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거시기’의 사회학적 재해석

醉月 2009. 1. 12. 08:47

타령조로 쓴‘거시기’의 사회학적 재해석
죽어도 편 안 가르는, 맴과 맴을 이어주는 ‘침묵의 소리’

 

참으로 말만 많고 진심과 진실은 통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전라도 사람들은 무슨 텔레파시가 있는지 예부터 ‘거시기’ 세 글자면 모든 게 통합니다. 그동안 이 ‘거시기’란 말은 각종 영화, 문학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 해석이 시도됐는데요, 필자는 이 거시기란 말을 ‘말이 돌처럼 딱딱허게 굳은 시상에, 혼자 앙앙불락허는 미친넘들의 나라에서, 죽어도 편을 안 가르는, 맴과 맴을 이어주는 침묵의 소리’라고 정의합니다. 이 글은 전라도 사투리를 타령조로 쓴 것이므로 표준어와 맞춤법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거시기’란 말은 자연과 동심을 닮았다. 드러내지 않아도 그 속내를 알 수 있는 밝고 따뜻한 말이다.

요즘 난 거시기 헙니다. 먹는 것도 거시기 허고, 자는 것도 거시기 헙니다. 신문을 봐도 거시기 허고, TV를 봐도 영~ 거시기 헙니다. 치깐에 안저 있어도 속이 더부룩허니 거시기 헙니다. 꼭 목구녁에 무신 거시기가 걸린 것 같습니다.

꿈속에서 저승에 기신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만난 날은 하루점드락 맴이 걍 거시기 혀부립니다. 거울 속에서 삐죽삐죽 준치 까시 같이 돋은 은바늘 턱자락을 보먼, 거시기 혀부립니다. 한겨울 미나리깡 연초록 잎들을 보먼 코가 시큰허니 거시기 혀부립니다.

날씨가 꾸무럭혀서 그런가요? 나이 탓인가요? 몸이 껄쩍지근~허고, 심드렁~허고, 녹작지근~ 헌 것이 참 지랄 같습니다. 찌뿌등등~ 헌 것이 작대기로 여나무대 얻어맞은 것 같습니다. 저~, 거시기 머시냐~, 역시 나이는, 삼말사초가 질로 좋은 것 같습니다. 하먼요, 삼십대 말에서 사십대 초 때야 머 무서운 게 없었응게라.

술 머그먼 머리 속이 몽롱허니 허부적댈 때 진즉 알아보아야 혔습니다. 글자가 물범벅이 되어 희끄무레 보일 때 거시기 혔어야 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먼 손발이 저릿저릿, 허리가 시큰시큰, 모가지가 뻐근녹작헐 때 거시기를 히써야 혔습니다.

시상 일도 그렇습니다. 한창때는 기먼 기고, 아니먼 아니고, 니기미 작것, 뚜부라도 단칼에 동강내버렸는디, 인자는 머시 진짜이고, 머시 짝퉁인지 잘 모르겄습니다. 머시 옳은 거시고, 머시 그른 거신지 알다가도 모르겄습니다. 이거시 저것 같고, 저거시 이것 같고, 거시기가 저시기이고, 저시기가 그 거시기이고….

사람 속은 또 얼매나 헷갈립니까? 한 사람을 알았다 싶으먼, 금시 모르겄고, 모르겄다 싶으면, 어느 날 문득 쬐께 알거 같기도 허고. 참말로 폭폭헙니다. ‘연못에는 빠져도 사람한티는 푹 빠지지 말라’고 혔는디, 그 말뜻을 인자사 알거 같습니다. 물에 빠지먼 깨구락지 히엄이라도 쳐서 나올 수 있겄지요. 그런디 사람헌티 한번 폭 빠지먼 죽어도 못 빠져 나당게요. 정말 거시기 머시기 혀부립니다.

탤런트 김성환(1950~)의 별명은 ‘거시기’입니다. 나같이 아래 사람덜은 그를 이무롭게 ‘거시기 성님’으로 부릅니다. 한자로는 클 ‘거(巨)’자에 심을 ‘식(植)’자 ‘김거식(金巨植)’입니다.

거시기 성님이 밸 이름도 없이 방거충이 맨치로 방송국에 허청허청 댕기던 80년대, 긍게, 저~ 거시기…, 무슨 드라마더라? 하여튼 그 머시기 TV연속극에 ‘거시기’라는 뜨내기장사꾼으로 등장헌 적이 있었는디, 그때 겁나게 떠부렀지라. 그때부터 ‘거시기’가 별명이 돼부렀습니다.

거시기 성님은 입이 걸쭉헙니다. 말도 능청시럽고 능글 징글맞습니다. 남덜이 배꼽을 잡고 뒹굴어도, 자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조 으시딱딱허게 썰을 풀어갑니다. 노래도 가수 뺨치게 잘해부럽니다. 해마다 어버이날이나 연말연시가 되먼 디너 숀가 먼가를 삐까번쩍헌 호텔으서 멋들어지게 해부립니다. 아니 연기허는 사람이 먼 넘의 노래를 그렇게 징허게 잘허는 지…원. 거시기 성님이 디너쇼에서 빠지지 않고 허는 구라가 있습니다. 바로 ‘거시기 구라’입니다.

거시기 성님의 거시기 구라

나 고향은 전라북도 군산인디, 제 옆집에 아덜 삼형제를 둔 농부아자씨가 살고 있었구만이라. 근디 이 양반이 얼매나 부지런헌지 시복부터 깜깜헐 때까정, 기양 논에서 살다시피 혔지라우. 이 양반이 어느 날 시복에 논에서 돌아와 정신없이 끼대자고 있는 아들덜을 깨우는디, 그게 참말로 요상시럽다~ 이겁니다요.

“옴메, 요런 싸가지 없는 것들 보소, 해가 똥구녁 우그까지 번허게 떴는디 시상 모르고 끼대 자빠져 자고 있네 그랴. 야, 거시가? 얼릉 일어나 나 잠 봐라 이잉? 이것떨이 귀를 쳐 먹었나. 거시가? 안 일어날래! 이 썩을 오살헐 넘아! ”

거시기가 누군가? 나는 고개를 자우뚱 혔습니다. 나가 아는 3명 아덜은 모다 번듯헌 이름이 있었는디, 기양 ‘거시기’라고 부르면 어느 자식이 일어날지 나가 생각혀도 쬐께 깝깝혔습니다. 근디 누군가 “예, 아부지 시방 일어나는 구먼이라~”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큰아덜이었습니다. 히야, 큰아덜이 거시기로구나! 근디 그 아자씨 다음 말이 더 걸짝이었습니다.

   

탤런트 김성환. 그의 별명은 ‘거시기’다. 한자로는 ‘金巨植’.

“오냐, 얼릉 일어나, 나 야그 잠 들어봐라 이잉. 나가 오다봉게로 깐치다리 밑으서 집채만헌 차가 기양 노인네를 거시기 혀부렀다. 그러니 너는 허청으로 가서 거시기허고 거시기를 가져오니라.”

그러더니 그 아자씨는 또 방안에 아직도 자고 있는 두 아덜에게 때까오처럼 소락때기를 질러댔습니다.

“야, 거시기 너도 일어나라 이잉? 너그 성허고 너는 항께 거시기 히야 된게. 너도 허청에 가서 거시기 갖고 나서라! 빨리 이잉~”

“아이고 쬐께 더 잤으먼 쓰것고만~. 먼 하나씨가 시복부터 그 일을 당혀 갖고 이렇게 난리를 쳐부리는가 몰르겄네.”

둘째아덜 씨부렁거리는 소리였습니다. 마당에서는 먼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쨍그렁허니 삽 부딪치는 소리 같은 것도 들렸습니다. 그 아자씨허고 큰아덜이 무신 연장 같은 것을 챙기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자씨 입은 쉬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거시가!! 너는 성덜이 다 일어나 부새떨고 있는디 잠이 편히 오냐 이잉? 아이고 나가 전생으 무신 잠충이 고기를 아구아구 삶아 먹었는지, 새끼덜이 하나같이 잠만 퍼잔단 말이시. 이런 호랭이가 열두 번 차갈 넘덜. 그리 갖고 낭중에 밥술이나 제대로 쳐 먹고 살랑가 몰라. 거시기 넌 말이여, 너는 두 성들이 거시기허게 머시기 갖고 따라 오니라 이잉.”

“아이고 아부지 알았서라. 그렇찬혀도 일어날라고 혔는디…. 어차피 더 잠자기는 글러버렸응게로. 긍게 아부지, 저그 머시냐, 나넌 저시기만 갖고 가먼 되겄고만요 이잉. 참말로 그 하나씨도 지지리도 복도 없구만이라. 어디 사는 하나씬지는 잘 모르지만, 먼 시복부터 그렇게 길을 바삐 가시다가….”

쬐께 있다가 그 아자씨와 거시기 삼형제가 깐치다리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지라우. 가마니 봉게 첫째 둘째 거시기 아덜은 삽과 들것을 들었고, 아자씨는 짚 한 다발 허고 잿간에서 재를 퍼 담은 다라이옴박지를 허리에 끼고 있었습니다. 막내 거시기 아덜은 거적때기를 둘둘 말아 들었고요.

기가 맥혔습니다. 아니 아자씨가 헌말은 ‘거시기는 거시기허고, 저시기는 머시기 허고…’ 하여튼 모다 거시기 저시기 말만 혔는디, 그 거시기 아덜 삼형제는 어치케 알아듣고 다덜 척척 거시기허고 나섰능게라. 구신이 곡헐 노릇이지라.

긍게 상황을 조근조근 빽다구만 추려보먼, 쯧쯧 어떤 할아버지가 다리 밑 길에서 차에 치여 그만 돌아가셨는가 본디, 그걸 아자씨가 새복 논 물꼬 보러 갔다 오다가 본 것이지라. 그려서 그 시신을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응게, 들것 허고, 먼가 덮을 꺼적때기 허고, 핏자국 지울 재 같언 것이 필요혔겄지라. 글고 그 썩을 넘의 차가 길바닥을 뭉개놨을 거신 게 그걸 다시 평평허게 해놓을라먼 삽이나 머 그런 연장도 필요허겄지라.

황지우의 ‘거시기’

시인 황지우(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허 참, 거시기 성님, 참말로 찰지고 맛나게 구라를 풀어부럽니다. 참 거시기 저시기 허니 옹골져부럽니다. 어치커나 전라도 사람덜은 머시든 거시기 하나로 다 통허는가 봅니다. 히히히, ‘전라도 사람덜은 거시기로 통헌다?’ 말혀 노코 보니 쬐께 거시기 헙니다.

이 바닥에선 머니머니 혀도 황지우 시인의 ‘거시기’가 으뜸입니다. 이 사설, 아니 넋두리는 절대로 자기 편헌 대로 꺾거나 붙여서 읽어부리먼 배려버립니다. 영 가락이 안 살아나고, 맛이 안 나부린당게요. 황 시인이 처음 쓴 그대로 행갈이 험시롱 따복따복 을퍼야 꼬숩고 들척지근허고 맛나지라. 근디 도대체 이 썩을 넘의 거시기가 머다요~ 이잉?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여! 분명 무신 장은 장인디~. 허 참 알다가도 모르겄네. 초화장? 된장? 천장? 마루장? 고추장? 기왓장? 면장? 사장? 회장? 장화초? 도대체 이거시 무엇이냐!! ”

놀부란 놈, 흥부네 집에서 모개나무로 만든 화초장을 눈 부라려 억지로 하나 짊어지고 오다가, 그만 그 이름을 홀라당 까먹어버렸것다! 그려서 혼자 미친 넘처럼 중얼중얼 지랄 생난리를 치는 모습입니다. 키키키~푸하하하~. 황 시인도 놀부만큼이나 ‘거시기’가 무엇인지 폭폭허고 화완장 혔던 모양입니다.

   

워매 요거시 머시다냐

요거시 머시여

머냔 마리여

사람미치고 화안장하것네

머가 어쩌고 어째냐

옴메 미쳐불 것다 내가 미쳐부러

아니

그것이 그것이고

그것은 그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그것이라니

이런

세상에 호랭이가 그냥

무러갈 불 놈 가트니라고

너는 에비 에미도 없냐

넌 새끼도 없어

요런

호로자식을

그냥 갓다가

그냥

위매 내 가시미야

오날날 가튼 대멩천지에

요거시 머시다냐

머시여

아니

저거시 저거시고

저거슨 저거시고

저거시야말로 저거시라니

옛끼 순

어떠께 됫깜시 가미 그런 마를 니가 할 수 잇다냐

그 마리 니 입구녁에서 어떠께 나올 수 잇스까

낫짝 한번 철판니구나

철판니여

그래도 거시기 머냐

우리는

거시기가 거시기해도 거시기하로 미더부럿게

그런디이

머시냐

머시기가 머시기헝께 머시기히어부럿는디

그러믄

조타

조아

머시기는 그러타치고

요거슬어째야 쓰것냐

어째야 쓰것서어

요오거어스으을 ‘황지우 ‘거시기’ 전문’

“히히히~ 키키키~ 낄낄낄~길길길~쿠쿠쿠~” 황 시인이 아조 애간장이 다 녹아부릴라고 허는 구만이라 이잉. 누구 좀 아는 사람 없소? 있으먼 지발 좀 갤쳐주시오 이잉? 앞날이 구만리장천 같헌 대한민국 대표시인을 기앙 속 터져 죽게 만들먼 쓰겄소? 나도 폭폭허니 맴이 맴이 아니구만이라. 허지만 나도 그 뜻이야 몸으로는 알지만, 어치케 말로는 표현 못 헌당게요. 거시기란 뜻은 구신도 말로 표현 못헌당게라. 안개 같은 것인게라. 바람 같은 것잉게요. 바람은 잡었다 싶으면 날아가 버리고, 날아갔다 싶으먼 살랑살랑 꼬랑지를 치면서 몸을 간질이는 아조 쌩보고리 인게요.

   

미당 서정주 선생. 아래는 서정주 선생의 생가. 그는 이곳에서 ‘거시기’를 연발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을 터.

미당 선생의 거시기 해석

미당 서정주 선생은 혹시 알았을랑가요? ‘거시기’가 먼지 야물딱지고 똑부러지게 말로 혀놓고 가셨을랑가요? 그 양반이야, 생전에 원체 표현을 곰살 맞고 아금박시럽게 잘 히여부렸응게 말입니다. 거그다가 고향도 전라도 고창 땅 아니랑가요? 잘은 몰라도 어렸을 적부터 겁나게 ‘거시기’란 말을 입에 달고 살었을 것입니다. 아하, 저그 머시냐~, 마침 여그 ‘저 거시기’란 시가 있구만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서로 주고 또 받는 말씀 가운데

무언지 말문이 막히고 말면

항용으로 누구나 허물없이 쓰는 말

저, 거시기…저, 거시기…

그것이 있지?

누구나 맛 부쳐서 오래 두고 써 온 말

저, 거시기…저, 거시기…

그것이 있지?

‘서정주 ‘저 거시기’ 부분’

얼라? 아니 이것이 먼 한가헌 말씸이라요? 아, 말문 맥힐 때나, 잘 생각이 안 날 때 쓰는 거야 우리도 다 아는 거시고, 또 허물없이 어조사같이, 기양 매급시 군말로 쓰는 것도 다 아는 거신디, 다 아는 뻔헌 거슬 멋 헐라고 또 무담시 거시기 허셨을 까라 이잉? 입 열먼 누가 말 안 혀도 그 정도 거시기는 맨날 나오는 거시기인디…. 그럼, 어디 한번 들어보실랑가요?

“아, 거시기 있잖혀 이잉? 저그 거시기에 나오는 주인공 말이여?”

“아니 자다가 먼 봉창 뚜디리는 소리여? 갑자기 먼 거시기여?”

“아이고, 거 착허게 생긴 국민 머시다냐 말이여. 쬐께 코뱅맹이 소리 허는 거시기 말이여.”

“아하, 그 거시기…안성기이~”

“근디 마리여, 거시기의 뿌랑구는 대체 머시랑가? 자네 고것을 쬐께 알고 있는가 몰라?”

“그거야 ‘것’이제 이잉. 그 작것, 오살헐 것, 육실헐 것…헐 때 말허는 ‘것’이여.”

“그럼 그 물건 말이여, 그 거시기도 거시기랑가?‘’

“아니 두말허먼 잔소리지 이잉. 이 시상에 거시기 아닌 것 있당가? 사람덜이 ‘쉬~’ 허는 그 작것도 다 거시기라고 헐 수 있제. 어떤 사람덜은 그 거시기를 그대로 표현허기가 쬐께 저시기헌게 기양 거시기라고 말혀버리제 이잉. 한마디로 확실헌 뜻도 없음서 모든 말을 아우르는 말이 ‘거시기’이고 ‘저시기’여~. 부끄러워서 표현하기가 머혀도 거시기, 머리 속이 까막까막혀서 잘 생각이 안 나도 저시기, 잘 아는 것도 심심허먼 거시기~”

“아니 그것을 그대로 불러먼 머가 어떻다고 그것을 거시기라고 헌당가? 좋은 이름 놔두고 꼭 거시기라고 히야 쓰까 이잉?”

“허기사 인간덜만 부끄럼 타지, 다른 동물들이야 그 거시기를 뻔뻔시럽게 다 내놓고 댕김서도 아무렇지도 안응게. 다른 것들이 보거나 말거나 벌건 대낮에도 수컷 암컷이 그 거시기를 맞대서 이층을 만들어버리는 판인게. 식물들은 한술 더 떠버린 게 더욱 헐말 없고…. 온갖 이쁜 꽃들이 알고보먼 다 그 거시기 아닌가? 아니 어치케 인간이라먼 그 거시기를 자랑시럽게 드러내놓고 ‘나 이쁘지?’ 헌당가? 한마디로 벌과 나비들헌티 자기 거시기를 울긋불긋 색칠혀서 내놓는 식물들이야말로 ‘천하의 호로 자석’ 아니먼 ‘선악미추를 초월한 보살님’이네 그려.”

“듣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저시기가 거시기혀 부린게 영 거시기혀 불고만 이잉.”

‘거타지 설화’는 거시기 설화

하여튼 미당 선상님이 굳이 말씸 안 허셔도, 국어사전 떠들러 보먼 다 나오는 거시기인디…. 야그허다가 쬐께 뜸 들일라고 헐 때도 “저, 거시기~” 험서 헛기침 몇 번 허는 거시고, 야그 허다가 짐짓 나 말에 빠져 있는 상대방 애간장 녹일라고 “저, 거시기 있잖혀?” 허고 길게 빼면서 능너리를 슬쩍 한번 쳐보는 거시고….

차라리 ‘시란 거시기다’ 허먼 역시 미당 선상님이다 헐거신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거시기는 봄부터 그렇게 거시기 혔나부다’혀도 다 알아들을 거신디. ①말하는 도중에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때 그 이름 대신으로 쓰는 말. 대명사. ②말하는 도중에 갑자기 말이 막힐 때 내는 군말.

물론 미당 선상님 시는 여그서 끝나지 않고 그 뒤로도 한참 질게 나오지만, 거시기에 대한 뜻은 이것이 전부라고 헐 수 있구만이라. 그 다음 야그는 일연 시님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거타지(居?知)설화’를 약간 각색헌 것이라고 헐 수 있응게요.

   

‘거시기’를 영화의 주요 테마로 설정한 영화 ‘황산벌’.

‘거시기는 신라의 진성여왕 때/사실로 살아서 숨쉬고 있던/정말로 따분한 총각이었네./팔자가 제일 흉한 총각이었네./수투룸하지만 활도 잘 쏘고/성명 삼자도 쓸 줄도 알았는데/똥구녁이 다 말라서 찢어질 만큼/너무나 너무나도 가난했었네./그래서 대국의 당나라에로/챙피하게 조공을 바치러 가는 배에/호위병을 지망해 한몫 끼어 갔는데,/그래서라도 목구먹에 풀칠하며 갔는데,//팔자 사나운 놈은 독에 들어가도 못 피한다고/때마침 바다에는 태풍이 몰아쳐서/그 배는 밀려가다 외딴 섬에닿았지./용왕님이 노하셔서 이래 싸시니/한 놈은 희생으로 여기 두고 가야 해!/선장의 명령으로 그 한 놈을 제비 뽑는데/재수도 지지리는 못 타고 난 놈/우리 거시기가 거기 또 뽑혔지.//운수 좋은 사람들이 배 타고 떠난 뒤에/거시기만 혼자서 먼정다리같이 섰는데/머리가 하아얀 할애비가 와 말씀키를/너를 집어 먹자는 건 용왕이 아니라/늙은 여우가 둔갑해 된 마왕이니라./이 몸은 사실은 동해용왕이지만/동해에서 호국룡 된 문무대왕님께는/나도 한 부하의 신분에 있는 터라,/딴 배포를 가지는 좌파는 아니다./그런데 근일에 그 마왕놈이/우리 식구는 모조리 다 잡아먹고/시방은 나하고 막내딸 하나만 남았다./하루에 하나씩을 잡아먹으니/내일 모레까지면 우리는 없고,/그 다음날은 할 수 없이 네 차례가 될 것이다./어떻냐? 너는 아조 활을 잘 쏜다면서?/이판사판 한바탕 겨뤄 보지 않겠니?/앞뒤를 다 터놓고 말씀하는 거였네./험상스런 팔자에는 매양 붙어 다니는/구사일생 신세에나 또 한차례 놓였지.//그래선데, 거시기가 곰곰 생각해 보니/제 아무리 죽을 판에도 의리는 있어야는 거라/할애비의 부녀를 그대로는 둘 수 없어/이튿날은 새벽부터 활을 메고 나섰는데,/어디선지 웅얼웅얼 주문 외는 소리가 나더니/흑심에 철갑을 두른 마왕은 드디어 나타났네./화살이 가 꽂힐 구먹은 하나도 안 보였네.//그렇지만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하지?/젖먹이 때 기른 힘은 어디다 아껴 두고,/배내기 때 먹은 힘은 어디에다 놓아두나?/ 거시기도 그래도 그것은 알고/어디 한번 살고보자! 살고 보자! 고/그 여우의 염통을 향해 활을 당겼네.//그러신데 이 세상엔 땡도 있긴 있는 것이야./굼벵이도 어쩌다간 딩구는 재주가 있다고/거시기가 쏜 화살이 애앵 날아가더니/꼭 거짓말같이만 고 여우의 염통을 가 맞췄네./이거야 정말 천지가 또 한번 개벽해 볼 일이지.//그래설라문 잔 사설은 다 빼고/왜 그 남해용왕 할애비의 막내딸 아이 있지 않아?/나이는 금시 이팔청춘이고/이뿌기는 산복숭아 꽃봉오리 새로 머문 것 같은데/제절로 요걸 얻어설랑 가슴패기에 끼리고,/파도 개여 잔잔한 날을 골라 배를 띄워서/고향으로 흔들흔들 돌아갔나니,/돌아가선 좁쌀이니 호박이니 수수목도 가꾸고/새끼들도 조랑조랑 까서 데불고/센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오랜 살면서/거시기 팔자 상팔자로 고쳐 갔나니.’

‘서정주 ‘저, 거시기’ 부분’

아픔을 가리는 말 ‘거시기’

간단히 야그혀서 미당은 거타지의 ‘타(?)’자가 잘못됐다는 것이지라. 그것은 원래 ‘시(施)’ 자였다는 거시지요. 즉 ‘거시기’의 우리말 한자표음표기인 ‘거시지(居施知)’라는 겁니다. 미당은 ‘거시기’란 이름이 신라시대에는 흔히 쓰였다고 말헙니다. 어느 정도였냐 허먼 조선시대 상놈덜 이름에 흔히 썼던 ‘바위’니 ‘큰 놈’이니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삼국사기 문무왕 편에 보먼 어느 현령 이름이 ‘거시지(居施知)’였을 정도라니까요. 근디 미당 선상님은 신라시대에 살아봤당가요? 어찌 그리 직접 본디끼 말헌대요? 혹시 미당 선상님 자신 이름이 신라시대에 ‘서 거시기’ 아니었을랑가요?

히히히, 그건 그렇다쳐도 미당 말대로라면 영화 ‘황산벌’은 또 뭔가요? 신라사람덜이 ‘거시기’를 더 잘 알고 있었다는 야근디, 김유신 장군은 멋헐라고 ‘거시기’의 뜻을 알라고 그 난리를 쳤당가요?

허기사, 김유신 장군은 처음부텀 황산벌 전투에서 빨리 이기려는 뜻이 밸로 없었응게요. 그냥 뭉그적거리고 앉아서 시간만 벌고 있었다먼 좀 심허게 야그헌 건가요? 당나라군 13만과 백제 주력군 10만(+왜군 수만명)이 맞붙은 기벌포 싸움이 어치케 되는가? 누가 이기는 가? 사실 그것이 문제였지라. 당나라가 이기먼 신라군도 얼릉 황산벌에서 백제군을 깨고 사비성으로 나가먼 되고, 백제군이 이기먼 적당히 핑계를 대서 경주로 컴백홈!! 허먼 되ㅇ게요.

아니 명색이 5만 군대가 5000군대에 막혀서 그 중요헌 기벌포 전투에 참가를 못허다니요? 무신 ‘거시기’라는 암호를 못 풀어서 계백장군헌티 막혔다니요? 푸하하하! 황산벌은 바위로 된 천연요새도 아니고 그냥 사방이 툭 터진 들판일 뿐인디…그런디서 어치케 5000명이 5만명을 이긴대요? 맘만 먹으먼 어린애 손목 비틀기지라. 김유신은 될 수 있으먼 피를 쬐께만 흘리먼서, 손 안 대고 코 풀라고 일부러 게으름을 핀 것이고, 결국은 그렇게 되야버렸지라.

   

아이고, 야그가 쪼께 옆으로 새 번졌구만이라. 긍게 다시 거시기 야그인디, 영화 황산벌에서 의자왕은 계백장군헌티 “아무려도 니가 거시기 혀야겄다”고 말헙니다. 계백은 거시기가 먼 뜻인지 한순간에 척 알아듣습니다. 결사항전. 한마디로 죽으라는 것이지요.

계백도 부하덜헌티 말헙니다. “우리의 전략적인 거시기는 머시기헐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 헌다” 부하들도 단번에 알아듣습니다. 죽을 때까지 갑옷을 벗지 말라는 뜻을.

긍게 결국 ‘거시기’는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알지만, 그것을 굳이 말로 딱 부러지게 표현헐 필요가 없는 것이구먼요 이잉. 의자왕이 계백장군헌티 “너가 목심을 바쳐서 싸워야겄다! 죽을 때까정 싸워라!! ”라고 노골적으로다가 표현허기가 좀 거시기헌 거시지라. 쬐께 미안허기도 허고, 짠허고 껄쩍지근 허고….

계백장군도 마찬가지지라. 부하덜헌티 ‘머시기헐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 허라’고 혀야지 ‘죽을 때까지 갑옷을 벗을 수 없다’고 헐 수 없응게요. 어차피 부하들도 죽을 줄 잘 알고 있는디, 굳이 그 말을 다시 입에 꺼내, 그 시린 가심에다가 또 소금을 쳐댈 필요는 없응게요.

언론인 이광훈씨는 거시기의 ‘쿠션 기능’에 감탄헙니다. 대충 애매헌 것은 거시기라고 허먼 두루 통한다는 것이지라. 물론 자기들끼리는 속속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어야겄지요.

탤런트 김성환씨가 말헌 ‘군산의 거시기 삼형제와 그 아부지’처럼, 오래 한솥밥 먹은 사람들끼리는 일일이 모든 것을 콕 찝어서 말헐 필요가 없지요. 이 때는 거의 ‘거시기 머시기 저시기’로 다 통헙니다.

알면 쉽고, 모르면 암호

긍게 1960년대 이전까지만 혀도, 시골에서는 누구네 집에 숟가락 몇 개가 있는 거까정 다 알었습니다. 그 동네 사람덜끼리는 아무리 거시기 머시기라고 혀도 다 알아들었을 밖에요. 다 알고 있는디, 굳이 그것을 머땜시 재미없게, 헌 말 또 허고, 또 허고 그런다요?

아 참, 저그~머시냐~ 어떤 사람덜은 ‘무시기’라는 말도 쓸 때가 있습니다. 아니, 거시기도 헷갈리는디 무시기는 또 먼 구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랑가요? 무시기는 ‘무엇’이 변해서 된 말이고, 머시기는 무시기의 사촌이라고 보먼 되겄습니다. 머시기의 ‘머’는 무엇의 준말인 ‘머’를 어원으로 갖고 있응게요. 긍게 ‘무시기, 머시기’는 ‘거시기’ 허고는 쬐께 거시기 허다고 헐 수 있지요. 하지만 ‘저시기’는 거시기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시기가 구개음화 되어 저시기가 되어부렀응게요.

“어이, 무시기부터 히야 쓴당가? 나 생각으로는 거시기부터 히야 쓰겄고만 이잉. 우리 무시기 갖고, 슬슬 저시기 좀 히어보까 이잉?”

그건 그렇고 또 야그가 샛길로 빠져부렀는디. 일단 이광훈씨 야그 잠 들어봅시다.

“거시기나 머시기는 참으로 편리한 낱말이다. 화투판에서 껍데기로도 쓰고 열끗짜리로도 쓰는 국화패처럼 적당한 단어가 얼른 생각나지 않을 때도 쓰고, 면전에서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곤란할 내용을 전달할 때도 쓸 수 있는 양수겸장의 단어이기 때문이다.…거시기나 머시기는 오랫동안 바깥세계와 담을 쌓고 사는 동질성이 높은 사회에서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낱말이다.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뉘집 둘째아들 거시기는 곧 머시기한다더니…’라고 말하면 식구들은 그 거시기, 머시기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금방 알아듣게 마련이다.”

솔직히 말혀서 니가 알고 나가 안다면, 거시기 한 단어로 표현 못 헐 말이 없습니다. 거의 무한대라고 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후사정을 잘 모르는 남덜이 들을땐, ‘지덜끼리 비밀을 지키기 위해 소근대는 암호’로 생각될 소지도 없지 않아 쬐께 있다고 하겄습니다.

말이 말 같지 않은 세상

참말로 말 많은 시상입니다. 말들도 얼매나 번드르르 헌지, 말만 듣고 있자면 태평성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부립니다. 근디 문제는 같은 편일 때만 거시기허다는 겁니다. 내 편이 아닐 때는 가차없이 ‘창 같은 말’ ‘비수 같은 말’이 거시기헙니다. 상대 가심을 꼭꼭 찌르고, 상대 거시기를 베어버립니다.

여당의원이 ‘저것은 거시기허다’고 말허먼, 곧바로 야당의원이 ‘이것은 저시기허다’고 맞받아쳐부린게요. 모든 단어가 똑 부러지고 옹골진 말들인디, 그 속은 알고보먼 텅텅 빈 맹탕입니다. 모다 진정성이 하나도 없는 싸가지 없는 말들입니다. 말이 말을 낳고, 그 말들은 화살이 되어 이곳저곳 강호를 활개침서 댕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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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망쳐놓은 것은 하나같이 배운 사람덜입니다. 까막눈 시골 농부나 산골 할머니 할아버지들 말씸은 쬐께 촌시럽고 투박헐지 몰라도 그 속은 꽉 차있습니다. 그분들은 ‘거시기’란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다 통해부립니다. 굳이 많은 단어가 필요 없응게요. 이미 맘으로 다 통허는디, 무신 군더더기가 필요허겄습니까. 그분들헌티 말이라는 것은 그 마음을 확인허고 다짐허는 노래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쇼세키(1867~ 1916)는 어느 날 한 정치인으로부터 정중한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곧 하이쿠(일본 특유의 단시)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

1960년대 어느 날 서울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신동엽(1930~1969) 시인은 고래고래 외쳤습니다. “국회의원 두 개에 십 원!, 국회의원 두 개에 십 원! ”

이 땅의 정치인들 말은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같이 “나만 옳다”고 고래고래 소락때기를 질러대는지 모르겄습니다. 입만 열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험서도 막상 국민덜 소리는 하나도 듣지 않습니다. 인자 하도 속고 지쳐서 그들의 말은 거꾸로 들립니다. ‘정부’라고 허먼 ‘부정’으로 들리고, ‘사치’라고 허먼 ‘치사’로 들려부립니다. ‘부자’는 ‘자부’이고, ‘재산’은 ‘산재’이고, ‘여행’은 ‘행여’이고, ‘병사’는 ‘사병’이고, ‘일생’은 ‘생일’이고….

공무원 경찰관 선생님 언론인 고위군인들…하나도 다를 거 없습니다. 다 ‘네 잘못’이라고 손가락질혀대기 바쁩니다. 요즘 시상에 언론이 어디 있당가요? 기양 자기덜이 보고 자픈 것만 보는디…. 이 방송 저 방송도 들어보고, 이 신문 저 신문 모다 봐야 어럼풋이 그림이 쬐께 그려질랑가 말랑가 혀부립니다.

말이 ‘무기’가 된 시대

소설가 김훈은 ‘댓글 세상’이라고 말해버립니다. 더 이상 말이 통허지 않으면 ‘무기의 시대’가 온다고 말헙니다. 인자 더 이상 ‘듣기 세상’은 사라졌다고 한탄헙니다. 온갖 넘이 소락때기만 지르지 말고 일단 좀 남의 말을 들어봐야 허는디, 듣는 넘은 하나도 없으니 ‘소음의 시상’이 된 것이지요. 온갖 개소리덜이 어지러운디, 더 웃기는 짬뽕은, 맨 처음 짖는 개야 그려도 먼가 쬐께 알고 짖는다고 혀도, 그 나머지 개덜은 무조건 처음 짖는 개를 따라 지악시럽게 짖어댄다는 겁니다. 꼭 푹푹 찌는 여름날, 악머구리 떼 울부짖는 거 같당게요.

“말은 허약한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칼럼을 써서 자기 의견을 주장했다고 치자. 아주 고귀하고 고매한 진리를 말했다고 치자. 나의 생각과 정반대로 이야기를 해도 훌륭한 말이 된다. 그 반대로 이야기해도 또한 말이 성립이 되고 훌륭한 담론이 되고 멀쩡한 틀이 된다. 그럼 나의 말은 무엇인가. 나의 주장은. 그것은 남의 언어에 의해서 부정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나를 부정한 남의 말, 그것은 또 다른 언어에 의해서 부정된다. 이 허약한 것이야말로 언어의 힘인 것이다. 언어란 바로 그렇게 무너지고 수정되듯 허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소통할 수 있는 힘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언어가 완강한 돌덩어리처럼 굳어져 다른 언어에 의해서 절대로 부서질 수 없다면, 그것은 언어가 아니고 무기이다. 그런 언어는 소통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의 언어는 무기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고 믿는다. 소통을 단념한, 단절만의 정의이다. 단절만이 완성된 것이다.……말이 세계를 개조한다는 것은 아마 말이 세계를 개조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말로 해서 안 되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말로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 다음은 무기의 세계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언어적 비극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채팅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듣기가 안 되니까 청각장애인들이 다 모여 있는 것이다. 혼자서 담에 대고 떠들어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언어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요즘 신문이나 저널을 읽기가 너무 어렵다. 왜냐하면 그 언어가,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것이다.”‘‘바다의 기별’-생각의 나무’

말이 돌처럼 딱딱허게 굳은 시상. 청각장애인들의 채팅 전성시대. 저마다 담벼락에 대고 혼자 앙앙불락허는 미친넘들의 나라. 거시기는 아조 물렁허고 말랑말랑허기 짝이 없는 허약헌 단어입니다. 되는 거도 없고 안 되는 거도 없고, 이 놈이 ‘어’ 허먼 ‘어’ 허고, 저 놈이 ‘응’ 허먼 ‘응’허고, ‘사실’이라먼 ‘그런게비다’ 허고, ‘의견’이라먼 ‘또 그런게비다’ 헙니다. 거시기는 속창아리가 없습니다. 실체도 없고, 무신 뜻도 없고, 낙지같이 흐물흐물 뼉다구 없는 연체동물입니다.

그런디도 거시기는 모든 것을 다 품에 안습니다. 바닷물도 안고, 강물도 안고, 또랑물도 안습니다. 진보도 이쁘다 허고, 보수도 이쁘다 허고, 뚱보도 멋있다고 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최고라고 헙니다. 거시기는 죽어도 편을 안 가른당게요. 그냥 모든 게 거시기허고 저시기헙니다. 그것은 맴과 맴을 이어주는 ‘침묵의 소리’입니다.

차돌멩이의 말을 녹여줬으면

이 시상에 어떤 단어도 사물을 정확하게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꽃’이라고 부르는 순간 진짜 ‘꽃’은 화르르 휘발혀부립니다. ‘촛불’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 ‘촛불의 본질’은 훨훨 날아가버립니다. 말은 그냥 사물의 냄새나 기억을 쬐께 담을 수 있을 뿐입니다.

이 땅별에 사는 모든 먹물들은 ‘말의 노예’들입니다. 말이나 단어 속에 모든 게 들어 있다고 생각혀부립니다. 그려서 말의 신도가 되고, 낭중에는 지가 그 말의 주인이 됐다고 생각헙니다. 맘껏 말을 부릴 수 있다고 착각혀부립니다. 말로 창과 비수를 만들어 눈깜땡깜 마구마구 휘둘러버립니다. 그 순간 그는 말의 노예가 되는 거신디, 그걸 까맣게 모릅니다.

지발 2009년엔 말들이 지 자리를 찾었으먼 좋겄습니다. ‘거시기’ 같은 말랑말랑헌 말들이 차돌멩이 같은 언어들을 쬐께 녹여줬으먼 좋겄습니다.

“어이, 나가 마리여, 어저끄 거시기랑 거시기 허다가 거시기 헌티 거시기 혔는디, 걍 거시기 혀부렀다.”

“오매~이잉~어찌 쓰까 이잉? 긍게 나가 그렇게 거시기랑 거시기 허지 말라고 거시기 허잖든가? 사람이 먼 말을 허먼 좀 거시기 히야지 원.”

“아따 왜 그런다요 이잉~? 사람 사는 이치가 어치케 거시기 안 허고 거시기 헌다요. 그냥 나가 거시기 혔다고 생각허고 거시기 혀 부리제.”

“허, 자네 참, 뱃속 한번 거시기 허고만 이잉. 그리고 이 사람아, 앞으로는 거시기는 구신도 모르는 거신게 나헌티 자꼬 거시기 거시기 혀싸지 마소! 인자 고만 좀 거시기 머시기 혀라 그말이네.”

“긍게요 이잉. 저그 거시기 머시냐, 나도 거시기를 안헐라고 저시기 허는디, 자꼬만 거시기가 나오는디 어치케 거시기 헐 거시오. 앞으로 조심헐 팅게 우리 그런 뜻으로 한번 거시기 혀부립시다. 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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