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믿음 ‘신궁’ 개발에서 전력화까지
“우리의 新弓은 神弓·信弓이다”
조금 구름이 있는, 그래도 파란 빛이 시원한 하늘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서해안 안흥의 대공사격장. 파도소리의 감흥도 느낄 법하지만, 그 감상은 아주 뒷전이었다. ‘윙위윙~ ’하는 기계음을 내며 시야에서 멀어져버린 무선조종 무인기(RC-MAT)를 찾는 데 촉각을 집중했다. 모래주머니 방호벽 안쪽에는 문준수 중사가 의자에 앉은 채 어깨에 유도탄을 장착한 발사관을 멘 듯한 자세로 부사수 감기택 상병과 함께 무전을 통해 무언가를 계속 쫓고 있었다.
사격통제탑에서 방송으로 “7km 접근”, “6km 접근”하며 무인기의 위치를 외쳐댔다. 문 중사와 감 상병을 지켜보는 100여 명의 장병들은 이미 머리끝까지 팽팽하게 부풀어오는 긴장감에 휩싸인 상태였다. 한 차례 휘익 불어오는 바람이 그 긴장을 훑어 내는가 싶은 순간, 마침내 문 중사의 어깨 위에서 한 줄기 흰 연기가 ‘쉐에엥~’ 하는 비행소리와 함께 전방을 향해 쭉 뻗어나갔다.
단 한 발의 사격, 황금빛 섬광에 환호성
발사 순간 “와!” 하는 탄성은 극히 짧았고, 이 순간을 지켜보던 이정규 대위는 두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 육군25사단 방공중대장인 이 대위는 2006년 새해 선물을 받듯이 2005년 12월 31일, 상비사단 최초로 국방과학연구소가 LIG넥스원을 비롯한 방산업체 등과 함께 국내 기술력으로 독자 개발한 한국형 휴대용 대공유도무기(K-PSAM : Korean Portable Surface to Air Missile) 신궁(新弓)을 맞이했다.
이 대위와 문 중사 등 중대원들은 이미 신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제원과 성능, 외국의 유사 무기체계와의 차이점을 꿰차고 이날(2006년 9월 15일) 전력화 이후 최초의 실사격 훈련이 있기까지 9개월 동안 운용 역량을 키워왔다. 역시 ‘좋은 무기체계’임을 실감했다.
하지만 이 대위는 어떤 부담감 속에 자유롭지 못했다. 더욱이 이 자리에는 다른 사단에서 운용하는 동급의 프랑스제 유도무기인 미스트랄(Mistral)의 사격도 이루어졌다. ‘단 한 발이지 않는가.’ 초탄필추에 대한 부담도 부담이지만 우리 기술로 만든 유도탄으로 미스트랄보다 더 ‘멋지게’ 격추해야 한다는 압박도 밀려 들었던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10초? 그 정도는 되었을 테지만 꽤 오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 무렵 이 대위의 두 눈은 본능적으로 크게 열렸다. 수km 밖 상공에서 황금빛 불꽃이 번쩍였다. “아, 명중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봇물 터지듯 일제히 환호성이 올랐다. 박수 소리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최첨단 국산 유도 무기 운용에 대한 시샘의 따가운 눈길도 쏟아졌다.
“4.5km 쯤에서 타깃을 명중시켰습니다. 역시 신궁은 신궁입니다.” 환한 미소를 띤 이 대위는 어디선가 표현했던 ‘信弓’을 그대로 인용했다. 시험평가 때 놀라운 명중률로 ‘神弓’으로도 불렸던 신궁이 어느새 장비에 대한 믿음, 부하들의 능력에 대한 믿음, 임무완수를 보장하는 믿음… 그런 의미의 무기체계로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이다.
명중률 90%, 국산화율 90%
신궁! 이제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든든한 이 무기체계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우리나라 최초의 전략형 지대지 유도무기인 ‘백곰’(KNH-Ⅰ·K-Ⅰ)을 필두로 전술형 단거리 함대함 유도무기 ‘해룡’, 지대지 유도무기 ‘현무’,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마’에 이어 다섯 번째로 개발한 첨단 휴대용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다(여섯번째유도무기인 함대함 유도무기 ‘해성’은 2006년 3월 양산·출고되어 실전 배치되었다).
신궁은 미스트랄과 외형상 비슷한 면이 있고 미스트랄과 미국의 스팅거(Stinger), 러시아의 이글라(Igla) 등 유사 무기체계의 장점 중 일부를 취해 설계에 반영하기도 했으나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이 천마 등을 개발한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국내의 기술을 최적화해 개발에 성공한 우수한 성능을 지닌 우리 고유의 모델이다. ‘발사와 동시에 다른 목표물을 찾아갈 수 있는 망각(fire and forget) 방식의 휴대용 유도무기이며 무기체계 운용 특성상 한 명이 휴대하는 견착식이 아닌 두 명이 1조를 이루는 거치식 운용체계로 분류된다.
1995년 11월부터 2004년 7월 31일 합참으로부터 ‘전투 사용 가(可)’ 판정을 받기까지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인력 500여 명, LIG넥스원 등 방산업체 연구 기술 인력 500여 명이 투입됐다. 소요군이 주관한 운용시험평가에서 확인된 신궁의 명중률은 90%로서 60%대로 알려진 스팅거와 이글라를 훨씬 능가했다. 또 국산화율 90%를 달성함으로써 첨단 과학기술의 집합체인 유도무기의 독자적인 개발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두 명이 운용하는 신궁은 최대 사거리 7.0km, 최대 고도 3.5km로서 피아식별기 및 야간조준기를 장착하고
있어 원거리에서 피아 항공기를 식별할 수 있고 야간에도 작전이 가능하다. 신궁 유도탄만의 무게는 15kg이며 길이와 직경은 각각1.6m, 8cm이다. 미스트 랄에 비해 약 8kg 가벼우며 길이도 40cm 가량 짧다. 신궁 유도탄 전방에는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한 뾰족한 항력감쇄기(spike)가 장착되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항공기의 엔진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추적해 표적을 격추하는 적외선 호밍 유도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발사후에 별도로 조준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특히 2색 탐색기(two color seeker)를 적용함으로써 기만용 불꽃(flare)을 투하하는 전투기에 대한 대응능력(IRCCM)이 대단히 우수하다.
비행간 비례항법과 표적유도방식을 적용해 기존 적외선 추적 유도탄이 항공기 본체를 공격하기 전에 항공기 후미에서 나오는 배기열원을 공격하는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 또 근접신관을 적용해 유도탄이 타격 목표의 일정거리까지 접근하게 되면 720여 개의 파편이 폭발, 항공기의 엔진까지 관통시킬 정도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2중 추력방식을 채택한 신궁의 최대 비행속도가 마하2에 달해 AN-2기나 헬리콥터는 물론 아군을 위협하는 전투기까지 격추시킬 수 있다. 전투기의 경우 폭탄을 비롯한 무장 등을 고려할 때 실제 전투 시 속도는 마하1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궁과 같은 휴대용 대공유도무기는 유도무기 중에서 가장 작고 가볍기 때문에 개발하는 데 많은 첨단기술이 요구된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최초로 기본형을 개발하는 데 10~15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신궁은 공력설계와 유도기법 분야에서 처음 시도하는 첨단기술 개발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훌륭히 수행, 8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개발을 성공적으로 완료함으로써 국방과학연구소와 관련업체의 유도무기 개발능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 4차 중동전서 SAM에 혼쭐
대부분의 무기체계가 창과 방패라는 모순(矛盾)의 경쟁 속에 태어나고 발전하다가 사라지듯이 각종 지대공 유도 무기(SAM)도 지상 전투세력에 가장 큰 위협을 주는 항공기라는 무기체계에 대응해 세상에 모습을 보였다.
6·25전쟁은 미군 등 유엔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전쟁이었다. 유엔군의 항공기는 북한군이나 중공군으로
부터 심각할 만큼의 도전을 받지 않았으나 총 35만 회를 출격해 1000여 대가 손실을 입었다. 그 중 90%에 달하는 900여 대가 대공포와 소화기에 의한 것이어서 대공사격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독일의 V-2로켓으로 시작된 유도무기 개발추세에 부응, 미국과 러시아는 1950년대 중반부터 연구를 시작해 1960년대 중반 각각 레드아이(Red Eye), SA-7(Strela-2S)이라는 수동 적외선 호밍(homing) 방식에 1세대형 탐색기를 장착한 휴대용 지대공 유도무기(PSAM)를 배치했다.
그 결과는 1차적으로 1964년 4월부터 시작된 베트남전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2년까지의 기간 중 월맹군은 미군기 999대를 격추시켰는데 휴대용을 포함한 유도탄으로 격추시킨 수는 131대였고 대공포와 소화기에 의한 격추가 802대로 80%에 달했다. 이는 대공유도무기와 대공포를 혼합운용한 결과로서 훌륭한 교훈이 되었다.
1973년 10월에 벌어진 이스라엘-이집트의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에 의해 개발된 신형 무기가 보다 많이 투입돼 6·25전쟁이나 베트남전쟁보다 훨씬 현대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1948년, 1956년, 1967년 등 세 차례에 걸친 중동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일방적인 전투를 이끌었으나 4차전이랄 수 있는 이 당시의 전투에서는 그러지를 못했다. 이집트는 베트남전쟁의 교훈을 빌렸다는 듯이 대공포와 유도탄을 혼합운용해 이스라엘기 120여 대를 격추시켰다. 80대가 SA-6·SA-7과 같은 유도탄의 몫이었다. 하지만 가벼운 휴대용인 SA-7은 많은 타격을 가했지만 파괴라기보다 손상을 입히는 데 그쳤다. 어쨌든 이스라엘은 전파기만기(chaff)와는 다른 대전자 수단(ECM:Electronic Countermeasures)을 이용한 후에야 항공임무를 수행 할 수 있었고 항공력의 우수성이 제공권을 자동적으로 제공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그 후 1986년 6월 레바논과의 전쟁에서는 시리아측의 베카계곡에 배치된, 보다 발전된 대공 유도무기와 통신수단을 전자전 전력으로 우선 무력화시키면서 승기를 잡아 전쟁을 조기에 종결지었다. 1991년에 벌어진 미국 등 다국적군과 이라크의 걸프전쟁에서도 다국적군은 개전 하루 동안 이라크 방공체계와 지휘통제 및 통신시설을 무력화시키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만큼 현대전에서는 전투력 보전과 발휘를 위해 방공체계를 완벽하게 갖춰야 한다는 것으로 사거리 10km급 이상의 대공 유도무기 외에 가장 낮은 공역을 방어하는 대표적인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로는 스팅거(견착식), 영국의 스타버스트(Starburst·견착 및 거치식), 미스트랄(거치식), 이글라(SA-18·견착식) 등이 꼽힌다.
최초로 보유한 PSAM은 ‘레드아이’
우리나라의 경우, 휴대용 대공유도무기 도입은 1976년 레드아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 저·중고도용 대공 유도무기로 1964년과 1965년에 각각 호크와 나이키를 미군으로부터 도입했지만 그때까지 대부분의 방공무기체계는 미 군원품으로 인수받은 40mm M4A1 대공포와 구경 50mm의 중기관총을 장착한 M-55 자동화기 등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 자주국방을 위한 전력증강사업을 추진하면서 비로소 신형 대공무기체계를 도입하게 되는데 1973년에 기계화보병사단을 창설하면서 20mm 발칸 대공포를, 1975년에는 수도권의 대공방어 능력을 갖추기 위해 35mm 쌍열대공포 엘리콘을 도입했다.
육군은 이때까지 휴대용 대공유도무기를 보유하지 못해 주한미군의 레드아이에 의존, 저고도로 침투하는 적 항공기에 대비했다. 1976년 북한의 AN-2기와 강화된 헬리콥터에 의한 원거리 공격 능력이 아군의 야전 기동부대에 큰 위협요소로 부상하면서 방공대책이 더욱 시급해짐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유상 군사원조 형식으로 레드아이를 급히 도입했다. 그러나 레드아이는 앞으로 접근하는 비행체에 대한 사격능력이 없고 비행체 후방의 배기구를 조준해야 하는 단점이 있어 적외선 방출량을 억제한 헬리콥터나 플레어를 터뜨리는 고정익 항공기에 대해 높은 명중률을 기대할 수 없었다.
국내 기술력에 의한 대공유도무기의 개발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 있는 형편이었다. 이 당시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창설 초기인데다 장거리타격이 가능한 전략형 지대지유도무기 개발에 혼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에서도 방공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지상전력에 비해 방공전력에 대한 관심이 덜했고 오히려 공군의 전투기 등에 대한 신뢰와 의존도가 높았던 분위기였다.
그러던 1980년 이후 묘한 ‘일치’ 현상이 발생했다. 백곰개량형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국방과학연구소가 소위 ‘구조 조정’이라는 발생해서는 안 될 회오리바람에 휩싸이고만 것이다. 1980년에는 백곰개량형과 관련한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곧이어 800여 명이라는 엄청난 우수 연구인력이 국방과학연구소의문을 나서야 했다. 전략형 유도무기 개발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당시 유도탄개발단장 한필순(전 원자력연구소장) 박사 등은 더 이상 관성항법장치(INS)를 개발할 수 없게 되자 단거리함대함유도무기 해룡과 같은 전술형 중·단거리 유도무기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해룡은 1978년 1월부터 기초연구가 시작된 유도무기로 1981년 9월 선행개발에 들어갔다. 마침 육군도 그동안 취약하기만 한 고도 5km, 사거리 10km의 공역방공을 위해 발칸, 자주대공포, 휴대용 대공유도무기 및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등을 혼합 편성하는 방공개념을 정리하고 1982년 4월 소요를 제기해왔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이때 휴대용 대공유도무기의 눈이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적외선탐색기’를 개발하려는 연구를 막 시작하는 가운데 1983년에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구상회 박사가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개발을 정식 제안, 긍정적으로 논의한 데 이어 1984년 당시 유도조정부장이었던 박찬빈 박사가 이 단거리 대공유도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 개발 가능성 타진에 들어갔다.
육군은 휴대용을 선호하는 분위기였으나 개발품목과 시기는 국지 방공무기의 전력화 긴급성과 관련 기술의 확보여부에 따라 결정하는 까닭에 휴대용 대공유도무기는 공대공유도탄인 AIM-9L(사이드와인더)급에 장착된 적외선탐색기개발기술을 확보한 이후에 개발하기로 결정되었다.
육군은 1985년 합참을 통해 지금의 천마와 유사한 모습으로 사거리 10km급의 단거리 대공유도무기를 개발해달라는 소요를 제기해왔다. 해룡에 대해서는 개발중단지시가 내려졌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사업을 접어야했지만 자체 연구는 계속되어 개발 중 시험비행 20여 회, 해군 주관 발사시험 4회 등 운용시험을 완수하며 개발에 성공했다. 해룡은 1987년 합참이 조건부로 전투장비로 채택해 규격서도 확정, 1년간 함정에서 시제품을 운용했다. 양산에 이르지 못한 것은 비싼 획득가격과 반능동 레이저유도방식이 해상기후라는 환경에서 작전운용성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휴대용 대공유도무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가 급증, 1987년 영국제 재블
린을 들여와 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전투부대에 배치해 전투지역 부대의 대공 방어 능력을 보강했다. 이로써 육군은 지대공유도무기로서 고고도용은 나이키(NAMSA형), 중고도용은 호크(HAWK) 재개량형, 저고도형은 재블린을 운용함으로써 적의 각종 항공기에 의한 여러 형태의 공중 공격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와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마 개발사업이 착실히 진행되는 가운데 육군에서는 재블린에서 여러 가지 단점이 노출돼 효과적인 운용이 어렵게 되자 1992년에 미스트랄을 도입했다. 더불어 휴대용 대공유도무기의 국내 독자개발에 대한 관심도 한층 높아지기 시작했다.
PSAM 개발의 도화선 당기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휴대용 지대공 유도무기(PSAM)를 개발하는 데에는 적외선 탐색기(Infra-Red
Seeker)의 국내 개발 가능성이 전제되었다. 탐색기(Seeker)란 사람의 눈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유도탄의 명중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핵심 센서이다. 유도탄의 맨 앞부분에 위치해 표적이 있을 지역(공간)을 탐색하면서 표적을 포착(Acqusion)-고착(Lock-on)하고 또 추적(Track)해 그 정보를 유도탄의 조종부에 전달하는 것이다.
탐색기는 동작 방식에 따라 능동형, 반능동형, 수동형으로 나뉘는데 표적 자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찾아 이용하는 방식이 수동형이다. 따라서 적외선 탐색기는 표적에서 나오는 열선(적외선)을 감지하는 수동형 방식이 된다. 1960년대에 개발된 미국의 레드아이(Red Eye)나 러시아의 SA-7도 이 방식을 취했고, 현재도 대부분의 PSAM은 성능이 향상되었을 뿐 적외선 추적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이드와인더 수준 탐색기 개발부터
ADD는 1980년대 초 구조조정을 겪은 후 전술유도 무기용 탐색기 연구팀을 만들었다. 이 팀은 1982년 육군이 PSAM 개발을 소요 제기한 그때부터 이 적외선 탐색기에 대한 기술적 연구를 시작했다. 개발 목표의 대상은 미국의 공대공 유도탄 AIM-9L에 탑재된 초냉각형 적외선탐색기였다.
AIM-9계열의 유도탄은 ‘사이드와인더’라는 미국 네바다사막에서 서식하는 열 감지 능력이 뛰어난 뱀의 이름에서 따왔을 만큼 그 성능이 우수하다. 1953년 AIM-9A가 최초 시험 개발에 성공해 1956년 AIM-9B형이 생산된 이후 AIM-9G/N/P와 AIM-9L 등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성능이 개량되었다. 현재는 가장 최신형으로 영상 적외선(Imaging Infra-Red)으로 표적을 추적하는 AIM-9X이 2002년경에 전력화되었다.
그런데 적외선으로 호밍하는 유도탄의 발전은 적외선 탐색기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AIM-9B의 탐색기만 해도 항공기의 배기열을 내뿜는 후미 방향에 대해서만 발사・추적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비록 조금 더 나은 성능의 탐색기가 장착된 레드아이와 같은 PSAM이라면 대개 공격을 마치고 도망가는 표적을 뒤에서 공격하는 격이 되고 만다. 또 유도탄을 속이기 위해 투하하는 플레어(flare)나 항공기의 급회전 등에 의해서 곧잘 기만당했고 날씨 때문에 적외선 신호가 차단되는 등 유도탄 효과가 무력해지기도 했다.
사이드와인더는 적외선 탐지 능력을 한층 증가시켜
1980년의 AIM-9L에 이르러서야 항공기가 움직이는 모든 방향에 대해 발사・추적이 가능해졌다. AIM-9L의 적외선 탐색기가 응시할 수 있는 범위인 시계는 ±2도, 탐색기를 움직여 표적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은 ±40도가 된다. 또한 초당 28°로 이동하는 표적을 추적할 수 있는 능력(표적 추적율)을 갖고 있다.
이것이 한국형 PSAM을 위한 적외선 탐색기의 성능이 AIM-9L급으로 설정된 이유이다. 연구팀은 처음에 당시 폐기된 AIM-9B의 적외선 탐색기를 획득해 그 구성품등을 이용한 적외선 탐색기를 시험 제작하면서 동시에 관련 기술들의 이론적 배경을 확립,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고 그 결과 AIM-9L 급의 탐색기 기술을 개발 목표로 삼은 것이다.
당시 연구 책임자 이원상 박사는 먼 시선으로 20년도 더된 기억들을 찾아낸다.
“적외선 검출기를 국산화하기 위해 자료 수집 차 미국에 갔을 때는 기술유출 가능성을 우려한 관련 업체가 약속과 달리 공장 견학을 취소하더군요. 한 마디로 문전에서 쫓겨난 거죠.”
1990년대 들어 ADD 내에서는 사거리 180km급의 지대지 유도무기 ‘현무’의 양산과 함께 단거리 대공유
도무기(SAM) ‘천마’ 개발이 선행연구 단계에 접어들면서 적외선탐색기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바라보는 눈길이 점차 늘어났다. 이원상책임연구원 등 7~10명에 불과한 연구팀은 1991년 마침내 원하는 탐색기를 개발·제작한 것이다. 10년에 가까운 연구를 통해 거둔 결실로 ‘IRS-7’이라 이름지었다. 일곱 번째의 적외선 탐색기라는 뜻이다.
보일러 버너를 표적으로 삼고 당연하지만, 연구팀은 이 탐색기의 성능을 입증해야 했다. 유도조종 분야의 권위자
박찬빈 박사는 “유도탄이 초기 발사될 때 초냉각형 적외선탐색기가 받는 충격과 비행하는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지를 입증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연구팀은 묘안을 짜내기 시작했다. 시험 시설이 없는탓이다. 우선 추진기관은 지름 130mm 다연장 로켓을 이용하기로 하고 이 로켓 맨 앞에 적외선 탐색기를 탑재하는 개조작업을 벌였다. 표적은 보일러 버너였다.
이를 안흥종합시험장 앞바다에 고정시키고 로켓이 표적 위를 비행하되 적외선탐색기는 초기부터 표적을 추적하도록 했다.
그해 10월, 몇 차례 사전 시험으로 시험용 탐색기의 동작을 확인하는 가운데 정식 시험 일자를 잡았지만 자욱한 해무(海霧)로 인해 시험일은 몇 번이고 순연되었다. 10월 30일, 이날도 아침에 해무가 잔뜩 끼어 연구팀을 애먹였다.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안개가 옅어져 오후 2시에 시험을 갖기로 결정했다. 점심식사도 거르고 연구팀은 재빠르게 시험 준비를 마쳤다.
이윽고 제1발사 시험장에서 로켓이 쏘아지고 탐색기가 표적(버너)을 추적하는 신호가 원격측정기를 통해 수집되었다. 탐색기의 동작은 연구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것으로 탐색기 기술입증은 물론 호밍 유도탄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그동안 사실 연구팀은 PSAM 개발에 ‘적외선 탐색기가 걸림돌’이었던 때문인지 비로소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었다. 연구팀이 고무된 자부심과 긍지로 시험장을 나서는 오후 5시쯤 다시 해무가 안흥 앞바다에 드리워졌다.
태스크포스팀 가동 사전 준비에 만전
적외선 탐색기의 비행 중 탐색 성능이 입증되자 이것이 곧바로 PSAM 개발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마침 이 즈음에는 프랑스의 PSAM 미스트랄이 육군에 도입되어 막대한 외화의 국외 유출에 따른 부담으로 국내 개발의 필요성이 더욱 급박해지는 시점이었다.
ADD는 한국형 PSAM을 독자 개발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 1차로 체계 개념을 설정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Taskforce Team) 구성에 들어갔다. 전 ADD 소장인 안동만 박사와 진정석 책임연구원(퇴직)을 주축으로 유도탄을 구성하는 추진기관, 유도조종 등 각 분야의 핵심 인력들이 포진했다. 특히 안동만 박사와 진정석 책임연구원은 최초 유도무기 ‘백곰’을 비롯해 ‘현무’와 ‘해룡’ ‘천마’등 우리나라 유도무기 개발에 기반을 닦고 발전시켜온 연구원으로 연구소 내에 신망이 두터웠다.
태크스포스팀은 국내의 각종 관련 기술과 미스트랄과 스팅거 등 해외 유사 무기체계에 대한 기술 분석을 시작했다. 레드아이는 물론 러시아의 SA-7A/B, SA-16, SA-18(이글라) 등의 휴대용 대공 유도탄에 대한 기술 분석으로 관련 기술의 적용 사례들을 획득하고 이를 한국형 PSAM에 적용 또는 활용할 분야를 선정했다.
우선 한국형 PSAM의 형상을 정했다. 일반적으로 PSAM은 영국의 재블린과 스타버스트(Starburst),
러시아의 SA-9 및 SA-16 계열 그리고 미국의 스팅거(Stinger) 등과 같이 한 명이 휴대해 운용하는 견착식 사격체계(MANPADS;Man-Portable Air Defense System)와 미스트랄처럼 두 명이 1조를 이루어 삼각대를 이용하는 거치식 사격체계(DETPADS:Detachment-Portable Air Defense System)로 나뉜다.
견착식은 한 명이 빠르게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20kg가 넘는 유도탄과 발사기를 어깨에 메고 쏘기에는 힘겨울 뿐만 아니라 명중률에도 영향을 주는 단점이 있다. 더욱이 실제 잘 운용하기 위해서는 부사수가 따라 붙어야 한다. 반면 거치식은 삼각대에 유도탄을 장착해 사수가 앉거나 서서 사격하므로 훨씬 안정적인 사격으로 명중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태스크 포스팀은 운용성과 체계 성능을 고려, 거치식을 PSAM의 운용체계로 결정했다.
유도탄의 경우는 미스트랄, 스팅거, 이글라 등의 장점들을 종합해 설계 개념을 설정했다. 유도탄의 직경은
미스트랄 직경(90mm)과 스팅거의 직경(70mm)과 중간쯤 되는 80mm로 설정했다. 이는 IRS-7의 광학 돔(Dome)의 직경이 78mm라는 점을 고려한 최소의 직경이었다. 또 유도탄은 비행 중 받는 공기 항력의 감소를 위하여 이글라의 스파이크(Spike)의 형상을, 유도조종장치의 소형화는 스팅거에서, 근접신관을 채용하고 탄두 크기의 증대는 미스트랄, 2중추력 추진기관은 스팅거에서 설계 개념을 따왔다.
이렇게 해서 한국형 PSAM 유도탄은 스팅거와 미스트랄의 중간쯤으로 국내 기술과 육군의 요구성능을 충족할 수 있는 크기와 형상이 되었다. 체계개발 목표는 사거리 5km, 고도 3km, 00% 이상의 명중률, Fire& Forget방식의 유도방식, 대 방해방책(IRCCM) 및 피아식별(Mode IV) 능력을 보유하고 10년 저장 후 00%의 신뢰도를 갖도록 했다. 이는 국외 유사장비의 규격과 유사 한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수준을 본다면, 해룡과 천마 등의 유도탄 개발로 각 분야마다 관련된 유사 기술은 확보했다고는 하지만 휴대용 대공유도탄, 즉 신궁에 직접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아직 부족하고 어려운 수준임엔 틀림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전제로 신궁개발에 필요한 기술의 80%정도 수준이었다.”는 것이 이원상 박사의 설명이다.
그럼 장기간 기술 개발 누구와 하나
태스크포스팀의 이 같은 개념 연구 결과와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ADD는 1994년 8월에 연구개발 사업을정부가 주도하는, 즉 ADD가 주도하는 형태로 탐색개발 계획서를 작성, 국방부에 제출하게 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사업 주체를 정부가 아닌 소요군이 관리하고 업체가 주도하는(정부관리 업체주도) 개발 형태로 전환할 것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이 같이 업체 주도 개발 형태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라는 예는 비단 한국형 PSAM이 처음은 아니다.
1993년 하반기에도 155mm 신형 자주포(K-9)에 대해 내려진 바가 있다. 신형 자주포는 당시 체계종합업체인 삼성테크윈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검토되었다. 그러나 자주포 가운데 장갑차량과 군수종합요소(ILS)에 대한 개발은 업체 자체로 가능하지만 자주포의 핵심인 무장과 탄약, 사격통제 등 전반에 걸쳐 업체가 주도하기는 어렵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시스템 복합체(Systems of System)로서의 무기체계를 해외에서 시스템 전체에 대한 상당한 기술적 협력없이 업체 주관의 국내 기술력으로 독자 개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최근 방위사업청 개청 이후 ADD는 핵심기술과 고도의 정밀타격 무기체계 위주로 연구개발하고, 일반 무기체계는 업체 주도로 개발한다는 방향을 설정하고는 있지만 무기체계의 기술적 난이도와 국가 기술력 향상, 그리고 적정 수준 이상의 국산화를 목표로 한다면 국내 업체의 연구개발 수준과 인프라가 한층 강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형 PSAM에 대한 개발 지침(지시)에 따라 업체 주도형 개발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한 검토는 근 1년간이나 계속됐다. 당시 체계종합 업체이자 유도탄 전문업체 금성정밀(현 LIG넥스원)은 ‘독자적 업체 주도 불가능’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술 도입 업체주도 가능성을 검토하게 됐다. 이때 삼성전자가 손을 내밀었다. 삼성전자는 미국 유도탄 업체인 포드에어로스페이스(현 레이시온)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인사를 상무로 영입하고 연구팀을 편성하여 유도탄 개념설계 결과를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개진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기술도입 업체주도’ 개발에 의지를 보이는 삼성전자에 사업 주도권을 주는 방향으로 검토하게 되었다. 그리고 ADD가 시험 개발 등으로 보유한 PSAM 개발의 핵심이 되는 적외선 탐색기의 기술을 ‘업체주도 개발업체’가 될 삼성전자로 이전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라며 협조를 요구했다. 여기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적외선 탐색기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ADD는 시제업체인 금성정밀과 10여 년간 연구를 계속해왔는데 이 연구 결과를 정책에 의해 타 업체에게 이전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었다. 이에 국방부는 한국형 PSAM 개발사업을 정부 주도 형태로 결정했다.
휴대용 지대공 유도무기(PSAM) 신궁은 다양한 부체계(sub-system) 또는 구성품(component)이 결합되어 하나의 완전한 체계(system)를 이루고 있다. 크게 주장비, 점검장비, 훈련장비, 그리고 종합군수지원 요소로 구성된다.
주장비는 유도탄과 발사관으로 이뤄진 장입 유도탄과 삼각대, 발사기, 주・야 조준기 등의 발사장치로 이루어져 있다. 또 신궁의 상태를 점검하는 유도탄 점검장비, 발사장비 점검장비, 조준기 정열기 등의 점검장비가 있으며 교육훈련을 위한 훈련장비로서 모의훈련탄, 추적훈련장비, 교전모의기(시뮬레이터)가 있다.
신궁의 핵심이 되는 유도탄은 유도탄의 맨 앞에 위치하여 항공기 엔진 배기열의 적외선 신호를 감지해 표적 항공기를 추적하는 탐색기를 비롯해 유도신호에 따라 유도탄을 표적으로 호밍(homing)시키는 유도조종장치, 근접한 표적을 감지하는 신관, 표적을 폭파하는 탄두, 그리고 사출모터 및 비행모터 등 복잡한 장치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사출모터는 유도탄 후미에서 발생하는 화염으로부터 사수를 보호하기 위해 유도탄을 사수전방 10m 정도까지 사출하는 기능을 하며, 비행모터는 유도탄이 비행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추진기관으로 유도탄을 최대속도까지 가속하는 부스터(booster)와 유도탄의 속도를 일정 시간 동안 유지해 주는 서스테이너(sustainer)로 되어 있다.
발사에서 타격까지 약 10초 소요
신궁은 사수가 표적에 대해 사격을 결심하고 전원냉각기를 작동시킴으로써 운용이 시작된다. 전원냉각기가 작동하면서부터 사수는 주・야간 조준기를 이용해 표적을 탐지한다. 표적의 탐지는 저고도 탐지 레이더 등으로부터 표적 방위각 정보를 수신한 후 육안 관측에 의해 이뤄진다. 사수가 탐지된 표적을 주야간 조준기로 조준(조준원)하면 탐색기가 표적을 포착했다고 사수에게 소리 및 빛으로 신호를 준다.
이후 발사기는 포착된 표적의 이동방향 및 속도에 따라 계산된 선도각을 주야간 조준기에 발사원으로 표시하며, 전시된 발사원에 사수가 표적을 재조준하면 탐색기도 표적을 포착했다고 응답, 사수가 이를 확인하면 발사한다. 이러한 사격절차 중에 피・아 식별기는 조준된 항공기의 피아를 식별해 적 항공기일 경우에만 유도탄을 발사한다. 발사부터 타격까지 보통 10초 정도 소요되는데 항공기를 격추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자폭 신관이 작동해 자폭함으로써 지상에서의 폭발을 방지한다.
이 같은 신궁을 개발하는 데는 IRS-7라는 연구시제품 개발과 체계 개념연구(conceptual)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근 1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개념연구를 통해 그 개발 방안과 개념적인 설계를 마친 후 1995년 11월 9일부터 1998년 6월 30일까지 탐색개발(Exploratory Development)을, 1998년 11월 28일부터 2004년 6월 30일까지 체계개발(System Development 또는 Full Scale Development)을 마치고 2004년 7월 31일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다.
탐색개발 중 기술적 구현 검증
탐색개발이란 개념연구 단계에서 도출된 체계 개념에 대해 부체계 또는 주요 구성품에 대한 위험분석, 기술 및 공학적 해석,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핵심요소 기술연구와 필요 시 1대1 모형을 제작해 비교 검토 후 체계 개발 단계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라고 정의되고 있다.
즉 군에서 요구하는 성능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단계라고 보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ADD는 신궁을 기본설계(Basic Design)하면서 구성품 단위로 시제품을 제작하고 이어 이들을 완전한 하나의 체계로 종합한 실험시제(Experimental Prototype)을 완성해 다음 단계인 체계개발로 나아갈(전환)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체계개발 단계에서는 확정된 작전요구능력(ROC :Requirement Operational Capability)에 부합하도록 상세 설계를 실시하고 시제품을 제작한 뒤 ADD 자체내의 기술시험평가(Development Test & Evaluation)와 소요군의 운용시험평가(Operational Test & Evaluation)를 거쳐 전력화할 수 있는 성능에 이르렀는지를 평가한다. 이때 전투용 적합 여부를 판정하는 데 ‘적합’ 판정을 받으면 곧바로 규격화를 거쳐 야전부대에 전력화할 수 있는 제품으로 양산(量産, mass product)에 들어가 실전배치하게 된다.
ADD(정부)가 연구개발을 주도한다 해도 모든 것을 ADD가 다 개발・제작할 수는 없으므로 국내 방위산업>업체 가운데 전문화・계열화로 선정된 업체를 중심으로 시제품 제작 업체를 선정, 이들의 연구・기술진과 함께 개발했다.
체계종합과 탐색기, 유도조종 및 구동장치, 발사관과 삼각대, 조준기는 유도무기 전문업체인 LIG넥스원(당시LG이노텍)이 맡았다. 또 탄두조립체와 근접신관은 한화가, 텅스텐 탄체는 한일단조, 추진기관 구조체는 삼성테크윈이, 추진기관은 노즐단열재는 한국화이바, 추진기관조립체는 한화, 접는 날개 조립체는 두원중공업, 주간조준기는 이오시스템 등이 각각 담당했다.
이 당시에는 야간조준기의 개발이 포함되지 않았다. 야간조준기는 탐색개발을 마무리한 뒤 체계개발에 들어가기 앞서 1998년 10월 17일 작전요구능력(ROC-Ⅱ)을 확정하면서 추가된 분야로서 ADD의 사업관리 아래 업체(삼성탈레스)가 주도 개발하도록 결정되었다.
항력 감소 위해 스파이크 부착
유도탄의 외형은 언뜻 보면 크기만 다를 뿐 ‘그게 그거’인 듯 비슷비슷하지만 종류마다 조금씩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 신궁 유도탄의 경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적외선탐색기가 장착된 유도탄 앞인, 노즈(nose) 부분으로 둥근 반구면(球面) 형태에 대못 모양의 항력감쇄기(spike)가 부착되어 있다.
왜 그럴까. 유도탄의 경량화를 위해서는 추진제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 원하는 성능을 발휘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따라서 추진제의 효율성을 높이거나 유도탄이 비행 중 받는 공기의 항력(drag force)을 줄여야한다.
“대부분의 유도탄이나 포탄은 항력을 감쇠하기 위해 노즈부를 뾰족한 형상으로 디자인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적외선탐색기가 표적의 적외선 신호를 받기 위해서는 반구면의 적외선돔(Dome)이 필요한데 반구면의 항력은 매우 높습니다. 이를 감쇠하기 위해 미스트랄은 8각뿔형의 감쇠기를 사용하고 있으나 제작성과 적외선탐색기 성능저하의 원인이 됩니다. 8각뿔형보다 스파이크형 항력감쇄기가 조금은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어서, 이글라와 같은 스파이크형의 항력감쇠기를 택한 것입니다.” (체계종합팀 이원상 책임연구원)
가볍게·강하게·편리하게 개발
신궁은 휴대용이지만 삼각대 형태의 발사 장비에서 운용된다. 삼각대에는 유도탄 1발이 들어가는 발사관과 조준경, 발사기 및 피아식별기가 장착된다. 발사관은 유도탄을 충격과 온도 변화 등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삼각대에 쉽게 장착할 수 있어야 하며 특히 발사 시 목표물을 용이하게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휴대하기 쉽고 가벼워야 함은 물론이다.
신궁의 발사관은 고강성이면서 제작성이 우수한 원통형 복합 소재를 채택하고 있다. 경량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발사관은 그 길이에 비해 두께가 매우 얇기 때문에 성형 후 열 팽창 차이에 따라 내경의 치수가 불량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 제작 시 공정 변경으로 해결했다. 신궁의 유도탄 사출 모터는 발사관 안에서 분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방식은 사출 모터가 발사관에서 구속될 때 충격이 전달되는데 삼각대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개발 시 큰 문제점이었다. 수십 차례의 지상에서의 고정 사출 시험을 통해 발사관 및 삼각대에 대한 구조적 강성을 확인 하면서 마네킹을 이용, 사수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확인하기도 했다.
삼각대는 미스트랄의 것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개발 초기에는 유도탄을 지지하는 지주를 회전 중앙에 위치시키는 방안, 유도탄 지주와 사람이 앉는 의자를 회전 중앙에 대칭적으로 배치하고 지주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방안 등 두 가지로 설계했다. 각각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운용 군 등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유도탄을 지지하는 지주가 회전 중앙에 위치하는 형상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여기에 운용 병사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의자 높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다.
신궁 유도탄은 회전하면서 비행한다
유도탄은 일반적으로 4개의 조종날개로 유도탄의 비행 방향을 상하좌우로 조종한다. 4개의 날개를 상하와 좌우를 구분하여 2개의 날개를 동시에 작동하는 2축 조종방식과 4개의 조종날개를 각각 작동하는 4축 조종방식이 있다. 보통 2축 조종방식을 사용하는데 조종 축에는 각각의 구동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신궁은 유도탄의 직경이 작아 여러 개의 구동장치를 설치할 공간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서로 반대편에 있는 두 날개를 연결해 하나의 축을 형성한 다음한 개의 직류전동기로 조종하는 이른바 ‘일축(一軸)구동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런데 단일축 구동방식으로 유도탄의 비행방향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유도탄을 옆으로 강제 회전(roll)시켜야 한다. 그리고 유도탄이 가야할 방향에 조종날개가 있을 때 조종날개를 구동하여 그 방향으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어느 정도의 속도로 유도탄을 회전시켜야 할까.
신궁 유도탄을 유심히 살피면 날개에 특이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날개가 대칭을 이루지 않고 비대칭이라는 점이다. 전방에 크기가 다른 조종날개 1쌍과 고정날개 1쌍이 비대칭 형상으로 설계된 것이다. 꼬리날개도 유도탄 동체가 진행하는 방향에서 비틀려(경사)있다. 이는 유도탄을 회전시키기 위함인데, 그 이유만은 아니다.
유도탄을 회전시키는 것은 유도탄 후미에 장착되는 사출모터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유도탄의 비행 속도가 빨라지면 바람개비에서 보듯, 회전 속도도 덩달아 빨라지게 마련이다. 회전이 빨라지면 유도조종 명령에 구동장치가 즉각 응답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유도탄이 안정되게 유도조종 명령을 받아 용이하게 표적을 추적하려면 빠른 속도에서 회전수 증가를 억제하고 느린 저속에서는 회전수를 높여줄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회전수는 유도탄의 비행 속도가 초음속이든, 아음속이든 큰 변화 차 없이 거의 일정 수준을 유지해야한다. 그 적정 회전수가 1초에 약 20회 정도이다.
물론 회전을 별도로 제어할 기구를 탑재한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공간이 작다’는 제한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공력 메커니즘만으로 회전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회전유발기구라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신궁과 유사한 다른 PSAM에는 3개 내지 5개의 유전 유발 기구를 갖추고 있다.
연구팀은 바로 이 부분, 즉 비대칭 형태의 꼬리날개와 그 날개에 비틀림(경사)각을 줌으로써 안정적인 회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것은 독창적인 형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를 구현하는 과정이 실로 가시밭길이었다. 선진국에서는 비행시험을 통해 공력의 데이터를 얻어 설계를 변경, 진행하지만 ADD 연구팀은 그럴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유도탄 설계를 위해 공력을 예측하고 해석하는 프로그램으로 기존에 쓰여 온 것들은 효과적이질 못했다.
대칭인 날개를 대상으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신궁과 같은 비대칭 날개에는 정밀한 설계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연구팀은 이론 해석과 풍동 시험 결과에 따라 보정하는 것만으로 진행됐다. 다양한 날개 형태에 대한 해석이 뒤따랐다.
탐색개발 초기에는 날개를 유도탄에 조립한 상태에서 날개 경사면을 조정할 수 있도록 고안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날개와 관련된 부품이 너무 많았다. 공기역학적으로도 불만족스러웠다. 접는 날개가 전개되는 특성상 약간의 유격이 있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사각을 아주 정밀하게 가공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짜기’(Tsagi)와 미스트랄 도입에 따른 절충 교역으로 프랑스 ‘오네라’(Onera)의 풍동시험시설을 찾았다. 각각 기술협력 협약과 미스트랄 도입에 따른 절충교역에 의해 마련된 기회였다. 두 곳의 시험 시설은 규모 면에서도 ADD의 풍동시설과 비교되질 않았다. 연구팀은 ADD에서 하루에 2회 정도만 풍동시험을 할 수 있었던 데 비해 두 나라에서는 일주일에 약 100회 가량 시험이 가능했다.
연구팀은 풍동시험 등의 결과를 자체 개발한 공력 예측 프로그램과 공력 성능 및 안정성 해석개발과 연계해 공력 설계에 활용하면서 마침내 비대칭 꼬리날개와 경사각에 적용된 2가지의 롤 유발기구만으로도 유도탄의 높은 기동성과 안정성을 만족하는 유도탄 기체 설계와 제작을 끝낼 수 있었다. 선진국의 유사 무기체계에 비해 적은 수의 롤 회전유발기구로 아음속과 초음속을 아우르는 전 비행 영역에서 회전수가 더 적은 변화하는 안정적인 유도탄이라는 점이 자랑이 아닐 수 없다.연구팀은 연구 결과를 ‘비대칭 회전유도탄 공력설계 및 해석기법’ 으로 정립해 2001년 국방과학상 금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안았다. 금상은 그 기술이 ‘세계적 수준’임이 판명되었을 때 부여되는 것으로 ADD 창설 이래 10여 가지 기술만이 이 상을 받았을 만큼 권위가 있다.
외국 전동기 요구에 부응 못해
신궁의 날개들은 발사관 내에 접힌 상태로 있다가 발사 시 발사관을 이탈하면서 전개되어 유도탄의 비행을 조종하게 된다. 유도탄의 작은 직경에 들어갈 수 있는 소형이면서 강력한 구동장치를 필요로 한다.
구동장치 연구팀은 탐색개발 초기부터 미스트랄과 레드아이, 스팅어 등 유사 유도탄에 대한 기술 자료를 조사하고 특성을 분석해 기술적인 접근 방법과 설계 요구조건을 설정했다. 그것은 직류전동기를 구동원으로 하는 전기식 집적형 구동장치였다. ADD로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회전유도탄의 구동장치일 뿐만 아니라 좁은 공간에 집적해야 하는 제약성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개발 초기에 이 구동장치의 핵심 구성품이 되는 직류전동기를 외국에서 구매, 장착하려 했다.
국내 기술력이 모자라고 경제적으로도 효율성이 떨어져 국내 개발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구매 가능한 외국의 여러 직류전동기는 신궁유도탄에서 요구하는 구동장치와 부합하지 못했다. 형상과 규격 면에서 만족하기 못한 것이다. 따라서 1998년부터 국내 개발이 불가피해졌다. 구동장치 구성품의 경우 작은 치수오차도 유도탄 전체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다 보니 대부분의 부품이 정밀가공이 요구되었고,
특히 조종날개의 펼침 각도 오차는 구동장치의 전체 성능에 큰 영향을 끼쳐 정확한 각도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개발은 의외로 빠르고 원만하게 진행됐다. 그 결과 1999년 12월 외국 직류전동기 보다 직경이 더 작고 길이도 짧아 유도탄 직경의 1/4 내에 깔끔하게 설치할 수 있었다.
★ 신궁에 담긴 뜻
한국형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KPSAM)를 일컫는 명칭은 새로운 활을 뜻하는 신궁(新弓)이다. 최초에는 ‘神弓’이었다. 1999년 초까지만 해도 신궁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다만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 혹은 KPSAM, 또는 휴대용과 대공 유도무기의 영문 약자를 조합한 ‘휴샘’등으로 불리고는 했다.
그렇지만 이들 명칭이 길고 어색한 데다 불편하기까지 했다. 이에 연구팀은 유도탄의 이름을 짓고 이를 사업명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연구직을 포함한 국방과학연구소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공모한 결과 ‘神弓’이 선정되었다.
그런데 왜 新弓으로 변경해 사용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호국무기인 활에 대해 재인식하고 활과 활쏘기에 담긴 선조들의 정신을 다시 살리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이전까지 휴대용 유도탄은 외국에서 도입했지만 앞으로는 새 활로 우리 군을 무장시키겠다는 국내 개발의 새로운 의지가 실렸다. 나아가 새로운 기술을 소화·흡수하고 우리의 기술을 새롭게 적용시켜'신궁'을 개발하겠다는 연구원들의 의지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2000년대, 21세기는 인류 모두의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새 시대의 상징으로서 우리나라도 자주국방
의 새로운 각오로 새 활을 창조하겠다는 뜻도 있다.
2색 탐색기 기술도입으로 최초 계획 보완
그런데 1990년대 초 러시아(구 소련)가 공산주의 체제 붕괴와 함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자 정부는 러시아에 14억 7,000만 달러의 경제협력 차관을 제공한다. 이후 이 원리금과 이자 상환액 일부를 현물로 상환 받는 협정을 체결되고 그 일환으로 현물 중 러시아제 무기를 들여오는 ‘불곰사업’도 함께 추진됐다. 1998년까지 1차 사업으로 T-80U 전차, BMP-3 장갑차, 이글라, 대전차 유도탄 ‘메티스-M’ 등 4개 품목을 들여왔다.
이 가운데에는 군사기술 획득도 포함되었는데, 바로 이글라의 탐색기와 체계종합 관련 기술이었다. 1980년대 중반에 개발된 이글라의 탐색기는 수동 IR 호밍방식이지만 3세대형으로서 이중 채널의 2색 (Two
Color) 적외선 탐색기라고 한다. 표적인 항공기가 플레어 등으로 적외선을 교란하는 데에 대한 대응 능력(IRCCM)이 뛰어난 점이 특징이다.
이글라에 적용된 탐색기를 비롯한 기술들을 국내에 도입키로 함에 따라 ADD의 한국형 PSAM의 탐색개발 내용도 일부 수정 보완이 불가피해졌다. 당초 계획은 단소자 적외선 탐색기를 적용한 PSAM을 개발하면서 독자적인 2색 적외선 탐색기를 병행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러시아의 기술 협력을 받아 2색 적외선 탐색기를 ‘적용’한 PSAM을 개발하는 계획으로 수정보완된 것이다.
국내 시험개발로 확보한 단소자 초냉각형 적외선탐색기(AIM-9L급) 기술에 IRCCM 능력이 강화된 2색 적외선 탐색기 기술을 적용하는 데에는 기술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뿐만 아니라 탐색기에 따라 공
력설계와 유도조종 등 다른 분야의 설계도 달라지므로 PSAM 전반에 미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2차에 걸친 미스트랄 도입에 따른 절충교역으로 한국형 PSAM신궁에 미스트랄 기술이 적용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1차 도입 시 절충교역은 당시 개발 중이던 천마 관련 기술을 획득하는 데, 2차 도입(1996) 시 절충교역으로는 신궁에 필요한 풍동시험 등의 기술협력을 받았을 뿐이다.
러시아와의 기술협력
휴대용 유도무기(PSAM)를 개발하는데 있어 초기에는 그 획득 방법에 대해 혼선이 있었다. 1993년 8월 국내 연구개발 방식으로 결정이 되었을 때만 해도 국방과학연구소(ADD)는 탐색기를 일차적으로 기존 개발된 탐색기를 소형화하여 개발하면서 한편으로 적외선 대방해방책(IRCCM) 성능이 강화된 2색 탐색기(Two-Color Seeker)를 러시아와 기술협력으로 개발, 이를 신궁 성능 개량(PIP) 단계에서 적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1995년 10월 국방부가 신궁 개발사업을 승인할 때에 2색 적외선 탐색기 개발이 우선 요구되었다. 이는 곧 러시아와의 기술협력 성공 여부가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진통 끝에 기술협력 합의
신궁 개발을 위한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을 위한 접촉은 1993년 11월경부터 시작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한러센터를 그 창구로 삼아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러시아의 국영업체 로스브로우제니(Rosvoorouzhenie)사 등에 휴대용 유도무기 관련 제안요구서(RFP)를 발송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ADD는 체계 종합과 탐색기 개발을 맡은 LG이노텍(현 LIG넥스원)의 연구원들과 함께 러시아의 KBM사와 LOMO사를 방문해 상호 기술협력 개념을 확인하고 러시아측도 1994년 9월 일주일간 한국을 방문해 기술협력을 구체화했다. KBM이 유도탄을, LOMO는 탐색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합의하여 95년 12월 LG이노텍이 러시아측과 가계약까지 맺었다.
하지만 이 같은 합의는 PSAM 개발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높여줄 수는 있는 것이지만 국내 연구개발 역량을 축적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었다. 적어도 신궁 전체 체계 중 유도탄 개발만큼은 ADD가 주도할 수 있어야 했다. 이런 방향으로 합의를 변경하기 위해서 ADD는 큰 진통을 겪어야 했고, 그 결과 유도탄 개발을 ADD가 주도하고 KBM은 기술지원에 국한하는 방향으로 기술협력 개념을 변경하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ADD는 1996년 4월 26일 한국형 휴대용유도무기(K-PSAM)의 개발개념을 정립했다. 그리고 이에 근거로 ADD는 러시아측과 계약을 체결했다. 단계별로 기술 이전을 추진하되 1, 2단계에서는 탐색기 및 유도탄 체계 개념설계, 2색 탐색기 시제 개발 및 가능성 입증, 그리고 유도탄 체계 관련 기술 자문 등을 통합해 추진하고 3단계에서는 2색 탐색기와 유도탄 체계관련 기술을 분리시켜 탐색기 기두부(EOH ; Electro-
Optic Head)에 대한 기술이전과 시제품을 제공하고 체계와 관련해서는 기술 자문을 한다는 내용이다.
독자성 확보 위해 몇 배 노력
이에 따라 ADD는 탐색기 설계, 해외 협력을 통한 구성품 제작 및 조립 기술 획득, 시험평가 및 사업관리를 담당하고, LG이노텍은 주계약 업체로서 탐색기 조립생산과 생산 시설 및 설비를 확보하여 양산 준비를 수행하는 것으로 업무가 분담되었다. 또 러시아에서는 로스보로제니가 주 계약 업체로서 사업관리・지원・통제를 담당하고 KBM은 체계관련 기술의 기술지원을 맡고, LOMO는 탐색기 및 EOH 관련기술의 기술 지원, EOH의 조립 및 생산 장비 개발, 탐색기 시제품에 대한 수락시험을 담당하게 되었다.
“공동연구, 기술협력, 기술이전, 기술자문과 같은 말은 그 내용이 광범위해 자칫 애매하게 생각되기 쉽습니다. 몇몇 기술의 개념에 대한 이해만을 돕는 경우, 기술묶음자료만을 받는 경우와 여기에 교육까지 포함하는 경우, 혹은 설계도면을 완전히 받고 생산 설비까지 제작 지원 받는 경우 등 여러 가지입니다. 상호 계약에는 물론 상세하게 나오지만 잘못 이해하면 ‘베꼈다’ 또는 ‘그대로 전수받았다’고 오해 받기 십상이죠. 신궁 탐색기의 경우는 기술지원을 받지만 공동개발의 방식입니다. 그들이 이글라에 2색 탐색기를 적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신궁의 2색 탐색기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자부합니다.” (이원상 책임연구원)
기만 불꽃 가려내는 탐색기
2색 탐색기는 왜 필요한 걸까. PSAM은 적외선 탐색기를 통해 항공기가 내뿜는 엔진의 배기 열을 추적해 공격하는 것이 기본이다. 항공기는 이를 피하기 위해 유도탄의 탐색기를 속여야 하는데 그 수단으로 기만불꽃(섬광탄, flare)을 떨어뜨린다. 기만 불꽃은 항공기 엔진의 열보다 훨씬 높은 온도의 적외선 신호를 방사시킨다.
대부분의 PSAM은 탐색 범위 내에서 가장 큰 적외선 신호를 추적하도록 고안되어 있기 때문에 항공기의 엔진의 배기 열보다 훨씬 높은 온도의 기만불꽃이 있으면 탐색기는 이 기만불꽃의 신호를 더 크게 감지하고 추적하던 항공기 대신에 기만불꽃을 따라가게 된다. 2색 탐색기는 이 같은 기존의 적외선 탐색기와는 달리, 두 개의 서로 다른 적외선 영역을 독립적으로 탐지할 수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온도에 따라 물체가 방사하는 적외선의 파장과 세기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신궁의 탐색기에는 중 적외선 영역을 감지하는 주 대역(MC ; Main Channel) 감지기와 근 적외선 영역을 감지하는 보조 대역(AC ; Auxiliary Channel) 감지기가 있어 항공기가 내뿜는 배기 열과 기만불꽃을 구별해낼 수 있다.
1996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러시아와의 연구는 우선 이 같은 2색 탐색기에 대한 개념 및 구현방안, 고 수신감도 달성 기술, 체계 요구 신호 생성 개념 및 주요 구성품의 작동 개념에 대한 기술적인 협의가 이루어 졌다. 이글라를 기본으로 하되 이글라보다 10mm가 더 큰 직경 80mm의 탐색기로서 표적 포착 및 IRCCM 성능을 더 향상시킨다는 합의된 것이었지만, 개념 설정에서부터 적잖은 이해의 차가 없지 않았다.
“신궁 탐색기 IRCCM 중에서 적외선 신호에서 두 대역의 신호 크기를 비교한다는 점을 예로 들어 보죠.
기본원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한 장치들을 작은 공간에 다른 장치들과 조화롭게 꾸려 넣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너무 복잡합니다. 돈이 많이 투입되는 방법을 사용해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고요. 아날로그 방식 전자회로만으로 복잡한 신호처리를 수행해야 하는데… 국과연이 15년간 개발한 적외선 탐색기에서 단지 감지기 숫자가 두 개로 늘었을 뿐이지만 그 복잡성은 초기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고, 여기에 줄줄이 딸려 나오는 생소한 개념을 따라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원상 책임연구원)
‘핵심은 감추나’ 오해하기도
문제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러시아 측의 준비 상태였다. 한국 측을 위한 사전 자료 준비는 전혀 없었다. 자료 제공은 계약사항이 아니었다. 발표는 오로지 칠판과 구두로만 이루어졌다. 한국 측 연구 및 기술자들은 영어로 설명하는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데 이를 노트에 옮겨 적느라 곤욕을 치렀다. 가끔 도면이나 회로도를 들고 와도 회의실에서만 볼 수 있었던 탓에 보안 감독관이 없을 때 눈치를 보아가며 베껴야 했다.
어떤 문제를 놓고는 러시아 기술자들끼리 논쟁을 벌이느라 몇 시간이고 흘려보내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는데 알고 보니, 하드웨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역으로 설명하기 위해 무엇이 좋은 방법인지 놓고 서로 견해를 달리했던 것이다. 한국 측 기술자들은 일과 후 호텔로 돌아가서 몇 시간이고 서로 이해한 것을 맞추어 보아야만 했다.
몇 번의 기술회의에서 단편적으로 얻어지는 지식을 통하여 2색 탐색기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러는 사이 LOMO측 기술자들이 핵심을 감추고 거짓말을 하는것 아닌가 하는 오해도 한 적이 있었다. 공동연구 초기는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모든
것이 부족해 그 어려운 상황이 눈에 띌수밖에 없었다. 60대의 노 기술자는 손바닥만한 누런 종이에 빼곡하게 정리해 와서 발표하곤 했다. 기술회의 마지막 날은 회의록을 정리, 서명하기 마련인데 문안을 고쳐 프린트를 하려면, 두어 시간은 걸리는 듯했다.
단지 인쇄가 원활하지 못해 저녁 늦게까지 서명을 못하고 관계자들이 모두 대기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초기의 기술회의는 작동원리에 대한 설명과 함께 탐색기 상세규격을 합의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일단 합의를 해도 다음 회의에서는 새로운 표현을 들고 나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한국 측은 한국 측대로 각종 규격의 오차 허용범위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세부 조정 범위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험이 부족한 한국 측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열정적이고 인간적인 러시아 기술자
이러한 어려움은 시간이 흘러가며 점차 해결되었다. 여건은 좋지 않았지만 러시아 기술자들의 열의는 대단했다. 돈을 받고 단지 기술을 판다는 피동적 자세가 아니었다. 더 좋은 탐색기를 만들고 싶고 아이디어도 있지만 국가 사정 때문에 꿈을 펼쳐볼 수 없는 상황에서 공동연구를 통하여 실현할 기회를 찾았다고 생각 하는 것 같았다. 매번 만날 때마다 설계수정을 요구해 왔으며, 한국 측에서 보완을 요구할 때에도 이를 진지하게 고려해 주기도 했다.
한국 측은 배우는 입장에서 어려운 상황의 러시아기술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정도 대우를 받던 사회주의 시절과는 달리 박봉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었지만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러시아 요구는 힘들더라도 수용하려 노력했다. 3단계 계약의 첫 회의에서 탐색기 시험 장비를 논의하다가 러시아 측에서 러시아 전원 규격이 50Hz이고 이미 소요 부품을 사 놓은 상태이므로 우리에게 50Hz 기준으로 공급하겠다고 주장해 갑자기 회의가 중단된 적이 있다. 결국 며칠 협의 끝에 러시아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장비에 한국 측에서 주파수변환기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여 원만히 끝낼 수 있었다.
LOMO 기술자들은 매우 인간적이었다. 대부분 우리가 접촉한 기술자들은 50대의 경험이 풍부한 인력이며, 심지어는 70대의 노인도 있었다. 그들이 한국에 오면 LG이노텍에서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1996년부터 2003년까지 2색 탐색기의 상세설계 및 시제품 제작, EOH의 상세 규격 작성 등을 위한 40여회의 만남을 가지는 동안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사이가 되었고, 러시아의 기술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었다.
부러움 산 전자회로뭉치 기술 ADD는 EOH 연구를 진행하면서 ADD는 유도탄 전체 체계를 종합하는 데 따른 시험을 준비하면서 일단 완제품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안정된 탐색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국내에서 조립 생산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부품 단위로 도입, 조립 생산해 유도탄 시험에 사용했다.
또 탐색기 조립 생산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러시아로부터 도입해야 했지만 특별한 기능이 있는 장비 외에 일반 계측기 등은 국내에서 구입해 완성된 생산 장비를 확보했다. 당시 LG이노텍은 시제업체로서 고도로 정밀한 탐색기 제작에는 클린룸(청정구역)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체 투자로 관련 설비를 갖추었다.
탐색기 중 국내 개발로 진행된 전자회로 뭉치는 러시아 LOMO의 기술진이 감탄과 동시에 부러움을 산 부분이다. 탑재 컴퓨터를 제외한 모든 아날로그 회로를 혼성 집적회로(Hybrid-IC)화해 소형화를 구현한 것이다. 하이브리드-IC 기술은 설계와 제작의 난도가 무척 높았으나 박막 하이브리드 IC 기술을 적용해 아날로그 회로를 최소 크기로 제작이 가능했다. 여기서 연구팀은 국내 민수 기술을 적극 활용했다.
무릇 기술협력 사업에서는 기술을 받는 국가로부터 기술적 예속을 탈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탐색개발 이후 체계개발 단계에 들어선 시점에서 ADD는 EOH 부품의 국산화 연구를 병행했다. 그 결과 기술과 경제성에서 부족한 김발(Gimbal) 베어링과 스핀(Spin) 베어링, 그리고 소형 냉각기(Mini Cooler) 등 4가지만 제외하고는 부품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
“국산화 부품을 이용한 EOH는 도입품과 같은 성능을 발휘하는 것을 수차 시험을 통해 입증하며 국산화를 완료
했습니다. 하지만 생산 단가 면에서 도입품에 비해 가격이 더 나갑니다. 초기 양산에는 적용하지 못했는데, 이점이
내내 아쉽기만 합니다.” (윤재룡 책임연구원)
유도조종은 완전 디지털 방식
일반적으로 기존의 대공 유도탄은 항공기의 엔진에서 나오는 열을 추적하며 항공기의 측후방을 따라가는데, 이 경우 유도탄은 표적인 항공기의 본체를 타격하기 전에 엔진에서 나오는 배기열을 공격하는 경우가 발생, 명중률에 영향을 주게 된다. 신궁의 유도조종 연구팀은 이같은 기존 대공유도탄이 갖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유도방식을 적용키로 했다. 비행 중에 비례항법 유도방식(Proportional Navigation Guidance)을, 표적을 타격하기 직전인 종말에는 표적적응 유도방식(Target Adaptive Guidance)을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비례항법 유도방식이란 유도탄이 표적의 측후방을 따라가지 않고 미리 표적이 날아갈 방향으로 최단 거리로 비행토록 하는 방법이며, 표적적응 유도방식이란 유도탄이 비례항법 유도방식에 따라 표적 전방에 이르렀을 때 표적 방향으로 크게 선회하게끔 하여 표적 항공기의 배기열이 아니라 동체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연구팀은 개념연구 단계에서 수립된 이 같은 제어 및 조종기법에 대한 개념은 1995년 11월부터 시작된 탐색개발 중의 러시아 KBM의 기술자문으로 정립하였고,1999년 미스트랄 도입에 따른 절충교역의 일환으로 실시된 기술교육으로 적용하는 기법의 기술적 접근 방식을 확신하여 확립하였다. 이와 같이 유도조종기법을 확립하면서 2색 탐색기의 특성과 디지털 제어에 적합한 형태의 신호 채널을 확보했다.
이 같은 유도조종기법을 구현해주는 것은 물론 조종장치이다. 이글라와 스팅거는 아날로그 방식을, 미스트랄은 아날로그 및 디지털 혼합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나보다 선진화된 유도조종 알고리즘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방식이 유리했다. 또 제어 구조 등을 변경하는 데 따른 설계 수정 요구도 용이하게 수용할 수 있다. 따라서 신궁의 조종장치는 탑재 컴퓨터를 이용한 완전 디지털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그런데 기존 유도무기의 탑재 컴퓨터는 소형화와 가격 등의 관점보다는 정밀도와 연산속도 등에 중점을 두고 설계를 한 까닭에 고가의 프로세서와 복잡한 주변 회로를 갖는다. 그러나 신궁에서는 극히 제한 공간과 유사 무기와의 가격 경쟁력을 고려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반대로 성능은 최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요구조건이 붙어 있었다.
“판독전용 기억장치(ROM)와 변환기, 직렬통신 등의 기능을 단일 소자에 내장하면서도 소형이면서 저가인 마이크로컨트롤러를 적용한 탑재 컴퓨터를 선택했는데, 소형・저가의 마이크로컨트롤러는 연산 속도가 느린데다 부동소수점(floating-point) 연산 유닛이 내장되지 않은 단점이있죠. 그래서 고정 소수점(fixed-point) 연산기법을 적용해 유도조종 알고리즘을 실시간으로 처리토록 했습니다. 우리가 기술로 우려되는 오차 등을 해결한 것은 당연합니다.” (유도조종팀장 권기복 책임연구원)
이에 앞서 연구팀은 신궁과 같이 동체가 회전하는 유도탄에 필수적인 회전유도탄용 레이트 센서를 개발하기 위해 1994년 이글라를 기술 분석하면서 레이트 센서를 분해, 기계적 구조와 재질 및 동작원리를 면밀히 분석해 국내 개발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이후 개발을 완료했다.
추진 기관 내열 시스템 설계 매우 중요
유도탄이 각종 환경 속에서도 표적을 충분히 추적할 수 있게 비행하도록 힘을 주는 구성품이 추진기관이다. 유도무기체계의 개발 일정을 볼 때 이 추진기관은 다른 부체계(subsystem)에 비해 1년 정도 앞서 개발 되어야 한다. 설계한 유도탄이 군의 요구성능에 대체적으로 만족할 것인가를 무유도 비행시험을 통해 먼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탐색기 경우처럼 탐색개발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추진기관에 대한 연구는 다른 부체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인력과 예산은 타 부체계와 마찬가지로 1995년 11월 탐색개발이 시작되면서 투입되었다. 타 부체계보다 1년 정도 앞서 개발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그나마 연구예산도 기초연구성격의 연구범위에 해당하는 만큼만 배정받아 어려움은 더욱 컸다.
신궁 추진기관 개발에 필요한 주요기술로는 비행모터의 추진제, 내열(耐熱)시스템, 연소관 개발 기술과 이들을 종합한 시스템 성능기술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추진제 내부에 금속선(가는 은선)을 삽입해 연소 속도를 증가시키는 추진제 개발 기술은 국내에서 개발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으나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원들의 사전 연구에 의해 상당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얇고 가볍게 제작해야 하는 연소관 개발은 천마와 구룡 등을 개발하면서 관련 기술을 축적해온 덕분에 비교적 접근이 용이했다.
이렇게 추진기관 개발에 필요한 여러 분야의 기술들이 여러 연구원들의 열정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어떤 기술은 그 과정이 매우 힘든 경우도 있었다. 특히 내열시스템이 그러했다. 일반적인 추진기관의 경우, 연소관 내부의 추진제가 연소된 후 짧은 시간 동안에만 (연소관을 보호하는) 내열재가 연소 화염에 노출된다. 그러나 신궁의 내열재는 연소 초기부터 연소 완료 시까지 고온·고압가스에 노출된다. 내열 시스템의 설계는 중요한 까닭이다.국내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내열시스템에 대한 개발방향을 명확히 정하지 못한 채 개발은 시작되었다. 따라서 지상 연소시험을 통해 추진기관의 성능을 우선 개략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용도의 추진기관(heavy type이라고 하는 구조적 안정성이 높은추진기관)을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탐색개발기간을 통해 성능은 개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나 내열시스템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 영향은 체계개발에 들어서 유도탄체계에 부합하는 추진기관을 설계한 후 확인하는 최초 시험(1999. 6.24)을 진행하는 가운데 나타나고 말았다.
신궁은 특성상 가벼우면서도 성능이 최대로 발휘되어야 하는데 그날 시험의 결과는 추진기관을 너무 성능 위주로 설계한 결과였다. 원인 분석 결과 추진 기관의 내부층 공간 중에서 추진제가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과도해 발생한 현상으로 밝혀졌다.
유도탄 비행시험에 대비해 모든 부품을 비행용으로 적용한 추진기관의 지상 연소시험에서도 파열 현상이 발생했다. 자체 개발한 내열시스템이 역시 고온가스 유동에 견디지 못한 것이다. 이후 재료와 제작 공정을 수 차례에 걸쳐 변경, 시도해봤지만 역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러시아의 기술을 접한 것은 이즈음 이었다.
당신들은 실패 경우 없었나?
연구팀은 러시아의 내열시스템에 대한 보고서와 기술자들을 국내에서 접했지만 우리의 설계개념과는 상당히 다른 데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서방 국가들의 설계개념에 비해 효율성 측면에서는 양호 했지만 신뢰성 면에서는 동의하기가 곤란했다. 그들 역시 오랫동안 수많은 파열 현상을 겪으면서 완성한 기술임을 강조할 뿐이었다.
“당신들 유도탄도 간혹 추진 기관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 아닌가?” 이렇게 유도성 질문을 건넸지만 그들의 대답은 늘 “아무런 문제가 없다”였다. 기술회의는 이전하는 측과 이전 받는 측의 미묘한 견제 탓에 터놓고 토의할 수 있는 마당이 못 되었다. 자리를 제작 회사로 옮겨 소수의 실무 엔지니어들끼리 가슴을 맞대니 좀더 자유스럽게 토의가 가능해졌다.
러시아 기술자들은 밤에 진행되는 기술회의에도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고 목표를 향한 공동 인식 아래 성실히 토의에 임했다. 그렇지만 한계가 있었다. 러시아 기술에 대한 개념적 접근은 가능했지만 중요한 내열시스템의 설계와 해석, 공정과 관련한 실제적이고 세부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진척이 거의 없었다.
“설계를 어렵게 마치고 상온·고온·저온 등의 환경조건 아래서 지상시험을 실시했습니다. 조마조마한 순간을 수 차례 넘기며 시험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분석결과 여러 성능들이 정상이라는 결론을 얻고 비행시험 예정보다 2개월 정도 앞서 체계종합팀에 추진
기관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효남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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