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이문열 삼국지의 "서사"

醉月 2008. 11. 30. 17:15


 티끌 자윽한 이 땅 일을 한바탕  긴 봄꿈이라 이를 수 있다면,

그 한바 탕 꿈 을 꾸미고 보태 이기함 또한 부질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같은 냇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때의 흐름은 다만 나아갈 뿐 되돌 아오지 않는 것을,

새삼 지나간 날 스러진 삶을  돌이켜 길게 적어 나감 도. 마찬가지로 헛되이 값진 종이를 버려 남의 눈만 어지럽히는 일이 되 지 않겠는가.

그러하되 꿈속에 있으면서 그게 꿈인 줄 어떻게  알며,흐름 속에 함께 흐르며 어떻게 그 흐름을 느끼겠는가.

 

꿈이 꿈인 줄 알려면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하고, 흐름이 흐름인 줄 알려면 그 흐름에서  벗어나야 한다.

때로 땅끝에  미치는 큰 앎과 하늘가에 이르는 높은 깨달음이 있어 더러 깨어나고  또 벗어나되,

그 같은 일이 어찌 여느 우리에게까지도 한결같 을 수가 있으랴. 놀이에 빠져 해가 져야 돌아갈 집을 생각하는 어린아이 처럼,

티끌과 먼지 속을 어지러이 헤매다가 때가 와서야 놀람과 슬픔 속 에 다시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인 것을.

 

또 일찍 옛사람은 말하였다.
<그대는 저 물과  달을 아는가. 흐르는 물은 이와  같아도 아직 흘러 다해 버린 적이 없으며. 차고 이지러지는 달  저와 같아도

그 참 크기는 줄어 작아짐도 커서 늘어남도 없었다. 무릇 바뀌고 달라지는 쪽으로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짧은 사이도

그대로일 수가 없지만, 그 바뀌고 달라지지 않는 쪽으로 보면 나와 남이 모두 바뀌고 달라짐이 없다.> 

 

그게 글 잘하는 이의 한갓 말장난이 아닐진대, 오직 그 바뀌고 달라짐에  치우쳐 우리 삶의 짧고 덧없음만 내세울 수는 없으리라.

더욱이 수풀 위를  떼지어 나는 하루살이에게는 짧은 한낮도 즈믄 해에 값하고,

수레바퀴 자국 속에 나는 미꾸라지에게는 한 말 물도 네 바다에 갈음한다.

우리 또한 그와 같아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뒤덮인 이 땅, 끝 모를 하늘에 견주면 수레바퀴 자국이나 다름없고, 

그 속을 앉고 서서 보낸 예순 해 또한 다함없는 때의 흐름에 견주면 짧은 한낮에 지나지 않으나,

 

차마 그 모두를 없음이요 비었음이요 헛됨이라 잘라  말할 수는 없으 리라. 이에 이웃나라 솥발처럼 셋으로 나뉘어 서고, 

빼어나고 꽃다운 이 구름처럼  일어, 서로 다투고 겨루던 일 다시 한마당 이야기로  꾀려니와,

아득히 돌아보면 예와 이제가 다름이 무엇이랴. 살아간 때와  곳이 다르고. 이름과 옳다고  믿는 바가 다르며,

몸을 둠과 뜻을 폄에 크기와 깊이가 달라도, 기뻐하고 슬퍼하고 성내고 즐거워함에서 그들은 우리였고,

어렵게 나서  갖가지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이윽고는 죽은 데서 마찬가지로 우리였다.

 

듣기에 사람이  거울을 지님은 옷과 갓을 바로 하기 위함이요, 옛일을 돌이켜  봄은 내일을 미루어 살피고자  함이라 했으니,

그런 그들의 옳고 그름, 이기고 짐, 일어나고  쓰러짐을 다시 한번 돌이켜 봄도 또한 뜻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굳이  이야기에 앞서 예로부터 있어 온 노래 하나를 여기에 옮기는 것은 뜻은 달라도 옛사람을 본뜬 그 멋이

자못 사람의 마음을 움직 이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굽이쳐 동으로  흐르는 긴 강물 부딪쳐 부서지는 그 물결에 씻겨 갔나 옛 영웅들의 자취 찾을 길 없네.

돌이켜 보면 옳고 그름이 기고 짐 모두 헛되어라 푸른  산은 예와 다름었건만 붉은 해 뜨고 지기 몇 번이 던가.

 

강가의 머리센 고기잡이와 나무꾼 늙은이 가을달 봄바람이야 새스러울 수 있으리.

한 병술로 기쁘게 서로 만나 예와 이제 크고 작은 일 웃으며 나누는 얘기에 모두 붙여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