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공군은 꽤 예전부터 F-15와 같은 대형전투기의 운용을 원했으나 예산 등의 문제로 계속 미뤄졌었다. 이후 90년대 중반부터 F-X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전투기 40대를 도입하는 사업을 벌였으며 여기에는 미국의 F-15K, 프랑스의 라팔, 유럽연합의 유로파이터 그리고 러시아의 SU-35가 각각 참여 했었다.
▲ 우리공군의 F-X 사업에 참여했던 전투기들. 이 전투기들의 제작사들은 사업을 따내기 위해 매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지난 1화에서도 언급했던 것 같이, 이때의 경쟁은 매우 치열했으며 평소에 군의 무기도입 사업에 큰 관심을 갖지 않던 언론과 일반 시민들도 F-X사업에 관심을 가졌었다. 심지어 F-X사업에 참여한 각 전투기 제작사들은 항공, 군사 전문지는 물론 일반신문에도 자신들의 광고를 내보냈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했던 것은 F-15K(F-15E)를 제외하고는 수출된 적이 없는 전투기들이었기 때문이다(게다가 당시 SU-35는 러시아 공군조차 대량 운용할 계획이 없던 전투기였다. 최근에 러시아 공군은 SU-35-1을 도입하기로 했는데 F-X 사업에 제안했던 SU-35와는 몇 가지 부분이 바뀐 버전이다.). 한국 공군에 판매를 해서 첫 수출에 성공하면, 이후 다른 나라에도 전투기를 판매하기 수월하기 때문에 각 전투기 판매업체들로서는 사활을 걸 수 밖에 없었다(실제로 F-15K가 선정 된지 얼마 안 돼 라팔과 F-15SG를 놓고 고민하던 싱가폴도 F-15SG를 선택했다. 우리 공군이 F-15K를 선택한 일이 싱가폴이 내린 결정에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차 검토에서 SU-35와 EF-2000이 탈락하고 F-15K와 라팔이 최종 후보로 뽑혔으며 다시 군은 면밀히 검토한 끝에 2002년에 최종적으로 F-15K를 우리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로 선정했다. 이후 우리 공군은 F-15K에 붙일 이름을 공모하였고, 그 결과에 따라 F-15K의 이름은 슬램 이글(Slam Eagle)이 되었다.
▲ 비행시험 중인 F-15K의 1호기. 수직꼬리날개에 적혀 있는 001이 바로 1호기라는 의미다.
F-15K는 기본적으로 F-15E의 최후형태과 유사하지만(같은 F-15E라 하더라도 생산시기에 따라 내부의 구조물이 조금씩 다르다), 레이더나 탑재무장 등이 약간 다르다. F-15K의 레이더는 AN/APG-63(v)1으로 미 공군의 AN/APG-70(이하 -70레이더)보다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다. 번호가 63이어서 더 옛날 레이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실제로 이렇게 오해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애시당초 -70이 -63에서 출발한 레이더이다 보니 이런 번호가 매겨졌다. 즉 -63레이더에 -70레이더와 같은 지상탐색능력을 덧붙이는 한편, 고장확률을 줄이고 몇 가지 성능을 더 업그레이드 한 것이 AN/APG-63(v)1인 것이다.
또 F-15K에는 전파방해장비 역시 최신형이 장착되었다. 이 장비는 ALQ-135M이라는 장비로 원래는 미국이 기술유출을 우려해서 우리 군에게 판매하지 않으려던 장비였다. 그러나 F-X사업이 치열해지자 원래 보다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 위해 판매를 허가했다.
F-15K의 목표물 조준용 및 저고도 침투용 장비는 LANTIRN 대신 더 업그레이드 된 타이거아이(Tiger Eye)가 장착되었다. 타이거 아이는 기본적으로 LANTIRN과 하는 일이 유사하지만, 동체와 목표물 조준용 장치를 연결해주는 파일런 부분에 작은 센서가 하나 추가되었다. 이는 IRST(적외선 탐색 및 추적 : Infra-Red Serach and Track)라는 장비로, 공중에 있는 열원을 감지해내는 역할을 한다. 레이더는 전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적이 역으로 레이더 경보 수신기 같은 것을 이용, 전파를 분석해서 이쪽의 존재를 눈치 챌 수 있다.
그러나 IRST는 적기에서 흘러나오는 열(적외선)을 감지할 뿐, 전파 같은 것을 주변에 뿌리지 않으므로 적기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적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다만 적외선 수신기 자체는 적기의 방향만 알 수 있을 뿐 거리를 알 수 없으므로 이를 알려면 IRST 장비에 포함되어 있는 레이저 거리 측정기 같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
▲ F-15K의 오른쪽(앞에서 보았을 때 기준) 공기흡입구 아래에 달린 타이거아이 목표 지시 장비. LANTIRN과 비슷하지만 IRST가 추가되었다. 사진에서 앞으로 돌출된 반투명한 검은 돔이 씌워진 부분이 IRST 센서 부분이다.
또 F-15K에는 JHMCS (통합 헬멧 조준 시스템 : Joint Helmet Cueing System)이 추가돼서 F-15K의 조종사는 목표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사일의 조준이 가능하다. 이 장치는 일일이 레이더나 미사일을 조작할 겨를이 없는 근접 격투전 상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게다가 F-15K에 탑재되는 AIM-9X 수퍼 사이드와인더 미사일과 결합할 경우 과거에는 조준이 불가능했던, 기수 중심선에서 45도 정도 벗어난 적기를 향해서도 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
▲ JHMCS를 설명한 그림. 조종사가 쓴 헬멧의 바이저 안쪽에는 그림 중앙처럼 각종 비행 및 무기 조준과 관련한 숫자와 도형들이 뜬다. 더불어 레이더나 미사일의 탐색기 등이 이 헬멧과 연동, 조종사가 바라보는 곳을 똑같이 바라보므로 손으로 레이더, 미사일 등을 조작하는 것 보다 훨씬 손쉽게 적기를 조준할 수 있다.
▲ AIM-9X 수퍼 사이드와인더. 종전의 사이드와인더와는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탐색기는 단순히 적외선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적 항공기의 형상을 인식하는 열영상 방식이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미사일이 적 항공기와, 적 항공기가 미사일을 속이기 위해 뿌리는 플레어(섬광탄)을 형태가 다른점을 이용해 구분할 수있게 된다. 또 과거의 AIM-9 시리즈는 미사일의 방향을 틀기 위해 앞쪽 날개(카나드)를 움직였지만, AIM-9X는 꼬리쪽 날개를 움직인다.
사실 실제로는 이 날개와 연동돼 로켓 분사구에 달려 있는 판(vane)이 함께 움직이는데, 덕분에 로켓의 분사방향이 바뀐다. 즉 AIM-9X는 로켓 분사방향을 바꾸는 추력편향 방식을 사용하며, 덕분에 발사 직후 급격히 방향을 바꿔 전투기 기수 방향에서 45도 이상 벗어난 목표물을 향해서도 날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F-15K는 F-15E의 F100계열 엔진이 아니라 F110 계열 엔진이 달렸으며, 이 엔진의 초기 생산분은 엔진의 원 제작사인 제네럴 일렉트릭에서 생산했고 나머지는 삼성 테크윈에서 라이센스 생산했다.
F-15K의 무장은 F-15E처럼 AIM-120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AIM-9X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JDAM GPS/ISN 유도폭탄, 레이저 유도 폭탄, AGM-130 열영상 미사일 등이 있다. 한편 F-15K는 미 공군의 F-15E는 운용하지 않는 AGM-84L 하푼 공대함 미사일을 운용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로서는 전투기가 지상뿐만 아니라 해상의 목표물을 상대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렇게 F-15에 함정에 대한 공격능력을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F-15K는 AGM-84H SLAM-ER 미사일도 탑재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이 미사일은 AGM-84 시리즈 미사일을 기초로 만들었지만 사거리가 270여km에 달하는 공중발사식 순항미사일이다. 기체구조물의 경우엔 기본적으로 F-15E와 F-15K가 거의 유사하지만 일부분에선 약간 다르다. 이를테면 F-15E는 수평, 수직꼬리날개 등에 허니컴(Honey Comb), 즉 벌집구조물을 사용하지만 F-15K는 그리드 락(Grid-Lock)이란 구조물을 사용한다(F-15E는 210번째 생산된 기체부터 이 구조물을 사용했으며 미 공군의 F-15C/D 및 이 구조물을 사용하지 않은 F-15E도 그리드 락으로 교체하는 개량작업을 진행했다).
하니컴이란 육각형으로 된 벌집 모양의 구조물을 일종의 심으로 삼아서 그 위아래에 얇은 껍데기를 접착시키는 샌드위치 형태의 구조물이다. 이것은 무게에 비해 높은 강도를 얻을 수 있다 보니 F-15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항공기에 많이 사용되던 물건이다. 그러나 습기에 의해 구조물이 들뜨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F-15K는 하니컴 대신 굿리치(Goodrich)에서 개발한 그리드-락 구조물을 사용한다. 이것은 외피와 내부의 격자모양 구조물이 단순히 접착제로 붙는 것이 아니라 서로 꽉 물리게 결합된 형태다. 그래서 그리드-락은 하니컴에서 생기던 구조물이 들뜨거나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하니컴과 비교해서 외부충격에도 잘 견디고 비틀림에도 강하다.
▲ 그리드락과 하니컴의 비교 그림. 하니컴은 외피 부분과 내부의 벌집구조물이 접착제로 고정되지만, 그리드락은 격자무늬 구조물이 외피부분과 기계적으로 맞물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더 튼튼히 고정된다. F-15K의 에일러론, 플랩, 에어브레이크, 수평, 수직꼬리날개 외피 상당 부분과 전방 착륙장치 덮개 등이 이 그리드락 구조물을 사용되었다.
한편 우리 공군은 2008년에 2차 F-X사업을 통해 F-15K를 21대 추가 구매하기로 했다. 이 21대의 F-15K는 F110 엔진 대신 KF-16의 것과 같은 F100엔진이 탑재될 예정이다.
▲ 엔진을 최대출력으로 높인 채 비행하고 있는 F-15K의 모습이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 F-15K에 탑재되는 각종 무장들
여기서는 본문에 언급된, F-15K에 탑재되는 무장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JDAM GPS/INS 유도 폭탄
요즘 승용차가 있는 사람들은 으레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 위성을 이용해 위치정보를 알려주는 GPS 네비게이션 장비다. 사실 이 시스템은 미군이 활용하려고 개발한 것이나, 현재는 민간용으로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단 GPS 전파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중 매우 정밀하면서 적의 전파방해에 강한 군용전파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 GPS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지구상 어디에서나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그 가격이 매우 싸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GPS와 INS(Inertial Navigation System : 관성 항법 시스템)을 조합해 매우 값싼 유도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INS란 물체가 받는 관성력(더 정확히는 가속도, 각가속도 등)을 측정하여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아는 장비이다. 이 INS에 사용하는 관성력측정 장비를 활용하면 물체의 위치정보 뿐만 아니라 자세정보까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미사일 같은 유도무기에는 필수적이다(미사일이 현재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알아야 똑바로 날아가고 있는지, 얼마나 각도를 틀어야 목표물을 정확히 향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한번 작동을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오차가 커진다. 매우 정밀한 INS를 사용하면 오차율을 줄일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오차는 계속 발생하며, 가격은 가격대로 매우 비싸진다(이를테면 순항미사일이나 항공기에 들어가는 고성능 INS는 수 십 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GPS를 이용해서 INS에서 생기는 오차가 얼마인지 확인하고, 그 오차를 계속 수정해준다면 좀 더 값싼 INS(즉 오차가 많이 발생하는 INS)를 쓰면서도 정밀한 유도무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생각에서 개발하게 된 것이 JDAM (Joint Direct Attack Munition : 합동 직격탄)이다. JDAM은 일전에 소개한 레이저유도 폭탄처럼, 원래 군에서 쓰고 있던 비유도 폭탄(Mk.82, Mk.83, Mk.84 등)의 탄두에다가 비유도 폭탄용 꼬리 대신 유도장치가 들어있는 꼬리를 끼워 넣으면 완성된다.
▲ 그림에서 초록색 부분은 원래의 폭탄 탄두 부분이고, 회색부분이 JDAM을 만들기 위해 추가로 붙인 부분이다. 그림의 위에서부터 GBU-31(2000파운드급 폭탄 Mk.84 탄두 사용), GBU-31(2000파운드급 관통폭탄 BLU-109 탄두 사용), GBU-38(500파운드급 Mk.82 탄두 사용)
이 유도폭탄은 조종사가 이륙하기 전에 목표물의 위치를 미리 알고 있다면 그 좌표를 폭탄의 메모리에 미리 입력해 놓을 수 있다. 그리고 조종사는 목표물 근처에서 JDAM을 떨어트리기만 하면 그 뒤로는 JDAM 스스로 미리 입력된 좌표에 정확히 떨어진다. 만약 정확한 목표물의 위치를 모르거나, 혹은 긴급하게 다른 목표물을 타격할 일이 생긴다면 레이더로 목표물을 조준해서 그 좌표를 알아낸 다음, JDAM에 입력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때도 일단 한 번 JDAM에 좌표를 입력해 주면, 투하 후에 조종사가 별 다른 조작을 할 필요가 없다. 레이저 유도폭탄에 비하면 JDAM은 계속 레이저로 목표물을 조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조종사의 업무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다만 레이저 폭탄과 달리 JDAM은 이동하는 목표물은 정확히 타격할 수 없다. 물론 이런 약점을 보완하려고 이동목표물을 타격하는 방법도 몇 가지 개발 중에 있다).
▲ 2005년 에어쇼 당시 공개된 F-15K의 JDAM 장착 모습. 작은 것은 GBU-38, 큰 것은 GBU-31이다. 사실 이 폭탄들은 실물의 형상을 그대로 본 딴 모의탄들이다. 실탄을 항공기에 장착한 채로 공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GBU-28 벙커버스터
걸프전 당시, 이라크는 주요 지휘본부를 지하 깊숙한 벙커에 두었다. 미 공군은 특별히 견고한 시설물을 파괴하기 위해 개발한 관통탄두, 즉 BLU-109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 탄두만으로는 이라크의 지하 지휘본부를 공격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매우 급조해 만든 것이 바로 GBU-28 벙커버스터다. GBU-28 벙커버스터의 레이저유도 장치는 기본적으로 종전에 쓰던 GBU-27 페이브 웨이III의 것과 동일했으나, 탄두가 전혀 달랐다.
▲ F-15E에서 투하되고 있는 GBU-28 벙커버스터. 이 유도폭탄의 유도장치는 GBU-27의 것과 거의 동일하지만, 탄두는 GBU-27의 것보다 훨씬 튼튼하고 무거운 관통탄두(BLU-113)을 사용한다. 덕분에 무게는 2톤에 달하고, 크기도 꽤 크기 때문에 F-15E 같은 대형전투기에만 탑재할 수 있다.
GUB-28의 무게는 전체 4700파운드(2100gk)으로 GBU-27(2080파운드 = 944kg)의 2배가 넘었다. 그러나 폭탄내부에 들어 있는 폭약의 양은 GBU-27의 절반 수준이었으며, 나머지는 전부 두껍고 튼튼한 강철케이스의 무게였다. 이 무겁고 튼튼한 케이스는 급하게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에 초기에 생산된 GBU-28은 원래 미 육군이 쓰다가 퇴역시킨 203mm 자주포(M110)의 포신을 잘라서 만들었다(물론 나중에 생산된 폭탄은 새로 가공해서 만들었다).
처음 개발을 시작해서 첫 폭탄 투하시험을 진행하기 까지 단 12주 밖에 안 걸린,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만든 폭탄이었지만 그 위력은 확실했다. GBU-28은 일반 지면이라면 30m, 콘크리트 벽이라 하더라도 6m를 뚫고 들어간 다음 폭발 할 수 있었다. 다른 관통폭탄들이 그렇듯, GBU-28도 시한신관을 사용했다. 즉 GBU-28은 목표물에 부딪히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폭발하는 방식이었는데, 만약 목표물에 닿자마자 폭발해 버리면 폭탄이 충분히 적의 벙커를 뚫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 본문에서 언급된 M110 8인치 (203mm) 자주포의 모습. 초기 생산된 GBU-28은 퇴역한 이 자주포의 포신 부분을 잘라서 만들었다.
이 GBU-28은 정작 걸프전에선 2발 밖에 사용하지 못했었지만(당시엔 F-15E가 아니라 F-111)이 사용, 이후 미군은 F-15E에 탑재, 코소보 등에서 사용했다.
AGM-130
GBU-15라는 폭탄이 있다. 이 폭탄은 2000파운드급 폭탄인 Mk.84의 탄두(혹은 관통탄두인 BLU-109)에다가 유도장치를 덧붙인 것으로, 이런 점은 페이브웨이 유도폭탄과 비슷하지만 유도 방식이 전혀 다르다. GBU-15는 TV, 혹은 열영상 유도 방식이며 앞에 달린 카메라에 잡힌 목표물을 조종사가 지정해주면 그 목표물을 스스로 쫓아갔다. 하지만 전투기에서 이 폭탄을 먼저 목표물 근처로 떨군 다음 조종사가 목표물을 지정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 GBU-15의 초기형인 GBU-15(V)1/B. 독특한 형상의 앞쪽 날개(카나드)가 특징이다.
이 폭탄은 전투기로부터 떨어져 나간 다음에도, 데이터링크를 통해 자신의 카메라에 비치는 영상을 전투기에 계속 전송해 줄 수 있다. 조종사는 이 영상을 보면서 목표물을 다시 지정해 줄 수 있으며 심지어 조종용 스틱을 이용, 폭탄을 떨어지는 동안 임의로 원격조종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레이저 유도폭탄과 달리 목표물 근처에서 누군가가 계속 조준을 해줄 필요는 없으며, GBU-15를 떨군 전투기는 즉각 목표물 근처에서 벗어나면서 원격조종을 할 수 있다(이 원격조종은 꼭 폭탄을 떨군 전투기가 직접 할 필요는 없다.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탑재한 다른 동료기가 더 먼 거리에서 대신 원격조종 해줄 수도 있다.)
▲ GBU-15(v)21/B. 날개 모양이 좀 더 평범하게 바뀌었다. 현재 쓰이고 있는 GBU-15는 주로 이런 형태다.
이 GBU-15의 사거리를 늘려 놓은 것이 바로 AGM-130이다. AGM-130은 항공기에서 투하되고 나면, 먼저 미리 정해진 고도로 활공하듯 날아간다(물론 글라이더처럼 매끄럽게 활공한다고 보긴 어렵다). 그리고 이 미사일은 로켓을 점화한 후, 그 추진력으로 계속 날아가게 된다. 다만 알고 보면 이 로켓의 추진력은 그렇게 강력한 편은 아니며, 그저 AGM-130의 고도가 떨어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즉 AGM-130은 로켓을 사용해 활공에 가까운 추진비행을 하는 셈이다. 로켓 부분은 비행 중 연료가 다 떨어지면 자동으로 떨어져나가며, 그 때부터 AGM-130은 다시 관성에 의해 활공 비슷한 비행을 계속 하게 된다.
▲ F-15E에 탑재된 AGM-130. GBU-15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폭탄 아래 부분에 추진용 로켓이 달려 있다.
이런 방식의 비행으로 AGM-130은 최대 60km까지 날아갈 수 있는데(항공기가 빠른 속도로 비행하면서 높은 고도에서 떨어트렸을 때), 이는 GBU-15가 비슷한 조건에서 투하되었을 때 날아 갈 수 있는 거리의 3배에 이른다. AGM-130은 늘어난 사정거리에 걸맞게 GBU-15에는 없던 GPS/INS 항법 시스템이 추가되었다(단, 나중에 GBU-15도 이 항법시스템이 추가된 버전이 등장한다). 즉 이 미사일은 조종사가 미리 지정해 놓은 좌표까지 GPS/INS 항법장치로 날아가는 것이다.
미사일이 최종 목표물 근처에 다다르면, 조종사는 GBU-15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데이터링크를 통해 미사일에게 목표물을 지정해주거나, 아니면 직접 원격조종해서 목표물에 폭탄을 명중시킬 수 있다(사실 AGM-130은 로켓이 떨어져나간 이후에는, GBU-15는 작동방식이 별 다를 바가 없다).
▲ AGM-130 미사일이 보내오는 영상. 조종사(혹은 무장관제사)는 조종석의 모니터를 통해 이런 영상을 보면서 목표물을 지정해주거나, 혹은 직접 원격조종해 미사일이 목표물을 향하게 만들 수 있다.
AGM-130은 코소보 전쟁 때부터 실전에 투입되어 사용되고 있다.
AIM-120 암람
미군의 주력 공대공 미사일이었던 AIM-7은 반능동레이더 유도 방식이었다. 이 유도방식은 이를테면, F-15가 MIG-29를 레이더로 비추는 한편, AIM-7을 날리면 이 미사일은 MIG-29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F-15의 레이더전파를 쫓아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반능동 유도 방식의 레이더를 이용해 먼 거리의 적기를 향해서도 정확히 미사일을 꽂아 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미사일을 발사한 항공기 역시 적기를 끝까지 레이더로 비추고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즉 앞서 예를 든 상황에서 F-15가 또 다른 적기라든지, 혹은 지상의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받아서 급선회를 하며 회피를 한다면 더 이상 원래 목표를 비출 수 없게 된다. 레이더는 전투기의 앞쪽만 탐색할 수 있기 때문에 급선회를 하느라 전투기가 기수를 돌려 버리면 더 이상 레이더는 적기를 조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유도방식이 능동유도방식이다. 능동유도 방식은 미사일이 자체적으로 작은 레이더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미사일 스스로 적기를 레이더로 조준해서 쫓아가는 방식이다. 미사일이 자체 레이더로 적기를 조준하므로, 조종사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나면 나몰라라하고 도망갈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방식을 발사한 다음에는 그 미사일에 대해 잊어 버려도 된다고 하여 발사 후 망각(Fire and Forget) 방식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미사일에 들어갈 수 있는 레이더의 크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사일 자체 레이더의 탐지거리도 보통 10~2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즉 이 미사일의 자체 레이더로 적기를 찾아서 최종적으로 적기로 돌입하는 종말유도 단계 이전에는 다른 방식으로 유도를 해줘야 하는 것이다.
종말유도 이전의 유도단계, 즉 중간 유도단계로 흔히 사용하는 것은 관성항법장치와 데이터링크다. 관성항법장치는 앞서 JDAM에서 본 것과 같이 미사일이 어떤 좌표까지 스스로 날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미사일이 날아갈 좌표란, 적기와 만나게 될 예상좌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적기의 좌표로 날아가면 안된다는 점이다. 현재의 좌표로 날아가면 이미 적기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므로 적기의 속도나 고도, 방향 등을 고려해서 적기와 만나게 될 예상 지점을 향해 날아가야 한다.
문제는 적기가 속도나 고도,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중간 유도 단계에서 적기가 경로를 바꿨는지, 즉 적기와 만나게 되는 예상좌표가 바뀌었는지를 미사일 스스로는 알 수 없다(미사일 자체의 탐색거리 밖의 적기 위치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그래서 일단 미사일을 발사한 전투기가 레이더나 기타 탐지 수단으로 적기를 계속 추적, 적기의 방향 등이 바뀌었다면 미사일에게 데이터링크를 이용해서 자동으로 이 사실을 알려준다.
일반적으로 능동유도 방식의 미사일은 실질적으로는 최종돌입 단계에서만 능동유도 방식을 사용하며, 중간 유도 단계는 이런 INS와 데이터링크를 이용한 유도방식을 택한다. 즉 일반적으로 능동유도 방식이라 알려진 미사일들은, 실제로는 적기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에는 두 가지 이상의 유도 방식을 사용하는 복합유도방식이다.
미 해군의 경우 이러한 능동유도방식 미사일인 AIM-54 피닉스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180km가 넘지만(참고로 AIM-7이 약 50~70km다), 항공모함을 향해 날아오는 폭격기 등을 요격하기 위해 개발한 미사일이었기 때문에 전투기 같은 민첩한 목표물을 요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AIM-54는 먼 거리를 날아가기 위해 많은 로켓연료를 탑재하고, 더불어 크고 무거운, 복잡한 복합유도 시스템을 탑재했기 때문에 그 무게는 AIM-7의 두 배에 이르렀다.
▲ F-14 톰캣이 AIM-54 미사일을 6발 달고 비행하고 있다. 이 미사일은 오직 F-14만 운용할 수 있었으며, 미 해군은 F-14를 퇴역시키면서 이 미사일 역시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졌다. 한편 AIM-54는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F-14 전투기는 보통 많이 달아야 4발만 달았다. 사진처럼 6발을 달면 지상기지에서는 이륙할 수 있으나, 항공모함에는 착륙할 수 없게 된다(즉 사진은 홍보를 위해 일부러 6발을 달고 비행하는 사진이다. 그나마 사진속의 미사일은 발사가 안되는 훈련용 모의탄이다)
그래서 미국은 AIM-7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능동유도방식(복합유도방식)을 사용하는 한편, 크기는 AIM-7 내지 그 이하의 수준으로 줄인 미사일의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물이 바로 AIM-120 암람(AMRAAM : 선진형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 Advanced Medium Range Air to Air Missile)이다.
▲ F-16 전투기에 장착된 AIM-120 암람. AIM-7 미사일의 경우에는 워낙 무겁기 때문에, 이처럼 전투기의 날개 끝에 달지 못했으나 AIM-120은 가볍다 보니 사진과 같은식으로 전투기에 장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편 이 암람이 막 개발되던 시점에 NATO 연합군이 공통으로 쓰기로 했다(마찬가지로 NATO가 함께 쓰기로 한 단거리 유도 미사일, AIM-132 ASRAAM(Advances Short Range Air to Air Missile)도 개발되었었으나 이 미사일은 이후 사용하기로 한 나라들끼리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영국만 쓰게 되었다). 암람은 걸프전 당시 막 개발이 완료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아서 실전에 쓰이지 않았다. 실전에서 최초로 쓰인 것은 걸프전 직후인 1992년으로 미군 소속의 F-16C가 비행금지구역에 있던 이라크의 MIG-25를 떨어트릴 때였다.
AIM-120 암람의 특징 중 하나는 작고 가볍다는 점으로, AIM-7 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크기와 무게는 AIM-7보다도 작다. 심지어 이 미사일은 AIM-7용 발사대 뿐만 아니라 AIM-9의 발사대에도(정확히는 AIM-9, AIM-120 공용 발사대) 장착이 가능하다. 현재 AIM-120시리즈는 성능개량형인 AIM-120B, 날개의 크기가 줄어서 스텔스 전투기의 내부에 더 많이 들어 갈 수 있게 개량된(물론 다른 성능도 개량됨) AIM-120C 등이 등장한 상태이며, 개발사인 레이디온은 사거리를 50%가량 늘린 AIM-120D를 개발 중인 상태다.
▲ 이 사진 속의 F-16은 드물게 AIM-120A와 AIM-120C를 같이 달고 있다. 날개 끝쪽의 AIM-120은 C형으로, 잘 보면 날개 끝부분이 살짝 잘려나간 것처럼 생겼다. 개발자들이 이렇게 AIM-120C의 날개를 더 작게 만든 이유는 전체적인 크기를 줄여서 F-22나 F-35 같은 스텔스 전투기의 내부에 이 미사일이 더 많이 탑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편 AIM-120C는 날개 크기가 줄어든 덕에 공기저항 역시 줄어들어서 사정거리도 더 길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 F-15E의 경우에는 보통 날개 아래쪽에 이렇게 AIM-9(머리가 까만 미사일)과 AIM-120을 함께 단다. 만약 F-15E가 AIM-7 스패로우를 쓰려면 일체형 연료탱크 밑에 밖에 달지 못하는데, 이렇게 되면 이 부분에 지상공격용 폭탄을 탑재하지 못한다. 하지만 AIM-120은 AIM-9처럼 날개 아래쪽의 발사대에 장착할 수 있다 보니 F-15E로서는 이 미사일 덕에 공대공, 공대지 무장 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다.
AGM-84H SLAM-ER
미 해군은 대함미사일인 A/R/UGM-84 하푼(작살 : Harpoon) 시리즈를 만들었다. 이것은 세부적으로 항공기 발사형(AGM-84), 함정 발사형(RGM-84), 그리고 잠수함 발사형(UGM-84)가 있다. 이 GM-84 시리즈는 마하 0.8 정도의 속도로 최대 150km 정도 까지 날아가며 먼 거리를 날기 위해 로켓이 아닌 소형 제트엔진을 사용하는 순항 미사일의 일종이다.
▲ 비행중인 AGM-84 하푼. 이 미사일은 소형 제트엔진을 사용하는 순항미사일이기 때문에 비행 중에도 꼬리 뒤로 연기나 화염이 보이지 않는다(단 배나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버전의 경우에는 초기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로켓부스터를 사용하므로 이때는 연기나 화염이 보인다. 로켓 부스터는 다 타고나면 떨어져나간다). 이 미사일의 유도방식은 AIM-120과 유사한데, 발사한 뒤에는 예상되는 목표물 위치까지 관성항법장치를 이용해 날아간 다음, 자체레이더를 켜고 목표물을 최종확인하며 돌입한다.
그런데 미 해군은 AGM-84를 개조, 함정 뿐만 아니라 지상의 목표물도 공격할 수 있는 공대지 미사일을 개발했다. 이 공대지 미사일은 외형상 AGM-84와 유사하지만 최종유도단계에서 레이더가 아니라 열영상으로 유도되는 방식이며, 조종사가 미사일이 보내오는 영상을 보면서 목표물을 확인 및 지정하면 미사일은 그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방식이다(즉 유도 방식은 앞서 설명한 AGM-130과 유사하다). 이 미사일은 AGM-84E SLAM(장거리 지상공격 미사일 : Stand off Land Attack Missile)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AGM-84E의 사거리를 대폭 늘린 공중발사 순항 미사일이 AGM-84H SLAM-ER(사거리 연장형 : Extended Range)다. 이 미사일은 내부의 전자장비들이 대폭 업그레이드 되고, 탄두도 더 강력한 것이 달렸지만 외형역시 AGM-84E와는 크게 달라졌다. 원래의 AGM-84E는 다른 AGM-84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4장의 작은 날개(지느러미(Fin)이라고도 한다)를 가지고 있었으나, AGM-84H는 마치 항공기의 것처럼 생긴 커다란 주 날개를 가지고 있다. 이 날개는 평상시에 동체와 가지런히 접혀 있다가 발사되고 나면 펼쳐진다. 더불어 전방의 열영상 카메라를 덮는 유리창 부분도 목표물을 정확히 보는데 도움을 주도록, 평면 창으로 바뀌었다.
▲ AGM-84H SLAM-ER. 날개가 하푼이나 SLAM의 작은 X자형 날개가 아닌, 큰 한 쌍의 개로 바뀌었다. 덕분에 비행효율이 좋아져서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270km 수준이 되었다. 앞쪽의 까만 부분이 열영상 카메라가 들어 있는 평면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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