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김혜경의 요재지이

醉月 2009. 9. 25. 08:48

귀신은 개과천선을 막지 않는다
瞳人語 동인어 ―눈동자 속의 난쟁이
장안(長安) 땅에 방동(方棟)이라는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지역 사회에 상당히 재주 있다고 알려진 명사였지만 사람됨이 경박하고 예절을 지킬 줄 몰랐다. 들길을 걷거나 들판에서 노니는 여자라도 만나게 되면 언제나 히죽거리며 그 뒤를 따라다니곤 하였다.

청명절 하루 전날이었다. 방동은 우연히 교외로 나갔다가 깜찍하고 귀여운 수레 한 대를 보았다. 수레에는 붉은색의 수놓은 휘장이 쳐져 있었고, 말을 탄 시녀 몇 명이 수레 뒤편에서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시녀는 조그만 망아지를 타고 있었는데 유별나게 예뻤으므로 방동은 좀더 자세히 보려고 슬금슬금 그쪽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수레의 휘장이 젖혀지면서 안쪽에 앉아 있던 한 묘령의 여자가 드러났다. 곱게 단장한 그녀는 방동이 여태까지 살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눈앞이 어지러웠고 혼백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방동은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계속 수레를 따라갔다. 그렇게 몇 리 길을 가다가 문득 수레 안의 여자가 시녀를 가까이로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날 위해 휘장을 쳐다오. 어디서 굴러왔는지 알 수 없는 건방진 녀석이 끊임없이 나를 훔쳐보고 있구나!”

시녀는 명령대로 휘장을 내리더니, 화가 나 방동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이분은 부용성(芙蓉城·역주1) 일곱째 서방님이 새로 맞은 마님이신데 친정으로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이시다. 보통 농가의 부녀자가 아니시니, 어찌 너 따위 수재가 함부로 넘겨볼 수 있더란 말이냐!”

말을 마치자 그녀는 수레가 지나간 바퀴 자국에서 흙을 한 줌 집더니 방동을 향해 뿌렸다. 방동은 삽시간에 눈꺼풀이 감기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가 눈을 비비는 동안 수레와 말들은 멀리 사라져갔고, 그 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는 한편 놀라고 또 의아하게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눈이 계속 불편하기에 사람을 시켜 눈꺼풀을 뒤집어 살펴보게 했더니, 눈동자 위에 조그맣게 백태가 끼어 있다고 하였다. 하룻밤이 지나자 눈병은 더 심해져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백태는 점점 커지더니 며칠 만에 동전만한 두께로 자라났다. 오른쪽 눈에는 또 나선형의 두꺼운 꺼풀이 자라났는데 양쪽 다 어떤 약을 써도 효험이 없었다. 그는 초조하고 걱정이 되어 죽고만 싶었고 차츰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게 되었다.

누군가 ‘광명경(光明經·역주2)’을 읽으면 재난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자, 그는 즉시 한 권을 구해서 다른 사람에게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차츰 시일이 흐르면서 마음도 서서히 안정되어 갔다. 그는 아무 할 일이 없었으므로 날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염주를 굴리며 불경을 외웠다. 이렇게 일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사이, 그는 온갖 잡념이 다 가라앉아 평온한 심정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왼편 눈 속에서 파리가 왱왱거리는 듯이 조그맣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칠흑처럼 깜깜해. 도대체 숨막혀 죽을 것만 같아!”

그러자 오른편 눈 속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 함께 나가서 돌아다니면 이 답답한 기분이 나아질 거야.”

방동은 마치 조그만 벌레가 꿈틀거리기라도 하는 양 서서히 콧속이 가려워지면서 무언가 콧구멍 안쪽에서 기어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자 그 물체는 다시 콧속으로 돌아왔고, 또 콧구멍에서 눈동자 쪽으로 움직여갔다. 그들은 눈 속으로 되돌아오자 또다시 속삭였다.

“오랫동안 정원에 나가 보지 않았더니 어느 사이 진주란(珍珠蘭)이 말라 죽었어!”

방동은 원래부터 난초를 좋아해서 정원에 여러 품종을 심어두고 날마다 직접 물을 주며 가꾸는 취미가 있었다. 하지만 두 눈이 멀게 된 이후로는 난초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갑작스럽게 진주란이 말라 죽었다는 말을 듣자 당장 부인을 불러 물어보았다.

“어쩌다 뜰 안의 진주란을 말라 죽게 했소?”

부인은 그에게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고, 방동은 눈 속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일러주었다. 부인이 정원으로 달려가 살펴보니 난초꽃이 정말로 시들어 죽어 있었으므로 별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방 안에 숨어 열심히 동정을 살피다가 콩알보다도 작은 난쟁이가 방동의 콧속에서 튀어나오더니 부지런히 바깥을 향해 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난쟁이는 곧 멀어져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얼마 후 두 명의 난쟁이는 손을 잡고 되돌아오더니 땅에서 방동의 얼굴로 날아올라 콧속으로 들어갔다. 그 광경은 마치 꿀벌이 벌집으로 날아드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들락날락하는 사이 이삼일이 지났다. 그런데 또 왼쪽 난쟁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통로는 너무 구불구불해서 오가는 게 정말 불편하구나. 차라리 우리끼리 문을 하나 만드는 것이 낫겠어.”

오른쪽 난쟁이가 그 말에 응수했다.

“내 쪽은 벽이 너무 두꺼워. 문을 뚫기가 쉽지 않겠는데.”

그러자 다시 왼쪽 난쟁이가 말했다.

“내가 먼저 시험 삼아 뚫어보지. 만약 성공하면 우리 둘이 함께 이 문을 사용하자.”

말이 끝나는 순간 방동은 눈두덩 안쪽에서 뭔가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시야가 활짝 트이며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이 하나하나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는 너무나 기뻐 즉시 부인을 불러 그 사실을 전했다. 그의 아내가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더니, 원래 시선을 가로막고 있던 백태가 찢어지며 조그만 구멍이 생겨나는 바람에 새까만 눈동자가 마치 껍질 터진 산초 씨처럼 그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나자 눈에 끼었던 허연 꺼풀은 모두 없어졌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한쪽 눈 안에 두 명의 난쟁이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 눈은 소라처럼 나선형으로 엉겨붙은 꺼풀이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므로 방동 부부는 그제야 두 난쟁이가 한 눈 속으로 살림을 합쳤음을 알 수 있었다. 방동은 비록 한 눈밖에 볼 수 없는 애꾸눈이었지만 두 눈을 가진 사람보다 훨씬 눈이 밝았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뒤부터 그는 한층 몸가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어 동네에서는 그의 품행을 칭찬하는 소리가 드높게 되었다.

이사씨(異史氏·역주 3)는 말한다.

내 고향에 사는 어떤 선비가 친구 두 사람과 더불어 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앞쪽에서 어떤 젊은 여자가 나귀를 타고 가는 것을 보자 장난기가 발동하여 시 한 구절을 읊조렸다.

“미인이 가는구나(有美人兮,역주 4)!”

그는 또 두 친구를 돌아보며 재촉했다.

“빨리 뛰게. 저 여자를 쫓아가자고!”

세 사람은 웃으면서 앞을 향해 달렸다. 잠시 후 그들은 여자를 따라잡았는데, 앞장서서 달리던 사람이 그녀를 쳐다보니 뜻밖에도 자기 며느리였다. 그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파랗게 질리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두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의뭉을 떨며 외설스러운 언사로 그 여자의 용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품평하기 시작했다. 그 선비는 난처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마침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 여자는 내 큰며느리 되는 아이라네.”

모두들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이 희극을 종결 짓고 말았다.

남을 놀리려다 도리어 자신을 욕보이는 일이 흔히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한심한 부류라고 하겠다. 방동 같은 사람은 그러다가 눈이 멀기에 이르렀으니, 귀신이 그에게 내린 벌은 진정 참혹했던 것이다. 그 수레에 탔던 부용성의 공주는 어떤 신이었을까? 혹시 중생을 제도하려는 보살의 현신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난쟁이들이 있는 힘껏 문을 뚫어 방동이 다시 광명을 되찾은 것을 보면, 귀신은 비록 경솔한 자를 미워하지만 사람의 개과천선을 막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자료제공=민음사

 

■역주

1) 부용성(芙蓉城):전설에 나오는 선경(仙境)의 하나.

2) 광명경(光明經):불교 경전으로 ‘금광명경(金光明經)’의 약칭.

3) 이사씨(異史氏):‘요재지이’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논찬(論贊) 형식. 이사씨는 작자인 포송령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이 책의 많은 신기한 이야기들이 사서의 열전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사(異史)’라고 말한 것이다. 본문 뒤에 ‘좌전(左傳)’의 ‘군자왈(君子曰)’이나 ‘사기(史記)’의 ‘태사공왈(太史公曰)’ 같은 논찬 체제를 모방하여 ‘이사씨왈’이라고 서두를 뗀 다음 작가가 직접 하고 싶은 말들을 덧붙이고 있다.

4) ‘시경(詩經)’ ‘정풍·야유만초(鄭風·野有蔓草)’에 나오는 시구.

■'요재지이'는 무엇인가요

오늘부터 독자 여러분에게 ‘요재지이’를 소개하게 된 김혜경입니다. 이 책은 명말청초에 살았던 포송령(蒲松齡 1640∼1715)이란 불운한 낙백서생이 지은 문언(文言) 단편소설집이지요. ‘요재지이’라는 서명은 ‘요재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요재는 이 책의 저자 포송령의 서재 이름입니다.

판본마다 조금씩 숫자가 다르지만 제가 번역한 민음사 판에는 497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요. 여러 판본에 실렸던 이야기들을 총망라한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짧은 것은 불과 대여섯 줄, 긴 것은 수십 쪽에 달하며 갖가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주인공이 주로 여우나 귀신, 신선, 사물의 정령들인지라 중국 지괴(志怪)와 전기(傳奇)의 결정판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포송령이 직접 보거나 들었던 당대의 기문일사(奇聞逸事)도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어 당시 민중들의 생활을 이해하는 중요한 야사(野史)로도 취급되고 있지요. 

앞으로 긴 이야기는 2∼3회에 걸쳐, 짧은 이야기라면 몇 개를 한꺼번에 소개하는 일도 있을 겁니다.

오늘은 사람의 눈동자 안에 집을 짓고 사는 난쟁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읽으면서 재미와 교훈을 아울러 추구하려 했던 작자의 마음을 느껴 보도록 하세요.

/ 김혜경 한밭대 어문학부 교수

 

<上>섭소천―천녀유혼 그녀의 유혹 뒤엔 요괴가…
 
영채신(寧采臣)은 절강성 출신인데, 성격이 시원스럽고 품행이 단정하며 자중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한다는 말이, “내 한평생 아내 말고 다른 여자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한번은 그가 일이 있어 금화(金華)에 갔다가 성의 북쪽에 있는 어떤 절에 여장을 풀었다. 절 안의 전각과 탑들은 매우 크고 화려했지만, 쑥대가 사람 키보다 높게 자라난 풍경으로 보아 오랫동안 인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동서로 가로놓인 승방에도 쌍빗장이 시늉으로만 걸려 있을 뿐이었다. 다만 남쪽에 있는 작은 건물은 최근에 빗장이 질린 것 같았다. 다시 불전의 동쪽 모퉁이를 살펴보니 아귀에 꽉 찰 듯한 굵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고, 계단 아래의 커다란 연못에는 야생 토란이 꽃을 피우는 참이었다. 영채신은 이곳의 고요하고 그윽한 정경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마침 학사안림(學使案臨 역주) 때문에 금화성 안은 방값이 급등했으므로 그는 이 절에서 묵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리하여 그는 절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저물자 어떤 서생이 나타나 남문의 빗장을 열었다. 영채신은 황급히 달려가 그에게 인사하면서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이곳은 주인 없는 절입니다. 저 역시 여행하던 중 임시로 머물고 있는 처지니까요. 이렇게 황량하고 썰렁한 절집이라도 계시겠다면 저 또한 가까이 뵈면서 가르침을 청할 수 있을 테니, 제게도 잘된 일이지요.”
영채신은 서생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짚을 깔아 침대로 삼고 판자를 엮어 책상을 만들면서 이곳에 장기간 머무를 작정을 했다.
그날 밤은 달이 무척 밝았다. 맑은 달빛이 물처럼 흐르는 가운데 두 사람은 불전의 낭하에 무릎을 마주하고 앉아 통성명을 했다. 서생은 자기를 일러, “연씨(燕氏) 성에 자는 적하(赤霞)”라고 소개했다. 영채신은 그가 시험을 치러 온 수재가 아닌가 추측했지만 말투를 들어보니 절강 사람의 말씨와는 전혀 달랐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저는 섬서 사람입니다” 하는 대답이었다. 서생의 말투는 더없이 소박하고 성실했다. 이윽고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자 서로 인사한 다음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영채신은 잠자리가 낯설어 오래도록 뒤척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처소의 북쪽으로부터 마치 인가라도 있는 것처럼 희미하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몸을 일으켜 북쪽으로 난 석창(石窓) 아래로 간 다음 살그머니 바깥을 넘겨다보았다. 그러자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작은 집 한 채가 보이면서 마흔 살이 좀 넘은 듯한 부인네 한 사람도 눈에 들어왔다. 또 색깔이 바랜 붉은 옷을 입고 커다란 은비녀를 꽂은 할미도 한 사람 있었는데, 그녀는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채 달빛 아래에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천이가 왜 이렇게 오래 나타나지 않을까요?”
부인의 푸념에 할미가 응수했다.
“올 때가 거진 되었어.”
“할머님께 무슨 원망하는 말이나 하지 않았어요?”
“그런 소리는 못 들었어. 그러나 기분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더구나.”
“이 계집애에게 너무 끌려가면 안 되겠어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일곱여덟 살가량의 아가씨가 걸어왔는데 세상에 둘도 없는 절세미인이었다. 할미가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이 없는 데서 그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더니. 우리 두 사람이 마침 너에 관해 얘기하던 참인데, 우리 귀여운 애기씨가 소리도 없이 살그머니 왔구먼. 다행히 네 욕을 안했으니 망정이지.”
이어서 할미는 또 이렇게 여자를 치켜세웠다.
“애기씨는 정말 그림 같은 미인이야. 만약 내가 남자라도 너 때문에 혼이 나갔을걸.”
그 말에 여자가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할머님, 그만 치켜올리세요. 누가 저 같은 사람을 좋다고나 한대요?”
부인과 여자가 또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영채신은 그들이 이웃집 사람들인 줄 알고 잠자리에 들면서 더 이상 엿듣는 일을 그만두었다. 다시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사방은 조용해지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가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누군가 방 안에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황급히 일어나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북쪽 집에 있었던 그 여자였다. 영채신이 당황하면서 무슨 짓이냐고 묻자, 여자가 웃으며 응수했다.
“달빛이 너무 좋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겠어요. 당신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싶네요.”
그 말에 영채신은 정색을 하면서 꾸짖었다.
“남들의 입길에 오르고 싶소? 나 또한 다른 이의 한가한 말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오. 자칫 한번 실수로 염치와 도리를 모두 잃어버리고 싶은 거요?”
“한밤중인데 누가 알겠어요?”
그러나 영채신은 다시 그녀를 꾸짖었다. 여자는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뭔가 할말이 있는 듯하였다. 영채신이 소리를 지르며, “어서 가시오. 그러지 않으면 고함을 질러 남쪽 방의 선비를 깨우겠소”라고 위협하자, 여자는 겁에 질려 그제야 물러갔다. 하지만 방문 밖으로 나갔다가 금방 되돌아오더니 황금 한 덩어리를 이불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영채신은 금덩이를 주워 정원 층계로 내던지며 말했다.
“의롭지 않은 재물로 내 호주머니를 더럽히려 들다니!”
여자는 부끄러워하면서 밖으로 나가더니 황금을 주워 들고 혼잣말을 했다.
“이 남자 심장은 쇠나 돌로 만들어졌나 봐.”
이튿날 아침, 시험에 참가하려던 난계현(蘭溪縣) 출신의 서생이 하인 한 명을 데리고 와 동쪽의 승방에 묵었다가 한밤중에 갑자기 죽어버렸다. 죽은 사람은 발바닥 한가운데에 송곳으로 찌른 듯한 작은 구멍이 나 있었는데, 거기서 피가 가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두들 그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 지나자 하인도 죽었는데, 증상이 그 주인과 똑같았다. 어둑해질 무렵 연생이 돌아왔기에 영채신이 그 일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귀신에 홀렸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영채신은 평소 성격이 굳세고 올곧았기 때문에 연생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한밤중이 되자 여자가 다시 영채신을 찾아와 말했다.
“저는 여러 사람을 겪어보았으나 당신만큼 심지가 굳은 이는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정말 성현처럼 인품이 훌륭하시기 때문에 제가 감히 속이거나 유혹할 수가 없군요. 저의 이름은 소천이고 성은 섭씨입니다. 열여덟 살로 요절하는 바람에 이 절 근처에 매장되었는데, 요물의 협박 때문에 이런 더러운 일을 하게 되었지요. 낯가죽을 두껍게 하고 사람을 유인하지만, 이는 실로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절 안에 죽일 만한 사람이 없으므로 야차가 와서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영채신이 그 말에 매우 놀라면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자, 여자가 말했다.
“연생과 한방을 쓰면 재앙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연생은 유혹하지 않는 거요?”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서 감히 접근할 수 없답니다.”
“어떤 방법으로 사람을 홀리시오?”
“저를 희롱하고 관계를 갖는 사람에게는 제가 몰래 송곳으로 발바닥을 찌릅니다. 그의 정신이 혼미해져 인사불성이 되면 그 틈에 피를 뽑아 요괴들에게 먹도록 하지요. 때론 황금으로도 유혹하는데 사실은 금덩이가 아니고 나찰(羅刹) 귀신의 뼈다귀여서 누구든지 그걸 갖게 되면 뼈다귀가 그 사람의 심장과 간을 도려낸답니다. 이 두 가지는 목표로 삼은 사람의 기호에 따라 그때그때 적당한 것으로 골라 사용하지요.”

중국의 4대기서는 모두들 알고 계시지요? 이는 명나라 때 출판된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를 일컫는데, 중국에서는 청나라 시절의 4대기서인 ‘요재지이’ ‘홍루몽’ ‘유림외사’ ‘금고기관’을 합쳐서 8대기서라고들 부릅니다.
다른 책들이 모두 장편소설이고 중국인의 구어체인 백화(白話)로 기술되어 있는 데 반해 ‘요재지이’만은 대단히 난삽하고 격조 있는 문언(文言)으로 씌어 있지요. 거기다 본문 곳곳에 시, 사(詞), 사부(辭賦), 변려문이나 팔고문으로 씌어진 의론문과 판결문, 구어와 속어가 어우러진 대화들이 삽입되어 있어 중국 언어예술의 최고봉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고의 지식인 문학으로 군림해 왔다는 말이지요.
이런 고급한 문체 때문에 읽기가 어렵다보니 중국에서도 원문을 그대로 읽는 경우는 전공자나 마니아들 말고는 드물고, 대부분 백화번역본으로 대신하거나 다른 장르의 예술로 변환된 이야기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덕분에 영화나 TV 드라마, 설창(說唱), 만화, 동화, 회화, 소설 등 거의 모든 예술 장르에서 이 책의 스토리는 끊임없이 응용되며 지금도 재생산되고 있지요.
이미 세상을 떠난 장국영과 너무나 늘씬했던 미녀 왕조현이 주연했던 영화 ‘천녀유혼’을 기억하시는지요?
그 영화의 원작이 이 책에 들어 있는 ‘섭소천’이란 이야기입니다. 원래는 비교적 단순한 단편소설인데 서극 감독이 거기에 살을 붙이고 변환을 가해 스펙터클한 판타지 영화로 탈바꿈시킨 것이지요.
앞으로 3회에 걸쳐 그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고졸한 맛의 원문이 어떤 상상과 기술의 힘으로 그 같은 영화로 바뀌었는지 비교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역주
학사안림(學使案臨):학사는 공부를 독려하는 사자. 학정(學政)을 감찰했기 때문에 ‘학정’이라고도 부른다. 과거 시대에는 중앙정부에서 각 성에 학정을 감찰하는 관리를 파견했고, 각 성의 학사는 3년의 임기 동안 관할 각 부(府)를 돌며 생원 시험을 보았는데,
이를 ‘안림’이라고 하였다.
<中>섭소천―천녀유혼 信義를 지켜라, 귀신도 보답하리니…
영채신이 뜻밖의 호의에 고마워하며 야차가 찾아올 때를 물었더니, 내일 밤이라는 대답이었다. 떠날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저는 죄악의 나락에 떨어진 이래 줄곧 구원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의협심은 하늘을 찌르니 저를 살 길로 이끌어 고해에서 구해 주실 수 있을 거예요. 만약 당신이 저의 뼈를 거둬다 조용한 곳에 묻어주신다면, 그 은혜는 제게 새 생명을 주시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영채신은 흔쾌히 허락하고 여자가 묻힌 곳을 물었다.

“무덤 곁에 백양나무가 있는데, 그 위에 까마귀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녀는 문 밖으로 나가더니 눈깜짝할 사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날 영채신은 연생(서생 연적하)이 다른 곳으로 나갈까 봐 새벽부터 쫓아가서 식사에 초대했다.

아침나절부터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조심스럽게 연생의 기색을 살펴가며 하룻밤 같이 지내주길 부탁했지만, 그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을 구실로 거절했다. 영채신은 그 말을 못들은 체하면서 억지로 자기의 침구를 날라 그의 방으로 옮겼다. 연생은 하는 수 없이 잠자리를 옮겨주면서 그에게 당부했다.

“저는 당신이 대장부임을 알고 그 인품을 매우 흠모해 왔습니다. 저에게 작은 걱정거리가 있는데 갑자기 말씀드리기는 어렵군요. 다만 보자기로 싼 상자를 몰래 열지만 마십시오. 만약 제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입니다.”

영채신은 공손하게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두 사람은 각자 잠자리에 들었고, 연생은 상자를 창틀 위에 올려두었다.

얼마 후 연생이 코 고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왔다. 하지만 영채신은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일 따름이었다. 일경(一更) 남짓 되었을 즈음,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잠시 후 그 시커먼 그림자는 창문 쪽으로 다가와 방안을 기웃거렸는데 그의 두 눈에서는 불꽃이 이글거렸다.

영채신이 공포에 떨면서 연생을 깨우려는 순간, 갑자기 어떤 물건이 흰 비단처럼 빛을 사방으로 뿌리면서 상자를 뚫고 날아갔다. 빛살은 창문의 돌 창살을 베어버리고 맹렬하게 앞으로 뻗어나갔다가 곧바로 되돌아와 상자 속으로 번갯불처럼 들어가 버렸다.

연생이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지만, 영채신은 짐짓 잠든 척 가장하고 몰래 그를 지켜보았다. 상자를 받들고 점검하던 연생은 안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 달빛에 비추며 냄새도 맡아보고 이리저리 둘러보기도 하였다.

물건에서는 해맑은 흰 빛이 형형히 뻗쳐 나왔는데, 길이는 두 치쯤 되고 지름이 부추 잎사귀만 하였다. 이윽고 연생은 그것을 몇 겹으로 단단히 싸더니 원래대로 부서진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늙은 요물이기에 이다지도 대담할까? 여기까지 침입하여 내 상자를 다 부숴뜨리다니.”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영채신은 너무나 놀랍고 신기하여 몸을 일으킨 뒤 연생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아울러 그 광경을 모두 보았다고 고백하니, 연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이미 친구가 되었으니 무엇을 더 숨기겠습니까? 나는 검객입니다. 방금도 창문의 돌 창살만 아니었다면 요물은 반드시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겁니다. 비록 죽이지는 못했지만 상처는 입혔어요.”

“상자 안에 든 것은 무엇입니까?”

“칼입니다. 방금 전 냄새를 맡아보니 요기(妖氣)가 묻어나더군요.”

영채신이 한번 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물건을 꺼냈는데, 원래는 날이 새파랗게 선 조그만 칼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영채신은 연생을 더욱 미더워하게 되었다.

다음날 창문 바깥쪽을 살펴보니, 땅에는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영채신이 절의 북쪽으로 나가자 보이는 것이라곤 총총히 겹쳐 있는 황량한 무덤들뿐이었다. 그곳에는 과연 꼭대기에 새들이 둥지를 튼 백양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영채신은 볼일을 다 마치자 행장을 꾸리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연생은 술상을 차려 영채신을 대접하면서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했고, 또 찢어진 가죽 주머니를 선물로 주며 말했다.

“이것은 칼을 담았던 자루입니다. 잘 보관하면 악귀나 귀신을 물리칠 수 있지요.”

영채신이 그에게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연생은 이런 말로 도리질쳤다.

“당신처럼 신의가 있고 강직한 사람은 검술을 배우셔도 되지요. 그러나 당신은 부귀영화를 누릴 분이지 우리와 같은 일에 종사할 부류는 아닙니다.”

이리하여 영채신은 누이동생을 이 땅에 매장했다고 둘러대고 무덤에서 여자의 유골을 파내 옷과 보자기로 잘 싸서 묶은 다음 배를 빌려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영채신의 서재는 들판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서재 밖의 들판에 봉분을 만들어 섭소천의 유골을 장사지낸 뒤 제사를 지내며 축원했다.

“그대의 외로운 처지가 가여워 내 협소한 거처 부근에 장사 지냈소. 노랫소리나 울음소리가 서로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라오. 바라건대 다시는 흉악한 귀신에게 능욕당하지 마시오. 한잔 박주만 올릴 뿐 맛있는 음식은 차리지 못했지만, 이를 탓하지는 말기 바라오.”

그는 기도를 마치고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뒤편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요. 저랑 같이 가요!”

돌아보니 소천이었다. 그녀는 기쁨에 겨워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며 말했다.

“당신의 신의는 제가 당신을 위해 열 번 죽어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청컨대 당신과 함께 돌아가는 것을 허락해 주세요. 부모님을 뵙고 나서 당신의 첩이 될 수만 있다면 아무런 여한이 없겠어요.”

영채신은 그녀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흰 살결에는 발그레한 홍조가 노을처럼 빛나고 있었고, 발은 흡사 죽순처럼 뾰족하고 가늘었다. 환한 대낮에 보니까 더욱 아름다운 미인이었으므로 영채신은 그녀를 데리고 일단 서재로 돌아왔다.

그는 소천에게 잠시 앉아서 기다려 달라 당부하고는 우선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영채신의 처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중이었으므로 어머니는 이 일을 처에게 이야기하여 그녀를 놀라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소천은 벌써 사뿐히 방안에 들어와 날아갈 듯 절을 올리고 있었다. 영채신이 말했다.

“이 사람이 소천입니다.”

어머니는 놀라 허둥지둥하며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는데, 소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홀몸으로 떠도는 처지로서 부모형제와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만, 요행히 영 공자의 보살핌을 입어 그 은혜가 제 온몸에 미쳤습니다. 원컨대 그분의 시중을 들면서 하늘 같은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더니 비로소 말문을 뗐다.

“아가씨가 그토록 내 아들을 생각해 주니 나야 기쁘기 그지없구려. 하지만 내 한평생 아들이라곤 다만 이 애 하나뿐인데, 대를 이어야 할 아이에게 귀신과 결혼하라고 할 수는 없소.”

그러자 소천이 얼른 말을 받았다.

“저는 정말로 딴마음은 없어요. 제가 저승 사람이라 어머님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오라버니로 섬기는 것은 어떠할지요? 어머님 곁에서 아침저녁으로 시중을 드는 것이야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그녀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동정하여 그러라고 허락했다. 소천은 즉시 영채신의 처에게 인사하러 가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병자를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만류하자 단념하고 말았다.

 

<下>섭소천-천녀유혼 귀신과의 사랑…'해피엔딩'으로
소천은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대신해 요리를 하고 마치 오래전부터 그 집에 살아왔던 사람처럼 안팎을 들락날락했다. 그러는 사이 날이 저물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그녀를 무서워하여 무덤으로 돌아가 자라고 권고하면서 침대와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소천은 어머니의 속내를 알아차리자 곧바로 물러나왔다.

영채신의 서재를 지날 때 그녀는 방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다시 물러서곤 하며 뭔가 무서운 일이나 있는 것처럼 문 밖에서만 뱅뱅 맴을 돌았다. 영채신이 소천을 보고 들어오라고 불렀더니 그녀는 “방안에 서린 칼의 기운이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군요. 지난번 여행 중에 모습을 드러내어 당신을 뵙지 못한 것도 사실은 이 때문입니다”하고 말했다. 영채신은 그것이 가죽 주머니 때문임을 알고 떼어서 다른 방으로 옮겨 걸었다.

소천은 그제야 방안으로 들어와 등잔불 앞에 앉더니 한동안 아무 말도 않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밤에 글을 읽으십니까? 저는 어렸을 때 ‘능엄경(楞嚴經)’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거지반 잊어먹고 말았어요. 부탁드리건대 한 권만 구해 주시면 저녁에 틈나는 대로 오라버님께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영채신은 그러라고 허락했다. 그녀는 여전히 침묵을 지킨 채 앉아 있으면서 한밤중이 될 때까지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영채신이 그만 떠나라고 재촉했더니, 그녀는 서글픈 표정이 되어 말했다.

“저는 타향에 떨어진 고혼(孤魂)인지라 황량한 무덤으로 돌아가기가 무서워서 그래요.”

“서재 안에 다른 사람이 잘 수 있는 침상이 없네. 게다가 오라비와 누이동생 사이라면 서로 미심쩍은 짓은 삼가야 하지 않겠나?”

영채신의 따끔한 말에 소천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양미간에 수심이 어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그녀는 무거운 다리를 끌며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천천히 문 밖에 나서더니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영채신은 그녀가 불쌍해서 집안에 따로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어머니의 꾸지람이 두렵기도 하였다.

소천은 매일 새벽 어머니께 문안을 드리고 대야에 세숫물을 받아 시중을 든 뒤 다른 방으로 물러가 집안일을 했는데, 어느 하나 어머니의 뜻에 거슬리는 것이 없었다.

황혼 무렵이 되면 그녀는 언제나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와 서재로 왔다. 그리고 등불을 밝히고 불경을 읽다가 영채신이 잠자리에 들려는 기색을 보이면 참담한 모습이 되어 물러가곤 하였다.

소천이 오기 전에는 영채신의 아내가 오랜 병으로 누워 있는 바람에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소천이 온 뒤부터 신세가 매우 편해졌으므로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몹시 기꺼워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녀에게 익숙해지다 보니 소천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게 되었고, 드디어는 그녀가 귀신이란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저녁에 그녀를 혼자 떠나가게 할 수가 없어 마침내는 자기와 한방에서 기거하게 하였다. 소천은 막 왔을 당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반년쯤 지나자 차츰 묽게 쑨 죽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모두 소천을 사랑하여 그녀가 귀신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영채신의 아내가 죽었다. 어머니는 소천을 며느리로 들일 마음이 있었지만 아들에게 이롭지 않을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소천은 어머니의 염려를 눈치 채고 틈을 보아 이렇게 아뢰었다.

“일년이 넘는 세월을 모셔왔으니 응당 저의 사람됨을 아실 것입니다. 무고한 나그네들을 해치고 싶지 않았던 까닭에 아드님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저에게 딴 생각은 없어요. 다만 영 공자께서 광명정대하시니 하늘과 사람의 흠모를 한몸에 받으실 것이므로 저는 그저 그분을 돕고 또 의탁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몇 년 뒤 제가 그 덕택에 봉고(封誥, 역주)를 받게 된다면 저승에서도 영광스럽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도 소천에게 무슨 악의가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손을 두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소천이 말했다.

“자녀는 오직 하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적은 장부에 아드님에게는 가문과 조상을 빛낼 아들이 셋이나 된다고 씌어 있으니, 귀신을 처로 삼았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말을 믿고 아들과 상의했다. 영채신은 매우 기뻐하면서 잔칫상을 차려놓고 친척들을 초대한 다음 그들에게 결혼을 알렸다. 어떤 사람이 신부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소천은 대담하게도 화려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천을 쳐다보았는데, 그녀를 귀신이라고 의심하는 게 아니라 선녀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멀고 가까운 곳을 막론하여 여러 친척들은 다들 예물을 보내와 축하 인사를 하면서 다투어 소천과 사귀려고 하였다. 소천은 난초와 매화를 잘 그려 매번 한 폭씩 답례로 선물했는데, 그림을 얻은 사람은 모두 보물처럼 간수하면서 영광으로 생각했다.

하루는 소천이 창문 앞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마치 뭔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답답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문득 영채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죽 주머니가 어디 있죠?”

“당신이 무서워하기에 잘 싸서 다른 곳에 감춰두었소.”

“저는 산 사람의 기운을 오랫동안 받아왔기 때문에 더 이상 그것이 무섭지 않아요. 꺼내다 침대맡에 걸어놓는 것이 좋겠어요.”

영채신이 무슨 말이냐고 이유를 캐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요 며칠 동안 줄곧 무섭고 불안하기만 할 뿐 마음속이 편치 않아요. 추측건대 금화(金華)의 요물이 제가 멀리 도망친 것을 원망하여 조만간 이곳으로 찾아올 것 같습니다.”

영채신이 가죽 주머니를 갖고 오자, 소천은 요모조모 자세히 뜯어본 다음 입을 열었다.

“이것은 검선(劍仙)이 사람 머리를 담았던 주머니예요. 이 정도로 해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알 수가 없군요. 지금 보아도 저는 오싹하고 소름이 끼치네요.”

그녀는 즉시 가죽 주머니를 침대 옆에 건사했고 다음날에는 영채신더러 다시 방문 앞으로 옮겨 걸라고 지시했다.

그날 밤 소천은 등불을 마주하고 앉아서 영채신에게 잠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별안간 어떤 물체가 공중에서 새처럼 떨어져 내리자, 소천은 놀라며 휘장 안으로 몸을 숨겼다. 영채신이 쳐다보니, 그 물체는 야차처럼 번들거리는 눈깔에 피처럼 새빨간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놈은 불꽃을 이글이글 내뿜고 이빨과 발톱을 휘두르면서 앞으로 돌진해 왔다. 방문 앞에 이르자 놈은 뒷걸음질치며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가죽 주머니로 다가서더니 마치 잡아채 찢기라도 할 것처럼 손톱을 앞으로 뻗었다. 주머니는 갑자기 ‘쨍’ 소리를 내면서 광주리 두 개만 한 크기로 커졌다. 어리어리하는 사이 갑자기 어떤 귀신이 그 안에서 상반신을 내밀더니 야차를 잡아채서 주머니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지더니 주머니 또한 원래의 크기로 오므라들었다. 영채신은 몹시 무서우면서도 신기했다. 소천도 밖으로 나와서는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재난은 없을 거예요!”

둘이 함께 주머니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맑은 물 몇 되가 고여 있을 뿐이었다.

몇 년이 지난 뒤 영채신은 과연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 소천은 아들 하나를 낳았고, 영채신이 첩을 들인 뒤 그녀와 첩이 각기 하나씩을 더 낳았다. 세 아들은 모두 벼슬을 했고 명성도 높았다고 한다.

 

■역주

봉고(封誥)=명·청의 제도상으로 일품에서 오품까지의 관리가 황제의 고명(誥命)을 받는 것을 ‘봉고’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남편이 벼슬길에 올라 아내가 받게 되는 고명을 말한다.

 

사인(蛇人)―뱀 이야기 뱀 보다도 못한 인간들에게 '경종'
동군(東郡)에 사는 아무개는 뱀재주를 부려 먹고사는 땅꾼이었다. 그는 일찍이 두 마리의 뱀을 공들여 키웠는데 둘 다 껍질이 푸른 빛깔이어서 큰 놈은 대청(大靑), 작은 놈은 이청(二靑)이라고 불렀다. 이청의 대가리에는 붉은 반점이 찍혀 있었는데 유난히 영리하고 길이 잘 들어 똬리를 틀거나 회전 묘기를 부릴 때 한번도 만족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청에 대한 땅꾼의 사랑도 남달라 다른 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일년이 지난 뒤 대청이 죽었다. 땅꾼은 다른 뱀으로 대청의 빈 자리를 메우고 싶었지만 도무지 물색하러 다닐 겨를이 나지 않았다.

하루는 땅꾼이 어느 산사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날이 밝은 뒤 그가 대나무 궤짝을 열었더니 이청의 자취가 별안간 묘연했다.

땅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도처로 행방을 찾아다녔지만 어디서도 이청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깊은 산이나 우거진 수풀에 다다르면 언제나 이청을 풀어주고 맘대로 뛰놀게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되돌아왔던 기억이 났다. 이 때문에 땅꾼은 이청이 저절로 돌아올 거란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앉은자리에서 내처 이청을 기다렸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높이 떠올랐지만 이청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절망했고 쓰라린 심정으로 갈 길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 문을 나서서 몇 발짝 걸어갔을 무렵, 그의 귀에 우거진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쉬익쉭’ 들려왔다. 놀라 발길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더니 바로 이청이 돌아오는 소리였다. 땅꾼은 엄청난 보배를 얻은 것처럼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가 길가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자 뱀도 따라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데 이청의 뒤편을 바라보니 웬 작은 뱀 한 마리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땅꾼은 이청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는 네가 아주 가버린 줄 알았다. 이제 보니 요런 꼬마 동무를 추천하려 했던 것이냐?”

말하는 사이 그는 사료를 꺼내 이청에게 먹이면서 아울러 꼬마 뱀에게도 똑같이 나눠 주었다. 꼬마 뱀은 비록 물러서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널름 받아먹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몸뚱이를 움츠리는 것이 감히 엄두가 안 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청은 먹이를 물더니 흡사 주인이 손님에게 음식을 권하듯 제가 직접 꼬마 뱀의 아가리에 물려주었다. 땅꾼이 다시 사료를 건넸더니 그때부터는 꼬마 뱀도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식사가 다 끝난 뒤에는 꼬마 뱀도 이청을 따라 땅꾼의 궤짝 안으로 들어갔다. 땅꾼은 꼬마 뱀도 짊어지고 다니면서 교육했는데 똬리를 틀고 몸통을 비트는 모든 동작이 법도에 제대로 들어맞아 이청의 수준과 거의 맞먹을 정도였다.

이리하여 꼬마 뱀은 이름도 소청(小靑)이라 불리게 되었다. 땅꾼은 사방을 돌며 재주를 부렸고 이 두 뱀 덕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돈을 전대에 챙겨 넣었다.

일반적으로 땅꾼이 뱀재주를 부릴 때는 뱀 길이가 두 자를 넘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너무 자라면 무게가 초과해서 몸놀림이 쉽지 않게 되므로 다른 뱀으로 바꿔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청만은 워낙 길이 잘 들어 땅꾼도 그를 쉽게 내버릴 수 없었다. 다시 이삼 년이 지나는 사이, 이청은 석 자가 넘도록 자라났다. 놈이 궤짝에 들어서면 안이 꽉 차 다른 공간이 없을 정도였으므로 땅꾼도 마침내는 놈을 내다버릴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땅꾼은 치천에 있는 동산(東山)에 올라 맛난 먹이를 이청에게 먹이고 아울러 축복의 말을 건네며 놈을 풀어주었다. 이청은 움직이는 듯하더니 잠시 뒤 다시 기어와 궤짝 바깥에 똬리를 틀었다. 땅꾼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소리쳤다.

“가거라! 세상 어디에도 백년 동안 줄곧 열리는 잔치는 없단다. 이제부터는 깊은 산골짝에 몸을 숨겼다가 앞으로 꼭 신룡(神龍)이 되어야지. 궤짝 안이 어찌 오랜 세월 버틸 만한 곳이겠니?”

뱀은 그제야 떠나갔고 땅꾼은 눈길로 그를 전송했다. 하지만 얼마 뒤 뱀은 다시 돌아와 아무리 손을 내저어도 떠나지 않고 대가리로 자꾸만 궤짝을 들이받았다. 소청도 안에서 가만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꿈틀거렸다. 땅꾼은 그제야 이청의 뜻을 깨달았다.

“소청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는 것이냐?”

그가 궤짝을 열자 소청이 재빨리 기어나왔다. 두 마리의 뱀은 서로 대가리를 휘어감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품이 이별의 말을 전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두 마리는 꿈틀거리며 어디론가 기어갔다. 땅꾼은 소청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놈은 얼마 뒤 유유자적한 표정으로 혼자 기어오더니 곧장 궤짝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 땅꾼은 사방을 헤맸지만 소청의 짝으로 적당한 놈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나중에 그는 한 마리를 구해 제법 열심히 훈련을 시켰다. 하지만 그 뱀은 끝내 소청처럼 영리하지는 못했다. 어느덧 소청도 어린아이의 팔뚝만큼이나 몸통이 굵어지고 있었다.

이에 앞서 산속으로 들어간 이청은 자주 나무꾼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다시 몇 년이 지나는 사이 이청은 길이가 몇 자나 되도록 자라났고 몸통도 사발만하게 굵어졌다. 그는 차츰 오가는 행인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로 말미암아 오가는 여행객들은 서로에게 주의를 주면서 이청이 출몰하는 길에는 감히 나다니지 않게 되었다.

하루는 땅꾼이 그 장소를 지나는데 갑자기 어떤 뱀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땅꾼이 기겁을 하고 달아나자 뱀은 더욱 맹렬한 기세로 추격해 왔다. 땅꾼이 고개를 돌렸더니, 뱀은 벌써 그가 있는 장소 근처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문득 뱀의 대가리를 바라보니 붉은 점이 선명했으므로 땅꾼은 그제야 놈이 이청임을 깨닫고 어깻짐을 내려놓으면서 소리쳤다.

“이청아, 이청아!”

뱀은 순간 추격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한참이나 땅꾼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예전에 묘기 부리던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몸뚱이를 땅꾼의 몸에 휘감으며 올라왔다. 땅꾼은 뱀에게 악의가 없는 줄 알았지만 놈의 몸통이 너무나 굵어져 그 재롱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그는 땅바닥에 엎어지며 뱀에게 사정했고 이청도 그제야 옛 주인을 풀어주었다. 놈이 또 대가리를 궤짝에 쿡쿡 쥐어박았으므로 땅꾼도 그의 뜻을 깨닫고 뚜껑을 열어 소청을 꺼내주었다. 두 마리의 뱀은 오랜만의 상봉이 반가운 듯 서로를 엿가락처럼 휘어감고 한참을 비빈 다음에야 각자에게서 떨어졌다. 땅꾼이 소청에게 부탁의 말을 전했다.

“오랫동안 너와 헤어지려고 생각했더랬는데 오늘에야 네가 짝을 만났구나.”

그는 또 이청에게도 당부했다.

“본디 네가 인도해 왔으니 네가 다시 소청을 데려가거라. 그리고 또 한 가지 부탁의 말이 있다. 깊은 산속이라도 먹고 마실 것이 부족하지는 않을 터, 부디 오가는 행인들을 괴롭히지 말아라. 그래야 하늘의 벌을 면할 수 있지 않겠니?”

두 마리의 뱀은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땅꾼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신속히 몸을 움직여 그 자리를 떠났는데 큰 놈이 앞장서고 작은 놈은 뒤따르는 식이었다. 그들이 지난 자리에는 초목들이 넘어져 새로운 길이 생겨났다. 땅꾼은 뱀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동안 그 자리에 선 채로 지켜보았다. 그때부터 연도에는 다시 예전처럼 행인이 오가게 되었고 두 마리의 뱀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뱀이란 천성이 아둔한 미물일 따름인데 옛 친구에 대해 그토록 애틋한 정을 품기도 하는구나. 게다가 기둥을 휘어감듯 사람의 권고까지도 잘 따르다니, 그저 신통할 뿐이다. 유독 사람 탈을 뒤집어쓴 것들만 행동이며 처신이 괴이하기 이를 데 없다.

10년을 깊이 사귄 친구요, 몇대에 걸쳐 은혜를 입은 주인일지라도 일단 이해관계가 상충하면 우물에 밀어넣고 돌멩이를 던져 넣는 것이 사람이란 치들이다. 또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서로 간에 충고는 고사하고 얼굴을 붉히며 원수가 되기 일쑤이니, 이런 자들은 뱀들 보기에도 부끄러울 따름이리라.

■해설

오늘은 실재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은 땅꾼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뱀의 고기가 아닌 뱀 묘기를 팔아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인간 중에서도 가장 천한 땅꾼과 미물인 뱀과의 우정을 통해 우리가 평소 잊고 사는 가장 고귀한 미덕을 일깨우고 있지요. ‘요재지이’의 저자 포송령(蒲松齡)은 자기 주변의 사소한 이야기들도 능숙하게 형상화할 줄 아는 이였습니다. 그는 당시 민초들의 삶을 증언하는 재미있는 일화나 야사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는데, 이는 명말청초의 사회상을 추론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미국의 역사가 조너선 스펜스는 국내에도 저술 대부분이 번역됐을 정도로 알려진 학자지요. 그가 쓴 책으로 국내에도 두 번 정도 출판된 ‘왕여인의 죽음’이 있습니다. 산동성 벽촌의 이름 없는 여인 왕씨의 억울한 죽음을 밝힌 이 책에는 ‘요재지이’의 많은 고사들이 삽화처럼 녹아들어 서술을 탄탄히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요. ‘왕여인의 죽음’이 역사책이면서도 소설처럼 속도감 있게 읽히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역시 민간에 유전되던 일화일 것이지만, 저자는 한갓 미물과 사람 사이에 오간 신의, 미물 사이에도 존재하는 우정을 보고 뱀보다도 모자란 인간을 이야기하려 듭니다.

특히 말미에 실린 논찬이 의미심장하지요. 당나라의 문호 한유(韓愈)는 벗이었던 유종원(柳宗元)의 묘지명(墓地銘)에서 세상 인심을 이렇게 개탄한 적이 있습니다. “일단 작은 이해관계라도 걸리면 머리카락처럼 사소한 경우라도 외면하고 모르는 척한다. 함정에 떨어져도 손 한번 잡아주지 않으며 반대로 밀쳐넣고 또 돌까지 던지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포송령은 이 구절을 떠올리며 차라리 뱀이 인간보다 낫다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性에 관한 이야기들  음란한 인간들아, '과유불급'이라
1. 복호(伏狐)―여우 퇴치, 여우 퇴치법은 감당치 못할 정력?

어떤 태사가 여우에 홀려 병이 들면서 몸이 수척해졌다. 도사에게서 부적을 얻어다 붙이기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등 온갖 수단을 다했지만 그래도 여우가 물러가지 않자, 그는 결국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여우로 인한 수난에서 벗어나길 희망했다. 태사가 길을 떠나자 여우도 그를 따라왔다. 태사는 엄청나게 무서웠지만 여우에게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하루는 그가 탁주에서 여장을 풀게 됐다. 그가 묵고 있는 여관 밖을 지나가던 의원이 요령을 흔들어 손님을 끌며 자신이 여우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소개했다. 태사는 그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의원이 준 약은 바로 방사를 할 때 먹는 최음제였다. 의원은 그를 재촉하여 약을 먹게 한 다음 방 안으로 들어가 여우와 교접하게 했는데, 태사의 정력은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여우는 놀라고 당황하여 몸을 움츠리면서 제발 그만해 달라고 사정했다. 태사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더욱 용맹스럽게 돌진했다. 여우는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 보려고 애를 썼지만 도대체 몸을 뺄 수가 없었다. 한참 뒤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조용하기에 살펴보니 여우는 제 본색으로 돌아온 채 죽어 있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예전에 나와 동향이었던 아무개 서생은 평소 양물이 큰 것으로 유명했는데, 자기 평생 한번도 흡족한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사방에 인가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외진 여관에 묵게 되었다. 문득 한 여자가 나타나더니 문도 열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방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서생은 그녀가 여우임을 짐작했지만 그래도 기쁘게 맞아들여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바지끈을 풀자마자 그는 바쁘게 진격해 들어갔다. 여우는 놀랍고 아파서 ‘깨갱’ 하고 우는 소리를 내더니, 매가 사냥감을 덮치듯 느닷없이 창문을 뚫고 달아났다. 서생은 여우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계속 창 밖을 내다보며 달콤하고 느끼하게 교성을 질렀다. 하지만 여우는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 서생은 정말 여우 퇴치의 맹장이로다! ‘여우를 물리쳐 드립니다’라는 방문을 내걸고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을 성싶다.

 

2. 약승(藥僧)―욕심이 지나쳐서, 작다고 불평마라, 계속 커진다면…

제녕(濟寧)의 아무개가 우연히 교외의 절간 밖을 지나다가 유랑승이 해바라기를 하며 이를 잡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지팡이에 매달린 호로병으로 보아 흡사 약장수 같기도 했으므로 그는 농담처럼 질문을 던졌다.

“스님도 양기를 북돋는 방중단(房中丹) 같은 약을 파십니까?”

“있고 말고요. 정력이 달리는 사람은 힘이 좋아지고 음경이 작은 사람은 커지게 하는 약이 있습니다. 먹기만 하면 당장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밤새워 기다릴 필요도 없지요.”

아무개는 몹시 기뻐하며 그 약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중은 가사 자락을 헤치고 좁쌀만한 크기의 환약 한 알을 꺼내더니 그에게 삼키라고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아무개가 자신의 음경을 만져보니 예전보다 삼분의 일 정도가 커져 있었다. 그래도 흡족하지 않았던 그는 중이 오줌 누러 자리를 비킨 틈을 타 가사 자락을 헤치고 두세 알을 움켜쥔 뒤 한꺼번에 그것을 삼켜버렸다.

잠시 뒤부터 음경의 피부가 찢어질 듯 부풀어오르면서 근육이 뿌리째 뽑히는 듯한 통증이 왔다. 목이 움츠러들고 허리가 낙타처럼 굽어졌지만 음경은 멈추지 않고 자꾸만 커졌다. 아무개는 공포심에 부들부들 떨었지만 스스로는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이윽고 중이 돌아와 그의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당신, 내 약을 훔쳐먹은 게 틀림없구려!”

그가 다급하게 환약 한 알을 꺼내 아무개에게 먹이자 음경의 팽창은 비로소 멈췄다.

아무개가 옷자락을 헤치고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니 그곳은 두 허벅지와 굵기가 똑같아져 흡사 세발솥 같은 형국이었다. 그는 모가지를 잔뜩 움츠린 채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부모조차 자식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그의 모습은 벌써 달라져 있었다. 이로부터 아무개는 폐인이 돼 날마다 길가에 드러누운 채 시간을 보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희한한 꼴을 구경하며 지나쳐 갔다.

 

3. 호징음(狐懲淫)―음란을 징계한 여우, 침대 밑 최음제는 귀신도 미워한다

아무개가 새 집을 샀는데 여우가 들끓는 바람에 고민이었다. 옷가지며 물건들을 어지럽히기는 예사였고 때로는 흙가루를 먹는 음식에 뿌려놓기도 하였다. 하루는 친구가 찾아왔는데 때마침 아무개는 출타 중이었다. 날이 저물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처는 맛있는 음식을 차려내 손님을 대접했다. 손님이 밥상을 물린 뒤 처는 계집종과 더불어 손님이 남긴 음식을 나눠 먹었다. 아무개는 평소 행동이 그다지 단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여우는 그가 간직해 둔 최음약을 언제인지 모르게 처가 먹을 죽그릇에 섞어 버렸다.

부인이 식사를 하는데 음식 안에서 장뇌(樟腦)와 사향(麝香) 냄새가 났다. 계집종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그녀는 모르겠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부인은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잠시도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참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열이 오르고 조갈증은 더해만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 안에 남정네라곤 아까녘에 온 손님뿐이었으므로 그녀는 방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손님이 누구냐고 묻자, 부인은 자신을 밝혔다. 손님은 또 용건을 물었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님은 마침내 그녀를 매섭게 물리쳤다.

“나와 당신 남편은 도덕과 의리로 맺어진 친구입니다. 나더러 그런 짐승 같은 짓거리를 하라니, 절대 그럴 수 없소이다.”

부인이 그래도 머뭇거리며 자리를 떠나지 않자, 손님은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내 친구의 학문과 덕행이 네년 때문에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구나!”

그는 창문 너머로 그녀에게 침을 뱉었다. 부인은 너무나 부끄러워 비로소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문득 죽그릇에서 풍겨 나오던 이상한 냄새가 머리에 떠올라 ‘ 혹시 최음제는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싸둔 최음약 봉지를 찾아보니 과연 탁자 위며 그릇 속에 약가루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녀는 냉수가 이 약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으므로 얼른 물을 떠다 마셨다. 순식간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경이었다. 침대 위에서 오랫동안 뒤척이던 그녀는 점차 밝아오는 하늘을 보자 환한 낮에 다른 사람 얼굴 대할 일이 더욱 걱정됐다. 마침내 그녀는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맸다.

계집종이 발견하고 끌어내렸을 때는 숨이 거의 끊어져 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침나절이 돼서야 겨우 약간 기척을 할 정도가 됐다. 손님은 밤 사이에 슬쩍 돌아가 버리고 없었다. 아무개는 저녁나절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가 자리에 누운 처를 보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부인은 아무 말도 않고 그저 눈물만 머금을 뿐이었다. 계집종이 마님께서 목을 매달았다고 보고하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처에게 이유를 추궁했다. 처는 계집종을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사실을 고백했다. 이야기를 들은 아무개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다 내 음탕함에 대한 징벌이니 당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소? 다행히도 올바른 친구를 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후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었을꼬!”

그는 이때부터 과거의 좋지 못한 행실을 완전히 고쳤고 여우의 장난도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사씨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집 안에 독약을 감춰두지 말라고 서로 타이르지만 최음약에 대해선 말이 없으니, 이는 흡사 무기를 두려워하면서도 침대 밑에 그것을 숨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최음제가 비상보다 무서운 것을 그들이 어찌 알꼬! 최음제를 숨겨 처첩하고만 놀아나도 귀신의 미움을 사게 되거늘, 방탕한 인간들의 음란한 행위야 약을 감춰두는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 않을까.

■해설

오늘은 성(性)에 관한 짧은 이야기 세 편입니다. 인의(仁義)를 절대명제로 내세운 맹자조차 고자(告子)의 입을 빌려 “식욕과 성욕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다”(食色, 性也)라고 하며 이를 긍정했지요.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그래서 공자는 또 그렇게 중용(中庸)을 강조하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외쳤나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마지막 편에 실린 이사씨(異史氏)의 논찬이 사뭇 각별합니다. 여기서 이사씨는 저자 포송령(蒲松齡)이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중국 역사서를 보면 객관적 서술을 마친 뒤 저자의 논평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지요. 예컨대 ‘좌전(左傳)’은 “군자 가라사대(君子曰)”, ‘사기’는 “태사공 가라사대(太史公曰)” 하는 식으로 허두를 떼고 역사가 자신의 해설이나 평가를 덧붙이는 것이지요. 이는 역사가 단순히 사실의 기록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그들 나름의 역사적 전통에서 기인한 서술 방식인데, 공자가 ‘춘추(春秋)’를 편찬할 때 포폄(褒貶)을 강조하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을 성립시킨 데서부터 비롯됐습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지요. 역사가의 본질적 역할이란 정확한 사건 서술보다 역사적 사실의 해석에 있음을 공자는 남 먼저 실천했고 후대 역사가들은 그 취지를 충실히 계승했던 것입니다. 이런 형식은 훗날 소설에서도 차용돼 허구를 마치 실제처럼 강조한다거나 고사(故事)에 대해 논평을 가하는 데 이용되곤 했습니다. ‘이사씨왈’도 바로 그런 경우이지요. 식구들 몰래 집안에 에로 비디오나 최음제를 숨겨놓은 분들, 부디 포송령의 논평을 읽고 자신의 행위를 한번 반추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上>협녀(俠女) "그 아가씨 예쁘긴 한데 예사롭지가…”
고생(顧生)은 금릉(金陵·지금의 南京) 사람이다. 그는 다방면으로 재능이 있었지만 집안이 몹시 가난했다. 게다가 어머니마저 연로했기 때문에 차마 그 슬하를 떠날 수가 없어 날마다 사람들에게 글씨와 그림을 그려주고 약간의 푼돈을 사례비로 받아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러다 보니 고생은 나이가 스물다섯이나 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집 맞은편에는 본래부터 빈집이 한 채 있었다. 언제부턴가 노파 한 사람과 젊은 여자 한 명이 그곳에 세들어 살기 시작했지만 여자들만 살고 남자가 없는 까닭에 고생은 그 집안 형편에 대해 물어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는 고생이 밖에서 집으로 들어오다가 우연히 어떤 아가씨가 어머니 방에서 나오는 광경을 목도했다. 나이는 대략 열일곱여덟 살쯤 되었는데, 수려하고 아담한 자태가 세상에 드문 미인이었다. 그녀는 고생과 마주쳤어도 별로 피하는 기색이 아니었으나 분위기만큼은 매우 단정했다. 안으로 들어간 고생이 어머니께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애는 맞은편 집 아가씨인데 나한테 가위와 자를 빌리러 왔다. 조금 아까 말로는 자기 집에도 홀어머니만 계시다고 하더구나. 이 아가씨는 가난한 집 자식 같지가 않더라. 왜 아직까지 출가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늙어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내일 가서 그 어머니를 만나보고 한번 넌지시 뜻을 비쳐 봐야겠다. 만약 그들의 요구가 지나치게 높지만 않다면, 네가 아가씨 대신 그 어머니를 봉양할 수도 있지 않겠니?”

하는 대답이었다. 다음날 고생의 어머니는 아가씨 집으로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그녀 어머니는 귀머거리 노파였다. 집안을 들여다보니 이틀거리 양식조차 없는 가난한 살림이었다. 무엇을 해서 먹고사는가 했더니 아가씨가 삯바느질을 한다는 것이었다. 고생의 어머니가 빙빙 에둘러서 두 집안 살림을 합치면 어떻겠느냐는 의사를 비쳤더니, 노파는 받아들일 듯한 기색으로 돌아앉아 딸과 상의했다. 아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만은 매우 불쾌한 기색이었다. 고생의 어머니는 하릴없이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가씨의 표정을 자세히 분석하면서 뭔가 알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가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하다고 꺼려서일까? 사람됨이 말수도 적고 웃음도 없더라. 예쁘기는 복사꽃이나 배꽃과 같다만 서릿발처럼 차갑기만 하니, 정말로 이상한 아이야!”

두 모자는 미심쩍어하면서 한바탕 탄식하다가 없었던 일처럼 치부하기로 하였다. 하루는 고생이 서재의 창가에 앉아 있는데, 어떤 소년이 찾아와서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소년의 생김새는 대단히 아름다웠지만 기색은 자못 경망스러웠다. 고생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이웃 마을에 살아요.”

하는 대답이었다. 그 후부터 소년은 이삼일마다 한번씩 찾아왔다. 차츰 친숙해져 서로 농담도 하고 놀려먹는 사이가 되었는데, 고생이 품에 안고 애무를 해도 소년은 그다지 반항하지 않았다. 그러다 둘은 마침내 사통하기에 이르렀고, 그로부터 더욱 친밀하게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한번은 이웃집 여자가 건너왔는데, 소년이 눈길을 보내며 고생에게 그녀가 누구냐고 물었다.

“이웃집에 사는 아가씨야.”

고생의 대답에 소년이 토를 달았다.

“저렇듯 아름다운 여자가 표정은 왜 그리 무섭지요?”

잠시 후 고생이 안채로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말했다.

“방금 그 아가씨가 오더니 쌀을 좀 꾸어달라고 하면서 밥을 지은 지가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고 말하더라. 이 아가씨는 지극한 효녀인데 그토록 가난하다니 얼마나 불쌍하니? 우리가 약간이나마 도와줘야겠구나.”

고생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쌀 한 말을 지고 그 집으로 찾아가 어머니의 뜻을 전달했다. 아가씨는 쌀을 받으면서도 전혀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 후로 아가씨는 고생의 집에 왔다가 어머니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기만 하면 매번 대신해서 의복과 신발을 만들어 주었다. 또 고생의 집안을 들락날락하며 마치 며느리라도 되는 양 집안일들을 보살폈다. 고생은 더욱 그녀에게 감격하여 맛있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반드시 아가씨의 어머니에게 나누어 보냈다. 아가씨는 그래도 여전히 고맙다는 인사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번은 고생 어머니의 음부에 종기가 나 밤낮으로 통증에 시달리며 울부짖게 되었다. 아가씨는 수시로 찾아와 살펴보면서 상처를 씻고 약을 발라주었다. 하루에 서너 번씩이나 그런 일이 반복되자 고생의 어머니는 몸둘 바를 몰라 불안해했지만, 아가씨는 그 더러움에도 전혀 개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아! 내가 어떻게 해야 너 같은 며느리를 얻어 이 늙은 몸이 죽을 때까지 봉양받을 수 있을거나.”

라고 탄식하고는 슬프게 흐느껴 울었다. 아가씨가 그녀를 위로하면서 말했다.

“아드님이 지극한 효자이시니, 제가 홀어머니를 모시는 것보다 몇백 배나 낫겠지요!”

“이런 잡다한 병수발을 효자라고 어찌 해낼 수가 있겠니? 게다가 나는 하루하루 늙어만 갈 뿐이니 언제 병들어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정말 대를 잇지 못할 것 같다는 근심에 마음을 졸이고 있단다.”

고생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아들이 방안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울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낭자에게 진실로 많은 빚을 졌다. 너는 그 은덕 갚을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야.”

고생이 엎드려서 아가씨에게 절을 하자 그녀는,

“당신이 우리 어머니를 공경해 주셨지만 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저에게 굳이 고맙다고 인사할 필요가 있으세요?”

하는 반응이었다. 이때부터 고생은 그녀를 더욱 경애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가씨의 행동거지는 여전히 뻣뻣하기만 했고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아가씨가 고생의 집에 들렀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고생은 대문 밖으로 나가는 여자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생긋 웃음을 지었다. 고생은 너무나 뜻밖이라 설레는 가슴을 안고 달려나가 그녀의 집까지 쫓아갔다. 아가씨에게 수작을 걸었더니 그녀도 거절하는 기색이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서로 즐겁게 교합했다. 일이 다 끝나자 아가씨는 고생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런 일은 한번으로 그칠 뿐이에요. 절대로 두 번은 안 됩니다.”

고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고생이 다시 아가씨와의 밀회를 약속하려 들자, 그녀는 정색을 하며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아가씨는 날마다 고생의 집에 왔다. 그녀는 고생과 수시로 마주쳤지만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일 뿐이었다.

한번은 그녀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고생에게 물었다.

“날마다 오는 그 소년이 누구지요?”

고생이 그에 관해 이야기했더니, 아가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놈의 행동이나 태도가 제게 무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친밀한 벗이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었던 것이지요. 그놈에게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 또다시 못된 짓을 하면, 놈이 살고 싶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겠다고요.”

그날 저녁나절, 고생은 소년에게 그 말을 전하면서 덧붙여 말했다.

“반드시 조심해. 그 여자에게는 무례하게 굴면 안 돼!”

“실례하면 안 된다는 여자와 당신은 어떻게 사통했지요?”

고생이 그런 일은 없다고 극구 발뺌을 하자, 소년이 다음과 같이 쏘아붙였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런 외설스러운 이야기가 어떻게 당신 귀에 들어갈 수 있었겠어요?”

고생이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못하자, 소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 말 또한 그 여자에게 전해 주시죠. 정숙한 척 가장하지 말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들의 일을 동네방네 소문낼 거예요.”

고생은 분노가 치밀어 낯빛이 달라졌고, 그것을 본 소년은 슬며시 물러가고 말았다.

어느 날 밤 고생이 고즈넉이 앉아 있을 때, 아가씨가 문득 찾아오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저와 당신의 연분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니, 이 어찌 운명이라 아니하겠습니까!”

고생은 뛸 듯이 기뻐하며 아가씨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때 별안간 짝짝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황망히 몸을 일으켰지만 소년은 벌써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해설

무협(武俠)은 지금이야 영화 혹은 소설에나 등장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만, 원래 문사의 도인 유학(儒學)과 더불어 중국 역사를 움직여온 양대 축으로 인식되던 개념입니다.

선진(先秦)시대는 땅덩이뿐만 아니라 사상까지도 중구난방이라서 제자백가가 난립했던 시기였지요. 진나라에 이어 제국을 건립한 한나라는 보다 시급한 과제로 분열된 사상의 통일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뒤죽박죽이던 제자백가 중에서 최후의 승자는 결국 유가로 판가름났지만, 전국 말기에서 한대 초기에 걸쳐 사상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것은 오히려 음양가(陰陽家)였다고 합니다. 전국 끝 무렵에 음양가는 이미 일부 유가와 결합된 형태로 활동했으며, 전한(前漢)의 경학가들은 기본적으로 음양가의 학설에 의지해 경전을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음양가가 있었기에 한 왕조는 유가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우고 법가(法家)를 기반으로 하여 정치체제를 개편하면서, 황로(黃老)의 학설로 심리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사상적 통일을 기할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인문적인 유가, 반(反)인문적인 법가, 초(超)인문적인 도가의 서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상적 간극은 모든 사건과 사물의 양면성을 인정하는 음양가로 극복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원리는 비단 사상계뿐만 아니라 현실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돼 문(文)과 무(武)가 아울러 중시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극단을 배격하고 실용적인 모든 것을 아우르려는, 이렇듯 유연한 사고는 한나라는 물론 그 이후에도 줄곧 중국문화의 근간이 되었지요. 힘의 상징인 무(武)가 약자를 돕는 협(俠)의 도리와 결합하게 된 것은 어쩌면 이 같은 인문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中>협녀(俠女)

"모든 것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고생이 놀라서 물었다.
“너 이게 무슨 짓이지?”
소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이 정숙한 아가씨를 구경하러 왔을 뿐이에요.”
그는 다시 아가씨를 돌아보며 빈정거렸다.
“오늘은 남을 탓하지 못하겠지?”
아가씨는 눈썹이 치켜올라가고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재빨리 윗도리를 벗어젖혔다. 그러자 가죽 주머니가 하나 나타났는데, 그녀가 안에서 잡아채듯 꺼낸 것은 바로 한 자 남짓한 날이 새파란 비수였다. 소년은 그것을 보자 놀라 뒷걸음질치며 달아났다. 아가씨는 문 밖까지 쫓아나가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소년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비수를 공중으로 내던지자 ‘캭’ 소리가 나면서 무지개 같은 빛이 길게 뻗치더니, 잠시 후 어떤 물건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생이 얼른 등불을 비췄더니, 바로 머리와 몸통이 따로 떨어져 나간 한 마리의 백여우였다. 고생이 놀라 말문이 막혀 있는 동안, 아가씨가 말했다.
“이놈이 바로 당신의 연동( 童·역주1)입니다. 저는 본래 놓아줄 생각이었는데, 제놈이 굳이 죽겠다고 덤벼드는군요!”
말을 마치자 그녀는 비수를 거둬 다시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다. 고생이 아가씨를 끌어당기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더니 그녀는,
“이 요물 때문에 흥취가 모두 사그라들었으니 내일 밤을 기다리세요.”
라고 말하고는 문을 열고 그대로 가버리고 말았다.
이튿날 저녁 아가씨가 정말로 다시 찾아와 두 사람은 흠뻑 사랑에 도취할 수 있었다. 고생이 아가씨에게 그런 능력이 어디서 생겨났느냐고 캐묻자, 그녀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는 당신이 알 바가 아닙니다.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하는 사안이므로 만약 누설이 되면 당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어요.”
고생이 또 그녀에게 서로 시집 장가 드는 일을 상의하려고 했더니,
“당신과 잠자리도 같이했고 또 당신을 위해 물 긷고 밥을 지었으니, 제가 당신의 아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이미 부부인데 다시금 시집 장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는 대답이었다.
“당신, 우리 집이 가난한 게 싫어서 그러는 거요?”
“당신은 정말 가난하지요. 그렇다고 저는 부자입니까? 오늘 밤 당신과 동침한 것은 당신의 가난이 애달파서 그런 거예요.”
헤어질 무렵, 그녀는 고생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이런 구차한 행동은 자주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와야 할 때는 제가 알아서 올 테지만, 올 때가 아니라면 당신이 억지를 부려도 소용없어요.”
그 후로도 서로 마주치기만 하면 고생은 매번 그녀를 잡아끌며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아가씨는 번번이 달아나며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그를 위해 바느질을 하고 식사를 준비해 주는 것은 다른 집 부인네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난 뒤, 아가씨의 어머니가 죽었다. 고생은 있는 힘을 다해 장례를 치러주었고, 아가씨는 이때부터 혼자 살게 되었다. 고생은 그녀가 집안에 혼자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있겠다 싶어 담장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여러 번 사람을 불렀지만 끝내 아무 응답도 들려오지 않아 대문간을 쳐다보았더니, 원래부터 안쪽에는 빗장도 걸려 있지 않았다. 고생은 속으로 아가씨가 딴 남자를 만나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밤이 되어 다시 갔을 때도 여전히 아까와 마찬가지였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 몸에 지니고 있던 패옥을 창문 틈에 올려놓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하루가 지났을 때, 고생은 어머니의 처소에서 아가씨와 다시 마주쳤다. 그가 방에서 물러나오자, 아가씨도 뒤따라 나오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저를 의심하시나요? 사람마다 각자 걱정거리가 다른 법이라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런 경우도 있게 마련이지요. 이제 와서 당신의 의심을 없애려고 해봐야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 급한 일이 있어 당신의 도움을 받아야겠어요.”
무슨 일이냐고 묻는 고생에게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저는 임신한 지가 벌써 여덟 달이나 되었기 때문에 조만간 아이를 낳을 것 같아요. 저의 신분이 아직 분명치 않은 까닭에(역주 2) 당신을 위해 아이를 낳을 수는 있지만 기를 수는 없습니다. 몰래 당신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유모를 한 명 찾으세요, 양자를 들였노라 가장하시면서. 절대로 제가 낳았다는 말은 하면 안 됩니다.”
고생이 그러마 허락하고 어머니께 이 사정을 말씀드리자, 그녀는 웃으면서 신기해했다.
“이 아가씨는 정말로 이상하구나! 며느리로 들인다 할 때는 안 된다고 하더니 도리어 우리 아들과 사통하기를 원하다니 말야!”
그렇지만 어머니는 기쁨에 겨워 아가씨의 계획대로 일을 처리하면서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다시 달포 가량이 지났다. 아가씨가 며칠이나 나타나지 않자 어머니는 의구심이 들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대문은 꼭 닫혀 있었고 사방은 썰렁하기만 할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동안 문을 두드린 다음에야 아가씨가 비로소 헝클어진 머리채에 때가 덕지덕지하게 엉망이 된 얼굴로 안에서 나왔다. 그녀는 문을 열어 고생의 어머니를 안으로 들이더니 다시 대문에 빗장을 질렀다. 어머니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서자 뜻밖에도 갓난아이가 침상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낳은 지 얼마나 되었느냐?”
어머니가 놀라며 물었더니,
“사흘 되었어요.”
하는 대답이었다. 강보를 들추고 살펴보니 사내아이였는데, 넓은 얼굴에 이마가 시원스러운 잘생긴 아이였다. 고생의 어머니가 기뻐하면서 물었다.
“네가 이미 나를 위해 손자를 낳아주었다만, 너는 의지할 데라곤 없는 혈혈단신인데 장차 누구에게 의탁하려는 것이냐?”
“제 구구한 속내를 어머님께 다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밤이 되어 인적이 드물어지면 아이를 안고 가셔도 괜찮아요.”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두 사람 모두 아가씨가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밤이 되자 어머니는 그 집으로 건너가 아이를 안고 돌아왔다.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한밤중, 아가씨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손에 가죽 주머니 하나를 들고 웃으면서 말했다.
“저의 큰일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어요.”
고생이 다급하게 무슨 까닭인지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우리 어머니를 봉양해 준 은덕을 저는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었답니다. 지난번에 남녀간의 일을 두고 한번은 괜찮아도 두 번은 안 된다고 말했던 이유도 남녀간의 잠자리에서 보은하려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당신은 가난해서 아내를 살 돈이 없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대를 이을 아이를 낳아주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원래는 한번만으로 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뜻밖에도 달거리가 또다시 나타나더군요. 그래서 결국 애초의 말을 어기고 다시 당신과 동침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이미 당신의 은혜를 갚았고 저의 소원도 이루어졌으니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없습니다.”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었소?”
“원수의 대가리입니다.”
그녀는 주머니를 치켜들어 안을 들여다보게 했는데, 그 안에는 사람의 머리통 하나가 수염과 머리카락이 서로 뒤엉킨 상태로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깜짝 놀라며 다시 그렇게 된 사정을 캐묻는 고생에게 아가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이전에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던 이유도 사실은 비밀이 지켜지지 않고 누설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일이 다 끝났으니 이야기해도 무방하겠지요. 저는 절강 사람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마(司馬) 벼슬을 지내셨는데 원수의 모함으로 돌아가셨고 재산마저 죄다 몰수당했지요. 저는 늙은 어머니를 업고 도망쳐 나와 이름을 감추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삼 년 동안 숨어서 살았습니다. 즉시 복수하지 못한 까닭은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었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또 태아가 뱃속에서 꿈틀거려 다시 한동안이 지체되었습니다. 예전에 한밤중에 밖에 나갔던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원수의 집과 가는 길을 확실하게 몰라 행여라도 차질을 빚을까 봐 걱정이 되어 그랬던 거지요.”

<역주>
1.연동: 여성처럼 취급하며 데리고 희롱하는 소년. 연동은 본래 예쁜 아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남색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2.협녀와 고생이 공개적인 부부의 명분을 갖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해설
한나라는 제자백가 중에서 가장 전아한 유가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웠지만, 피비린내 물씬한 역사의 한가운데서 단련된 통치자들은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명분과 당위만으론 자신이 가진 것을 지켜낼 수 없다는 것, 실력을 행사하여 ‘맞장’을 떠오는 정적(政敵)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그 이상의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울러 그들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선 안 된다는 이치와 더불어 가진 것을 오래도록 보전하기 위해서는 드러내야 할 것과 그 뒤에 감춰야 할 것이 따로 있다는 이치도 분명히 깨닫고 있었지요.
이리하여 중국 역사를 움직이는 두 가지 힘 중에서 문아한 유사(儒士)들은 전면에 내세워진 반면, 피로 물든 무도한 역사와 그 주인공인 협사(俠士)들은 그늘 뒤로 감춰지게 되었습니다.
협(俠)은 원래 ‘사람 인(人)’에 ‘겨드랑이에 낄 협(夾)’자가 보태져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그 모양만으로도 약한 사람을 끼고 도는 행위, 혹은 그런 사람을 의미하지요.
사마천은 ‘사기’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자객을 내세웠는데, 중국 역사에서는 이렇게 남의 어려움을 전문적으로 처리해 주는 해결사 역할의 임협(任俠)이 수시로 등장합니다.
비록 역사의 전면에 나선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알아준 지기(知己)에게 보답하거나 세상의 불의에 맞서다 이슬처럼 스러져간 영웅들의 비장미는 언제나 우리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열광하게 만드는 핵이었고, 덕분에 그들은 현실 아닌 가상의 세계에서는 늘 주역의 자리를 꿰차곤 했지요. 지금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무협지나 무협영화는 이를 방증하는 산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상삼관(商三官),협녀(俠女) ·下
사라졌던 누이동생은 원수의 집에서…
옛날 제갈성(諸葛城)에 상사우(商士禹)라는 선비가 살았다. 그는 술김에 농담을 하다가 그 지역 한 토호의 비위를 거스르게 되었다.

토호는 노예들을 사주하여 몰매를 가했고, 상사우는 집으로 들려 오자마자 곧 숨을 거두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의 이름은 신(臣)이고 둘째아들은 예(禮)라고 불렀다. 또 삼관(三官)이라는 딸도 하나 있었는데 당시 나이가 열여섯 살이었다.

본래 그녀는 시집갈 날을 잡은 상태였는데, 아버지가 갑작스레 변을 당하자 부득이 날짜를 뒤로 미루게 되었다. 두 오라비는 외지로 나가 재판을 걸었지만 그 해가 저물도록 결말은 나지 않았다. 상관의 시가에서는 사람을 보내 어머니를 뵙더니 거상 기간 중이라도 혼인을 서두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어머니가 그러자고 허락할 뜻을 비추자, 딸이 나서서 이치를 따졌다.

“아버님의 시신이 아직 식기도 전에 혼인을 하다니요? 그네들은 부모도 없답니까?”

약혼자의 집안에서는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며 다시는 빨리 혼인하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얼마 뒤 두 오라비가 재판에 이기지 못하고 원통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온 집안이 애통하여 들끓는 가운데, 두 형제는 부친의 시신을 그대로 둔 채 다시 또 소송 벌일 의논이 한창이었다. 삼관이 나서서 이를 만류했다.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어도 이치대로 처리되지 않으니, 세상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장차 두 분 오빠들을 위해 염라대왕처럼 공정한 포청천을 내려주시려나 보지요. 아버님의 유해를 저대로 방치해 두고 어찌 마음이 놓이겠습니까?”

두 오라비는 누이동생의 말을 받아들여 부친을 안장했다. 장례를 마친 그날 밤 삼관은 한밤중에 집을 나가 종적을 감췄다. 어머니는 전전긍긍하며 행여 사위 집에서 그 사실을 알까 봐 친척이나 친구들에게조차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두 아들을 채근하여 삼관의 행방을 찾으라고 은밀히 당부할 따름이었다. 거의 반년을 찾아 헤맸지만 그녀는 종적이 묘연하여 끝내 소식이 없었다.

때마침 상사우를 죽인 토호가 생일을 맞아 광대들을 부르고 놀음판을 성대히 벌이게 되었다. 그날은 손순(孫淳)이란 광대가 제자 두 명을 데리고 와 일을 거들었다.

한 제자는 왕성(王成)인데 생김새는 평범했지만 목청이 꾀꼬리처럼 맑고 아름다워 여러 사람의 칭찬을 들었다.

다른 한 제자의 이름은 이옥(李玉)이었는데 용모가 예쁜 여자처럼 수려했다. 그에게 노래를 시켰더니 익숙하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사양했다. 그래도 억지로 강요하자, 그가 부르는 노래의 태반은 여염의 아낙네들이 즐기는 가요였다.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박수를 치니, 손순은 부끄러워하며 주인에게 아뢰었다.

“이 녀석은 저를 따라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저 술이나 따를 줄 압니다요. 부디 너무 허물치 마십시오.”

그 즉시 이옥에게는 술을 따르라는 분부가 내려졌다. 그는 오락가락하며 술 시중을 들었는데 주인의 기색을 살피며 비위를 맞출 줄 알았다. 주인은 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술자리가 파하고 손님들이 흩어지자 주인은 이옥을 따로 남게 하고 더불어 잠자리에 들었다.

이옥은 주인을 대신하여 잠자리를 정돈하고 그의 신발을 벗기면서 빠짐없이 시중을 들었다. 주인이 음란한 언사로 희롱해도 그는 단지 빙그레 미소나 지을 뿐이었다. 주인은 그에게 홀딱 반했으므로 다른 하인은 모두 내보내고 이옥만 자리에 남겼다.

하인들이 모두 물러가자 이옥은 방문을 잠그고 빗장을 채웠다. 여러 종들은 다른 방으로 몰려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 뒤 방안에서 뭔가 꺽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인 한 놈이 다가가 문틈으로 안쪽을 살폈지만, 방안은 칠흑같이 깜깜해서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하인이 막 몸을 돌이키려는 찰나, 갑자기 ‘꽝’ 하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흡사 무거운 물건이 매달려 있다가 줄이 끊어져 바닥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 같았다. 그는 황급히 안쪽을 향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안에서는 전혀 응답이 없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아 문을 밀치고 들어갔더니, 주인은 몸뚱이와 머리가 두 동강이 난 상태였고 이옥은 목을 맸다가 새끼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들보와 그의 목에는 제각기 끊어진 줄이 매어진 상태였다.

모두들 놀라 나자빠지다가 다급히 안채에 알려 집안 식구들을 모이게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는 아무도 알 길이 없었다. 모두들 이옥의 시체를 정원으로 옮겼다. 누군가 그의 신발을 잡았더니 물컹한 느낌이 흡사 발이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신발을 벗겼더니 흰 헝겊이 씌워진 자그만 여자의 발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더욱 놀라면서 손순을 불러들여 어찌된 일인지를 추궁했다. 손순은 두려워 대답할 바를 모르다가 다만 이렇게 변명했다.

“이옥은 달포 전에 저를 찾아와 제자가 된 자입니다. 주인님의 생신 잔치에 따라오고 싶어해 데려왔을 뿐, 어디 살던 누구인지는 저도 정말로 모른다니까요.”

상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녀가 상씨 집안에서 보낸 자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들은 우선 두 명의 하인에게 시체를 지키라고 일렀다. 여자의 얼굴은 그때까지도 산 사람 같았고 몸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파수 보던 두 놈은 그녀를 겁탈하기로 은근슬쩍 합의했다. 한 놈이 시체를 붙들고 몸을 앞쪽으로 들이밀며 막 의복을 풀어헤치는 순간 갑자기 뭔가가 머리통을 후려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놈은 결국 입에서 피를 쏟으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까무러치게 놀란 다른 녀석은 서둘러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모두들 그녀를 신처럼 공손히 모시는 한편 이 일을 관가에 신고했다. 관리가 상신과 상예를 심문하자, 형제는 이구동성으로 답변했다.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누이동생이 달아난 지 이미 반년이나 되긴 했습니다만.”

형제에게 시체를 살펴보게 했더니 과연 삼관이 틀림없었다. 관가에서는 그녀를 기특하게 여겨 시체를 두 오라비에게 내주고 매장토록 하였고 아울러 토호의 집안은 복수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사씨는 말한다.

집안에 여자 예양(豫讓)이 있는 줄도 몰랐다니 두 오라비가 어떤 사내였는지 알 만도 하다. 하지만 삼관의 인품은 길게 노래를 읊조리며 쓸쓸히 역수(易水)를 건너간 형가(荊軻)에 비겨도 무방할 것이다. 강물도 그녀에게는 부끄러워 더 이상 흐르려 들지 않을 판인데, 멍청하게 세속을 따라 부침하는 저 무능한 인간들임에랴! 원컨대 온 천하의 여자들이 색실을 사 삼관의 초상을 수놓아 받들게 한다면, 그 공덕은 필시 관우(關羽)를 모시는 것에 덜하지 않을 것이다.

 

역주

연동:본래 예쁜 아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남색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해설

여태까지 3회에 걸쳐 소개해 드린 이야기 ‘협녀’는 주인공이 여성인 점이 특이합니다. 연약한 서생을 돌봐주고 아비의 원수를 갚는 슬기롭고 의로우며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 어떻게 불세출의 호걸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협녀는 혼란했던 명대 말기를 무대로 펼쳐지는 서사극입니다. 이때는 서구 세력이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대내적으로도 중국 정치사상 가장 부패했던 시기였습니다. 많은 황제들이 아편과 여색에만 정신을 쏟았고,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가 보위에 오르는 경우도 흔해서 정치권력이 환관의 수중에서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국 무협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창(東廠)이란 황실 친위부대 역시 내시들이 권력을 최대한 장악하기 위해 양성했던 첩보부대라는 설이 있지요. 영화 협녀는 조정 쪽 무사들과 이들에 저항하는 동림당(東林黨)의 대결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남녀의 로맨스에 비장미를 더하고 역사성을 부과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무협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거장 후진취안(胡金銓·King Hu)은 협녀를 영화로 만들어 1975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쥔 바 있습니다. 영화의 영어 제목 ‘A Touch of Zen(선·禪의 손길)’이 시사하듯이 명상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화면으로 명성이 높은데, 특히 마지막 10여분간 무사들이 대나무 숲에서 벌이는 칼싸움 한판이 압권입니다.

몇 년 전 어느 평론가는 무협의 쇠퇴를 예언하기도 했는데, ‘와호장룡’ 같은 영화의 성공을 보면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진 않습니다. 앞으로도 무협은 영웅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대중의 눈길과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할 것 같기 때문이지요.

 

죽음에 관한 짧은 이야기 3편

여보, 저승갈때 우리 손잡고 같이 갑시다

저승 가는 길(祝翁·축옹)

제양현(濟陽縣)의 축씨촌(祝氏村)에 축씨 성의 노인이 한 사람 살았는데 나이 50여세에 병들어 죽었다. 식구들이 방안에 들어가 상복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노인이 부르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사람들이 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더니 노인은 벌써 다시 살아나 있었다. 식구들이 기뻐하며 안부를 묻는데도 노인은 그저 자기 부인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까 길을 떠날 때는 그 무엇도 애석한 것이 없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심산이었소. 그런데 몇 리 길을 가다가 한편 생각해 보니 다 늙은 당신이 홀로 아이들 손에 내버려져 그저 다른 사람만 쳐다보며 살 것이 마음에 걸리더란 말이오. 그렇게 살면 어디 사는 재미가 나겠나? 차라리 나를 따라가는 것이 나을 듯하여 다시 되돌아온 거라오. 어서 준비해서 나와 함께 길을 뜹시다.”
모두들 노인이 이제 막 깨어나서 헛소리를 하는 줄로만 여기고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노인이 또 한 차례 같은 얘기를 반복하자, 할멈이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기는 해요. 하지만 이제 막 되살아나서 어떻게 바로 죽을 수가 있답니까?”
노인은 손을 휘저어 할멈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말했다.
“그건 어렵지 않아. 집안의 잡다한 일들이나 빨리 처리하시오.”
할멈이 웃으며 물러가지 않자, 노인은 다시 그녀를 채근했다. 할멈은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가 일부러 한참 시간을 끈 뒤 방안으로 들어와 거짓으로 말했다.
“집안일들은 모두 적당히 잘 처리했어요.”
그러자 노인은 할멈에게 서둘러 옷을 차려 입으라고 명령했다. 할멈이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더니, 노인은 더욱 신경질을 내며 닦달하여 마지 않았다.
할멈은 영감의 뜻을 차마 거스를 수 없어 드디어는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며느리와 딸들은 그 광경을 보고 모두 속으로 웃었다. 노인은 자기 머리를 한켠으로 옮기더니 손으로 베개를 치며 할멈에게 어서 와 자기 옆에 드러누우라고 일렀다. 할멈이 말했다.
“자식들이 모두 보고 있는데 우리가 나란히 드러눕다니, 그게 무슨 꼴이랍니까?”
그러자 노인이 침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함께 죽는 마당에 뭣이 그리 우습소!”
자식들은 노인이 매우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할멈에게 영감님의 뜻에 따르라고 권유했다. 할멈은 영감이 말하는 대로 한 베개를 베고 나란히 누웠다. 식구들은 그 광경을 보고 또다시 웃었다.
얼마 후 할멈의 얼굴에서 문득 웃음이 사라지더니 천천히 두 눈이 감기며 마치 잠이 든 것처럼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었고 코로 숨을 쉬지도 않았다.
노인의 코에 손을 대보니 할멈과 마찬가지였으므로 모두들 그제야 깜짝 놀라며 슬퍼했다. 강희(康熙) 21년, 축 노인 동생의 며느리가 필자사(畢刺史·역주1)의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그 노인은 과거에 무슨 심상찮은 능력이라도 갖지는 않았던가? 저승으로 가는 길이 아득히 먼데 자기 뜻대로 오고 갈 수 있었다니, 정말로 신기한 일이다! 게다가 그는 백두자(白頭者·역주2)마저 저승까지 동행을 시켰으니, 이 얼마나 여유롭고 침착한 일인가! 사람이 죽어갈 때 가장 헤어지기 어려운 사람은 바로 한 침대에서 잠을 자던 사람일 것이다. 만약 노인의 비술이 널리 전파될 수 있다면 매리분향(賣履分香·역주3)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는데….

웃다 죽은 남자(諸城某甲·제성모갑)

학사(學師)인 손경하(孫景夏·역주4)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그와 같은 마을에 살던 아무개가 떠돌아다니는 비적떼와 마주쳐 살해되었다. 도적이 목덜미를 칼로 내리치는 바람에 아무개의 머리통은 가슴 앞에까지 떨어져 내렸다. 놈들이 물러가자 식구들은 그의 시체를 거두어 메고 가서 땅에 묻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실낱처럼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려오기에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그의 목이 아직도 손가락 하나만큼 끊어지지 않은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식구들은 그의 목을 받쳐들고 다시 떠메어 집으로 돌아왔다.
만 하루가 지나자 그는 다시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그에게 국과 음식을 떠먹여 주었고, 반 년쯤 지나자 상처도 완전히 나았다.
다시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무개가 두세 명의 친구와 한자리에 있던 중, 어떤 사람이 아주 우스운 이야기를 지껄였다. 사람들은 일시에 웃음을 터뜨렸고 아무개 역시 박장대소했다. 그가 웃느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순간 예전에 칼 맞았던 자리가 갑자기 터지면서 머리가 떨어지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다 함께 아무개를 쳐다보았을 때는 숨이 벌써 끊어진 다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같이 웃었던 사람들을 관가에 고소했다. 모두들 돈을 추렴하여 아무개의 아버지에게 건네주고 또 그의 장례 일을 거들어서 이 사건은 가까스로 무마될 수 있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한번 웃음에 모가지가 떨어졌다니, 이는 천고 이래 가장 우스운 이야기일 것이다. 모가지가 실낱처럼 이어졌을 뿐인데도 죽지 않다가 10년이나 지난 뒤에 한바탕 웃음으로 재판까지 가게 되었다니, 이 어찌 그들 두세 명의 이웃이 전생에 아무개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저승이 준 수명(祿數·녹수)

평소 못된 짓을 많이 저지르는 어떤 세도가가 있었다. 그의 부인은 언제나 인과응보를 말하며 남편에게 행실을 고치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무슨 말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마침 사람의 수명을 귀신 같이 맞힌다는 어떤 관상쟁이가 그가 사는 마을에 나타났다. 찾아가 자신의 남은 수명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자, 관상쟁이는 세도가의 얼굴을 샅샅이 훑어보고 나서 이렇게 예언했다.
“당신은 앞으로 쌀 스무 섬과 밀가루 사십 섬을 먹은 다음 하늘이 주신 목숨을 마치게 될 게요.”
그는 돌아와서 부인에게 그 말을 전했다. 한 사람이 한 해에 겨우 밀가루 두 섬을 먹어치우니 자신에게는 아직도 20여년의 수명이 남아 있다는 계산이 나오자 그는 설마하니 나쁜 짓을 한다고 당장 죽기라도 하랴는 배짱까지 생겨 전처럼 만행을 일삼았다.
해가 바뀐 뒤 그는 느닷없이 당뇨에 걸렸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고 돌아서면 곧 배가 꺼져 그는 하루에도 열댓 번이나 밥을 먹게 되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죽고 말았다.

역주
1. 필자사(畢刺史):이름은 제유(際有). ‘요재지이’의 저자 포송령이 가정교사를 살던 집 주인이었다.
2. 백두자(白頭者):검은 머리가 흰 머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기로 언약한 사람. 즉 아내 혹은 남편.
3. 매리분향(賣履分香):분향매리(分香賣履)라고도 한다. 조조(曹操)의 유언으로서 ‘문선(文選)’ 권60의 ‘조위무제문서(弔魏武帝文序)’에 나오는, “남은 향은 여러 부인에게 나눠주거라. 여러 첩은 할일이 없을 테니 신을 삼아 파는 것을 배우라(餘香可分于諸夫人. 諸舍中無所爲, 學作履組賣也)”고 한 대목에서 유래한 말이다. 나중에 ‘분향매리’는 임종시에 처첩을 걱정하며 잊지 못함을 뜻하게 되었다.
4. 손경하(孫景夏):손호(孫瑚). 자는 경하(景夏)로 산동의 제성(諸城) 사람이며 거인(擧人)이다. 강희 4년에 치천현의 유학교유(儒學敎諭)를 지낸 인물로서 ‘치천현지(淄川縣志)’ 4권에 그의 사략이 보인다.



■해설
죽음에 관한 가벼운 이야기 세 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죽은 뒤에도 무슨 형태로든 존속한다는 관념이 있는데, 이를 윤회로 표현하고 있지요. 인간의 행위(業)는 나중에 영향을 끼치는 잠재적인 힘(業力)을 발생시키는데, 이 때문에 사람은 죽은 뒤 생전에 지은 업에 따라 거기에 해당되는 사후 세계에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를 끝없이 왕래하는 윤회를 거듭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인과응보는 바로 인간에게 윤회의 굴레에 매어 있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고안된 장치라고 하겠습니다.
죽음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생로병사의 한 관문이지만,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만큼은 누구나 또 쓰라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저승 가는 길’은 배우자를 저승길의 동반자로 삼은 한 행복한 노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실화일 것으로 여겨지는데 저자가 말미에 확실한 증인을 제시한 것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바로 지난 여름 강화도의 한 노부부가 같은 날 나란히 세상을 떠난 일화가 실제로 뉴스를 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생전에 무슨 덕을 쌓았기에 이런 아름다운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이렇게 세상을 하직할 수만 있다면 죽음도 무섭거나 외롭지만은 않을 것 같네요.
두 번째 ‘웃다 죽은 남자’와 세 번째 ‘저승이 준 수명’은 아주 짤막한 유머 소품문인데, 인과응보의 이치를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 당연한 말이지만 때때로 일깨워주지 않으면 그냥 잊고 사는 어리석은 존재가 또 우리 인간인가 봅니다.

 

국화남매<上>
그의 손에선 시든 꽃도 되살아나고…
마자재(馬子才)는 순천(順天) 사람이다. 집안이 대대로 국화를 좋아했지만 그의 대에 이르러서는 유별나게 꽃을 사랑했다. 그는 좋은 품종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반드시 사들여야 직성이 풀렸고, 때로는 천릿길도 마다 않고 꽃을 찾아 길을 떠났다.

하루는 금릉(金陵)에서 온 나그네가 그의 집에 투숙했다가 자기 사촌이 갖고 있는 한두 가지 국화는 북방에 없는 희귀한 품종이라고 말해 주었다. 마자재는 그 말을 듣자 당장 마음이 동해 곧바로 행장을 꾸린 뒤 나그네를 따라 금릉으로 갔다. 나그네가 여러모로 힘을 써준 덕분에 마자재는 가까스로 두 모종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는 꽃모종을 보물처럼 깊숙이 간수했다.

귀로에 오른 마자재는 도중에 한 소년과 만나게 되었다. 소년은 나귀를 타고 어떤 유벽거(油碧車·역주1)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생김새가 준수하고 풍채는 매우 날렵했다. 마자재는 차츰 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소년은 자신을,

“성이 도(陶)씨입니다.”

라고 소개했다. 그의 언사는 몹시 기품이 있었으며 우아했다. 더불어 이야기하는 사이, 소년이 그에게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으므로 마자재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소년은,

“꽃의 품종에는 나쁜 것이 없어요. 누가 가꾸고 물을 주느냐에 따라 우열이 달라지지요.”

라고 하더니, 이어서 국화 재배법에 관한 나름의 견해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설명을 듣고 난 마자재는 몹시 기분이 좋아져서 그들의 행선지를 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신가?”

“누님이 금릉에 염증을 느끼시는지라 북쪽 어디 적당한 지역을 찾아가 살려고요.”

마자재는 기쁨에 넘쳐 응수했다.

“내가 비록 가난하지만 몇 칸짜리 초가집은 빌려줄 수 있다오. 누추하고 퇴락했다는 점만 꺼리지 않으시면 번거롭게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을 것이오.”

도생은 곧 수레 앞으로 달려가 누나와 그 일을 상의했다. 수레 안에 있던 사람은 주렴을 걷고 도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이가 스물 남짓한 절세미인이었다. 여자는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집이 비좁은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하지만 뜰은 꼭 넓어야 해.”

마자재는 도생을 대신하여 그렇다고 대답했고, 결국 그들은 함께 순천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마자재의 집 남쪽은 황폐한 채마밭인데 서너 칸짜리 작은 초가가 딸려 있었다. 도생은 그곳을 보자 대단히 기뻐하며 그 집에 눌러 살기로 결정했다. 그는 날마다 마자재가 살고 있는 북쪽 집으로 건너와서 그를 위해 국화를 돌보았다. 이미 시들어버린 국화라 하더라도 그가 뿌리를 뽑아 다시 심어주면 되살아나지 않는 꽃이 없었다. 하지만 도생의 집 살림살이는 대단히 어려워서 그가 날마다 마자재와 함께 끼니를 넘기는 것이 고작일 뿐, 그의 집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올라간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마자재의 아내인 여씨(呂氏) 또한 도생의 누나를 무척이나 좋아해 수시로 양식을 보내주며 그녀를 보살폈다. 도생의 누나는 이름이 황영(黃英)으로 이야기를 무척 감칠맛 나게 잘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늘 여씨의 처소로 건너와 함께 바느질을 하거나 길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도생이 마자재에게 말했다.

“당신네 집은 본래부터 부유하지 못한데 저까지 날마다 밥을 축내며 신세지고 있으니, 이 어찌 오래갈 일이겠습니까! 지금 형편을 보고 계획을 하나 세웠습니다. 앞으로 국화를 가꿔서 팔면 그 또한 생계를 꾸릴 수단이 될 듯하군요.”

마자재는 원래 고고한 성품이었으므로 그 말을 듣자 도생을 몹시 비루하게 여기며 빈정거렸다.

“나는 그대가 풍류를 아는 고결한 선비라서 응당 안빈낙도(安貧樂道)하리라고 생각했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동리(東籬·역주2)를 저자로 만들어 국화를 욕보일 참이군 그래.”

도생이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면서 대꾸했다.

“자기 힘으로 밥을 먹는 것은 탐욕이 아니고, 꽃을 파는 일도 속된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물론 구차하게 부자가 되어선 안 되겠지요. 하지만 일부러 가난하게 살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자재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도생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도생은 마자재가 버린 잔챙이 가지라든가 열등한 종자들을 모두 주워서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마자재의 집에서 다시는 잠자거나 밥을 먹지 않았고 일부러 불러야만 어쩌다 한번씩 들렀다.

얼마 후 국화꽃 피는 계절이 되었다. 마자재는 도생의 집 문전이 마치 시장바닥처럼 왁자지껄하자 이상하게 여기며 그의 집으로 건너가 보았다. 문 앞에는 꽃을 사러 온 사람들이 어떤 이는 수레에 싣고 어떤 이는 어깨에 둘러메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다. 도생이 파는 꽃은 마자재도 처음 보는 신기한 품종들뿐이었다. 마자재는 도생의 탐욕에 혐오감이 일어 그와 절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가 좋은 품종은 몰래 감춰두고 자기 혼자만 키운 것이 한편 얄밉기도 하였으므로 한바탕 욕설이나 퍼부어 주려고 도생의 집 사립문을 두드렸다.

도생은 문을 열고 나와 마자재를 보자 그의 손을 이끌어 안쪽으로 데려갔다. 들어가 보니 원래의 황폐했던 정원 백 평은 모두 국화밭이 되어 집터 외에는 빈틈이 없었다. 또 이미 꽃을 파낸 자리에도 다른 가지를 꽂아 채워놓고 있었다. 밭고랑 사이에 심어진 국화들은 하나같이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었는데 아름답고 오묘하지 않은 품종이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모두 이전에 자기가 뽑아서 내버린 것들이었다. 도생은 집안으로 들어가 술과 안주를 내왔고 국화밭 옆에 술자리를 마련하며 말했다.

“저는 가난 때문에 청빈의 지조를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요행으로 날마다 푼돈이 들어와 우리가 함께 흠뻑 취할 정도는 되었어요.”

조금 있으니 방안에서,

“삼랑(三郞)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도생이 대답하고 건너가더니 곧이어 생전 보지도 못한 음식들을 쟁반에 받쳐들고 나왔다. 요리는 매우 훌륭했고 입맛에도 맞았다. 내친김에 마자재가 도생에게 물었다.

“자네 누님은 왜 아직까지 시집가지 않으셨는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언제인데?”

“마흔세 달 뒤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마자재가 캐물어도 도생은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날 두 사람은 통쾌하게 술을 마시고 취해서야 헤어졌다.

하룻밤이 지난 뒤 마자재가 다시 건너갔더니, 어제 새로 심은 모종이 벌써 한 자 높이로 자라나 있었다. 그는 놀랍고 신기해서 도생에게 그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랐지만,

“이런 능력은 분명 말로 전수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당신은 꽃을 팔아서 밥을 먹는 것도 아닌데 그 방법을 어디다 쓰시려고요?”

하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꽃을 사려는 사람들로 들썩이던 문간이 어느 정도 조용해졌다. 도생은 국화를 캐내 짚방석으로 잘 싸더니 몇 대의 수레에 나눠 싣고 길을 떠났다. 해가 바뀌고 봄도 거의 절반이나 지나고 나서야 도생은 남방의 진기한 화초를 싣고 돌아왔다. 그는 성안에 들어가 꽃시장을 벌이더니 열흘 만에 모두 팔아치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국화를 돌보았다.

작년에 도생에게서 꽃을 샀던 사람들은 그 뿌리를 살려두었어도 이듬해가 되자 모두 열등한 품종으로 변해 버렸으므로 다시 그에게 몰려들어 꽃을 사갔다. 도생은 이리하여 날로 부자가 되었다. 일년 만에 집을 늘려 짓더니 이년 뒤에는 아예 커다랗게 저택을 새로 지었다. 토목 공사를 벌일 때마다 전부 내키는 대로였고 주인과는 한마디 상의하는 일조차 없었다. 점차로 예전의 꽃밭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집들이 대신 들어서게 되자 다시 담장 밖에 있는 밭을 사들여 사방을 울타리로 두르고 전부 국화를 심었다. 가을이 되자 도생은 다시 꽃을 수레에 싣고 떠났다. 그러나 이듬해 봄이 다 지난 다음에도 도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즈음 마자재의 아내가 병들어 죽었다. 마자재는 황영을 후처로 맞아들일 요량으로 다른 사람을 시켜 넌지시 자기 뜻을 비쳤다. 황영은 단지 미소만 짓는 품이 그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으나 도생이 돌아오고 나서 다시 결정하자고만 말할 뿐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역 주

1)유벽거(油碧車):유벽거(油壁車)라고도 한다. 수레 벽에 기름을 칠해 장식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옛날 여자들이 타는 수레였다.

2)동리(東籬):국화를 심은 뜨락.

 

■해설

바야흐로 깊은 가을입니다. 그토록 찌던 여름이 어디로 사라졌나 싶게 청명한 날들의 연속이네요. 서리 물든 국화가 고운 빛을 발하는 요즘엔 송창식의 ‘푸르른 날’을 듣거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읊조리며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것이 딱 제격이지요. 아니면 별로 알려진 노래는 아니지만 소리 두울의 ‘가을국화’를 찾아 들으며 지난 여름을 추억하는 것도 팍팍한 현실에 지친 마음을 순하게 달래는 한 방법이지 싶습니다.

국화는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가장 사랑한 꽃입니다. 군자의 덕망을 갖춘지라 고절(高節)의 상징으로 여겨진 이 꽃은 화려하진 않지만 기품 있는 자태와 그윽한 향기로 많은 시인의 사랑을 받아왔지요.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은 자신의 작품 ‘이소(離騷)’에서 “아침에는 목련이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꽃잎을 먹는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고 읊어 궁핍한 가운데서도 시류에 물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냈고, 도연명 역시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어 들고, 유유히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명구를 남겼습니다.

이들이 왜 자신의 절개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국화를 택했을까요? 아마도 11월의 찬 서리를 이겨내고 꽃을 피워내는 강인한 식물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가장 늦은 때 홀로 고고한 꽃을 피워내는 그 모습에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이미지를 떠올렸을 테고, 맑은 향기와 잔잔한 빛깔에서 군자가 지녀야 할 성정을 연상했을 테지요. 도연명은 또 그래서 국화를 자기 분신처럼 여겼을 거고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여인입니다. 세상에 그런 인품, 그런 자태를 지닌 이가 있다면 나도 “그에게로 가서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픈 빛나는 가을날입니다.

 

국화남매<中>
땅바닥에 몸이 닿자마자 국화로…
다시 일 년여가 지났지만 도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황영은 도생이 집에 있던 때와 마찬가지로 하인을 감독하여 국화를 가꿨다. 돈을 버는 것도 다른 장사치들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그녀는 마을 밖에 있는 기름진 밭 스무 마지기를 사들였고 집도 더욱 웅장하게 새로 지었다.

어느 날 갑자기 복건성에서 왔다는 나그네 한 사람이 도생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뜯어보니 누나더러 마자재에게 시집가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편지를 부친 날짜를 살펴보니 바로 마자재의 아내가 죽던 날이었다.

국화밭에서 술을 마시며 황영의 결혼을 이야기하던 때로부터는 꼭 마흔세 달만의 일이었으므로 마자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편지를 황영에게 보이면서 물었다.

“혼인 예물은 어디로 보내면 좋겠소?”

황영은 납채를 받지 않겠다고 사양했다. 또 원래 살던 집은 비좁으니 마치 데릴사위가 들어오듯 마자재가 남쪽 집으로 옮겨와 살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마자재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고 택일하여 혼례를 올린 다음 황영을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황영은 마자재에게 시집온 이후 남쪽 집과의 사이에 벽을 터서 문을 만들고 날마다 건너가 종들을 감독했다. 마자재는 아내가 자기보다 부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황영에게 남쪽과 북쪽 집의 가계부를 따로 써서 서로 뒤섞이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항상 당부했다.

하지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황영은 매번 남쪽 집에서 가져왔으므로 반년도 못 돼서 손닿는 것은 모두 도씨 집의 물건이 되었다. 마자재는 즉각 사람을 시켜 일일이 되돌려보내고 아울러 다시는 그곳에서 물건을 가져오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하지만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두 집의 물건들은 또다시 뒤섞이게 되었다. 가져오면 다시 갖다놓는 일들이 몇 번이나 되풀이되자 마자재도 번거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황영이 웃으면서,

“진중자(陳仲子·역주1) 노릇이 귀찮지도 않으세요?”

하고 놀리자, 마자재는 몹시도 부끄러워 더 이상은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황영이 하자는 대로 따르게 되었다. 황영이 기술자를 불러모으고 건축 자재를 사들여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켜도 그는 막을 수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나자 누각과 건물들이 연달아 들어서 아래위 두 집은 마침내 하나로 합쳐졌고 더 이상 경계를 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황영은 마자재의 뜻을 존중하여 대문을 닫아걸고 다시는 국화를 내다 팔지 않았다. 그런데도 씀씀이는 다른 대갓집보다 호사스러웠으므로 마자재는 혼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말했다.

“나의 삼십 년 맑은 덕행이 모두 당신 때문에 망가지고 말았소. 지금 이 세상에 구차하게 살아 숨쉬고는 있다지만 마누라 치마폭에 휩싸여 얻어먹고 사는 처지가 되었으니, 장부의 기개라곤 터럭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구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하나 나만은 가난하길 원한다오!”

황영이 말했다.

“저는 결코 탐욕스럽거나 치사한 인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라도 웬만큼 넉넉하게 생활하지 않는다면, 천년 뒤의 사람들은 도연명을 두고 가난한 상놈이라 백대가 지난 뒤에도 뜻을 펴지 못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애오라지 우리 가문의 팽택령(彭澤令·역주2)이 남들에게 조롱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렇다 쳐도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 부자가 가난하게 지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지요. 당신이 용돈을 제아무리 마음껏 뿌려도 저는 결코 아까워하지 않겠습니다.”

“남의 돈으로 선심을 쓰는 것이 어째서 대단한 수치가 아니란 말이오?”

마자재의 응수에 황영이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부유해지고 싶지 않다지만 저 또한 가난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하는 수 없군요. 당신과 갈라서 사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겠어요. 고결한 분은 저절로 고결해질 테고 속된 인간은 스스로 속물이 되면 그만이니 서로 방해될 일이야 없겠지요!”

황영은 정원에 초가를 한 채 짓고 마자재를 입주시킨 다음 예쁘장한 계집종을 골라 그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마자재는 그곳에 기거하게 되면서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지만 며칠이 지나자 황영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을 시켜 불러도 그녀는 오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직접 갈 수밖에 없었다. 하룻밤 뒤 그는 다시 황영에게 갔고 어느덧 이런 식의 생활이 일상화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황영은 또 웃으면서 말했다.

“동쪽 집에서 밥을 먹고 서쪽 집에서 주무시는 형국이구려. 청렴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을걸요.”

마자재 역시 자기 꼴이 우스웠으므로 아무 대답도 못하다가 결국은 다시 예전처럼 합쳐 살게 되었다.

나중에 마자재는 일 때문에 금릉에 가게 되었다. 때마침 국화가 피어나는 가을이었다. 그는 이른 아침 꽃집 앞을 지나다가 가게 안에 수많은 국화분이 나열되어 있는 광경을 보았는데, 꽃을 가꾼 솜씨나 꽃송이 모양이 매우 빼어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도생이 키운 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마자재는 꽃집 앞을 서성이며 누구라도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주인이 나왔는데 과연 도생이 틀림없었다. 마자재는 기쁨에 겨워 헤어진 이후 있었던 일들과 그리웠던 마음을 모두 이야기하고 그날은 도생의 집에서 묵었다. 마자재가 도생에게 함께 돌아가자고 청하자, 그는 자기 나름의 복안을 설명했다.

“금릉은 제 고향이니 장차 여기서 혼인하고 살랍니다. 그동안 약간의 돈을 모았으니 우리 누님에게 좀 전해 주시죠. 연말이 되면 꼭 틈을 내어 잠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마자재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더욱 고집스럽게 도생을 졸랐다.

“다행히도 집안이 풍족하니 앉아서도 호강할 수 있다네. 다시 장사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는 가게 안에 버티고 앉아 종더러 대신 가격을 매겨 싼값에 팔아치우게 하였다. 물건은 며칠 만에 모두 팔렸다. 마자재는 도생을 재촉하여 행장을 꾸리게 한 다음 배를 빌려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집에 도착해 보니 도생의 누나는 벌써 집을 청소하고 침대에 이부자리까지 새로 깔아놓은 모양이 흡사 동생이 돌아올 줄 미리 알기라도 했던 것 같았다.

도생은 행장을 풀자마자 인부들을 감독하여 정자며 정원을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공사가 마무리되자 그는 날마다 마자재와 더불어 바둑을 두거나 술을 마실 뿐 다른 친구는 도무지 사귀려고 들지 않았다. 마자재는 도생을 위해 혼인을 주선했지만, 그는 언제나 사양만 하고 응하지 않았다. 누나는 계집종 둘을 보내 그의 시중을 들게 했는데, 이렇게 삼사 년이 지나는 사이 딸 하나가 태어났다.

도생은 원래부터 호주가였지만 사람들에게 취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마자재의 친구인 증생(曾生)도 주량으로 대적할 사람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침 증생이 마자재를 보러 왔기에 그는 증생을 도생에게 소개하고 더불어 술을 마시며 주량을 비교하게 하였다. 두 사람은 양껏 술을 마시고 매우 기분이 좋아 서로가 늦게 만난 것을 한탄했다. 아침나절부터 한밤중 사경(四更)에 이를 때까지 마신 술을 계산해 보니 각자가 백 병을 헤아릴 정도였다. 증생은 진흙처럼 흐물흐물하게 취해 앉은자리에서 잠들었지만, 도생은 자기 방에 돌아가 자려고 몸을 일으켰다. 문을 나서서 국화밭을 지나는 순간 그는 마치 산이 무너지듯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옷가지는 고스란히 곁에 놓인 채였는데, 도생은 땅바닥에 몸이 닿자마자 곧 사람 키만큼 높이 자란 국화로 변했다. 가지에 달린 십여 송이의 꽃은 모두 큼직큼직해서 사람 주먹보다도 컸다. 마자재가 기절할 듯이 놀라 황영에게 달려가 그 이야기를 전하자, 그녀도 서둘러 달려 나오더니 국화를 뽑아 땅 위에 눕히면서 중얼거렸다.

‘어쩌자고 이런 지경에 이르도록 취했담!’

 

역주

1)진중자(陳仲子):전국 시대 제(齊)나라 사람.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서는 그를 두고 “절개가 곧고 행동은 저항적이었다. 더러운 임금의 조정에는 들어가지 않고 난세의 음식은 먹지 않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다(立節抗行, 不入汚君之朝, 不食亂世之食, 遂餓而死)”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맹자는 그의 행위가 널리 퍼진다면 사람은 모두 지렁이가 되고 말 거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염결지사(廉潔之士)의 표본 같은 인물이다.

2)도연명은 일찍이 팽택현령을 지냈는데, 황영도 성이 도씨이기 때문에 우리 가문의 팽택령이라고 말한 것이다.

■해설

중국에서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重陽節) 혹은 중구절(重九節)이라고 해서 높은 곳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습니다. 일설에는 도연명이 중양절을 맞았으나 수중에 술이 없자 국화 한 송이를 꺾어 씹으면서 잠시나마 술에 대한 허기를 달랜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합니다만, 중양 즈음은 국화가 만발하는 시절이기 때문에 잔을 들어 국화를 마주 대하고 꽃을 감상하며 마시는 술 또한 국화주라고 불렀습니다. 이리하여 중양절에 마시는 술은 국주(菊酒), 황화주(黃花酒), 낙영주(落英酒), 동리주(東籬酒) 같은 멋스러운 이름이 붙게 되었지요.

술과 국화를 떼어놓고는 도연명의 시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도연명은 언제나 ‘술 고픈’ 시인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술 사 마실 돈이 언제나 없었습니다. 절친한 친구인 안연지(顔延之)가 그의 가난을 애달프게 여겨 보내준 돈을 몽땅 술집으로 보내 마음놓고 술 마시는 데 썼을 정도지요.

중양절과 국화에 얽힌 도연명의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당시 강주자사(江州刺史)를 지내던 왕홍(王弘)은 도연명을 존경해서 늘 술값을 대주곤 하였습니다. 어느 중양절에 도연명은 술이 없자 집 근처에서 국화를 따며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돌연 흰옷을 입은 어떤 이가 그를 찾았습니다. 알고 보니 왕홍이 그를 위해 보내온 술 심부름꾼이었지요. 흰옷은 당시 하인들이 입던 복식 색깔이었는데, 이로부터 백의송주(白衣送酒)라는 성어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희소식을 가져오거나 어렵고 위급한 지경에 도움을 주는 이라는 뜻이지요.

도연명뿐만 아니라 다른 문인들에게도 국화를 감상하고 등산을 하며 술을 마시는 것은 시부를 짓는 좋은 소재가 되었고, 역대로 이런 시와 문장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애정심리학 (항랑·恒娘) ·上
"당신 자신이 남편을 멀어지게 해놓고…"
홍대업(洪大業)은 서울 사람이다. 그의 아내 주씨(朱氏)는 자색이 몹시 고운 여자였는데 부부의 금실도 매우 좋았다. 나중에 홍씨는 계집종 보대(寶帶)를 첩으로 들였다. 그런데 보대는 용모가 주씨보다 훨씬 떨어지는데도 홍씨는 유독 보대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주씨는 이것이 불만스러워 매사에 남편과 반목하여 집안에는 말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홍씨는 드러내고 첩의 방에서 자지는 않았지만 더욱 보대를 총애하게 되어 주씨와의 관계는 갈수록 소원해졌다.

훗날 그들은 이사를 해서 적씨(狄氏) 성을 가진 비단장수와 이웃하여 살게 되었다. 적씨의 처인 항랑(恒娘)은 자기가 먼저 건너와 주씨에게 안부 인사를 전했다. 그녀는 서른을 좀 넘긴 나이였는데 용모는 수수했지만 말하는 품이 매우 경쾌하고 달변이어서 주씨는 단박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다음날은 주씨가 답방을 갔다. 보아하니 그 집에도 나이가 스물쯤 되는 어린 첩이 있었는데 생김새가 매우 귀엽고 예뻤다. 그들은 거의 반년을 이웃하여 살았지만 적씨네 집에서는 욕하고 꾸짖는 소리가 한번도 담장을 넘어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적씨는 유독 항랑만을 아끼고 사랑하여 첩은 단지 이름만 걸어놓은 존재일 뿐이었다.

하루는 주씨가 항랑에게 물었다.

“저는 줄곧 남편이 첩을 사랑하는 것은 그녀가 첩이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아내라는 명분을 바꿔 첩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지요. 그런데 당신네 집을 보니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겠어요. 부인은 대체 무슨 수단을 쓰시나요? 만약 그 방법을 전수받을 수만 있다면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항랑은 그 말을 듣고 핀잔부터 날렸다.

“아유, 당신 자신이 남편을 멀어지게 해놓고 도리어 사내를 탓하시다뇨? 당신처럼 아침저녁으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면, 이는 수풀 속으로 참새를 몰아넣는 것처럼 남자의 마음을 당신에게서 더욱 멀어지게만 할 따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남편이 얼마든지 보대를 가까이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세요. 설사 남편이 제발로 당신을 찾아오더라도 절대로 방 안에 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당신에게 또 방법을 생각해 드리지요.”

주씨는 항랑의 말대로 보대를 더욱 예쁘게 단장시켜 남편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였다. 또 홍씨가 무엇을 먹고 마시든 간에 항상 보대와 함께 있도록 조처했다.

홍씨가 어쩌다 한 번씩은 주씨를 기웃거렸지만,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남편을 거절하기에 바빴다. 그러자 집안 식구들은 모두 입을 모아 주씨의 부덕을 칭송하게 되었다. 이렇게 달포쯤 지내고 나서 주씨는 다시 항랑을 찾아갔다. 그녀는 주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몹시 흐뭇해하면서 또 다른 지시를 내렸다.

“됐어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더 이상 치장하지 마세요. 화려한 옷은 입지 말고 연지나 분도 바르면 안 됩니다. 얼굴을 더럽게 하고 다 떨어진 신발을 신은 채 하인들과 어울려 집안일을 하세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다시 저에게 오십시오.”

주씨는 집으로 돌아와 모든 일을 항랑이 시킨 대로 하였다.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더러워진 얼굴은 일부러 씻지 않고 내버려두면서 날마다 길쌈에만 열심일 뿐 다른 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홍대업이 그녀를 안쓰러워하며 보대에게 집안일을 분담시키려 하자, 주씨는 받아들이지 않고 번번이 그녀를 나무라며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주씨가 다시 항랑을 만나러 갔더니, 그녀는 입에 침이 마르게 주씨를 칭찬했다.

“당신은 정말 가르칠 맛이 나는 학생이로군요. 모레는 상사절(上巳節·역주)이니 당신을 초대해 봄동산으로 답청(踏靑)놀이를 가고 싶네요. 그날은 해진 옷을 죄다 벗어버리고 옷이고 버선이고 신발이고 간에 모두 새것으로 뽑아 입은 다음 일찌감치 저한테 건너오십시오.”

주씨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지요!”

상사절 아침, 주씨는 거울 앞에서 정성 들여 화장을 하고 모든 것을 항랑이 일러준 대로 시행했다. 단장이 끝난 다음 항랑에게 건너갔더니, 그녀는 주씨를 보고 기뻐하여 마지않았다.

“좋아요!”

항랑은 다시 주씨를 대신하여 머리형을 봉황새 꼬리 모양으로 말아 올려주었는데, 반들반들한 주씨의 머릿결은 사람의 그림자까지도 비출 지경이었다. 항랑은 옷소매가 유행에 맞지 않는다면서 소매 선을 잘라내 다시 바느질해 주었고, 또 신발 모양이 너무 투박하다고 탓하더니 대나무 상자 안에서 짓고 있던 신발을 꺼내 주씨와 함께 완성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지자 항랑은 주씨에게 새로 옷을 갈아입게 하였다. 헤어질 즈음 항랑은 주씨에게 술을 권하며 당부했다.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마주치게 되면 즉시 문을 닫아걸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십시오. 그가 와서 문을 두드리더라도 절대로 방 안에 들이면 안 됩니다. 세 번 정도 찾아오면 한 번만 받아들이세요. 그가 당신에게 입맞춤을 하고 당신의 발을 주무르더라도 계속 쌀쌀맞게 굴면서 기분 좋게 해주지 말아요. 그렇게 반달쯤 지나면 다시 저를 찾아오십시오.”

주씨가 집으로 돌아가 현란한 차림새로 홍대업의 앞에 나타나자, 그는 자기 아내를 위아래로 뚫어지게 쳐다보며 평소와는 다른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주씨는 놀러갔던 이야기를 잠깐 하고 손으로 턱을 고이며 피곤하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날도 저물지 않았는데 몸을 일으켜 자기 방으로 들어간 뒤 문을 잠그고 잠자기 시작했다.

얼마 후 과연 홍대업이 찾아와 방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주씨가 침상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하릴없이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저녁도 똑같은 상황이 재연되었다. 그 이튿날 홍대업이 주씨를 나무라며 까닭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응수했다.

“혼자 자는 게 이미 습관이 되어서요. 당신이 또다시 저를 성가시게 굴면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아요.”

그날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부터 홍대업이 안방 차지를 하고 앉아 아내를 기다리더니 주씨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얼른 등불을 끄고 그녀를 침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마치 새색시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애썼다. 홍대업이 다음날 밤 다시 오겠다고 하자, 주씨는 늘 이러면 안 된다고 버티다가 결국은 사흘에 한번씩으로 약속을 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반달이 지나 주씨가 다시 항랑을 찾아가자, 그녀는 방문을 잠그고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했다.

“이제부터는 당신 혼자서 사내를 독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예쁘기는 하지만 요염하지가 않아요. 당신의 자색으로 요염할 수만 있다면 서시(西施)라도 누를 수가 있을 텐데, 하물며 그보다 못한 사람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항랑은 주씨에게 눈을 흘겨보라고 하더니,

“그게 아니에요! 바깥 눈초리를 그렇게 뜨면 안 되죠.”

하고 지적했다. 또 그녀에게 웃어보라고 한 뒤,

“틀렸어요! 왼편 뺨에 문제가 있어요.”

라고 말하며 자기가 직접 교태를 담아 추파를 던지는 모양을 시범으로 지어 보였다. 또 눈처럼 하얀 이빨을 살짝 드러내며 미소 짓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주씨에게 그대로 흉내 내게 하였다. 주씨는 수십 번을 연습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항랑과 비슷해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항랑이 일렀다.

“이제는 돌아가세요! 집에 가서도 거울을 붙들고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해야만 합니다. 이 밖에 더 이상의 비결은 없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의 일은 상황에 따라 움직이시되 남편이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을 그때마다 던져주세요. 하기야 이런 일은 말로 전수할 수 있는 바가 아니지요.”

다음주에 계속

역주

상사절(上巳節):사대부집 부녀자들이 봄동산에 소풍 나가는 날. 한대(漢代) 이전에는 음력 삼월 상사일(上巳日)이었지만, 위(魏)나라 이후로는 삼월 초사흘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때는 봄풀들이 새로 돋아나는 절기이기 때문에 그날의 외출을 ‘답청(踏靑)’이라고 불렀다.

■해설

사람의 마음처럼 얄궂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또 있을까요? 아무리 뜨겁게 사랑하던 사이라도 한순간 돌아서면 남도 아닌 원수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상황 따라 미움이 애정으로 바뀌는 경우도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넘어선 범위에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심리적 변화의 미묘함일진대, 이를 파악해 잘만 활용하면 또한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세상에 널린 처세술 교본은 하나같이 상대방의 심리를 미리 읽고 처신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비결은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 그가 원하는 것을 상황 따라 던져주는 요령에 있다 하겠네요. 하지만 아무리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고 있더라도 그를 조종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한 법인데, 이 글의 여주인공 항랑은 그 분야의 전문가로 활약하면서 사랑을 잃고 시름에 젖어 살아가는 한 가련한 여인의 상담 역할을 자임합니다.

과연 여우 출신답게 어리석은 사내를 아내의 치마폭 안으로 되돌리는 데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는데, 그녀의 독심술은 오늘날에 적용해 보더라도 전혀 어긋날 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론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겠지요. ‘한비자’의 ‘외저설좌(外儲說左)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초나라 사람이 정나라에 가서 구슬을 팔았다. 목련(木蘭)으로 상자를 만들어 계피향을 채워 넣고 구슬을 박아 넣었으며 장미꽃과 비취새의 깃털로 장식을 했더니, 정나라 사람이 상자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었다.”

사랑에서, 인간관계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을 때 한번 새겨볼 만한 비유라고 하겠습니다.

 

임수 任秀·귀신의 복수 >
신의 없는 자에겐 귀신도 따라다닌다
임건지(任建之)는 어대현(魚台縣) 사람이다. 그는 담요나 가죽옷 따위를 팔아 생계를 꾸리고 있었는데, 한번은 가진 돈을 몽땅 털어 섬서 지방으로 장사를 나가게 되었다. 길 가는 도중 임건지는 어떤 사람과 사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신죽정(申竹停)이라 하는데 숙천(宿遷)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말도 잘 통하고 뜻도 맞았으므로 마침내 의형제가 되기로 맹세하고 함께 길을 가면서 여관도 같은 곳에만 투숙했다.

섬서에 이르렀을 때, 임건지는 별안간 병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신죽정은 여러모로 그를 보살펴주었지만 십여 일이 지나는 동안 병은 점점 깊어지기만 하였다. 임건지는 마침내 신죽정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우리 집은 본디 아무 재산도 없고 여덟 명이나 되는 식구가 오로지 나 혼자 밖에서 어렵게 벌어들인 돈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오. 이제 나는 불행히도 타향에서 객사하게 되었소. 당신은 나의 친형제나 마찬가지라오. 여기는 내 고향에서 이천 리나 떨어진 곳이니 다른 누가 있을 수 있겠소? 내 전대 안에 이백 냥이 좀 넘는 은자가 있다오. 그 중 절반은 당신이 꺼내 나를 위해 수의며 관 같은 장례용품을 사고 나머지는 당신의 여비에 보태 쓰시오. 나머지 절반은 당신이 내 아내를 찾아 전해 주구려. 그녀가 내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해 갈 수 있도록 말이오. 만약 당신이 직접 나서서 나의 유골을 고향으로 옮겨만 준다면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하지 않겠소이다.”

그는 말을 마치자 베개에 기댄 채 집으로 보내는 편지 한 통을 써서 신죽정에게 건네주었다. 그날 저녁 임건지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신죽정은 대여섯 냥의 은자로 싸구려 관을 하나 사서 임건지를 대충 염습하여 입관을 시켰다. 여관 주인이 신죽정에게 얼른 관을 옮겨 가라고 재촉하자, 그는 영구를 안치할 절을 알아본다는 구실을 대고 그곳을 빠져나와 그대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임씨네 집안에서는 그로부터 일년이 넘은 뒤에야 가장이 죽었다는 확실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임건지의 아들은 이름이 수(秀)라고 했는데, 그 당시 나이가 겨우 열일곱 살에 불과했다. 그는 선생 밑에서 공부하던 학생이었지만 아버지의 부음을 듣자 학업을 팽개치고 섬서로 가서 부친의 영구를 옮겨오려 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보내지 않으려 했지만, 임수는 아버지가 타향에서 객사한 일을 두고 숨넘어갈 듯이 슬퍼하여 마지않았다. 어머니는 마침내 몇 가지 물건을 전당 잡혀 돈을 마련한 다음 아들에게 행장을 차려주고 늙은 종도 한 사람 딸려보내 그를 돕게 하였다. 그들은 반년이 지난 후에야 영구를 고향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장례를 마치자 집안은 한 차례 홍수가 지나간 것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임수가 매우 총명하고 재능이 있어 삼년상을 마치자마자 바로 어대현의 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 경박하고 제멋대로인 데다 도박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그를 엄하게 단속하고 훈계했지만 못된 버릇은 도무지 고쳐지지 않았다.

하루는 학정(學政)이 학교에 와서 시험을 치렀는데, 임수는 거기서 겨우 사등급에 해당하는 열등한 성적을 받고 말았다. 어머니는 분통을 터뜨리고 울면서 밥을 먹지 않았다. 임수는 부끄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어머니에게 다시는 노름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는 문을 닫아걸고 열심히 공부만 했다. 일년 뒤 그는 마침내 우등생으로 성적이 올라 관가로부터 식량까지 보조받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서당을 차려 학생을 가르치라고 권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예전에 행동이 불량했다는 이유로 모두들 그를 깔보고 경원시하며 자식을 맡기려 들지 않았다.

임수에게는 아버지의 사촌동생이 되는 장씨(張氏) 성의 아저씨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서울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임수에게도 서울로 옮기라고 권유하면서 자신이 데리고 갈 테니 여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일렀다. 임수도 기꺼이 그를 따라나섰다. 임청(臨淸)이란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배는 관문 밖에 정박했다. 그때는 수많은 소금배들이 연안에 밀집해서 정박해 있던 관계로 돛대들이 마치 우거진 수풀처럼 빽빽하게 솟아 있었다. 임수는 잠자리에 들었지만 물 소리, 사람 소리가 귀를 어지럽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밤중이 되어 사람 소리가 좀 잦아들자 갑자기 다른 배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그 소리는 임수의 귓속으로 전해 들어와 그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근질근질해지며 옛날 실력을 발휘하고픈 욕구가 치솟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더니 배 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은 벌써 다들 잠든 것 같았다. 전대 안에는 일천 푼의 자금도 있었기 때문에 가슴속에는 저쪽 배로 건너가 한번 놀아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치밀어올랐다. 이리하여 슬그머니 일어나 전대를 털어 돈을 손바닥에 올려놓았지만 어머니의 훈계를 생각하자 또다시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돈을 다시 전대 안으로 집어넣고 주둥이를 꽉 졸라맨 다음 원래의 자리에 되돌려놓았다. 도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마음은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마침내 다시 일어나 전대를 풀었다. 하지만 또다시 돈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주둥이를 묶었다. 이러기를 서너 차례나 되풀이하다가 그는 결국 노름에 대한 유혹을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급기야 돈을 집어든 다음 망설임 없이 곧장 소리 나는 쪽으로 건너갔다.

이웃 배에 이르러보니 단 두 사람만이 노름을 하면서도 판돈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임수는 돈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노름판에 끼어들기를 자원했다. 두 사람 모두 임수의 합류를 기뻐하며 그와 어울려 주사위를 던지기 시작했다. 임수는 모든 판돈을 긁어모았고, 다른 두 사람은 가진 돈을 홀랑 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커다란 은덩어리를 선주에게 담보로 잡히고 약간의 돈을 빌려 도박을 계속했다. 나중에는 열댓 꿰미의 돈을 한꺼번에 모두 걸고 단판 승부를 짓기로 하였다. 그들이 한창 열이 올라 흥분하고 있을 즈음, 또 한 사람이 배로 올라와 노름판을 한참 동안 구경하더니 그도 호주머니를 털어 일백 냥의 은자를 선주에게 맡기고 돈을 빌려 판에 끼어들었다.

임수의 숙부 장씨가 한밤중에 깨어났더니 조카가 배 안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멀리서 주사위 던지는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그는 임수가 그곳에 있는 줄 짐작하고 이웃 배로 건너갔다. 갈 때는 임수에게 도박을 당장 그만두라고 말릴 작정이었지만 막상 건너가 보니 조카의 발치 아래에는 딴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천 푼의 돈을 짊어진 채 자기네 배로 돌아왔다. 그리고 같은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을 일제히 깨워 일으킨 뒤 임수가 딴 돈을 죄다 자기들 배로 옮겨 오게 하면서 단지 만 몇천 푼의 돈만을 남겨주어 노름을 계속하게 하였다.

얼마 후 세 노름꾼들은 가진 돈을 모두 잃었고 배 안에 있던 돈도 바닥이 났다. 그러나 그들은 손을 털려고 하지 않고 갖고 있던 은덩이를 판돈으로 걸려고 하였다. 그때쯤은 임수의 노름기가 이미 충족이 된 참이었기 때문에 그는 진짜 돈이 아니면 더 이상 계속하지 않겠다는 핑계를 대며 노름을 걷어치우는 시늉을 했다. 숙부인 장씨도 곁에 있다가 빨리 그만두고 배로 돌아가자는 재촉이 성화같았다. 하지만 세 노름꾼은 다급해하면서 결단코 노름을 그만둘 수 없다는 결연한 기색을 보였다. 선주는 개평을 뜯는 재미로 그만 다른 배로 가서 백여 꿰미의 돈을 빌려 왔고, 노름꾼들은 돈이 생기자 판을 더 크게 벌였다. 얼마 후 돈이 또다시 바닥나면서 전부 임수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때는 날이 훤하게 밝았고 성의 관문도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임수 일행은 딴 돈을 자기들 배로 옮겨 갔고, 세 노름꾼도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갔다.

선주는 그제야 간밤에 저당 잡았던 이백여 냥의 은자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곧바로 그것들이 죄다 주석을 입힌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기절초풍하면서 임수네 배로 올라와 은덩이가 주석 조각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임수가 딴 돈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임수의 이름과 주소를 묻고 그가 임건지의 아들임을 알게 되자, 그는 당장에 얼굴이 벌게지고 식은 땀을 흘리더니 물러간다는 인사와 함께 자기 배로 돌아갔다. 임수는 그의 행동이 미심쩍어 그 배의 수부들에게 사정을 알아보다가 그 선주가 바로 신죽정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수도 섬서로 아버지의 영구를 모시러 갔을 때 신죽정의 이름과 그의 배신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귀신에게 보복을 당한 터였으므로 그의 지난 잘못을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임수는 장씨와 함께 북쪽으로 가서 딴 돈을 밑천으로 장사를 했고, 그해 연말에는 몇 배의 이문을 남겼다. 이리하여 그는 관례에 따라 일정한 액수를 납부하고 감생(監生)의 자격을 취득했다. 그리고 장사를 계속하여 십년 뒤에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

해설

인간 사회에서 신의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아마도 없지 싶습니다. 어떤 감정과 교류가 오고갔더라도 사람 사이는 결국 서로 간에 형성된 믿음으로 결과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아무리 뜨겁게 사랑하는 남녀지간이라도 둘 사이에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오래갈 수가 없지요. 이는 어떤 경우에라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철칙일 것입니다. 포송령은 ‘요재지이’에서 인과응보의 이치를 유난히 강조하는데, 아마도 신의 없는 인간들에 대한 하늘의 징벌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귀신도 따라다니며 복수한다는 이야기 설정 자체가 바로 저자의 의분을 말해주고 있지요.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수천 리 길을 가서 아버지의 영구를 모셔옵니다. 그러나 효자는 노름이나 좋아하는 ‘개망나니’로 성장하고, 어머니는 애끓는 훈계와 눈물로 가르치지요. 아들은 어머니로 말미암아 개심하게 되지만 사람들 뇌리에 각인된 과거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인생의 정상궤도로 진입할 수 없도록 방해합니다. 결국 아들은 또 노름에 손을 대게 되는데, 다행히도 귀신 아버지의 도움으로 원수도 갚고 사업 밑천까지 마련하게 되지요.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친근하게 읽히는데, 그 중에서도 다시는 노름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임수가 도로 노름을 시작하게 될 때의 묘사가 몹시 탁월합니다.

노름판의 주사위 소리에 임수의 가슴 속에는 한없는 욕망과 불안, 유혹이 교차합니다. 고민하고 망설이다 막판에 결심이 서자 곧장 노름판으로 건너가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모든 중독된 자들의 불안한 심리와 행동양태를 읽어낼 수 있지요. 이런 실감나는 묘사는 ‘요재지이’의 또 다른 특징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