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정성수_경기도 20山 탐방

醉月 2009. 9. 13. 07:19

기암괴석 파주 감악산

기암괴석-깨끗한 공기 매력포인트

<‘경기 20山’ 연재를 시작하면서>

등산은 저렴한 비용으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서울에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등 명산이 많지만, 가끔 새로운 산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를 위해 경기지역 명산 20곳을 소개한다. 서울의 산처럼 하루 코스로 다녀올 수 있으며, 차비만 2∼3배 가량 추가하면 된다.
 
‘경기 20山’은 ‘한국의 산하'와 산림청이 추천한 ‘전국 100산’에서 골랐으며, 여기에다 접근이 용이한 산 몇 곳을 추가했다. 예정 산행은 ‘가나다’(<1>감악산<2>검단산<3>고대산<4>광교산<5>광덕산<6>국망봉<7>마니산<8>명성산<9>명지산<10>백운산<11>소요산<12>수리산<13>연인산<14>예봉산<15>용문산<16>운악산<17>유명산<18>천마산<19>축령산<20>화악산)순으로 정했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 20산’을 순례하노라면 경기지역의 산 형태, 지형, 연관성 등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편집자주>


파주 감악산(675m)은 화악산·운악산·관악산·송악산과 함께 ‘경기 오악(五嶽)’중 하나다. 5악답게 기암괴석이 볼 만하다. 바위 색깔이 밝은 화강암 계열이 아니라 거무티티하고 누르죽죽한 감색(dark blue)을 띠고 있어 감악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감악산은 서쪽으로 파주시 적성면, 동남쪽으로 양주시 남면, 동북쪽으로 연천군 전곡읍과 경계를 이룬다. 백두대간 한북정맥이 양주에서 갈라져 적성쪽으로 뻗어나간 산 줄기가 감악산이다. 이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지배권을 다투던 전장이었고, 거란 침입과 한국전쟁때 격전지였다고 전해진다. 적성쪽 입구에는 범륜사가 있고, 산 정상에는 오래된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감악산에는 악귀봉, 신선바위, 임꺽정봉, 까치봉 등 이름난 바위 봉우리가 있지만, 무명의 암봉도 몇몇 더 있다. 감악산의 감상 포인트는 산봉의 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을 서로 다른 봉우리에서 조망하는 것이다. 어떤 바위는 아메리칸 인디언을 연상케 하고, 어떤 바위는 병풍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능선에 나 있는 솔향 그윽한 등산로와 상큼한 흙내음이 일품이다. 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임진강이 눈에 들어오고, 남쪽(양주)으로 신암저수지와 원당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적성쪽의 감악산 입구까지 찾아가는 길은 두가지다. 하나는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30번(불광동∼적성)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다시 25번(적성∼의정부) 버스로 갈아타고 범륜사 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거꾸로 의정부역 앞에서 25번(의정부∼적성) 버스를 타고 범륜사 입구에서 내려도 된다. 버스비는 각각 2800원가량 소요되며, 적성에서 갈 경우 범륜사 입구까지 500원이 더 추가된다. 버스비는 현금카드로도 지불할 수 있다. 불광동∼적성(1시간 30분 소요·20분 간격)∼범륜사입구(10분 미만 소요·15분 간격)는 총 1시간40분 가량 걸리며, 의정부역∼범륜사 입구는 1시간20분 가량 소요된다.

범륜사 입구에서 버스를 내리면 ‘감악산 등산로’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범륜사까지 포장도로가 나 있다. 등산코스는 범륜사입구∼범륜사∼숯가마터∼묵은밭∼만남의 숲∼임꺽정봉∼정상(여기까지 3.9㎞)∼까치봉∼운계능선∼감악산휴게소(주차장·여기까지 4.2㎞)로 잡으면 중요한 장소는 다 돌아보는 셈이다. 산행시간만 4∼5시간가량 소요된다.

만남의 숲에서 직진해 정상 바로 밑 안부까지 곧바로 갈 수 있지만, 임꺽정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야 한다. 이곳부터는 이른바 ‘깔딱고개’다. 임꺽정봉으로 가기 전에 악귀봉과 암봉 2∼3곳을 통과하게 되는데, 가능한 우측으로 넓게 돈다고 생각하면, 이들 산봉을 다 만날 수 있다. 그래야 인디언바위(이름없는 산봉의 기암괴석)와 신선바위의 매력을 조망할 수 있다. 신선바위를 지나면 우측으로 임꺽정봉(매봉재)이 있다. 봉우리 밑에는 굴(임꺽정굴)이 있다는 팻말이 있는데, 안내자가 없어 확인하지는 못했다.

임꺽정봉에서 정상까지는 25분 거리. 감악산 정상에는 1m70㎝ 높이의 ‘감악산비’(일명 빗돌대왕비·파주시 향토유적 제8호)가 세워져 있다. 글씨가 마모됐는지 한 글자도 보이지 않는다. 1982년 동국대 ‘감악산비 조사단’에서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와 그 모양이 닮았다 하며 ‘제5의 진흥왕 순수비’일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결론은 얻지 못했다고 한다. 날씨가 맑은 날은 북동쪽 전곡 넘어 고대산, 금학산, 복주산이 조망되고, 동으로는 마차산, 소요산, 왕방산, 화악산, 명지산, 연인산 등이 눈에 들아온다고 한다. 또 서북쪽으로 개성 송악산이 보인다고 한다. 동남쪽 작은 산봉우리 위에 마리아상이 서 있는데, 10분이면 다녀올 수 있다. 감악산을 지키는 군인들을 위해 한 천주교 신자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하산은 정상의 팔각정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팔각정에서 15분가량 내려가면 까치봉에 닿는다. 까치봉에서 다시 15분가량 내려가면 ‘6·3 쌍소나무봉’이라는 팻말을 세워놓은 봉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운계능선으로 방향을 잡으면 감악산 휴게소(주차장)가 나온다. 설령 쌍소나무봉에서 운계능선을 지나쳤다 해도 계속 직진하다 헬기장 다음의 참호 지대에서 좌회전해 내려가면 감악산 휴게소(주차장)와 만난다. 휴게소는 범륜사와 적성면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북한산이 궁궐이라면 감악산은 시골 초가집처럼 소략하지만, 서울 근교 산에서는 찾을 수 없는 깨끗한 공기를 간직하고 있다. 
감악산 초입인 범륜사 입구 정류장


범륜사 관세음보살상과 대웅전


감악산 등산로. 돌짝길이 인상적이다.


만남의 숲. 여기서 우측으로 길을 틀어야 임꺽정봉으로 갈 수 있다.


악귀봉에서 바라다 보이는 인디언 군상 바위. 바위봉 자체는 이름이 없다.


신선바위.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병풍바위라고도 한다.


신선바위에서 바라본 2개의 무명 암봉.


감악산 정상. 군사보호시설과 신라 고비(古碑)가 있다.


정상 바로 밑 파주쪽에 조성돼 있는 팔각정.


팔각정에서 내려가다가 보이는 까치봉.


감악산 휴게소(주차장). 범륜사입구와 적성면 사이에 있다.

 

하남 검단산

검단산에 오르니 팔당대교가 한눈에

검단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팔당대교
하남 검단산(黔丹山·657m)은 서울 동부의 한강을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산이다. 검단산 제3 등산로를 택해 정상까지 오르노라면 서너개의 전망 바위를 만나는데, 제1 전망바위에 오르면 한강과 팔당대교가 발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또 검단산과 건너편 예봉산·운길산 사이로 두물머리(양수리)에서 합쳐진 한강 물이 시원하게 줄달음쳐 간다.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이 부럽지 않은 풍광이다. 이런 곳에 커다란 관광 유람선이라도 한 두척 띄운다면 강으로서 운치를 더할 것같다. 정상 가까이 오르면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는 지점인 양수리가 한 눈에 조망된다. 

두 물이 합쳐져 남쪽으로 치닫다가 곧이어 물길은 90도를 틀어 서쪽으로 향한다. 물길이 한바탕 굽이돌아 나가는 곳에 팔당댐이 건설되다보니 커다란 호수(팔당호)가 생겨났다. 남한강과 북한강, 팔당호, 팔당댐이 어우러진 양수리 일대가 커다란 ‘물의 나라(水國)’로 변해 이뤄 장관을 이룬다. 검단산은 육산(肉山)으로, 특유의 흙 냄새가 상큼하다.



학자들에 따르면 하남시 일대가 삼국시대 백제 발상지여서 검단산이 하남 위례성의 숭산(崇山)이나 진산(鎭山)이라는데 큰 이견이 없다고 한다. 검단산은 백제시대 승려였던 검단선사가 은거했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지나 확인 할 길은 없다. 최근에 백제왕이 천신에게 제사 지내던 장방형 석축이 발견돼 ‘신성한 제단이 있는 큰산’이라는 의미를 지녔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검단산 등산로는 하남쪽이 으뜸이다. 지하철 2호선 잠실역 8번출구에서 ‘30-5’번 롯데월드∼상상곡동행 하남 시내버스를 타고 검단산 입구에서 내린다. 요금은 900원. 지하철 환승은 적용되지 않는다. 넙다란 냇가를 지나면 에니메이션고등학교가 나온다. 등산용품점 노스페이스 사잇 골목으로 검단산을 가장 단거리로 오를 수 있는 제2 등산로가 나 있으나, 초행자들은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제3 등산로를 택하는 것이 좋다.

제3 등로는 에니메이션고 담벽을 끼고 가다 코오롱스포츠 매장을 지나 베트남참전 기념탑이 있는 곳에 나 있다. 처음 10여분 동안은 등산로가 그렇게 넓고 편할 수 없으나, 곧바로 깔딱고개가 시작된다. 20분 더 걸으면 구한말 정객인 유길준(1856∼1914)과 가족 묘소가 나온다. 제법 묘 터가 넓어 잠시 쉬었다 갈만하다. 여기서부터 길은 더욱 가팔라진다. 40분 더 오르면 ‘사거리 쉼터’가 나온다. 한쪽으로 간단한 운동기구도 마련돼 있다.

굳이 3등로를 택했던 것은 바로 이 사거리 쉼터부터 정상까지 오르는동안 계속해서 한강을 왼쪽 편에 놓고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거리 쉼터에서도 한강 일부가 보이나, 제1 전망바위(그리 넓지는 않음)에 서면 비로소 검단산과 예봉산 사이의 물길이며, 팔당대교, 그 뒤의 덕소땅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강건너가 팔당리다. 제1 전망바위에서 오르는 동안 10여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서너개의 크지 않은 전망바위들을 만난다. 

가벼운 릿지코스도 하나 있다. 숲길을 조금 더 헤치고 나가면 갑자기 가드레일이 설치된 평평한 산 봉우리가 펼쳐진다. 한강쪽 서북 방향이 탁 틔어 가슴 속까지 시원하다. 발아래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수지점이 보이고, 팔당호와 팔당댐 등이 조망된다. 하남시에서 검단산 정상을 올려다보거나 등산지도를 보면 분명 한개의 봉우리로 돼 있는데, 이 평평한 산봉까지 포함하면 검단산은 두 개의 산봉으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전망봉’에 서면 정상도 눈앞에 보인다. 전망봉을 내려서면 다시 호젓한 흙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중부고속도로 동서울 톨게이트가 내려다 보인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오르노라니, 드디어 정상이다. 100평 남짓 운동장 처럼 잘 다듬어진 정상에는 ‘검단산’이라고 쓰여진 표지석과 그 옆에 태극기가 휘날린다. 주변에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한강 풍광을 디카에 담으려면 벤치에 올라가거나 발돋움해야 하지만, 기분은 최상이다. 정상에서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는 곳이 북동쪽에서 흘러온 북한강이고, 그 아래 왼쪽으로 굽어 흐르는 곳이 동쪽에서 내려온 남한강이다. 표지석 쪽에서는 팔당호 전체가 조망된다.

하산길은 어디로 정하면 좋을까. 올라올 때 충분히 한강을 조망한만큼 내려갈때는 단거리코스인 제2등로를 택하면 무방할 것같다. 그러나 제4 등로로 갈 경우 배알미 마을로 떨어지는데, 가까운(도보 15분 거리) 곳에 있는 팔당댐을 감상할 수 있다. 전체 소요시간은 5∼6시간. 배알미동에서 서울 상일동까지 50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된다. 요금은 900원이다. 
연천 고대산

철원평야, 6.25 격전지 한눈에 조망

고대산 정상 표지석
경기도 최북단인 연천군 신서면에 우뚝 솟은 고대산(高臺山·832m)은 철원평야와 6.25 격전지 조망이 백미다. 또한 고대산 등산로 입구에서 가까운 신서면 신탄리의 신탄리역은 경원선 최북단 역으로 이곳까지의 기차여행이 여간 즐겁지 않다.

경원선 철도가 휴전선에 막혀 멈춰 선 곳에 솟아오른 고대산은 그 정상이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과 경계를 이루며, 철원평야와 DMZ, 남북의 지형 변화를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로서 그 가치가 날로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800m가 넘는 고산이어서 오르기가 녹록지 않다. 더욱이 8부 능선까지는 좌우 전망도 없는 숲속 급경사 길을 계속 올라가야 해 적잖은 인내를 요한다. 오죽했으면 산행내내 오르기가 ‘고되서’ 고대산이라고 이름이 붙었나 되뇌일 정도였다. 6월 중순의 뜨거운 열기까지 가세해 가지고 간 0.5리터 생수 2병을 모두 해치웠다.

8부 능선에서 시작되는 암릉길, 이른바 ‘칼바위 능선’이 없었다면 등산로를 조성한 연천군에 크게 실망을 퍼부었을지 모른다. 연천군은 3년전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인 고대산을 개방케 하는데 일등공신이었다고 전해진다. 암릉길이 뾰족하게 나 있어 붙여진 칼바위 능선은 웬만한 큰 산에는 하나씩 있다.

서울의 북한산에도 있고, 도봉산에도 있다. 그러나 고대산 칼바위 능선은 그 길이가 200m에 이를 정도로 길면서 전망대 노릇을 톡톡이 하고 있다. 좀더 정확한 표현을 쓴다면 ‘긴 칼바위’라고해야 옳을 것같다. 화강편마암계 바위답게 아이보리 빛깔에 꽃 무늬가 인상적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시야를 가렸던 숲이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칼바위능선은 여간 경이롭지 않다. 서쪽과 북쪽, 동쪽 일부가 탁 트인 곳에 광활한 산맥이 물결을 이루고 있고, 옛 철원 시가지며, 고대산 정북쪽으로 ‘김일성고지’와 동쪽 산맥 사이로 철원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사방이 산악지대인데, 어떻게해서 대형 평야가 형성됐는지 신기할 뿐이다. 들판이 끝나는 곳에 DMZ가 있고, 그 너머가 북한 땅이다. 멀리 눈 앞에 보이는 희미한 산맥은 모두 북녘땅이다.

김일성고지는 독수리 머리 모양을 하고 있고, 그 앞 우측에 있는 봉우리가 우리측 백마고지다. 인근에 ‘피의 능선’도 선명히 보인다. 백마고지와 피의 능선에서 6.25때 아군과 적군 6만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동송저수지도 보이고, 북동쪽으로 철의 삼각지(철원, 김화, 평강)도 눈에 들어온다.

김일성고지의 본래 산이름은 고암산. 과거 궁예가 궁궐을 지었을때 주산으로 삼았던 곳이다. 당시 주변에선 철원 금학산을 주산으로 삼으라고 주청했는데, 궁예가 이를 듣지 않아 태봉이 빨리 망했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통일이 되면 경원선은 금강산까지 관광열차가 운행되고, 북한의 원산시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계돼 시베리아철도(TSR)를 통해 모스크바는 물론 유럽 여러 나라와 연결되는 중앙철로가 되기 때문에 훗날 다시 주목받을 것이다.

칼바위능선을 지나면 급경사는 없고, 능선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맨 처음 만나는 봉우리가 대광봉(827m). ‘고대산’이라고 쓰인 1m높이의 사각 시멘트 비가 서 있다. 산마루는 흙으로 덮여 있어 고대산이 육산(肉山)임을 말해준다.

이어 삼각봉(830m)과 고대산 정상인 고대봉(832m)이 300m 간격으로 집결돼 있다. 삼각봉에는 별다른 표지석이 없고, 땅 밑으로 폐참호 하나가 남아 있다. 삼각봉을 지나면서 그동안 가려 있던 철원의 금학산 전경이 한눈에 조망되고, 남쪽으로 지장봉이 꿈틀거린다.

사방에 축대를 쌓아 만들어진 고대봉 위에 올라서면 철원평야가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상에는 커다란 헬기장이 조성돼 있고, 남쪽 끝으로 표지석 기둥에 ‘고대봉’이라는 글씨가 음각돼 있다.

고대봉에 오르니 신철원까지 조망되고, 학저수지, 옛 노동당 당사, 한탄강 골짜기, 산정호수로 유명한 명성산, 고석정 등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온다. 두 팔을 벌려 철원평야를 안으며 이 너른 들판에서 남북이 함께 살 날을 기약해 본다.

고대산에는 등산로가 3개 있다. 입장료는 1000원. 쓰레기 수거료라고 한다. 칼바위능선은 제2 등산로에서 만난다. 제2 등로로 올라가서 제3 등로로 하산하는 코스가 가장 이상적이다. 3 등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표범 무늬의 웅장한 표범바위와 표범폭포를 만난다. 비가 온 뒤라야 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표범폭포는 오랜 가뭄 탓으로 절벽에는 이끼만 끼어 있다. 산자락을 벗어나기 직전에 바위틈에서 나오는 시원한 약수를 만난다. 물맛이 좋다. 고대산 등산은 4시간∼4시간30분 가량 소요된다.

서울에서 동두천까지 전철이 있고, 동두천에서 오전6시50분부터 매시 50분에 신탄리까지 5칸짜리 디젤열차가 운행된다. 차창 밖의 시골풍광도 감상하고, 연인들의 수군거림도 들리는 매우 낭만적인 기차여행이다. 동두천역에서 신탄리역까지 45분 소요되며 요금은 편도 1000원. 신탄리에서는 오전6시부터 매시 정각에 기차가 출발한다. 막차는 10시. 그러나 막차를 이용할 경우 서울까지의 전철 연계시간이 적절치 않다.

서울 종로3가에서 전철과 디젤열차를 바꿔 타며 신탄리역에 당도하려면 2시간 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고대산 등정은 아침 일찍 서두르는 것이 좋다.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려 물을 충분히 준비해 가야 한다. 신탄리 ‘한울쌈밥’에서 쌈밥(6000원)을 시키면 상추·푸성귀 등이 푸짐하게 나오고 우렁이가 많이 들어간 쌈장이 곁들여 진다. 


신탄리역. 뒤에 보이는 산이 고대산 주능선.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경원선 최북단역인 신탄리역 승강장. 여기서 철마는 더 나아가지 못한다.

고대산 등산로 입구

고대산 제2 등산로. 8부능선까지는 좌우 조망 없이 숲속 길을 걸어올라가야 한다.

고대산 칼바위능선. 숨통이 탁 트이는 곳이다.

칼바위능선에서 바라본 철원평야와 6.25격전지.

칼바위능선에서 정북쪽을 디카로 당기니, 김일성고지(정 중앙의 독수리 머리모양을 한 산)와 백마고지(그 앞 우측 산)가 손에 잡힐듯 눈에 들어온다.

고대산 정상인 고대봉. 사방이 축대로 쌓여 있다.

고대봉 정상에 올라서니 서쪽, 북쪽, 북동쪽 방향이 일망무제로 트여 철원평야와 멀리 북녘땅까지 조망된다. 앞의 파란물이 철원 학저수지.

고대산 정상. 커다란 헬기장이 조성돼 있고, 남쪽 끝에 ''고대봉''표지석이 서 있다.

고대산에서 바라본 철원 금학산. 그 뒤의 우측 바위산이 산정호수로 유명한 명성산이다.

하산길 제3 등산로 계곡에서 만난 청개구리.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

제3 등로에 있는 표범바위. 바위 표면이 표범무늬 같다고해서 붙여진 이름. 그 옆에 표범폭포가 있다.

제 3등로가 끝날 무렵에 만나는 약수. 물맛이 좋다.
수원 광교산

시각장애인도 즐기는 편안한 산행길

수원시와 용인시의 경계를 이루는 광교산(光橋山·582m)은 수원을 북에서 싸안고 있는 형국으로, 수원의 진산으로 불린다. 경기북부의 고산준령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경기남부에서는 제법 우람하다. 특히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데다 산 자락이 넓다.

광교산의 매력은 시각장애인도 즐길 정도로 산행코스가 편안하고, 육산(肉山) 특유의 보드라움 때문에 맨발로도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용인지구를 비롯해 고기동지구, 영통지구, 수지·의왕지구 등 신도시 개발지역이 두루 조망돼 경기남부 신도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올라가 볼만하다.

서울에서 광교산을 가려면 지하철 2, 4호선 사당역 4번출구에서 ‘경기대 수원캠퍼스 후문’ 으로 가는 좌석버스를 이용하면 좋다. 7000번, 1550-3번 등이 있다. 동수원 톨게이트를 벗어나 첫번째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차에서 내려 캠퍼스 구내를 통과해 10분 가량 걸으면 파란색 아치형 조형물이 있는 정문이 나온다. 정문 바로 옆에 등산로 입구가 나있다. 광교산을 오르는 데는 크게 9개의 코스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일반적으로 많이 이용하는 종주코스(1코스)의 초입이다.

광교산이 산책로처럼 부드러워 맨발로 오르는 산꾼 부부.


1코스는 경기대 정문∼형제봉∼양지재(?)∼종루봉(비로봉)∼노루목∼억새밭∼통신대∼통신대 헬기장∼광교헬기장∼지지대로 연결된다. 총 13㎞ 거리다. 하지만, 서울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억새밭(1코스 초입에서 7.2㎞ 거리)에서 절터 약수터로 내려가 13번 수원시내버스 종점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종주가 아니라면 굳이 광교헬기장까지 가봐도 별다른 볼거리는 없다.

초입에 들어서면 곧바로 산책로 같은 등산로로 연결된다. 등로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늑하고, 산행내내 풋풋한 흙냄새가 진동한다. 등로의 편안함 때문인지, 과연 여성 시각장애인 서너 분이 하얀 지팡이를 짚고 도우미의 안내를 받으며 씩씩하게 산행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중간에서 하산했지만,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광교산의 고마움이 새롭게 느껴졌다.

등산로가 용인~안산간 고속도로 주변이서인지, 처음에는 자동차 소음이 크게 나더니 오를수록 소리가 잦아든다. 1코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봉우리인 형제봉은 암봉으로 이뤄져 있어 약간의 조망이 가능하다. 형제봉에서 90도를 꺾어돌아 내려가야 양지재로 이어진다. 등로가 푹신푹신해서 그런지 등산화를 배낭 뒤에 멘 채 맨발로 걷는 산꾼들도 보인다.

광교산 시루봉의 수원성을 닮은 표지석.


양지재 다음에 만나는 곳이 ‘김준용장군 전승비’ 팻말. 한국전 영웅인가 해서 팻말을 좇아 잠시(70m가량) 샛길로 들어가 보니 김준용(1586∼1642) 장군은 병자호란때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광교산에서 청나라 군사를 물리쳤다는 공적이 바위에 음각돼 있다. 다시 길을 오른다. 전승비 팻말부터 깔딱고개다. 비로봉과 토끼재를 지나면 드디어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 종루봉이라고도 부르는 비로봉에는 2층 팔각정이 세워져 있고, 토끼재는 너른 땅에 약간의 쉼터가 조성돼 있다. 토끼재에서 연결되는 데크등산로가 발걸음을 상쾌하게 한다.

시루봉(582m)에 올라서니 최정상임에도 펑퍼짐한 탓에 조망이 잘 안돼 좀 답답하다. 여기저기 표지석이 있어 어수선하다. 정상 가장 위쪽에 수원성을 형성화한 화강암 표지석이 있는데, ‘광교산 시루봉’이라고 쓰여 있다. 이때 등산객 한사람이 “여기서 300m 더 가면 또하나의 시루봉(570m)이 있다”고 들려준다. 등산객 왈, “이곳은 가장 높긴 하지만 푯대봉이고, 그곳이 진짜 시루봉이고 전망도 좋다”이라고 덧붙인다. 뭔 일일까. 등산객이 말하는 ‘진짜 시루봉’에 올라서서 의문이 풀렸다.

수원 사람과 용인 사람이 자기 지역의 봉우리를 시루봉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582m 시루봉’은 수원 땅이고, ‘570m 시루봉’은 용인 땅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조망은 ‘570m 시루봉’이 뛰어났다. 이곳에 서니 지나온 능선이 ‘S’자 모양으로 굽이쳐 보인다. 그 아래 용인시 수지구가 한눈에 조망된다. 광교산은 수원이 웅도였을 때 생겨난 이름이었으나, 현대에 와서 용인지역이 수원을 누를 정도로 급성장하면서 광교산 정상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 등산객은 ‘작은 시루봉’까지 따라와서 “여름에 시간 맞춰 오면 낙조가 죽여주고, 서울야경이 끝내준다”며 수원사람의 부화를 지른다.

광교산 정상은 300미터 거리를 두고 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용인사람들이 시루봉이라고 부르는 암봉.


수원과 용인 사람들의 신경전을 뒤로 하고, 노루목과 억새밭으로 ‘내달렸다’. 노루목에는 통나무 대피소가 하나 보이고, 억새밭에는 억새가 하나도 없다. 돌무더기 하나가 있을 뿐이다. 옛날에는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있었던 모양이다. 억새밭까지 오는 동안 땅이 융단을 깔아놓은 듯 폭신폭신해 등산화를 벗고 싶어 발이 근질근질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면 여기서 절터약수터 쪽으로 하산해야 한다. 절터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이 여간 예쁘지 않다.

여름산행은 땀이 비오듯 해 0.5리터 생수병 3개는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5시간 30분∼6시간 소요.

좀더 장거리 산행을 원한다면 광교산 통신대를 지나 백운산∼바라산∼우담산으로 이어지는 연계 산행을 추천한다. 우담산이 끝나는 지점에 성남·구리가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나오는데, ‘청계산∼백운산 등산로 안내’판에서 좌회전해 청계요금소 옆 지하 굴다리를 통과하면 인덕원 4거리나 서울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포천 광덕산(廣德山)

''1010m'' 세번째 봉이 폼나는 산

산을 오르면서 떠오르는 느낌은 산 봉우리들이 마치 인간세상의 자식들 같다는 것이다. 맏이가 잘 된 가정이 있는가 하면 아래가 잘 된 가정이 있듯이 산봉도 최고봉이 가장 멋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최고봉은 볼품이 없는데 둘째,셋째봉이 폼나는 곳이 있다.

포천 광덕산(廣德山)이 그런 곳이다. 해발 1046m의 최고봉과 1m 차이로 낮은 둘째봉은 정상이 흙으로 덮여 있어 밋밋하기 이를 데 없으나, 1010m의 셋째 상해봉은 기암이 제법 웅자를 자랑한다. 특히 흰색이 가미된 대리석 바위가 멋스럽다. 주봉 그룹에는 표지석이 없지만 상해봉은 화강암 표지석에 큼지막하게 ‘상해봉’이라고 한글 붓글씨체가 음각돼 있다.

광덕산의 백미는 상해봉. 럭셔리한 대리석 기암도 보기 좋고, 정상 바로 밑의 고사목 한 그루가 일품이다. 모진 풍상에도 꺾이지 않고 있는 서 있는 고사목을 바라보노라면 이곳이 고산지대임을 실감한다.

광덕고개에서 바라본 광덕산 정상(왼쪽 높은 봉). 광덕고개 자체가 높아 해발 1046m 정상이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광덕산 둘째 봉우리에는 커다란 돔 형태의 ‘광덕산 기상레이더 관측소’가 있어 색다른 조형미를 보여준다. 광덕산이 고마운 것은 해발 1000m대의 고산임에도 등정하는 데 힘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광덕고개 때문이다. 해발 640m대의 광덕고개에서 등산로가 시작되는 까닭에 실제 해발 400m만 오르면 정상에 다다른다.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에서 광덕산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강원여객 소속의 사창리행 버스를 타고 광덕고개에서 내리면 광덕산 들머리다. 광덕고개 정상이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화천의 경계다.

‘광덕산 등산로(4 ㎞)'라고 쓰여진 노랑색 표지판을 따라 오르노라면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오른쪽에서 우렁차게 들린다. 10여분 오르면 ‘평화의 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장애인복지시설이 나온다. 붉은 벽돌의 이 건물 옆에 산쪽으로 조그만 등로가 나 있다. 바로 이 등로를 타야 산을 오르는 느낌이 들지, 직진해 가면 찻길이어서 별 재미가 없다.

장애우 복지시설인 평화의 집. 광덕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는 평화의 집 왼쪽편에 좁게 나 있다.


평화의집 등로에서 3∼4분 오른 뒤 갈래길에서 우측으로 틀면 여기서부터 광덕산 정상까지는 외통이다. 삼림욕이 느껴질 정도로 숲이 울창하고 시원하다. 두 세개 봉우리를 넘으면 정상을 만난다. 정상에는 의정부소리산악회에서 세워놓은 ‘광덕산(1046m)'이라고 쓰인 흰색 표지판이 있다.

여기서 400m쯤 걸으면 축구공을 올려놓은 듯한 돔 형태의 ‘광덕산 기상레이더 관측소’가 세워진 둘째봉을 만난다. 이곳은 경기 북부와 강원도 영서지방의 기상을 관측해 10분에 한번씩 기상청과 방송사 등에 보내준다고 한다. 독일산 레이더 장비를 쓰고 있는데, 이 장비는 구름에 전파를 발사, 수증기 량을 측정해 비 올 확률을 계산해 낸다. 그러나 완전히 장비만 믿을 수는 없고, 전문가 경험이 보태져야 더욱 정확한 데이터가 나온다고 한다.

광덕산은 겨울에 폭설이 자주 내린다. 그래서 정상까지 출퇴근해야 하는 관측소 요원들은 등산화, 아이젠, 스틱 등 등산장비를 필히 갖추고 있다. 이곳을 지키는 한 요원이 “광덕산은 여름이 짧으나, 가을 단풍이 끝내주고 봄나물과 계곡물이 매력적”이라고 전해준다.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를 타면 가끔 광덕산 남서쪽을 조망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기상관측소에서 상해봉까지는 2.6㎞ 거리. 갑자기 등산로가 차도로 바뀌는데, 기상관측소까지 찻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상해봉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이면서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에 올라탄 모양이다. 주변은 겹겹이 산으로 이어져 나간다.

이제는 하산길. 상해봉에서 처음 올랐던 광덕산 들머리까지는 3.7㎞다. 너른 차도를 따라 1시간여 내려가면 광덕고개에 닿는다. 광덕고개에서 약 40분 간격으로 동서울터미널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상봉터미널까지는 1일 4회밖에 운행되지 않는다. 버스비는 동서울터미널까지 7900원. 상봉터미널까지 7100원이다. 등산 총소요시간 3시간30분∼4시간.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광덕산 정상에 세워진 광덕산 표지판. 정상 상징물 치고는 허술하다.


광덕산 둘째봉에 세워진 '기상레이더 관측소'. 기암괴석 대신 멋진 조형물을 보는 느낌이다.


셋째봉 가는 길. 멀리 2.6㎞떨어진 곳에 상해봉이 조망된다.


상해봉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이러한 흰색 무늬가 박힌 대리석이 눈에 뛴다.


상해봉 정상. 사방이 탁 트인 곳에 화강암 표지석이 단정하게 서 있고, 주변에 고사목 한 그루도 정상을 지키고 있다.


상해봉 고사목 뒤에서 바라본 둘째봉. 기상레이더 관측소 건물이 희미하게 보인다.


하산길. 기상관측소를 위해 닦아논 차도를 따라 내려가면 평화의 집과 광덕고개가 차례로 나온다.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화천의 경계가 되는 광덕고개 정상. 광덕고개 정류장은 이 고개를 넘어 화천쪽으로 200m 가량 지점에 있다.

 

포천 국망봉

구름 속 하늘정원을 오르다

경기도를 통틀어 세번째 높은 산 국망봉(1168m)은 궁예왕의 애잔한 전설이 전해진다. 궁예는 부인 강씨를 강씨봉으로 귀양보내고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이후 강씨를 찾았으나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회한에 싸인 채 이 산 정상에 올라 도읍 철원을 망연자실 내려다봤다고 해서 국망봉(國望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국망봉은 거의 육산으로 코스는 험하지 않으나, 고도가 높아 산행이 쉽지 않다. 특히 주능선 길이가 15km에 달할 정도로 거창해 일명 ‘경기의 지리산’으로 불린다.
포천 이동면에서 바라본 국망봉. 구름 사이로 정상 부분이 살포시 구름에 가려 있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사창리행 버스를 타고 경기도 포천 이동정류장에 내리니 날씨는 비교적 개어 있다. 길 건너편 사향산(665m)은 전모를 드러내고 있지만, 높이 1000m가 넘는 국망봉은 이름값을 하는지, 정상 부분이 구름에 가려 있다. 등산로 입구는 이동면사무소 옆길에서도 20여분 더 걸어들어가야 한다.
미래클 어린이집, 이동 관광가든 등을 차례로 지나니 드디어 ‘국망봉 등산 안내’판이 도로 오른쪽에 서 있다. 이곳 안내판 옆에도 국망봉에 오르는 등로가 하나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5분여 더 걸어가면 생수공장을 지나 ‘국망봉 휴양림’ 입구가 나오는데, 이 안에 좀더 안전한 주 등로가 모여 있다.
국망봉 등산로 안내판. 이곳에는 종주코스 등산로가 나 있다.

국망봉을 오르는 산행코스는 4가지 정도. 휴양림 정문을 통과하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제1코스는 이 지점에서 장암저수지 좌측으로 신로령계곡을 따라 신로봉 방향으로 올라 국망봉에 이르는 등로다. 2코스는 장암저수지를 좌측으로 우회하되, 신로봉으로 가지 않고 직선 코스로 국망봉에 오르는 것이다. 3코스는 장암저수지를 우측으로 우회해 또다른 직선 능선으로 오르는 등로다. 4코스는 휴양림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 국망봉 등산 안내판 옆길로 접어들어 사격장이 보이는 맨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기자는 평소 종주를 좋아한 탓에 맨우측 능선인 4코스를 택했지만, 어지간하면 휴양림 안에 있는 비교적 거리도 짧고 안전한 나머지 3개의 코스를 택하면 좋을 듯하다. 단 휴양림 안으로 들어가려면 입장료 2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제4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만나는 오두막집.

4코스는 국망봉 정상까지 7km가 넘는 고달픈 등로였다. 오르는 동안 드넓은 포대 사격장도 조망할 수 있고, 보이진 않지만 장암폭포에서 콸콸콸 떨어지는 우렁찬 낙수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좀체 정상이 나타나지 않아 국망봉이 가히 큰 산, 높은 산임을 실감한다. 그냥 무념무상으로 올라가야지 얼마 남았을까 생각하면 못올라 간다. 사방이 일망무제로 탁 트인 정상에 올라서면 종주를 했다는 뿌듯함이 감돈다. 나중에 확인한 바지만, 나머지 3개 등로는 거리가 4km 안팎이다.
국망봉의 감상 포인트는 ‘하늘정원’이다. 국망봉은 8부능선 위로는 구름에 가려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습기가 많아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임에도 온갖 풀과 꽃이 만발해 8부능선부터는 화려한 정원을 이룬다. 구름 위 하늘정원을 걷노라면 그 신비스러움이 힘들여 올라온 수고를 한껏 보상해 준다.
제 4등로상에서 만나는 첫번째 이정표. 반갑다.

국망봉 정상은 비록 기암괴석으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흙산 특유의 상큼한 흙냄새와 주변 조망이 뛰어나다. 국망봉에서 신로봉 쪽으로 하산하다 면 신로봉과 가리봉 등이 이루는 병풍같은 바위봉우리 군을 만나는데, 이 또한 장관이다. 저곳이 정녕 선계(仙界)는 아닌지 단숨에 줄달음쳐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이날 가장 멀다는 4코스를 택해 국망봉에서 땅벌봉(1111m), 돌풍봉(990m)을 지나 3km에 이르는 신로령(안부)까지 갔으면서도 날도 저물고, 얼마를 더 가야 신로봉 정상에 닿을지 몰라 신로령에서 하산하고 말았다. 자료에 의하면 신로봉은 신로령 옆의 두리뭉실한 암봉을 말한다. 신로봉은 하나의 코스로도 완벽하다고 한다. 신로봉에서 서쪽 가리산(가리봉)으로 뻗은 능선 때문이다. 앞서 보았던 병풍같은 바위봉우리로 가까이 다가가면 암릉과 단애가 반복해서 이어지고 그 암릉과 단애마다 노송이 그림처럼 서 있어 국망봉 일대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나다고 한다.
제 4등로 능선에서 바라다 본 포대 사격장.

하산길에 만나는 신로령계곡 또한 일품. 사위가 조용하면서도 물이 맑고 깨끗해 계곡물에 전신을 담그지 않으면 잠깐 발이라도 적시고 가야지 도저히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곳이다. 장암저수지 주변도 고즈넉하고 아름답기 이를데 없다. 전체 산행시간 6시간∼6시간30분. 
 
<찾아가는 길>
서울 강변역 동서울터미널에서 사창리행 버스를 타고 이동면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1시간30분 소요되며 버스요금은 6200원. 사창리 가는 버스는 1시간꼴로 있다. 시간을 절약하려면 이동면에서 국망봉 휴양림 입구까지 택시(요금 5000원)를 타도 좋다.
국망봉 8부 능선쯤에서 만나는 화초밭. 하늘정원을 연상할 정도로 풀과 꽃이 다양하고 아름답다.

국망봉 정상. 육산이어서 정상이 흙으로 덮여 있다. 1000m를 넘는 정상을 주인을 따라 올라온 충직한 애견.

국망봉에서 신로봉을 향해 가다가 만나는 땅벌봉.

땅벌봉에서 바라다 본 신로봉 능선.국망봉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다.

물이 차고 맑은 신로령 계곡.

장암 저수지.

국망봉 휴양림 입구. 이 안에 중요한 등로가 나 있다.

 

광주 남한산

아늑한 능선과 화려한 산성이 빚은 조화

원성과 봉수대를 이어주는 연주봉 옹성.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하남시, 광주시, 성남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南漢山·535m)은 도립공원 남한산성(사적 57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북쪽의 북한산성과 더불어 도성의 남쪽을 지키는 주요한 피난산성 중 하나였다.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해 1624년(인조 2)에 축성(築城)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산이 남성적인 근육질의 산(암산)이라면, 남한산은 여성적인 아담한 산(육산)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주 남한산을 북에서 남으로 종주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 8번출구로 나와 30-5번 버스를 타고 고골낚시터에 내렸다. 코스는 고골낚시터∼금암산∼옹성 암문∼남문∼검단산∼왕기봉∼이배재고개∼갈마치고개의 대략 15km 에 이르는 긴 구간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골낚시터보다 한 정류장 앞인 광암정수장에서 내려야 입산이 수월하고 좋다.

남한산 남단의 가벼운 깔딱고개.

남한산 종주의 감상 포인트는 공중에 붕 뜬 느낌이 드는 아늑한 능선 산행이다. 오른쪽으로 성남을, 왼쪽으로 광주를 조망할 수 있다. 산 자체가 높지 않아 산행 내내 산책하는 느낌이다. 또한 종주 구간에서 만나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성곽과 성문은 잠시 시간을 먼 옛날로 되돌려 놓으며 역사탐방의 기회를 제공한다. 

금암산과 철탑 서너개를 지나 너른 비탈길을 오르면, 갑짜기 멋스런 봉수대와 연주봉 옹성(甕城)이 나타난다. 연주봉 옹성은 원성(元城)과 봉수대를 연결하는 혹처럼 튀어나온 산성. 봉수대, 연주봉 옹성, 원성을 둘러보노라면 우리나라 최고 수준이라는 성곽 축조 기술에 감탄이 절로 난다.

남한산성 연주봉 옹성 끝에 있는 봉수대.

종주를 하려면 원성 오른쪽으로 우회해 서문과 청량당, 인근 수어장대(서장대)를 지나 남문까지 가야한다. 청량당은 산성을 쌓은 팔도 도청섭인 벽암 각성대사 등을 모신 사당으로 유형문화재 3호이고, 수어장대는 군사적 지휘와 관측을 위해 지은 2층 누각으로 화려하고 웅장하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원성 내부가 몹시 궁금해 종주코스에서 잠깐 벗어나 원성과 연주봉 옹성을 연결하는 암문을 통해 산성 안으로 들어갔다. 행궁터, 종로 등 유적지 몇 곳을 둘러보고 다시 남문 밖으로 빠져 나왔다. 우람한 산성은 동쪽으로 힘차게 뻗어나간다.

남한산성의 연주봉 옹성에 서니 지나온 능선 길이 꿈틀댄다.

남문에서 계속 남진하여 두 곳의 갈림길을 지나니 검단산이 나온다. 정상에는 공군부대와 레이더 기지가 있고, 검단산 표지석은 그 아래 헬기장이 있는 너른 공터 귀퉁이에 세워져 있다. 길을 두루봉 쪽으로 접어들어 상대원동 뒤 능선을 거쳐 사기막골 갈림길에 이르면 경사진 능선 상에 야외용 식탁이 길손을 반긴다.
 
잠시 쉬고 있는데, 어찌나 바람이 시원히 불던지 즉석에서 이곳을 ‘바람의 언덕’으로 명명해 봤다. 여기서 왕기봉(또는 망덕산) 정상까지는 5분여 거리. 왕기봉에는 검은돌 표지석에 한글로 ‘왕기봉 500m 진흥산악회’라고 음각돼 있고, 뒷면에 ‘산을 많이 오르지 아니하면 병든 후에 뉘우친다’는 글귀가 쓰여 있다. 누구의 어록인지 궁금하다. 갈마치고개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지나 오르고내리고를 반복하니 어느 새 성남과 광주 사이를 잇는 이배재고개다. 지금 이 고개는 2차선 포장도로로 뻥 뚫려 있다.

남한산성 서문. 여기서 남한산 종주는 남쪽 능선 길로 이어지고, 성곽은 동쪽으로 뻗어나간다.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산으로 붙으니 흰 빛깔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두산 장백폭포 아래서 봤던 은빛의 자작나무 군락이 연상되면서 반가움이 물밀듯 인다. 야외용 식탁이 놓인 쉼터와 철탑을 지나니 대원약수터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계속 갈마치고개를 향해 산행을 이어가노라니 사각형 보호울타리 안에 소나무 연리목(連理木)이 자라고 있다. 

연리목은 말로는 들었으나,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가까이 있던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다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됐다는 연리목, 혹은 연리지(連理枝)는 두 몸이 합쳐져 한몸이 되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에 비유해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부부간 끝없이 돈독한 사랑을 연리지라고 할 수 있을는지. 표지판에 적힌 한자 ‘蓮(연꽃 연)’은 ‘連(이을 연)’의 오기로 보인다.

검단산 표지석이 있는 공터. 정상은 레이더 기지가 있어 접근하지 못한다.

갈마치터널 위에는 연리지 외에도 철탑, 잎마름병을 앓아 베어놓은 참나무 더미, 이씨 문중묘 등이 잇따라 자리하고 있어 사색을 자극한다. 드디어 종주가 끝나는 갈마치고개가 내려다 보인다. 2차선 아스팔트길로 포장돼 있다. 길 건너편에는 ‘모리아산기도원∼새마을고개∼태재’로 이어지는 시계등산로 표지판이 서 있다. 갈마치고개에는 버스 노선이 없다. 

서울로 가는 길을 물으니 인근의 지하철 모란역까지 도보로 1시간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다리도 아프고 어찌할 도리가 없어 모란역까지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몇대를 그냥 지나치다 중년 남성운전자가 차를 세운다. 여간 고맙지 않다. 남한산 남단에서 갈마치고개까지 총 종주시간 6∼7시간. 


남한종주에서 잠시 만나게 되는 포장도로.


왕기봉 정상의 표지석.


이배재고개 건너편 능선 입구.


남한산성 종주길에 만나는 소규모 자작나무 군락.


소나무 두 그루의 가지가 붙어 한 나무가 된 연리목.


갈마치 터널 위에 조성된 어느 문중묘.


남한산성 종주가 끝나는 갈마치 고개.

 

강화 마니산

''산공기 물공기 만나는 마니산 암릉길 1Km''

먼 상고시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장소라는 상징성 때문일까? 강화도 마니산(468m)하면 참성단 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러나 마니산에 오르니 정작 참성단은 철망으로 보호돼 근접할 수 없고, 대신 멋진 암릉길이 탐방자를 반긴다.

마니산에서 만나는 길다란 암릉길은 의외로 큰 수확이다. 인천시 강화군 소재 마니산은 개국신화가 담긴 민족의 성지면서, 동시에 1km가 넘는 암릉으로 이뤄진 등산로가 일품이다. 특히 종주 내내 일망무제의 서해를 내려다 볼 수 있어 즐거움은 배가된다.

신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화도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마니산 등산로가 있는 마니산 입구 매표소까지는 10분 거리. 매표소를 통과해 10여분 걸으면 길 옆에 등로표시판이 서 있다. 곧장 가면 주로 계단길을 통해 급히 참성단에 이르는 ‘계단로’이고, 오른쪽 계곡을 건너 우회하면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오르는 ‘단군로’다. 

등산로 초입에서 만나는 등로표지판. 곧장 가면 계단로이고, 계곡을 건너 우회하면 능선길이다. 두 길은 참성단에서 다시 만난다.


두 길은 참성단에서 다시 만나지만, 종주의 맛을 음미하려면 단군로를 택해야 한다. 계단로의 경우 2.4km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갯벌을 방죽으로 막아 만든 드넓은 논이 펼쳐진다. 단군로에서는 참성단에 오르기 전에 먼저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마니산 정상에서 바라본 참성단. 반듯한 돌을 촘촘히 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적 제 136호인 참성단은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 비껴있는 봉우리에 조성돼 있다. 하지만 개천대제, 체전 성화 채화, 연말연시 해맞이행사때 외에는 일체 출입을 통제해 철망 밖에서 감상해야 한다. 철망 너머로 본 참성단은 그 형태며 정교함이 여간 신비스럽지 않다. 산석(山石)을 다듬어 반듯하고 납작하게 쌓아 만들었는데, 돌과 돌 사이 사춤에는 아무 접착제도 바르지 않았다고 한다. 참성단은 기존의 바위에 의지해 상방하원(上方下圓)의 이중구조로 돼 있다. 위 단은 하늘을 형상화해 네모반듯하게 쌓았고, 아래 단은 땅을 형상화해 둥글게 쌓은 것. 먼 발치서나마 참성단을 둘러보노라면 이곳을 제단으로 삼은 이유를 어렴픗이 알게 된다. 산공기와 물공기가 만나는 마니산은 우리 산하 그 어느곳보다 청정하고 장엄하며 뛰어난 여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서해가 일망무제로 트여 무수히 많은 섬들이 보이고, 멀리 영종도도 조망된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봉우리를 넘어 잠시 능선을 타고 걷다보니 정상이 나온다. ‘江華島 摩尼山’이라고 쓰여진 나무기둥도 있고, 참성단을 소개하는 그림판도 세워져 있다. 발 아래로 짙푸른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석모도와 장봉도며 멀리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으로 비행기가 내려 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를 타고 건너온 초지진대교도 보이고, 동남쪽으로 인천시도 보인다.

신이 어딘가에서 바윗돌을 가져와 마니산 능선을 따라 박아놓은 듯한 신비스런 암릉길.


단군로에서 서서히 일어서던 암릉길은 이곳에서 봉우리를 이룬 후 1km가량을 더 힘차게 내달리며 바다로 향한다. 신이 바윗돌을 능선길에다 박아놓은 느낌이다. 간혹 암릉 상에 로프도 매여 있고, 건너기 까다로운 곳도 있지만, 어디에나 우회로는 나 있다. 암릉길을 거의 통과할 무렵 하산 길은 둘로 갈라진다. 하나는 함허동천 야영장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정수사를 거쳐 가는 길이다. 함허동천에는 함허대사가 수행정진하며 썼다는 글씨가 남아 있으며, 정수사는 신라 선덕왕때 회정선사가 창건하고 함허대사가 절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정수사 대웅전은 보물 161호로, 특이한 건물 배치와 꽃살문이 매혹적이다.

마니산 능선길에서 만나는 전망대. 갯벌을 방죽으로 막아 만든 드넓은 논이며, 초지진대교가 조망된다.


정수사에서 1km가량 내려가면 시내버스가 다니는 도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함허동천 주차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마니산은 운무가 끼일 때가 많아 서해를 조망하려면 관리사무소(032-937-1624)에 미리 일기를 확인하고 가면 좋다. 소요시간 3∼4시간.

정상을 넘으면 암릉길은 용처럼 꿈틀대며 바다로 향한다.


<찾아가는 길>

서울 신촌로터리 근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화도행 버스 이용(매시 40분 출발. 2시간 소요. 요금 3800원). 종주를 마치고 귀경할 때는 화도로 가지 말고 강화읍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좋다. 강화읍에서 서울 가는 버스가 많기 때문이다. 버스 문의 (032)933-6801. 


하산길에 만나는 정수사. 보물 제161호인 대웅전의 특이한 건물구조며, 꽃살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정수사에서 1km가량 더 내려가면 강화읍 가는 버스를 타는 큰 길이 나온다.

 

양주 불곡산

재미난 암릉 길, 최근에 뜨는 산

상투봉쪽에서 오르면 밟게 되는 상봉 암릉길.
가을의 끝무렵. 경기도 양주시 불곡산(佛谷山·465m)도 가을의 막바지 향취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불곡산은 불국산(佛國山)이라고도 불리는데, 한북정맥이 도봉산으로 달려가기 직전에 불쑥 솟아난 암산이다.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의 3대 의적이었던 임꺽정의 설화가 담겨 있어 친밀감이 더 가는 곳이다.

불곡산의 감상 포인트는 재미나고 아기자기한 암릉길. 별로 높지는 않지만, 암릉과 경사진 능선이 많아 산행 재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서울에서 가까워 호젓한 당일 코스로 그만이다. 등산객 사이에 ‘최근에 뜨는 산’으로 꼽히고 있다. 가히 양주의 ‘숨은 진주’라 아니할 수 없다.
불곡산 정상인 상봉.

서울서 국철을 타고 의정부를 지나 주내역에서 내리면 불곡산 들머리 양주시청까지는 10여분 거리. 양주시청 구내로 들어가 왼쪽으로 돌아가면 불곡산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 있다. 주 산행코스는 양주시청∼상봉(정상)∼상투봉∼420봉∼임꺽정봉∼수류탄봉∼임꺽정봉∼420봉 남능선이지만, 종주(5.3km추정)를 하려면 임꺽정봉에서 계속 진행해 대교아파트로 떨어지는 코스를 택한다.

불곡산 동남쪽 자락에 붙어 오르다보면 뒤쪽으로 양주시가 보이고, 왼편으로 도봉산과 북한산이 조망된다. 불곡산에 비하면 도봉산과 북한산은 수미산처럼 느껴진다. 불곡산 초반은 흙으로 덮인 능선 길이 포근하고 호젓하다. 정상인 상봉 중턱쯤 오르면 ‘보루성’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상봉 표지석

상봉을 오르기 직전 가벼운 릿지코스가 산행 길을 흥분으로 몰고 간다. 암릉에는 로프가 매어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암산답게 사방이 일망무제로 틔여 양주시와 의정부시며,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이 한 눈에 조망된다. 종주 길에 만나게 될 상투봉과 임꺽정봉도 눈에 들어온다. 절반은 바위로, 절반은 소나무로 가린 채 끝이 뾰족한 임꺽정봉이 인상적이다.
상봉에서 바라본 임꺽정봉. 뒤에 끝이 뾰족하게 보이는 봉우리.

상봉을 내려서는 곳에도 스릴이 가미된 암릉이 있어 불곡산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산행임을 알게 된다. 반대 방향에서 상봉을 향해 암릉을 기어오르는 남녀 산꾼들의 모습이 역광을 받아 실루엣처럼 경쾌한 모습으로 잡힌다. 상투봉은 주변이 절벽으로 이뤄져 쇠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이 쇠난간은 임꺽정봉으로 향하는 암릉길에 100여m 가량 길게 이어져 있다.
상봉과 임꺽정봉 사이에 있는 상투봉 정상.

445.3m의 임꺽정봉에는 그 유래가 적혀 있다. 양주 유양리 태생으로 알려진 임꺽정은 영국의 로빈훗처럼 민중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준 의적으로 기억된다. 임꺽정봉 일대 골짜기에는 청송골, 청소골, 천연골, 천골 등 여러가지 이름이 남아있는데, 소설속 임꺽정의 소굴인 청석골과 유사하다. 
임꺽정봉 암릉길.

임꺽정을 빼고 양주를 논할 수 없다면, ''양주의 진산'' 불곡산 봉우리에 임꺽정 이름을 갖다붙인 건 당연하리라. 임꺽정봉을 내려서는데, 암릉 길이가 50m는 족히 돼 보이고, 가팔라 현기증이 날 정도다. 그러나 여러가닥의 로프가 매어 있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아마 불곡산에서 임꺽정봉 릿지가 가장 아름답고 압권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산길에 되돌아 본 불곡산. 맨 왼쪽 봉우리가 임꺽정봉. 오른쪽으로 상투봉과 상봉이 조망된다.

임꺽정봉에서 대교아파트 방향으로 하산하다 보면 양주시 남쪽 지역이 좀더 가깝게 다가오고, 돌로 쌓은 제사터와 밀양 손씨 문중묘 등을 잇따라 만나게 된다. 제법 너르게 조성된 손씨 문중묘에 서면 대교아파트가 숲 사이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다. 죽은자와 산자가 공존하는 공간처럼 느껴져 자못 의미심장하다. 
대교아파트 앞. 의정부역과 서울 수유리 가는 버스가 있다.

벌판에 자리잡은 복숭아밭과 고추밭 등을 지나면 큰 길이다. 이곳에서 133번 버스를 타면 주내역은 물론 의정부시청, 서울의 수유리까지 연결된다. 산행시간 3시간∼3시간30분. 
 
동두천 소요산

아기자기하고 꽉 찬 느낌의 종주 여행

벨기에 참전기념탑에서 바라본 소요산역. 참전기념탑이 소요산 종주 들머리다.
 경기도 동두천시 소재의 소요산(587m)은 서울 근교에다 이름이 흔하기 때문일까, 마치 개똥이나 소똥이를 부르듯 평범한 산으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실제 생김새를 보면 그 꽉 찬 느낌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암릉(릿지)이며, 기암괴석, 전망바위, 칼바위, 툭 트인 조망, 천년고찰 등 명산으로서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있다. 더구나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그 사이에 낳은 신라 대학자 설총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이름값을 더한다.   



소요산 제1봉이라 할 수 있는 하백운대 오르기 직전.


 서울에서 소요산까지는 직진거리로 44km. 전철 종로3가역에서 1호선 종착역인 소요산역까지는 1시간30여 분이 소요된다. 소요산 등산로는 보통  ‘관리사무소  매표소∼일주문∼백운암∼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칼바위∼나한대∼의상대∼공주봉∼구절터∼일주문∼관리사무소(8.2km, 4시간)’로 잡혀 있지만, 종주를 권하고 싶다. 종주의 경우 소요산 계곡 좌측 능선으로 올라 삿갓 형태로 놓여진 6개봉을 지나 자재암 일주문으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종주를 했다’는 뿌듯함이 강하게 남는다.

 소요산 종주로 등로를 디자인해 본다. 소요산역에서 도로를 건너 정면으로 100여 m 거리에 있는 ‘벨기에 룩셈부르크 참전기념비’를 들머리로 삼는다. 기념비에 설치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특유의 문양을 감상하고, 너른 밭을 지나 소요산 계곡 좌측 능선으로 올라붙으면 잠시후 허름한 팔각정이 나온다. 팔각정에서 10여 m 전방에 매표소가 있다. 입장료가 ‘어른 1800원(그래도 관리사무소 매표소보다 200원 싸다)’이라고 써 있다. 입장료가 없는 줄 알고 난감해하는데, 잘 생긴 매표소 할아버지가 “얼마 안 있으면 자재암에서 입장료를 절반으로 줄일 것”이라며 미안해한다.  

칼바위 능선 시작 지점.
 매표소를 지나면 본격 종주가 시작된다. 등로는 가팔라진다. 이른바 ‘깔딱고개’를 여느 산보다 먼저 만나는 것이다. 산행이 힘들면 무념무상이 상수다. ‘이 오름이 언제쯤 끝날까’하는 생각일랑 접어두고 쉬엄쉬엄 걸으면서 그저 ‘오름’을 즐겨야 한다.  발아래 우측으로 소요산 계곡이며, 낙타등처럼 생긴 소요산 정상인 의상대와 공주봉을 조망하면서 1시간 정도 오르면 하백운대(440m)를 만난다. 깔딱고개를 미리 통과한 만큼 나머지 구간은 그리 힘들지 않다. 

칼바위 능선 상에 있는 낙락장송. 이 소나무 두 그루를 소요산 랜드마크라고 하는 산꾼도 있다.
 하백운대에서 1km에 걸쳐 중백운대(510m)와 상백운대(559m)를 통과하면 소요산 계곡의 왼쪽 능선 구간이 모두 끝난다. 여기서 맞닥트리는 곳이 유명한 칼바위능선이다. 500m에 이르는 칼바위 릿지는 소요산의 백미다. 칼바위는 형태가 날카롭기도 하지만,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이 연상될 정도로 기기묘묘해 감탄이 절로 난다. 바위 틈에서 자란 어린 소나무들이 어느새 낙락장송으로 변해 있어 장엄하기까지 하다. 암릉이 위험하지 않아 굳이 우회로를 이용할 필요는 없다.

상백운대와 칼바위 능선을 지나 나한대로 오르려면 능선은 일단 150여 m 아래로 푹 꺼진다.
  칼바위 능선이 끝나면 나한대를 올라야 하는데, 길은 갑자기 150여 m 아래로 뚝 떨어진다. 흙길에 쇠난간이 매여 있어 찬찬히 잡고 내려가면 재미있다. 선녀탕으로 내려가는 안부까지 내려오면 다시 오르막. 나한대가 0.5km 남았다는 푯말이 서 있다. 

소요산 정상인 의상대.

 산책로처럼 생긴 흙길을 살살 오르노라면 굴참나무, 신갈나무, 팥배나무가 가슴마다 명찰을 달고 산꾼들을 반긴다. 해발 571m의 나한대에 오르니 부스러기 돌처럼 생긴 정상 위에서 부부 산꾼이 막 깎은 사과를 사이좋게 베어 문다. 의상대가 먼 발치에 올려다 보이지만, 막상 올라가 보면 코앞이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군부대와 동두천시 시가지. 멀리 한탄강이 굽이 돌며 빛을 발하고 있다.
 산은 물과 다르다. 물길은 생각보다 멀지만, 산길은 생각보다 가깝다. 이 이치를 알면 산을 오른다는 부담이 휠씬 줄어든다. 나한대를 지나면서 능선에서는 소요산의 동북쪽이 좀 더 탁 트이게 조망된다. 산자락에 엄청난 규모의 군부대(미 2사단)가 자리잡고 있다. 이 군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하는데, 군부대가 떠나가면 이 자리에 아파트보다는 대학이나 연구기관을 유치해 현재의 건물이며 산세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소요산에서 포천 국사봉으로 연결되는 능선. 소요산 동북쪽으로 광덕산과 화악산이 조망되고, 서쪽으로 마차산, 감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정상인 의상대(587m)다. 동두천시 산악인들이 세워놓은 작은 비석에 ‘逍遙山 義湘臺’라고 선명히 새겨져 있다. 막상 소요산 정상(의상대)에 오르니 높이가 587m, 537m 등 통일돼 있지 않다. 정리가 필요한 것같다. 의상대에 오르니, 공주봉(526m) 등 내려가야 할 능선과 동두천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고, 시가지를 끼고 한탄강이 뱀처럼 꾸불꾸불한 모습으로 노을빛에 이글거린다. 의상대에서 공주봉까지는 1.1km, 일주문까지는 1km다. 일주문에서 소요산역까지는 25분 가량 소요된다.

 
공주봉 중턱에서 바라본 의상대.
  공주봉 중턱의 바위 쉼터와 내려가는 길 틈틈이 만나는 너덜, 기암괴석, 산죽, 맑은 계곡물, 바위동굴이 마지막까지 산행을 즐겁게 한다. 자재암은 일주문 가기 전 ‘자연보호헌장’ 탑이 있는 속리교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다. 종주 총 소요시간 4시간∼4시간30분.

의상대를 지나 공주봉으로 가려면 능선에서 조금 좌측으로 비켜있는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 능선상에는 길이 없다.
 <교통안내>
 전철 1호선 외에도 4호선 수유역에서 36번, 39번, 심야좌석버스(136, 139번)가 소요산 입구까지 간다. 소요산역에서는 서울행 전철이 30분 간격으로 뜸하게 운행되니, 열차시간을 미리 확인해 두면 좋겠다.
 
공주봉 정상. 원효대사를 사모했던 요석공주의 사연이 묻어있는 곳이다.
 

공주봉에서 하산 길을 접어들면 만나는 쉼터 바위. 의상대가 조망되는 멋진 곳이다. 소요산은 종주내내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아 꽉 찬 느낌이다.

 

안양 수리산

접근성 용이하고 서해바다 조망

  
수암봉에서 바라본 슬기봉. 중앙의 뾰족한 봉우리와 우측 문어대가리처럼 생긴 레이더 기지가 있는 봉우리를 아우르고 있다.
수리산(修理山)은 육산(肉山)에 가깝다. 경기도 안양시와 군포시, 안산시가 공유하고 있어 이들 주민에게는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한 산이다. 그러나 서울에서도 쉽게 갈 수 있어 ‘경기 20산’ 중에서 가장 접근성이 용이하다. 특히 수암봉(秀巖峰)은 봉우리 자체도 빼어나지만, 멀리 시화호와 서해바다가 조망되는 멋진 산이다. 
 
명학역 1번출구로 나와 육교를 건너면 파리바케트 빵집이 나온다. 성문고는 여기서 10분 거리다.
 산 면적이 넓어 여기저기 등산로가 많이 나 있으나, 종주를 하려면 관모봉(426m)∼태을봉(489m)∼슬기봉(452m)∼수암봉(395m)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수리산이라는 이름은 ‘도를 닦는다’는 한자보다 수리(독수리)라는 순우리말이 더욱 와 닿는다. 자료에는 수리산의 한 봉우리가  마치 독수리 같아 수리산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또,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절이 신심을 닦는 성지라 하여 수리사라 했는데, 1940년대 절 이름을 따서 수리산이라 칭했다는 설이 있고, 조선조 때 어느 왕손이 수도하다 부처님을 친견해 ‘수이산(修李山)’ 또는 ‘견불산(見佛山)’이라 불렀다는 설도 전해진다. 
 
관모봉 정상. 안양, 군포, 산본 신도시, 광교산 등이 조망되는 멋진 곳이다.
 수리산 종주는 안양 성문중·고등학교 입구 옆구리를 들머리로 삼는다. 성문고는 1호선 수원방향 명학역(안양역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1번출구로 나와 10여분 걸으면 당도한다. 
 성문중고 입구에서 우측으로 담을 끼고 돌면 수리산 북쪽 자락에 붙는다. 곧이어 수리산 산림욕장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관모봉까지는 깔딱고개다. 곧게 뻗은 나무들, 하이네와 이황 등의 시비도 감상하고 호젓한 산 길을 굽이돌아 관모봉(冠帽峰)까지 0.7km가량 오르면 머리가 맑아진다. 정상에 태극기가 꽂혀 있는 관모봉에 올라서면 안양시와 군포시, 산본 신도시가 한 눈에 펼쳐진다. 북동쪽으로 삼성산과 관악산이 둘러쳐져 있다. 그 우측으로 청계산과 모락산과 광교산이 눈에 들어온다. 
관모봉에 서면 동남쪽으로 모락산과 그 뒤로 광교산이 보인다.
  관모봉에서 수리산 주봉인 태을봉까지는 0.9km. 이제 능선을 타고 비커처럼 생긴 병목안을 빙 돌아나오는 종주산행이 본격 시작된다. 관모봉에서 태을봉까지는 특이한 조망이 없고, 병목안에 있는 수리산터널과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눈여겨 볼 수 있다. 태을봉 정상은 제법 너르고 사방이 탁 트여 있다. 인간에 대한 무섬증이 사라진 것일까. 등산객들이 손바닥에 먹이를 얹어놓으면 박새들이 날아와 쪼아먹고 간다. 이날도 태을봉에서 한 인상좋은 산꾼의 손바닥에 앉아 있는 박새를 보았다.
관모봉에서 수리산 주봉인 태을봉을 향해 가노라면 우측 병목안으로 수리산 터널과 외곽순화고속도로가 보인다. 맨 뒤편의 뾰족한 봉우리가 수암봉이다.
  태을봉에서 슬기봉을 향한다. 그 사이 능선 상에서 가장 멋진 병풍바위와 칼바위, 밧줄바위를 잇따라 만날 수 있다. 릿지라고는 할 수 없는 가벼운 암릉이다. 그래도 눈이 쌓여 있으면 우회하는 것이 좋다.
 
태을봉 정상. 관모봉처럼 일망무제로 탁 트여 있어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2개의 봉우리로 된 슬기봉은 공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오를 수 없지만, 군포시민들은 슬기봉을 주봉으로 삼는 듯 슬기봉 아래 420봉에 그 애틋함을 담아내고 있다. 정상 바위 틈에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소나무 보호 울타리에 ‘칼바람 막아주는 오른쪽 슬기봉, 여기가 정상이다…’라고 시작되는 시어(詩語)가 붙어 있는 것이다.
 
병풍바위. 태을봉에서 슬기봉으로 가는 능선상에서 만나는 암릉길이다. 눈이 쌓여 있지 않으면 위험한 코스는 아니다.
 슬기봉 정상 턱까지 치고 오르면 수암봉을 안내하는 키작은 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서 위치가 서쪽으로 틀어있는 수암봉까지는 4km에 이르는 긴 거리다. 슬기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해 가노라면 군부대 정문 앞의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라가다가 왼쪽 공터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붙는다. 군부대 철망이 나오고, 철망에 오른쪽 방향으로 수암봉 가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왼쪽은 전통고찰 수리사를 통해 하산하는 코스다. 오른쪽으로 철망을 끼고 가노라면 철망은 안산시 수암동을 향해 90도로 꺾어져 내려가고, 정면으로 수암봉이 올려다 보인다.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다이아몬드처럼 조각난 바위를 타고 수암봉 정상에 올라서면 지나온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관모봉, 태을봉, 슬기봉, 수암봉 그 먼길을 언제 돌아왔던가...
 
420봉 정상. 슬기봉을 주봉으로 삼고 있는 군포 사람들은 슬기봉을 군부대가 점유하고 있어 이용할 수 없자 인접한 420봉에 소나무 보호 등 애틋함을 담아내고 있다.
 시선을 서쪽으로 향하면 멀리 시화호가 석양빛에 반짝이고 서해가 가물가물 눈에 들어온다. 수리산에서 정겨운 우리의 서쪽 바다, 서해를 상봉할 줄이야. 감정이 잠시 복받친다. 
 
420봉에서 만난 박새. 수리산 곳곳에는 무섬증 없는 박새를 볼 수 있다.
 이제는 하산길. 남은 길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병목안 입구를 종착지로 삼아 발걸음을 옮긴다. 군부대 실탄사격장 간판에서 우측으로 꺾고, 자성암으로 내려가는 자성로(自成路)에서 그냥 직진하는 것만 조심하면 종착지까지는 일사천리다. 산이 끝나는 곳에 안양시 병목안 시민공원이 있다. 총소요시간 5시간∼5시간30분.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교통편과 숙지할 점>
 병목안삼거리 정거장에서 안양중앙시장과 4호선 금정역이나 범계역 가는 버스가 있다. 겨울철 산행은 아이젠과 장갑 착용이 필수다. 
 
군부대가 있는 슬기봉 정상 턱 밑에는 수암봉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서있다. 수암봉 가는 길은 슬기봉 우측 우회로로 나 있다.
 
슬기봉을 벗어나 수암봉을 향해 가다가 만나는 임도. 군부대 초소 바로 앞에서 임도가 시작된다.
군부대 철망이 안산시 수암동을 내려가는 곳에서 올려다 본 수암봉. 정상 부분이 바위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암봉 정상. 멀리 시화호와 서해바다가 조망되는 멋진 곳이다.
저녁노을이 서서히 내려앉는 수암봉에서 안산시와 시화호, 멀리 가물가물한 서해를 조망해 본다.
수암봉에서 하산길에 만나는 자성로 표지석. 여기서 곧장 내려가야 한다.
하산길에 만난 소나무 군락지. 수리산은 전체가 삼림욕장이라고 부를만큼 소나무 군락지가 많다.
병목안삼거리 정거장. 여기서 안양중앙시장, 금정역, 범계역 가는 버스가 자주 있다.
남양주 예봉-운길-예빈산

신비스런 '물의 나라' 종주내내 눈못떼

예빈산에서 바라본 팔당댐과 팔당호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수도권 전철이 덕소에서 팔당역까지 연장되면서 두물머리(양수리)를 조망할 수 있는 팔당 일대 예봉산, 운길산, 예빈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중에서도 예빈산은 남한강과 북한강, 팔당호, 한강 상류 등 ‘十’ 자 형태의 거대한 ‘물의 나라’를 가까이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꼭 한번 밟아볼 만하다.

 예봉산(禮峯山·683m)~운길산(雲吉山·610m), 예봉산~예빈산(禮賓山·590m)을 1주일 간격으로 종주하는 산행을 가졌다. 예봉산∼운길산 종주만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그 무엇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빈산을 밟는 순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성한 식탐 뒤의 포만감이라고 해야 할까.

◆예봉∼운길산 종주=예봉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 방향으로 북한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운길능선'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강 상류 앞에 바짝 멈춰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봉우리가 운길산 정상이다. 예봉산 정상에서 운길산 정상까지는 8Km에 달한다. 보통 1Km를 20∼25분에 걷는다면, 2시간40분∼3시간20분이 소요되는 거리다. 팔당역에서 예봉산 정상까지 2Km, 운길산에서 조안보건지소까지 2Km를 잡으면 예봉∼운길산 종주는 12Km, 4시간∼5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다.  
팔당역 신청사 뒤로 예봉산과 그 오른쪽으로 예빈산이 조망된다.

 중앙선이 지나가는 팔당역은 지난해 12월27일 수도권 전철이 이곳까지 연장되면서 역사를 새로 지어 깨끗하고 웅장하다. 역을 빠져나오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모두 등산길이 나 있는데, 산꾼들 대부분 왼쪽을 택해 팔당2리 입구로 오르고 있다. 중앙선 굴다리 밑을 통과해 마을을 지나면 예봉산 들머리가 나온다. 10여 분 오르노라면 새마을회관에서 올라오는 낮은 안부와 만난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계속 깔딱고개이나 가끔 한강과 건너편 검단산이며 하남시, 그 너머 남한산 등을 관찰할 수 있는 경관 좋은 전망대를 만난다. 예봉산 정상에 서면 동북쪽으로 유명산, 용문산 등이 조망되고, 북쪽으로 천마산 축령산이 아슴히 바라다 보인다. 

예봉산에서 운길산 가는 길은 서쪽 능선으로 내려가다가 잠시 북상한 뒤 다시 길게 동쪽 능선을 타고 가는 ‘U’ 형 길이다. 가는 길에 철문봉과 적갑산, 실락봉 등 봉우리도 지나고, 행글라이더를 타는 활강장도 만난다. 능선을 타고 가는 여정은 신선놀음이다. 끊임 없이 조화를 부리는 능선의 꿈틀거림이며, 과거 언젠가 본듯한 운치 있는 고개들이 발목을 잡는다. 곳곳에 조성된 송림 길은 일품이다. 운길산 정상을 2Km여 남겨놓고 능선은 뚝 떨어지는데, 정상이 코앞에 바라다 보이지만, 그 사이에 ‘숨은 봉’이 2개나 겹쳐 있어 만만히 봐서는 안된다.
 
예봉산 정상에 서면 북쪽 방향으로 운길 능선이 북한강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형국을 하고 있다. 능선 길이가 8km나 되는 제법 긴 구간이다.

구름도 쉬어 간다는 운길산 정상에 서면 발밑으로 북한강이 정답게 내려다 보인다. 금강산에서 발원해 화천과 춘천을 거쳐 371Km를 달려온 장한 민초들의 젖줄이다. 그 아래 천년고찰 수종사에 가면 북한강은 좀더 가깝게 조망된다. 수종사는 하산코스에 있어 자연스럽게 들를 수 있다. 조안보건지소 앞에서 양수교 가는 버스가 있고, 여기서 팔당역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조안보건지소에서 양수교까지 콜택시를 부르면 3000원이다.

예봉산에서 운길산으로 이동하는 능선 상에 조성된 행글라이더 활강장. 한강이 와부 근처에서 90도로 꺾어돌아 서울시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예봉산∼예빈산 종주=운길산이나 예빈산에서 출발하면 운길∼예봉∼예빈산 종주가 하루코스로 가능하지만, 예봉산에서 출발할 경우 등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 있어 하루에 두 곳을 다 가기가 쉽지 않다. 예봉산∼예빈산 종주 여행은 내내 두물머리를 조망할 수 있어 즐겁다. 능선 상에 율리고개, 직녀봉, 견우봉, 승원봉을 잇따라 만나는데, 직녀봉이 예빈산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직녀봉(590m)에 서면 북한강 하류가 좀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발 아래 신양수교가 북한강에 다리를 튼튼하게 뻗은 채 늠름하게 서 있다. 직녀봉은 다산 정약용 형제가 유년시절 산을 오르며 웅혼한 기상을 키운 곳이기도 하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이 합수된다는 두물머리. 두 물을 가두기 위해  조성된 팔당댐으로 인해 물길이 일부 마을을 삼키고 생겨난 팔당호, 팔당댐 아래로 힘차게 낙차되는 한강, 이렇게 네 갈래 물길이 만나는 양수리를 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물길이 또 있을까.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양수리는 생태계의 보고요, 청복의 땅이 아닐 수 없다. 양수리는 서뿔리 손대서는 안될 곳이다. 양수리 레저·관광자원에 대한 좀더 광범위하고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예봉산 직녀봉에서 바라본 북한강 하류. 양수교가 보인다.

예빈산 자락 등로가 끝나는 지점에  천주교 공원묘지가 있다. 죽은자와 산자가 두물머리를 함께 조망하는 멋진 곳이다. 하산 길 내내 ‘물의 나라’ 그 신비로움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등로가 끝나는 곳에 팔당∼양수리간 국도가 나 있고, 팔당댐 버스정류장이 있다. 도로 건너편이 팔당댐이다. 여기서 팔당역 가는 버스는 자주 있다. 예봉∼예빈산 종주는 8Km, 3시간30분∼4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남양주 천마산

하늘이 어루만지는 귀여운 등로, 천마산경기

천마산 남쪽자락에서 바라본 천마산 스키장과 천마산 정상.

천마산 스키장으로 잘 알려진 천마산(天摩山·812m)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과 진접읍의 경계에 있다. ‘경기 10산’에 들 정도로 멋진 산이다. 천마산의 한자어 ‘마(摩)’는 ‘갈다’라는 뜻도 있지만, ‘어루만지다’라는 뜻도 있어 천마산은 하늘이 어루만져주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산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경기 20산 탐방’은 되도록 종주코스로 디자인하고 있어 천마산도 들머리를 종주코스인 46번 국도(구도로)변에 놓인 마치고개로 잡았다. 지하철 잠실역 8번출구 대한제당 앞에서 마석 가는 1115번, 9202번 직행버스(요금 1700원)를 타고 ‘경성큰마을(아파트)’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마치고개를 찾아 갈 수 있다.구름다리(큰마을다리) 옆을 거쳐 아파트 후방으로 나 있는 구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마치고개를 만난다. 버스정류장에서 10여 분 거리다. 마치고개를 사이에 두고 남쪽은 백봉산, 북쪽은 천마산 들머리다.
 
마치고개 가기 직전인 큰마을아파트에서 바라본 천마산. 마치고개에서 정상까지가 3.8Km인데,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마치고개에서 천마산 정상까지는 3.8Km, 2시간∼2시간30분이 소요되는 거리다. 천마산 감상 포인트는 산행을 하면서 눈 덮인 천마스키장을 조망할 수 있고, 능선 폭이 넓어 종주 내내 탁 트인 조망권에서 시원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 20산’을 탐방하면서 항상 아쉬웠던 점은 전망이 좋은 곳은 주변의 나무를 잘 정비해서 조망권을 확보해 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정상 쪽이나 주변의 멋진 경관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천마산 능선길이 유난히 시야가 탁 트이고 시원한 느낌을 주기에 자세히 살펴보니 능선 폭이 10m 가까이 돼 다른 산보다 서너배는 넓었다. 주능선 전체를 그렇게 닦아 조망권을 확보해 놓은 것이다. 군립공원 천마산 관리사무소측의 대단한 용기요, 안목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산도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능선 일부 전망 좋은 구간에서 나무를 다소 베어낸다 해도 생태계에 별다른 해는 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고개에서 천마산 남쪽자락에 붙어 4부 능선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천마산 스키장이 눈에 들어온다. 순백의 설원 위에 불쑥 솟아오른 천마산 정상과 환상적 조화를 이룬다.
 마치고개에서 오르면 약 4부능선 쯤에서 오른쪽으로 천마산 스키장의 노란색 리프트와 함께 순백의 설원이 눈에 들어온다. 천마산 품안에 그토록 아름답고 편안한 스키장이 있을 줄이야.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심심찮게 스키장 특유의 활기찬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천마산 스키장은 코스가 완만하고 곡선이 산을 감아돌고 있어 매우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천마산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백봉산과 가파르게 형성된 서울리조트 스키장. 그 아래 마을이 평내동이다.
 능선 뒤로는 백봉산에 조성된 스키장이 눈에 들어오고, 능선 왼쪽으로는 호평동과 평내동이 자리잡고 있다. 그 가운데로 전철 경춘선 평내·호평 역사가 건설중에 있다. 처음엔 천마산이 육산(肉山)인 줄 알지만, 정상으로 이동하면서 짧지만 칼바위 능선도 만난다. 정상의 상당 부분은 바위로 이뤄져 있다.
 정상에 올라서니 날씨가 잔뜩 찌푸려 있고 눈발이 날려 인접 산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서북쪽의 철마산과 동북쪽의 축령산은 그 형태가 분명하나, 남쪽으로 운길산, 예봉산은 잘 보이지 않는다.  
 
천마산 정상에 태극기가 꽂혀 있다. 사방이 탁 트이고 주변의 능선이며, 임도가 잘 드러나 보이는 멋진 곳이다.
 하산 코스는 관리사무소 쪽으로 잡았다. ‘천마산 제1 등로’로서 필히 밟아봐야 할 코스다. 능선길이 삼각형 꼭지점에서 반대편 방향으로 내려가는 형국인데, 길이 뻥 뚫려 여간 시원하지 않다. 능선 상에서 갈기머리 숫사자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태의 바위도 만나고, 천마산 남쪽 자락에 조성된 천마산 스키장이 새로운 각도로 경쾌하게 조망된다. 능선이 끝나는 곳 길 건너로 송라산이 있는데, 송라산 방향으로 내려가다보면 관리사무소 방향 표지판을 만난다. 이곳에서 나무계단 데크를 따라 1.5Km 가량 내려가면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내려가는 길에 약수터가 2곳이나 있다.
천마산 동북쪽 능선. 능선의 폭이 10m는 될 정도로 넓어 산행내내 시원한 조망권을 확보해 준다. 능선이 끝나는 길 건너가  송라산이다.
 ‘천마산 군립공원’이라고 쓴 큰 기둥문을 벗어나면 마석에서 나오는 구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서울 방향으로 200여 m 걸어내려가면 ‘천마산입구’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55-1번과 1115-2번을 타면 구리시를 경유해 지하철 강변역까지 간다. 강변역까지 버스요금은 1300원. 관리사무소를 들머리로 삼아 천마산을 종주해도 또다른 감흥을 줄 것 같다. 총 소요시간 4시간∼4시간30분. 

 
정상에서 관리사무소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 상에서 만나는 사자바위. 실제 뭐라고 부르는 지는 모르지만, 기자의 눈에는 갈기머리의 숫사자가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남양주 축령산

겨울의 끝자락…능선여행 백미

 
축령산 휴양림 입구 계곡에 있는 얼음조각.
자연휴양림으로 유명한 경기도 남양주시 축령산(879m)이 흰 눈을 머리에 듬성듬성 인 채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고 있다. 축령산의 감상 포인트는 60년 이상된 잣나무와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이루는 울창한 휴양림 탐방과 남양주시 최고봉인 축령산과 서리산(825m)을 잇는 능선 여행이 백미다.

 축령산 산행은 ‘매표소3거리∼축령산∼서리산∼매표소3거리’로 원점회귀하는 종주코스가 있으나, 일부 등산객들은 매표소3거리에서 서리산을 올랐다가 축령산 정상을 거치지 않고, 절고개에서 하산하는 등로를 선호하고 있다. 물론, 축령산에 올랐다가 절고개로 내려오거나, 매표소3거리에서 절고개로 치고올랐다가 왼쪽의 서리산으로 돌아내려 올 수도 있고, 아니면 오른쪽의 축령산을 올랐다가 하산할 수도 있다. 축령산이나 서리산 한곳만 오르면 시간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경기 20산 탐방’ 원칙에 따라 종주코스를 택했다. 이 경우 시간은 4시30분∼5시간이 소요되지만, 피톤치드(Phytoncide)를 팍팍 뿜어낸다는 자연휴양림, 축령산의 기암 수리바위, 2.5Km에 이르는 명품 능선, 고목이 만들어내는 철쭉터널 등을 모두 감상할 수 있어 이점이 많다. 단, 철쭉은 5월10일∼15일쯤 만개한다고 한다. 

 
축령산 휴양림 가는 길 입구에서 바라본 축령산.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남이바위이고 태극기가 게양된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매표소3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난 아스팔트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제1주차장이 나오고, 여기서 휴양림으로 붙으면 수리바위와 남이바위, 헬기장을 거쳐 축령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제1주차장에서 축령산 정상까지는 2.74Km, 약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잣나무 숲을 통과하노라면 고고한 원시림이 느껴진다. 여기서 1Km 가량 치고오르면 능선 상에 독수리 머리를 닮은 바위를 만난다. 벼랑 앞으로 툭 불거져나간 바위 모습이 영락없는 독수리 부리다. 실제 이곳에는 독수리들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축령산 수리바위. 아래에서는 강인한 독수리 부리가, 위에서 독수리 머리 숱이 인상적으로 조망된다.
 여기서 다시 능선을 타고 1Km가량 더 오르면 남이바위를 만나는데, 오르는 도중 내내 돌아봐도 수리바위는 독수리의 제 모습을 다각도로 보여줄 뿐, 그 모습을 잃지 않는다. 남이바위는 기암절벽으로 이뤄져 있다. 조선 세조때 명장 남이장군이 한성 북방의 요충지인이 이곳에 와서 심신을 연마했다고 한다. 남이바위를 지나면 능선이 잠시 수평을 이루고 가면서 너른 헬기장을 만난다. 헬기장에 서면 동쪽으로 굼틀대는 산 무리 사이로 호수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청평호수다. 

 
축령산 정상. 사방이 일망무제로 트여 조망권이 좋다.

 드디어 축령산 정상이다. 고려말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국하기 전 이곳으로 사냥을 나왔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산신제를 드린 후 멧돼지를 잡았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고사를 지낸 산이라하여 축령산(祝靈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같은 영험함이며 숲의 울창함 때문인지 펜션이며 전원주택, 휴양시설 등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정상은 일망무제로 트였다. 서북쪽으로 가깝게 서리산이 조망되고, 멀리 북쪽으로 운악산, 연인산, 명지산이 바라다 보인다. 북동쪽으로 화악산도 경기 최고봉답게 흰 눈을 제법 두텁게 머리에 인 채 희미하게 조망된다. 남동쪽으로 용문산, 남서쪽으로 천마산도 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청평호수도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축령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리산. 2.87Km 거리인데, 가깝게 조망된다.

 축령산에서 2.87Km 거리에 있는 서리산을 향한다. 내리막길이 북향이어서 눈이 녹지 않아, 정상을 내려서기 전에 아이젠을 필히 착용하는 것이 좋다. 0.68Km 가량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면 너른 안부인 절고개가 나온다. 절고개에서 동쪽으로 형성된 잣나무 숲이 이른바 가평8경에 속한다는 ‘축령백림’이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있는 고고한 자세가 역력히 느껴진다. 여기서부터 서리산까지 능선여행은 일품이다. 능선 폭이 넓고 곧게 뻗어 있는데다 높낮이가 크지 않아 그렇게 편안할 수 없다. 어떤 곳은 신작로처럼 넓고 시원하게 뻗은 곳도 있다. 주변 조망도 좋고, 가끔 만나는 잣나무 숲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다. 겨울인데도 그윽한 잣나무 향이 느껴진다. 간혹 이리저리 굽어도는 고갯마루의 정겨움은 또 어떤가. 축령산과 서리산을 잇는 능선 여행은 여름날 시원한 수박을 먹거나, 진한 곰국을 먹는 느낌이다. 

 
축령산과 서리산을 잇는 능선여행은 축령산 산행의 백미다. 울창한 잣나무 숲의 장관이며, 고향 언덕같은 아릿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서리산 정상은 밋밋하지만, 주변의 철쭉군락은 최고의 볼거리로 꼽힌다. 5월 중순 철쭉이 만개할 무렵이면 수도권 제일의 철쭉군락지로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수령 50년 가량된 이곳 철쭉은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키가 크고 연분홍 색채를 띠고 있으며, 높이 1.4m∼4m에 이르는 철쭉이 이뤄놓는 700m 가량의 철쭉터널은 가히 장관이라고 한다. 철쭉동산 전망대에 철쭉사진이 걸려 있는데, 한반도 지도 모양을 하고 있어 더욱 이채를 띤다.
 
축령산 철쭉터널. 5월10일쯤이면 키가 1.5~4m에 이르는 40~50년생 철쭉들이 만개해 꽃터널을 이룬다고 한다.
 본격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화채봉3거리까지 가는 동안 철쭉은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뻗은 채 아름다운 자태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가지마다 탐스럽게 매달린 꽃망울이 터질 때 꼭 다시한번 찾겠노라’고 새끼손가락을 걸어본다. 
 
축령산 서쪽 휴양림의 위용. 휴양림에 끝나는 곳에 관리사무소가 있다.

 화채봉3거리에서 관리사무소까지 1.89Km는 계속 내리막이다. 길이 가파르고 낙엽이 많아 미끄럼을 조심해야 한다. 아스팔트 길에 내려서기 직전에 다시한번 거대한 잣나무 숲과 만난다.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휴양림을 빠져나가는 동안 심신은 더욱 강인해지는 느낌이다. 

 <교통편>
 청량리역 광장 버스정류장에서 ‘1330’ ‘330’ ‘30’ ‘765-1’번 마석 가는 버스나 잠실역에서 ‘1115’번 마석가는 버스를 타고 마석 화도파출소 앞에서 하차한 뒤, 여기서 다시 축령산 휴양림 가는 ‘40-3’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종점에서 매표소까지는 약 200m. 
휴양림 입장료 1000원.
 
가평 화악산

1468m 경기 最高峰…바람의 산

화악산 중봉에서 바라본 정상(레이더시설이 있는 곳).

  경기 최고봉을 오른다니 가벼운 흥분이 인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의 경계에 있는 화악산(華岳山·1468m)은 경기도 산 중에 가장 높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화악산은 최고봉이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등산객들의 발길을 쉽게 허락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등로가 명확하게 표기돼 있지 않다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중간에 하산할 수 있는 코스가 없어 먼 거리를 돌아 내려가야 한다. 그뿐인가. 산불방지로 매년 12월과 1, 2월은 입산이 금지돼 있다. 그래도 최고봉을 밟으려면 그만한 불편은 감수하시라.
 

관청리 보건소 인근 사잇길로 들어서면 눈을 머리에 인 화악산 정상이 보이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경기의 으뜸산 화악산은 3개 봉우리로 이뤄져 있으나, 38도선이 지나가는 정상은 군 레이더 기지가 있어 오를 수 없고, 동쪽의 응봉은 거리가 멀어 사실상 서남쪽의 중봉(1450m)이 정상 노릇을 하고 있다.   
 화악산의 감상포인트는 도봉산의 두배나 되는 높은 산봉을 오른다는 감동과 산 전체를 할퀴고 다니는 바람의 움직임이다. 화악산은 ‘바람의 산’이라는 소리가 절로 날만큼 바람이 많다. 산 곳곳에는 강풍에 부러진 채 널부러져 있는 나무들이 즐비하다. 화악산 등로에서 조금만 방심하면 부러진 나무에 머리를 부딪히기 십상이다.
 2월 중순의 화악산은 아직도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여 있다. 화악산 들머리에 서면 하얗게 눈덮인 정상을 확인할 수 있다. 화악산의 서·남쪽 사면에서 각각 발원하는 물은 화악천을 이루며 이 물이 가평천의 주천(主川)이 되어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화악산 자락에서 만나는 첫 이정표. 중봉과 애기봉 방향이 표시돼 있다.

 화악산 등로는 가평군 관청리 보건소 인근 사잇길을 들머리로 삼되, 표지판은 참조만 해야 한다. 방향은 맞지만, 표지판끼리 관계가 맞지 않아 거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정상인 중봉에서 하산할 때 코스를 짧게 잡으려면 올라온 길로 되돌아 내려오는 것이 좋다. 표지판에 써있는 애기봉(3.27Km) 쪽으로 하산하려면 애기봉을 지나 애기고개까지 2Km 가량 이동한 뒤, 임도를 따라 다시 3Km 가량을 더 걸어 내려가야 버스를 탈 수 있는 큰길가에 닿는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렇게라도 알고 가면 다행인데, 산불감시원에 따르면 중간에 빠른 하산로를 찾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등로를 충분히 이해했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화악산을 올라보자. 관청리 보건소에서 시멘트로 된 마을 길로 들어서면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는 화악산이 바라다 보인다. 계곡을 따라 1.2Km 가량 걷노라면 중봉을 안내하는 첫 표지판이 나온다. 이때까지는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계곡을 따라 걷기도 하며 출입금지 표지가 된 취수원보호구역 철문도 만난다. 등산객들이 다닌 흔적만 잘 찾아가면 무난히 표지판 있는 곳에 닿는다. 일단 표지판을 발견하니 마음이 놓인다. 첫 표지판에서 중봉까지는 3.8Km, 약 2시간 거리다.
 

화악산은 최고봉답게 겨울의 끝무렵인데, 눈이 푹푹 빠지는 곳이 많다.

 애기봉까지는 2.01 Km라고 써 있다. 애기봉까지 가는 길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건 나중에 하산시 알게 되었지만, 왜 애기봉에서는 하산로가 없었을까? 애기봉에 가면 하산로 대신 표지판은 수덕산으로 안내한다. 중봉에서 애기봉까지 가는 동안 사람이 내려간 흔적이 있는 안부는 몇개 있었지만, 그때마다 표지판에는 ‘등산로 없음(상수원보호구역)’이라고 적혀 있어 어리둥절하게 했다. 다음에 화악산에 갈 기회가 있으면 계곡에서 애기봉 쪽으로 올라 볼 생각이다.
 중봉에서 애기봉까지 길은 잘 나 있다. 겨울철이어서 그런지 1000m대의 국망봉에 오를 때보다 힘은 휠씬 덜 든다. 중봉에 오르는 동안 특별한 전경은 없고, 북한산의 사모바위를 닮은 작은 바위 하나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고봉답게 산세가 중후하고 주변 산줄기도 힘이 넘쳐 보인다. 산행 내내 바람이 졸졸 따라다닌다. 
 

화악산은 바람의 산으로 불릴만큼 바람이 많이 분다. 이 때문에 강풍에 부러진 나무가 등로상에 많아 주의를 요한다.

 중봉에 올라서니 설원 위에 십자가 형상의 대형 안테나 두 개가 반긴다. 건너편 정상에는 군사보호구역이어서 그런지 눈이 쌓여 있지 않다. 동쪽 방향으로 멀지않은 곳에 춘천호가 있다지만 보이지 않고, 서남쪽의 명지산은 뚜렷하게 관찰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봉에서 애기봉을 거쳐 수덕산까지 약 10㎞의 능선이 산행코스로 이용되는 모양이다. 한 자료에 따르면 수덕산은 화악산과 명지산의 명성에 가려 덜 알려져 있으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애기고개에서 도대리 쪽으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약 3Km를 걸으면 도솔천사 입구가 나오고, 여기서 왼쪽으로 아스팔트를 따라 10여 분 걸으면 명지산 입구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교통편>
 동서울터미널에서 가평 가는 직행버스(요금 5600원)를 타고, 가평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뒤 여기서 다시 적목리 용수동 가는 파란색 시내버스(요금 1300원·카드도 가능)를 타고 관청리 보건소에서 하차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가평行 직행버스는 하루 30여회 있어 충분한 편이나, 가평에서 용수동行 시내버스가 하루 6회 밖에 없어 대중교통 이용에 유의해야 한다.
 시간상 원만한 산행을 위해서는 ‘동서울터미널 가평行 직행버스 07:40 출발, 08:50 가평터미널 도착, 가평터미널에서 적목리 용수동行 시내버스 09:00 출발’에 맞춰야 한다. 적목리 용수동에서 가평 가는 막차는 오후 5시50분이므로 하산시에도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작은 사모바위라고 해야할까. 정상으로 오르기 전에 북한산 사모바위를 연상케 하는 이러한 바위 하나를 만난다.

 

화악산 8부 능선쯤에서 바라본 정상 부분. 문어대가리 모양의 군레이더 시설이 조망된다. 사진 오른쪽에 중봉이 있다.

화악산 중봉 아래에서 바라본 명지산.

화악산 중봉에는 십자가 형상의 대형 안테나 두 개나 세워져 있다. 사진 중앙에 검은돌로 제작한 중봉 표지석이 작게 보인다.

중봉에서 애기봉을 거쳐 만나는 애기고개. 애기봉을 하산길로 택했으면,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도대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가평~용수동간 아스팔트 길이 나온다.

도대리로 향하는 임도. 제법 눈이 많이 쌓여 있다.

도솔천사 입구. 임도가 끝나는 곳에 우측으로 도솔천사에서 짓고 있는 대형 불상 2기의 제작 현장을 볼 수 있다.

 

포천 명성산

기암, 대슬래브 절경…'경기의 북한산'

서로 반대편에서 바라본 사진촬영장소 바위(위)와 책바위(아래) 전경.
 
경기도 포천시와 강원도 철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명성산(鳴聲山·923m)은 억새밭으로 유명하다. 억새는 계절도 모르는 듯 봄의 초입임에도 가을철 화려했던 군무를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명성산을 억새밭으로만 기억한다면 오산이다. 명성산은 기암과 대슬래브가 절경을 이루는 암산(岩山)으로도 손색이 없다. 가히 ‘경기의 북한산’으로 불릴만 하다.

 명성산의 감상 포인트는 질좋은 육산(肉山)이 토대가 된 대규모 억새 군락을 꼽을 수 있으나 이와함께 책바위능선 상에 조성된 기암과 대슬래브를 빠트릴 수 없다. 서울의 북한산에서나 볼 수 있는 기묘한 괴석이며, 50m가 넘는 대슬래브가 최상의 조망권을 선물하고 있다. 이밖에도 명성산은 산이 가진 최대한의 볼거리를 자랑한다. 10m에 이르는 등룡폭포며 산정호수의 완벽한 조망, 주변의 고봉(高峰) 그룹이 그것이다. 섣부른 결론일지는 모르나, 명성산이 ‘경기의 그랑프리산’이 아닐까 하는 심증을 가져본다.

 산정호수 주차장 표지판에 등산로 3코스가 소개돼 있지만, 초보가 아니라면 명성산 정상까지 밟아보거나 하산길에 꼭 책바위능선 코스를 택할 것을 권면한다. 부디 억새밭의 감동에만 매몰되지 말기를.

 
높이가 10m가 넘는 등룡폭포. 억새밭 가기 직전에 만난다.
 버스 종.점에서 가까운 식당 옆을 들머리 삼아 명성산에 오른다.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우측으로 2m 남짓되는 비선폭포와 10m에 육박하는 등룡폭포가 나온다. 아직도 폭포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폭포의 규모가 제법 넓고 높아 한여름에는 시원한 물줄기를 자랑했을 법하다. 등룡폭포를 벗어나니 등로가 질퍽질퍽하다. 해빙기여서 땅이 진흙 구덩이로 변해 여간 미끄럽지 않다. 길가로 조금씩 억새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펼쳐진 억새 군락에 화들짝 놀란다. 오후 1시쯤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억새밭은 아이보리빛 감흥을 흠뻑 발산한다.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봉우리 한 면을 채우고도 남을 억새는 계절도 잊은 듯 제자랑에 정신이 없다. 
 억새밭이 가파르게 오르다
봉우리 한 면을 다 채우고도 남을 명성산 억새 군락지. 감탄이 절로 나는 곳이다.
끝나는 팔각정 안부. 여기서 명성산은 육산과 암산으로 갈린다. 등로를 우측으로 꺾으면 삼각봉을 거쳐 정상으로 이어지는 육산을 경험할 수 있고, 왼쪽으로 돌리면 자인사로 내려가거나 책바위능선을 통해 비선폭포로 하산하는 암산을 체험할 수 있다. 팔각정 안부에서 정상까지는 2Km, 1시간 가량이 소요되는 거리다. 정상까지는 능선이 너른데다 일망무제로 트여 좌우 조망이 더없이 좋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철원평야가 조망되는 정상까지 가보길 권한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면, 팔각정에서 1Km, 그러니까 삼각봉과 정상이 조망되는 헬리포트가 있는 안부까지만 갔다가 되돌아 오는 것도 무방하다. 그래도 어디 하나 가린데 없이 완벽하게 드러나는 산정호수며 주변의 광덕산, 국망봉, 화악산 등 1000m가 넘는 경기의 고봉 그룹을 감상할 수 있다. 등산 초보가 아니라면 팔각정에서 책바위능선을 거쳐 하산해 보길 권유하고 싶다.
 
명성산 주능선 상에서 바라본 산정호수. 어디하나 가린데 없이 완벽히 조망된다.
 
명성산 정상(오른쪽에 두번째 약간 숨은 봉우리)이 바라다 보이는 주능선.일망무제로 트여 양쪽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느낌 좋은 곳이다.
 
정상 가까운 주능선에서 돌아다 본 전경. 밟아온 길이 시원하게 드러나 보인다.
 
명성산 정상. 북쪽으로 철원평야가 펼쳐져 있고, 서북쪽으로 금악산, 그 뒤로 고대산이 조망된다.
 
명성산 정상에 서면 정동쪽으로 광덕산이 보이고, 남쪽으로 국망봉(사진 맨 뒤에서 두번째 봉우리 그룹)과 화악산(맨 뒤 봉우리)이 관찰된다. 모두 1000m대가 넘는 고봉들이다.
 팔각정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어 내려가다 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북한산의 인수봉이 연상되는 대형 암벽이 조망된다. 50m가 넘는 대슬래브다. 이것을 완벽하게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바로 명성산 들머리 표지판에 ‘사진촬영소’라고 쓰인 바위다. 바위 이름이 따로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발밑은 천애 벼랑이어서 아찔하지만, 충분히 조망권은 확보되는 곳이다. 반대편 책바위(대슬래브) 쪽에서 보면, 이곳 자체가 멋진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목재데크가 나오고,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불교 조계종 자인사와 책바위능선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만난다. 여기서 자인사 길을 택하면 안정적으로 큰길에 가까운 자인사에 이르지만, 책바위능선을 택하면 길은 다소 험하다. 그러나 등산 경험이 조금만 있으면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사진촬영소 바위에서 바라본 책바위. 50m가 넘는 대슬래브다.
 
 
 
책바위 능선에서 바라본 사진촬영소 바위. 멋진 기암으로 이뤄져 있다.
 
책바위 전망대에서 바라 본 책바위(오른쪽 화강암 절벽)와 사진촬영소 바위. 시선을 붙잡아 매는 곳이다.
 
'책바위 봉' 중턱 쯤에서 바라본 책바위. 정상 부분이 책을 펼친 뒤 두개의 봉우리로 갈라져 있어 책바위라고 했을까?.
 쇠말뚝에 매인 로프를 타고 내려가면 정상을 가리키는 나무 이정표를 만난다. 인근 바위에 흰색 페인트로 ‘책바위능선’이라고 화살표와 함께 쓰여 있다. 여기서 지근 거리에 책바위와 건너편 ‘사진촬영소바위’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바위가 있다. 이곳에 서면 명성산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화강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암산임을 알 수 있다. 이토록 멋진 비경이 숨어있다니, ‘경기의 북한산’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는 곳이다.  조금 더 내려와 ‘명성산 2-2(책바위)’라고 쓰인 현위치를 알리는 표지판 쯤에서 뒤돌아 보면 책바위는 2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양쪽으로 펼친 모양이라고 여겨지지만, 상상은 다양하게 하시라. 계속 내려가면 길 옆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은 산소가 하나 나오고, 조금 더 내려가면 들머리에 가까운 비선폭포가 나타난다. 

 <교통편>

 동서울터미널에서 운천가는 직행버스(7100원)를 타고 운천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한다. 여기서 다시 산정호수 가는 버스(1000원)를 타면 된다. 서울에서 운천 가는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운천에서 산정호수 가는 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의정부에서 2시간 간격으로 산정호수로 바로 가는 버스도 있다.

 

가평 명지산

1.3Km…경기最長 하트브레이크드

 

제1봉~2봉 능선 상에서 바라본 제1봉(명지산 정상).

 능선 산행에 약간의 착오가 발생했다. 이틀전 쏟아진 눈이 주능선이며 주요 등로에 수북히 쌓여 산행이 어려웠던 것이다. 아이젠을 착용했어도 발이 밀리고, 눈이 등산화 안으로 들어와 양말을 적셨다. 제1봉에 오른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고, 2·3봉으로의 진행은 접고 말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봉에서 화채바위를 거쳐 ‘명지산 참숯가마’ 쪽으로 떨어지는 능선도 좋다고 한다.
 
명지산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명지산 제1봉(맨 뒤편 오른쪽)과 제2봉(왼쪽).
 
명지산의 명물 익근리 계곡.
 
명지산 자락에 있는 승천사. 돌 미륵불이 인상적이다.
 
이곳 삼거리에서 양쪽으로 제1봉에 오를 수 있다. 2, 3봉까지 가려면 가능한 빨리 능선에 오르는 오른쪽 '깔딱고개'를 택하는 것이 좋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北面)과 하면(下面)의 경계에 있으며, 경기 산 가운데 두번째 높다는 명지산(明智山·1267m). 아름다운 계곡(익근리)으로 명성을 얻고 있지만, 1.3Km에 이르는 경기 최장(最長)의 ‘하트 브레이크드(heart breaked)’도 각별한 진가를 떨친다. ‘심장이 터지다’는 의미의 “하트 브레이크드’는 우리 말로 ‘깔딱고개’. 명지폭포를 지나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깔딱고개는 화채바위 능선까지 단 한 차례도 숨 고를 곳 없이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1.3Km 거리에 1시간20분이 소요됐다. 그만큼 가파른 오름의 연속이었다. 가뜩이나 명지산 들머리인 군립공원 매표소(입장료 성인 1600원)에서 삼거리까지 3.2Km를 계곡에 갇힌 채 걸었는 데, 벽을 보고 걷는 듯한 깔딱고개가 더욱 막막함을 안겨줬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나무다리를 거쳐 제1봉에 오르는 깔딱고개는 1.8Km나 되니 할 말을 잊는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르치는 깔딱고개는 인생길에서 구도의 현장이 아니던가. 애써 도전해 볼만하다.
 
삼거리 오른 쪽에 나 있는 깔딱고개. 1.3Km인데, 1시간20분이 소요된다.
  정상인 제1봉을 1Km 남겨두고 맞이한 능선 길. 눈이 쌓여 등로도 알 수 없고, 발은 푹푹 빠지지만 그래도 즐겁다. ‘경기 최장 깔딱고개’를 통과한 것에 대한 보답일까. 나뭇가지마다 나무서리, 이른바 ‘상고대’가 피어 장관을 이룬다. 나뭇가지에 핀 하얀 눈꽃이 코발트빛 하늘과 어우러져 바닷속 산호초를 연상케 한다. 깨끗하고 눈부시다. 움직임에 따라, 각도에 따라 상고대는 그 모양을 달리하며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도무지 발을 뗄 수가 없다. 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명지산은 그렇게 마지막 '눈꽃축제'에 여념이 없다.
 
화채바위 능선. 이곳서 제1봉까지 1.0Km가량 능선여행이 시작된다.
 
이틀전 내린 눈과 바람으로 능선에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다.
 
화채바위 능선 상에서 펼쳐진 눈꽃축제.
 
나무서리(상고대)가 코발트빛 하늘과 어우러져 바닷속 산호초를 연상케 한다.
 
드디어 제1봉(정상)을 코 앞에 두고 이정표가 보이고...
 드디어 제1봉. 시야가 더이상 진행할 수 없는 곳까지 온통 ‘설국(雪國)’이 펼쳐진다. 가장 잘 보이는 곳이 북동쪽의 ‘경기 최고봉’ 화악산(1468m)이다. 명지산 북 능선과 근육질의 화악산, 정상 위의 흰구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히말라야 고봉을 보는 듯하다. 남서쪽으로 해발 1068m의 연인산이 있으련만, 제2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눈이 쌓인 관계로 조망권 확보가 어려워 서북쪽의 강씨봉(830m)도 확인할 수 없었다. 
 
명지산 제1봉. 능선 상에 제2봉과 제3봉이 잇따라 조망된다.
 
제1봉에서 바라본 화악산. 명지산 능선과 화악산 정상, 그 위의 흰 구름이 눈과 어우러져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출발 당시 주 산행코스인 ‘매표소∼승천사~명지폭포~삼거리~명지1봉(명지산 정상)~명지2봉~명지3봉~귀목고개~상판리’로 이어지는 12.8Km(6시간∼6시간30분) 구간을 예정했으나, 능선 상에 등로도 잘 나타나지 않고, 눈 속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소진해 제2, 3봉을 뒤로 한 채 하산하기로 했다.
 제1봉에서 하산로를 찾는 데 잠시 애를 먹었다. 당초 들머리에 있던 그림판과는 달리 제1봉에서 삼거리로 하산하는 등로 표지가 없는 것이다. 온 길로 되돌아갈까 망설이다가 가까스로 길을 찾았다. 제2봉을 향해 100여 m 내려가니 나무데크가 나오고, 나무데크를 내려서니 비로소 익근리(들머리)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었다. 알고보니,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나무다리를 지나 제1봉에 오르는 것이 많이 이용하는 등로였던 모양이다. 능선 산행을 선호한다면 ‘명지산 참숯가마’가 있는 명지산 북능선 자락을 들머리 삼아 제1봉에 오르는 코스도 이용해 볼만하다. 
 
제1봉에서 100여 m 내려가면 나무데크가 보인다. 그 아래에 제2봉과 익근리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다.
 
건너편 화악산 중봉에서 바라본 명지산 전경.
 
명지산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시간이 남으면 가까운 안성집 식당을 추천한다. 인심도 좋고, 된장찌개가 별미다.
 제1봉에서 깔딱고개를 내려선 뒤 익근리계곡을 따라 매표소까지 내려오는 하산길은 장장 5Km. 특별한 조망권이 없어 꽤나 참을성을 요하는 코스다. 들머리 다 와서 만나는 승천사의 머리에 갓 쓴 미륵불은 다시 봐도 귀엽다. 비구니 스님이 거주한다는 승천사는 여느 절처럼 현세불을 모시지 않고, 다음 세상에 다시 온다는 내세의 부처, 즉 미륵불을 아주 드물게 모셔놓고 있다.

 

 <교통편>
 동서울터미널에서 가평 가는 직행버스(5600원)를 타고, 가평터미널에서 하차. 가평터미널에서 적목리 방면(시내버스 1일 5회) 버스를 타고 명지산 입구에서 내린다. 명지산 입구에서 막차가 오후 6시에 있어 원점회귀 산행일 경우 시간 조절에 유념해야 한다. 제2, 3봉을 거쳐 상판리로 떨어져도 가평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양평 용문산

봉우리마다 절경...'경기의 금강산'

 
용문산 은행나무

  
'한국의 마테호른' 용문산 백운봉.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양평읍 가까이 가다보면 좌측으로 스위스 알프스의 끝이 뾰족한 설산 마테호른(4478m)이 연상되는 봉우리 하나가 눈에 띈다. ‘한국의 마테호른’으로 불리는 용문산 백운봉이다. 오리지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날카로운 자태가 범상치 않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1157m)은 주봉인 용문산 정상을 포함해 장군봉(1065m), 용문봉(947m), 백운봉(940m),도일봉(864m), 중원산(800m), 용조봉(635m) 등 멋진 봉우리를 많이 아우르고 있어 가히 ‘경기의 금강산’으로 부를 만하다. 한 백과사전에도 ‘중원산과의 중간에는 용계(龍溪)·조계(鳥溪)의 대협곡이 있고 그 사이에 낀 암릉(용조봉)은 수백m의 기암절벽 위에 있어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라고 적고 있어 느낌은 빗나가지 않았다.
 용문산을 매표소에서 시작해 ‘용문사∼마당바위∼용문산∼장군봉∼함왕봉∼백운봉∼헬기장∼새수골’에 이르는 코스와 ‘용문사∼상원사∼장군봉∼용문산∼용문봉∼매표소‘코스, 또 하나 ‘용문산 주차장∼도일봉∼용조봉∼용문산 주차장’에 이르는 3개의 코스를 각각 답사했다. 산행시간이 1, 2코스는 7시간30분 가량으로 둘 다 비슷하고, 3코스는 6시간30분 가량 소요된다. 그러나 2코스는 하산길에 돌이 많이 굴러내려 추천할 만한 곳이 못된다. 첫번째 코스와 세번째 코스는 보여줄 만한 전경이 많은 데,
사진을 찍지 못해 두번째 코스 위주로 산행기를 적어본다.
 
용문사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용문산 정상.
 매표소에서 일주문을 지나 1Km 가량을 걸으면 좌측으로 우람한 은행나무 한그루와 우측으로 용문사가 보인다.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은행나무는 용문산의 랜드마크처럼,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용문사는 스노보드 잘 타는 호산 스님이 주지로 있는 곳이고, 경내에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의 부도가 있다. 대웅전 앞에서 용문산 정상을 촬영하면 전깃줄 등 걸리는 것이 없어 좋다.
 마당바위(키가 2m 남짓 되는 바위 위가 마당처럼 넓어 간식 먹는 장소로 많이 이용됨)와 상원사로 갈라지는 이정표에서 상원사쪽으로 향하니 얼마 안가 깔딱고개다. 능선을 넘어서도 상원사까지 가는 길은 제법 길다. 용문사에서 상원사까지는 2.1Km, 1시간20분 거리다. 일단 능선을 넘으면 길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거나 굽이돌며 1Km가량 이어진다. 길 양켠엔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산책로처럼 호젓하다. 
 
상원사 가는 길.
 상원사는 전통사찰이 아니어서 고풍스럽지는 않다. 상원사에서 장군봉을 오르려면 산행을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다. 다시 마음가짐을 다잡아야 한다. 그만큼 가파르기도 하다. 다소 위로가 되는 곳이 있다면 나무껍질이 흰색을 띄고 있는 자작나무 군락이다. 장군봉에 오르면 좌측으로 함왕봉∼백운봉으로 이어진다. 우측은 용문산 정상으로 향하며 거리는 1.5Km. 장군봉부터 시작되는 용문산 남쪽 능선 길도 느낌이 좋다. 왼쪽으로 북한강과 유명산 등을 조망할 수 있고, 우측으로는 용문산 중간 능선과 용문봉이며, 용문산 북쪽 능선이 조망된다. 
 
용문봉쪽에서 바라본 '한국의 마테호른' 백운봉
 용문산 정상 가까이 가면 이정표가 하나 나오고, 그 위에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잠시 군부대 철망까지  올라가 보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서쪽으로 함왕봉, 백운봉, 두리봉 등이 조망되고, 북서쪽으로 머리가 듬성듬성 벗겨져 있는 유명산이 내려다 보인다.
 군부대를 우회해서 20분가량 진행하면 용문산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바로 이곳에서 정상까지 10여 분 거리가 지난 40년동안 폐쇄돼 있었다. 양평군이 지난해 11월17일 개방한 이래 지금은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정상의 전망대가 데크로 잘 조성돼 있어 기분이 좋다. 
 
용문산 정상에서 바라본 용문봉.
 정상에서 이정표 있는 곳까지 조금 더 진행하면 용문봉 3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가 용문봉 오르는 들머리다. 용문산 북쪽 능선까지는 0.9Km라고 표시돼 있다. 용문산 북쪽 능선을 따라 용문봉까지 가는 느낌도 상큼하다. 가는 동안 정상과 중간 능선, 남쪽 능선 등으로 이어지는 전경이 좋아 자꾸 뒤돌아 보게 된다. 용문봉을 지나 능선상에서 우측으로 하산하게 되는데, 길이 까따롭고, 돌이 많아 낙석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1,2코스와 3코스는 별개의 코스이므로, 적어도 1코스와 3코스(초보자는 삼갈 것)를 돌아봐야 용문산이 ‘경기의 금강산’임을 실감할 수 있겠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장군봉 정상. 여기서 길은 함왕봉쪽과 용문산 정상쪽으로 갈린다.
 
용문산 정상.
 
용문봉 가는 길에 만나는 고사목.
 
용문봉 가는 길에 만나는 기암괴석.
 
 <교통편>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에서 각각 양평 용문산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동서울터미널의 경우 오전 8시40분, 오후 2시40분 두 차례 버스가 운행되고, 교통비는 편도 6300원이다. 
포천 운악산

깎아지른 절벽마다 仙景...'경기의 설악산'

  

1코스 애기봉 가기 직전에 바라본 운악산의 한 능선. 깎아지른 절벽이 예사롭지 않다.

 경기도 포천시와 가평군의 경계를 이루는 운악산(雲岳山·935.5m)은 ‘경기의 설악’이라고 부를 정도로 봉우리들이 아름답다. 서봉(935.5m)과 동봉(937.5m)으로 이뤄진 주봉에 오르면 동북쪽 멀지 않은 곳으로 연인산(1068m), 명지산(1267m) 등 경기의 고봉들이 조망되련만, 도무지 인접 산에 눈길을 허락지 않는다. 주봉을 중심으로 갈리어 나간 봉우리마다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며 우뚝우뚝 서있다. 이들 비경을 따라잡기에 바빠 도무지 인접 산으로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이다.
 운악산은 1000m 대 봉우리군에는 속하지 않지만, 산세는 험한 편이다. 화악, 관악, 감악, 송악과 함께 ‘경기 5악’으로 불리며 전형적인 암산(岩山)이다. 높이 치솟은 암봉들이 구름을 뚫을 듯하다 하여 붙여진 운악산에 올라 운우(雲雨)를 벗삼아 비경에 빠져볼 만하다. 
 
애기봉과 서봉 사이에서 조망한 운악산 서북쪽 능선과 계곡.

 포천 방향에서 정상에 오르는 코스는 크게 3가지다. 1코스는 ‘운주사∼무지치폭포∼신선대∼대궐터∼애기바위∼동봉’이고, 2코스는 ‘운악휴게소∼소꼬리폭포∼궁예성터∼동봉’이다. 3코스는 ‘대원사∼서렁골∼난절터∼동봉’이다. 이중 2코스 등정이 가장 험하다고 한다. 그러나 등산 초보자가 아니라면 못오를 것은 없다. 
 
운악산 서봉에서 바라본 북동쪽 능선. 보이는 곳이 모두 운악산 줄기다.
  
운악산의 한 능선.

 1코스(3.5Km)로 올라가 3코스로 하산하는 등로를 택했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려 봉우리들이 구름에 가려 있었지만, 날씨가 개일 것을 기대하고 운주사와 ‘운악산광장’ 휴게소 사잇길을 들머리 삼아 산을 올랐다. 3부 능선까지는 등로가 산책코스처럼 시원하게 뚫려 있다. 4부 능선쯤 올랐을까. 오른 쪽으로 무지치폭포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폭포전망대에 서니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가르마를 탄 듯한 계곡 사이로 거대한 암벽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일명 ‘홍폭(무지개 폭포)’으로 불리는 무지치폭포다. 폭포의 규모에 놀라 한참을 올려다 봤다. 지금은 물이 떨어지지 않지만, 비가 많이 온 뒤에는 낙차 큰 물줄기가 한바탕 운무를 일으키면서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내리라 상상해 본다. 
 
운악산 정상인 동봉. 뒤에 보이는 바위의 높이가 2m가량 되어서 동봉의 높이는 937.5m가 된다.

 폭포전망대에서 등로는 본격 깔딱고개로 이어진다. 밧줄이 매어진 바위도 제법 만난다. 궁궐터에는 별다른 흔적은 없고, 궁궐터를 지나 애기봉 가기 직전에 서북쪽으로 깎아지른 절벽 하나가 보인다. 운악산이 드디어 그 자태의 한자락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예감이 좋고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애기봉은 3개의 돌기둥이 서 있을 뿐, 봉우리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등로는 애기봉에서 동북쪽으로 급하게 꺾어지며 정상으로 향한다. 처음 만나는 곳이 서봉이다. 서봉 자체도 편편하거니와, 가까운 곳에 훌륭한 전망대가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서봉 주변의 산맥이며 골짜기를 충분히 감상하시라. 서봉에서 500m 남짓 거리에 동봉이 있다. 동봉이 2m 더 높은 것으로 돼 있는데, 이는 동봉에 서있는 2m 가량의 바위 위까지 측량한 것이라고 한다. 
 
동봉에서 숲 속 사잇길로 100여 m 빠져나오면 이 전망대를 만난다. 필히 챙겨둬야 할 코스다.
 
동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운악산 남동쪽 능선.
 
운악산 북쪽 능선과 계곡. 능선 사이에 구름다리도 나 있어 경치가 빼어나다.
 
동봉에서 대원사 쪽으로 하산하면 우측으로 서봉이 조망된다. 서봉 역시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 비경을 자랑한다.

 동봉도 편편하기는 서봉과 다를 바 없다. 동봉에 서면 서봉이 건너다 보인다. 여기서 잘못하면 약간의 경치만 감상하고 대원사 방향으로 곧장 하산할 수 있는데, 주의할 것. 동봉에서 찬찬히 살펴보면 숲 사이로 길이 하나 나 있다. 여기서 200∼300m만 이동하면 너른 전망대바위가 나온다. 운악산을 설악산이나 금강산에 비견할 만한 비경이 숨어 있는 곳이다. 어찌 설악에 빗댈 수 있으랴마는 전망바위에서 돌아보면 주봉에서 갈래갈래 뻗어나간 깎아지른 절벽들이 예사롭지 않다. 능선과 절벽, 능선과 능선이 이루는 경치가 절로 탄성이 나올만큼 빼어나다. 겹겹이 뻗은 능선을 따라 한없이 걷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다. 
 
운악산 3코스 하산 길에 만나는 계곡. 운악산은 계곡도 아름다워 '경기의 설악산'으로 불릴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능선 여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동봉으로 다시 돌아와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동봉에서 200여 m 내려가면 현등사와 대원사로 갈라지는 안부가 나온다. 길은 험하지 않고 좋다. 여기서부터는 우측으로 서봉 감상이 일품이다. 서봉을 이룬 절벽도 전혀 빠지는 않는 절경이다. 서봉의 매력에서 막 빠져나올 무렵, 계곡과 맞닥트리는데, 계곡의 아름다움에 다시한번 정신을 빼앗긴다. 깨끗하고 우람하고 잘 생긴 화강암 바위가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나뭇가지를 빠져나온 초록의 햇살이 계곡을 따라가며 쏟아져 내린다. 곳곳엔 맑은 물도 괴어 있어 더운 날씨였다면 ‘알탕’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등로가 거의 끝나는 곳에서 대원사를 만난다. 대원사는 전통사찰은 아니지만, 화단 조성이 잘 돼있고, 화강암으로 빚은 관세음보살상이 다정다감하게 다가온다. 대원사에서 대로변까지의 길도 아름답게 조성돼 있다. 대원사 입구에서 운주사는 일동 방면으로 0.5Km가량 떨어져 있다. 등산 총소요시간 4시간∼4시간30분.

 

 <교통편>
 서울 강변역이나 청량리에서 버스를 타고 광릉내에 가서, 다시 ‘운악산 입구’(운주사)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운주사 입구와 대원사 입구 중간쯤인 큰 길가에서 바라본 운악산 전경. 일부만 보인다.

 

가평 유명산

대부산 가는 길에 바라본 유명산 남쪽 자락.
 
유명산 가는 길에 만나는 청평호반.
 
 유명산(有明山·862m)은 아름다운 계곡과 휴양림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정상에서 대부산(742m)에 이르는 1km 가량의 능선 길이 백미로 다가온다. 행글라이드 활강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능선 주변 나무들을 모두 없애고 광활한 구릉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등산객들에게 색다른 맛을 제공하는 것이다. 활강장에 풀밭이 조성되고, 억새밭이 생겨 나 스위스나 몽골의 초원을 연상케 한다. 800m 대에 조성된 대평원, 상상만 해도 상쾌하지 않은가. 유명산을 등산 목표로 삼으려면 필히 대부산 들머리까지는 밟아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또한 차 타고 오가는 길에 만나는 북한강이며, 청평호반도 멋진 낭만을 제공한다. 
 
유명산 버스종점에 도착하면 깨끗하고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유명산 등산은 대부분 설악면 가일리를 들머리로 삼는다. 그 큰 이유는 5km에 이르는 계곡 감상에 있겠지만, 가일리라는 마을이 주는 포근함과 넉넉함도 한 몫 차지할 것같다. 가일리 버스종점에서 받는 첫 인상은 여느 유원지처럼 번잡스럽지 않고,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늑하다는 점이다. 가일리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가일리에서 유명산에 오르는 등로는 ‘매표소∼북쪽 능선∼정상∼유명계곡(일명 입구지 계곡)∼매표소’가 일반화돼 있고, 거리도 6.3Km(3시간30분∼4시간)로 가장 짧다. 물론 역방향으로 코스를 잡을 수도 있다. 
 
유명산 어비산 정상에 오르는 들머리에서 바라본 '메이플 하우스' 전경.

 신록의 계절 5월. '
 ‘경기 20산 탐방’ 원칙상 최대한의 능선 여행을 누리기 위해 정규 등로에서 벗어나 유명산에 올랐다. ‘가일리 종점∼어비산 능선∼어비산∼유명산 정상∼대부산∼700m봉∼유명산 정상∼북쪽 능선∼가일리 종점’의 원점회귀 코스를 택한 것이다. 그러고보니 유명산도 대부산이며 어비산(魚飛山·829m), 700m봉, 서북쪽에 있는 소구니산(799.9m), 중미산(833.9m) 등 거느린 산봉들이 많다.
 가일리 버스종점에서 오던 길을 200여 m 되돌아가 다리를 건넌 뒤 펜션하우스인 ‘메이플 하우스’ 마당을 이번 산행의 들머리로 삼았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 가파른 산비탈을 200여 m 치고 올라가면 어비산 오르는 능선 길을 만난다. 능선 우측 편으로 유명산 정상이 있지만, 숲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는다. 왼쪽은 어비계곡이다. 능선 길이 가파르기는 해도 산책로처럼 편안하고, 쓰러진 괴목도 만나는 등 지루하지는 않다. 
 
어비산 정상. 오른쪽으로 용문산이 어렴픗이 보인다.

 어비산 정상에 오르니 검은 돌에 ‘어비산’이라고 쓰인 키작은 표지석이 서 있다. 양평군산악연맹에서 세운 모양이다. 정상은 주변이 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답답하지만, 동쪽으로 용문산(1157m)이 어렴픗이 조망된다. 용문산 정상 부분에 송신탑이며 군부대 레이더 시설이 어지럽게 서 있다. 어비산은 예전에 홍수로 계곡 물이 불어났을 때 물고기가 산을 넘어 날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여기서 다시 유명산 정상으로 가려면 어비산과 유명산을 가르는 입구지 계곡까지 산을 완전히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에 검은 빛깔의 쪽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인상적이다. 
 
어비산을 내려오면 만나는 깨끗하고 맑은 유명계곡. 길은 여기서 다시 유명산 정상을 향해 가파르게 이어진다.

 입구지 계곡은 그 일부만 보아도 계곡 전체의 아름다움을 능히 알 것같다. 입구지 계곡은 이곳에서 계속 직진하거나 유명산 정상을 향해 90도 꺾어도는 계곡으로 갈리어 진다. 다시 유명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1.6km에 이르는 깔딱고개를 오르니 드디어 유명산 정상이다. 나무가 없는 맨 땅의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하다. 동북쪽으로 용문산이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 보인다. 
 
드디어 유명산 정상. 빨갛게 맨살이 드러난 언덕 위에 산림청에서 세운 표지석이 서 있다.

 슬슬 여름철로 접어드는 지 날씨가 무척 덥다. 땀도 많이 나고, 물이 많이 먹힌다. 요즘같은 산행이면 0.5ℓ 짜리 생수 3통은 준비해야 할 것같다. 정상을 넘어 다시 대부산으로 향한다. 너른 황톳길을 크게 굽이돌아 내려가면 행글라이드 활강장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나무를 베어낸 개활지에는 온갖 풀과 억새가 자라고 있다. 언덕 끝으로 운치 있게 남겨놓은 소나무 서너그루가 폭풍의 언덕을 연상케 한다. 풀밭 사이로 노랑색 개망초며, 허리가 굽은 할미꽃도 정겹게 눈에 띈다. 개활지는 유명산 서남쪽 자락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드넓다. 숲과 암벽으로 이뤄진 봉우리만 보다가 맨 땅과 풀, 억새로 이뤄진 너른 평원을 대하니 색다른 감흥이 인다. 
 
유명산 표지석 뒤에서 바라본 용문산. 정상이며 장군봉, 함왕봉, '한국의 마테호른' 백운봉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활강장을 빠져 나가면 등로는 3갈래로 갈린다. 오른쪽 좁은 숲길이 대부산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양평쪽으로 진행한다. 왼쪽으로 좁은 숲길을 올라가면 700m봉을 만난다. 3갈래 길에서 돌아가도 충분하지만, 시간이 허락되면 특히 700m봉을 올라 볼 것을 추천한다. 700m봉에 오르면 너른 억새밭 사이로 용문산 정상이며, 장군봉, 함왕봉, ‘한국의 마테호른’으로 불리는 뾰족한 백운봉이 양평 읍내까지 연봉을 이루며 눈앞에 전개된다. 가까이는 옥천면 용천리가, 그 뒤로 양평 읍내가 내려다 보인다. 유명산 정상 부분도 좀더 운치 있게 눈에 들어온다. 
 
유명산 정상에서 대부산 가는 길. 행글라이드 활강장이 조성돼 대평원 처럼 느껴진다.

 하산은 유명산 정상으로 다시 돌아가 능선 길(2km)과 입구지 계곡로(4.3km)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정상에서 소구니산과 서너치 고개를 거쳐 중미산까지 가는 등로가 있지만, 너무 멀어 다음 기회로 미뤘다. 
 
대부산 가는 길 2.

  

대부산 반대편에 있는 700m봉 가는 길.
 
700m봉 정상을 오르기 직전에 만나는 억새밭. 용문산이 더욱 가까이 조망된다.
 
700m봉 정상에서 바라 본 유명산 정상. 활강장 조성으로 봉우리가 평원처럼 편안해 보인다.
 
유명산은 계곡도 아름답지만, 정상 부분이 대평원 처럼 너른 것도 인상적이다.
 <교통편>
 서울 상봉동터미널에서 유명산 가는 직행버스가 오전 8시, 9시20분에 있다. 1시간40분 가량 소요되며, 편도 6200원. 청량리에서 1330-6번 좌석버스도 있다. 하루 3차례(오전9시, 오후 1시45분, 오후7시50분) 운행되며 편도 1800원(좌석버스를 타면 경비가 3분의 1로 줄어든다). 유명산 종점에서 서울행 막차가 직행버스는 오후 6시30분, 좌석버스는 오후 5시55분에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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