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왕건과 오다련의 배놀이

醉月 2008. 9. 22. 10:13

  … 역사를 알면 경지가 열릴 것이요
  … 선도를 알면 진리가 보일 것이다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 샘물 떠주고
  그리고
  인사하기 웃고 받았죠
  평양성에 해 안 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이 시가 바로 그 유명한 홍문관 제학이셨던 파인(巴人) 김동환 한림학사의 <웃은 죄>라는 시다.

샘물이란 게 무엇인가? 이 시에 나온  것 처럼 남녀의 인연이 맺어지는 곳이 바로 샘가 아닌가?


  동구밖에 샘터가 있고, 물긷는 처녀에게 지나가는 과객이 잠시 수작을 붙여서 일순 감정의 파문을 일렁이게 했던 옛 시대의 풍
정을 애교를깃들여서 절묘하게 읊은 시가 아닌가?
 
  우주 구성의 5요소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이며 이를  선도(仙道)에서는 오행(五行)이라 부른다.

여기서 목은 동(東)이 되고 금은 서(西)가 되며 화는 남(南)이 되고 수는 북(北)이 되고 토는 중앙(中央)이 된다.

즉 물은 오행의 한 요소이며 만물의 근본으로서 숫자로는 1과 6이 된다.
 
  지금 오행의 원리를 설명해봐야 누가 알아 들으리오? 

다만 우주의 시초가 겨울이자 북의 축인 1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간단히 알 수 있는바,

이것을 수생목(水生木)이라 하느니라. 그렇기에 모든 문화와 문명은 우주만물을 생하게 하는 물 즉 강가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또한 왕조의 시작도 그러할 수밖에 없나니라.
 
  물이 없으면 인간은 한시라도 살 수가 없다. 밥은 40여일간씩 안 먹고 견딜 수 있으나 물은 1주일간 안 마시면 죽는 것이고

공기는 단 5분간만 안 마셔도 죽게 되는 바, 인간 생존 조건 중에서 수(水)와 기(氣)는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 하겠도다.

그렇기에 물과 기가 좋은 곳에 사는 민족이 그만큼 좋은 신체와 정신을 지니게 되어 있고 따라서 우수한 민족이 되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좋은 공기 깨끗한 물을 갈망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대국은 간방, 즉 동북방의 해뜨는 곳에 위치하므로 이 지상에서 가장 수기가 성한 땅이다. 이는 오로지 옥황상제의 천복이며
한대국 한배검 배달족에게만 주시는 천은인 것이다. 고로 지상인류 중 장 우수한 족속으로 점지되었으며 세계사의 주역으로 배정되어 있
음은 천명에 의한 것이지 어떤 인위로 된 것이 아니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진저.
  눈 있는 자는 깨달을진저.
 
  물이 있는 곳에서 왕조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였으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 어디인가?
  까마득한 옛날 진한땅에 6촌이 있었으니 알천 양산촌(촌장 알평-이씨의 조상) 돌산 고허촌(촌장 소벌도리-정씨의 조상) 무산 대수촌(촌
장 구례마-손씨의 조상) 취산 진지촌(촌장 지백호-최씨의 조상) 금산 가리촌(촌장 지타-배씨의 조상) 명활산 고야촌(촌장 호진-설씨의 조
상)이더라.
 
  각 부락이 점점 융성해지매 6촌장이 만백성을 밝히 다스리실 성군(聖君)을 모시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모여 의논한 장소가 알천(閼川)냇
가였더라. 또 이들의 발원에 옥황상제께옵서 하감하시어 흰 말에 붉은 알을 실어 지상으로 내려보내시니 그 장소가 또한 나정(蘿井) 우물가였더라.
  알평 촌장이 붉은 알을 깨뜨리니 그 속에서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 아이를 사뇌뜰 북쪽에 있는 동천(東川)에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며

일월이 밝아지므로 세상을 밝게 다스릴 징조라 하여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지었다.
 
  그때 각종 짐승이 모여 춤을 추는 것을 본 백성들이 다음과 같은민요를 지어 불렀는데

이 노래가 오래 동안 전승되어 내려오며 아이들사이에 널리 불리워지더라.
    육촌 대왕이라 하는
    불구내의 생일날이 되어
    각새 짐승 대궐에 모여
    무도회가 열렸네
    토끼는 춤추고
    여우는 깡깽이
    찌까 찌까 찌까 찌까
    찌까 찌까하더라
    그 중에 한 놈이 잘난 체 하며
    까불 까불 까불 까불하더라
 
  짐승들도 사람들도 모두 기뻐하는 가운데 천손(天孫)이 강림하였으니 마땅히 덕 있는 왕비를 맞아야 하리라 하고 다시 옥황상제에게 구
하였더니 사량리 알영정(閼英井) 우물가에 계룡(鷄龍)을 내려보내시매, 계룡이 왼쪽 겨드랑이로 동녀(童女)를 낳았다.

이름을 알영이라 지었는데 천하미인이었으나 입술이 닭부리 같아 흉하였다. 월성 북쪽 냇가로 데려가 목욕을 시키니 그 부리가 떨어졌다. 그래서 그 내를 발천(撥川)이라 이름하였다.
 
  이상의 신라 개국 설화를 보면 알천(閼川) 나정(蘿井) 동천(東川) 알영정(閼英井) 발천(撥川) 등 무려 다섯 개의 샘과 우물이 나온다.

이는 신라의 국운이 샘물에서 시작됨을 의미하므로 신라는 샘물을 소중히 하고 보전해야 하는 것이었다.

후에 경순왕 때 신라에 왔던 왕건이 스승 도선 대사의 계책을 받아들여 신라땅에 마구잡이로 우물을 파게 하였는데…
  신라땅은 행주형(行舟形)인고로 마구 샘물을 파도록 왕건은 경순왕을 꼬드겨서 신라의 침몰을 가속화시켰던 것이다.

이는 결국 배에다 구멍을 뚫는 격이어서 100년은 더 갈 수 있었던 신라의 국운은 경순왕대에서 종치고 날이 새버린 것이다.
 
  이는 선도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닌가?

선도를 아는 자는 흥하고 모르는 자는 망한다는 교훈을 잘 보여준 예인 것이다.
 
  그러면 왕건은 샘물과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고려 국태조인 왕건은 무척 밝히는 사나이였다. 궁예의 부하 장수로 있으면서 각지에서 전공도 많이 세웠지만 가는 곳마다 여자를 건드리잖은 적이 없어서 그의 동료나 부하들은 그의 기질을 잘 알고 있었다.
동료들이 이를 탓하면 그는 껄껄대며 다음과 같이 변명하였다.
   자고로 영웅은 호색(好色)하는 법이며,  호걸에게서 배꼽 아래는 시비(是非)가 안된다.
 
  후에 왕건은 16명의 왕비와 13명의 빈을 두었으며 거기서 낳은 왕자만 25명이었다. 부하들은 그를 물개라고 불렀는데,

기실 그는 남해에 원정을 가기만 하면 물개를 잡아 물개졸 소위 해구신을 닥치는 대로 고아 먹었다 한다.

절친한 동료 신숭겸(후에 평산 신씨 시조)이 지나친 왕건의 여성 편력에 대하여 충고를 하자 왕건은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답변하더란다.
   이 친구야… 이것도 정책이네. 융화정책의 한 방편인 결혼정책.두고 보게 내 반드시 30명을 채우고 말겠네. 

서는 한 뚫으라  이게 내 신조일세.
  그러나 그는 30명을 채우진 못하였다. 29명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궁예의 부하로 나주에 갔을 때 이야기다.
  견훤의 군대와 한판 접전을 하고 난 뒤라 매우 갈증이 나서 우물을 찾아갔다. 한 처녀가 물을 긷고 있었다.

왕건이 마른 혓바닥으로 입술을 축이고 있는 걸 보고 이 처녀는 즉시 알아차렸다.

여자를 앞에 두고 혀로 입술을 핥는 것은 꼭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색심이 동해서라는 것을.

처녀는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따서 띄워 주었다.
 
  나뭇잎을 후후 불며 물을 마신 왕건은 그 처녀에게 물었다.
   갈증이 심하여 물을 빨리 마시려는데, 어찌 바가지에 나뭇잎을 띄워 주는가?
   냉수에 체하면 약도 없다 하옵니다.
 
  왕건은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그 촌색시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정을 느꼈다.

그날 저녁 왕건은 수소문하여 그 처녀의 집을 찾아갔다.
무척 가난한 촌부의 집이었다. 촌부의 아버지는 놀라서 대장군 왕건을 맞아들여 어쩔 줄 몰라했다.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처녀는 정갈하게 주안상을 차려 왔다. 술이 거나해지자 왕건은 자고 가겠다고 떼를썼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고 급작스럽게 신방이 꾸며졌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집이라 방바닥은 모노륨 골드륨 하이펫트 럭스트롱 큐빅 크
리스탈 에메랄드 같은 걸 깔지 못하고 지푸라기로 짠 멍석 소위 원조(元祖) 민속장판이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왕건은 그 위에서 처녀와 배놀이를 하였다. 심야의 배놀이. 배놀이란 글자 그대로 배를 타고 노는 것이다.

배에도 4가지가 있다더라. 배(船). 배(梨). 배(腹). 배(倍).
  배(裵)서방이 배(梨)를 먹고 배(腹)가 불러 배(船)를 타니 배(倍)나 기분이 좋다. 상당히 헷갈리니까 영자천자문으로 구별하면.....
  슈(ship) 船.
  페어(pear) 梨.
  벨리(belly) 腹.
  따블(double) 倍.
 
  배는 처녀가 장만하고 삿대는 왕건이 마련하였다. 처음엔 배의 노를 함께 저어가는 것이다.

노를 살살 저어가다가 깊은 곳으로 나가면 사내가 배에다 삿대를 굵고 길게 꽂아서 밀고 가는 것이다.

왕건이 바지를 벗어 젖힌 채 우람하게 생긴 삿대를 들어 배속 깊이 쑤우욱 밀어 넣었다.

순간 배가 씨울렁하면서  으윽 하고 깊은 가락이 새어 나왔다.
배가 출렁하며 요동질쳤다. 그 바람에 왕건은 배 위로 그대로 넙죽 어푸러지고 말았다. 배는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했다.

잠시 노젓기를 쉬며 파도치는 대로 맡기었다가 다시 깊은 바다로 출발했다.
 
  뱀대가리 같이 빳빳한 삿대 끝에 갯펄이 진뜩진뜩 미끌미끌 묻어 나왔다. 희안하게도 우유처럼 허연 갯펄이었다.

신명이 지핀 왕건은 노를 재게 젓고 삿대를 깊이 꽂아서 배를 뒤엎을 듯한 요량으로 거세게 밀어올렸다.
   허억 허어억 헉헉 으아 으아아 으아하.
 
  처녀의 목구멍에서 무쇠도 녹일 듯 뜨거운 해풍이 불어쳤다. 그결에 배는 대천바다 깊은 곳으로 쏜살같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속도가 붙자 배에서 더욱 요란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처녀의 배가 한껏 부풀면서 배밑창에서 물이 스며오르기 시작하였다.

왕건은 바닥에 흥건히 고이는 물에 하초가 온통 젖으면서도 정신없이 노를 저었다.   
 
  두두우우우웅시이이일 두리두우웅시일 배애떠어어나아아 가아아안다아아아
  무우우울 마아아앍은 바아아암바아아아다에에에 배애애떠어어나아아아 가아안다아아.
  이이배애애느으으은 니이이임 마으으읒으러어 가아나아암가아느으은 배애애애애
  어어어기이이이야야야아 뒤이이어라아아차아 노오으르을 저어어라 아아아
 
  찌꺼덕찌꺼덕하고 노 젓는 소리가 점점 요란해졌다. 처녀의 배도 심히 출렁거렸다. 배멀미가 나고 왕건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지가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삿대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노를 젓는 왕건의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하고 얼굴과 가슴에 땀이 흥건히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무릉도원을 바로 목전에 두고 이제 처녀의 눈동자는 온통 흰창으로 허옇게 뒤집어지며 경련하고 있었다.
 
  밖에서 경호를 서는 호위무사는 맨정신에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쫄자 신세에 어찌하리요…

하는 수 없이 시 한 수를 지으며 회포를 달래었다.
 
      나주촌 달 밝은 밤에 토방에 홀로 앉아
      큰 창 땅에 놓고 용두질 하는 차에
      어디서 감창 소리는 남의 애를 끊나니

 

  마침내 왕건은 한참 씨근벌떡하다가 처녀의 옹달샘 저 깊은 곳에서 신물(神物)이 거품을 허옇게 뿜고 쓰러질 때, 

아차차  후회가 들었다.
꼴림방정식에 의할 것 같으면 남자는 직전에 여자가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며 직후에 만사가 귀찮아지고,

여자는 직전은 별로였다가 직후엔 남자가 전부로 느껴진다는 것. 왕건의 머릿속에서 계산이 486으로 빠르게 회전하였다.
   여기서 사정을 하여 임신을 하면 안된다. 이 무지랭이 같은 여잘 정실부인으로 맞을 수는 없다.

떡이란 쳐먹었으면 되는 거지 집에까지 싸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0.5초의 순간으로 용솟음치는 정액을 잽싸게 옹달샘 밖 멍석 위로 확 쏟아버리고 왕건은 매몰차게 돌아누워 버렸다.

그리곤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옹달샘을 오염시킬 뻔했군! 수질 보호도 수질 보호려니와 종질 보존도 중요하지.
 
  그리곤 피곤에 겨워 잠이 들었다. 그러나 처녀는 왕건보다 한수 위였다. 그녀는 계산을 586 팬티엄으로 돌렸다.

왕건의 심뽈 훤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멍석 위에 쏟아진 올챙이들을 정성껏 손가락으로 찍어서 양각교(兩脚橋) 밑에 있는

옹달샘에다 집어넣었다. 한마리라도 남을세라.

옹달샘으로 들어간 올챙이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신나게 헤엄도 치며 달리기도 하며 무럭무럭 튼튼히 자랐다.

올챙이들은 못 들어온 친구들에게 이렇게 지껄여댔다. 대롱 속에서 나오면 그러길래 빨랑빨랑 굴속으로 쳐박히라우.

드디어 올챙이는 열달 후 응애하고 세상에 태어났는데 그것도 아주 튼튼한 아들로.
 
  왕건은 도수없이 이 여자, 오씨(吳氏)를 장화왕후(莊和王后)로 삼고 그 아들을 태자로 책봉하였다. 그

런데 이 아들은 이상하게도 왼쪽 뺨에 멍석에 눌린 자국이 있어서 남들이 돗자리 왕자라고 불렀다.

나중에 왕이 된 후에도 그의 애칭은 접왕(접王-주름잡힌 왕)이었다. 아무도 그 돗자리 자국의 연유를 알지 못했다.

왕건 부부 외에는. 이 아들의 이름이 무(武)였는데(후에 2대 혜종이 됨), 그가 이유를 물을 때마다 왕건은 괴로왔다.

그냥 어릴 때 멍석 위에서 하도 놀아서 그렇다고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때 피임을 확실히 했어야 했는데… 
  
  …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조상의 슬기여
  … 선도 속에 숨어 있는 신령의 은혜여
  
   월향아! 왕건과 장화왕후의 이야기에서 부연하여야 할 중요한 요점이 있느니라.

왕건은 19명이나 되는 정식 부인이 있었고 비공식적인 아내는 셀 수도 없이 많았으며 자신조차도 관계를 한 여자인지 아닌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였으니 물개라는 별명이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었느니라.
   서방님! 영웅본색(英雄本色)이라고 해서 자고로 영웅호걸들은 여자를 좋아한다지 않아요. 
   하하하..... 그렇담 나는 영웅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구나.
   전 서방님이 그저 평범한 것이 좋사옵니다. 평범한 여자의 아낙이 되고 싶습니다.
   글쎄다. 시대가 그것을 허락해 주어야 하는 것이겠지.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 않느냐?
   아닙니다. 소녀의 생각으로는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고 생각되옵니다.
   글쎄다. 어려운 이야기지..... 아까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마.
  그런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왕후로 책봉되고 수십명의 자녀들 중에서 자기가 낳은 아들을 태자로 만든 오씨녀는 난 여자라는 사
실을 알 수 있으나 그것이 어찌 일개 여자의 슬기로만 될 일이었겠느냐? 거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조화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인데요?
   내 그 점을 이야기하려 하느니라. 여기에는 선도를 소중하게 받들어서 받게 된 필연적인 천복(天福)이 있다는 점이다.
 
  신라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있었으니 의양산에 지선 동리산에 혜철(惠哲) 자굴산에 범일(梵日) 실상산에 홍척(洪陟)

봉림산에 현욱(玄昱) 가지산에 도의(道義) 사자산에 도윤(道允) 수미산에 이엄(梨嚴) 성주산에 무양(無梁) 선사더라.

구산 가운데 동리산(전남 곡성) 태안사에는 혜철선사가 선문을 열고 있었다.

이때 영암땅에 사는 강씨성을 가진 부인에게 꿈에 귀인이 나타나서 옥구슬을 하나 주길래 이를 받아먹었더니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으니 그가 바로 도선이다.
 
  15세 되던 해 월유산(月遊山) 화엄사에서 세속을 등지고 수도의 길에 오르니 이것이 한대국 선도사상 우뚝한 봉우리가 되는 계기였더라. 20세 되던 해에  대장부가 마땅히 교리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이를 초월하여 스스로의 본뜻으로 돌아가야 하거늘

어찌 문자만을 지킬 것인가?  하고 깨닫고 동리산 혜철선사의 문하로 들어와 수행하여 무설설(無說說)과 무법법(無法法)을 배웠다.

문성왕 12년(850년) 천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3세 되던 해 지리산 구령에서 암자를 짓고 우주의 원리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리를 구하고자 용맹정진하던 중 한 기인(奇人)이 그에게 나타났으니 그가 곧 보칠산의 절친한 도우(道友) 명광대선(明光大仙)이더라.
   나에게 한 작은 술법이 있어 그대에게 깨우쳐 주려 하니 내일 남햇가로 나오라. 
 
  그래서 도선이 담날 약속한 곳으로 나가니 그 사람이 모래와 자갈을 모아 산과 강을 만들어 놓고 순조롭고(順) 거슬리는(逆) 형세를 펼치며 강산 정기의 흐름과 인간과의 조화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대가 이 비법을 정녕 배우고자 원한다면 닷새 뒤 바람 불어 좋은 날에 다시 이곳으로 나오라. 
  하면서 홀연히 사라졌다. 도선은 지루하게 닷새를 기다렸다. 과연 아침부터 바람이 솔솔 부는 게 기분이 좋았다.

야릇한 마음으로 바닷가로 나갔다. 기인이 기다리고 있다가 물었다.
   지금 무엇이 보이느냐? 
  도선이 대답을 못하고 우두망찰하고 서 있자
   바람이 보이느냐?
   예. 
   장풍하여야 하리라. 
   장풍을 한다함은 무공을 말함입니까?
   이놈아, 그런 장풍(掌風)이 아니라 이런 장풍(藏風)이니라.

풍수란 죽은 사람의 정기를 그 자손이 타야 하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가 장풍하여야 하니라.
 
  기인이 다시 물었다.
   지금 무엇이 보이느냐? 
  도선이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자
   물이 보이느냐?
   예. 
   득수하여야 하리라.
   ???
   정기를 타기 위해서는 둘째가 득수하여야 하니라.
  정기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머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산(背山)하여 장풍(藏風)하고 임수(臨水)하여 득수(得水)할 수 있는 배산임수의 지형이 필요하니라.

산을 등져서 바람을 피하고 물을 앞두어 생육에 보탬이 되도록 터를 잡는 것이다.

이 터를 잡는 법을 간룡법(看龍法)이라 하느니 룡은 산을 그리 부르는 것이다.
  다음 바람을 잡는 장풍법 물을 얻는 득수법 정기가 묻힌 곳을 찾아내는 정혈법(正穴法) 자리를 잡는 좌향론(坐向論) 터의 모양새를 살피
는 형국론(形局論)이 있으니 이 4법2론을 달통하여야 풍수를 안다고 할 것이다.
  자,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았으면 내가 노래를 하나 갈쳐주리니 따라 불러서 배우라.

그리하면 신안통(神眼通)이 열리고 지리에 달통하여 눈감으면 저멀리서 다가오는 산수의 운행이 보이고 눈을 뜨면 땅속이
들여다 뵈리로다.
 
     두껍아
     두껍아
     흔집 줄께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흔집 갖고
     새집 져라
  그런데 이 두껍송이 오랜 세월 여러 지방을 전전할 때에 담과 같이 변형되어 불리워졌더라.
 
     두껍인 집 짓고
     황--샌 물 긷고
     두껍인 집 짓고
     황--샌 물 긷고      (부여 지방)
 
     뚜껫아 뚜껫아
     집 제줄건 나온나
     집 제줄건 나온나    (철산 지방)
 
     소--가 밟아도 딴딴
     까치가 밟아도 딴딴
     무너질까 생각 말고
     잘도 잘도 지어져라  (청양 지방)
 
     두껍아 집 지어라
     황새야 물 길어라    (이천 지방)
 
     두덕 집을 질--까
     까치 집을 질--까    (거창 지방)
 
  기인은 노래를 부르며 모래로 산과 강을 지었다 헐었다 하면서 그 형세에 따라 또 두꺼비집 개구리집 맹꽁이집 등을 쌓았다 무넜다 하며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다.
  또 집은 양택(陽宅)이지만 무덤은 음택(陰宅)이라며 양택은 백년지가(百年之家)요 음택은 만년지가(萬年之家)이니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네가 이것을 똑똑히 보느냐? 잘 기억하였다가 비결(秘訣)로 남기어 후세에 전하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는데 그곳이 바로 화엄사 아래 있는 사도촌이었다. 그리하여 도선은 천문(天文) 지리(地理) 인사(人事) 중에

특히 지리와 음양오행에 완전히 달통하게 되었다. 그가 전남 백계산(白谿山) 옥룡사(玉龍寺)에 머물자 소문을 듣고 배우려고 찾아오는 제자들이 구름 떼와 같았다.
  드디어 명성이 궁중에까지 미쳐 헌강왕의 초청을 받아 왕실에까지 불법을 전하고 돌아오지만 신라가 곧 망할 것이라 예감하였고,

그해(875년) 왕건의 아버지 용건(후에 왕륭)이 송악 남방에 새집을 지으려 할 때 찾아가서,
   지금부터 2년 후에 이 집에 반드시 고귀한 성인이 태어날 것이며 그는 장차 삼한을 통합할 주인이 될 것이다.  라 예언하였다.

그리고 무언가 비밀한 것을 써서 용건에게 주며 훗날 성인이 장성하거든 전하라 하였다.
 
  도선의 사후 20년 뒤 왕건은 왕위에 올랐고 삼한을 통일한 뒤 도선이 적어 준 대로 자손들에게 통치할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훈요십조>이다. 도선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국사로까지 추증되고 한대국 역사상 최고의 풍수지리학자로 도참사상의 원조로 숭앙을 받게 되는데, 요공선사니 옥룡자니 하고 불리우는 인물이 바로 그다.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도선의 업적을 과소평가하거나 혹은 미신사상으로 폄하하기까지 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맘을 금할 수
없다. 그는 신라 상류층에만 머물던 불교를 하류층 민간에 유행하던 도참과 풍수지리에 접목시켜 대중화시켰으며 신라 이후 건국된 고려
의 사상적 기반을 제시한 공적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즉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에 대한 도선의 공적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준 정신적 지평의 확대라는 점에서 진지하게 평가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의 제자 중에 혜산(惠山)이란 까까중이 있었다. 스승 도선이 확립한 풍수지리의 비결을 몸으로 깨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싸돌아다
니며 현장실습을 하다가 전라도 승주군 낙안고을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는 신라가 망조가 들어서 전국 각지에서 도적떼가 왕벌떼처럼 일어나 노략질이 심했고 반란군들이 도처에서 똥파리처럼 발호하여
치안상태가 개떡같은 시절이라 힘없는 백성들만 죽어나는 판이었다.
낮에는 관군에게 뜯기고 밤에는 반군에게 뺏기고 백성들의 살림살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사는 판이었으니 인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흉흉하였다.
 
  이웃집에서 먹었는지 굶었는지 아는 체도 하지 않았으며 길가다 행인이 쓰러져 있어도 건드리지 않고 피해 갈 정도였다.

이러한 경기불황의 여파는 그대로 각설이패들에게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탁발승들의 수입에 커다란 차질을 주었다.

혜산은 벌써 여러 날째 시주는커녕 때도 얻어먹을 수가 없었다. 두 이레를 굶었더니 기아의 3단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제 1단계 부황(浮黃)의 단계.
  얼굴은 누리끼리하게 똥색으로 변하고 몸은 띵띵 부어 공포의 삼겹살이 되는 그런 단계.

근육은 풀어져서 맥이 없어지고 잇몸엔 괴혈증세 다리엔 각기증세 중족엔 번데기증세가 나타난다.

사지가 나른하고 그저 누워 있고만 싶은 단계,

지구가 확실히 자전하는 현상을 고패루니구수(高覇累尼究秀)처럼 전신으로 감득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면,
 
  2단계인 눌치(訥痴)의 단계.
  지각의 마비가 오고 드디어 판단이 정지되는 백치의 단계인 바 모든 사물에 대한 감각이 희미해지고 말도 끊어져 더듬으며

그저 단 한마디  오메 밥  소리만 간신히 하는 단계. 태양이 공전하고 있는 현상까지도 부토래마이우수(富討萊馬易優秀)처럼

육신으로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는 단계를 지나면,
 
  3단계인 돌안(突眼)의 단계.
  눈 둘레 근육이 수축되고 눈이 십리 백리나 쑥 들어가고 볼은 홀쭉 꺼지고 시야엔 먹을 것만 보이는 단계로

이 단계가 지극히 위험하다는 건 이 지경에 이르면 사람도 통닭이나 단고기로 보여 잡아먹게 되고 기어다니는 벌레들도 구수하게 보여

주워 먹는 단계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는 단계.

우주가 한없이 무한대에서 무한대로 팽창한다는 사실이 수치분호긴(秀値分昊緊)처럼 골속으로 윙윙거리며 느껴지는 단계에까지 이르니 정말로 뱃속의 순대가 꼬이고 엉키더니 쓰라려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순대가 녹는 것 같은 고통이 오는 어느 순간에 혜산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리다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혼(魂)은 하늘로 날아가려고 준비하고 백(魄)은 땅 속으로 꺼질려고 채비하려는 절대절명의 순간, 구원의 손길이 그의 누더기 장삼에 닿았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오씨 성을 가진 노인이 있었으니

이 분이 바로 낙안 오씨의 시조가 되는 오사룡(吳士龍)이었더라.
  오노인은 다급하게 스님의 안색을 살폈다. 툭 불거진 광대뼈, 움푹 들어간 눈, 바싹 말라붙은 입술, 창백한 낯빛…

왠 소말리아 사람일까?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여러 날 굶주렸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노인은 혜산 스님을 들춰 업고 집으로 달렸다. 서둘지 않으면 정말로 밥숟갈 놓을 정도로 기아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다.

부리나케 집에 당도한 오노인은 우선 혜산 스님을 따뜻한 방에 누이고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샘물을 길어다 넣어 주었다.

꺼져가던 혜산 스님의 맥박이 가녀리게 뛰는 것을 확인한 오노인은 외동딸을 불렀다.
  그리고 집안에 곡식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나이가 열일곱 밖에 안되는 어린 나이였지만 대단히 사려가 깊고

통박이 빠르면서도 당찬 처녀였다. 아버지의 물음에 계산을 빠르게 돌리다가 대답하였다.
  쌀은 반되박 밖에 남지 않았고 이제 그걸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기 세식구가 한끼밥이나마 지어서

배불리 먹고 죽으려고 하는 마지막 양식이라고. 왜냐하면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니까.
 
  오노인은 하늘을 우러러 무엇인가 곰곰 생각하더니 딸에게 명하였다. 얘야,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며 목숨은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며 이웃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 의
가 없다고 하였으니 설령 우리가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쌀로 죽을 쑤어라 쌀 한줌에 물 열그릇씩 붓고 농도를 정확하게 조절하여라
반드시 물 속에서 쌀이 목간을 할 정도의 농도여야지 그 이상이면 경친다.
  그렇게 하여 사흘낮 사흘밤을 물죽을 쑤어 혜산 스님을 먹인 결과 드디어 혜산은 의식을 차리고 소생할 수 있었다.

몸을 추스린 혜산은 오노인의 성심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간신히 기운을 차린 혜산은 때도 못 끓이는 오노인의 집에 더 이상 누워 개기는 게 염치가 없었다.   노인장! 정말 땡구가 별로 망치입니다.

소승이 수행이 부족하여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여 먹은 것도 없이 폐만 무진장 끼쳐드렸습니다.
이제 몸도 웬만큼 회복되었으니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스님! 아니되옵니다. 제가 스님이 혼절하신 동안 뇨검사 간검사 혈액검사 등 종합진단을 해보았더니 건강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절대적인 안정과 가료가 필요하신 것 같습니다. 밥은 못해 드려도 물죽은 끓여 드릴 수 있사오니 아무 염려 마옵시고

며칠 더 유하시면서 완죤히 건강을 회복하시거든 떠나시옵소서.
   아닙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의 새끼줄이 빡빡하게 꼬여 있어서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떠나야 합니다.

다만 소승이 너무 신세를 졌고 마지막 식량으로 소승을 공궤하였사오니 그 은공은 실로 백골난망(白骨難忘)이옵고

결초보은(結草報恩)이로소이다. 자녀가 외동딸밖에 없는 듯 하오니 소승이 왕비가 날 명당터를 하나 점지해 드리고 떠나가겠사옵니다.
 
  이리하여 혜산스님은 낙안고을 어느 산자락 아래에 이르러 훈훈한 지기(地氣)가 오르는 곳을 찍어 주면서
   여기는 왕비가 날 자리이오니 여기에 묘를 쓰면 후손 중에 반드시 왕비가 나올 것입니다. 명심하소서. 하였다.
  오노인은 참 별소리 다 한다. 여러 날 굶더니 헛소리를 하는갑다. 이 깡촌 낙안고을에서 어찌 일국의 왕비가 나올 수 있단말가.

혜산 스님을 떠나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도저히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딸은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 그 스님이 허튼소리나 하는 걸레스님하고는 영 달라 보입니다. 밑져야 본전이니 속는 셈치고 할아버지 묘를 이장합시다. 

하면서 디게 서두르며 담날로 이장을 해 버리는 것이었다. 정말로 계산 빠르고 당차기가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얼마 후 오노인네는 나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궁예의 한찬(韓粲) 해군대장군이 된 왕건이 나주 전투에서 견훤의 후백제군과 일대접전을 하고 대승하여 나주를 평정한 직후 물을 얻어먹으러 왔다가 오씨 처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왕건을 만나기 전날 밤 오씨 처녀 오다련(吳多蓮)은 꿈을 꾸었는데…


  … 남자는 여자의 복상(腹上)에서 놀고
  … 여자는 남자의 두상(頭上)에서 논다
 
 
  꿈에 커다란 용이 완사천(浣紗泉)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하다가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놀라 깨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담날 빨래를 한 광주리 이고 완사천 샘으로 가서 빨래를 하였다. 그러나 점심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깨끗한 빨래를 다시 한번 밟아서 하고 있는데, 아아 드디어 저녁 무렵 나타난 것이다.
 
  말발굽 소리도 우렁차게 준마를 타고 나타난 늠름한 청년장수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준수한 용모의 사나이!

완사천에서의 왕건과 오다련의 만남! 이것이 바로 고려 역사의 시작이었다.

고려의 역사가 한낱 작은 완사천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은 놀라웁게도 별로 없다.
 
  그날 밤 여러 날 객지로 떠나 와 승리는 하였다지만 강적 견훤과의 연전으로 심신이 피로하였던 왕건은 열여덟의 한창 물오른 처녀의 속
살에 손을 댄 순간 고압의 전류가 흐르며 골속이 훵하게 진공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눈동자가 올라붙으며 촛점이 흐려지며 몸은 무중력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대드는 왕건을 밀치며 오다련은 차분하게 말하였다. 그녀의 손엔 날카로운 비수까지 들려 있었다.

당황하는 왕건에게 그녀는 쌀쌀맞게 말하였다.
   장군님! 소녀는 잊혀진 여자는 되기 싫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건 정이라 하오며 제일 불쌍한 건 잊혀진 여자라 하더이다.

장군님은 소녈 한갓 노리개감으로 하루밤 배놀이하고 가면 그만이지만 소녀는 장군님을 태운 죄로 애라도 배면…

여자는 항구 남자는 배가 되고 말겠지요.  장군님! 소녀는 하룻밤 항구는 절대로 될 수 없사옵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느냐?
   소녀를 정실부인으로 삼는다는 예장(禮章)을 한장 써 주십시요.
 
  왕건은 몹시 우스웠다.
   그까짓 예장이라면 백장인들 못 쓰랴…
  남자가 밤에 한 약속은 몽땅 부도다 멍충아… 
 
  단번에 휘휘 써주고 왕건은 오다련과 배놀이에 들어갔다. 배놀이가 한참 흥에 올라 중천바다 한가운데로 미끄러질 즈음

다련(多蓮)은 왕건에게 아양을 떨며 물었다.
   여보옹 좋아? 
   흠 여자란 이래서 앞 다르고 뒤 다르다니까. 살 섞기 전엔 장군님이더니, 금방 살 섞으니 여보옹이래.

하기야 계집은 손잡고 쫄망쫄망 쫓아다닐 땐 옵바, 허리 껴안고 씩씩거릴 땐 아파아파 하다가, 곰방 압바가 되지.

그러다 덜컥 애라도 하나 배면 자기, 둘셋 낳아 만만해지면 여봉 그런다더라. 그래 무어여 말혀. 
   여보옹 만약 오늘 배놀이로 애를 갖게 되고, 그래서 아들 낳으면 이름을 무어라 행? 
  왕건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무어 앨 갖고 아들을 낳는다고라.
  야, 이 무지랭이 같은 년이 참 꿈도 야무지다 기가 막힌 소설 쓰네. 
  넌… 일회용이여 착각은 자유라지만 참 엄청난 꿈이다 촌년이… 
   여보옹 이름 지어줘용. 
   음 그려 그려. 무(無)라고 해라. 날 턱이 없는 아이니 무다. 
   아유 이름도 씩씩해랑 무(武)라니.
  여봉 당신 닮아 무술에 능하고 용감하겠어용. 
 
  아아, 이런 걸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한다던가.(Same bed, another dream.)
  애 날 생각이 없던 왕건은 이름을 무(無)라 지으라고 코대답을 해놓고 절정의 순간 독한 맘을 먹고 호수를 잡아빼서 돗자리에다 자궁외
사정을 해 버렸고 더 계산 빠른 오다련은 왕건이 잠든 사이에 자신의 옹달샘에다 그것을 다시 주워 담아 기어이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를 정복하는 건 남자라지만 그 남잘 지배하는 건 여자란 걸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이야기더라.

남잔 여자의 배 위에서 놀지만 여잔 남자 머리 꼭대기에서 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리.
 
  왕건은 송악으로 떠나간 후 얼마 뒤 고려의 태조로 등극하였고 오다련과의 일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어언 일곱살이 된 왕무(王武)는 어느 날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놀림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용력이 남달랐던 무는 전쟁놀이를 하다가 군령을 어긴 덩치 큰 녀석들을 박살을 내주었고,

그에게 깨진 아이들은 가장 약올라하는 애비없는 자식이란 말로 놀리고 달아났다.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개똥벌레처럼 집으로 돌아온 왕무는 비수를 들고 들어가 어머니에게 담판을 하였다.

마치 옛날 오씨녀가 왕건에게 하듯이.
   엄마! 내가 남보다 키가 작아요? 졸이 작아요?
  왜 애비 없는 새끼란 놀림을 허구헌날 받습니까? 
 
  그 에미에 그 아들이라고나 할까. 울아버지의 정첼 밝히잖으면 난 이 자리에서 죽을 거라는 아들의 당찬 결의를 본 오씨녀는 섬뜩하면서
도 맘 속으로 무지 흐뭇하였다. 콧등이 시큰하고 눈물이 다 날 정도였다.

오구 내 새끼가 이젠 다 커서 소견이 멀쩡하구나 꽉 끌어안고 대가리가 제법 굵어져가는 놈의 고추를 조물락조물락하였다.

그러다 팽팽해진 어느 순간 뒤덮인 껍데길 훌떡 까버렸다. 무의 입에서 야릇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무야 잘 들어라. 엄마가 여적 이야기하잖은 건 아빠가 무의 고추가 어른만해질 때까진 절대 이야기 말라고 했느니라.

무야 너는 엄마가 더 죤니 아빠가 더 죤니? 
   아바님도 어이어신마라난 어마님같이 괴시리 없사오니 어머님이 더 좋습니다. 
   왜 그렇지? 
   밤마다 엄마가 고출 만져주니까요. 소자는 엄니가 고출 만져주잖으면 잠이 안옵니다 고추가 새끈새끈해야 잠도 새근새근 와요.
   오 그러냐? 
   엄마도 무의 고출 만지잖으면 잠이 안 온단다. 엄만 무의 고추가 굵어질 때마다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 
   그래 엄마? 자꾸 만져줘요. 나 얼른 이만해질께 엄마두 내가 찌찌 자꾸 만져주면 커지더라. 
   얘는! 이젠 엄마꺼 그만 만져요.
   싫습니다 손이 허전하면 잠이 안옵니다. 
   고추가 새끼손가락만 할 땐 엄마 걸 만져도 되지만 엄지손가락만 해지면 색시 걸 만지는 거예요. 장가가서 색시거나 만져요. 
   전 장가 안 갑니다. 엄마랑 평생 살겁니다. 
   엄마도 처녀 적엔 그랬어요. 그러나 아빠를 만나고선 생각을 바꿨단다.

그래, 무는 엄마가 혼자 사는 게 좋아 아빠하고 같이 사는 게 좋아?   
   음, 그건 아빠하고… 
   무는 아빠를 찾아가더라도 이 엄말 잊어선 안돼요. 
   어머님! 얼룩송아지도 엄마 귀를 닮는다고 하는데 자식이 어찌 저를 난 어미를 잊겠습니까?

은금보화를 준다 하여도 소자는 어머님을 잊잖을 것이옵니다.

저를 낳고 기르신 어머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줄로 아옵니다. 
   오구 내 새끼… 
  오씨녀는 너무 감정이 북받쳐 무의 고출 힘있게 움켜 쥐었다.
   어머님 붕알 터지옵니다.
   그래그래 내 새끼야. 이게 어떤 붕알인데! 
 
  오씨녀는 왕건이 증표로 써 준 예장을 아들 무에게 주었다. 총명한 아들 무는 예장을 품속에 간직하고 개경으로 올라왔으나 아버지가 계
신 수창궁으로 들어갈 방도가 막연하였다. 그는 대궐 앞에서 머리를 굴렸다. 점마하듯이…

그리하여 대궐을 출입하는 벼슬아치들을 잘 살피다가 한 대감을 점찍어 그집의 하인으로 무보수 취업을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한대국 역사상 신분을 속인 위장취업의 시초라고 한다.
암튼 너무 일을 똑소리나게 잘 하므로 대감은 하인에서 비서로 승진시켰고 마침낸 심복으로까지 삼는데…
 
  어느 날 생일상을 차려준 바, 생일상을 받고 아이가 음식은 먹잖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것이었다.

까닭을 묻자 아버지가 보고파서 그런단다. 느그 아부지가 누구냐고 물으니까 그제서야 왕이란다.

왕이라면 비단이 장수 왕서방이냐니까 칼장수 왕서방이란다. 대감은 감을 잡지 못하고 상당히 헷갈렸다.

왜냐하면 당시 왕이 왕씨였기에. 아리송해하는 대감에게 무가 예장을 내놓으니 기절초풍을 하였다.
  이 대감이 누군고 하니 바로 경주 배씨의 중시조가 되는 배현경(裵玄慶)이었다.

홍유 복지겸 신숭겸 김낙 등과 같이 고려 개국 일등공신. 왕건과는 사석에서 트고 지내는 사이. 배현경은 예장을 가지고 입궐하였다.

그리고 왕건에게 옛날에 나주에서 배놀이를 한적이 없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왕건은 자기가 해군대장군이었던고로 적군들과 배놀이는 수도 없이 했다고 대답했다.
 
   상감마마 적군들하고 한것 말고 처녀들하고 한 것 말이어요.
   아이구 내 마누라가 지금 서른에서 하나 빠진다. 내 자식들 이름 다 부르려면 출석부 가져와야 돼.

언년 배를 탔는지 낸들 어찌 다 기억하냐? 먹었으면 그만이지 그걸 왜 기억하냐?
  배현경은 예장을 내놓았다.  물끄러미 한참 그걸 보던 왕건은,    아아, 생각난다.

낙안고을 무지 통박 세던 계집이 하나 있었지 아주 당차고 여적 상대했던 계집 중에 비수들고 공갈치던 유일한 계집!

그때 열여덟인가 영계였지 지금 스물 여섯인가 일곱쯤 됐을껴 바다가 가까워선지 살맛이 광어회처럼 쫄깃쫄깃했지.

흐흐흐 배대감 계집 살맛에도 아홉 가지가 있는 거 알어?

그래서 여미(女味)는 구미(九味)라 해서 여자 얘기만 나오면 구미가 땡긴다 하는 말이 여서 나온 거여.
   아이구, 대왕마마 계집질은 알아 줘야 한다니까! 계집 살맛에도 종류가 다 있나요? 
   거럼 기걸 말이라 해? 내가 다음에 시간 나면 자세히 이야기해 줄께.

거 계집질을 너무 탓하지 말어 자고로 계집질 잘하는 군왕이 정치도 잘하는 법이여 계집 하나 즐겁게 못하는 놈이

천하를 어떻게 즐겁게 하누? 새벽에 졸이 서잖는 놈에겐 빚도 주지 말라 했느니라

그러니까 계집질 하는 걸 무슨 죄라도 진 것 같이 탓하지 말아요. 
   아이구 탓하다뇨. 군왕(君王)은 무치(無恥)라 하잖습니까 촌수가 어찌되든 나이차가 어찌되든 치마만 둘렀고 앉아서

소피보는 것만 확실하면 맘에 드시는 대로 골라 잡수소서. 
 
   그려그려 아무러케국 대왕들의 계집질을 보라고. 갸들 끝내 주더구마.
  초대국왕인 화성돈(華聖敦)은 친구 부인과 자그만치 25년을 그랬다지?

또 제파순(濟波淳)은 두명의 유부녀와 다불 부래이를 하는 정도로 성(性)이 안차서 흑인녀를 아예 정부로 두고 정부보다

더 사랑하며 백설탕 흑설탕 맛을 다 보았고, 작손(酌孫)은 어전회의에서까지 볼상 사납게 속옷전쟁을 했다 하고,

굴리불란도(屈里弗亂道)는 버젓이 사생아까지 낳았고,

루주배토(累酒倍吐)는 대단한 바람둥이여서 그네들이 부래이보이 남보원이라 부른다지.

아내의 비서였던 루시(樓示)와 10년이나 배꼽을 맞추다가 그녀가 시집가자 이번에는 자기 비서였던 미시(美示)와 그랬다는데…

그 친구 시자 붙는 여자 그리고 비서 출신을 상당히 좋아하는구만. 
 
   예 그러하군요. 루시는 다락방에서 벌거벗고 사랑한 여자고 미시는 아예 집무실에서 생각날 때마다… 그랬다 하옵니다.

뿐만 아니라 흐흐흐 뉴요구포수토(紐要區浦修討) 발행인이던 도로시(徒勞示) 노루애이(魯屢崖易) 왕녀 마루타(馬陋打) 이루 셀 수가 없습니다.    또 아이전하우어(兒伊全河宇魚)는 여군의관하고 밀애를 하곤 들통이 나니 그건 그녀의 육보시 공양이었다고 발명을 해댔다며? 하기야 미녀를 진상하는 경우도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구만. 
   잠깐 대왕마마 육보시가 무업니까?
   무식허긴 이래서 실전 경험이 중요한 거여 육보시(肉布施)란 쉰 말로 살보시라고 하는데 여자가 굶주린 남자에게 제 샅을 먹이는 게 육
보시 아닌가? 공양 중에선 최고라 하는 거다.    아아 소위 하초공양이라는 거군요.
 
   에에또 린돈(麟敦)은 어전에서 간음을 했다니

포석정에서 부하들이 보는 가운데 경애왕비를 발가벗겨 강간한 지렁이 대왕 견훤은 저리 가라네.

그런데 가장 비참한 건 해밀돈(解密敦) 아닌가? 비난 상소가 빗발치자 할 수 없이  나는 자주 그녀와 내 집에서 밀회를 가졌다.

그 동안에 우린 배놀이 말타기 등의 수포추(獸抱醜)를 즐겼다… 그녀의 기교는 워낙 절묘해서 나는 그녀와 헤어지려면 미칠 것 같았다.

라고 자복하고 양위해야 했다니.
  그러나 무에니 무에니 해도 멋진 건 역시 개내지야 아무러케국 역사상 최고의 인기 광대라는 마라린(馬裸隣)의 기둥서방이었다며? 

그녀가 원래 사당패 출신이라지?
 
  우리 한대국도 성안골의 사당패 하면 유명하잖아 그런데 마라린 엉덩이 흔들며 걸어가는 것 보니 햐 정말 사람 죽이더만

한번 흔들 때마다 나도 신물(神物)이 따라 꺼떡거리며 침을 게워대는데… 사내 열은 잡아 묵겠드라.

근데 왕비 재구린(宰求璘)도 상당히 미녀든데, 좀 끼가 있어 뵈더구만 부부가 둘다 도화살이 얼굴에 꽉 백혔더구만.
  그런데 그 마라린이 잘 안 만나준다고 그만 졸림약을 왕창 쳐먹고  죽어버렸다며?

미친년, 계집이 서방 먹여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조르긴.

그러니까 그 나라가 아무러케국이여 그 나라 대왕들 바람기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꼭 암캐 본 수캐 다리 쳐들듯 해요. 
   상감마마 지금 무에라 하셨습니까? 
   수캐다리 쳐들듯 한다고. 
   예, 그네들도 수캐다리(scandal)라 하옵니다. 
   그러냐! 남녀간에 고약한 소문은 어디나 이르는 말이 똑같구나.
   예예. 
   그러고 지금 구린돈(具隣敦)인가 휘라린가 하는 대왕부부가 하난 계집질로 하난 땅놀음으로 전국 유림의 빗발치는 비난 상소 때문에 몹
시도 경을 치고 있다며?
 
   하하하 상감마마 그 나라 사정은 어찌 그리 소상히도 아시옵니까? 
   흐흐흐… 기본상식 아닌감. 그런건. 
   예, 구린돈 대왕이 즉위하기 전 갑하래(匣下來)에서 가인(歌人)으로 있던 제니파(濟尼琶)라는 여자와 무려 12년이나 은밀한 관계를 가졌고, 그후에도 포라존주(包裸存酒)라는 여자에겐 너 색시같구나 나랑 코코 잠잘래 했다가 딱질 맞은 게 들통이 나서 야단이랍니다,

지금.     아니 뭐가 야단인감. 사내가 계집질 좀 하는 게 여사지 또 술집 계집이란 아무놈이나 델구 자는 거지.

그래서 노류장화라고 하는 거 아닌감? 
   그네들은 혼외정사를 부도덕하게 생각하옵니다. 
   혼외정사라는 게 뭔고?
   예. 울말로 계집질 첩질 시앗보기 외도 오입 바람이라 부르는 것이옵니다.
   같이 놀아놓고 사내 출세하니 돈냥이나 뜯을까 하고. 거 아주 천하 불쌍년이네 속담에 冒준년이 소문낸다더니

옛말 그른 거 하나도 없구만 쯧쯧... 그런데 이 예장이 어찌하여 배대감 손에 들어가 있지? 
   상감마마 나주의 그 여인이 아들을 낳았사옵고 지금 일곱 살이며 이름을 무라 하오며 소신의 집에 있사옵니다. 
   무… 무엇이… 그것이 사실이냐? 당장 불러들이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왕무는 수창궁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 아들을 끈으로 하여 오씨녀는 개경으로 불려 올라오게 되었다.

그러기에 여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낳아야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것이다. 

아들 없는 여자는 그래서 끈 떨어진 갓이요 밑장 없는 고무신이라는 거다.
수창궁에 들어오니 정비만 열 아홉 명에 자녀는 백여명.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오씨부인은 왕비가 되고 왕무는 태자가 되는데 그건 단 하나
왕건이 손수 써준 예장의 힘이었다. 배현경을 비롯한 중신들은 주청하였다.
   예장을 가지고 있으니 반드시 왕후로 봉해야 하옵니다.
 
  배현경은 개주(開州) 도찰사로 신도(新都-송도) 건설에 공이 높았으며 또 왕건을 도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공이 지대하였으므로

대상행이부상서(大相行吏部尙書)의 지위에 올라 있었다. 거기다  장화왕후 책봉에 중심 역할을 하였기에 무가 왕위에 오른 후 그의 아들 배은우(裵殷祐)를 부마로 삼아 정승으로 중용하였으니 경주 배씨의 중시조가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단지 예장 하나로 일국의 왕비(莊和王后)가 되고 태자(뒷날 2대 혜종 의공대왕 惠宗 義恭大王)가 되었다고

어찌 말할 수 있으리요?
  이 모두가 선도의 대가였던 혜산 스님을 성심으로 받들고 고운 마음으로 인명을 귀중히 여겨 구명적덕한 공로로

명당에 조상을 모셔 발복한 연유 아닌가? 후인들이여 들으라.

이래도 우리 선도(仙道)를 우스개요 하찮은 미신이라고 경멸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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