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원성대왕 김경신의 꿈

醉月 2008. 9. 17. 17:24

  유고치로야! 신라 천년 역사(기원전 58년-서기 935년)를 어떻게 나누는지 아느냐?
   셋으로 나눌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오호! 그럼 나누어 보아라.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으로부터 28대 진덕여왕 때까지 700년간을 상대(上代)라 하는데,

성골(聖骨)들이 왕위를 계승하던 시기로 건국기에 해당하고,  29대 무열왕부터(654년) 36대 혜공왕까지 130년간을 중대(中代)라 하는데,

진골(眞骨)들이 왕위를 계승하던 시기로 융성기에 해당하고,  37대 선덕왕부터(780년) 56대 경순왕까지 150년간을 하대(下代)라 하는데

왕위쟁탈기로서 쇠퇴기에 해당합니다.
   으흠! 실력이 대단히 늘었구나. 오늘은 중대의 마지막 임금인 혜공왕 때 이야기를 하겠다.

혜공왕은 알다시피 경덕왕의 아들이니라. 경덕왕은 아들이 없어 노심초사하다가 표훈대덕의 도움으로 간신히 아들을 얻게 되지.

이에 얽힌 비밀스러운 이야기인 찬기파랑가를 연구한 탁월한 두 학자가 바로 연세대 최철교수와 한양대 박노준 교수니라.
  신라 36대 혜공왕.
  아버지 경덕왕의 지나친 욕심으로 여자로 태어날 운명이 남자로 잘못 태어난 인물. 그의 출생 비화는 너무나도 파란만장하고 신묘막측하
여 ≪신선의 아들≫ 제2부인 <털큰중과 강임차사의 숙명적 대결>편에 상술되겠지만, 사서에서조차 그는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다.

 

   왕이 어려서 즉위하고 장성하여서는 음악과 여색에 빠져 유흥이 도를 넘으니기강이 문란하고 재앙이 자주 나타나며 인심이 이반되고
사직이 위태로왔다.  <삼국사기, 혜공왕조>
 
  이틈을 타 왕 16년 이찬 김지정(金志貞)이 도당을 모아 모반하여 궁궐을 포위하였다. 이에 상대등 김양상(金良相)과 이찬 김경신(金敬信)
이 군사를 일으켜 지정을 토벌하였다.
  혜공왕과 왕비는 북새통 중 반란군의 손에 피살되었다. 왕의 후사가 없었던고로 중신들의 추대에 의하여 김양상이 즉위하였다.

왕위에 오른 선덕왕은 족자(族子)인 이찬 김주원(金周元)을 상대등에 승진시키고 각간 김경신을 차재(次宰)로 삼았다.

김주원은 29대 무열왕의 5세손이고, 김경신은 17대 내물왕의 12대손으로 아버지는 일길찬 효양이고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이었다.

전래의 우리 선도(仙道)를 지극히 숭상하는 가문이었기에 이름조차도  받들어 믿는다 라고 경신(敬信)이라 지었던 것이다.
 
  한날은 김경신이 꿈을 꾸었는데, 복두를 벗고 흰갓을 쓰고 12현금을 들고 천관사(天官寺) 우물로 들어가는 꿈이었다.

꿈이 하도 요상하여 서라벌에서 용하다는 복사(卜師) 승명을 불러다 해몽을 시키었다.
   드릅게 불길한 꿈이옵니다. 복두를 벗은 것은 백수가 될 징조요, 금(琴)을 든 것은 칼(형구)을 목에 쓸 징조요,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감옥에 갇힐 징조이옵니다.
  아아, 모르면 약이요 알면 병이라더니 우째 이런 일이!!
  그날부터 김경신은 자리깔고 드러누워 근심하며 두문불출하였다.

그때에 신라조정에 선도의 대가로 여삼(餘三)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벼슬이 이찬이었다.
 
  차재(오늘날의 부총리) 김경신이 발병하여 두문불출한다는 소문을 듣고 문병을 왔으나 대문에 걸린 면회사절이라는 팻말을 보았다.
   본 환자는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중환자로 절대 안정이 필요하니 객인들은 문병을 기화로 성인오락실로 데려가거나

가락국수를 먹이는 일이 없도록 면회를 엄격히 금함
  여삼은 하인을 시켜 꼭 뵙기를 원한다고 간절히 청하였다. 김경신을 면담한 여삼은 안색을 살피고 난 후,
   공이 걱정하는 바가 무엇이온지 말씀하옵소서. 
  하매 공이 한숨을 쉬며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였다.
   저런 쥐졸도 모르는 시끼가 있나.
  당장 가서 승명이 놈을 잡아오렷다.
 
  하인을 시켜 복사 승명을 잡아다 계하에 꿀린 여삼.    이런 우라질 시끼 봤나.
  개졸도 모르는 시끼가 무신 놈의 복사라고 후록구로 해몽을 하고 자빠졌어. 
  귀뽕세를 있는 힘을 다하여 후려 패버렸다. 대번에 승명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이노무시키 니가 시노모새끼가 뭔지나 알기나 하고 꺄불어?
  쥐 발톱은 왜 둘로 갈라졌으며 개졸은 왜 끝이 고리진 줄이나 알아? 
  모르지? 것도 모르는 시끼가 무슨 복사야.
  대머리만 벗겨지면 다 복사인 줄 알아?
  할려면 더 배워 갖고 제대로 해.
  차재공의 꿈은 물린 거다 알았어?
  알았으믄 썩 꺼져뻔져 썅노므시끼.
  파라비아 공화국의 지맹이같은 시끼.
 
  복사 승명을 졸나게 패불고 쫓아버린 뒤, 여삼은 복장단정히 하고 김공에게 큰절을 올리면서 말하였다.
   공의 꿈은 대단히 좋은 길몽입니다.
  근심을 모두 잊고 차차차 하십시오.
  만일 공이 대위(大位)에 올라 소생을 토사구팽하지 않는다면   해몽을 해드리겠사옵니다. 
   약속하리다. 
   그러하시면 새끼손가락을 내미십시오. 
   새끼손가락은 왜?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은 한마음임을 확인하는 결합의식입니다.
  새끼손가락을 심지(心指)라고 하옵는데,

이는 자신의 양심의 소릴 들을 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막는다 해서 마음의 손가락이 된 연유입니다.

그러니까 새끼손가락 고릴 거는 것은 결심(結心)의 의식이 되는 것입니다.
  동의, 약속, 맹세, 우정을 다질 때는 결수(結手)를 하옵는 것이고, 이를 단둘이 하면 악수(握手)가 되옵니다.

이 악수라 하옵는 것이 적대감 위해감 이런 것이 없다는 것을 보임으로 피차에 동의, 약속, 맹세, 우정을 표시하는 것이옵니다.
  집단으로 서로서로 결수를 하고 회전을 하면 손에 손잡고 벽에 벽을 넘어서 이질감이나 단절, 갈등, 배반, 증오, 독불같은 불화요인이 없어
지면서 일심동체를 다지게 되는 것이옵니다.

그러하오니 오늘은 소생과 새끼손가락으로 결지(結指)하옵고 다음에 뵈올 때는 악수를 하여 주옵소서.

이 악수가 훗날 귀족층의 사교인사가 될 날이 머잖아 올 것입니다.
  그리고 차재공의 도당들과 날을 잡아 결수한 채 회전유희를 하며  강강수월래 라는 주문을 다같이 부르십시오.

그리하면 언제고 큰일이 있을 때  조직의 단맛 을 보게 될 것이옵니다.
   강강수월래라는 게 무엇인고?
   예,  강강 이라 함은 원(圓) 주위 둘레라는 뜻이옵고,
   수월래 란 술래와 같은 것으로 순라(巡邏) 즉 경계하라는 뜻이니… 
   강강수월래란 주위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사옵니다.
 
   대밭에는 대도 총총    강강수월래
   하늘에는 별도 총총    강강수월래
   꽃밭에는 꽃이 총총    강강수월래
   해는 지고 달 떠온다   강강수월래
 
  그후 이 노래는 조직들 사이에 단합의 노래로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변형되어 후세에 전하게 되었으니…
   산아 산아 추영산아   강강수월래
   놀기 좋다 백두산아   강강수월래
   잎이 피면 청산이요   강강수월래
   꽃이 피면 화산이요   강강수월래
   청산 화산 넘어가면   강강수월래
   우리 부모 보련마는   강강수월래
   남의 부모 명자씨는   강강수월래
   책장마다 실렸건만   강강수월래
   우리 부모 명자씨는   강강수월래
   어느 책에 실렸는고   강강수월래    (목포지방)
 
   해는 지고 달 떠 온다   강강수월래
   하날에다 베틀 놓고   강강수월래
   구름 잡아 잉아 걸고   강강수월래
   별을 잡아 무늬 놓고   강강수월래
   짹각짹각 잘도 짠다   강강수월래
   그 베 짜서 무엇하나   강강수월래
   우리 오빠 장가갈 적   강강수월래
   가마 휘장 두를라네   강강수월래    (무안 지방)
 
   솔밭에는 솔잎도 총총   강강도 술월래
   대밭에는 댓잎도 총총   강강도 술월래
   시내 강변에 자갈도 총총   강강도 술월래     (안악 지방)
 
   텃밭 팔아 옷 사주랴   강강수월래
   아니 아니 그말 싫소   강강수월래
   옷도 싫고 신도 싫소   강강수월래
   장지 밖에 매여 두소   강강수월래
   황소 팔아 임 사 주소   강강수월래
 
  여삼과 김공 두 사람은 하나 되어서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꽁꽁 약속하였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변치않을 중요한 약속이 있을 시엔 새끼 손가락을 걸어 맹세를 했고, 그러고서도 어기면 새끼손가락을 작두로
끊든 도끼로 찍든 암말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남녀 사이라면 더더욱.
 
   나으리, 해몽을 올릴 터이오니 좌우를 물려 주십시오.  
   다 믿을만한 사람들이오. 
   아니되옵니다 천기에 관한 일이옵니다. 
 
  주위를 다 물리치자 여삼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나왔다.
   복두를 벗은 것은 위에 거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니 지존(至尊)이 될 징조요, 흰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요,

12현금을 든 것은 12손이 대대로 대를 이을 징조요, 천관정에 들어간 건 대궐로 들어갈 상서(祥瑞)이옵니다.
   내 위에 상재 김주원공이 있는데 어찌 대위를 잇는단 말이오? 못 믿겠소 꾀꼬리. 
   다아 방도가 있사옵니다. 북천신(北川神)에게 비밀히 제사를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좋은 수가 날 것입니다. 
   북천신이라니?
   알천신을 말합니다. 아조(我朝)가 개국할 때 영검을 보인 샘물 다섯이 있잖습니까? 6촌장이 모여 국사를 의논하던 바로 그 냇물입니다. 
  이에 경신은 좋은 날을 잡아 북천에 나아가 크게 제사를 올렸다.

그런지 얼마 안 있어 선덕왕은 병이 더욱 심해져 끝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재위 6년째인 정월 13일 승하하였다.
  이에 국인들이 후사가 없었던고로 상재(上宰)인 김주원을 왕으로 정하고 왕궁으로 맞아들이려고 하였다.

그런데 주원의 집은 천북 20리 지점에 위치하였는 바, 그날 밤부터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대번에 알천물이 범람하였다.

도저히 건너올 방도가 없었다. 폭우는 연사흘 계속되었다. 북천 시내 앞에서 김주원 일행은 안타까운 맘으로 탄식하였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냇물만 없었다면
  쓰라린 은퇴만은 없었을 것을
  해저문 냇가에서 멀리 있는 저 대궐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진 않았으리.....
 
  그러자 김경신을 지지하는 무리들이 들고 일어났다.

보위는 단 하루라도 비워둘 수 없는 것인데 사흘간이나 폭우가 내려 김주원의 등극을 저지함은 그에게 천명이 없는 거다.

오늘의 일을 보니 무릇 대위란 인모(人謀)로 되는 것이 아니로다. 천명이 없다면 그 누구도 인군이 될 수 없는 것이기에 보위라 하는 바,

지금 차재이신 경신공은 전왕의 아우요, 덕망이 본래 높아 인군(人君)의 체모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김경신 공이 마땅히 대통을 이어야 하리로다… 하며 중론을 일으켰다.
 
  사흘씩이나 헌정이 중단되었으니 더 이상 보위를 비울 수 없다 하며 김경신을 옹립하여 대궐로 들어가 즉위케 하니

이 분이 바로 원성대왕이다. 이에 처음 주원을 지지했던 무리들도 모두 내부(內附)하여 신왕에게 배하(拜賀)하였다.

이때 관계에서는  원줄은 썩은줄이요 신줄은 동아줄이다. 줄 잘 서고 줄 잘 잡아라 하는 속언이 유행하였는데,

그 뜻을 풀이하면 원줄이란 주원을 신줄이라 함은 경신을 뜻하는 것이었더라.
  더욱이 주원으로 하여금 왕권을 포기케한 결정적 사건은 병부랑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장수들이 신왕에게 충성을 서약한
것이다. 이에 김주원은 눈물을 머금고 40년간 몸담았던 일체의 공직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하였다.
  대위에의 뜻을 버리고 이제는 평범한 백성으로 돌아가 나라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겠노라고.

다만 제왕의 커다란 포부를 펼치지 못함이 서운하지만 백성들은 일치단결하여 새신라 건설에 동참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선 고향인 명주로 가족들을 거느리고 은거하였다. 이날 계림의 백성들은 조용히 지팡이를 짚고 떠나가는 상재 주원공의 뒷모습
을 보며 눈물짓잖은 이가 없었다. 원성대왕은 그에게 명주군왕의 칭호와 식읍을 내려 위로하였다.
 
  명주로 간 김주원은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는데… 이 사건의 의미는 신라 왕위 쟁탈전에서 무열왕계(김주원)가 내물왕계(김경신)에게
패한 최초의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를 두고 항간에선 나물(내물)이 열무(무열)를 이겼다고 말했으며, 무 10개가 한 나물만 못하다 라는 말이 생기었다.
 
  결국 신라는 이후 무열왕계와 내물왕계의 처절한 왕위쟁탈전이 벌어지게 되고 이것이 신라 멸망의 중요 원인이 되었다.

특히 김주원의 장자였던 김헌창은 야심만만한 인물로 아버지의 조용한 은거에 대해 불만이었다.

부친 김주원공이 죽은 뒤 명주지역의 토착세력들을 모아 헌덕왕 때에 신라 조정에 반기를 드니 이것이 그 유명한  김헌창의 난
으로 신라 지방 반란사의 효시가 되었다.
 
   유고치로야, 그후 원성왕은 약속한 대로 여삼에게 벼슬을 주려고 찾았으나 그는 전해에 죽었기에 대신 아들을 불러 벼슬을 주었다.
  이 모두가 조령신의 도움이라 생각하고 경신은 즉위하자마자 고조 대아찬 법선을 현성대왕으로, 증조 이찬 의관을 신영대왕으로,

조부 이찬 위문을 흥평대왕으로, 부친 일길찬 효양을 명덕대왕으로, 모친 박씨를 소문태후로 각각 추봉하여 조상의 음덕을 기렸다.

이외에도 원성대왕에게 따르는 선도의 이적이 많았으나, 그것은 본편과 직접 연관이 없기에 차후에 또 들려 주겠노라... 유고치로야!
   예.
 
   해몽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이제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가 고구(考究)할 때 꿈이란 반수상태(半睡狀態)에서 행위되는 그때까지의 어떤 미해결의 관심사와 미래사를 판단하
고 예지한 잠재의식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또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므로 뇌 속에 질식된 관념은 분비되고 심신 양면의 리듬을 조화시키며 개인의 실생활에 있어서의 활력과 희망을
가져다 주기 위한 생리적 현상이라 할 것이다.
   사부님! 저의 소견으로는 결국 해몽은 우리의 일상사를 경험적이 아닌 예지적 차원으로 해석하여 긍정성과 적극성을 불러 일으켜 운명
을 통찰해 나가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되옵니다. 
 
   유고치로야 참으로 옳은 말이다.
  좋은 꿈. 그리고 꿈보다 한결 중요한 해몽.
  또 그에 따르는 실천과 노력의 삼위일체.....
 
  이 시대 최후의 신선인 보칠산은 우리 한대국이 남북 평화통일하여 남해에서는 세계 최대 최량의 유전이 발견되고 북에서는 세계 최대 최
고의 우라늄광이 발견되어 그 재력을 바탕하고 상제님의 가호를 받아 만주 고토를 회복하고 게다국을 복속시키고,

그리고 세계를 일통하는 꿈을 매일 꾼다고 한다.
  유고치로야!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일을 해낼 것인고?
  이 위대한 민족적 숙업을 해낼 자 그 누구인고?
   소제의 부족한 소견으로는 그가 바로  신선의 아들 이 아닐런지요?
   유고치로야! 맞았도다. 그가 바로  신선의 아들 이니라.
  그는 까마득한 날에 하날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던 때(선천개벽)에 이미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범하지 못한 이곳(한대국)으로 천고의 뒤에(후천개벽) 청포(Blue Manteau)를 입고 백마(White Horse)를 타고 와
서 쾌지나칭칭다네를 목놓아 부르며 저 거치른 광야(만주+중원)로 진군하여 다물할(고토회복) 것이다.
   ......................... ! 
   유고치로야! 너는 오늘 밤 잠자리에 들면서 어떤 꿈을 꿀 것이며,
  내일 아침 어떤 해몽을 할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