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기차타고 떠나자_새마을호 국립과학관

醉月 2009. 2. 26. 14:30

봄방학 기간. '운전사'인 아빠가 차를 몰고 출근했기 때문에 어디 '좋은 데' 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 교통카드 한 장씩 챙겨 들고 나서면 자녀에게 자연, 역사, 과학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고, 오랜만에 엄마와 좋은 공기 마시며 산책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

경기 오산시 수청동의 '물향기 수목원'과 수원 화성 및 행궁,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천의 '국립과천과학관'을 돌아오는 코스다.

●감춰진 수도권 명소, '물향기 수목원'

먼저 목적지는 물향기 수목원. 2006년 5월 문을 연 이곳은 아직 도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최근 입소문을 타고 방문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아직 날씨가 쌀쌀한 요즘도 주말에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 힘들 정도. 때문에 주말 나들이라도 지하철을 타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는 길이다.

1호선 오산대역을 서울역에서 지하철로 가면 약 1시간 20분, 수원 행 새마을호를 타면 40분가량 걸린다.


1.“엄마가 너를 위해 기차표 다 샀어”라고 얘기해도 될 정도인 평일 아침 새마을호 객실.
2.오산대역 도착을 알리는 열차내 안내판.
3.오산대역에 일행을 내려놓고 천안을 향해 출발하는 지하철 1호선.
4.오산대역 승강장. ‘물향기 수목원’이라는 표기도 눈에 띈다.
5.물향기 수목원 정문 6.물향기 수목원 매표소

오전 8시 25분 서울역을 출발한 새마을호는 약 25분 뒤인 8시 50분 수원역에 도착했다. 운임은 어른 4700원, 어린이 2300원.

평일 이 시간 새마을호 객실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엄마가 너를 위해 기차를 통째로 전세냈어"라고 말해도 어린 자녀라면 믿을 가능성이 있다.

수원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오산대역까지 4정거장. 약 15분 만에 오산대역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나와 길 하나만 건너 약 200여m를 걸어가면 물향기 수목원 입구가 나온다.


▲나성엽 기자


수목원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이다. 입장권을 끊은 뒤에는 입구를 지나 왼쪽편 약 100여m 지점에 위치한 '방문자 센터'에 들러 팸플릿을 챙기고 안내를 받는 게 좋다.

숲 해설가들의 설명을 들으며 제대로 다 보려면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지만 그저 발길 향하는 대로 산책을 해도 지루함 없이 즐길 수 있다.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향토예술의 나무원'. 이 곳에는 각종 노랫말과 시에 등장하는 나무와 풀을 해당 노래와 시가 새겨진 동판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새겨진 동판 뒤에는 진달래꽃이, 홍난파의 '고향의 봄' 가사인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라는 구절 뒤에는 실제로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심어져 있다.


▲동아닷컴 이철 기자


이 밖에 수생식물원, 단풍나무원, 습지생태원 등 18개의 구획이 마련돼 있으며, 나무나 꽃의 이름이 크고 말끔한 글씨체로 눈에 잘 띄는 곳에 적혀 있어 알아보기 쉽다.

숲 곳곳엔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된 쉼터가 있다. 취사는 불가능해도 준비해온 음식을 먹는 데는 제약이 없다. 쉼터가 아니어도 숲 중간 중간에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으며 쉬어도 된다. 단 쓰레기는 모두 가져가야 한다.


1.2.시나 노랫말에 나오는 식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향토예술의 나무원.
3.곳곳에 마련된 ‘쉼터’. 이곳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먹을 수 있다.
4.음수대. 이곳의 물은 모두 수질검사에 합격한 약수여서 그냥 마셔도 된다.
5.알아보기 쉽게 돼 있는 안내판.

수목원 곳곳에 새싹을 틔우는 나무가 많지만 아직 대부분의 나무와 꽃들은 손님 맞을 채비를 끝내지 못했다. 아직까지 야외에서는 산책하며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시기.

'물향기 산림 전시관'으로 발길을 돌리면 그곳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2007년 5월 개관한 이 전시관은 전시면적이 약 1만㎡(약 300평)으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깨어나다 △숲과의 즐거운 만남 △물가의 정경 △위대한 숲의 힘 등 5가지 테마로 나눠 동물과 식물이 어울려 사는 숲 속 생태계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전시실을 구성했다.

전시실 2층의 쉼터는 두 개 면을 통유리로 만들어 수목원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로 꼽힌다.


1.전시실 2층 쉼터. 바로 앞 ‘호습성 식물원’을 비롯해 수목원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2.3.4.5.전시관의 주요 전시물들.

●수원 화성에서 정조대왕의 효심을 느껴보자

물향기 수목원에서 하루를 모두 보내도 좋지만 지하철 4정거장 거리에 산 역사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다시 15분간 열차를 타고 수원역으로 돌아와 지하도를 통해 로데오 거리 방향 출구로 나온 뒤 로데오 거리를 거쳐 경기도청 방향으로 약 1.5㎞를 걷는다. 경기도청 뒷길을 통해 서장대에 올라 먼저 월드컵 경기장 등 수원 전경을 내려다보며 수원화성을 따라 걸을 준비를 한다.

수원화성이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위원회 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는 것은 10여년이 지난 지금 '도전! 골든벨' 5번 이내, 또는 '스타 골든벨' 결승전 수준의 문제가 됐다.

서장대를 출발해 북쪽 방향으로 성벽을 따라 서이치, 서포루, 서북각루, 화서문까지 일단 약 1㎞가량을 걸으면서 사진이나 책에서만 보던 수원 화성의 주요 시설물들을 눈으로 확인한다.

주위를 살피며 군사를 지휘하는 '장대', 대포를 발사하는 장소인 '포루', 성격 가까이 접근하는 적군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성벽 군데군데 만들어 놓은 돌출된 장소를 가리키는 '치' 등 인터넷 등을 통해 주요 시설물의 쓰임새를 미리 알아두면 학습효과 두 배.

화서문에 도착하면 아침부터 걸은 거리 때문에 허기가 진다. 또 점심시간이기도 하다. 물향기 수목원 부근에는 이렇다할 맛집이 없지만, 갈비의 고장 수원에는 저렴하고 맛있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곳이 많다.


1.서장대 2.서장대에서 내려다 본 수원 시내 전경.
3.4.포루.
5.수원 연포갈비. 갈비탕이 일품이다. 6.연포갈비의 갈비탕. 씹는 맛, 뜯는 맛이 살아 있다.

수원화성 답사 중 먹을 만한 곳으로 수원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식당은 화서문 인근 '연포갈비'.
이곳의 갈비탕(7000원)은 맛이 고소해 아이들도 좋아한다. 갈비에 적당히 씹는 맛, 뜯는 맛이 살아 있고, 김치 등 반찬도 정갈하다.


▲동아닷컴 이철 기자


이벤트 없이 종일 걷고 보기만 하면 나들이가 재미없다. 혹시라도 교육열 높은 부모가 갈비탕 먹는 자녀에게 "오늘 본 나무 이름 5개만 대봐라"라고 퀴즈라도 낸다면, 어휴….

그럴 땐 수원 화성 동장대 부근에 마련된 국궁 활쏘기 체험장에 들러보면 좋다. 다시 화성 성벽을 따라 약 2㎞, 20여분을 걸어가면 연무대 관광 안내소가 나오고 바로 옆에 국궁 활쏘기 체험장이 있다.

양궁과 국궁은 모양도, 쏘는 법도 모두 다르다. 양궁 활에는 화살을 얹는 돌출된 부분이 있고 활 왼쪽 편에 화살을 얹지만 국궁은 활을 잡은 왼손 손가락 위에 활 오른쪽으로 화살을 얹는다. 국궁 체험은 매시 정각, 30분에 있으며 화살 10개 쏘는 데 2000원이다.

국궁을 쏜 다음에는 '화성열차'를 타고 화성 행궁으로 가보자. 화성열차는 놀이공원의 '코끼리 열차'와 비슷하다. 엔진이 달린 열차 제일 앞 칸은 용의 얼굴 모습으로 디자인 했으며 나머지 객실은 임금이 타는 가마를 형상화 했다.

성벽을 따라 걷는 맛은 충분히 봤으니 이제 화성열차에 편히 앉아 수원화성을 감상할 차례. 승차요금은 어른 1500원, 어린이 700원, 청소년 군인 1100원. 화성열차와 별 차이 없는 과천 서울대공원의 코끼리 열차가 어른 8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500원인 점을 감안하면 다소 비싼 편이다.


1.한 관광객이 국궁을 쏘고 있다.
2.수원 화성의 명물인 화성열차.
3.화성열차 하차지점인 화성행궁 뒷길.
4.화성열차에서 내려 화성행궁으로 내려가는 산책로.

20여 분 간 화성열차를 타고 나면 하차지점인 화성행궁 윗길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화성행궁으로는 계단 모양의 산책로를 이용한다.

정조는 드라마 속에서는 성군과 '훈남'으로 그려져 오다 최근 신하에게 욕설을 하거나 급한 성질을 드러내 보여준 어찰첩이 발견되면서 관심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조가 지시해 만든 수원화성, 정조가 모친의 회갑연을 치렀다는 화성행궁을 직접 들러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똑 같은 역사적 사실이라도 책이나 TV로만 접하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는 것은 기억에 남는 정도에 차이가 난다.

특히 화성행궁은 드라마 '대장금', '이산', '장라면'(CF) 등의 촬영지여서 처음 와 본 사람도 궁 곳곳이 눈에 익다.

아예 드라마 화면을 캡쳐 및 사진으로 인화해 촬영 장소에 피켓으로 만들어 세워놨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보긴 봤는데 어디더라'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필요도 없다.


화성행궁. 행궁()은 왕이 전란, 휴양, 참배 등으로 지방으로 이동할 때 머물던 궁궐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정오를 제외하고 매 시 정각에 문화관광 해설사의 동반해설을 들을 수도 있다. 화성행궁의 동반해설사들은 어찰첩이 발견되기 전부터 정조의 면모를 잘 알고 있었던 듯 정조의 성품에 대해 얘기를 입담 좋게 풀어 나간다.

"정조가 효심이 지극했던 것은 맞아요. 하지만 정조가 효를 중요시 한 것은 한 나라의 왕으로써 효를 행하며 모범을 보이지 않을 경우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위축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죠. 화성행궁에서 회갑연을 어마 어마한 규모로 연 것은 안팎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겁니다."

행궁 바로 옆 '수원화성 홍보관'에 들러 수원화성과 행궁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좋다. 행궁 입장요금은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주말엔 미어터지는 과천 국립 과학관 한가하게 즐기기

수원화성과 화성행군을 둘러보고 나면 오후 3시경이 된다. 다시 수원역으로 돌아와 지하철을 타고 11정거장을 가면 대공원역. 대공원역에서는 지난해 11월 개관한 국내 최대 규모의 과학 전시 시설인 과천 국립과학관을 관람할 수 있다.

★TIP=수원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탈 때는 5번째 칸 1번문으로 타는 게 좋다. 그래야 금정역에서 대공원 방면 4호선으로 환승할 때 덜 걷는다.

지난해 11월 14일 개관한 국립과학관은 올해부터 유료화 됐다. 관람료는 어른 4000원, 어린이 2000원.


과천 국립과학관 평일 하루 평균 관람객은 2000명이 채 안 된다. 여유롭게 모든 시설을 체험해 볼 수 있다.

평일엔 관람객이 적어 오후 늦게 도착해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국립과학관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어린이 탐구 체험관 △기초 과학관 △천체투영관 등이다.


▲동아닷컴 이철 기자



어린이탐구 체험관과 기초과학관

기초과학관에서는 전기방전 현상으로 눈앞에서 벼락이 치는 것을 볼 수 있는 '테슬라 코일', 시뮬레이터로 태풍과 지진을 체험할 수 있는 '태풍 체험실', '지진체험실'이 인기. 이 밖에 각종 수학 이론을 자동차 운전이나 장난감 놀이 등의 도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체험도구가 많아 어려운 기초과학에 대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국립과학관의 주요 전시시설

어린이 탐구 체험관은 얼핏 보면 놀이터 같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 노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전거 안에 발전기가 설치돼 있어 여기서 생산된 전기로 대형 LED 램프에 불이 들어온다.

사람의 동작을 인식해 화면상에서 나비가 사람을 쫓아다니기도 하고, 빔 프로젝터로 바닥에 비친 화면에서는 잉어들이 사람을 피해 도망 다니기도 한다.

천체투영관은 관람료가 따로 있다. 어른 2000원, 청소년 어린이 1000원. 둥그런 지붕 전체가 화면인 이곳에서는 마치 자신이 우주 속에 떠다니는 기분을 느끼며 별자리와 우주의 생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이 밖에 명예의 전당, 자연사관, 전통과학관 등 모두 6개관, 685개 주제의 전시품 4200여개 중 2100개 이상을 직접 관람객이 작동해 볼 수 있어 자녀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지막 코스인 과천 국립과학관에서 1시간 반 가량 다양한 체험을 하고 밖으로 나오면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한다.
물향기 수목원과 수원화성과 화성행군, 그리고 과천 국립과학관은 각각 하루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취향에 따라 수목원-수원화성, 수원화성-국립과학관, 수목원-국립과학관 등으로 두 군데를 정해 하루에 보는 것도 여유롭게 깊이 있는 지식을 쌓는데 도움이 된다.

이들 세 곳을 하루에 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다소 마음이 급한 것은 사실. '성질 급한' 아빠가 같이 간다면 하루에 3군데 다 보자고 할 수도 있지만, 평일이라면 엄마와 자녀가 여유롭게 코스를 구성하는 것도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