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이어령의 다시 읽는 한국시_01

醉月 2009. 5. 20. 09:02

       향수(鄕愁)_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긴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빈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이것은가요곡으로 널리 알려진 지용의 시「향수」가운데서도 특히 이름난 구절이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라는 크리스티너 로제티의 귀여운 시도 있지만 누구도 보지 못한 바람을 그것도 칠흑 같은 밤,

빈 들판을 지나가는 겨울 바람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시인 정지용이었다
 입체음향의 효과를 시험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흔히 말발굽 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이용한다.

그 거리감과 속도감 때문에 말이 달리는 소리는 금시 눈으로 보는 것같은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소리가 가까이 다가올 때에는 나부끼는 말 갈기가 보이고 멀리 사라져가는 소리에서는 휘날리는 말꼬리의 잔상이 어린다.
줌인 줌아웃 되는 달리는 말의 이미지는 그것이 사라지고 난 뒤의 텅 빈 공백까지도 보여준다.

 

지용은 그러한 정적을「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영상으로 보여준다.
  청각적인 것을 시각의 이미지로 바꿔놓는 공감각의 기법은「향수」의 첫머리에 나오는「얼룩 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
는 곳」에서도 발견된다.지용은 황소의 울음소리를 금빛으로 칠해 놓은 것이다.금빛이라는 시각언어 때문에 우리는 그 울음소리를 무
게로 달 수가 있고 느릿느릿 걷는 황소의 걸음과 몸짓의 내면성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심지어는 금빛이라는 그 말에서 우리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들판을 연상하기까지 한다.

황소의 황과 금빛의 금은 무의식적으로 두 이미지를 연결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더구나 황소도 그냥 황소가 아니라 얼룩백이 황소라고 되어 있다.이렇게 황소울음소리는 이중 삼중으로 시각적 장치
에 의해서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지용의「향수」는 눈(시각)으로만 그린 고향풍경은 아니다.

「빈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의 시구는 소리를 동영상으로 보여준 시각적 이미지의 절정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은 다채로운
두운과 모운이 연주하는 황홀한 음악 상자이기도 한 것이다.


 「빈밭」과「밤바람」에 근접되어 있는 두 어휘에는 무려 네 개의「ㅂ」자음이 중첩되어 있고「밭」,「밤」,「바람」,「말」,

그리고 달리고의 「달」에는 모두 여섯 개의「ㅏ」모음(모음)이 반복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소리내어 읽으면 깊은 겨울밤 바람소리가 귓전으로 스친다.

자수율에만 의존해 있는 한국시의 층위에 서 보면 가히 반란에 가까운 운율 혁명인 것이다.


 또 첫째 연의「넓은 벌 동쪽 끝으로 흐르는 실개천」은 시각적 대상을 청각적으로 옮겨「옛이야기 지줄대는 것」으로 묘사했다.

청각적인 것을 시각적 영상으로 바꿨던 것과는 정반대이다.

이렇게 시각과 청각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이라는 마지막 연에서도 극명하게 드러 나 있다.흐릿한 불빛은 시각적인 것이고 도란도란 거리는 것은 청각적인 것이다.그리고「돌아앉아」와「도란도란」의「도」음의 중첩은 앞에서 본 것처럼 두운 효과를 최대한 로 이용한 것이다.「향수」의 정서는 낭만적인 시제에 속하는 정서이다.그것은 도시의 감정도 농촌의 감정도 아니다.향수는 장소로는 도시와 농촌의 차이, 시간으로는 현재와 과거의 그 차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다.

 

그래서「소리만 들리고 그 모습을 볼 수 없는」뻐꾹새를 찬양했던 낭만주의 시인들은 향수를 노래하는 경우에도 그 차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그 감각의 균형도 깨뜨리는 일이 많다.

그러나 용의 「향수」는 감각만이 아니라 시의 소재나 구조에서도 고전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시간 축을 이루고 있는 계절도 어느 한 계절에 얽매이지 않고 사계절 전체를 균등하게 재현한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의 2연은 겨울이고

「따거운 햇볕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 곳」의 4연은 여름철 전후(이삭이 보리 이삭이냐 벼 이삭이냐로 이른 여름일 수도 있고 늦은 여름일 수도 있다)이다.
나머지 연도 확실한 언급은 없으나 대체로 봄과 가을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낮과 밤도 그렇다.「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의 2연과 「하늘 에는 성근 별」의 마지막 연은 밤 풍경이고 나머지 연들은 낮 풍경이다.고향에 있는 화자의 연령도 화살을 쏘던 유년 시절에서「사철 발벗은 아내가…」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성인시절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다.


  지용의「향수」가 건축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첫째 연과 마지막 연을 비교해 보면 자명해진다.

첫 연의「넓은 벌 동쪽 끝으로 흐르는 실개천」의 공간구성은 수평적이며 확산적이다.
그리고 실개천이 흐르는 들판은 열려진 바깥공간이다.그러므로 소의 울음소리도 벌판으로 퍼져가는 수평성 확산성 그리고 바깥공간의 개방성을 지니게 된다.(황소의 울음소리는 종달새 같은 수직성이나 귀뚜라미 같은 내부공간의 폐쇄성과는 다르다.)

그런데 끝 연을 보면 그 공간구성이 정반대로 되어 있다.

즉 하늘의 성근 별에서 시작하여 서리 까마귀로,서리 까마귀에서 지붕으로 그리고 그 지붕에서 흐릿한 불빛으로 점차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수직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연은 실개천이 동쪽 끝으로 흘러 갔지만 마지막 연은 하늘의 별빛이 방안의 불빛으로 귀착되어 있는 것이다.그리고 실개천이
흘러가는 벌판이 확산적인 외부공간이라면,마지막 연의 등불 밑에 돌아앉아 도란거리는 그 방안은 응축적인 내 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지용의「향수」는 햇빛 아래 밝고 넓은 벌판을 향해 우는 금빛 황소 울음으로 시작하여 희미한 불빛아래 방안 구석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인간의 속삭임으로 끝나있는 것이다.수평과 수직,밝은 태양과 희미한 등불,벌판의 확산과 방안의 응축,그리고 황소울음과 속삭임소리….

 

정지용이 건축한 향수의 공간은 이렇게 바깥과 안의 대칭적 언어에 의해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정지용의「향수」는 그의 다른 시에 비해서 결코 그 격조가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부분을 보면 시적 이미지와 은유로 넘쳐나 있지만 그 전체의 내용은 수필의 한 대목처럼 설명적이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같은 시구는 수식에 수식을 첨가해 가는 과다한 시적 수사로 되어 있으면서도 연마다 반복되는「그 곳이 참하 꿈엔 들 잊힐리야」의 구절은 직설적이고도 상투적인 산문형태의 글로 되어 있다.


  감각이나 시간과 공간의 구성이 그랬듯이 서술의 양식에 있어서도 시와 산문의 이질적인 두 특성을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 지용의 시「향수」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바로 그 점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된「향수」의 비밀이기도 한 것이다.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화살은 끝내는 땅으로 추락하고 만다.잃어버린 화살을 찾아 풀섶의 이슬에 온 몸을 적시고 돌아오는 아이처럼 우리는 고향도 시도 그렇게 잃었다.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들은 잃어버린 화살조차 쏜 적이 없다.

그래서 아직은 가요곡의 가사로나마 불리어지고 있는 정지용의 「향수」는 바로 잃어버린 시에 대한 향수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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