위돼 자신 때문에 나아가길 망설이자 항우의 탈출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미인이었다. ‘말(馬)은 오추마, 미인(美人)은 우미인’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미인 역시 아름다움이 출중한 절세가인(絶世佳人)이었다.

 

유방의 군사에게 쫓겨 해하(垓下)의 절벽으로 내몰린 항우와 그 군사는 피로와 병력의 열세로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진지를 벗어나 유방의 군대로 투항하는 초나라 군사의 수는 증가해갔고 사방에서는 남아 있는 항우 군사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초나라의 노래가 흘러들고 있었다.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어려움을 겪으면서 승리해온 항우는 최후의 결정을 해야 함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전쟁터마다 자신과 같이하며 지내온 사랑하는 부인인 우미인과 부하 장수들과의 마지막 이별의 술자리를 베풀게 된다. 이 자리에서 항우는 자신의 절박한 처지와 우미인의 안전을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이것이 바로 ‘해하가(垓下歌)’이다.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아낼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만한데

時不利兮騶不逝 형편이 불리하니 오추마도 나아가질 않는구나

騶不逝兮可奈何 오추마가 나아가질 않으니 내 어찌할 것인가

虞兮虞兮奈若何 우미인아 우미인아 너를 어찌할거나


전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안 항우는 ‘오추마가 나아가질 않는다’란 것으로 싸움의 가능성이 없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적지를 필사 탈출해야 하는 위기의 상황에 우미인을 데려가지도 남기고 갈 수도 없어 그녀의 안전을 걱정하는 절박한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천하를 호령하던 젊은 한 장수의 평범한 인간적인 면을 느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미인은 다음과 같이 화답하며 항우에게 분발할 것을 촉구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漢兵已略地 한나라 병사들이 이미 모든 땅을 차지하였고

四方楚歌聲 사방에서 들리느니 초나라 노래뿐인데

大王意氣盡 대왕의 뜻과 기운이 다하였으니

賤妾何聊生 천한 제가 어찌 살기를 바라겠나이까


우미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칼을 빼들어 자진하고 만다.


이를 바라보던 항우는 우미인의 죽음을 보살펴주고 이내 굵은 피눈물을 두 주먹으로 훔치면서, 말을 소유하지 못한 병사들은 뒤에 남아 자유로 훗날을 도모할 수 있게 한 다음 자신을 따르는 기병들만을 데리고 적진을 돌파해 간다. 가까스로 오강(烏江)에 다다랐을 때, 항우의 뒤를 따르는 군사는 겨우 28기 밖에 되질 못하였다.


유방의 군사가 뒤쫓아 오는 급박함 속에 오강의 정장은 항우에게 후일을 기약하길 충언하며 배에 오르길 간청하였으나, 항우는 돌아갈 자격 없음을 말하고 오추마를 정장에게 건넨 후 추격해 온 유방의 군사들과 최후의 결전을 펼치다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정강에 의해 배에 올라 이끌려가던 오추마도 주인의 죽음을 알았는지 크게 울음의 소리를 낸 뒤 오강에 뛰어들어 죽음을 택하게 된다.


결국 항우는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다 마지막 싸움에서 패함으로써 31세의 젊은 나이로 우미인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고, 유방은 한의 고조가 되어 진의 통일제국 이후 다시 천하를 재패하게 되었다.


훗날 슬피 숨져간 우미인의 무덤가에서 작은 바람에도 엷게 떠는 비단결 같은 꽃잎의 꽃이 피어났는데, 이후 사람들은 이 꽃을 우미인의 영혼이 환생한 것이라 하며 ‘우미인초’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貂 仙

 宮 詞(何 滿 子)   -張 祜-
故國三千里  고향은 삼천리 머나먼 길이리니 
深宮二十年  궁에 들어 온지 벌써 20년이 되었건만  
一聲河滿子  하만자  한 곡조 그 슬픈 노래에 
雙淚落君前  군왕 전 두 눈에 눈물 비 오듯 쏟아지네 

 趙 飛 燕

傾國之色      -李 延 年- 
北方有佳人  북방의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데,
絶世而獨立  절세의 미인으로 홀로 서 있네. 
一顧傾人城  한 번 돌아보면 성을 기울게 하고  
再顧傾人國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기울게 할 것이니
寧不知傾城與傾國 어찌하여 성 기울고 나라 기울음을 모를 리마는   
佳人難再得  미인이란  다시 얻기 어려우리

 楊 貴 妃

春 怨          -金 昌 緖-
打起黃鶯兒 저 꾀꼬리를 막대로 때려 날려보내
莫敎枝上啼 나뭇가지에서 울지 못하게 하리라 
啼時驚妾夢 꾀꼬리 울음소리에 놀라 꿈 깨고 일어나니.     
不得到遼西 꿈속에서 당신 있는 요서에 다다를 수 없구려

 王 昭 君

春宮怨  -杜 荀 鶴-
春暖風聲碎   따뜻한 봄날 바람 한 점 없는 이 좋은 날
日高花影重   하늘 높이 뜬 햇살이 꽃잎에 어른거린다
年年越溪女   해마다 월계의 미녀들은
相憶採芙蓉   연꽃 딸 일을 기억하리라

 美人

畵 堂 春      -納蘭性德(淸 중기 만주인)-
一生一代一雙人    한 인생살이 에 한 쌍의 연인이 있어
爭敎兩處銷魂      전쟁이 두 사람의 영혼을 흐리게 하네
相思相望不相親    그대 그리워 보고싶어도 만나볼 수 없는 것
天爲誰春          하늘은 누굴 위해 봄을 오게 하는 것일까?

 포사

長相思 오래된 그리움    -李 白-
日色欲盡花含煙 해 저물어 꽃잎은 저녁놀에 싸이고               
明月如猿愁不眠 달 밝아 밤 멀리서 수심에 잠 못 이루는데
趙瑟初停鳳凰柱 한궁 趙飛燕 비파 봉황주(漢成帝) 세우고 
蜀琴欲奏鴛鴦絃 촉 나라 거문고 원앙현 뜯어 군왕께 화답하네

 寒 食           -韓, 友 +羽 굉(盛唐人)-
春城無處不飛花  봄이오니 성곽도처에 꽃 날아 떨어지고
寒食東風御柳斜  한식날 봄바람에 궁성 버들나무만 휘 늘어졌다
日暮漢宮傳蠟燭  해거름에 궁중에서 촛불을 밝혀주니
靑煙散入五候家  그 은총 흩어져 권문세가로 돌아간다.

 조식의 견부인

楓橋夜泊    張 繼(中 唐시인)
月落烏啼霜滿天 달 기울고 까마귀 우는데 서리기운 은 하늘에 가득하다.
江楓漁火對愁眠 강가의 단풍나무, 고기잡이 불에 시름겨워 뒤척이는
姑蘇城外寒山寺 고서성 밖 한산사로부터
夜半鐘聲到客船 한 밤중 종소리 나그네 배에 이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