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홍콩은 風水가 지배한다

醉月 2009. 2. 19. 03:44

홍콩은 風水가 지배한다

바람과 물, 즉 풍수(風水)가 홍콩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는 의미의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나온 풍수를 빼면 홍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홍콩에서는 대형 건축물이나 서민의 집 설계는 물론, 사무실의 책상 방향과 이사·개업 날짜, 개명(改名) 등도 풍수사의 조언을 받는 경우가 많다. 홍콩의 풍수에 얽힌 모습들을 들여다보자.


▲ 1 음력 정월 초하루`(지난 1월 26일) 새벽에 홍콩의 대표적인 도교사원 웡타이신사 대전 앞에서 홍콩 사람들이 향을 피우며 새해 건강 등을 기원하고 있다. 2 홍콩의 센 음기를 누르기 위해 남성의 성기 모양으로 지었다는 센트럴 소재 2IFC 건물. 3 홍콩섬 센트럴에 있는 HSBC은행 본사의 지층부 모습. 뒤쪽의 태평산과 앞의 빅토리아 하버의 기운을 막지 않기 위해 1~2층이 뻥 뚫려 있고 3층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4 태평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센트럴 모습. HSBC은행 옥상에 설치된 대포 모양의 기중기(①번 원 안)가 오른쪽 칼자루 모양의 중국은행(②번 원 안)을 향하고 있다. HSBC은행이 중국은행에 기(氣)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런 기중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정월 초하루 이색 풍경

최대 도교사원 웡타이신사에 매년 수십만명
사원 측은 “제발 오지 말라” 신문에 광고까지


음력 정월 초하루가 시작되는 1월 26일 0시. 홍콩 최대의 도교사원인 웡타이신사(黃大仙祠) 안팎에는 올해도 수만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주로 대전(大展)에 모셔진 웡타이신의 영정을 향해 새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향(香)을 올리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일부는 사원 안의 삼성당에 모신 쿤얌(觀音)과 관띠(關帝·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의 상), 혹은 린각(麟閣)에 모셔진 공자(孔子)의 영정에 향을 올리기도 했다. 이 사원에는 6~7개의 사당마다 유불선(儒佛仙) 3교의 주요 인물과 관우의 영정까지도 모셔져 있다.

 이 중 초하루로 접어드는 시각에 대전의 맨 앞줄에 선 사람들은 위(余) 선생과 셰(謝) 선생, 양(梁) 여사, 웡(黃) 선생 등이다. 홍콩 빈과일보는 “이들은 매년 정월 초하루마다 웡타이신에게 향을 맨 먼저 올리는 ‘단골 손님(熟客)’들로 올해에도 어김없이 맨 앞줄에 모습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전날 오전부터 10여시간을 기다려 정월 초하루 종이 치는 순간 맨 앞줄에서 맨 먼저 향을 올리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이 모습은 홍콩의 주요 TV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됐다. 맨 앞줄에 섰던 셰 선생은 “웡타이신에게 정부는 경제를 살리고 우리는 올해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빌었다”고 말했다.

 웡타이신의 본명은 황추핑(黃初平)으로 중국 진나라 때인 328년에 저장(浙江)성 진화(金華)현 란시(蘭溪)시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양치기 소년이던 그는 15세 때 진화산(金華山)에 도를 닦으러 떠났다. 40년 후 형제들이 그를 찾아 산으로 가서 황추핑을 만났는데 이때 돌을 양으로 변하게 만드는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를 보고 형제들도 도교로 개종해 함께 수련을 하고 적송산(赤松山)에 은거하다 신선이 됐다고 한다. 이후 자연의 약초들로 신통한 약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해주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웡타이신은 도교 신자들에게는 무병장수로 이끄는 신으로 추앙 받으며 건강을 비는 방문객들로 붐빈다. 홍콩의 웡타이신 사원은 도교 수도사인 량런안(梁仁庵)이 이런 전설을 가진 웡타이신의 초상을 1915년 광둥에서 홍콩으로 모셔와 1921년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짓고 일반에 개방하면서 유명해졌다.

기자가 찾은 새벽 5시30분 무렵에도 긴 행렬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문회보에 따르면 올해 초하루에는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12만명만 찾았다. 당초 사원 측은 60만명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1월 15일쯤부터 신문광고를 통해 “올해에는 웡타이신사에 오지 마라. 사원의 40%가 공사 중이어서 너무 비좁아 사고 발생이 우려된다”고 수차례 호소했다. 이 때문인지 지난해 초하루에 45만명이 찾았던 웡타이신사에는 예상 인원을 크게 밑도는 12만명만 찾는 이변이 발생했다. 웡타이신사는 직접 찾아오는 신도들을 억제하는 대신 ‘온라인 신전’을 개설해 컴퓨터를 통해 소원을 빌게 했다. 첫날 온라인 신전을 찾아 분향한 사람들은 2만명이 넘었다. 그래도 작년의 45만명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국운(國運)도 점괘로

매년 도교사원서 운세 점치는 제비뽑기
점괘 결과가 홍콩 신문의 톱 뉴스 장식


초이튿날(1월 27일) 다른 도교 사원인 체궁묘(車公廟)의 제비뽑기 행사에는 작년보다 12%가 많은 7만4000명이 운집했다. 체궁(車公)은 송대에 마을을 구했던 차(車)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홍콩 북쪽의 신계(新界)에 세워진 조그만 제당이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제당 한 곳에 있는 구리로 만든 조그만 풍차(風車)에 소원을 빌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운세가 바뀌어 소원이 이뤄진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월 초이틀에 이곳을 찾은 수만명은 체궁의 동상에 향을 올리고 구리 풍차를 돌리면서 소원을 빌었다.

 정월 초이틀의 차궁묘 행사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홍콩의 올해 운세’를 점치는 제비뽑기(籤·첨) 행사 때문이다. 죽통에 1부터 100까지 번호가 쓰인 젓가락처럼 긴 대나무 막대기를 뽑아 해당 번호의 뜻풀이를 매년 해왔다. 홍콩 시민을 대표해 류황파(劉黃發) 신계 향의국 주석이 막대기를 뽑았는데 17년 만에 최악의 점괘인 27번을 뽑았다. 27번 점괘는 만리장성을 쌓다가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화를 자초한 진시황제와 관련된 글귀가 적혀 있고 “집안에 마귀가 드니 자신은 불안하고 집안은 불길하며 재물을 구해도 쫓아낼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때문인지 이날 밤 8시30분쯤 신년 행사 불꽃놀이 도중에 빅토리아 하버에서 수천발의 축포를 쏘아올리던 바지선 3척 중 1척이 불이 나서 전소됐다. 가장 최근에 27번 점괘가 나온 것은 1992년으로 그해 신년행사 도중 란콰이펑에서 2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홍콩의 둥팡일보와 빈과일보,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등은 ‘17년 만에 또 불길한 점괘’ ‘체궁묘 점괘가 홍콩의 빛을 흐려’ 등의 제목을 28일자 1면 톱에 올렸다. 한 예언가는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을 때 백성들의 불만이 많았다”면서 홍콩 정부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아무리 흥미 위주의 보도라고 하지만 이런 내용이 1면 톱에 오르는 홍콩이 얼마나 풍수나 무속에 깊이 빠져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홍콩에서는 시내 주요 건물들의 설계나 사무실 위치와 방향, 이사나 개업, 개명 등도 대개 유명 풍수사의 조언에 따르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특한 건축물들

풍수사 말 한마디에 건물 모양 달라져
장관 사택 안테나 방향 놓고도 긴 논쟁
  

시내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대부분 풍수와 관련된 얘기가 많다. 예를 들어 미국 영화 ‘배트맨 다크 나이트’에 등장하는 2IFC 빌딩은 홍콩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2003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모서리가 뭉툭한 원통 모양으로 위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88층(약 420m)까지 올라갔고 맨 끝 부분이 흰색이다. 남자의 발기한 성기를 상징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또 1990년에 완공된 70층짜리(367m)의 중국은행 건물은 칼과 칼자루 모양으로 돼 있다. 모서리 부분이 매우 날카롭게 각이 져 있고 끝으로 갈수록 좁아져 칼을 빼 손잡이 부분을 땅에 꽂은 것 같다.

 두 건물은 대표적으로 음기(陰氣)가 강한 홍콩에 양기(陽氣)를 불어넣기 위해 풍수사들의 조언을 받아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풍수사들은 “홍콩은 음기가 아주 센 곳이라 특히 여성들이 홍콩에 오면 기운이 솟고 활력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선지 대개 남자들이 더 많은 세계의 다른 대도시들과 달리 홍콩은 여초(女超) 현상이 심하다. 홍콩 통계국에 따르면 2007년 말 홍콩의 남성 인구는 328만7400명으로 여성 363만8500명보다 매우 적다. 여성 1000명당 남성은 904명에 불과하다. 다른 도시들은 대개 여성 1000명당 남성은 1050명 안팎으로 남성이 더 많다.

그러나 칼을 꽂은 듯한 중국은행 건물은 날카로운 외관과 외벽의 유리 마감재로 인해 기(氣)가 너무 센 건물로 통한다. 그래서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옥상에 대포 모양의 기중기를 세우고 포신을 중국은행 쪽으로 향하게 했다. 중국은행에 기를 뺏기지 않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 따라다닌다.

풍수를 말할 때 HSBC은행 건물만한 게 없다. HSBC은행은 중앙에서 볼 때 양측 끝에 기둥만 있고 지층이 뻥 뚫려 있다. 건물 뒤편의 태평산과 앞쪽의 빅토리아 해변의 기(氣) 흐름을 막지 않기 위함이란다. 뻥 뚫린 공간에는 에스컬레이터 2대만 있다. 더 재미있는 해석은 바닥이다. 바닥은 뒤쪽이 앞쪽보다 3~4m가량 높다. 그런데 약 2m 간격으로 뒤에서 앞으로 기울다가 평지, 또 기울다가 평지가 8~9차례 반복된다. 물을 뒤에서 앞으로 흘려 보낸다고 가정했을 때 한꺼번에 쭉 흘러내리지 않고 쉬었다가 내려가고 쉬었다가 내려가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는 이자를 먹고 사는 은행의 특성상 물(이자)이 한꺼번에 흘러내리지 않고 멈췄다가 흘러나가 부자가 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또 HSBC는 중국어로는 ‘회풍(??)’은행이라 쓰는데 회(?)자가 ‘물이 돈다’는 의미여서 은행 이름에 충실하게 바닥을 설계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처럼 홍콩의 대형 건물이나 아파트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풍수 원리가 배어있다.

 작년 여름에는 홍콩 행정장관 사택의 위성TV 수신용 안테나의 크기가 크네 작네, 방향이 서쪽에 있어야 하네 동쪽에 있어야 하네 하는 문제로 몇 주일간 논쟁이 붙을 정도였다. 또 아시아 최고 여성 부호였던 차이나켐그룹의 니나왕(王如心·당시 69) 전 회장이 2007년 4월 숨지면서 130억달러(당시 환율로 약 17조원)의 전재산을 전속 풍수사였던 토니찬(陳振聰·50)에게 넘기는 유언장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홍콩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이 유언장에 대한 효력을 놓고 “풍수사의 영생 약속에 속아 작성해 무효”라는 니나왕의 유족들과 “연인 사이로 자연스럽게 작성했다”는 풍수사 토니찬 사이에 아직도 법정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홍콩에는 풍수학원들도 성행하고 있다. 영어 강의도 많아 서양인 유학생도 많다고 한다. 홍콩에서는 변호사와 의사 다음으로 풍수사의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분에 최근 몇 년 사이 홍콩의 풍수 시장은 급성장을 계속해 지난해에는 약 30억홍콩달러(약 5000억원)의 규모로 성장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단순히 재미나 호기심을 채우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전문직 업종인 셈이다.

 

풍수가 성행하는 중국 남부

중국공산당이 미신·기복 신앙 단속하자, 풍수사·무속인들 홍콩에 대거 몰린 영향
  

홍콩에서는 풍수와 무속신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건강을 지켜주는 것으로 믿는 웡타이신 이외에도 바다의 여신인 틴하우(天后)와 힘과 무예의 상징인 관우(關羽)의 영정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틴하우는 중국의 남부 지방에서 가장 널리 숭배되는 여신이다. 960년 푸젠(福建)성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조난 당한 어민을 구하는 기적을 행해 ‘마음씨 착한 초능력의 소녀’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점점 신으로 추앙됐고 신자가 늘어남에 따라 황제도 인정하는 ‘하늘의 황후(天后)’로 떠받들어졌다. 홍콩에는 11세기에 어민들의 수호신으로 틴하우가 소개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비의 여신으로 모셔졌다고 한다. 그 사이 스탠리나 리펄스베이 등 홍콩에 수많은 틴하우묘가 들어섰다. 틴하우라는 지하철역이 있을 정도다.

또 경찰서나 파출소의 출입문 안쪽에는 관우상을 모셔둔 경우가 많다. 또 삼국지에서 장비(張飛)와 함께 맹활약한 관우는 힘과 무예를 상징하는 인물로, ‘관우의 힘’으로 사악한 범죄자들을 이기게 해 달라는 의미에서 경찰관들이 출동을 나갈 때마다 두 손 모아 비는 경우가 많다.

풍수와 함께 웡타이신(건강), 틴하우(자비), 관우(무예)는 홍콩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3대 무속 신앙의 대상이다. 왜 이런 분야가 홍콩에선 자연스럽게 발달했을까. 이에 대해 홍콩에서 33년을 살아온 하나투어 김성훈(47) 실장은 “원래 중국 남부가 도교(道敎)나 도학(道學)이 발달한 데다 중국 중앙정부가 풍수와 무속 신앙 등을 미신이라며 단속하면서 전문 풍수사들이 홍콩으로 빠져 나오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무속 신앙에 자유로웠던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풍수사상에 기반해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취안(洪秀全)이 광둥성 출신이었고, 중국에서 유명한 도교 사원 주먀오(祖廟)가 광둥성의 포산(佛山)에 소재하는 등 광둥성 사람들은 특히 풍수와 무속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영향이 컸다고 한다. 과거 중국 공산당은 기관지인 인민일보 사설 등을 통해 중국이 번영하기 위해서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미신들을 믿지 말고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해야 한다면서 미신과 기복 신앙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홍콩에서 가장 잘나가는 풍수사 중 한 사람인 양톈밍(楊天命)은 “홍콩이 특히 근대에 들어와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되면서 중국 대륙보다는 풍수와 도학, 역경(易經) 등을 자유롭게 연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중국 대륙에서도 올해부터는 풍수나 무속 신앙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음력 섣달 그믐이던 1월 25일, 중국 남부의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귀원사(歸元寺)에는 수만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이 절에 모신 ‘재신(財神)’의 생일날 재신에게 향을 올리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敬香祈福)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또 베이징에서는 베이하이(北海)공원, 디탄(地檀)공원, 광뎬(廣甸), 훙러우(紅樓) 등에서 청대에 진행했던 황제의 기복 의식이 재현돼 구정 당일에만 60여만명이 몰린 것으로 신경보(新京報)가 보도했다.

지난 수십년간 홍콩에서 발달한 풍수와 기복 신앙이 다시 대륙을 향해 북상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기로 실직자가 급증하는 등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중국 당국이 전통문화 복원이란 명분으로 풍수나 기복신앙에 대해 너그러운 행정을 펴는 것 같다고 해석한다.


| 인터뷰 | 홍콩의 대표 풍수사 양톈밍


북핵 실험·쓰촨 대지진·미국 주가폭락 모두 예언, “한국은 은인자중 기다려야… 음력 8월 이후엔 풀려”

▲ 양 톈 밍 | 1964년생으로 18세부터 정식으로 현학(玄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복괘(卜卦)와 팔자(八字), 개명(改名) 등에 정통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스스로는 펑수이(風水)와 파쯔(八字), 부과(卜卦)가 전문 분야라고 말했다. 홍콩의 기업인들에게는 시간당 수천만원씩의 자문료를 받기도 한다.

 

홍콩에서 서점이나 시내버스의 자체 방송, 신문과 공중파 방송 등에는 풍수사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유명 풍수사를 직접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연말 연시 대목에는 더욱 그렇다. 시간당 몇천만원씩 받는 풍수사도 많다. 한국 기자와 보도를 위한 인터뷰만 하자는데도 그런 거액을 요구하는 풍수사도 있었다.


양톈밍(楊天命·45)도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풍수사 중 한 사람이다. 설 연휴 기간에 문회보와 빈과일보, 방송 등 홍콩 언론에 그의 모습과 올해 운수 예언이 비중 있게 소개되면서 그의 유명세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22일 오후 홍콩 섬 코즈웨이베이의 자페로드 506번지 롄청(聯成) 상업센터 18층에 있는 사무실(Alian Yeo Consultant Company)에서 빅토리아 하버를 내려다보며 1시간가량 인터뷰를 했다. 그는 영어를 조금 구사하고 광둥어로 대화했기 때문에 홍콩 사람인 멘디웡(黃)씨가 통역을 해주었다. 

3시 정각에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떠나 보내면서 그는 “오늘은 주로 언론사 사람들만 만나는 날”이라고 웃었다. 그는 “한국 기자는 당신이 처음인데 어떻게 나에게 연락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서점에서도 당신 책을 봤고, ○○○(홍콩 기업인)씨가 당신을 소개하더라”고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홍콩서 제일 잘나가는 풍수사 세 명 중 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왜 이렇게 유명해졌나.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깽(易經의 광둥어 발음)’을 깊이 공부했다. 여기에 근거해서 과학적으로 말해주고 그 예언이 나중에 사실로 확인되기 때문에 유명해지는 것이다.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매년 연말에 이듬해 운세를 예언하는 책들을 냈다. 예를 들어 2006년 10월의 북한 핵실험, 2007년의 일본 7급 대진과 홍콩 증시 폭락, 2008년 5월의 쓰촨(四川) 대지진, 9월 미국의 주가 폭락 등 국제적 문제도 예언이 매우 구체적이었는데 그대로 현실이 됐다. 그러면서 일본 등 외국에도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그는 이 대목에서 해마다 발간한 ‘양톈밍의 올해 운세’ 등의 책을 펴서 북한의 핵실험과 쓰촨 대지진 예언 부분 등을 짚어주며 설명했다.)

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홍콩이 풍수가 많이 발달했다. 홍콩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나 인테리어를 할 때에도 풍수사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홍콩에서 풍수가 발달한 역사적 배경이 있나. “풍수는 ‘모(巫의 광둥어 발음)’에서 나왔다. 최초의 ‘모’가 그 후에 도(道)와 의(醫)·수(?)로 발전했는데, 이 중 수(?)가 발전해 오늘날의 풍수(風水)가 된 것이다. 풍수 중에 ‘과(卦)’가 한 분야인데 이는 한국으로도 전해졌다. 풍수는 중국 남부 지역에서도 발달했는데 특히 홍콩은 근대에 들어 100년 넘게 영국의 식민지로 할양되면서 풍수 연구가 비교적 자유로웠다. 중국 공산당은 풍수를 미신으로 취급해 억압했지만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은 자유롭게 풍수를 연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올해 한국의 운세를 말해 달라. “1주일 전에 이 특파원의 질문지를 미리 받고는 곧바로 한국의 ‘부과(卜卦의 광둥어 발음)’를 뽑아봤다. 한국을 생각하면서 동전 3개를 여섯 번 던져 나온 숫자로 뽑아보니 ‘톈산툰(天山遯)’이 나왔다.”(이 대목에서 그는 분홍색 종이에 분야별 운세를 한자로 휘갈겨 쓴 메모지를 꺼내 설명했다.)

톈산툰괘(卦)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톈산툰은 ‘피(避·피할 피)괘’의 하나다. 피괘에서는 ‘퇴피(退避·물러나 피하는 것)’가 올바른 도리다. 반드시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좋은 때(時機)를 기다려야 한다. 영어로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라(Don’t do anything, just wait for the right moment)’는 것이다. 특히 올해 한국의 운세는 음력으로 6월 6일에서 7월 7일(양력으로는 7월 27일~8월 26일)까지 매우 나쁘다. 대형 분쟁이 일어난다든지 정부나 시장에 아주 나쁜 일이 생길 것이다. ‘소인(小人)들의 소란이 계속되니 군자(君子)는 피해 있어야 한다’. 소인은 미국과 영국 등 외부 세계를 지칭하고 군자는 한국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뭐든지 하지말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음력 8월 8일(양력 9월 26일) 이후에는 낙관적으로 변하고 안정을 되찾기 시작할 것이다.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이나 다 좋아질 것이다.”

홍콩의 올해 운세는 어떤가. “홍콩은 중국의 운세에 따라 함께 움직일 것이다. 중국은 ‘리괘(履卦)’에 해당해 좋은 운세가 아니다. 음력 2월경에 부동산과 토지분배 같은 굵직한 개혁 조치들이 나올 것이지만, 당장은 경제 회복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수익은 무궁하다. 홍콩은 ‘구괘(?卦)’에 해당해 매우 나쁘다. 밖에서 밀려온 금융 쓰나미가 2차로 덮쳐 경제분야 소란이 극대화할 것이다. 이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지혜로운 운용’과 타이밍을 잡는 게 중요한 한 해다. 음력 6~7월에는 중국도 나쁘고 홍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음력 8월 이후에는 중국이 가장 빨리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좋아지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