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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안방 극장‘만화’가 점령한다

醉月 2009. 1. 19. 08:41

2009년 안방 극장‘만화’가 점령한다

고우영 <돌아온 일지매>·이현세 <공포의 외인구단> 방영 앞 둬 <버디><탐나는 도다><신의 물방을>도

기획 또는 촬영 단계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고우영 원작에 신세대 스타들이 출연한 <돌아온 일지매>(왼쪽)가 곧 드라마로 선보인다.

ⓒ(주)지파워크샵 제공

19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만화 고우영의 <일지매>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일지매>는 MBC에서 <돌아온 일지매>라는 타이틀로 1월21일부터 안방을 찾을 예정이고, <공포의 외인구단>은 <2009 외인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올 상반기 방영을 목표로 현재 제작 중이다.

두 작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화 작가인 고우영, 이현세의 대표작이다. <일지매>는 1975년부터 3년간 신문에 연재되었고, <공포의 외인구단>은 1983년 출간되었다. 세상에 나온 지 30여년 된 작품들이 드라마로 다시 제작되는 것이다. 당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추억의 만화가 어떤 드라마로 재탄생될지 주목받고 있다.
<돌아온 일지매>는 황인뢰 감독이 연출을 맡고 일지매로 분한 신세대 배우 정일우를 비롯해 윤진서, 김민종, 정혜영 등이 출연한다. 황인뢰 감독은 지난 2006년 박소희의 원작 만화 <궁>을 드라마로 만들어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중견 감독이다. 그는 “특별히 만화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원작이 있으면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30년 전에 연재된 만화 작품이지만 캐릭터가 모던하고 문학성이 있어 작품을 만들면서 고우영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홍길동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영웅 캐릭터인 일지매는 이미 지난해 방송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이준기를 주연으로 내세워 SBS에서 방송한 <일지매>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돌아온 일지매>는 먼저 성공한 <일지매>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돌아온 일지매>는 애초 주연으로 내정되었던 이승기가 하차하고, 카메오로 출연한 이경영의 출연 분이 삭제되는 등 제작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고우영 원작의 판권을 정식으로 구입한 만큼 원작의 힘을 바탕으로 시청률 사냥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황인뢰 감독은 “<일지매>가 먼저 시작되었지만 원작을 확보한 상황에서 오기가 났다. 기본적인 스토리텔링에서 원작과 최대한 가깝게 만들려고 했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차별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꽃보다 남자>도 일단 순항 <2009 외인구단>은 9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20부작 드라마로 오혜성 역에 윤태영, 최엄지 역에 김민정을 캐스팅해 제작 중이다. 지난해부터 촬영에 돌입해 CG 작업을 위한 주요 야구 경기 장면을 비롯해 60%의 촬영을 끝마쳤다. MBC와 방영 시기를 놓고 조율 중이다. <2009년 외인구단>은 인기 만화가 황미나가 극본을 맡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순정만화 작가인 황미나가 남성적인 색채가 강한 원작 만화에 어떤 변화를 줄지 주목된다.

만화가 드라마의 소재로 각광받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SBS에서 허영만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식객>과 <타짜>를 방영해 높은 인기를 누렸고, 현재는 KBS 2TV에서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에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꽃보다 남자>가,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김진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바람의 나라>가 안방을 찾고 있다.

드라마로 기획되고 있거나 이미 촬영에 들어가 방영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도 골프를 소재로 한 이현세의 최신작 <버디>, 17세기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정혜나의 <탐나는 도다>, 와인을 소재로 한 인기 일본 만화가 아기 타다시의 <신의 물방울> 등이 있다. 이전에도 <궁> <쩐의 전쟁> <다모> <풀 하우스> <미스터 Q> <아스팔트 사나이> 등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었다.

이들 드라마의 시청률을 보면 드라마 제작사들이 만화 원작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시청률 조사 기관 TNS미디어코리아의 조사 결과 지난 1월7일 <바람의 나라> 시청률은 17.4%로 동시간대 드라마 중 최고를 기록했다. <바람의 나라>는 <베토벤 바이러스> <바람의 화원> <종합병원2> 등 강력한 경쟁작들과의 시청률 싸움에서도 선두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꽃보다 남자>는 방송 2회만에 17.6%를 기록하며 <에덴의 동쪽>이 선점하고 있던 월화 드라마에서 경쟁 체제를 갖추었다. 특히 <꽃보다 남자>는 경쟁 드라마의 시청률을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청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1월6일 방송된 3사 월화 드라마 시청률의 합은 53.3%를 기록했다. 월화 드라마 3편의 시청률 합계가 50%가 넘은 것은 <이산>과 <왕과 나>가 경쟁을 벌이던 지난해 4월 이후 처음이다.

   
▲ 윤태영과 김민정이 각각 오혜성과 최엄지로 분한 <2009 외인구단>. 원작 만화와 영화의 인기를 넘어설지 주목된다.
ⓒ(주)그린시티픽쳐스 제공

신·구 세대 공감 얻어내는 것이 관건

이전에 안방극장을 찾았던 만화 원작 드라마들도 시청률에서 선전했다. <쩐의 전쟁>(36.3%), <풀 하우스>(37.6%), <아스팔트 사나이>(32.9%)가 최고 시청률 30%를 넘겼고, <궁>(20.3%), <다모>(24.2%)는 20%를 넘겼다. 특히 드라마의 완성도까지 더해진 <다모>와 <풀 하우스>는 명품 드라마 신드롬을 형성하기도 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성공하는 것은 그만큼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는 호흡이 긴 미니시리즈를 이어가는 데 도움을 준다. 대중들로부터 이미 한 차례 검증을 받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원작 만화의 독자를 드라마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이 어떻게 실사로 옮겨질지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다른 드라마에 비해 만화 원작 드라마의 캐스팅에 유달리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중들로부터 검증을 받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이미 출간된 지 한참이 지난 후에 드라마로 만든다는 것은 분명히 모험이다. 월화·수목 미니시리즈의 주 시청자인 10~20대의 젊은 층 중에 <일지매>와 <공포의 외인구단>을 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라마로 성공한 만화 원작의 대부분은 <다모> 정도를 제외하고는 방영 당시 한참 인기를 누리고 있던 작품이었다.

원작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30대 이후 시청자들을 TV 앞에 앉히면서 신세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둘 사이의 간극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2009 외인구단> 제작사 그린시티픽쳐스의 하승민 프로듀서는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통한 화려한 비주얼과 각색 작업을 통한 원작 캐릭터의 현대화, 스토리 라인의 강화를 통해 원작에 열광했던 중·장년층부터 빠른 스토리와 화려한 비주얼에 열광하는 젊은 층에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어필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두 거장 만화가의 작품 <일지매>와 <공포의 외인구단>의 드라마 버전이 신·구 세대의 공감을 모두 얻어내며 신세대 만화 원작 드라마와 일본 만화 원작 드라마의 인기를 넘어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황금 콘텐츠를 잡아라” 불붙은 판권 전쟁

   
ⓒ시사저널 박은숙
드라마 제작사들이 만화 판권 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소재가 다양해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에 식상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고, 스토리보드를 연상시키는 그림과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 전개가 드라마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현재 드라마로 기획되거나 제작 중인 <신의 물방울> <탐나는 도다> 외에도 신영우의 <서울협객전>, 신인철의 <차카게 살자>, 윤미경의 <하백의 신부>, 이은의 <분녀네 선물가게> 등의 판권이 팔려나가 드라마로 옮겨질 날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 <서울협객전>은 팬엔터테인먼트가, <차카게 살자>는 김종학프로덕션이 판권을 구입했다. <하백의 신부>는 <궁>, <돌아온 일지매>로 만화 원작에 익숙한 황인뢰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만화가 드라마에 소재를 제공한다면 드라마는 만화의 판매고를 높여준다. 드라마 방영으로 원작 만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환기되면서 원작을 확인하려는 시청자들이 서점을 찾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만화 한 편이 드라마 제작사와 출판사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서울문화사 라이츠사업팀의 유재옥 팀장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제작되는 것이 더 좋다”라고 밝혔다. 흥행 결과에 따라 노출이 짧은 영화보다는, 그래도 드라마는 최소 한두 달 이상의 방영 기간 등 비교적 긴 시간 동안 대중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드라마가 출판 만화 판매 촉진에도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도 만화 잡지 <윙크>에 연재 중인 <궁>의 경우 12권째가 출판되던 무렵에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궁>은 1권당 10만부가 나갔다. 최근에는 20권까지 나오면서 꾸준히 팔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드라마가 방영되었을 때만큼은 나가지 않고 있다.

만화가 원소스멀티유즈의 중심 콘텐츠로 각광을 받으면서 만화 판권 거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만화의 국내용 드라마 부가 판권은 작가가 50~90% 정도를 갖는다. 출판권을 가진 출판사가 계약을 주도하면서 해외에 수출할 경우에는 계약 금액의 50%가 출판사에 돌아간다. 최근에는 부가 판권 시장이 커지면서 출판사에서 만화가와 계약을 맺을 때부터 이와 관련된 조항을 세세하게 따지는 분위기이다.

만화 강국 일본에서도 자국 만화의 해외 부가 판권 판매 기준이 엄격해지고 있다. 한류로 인해 일본 만화 원작 드라마가 역수출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것이다. 일본 만화가 원작은 아니지만 <궁>은 일본에서 <겨울연가> 다음으로 히트하며, 방영 당시인 2007년 출판 만화도 100만부가 팔렸다. 이로 인해 일단 일본에서 먼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만 해외에 판권을 넘기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꽃보다 남자>는 일본과 타이완에서 이미 드라마로 만들어진 바 있고, 배용준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신의 물방울>도 국내에 방영되기 전에 일본의 신세대 스타 카메나시 카즈야가 주연한 일본판이 먼저 제작·방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