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위풍당당 대한민국 여군이야기

醉月 2009. 9. 13. 07:18

위풍당당 대한민국 여군이야기

 

아담은 이브의 갈비뼈에서 나왔다?

 “남자가 그것밖에 못해?”
그랬다. 남자라는 존재는 결정적인 순간에 무언가 보여 주어야만 했다. XY염색체를 지니고 태어난 남성이라는 존재. 고작 염색체 하나의 차이로 에스트로겐 대신 테스토스테론을 뿜어가며 험한 이 세상을 지켜내야 하는 의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나 ‘남자’에게 주어져 왔다. 오죽하면 “태초에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태어났다”며 인간형의 원본은 ‘남자’라고까지 정의했을까.

하지만 최근 생명과학의 발달로 밝혀진 게놈지도에 따르면 인간의 경우, 기본적인 인간의 유전형질에서 성(性)을 결정하는 Y염색체가 없다면 여성이 되도록 기본틀이 짜여 있단다. 과학적으로 인간형의 원본은 여성이고, 남성은 단지 여성의 변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인간형의 원본은 과연 남성일까?

 

다시 말하면, 조물주가 이 세상에 뿌린 인류라는 종은 기본적으로 여성이라는 얘기다. 오호통제(嗚呼痛哉)라! 그렇다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다. 태초에 남성이 테스토스테론에 기초한 근력과 지구력을 발휘하며 으르렁대던 것은 여성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남성보다 우월한 여성을 경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그러고보니 오늘 소개할 여군이야기는 언제나 군대의 소수자로서 깜짝뉴스처럼 다루어졌던 ‘여군 활약상’이라는 시선으로 보아서는 안되겠다.

 

대한민국 여군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의 역사

 여군에 관한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신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투의 신 아레스와 님프인 하르모니아의 자손으로 카프카스를 호령했다는 여전사족(女戰士) 아마조네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12과업을 수행하는데 첫 외부세계에서 행하는 과업이 아마존 여왕의 허리띠를 빼앗아 오는 일이었다고 할 정도로 전설의 여군은 막강했다고 전해온다.

 

△ 기록상 최초의 여군, 신화속 ‘아마조네스’

 

우리나라에서는 행주대첩에서 긴 치마를 짧게 잘라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 승리로 이끌어 냈다는 저고리 ‘여군’의 역사가 전해오기도 한다. 본격적으로는 1950년 9월 6일, 한국전쟁에서 부족한 군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자의용군 교육대라는 이름으로 여군을 모집했는데 당시에는 5백여명 모집에 3천여명이 자원자가 몰려 들어 ‘여자의 애국심’이 남자에 못지 않음을 새삼 증명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1988년까지만 해도 임신하면 제대를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중도에 여군의 길을 포기해야만 했다.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여군의 경우에도 고참 소령급 이상에는 ‘올드 미스’, 신참 소령 이하에는 ‘주부’가 많다.

 

△ 1949년 여자항공교육대 1기생들과 2001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 실전배치된 여성 보라매들.

 

공군의 경우는 어떨까. 전투기와 첨단장비로 운영하는 공군의 경우, 여군의 역사는 최근에 즈음해 발돋움 했음직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육ㆍ해군과 비슷한 1949년 1월 10일 여자항공교육대를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히려 육ㆍ해군의 여군 태동이 간호장교를 시작으로 한 것과 달리 공군은 실제 조종간을 붙잡는 비행 전투병과가 공군 여군의 시초라는 점에서, 한편 공군의 여성전략이 꽤나 ‘진보적’이었다 평가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공군의 ‘先여성’ 정책은 현재까지 이어져 1997년 최초의 공군사관학교 여생도 입교에서 2001년 최초의 사관출신 여군 임관, 2003년 최초의 공군 전투기 조종사 실전배치등의 뉴스로 이어져 오고 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공군창설의 산파 ‘권기옥(權基玉)’

 

그럼 다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돌아가보자. 여자항공교육대 창설 이전에도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여군 비행사가 있었는데 얼마 전 본지를 통해 소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權基玉)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권기옥은 숭의여학교에 다니던 중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했다가 6개월 동안의 옥고를 치른 뒤, 이듬해 9월 상하이로 탈출해 항주에 있는 홍도여학교를 졸업하고 운남항공학교에 입학해 한국 청년들과 함께 비행술을 익히게 됐다.

 

1925년에 비행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중국 국민혁명군에 소령으로 입대해 중일전쟁에 이르기까지 공군으로 활동을 하다 광복을 맞았다. 그녀가 중국에 머물고 있던 중 일본 경찰이 살인 청부업자까지 보냈다는데, 오히려 동료들과 함께 킬러를 권총으로 사살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여장부였다고 전해진다.

본격적으로 공군 여군의 태동을 이끈 이정희(李貞喜) 중위는 그 뒤를 이어 2등 비행사 면허를 획득한 이후, 49년 2월 공군 여자항공교육대를 창설하였고 그해 여자항공병 15명을, 이듬해 38명을 공군에 입대시켰다.

 

현재 공군에는 600여명의 여군이 전투기, 수송기를 모는 전투조종 병과에서부터 헌병, 관제, 간호등 거의 모든 병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여군의 평등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대부분 국가에서 여성을 전투요원으로 할용하는 일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의 개념이 개인적 육체적 능력이 중시되는 섬멸전에서 첨단무기를 중심으로 한 하이테크전으로 변화함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앞선 서두에서 여성이 인간의 기본형임을 언급했듯 실제 여성의 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공ㆍ해군 사관학교에서 4년전 수석 입학했던 여생도가 나란히 수석졸업을 해 화제가 되었는데 앞으로는 이마저도 당연한 일처럼 받아질 것이란 기대가 크다.

△ 조종, 방공포, 헌병, 군악등 거의 전 분야에서 맹활약중인 공군의 여전사들.

 

사진으로 보는 각국의 여군들

 하지만 아직까지도 와일드한 얼룩무늬 전투복에 군화를 질끈 동여맨 여군의 모습에는 대중의 시선이 주목된다. 더욱이 얼굴에 위장크림을 덧바르고 수색작업을 벌이거나, 조종헬멧을 쓰고 전투기에 탑승하는 여군의 모습은 그야말로 ‘화제거리’로 불리우며 종종 매스컴을 장식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여성의 군입대를 허용하지 않았던 대다수의 서양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일까. 사진으로 보는 각국 여군의 모습들은 저마다 각 나라의 개성을 뿜어내며 묘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당찬 눈빛과 ‘군인’ 특유의 원숙한 모습들은 하나같이 ‘위풍당당’해 보인다.

 

독일

 

△ 현재 독일 여군의 비율은 약 5.4%로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1975년부터 간호 분야에 한해 독일 여성의 군 입대가 허용되었다고.

 

러시아

 

△ 우리나라와 같이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 최근 러시아에는 군기강 해이 및 폭력사건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으로 ‘미스 여군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탈리아

△ 이탈리아는 2000년에 들어서야 여성의 입대를 허용했다. 그리고 2001년부터 군대 내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유럽 주요국가

 

△ 유럽국가에서는 많은 나라에서 여군들이 직접 전투병과에 진출하고 있다.

 

아시아

 

△ 중국ㆍ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군들. 싱가포르 공군의 여성조종사도 볼 수 있다.

 

미국

△ 미국에서는 1973년 징병제 폐지 후, 여성들의 군 지원이 크게 늘어 현재 전체 군인의 15% 정도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약 2.4%) 맨 오른쪽 아래사진은 이라크 여군의 사격훈련 모습.

 

이스라엘

 

△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특이한 점은 남성과 동일하게 여성도 국방의 의무를 2년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여성 징병제는 이스라엘과 유고슬라비아 2개국만이 시행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이스라엘 여군들의 사진은 타국과 다르게 어딘가 일상적인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대한민국 군대를 새롭게 변화시킬 ‘여풍(女風)’

 국방부는 지난 해, “2020년까지 여군 비율을 장교 7%, 부사관 5% 수준으로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야흐로 우리 군에 ‘여풍(女風)’의 미래가 도래하는 것.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여군의 입지는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현역 여성장군은 국군간호사관학교장 윤종필 준장 등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북한은 어떨까. 북한의 여군은 1950년 9월 여성의용군 491명이 자원 입대한 것을 기점으로 부사관급 이상 간부 4천여명이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병사를 포함하면 1만 5천여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북한 여군의 첫 장령(장성)은 1992년 4월 진급한 인민무력부 군의국 소속 병원장인 전구강 소장(대한민국의 준장급)이며 그 이후에도 첫 북한공군 조종사 태선희를 비롯해 여러 명이 장령 계급장을 달았다고 알려져 있다. “전 인민의 전투병력화”를 부르짖는 북한의 모토만큼이나 여군의 진출비율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높은 편이다.

 

△ 북한 여군의 모습들. 행사에 참여한 의장대부터 앳된 모습의 군인의 모습도 보인다.

 

최근 모 드라마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여군의 모습처럼 현재 여군을 지원하려는 여성들의 경쟁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여군이 되는 길은 사관학교에 입교하거나 대학 졸업후 학사장교를 지원하는 것 또는 전국의 각 병무청에서 실시하는 부사관 모병에 지원하는 것이다. 제한된 수 때문에 오히려 경쟁률은 남자보다 월등히 높다.

 

◆ 작성 : 공군본부 최세진 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