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소속 없는 영혼들이여, 폼생폼사 정신으로 살아가라!

醉月 2008. 11. 21. 11:49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 허풍선이, 날라리, 얼치기, 미치광이 같은 소속 없는 영혼들이여, 폼생폼사 정신으로 살아가라!”

김갑수 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무라카미 하루키가 옳았다. 어떤 소설인지는 잊었지만 하루키의 작중 인물이 말했다. 문화 언저리의 일이란 눈 오는 날 눈 쓸기와 같다고. 쌓이는 눈을 치운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온갖 방송사에서 열심히 눈 치우기를 했고 그 덕에 밥을 먹고 음반을 샀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1985년 3월1일 금.

3·1절 휴가 하루를 완전히 방에서 뒹굴다 보냈다. 이제 밤 시간, 무위의 하루를 허망해 하기에는 이런 나날이 너무 잦았다…. 커피도 끓일 겸 부엌으로 해서 마당에 나갔다 왔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구나. 화살같이 다가온 3월. 무주공산 빈털터리 가슴으로 현란한 봄을 맞는다. 이대로 얼마나 더 잘 먹고 잘 살아갈 것이냐. 침묵과 침잠이 내게는 마냥 벌(罰)이 되는 것인지?

지금 난해한 현대음악을 듣고 있음. 마디마디가 툭툭 부러지는 piano solo. 피아노의 페달을 이용해 음의 울림을 툭툭 끊어 현악기의 스타카토 같은 소리를 낸다. 나도 덩달아 호흡이 자꾸 막히고 당신에게 할 말도 마디가 계속 끊어진다.’

인간은 절대, ‘저얼대’ 변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아는 심리학자의 지론인데 맞는 말인가 보다. 물경 4반세기 전, 스물여섯 살에 끼적인 일기장을 우연히 찾아내 읽어보는 중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시간을 막막해 하고 끊임없이 자책하고 언제나 음악을 듣고. 그날 꽤나 길고도 긴 일기가 파란 잉크의 만년필로 씌어 있었다. 후반부에 좀 생경한 넋두리 인생론이 펼쳐지는데 그것 역시 변하지 않은 모습인 것 같다. 토씨까지 그대로 몇 줄 옮겨본다.

‘나는 지금 살아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살아나가려고 한다. 이 세상은 몹시 잘못된 질서와 이데올로기로 조직되어 있어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것들을 압살하거나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 내가 계속해서 살아나가려는 것은 목숨이 붙어 있다는 점 못지않게 살아갈 의의가 인생에는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릇된 힘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한 개인의 살아갈 의의를 제멋대로 좌우하려 들고, 나는 그 손아귀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서정은 세계의 자아화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세상의 질서에서 이탈해 혼자만의 성채를 가꾸는 길과, 세상의 질서 자체를 의미 있게 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혼자 이탈하는 방법은 불가능하기도 할뿐더러 그런 척이라도 하려 든다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속여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자유롭고자 하는 자아와 억압하려는 세상을 내면화하여 서로 싸우게 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가 내가 서 있는 지점이다….’

터키 커피를 만들고 있는 바리스타.

세상이 잘못됐다고 진단했다면 그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들 각오를 다지는 게 옳았다. 불과 스물여섯의 나이였으니까. 그런데도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자아와 세상을 내면화하여 서로 싸우게 하자’고. 문학 장르를 공부할 때 서정, 서사, 교술, 희곡의 4대 분류 가운데 ‘세계의 자아화’가 서정이라고 배웠다. 내 변치 않는 성정의 정체가 서정적 자아라는 뜻이다. 서정은 서정을 가능하게 하는 별도의 환경과 공간을 찾는다. 그것이 내게는 자연 대신 작업실이다. 서정의 아스라한 연무를 뿜어내는 지하 작업실. 그것으로 충만하면 좋으련만 정작 문제는 작업실 바깥의 외부다. 서정 공간 안에서 마음껏 자유롭고 센티멘털하고 울고불고 핥고 빨고 해도 외부, 이 세상을 면할 길이 없다. 팍팍한 외부, 그것이 괴로움이다. 외부에 나가야 돈을 벌고 이름을 알려 존재확인을 받고 심지어 살아가야 할 동기를 부여받는다. 외부를 면할 길은 없는가. 없다. 작업실조차 내부가 아니라 선별되고 가공된 외부의 축소판인지 모른다.

외부 앞에 선 자아의 혼란과 고통은 많은 작가, 학자들의 관심사였다. 캐롤 피어슨이라는 융 심리학자가 자아상의 분류를 시도한 것이 있다. 이른바 사회적 가면 즉 외부를 벗겨버리고 들여다본 여섯 가지 자아상이다.

고아 : 온몸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 자신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배신당하고, 짓밟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이 낙원일 거라는 믿음이 무너지면서 심리적 추락을 경험한다.

방랑자 : 자신을 탑이나 동굴에 갇힌 포로라고 느낀다. 사회적 역할과 제도, 가족, 기존의 관습 및 조직 체계가 자신을 가두는 감금자라고 생각하여 이러한 것들을 자신이 물리쳐야 하는 ‘악당’으로 여긴다. 타인과의 너무 큰 친밀감을 오히려 위협으로 여긴다.

   

전사 : 삶을 전투나 시합으로 여기며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하다. 악전고투해서 성공을 거머쥐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큰 자부심을 느끼며,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무엇보다 수치스러운 일로 여긴다. 다른 이들에 비해 더 경쟁적으로 자신이 최고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강박관념에 싸여 있다.

이타주의자 : 자신보다 더 원대한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값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 지나치게 큰 희생을 하게 되면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러면서 타인에게 죄책감을 안긴다.

순수주의자 : 성장과정을 무사히 거치려면 타락한 세상에서의 삶이 어떤 건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는 타락한 세상을 거쳐 다시 순수성을 회복하는 단계다. 원하는 것을 아직 손에 넣지 못했을 때에도 행복감을 맛볼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진정한 동반자로 인식하게 된다.

마법사 : 스스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잡으려고 한다. 가만히 앉아 다른 사람들만 탓하지 않는다.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자신의 책임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 바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다. 솔직하게 자신을 평가할 수 있기에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사실도 외면하지 않으며, 감상이나 낭만에 빠지지도 않는다. 또한 타인들도 변화를 일으키도록 촉구하며 자극한다.

천고(天孤)와 천문(天文) 타고나다

피어슨은 이 여섯 가지 자아상을 성장의 단계로 바라본 모양이다. 그런데 과연 인성이 성장하는가. 변화하고 발전하던가. 오히려 한평생 고아나 방랑자, 전사 또는 마법사 가운데 하나로 살게끔 ‘레디메이드’ 되어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사실 피어슨의 자의적 분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아와 방랑자에 대한 설명 때문이었다. 온몸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탑이나 동굴에 갇힌 포로라고 느끼는…. 어릴 때 어머니가 내 사주를 열심히 보고 다니셨는데 언제나 똑같은 내용이 나오더란다.

“이 아이는 부모형제 친척도 친구도 이웃도, 아~아무도 없어요! 돌 틈에서 저 혼자 생겨나 저 혼자 살다 갈 거구먼요!”

천고(天孤)와 천문(天文)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한데 사주쟁이의 저주가 그닥 싫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나 천고자 천문자는 뜬금없이 외치는도다. 이 세상에 더 나은 자아와 더 못한 자아는 없노라. 더 나음과 더 못함을 구분하는 잣대는 오로지 외부, 자아의 바깥, 지하 작업실의 바깥, 진정한 것의 바깥에 흉포하게 거하노라. 아, 천고 천문에 자족하며 살겠노라 폼을 잡고 기를 모으는데…. 헐! 문제는 역시 외부라니까.

나의 외부는 어디일까. 사람마다 각기 다를 그 대상의 첫 번째로 나는 방송을 꼽아야 할 것 같다. 거기서 식량의 대부분이 나오니까. 전업 방송인이 된 지 벌써 13년 세월이 흘렀다. 이런 비유를 들어보자. 김치찌개나 설렁탕을 먹을 때 그걸 두고 토론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회라도 한 접시 뜰라치면 좌중은 아연 온갖 종류의 ‘사시미 잡학’에 번다해진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방송은 회와 같다. 일 자체가 이야깃거리가 된다. 누구나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일에 바쳐야 하고 방송일 역시 하나도 다를 바 없건만 일의 성격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모양이다. 하긴 그렇다. 학교 시절을 떠올려보자. 옆자리 애와 수업 중에도 재잘재잘 잘도 떠들건만 앞에 나와서 한마디하라고 하면 갑자기 합! 합죽이가 되어 삐질삐질 진땀을 흘린다. 방송은 곧 말을 하는 것이되 별것 아닌 말도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속성이 있다.

우선 불평부터 늘어놓아야겠다. 방송의 콘텐츠는 보도, 교양, 오락으로 대분류된다. 이 셋이 시간상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한 매체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로 라디오 진행으로 연명해온 내가 볼 때 우리나라 방송판은 완전 연예 오락판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방송사 복도에서 마주치는 연예인들이 나 같은 종류의 사람을 보면 ‘저 자가 왜 여기서 얼쩡거리나’ 하는 분위기다. 연예만발, 오락천국의 풍조가 도무지 온당해 보이지 않건만 그런 문제제기 자체가 생뚱맞아 보일 정도다. 어쨌든 무적함대 연예인들 등쌀을 간신히 뚫고 뚫으며 소위 ‘교양 프로그램 전문’으로 십몇 년을 버텨왔다.

 

방송생활 10여 년의 교훈

그 세월이 가져다준 결과가 이렇다. 결과 1. 절대로 PD와 다투지 않는다. 방송일 초기에 PD는 항상 무식하고 저속했고 나는 항상 유식하고 심오했다. 나의 엄청난(!) 유식과 심오를 과시하는 숱한 언쟁과 삐침의 결과, 에이취, 번번이 일이 날아갔다!

결과 2. 무라카미 하루키가 옳았다. 어떤 소설인지는 잊었지만 하루키의 작중 인물이 말했다. 문화 언저리의 일이란 눈 오는 날 눈 쓸기와 같다고. 쌓이는 눈을 치운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온갖 방송사에서 열심히 눈 치우기를 했고 그 덕에 밥을 먹고 음반을 샀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결과 3. 순발력, 순발력, 오로지 순발력! 그렇다. 방송 프로그램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두서없이 만들어지는지 실상을 알면 놀랄 것이다. 제작진이 거의 초능력자로 보이는 상황이 일상적인데 놀랍게도 때가 되면 프로그램이 나가긴 나간다. 그 회오리바람 속에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절정 순발력뿐이다.

‘줄라이홀’ 주인장은 방송으로 밥벌이를 해왔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는 MBC FM의 ‘뮤직 스트리트’ 스튜디오.

결과 4. 솔직하지 말라. 솔직하면 다친다. 시청자 또는 청취자라고 부르는 방송 소비자에겐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성향이 있다. 평상시의 자기와는 아주 다른 인격체를 방송에 대고 요구하는 것이다. 성 취향, 이념 성향처럼 뜨거운 것말고도 별것 아닌 사안에서 좀 튀는 독자적인 의견이나 발상을 내비치면 심히 딴죽을 걸고 나온다. 방송일 초창기, 무모한 의욕과잉에 넘치던 시절에 자주 들었던 비난이 이런 말이다.

“아니 그렇게 개인적인 생각을 방송에 대고 말하면 됩니까!”

‘그래 알겠수. 내 생각은 이제 없다고요(그러면 누구 생각을 말하라는 걸까).’

결과 5. 잘난 것과 행복은 별로 관계가 없더라. 내가 해온 프로그램의 태반이 인터뷰나 대담으로 이루어져왔다. 소위 잘난 인물이 대상일 수밖에. 꾸밈없는 속마음도 터져 나오고 간혹 애프터 술판도 벌어지는데 아, 잘나고 대단해 보이는 인물들의 평범함이라니! 그들은 그들의 조건과 수준에 맞는 쪽팔림과 기고만장 사이를 오가는데 해질녘 길모퉁이 술집의 갑남갑녀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행복해 보이는 인간이 없다. 어쩌면 잘남의 크기만큼 불행해 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과 6.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그렇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척박하고 일천해서 좋다는 말이다. 어느 분야가 됐든 오랜 세월을 두고 제대로 길러진 전문인이 워낙 적어서 뭐든 조금만 노력해 앞서면 발 디디고 올라설 틈바구니가 많은 것이다. 우선 나부터 그런 얼치기 행색으로 일을 한다.

결과 7. 명성은 돈이다. 이름값이 고스란히 소득으로 돌아오는 세상이 됐다. 나는 아무렇게나 입고 아무데나 싸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유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자유로워 좋겠다고? 그런데 문제는 자유로움이 돈과 반비례한다는 데 있다. 유명해지면 어찌 그리도 전후좌우로 돈 생기는 구멍이 많은지 주위 사례를 보면서 군침만 흘려댄 게 무릇 기하련가. 에이, 추해라, 그만.

 

‘마이크 앞이 더 편안해’

천고를 타고났다는 자가 만천하를 향해 떠드는 일을 업으로 취했으니 정녕 얄궂은 팔자다. 밀폐된 자아의 외부로서 방송만큼 막강 장벽은 더 없어야 마땅할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장벽은커녕 나는 첫 방송 때부터 전혀 떨거나 헤매지 않았다. 마이크 앞이 오히려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곰곰 생각해본 결과 이유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남들이 믿어줄까.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언제나 내가 나 같지 않다는 것. 나는 항상 유령처럼 공중에 떠서 나라고 불리는 세상의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그러니까 나라고 간주되는 어떤 자가 스튜디오에 앉아 지껄이고 있고 진짜의 나는 허공에 떠서 재미있게 관찰하고 있는 형국이다. 나라고 간주된 그 자는 헛말과 속말을 오가며 헷갈려 한다. 어디까지가 방송상 필요한 헛말이고 속에 담아두어야 할 진심인지. 공중의 유령이 때때로 경고 메시지를 날린다.

“헤이, 나. 그렇게 진실하면 고객이 싫어하잖아.”

사람들이 방송 출연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재미와 내용의 함량인 듯하다. 좀 거칠게 속말을 해보자면 이렇다. 소위 교양 프로그램이 재미있어 봤자 뭐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내용이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는가. 그보다는 도대체 얼마나 진정이 담겨 있는지 그 점을 헤아려줄 수는 없을까. 오프라 윈프리를 보라고. 우리 시청자도 오프라 같은 사람을 길러내야 제대로 가는 방송 아닐까.

작업실 바깥, 존재의 외부는 그밖에도 많다. 그중 외부라고 부르기엔 너무 커다랗고 압도적인 외부가 하나 있다. 분류의 체계상으로는 앞서의 방송일과 도무지 위상이 맞지 않는다. 서정적 자아가 무겁게 마주쳐야 하는 또 하나의 외부, 그것은 바로 내가 태어나 자란 나라 대한민국이다. 객관화하기엔 너무도 몸에 밴 조국.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로 대할 수 없는 혈연적 고착상태의 모국 대한민국. 이 나라는 끊임없이 내 내부로 파고들어와 정체감을 이루려든다. 그것이 징그럽고 지긋지긋한 것이다. 나 또는 우리의 삶은 온통 한국인이라는 전제로 출발해야만 한다. 게다가 그걸 자랑스러워해야만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교육을 받는다. 한국인이지 않은, 국적의 지역성, 역사성이 배제된 나를 상정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나라가 잘돼야 내가 잘된다고? 그 무슨 김정일국(國) 같은 말쌈? 다른 나라를 선망해서, 다른 나라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나라 자체다.

아직도 근육과 정신이 근질거리는 혈기방장의 젊은 나이였다면 나는 아나키스트가 됐을 것이다. 프루동이나 바쿠닌처럼 무시무시한 강골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국가는 폭력이다’라고 외친, 그래서 세금이며 노역이며 국가가 요구하는 것은 모조리 거부하자고 주장한 톨스토이식 온건 아나키즘쯤에는 닿았을 것 같다. 아니, 아니다. 무슨 ‘키즘’ 따위로 거창하게 나가지 말고 단순소박으로 이 ‘나라 지겨움’의 속마음을 헤아려보자.

   

소속되지 않는 영혼들

소속될 수 없는 영혼들이 있다.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 허풍선이, 날라리, 사이비, 얼치기, 미치광이…. 어떤 결락감, 어떤 공허가 이런 부류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떠돌이, 미치광이의 삶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적어도 결락과 공허에 충실한 삶이니까. 문제는 그런 삶을 지탱하기 힘들어 다른 것으로 메우거나 대체했을 때 생겨난다. 결락감과 공허를 못 견뎌 하다가 무언가를 콱, 붙들면 극단의 ‘주의자’가 된다. 과잉이라는 이름의 병. 존재의 자유를 압살하는 암 덩어리를 키우는 것이다. 극우, 극좌가 대표적이고 맹신의 종교적 열정이 그러하다. 민족주의가 그러하고 지역주의가 그러하고 출신학교 주의가 그러하다. 우리 교회 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배경에 국가가 있다. 순정한 의미의 이념이나 종교가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있다면 한국식 이념, 한국식 종교만이 존재한다. 어떤 사정이 있어 주로 청년사에서 출간한 종교학 서적들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는데, 그 학습 결과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기독교는 반드시 ‘한국 기독교’라고 불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만큼 특이하고 별나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콱 붙들린 모든 것의 배경에 한국이 있다. 아울러 콱 붙들려 열렬한 사람의 전사(前史)는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들이었을 거라고 나는 추측한다.

외로움은 곧잘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살아보지 못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단지 우리의 자국 집착이 좀 유별나 보인다는 것. 내 친구 이토 요분이 아무리 리버럴해도 일본인을 못 벗어나고 특이하게 백인음악 취향을 가진 흑인친구 스티브도 갈데없이 미국인이다. 그 바람에 피차 독도 얘기를 삼가고 미국화를 뜻하는 세계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걸까. 왜 어쩔 수 없어야 할까. 국가에 종속되지 않은 개인, 국가의 전통과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외적 개인, 그렇게 살면 왜 안 되는 걸까. 자기의 인생을 살라는 뜻에서 바쿠닌은 국가를 부정했고 모든 권력을 혐오했다. ‘국가는 개인 생활의 모든 표현이 매장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무덤이다’라고도 했다. 인격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실현하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가장 큰 장애물이 국가라는 것이다.

지하 작업실 줄라이홀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대한민국은 사라진다. 그러기로 나는 결심한다. 그 안에는 차라리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 허풍선이, 날라리…. 소속 없고 사사롭고 아직 콱 붙들리지 않은 영혼의 해방구가 열린다. 돌 틈에서 태어난 천고자의 서정이 연무를 피워낸다. 그래, 그런 착각이라도 하련다.

작업실의 최근 뉴스는 보름 전에 행한 공사다. 그런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홈 바? 작업대? 싱크대? 늘어나는 커피용품을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전생에 주부가 아니었을까 싶게 각양각색의 도자기 잔 모으기를 좋아하는데다가 에스프레소 머신도 하나 더, 드립주전자도 하나 더 이런 식이다 보니 첩첩이 쌓이느니 물건들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그랬다. “공돈 생기면 소리 나는 곳에 다 써버리는 거란다.” 그래서 소리 나는 음반을 사들이고 자꾸만 오디오를 바꾸게 됐나 보다. 공돈은커녕 애면글면 일해서 생기는 수입이건만 ‘모조리 써버리라’는 대목만 기억해서 이제껏 살아온 사실이다.

 

피 사이폰 때문에 홈 바 설비

공사는 ‘비엔나 로열 밸런싱 사이폰’이라는 그 이름도 거창한 기구를 사들인 게 계기였다. 1800년대부터 유럽 황실에서 사용했다는 복잡하고 요란한 사이폰인데 인터넷에서 발견한 그 화려한 외양에 지름신이 그냥 놓아둘 리 없다. 일본 가는 업자에게 부탁해 일주일을 기다려 물건이 왔다. 목재로 만든 큼직한 몸체의 왼쪽 편에는 알라딘 램프를 닮은 유리병이 세워져 있다. 거기에 원두가루를 넣는다. 오른쪽에는 둥그런 드럼통이 대롱대롱 매달리듯이 놓이는데 여기에 물을 담는다. 양쪽은 가느다란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고 드럼 밑에 장착된 알코올램프로 가열하면 밸런스 추가 왔다갔다하면서 커피를 만든다. 그 과정이 정말 예술이다. 언젠가 오스트리아의 쉔브룬 궁전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수집했다는 그림이며 생활용품들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왠지 테레지아 여제의 어린 딸 마리 앙투아네트가 바로 이 밸런싱 사이폰을 즐겨 사용했을 것만 같다. 더욱이 분위기만 황족인 것이 아니었다. 평소 사용하던 하리오사의 일반 사이폰과는 정말 한 차원 다른 그윽한 향미가 풍겨 나왔다. 커피 열매의 섬유질 성분까지 속속들이 파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문제는 공간이었다. 가뜩이나 재래시장 만물상처럼 쌓이고 늘어선 탁자에 이 금장으로 번쩍거리는 커다란 비엔나 황족까지 모시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 또 한 번 저지르자. 암 저지르고 말고. 홍대 근처의 일급 커피전문점 ‘카페 드 솔’ 같은 곳에서 본 커피조리대용 전용 바를 설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커피 바에 기성품이 있을 리 없다. 필요에 맞춰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발휘해 제작해야 한다. 그런 일에 ‘반쪽이’ 만화가 최정현이 달인이란다. 스치듯이 한 번 본 사이라 차마 연락은 못하고 애꿎은 출판사 사장만 괴롭혔건만 결국 접선이 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내 주변에 독일 유학파가 유난히 많다.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 남자들은 죄다 목수라고. 이들은 친구도 없고 술도 안 마시는지 퇴근하면 대부분 곧장 집으로 돌아와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갖춰놓은 목공 장비를 챙겨들고 날마다 썰고 두드리고 갈아내서 별걸 다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도 집집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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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리 찾아보고 수소문해봐도 이 땅에 독일풍 신사를 찾을 길이 없었다. 목공이 취미인 사람을 발굴해 오순도순 의논해가며 멋지고 개성적인 홈바를 제작하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해야 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저녁마다 친구도 없이 외로이 톱질을 하는 독일 남자가 잘사는 건지, 저녁 지나 새벽녘까지 날이면 날마다 술 마시며 열변을 토하는 한국 남자가 사람답게 사는 건지 아리송한 기분이 든다.

 

‘누가 나 좀 말려줘요!’

결국 인테리어 업체를 이용해야 했다. 연고를 찾지 않기로 했다. 작업실 근처 아파트 입구에 몇 군데 매장이 있다. 오로지 쇼윈도의 디스플레이 솜씨만 보고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누가 내 용도를 알아주랴. 열심히 또 성실히 설명을 하노라니 사장인지 디자이너인지 목수인지 하여간 단단하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사내가 빙긋이 웃는다. “제가 스타벅스 매장 6호점까지 공사한 사람이에요.” 운이 따른 것이다. 단단하게 생긴 사내의 경륜 덕에 설계도면에서 현장공사까지 일은 일사천리로 풀려나갔다. 몸체는 자줏빛 펄 버건디 색상으로, 상판은 검정색 마블 인조대리석을 얹게 됐다. 좋게 말하면 고전적인 색 배치고 다르게 말하면 철지난 구닥다리 컬러인데 최신 유행에 익숙한 단단한 사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가 고집을 부려 선택했다. 이른바 유럽 황실의 색 배치. 바로 그 이름도 기나긴 ‘비엔나 로열 밸런싱 사이폰’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제 작업실 안은 크게 오디오 영역, 홈바 영역, 영화를 보는 AV 영역으로 삼분되게 되었다. 여러 개의 부분 조명으로 둘러싼 홈바의 ‘바텐의자’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있노라면 ‘누가 나 좀 말려줘요!’ 하는 심정과 ‘누구 이 폼 좀 봐주세요!’ 하는 심정이 동시에 든다. 어쩌다 ‘폼생폼사’ 그 자체가 돼버렸다. 그러나 공사 마친 지 보름이 넘었건만 아직 찾아온 손님이 없다. 문득 한 귀퉁이에 찌그러져 있는 컴퓨터 책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천문(天文)을 타고나 직업 글쟁이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저 컴퓨터 의자의 엉덩이 크기만한 공간이면 충분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텐의자’에 앉아 있다. 인간의 종류를 생산형과 향유형으로 나눈다면, 컴퓨터 쪽과 바텐더 쪽으로 나눈다면 아, 나는 단연 향유형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 옷치장이며 얼굴 화장에 필요 이상으로 열중하는 여성들이 항변 삼아 하는 말이 있다. ‘남한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만족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요!’ 그 말에 공감을 표한다. 남 보기에 좋으라고 개인 작업실 안에 카페를 차리지는 못한다. 고적한 실내에서 바텐더가 된 기분을 맛보려고 일을 벌였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요즘은 컴퓨터 의자나 음악 감상용 소파보다는 ‘바텐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

네팔 여성들이 커피열매를 따고 있다.

‘사랑하는 00. 2월의 마지막 날에 시작한 이 편지 노트도 어언듯 마지막 장이 채워져 간다….’

1985년 2월28일(목)에 시작한 일기장은 그해 7월 8일(월)에 마지막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제법 두툼한 노트인데 그 시절엔 그렇게나 쓸 말이 많았나 보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틀 전 소설가 김영현의 결혼식에 다녀온 이야기(내가 그의 함진아비를 했었다), 전날 일요일엔 문학평론가 김명인의 첫딸 백일기념과 창작과비평에 회심의 논문이 게재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에 다녀온 얘기가 적혀 있다. 지금 김영현은 실천문학사 대표로 늙어가고 어릴 적 친구 김명인은 인하대 교수로 조용히 산다. 그때 백일을 치렀던 딸 한결이는 파리 제4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하고 있는데 아비의 자랑이 대단하다. 그리고 이 일기가 바쳐지는 대상이었던 유학 간 약혼녀 ‘당신’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나 꿈에서도 볼 수 없게 되었고(후생들이여, 유학 떠난 애인을 절대로 믿지 말라).

김갑수
1959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국어국문과 졸업
시인 및 음악칼럼니스트
저서 : ‘나의 레종데트르’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시집 ‘세월의 거지’ 등

작업실 바텐더 의자에 앉아 낮은 조명을 켜고 이십몇 년 전의 못생긴 글씨를 더듬는 일은 참 춥고도 뜨겁다. 작업실이니까 이 모든 센티멘털에 용서를 구한다. 여기 이 공간은 절대적으로 내부다. 이십몇 년 전의 엇갈린 사랑도 내부이고 백일몽 아나키즘도 내부이며 방송사 마이크 앞에서의 헛말까지 내부로 꼭꼭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근다. 세상은 몽땅 외부이고 이 공간 안에서는 마음껏 내부이니 참말 편리한 거다. 지금 공중에서 나를 지켜보는 내가 싱긋이 웃으며 말한다. 왜 내부, 내부, 내부타령을 하는지 설명 하라고. 그걸 꼭 말로 해야만 할까. 너도 알고 나도 알잖아. 내부가 두려운 사람들, 텅 비어버린 내부, 내부 없이 살라고 가르치는 세태, 내부는 지나간 세기의 유산이라고 비웃는 유행, 이럴 때 ‘뽕짝조’ 한마디.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는 내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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