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기억은 언제나 自作劇이다

醉月 2008. 12. 3. 12:57

 누구나 ‘억압과 집착의 악순환’에 빠질 때가 있다. 한번 빠지면 웬만해선 헤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詩人은 ‘누구나 가슴에 깊이 박힌 대못 하나’를 품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빼려야 뺄 수 없고, 빼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박히는 대못이다. 그럴 때는 걷는 것이 제일 좋다.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주로 초등학생의 어머니들이었다. 한 2000명은 모인 듯했다. 강연이 끝나자 입구에 어머니들 수십 명이 내가 쓴 책을 들고 서 있었다. 사인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참 마케팅을 잘하는 출판사다. 내 강연장마다 쫓아다니며 입구에 내 책을 진열해 놓는다.
 
  사인을 하고 고개를 들 때마다, 줄 바깥 쪽의 한 여자가 계속 눈에 띄었다. 사인을 받으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볍게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참 익숙했다. 그러나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사인을 마치고 그녀 쪽으로 돌아섰다. 그녀가 내게 작게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저 모르겠어요?” 
  한참 걸렸다. 아, 그녀였다.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한다. ‘만약 저 프로그램에 나가면 누굴 찾아야 할까? 내가 나간다면 꼭 찾으리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녀가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여전히 예뻤다. 나와 동갑인데, 제길, 나이는 나만 먹은 듯했다. 착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언제였던가, 이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
 
  그 옛날, 나와의 대화를 엿듣던 그녀의 어머니는 불쑥 그녀에게 “수화기를 바로 내리라”고 했다. 이어 내게 “軍(군)생활을 열심히 잘하라.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뚜뚜뚜…’.
 
  27년 전, 화천의 民統線(민통선) 입구의 한 구멍가게에서였다. 나는 교환을 거쳐 그녀의 집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기 앞의 구멍가게 주인아줌마는 그런 일에는 아주 익숙한 듯한 표정으로 쑥스럽게 웃었다.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
  난 그녀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8시간을 걸어 나왔다. 그것도 외출이 불가능한 철책에서 중대장의 특별허가까지 받고 나왔다. “서울의 그녀에게 전화 한 통만 하게 해 달라. 안 그러면 정말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소연했다.
 
  최전방 병사들은 가슴에 항상 수류탄 두 개를 달고 다녔다. 허리에는 실탄이 가득한 탄창을 몇 개씩 차고 다녔다. 중대장은 입대하기 전, 내가 채 1년도 마치지 못하고 제적당한 대학에서부터 이미 알고 지낸 사이였다. 위탁교육으로 그 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陸士(육사) 출신 중대장은 나를 그래도 후배라며 매번 불안해했다. 그는 남자 대 남자로 맹세까지 하고 외출 허가를 내줬다.
 
  그런데 그 전화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난 것이었다. 철책선 소대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었다. 눈까지 내렸다. 강원도 산속의 눈은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미친 듯이 내린다. 그 깊은 화천 북방 산골짜기의 오르막 내리막 눈길을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도록 한숨을 쉬며 걸었다.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하지만 그 산길의 눈 위로는 내 발자국밖에는 없었다. 밤길이었지만 달빛에 내 발자국은 저편 골짜기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발자국은 술 취한 듯 비틀비틀 찍혀 있었다. 내 인생의 가장 길고 슬펐던 산책이었다.
 
  그때,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 산길이야기부터 했다. 내가 30년 가까이 잊지 않았던, 그 산길 눈길 위의 비틀거리는 발자국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생뚱맞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슬프게 헤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못 만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와 그렇게 애틋한 관계였던 기억은 없다고 했다.
 
  “내가 첫 휴가 나갔을 때, 갈라지고 피가 나도록 튼 내 험한 손과 동상에 걸려 벌겋게 된 내 발을 보고 흘린 그때 그 눈물은 그럼 뭐냐”고 했다. 그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럼 귀대하던 날, 버스 터미널에서 내게 준, 튼 손을 위한 그 바셀린 한 통과 동상 걸린 발을 위한 나이키 양말은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그건 기억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단지 엄살 떠는 군인 아저씨가 너무 불쌍해서 그랬을 뿐이라고 한다.
 
  “그럼 내 그 슬픈 산길의 기억은 모두 自作劇(자작극)이었느냐”고 나는 따졌다. 그녀는 그저 모르겠다는 듯이 귀엽게 웃고 있었다. 40대 후반이 돼 가는데도 웃는 것은 그때나 똑같았다.   
  
  옛 애인을 만나지 말라
  제대한 후, 나는 만나는 여자마다 그 눈 내리는 산길의 내 절망을 절절하게 이야기했다. 가끔 내 이야기에 눈물을 보이는 순수한 영혼의 여인들도 있었다. 일단 내 이야기에 눈물을 보이면 그 이후는 아주 간단했다. 그 눈길의 발자국이야기처럼 효과적인 感情移入(감정이입)의 기술은 없었다.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천 북방에서의 30개월 군생활 내내 나는 그 눈길의 발자국을 기억하고 또 기억했다.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내 슬픔을 듣고 감동하지 않는 여인은 어머니가 될 자격이 없다’고 난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억이 실제 일어난 사건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보다 내가 더 놀랐다. 기억은 언제나 자작극이다. 그녀와의 기억이 일부 겹치기는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녀와의 슬픈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에 대한 해석과 편집이 실제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의미는 해석과 편집의 결과다. 실제 일어났던 사실과는 그리 큰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일부의 사실을 근거로 만들어낸 내 의미부여다. 그래서 옛 연인을 만나면 절대 안 되는 것이다. 사실은 맞지만 해석과 편집으로 인한 왜곡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어릴 적 반나절을 걸어 다녔던 국민학교까지의 그 길이 불과 몇 ㎞에 불과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허전함과 같다.
 
  우리의 기억은 언제든지 조작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해냈다. 우선, 실험에 참가한 이들에게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적힌 종이를 나눠준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被驗者(피험자)가 쇼핑몰에서 길을 잃어 울었던 사건이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피험자 친척들을 통해 그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그럴듯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피험자에게는 그 사건이 실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때의 느낌과 기억나는 것들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하도록 했다.
 
  피험자들의 일부는 단지 그 사건을 둘러싼 상황, 예를 들어 장소나 그 지역의 분위기가 자신의 기억과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그 일이 실제 일어난 것으로 기억했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 바로 어제 일어난 듯, 아주 생생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기억까지 보태 설명했다.
 
  실험이 끝난 후 심리학자가 그들에게 쇼핑몰에서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실험의 목적이 기억의 왜곡이었다고 설명해도 피험자들은 자신들의 기억이 옳다고 강변했다. 친척들이 나타나 자신들이 거짓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해도 半信半疑(반신반의)했다. 
  
  망사 스타킹의 기억
   우리의 기억은 이런 식이다. 현재 우리가 어떤 심리적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그 기억하는 사건들이 달라지기도 한다.
 
  현재의 직업에 따라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과학자나 의사와 같이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유사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자신의 과거를 非(비)연속적이고 단절된 사건들을 건너뛰어 가며 이야기한다.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대부분 ‘구라’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문단의 일부 시인이나 소설가의 奇行(기행)은 전설처럼 회자된다. 화단의 일부 화가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기행을 실제 목격한 이들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거짓은 아니다. 실제 일어난 10%의 사건에 90%의 창의적 해석이 그 전설의 실체다.
 
  개인의 기억뿐만 아니라 집단적 기억의 대부분도 이런 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고, 그것도 부족해 ‘實體的(실체적)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 같은 것은 없다. 해석과 의미부여 없이 기억되는 사건은 없기 때문이다.
 
  길을 걸으며 수많은 여인들이 내 앞을 지나가지만 난 유독 망사 스타킹을 신은 여인들만 기억한다. 安息年(안식년)으로 일본의 와세다대학에서 1년을 보낸 후 생긴 이상한 습관이다.
 
  도쿄는 내게 망사 스타킹이다. 신주쿠 거리의 그 다양한 망사들에 나는 내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매번 가슴이 뛰곤 했다. 아, 그 빨간 망사, 파란 망사, 찢어진 망사. 그뿐만이 아니다. 망사의 촘촘함에 햇빛이 반사되는 무지갯빛 망사부터, 각 변의 길이가 거의 10㎝에 이르는 그물형 망상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오늘도 내 앞으로 수많은 여인이 지나가지만, 망사만 보면 나는 저절로 눈이 돌아간다. 심지어 낚시가게 앞의 그물에도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우리의 기억이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것은 자극을 받아들이는 단계부터 왜곡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방금 지나간 여인을 두고 내 아내는 코를 수술했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코 따위는 관심도 없다. 그러나 그녀의 망사 스타킹이 초록색이었음은 분명히 기억한다.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르게 지각하고, 서로 다르게 기억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만약 내 아내나 내가 결혼한 이후로 동일한 사건만을 기억한다면 도대체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억압은 집착으로 이어진다
  항상 원하는 방식으로만 지각하고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원치 않는 일이 자꾸 기억나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만 자꾸 보이는 경우도 있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자극들 중, 우울한 자극들만 받아들인다. 우울한 자극들에 습관되면 그 우울한 자극들이 보이지 않아도 불안해진다.
 
  인터넷에 자신을 둘러싼 온갖 허접한 욕설들에 절망해 자살한 최진실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은 그까짓 것 보지 않으면 되지 하겠지만, 당사자들은 그게 아니다. 자꾸 그것들만 보인다. 그것들이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그래서 이젠 그것들을 찾아다닌다. 그 우울한 자극들을 보며 괴로워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보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에 관한 또 다른 심리학 실험이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에게 이야기한다. 
  “5분 동안 자유롭게 생각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세요.”
  피험자는 아무런 부담 없이 자신이 떠올리는 생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까지는 아무 이상 없다. 이어 심리학자가 지시한다. 
  “이번에도 똑같이 5분 동안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야기하세요. 그러나 이번에는 한 가지만 주의하세요. ‘흰곰’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웬 흰곰? 피험자들은 뜬금없는 요청에 코웃음친다. 실제 실험이 시작되었다. 한데 이런, 전혀 의외의 상황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무 맥락 없는 ‘흰곰’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고 싶은 자동차를 떠올려도 그 안에 흰곰이 앉아 있다. 비키니의 여인을 기억하려 해도 비키니를 입은 흰곰이 떠오른다. 아무리 애써도 흰곰이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어떤 피험자도 흰곰 생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좌절한 피험자들에게 심리학자는 이제 다시 쉬운 과제를 내준다. 이번에는 처음처럼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라고 한다. 이번에는 ‘흰곰’이 떠올라도 아무 상관 없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제는 온통 ‘흰곰’ 생각 외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피험자들은 할 수 없었다.
 
  ‘흰곰’은 우리가 원치 않는 기억이나 생각을 의미한다. 그 기억과 생각을 억압하려 하면 할수록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억압은 집착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사랑과 증오가 동시에 존재하는 애증과 같은 모순적 감정도 결국 이 억압과 집착의 변증법적 관계다.
 
  누구나 이 ‘억압과 집착의 악순환’에 빠질 때가 있다. 한번 빠지면 웬만해선 헤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누구나 가슴에 깊이 박힌 대못 하나’를 품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빼려야 뺄 수 없고, 빼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박히는 대못이다.
 
  그럴 때는 걷는 것이 제일 좋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있을수록, 그 망할 놈의 ‘흰곰’이 나를 자꾸 끌어내린다. 집이나 사무실을 나와 걷다 보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시각, 후각, 청각의 자극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대못 같은 기억들을 억압하려 해선 절대 안 된다. 다른 사소하고 다양한 자극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보면 그 대못은 그 대못대로 그 다양한 자극들의 일부가 된다. 
  
  ‘흰곰’ 생각이 나면 걸어라
  밤새 잠 못 들고 고민한 일들이 깨어 보면 별것 아닌 경우가 많다. 도대체 내가 왜 그런 일로 고민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놈의 ‘흰곰’ 때문이다. 아침의 다양한 자극이 밤새 나를 괴롭혔던 그 ‘흰곰’에 대한 억압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울한 생각이 들면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임상심리학자나 정신과의사들은 우울증 환자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무조건 몸을 움직이라”고 하는 것이다.
 
  요즘 온통 어렵다는 이야기뿐이다. 다 그놈의 ‘흰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를 꺼내서 분위기를 바꿔 보려 해도 조금 지나면 다시 그 ‘흰곰’ 이야기로 돌아와 있다. 그래서 산책을 나가야 한다. 동네 앞길의 가게 간판만 보고 와도 ‘흰곰’은 사라진다. 혹시 망사 스타킹의 여인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행운이다. 10㎝ 크기의 굵은 망사 스타킹이라면 더 더욱 감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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