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역사와 가요의 역사 중 어느 쪽이 더 오랠 것인가 따지기로 하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이들 두가지의 역사는 오래고, 또 오랜 만큼 이들의 상호 교섭도 빈번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으로 전승되는 바 한국의 가요 중 고려 이전 것 가운데 는 술과 가요의 유대가 그리 현저하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런 대로 몇 가지를 골라 고찰해 보겠다.
공후인
그리스 신화 속에 있는 주신 디오니소스(Dionysos)나 로마 신화의 주신 바커스(Bacchus)의 축제 때는
술과 가무가 어울리는 한바탕 흐드러진 굿판이 벌어졌다 한다.
우리 나라의 고대 축제인 영고, 동맹, 부천 등에서도 사정은 흡사했다.
다만 우리 나라의 신화 속에는 디오니소스와 맞먹을 주신이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중국인의 옛 기록인 '삼국지 (동이전)'에 보면, 제천행사 때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다.
"했으니 저 브라질의 삼바축제 같은 광란은 아닐지라도 어지간히 술을 즐긴 모양이다.
글세, '공후인'의 주인공은 이런 굿판에서 질탕하게 먹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다 황홀경에 빠져 든 노옹이 아닐까?
'머리가 하얗게 센 미친 늙은이'가 발작을 일으켜 강가로 달려간다.
뒤에서는 놀란 아내가 달려오며 제발 가지 말라고 말리건만 이 늙은이는 들은 체도 않고 강심을 향해 뛰어든다.
넘실대는 물결 속에 휩쓸린 늙은이는 마침내 물에 빠져 죽고 만다.
미처 따라잡지 못하고 속수무책 남편의 익사 현장을 지켜보던 아내는
'공후'라는 현악기를 당겨 슬픔을 노래하고 나서 남편의 뒤를 따라 죽는다. 그 노래 가사인즉,
여보, 물에 들어가지 말랬더니,
당신은 그예 물에 들어가셨구료.
당신만 물에 빠져 죽어버리면
나는 장차 어찌 하란 말예요.
가요라기 보다는 졸지에 과부된 노파의 넋두리에 불과하지만,
이 비극적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나룻배 사공 곽리자고!
미처 손 쓸 새 없이 두 남녀의 죽음을 목격한 마음이 언짢아서 집으로 돌아온 이 친구, 제 처 여옥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했다.
여옥이 슬퍼하여 역시 공후로 그 곡을 타고 이웃 친구 여용에게 노래를 전하니 이로써 이 노래가 당대 히트송이 됐더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미친 늙은이가 "머리를 풀러 헤치고 술병을 찾다"는 기록이다.
이로써 그가 발작은 일으키고 강물 속으로 뛰어든 원인이 술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술병차고 강물로 뛰어드는 남자와, 악기(공후)를 들고 뒤쫓아 달리는 여자,
이 별난 남녀를 각각 주신과 악신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그는 왜 강물로 뛰어드는가?
당나라 이백은 채석강에서 술마시고 놀다가 물위에 비친 달을 보고 이걸 잡아오겠다고 투신했다가 익사했다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무얼 잡으러 불에 뛰어들었을까?
쌍화점
고려는 몽고군의 침공 이후 국세가 기울고 사회에 퇴폐풍조가 만연했으나 왕이나 백성이나 가릴 것이 없었다.
술과 색의 근친성은 옛날이라고 예외가 아니겠지만, 이 시대는 여자들이 한 술 더 떴던 모양이다.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
그 집 사내가 내 손목을 잡습니다.
이 소문이 이 집밖에 들락날락
조그마한 술바가지 네 말이라 하리라.
요새 세상이 하도 막돼서 애꿎은 여자들이 인신매매단에 걸려들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많아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그 실상을 알아보면 여자 쪽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쉽게 말해 피해자의 상당수가 본래 정숙과은 거리가 먼 '끼'있는 계집들이란 것이다.
여자가 술집에서 술을 사러 갔다. 보나마나 수염 난 사람만 보면 추파를 던지고 헤픈 웃음을 흘리는 끼 있는 여자가.
그런데 이 술집 남자인즉 여자라면 일찌감치 마스터한 도사라, 정조의 대문은 빗장을 딸 것도 없이
'개문만복래'로 활짝 열어놓고 '날 잡아 잡수'라는 마크를 문패처럼 이마빡에 달고 다니는 여자임을 첫눈에 알아 보았겄다.
다짜고짜 손목을 잡아끌고 들어가 술 몇 잔 대작하여 완전히 무장해제 시켜놓고 일을 벌였다.
아무도 몰래 치른 일인데 웬걸 뜻밖에도 이 일을 훔쳐 본 놈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바가지, 쬐그만 술바가지였다. '얼레껄레 난 봤다! 얼레껄레 난 봤다! 여자하구 남자하구... '
고려인의 포르노가 농도 짙은 해학으로 채색돼 있다.
청산별곡
고려가요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노래일 것이나 난해어가 많아 그렇게 만만한 작품은 아니다. 그런 대로 이런 식 상상이 가능하다.
어떤 농촌 총각 녀석이 같은 동네 처녀한테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흔히 그렇듯 이 사랑도 언해피 앤드(Unhappy End)였는데,
그 이유가 아리송하다. 원래부터 올라가지 못할 나무였을까? 열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짝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갑돌이,갑순이 같은 순진파들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저 김중배 유혹에 넘어간 심순애의 배신 때문이었을까?
어찌 됐건 이 얼간이 총각은 세상 살 맛이 안 났다.
죽고 싶기만 하겠지만 모진게 목숨이라는데 어디 그게 쉽나 그는 여자를 잊으려고 마을을 떠난다.
인간 속세에 절망한 사람들이 돌아갈 곳이 자연, 그밖에 또 있겠는가. 그는 먼저 청산의 품을 찾아들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러나 청산에 산다는 것, 말이야 좋지만 그것도 못할 일이었다.
산새는 아침 저녁으로 울어대는데 총각은 종일 울고 울어도 실연의 아픔이 가시지를 않기 때문이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 운다지만,
그것은 차라리 사치스런 울음이었다.
"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여,
자고 깨면 우는구나 새여,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깨면 늘 우노라."
이렇게 독백해 보기도 하고, 한숨과 눈물로 하얗게 지새우는 밤이 잦아지자 밤이 오는 게 무서워
"이럭저럭해서 낮을랑은 지냈지만 올 이도 갈이도 없는 밤은 또 어찌 할까나." 하고 번민하다가는 끝내 청산을 포기하고 내려온다.
이번에는 바다를 찾아간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다에 살어리랏다." 하고 중얼대며, 그러나 바다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머루, 다래 대신 나문재 ,굴조개를 먹는 것만 다를 뿐 아픔과 시름을 달래주지 못하기는 새소리나 파도소리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서 구원을 받을 것인가.
가다가 보니 배부른 독에
독한 강술을 빚어 놓았구나
조롱박꽃 누룩이 매워
날 잡사오니 어찌하리꼬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든 곳은 술집이었다. '한림별곡'에서 문인들이 즐기는술은
황금주,백자주(잣술),송주(송술),예주(단술),죽엽주,이화주,오가피주" 등 이었지만,
상사병 이 총각의 가슴이 부르는 술은 오직 독한 술, 더 더 좀더 독한 술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고려인의 퇴폐성의 한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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