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세대교체 중인 국악계의 떠오르는 젊은 별들

醉月 2009. 9. 18. 08:48

‘개념 있는 젊은 국악인’으로 불리는 신예들이 국악을 ‘지속 가능한’ 음악으로 만들고 있다

 

金門成 국악평론가
⊙ 1971년 전북 임실 출생.
⊙ 고려大 신문방송학과 졸업.
⊙ 국악방송 ‘김문성의 신민요 80년’, 케이블TV Arte ‘풍류한마당’ 진행, 現 경서도소리포럼 회장

 

국악계가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 다양한 끼와 탁월한 연주, 그리고 참신한 외모로 중무장한 ‘영 파워’들이 국악계 전면에 나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음악세계를 풀어내고 있다.
 
  이들은 국적 없는 國樂(국악)을 하는 일부 주자들과 달리 착실한 연마를 통해 실력을 검증받았다. ‘개념 있는 젊은 국악인’으로 불리는 이들은 실력을 바탕으로 퓨전 음악과 조우하기도 하고, 창작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무형문화재제도의 틀 속에 예술을 가둬버린 기존 세대들과 달리 국악이 ‘지속 가능한’ 음악으로 기능하게 할 그 무엇인가를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다.

  
  ■ 판소리 ■
    신이 점지한 소리꾼 장문희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예술 판소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 판소리의 세계화가 당면과제로 떠오르면서 이론과 실력, 才色(재색)을 두루 겸비한 젊은 명창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내로라하는 명창들 못지않은 실력을 가진 신인들 가운데 장문희, 조정희, 임현빈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판소리 명창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무대가 전주대사습놀이다. 지난 2004년 전주대사습놀이에 최연소 20대 명창이 등극해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당시 28세의 나이로 심사위원 7명 전원으로부터 사실상 만점을 받으며 장원에 오른 장문희(32).
 

장문희.

  그녀는 2002년 염경애가 세운 29세의 최연소 기록을 갈아 치웠다. 최연소·최고점수를 기록하며 대사습 장원에 오른 장문희를 두고 당시 심사위원들은 ‘신이 점지한 소리꾼’이라고 평가했다.
 
  장문희는 판소리 춘향가를 특장으로 한다. 聲音(성음)은 이모 이일주 명창을 능가할 정도로 단아하고 깊다. 이일주 명창은 동초제 판소리 1인자다. 장문희는 어릴 때부터 여러 사람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여덟 살 때 집안 사정으로 이모 집에 살면서 판소리에 입문했다.
 
  이일주 명창은 가야금과 무용에도 소질을 보였던 어린 장문희에게 ‘소리만 제대로 하면 그 공력으로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고 권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판소리에 매진, 춘향가·심청가·흥보가 등을 師事(사사)했다.
 
  장문희는 국악예고 3학년 재학시절 전주대사습 학생부 장원을, 우석대 3학년 재학시절에는 일반부 장원을 차지해 그 가능성을 일찍부터 인정받았다. 우석대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 과정을 거치면서 안숙선 명창에게서 ‘박봉술제 적벽가’를 배웠다.
 
  그녀는 고저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또래의 소리꾼들로부터 무대에 함께 서고 싶지 않은 소리꾼으로 자주 거론된다. 장문희가 부르는 적벽가의 ‘새타령’이나 춘향가의 ‘오리정 이별대목’은 관객의 눈물 콧물을 쏙 빼놓을 정도다. 그녀는 현재 전북 전주에 위치한 전북도립국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판소리계의 희망 조정희
  조정희.
  전주대사습이나 남원명창대회 대통령상 같은 큰 타이틀은 없지만 조정희(31)의 소리를 듣노라면 그녀의 실력을 금방 알 수 있다. 순천에서 보성소리를 전승하고 있는 염금향 명창의 외손녀인 조정희는 단아한 외모와는 달리 무대에 서면 특유의 성음으로 좌중을 휘어잡는다. 조금 남거나, 조금 모자라지 않는 중심 잡힌 목소리로 일갈하듯 호령하는 적벽가는 압권이다.
 
  조정희는 이화여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 과정을 마쳤다. 그녀는 외할머니 염금향을 비롯해 성우향·조상현 등 보성소리 명창들과 안숙선 명창을 사사했다. 제13회 동아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제14회 KBS 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부문 장원을 차지했다.
 
  전주대사습 장원에는 실패했지만 그녀의 기교와 성음은 이미 명창의 소리를 뛰어넘었다. 최근 국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바닥소리’ 멤버로 활동하며 창작판소리 보급에 일조하고 있다. 바닥소리는 밑바닥 서민의 땀과 숨결이 느껴지는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가 대중과 호흡하며 판소리 본래의 모습을 재연하고 있어 ‘판소리계의 희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조정희는 참신한 공연 내용으로 많은 마니아를 두고 있다. 그녀는 바리데기 신화의 巫歌(무가)를 한서린 목으로 노래했고, 새만금 생물들끼리 대화하는 내용을 판소리로 노래해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마음 한구석이 콱 막힌 갑갑한 날에는 조정희가 부르는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들어 보자. 막혔던 그 무엇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것이다.
 
 
  鼓法과 연기에 능한 소리꾼 임현빈
  임현빈.
  전남 해남 출생인 임현빈(34)은 남성 소리꾼이 귀한 판소리무대에서 재색과 연기까지 두루 갖춘 몇 안되는 소리꾼이다. 임현빈은 소리뿐만 아니라 鼓法(고법)도 일품이다. 고법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소리의 깊이와 멋 그리고 포인트를 잘 안다는 것이다.
 
  판소리史(사)에 고법과 소리와 연기에 두루 출중한 소리꾼이 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다. 명고수 김동준과 정철호가 그런 범주에 들 정도다.
 
  고법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요즘에는 고법만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법과 연기, 소리까지 실력을 갖춘 이가 드물다. 임현빈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예술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한 임현빈은 1993년 처음으로 만들어진 남원흥부제 판소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전국고수대회 명고부 대상을 받아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연기력도 출중해 2001년 평양 봉화극장에서 열린 춘향전에서 이도령역을 맡았다.
 
  한애순(1924~)에게서 흥보가를 사사한 것을 시작으로 성우향·안숙선·이난초 등 동서편제의 뛰어난 여류명창으로부터 두루 사사했고 이태백·배영배로부터 고법을 배웠다. 남원시립국악단원을 거쳐 현재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있다.
 
  임현빈의 성음은 굵고 단단해 듣는 이로 하여금 애원과 강직함을 느끼게 한다. 반대로 그의 성품은 여리기 그지없다. 판소리 스승인 한애순 선생의 이름만 꺼내도 눈시울을 붉힌다.
 
  광주시 문화재인 한애순 명창은 국가지정 ‘인간문화재’는 아니지만 현존하는 판소리꾼 가운데 최고의 명창 중 하나이다. 한애순 명창은 임현빈을 두고 ‘싹수 있는 청년’이라며 애정을 듬뿍 쏟았다.
 
  이들 외에도 제8회 남도민요 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국립창극단의 박애리와 해학으로 세태를 꼬집기로 유명한 남상일, 예솔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자람 등은 판소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재원들로 평가받는다.
 
 
  ■ 가야금병창 ■
 
  뼈를 깎는 훈련으로 실력 쌓아 가는 차수연
  차수연.
  판소리와 가야금 연주를 두루 잘해야 살아남는 가야금병창계에서도 젊은 주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활동하고 있는 젊은 소리꾼들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미모가 돋보이는 차수연(30)은 노력으로 만들어진 재원이다. 가족으로부터 대물림이란 보이지 않는 덕을 얻어 藝人(예인)의 길을 걷는 국악인들과 달리 차수연은 뼈를 깎는 훈련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섰다.
 
  차수연은 국악계의 代母(대모)로 평가받는 박귀희 명창의 수제자인 정예진으로부터 사사했다. 그녀의 장점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화사한 음색과 전달력이 탁월한 발성이다. 차수연은 국악예고를 졸업하고 중앙대에서 학·석사를 마쳤으며 제15회 전국국악대제전 최우수상, 제32회 전주대사습놀이 가야금병창 부문 차하를 차지했다. 비록 대통령상 수상 이력은 없으나 그 이상의 실력을 지닌 주자로 평가받는다.
 
  차수연의 특장은 판소리꾼들도 탐내는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힘차게 솟구쳐 세상을 쭉 훑고 날아가는 제비의 역동적인 모습을 짧은 시간에 가야금과 함께 풀어내야 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弄音(농음·즉흥적으로 내는 꾸밈음)과 弄絃(농현·가야금 연주에서 원래의 음 이외의 여러 가지 장식음을 내는 기법)이 부조화되기 일쑤인 이 대목을 차수연은 특유의 기교로 짜임새 있게 풀어낸다.
 
  그녀가 즐겨 부르는 ‘어머니 내 어머니’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짠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데, 이는 평소 효녀로 알려진 그녀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라는 후담도 있다.
 
 
  가야금병창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나현
  이나현.
  뛰어난 외모와 수려한 성음, 그리고 가야금 주자 못지않은 농현이 특기인 이나현(29)은 민요에 가야금을 입힌 병창으로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이화여대에서 한국음악을 전공하고 성균관대에서 공연예술협동과정을 수료할 정도로 이론에도 밝다.
 
  제9회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현재는 경기도립국악단 상임단원으로 있다. 특히 무대연출을 본인이 직접 기획할 만큼 공연기획 분야에 비상한 재주를 지녔다. 지난 6월 남산국악당에서 열렸던 개인발표회에서 그 능력을 멋진 무대로 선보인 바 있다.
 
  최근 “남도 소리꾼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이나현은 고교시절에 가야금을 배웠으나 민요를 배운 후로는 이를 접었다가 스승 임정란 명창의 권유로 다시 시작했다.
 
  청아하고 고운 자신의 목소리와 조화를 잘 이루는 병창곡들을 무대에 올려 독보적인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나현은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무대 매너가 특히 탁월하다. 공연 중간중간에 특유의 경기 추임새를 넣는 방식은 그녀만의 전매특허로 인식되고 있다.
 
  차수연·이나연 외에도 안옥선·안숙선에게서 병창을 사사한 천주미(26), 정예진 명창에게서 사사한 서태경(30), 강정숙의 제자로 한때 연기자로 모 방송국의 ‘파랑새는 있다’에 출연했던 김민정(30) 등도 가야금병창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 민요 ■
 
  국악계의 스타일리스트 이희문
  이희문.
  판소리와 맞먹는 두터운 향유층과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민요계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희문(34)은 한때 뮤직비디오 감독의 꿈을 키우며 카메라를 잡기도 했지만 뒤늦게 소리에 입문한 만학도다.
 
  그의 어머니 고주랑은 정득만·이창배 명창을 사사하고 묵계월 명창의 수제자로 오랫동안 활동한 경기 명창이다. 대개 母女(모녀)간 대물림이 많은 민요계에서 이채롭게 母子(모자)간 전승이 이뤄지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희문은 뮤직비디오 감독의 꿈을 포기할 때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시절 영상에 빠져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동방방송전문학교 프로모션 영상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소리는 그를 놓지 않았다. 비자문제로 학업을 중도 포기한 후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우연히 경기민요 인간문화재인 이춘희 명창의 소리를 듣고 반해버렸다.
 
  이춘희 명창의 권유로 소리에 입문한 그는 추계예술대와 용인대에서 국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늦깎이 소리꾼이지만 2005년 서울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민요부문 대상, 온나라 국악경연대회 민요부문 문광부장관상, 2008년 전국민요경창대회 경기좌창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어려움도 많다. 다른 소리꾼에 비해 청이 낮은 단점이 있지만 그는 특유의 발림과 시김새(주된 음의 앞과 뒤에서 덧붙여지는 꾸밈음)로 이를 극복했다. 성음 자체가 구성져 한오백년 같은 소리에 뛰어나다.
 
  부드럽고 정갈한 소리가 이희문의 매력이다. 또래의 소리꾼과 비교할 때 돋보이는 또 한가지 특징은 사라져 가는 소리를 끊임없이 복원해 무대에 선보인다는 점이다. 단순히 옛것을 복원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춤·영상·조명 등을 적절히 배합해 신세대 감각에 맞게 변화를 주고 있다. 그는 최근 ‘국악계의 스타일리스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수재형 소리꾼 박진선
   박진선.
  박진선은 한때 교육자가 되고 싶어 소리꾼의 길에서 잠시 이탈하기도 했다. 지난 7월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차세대 명창전 공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박진선이라는 이름은 그저 민요계에 발을 담갔다가 사라져 간 수많은 소리꾼 가운데 한 명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녀의 컴백 공연은 젊은 주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성음이 워낙 맑고 구성진 데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고 화사한 음색은 여느 명창에 견줘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진선은 맑은 목으로 유명한 김혜란 명창에게서 민요와 잡가를 사사한 후 다시 이은주 문하로 들어가 잡가와 민요를 배웠다.
 
  그녀는 국악계에서 수재형 소리꾼으로 불렸다. 제5회 전국국악경연대회 명창부문 최우수상을 받는 등 주변으로부터 큰 기대를 받았는데, 그로 인한 부담감이 너무 커 무대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국악예고를 거쳐 단국대에서 음악교육학과 석사를 마친 후 교단에 섰다.
 
  하지만 국악인을 맞이한 교육현장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교사생활을 접고 국악계로 복귀하자마자 차세대 명창전에서 특장인 집장가를 불러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아리랑 명창으로 각광받는 김다미
  김다미.
  김다미(30)는 아리랑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녀는 아리랑을 잘 불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국립국악원 이금미 명창에게서 아리랑과 경기잡가를 배웠다. 상주아리랑 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최우수상, 밀양아리랑 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상 등을 휩쓸며 아리랑 명창으로 급부상했다.
 
  ‘노래를 아무리 잘 불러도 아리랑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 진정한 명창이 아니다’라는 민요계의 지론처럼 소리꾼들 사이에서는 아리랑이 가장 부르기 까다로운 노래로 정평이 나 있다. 다소 아이로니컬해 보이지만 워낙 잘 알려진 민요이다 보니 기교를 넣지 않으면 전문가 소리라고 하기엔 초라해 보이고, 기교를 넣으면 호흡이 모자라거나 박이 어긋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렇다 보니 아리랑은 소리꾼들을 은근히 스트레스받게 만든다.
 
  김다미의 아리랑에는 편안함이 있지만 민족의 恨(한)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기품과 기백이 녹아 있는 음색이어서 가히 타고난 명품음색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긴아리랑을 청승맞게 잘 부른다. 국악예고를 거쳐 중앙대에서 민요를 전공했다. 최근 만삭의 몸으로 공연무대에 올라 아리랑을 연창해 청중에게 많은 감동을 줬다.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이 뛰어난 소리꾼 공윤주
  공윤주.
  민요계에는 하늘이 50년을 주기로 명창을 내려준다는 속설이 있다. 19세기 말에는 박춘재, 20세기 초에는 이진홍, 20세기 중반에는 김옥심을 냈다. 국악계에서는 하늘이 또 다른 명창을 내려줄 때가 됐다는 얘기가 있다. 하늘이 내려준 소리꾼을 꼽으라면 단연 공윤주(29)를 들 수 있다. 그녀는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이 뛰어난 소리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윤주는 창부타령 하나로 평생을 먹고살 것이라는 평을 듣는 전숙희 명창에게서 사사했다. 그녀는 언론에 크게 소개됐던 퓨전 민요단인 ‘아리수’의 단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성남시립국악단원으로 있다.
 
  탁월한 미모와 맑고 낭랑한 소리로 많은 젊은 팬을 확보하고 있으며 제8회 전국경서도소리 경연대회 명창부 대상, 제17회 KBS국악경연대회 민요부문 장원을 차지했다.
 
  그녀의 장점은 수려한 외모를 비롯해 맑고 화사함이 돋보이는 성음, 상하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기교,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무대매너이다. 특히 하기로 마음먹은 일은 끝장을 봐야 성이 풀리는 집요함을 갖고 있다.
 
  일례로 송서 추풍감별곡을 발표하기로 할 때 그녀는 한 명의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추풍감별곡으로 유명했던 명창들의 음원을 모두 확보하고 그것을 모두 듣고서 장점들만을 따내 연습한 후 마침내 공연했다. 판소리꾼들이 기존 명창들의 뛰어난 소리제를 따와 계보를 형성했듯 그녀는 경서도민요계에 새로운 계보를 만들 재목으로 평가받는다.
 
  이들 외에 이춘희 명창의 딸이자 제자인 서정화, 이춘희 명창의 모든 것을 닮아 있다는 평을 듣는 강효주, 김혜란 명창의 제자 김보현, 김금숙 명창의 제자 황수진, 백영춘의 제자로 재담소리계의 유일한 젊은 홍일점인 김혜영 등도 언제든지 경기소리판을 휘어잡을 신예들이다.
 
 
  ■ 기악 ■
 
  만능 가야금 연주자 강효진
  강효진.
  20세기 국악계에 나타난 대표적인 변화 중 하나는 성악과 기악의 위상 역전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성악의 반주로 여겨지던 기악곡이 독자적으로 발전해 이제는 성악보다 더 대중적인 음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20세기 초 가야금을 시작으로 대금·피리·거문고 등이 차례로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했고 지금은 해금이 그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강효진(33)은 퓨전 가야금 연주단 사계의 멤버, 가야금산조의 젊은 주자, 국립국악원 정악단 연주자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한 분야를 잘하기도 힘든데 많은 분야를 다루면 실력이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예전의 명인명창들이 다방면에 두루 능통한 것처럼 그녀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재숙·김일륜 명창에게서 최옥선류 가야금산조를 사사했으며 현재는 국립국악원 정악단원으로 있다. 제10회 동아콩쿠르대회 때 금상을 수상했는데, 화려한 이력에 비해 수상경력이 약한 듯 보이지만 수상경력이 그 사람의 능력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국악계 전문가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오히려 수상경력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소리꾼들이 적지 않은 게 국악계의 현실이고 보면 강효진은 그간의 경력만으로도 대통령상을 여러 번 거머쥐었을 것이다.
 
  다른 산조에 비해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절제미가 일품인 최옥산류 산조 가운데 강효진이 타는 진양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기에 제격이다. 그녀가 연주하는 경풍년을 듣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젊은 가야금 주자 중에는 신관용류 가야금산조에 능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원 서은영(29), 문재숙 이화여대 교수의 딸 이슬기(28), 서현숙 단국대 교수의 딸 이수진(30), 가족실내악단으로 잘 알려진 ‘둥지’의 이병욱씨 딸인 경기도립국악단원 이은기(29),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가야금 주자로 산조와 민요반주에 모두 뛰어난 문경아,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에 능통한 유지영 등이 차세대 가야금 주자로서 실력을 연마하고 있다.
 
 
  대금계의 中峰 김상연
  김상연.
  청아한 대바람 소리가 연상되는 대금주자로는 단연 김상연(32)을 들 수 있다. 그는 지난해 병상에 누워 있는 스승 서용석을 위해 헌정연주회를 가져 국악계에 큰 감동을 전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중요무형문화재인 구례향제줄풍류 단소 예능보유자였던 김무규 선생이다. 김상연은 중학생 시절 서용석의 대금소리에 반해 대금을 배우겠다고 하자 祖父(조부) 김무규는 연주의 어려움을 이유로 완강히 반대했다.
 
  뜻을 굽히지 않은 김상연은 국악고에 입학, 고교 3학년 때 동아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고, 한양대 재학 때는 최연소로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는 박용호, 이상규에게서 대금 정악을 배웠으며 23세의 어린 나이에 국립국악원 정악단에 입단했다. 정악에 일가견이 있는 김상연이지만 그의 반주가 돋보이는 대목은 역시 서용석류 대금산조다.
 
  서용석류 산조는 이생강 산조와 함께 대금산조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이생강류 산조에 비하면 화려한 맛은 덜하지만 남도 특유의 굵은 선이 돋보인다. 은은하고 깊고 날카로운 농음 속에 특유의 시김새가 돋보여 마치 제대로 된 판소리 한바탕을 듣는 듯한 짜임새가 일품이다.
 
  국악계에서는 김상연이 스승 서용석이 이루지 못한 꿈을 활짝 피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관악창작앙상블 ‘Ach-so’의 대표로 있으며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대금 부수석으로 있다. 머리가 복잡하고 집중되지 않을 때 김상연의 산조 음반 가운데 ‘중모리’를 듣는다면 아마도 멋진 음악치료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 세대에 한 명 나오는 대금잽이 김종환
  김종환.
  김종환(30)의 대금소리에는 남도의 애절함과 더불어 서울지역의 화사함이 함께 묻어난다. 한 평론가는 그의 대금을 일컬어 “가히 신선의 경지에서 竹(죽)을 놀린다”고 극찬했다.
 
  김종환은 대금과 단소 등 부는 악기에 천부적인 자질을 보이고 있다. 13세에 대금산조에 푹 빠지면서 본격적으로 국악도의 길을 걸었다. 전주예고 1학년 때 전주학생대사습놀이 기악부 장원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듬해 고등학생 신분으로 제1회 한밭가무악 전통예술경연대회 종합대상을 차지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중앙대에서 국악을 전공한 김종환은 화려함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명인 이생강에게서 대금산조를 이수했으며 이철주로부터 민요반주를, 윤병천에게서 대금정악을 배워 산조·정악·민요반주 대금을 두루 섭렵했다. 특히 민요반주 부문에서는 독보적이다.
 
  대개의 대금 연주자들은 정악과 산조 대금까지는 무난히 배우지만 민요반주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다. 산조가락에 익숙한 연주자가 선율·가락이 이질적인 삼현육각 반주가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악, 산조, 민요반주와 무속반주까지 아우르는 ‘대금잽이’가 한 세대에 한 명 나오면 다행이라는 속설이 있는데 김종환이 그러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현재 KBS민속합주단 소속인 그는 온화한 성격과 성실함으로 주변에 사람이 늘 모인다.
 
 
  하늘에 닿는 피리소리 연주자 이호진
  이호진.
  피리는 입김이 조금만 세어도 소리꾼의 소리를 방해하고, 입김이 조금만 약하면 악기들의 조화를 망쳐버려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 중 하나다. 피리 주자들 중 이호진(33)은 산조피리와 민요반주에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다. 차세대 주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기량만큼은 기성 명인들의 실력을 뛰어넘고 있다. 국악계의 무게 있는 공연무대 피리반주는 대부분 이호진의 몫이다. 당분간 그의 독주는 계속될 것이다.
 
  민속피리 분야에서 짧은 기간에 큰 명성을 얻은 이호진은 대구시립국악단에 있는 외숙부의 영향으로 국악계에 입문했다. 일반고교를 졸업한 후 경북대 국악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한세현, 최경만의 피리가락을 사사했으며 이철주, 김무경 등에게서 민요반주와 무속반주를 배웠다. 단기간에 최고의 경지에 오른 데는 ‘외로움과 고집’에서 비롯됐다.
 
  이호진이 국악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6세 때 제12회 서울국악경연대회에서 수석을 차지하면서부터다. 그의 매력은 피리가 가지고 있는 거센 음색을 역동성과 유려한 선의 미로 자연스럽게 표현해낸다는 데 있다. 짙은 계면으로 소리를 욱여내는 산조의 깊은 멋은 이호진만이 연출할 수 있는 秘技(비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산조 가락을 듣노라면 마치 探景遊覽(탐경유람)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는 피리산조뿐만 아니라 정악피리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현재 국립국악원 민속반주단원으로 있다.
 
 
  주목받는 연주자들
 
  이호진의 아성에 최근 두 명의 젊은 주자가 도전장을 냈다. 민요반주 분야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스물아홉 살의 김영정과 이재혁 두 동갑내기가 그들이다. 김영정은 무속피리에 뛰어난 기예를 지녔던 천재 피리 연주가이자 아버지인 김성운의 가락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김영정의 가락은 풍성하면서 섬세하다.
 
  이재혁은 피리소리가 시원시원하고 힘이 풍성한 연주자다. 민요반주뿐만 아니라 산조에도 재주를 보이고 있는 그는 중앙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수업 대신 굿판과 민요현장에 자주 불려 다닐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서울전통예술경연대회 기악분야 일반부 대상, 남원춘향국악대제전 관악부 일반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들 외에 해금 연주에 충실한 이동훈(36)과 김선구(35)가 돋보인다. 두 사람은 산조와 민요반주 분야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중견 주자이다. 민요반주로 영역을 다지고 있는 전미선(32) 역시 눈여겨볼 연주자다.⊙